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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2-05-27_신화엄경론_001 본문

과거조각글/불기2562(2018)

불기2562-05-27_신화엄경론_001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18. 5. 27. 18:15



®

『신화엄경론』
K1263
T1739

신화엄경론 제1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신화엄경론_K1263_T1739 핵심요약



♣1263-001♧

신화엄경론 제1권





◆vbyh2273

◈Lab value 불기2562/05/27/일/18:16



○ [pt op tr]  mus0fl--Gilbert Bécaud - Nathalie.lrc


♥ 잡담 ♥경보다어려운논서


일반적으로 경-률-논 이렇게 불교의 3장을 배열하는데 
경전을 해설하고 설명하는 논서가
때로는 경전보다 더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으로
되어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경전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논서를 먼저 대하려 했다가는 
오히려 더 경전을 이해하기 어렵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경전은 부처님말씀이어서 경이라고 붙이고 
논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입장에서 경의 내용에 대한
자신의 견해나 설명 또는 주장 등을 서술해 제시한 것이기에
경전과 논서 사이에서 문제가 제기되면
경전이 우위에 놓이게 된다. 


논서의 사정이 그렇다. 
비바사론 - 구사론 - 유가사지론 - 중론 
이들이 다 유명한 논서인데
문제는 이 가운데 하나를 기준으로 잡고
그 내용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고 나아가려다 보면
일단 그외 논서는 또 다 엉터리라고 이해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이들 내용을 다 나열해 살피고 나서는 
과연 이 가운데 어떤 주장이 옳은가를 놓고 
혼동 속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논서는 어떻게 보면 
경전 내용을 먼저 대강이라도 살피고 
그 경전을 좀 더 깊게 연구해보고자 할 때부터 
관련 논서를 택해 살피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 뽑혀 살피는 신화엄경론도 
개인적으로는 그냥 화엄경을 읽는 것보다 
내용 이해가 더 어렵다고 느끼게 된다. 

그것은 신화엄경론은 이를 저술한 이가 
이미 대단히 넓게 다양한 경전을 읽고 
그런 바탕에서 화엄경에 대해서 설명해나가기 때문에 
그렇다고 본다. 

그런데 이 논서를 대하는 입장은 
때로는 화엄경부터 제대로 한번 다 살펴 보지도 않고 
이 논서부터 대하는 경우조차 있다. 
그러니 이 논서를 쓴 이가 
당연히 다 읽고 이해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면서 
간단간단하게 다른 경전의 내용을 키워드만 제시해 언급하면 
이를 대하는 입장은 도무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이 논서는 
경전 대부분을 한번이라도 읽고 나서 
그런 바탕에서 읽어야 할 내용이지 
경전을 읽기 전에
각 경전에 대해 간단하게
그에 대한 압축된 설명이나 요약 소개를 받는 취지로 
대하기는 곤란하다. 

그런데 여기에 소개된 내용을 살피다 보면
첫 부분에 중국 불교에서 많이 행해진 
경전의 교상판석[교판]과 관련된 내용이 
제시되는 것을 살필 수 있다. 

교상판석이란 경전이 수없이 많은 종류가 있는데 
이들이 서로간에 어떤 체계 어떤 기준으로 되어 있는가에 대해
살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왜 그런 작업이 필요한가는 
쉽게 말하면 
어떤 장편 소설책이 외국에서 수입되는 과정에서
낱장이 다 뜯겨서 들어왔다고 할 때
나중에 이것을 모아 어떤 순서로 배열해 읽어 나가야 
전체적으로 맥락이 이어지는가 하면서 
이것을 살피는 과정과 비슷하다. 

그렇지 않고 손에 잡히는 대로 하나씩 대해 읽어가다보면
이들 수많은 경전들내용이 서로 내용이나 체계가 달라서 
도무지 이들이 어떤 맥락에서 이렇게 제시되고
또 자신이 지금 대하는 부분은
전체적으로 어떤 맥락에서 제시된 것인지
사정을 잘 파악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처음부터 경전이 
단일한 내용을 간단하게 제시하지 않고 
왜 그렇게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는가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이는 그처럼 가르침을 다양하게 베푸신 부처님을 문제삼지 말고 
부처님을 대하는 이들의 상태가 수없이 제각각이고
차별이 많은 현실을 놓고 그 문제를 살펴야 한다. 
그런 가운데 논서에서 제시된 내용을 살피면
이들 수많은 경전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예를 들어 비유하면 어떤 선생님이 교육목표로 두고 있는 것이 
어떻하던지 수학의 삼각함수를 통해
미래의 정확한 예견 투시법과 함께
생사고통을 벗어나게 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해보자. 

그런데 교실에 모인 학생의 상태를 보니 
덧셈 뺄셈도 모르는 유치원생부터
미적분까지는 이미 잘 알고 있는 대학원 교수까지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 대학원교수는 좀 심하다고 할 지 모르지만,
여기서는 수학을 전혀 모르는 철학과 교수라고 일단 가정하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면 강의를 포기해야 마땅한데 
이것을 이해해야만 생사고통을 벗어날 수 있기에 
어떻하던지 오직 그 내용을 이해시켜 생사고통을 벗어나게 하려는 취지로
이 선생님이 이 생사현실에 임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첫 문제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수많은 강좌가 개설되어서 
강의가 이뤄지고 강의 요약집이나 강의노트가 편집이 되었는데 
이것이 다시 외국으로 수출되는 상황에서는 
또 다시 문제가 된다. 

외국은 또 상대적으로
전반적으로 유치원 수준에 있기에 
가장 기본적이고 대표적인 내용부터 먼저 나가게 된다. 

여하튼 그런 과정으로 그곳에서 하나씩 받아들이는 가운데 
그렇게 모아진 교재들을 나중에 모아 놓고 보니 
이 내용 저 내용이 순서나 내용 등이 서로 혼동되는 상태가 된 것이다.

그래서 이제 이것을 다시 잘 체계적으로 배열해서 
이해하는 과정이 또 요구된 것이다. 

여하튼 그런 어려운 사정을 이해하고 살펴야 한다. 

오늘날 한국 문화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국가적으로 한국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한국 소설을 미국에 소개하자. 
이렇게 임한다고 가정해보자. 

