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2-03-28_법계도기총수록_001 본문

과거조각글/불기2562(2018)

불기2562-03-28_법계도기총수록_001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18. 3. 28. 14:15



®




『법계도기총수록』
K1502
T1887B

법계도기총수록 상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법계도기총수록_K1502_T1887B 핵심요약



♣1502-001♧

법계도기총수록 상권




◆vvcv7566

◈Lab value 불기2562/03/28/수/14:15



○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Debout Sur Le Zinc - Plan-Plan.lrc

♥ 잡담 ♥동화작가의 마음 

 
조각글이 밀려 있고 
어제는 또 조각글 자체를 올리지 못했다. 
그런데 밀린 조각글 부터 하나하나 쓰려니 
숙제를 하는 느낌이 든다. 
원래 조각글은 쓰고 싶을 때 쓰는 글인데 
그럴 필요가 있나 싶다. 
그래서 순서를 바꾸어서 원래 쓰던 것처럼 쓰고 
시간이 남으면 이전에 쓰다만 조각글을 다시 보충해 쓰기로 
순서를 바꾸니 조금 마음이 달라진다. 

요즘 연구실에만 작업을 해 

거의 바깥에 나가지 못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 보람있게 시간을 보낼 소일거리가 중요한데 

그것이 없으면 어디를 다니거나 가만히 있으나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감옥생활처렴 여겨지기 쉽다. 

요즘은 구글 풍광 스크립트를 놓고 작업 중인데 
사람마다 다 사정이 다르고 취향이 달라 

골고루 사용할 수 있게 하려면 

필요가 없어도 각기 다른 환경에서 하나하나 다 사용해보고 

어떤 문제가 없나를 살펴야 하기에 

조금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런데 이런 스트레스가 정말 없으면 

오히려 소일거리가 없어져 더 고통스럽게 보내기 마련이다. 

그래서 힘들지만, 완성이 되면 

좀 더 좋아지리라 보고 즐겁게 작업 중이다. 


참고로 불교에서 거리를 재는 단위로 

왕이 하루에 걷는 길이를 1 유순이라고 하는데 

40 리 정도다. 

거리를 재는 척도가 나라마다 다른데 

서양에서는 1000 걸음을 1 마일(mile)이라고 표현한다. 

발길이를 1 feet (foot)로 하면  5280 feet 라고 하니 

1 걸음당 5 발길이정도 나아간다고 본 것 같다. 


나라마다 지역마다 단위가 다르니 머리가 오락가락하다. 

이렇게 오락가락한 내용을 대하면 

시간이 지나면 잊어먹는데 

그래도 잘 기억하려면 

하나를 붙잡고 나중에 연상이 잘 되도록 

무언가를 찾아 결합해야 한다고 본다. 


모르는 것을 자신이 이미 아는 것으로 이해하고 외우는 것이 학습이고
연구라면 연구인데 

아는 것으로  모르는 것을 이해하고 

답을 제시할 때는 모르는 것 <= 아는 것 이렇게 제시하면 되는 것이다. 


본인은 경전이 중요하므로 

1 유순을 붙잡고 1 유순은 40 리 = 10 마일 = 16 km 

이렇게 딱 하나만 외우고 

나머지는 이것을 기초로 변환해야 한다고 본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1 시간 당 

평지를 4 - 6 km 정도를 걷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최소로 잡아 1 시간  

10 리 = 2.5 마일 =  2500 걸음 = 4 km 정도 걷는 것이다. 

그러면 경전에 나오는 1 유순은 4 시간 정도 걸은 것이 아니겠는가. 

즉, 이 정도를 왕이 하루 행차를 나가는 거리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가마에 타고 가는 왕은 편하겠지만, 

가마를 지거나 호위를 하면서 가야 하는 입장에서는 

걷는 것도 힘든데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무언가 자신의 뜻을 이루려 기분좋게 걸어 다니는 것과 

억지로 또는 배가 고파 걸어다니는 것과 

같이 걸어다닌다고 해서 같은 것이 아니듯 

물리적 거리와 심리적 거리는 차이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 경전에 나오는 거리단위도 공부하고 

복습도 할 겸 글에 넣는데 

핵심문제는 이것이다. 


긴 거리를 즐겁게 빨리 잘 걷는 방안은 무언가. 

1 유순 => 유순하게 임한다. 

또 다른 퀴즈 하나
그렇게 즐겁게 갈 수 있는 가장 긴 거리는 => smiles 


넌센스 퀴즈인데, smiles 는 그 사이에 mile 이라는 거리가 들어 있고
단위가 붙여있지 않아서 웃고 갈 수 있는 거리는 무한대 마일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글자를 놓고 여러가지를 관련시키면 

그 의미도 새로 얻고 즐겁게 보내고 

또 나중에 어떤 내용을 기억해낼때도 도움이 된다. 

또 그 표현을 하게 된 근원까지 알면 더 도움이 된다. 


오늘 본인은 구글로 네덜란드를 갔는데 

동화작가가 생각이 나지 않아 애먹었다. 

알고보니 안대손이라는 한국인이었다. 


그리고 요르단도 갔는데 하루에 이렇게 많이 빨리 다니게 된 것은 

알고보면 많은 사람이 노력을 해서다. 

그런데 그런 사진을 찍고 다닌 이들이 

smiles 로 다녔다면 힘들지 않고 수익도 얻고 좋은 것이다. 


요즘 구글이 한국에서만 수 조원의 수익을 얻는다고 한다. 

뽕도 보고 님도 따고 가재치고 도랑잡고
무언가 바뀐 것 같은데 여하튼 

동가홍상의 원리로 즐겁게 임하면 
모든 것이 좋게 된다고 본다. 







○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Maurane - Il Y A Mille Ans.lrc


오늘 길이를 재는 단위인 유순에 대해 알아봤는데 
기원전 200 년전에 지구의 길이를 측정한 인물이 있다고 한다. 
이름이 배구나 테니스를 연상하는 분인 에라토스테네스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장이었는데 
문헌을 통해서 나일 강가에 있는 한 지점에서 하지날에 해의 그림자 위치를 
적은 내용을 보고 그로부터 800 내지 900 km 떨어진 곳의 알렉산드리아의 그림자 위치를 측정해서 
지구의 길이를 측정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 과학기술로 측정하는 거리 약 40,008km
오차가 15 % 내외 밖에 안 되는 대단히 근사값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알렉산드리와 그 문헌상의 지점까지의 거리는 또 어떻게 재었는가하면 
발걸음으로 쟀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가 대략 450 킬로인것을 생각하면
당시에 대단히 노력을 많이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측정이나 계산이 놀라운 것이지만, 
물론 오늘날 과학자들은 다른 방법으로 그 거리를 계산하는데 
이 두 입장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보게 되는가. 

이들이 하나같이
그렇게 거리를 측정하고 재는 자신들이 
어떻게 그것을 '관찰하고 측정'하는가를 스스로 '관찰하고 측정'하는 것을
생략하고 이런 추리나 계산에 임한다는 것이
문제점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전제하면 또 그런 전제에서는 
그런 계산을 그렇게 해서 제시해도 큰 문제는 없는 것이다. 


