Jean-Jacques Goldman - Sache Que Je
Edith Piaf - L`homme Au Piano
Pierre Bachelet - In The Mirror (From Emmanuelle)
● [pt op tr] fr sfed--불설장아함경_K0647_T0001.txt ☞제2권
쉬는 동안 『장아함경』 내용을 한 번 외어 보려 노력하는 가운데 여행에 관한 노래를 들었다.
처음 7 가지 불퇴법의 내용이 내용 자체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각 내용을 스토리가 이어지게 해서 연상하기 쉽게 기억한다거나
첫글자를 떼어서 외어 보려 할 때 뜻대로 잘 안 되고 뒤 내용까지 다 외우고 나서 첫 부분으로 돌아오면 또 생각이 잘 안 난다.
한문본을 많이 참조하면 의미가 함축된 짧은 한자어들을 통해서 외우는 것이 좀 더 쉽다. 일단 첫 부분에서 핵심단어를 뽑아 장아함경7불퇴법-강화법승공정명 이렇게 일단 줄인다. 그리고 그 다음 7개씩 이어지는 부분은 다시 처음의 강화법승공정명 이런 각 글자에 다시 붙여서 외어 본다.
그 중에 몇몇은 기존에 알고 있는 내용도 있어서 조금 부담이 덜어지지만, 그러나 여하튼 한 순간에는 되지는 않는다.
이렇게 내용을 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하나 그 내용을 놓고 왜 이런 내용이 있으면 불퇴의 상태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침입을 받고 무너져 없어져 버리는가를 음미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런 입장에서 또 다른 것이 필요하지 않은가도 자신 나름대로 헤아려 보는 것도 경전내용을 살피는데 도움이 된다.
○ [pt op tr] ▼mus0fl--Mireille Mathiue - Romantica.lrc
○ [pt op tr]Житловий_будинок_Тульчин_вул._Леніна,21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Житловий_будинок_Тульчин_вул._Леніна,21.JPG Lesser Coat of Arms of Ukraine.svg in Ukraine Author Prymasal ● [pt op tr] fr
요즘 국제정세를 살피면 어느 곳에서든지 갑자기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그 가운데 우리나라도 세계적으로 전쟁발발 가능성이 대단히 높은 곳으로 평가된다.
이번에 구글여행사를 통해 살펴 보고 온 발칸지역도 최근 내전이 발생해서 과거 2차대전때와 같은 대량의 학살이 발생했다.
이는 종교나 민족 사이의 이해관계 대립과 상호 증오에 의해 발생한다고 보는데
이미 인류가 그런 전쟁에 대해 기본적으로 반성을 하지만, 막상 그런 상황이 되면 또 같은 행위를 반복해 나가는 양상을 볼 수 있다. 그래서 2 차 대전 때 히틀러가 유대인에게 저지른 만행과 같은 사건은 시기와 지역을 바꿔가면서 계속 반복해 진행된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2 차대전이 끝난 이후로도 프놈펜에서도 그리고 르완다에서도 그런 사건이 발생하고 다시 코소보 지역에서도 발생하고 최근에는 또 시리아 내전이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데 인류가 갖고 있는 이런 고질적인 정신병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임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세계 각 지역을 보면 대부분 나라들이 주변국과 상당히 긴장 관계에 많이 놓여 있음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평가되는 입장에서 부처님이 제시한 7가지 요소를 놓고 검토하는 가운데 부처님이 제시한 내용 가운데 좀 부족하거나 아니면 부적절하다고 볼 내용은 없는가를 검토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현재 수소폭탄과 핵폭탄의 위협이 증가되는 상태다. 이 문제를 놓고 본인이 일찍이 암소폭탄으로 이를 중화시키면 될 것이라고 제시한 바가 있다.
나라가 침입을 받지 않으려면 무기 개발 능력이 주변국보다 월등하게 뛰어나면 전쟁을 방지하고 무너지지 않게 되는 것 아닌가라고 여기기도 쉽다.
그런데 사실 수소 핵폭탄만 문제라면 암소 폭탄이 이를 중화시키는 효과가 강력하고 수소 핵폭탄에 암소폭탄을 사용하면 상대 수소 핵폭탄을 통해 이후 거저 젖과 꿀을 얻는 효과를 얻는다고 보지만, 이 암소폭탄은 오로지 수소 핵폭탄에만 효과를 발휘하고 또 암소폭탄은 그 자체만 보면 역시 수소 핵폭탄 만큼 주변을 긴장시키게 하는 것이어서 수소 폭탄 만큼 문제가 많다.