이럴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한국사람도 대부분 잘 모르는 mun 님의 자전소설
'옥탑방에서의 한나절' 
이런 소설을 떡 먼저 번역해 소개하는 것이 좋겠는가. 

그런 경우 처음에는 
한국에서 대표라고 보고 
가장 기본적이라고 보는 내용부터 
한 두권씩 번역해서 소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그것이 잘 이해가 되면 
점차 또 다른 소설도 번역해가게 되는데 
mun 님의 옥탕방에서의 한나절 
이런 소설처럼 내용은 비록 심오하지만
몇몇 사람 밖에 보지 않고 
또 읽어도 그 전후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면 
내용의 취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소설은 
끝내 소개되지 못하고 끝날 수도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여하튼
그렇게 다양한 한국소설을 번역해 모아 놓은 어떤 미국인 입장에서는  
이들 소설을 다 모아놓고 읽는 가운데  
이들이 서로 어떤 시대별로 어떤 장르별로 
그렇게 나타난 것인가를 분류하는 것은 
또 나름 필요하게 된다는 그런 의미다. 





mus0fl--Vanessa Paradis & Maxime Le Forestier - Mistral Gagnant.lrc
경전에서 제시하는 내용이나 지침이 서로 

조금씩 입장 차이가 있다고 했는데 
그런데 수행자 입장에서는 이것이 상당히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수행자가 네거리에 서있다. 
왼쪽에 아름다운 황진이가 자신에게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하고 
오른쪽에는 10 년동안 찾아다닌 부모를 해친 원수가 서 있고 
앞 쪽에는 자신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도움을 외치는 이가 손을 흔들고 있고 
뒤 쪽에는 또 거꾸로 자신에게 돈을 빌려준 채권자가 자신을 잡으러 쫒아 오고 있고 
이런 경우라고 해보자. 

현실 문제가 대충 이런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방향을 어느 쪽으로 향해 나아가고 
그 뱡향으로 가서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지금 각 경전마다 제시하고 있길레 
이것이 수행자에게 혼동을 일으키는가. 
이것이 현실 문제다. 

본인 입장에서 경전을 대해 읽다 보면 
각 경우 별 문제가 없다고 보는데 
이상하게 논서에서는 극단적으로 각 경전마다
이에 대한 처방이 마치 극심한 차별이 있는 것으로 제시해서 
어떻게 보면 경전을 잘못 뽑아 읽고
그것을 믿고 실천해 나가면
그로 인해 오히려 더 큰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것 같은 
걱정도 들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물론 부처님이 각 상대의 상태에 따라서 
다양하게 다른 방편을 시설해 제시한 것은 사실인데 
경전에 들어 있는 내용을 어떤 경전을 취해서 
실천해 나간다고 해서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부처님 말씀을 따르지 않고 
기존에 자신이 망집에 바탕해서 행하던 방식으로
임하면 그것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머털도사가 수행을 한 수직암벽으로 된 산을
올라가는 것이 수행의 목표라고 해보자. 

여기를 올라가는 방안은 하나가 아니고  
그 방안이 수없이 다양하다. 

만일 상대가 이미 수준이 대단히 높아서 
수직 암벽 등반을 이미 잘 하는 상태라면 
자일을 가지고 암벽등반을 직접 해서 올라가도 된다고 볼 것이다. 

그런데 또 그렇지 못하고 
몸이 불편하고 나이가 많이 든 할머니 등은 
케이블카나 헬리콥터로 그곳을 올려주지 않으면 
그 곳에 올라가기 힘들다고 또 보게 된다. 
그런 경우는 버튼을 누르고 그냥 올라타면 된다. 

또 일반적인 경우는 수직 암벽 등반은 힘들지만, 
나선형으로 빙빙 산을 돌아가면서 
올라가면 또 결국은 산에 올라갈 수 있다고 보게 된다. 

문제는 각 경우가 다르고
각 개인마다 그 상태가 다 다르지만, 
그러나 어떤 방안은 그 방안으로는 결코
산을 올라가지 못하게 된다고 할 것은 아니다. 



지금 화엄경을 살피면서 
화엄경이 다른 경전에 비해 그 내용이 대단히 뛰어나고 
좋다고 소개하는 내용을 볼 수 있는데 
그런데 그렇다면 
가정해서 팔만 대장경 가운데 
그렇게 좋은 화엄경만 하나 남기고
나머지 경전은 다 요의경전이 아니고
그래서 필요없고 쓸모없고 공연히 혼동을 일으키니
다 경전에서 빼버리자. 
만일 이렇게 주장하고 그것을 실천하면 좋겠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사실은 나중에 화엄경을 대하고 
그 내용이 대단히 좋고 깊다는 등으로 
음미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사실은 가장 수준이 낮다고 본 그런 경전이 토대가 되어
기본 내용을 잘 익힌 상태가 아니면
또 곤란한 것이다. 


그래서 비록 교상판석 과정에서 
어떤 경전은 기본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고 
어떤 경전은 대단히 깊은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것은 깊은 실상을 드러낸 요의경이고
저것은 현실에서 방편적인 내용을 제시하는 것이고
이런 식으로 제시하기는 하지만,
알고보면 이들 경전이
각 경우마다 다 중생을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부처님에 의해서 그렇게 제시된 내용임을 잘 살펴야 한다. 

그래서 아무리 내용이 깊은 내용을 어떤 경전이 제시한다고 해서 
그 경전만 하나 남기고 그것만 살피면 되는 것은
또 아니라는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앞에서 암벽등반을 소개했는데 
그런 방안이 사실은 수행에서
가장 원칙적인 방안이라고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내용을 제시하면 
그 방안으로 그 산에 스스로 오르게 되는 경우는 
대단히 희박하다. 

부처님의 처음 입장이 사실은 그런 것이다. 
그러니 그런 방안은 일반 중생의 입장에서는 
또 반대로 있으나 마나한 방안이 된다. 
가장 원칙적이고 직접적인 방안이 
중생을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데는 
또 오히려 효과가 거의 없다는 의미다. 

화엄경이 내용이 대단히 깊다고 하지만, 
이것을 대한 이는
심지어 그가 지혜제일 사리자나 신통제일인 목건련인 경우조차도
마치 장님이 대하는 것처럼 내용을 파악하기 힘든 상태였다는 것은
바로 이런 사정을 의미한다. 

