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이 언제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 동네 주변에 영축산과 기원정사가 함께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했는데 오늘 구글 다음 네이버 관광을 통해 방문한 곳 주변에도 영축산이 있음을 보게 된다. 이곳 지형이 아주 특히해서 스위스에 있는 알프스와 인도에 있는 영축산이 다 함께 모여 있는데 이것은 부처님 가지에 의한 것이라고 본다.
헙...하루에 산을 여러 곳을 올라다니다보니 힘들다. 쉬자.
조각글에 경전과 논서를 올려 놓고 조금씩 살피면서 공양을 올리는데 여기에 덧붙여 게송 공양 코너를 또 하나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문학능력이 있으면 매일 시를 하나씩 써서 올리면 좋겠지만, 그것은 당장은 힘들다고 보고 경전에 있는 게송을 하나씩 뽑아 올리면서 게송도 외우고 또 자신도 이런 게송을 모방해서 시작 연습을 해보는 것도 좋다고 본다.
오늘 게송 암기 답보 상태에 있는 아승기품 게송을 하나 뽑아 놓고 살피게 된다.
011▲頻婆羅頻婆羅為 一 ● 矜羯羅, ○於一微細,有,一,如,一
빈바라씩 빈바라가 한 ● 긍갈라(矜羯羅)요, ,어유일여
於一微細毛端處, 有不可說諸普賢,
一切毛端悉亦爾, 如是乃至遍法界。
어일미세모단처, 유불가설제보현,
일체모단실역이, 여시내지편법계。
가장 작은 한 털 끝이 있을 자리에
말로 못할 보현보살 있는 것같이
온갖 터럭 끝마다 모두 그러해
이와 같이 법계에 가득하니라.
출처: http://essay007.tistory.com/800 [선현지복 잡기]
원래 경전을 뽑을 때마다 위 페이지가 열려서 암송을 촉구하는데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대강만 살피고 넘어가게 된다.
위 게송을 축약하면 於一微細,有,一,如,一 어일미세 유일여일 이란 새로운 게송이 나오는데 이것은 물론 게송 각 부분에서 앞부분을 떼내 붙인 것이다.
11 번째 게송을 설산에서 떠올려야 하는데 위 부분이 생각이 난다고 나머지 부분이 생각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위 부분이 생각이 나지 않으면 나머지 부분이 생각나기는 더욱 힘들다고 보게 된다.
오늘 영축산 옆에 알프스산이 있는 것을 보고 게송 암송에 게으르다보면 설산동자가 되기 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기서 설산동자란, 설산에서 게송을 외우다 마지막 한 구가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아 그 한구를 얻기 위해 몸을 던진 수행자를 뜻한다.
11 번째 축약구인 於一微細,有,一,如,一 어일미세 유일여일은 하나의 미세한 공간에 하나가 하나와 같이 있다라는 묘한 의미를 전하고 있다.
결국 최근에 살핀 실상(實相 dharmatā ; dharma-svabhāva) - 상(相 Lakṣaṇa ) - 상(想 Saṃjña) 의 관계를 놓고 보면
하나의 미세한 상(相 Lakṣaṇa )에 하나의 실상(實相 dharmatā ; dharma-svabhāva)과 같이 하나의 상(想 Saṃjña)이 자리잡고 있다. 이런 음미를 하게 된다.
가끔 경전에서 하나라고 표현해 제시하면 진짜의 한 실체 이런 의미로 지나치게 나아가기 쉬운데 이런 경우가 바로 달을 가리키는 수단인 언어에 붙잡혀 정작 달을 보지 못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가정적 항변이나 희론으로 희론을 멸하는 설법의 본 취지와 본 의미를 망각하기 쉽다고 본다.
불교 경전에서 그런 오해를 자주 불러 일으키는 부분이 여래장이나 본각 일심 화엄교학 등등이라고 보는데 원래 그런 오해를 불러 일으킬만한 부분이 나오는 부분 바로 옆에 그 표현이 그런 의미가 아님도 바로 제시되고 있다.
그래서 왜 이런 오해를 일으키는지 사정을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러나 표현만 놓고 보면 마치 수많은 차별상은 얻을 수 없지만, 그 안에 하나의 진짜 실체는 있다 이런 내용을 그렇게 제시하는 것처럼 오해하기 쉽다고 본다.
오늘 구글 다음 네이버 관광사를 통해 산을 많이 다녔는데 가지산을 보면서 그 가지의 의미가 나무의 가지를 의미할 수도 있지만, 경전에서 표현하는 가지 즉, 불보살이 대자비심으로 중생을 돌보며,
중생은 불보살에게 신심을 바치는 것을 의미하는 용어라고 보게 된다.
부처님과 자비심과 신심이 교류해서 부처님이 중생을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으로서 가피(加被) 호념(護念) 가호(加護)라고도 표현한다.