그런데 어떤 처방이 종합적으로 효과가 있는가를 살피려면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더라도 관념상으로라도 어떤 요소를 현실에서 넣고 빼고 해보며 그 양 경우에 어떤 차이가 나타나는가를 넓고 길고 깊은 광장심 관찰 방식을 통해 헤아려 보는 것이 필요하다.
일전에도 이런 시시비비나 대립관계의 문제를 살폈다. 그런데 어떤 범죄 사건에서 범인이 다른 이를 살해한 수단이 권총이나 망치라고 할 때 그 범죄 현장에서 그런 권총이나 망치만 제거하면 그런 범죄가 그 범인에 의해 발생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참으로 단순한 생각이다.
예를 들어 어떤 곳에서는 단순히 볼펜이나 치솔 이런 것만 있어도 이를 흉기로 사용하여 다른 이를 해치는 사례가 있다. 그리고 또 그런 것마저도 없어도 단순히 맨 주먹이나 맨 발로 상대를 해치는 사례도 많다.
반면, 어떤 상황에서는 옆에 전기톱도 있고 망치 삽 곡괭이 톱 심지어 칼 엽총 등등 흉기로 사용할 가능성이 높은 물건이 가득해도 정작 아무런 사고도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각 경우에 어떤 요소가 그런 차이를 만들어 내는가를 찾아내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다.
그렇게 문제를 살피지 않고 엉뚱하게 어떤 장소에서 권총이나 망치와 같은 수단만 제거하면 그로 인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여기면 사실은 그런 자세로 인해 그 이후 더 끔직한 사건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 문제되는 흉기 등을 문제 현장에서 제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핵심적인 요소를 찾아서 그 문제를 같이 해결해 내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현실적으로 어떤 범인이 사건을 일으킬 때는 옆에 의자가 있으면 의자로 핸드폰이 핸드폰으로 병이 있으면 병으로 이런 식으로 온갖 수단을 다 사용하여 상대를 해치려고 임하는 것이 일반이다. 그래서 이 가운데 범인이 어떤 것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고 해서 그 사건이 발생하지 않고 문제가 해소된다고 보기 힘들다.
그런데 그로 인해 문제가 해결된다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그 문제에만 매달리면 오히려 그로 인해 사건이 더 위험해질 수 있다.
그래서 부처님이 제시한 7 가지 방안이 과연 이런 입장에서 효과가 있는가. 아닌가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수행자는 원칙적으로 부처님이 제시한 내용을 일단 잘 이해하고 외우고 음미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런 내용들이 현실 문제 해결에 효과가 있는가 의문을 갖는 입장도 있다. 따라서 앞과 같은 입장에서 관념상으로 무엇을 넣고 빼고 함에 따라 어떤 침입을 받고 안 받고 하는 차이가 나타나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어제 경전을 살피는 가운데 발칸 반도 지역을 구글여행사를 통해 여행을 다니면서 거리의 모습은 일반 다른 나라들과 별 차이가 없는데 이 지역이 오랫동안 각 종교나 민족간에 상당히 반목과 갈등이 심한 지역인 점을 놓고
어떻게 하면 증오를 증오를 통해 해소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주제로 글을 쓰려고 했다.
그런데 그 전날 살핀 『성유식론』과 그 날 살핀 『42장경』 판본이 복잡해 정리를 하느라 시간을 다 보내 쓰지 못하고 말았다.
해당 발칸지역이 고대부터 지역적으로 카톨릭과 그리스 정교가 분리되는 경계선이기도 하고 또 이후 이슬람 세력이 진출하게 된 지역이기도 하고 이런 관계로 종교적으로도 그렇고 민족 구성상으로도 갈등과 대립을 일으키는 요소가 상당히 많은 지역임을 보게 된다. 최근에 그로 인해서 자신과 종교가 다르고 민족이 다르다는 그런 사정으로 수십만명을 학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그런 가해를 한 입장은 과거에 자신들이 상대세력으로부터 억압을 오래 받았다거나 2 차대전 당시 박해를 당했다는 등등을 또 배경으로 한다.