그러니 그 내용이 깊고 좋고 풍부하면 무엇하는가. 
현실에서 지혜가 제일 높다는 사리자도 내용 파악이 힘들다면 
현실에서 이것을 대하는 이마다
거의 대부분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바로 잠을 대부분 청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슨 소용인가. 

털끝에 온 우주가 들어간다고 제시하고 
광협자재 무애하다는 등의 내용을 제시하는데 
현실에서 아무도 그렇게 행해 선보이는 이도 없고 
그런 것을 볼 수도 없다. 
심지어 당장 화살이 박혀 고통을 받는 상황에서 
고통을 없애주지도 못한다. 
그러면 그것이 무슨 이야기인가. 

그런데 이는 비유하면
대학원에서 참조하는 학위논문과 
이솝 우화를 높고 그것을 비교하는 것과 사정이 비슷하다. 

또는 약에 관련된 자세한 내용을 적은 관련논문 내용과  
약국에서 약사가 그냥 자신을 믿고 시간맞춰 먹으면 낫는다고 건네는 약봉지와 
사정이 비슷하다. 

어떤 진리에 대해 논의할 때는 
그 주제를 놓고 대단히 깊게 논술한 학위논문이
그 내용이 더 깊고 좋은 것 같은데 
문제는 일반적으로 어떤 학과에서 발표된 학위 논문을
일반인이 찾아 읽는 경우는 거의 드물고 
또 설령 읽어도 그 내용을 잘 이해해서
그에 따라 현실에서 실천하기는 힘들다는 문제가 있다. 

그런데 같은 주제를 다룬 내용인 듯하지만, 
이솝우화 형태로 내용을 제시하면 
그 효과가 대단히 좋은 것이다. 

만일 감기가 걸려 약을 하나 처방받는데 
의사와 약사가 환자를 붙들어 놓고 
약마다 적혀 있는 온갖 부작용과 관련 약기능과 
신체 각 부분의 관련 내용과 생물학과 약학 의학 관련내용을
3 달에 걸쳐 설명한 다음 투약해주면 
그 약이 과연 치료에 도움이 될 것인가. 
이 문제를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그렇다고 관련 내용에 대해 자세히 연구하고 
깊게 기술한 그 논문들이 의미가 없는 것은 또 아니다. 

그런데 여하튼 사정이 이렇다면,
결국 현실에서 어떤 경전이 더 낫다고 보아야 하는가가 또 문제가 달라진다. 

내용이 깊고 좋다는데
정작 그 표현된 단어의 사전적 의미 외에는
그 내용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그 내용을 취해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와 

내용은 얕고 수준이 깊지 않아 보이는데 
정작 생사현실에서 
당장 독화살을 맞고 고통받는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이런 차이가 있다면
어떤 것이 당장 효용이 있다고 보게 되는가.  

그런데 부처님이 생사현실에 들어와 가르치고 활동하는 취지가 
결국 중생을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본 취지인데 
어떤 뗏목이 과연 많은 중생을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가.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대하면 
비록 경전 일체가 다 그런 방편시설이고 뗏목이지만, 
그런 가운데 수많은 경전이 다 각 상황마다 그리고 각 상대마다
제각각 중요한 의미와 기능을 갖고 있다고 또 보아야 하는 것이다. 


부처님이 제시한 수많은 경전은 다 그런 사정으로 
상대의 상태와 수준에 맞추어서 
중생에게 이익을 주는 내용을
그 때 그 때 부처님이 맞추어서 제시한 것이어서 
결국 이런 입장에서 수많은 경전을 대하면 

결국 부처님은 
젖을 먹은 아이를 대할 때나 
유치원 학생을 대할 때나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대학원생 등등을 대할 때
모두 같은 취지에서 내용을 그렇게 제시하고 있음을 또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다만 그 상대의 사정이 너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나중에 이것을 나열해 놓고 보면 
각 내용의 차이가 너무 크고 서로 다른 내용을 달리 제시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라고 이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여하튼
젖먹이 아이게는 가볍게 볼을 만져주고 
유치원생에게는 부모님 말씀 잘 듣고 
평소 다른 친구들과 놀 때 지나치게 욕심 부리지 말고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화내지 말고 
평소 인과에 대한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하는 기본적인 수행을 잘 하자. 
이렇게 말씀하고 
초등학생에게는 공한 실상을 바탕으로 선생님이 가르침을 베푼 것이니 실상과 현실의 관계를 잘 이해하면서 수행에 임해야 한다고 하고 
중학생에게는 모든 학생이 다 선생님이 될 바탕을 갖추고 있고 공한 바탕에서 수행하면 다 선생님이 될 수 있다고 제시하며 수행에 정진해야 한다고 제시하고 
고등학생에게는 모든 것은 마음안 내용이어서 그 안에 외부대상은 없고 근본 정신을 바탕으로 생을 받고 그런 바탕에서 나타나는 각 마음현상을 세세하게 잘 이해하는 바탕에서 그런 수행을 잘 임해야 한다고 하고 
대학생에게는 현실이 공한 실상을 떠나지 않는 가운데 나타난다는 사정을 잘 이해한 바탕에서 현실이 곧 목표와 다르지 않다는 점을 잘 이해하고 무소득을 방편으로 그런 수행을 행해야 한다고 제시하고 

대학원생에게는 이제 그런 내용을 바탕으로 수행에는 무량한 방편이 있는 것이므로 선생님이 되려면 그런 무량한 수행을 다 닦고 익혀나가야 하고 
중생제도를 위해 필요한 경우도 있으니 예를 들어 우주를 성냥갑 안에 넣었다가 빼는 실험도 이제 해보기로 하자. 
이렇게 제시한다고 할 때 

이 각 내용들이 제각각
각 경우에 다 같이 중요한 것이다. 
그외 다른 경우도 다 마찬가지다. 

저분은 상당히 상태가 다르니 
사용취지만 좋으면 간단히 음성형 버튼만 열심히 정성껏 누르면 소원을 성취시켜주고
이후 필요한 과정을 이수하게 한다는 경우도 있고 사정이 다 다른 것이다. 


그런데 예를 들어  대학권교재가 가장 높고 중요하니 
유치원 단계에서 
유치원 교재는 다 버리고 
모든 생명이 다 함께 
그 대학원교재만 붙들고 그것만 공부하면 된다.
이렇게 이해하면 곤란하다. 