앞에서 1 유순을 왕이 하루에 순행하는 거리라고 하고 
40 리 정도라고 산정하는데 
물론 정확히 오늘날 거리를 재는 단위로 몇 킬로를 
말하는가는 약간씩 차이가 있다. 
그러나 여하튼 상당한 거리를 이 단위가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본래 앞과 뒤를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하지만, 
그래도 지금 서울에서 부산을 걸어서 가려면 
상당히 오래 걸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내용이 어떤 바탕에서 그렇게 제시되는가를 
늘 잃어버리면 곤란한 것이다. 

그런 가운데 경전을 보면 
숙왕화지여래님의 몸의 크기가 680만 유순이라고 하고
묘음보살의 몸의 크기는 4만 2 천 유순이라고 제시한다.
[참고 묘법연화경 묘음보살품 ]

1 유순을 16 Km 로 잡고 
계산하면 지구 크기가 큰가 부처님의 몸의 크기가 큰가 
이런 어려운 계산을 또 한 번 해야 한다. 

아미타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님 등의 몸의 크기도 마찬가지인데 
보현보살님이 하도 궁금해서 얼마나 몸이 큰가를 재보려고 
몸에 들어가서 앞에 제시한 에라토스테네스가 행한 방법처럼 
걸어서 길이를 재어보려고 했는데 
7 년간 걸어가도 끝을 만나지 못해서 중간에 포기했다는 내용이 
제시된다. 
그런데 문제는 보현보살님의 보폭이 도데체 오늘날 현실에서 
몇 킬로미터인가 이런 것이 또 문제된다. 

거리를 재는 문제에서는 
손오공도 또 생각할 수 있다. 
자신이 끝이라고 보는 곳까지 한없이 날라갔다 왔는데 
그것이 부처님 손바닥 안이었다는 내용이 전한다. 

그런데 만일 어떤 이가 자신이 그렇게
'관찰'하고 거리를 재는 자신을 
스스로 또 '관찰'하면서 

자신이 눈으로 보는 세상 모습이
모두 자신의 마음 안 내용임을 이해한다면 
그래서 계속 마음의 끝을 한 번 재보려고 또 걷고 걸어간다면 
언제쯤 그 끝을 잴 수 있을까. 
이런 생각도 엉뚱하게 해본다. 

그런데 그런 경우 빨리 재는 방안이 있다. 
상자에 고개를 박고 재는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Z3SC2l3vv7M

이번 구글 풍광에서는 해당 지역의 음악도 한번 넣어보고 있다. 

인터넷 TV도 링크를 거는 것이 가능하다고는 보지만, 
연구과정에서는 시청각 중에서 청각만 병행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보고 고려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있다. 

거리에 관련해서 에라토스테네스에 관한 내용을 적었는데 
기존 조각글에서는 반복해서 이런 내용을 적었는데 
조각글이 독립되어 있다보니
오히려 본인의 이런 내용을 엉뚱한 생각이라고 대할 입장도 분명히 있다고 본다. 


꿈에서 무엇을 먹으면 감기나 병이 걸린다는 속설이 있는데 
자면서 꿈을 꾸었는데 어떤 분이 참치를 크게 썰어주어서 건넸는데
깨고 생각해보니 이것을 먹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이런 망상분별증을 방치하면 위험하다고 본다.  


구글풍광용 스크립트로 세계 각지역을 돌아다니고 
자료 사진을 올려 놓는데 
요즘 자동차마다 네비게이션을 통해 길을 가면 
현재 위치가 어디인지가 나오고 
5 미터 앞에 있는 시설까지 미리 다 안내해주는 것을 보게 된다. 

세계적으로 자동차가 수천만 수억대인데 
어떻게 이것을 다 위치를 동시에 측정해서 알려줄 수 있을까. 
아마 위성을 제작한 이들은 그 방법을 다 알고 있을텐데 
에라토스테네스가 사용한 기하학과 비례의 원칙과 함께 
동시에 수많은 계산을 처리해내는 컴퓨터 기술이 적용되었으리라 본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 경험상 정확하게 매번 안내를 반복해줄 뿐 아니라, 
또 이러한 내용은 자신만 그런 것이 아니고
그것을 이용하는 이가 다 함께 경험하는 일이다. 

그래서 현실에서 이런 내용이 이렇게 명확한데
왜 이것을 마치 전도망상분별 속의 내용인 것처럼 제시하는가.
이렇게 생각하면서 의아하게 여기리라 본다. 



원래 a 의 참 거짓이 문제될 때 
그렇게 참거짓 자체가 문제되는 a 를 수만 수천만 반복해서 쌓아 놓는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문제되는 a가 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참거짓을 판단해야 할 문제만
그렇게 수만 수천만개가 함께 중복되어 쌓이는 것 뿐이다. 

본인이 프린터기로 어떤 지폐를 만들어서 
시장에 가지고 가서 물건을 구입하려고 할 때 
1 장만 가지고 가니 시장 상인들이 인정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다시 트럭으로 수천만장을 찍어서 제시한다고 
그것이 인정받게 된다고 하기 어려운 것과 그 사정이 같다. 
1 장이 엉터리여서 진위가 의심받는데
그처럼 의심받는 것을 수천만장 쌓아 놓으면 그것이 진짜가 되는가. 

그런데 현실에서는 1 장은 그렇지만, 
수천만장이 되면 그렇다고 받아들이고 임하는 경향을 갖는다. 
그래서 이 망상증상이 중복되면 더욱더 
치유가 힘들어지는 경향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언제나 관찰자가 관찰하는 내용 
한 단면의 내용을 놓고
그것이 옳다는 것을 제시해야 하는 문제인 것이고 
그와 같은 성격을 갖는 내용을 수억 수십억개를 쌓아 놓고
하나의 진위문제를 또 다른 엉터리에게 떠넘기는 일을 반복한다고 해서 
그것이 다 함께 옳은 내용이 된다고 이해하면 곤란하다.

예를 들어 
눈으로 보는 이것은 음식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먹으면 배가 부르기 때문이다. 
이런 판단도 사정이 같다. 

또는 
이것은 차가 분명하다. 
이것을 타면 원하는 곳으로 가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증명도 그 사정이 마찬가지다. 

어떻게 보면 이들은 앞 내용이 옳음을 증명한 내용인 것 같은데 
그런데 왜 아니라고 하는가는 
증명에 이용하는 그 내용이 
처음 문제삼은 그 내용과 성격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지금 문제삼는 것은 
하나의 감각현실이나 관념분별을 놓고 
그것이 실다운가를 문제삼는 것이고
현실에서 얼마나 많은 실답지 않은 내용을
반복해 얻는가를 문제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처음 진위가 의심받는 내용을 놓고 진위를 따질 때 
이를 같은 형태로 그 진위가 의심받는 다른 내용으로 옮겨 놓는다고 해서
처음 내용이나 그 두번째 내용이 옳은 내용이 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이미 이런 문제를 많이 살폈는데 
그러나 여전히 현실에서 자신이 생활하며
이런 형태로 현실에서 얻는 내용들이 
이와 같은 사정으로 옳고, 
경전에서 제시하는 내용용이
오히려 엉터리인 것 같다고 여기는 경향이 많은데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판단하고 임하게 되는 그 사정이
바로 그 주체가 생사현실에서 벗어나오는 것을 장애하는 사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문제를 잘 살펴야 한다고 본다. 