그런데 이번에 그렇게 학살을 당한 입장에서는 또 이 사건을 놓고 그 반대로 생각한다. 그래서 증오는 증오를 불러 일으키고 이것이 세대를 이어 나가면서 확대될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오히려 증오를 또 다른 의미의 증오로 대하면 그 문제가 근본적으로 잘 해결될 방안이 있다.
한자 입력하기가 쉽지 않은데 위 내용을 한자를 섞어 다시 표현하면 '증오' 반목 대립 갈등 생사고통 등의 문제는 진리를 단순히 이해하는데 그치지 말고 삶의 현실에서 직접 실천을 통해 경험하고 깨달음을 증득하는 '증오(證悟)'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이런 의미다.
그런 취지로 어제 글을 작성하려다가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것 같고 경전 정리 작업으로 피로함을 느껴 일단 제목만 달아 놓고 중지를 했다.
그런데 기존 글에서 제시한 내용을 잘 이해하여 현실에 임하면 현실에서 온갖 탐욕과 분노 미움과 증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여하튼 이 내용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살피기로 한다.
그런데 글의 배경화면 그림을 보니 오늘 언급한 핵심 주제와 관련된 내용들이 또 제시되는 것 같다.
현실에서는 사용하는 무기가 월등히 좋아야 이런 문제를 잘 해결한다고 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이런 문제도 함께 놓고 증오의 문제는 증오를 통해서 해결해야 함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는 온갖세상의 불법 부정 비리는 불법 부정 비리로 해결해야 함과 엇비슷하다. 위 내용은 온갖 세상의 불법 부정 비리는 부처님법[불법]으로 이치 아닌 것[비리]을 부정함으로써 벗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증오를 증오로 해결한다는 방안은 해당 페이지에 시간이 나면 다시 글을 쓰기로 하고 미룬 가운데 옥상기지에서 쉬면서 노래를 듣는데
모든 사건 사고는 미리 예방 방안을 잘 취해야 한다는 취지의 메세지를 전하는 곡을 듣고 조금 내용이 이 페이지 저 페이지에 반복되더라도 그 방안에 대해 간단히 핵심을 적는 것이 좋다고 보게 된다.
위 노래에서는 mun 님의 사례를 들어서 무언가를 덜 아끼었으면 사정이 달라졌을 것이다라는 메세지도 전하는데 사실은 그것이 각 상황마다 각 주체의 입장에서는 매 순간 도저히 그렇게 하기 힘들다고 보게 된다.
그런데 현실에서 막상 어떤 일이 발생하고 닥칠 때 그 순간에 그것을 좋게 바꾸려고 하면 그것은 대부분 그처럼 되지 않고 그 이전보다 더 힘들게 된다.
역사의 비극으로 자주 거론되는 유대인 학살과 또는 최근에 진행 중인 시리아 내전 사태와 같은 사건들을 놓고 볼 때 어떤 이가 학살이 진행되는 현장에 임해서 그 순간에 무엇을 갑자기 바꿔서 이런 비극을 피하려 한다면 그것이 뜻대로 잘 된다고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런 사고를 미리 막으려면 예를 들어 유대인 학살의 피해자와 같은 사례라면 사실은 그런 수용소에 들어가는 기차를 타기전이라거나 또는 그 이전에 게토에 수용되기 전이라거나 또는 히틀러가 탄압정책을 시작하기 전이라거나 이런 등등으로 그 예방방안을 미리 잘 취해야 했다고 본다.
시리아 내전 사태의 당사자들도 사정이 다 마찬가지다.
그리고 바둑이나 장기나 오목과 같은 오락 경기를 놓고 보아도 그 사정은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오목을 5 알을 나란히 배치해야 이기고 그래서 오목 경기에서 이기려고 한다면
사실은 그 5 알을 나란히 놓기위해 그 모양을 구상하고 그것을 7 수 이전부터 둘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사실은 오목게임에서 이길 도리가 없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오늘 경전에서 7 이란 숫자가 나와서 공연히 7 을 강조하는 것 같지만, 사실 사정이 그와 같다.
가끔 오목을 두는 이들 간에는 상대가 자신의 알이 3 개가 되어 있는 것을 착시현상으로 잘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을 이용해서 요행을 통해 자신이 이길 수 있다고 여기고 오목을 두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컴퓨터를 상대할 때는 그런 방안은 일체 통용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컴퓨터는 또 어떻게 해서 상대를 이기는가 하면 자신이 5 개를 나란히 두고자 할 때 7 번에 해당하는 수에 상대가 도저히 그에 따라서 일정한 곳에 두지 않을 수 없게 만들면서 그렇게 7 번을 두어서 결국 바둑알 5 개를 나란히 만들어서 이긴다.