그리고 유치원교재가 설령 유치원학생에게 맞추어 제시한 내용이라고 해서
대학원생이 유치원 교재에 제시된 내용을 실천하면 큰 문제가 발생한다.
이렇게 이해하는 것도 또 부적절하고 어색한 이해다. 

그보다는 
유치원 시절에는 유치원 교재를 열심히 잘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고
또 그렇게 해야 대학원 생이 되면 또 대학원 교재도 잘 익히게 되는 것이라고 
이 사정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대학원 생이 되어서 
그간 제시된 수많은 교재를 보면 
또 다 그런 취지에서 그렇게 각 내용이 제시된 것임을 
또 잘 이해하고 대하게 되는 것이어서 사실은 별 문제가 없다. 

다만 대학원생이 유치원교재만 익히고나서
자신의 개인 문제는 그것으로 다 해결이 되었으므로
다른 이를 가르쳐 이끌려는 선생님은 될 생각을 하지 않고
그것만 붙들고 머무르고 이후 더 깊고 자세한 다른 내용을 더 익히지 않으려 하면
그것은 또 문제라고 보지만, 

오늘날 대학원생이 사건 사고현장에 나타나는 것은 
사실 대학원생이 유치원교실에서 제시된 내용조차 잘 익히지 못하고 
그런 기본 내용조차 잘 행하지 못하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지, 
유치원 교재에 있는 내용에 문제가 있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경전이 수없이 많고
내용이 다 제각각 차이가 나서
혼란스럽다고 하지만, 그것은 사실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쉽게 예를 들어 오늘날 어떤 도서관을 가 보면 
수많은 분야의 책이 꼽혀 있다. 
유치원 그림책부터 대학교 교재나 수험서나 
백과사전까지 다 꼽혀 있다. 

그런데 이것을 가지고 유치원생이 
대학교재를 매번 잘못 들고가 공부하다가 
어떻게 잘못될까봐 걱정이라거나 

또는 반대로 대학원생이
유치원 그림책을 잔뜩 뽑아가지고 가서
그것을 붙잡고 공부해서 잘못될까봐 걱정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기우다. 

상식적으로 
어떤 이가 어떤 경전을 펼쳐서 읽으려고 하는데 
첫 페이부터 다음 페이지까지 나오는 표현이나 단어나
문장 내용을 하나도 모르겠다면
그것은 아직 자신의 상황에 맞지 않는 것일 수 있다. 
그런 경우는 또 읽어 보려고 해도 이해도 되지 않고 
따라서 읽지 않게 되고 그래서 문제가 별로 없다. 

그런데 그 반대도 또 별 문제가 없다. 

대학원생이 그림책을 볼 때는 
대학원생 입장에서 음미하면서 
그 입장에서 그것을 놓고 대하는 것이므로 
또 문제가 없다. 

그래서 도서관 사서 입장에서 
되도록 수많은 책을 체계적으로 잘 정리해 
비치해야 한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설령 그렇게 비치한다고 해서
그 순서대로 다 잘 살피는 것도 아니고

또 도서관 사서가 가장 좋다고 평가하는 어떤 백과사전이
모든 이에게 모든 경우에 다 좋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 미리부터 이것은 요의경이고 
저것은 아니고 이런 분류작업에 세월을 소진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런 사정이 독화살 비유나 뗏목비유로 나타내는 현실 사정이다. 
알고보면 현실에서는 그것이 당장 급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리고 이들 경전은 
알고 보면 다 같은 취지에서 
생사고통을 벗어나게 하고 
깨달음을 얻게 하는 취지로 
같은 바탕에서 수미일관하게 
내용을 제시하고 있는 내용들인 것이다. 

설마 도서관에 비치된 도서들에서 
유치원 교재에는 생명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고 제시하고 
대학원 교재에는 생명을 함부로 죽여도 된다고 제시했겠는가. 

또 유치원 교재는 일체가 무상하고 고이고 무아 무자성이고 열반적정이고 공하다고 제시하지 않고 
대학원 교재에서만 그렇다고 했겠는가. 
그런 것이 아니다. 




mus0fl--Jackie Quartz - Mise Au Point.lrc


오늘 신화엄경론이란 논서가 뽑혀서 살피는 데 
어떤 이가 첫 페이지를 읽어 보는데 
이 페이지에 기재된 내용 가운데 
85 % 정도는 다 아는데 
15 % 정도는 처음 대한다. 
이렇다면 이것을 잡고 읽어도 무방하다. 

그런데 극단적으로 어떤 외국인이 이 부분을 대하면서
검은 것은 글자인 것 같고  
나머지는 페이지 지면 같다는 상태라면 곤란하다. 

또 그렇지는 않아도 85 % 정도를 모르겠고 
주석내용을 다 참조해서 15 % 정도를 겨우 이해하겠다면 
이 논서는 저자가 자신을 상대로 쓴 책이 아님을 파악하고 
일단 뒤로 돌려야 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일단 다른 부분부터 먼저 살펴나가는 것이 
더 효과가 좋다고 보게 된다. 



화엄경 분야에 유명한 분으로
오늘날 사찰에서 많이 대하는 화엄경약찬게에도 나오는 
용수보살이란 분이 계신데 
이 분의 내력을 살피면 또 그런 사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처음 용수보살님이 수행을 시작하기 직전 배경을 보면 
왕궁에 침입해 궁녀를 성폭행하고 겁탈해 
같이 범행을 했던 친구들은 벌써 죽임을 당하고 
자신은 왕으로부터 추격을 당하는 그런 상태였음을 보게 된다. 

그래서 수행을 결심하고 산에 들어간다.  
그런데 처음 수행에 임해 대한 경전이 화엄경이겠는가. 
그것이 아니다. 

수행을 시작한 용수보살님이 이후 
부처님이 남기신 경전을 하나하나 섭렵해 나가는데 
그런 가운데 다양한 저술을 해서 
대지도론이나 중론도 남기고 했는데 
이 경우도 또 마찬가지 문제가 생겨난다. 