현실에서 
분명 종이에 불을 붙이면 연기가 나고 

자신이 컵에 커피를 담아 마시면서 컵을 가볍게 두드린다고 할 때 
눈으로는 그런 모습을 보고 
귀로는 컵 소리를 듣고 
코로는 커피 향을 맡고 
입으로는 커피 맛을 보고 
손으로는 촉감을 느끼고 

이 커피를 영희나 철수에게 건네니  
역시 영희나 철수도 같은 내용을 보고한다고 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자신이 대하는 이런 내용은 
외부 세계의 내용이고 
자신의 감관이 대하는 외부대상이고 
정신 밖에 있는  정신과는 별개인 외부물질이고
이것은 자신 뿐만 아니라,
영희나 철수를 포함해 모든 이가 함께 대하게 되는 
외부의 객관적 실재라고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대표적으로 일반인이 일반적으로 갖는 
전도망상분별증의 기본적 내용이다.  

전도망상분별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증상이라고 할 이 내용을 
그간 너무 많이 반복했는데 
조각글이 독립된 특성을 갖기에 
앞으로도 이 부분을 많이 반복해야 할 것으로 보고 
그래서 이번에 이 구절 전체를 망상1,l 특수기호로 축약하기로 했다. 



특수기호에 망상1,l  이라고 표현한 것은 
전도망상분별 내용이 단지 이것에 국한하지 않고 
앞과 같은 망상분별을 기초로 
무량하게 나아가기에 일단 1 이라고 표기한 것이다. 

그런데 
현실의 문제는 이렇게 전도몽상분별을 행하면서 
임하는 중생이 무량하게 많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고, 
이렇게 대하는 중생이 무량하게 많고
이런 경험을 매 순간 반복한다고 해서 
그것이 옳은 내용이 된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어떤 내용이 많이 반복되는가가 중요하다면 
본인이 축약키로 축약한 내용을 
컴퓨터로 무한 루프를 걸어서
계속 출력하게 하면 좀 시정이 될 것인가. 

일단 축약키 기능을 테스트해보자.

--- 
현실에서 

분명 종이에 불을 붙이면 연기가 나고 


자신이 컵에 커피를 담아 마시면서 컵을 가볍게 두드린다고 할 때 

눈으로는 그런 모습을 보고 

귀로는 컵 소리를 듣고 

코로는 커피 향을 맡고 

입으로는 커피 맛을 보고 

손으로는 촉감을 느끼고 


이 커피를 영희나 철수에게 건네니  

역시 영희나 철수도 같은 내용을 보고한다고 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자신이 대하는 이런 내용은 

외부 세계의 내용이고 

자신의 감관이 대하는 외부대상이고 

정신 밖에 있는  정신과는 별개인 외부물질이고 

이것은 자신 뿐만 아니라, 영희나 철수를 포함해 모든 이가 함께 대하게 되는 

외부의 객관적 실재라고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대표적으로 일반인이 일반적으로 갖는
전도망상분별증의 기본적 내용이다.  
---


한번에 축약키로 같은 내용을 출력하게 되니 좋은 것 같다.

여하튼 해결해야 할 망상분별의 가장 기본적인 내용은 다음이다. 


---
현실에서 

분명 종이에 불을 붙이면 연기가 나고 


자신이 컵에 커피를 담아 마시면서 컵을 가볍게 두드린다고 할 때 

눈으로는 그런 모습을 보고 

귀로는 컵 소리를 듣고 

코로는 커피 향을 맡고 

입으로는 커피 맛을 보고 

손으로는 촉감을 느끼고 


이 커피를 영희나 철수에게 건네니  

역시 영희나 철수도 같은 내용을 보고한다고 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자신이 대하는 이런 내용은 

외부 세계의 내용이고 

자신의 감관이 대하는 외부대상이고 

정신 밖에 있는  정신과는 별개인 외부물질이고 

이것은 자신 뿐만 아니라, 영희나 철수를 포함해 모든 이가 함께 대하게 되는 

외부의 객관적 실재라고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대표적으로 일반인이 일반적으로 갖는 

전도망상분별증의 기본적 내용이다.

---



같은 글을 3 번씩이나 입력하느라 힘이 들었으므로 
일단 쉬기로 하자. 






쉬기 전에 다음 주제를 일단 제시하고 쉬기로 한다.

우선 현실에서 어떤 주체가 얻는 이들 내용이
자신의 마음 내용임을 확인하는 실험 방안을 소개한 바 있다.
이것도 반복되므로 링크로 해결하기로 한다. 



○ 기본적 실험방안과 추가적 실험방안

○ 마음현상에 대한 논의 - 전체 내용



문제는 이렇게 자신이 대하는 현실 내용이 
마음 내용이라고 제시하면 
앞의 망상분별을 기초로 
자신이 현실에 얻은 내용과 일치하는 내용이 
그대로 본 바탕이 되는 실재 영역에 있다고 
다시 나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추리하고 이해해야
앞과 같은 사정이 설명이 된다는 입장이다.

즉 자신 마음 밖에 그 내용과 일치한 내용이 있기에 
자신도 매번 그런 경험을 반복하고 
또 자신 뿐 아니라 영희나 철수도 그런 내용을 보고하게 된다고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경우 그것을 다른 순간이나 영희나 철수로 넘어가거나
또는 본 바탕이 되는 실재영역으로 넘어가기 이전에 

지금 이 순간 같은 컵을 자신이 대하고 있다고 할 때 
자신이 눈으로 보는 컵 모습을 놓고 
왜 눈이나 귀는
이와는 엉뚱한 각 내용을 그렇게 매번 얻는가부터 
스스로 물어보는 것이 좋다. 

왜 그런가.
즉, 눈을 통해 '매번 그렇게 반복'해 얻게 되는 그 모습을 놓고 
왜 귀나 코 입 손 등은
'매번 그렇게 반복'해서 엉뚱한 내용을 얻는가. 

그리고 이런 질문은
귀나 코 입 손이 얻은 그런 내용을 이제 기준으로 잡고 
그 내용을 마음 밖의 실재 영역에 밀어 넣는다면 
그 질문을 또 거꾸로 해야 할 것이다. 

즉 왜 그처럼 소리나 촉감으로 '매번 반복해' 얻는 그런 내용을 대하면서 
눈을 통해서는 '매번 반복해' 그런 엉뚱한 형태의 모습을 얻어내는가. 



그런데 그런 전도된 내용을 매번 반복해 얻게 된 데에는 
일정한 사정이 있다고 제시하게 된다. 
그렇게 엉뚱한 내용을 얻도록 
이미 태어나는 과정에서 공중 3 회전에 걸쳐
자신이 그런 상태에 단단히 묶여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이를 이전 조각글에서 설명한 바 있다. 


