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Marie Laforet - Coule Doux (Hush A Bye).lrc
♥ 잡담 ♥상대적시간측정
오늘은 불설법계죄보경중경이란 경이 뽑혔다. 계율의 항목을 나열할 때 통상 6 취 또는 7 취로 분류하는데 수행전문가라면 외어야 되는데 평소 계율에 관심이 없으면 바라이 항목 정도만 떠올리고 나머지는 매번 혼동을 일으키게도 된다.
오늘날 형법에서 규율하는 항목을 분류하면 사형 무기징역 무기금고 징역 금고 구류 벌금 과료 자격상실 자격정지 이런 식으로 분류한다면 수행자의 계율항목도 이런 형태로 경중에 따라 분류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수행전문가를 지향하는 수행자라면 이번 기회에 한 번 정리해 외어둘 필요가 있다. 경전마다 조금씩 표현에 차이가 있지만 처음에는 사전에 제시된 대로 외우고 나중에 보충하는 방식이 낫다고 본다.
바라이(波羅夷)ㆍ승잔(僧殘)ㆍ투란차(偸蘭遮)ㆍ바일제(波逸提)ㆍ제사니(提舍尼)ㆍ돌길라(突吉羅), 악설(惡說) 막상 외어보려면 쉽지 않다. 그리고 개별 항목까지 살피려면 좀 더 복잡해진다.
그런데 여하튼 다른 생명이 생명인 이상 집착하기 마련인 것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살,도,음,망은 본질적인 악이라고 보고 성계라고 하고 그외는 수행자 집단에서 다른 이의 수행을 방해하고 장애를 만들어내는 행위를 금지한 항목들로서 차계라고 하고 이들 내용들이 그 이하항목들에 그 경중에 따라 분류되어 들어간다는 정도는 수행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대충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위 경전에서 각 항목을 위반시 그 과보로 그 수행자는 이후 어떤 상태에 처하게 되는가를 제시하고 있는데 일단 그 내용이 각 항목의 경중에 따라서 욕계내 각 하늘의 평균수명기간에 비례해서 니리 즉 지옥에 수용되어 그 기간만큼 그 곳에서 내게 된다는 사정을 특징적으로 살필 수 있다.
그런데 왜 그런가는 그 사정을 그런 계를 어긴 이를 기준으로 보면 이해하기 힘들지만, 하늘을 기준으로 그 사정을 살피면 쉽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해보는 것이다. 자신이 어느날 자신 마음대로 뜻을 성취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을 하늘이라고 표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기간까지 하고 지내는 그 기간을 그 입장에서 하늘과 같은 상태라고 표현하거나 하늘이라고 표현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상태에서 자신의 뜻에 맞지 않게 평소 자신이 집착하는 것을 함부로 침해했다거나 수행을 방해했던 상대가 계속 그렇게 자신이 집착하는 것을 침해하게 방치한다면 자신이 하늘에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쉽게 생각해서 자신이 어떤 호텔을 경영하는데 자신의 동의도 받지 않고 어느날 아무 방이나 들어와서 잠을 자고 숙박료는 내지 않고 종업원이 이에 항의하면 바로 권총이나 도끼를 꺼내서 살해하거나 상해를 가하고 방실에 장식해 놓은 온갖 비품은 다 자기 집으로 훔쳐가고 마음에 드는 종업원이 보이면 자신 마음대로 성폭행하고 겁탈하고 그리고 온갖 허위 구라성 이야기를 하면서 속이는 행위를 하는데 호텔 사장이 이 사정을 다 알면서도 이것을 어쩔 도리가 없이 방관하고 방치해야 한다면 그 호텔 사장의 입장에서 그것이 좋고 좋은 하늘과 같은 상태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호텔 사장 입장에서 자신이 좋은 상태가 유지되려면 그런 행위를 자신에게 했고 할 가능성이 농후한 상대는 자신이 호텔 사장인 이상 일정한 시설에 따로 감금해서 과거에 자신에게 가했던 고통에 상응하는 정도로 고통을 주어야 한다고 욕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상식적으로 보는 것이다.
그것이 안 되면 반대로 그 호텔사장은 하늘의 상태가 아니다. 이렇게 보게 되는 것이다.
호텔로 비유했는데 이것은 한 사회를 놓고 보아도 그 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어떤 나라에서 흉악범이 마음대로 범행을 하고 돌아다니는데 그 나라의 수사기관이나 형벌집행기관이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그러면 그 나라가 평안하고 복된 상태라고 할 수 있는가. 당연히 그렇지 못하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런 상태로 방치한다면 그것을 거꾸로 표현해야 한다. 그 나라는 그 범인의 나라고 나머지 사람들이 그런 지옥에 수용된 상태다.