용수보살님이 썼다고 알려진 수많은 저서들을 놓고 
후대 문헌한자들이 살펴보니
이들 저서는 또 도무지 한 분이 쓴 저서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런 문제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전보다
점차 수준이 높은 내용을 살펴나가게 되는 사정이 있지만, 
사정이 그렇다고 그것만 보면 된다거나 
그 하나만 남겨 놓고 나머지는 다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그것은 또 지나치다. 

그런데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늘날 어떤 유명한 학자가 수없이 많은 논문과 저서를 발표한 경우에도 
30 년전에 쓴 저서와 최근 저서의 내용을 보면 
역시 같은 문제를 보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 가운데 한 주체가 어떤 과정으로 
점차 수행에 진입하고 높은 단계에 이르르게 되는가를 살펴야 한다. 

처음 용수보살님이 
현실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쫒기는 상황은
이런 과정에서 어떤 상태인가를 먼저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는 생사현실에서 망집에 바탕해 행하는 가운데 
생사고통을 받는 3 악도에 들어가는 일반 상황과 같다. 

그런 상태에서 용수보살은
마치 구마라집 법사님이 그러했듯 
어린 나이에 이미 4 만게에 달하는 게송을 다 외우고 
그외에도 천문 지리 의약 분야 등 각 분야에 걸쳐  
대단히 뛰어난 상태로 각 분야의 재주를 고루 지닌 가운데 
다시 특수한 비술을 익혀서 그 비술로 궁궐에 몰래 침입하고
궁녀 자신도 상대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상태로 범행을 하는 정도에 이르렀는데 
같이 범행한 친구들은 궁궐을 호위하는 무술고수에 의해서 목이 잘려지고 
자신은 추격을 받는 상태에 놓였던 것이다. 

요즘 예를 들어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들 가운데 
최고의 서커스맨, 최고의 마술사, 최고의 최면술사 
이런 분들을 보면 상당히 신통함을 보는데 
100 층 빌딩을 맨손으로 올라간다거나 
벼랑에 매단 줄을 걸어간다거나 
분명 카드였는데 모자에 넣고 빼니 바로 비둘기가 나온다거나 
상대 앞에서 손짓만 했는데
상대가 자신을 연인으로 여기고 흠모하게 만든다거나 
양파를 딸기로 알고 먹게 한다거나 등등의
온갖 재주를 선보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이는 한번 보면 수조 단위의 숫자가 수없이 적힌 사칙연산문제를  
바로 바로 답을 적어내고 
어떤 긴 내용을 다 기억하거나
또는 거리에 서서 한 번 본 각 건물에 붙은 간판이나 전화번호를 다 기억하고
1 주일 지나서 물어보아도 다 생각해낸다거나 하는 것도 선보인다. 

그런데 
당시 용수보살의 기본 상태가 그런 것이었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앞과 같은 상태로 나아가 
사건 사고의 당사자가 되었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내용은 용수보살전을 참조해보면 사정을 알 수 있다. 

게송과 다라니 몇개를 외어보려고 몇년째 노력해도 
아직도 못 외우고 있는 본인 입장을 놓고 생각하면 
이들 내용은 구라성 이야기라고도 보게 되지만, 
그러나 널리 세상을 살피면 
현실 각 분야에서 그런 분들이 실제로
많이 활동하고 있음을 보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런데 여하튼 용수보살님이 처음
수행을 막 시작하는 그 직전의 상황이
사실은 일반인들이 생사현실에서 
자신이 가진 재주를 바탕으로 온갖 노력을 다한 가운데
최종적으로 만나는 사건사고의 내용이고 
이것이 현실의 생사고통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 현실에서는 이것부터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보게 된다. 


그리고 일단 그런 바탕이 되야 

이후 죄와복 일체가 공하고 
일체중생이 흉악범이던 부처님이던 또는 돼지던 소던
그 본성은 다 차별없이 청정하다 
이런 내용을 또 대하고 살펴나갈 바탕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신화엄경론 첫부분에서도 
이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어떤 경전에서는 이런 내용을 제시하고 
어떤 경전에서는 저런 내용을 제시하는데 
이것이 서로 어떤 관계인가
이런 문제다. 

예를 들어 어떤 경전에서는 
죄와복이 모두 다 차별없이 공하고 청정하다. 
이런 내용을 제시한다.
그리고 알고보면 본 바탕의 실상의 측면을 놓고 살핀다면,
이것이 가장 깊고 올바른 내용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예를 들어 또 어떤 경전에서는
그런 바탕에서 
하필이면 현실에서 망집을 제거하고
살생을 하지 말고 

탐욕을 제거하고 
분노를 제거하고 
보시 정계 안인 정진 정려 반야 이런 수행을 
또 하필이면 무소득을 방편으로 
상을 취하지 않는 바탕에서 
그렇게 행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왜 그런가. 


앞 내용을 보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왜 뒤 내용을 또 그렇게 제시하는가. 

각 경전에서 제시되는 이런 내용들간의 관계가 
이해나 정리가 안 되어서 
각 경전을 대할 때마다 

오락가락하고 혼동을 일으킨다. 
이런 증상을 호소하는 상태가 있다는 의미다. 

그러니 어떻게 할 것인가. 

원래 원칙적인 내용을 붙잡으면 
사실은 그렇다. 
죄와복이 모두 다 차별없이 공하고 청정하다. 
그리고 그런 현실에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런데 이 내용은 
수준이 어느 정도 되어야 이해하고 행할 수 있는 내용인가 하면 
자신의 손과 발을 톱으로 자신의 면전에서 끊어내는 상황에서도 
이 역시 차별없이 공하고 청정함을 잘 관하고 
평안히 임할 수 있는 그런 상태에서 실천 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그 내용이 잘못이라거나 틀렸다는 것이 아니고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맞지 않는 내용인 것 뿐이다.