사실 나중에 두는 몇 개는 굳이 두지 않아도 이미 3 개 정도가 나란히 된 상태에서는 승패가 결정되버린 상태가 된다. 그런데 대부분 눈에 그런 상태가 나타나서 도저히 어떻게 할 도리가 없게 된 상태에서 이제 어떤 방안이 없는가를 찾아 나서곤 한다.
그래서 삶에서 누구나 미리 예상할 수 있는 생사고통의 문제에 대해서는 그것이 닥치기 이전에 미리 그것을 생각하고 그 해결방안을 찾아서 평소 열심히 행해야 한다. 따라서 평소 그런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하는 수행방안을 열심히 실천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미리 생사고통에서 벗어날 수행방안을 행하는 것이나
또는 그것을 그렇게 행하지 않아 생사고통을 맞이하게 될 때 그런 생사고통을 평안히 받아들이는 것이나
둘 다 같은 원리에 의해서 행하고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 둘 다 도저히 현실에서 행하기 힘들다고 여기고 대하게 된다.
그런데 둘 가운데 그래도 조금 나은 것은 미리 에방방안을 찾아서 미리 수행을 실천하여 행하는 것이다.
증오를 어떻게 깨달음의 증오로 해결하는가에 대해 비닐판 비유를 통해 살피기로 한다.
비닐판 마술이라는 것은 단순하다.
비닐판을 두 서너장 마련해서 한 비닐판에는 작은 세로를 그려 놓고 다른 비닐판에는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려 놓은 다음 이것을 겹쳐 놓고 바라보면 각 비닐에는 없는 '안이 세모인 도너츠 모양'이 나타난다. 각 비닐에는 그런 도너츠가 없는데 그러나 그런 도너츠가 이로 인해 나타난다.
대단한 마술은 아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현실에서 각 주체가 전도망상을 일으키고 현실을 대하게 되는 사정을 나타내는 비유다.
만일 이런 도너츠 모양이 그런 사정으로 나타나고 그런 도너츠를 현실에서 대하는 경우
그런 도너츠가 각 비닐판 영역에서는 본래 얻을 수 없음을 잘 관하여 이해하고 대하면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런 사정을 잘 이해하고 관하여 그런 도너츠를 대하면 그런 도너츠가 보이더라도 그런 도너츠는 거기에 없음을 이해하면서 그렇게 나타나 보이는 도너츠에 집착을 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그런 도너츠가 보이는 상태에서는 도저히 행하기 힘들다고 보는 수행방안도 어렵게 여기지 않고 잘 행할 수 있게 된다. 또 한편 도너츠로 고통을 직접 당하는 상황에서도 또 평안히 그런 생사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제시한다.
경전 표현을 빌리면 관자재보살 '행심' 반야바라밀다 '조견' 오온개공=> '도' 일체고액 이 부분이 바로 그런 내용을 제시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경전에서는 이를 눈병이 난 상태에서 허공에는 꽃이 없는데도 허공에 꽃이 있다고 보는 상태를 놓고 비유를 들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눈병이 나서 사실은 허공에 없는 꽃을 그렇게 보게 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그는 그 상태에서 여전히 허공의 꽃은 그렇게 보이지만, 그러나 이제 과거처럼 그 허공의 꽃이 실답게 있다고 여기지 않고 그에 집착을 갖지 않고 그것을 대하게 된다.
예를 들어 앞의 비닐 마술의 경우처럼 각 비닐을 겹쳐 놓고 바라보는 상태에서 안이 세모인 도너츠 모양이 보일 때
각 비닐판에 그런 도너츠는 없고 각 비닐에는 세모와 동그라미만 있음을 정확히 이해하고 대하면 그 상황에서 도너츠 모양을 보더라도 그것이 각 비닐에서 얻을 수 없는 내용이고 단지 각 비닐의 세모와 동그라미를 놓고 그렇게 여기는 것임을 이해하고 대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 상황에서 그가 도너츠 모양을 보지 못하는 것은 또 아니다.
다만 그런 이해와 깨달음을 통해서 그는 자신이 세모가 그려진 비닐판을 대할 때 그것을 '바깥이 동그란 도너츠'가 있다고 여기고 대했다면 이제는 그것은 도너츠가 아니고 세모라고 이해하면서 대하는 것이다.