가피 중첩관계는 과거에도 많이 제시했는데 현실에서 생사고통을 받는 중생의 상태는 무수한 측면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중첩시킨 상태로서 업의 장애에 묶인 상태가 되어서 일체가 본래 공하고 청정한 니르바나이고 그래서 죄와 복이 다 공하고 얻을 수 없음을 관한다해도 업의 장애가 남아 있으면 그것만으로 3 악도의 생사고통을 면할 수가 없고 원칙적으로는 결국 그런 내용을 3 악도의 상태에서 관하면서 극복해야 하는데 이론상은 그렇지만, 일단 지옥의 공 수행자가 되면 이론과 같이 그렇게 행하기가 힘들다고 보게 된다.
말을 타고 달리면서 종이에 글씨를 쓸 수 있다는 이야기와 같아서 원칙적으로 안 될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힘들다고 보게 된다.
그래서 이 상태에서 이것을 벗어나려면 불보살의 가피를 받아서 가피 중첩관계의 의미를 수행으로 전환해 바꾸어 업의 장애를 제거하는 수행이 필요하다고 보게 된다.
그것이 결국 오늘 근본설일체유부101 갈마와 같은 경전에서 주로 제시하는 계와 관련된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계를 지키고 서원을 일으키고 수행에 임하면 어떻게 되길레 무수한 겁에 걸쳐서 쌓아 놓은 업의 장애가 해소가 된다고 하는가 하면
유리컵을 방에 깨서 물은 물대로 흐르고 유리조각이 널려 있는 상태에서 그대로 두면 이 유리컵으로 발도 다치고 피도 흘리게 되고 물이 있어 눕기도 편하지 않은 상태인데 그러나 이 상태는 그렇지만, 다시 여기에 무언가를 더하고 빼는 활동을 계속 하면 오히려 유리컵이 깨지지 않은 상태보다 훨씬 낫게 바꾸어진다는 것도 현실에서 경험할 수 있다.
유리컵이 깨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방이 사실은 오래 청소하지 않아 상당히 더럽고 지저분했는데 컵이 깨지고 나서 진공청소리를 가지고 와서 유리를 말끔하게 치우고 깨진 유리는 유리대로 재활용을 하거나 미술작품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하고 흘린 물을 닦는 가운데 방도 깨끗해지고 그런 가운데 방까지 미화활동을 하다보니 전과 달리 아주 아름답고 쾌적한 방이 되었다. 이런 경우와 같다.
그래서 처음 유리컵을 깨던 그 순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되돌아가 컵이 깨지지 않게 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보는 가운데 설령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노력은 굳이 그 과거만 가능한 것이 아니고 지금 이 순간도 그렇게 가능하다는 것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그 훈련을 수행에 도입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 누가 보아도 현실 이 단면은 유리가 깨져서 엉망인데 일단 마음에서 유리란 단어를 보고 그 유리가 곧 니르바나를 의미하는 단어임을 떠올리는 것이다. 불교사전을 찾아보면 그것을 쉽게 알 수 있는데 이것을 생사를 떠나 벗어난다는 의미로도 시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글로 시감상하는 것이 대단히 유리한 것이다. 그래서 유리에는 자체적으로 서로 차별되고 떨어지는 유리현상이 있지만, 그것을 잘 음미해서 청정한 니르바나를 의미하는 유리로 시감상하면 벌써 상당히 상황이 유리해지는 것이다.
말장난 같지만, 이 간단한 실험은 이런 시감상부터가 잘 된다고 나머지가 반드시 잘된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러나 이런 시감상부터가 잘 안 되면 나머지는 더 힘들다고 보는 것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갔는데 그 상황도 마찬가지다.
이미 그 상황을 대하고 그 상황은 그렇게 있는데 그것을 이제 어떻게 바꾸는가는 지금 이 순간 어떤 상황을 대하는데 그 상황을 어떻게 바꿔서 좋고 좋게 만드는가 이 문제와 똑같은 문제다.
그런데 왜 거기에 다시 쉽게 해결이 곤란한 시간문제까지 덧붙여서 풀려고 하는가. 그것은 사실은 문제를 회피하고 도피하려는 의지에 불과한 것이다.