그런데 어떤 주체가 정말 무생법인을 증득하여 
자신의 손과 발을 톱으로 끊어내는 상황에서도 
평안히 임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 
이제 본격적으로 우주 삼천대천세계를 배경으로 
무량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무량한 방편을 닦아 나가는 수행을 하는 상태에서는 
또 사정이 다르다. 
이런 경우는 그런 바탕에서 행할 무량행문의 
자세한 내용에 대해 제시된 경전이 또 필요하다. 
그래서 이런 내용을 제시하는 경전은 그 수준이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다고
아직 기본적 내용도 이해하지 못한 상태거나 
안인을 원만히 성취하지 못한 일반 입장에게 
떡 제시하면 또 곤란하다. 
그것은 수준이 그 상대에게 맞지 않아서 그런 것이지 
그 내용이 잘못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런 경전을 대하는 것이 적절한가 아닌가의
기준이 무엇인가하면 
결국 자신이 자신의 손을 철사로 묶어 놓고 

회감을 칼로 잘라내듯 켜켜히 톱으로 쓸어 나가도 

일체가 다 청정하고 차별없이 공하다는 사정을 잘 이해하고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그런 상황에서도
그것이 정말 아무렇지 않고 무방하다고 현실에서 대할 수 있을 때 
그 이후 이들이 적절한 내용이 된다는 의미다. 

그런 상태에서 무량방편을 닦아 나가는 수행은
어떤 내용들이 있고 어떻게 행해 나가는가 
이런 것을 참조할 필요성이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상태가 아니면 
그런 무량한 방편을 아무리 나열해도 
그저 글자만 그렇게 읽어 나갈 뿐
현실에서는 하나도 제대로 행해 나가지 못하는 것이고 

또 그런 가운데 요행히 어떤 방편이라도
하나 익히게 되면
그로 인해 오히려 자신도 해치고
남도 무량하게 해치게 되는 결과가 초래 된다. 

왜 그렇게 되는가는 그 사정이 간단하다. 
안인을 성취하지 못한 어떤 이가 그런 방편을 취득한 경우 
어떤 이가 그 상대를 붙잡아 놓고 손발을 톱으로 자르거나
그렇게 하겠다고 위협을 가하면 
그 상대는 그것을 평안히 참지 못하고 
그 방편을 어떻게 사용하게끔 되는가가 문제다. 

그것이 결국 상대를 무량하게 해치고 
그로 인해 자신도 고통을 받게 되는 상태에
처하게 되는 사정이다.
처음 용수보살님이 세상을 놀라게 하는 재주를 지니고
활약하다가 고통을 받고 쫒기는 사정이 
그렇게 처음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니 그런 내용은
그런 상태의 수행자에게는 정도에 맞지 않다는 의미다. 

그렇게 정도에 맞지 않은 것은 
어떤 이가 취득해보려고 해도 사실은 잘 성취되지 않게 마련이다. 

그런데 요행으로 취득하는 경우라고 해도 
선배가 그 사정을 파악하게 되면 
바로 그 상대를 위해서 그런 방편들을 
곧바로 압수처리하게 되는 것은
또 그런 사정때문이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지 않고 
수행자자신이 앞과 같은 안인을 이미 성취하고 
무량한 중생을 제도하고 불국토를 장엄해서 성불해나가려는 
그런 과정에 있다면 이들은 또 대단히 필요한 내용이기도 하다. 



일단 쉬자. 
원효대사님도 화엄경 어느 부분을 보다가 그만 저술활동을 하고 
밖을 돌아다니게 되었다고 전하는데 
사정이 용수보살님과 엇비슷하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 배경에는 요즘 통증을 많이 일으키는 질환 
요통, 요산, 요석 이런 내용들도 관련되고 
알고보면 복잡한 것이 다 마찬가지다. 





mus0fl--Indochine - Traffic Girl.lrc



스크립트 오류로 더블 현상이 나타나는데 
일단 붙여 놓고 살피기로 한다. 

올려진 곡은 최근 조각글에서도 들은 곡인데 
알고보면 백백교 신자인 MUN 님의 주제곡이다. 
MUN 님의 자서전적 소설 
'옥탑방에서의 한 나절'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내가 지금 명칭만 황제일 뿐
헐렁한 차림으로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날 무시하고 홀대하면 
나중에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 것이다. 
두고 보자. 
하면서 궁시렁댄다. 
...
이런 대목이 나온다. 

그런데 이 소설의 핵심이 이런 부분이다.  


MUN 님은 명칭만 황제이기에 
갑질과 을질을 동시에 다 방면으로 행하는 상태인데 
현실에 탐욕 분노 어리석음의 3 독의 독화살이 박히고 
그로 인해 생사고통을 겪어 나가는 상황이 
이런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MUN 님은 안인 수행을 성취했다고 
자주 강조한다는 점이다. 
이 부분이 또 중요하다. 

다른 상대를 칼로 썰려면 
자신이 먼저 칼로 자신을 썰면서 
그 정도를 조정해나갈 수 있는 상태에 미리 이르러야 
그런 방편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이를 칼로 썰 줄만 알고 
자신이 그 입장에서 그것을 평안하게 대할 상태가 
아니면 그런 방안을 취했다가는 
큰 곤경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전에서 각 내용을 제시하는데 
각 상대의 사정에 따라서 조금씩 
내용이 다르게 되는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이미 앞에서 그 사정을 비유를 들어 
대강 살폈는데 
그 사정이 도대체 무언가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기로 한다. 

도대체 무엇때문에 그런가. 

우선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받는 것이 문제다.

그런데 본 바탕은 그런 문제 자체를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본 바탕에서는
그런 문제를 해결하라고 문제를 제기할 사정자체가 얻어지지 않고 
그런 죄와 복 자체가 다 차별없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본 바탕이 그런데
망집을 일으키고 각 생명이 임하는 생사현실에서는 . 
그 사정을 그렇게 이해하지 못하고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하면서 
온갖 생사고통을 받고 
결국 전문적으로 장구하게 생사고통을 생생하게 받아나가는 
3 악도에 묶이게 된다는 것이 
생사현실의 문제다. 

그런데 이런 내용 자체도 
본 바탕을 놓고 살피면 
역시 별 문제가 아니라고 보게 되는 것이다. 
본 바탕에서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온 세상에서 심각하게 문제되는 온갖 사건 사고나
생사고통의 문제가 무량한데
그러나 이 일체를 본 바탕에서 놓고 
그 측면으로 대하면 여전히 아무 문제가 아니라고 
대하게 되는 측면이 있다. 

그리고 본 바탕이라고 하는 여나 진여 실재의 측면을 
붙잡고 대하면 
그 측면에서는 이런 문제를 제기한 적도 없고 
이것을 어떤 수행을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고 
요구한 적도 없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시간이고 공간이고 생사고통의 문제가 
그 영역에서는 일체 문제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러나 그렇다고 생사현실을 방치하면 되는가.
이 부분부터가 수행이 필요하다고 보게 되는 
부분이다.  