이렇게 거꾸로 표현해야 한다.
갑자기 아우슛비츠 이런 곳이나 시베리아 수용소 이런 곳들을 떠올려 보게 되는데 그 당시 그 나라의 통치자는 그것을 거꾸로 대한 것이기도 한 것이다.
반대로 어떤 주체가 자신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 그렇게 할 때 어떤 이들은 그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받는 상황이 되는데 그러나 정작 그렇게 행하는 주체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이나 자신을 따르고 자신에 속한 이들에게는 자신이 누리는 좋음을 같이 나눠주려고 하는 것을 또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에 비례해서 평소 자신과 반대입장이고 자신과 대립하는 상대는 어떤 수단방법을 동원해서든 체포 수감해서 가두어 두고 그에 상응한 고통을 가해야만 위 내용이 가능하다고 욕계안에서는 상식적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를 들어 시카코에서 유명한 갱단 두목 알까보네와 같은 경우도 자신의 가족에게는 대단히 자상하고 사랑스럽게 대했다는 일화가 전해지는데 그러나 자신을 배반한 조직원은 철사줄에 묶어 야구배트로 혼내주고 드럼통에 넣어 처리하곤 했다는 보고를 받는데 그 이후로도 그런 문제들이 사후 처리가 잘 안 되었다는 보고를 이어 받는다. 갱단 두목만 놓고 보아도 갱단 두목이 아주 잘 지내는 이면의 사정은 이렇다는 의미다.
그러나 하늘은 원칙적으로 10선업을 오래 닦고 각 하늘의 주인에게 신심을 갖고 임할 때 그 하늘에 입소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부족하면 결국 그 하늘에서는 불편하게 대할 도리 밖에 없다. 사정이 그렇다.
당신이 하늘 주인이라면
자신을 계속 비방하고 헐뜯고 불신으로 대하는 상대를 놓고 수많은 생명 가운데 이를 특별히 잘 대우해주어야 할 특별한 사유가 찾아지는가.
그러나 한편 아무리 자신을 찬탄하고 공양 공경 존중한다해도
그 상대가 마약 밀매에 온갖 악행을 다 행하고 있어 주변에서 비난이 가득한 상태라면 그 하늘이 그를 받아들여 함께 범죄 집단 취급을 받을 이유가 있겠는가.
무언가 상대를 받아들일 때 그로 인해 그와 함께 매도당하지 않을 만하고 오히려 그 반대로 칭송을 받을만한 요건이 충족되어야 하는 것은 또 상식이다.
그래서 경전에서 각 하늘에 진입하려면 10 선업을 닦고 그 하늘에 대한 신심을 갖추어야 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문제는 수행자는 인천을 오가는 가운데 이들을 제도해서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수행 취지이지 하늘에 올라가 장기 체류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닌 점을 한편 주의해야 한다.
하늘에 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수행을 일반적으로 인천교라고 표현하는데
하늘에 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은 그 반대 상태인 지옥을 두려워한다는 것도 함께 의미한다.
그리고 아주 넓고 길고 깊게 이 관계를 관하면 결국 이것이 서로 상대적으로 순환관계가 되기에 완전한 방안이 아니다. 지금은 하늘이더라도 자신이 지옥에 감금한 상대가 벗어나오면 그로 인해 자신의 상태는 거꾸로 지옥이 되어서 그런 사정때문에 한편으로 지옥 갈날을 걱정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다는 점이다.
사극에서 한 사례를 소개하면 세조와 단종이나 사육신의 상호관계를 생각해본다거나 연산군과 중종의 상호관계를 생각해본다거나 광해군과 인조의 상호관계를 생각해보면 그 사정을 이해하기가 쉽다.
사6신이 세조에 의해 처분당한 내용을 그 입장에서 생각하면 도저히 참기 힘든 그런 수모와 고통을 준 것인데 문제는 세조 입장에서는 자신을 비밀리에 살해하려고 한 사6신의 3 족을 그렇게 처분하지 않을 도리가 또 없는 관계가 서로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그 세조도 사라지고 복권이 또 되고 또 거꾸로 당시 사6신이 칭송을 받기도 하고 당시 3 대에 걸쳐 정승으로 활약한 신하가 희대의 간신으로 평가받게 되는 그런 사정을 역사서에서 살피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수행자는 생사현실에서 임해 수행할 때 안인을 원만히 성취해서 이론상
어느 상태에서도 모두 무방하고 말 그대로 지옥도 극락으로 대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고 생사현실 일체 즉 니르바나라는 생사즉 열반이란 모토를 말 그대로 성취해 이후 그런 바탕에서 생사현실에 임해 무량한 방편을 닦고 중생을 제도하는 무량한 수행을 해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수행자라면 적어도 자신이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고 또 생사고통에 묶인 중생을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수행을 함에 있어서 이것은 되는데 저것은 안 되고 이러면 안 된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 사정이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낳네 이 표현이 의미하는 내용이기도 한 것이다.