그리고 의상대사의 법계도에 대한 논의가 제시되는 
이번 법계도기총수록에서도 
비슷한 사정을 제시하고 있다. 
논의 대상이 되는 원문이 생략된 가운데 제시되어서
조금 내용파악이 곤란할 수는 있다고 보는데 
여하튼 여기서 둘이 아니다라는 내용을 제시하면서 
본 바탕은 그런 내용이 아닌 하나인데 자꾸 엉뚱하게 파악하는 증상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라는 이 표현도 잘못 이해하면 
본 바탕은 마치 a 라고 할 수 있는 어떤 하나가 있다는 내용으로 잘못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표현은 본 바탕이 되는 실재는
전혀 아무 것도 없다고 할 것은 아닌데 
그러나 그 본 바탕 일체는 '차별없이' 
a 이다 a가 아니다 이런 2 분법상의 분별을 행할 수 없는 상태임을 
위 표현이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보는가는 
이미 사정을 다 기술했다. 
어떤 내용을 일정한 관계를 통해서만 얻는 주체로서는
그런 관계를 떠난 그 본 바탕이 되는 실재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얻는 내용들은 
자신이 평소 그런 내용을 반복해 그렇게 얻는다고 
그 내용을 모두 실재영역에 밀어 넣게 되면 
그 자체가 자신이 현실에서 얻는 각 내용 서로가
서로에게 엉뚱한 관계임을 제시해주게 된다. 

그리고 현실에서 얻을 수 있는 증거란 모두 이것인데
그 증거들 서로가 이미 그런 상태인 것이다. 


그런데 그 가운데 자신이 반복해 얻는다고 보는 내용을 
일방적으로 뽑아 쌓아 놓고
그것이 그렇게 반복된다고 
그것을 실다운 내용이고 옳은 내용이라고
믿고 임하려는 것뿐이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그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인 가운데
또 반복해서 물어보아야 한다. 

왜 자신이 눈으로 매번 '반복해' 그런 모습을 
손은 매번 '반복해서' 엉뚱한 촉감으로 얻는가. 

그런 가운데 
눈으로 본 시각내용과 촉감은
어느 부분이 서로 비례하고 같은가. 

이것이 같은 컵에 대해서 얻는 내용이라면 
이 내용을 각기 다 실재 영역에 밀어 넣으면 
그것이 또 어떻게 되는가. 

하나만 밀어 넣어도 문제가 발생하는데 
실재 영역은 이것이 모두 합쳐진 것이라고 한다면 
그 문제가 해결되는가. 
그 경우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 내용을 다 합쳐 놓으면 해결될 것 같지만, 
본 바탕의 실재가 그런 상태라고 할 때 
각 감관들이 그것을 대해 엉뚱한 내용을 얻어낸다는 관계는 시정이 안 되는 것이다.  

각 감관이 얻는 내용이나 
자신이 분별한 내용을 모두 모아 
실재 영역에 밀어 넣으면 이 문제가 해결된다고 여기는 것은 
이는 이 문제를 단순하게 이해한 것이다. 

그것은 각 영역에서 있고 없음의 문제에서부터 
서로 일치하지 않고 
여하튼 그렇게 합쳐진 내용에서 엉뚱한 내용을 얻는관계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 문제를 
만일 메뚜기나 박쥐 방울뱀을 포함해
세상에서 보는 무수한 생명이나
각기 다른 반응을 하는 기기나 물체까지 다 고려하면
그 문제는 훨씬 더 복잡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이렇게 이해해보자. 

한국인은 꽃을 대해서 그것을 꽃이라고 표현한다. 
적어도 한국인 수천만명은 다 그렇게 '꽃'이라고 표현한다. 
사정이 이렇기에 
자신이 보는 그 모습에 그런 '꽃'이라는 글자가 들어 있다고 여기면서 
미국인이나 프랑스인을 상대로 그것을 인정하라고 하면
이치에 맞겠는가.


거꾸로 꽃을 놓고 미국인이 플라워라는 소리가 들어 있다고 주장하면
한국인은 그것이 이치에 맞는 내용이라고 인정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실재- 감각현실 - 관념분별 사이에서
한 주체가 일으키는 망상분별의 형태가
바로 이와 같은 상태인 것이다.

그리고 꽃을 대해  반복해서 그것을 
꽃이라고 소리내고 글자로 적는 것은
한국에서는 자신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런 증상을 갖는 이가 주변에 대단히 많다.
그런데 사정이 이러니 이것을 진리로 인정하자.
이런 입장인 것이다.  



그런데 이미 이전 조각글에서 제시한 것처럼 
한 주체가 

a 를 b 를 통해 대해서 반복해서 C 를 얻게 되면 
그 주체는 자신이 그런 상태에 있기에 
그 a 에는 그런  C가 있다거나 
또는 그  a 는 곧 그런 C 라고 여기는 
망상증을 일으키게 된다고 제시했다. 

분명히 그 관계가 그렇지 않다고 
스스로 a + b => C 라고 표시해 놓고 
이것을 수없이 반복해 써 제시하면 

그로 인해 마치 이를 통해 
a 에는 그런  C가 있다거나 
또는 그  a 는 곧 그런 C 라고 보는 것이
옳은 내용이 되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이다. 


망상증을 고집하는 사정은
사실은 위와 같은 내용을 반복해 경험한다는 사정인데 
그런데 그렇게 반복하는 사정이
그 내용이 하나하나 사정이 그렇지 않다고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a + b => C 의 내용인 것이다. 

눈을 뜰 때 마다 어떤 모습을 반복해서 보게 된다는 내용도 
이 내용인 것이다. 

그리고 눈을 떠 대하면 그런 모습을 보게 된다는 그 관계는
반대로 생각하면 
눈을 감을 때마다 그런 모습은 얻지 못하고
따라서 그렇게 눈을 떠 얻는 내용은
그런 관계를 떠나 있는 본 바탕의 지위에 있는 내용이 아님도 
함께 제시해주고 있는 내용인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고 대하는 것이다. 

a + b => C 의 식이 
a 는 그런  C가 아니고 그런 C가 없는 상태임을 제시하고
그래서 그  a 를 대하면 그런 C 라고 보는 것이 잘못임을 
이미 제시하고 있는데 
이것을 반복하면서 그런 생각을 갖는다면 곤란하다. 



그런데 이 증상이 
바로 감각현실을 얻고 
일정 부분을 놓고 일정한 관념분별을 행하는 과정에서도 발생하고 

또 일정 내용을 대하고
좋음과 나쁨을 느끼고 얻을 때도
마찬가지로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형태가
매 경우마다 반복되어서 
망상증상을 증폭 확장시키는 것이다.


08pfl--image/존재의_영역_설명.png
[img1]
08pfl--image/존재의_영역_설명.png




현실에서 주로 그 존재와 정체를 문제삼게 되는 내용을 
위와 같이 나열한다면 

그림에서 위에 포개진 내용은 
아래의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물거품처럼 일으켜 얻는 내용이다.

그런데 위 각 내용에서 서로의 관계를
모두 앞과 같은 형태로 이해하는 것이
바로 망상증상의 대표적 형태다. 