생사현실은 본 바탕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하나같이 꿈처럼 실답지 않고
문제가 아닌데 

그러나 또 정작 꿈은 아닌 것이어서 
수많은 생명이 비슷한 형태로 
무량한 기간에 걸쳐 
각 감관과 분별을 통해 다양한 측면에서 
다양한 형태로 생생하고 명료하게 그런 내용을 얻어가면서 
고통을 겪게 되기에 이 부분이 문제인 것이다. 

그러니 하나의 생사현실을 놓고 
그것을 어떤 측면을 기준으로 붙들고 
이것을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제각각 조금씩 다른 내용을 제시하는 것처럼 
여겨지고 혼동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러나 현실에서 대하는 이 내용을 놓고 
그 측면이 그렇게 다 있으므로
그것을 다 살피고 제시하는 각 내용들인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도 살폈듯 
지금 당장 손이 잘라지고 
피가 흐르고 
옆에서 동료들이 큰일났다고 소리지르고 오가는 상황에서 

이것이 본 바탕이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고 
일체가 차별없이 공하다. 
이 내용만 가지고 
마치 반야심경 첫부분에 제시된 것처럼 
이에 대해 집착을 제거하고 
그런 일체의 고통을 쉭 벗어날 수 있다면
대단히 바람직한 것이다. 


알고보면 원칙적인 생사고통의 해결방안이란 
이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그렇게 임할 수 있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것도 현실이다. 

아무리 실답지 않다고 제시하고 
또 그 내용을 이론상 잘 이해해도 
거의 대부분 그렇게 바로 되지 않는 것이다. 

앞에서 문수보살님을 제시하는데 
문수보살님이 왕으로 지내시다가 수행으로 
방향을 돌려 수행을 시작한 후 
그런 무생법인을 증득했다는 시점 자체가 
상상을 초월하는 기간이 소요되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반야심경 구절 읽고 외우고 
그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몇 달만 노력하면 대부분 쉽게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수많은 생사고통을 받는 현장에서 
그 내용만으로 각 생사고통을 쉭쉭 벗어나온다는 경우는
대단히 희박한 것이 현실이다. 

그렇게 될 것 같은가. 
이론상은 그렇지만, 그런데 .....
이런 구절을 계속 이어 붙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현실에서 독화살을 맞고
생사고통을 당장 겪는 현장이거나 
그 직전의 상황이거나간에 
일단은 응급 처방부터 잘 행해야 한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마음의 구조가 어떻고 
수행자가 무량행문을 닦는 과정에서 
어떤 종류의 번뇌를 
10 신 10 주 10 행 10 회향 10 지
이런 각 수행단계로 어떻게 임해서 
벗어날 수 있는가 
어떻게 털끝 하나에 삼천대천 세계가 들고 나고 하는가. 
이런 내용은 적용이 당장 안된다. 

그런 상황에서는 말일 뿐이다. 
우주가 무한한가 아닌가. 
시간이 무한한가 아닌가.
이런 주제도 마찬가지다. 

사실은 10 신 10 주 이런 내용으로서 
화엄경 등에 10 개씩 수없이 반복되는 내용 가운데 
단 한구절의 내용만 놓고
그것을 이번 생에 원만히 잘 성취하는 것을 
목표로 해도 제대로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게 한 항목도 다 잘 하지 못하는데 
그런 항목을 무량하게 나열하고 또 나열하면 
무엇하는가. 
명칭만 그렇게 나열하고 외우면 
그 내용이 되는가 

한가위날 고속도로가 막혀서 
오가지 못하는데 
광협자재무애문 이러면서 바라보면 
갑자기 차는 좁아지고 길은 넓어져서 
쉭 갈 수 있는가. 
이것도 잘 안되는데 
무슨 털끝 미세 공간에 우주를 넣고 빼고 하고 
그것이 유마거사님보다 낫고 못하고를 비교해본들 
자신의 생사고통문제와 무슨 관련이 될 것인가. 
그런 문제가 심각하고 진지하게 연구대상이 되는 상태는 
따로 있다는 의미다. 



그런 경우는 일단 금강경에서 제시된 모델 
예를 들어 현실에서 전혀 엉터리 사유로 억울하게 체포되었는데 
고문을 받기는 성삼문 등 사6신이 받는 고문을 

다 받고 죽어가는 그런 상태에서 
아무런 동요를 일으키지 않고 
평안히 임하게 된 그 상태부터 
진지하게 살펴나갈 그런 내용이 된다는 의미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피자면 
아예 과거 조각글에서 붙여 놓았던 
그림을 올려 놓고 이들 각 경전에서 제시한 내용들이 
서로 어떤 관계에 있어서 그런가를 
살펴야 한다고 본다. 


일단 쉬기로 한다. 



○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Céline Dion - Le Miracle.lrc

앞에서 안인 수행의 문제를 너무 

어렵게 제시했는데 
사실은 그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문제를 조금 난이도를 낮추어서 
제시해도 마찬가지다. 

관세음보살님이 바퀴벌레로 변신해서 
수행자의 거처를 방문할 때 
수행자 가운데 이를 반갑게 맞이해서 
바퀴벌레의 촉수에 손을 내밀어 댈 수 있는 상태에 
있는 이가 과연 현실에 몇이나 될 것인가. 

그런데 생사현실 일체가 공하고 그것이 곧 청정한 니르바나이고 
지옥과 극락이 둘이 아니고 
지옥이 곧 극락과 다르지 않다는 등의 
내용이 모두 이와 관련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론상으로는 그런 내용을 잘 이해해도 
현실에서는 간단한 문제만 제출되어도 
실천하기가 주저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현실상황에서 그런 이론과 실천의 갭을 줄이는 것이
곧 수행자의 과제다. 

그래서 이론상 미세공간에 삼천대천세계가 들고 나고 
과거겁으로 들어가 미래겁으로 나오고 
이런 내용은 그런 상태에서는 공념불이라고 
보게 되는 것이다. 

당장 그 하나가 안 되는데 
나머지는 되는가.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것이 안 되면 
앞의 내용이 전부 거꾸로 제시되어 적용되게 된다. 