대부분 8 지 10 지 보살이나 행할 수 있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고 그것이 되면 무언가를 해보겠다고 나서면 곤란하고
현실에서는 유치원생도 마음만 가지면 할 수 있는 손가락 발가락 움직이는 체조보다 더 쉬운 시감상부터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 대목쯤 되면 앞에 본 게송을 다 잊어먹게 된다고 보는데
왜 한번 본 게송을 또 외우고 외어야 하는가 하면 설산동자의 심정으로 그것을 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 시가 당췌 뭣인디... 보현보살이 뭣인디 이렇게 대할 수도 있다고 보지만,
그러나 그 시 구절을 떠올리면 그렇게 시감상을 통해 현실을 대할 수 있게 되고 그로 인해 현실에서 곧 생사고통을 벗어나는 해탈문의 위치를 알수 있게 되고 그리고 해탈문의 사용법도 알게 되고 그래서 생사고통을 벗어나고 그리고 그 해탈문을 다시 열고 생사현실에 들어와서 또 무량한 수행을 하면서 무량한 복덕과 지혜와 수명을 모두 구족할 수 있게 하므로 그 게송이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Ernst_Ludwig_Kirchner_Zwei_Brüder_M._(Mardersteig)_1921-1
https://4.bp.blogspot.com/-I9cgRor5Yqo/WVXnGwKpdWI/AAAAAAAAepw/Dip3Ec8GL9sKQyK1w_T0BB4_VufHAjhxwCLcBGAs/s1600/stone_01_ct4.jpg" data-original-width="1058" data-original-height="820 https://en.wikipedia.org/wiki/File:Ernst_Ludwig_Kirchner_Zwei_Brüder_M._(Mardersteig)_1921-1.jpg Description Deutsch: Ernst Ludwig Kirchner: Zwei Brüder M. (Mardersteig), 1921, Pinakothek der Moderne, München Date 28 December 2008 Source Own work (Own photo) Author Rufus46 Licensing[edit] This is a faithful photographic reproduction of a two-dimensional, public domain ж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8/80/Ernst_Ludwig_Kirchner_Zwei_Brüder_M._(Mardersteig)_1921-1.jpg ▩ mus3fl--Ernst_Ludwig_Kirchner_Zwei_Brüder_M._(Mardersteig)_1921-1.jpg ● [pt op tr] fr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KinkakuSnow2Awp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KinkakuSnow2Awp.jpg?uselang=ko Kinkaku at Kinkakuji (Rokuonji), a Buddhist temple in Kyoto, Japan. I took this photo and contribute it to the public domain, although persons or organizations may retain rights to images in it.
Public domain 나는 이 작품의 저작권자로서, 이 작품을 퍼블릭 도메인으로 모두에게 공개합니다. 이 공개 선언은 전 세계적으로 유효합니다. 만약 저작권의 포기가 법률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경우, 나는 이 작품을 법적으로 허용되는 한도 내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어떤 목적으로도 제한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합니다. ж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a/ae/KinkakuSnow2Awp.jpg ▩ mus3fl--KinkakuSnow2Awp.jpg ● [pt op tr] fr
양등리 [Yangdeung-ri,楊等里] 요약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에 있는 리(里)이다.
마을이 언덕지대에 자리잡았으며 주변에 들이 있다. 마을 아래엔 양등저수지가 있다. 약 400년 전에 버들나무가 많이 있었다하여 양등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덕걸,밀봉암이 있다. 덕걸은 마을에 크게 이름 난 사람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밀봉암은 밀봉암이 있는 마을로서 주위에 봉이 많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특산물로는 고로쇠 약수와 오리배가 있다.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양등마을 안 골짜기에는 작은 암자가 있다. 영남알프스의 외진 오두산 자락의 치마폭 같은 넓은 골짜기에 터를 잡은 밀봉암은 어느 산길 처럼 번들나게 찾는 그런 절집이 아니다. 골 수 산꾼 들만 하산시나 등산시 가끔 찾아 올 뿐 그만큼 외진곳에 위치를 하고 있다. 오두산과 송곳산 사이에서 흘러 내리는 골짜기에 숨어 있는 밀봉암은 정확한 창건연대를 알 수 가 없지만 조선후기로 추정을 할 뿐이다.
상북 읍지인 1919년 불우조에 밀봉암은 "고을 서쪽 15리되는 양등리 금산 아래에 있다(在縣西十五里楊等里錦山下)"고 되어 있다. 전해오기는 신라 고찰이라고 하지만 남아 있는 자료가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현재 대웅전 좌측으로 바위에 음각 글씨가 있는 옆에 천태각이 있는데 1883년 고종20년 창건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조선후기로 추정을 하고 있을 뿐이다. 1939년에 새로 중수를 하였고 1959년 사라호 태풍때 대웅전이 산사태로 매몰되고 사찰 또한 풍지박산이 되었다. 그 후 1964년에 현 대웅전 우측에 작은 규모의 대웅전을 건립하였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말사로 '밀봉암(蜜蜂庵)'은 최근에 중창을 하여 대웅전과 칠성각을 새로 건립하였다.
최근에 불사를 일으켜 중창한 대웅전으로 옛 대웅전의 좌측에 터를 닦고 새로운 대웅전을 건립하였다 옛 대웅전의 모습이다. 반듯한 칠성각의 모습으로 화려한 단청을 칠하였다. 대웅전 좌측으로 가지산에서 흘러온 능선이 배내고개를 거쳐 능선은 갈라지는데 좌측의로 흘러 내리는 오두산 능선에 터를 잡고 있다. 앉은 폼새가 예사롭지 않다. 최근에 중창을 하여서 그런지 단청의 색깔 또한 화려하고 곱게 치장을 하였다. 문살아래 사천왕상의 문양을 험상궂게 표현을 한 것으로 보아 잡귀신은 얼씬도 못할 것 같다. 외벽의 벽화들... 1883년 고종 20년인 조선후기에 천태각을 건립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조선 후기의 사찰로 보고 있지만 신라시대때 에 창건을 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