그래서 아래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위에 포개져 있는 내용을 일으켜 얻게 되면 
그 주체는 
그 내용이 그 아래영역에도 그처럼 있다거나 
또는 그 내용이 곧 아래 영역의 내용이라고 하거나 

또 사정이 그렇기에
그렇게 일으켜 얻는 내용은 실다운 내용이라고 여기면서 
그에 대해 집착을 갖고 대하는 것이 
바로 망상증의 형태다. 


그리고 바로 이런 망상증상이 
그 주체를 생사현실에 묶어서 
생사고통을 받게 하는 근본원인이다. 


예를 들어 위 그림에 
눈을 떠 짜장면을 본다면 

그는 
자신이 본 내용이 곧 객관적 실재의 내용이라거나 
또는 그렇지는 않아도, 자신이 본 내용이 
그 본 바탕이 되는 실재영역에도 그처럼 일치하는 형태로 그렇게 있다고 생각하며 
그래서 자신이 눈으로 본 그 내용이 실답다. 
이렇게 이해하는 것도 망상이고 

그리고 다시 그 짜장면 모습에 대해
그것이 짜장면이라고 분별하는 경우에는 
자신이 그렇게 일으킨 분별내용이
또 눈을 떠 얻은 그런 감각현실에 있고 
그 분별 내용역시 앞과 마찬가지 사정으로 
더 나아가 실재 본바탕에도 있다고 여기면서
실답다고 여기는 것도 역시 망상이다. 

그리고 이렇게 짜장면을 배가 고파 먹으니
맛이 있고 좋음을 느꼈다고 할 때 
또 바로 그런 사정으로 그런 맛과 좋음이 
그 짜장면에 그렇게 들어 있다고 여기거나
더 나아가 실재에도 그런 내용이 그렇게 있다고 여기는 것도 
또 망상이다. 


그래서 이런 망상형식은 결국 공통된다. 

이미 이런 망상형태에 대한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비유를 들었는데 
그것이 모두 이런 관계를 나타내는 비유다. 

침대에 누어 꾼 바다나 황금의 꿈 
눈을 떠 노끈을 보고 뱀이라고 여기는 비유
눈병이 들어 허공의 꽃 등을 엉뚱하게 보게 되는 비유 
비닐마술에서 세모가 그려진 비닐과 큰 동그라미가 그려진 비닐을 겹쳐 놓고 안이 세모인 도너츠가 보인다는 비유 
투명한 파지가 수정 보배에 파란 불빛이 비추일 때 파란 마니보배나 사파이어가 있다고 집착하는 비유 
등이 모두 이런 관계를 이해시키기 위한 비유다. 

그런데 여러 비유를 통해 설명할 때 
비유로 든 내용은 엉터리임을 잘 이해하지만, 
자신이 현실에서 얻는 각 내용을 놓고는 
그것은 그런 관계가 아니라고 대한다는 것이 
이 망상증상의 핵심적인 문제다. 

어떤 바탕의 내용을 대해서 
일정한 내용을 얻는 관계는 
이들이 무관한 관계는 서로 아니라고 할 것이나 
그 관계를 통해서 그런 내용을 얻는다고 해서 
그 내용이 다른 영역에도 실답게 있는 내용이라고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어떤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다른 내용을 일으켜 얻는 관계를 
a + b => C 의 관계로 표시한다고 할 때 
a + b => C 의 관계식 자체가 
a 는 그런  C가 아니고 그런 C가 없는 상태임을 이미 제시하고
더 나아가 무상, 고, 무아무자성, 열반, 공 이런 내용까지 다 제시하고 있는데  
스스로 a + b => C 라고 이렇게 표시해 놓고 

그로 인해 마치 이를 통해 
a 에는 그런  C가 있다거나 
또는 그  a 는 곧 그런 C 라고 보는 형태가
바로 망상증의 공통적인 형식이다. 

이것도 앞으로 반복해야 할 구절인 것 같은데 
망2,l 이렇게 축약해 넣기로 한다.


위 내용을 놓고
다음을 검토해보기로 하자. 

눈을 떠 모자모습을 본다면 
그는 그 모습을 대하면서 
그것을 모자라고 여기는 한편 
자신이 생각하는 내용이 
그 감각현실에 그렇게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자신이 눈으로 보는 그런 모자 모습을 놓고
이를 손으로 반복해 만지면서 
과연 평소 이런 시각정보와 촉각정보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는가
검토해보기로 하자. 

자신이 그 모습을 손으로 만질 때 촉감을 얻으니
그런 시각정보로 모자 형태가 그런 촉감을 준다고 또 망상분별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런데 여하튼 
이제 그런 시각정보에서 그런 촉각정보를 얻었다고 하고 
이 두 관계를 생각하면 어떤가. 

그 시각정보로서 모자 모습과 
자신의 손이 느낀 촉각 정보로서 촉감이 
과연 어느 부분 하나라도 일치하거나 
어떤 비례관계가 있다고 보는가. 


그래서 어느 한 내용을 다른 영역으로 그대로 일치한다고
밀어 넣으면 그것이 이치에 맞다고 보게 되는가를
스스로 검토해 보아야 한다. 

그런데 또 사정이 그런데도 
왜 엉뚱한 모자 형태를 손으로 대고 만지면 
또 매번 반복해서 그런 촉감을 얻는다고 보는가. 

그러나 이들 내용이 모두 마음안 내용인 것이고 
시각정보가 촉각정보를 일으키는 원인관계가 아니라고 이해하는 바탕에서 
그러나 그런 내용을 얻는 것은 
마음 밖의 본 바탕이 되는 실재영역에 그와 일치하는 내용이 있기에
그렇다고 추리하고 주장한다면 
그 경우도 앞과 마찬가지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고 이해해야 한다. 

즉 눈으로 본 내용을 그대로 자신이 실재영역에 밀어 넣는다면 
그런 본 바탕에서 그런 촉감을 얻는 것은 
또 엉뚱한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실재 영역에 밀어 넣어야 할 것은 
시각정보가 유독 그런 것은 아니다. 

그래서 앞에서 나열한 각 내용을 다 그렇게 밀어 넣으면 
이 문제는 더 엉뚱한 내용들이 되는 것이다. 


이미 현실에서 얻어 놓는 내용들을 서로 관계를 살필 때도 
이미 이들 사이는 서로 엉뚱한 관계가 되는데 
그것은 단지 내용만 그런 것이 아니고 
있고 없음의 존부판단마저도 그런 것이다. 

이처럼 이미 현실에서 내용을 얻어 놓은 것들 사이에서도
그 관계가 엉터리인데 
그런데 그 내용을 얻지 못하는 실재 영역과의 관계가
그렇다는 주장은 무엇을 도대체 근거로 하는 것인가. 
이것을 잘 검토해 보아야 한다. 



그나저나 왜 네비게이션은 왜 그렇게 
매번 오작동을 정확하게 망상분별 내용에 일치하게 보고를 해주어서
이런 망상증 환자들의 증상을 증폭시키는가. 
...
그 사정은 
처음 그런 기기를 제작한 그 바탕이 같고 
또 그 바탕에서 그렇게 보고를 하지 않는 기기들은 
쓸모없거나 고장난 네비게이션이라고 해서 
모두 처음부터 집어 던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벽돌 네비게이션을 놓고 실험하면 
이 사정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처음부터 벽돌 네비게이션을 
무시할 사정이 있었던 것인가. 