이는 구전 민요를 놓고
아리고 쓰린 고통은 아라리요를 외치면 즐거워하던 그 순간에 행하는 업때문에 받게 되는 것이라는 관계를 제시하는 내용이라고 시감상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사실상 그 관계가 그런 것이다.
한번 하늘에 올라가면 무량하게 영구히 하늘에서 즐거운 복락을 받게 되는 것 아닌가. 이런 유치한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두가지 문제를 검토해 보아야 한다.
처음 자신의 상태가 하늘이 아닌 줄 상식적으로 알면서 그런 자신이 하늘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고 가정한다면 이 말 자체가 변화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무상을 의미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하늘 상태가 된 후는 이후 영구히 하늘 상태로 남는다고 하면 다시 첫 부분도 그런 일은 처음부터 있을 수 없다. 이렇게 쉽게 그 사정을 이해해야 한다.
두번째는 무슨 근거로 자신이 하늘에 그렇게 갈 수 있다고 쉽게 낙관하고 현실에 임하는가를 하늘 입장에서 그 사정을 먼저 잘 살펴야 한다.
자신이 그런 상태를 평소 희망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런데 하늘 입장에서 무슨 사정으로 그런 자신을 필요로 하겠는가. 그리고 무슨 사정으로 자신 희망대로 영구히 하늘에서 지내게 해주겠는가.
거꾸로 당신이 호텔 하나를 경영한다면 거리를 지나가는 행인을 보면서 그런 마음이 단 한번이라도 생기는가.
그것을 검토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그 중에 장삿꾼과 같은 얄팍한 계산 즉 좁고 짧고 얕은 계산으로 자신이 호텔 사장을 사장 앞에서 공경 공양 찬탄 존중하는 가운데 매일 호텔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면 호텔 사장이 감동해서 무료 숙박권을 발부해줄지 모른다고 기대하지만, 그러나 호텔 사장은 그렇게 얄팍하게 좁고 짧고 얕은 계산을 하는 상대의 속마음을 간파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돈 천만원 정도 자신이 기부하고 호텔 영구 숙박권을 발급받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호텔 문 앞에서 날밤을 새워 줄 서지 않을 이가 누가 있겠는가. 현실적으로 그런 것이다.
그런데도 만일 그렇다면 이후 그 호텔앞에는 그런 장삿꾼 마음을 가진 이들만 그렇게 장사진을 이루게 되는 사정이 있다.
그러나 하늘 입장에서 그런 장삿꾼 마음으로 임하는 이가 필요하는 일도 없고 또 그렇게 해서 숙박권을 얻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상식적으로 보아도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하늘에 진입하려면 호텔 입구를 보지 않고 오히려 하늘과 같은 입장에서 입구 앞쪽 방향을 보고 현실에서 계속 임하고 있어야 거꾸로 하늘 진입이 가능하게 된다고 팁을 제시하게 된다.
무슨 의미인가는 그 사정을 호텔 사장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치가 쉽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그런 이가 하늘에서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리고 표준 매뉴얼은 앞에 제시한 것처럼 그 하늘 주인에 대해 신심을 갖고 그 신심에 바탕해 10 선업을 닦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만일 신심만 갖추고 10 선업을 닦지 않으면 이렇게 하늘 주인이 되물을 것이다. 당신이 나를 믿는다고 하면서 그렇게 믿는다는 자신이 상대에게 평소 잘 행하라고 한 내용은 어떻게 그렇게 청개구리처럼 하나도 제대로 안 하면서 말로는 믿는다고 그렇게 하는가. 이렇게 되묻게 될 것이다.
그런 경우 자신이 따로 할 말이나 밝힐 사정이 있으면 미리 거울을 보고 소명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간단히 압축하면 장삿꾼 마음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는 즉 만원 희생하고 천만원 수익을 얻어내자 이런 마음 상태로는 결코 그런 곳에 진입하기 곤란하다. 이렇게 정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 중생 자체가 그 전에 하나의 산에 가득한 흙에서 손안에 쥔 흙의 비율로 그렇게 뛰어나게 선업을 닦아서 그런 상태가 된 것이어서 앞과 같은 형태로는 가능하지 않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경전에 나열된 각 하늘에서 더 윗 하늘로 진입할 때도 다 사정이 마찬가지다.