또 자신이 동그라미가 있는 비닐판을 대할 때 그것은 '속이 세모인 도너츠'라고 과거에 대했다면 이제는 그것은 도너츠가 아닌 동그라미로 이해하며 그것을 대하게 된다.
그리고 이 비유는 현실에서 본래 현실이 생사고통을 얻을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눈을 뜨고 얻게 되는 감각현실과 또 그에 대해서 분별을 일으키는 내용을 놓고 그런 생사고통이 그런 현실에 그처럼 있다고 여기는 상황을 나타낸다.
따라서 생사고통을 받아 가는 각 주체가 현실의 본 정체와 그 각각의 관계를 잘 이해해 현실에 적용해 임하는 것이 1 차적으로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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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이 상황을 이해해보자.
자신이 걸어 가는데 누군가 등을 세게 주먹으로 친다고 해보자.
무언가 감각을 하게 되어서 뒤를 돌아보는데 그 경우 그 상대가 10 년전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라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그런데 만일 사정이 그렇지 않고 약간 몸도 허약해 보이는 한편 이상한 표정의 낯선 사람이 자신에게 무언가 시비를 걸고 욕을 하면서 그렇게 했다면 또 자신은 어떻게 이것을 생각하게 되는가.
이런 현실문제에서 처음 받은 촉감과 같은 감각현실이 견디기 힘든 심한 통증인가 아닌가를 별개 문제로 하고
그에 대해서 한 경우는 대단히 즐겁고 기쁜 내용으로 이해하는데 반해서 한 경우는 자신이 대단히 참기 힘들고 불쾌한 일로 그것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차이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경우가 다 사실은 기본적으로 그 감각현실에서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는 상황인데 그 감각현실로부터 일으킨 분별을 가지고 그 감각현실을 대하는 가운데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내용이 그처럼 그런 감각현실 안에 그렇게 실답게 있다고 여기면서 그 현실을 맞이하게 되고
그에 바탕해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위를 해나가게 되는 가운데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로 묶여서 매 생을 맞이하게 된다는 혹-업-고의 관계를 여기서 위 사례로 설명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미 실재는 실재대로 진짜라고 할 내용은 없는 가운데[무아, 무자성 ] 그렇다고 아무 것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 비무 ] 그 내용을 얻지 못하기에 있고 없음을 말할 수 없고 공하다고 표현함을 제시했는데
그것이 모든 현실 존재의 본 바탕이기에 진여라고 표현하지만, 사실은 이 진여도 어떤 집착을 가질만한 실다운 내용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하튼 그 실재 내용이 무엇이던지 간에 현실에서 각 영역에서 내용을 얻는 관계는 다시 실재 - 감각현실 - 관념분별의 관계가 된다고 보는 것인데
실재는 # 과 같은 기호로 일단 표시하기로 하고 감각현실은 ! 과 같은 기호로 표시하고 그에 대해 일으키는 관념분별은 @ 라고 표시한다면
현실에서 각 주체가 어떤 내용을 얻는다는 것은 # -> ! -> @ 이런 형태의 관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같이 각 영역에서 얻는 내용은 실답다고 할 내용이 아니고
하나의 영역의 내용은 다른 영역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가운데 일으켜 얻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정작 다른 영역에서 그 내용을 찾아낼 수 없고 따라서 하나같이 집착을 갖고 대할 실다운 내용이 아닌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감각현실처럼 아무리 그 내용이 현실에서 생생해도 그것은 적어도 자신이 그에 대해 행하게 되는 '관념분별의 내용은 아닌' 그런 '어떤 생생한' 그 무엇인 것이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이런 사정을 이해해서 현실에서 자신이 실답게 있다고 여기면서 진지하게 임하는 자신이나 자신의 것, 그리고 그와 관련된 생사고통이나 생멸 현상이란 본래 각 영역에서 실답게 있는 것이 아님을 잘 이해하고 그런 내용을 대해도 대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정은 실재나 감각현실과 관념분별 영역이 다 사정이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래서 # -> ! -> @ 이 내용을 놓고 볼 때 각기 # 이나 ! 또는 @ 하나하나만 놓고 보면 그것은 하등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은 중생들이 생사현실로 보는 그 모든 것이 본래 그에 해당하는 실다운 내용을 거기에서 얻을 수 없는 청정한 니르바나라고 제시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관계를 보지 못하고 앞과 같이 근본 어리석음 무명을 바탕으로 전도몽상을 일으켜 대하게 되면 본래 그런 생사고통을 얻을 수 없는 그런 청정한 니르바나의 상태를 놓고 그것이 하나같이 다 생사고통이 그렇게 실답게 있는 것이라고 여기면서 생사고통을 받아나가게 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가장 문제가 된다고 보는 것은