○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Indochine - More.lrc

반복되는 문장을 축약키로 축약하다보니 

축약키도 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축약키도 망1,l 망2,l
이런 형태로 또 짧게 줄였다.

그런데 이미 이전 조각글에서도 살펴지만 
본 바탕인 실재 영역을 포함해서 
각 영역에 진짜라고 할 내용이 없고 
하나같이 실답지 않다는 사정을 살폈는데 
왜 이들은 본래 청정한 니르바나라고 하고 

각 내용을 a => b => C 형태로 얻는 가운데 
자신이 일으킨 분별 내용을 다른 영역에도 
그처럼 있다고 여기면서 임하는 것을 
문제삼는가 
이것을 먼저 이해하고 
그런 분별이 망상분별임을 이해하는 그런 바탕에서는
앞으로 어떻게 임해야 
생사고통에 묶이지 않고 그로부터 벗어나게 되는가를 
핵심으로 놓고 살펴야 한다고 본다. 


이미 짜장면 그릇에 올려진 떡시루 형태로 
각 영역의 내용이 포개지는 내용을 그림으로 보았다. 

다음 그림이다. 

08pfl--image/존재의_영역_설명.png
[img2-01]
08pfl--image/존재의_영역_설명.png


여기서 ◇ 로 표시한 것은 
이 영역들에 과연 실답다고 할 수 없는 꿈과는 그 성격이 달라서 
진짜라고 할 영원불변하고 고정된 실체가 존재하는가를 
그림처럼 그려 놓고 그것이 있는가 없는가를 문제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이 없기에 무아 무자성이라고 표현한다는 사정을 살폈다. 


그것은 가정적 논의나 가정적 항변 방식으로 
이를 이해하면 
앞의 망상분별과 함께 관련된다. 



어떤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다른 내용을 일으켜 얻는 관계를 

a + b => C 의 관계로 표시한다고 할 때 

a + b => C 의 관계식 자체가 

a 는 그런  C가 아니고 그런 C가 없는 상태임을 이미 제시하고 

더 나아가 무상, 고, 무아무자성, 열반, 공 이런 내용까지 다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내용을 바탕으로 다른 내용을 얻는 관계를 

스스로 a + b => C 라고 이렇게 표시해 놓고 

그로 인해 마치 이를 통해 

a 에는 그런  C가 있다거나 

또는 그  a 는 곧 그런 C 라고 보는 형태가 

바로 망상증의 공통적인 형식이라고 앞에서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이 내용이 
그렇게 현실에서 각 영역의 내용을 얻는다는 사정이 

곧 앞에서 찾은 ◇과 같은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정을
알게 해주는 내용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결국 현실에서 얻는 내용의 본 바탕이 되는 실재 영역을 포함해서 
현실 내용까지 그처럼 진짜라고 할 내용은 없고 
그래서 이들 모두가 다 실답지 않다는 사정은 
차이가 없는 것이다. 

실재를 진여라고 표현하는 것은 
현실에서 얻는 그 일체 내용들의 
가장 밑바탕으로서 본 바탕이 되는 내용이기에 
그렇게 표현하는 것일 뿐 
이들 실재는 어떤 참된 진짜의 내용이라고 
그런 표현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위에 떡시루 올려 놓은 것처럼 
그림으로 제시한 각 영역의 내용은 하나같이 
실다운 내용은 아닌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그런데 왜 실답지 않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는데
다른 실답지 않은 내용 자체는
청정한 니르바나의 상태라고 하고
이와는 달리 유독 분별을 일으켜 
그것을 대하는 것을 생사고통을 받게 하는 근본이라고
제시하는가. 

망상분별이라고 하는 것은 
a + b => C 의 관계를 놓고 살피면 다음과 같다. 

감각현실을 바탕으로 그 감각현실을 대해 
일정한 C라는 분별을 행한다면
이런 감각현실이나 이런 분별 자체는
비록 실답지 않지만,
현실에서 어떤 주체가 그런 내용을 그렇게 얻은 것이고
이것 자체를 가지고 문제라고 하는 것은 아님을 이미
꿈이나 노끈 비닐마술 등의 비유에서 살폈다. 

이 가운데 비닐마술의 상황을 폰트로 다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감각현실 - 관념분별  -     두 내용이 접착된 상태 

△            ○              ㋰   = 비닐마술에서 나타나게 된 안이 세모인 도너츠 

--------------------------------
二            ( )              ㈡   = 담배

化            □              囮   = 라이터에 불을 붙임 

∫∬          U              ♨   = 연기




여기서 

감각현실로 △ 을 얻고
이에 대해 관념분별   ○ 을 일으켰다면
이 감각현실 △ 이나 ○ 은 그렇게 얻은 것이고
비록 실다운 내용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 문제라고 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자세히 살피겠지만, 
그렇게 얻은 감각현실이나 관념분별 △ 이나 ○ 은
그 본 바탕의 실재를 포함해서 
이에 대해 시설하는 세속제를 통해서 
현실의 본 사정에 관한 진리[승의제, 제일의제]을
그렇게 이해하고 관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기능을 하고 그 바탕이 되는 내용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 각 영역의 내용이
실재 영역을 포함해서 다 함께 무아 무자성인 것이어서
그것들이 하나같이 실답지 않지만, 
그러나 이것을 다 청정한 니르바나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것이 현실에서 문제삼는 생사고통은 얻을 수 없는 
그런 실답지 않는 내용이기에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를 들어  a +  b => C 의 형태로 
어떤 분별을 일으킨 다음 

이제 그런 C 의 내용이 그런 내용을 얻은 본 바탕에도 그렇게 있다거나 
그래서  a +  b 는 곧 그런 C 라고 여긴다거나 하면서
이들 내용이 실다운 내용이라고 이해하는 경우는
왜 이와는 달리 취급하는가를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잘 생각하면서 조금 쉬기로 하자. 




○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Lara Fabian - Il Existe Un Endroit.lrc


잘 생각하면서 쉬는 동안 
TV 에서 뜨겁게 사랑을 하는 연인이 닭살 돟는 언행을 일삼다가 
알콩달콩 달콤한 신혼생활을 보내다가
나중에 관계가 시들해져 헤어지는 모습을 보았는데 

여기에 현재 잘 생각해야 할 핵심 문제가 들어 있다고 본다. 

알콩달콩이란 표현이 상징하는 내용에는 많은 내용이 
담겨 있는데 삶에서 가장 달콤하게 여길만한 19 금 내용이 
많이 이 안에 포함되어 있는데 
정작 영화에서는 해당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해서 
실망을 갖는 경우가 많다고 본다. 

그런데 왜 이것이 
앞에 소개한 꿈의 비유나 
노끈의 비유 
그리고 비닐마술이나 파지가 비유 등이 
적용되는 것인가부터 살펴야 한다고 본다. 