주민센터를 출입하기 곤란한 입장에서 구청을 출입하기도 곤란하고 구청을 출입하지 못하는데 시청을 출입하기 곤란한 것처럼 각 하늘의 사정이 그렇다.
그래서 처음부터 목표를 너무 높게 잡으면 실망과 낙담이 커지고 기대한 정도에 비례해 원망이 생기게 마련인 것이다.
여하튼 왜 그렇게 원망을 갖고 고통을 느끼는 기간이 각 하늘의 평균수명과 기간에 비레하는 것으로 제시되는가는 하늘의 입장을 기준으로 이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고 할 수 있다.
수행자는 기본적으로 욕계나 새계 무색계의 이런 사정을 관찰하지만, 그러나 정작 이런 하늘에 진입해 장기 체류하는 것이 수행의 본 취지나 목적은 또 아니라는 점을 제시하면서 일단 쉬자,
그런데 하늘진입과 관련된 팁을 제시하는데 마침 관계되는 메세지를 이 노래가 전한다고 시감상으로 감상하게 된다.
이치가 그렇다. 바퀴벌레가 방안에 나타나면 대부분 무언가를 들어서 내리치게 되기 쉽다고 본다.
왜 그런가. 바퀴벌레가 무슨 잘못을 그렇게 많이 했는가. 그런데 일단 그런 형태로 나타나면 대부분 놀라고 그렇게 처리하려고 임하는 것이다. 이것이 욕계의 일반 사정이다.
자신이 그렇게 행하고 나서 거꾸로 자신이 그런 입장에 처할 때 다른 상대는 자신에게 그렇게 대하지 않기를 기대하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 앞과 같이 행하는 입장 대부분이 자신은 평소 그렇게 행하면서 자신은 또 예외적으로 그와 반대로 다른 생명에게 대우를 받으려고 기대한다는 것도 공통적이다.
옆에서 보면 어처구니가 없는데 그 주체는 매 경우 그렇게 임하는 것이다. 이것이 어떤 특수한 이만 그런 경향을 갖는 것이 아니고 거의 대부분 갖는 경향이다.
그래서 호텔에 진입하려면 호텔 사장 입장에서 생각하고 호텔 사장 입장으로 호텔 쪽을 향하지 말고 호텔 앞쪽을 대하면서 임해야 한다고 팁을 제시한 것이다.
자신이 다른 생명을 돕지 않는데 왜 하늘은 그런 자신을 도와야 할 사정이 있겠는가.
또 자신이 대우받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그것을 자신이 먼저 다른 상대를 향해 먼저 행해야 한다고 팁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어떤 이가 경전에 제시되는 하늘주인이나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고 알아챈다면 그런 분을 공양 공경 존중 찬탄하면서 대하지 않을 이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현실에서 구청장이나 아이돌 스타만 한번 자신의 가게에 방문한다고 해도 기념사진도 찍고 사인도 받고 음식비도 실비로 처리해주고 그러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것을 받는 입장에서는 그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겠는가. 그것이 앞에 제시한 얄팍한 장삿꾼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런 상태에서 자신을 대우하는 것을 별로 평가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경전에 또 팁이 들어 있다. 현실에서 하늘 주인이나 부처님을 친견하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인데 그러나 현실에서 대단히 그런 분을 친견하는 쉬운 방안이 있다고 또 제시하는 것이다.
자신의 주변에 헐벗고 굷주리고 질병에 걸려 고통받고 혼자 생계를 어렵게 해결해야 하는 고아나 과부 이런 힘든 상태에 누군가가 처해 있다면 그 분을 앞과 같은 분이라고 관하고 그렇게 대하면 그것이 곧 부처님에게 공양하고 공경 존중 찬탄한 것과 같다. 이렇게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아무리 그렇게 해보았자 자신이 사는 동안 그로 인해 어떤 댓가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뻔한 이상 또 그렇게 임하는 이는 거의 드문 것도 사실이다.
왜 공연히 낭비하는가. 자신에게 있으면 편리하고 남을 주면 자신부터 불편하고 손해가 되는데 왜 공연히 그런 쓸데없는 일을 하는가. 이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하늘에서 그 주체의 마음을 테스트하는 시금석의 내용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 시금석 하나에 반응한 그 주체의 내용이 곧 그 주체의 삶을 대표해 표시하는 선돌에 새져지는 내용이기도 하고 사후에 무덤에 놓는 고인돌에 새져지는 내용이 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노래에서 자꾸 바퀴벌레를 언급하고 왜 끼어드는가 하면서 내모는 듯한 소리를 내는 사정은 시금석에서 그 주체가 평소 자신보다 못한 이를 그렇게 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신보다 더 높은 하늘에서도 역시 그 주체를 그렇게 대하는 사정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 반대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그것은 그 주체의 생각이고 다른 관찰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그것이 이치에 맞고 그런 사정 때문에 그 하늘도 함께 존중하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
수행자는 욕계의 이런 사정을 제시하지만, 욕계 전반의 사정이 기본적으로 망집에 바탕해서 그렇게 임하는 것임을 관하는 가운데 그런 생사고통의 순환을 벗어나라고 제시하는 것이다.