자신이 현실에서 어떤 관념분별 @ 의 내용을 일으켜 갖게 되면 # 과 ! 기호로 표시한 실재나 감각현실 영역안에 그런 내용이 그처럼 실답게 있다고 여기는 가운데에서 바로 그런 경우에만 그런 것들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이 그 영역에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잘 관하고 이해하게 되면 비록 그것을 그렇게 겹쳐 대하는 가운데 앞에서 허공의 꽃이나 도너츠의 비유처럼 그런 내용을 현실에 대하게 되더라도
앞과 같은 올바른 이해를 통해서 본래의 사정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해해서 그로 인해 받게 되는 생사고통이 본래 그런 현실에는 얻을 수 없는 것임을 잘 관하는 가운데 이를 벗어나게 된다고 제시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이것은 꿈의 내용과도 사정이 같다.
꿈을 꿀 때는 꿈이 생생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실답지 않음을 잘 이해하는 바탕에서는 설령 꿈에서 어떤 꿈을 꾸더라도 그런 꿈에서 있었던 일로 문제상황에 처하게 되지는 않는 것이다.
그런데 꿈이 실답지 않음을 잘 이해한다고 해서 그 뒤로 꿈을 전혀 꾸지 못하게 되는 것도 아닌 것이다.
마찬가지로 도너츠 모양이 각 비닐에는 없는 것임을 이해해도 여전히 그렇게 비닐을 겹쳐 놓으면 그로부터 도너츠 모양을 보게 된다고 보지만, 다만 그 도너츠를 놓고 과거처럼 그것이 정말 각 영역에 실답게 있다고 여기고 그에 집착을 갖고 대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사정을 잘 이해함으로써 이후 그는 그에 대해서 집착을 갖지 않고 그로 인해 겪는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됨을 제시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론으로는 이런 내용이 이해가 되는데
막상 자신이 당장 현실에서 금전상 손해를 보아야 한다거나 자신의 신체가 훼손되고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 처하면 그 이론이 자신의 현실에서 잘 적용이 안 되고 여전히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는 부분을 자신이라고 여기면서 그런 가운데 그대로 생사고통에 노출되고 또 그런 바탕에서 자신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위하는 반응을 취해감으로써 그에 따라 생사고통에 묶여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 대부분인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 이전에 그렇게 되지 않도록 이것을 미리 예방하기 위하여 행할 수행방안을 행하는 것도 또 그와 사정이 마찬가지라고 일반적으로 보는 것이다.
사실은 이 두 내용은 다 같은 원리로 수행자는 그런 생사고통을 받게 되는 상태가 되지 않도록 수행방안을 취해 그렇게 행하는 것이고
또 업의 장애로 극심한 생사고통을 받는 상황에서도 또 앞과 마찬가지의 원리로 그 고통을 안인 수행을 통해 벗어난다고 원칙적으로 제시하는 것인데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런 생사고통을 직접 겪게 되는 상황에 처하기 보다는 미리 그런 생사고통을 받지 않게 되기 위한 수행을 행하는 것이 훨씬 더 낫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수행에 임하면 자신을 생사고통에 계속 묶어 끌고 다니는 업의 장애가 해소가 되게 되어서 이후의 정려나 지혜를 얻는 수행도 원만히 성취할 수 있고 그래서 생사고통에서 풀려나고 해탈을 얻게 된다고 제시하는 것인데
그러나 처음에 그런 수행을 하는 것 부터 일반적으로 대단히 행하기 어려운 것으로 대하고 그로 인해 생사고통을 직접 대면하기 직전까지는 이를 무시하고 외면하면서 임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여하튼 그런 수행을 통해서 자신이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 해탈을 얻고 청정한 니르바나를 얻고 자신만은 생사고통에서 풀려나게 되더라도 거기에 머물지 말고
다시 중생제도를 위해서 전도망상에 바탕해 생사고통을 겪어 나가는 중생들의 생사현실로 다시 들어가 이런 중생을 제도해내는 수행에 임해야 하는 것이 또 다시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도 사정이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런 경우 수행자는 기본적으로 수행을 행할 때 그런 내용들을 실제로 얻을 수 없음을 잘 이해하지만, 그러나 본래 사정이 그런데도 그것을 그처럼 이해하지 못하고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그대로 받아나가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그런 중생을 기준으로 해서 수행방안을 취하는 것이고
또 그런 수행방안을 통해서 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갖추고 이를 바탕으로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수행방안은 처음 수행자 자신이 생사고통을 받던 상황에서 자신의 업의 장애를 해소하고 생사고통에서 벗어나는 수행방안과 그 내용이 같은 것이다.