앞에서 소개한 비닐마술을 여기에 적용하면 
감각현실에서 △ 내용을 얻고 
이를 대해 ○ 라는 관념분별을 일으킨 다음 
감각현실 △ 에 자신의 관념분별내용 ○ 을 밀어 넣어서 
㋰ 과 같은 내용이 그 영역에 들어 있다고 여기는 현상을 
놓고 생각해보자. 
이 내용은 관념분별 내용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생각하는 ○과 같은 내용에는 △가 같은 내용이 들어 있어서 
그것은  ㋰이라고 여기면서 대하는 것이다. 

이것이 비닐마술에서 
△ 가 그려진 비닐과 ○과 그려진 비닐을 겹쳐놓고 대하는 가운데 
㋰과 같은 안이 세모인 도너츠가 각 비닐에 그렇게 있다고 여기는 현상인데
그러나 어느 비닐에도 그런 내용은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듯 
본 바탕이 되는 실재영역이나 
감각현실이나 관념분별이나 그 어느 영역도 
실답다고 할 내용이 아닌 것은 마찬가지인데 
그런 상태에서 
각 내용을 겹쳐서 
어느 영역에도 얻을 수 없는 
㋰과 같은 내용을 하나 더 실답지 않게 얻어 갖고 
그것이 현실에 그렇게 있다고 여기면서 대하면 
그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그것을 문제삼는가. 
이런 문제다. 

이 문제를 잘 생각하고 
그러한 가운데 현실에서 어떻게 해야 
3 악도에서 받는 생사고통을 제거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본다.

앞에서 알콩달콩한 내용을 반대로 적용하면
그것이 곧 생사고통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현실을 늘 옆에 두고 이 문제를 살펴야 한다고 본다.


결론만 제시하면  
앞과 같은 전도망상분별을 제거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단지 그것이 실답기 때문만은 아니고 
그것이 실답지 않을 뿐아니라, 
그렇게 실답지 않은데 
생사고통은 대단히 심각하게 많이 받게 하는 요소가 
바로 이 부분이기 때문이다. 

생사현실에서 수행을 한다는 것도 알고보면 
생사고통을 제거하기 위한 것인데 
실답지 않다고 할 다른 영역 
즉 본 바탕이 되는 실재 영역 등에서는 
이런 생사고통을 얻을 수 없는데 
그러나 현실에서 겪는 생사고통은 
바로 이 부분을 바탕으로 그렇게 받는 것이기에 
이 부분을 제거해야 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간단히 제시하면 
설령 그것이 실답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 어떤 주체가 어떤 고통을 전혀 받지 않게 된다면 
그것이 실답지 않다고 해서 
왜 그것을 문제삼을 것인가. 

그런데 이 경우는 문제가 그렇지 않다는 의미다. 
실답지 않은데도 
그것을 실답게 여기는 가운데 
그로 인해 대단히 심각한 생사고통을 받아나가기에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내용이 실답지 않다고 
반복해 제시하는 것은 
그것이 실답지 않다는 내용을 잘 관해서 
그에 대한 집착을 제거하고 
또 그런 상태에서
생사고통을 받게 만드는 업을 중지하고
그리고 그런 생사고통을 받는 상황을 놓고도 
그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이 근본을 제거할 것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앞에서 제시한 그 부분이 문제가 되는가는 
다음 사정이다. 

현실에서 어떤 이가 무언가를 대단히 문제라고 
본다면 그렇게 문제라고 보는 내용이 
어느 영역에 있는 내용인가를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서 
자신의 신체가 끊어졌다. 그리고 피가 흐른다.
그리고 자신이 곧 그로 인해 죽는다.
그런데 재산은 파산상태가 되었고
자신의 가족은 모두 길거리에 나가게 되었다.
등등의 상황을 놓고 생각해보자. 

이 상황은 대단히 걱정스럽고 
고통스런 상황이 아닌가. 

그런데 이렇게 문제삼는 내용이 있어서
이를 문제삼을 때 
우선 그 내용은 관념 영역의 내용이라는 것이 
처음 문제다. 

그런데 그런 관념내용이 
그에 해당한 현실 내용이 전혀 없는 어떤 공허한 내용이어서 
예를 들어 그냥 자신이
소설가의 입장에서 생각해본 그런 내용일 뿐이라면 또 어떤가. 

별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대하는 내용이 이렇다고 여길 때는
그렇게 그런 내용을 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행한 분별내용은
단순한 분별 내용이 아니고
그에 해당한 내용이
감각현실에 그렇게 실답게 있는 어떤 내용이라고 여기기에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결국
자신이 극히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어떤 관념분별 내용이 있다면
그것이 단순히 생각하는 영역에서만의 실답지 않는 내용이 아니고
그것이 만일 감각현실에도 그에 해당한 내용이 있어서 
대단히 실다운 내용이고 
더 나아가 본 바탕이 되는 실재에도 그런 내용이 실답게 있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그런가가 문제되는 것이다. 


그러면 다른 영역의 내용은 왜 이와 다르다고 하는가.

다른 영역의 내용은 그것이 실답지도 않지만,
그것이 설령 그렇게 있어도
관념영역에서 문제삼는 그런 내용이 아닐 뿐더러
관념영역 자체에서 그렇게 문제삼지 않는한
그것은 그런 문제로 될 내용자체가 아닌 것이다.  

실답지 않지만, 
그런 내용이 전혀 없다고 할 것은 아닌데 
여하튼 그런 문제는 아닌 그런 어떤 것일 뿐이다. 
그래서 이것은 현실에서 문제삼는 그런 생사나 고통이
아닌 그런 어떤 것일 뿐으로 그치는 것이다. 

처음에 무엇을 문제삼았는가하면 
고통의 제거를 문제삼았던 것이고 
따라서 설령 어떤 것이 실답지 않더라도 
그것이 고통이 아니면 무방하다고 보게 되는데 
이들 영역의 내용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래서 본 바탕의 실재 영역은 
무아 무자성이 아니고 , 
그것이 실다운 어떤 진짜의 내용이어서 
청정한 니르바나라고 제시한 것이 아니고 
무아 무자성 공한 상태로서 실다운 내용은 아니지만,
현실에서 문제삼는 그런 생사고통은 적어도 아닌 
그 어떤 것이라는 의미에서 
그것을 청정한 니르바나라고 제시한 것이다. 

청정하다는 표현도 실재 영역에 청정이라는 내용이 
그렇게 있어서 그렇게 제시하는 것이 아니고 
현실에서 문제삼는 그런 고통과 더러움을 놓고 대할 때 
상대적으로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기에 
그것을 청정한 니르바나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영역도
마치 현실에서 꿈을 반드시 꾸어야 한다고 보지 않는 것처럼 
비록 그런 본 바탕을 놓고 볼 때 
반드시 있어야 할 내용은 아니라고 보지만, 
그러나 설령 있다해도 그 자체는 역시 
앞에서 문제삼는 것과 같은 
실다운 고통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마찬가지로 청정한 니르바나라고 일단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앞의 상태는 이와 다른 것이다. 
어떤 이가 그렇게 망상분별을 일으킨다고 해서 
실답지 않은 것이 실답게 되는 것은 아닌데 
그러나 그렇게 망상을 일으킨 입장에서는 

자신이 감각현실로 △을 얻고 나서 
그에 대해 ○ 라는 관념분별을 일으키고 나서는 
자신이 생각하는 ○ 가 그런 감각현실 영역에 그렇게 있다고 여기고 밀어 넣고 
이 두 내용을 접착시켜서 
그래서 ㋰ 라는 내용이 실답게 있다고 여길 때는 
그 상태가 앞과 같이 되지 않는 것이다. 