조금 길어졌는데 시간의 상대성을 또 살피려면 왜 어떤 하늘의 하루는 인간 세상의 100 년 1000 년 이런 형태로 제시되는가. 왜 그런가.
그런 것도 살펴야 한다고 보는데 이 방면의 전문이신 심왕보살님이 어떤 자료를 제시해주는가를 잠깐 참조하기 위해서라도 다시 조금 쉬기로 한다.
앞에 욕계에서 3 악도에 들어가지 않고 하늘에 진입하는 열쇠랄까 팁을 제시했는데 수행자가 생사현실에 임해서 기본적으로 충족해야 할 수행의 기본내용도 바로 이것이다.
수행의 기본내용이 충족되지 않으면 생사현실에서 그 수행자자신부터 업의 장애에 묶여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로 묶이게 된다.
수행자라고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수행가가 아무리 욕계내 현실이 기본적으로 망집에 바탕해 생사를 받아가는 상태임을 잘 관한다해도 그 자신이 계의 항목을 준수하지 않으면 마찬가지가 된다.
설령 일체가 차별없이 공함을 잘 이해해도 손가락을 톱으로 잘리우는 그런 상황에서 그 내용을 대할 도리 밖에는 없다. 그것이 업의 과보가 의미하는 내용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상을 취하지 않고 평안히 임할 수 있는 상태면 좋은데 이론만 가지고는 쉽게 그런 상태가 되지 못하는 만큼 계의 항목부터 원만히 성취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런 상태에 처하는 것은 사실은 기본적으로 수행내용 자체를 행하는 것을 망집에 바탕해 대단히 행하기 어렵다고 대하는 상태이기에 그런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따라서 평소 망집에 바탕해 수행을 행하지 않던 이가 그로 인해 묶여 손발을 잘리우는 상태에서만은 그에 집착을 갖지 않고 평안히 임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은 기대하기 힘든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평소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고 사리판단을 행할 수 있는 상태에서 업의 장애를 제거하고 복덕을 얻을 계의 항목부터 쉼없이 정진해야 하는 것이다.
6 바라밀다 10 바라밀다의 수행항목에서 보시, 정계, 안인, 정진 이 부분이 바로 계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기본적으로 이 부분이 성취되지 않으면 업의 장애가 해소되지 않고 복덕을 쌓을 수 없기에 이후 생사현실에서 다른 중생을 제도하는 수행을 행해 나갈 도리가 없다.
수행자 자신부터 갇혀서 이리 뛰고 저리 구르고 절벽에 매달리는 상태에서 정려를 닦고 반야 지혜을 닦고 다른 중생을 제도할 무량방편을 닦아나갈 도리가 있겠는가. 이론으로만 제시한다면 산에서 구르는 상태에서도 정려 수행을 못할 사정이 무언가 행주좌와 어느 상태에서도 다 할 수 있다 이렇게 일반적으로 제시하게 되지만, 그러나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또 그런 상태에 처하는 것은 알고보면 가피 중첩관계로 행하는 업의 장애를 제거하지 못했기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가해와 피해를 수없이 다중적으로 주고받는 가피 중첩관계를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이 곧 계의 항목에 나열된 것을 어기지 말고 그 반대 내용을 적극적으로 행하라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다른 생명이 대단히 집착하는 생명을 해치지 말라. => 다른 생명이 죽게 될 상황에서 살게 도와주라. => 일체 중생을 차별하지 말고 좋고 좋게 이끈다
이런 내용이 결국 수행자가 생사현실에서 수행하는 기본 취지와 모두 관련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행하지 않으면 그 과보를 받게 된다는 것이 위 내용이다.
그리고 평소 자신의 망집에 바탕해 그런 수행울 제대로 못하는 상태라면 자신부터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더 나아가 다른 중생을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도 행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수행자에게 다시 추가되는 내용이 있다. 수행을 하는데 수행 내용이나 그 수행으로 인해 얻는 과보 일체에 대해 역시 집착을 갖거나 상을 취하여 머물지 않고 무소득을 방편으로 수행을 행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 사정은 쉽게 이해하면 놀보와 흥보전의 내용을 떠올리면 쉽다.