단지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이제는 그를 통해서 얻을 바가 본래 없다는 사정을 잘 이해하면서도 다만 중생의 생사고통을 벗어나게 하기 위한 취지에서 자비심을 갖고 중생의 생사현실에 들어가 그렇게 임한다는 차이가 있는 것 뿐이다.
만일 수행자 자신만의 생사고통해결이 원래 목표라면 처음 자신의 생사고통을 벗어난 것으로 목표가 다 완료되었다고 볼 것이지만,
그러나 다른 중생을 제도한다는 취지에서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보고 그런 바탕에서 위와 같은 수행을 다시 정진해 나가야 한다고 제시하는 사정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바탕에서 수행자는 다시 무량한 수행을 닦고 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쌓고 불국토를 장엄하고 성불하는 수행이 필요하게 되는 것인데 이 내용은 처음의 내용과 실질적으로 크게 다른 것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본 바탕에서는 이것이나 저것이나 차별없이 공하고 그런 것을 하등 얻을 수 없고 문제삼을 수도 없다고 제시하지만,
다만 자신이 제도하고자 하는 중생을 기준으로 놓고 대할 때 그런 것들이 하나같이 다 그처럼 전도몽상의 상태에서 임하는 중생들의 생사고통의 문제와 관련이 된다고 보므로, 수행자는 이런 생사현실에 들어가 그처럼 중생들이 집착하는 것을 베풀고 중생들이 집착하는 그런 것을 침해하지 않고 해치지 않고 자신은 자신대로 그런 침해를 받을 때 앞과 같이 그 본래의 사정을 잘 관하여 아상이나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일으키지 않고 평안히 참는 수행을 통해서
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원만히 구족하고 성취해야만 그 상태에서부터 이후 수행도 원만히 성취할 수 있고 중생을 제도할 수 있게 된다고 하는 것인데
문제는 앞의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 왜 매번 자신은 손해를 보아야 하고 그런 희생을 치러야 하는가 하면서
생사고통을 받아나가는 중생의 상태와 똑같이 망상에 바탕해서 임하게 되기 쉽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비닐판의 비유를 놓고 현실에서 자신이 대하는 것들이 하나같이 집착을 가질만한 실다운 내용이 아니고 그런 내용이 본래 얻을 수 없는 것임을 잘 관해야 한다.
그런데 중요한 핵심은 그런 내용을 단지 이론적으로만 이해하고 그치는 것[해오解悟]만으로는 부족하고 그것을 현실에서 수행자가 실천해나가면서 직접 경험하고 몸으로 증득하여 깨닫는 상태[증오證悟]가 되어야 비로소 이 문제가 당장 수행자 자신에게서 원만히 해결되고 성취가 된다.
♥ 잡담 ♥여행과 수행
최근에 구글여행사를 통해 발칸 반도 지역을 여행을 다녀왔다.
풍광만 보면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하는데 이곳에 얽힌 수많은 사건을 대하다보면 약간은 우울해지게도 된다.
그제는 마케도니아와 코소보 근처를 둘러보고 어제 알바니아를 둘러보았는데 이곳은 역사적 배경 때문에 카톨릭과 그리스정교와 이슬람교가 뒤섞여 있고 그래서 최근에 또다른 대량학살이 발생했던 지역이기도 하다.
오늘은 장아함경이 뽑혀서 장아함경의 유행경 부분을 읽는데 부처님이 여기저기를 다니시는 가운데 가르침을 베푸는 내용을 보고
부처님과 관련된 곳을 하나하나 자세히 둘러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고 다시 배낭을 꾸리고 구글여행사를 방문해 먼저 룸비니를 방문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