즉, 자신이 고통으로 여기는 그런 내용이 
단순히 소설가가 상상으로 생각해내는 관념분별 내용이 아니고 
그것이 그처럼 감각현실에 있는 실다운 내용이라고 여기면서 
이를 하나하나 대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글이 너무 길어지는데 

여기서 △ 라는 감각현실을 얻고 
그에 대해 ○ 라는 생각을 할 때 
어떻게 보면 커피가 담긴 컵을 눈으로 본 모습과 
그 컵을 손으로 두드릴 때 듣는 소리처럼 
이들이 서로 엉뚱한 내용인데 

그러나 △ 라는 감각현실을 얻고 
그에 대해 ○ 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는 
이 △가 곧 ○ 이라고 여기면서 대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곧 이 둘을 접착시켜서 망상분별을 행하는 정도와 
밀접한 내용이 된다. 

그래서 실험을 먼저 해볼 필요가 있다. 

자신이 어떤 꽃을 열심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을 감고 나서 
직전에 본 꽃을 머리속에서 비슷하게 
그림으로 그려 본다고 하자. 

이 때 자신이 머리 속으로 그려보는 그런 내용이 있다면 
그것은 눈을 떠야만 보게 되는 그런 감각현실은 일단 아니다. 
그리고 그런 관념분별은 비록 눈을 뜨거나 감거나 
계속해서 떠올릴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서로 다른 내용인 것은 
이런 실험으로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평소 이런 감각현실과 관념분별을 접착시켜 놓고 
대하던 입장에서는 
자신이 그렇게 관념영역에서 그련 내는 그런 관념분별이 
그 감각현실과 대단히 유사할 뿐 아니라, 
바로 그 내용이라고 접착시켜 이를 대하는 것이 보통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접착을 통해서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내용은
그에 해당한 내용이 감각현실 영역에서도 그대로 얻는 것이고
또 그렇게 있는 것이어서
그것은 대단히 실답다고 여기는 것이고
그래서 그에 대해 대단히 집착하면서 이를 대하게 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경전에서 제시하는 바는
사정이 그렇지 않은데
그런 망상을 바탕으로 그에 집착하고
그렇게 임하기에 그렇다는 것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기에 
그러는가를 또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처음 각 영역 사이에서 a => b => C 이런 관계를 제시할 때 
C 가 그런 관계로 얻어진다는 것 자체가 
문제삼는 그런 C 는 다른 영역에서 얻을 수 없기에 
실답지 않음을 제시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내용은
각 영역에서 a 나  b 나  C 와 같은 내용을 
전혀 얻지 못한다고 제시한 것이 아니다. 

어떤 내용이 실답게 있는 것이 아니고
실다운 내용이 아니므로 집착을 가지면 안 된다고 
제시하면 
가끔 각 내용을 접착시켜 대하던 입장에서는 
이를 혼동해서
a => b => C 이들 내용이 전혀 없음을 제시하거나
그런 내용을 일체 얻으면 안 되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의미가 아니고 
a => b => C  이들 내용은 각 영역에서 그렇게 얻지만, 
그러나 문제삼는 C 는 
다른 영역에서 얻는 내용의 지위에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다른 영역에서 얻을 수 없는 것이어서
그것을 다른 영역에서도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있는
실다운 내용이라고 여기면 곤란하다고 제시한 것이다.

그것은 그렇게 여기면 
실다운 것을 아닌 것을 놓고 
그것을 실답다고 여기고 집착을 갖고 대하는 가운데 
생사고통을 대단히 실답게 극심하게 받아나가기에 그런 것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임하면 
그렇게 되는가를 위 내용을 놓고 잘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자신이 그렇게 각 내용을 접착시켜 놓고 
그렇게 망상 분별을 일으키고
이 각 내용을 대하면
그로 인해 어떤 상태가 그로 인해 나타나기에
이것은 곤란하다고 제시하는가
이 문제다. 

여기에 만일  a => b  => C 등의 관계로
얻어서 그렇게 문제삼는 C 가 있다고 할 때 

다른 영역에서 어떤 내용이 전혀 없는 것이라면 
그리고 있더라도 다시 그 주체가 그로 인해 
a => b  => C  등의 관계로 그런  C 를 얻지 않거나,
또는 얻더라도 그로 인해
그것을 실답게 대하며 집착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내용을 놓고 이 문제를 살펴야 하는 것이다. 


또 사정이 그렇기 때문에 
이미 생사고통에 묶인 상태에서는 
이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그것이 실답지 않다는 것만을 이해하는 것으로 부족하고 

그 상태에서 어떤 수행을 해야 
이 관계에서 벗어나게 되는가를 놓고 
잘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글이 쓰다 보니 너무 길어져 버렸다. 

조각글이 계속 밀리는데 
살펴야 할 경전이나 논서도 함께 밀려 있고
이미 글도 너무 길어졌기에
앞과 같은 문제를 놓고 
다시 잘 이해하면서 쉬면서 
다음 조각글로 이 문제를 넘겨 살필 것인가 
아니면 살피던 내용은 다 살피고 
마칠 것인가를 생각해보기로 한다. 






문서정보 ori http://buddhism007.tistory.com/4270#7566
sfed--법계도기총수록_K1502_T1887B.txt
sfd8--불교단상_2562_03.txt ☞◆vvcv7566
불기2562-03-28

θθ

 



-- 아래에 조각글 작성시 휴식시점에 붙인 노래가사,사진,풍광,예술작품 자료를 편집상 옮겨 붙입니다.--


mus0fl--Debout Sur Le Zinc - Plan-Plan.lrc
2016_0505_171221_nikon.jpg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Selbstbildnis_mit_schwarzem_Hund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flower-1-1399100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Ssangbongsa_11-05169



♥Rio Abiseo National Park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
mus0fl--Maurane - Il Y A Mille Ans.lrc
2016_1202_173328_nikon_ct31.jpg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gustave-dore-don-quixote-20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Rose_Interior_With_Raindrops_(200476158)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Buddhist_Temple_at_Summer_Palace






♡도림사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http://buddhism007.tistory.com/3889



>>>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gustave-dore-orlando-furioso-9.jpg!HD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at_Yannawa_วัดยานนาวา



>>>


mus0fl--Indochine - More.lrc

2016_1226_194149_nikon_ct4.jpg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Theophile Steinlen-two-cats-deux-chats-1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Clematisblüte_by_Stepro_01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Ningbo_Ayuwang_Si_2013.07.28_14-32-34



♥테리걸 Glenn Mckimmin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

mus0fl--Lara Fabian - Il Existe Un Endroit.lrc
2016_1011_111906_nikon.jpg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Ivan_Constantinovich_Aivazovsky_-_Boat_Ride_by_Kumkapi_in_Constantinople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Rose,_Kotone,_バラ,_琴音,_(10751569713)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1280px-Sumadera_Ojyuin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