이미 앞에 지옥 아귀 축생 상태를 벗어나 인간과 하늘의 상태에 진입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문제는 최소한 이 부분을 읽는 입장은 적어도 그렇게 그 사정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사정을 어떤 경로던 자신이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앞에 장삿꾼 계산으로 임하면 자신도 그런 바탕에서 장삿꾼에 상응한 대우를 돌려 받게 됨을 제시했다.
그런데 부처님 입장에서는 제자들이 지옥 아귀 축생상태를 벗어나야 하는데 그렇게 벗어날 방안자체를 알려주지 않을 도리가 없으므로 경전마다 그 내용을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앞과 같은 내용을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 이 내용을 알게된 입장은 그런 바탕에서 그렇게 임하면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알고 행하는 것이므로 결국 처음 제시한 장삿꾼모드와 그 실질이 같은 것이다.
처음 장삿꾼처럼 계산해 임하는 것은 장삿꾼이 무언가를 제공할 때는 지금이던 장래던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기대하면서 행하는 것이다. 그가 얄팍한 계산으로 그렇게 임하는데 상대는 그 사정을 모르는가. 또 그것을 안다면 그것을 놓고 좋다고 하는가. 상식적으로 좋다고 여기지 않는데 공덕이 될 사정이 무엇인가.
자신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될 지 모르지만, 거울에 놓고 이를 반대로 비추어 보면 그 사정은 충분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된다.
그래서 그런 계산으로 무언가 좋음을 베푸는 것은 시장에서 장삿꾼이 행하는 일이고 하늘에 내밀 수 있는 공덕은 못된다. 그리고 그런 경우는 하늘도 마찬가지로 장삿꾼에게는 장삿꾼 방식으로 그렇게 거래를 마친다 이런 의미다. 천만원을 그런 계산으로 제공했으면 천만원에 해당하는 댓가만 돌려 받으면 되지 왜 하늘에서 장구히 머물려 하는가 이런 의미다.
두번째 무소득을 방편으로 수행에 임한다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수행을 함에 있어서는 무언가를 얻으려는 취지로 계산하지 말고 수행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는 처음 제시한 내용과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어떤 수행자가 관세음보살님이 병이 걸린 노파로 변신해 나타났는데 수행자가 눈치가 빨라 이 분이 관세음보살님인 것을 알고 관세음보살님으로부터 무언가를 얻으려고 온갖 공양을 제공했다. 이런 경우라면 마찬가지라는 의미다.
흥보가 어느날 아무 볼 품없는 제비를 도와주니 복을 받은 것을 알게 되고 그래서 놀보가 제비를 도와준다는 내용이 바로 이 경우와 실질이 같다.
연극을 어떤 이가 할 때 자신은 병든 노파가 아닌데 그러나 그러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여긴다면 손가락 펴서 자신 눈 앞에 대고 나는 지금부터 병든 노파다 병든 노파다 이렇게 념을 하고 연극에 몰입해 임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베테랑 연극배우는 필요없지만, 오늘 처음 낯선 연극을 행하는 입장이라면 무대 공포증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그런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욕계의 생사현실에 임하는 수행자는 기본적으로 욕계에서 망집상태를 바탕으로 매 상황을 대하는 입장과는 다르다.
그 내용이 실답기에 그렇게 행하는 것이 아니고 욕계생사현실에서 수행함에 있어서 생사고통의 묶임에 묶이지 않으려면 욕계 생사현실에서는 그렇게 임해야 한다고 제시받는 것이다.
그러니 수행자 입장은 그것이 실답지 않음을 한편으로 관하면서도 욕계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방편으로 그런 수행을 철저하게 준수하는 것이다.
그리고 계율항목의 엄수는 비유하면 바다에 튜브를 안고 떠서 중생을 구조하는 상태로 경전에서 비유하는데 계율 항목을 어기면 그 튜브에 바늘 구멍이 하나 나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다. 이런 경우 당장은 별 지장이 없지만, 결국 바늘 구멍으로 인해 그 자신이 바다에 빠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다른 중생을 구조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실답지는 않지만 그 상황에서 수행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계의 항목을 원만히 성취해야 한다.
그런데 그 수행자가 수행을 함에 있어서 여전히 그런 수행 내용 전반에 무언가 실다운 내용이 있다고 여기며 집착을 갖거나 그런 수행으로 얻는 과보가 실답다고 여기며 집착을 갖고 대하면 결국 앞에서 제시한 장삿꾼모와 실질이 같고 더 나아가 망집상태와도 그 실질이 같다.
그러니 외관은 수행이지만, 그 과보는 번뇌와 생사고통에 묶이는 상태다.
이 사정을 금강경등에서는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
수보리야,
보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보시를 행하고,
모습[상相]과 생각[상想]에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무슨 까닭인가?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집착하는 마음이 없이 보시를 한다면,
이 복덕의 쌓임을 헤아리거나 잴 수 없을 것이다.*
...
이 부분이다.
또 다른 반야경전에서는 이 내용을 얻을 것이 없음(무소득)을 방편으로 수행에 정진해야 한다. 그러면 그 수행을 성취하게 된다. 그것은 본래 그런 것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로 제시하게 된다.
뒷 부분은 본 바탕이 그렇다는 내용을 제시하고 또 이를 통해서 그런 내용이 실답게 있다는 망상분별과 그에 대한 집착과 번뇌를 제거하는 측면이고
또 그런 바탕에 놓여 있는 생사현실에서는 그에 상응하게 수행자가 무소득을 방편으로 그런 내용에 집착을 제거하고 그에 대해 상을 취하지 않고 임할 때만 수행을 원만히 성취할 수 있다는 관계를 제시하는 것이다.
반대로 얻을 것이 있음(유소득)을 방편으로 수행에 임하거나 스스로 망집에 바탕해 수행하는 경우는 설령 수행을 해도 시역법을 행한 것으로서
결국 앞에 제시한 장삿꾼의 과보만 얻는다. 압축하면 지옥에 신속하게 들어가게 됨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런 내용은 반야경전의 니리품 등에 제시된다. 그 사정이 그렇기 때문이다.
시간의 상대성에 대해 살피려고 했는데 빠뜨리기 쉬운 항목을 살피다 보니 다음으로 미루게 되는데 시간의 상대성은 다음처럼 쉽게 생각하면 된다고 본다.
요즘 파리나 모기가 한 두마리 활동하는 것을 보게 된다. 겨울 내내 보지 못했는데 이제 여름이 가까워지니까 이들이 활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모기나 파리를 놓고 보면 1 년 안에 비행자격증도 따고 곡예비행을 하는 상태에 이르고 언제 학습을 마치고 취직하고 결혼식을 치뤘는지 모르지만, 자식도 산출하고 유언도 남기고 할 일 다 하고 삶을 바삐 마치고 사라짐을 보게 된다.
그래서 인간을 놓고 보면 대략 60 여년 정도 걸려서 행하는 사업을 파리나 모기는 몇 달안에 다 마치고 사라진다.
그래서 이런 활동을 기준으로 산정하면 파리의 석달은 인간의 60 년이라고 환산하게 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각 생명은 자신의 생명활동에 깊게 관련되는 일정한 변화가 있다. 사람으로 치면 곡식을 재배하고 수확하고 성장하는 활동이 중요한데 이들이 알고보면 태양의 활동과 변화에 모두 바탕한다. 그래서 1 년의 의미가 중요하다.
설령 그 기간에 다른 수많은 변화가 있어도 그것은 그런 기준이 되지 못한다. 예를 들어 한 주체가 몇권의 책을 읽는가 또는 몇 개의 담배를 태웠는가에 따라서 시간을 측정한다면 그것도 나름 기준이 될 수 있는데 그것은 별 다른 의미가 없다. 그리고 각 세계마다 그렇게 의미를 갖는 변화 내용이 다 다르게 된다는 의미다.
그런 가운데 시간을 측정하면 예를 들어 인간에게 하루는 유산균에게는 100 세대가 그 시간내에 이어질 수 있는 시간도 된다. 앞에 파리를 놓고 설명한 것처럼 사실이 그렇다.
그래서 시간의 의미가 상대적으로 달라진다. 오늘날 원자와 전자의 변화를 측정해서 시간을 측정한다고 하는데 예를 들어 전자가 원자주변을 하루에 10 억번을 열심히 돌아서 그만큼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한들 인간의 입장에서 그것이 감각되는가.
그런데 그것이 태양과 달의 변화라면 그 경우는 인간에게는 다르다.
그런데 그처럼 각 세계마다 중요한 기준이 되는 내용이 달라지기에 그것을 놓고 비교를 하면 어떤 하늘에서 하루에 해당하는 의미있는 변화가 있다고 보는 기간은 인간세계에서는 100 년이란 기간이 지난 것에 해당한다는 그런 의미다. 그래서 이런 내용도 경전에서 제시된다.
하늘에서 살던 한 생명이 죽어서 인간 세계에 태어나 한 몇 년 살고 죽고 다시 또 다른 세계에 태어나서 또 그렇게 적당히 살다가 죽었는데 그런데 이상하게 각 세계마다 각 부모가 같은 날에 장례를 치루고 있다고 부처님이 제시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것이 무슨 이야기인가. 이는 인간 세계에서 한 10 년 지났다고 해도 아직 하늘에서는 하루가 채 안 지난 상태고 또 다른 세계는 다른 세계대로 사정이 그렇다는 의미다.
그래서 공교롭게도 각 세계에서 그 주체를 부모 자식관계로 만나 대한 이들이 각 세계에서 제각각 그 하루에 모두 장례를 치루고 있는 이상한 상태가 나타났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원래 이 경전에서 제시하고자 하는 내용은 그 중생이 그런 상태에 처한 것은 그런 과보를 받을 업을 그렇게 행해서 그렇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여하튼 각 세계마다 상대적으로 다른 시간의 문제를 대강 살피고 쉬기로 한다.
○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Elli Medeiros - Toi Mon Toit.lrc
요즘 쉴 때마다 기지에서 듣는 노래가
연속 시리즈형 메세지를 전한다고 시감상하게 되는데 오늘은 계속해서 조금 비속어가 많이 나오는 노래들을 대하게 된다.
빠삐용 리빠똥 텔레토비 다구리. 복수하면 안 온다
이런 비속어가 노래에서 난무하는데 비속어도 다 통속적으로 상징하는 바가 있다고 본다.
가피 중첩관계에서 업의 장애를 증폭시키고 쌓아 나가는 근본원인으로 탐욕 분노 어리석음의 3 독에 바탕한 반응을 제시하는데 이들이 모두 이런 내용을 상징한다고 보게 된다.
여하튼 그런 경우 마땅히 취해야 한다고 일반적으로 보는 반응을 하면 현실 안에서도 대부분 묶이게 된다. 이렇게 본다.
굳이 병법에 능한 손자가 아니더라도 바둑만 조금 둘 줄 알아도 상대가 자극하는 대로 그대로 반응해 따라두면 결국 망한다. 이런 내용을 쉽게 보는 것이다.
문제는 가만히 공원에서 앉아 있는데 허름한 아저씨가 나타나 얼굴에 침을 뱉으면서 그 자리가 자신 자리니까 일어서라고 하고 일어서면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하고 무릎 꿇고 사과하면 가지돈 내놓으라고 하고 이렇게 계속 하면 어느 지점에서는 대부분 폭발을 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분이 그 분야 전문가였던 것이다.
그래서 이후 어떻게 되었는가는 고난탐정 입장에서 수행을 안 하고 적당히 임하면 어떻게 된다고 경전에서 소개해주는 내용의 압축 요약판이 전개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위와 같은 현실문제에서 처음에 선제 공격을 가하는 경우도 있고 최종적으로 돈이 없으면 옷을 벗고 가라고 할 때쯤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결과적으로 대부분 마찬가지가 된다.
처음에 걸리나 마지막에 걸리나 그 분야 전문가 입장에서는 결과는 같다는 의미다.
그래서 수행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그래도 미리 준비하고 훈련하면 좀 낫다. 그런데 다시 그 상황에서 무소득을 방편으로 임하되 그 내용은 표준 규범에 맞추어서 정확하게 또 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어차피 얻을 것이 없는데 왜 하필이면 그런 내용을 그렇게 행해야 하는가라고 부처님께 하소연한다한들 별 소용이 없다.
욕계의 생사묶임에서 벗어나려면 그리고 욕계 생사현실에서 또 복덕과 지혜를 구족하고 중생을 제도하려면 부처님이 가르쳐준 그 두 측면의 내용을 그대로 잘 성취해야만 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 각 측면마다 다 부작용이 발생하고 과보가 좋지 않다. 그 사정은 나중에 천천히 이해한다쳐도 그런 상황에 처하면 무조건 표준 규범에 따라 행해야 하고 그렇게 되야 수행자의 수준이 높아진 상태가 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대부분 그렇게 안 된다. 결국 수행문제다.
시간 이론이나 공간 이론 마음의 분석 이런 것을 수십년을 연구해도 위 부분이 성취안 되면 결과는 결국 마찬가지다. 그런 이론이 지옥에서는 별 쓸모가 없는 것이다.
여하튼 어려움이 많더라도 수행을 잘 해야 하는데 계를 잘 닦아 몸에 익혀진 상태에서는 어떤 자극이 오면 바로 경전에 제시된 형태로 그대로 '딱' 반응하는 것을 또 보게 된다.
이런 경우 그것이 그런 수행자에게는 이미 장착이 되었다고 보게 된다. 그런 상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매번 한참 고민하고 따아 ~ 닥 이런 형태로 임하면 대부분 수행자 승급시험에서 실격 처리된다. 아직 미숙한 수행자로 평가받는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