즉 생사현실 일체가 곧 
생사고통을 떠난 청정한 니르바나인데 
그런 청정한 니르바나에서 
생사고통을 받으면서 묶이고 뒹구는 상태가 되고 

지옥과 극락이 둘이 아닌데 
그러나 정작 극락과 다르지 않은 상태에서 
지옥의 고통을 받으면서 뒹구는 상태가 된다는 의미다. 

무엇이 안 되어서 그런가는 
이미 앞에 제시했다. 

그래서 그런 경우 
그런 이론만 잘 파악하고 
평소 각 경전에서 제시된 수행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은 경우는 
그런 이론적 지식으로
그런 현실을 매순간 대하게 된다는 것이 
지옥의 공 수행자의 문제다. 

그것이 그렇지 않다고 여기면 
지금 앞에 제시한 간단한 문제를 놓고 
직접 실험해 보면 되는 것이다. 

경전 어디에 바퀴벌레는 성불하지 못하는 생명이라고 하고
이 상황은 경전에서 제시된 내용에서 제외되는 상황이라고
했는가. 
나머지도 다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것이 안 되면 나머지 무량한 문제는 
또 마찬가지라는 것도 스스로 잘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각 경전의 내용을 
이론적으로 이해해두는 것이 
불필요한 것은 또 아니다. 

그런 경우 다음 그림을 놓고 
왜 그런 내용이 각 경전마다 제시되게 되었는가를 
이해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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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2-02]
[그림] 08pfl--image/진리의오류55.jpg
http://buddhism007.tistory.com/228 ☞○ 마음과 색의 의미에 관한 논의
http://thegood007.tistory.com/1172 ☞○ 진리에 관한 수많은 오류와 착각의 문제
03fl--ghpt/r1030.htm ☞○ 진리에 관한 수많은 오류와 착각의 문제
선인락과 08pfl--image/선인락과2.png
[img2-03] [그림] 선인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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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 자신이 눈을 떠서 
세상과 자신을 보면서 
일상 현실에 임하는 데 
요의경이라고 하는 경전은 
본 바탕의 사정을 잘 파악한 가운데 
이 현실에 올바로 임하라고 
내용을 제시한다. 

그런데 본 바탕의 사정을 이해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그래서 그 부분은 압축해서 핵심만 제시하고 
당장 생사고통을 제거하고 예방하는 수행부터 
먼저 잘 행해야 한다. 

처음 제기되는 문제는 
어떤 이가 왜 생사현실 안에서
유독 가해와 피해를 반복해 중첩해 받아가면서 
생사고통을 겪는가 이 부분이다. 

그것은 간단히 보면 
망집에 바탕하여 
협단천 관찰, 즉 좁고 짧고 얕은 관찰에 의해 매 순간 
그 주체가 집착하는 좋음을 추구한다고 임하면서
그렇게 행위해나가기에 
그렇다고 제시하게 된다. 

세상에 어떤 생명도 다 자신입장에서 
좋다고 보는 것을 추구하고 
나쁘다고 보는 것을 피하려고 하면서 
열심히 살아간다. 

자신만 그런 것이 아니고 
지렁이도 그렇고 개미도 그렇고 벌도 그렇다. 

그래서 어떤 지렁이가 낚시 바늘에 
꿰이고 싶어서 꿰이거나 
또는 어떤 물고기가 그 낚시에 걸리고 싶어서 
그렇게 걸려서 육지에 올라와 
회감이 되어 살이 썰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렁이나 물고기만 그런 것이 아니고 
욕계내 생명이 다 그런 상태다. 

매 순간 그 주체가 가장 좋다고 보는 것을 추구하고 
가장 나쁘다고 보는 것을 어떻하던 피해보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끝에 
결과적으로 그런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고 그 관계를 살피는 것은 
앞의 협단천 관찰방식에 의한 것이 아니고 
광장심 관찰을 통한 것이다. 

현실에서 불 하나를 켜고 끄고 하는 과정이나 
땅에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수확할 수 있게 된 과정자체가 
간단해 보이지만, 결코 간단하게 얻는 내용이 아니다. 

어떤 이가 씨를 뿌려 놓고 
그 부분을 초점을 맞추고 
다른 부분과 차이를 살피면서
유심히 한달 두달 석달을 꾸준히 관찰하지 않으면 
그 관계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것이 쉬우면 사람 뿐만 아니라 
다른 원숭이나 곰이나 멍멍이도 그렇게 방편을 찾아나설 것인데 
그렇지 못하기에 축생 세계의 생명이라고 따로 분류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쉬어 보이지만, 
인과를 넓고 길고 깊게 관찰해서 
어떤 것이 좋고 좋음을 주는가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그런 가운데 협단천 관찰에 의해 
당장 자신에게 좋음을 준다고 보고 취하는 것은 
대부분 넓고 길고 깊은 '광장심'관찰에 의할 때는 
그 정반대의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 내용이라고 
처음에 제시한다. 

그리고 또 여기에는 일반적으로 
자신의 삶에 관해서 이해하게 마련인 단멸관을 제거하는 것도
또 요구된다. 
이것도 쉽지 않다. 
자신이 이 곳에서 죽으면 그것으로 자신은 끝이다. 
죽은 이는 말이 없다. 그 이후는 모른다. 
대부분 이렇게 간단히 삶을 생각하고 
앞과 같이 협단천 관찰에 의해 
좋다고 보는 것을 놓고 집착을 일으켜 추구하며 행해 나가는 것이다. 

좋으면 달라들고 
나쁘면 분노를 일으키고 일어나고 
대부분 생명이 이렇게 반응한다. 

곰을 놓고 보아도 그렇고 
사자도 그렇고 
기린도 그렇고 
파리나 개미도 그렇다. 

그런 가운데 그렇게 된다는 의미다. 

그러니 이 내용 자체가 일반적인 입장에서 
쉽게 이해되지 않기에 
또 그런 광장심 관찰에 의거해 
좋고 좋음을 얻는 방안으로 제시되는 내용을 
현실에서 행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것은 그런 내용 하나하나가 
협단천 관찰과 단멸관에 바탕해서 살피면 
그런 수행은 하나같이 당장 손해와 고통을 받고 
그런 가운데 그렇게 무익하게 삶이 끝난다고 여기기에 
그런 것이다. 

그러니 부처님께서 
인과를 제시할 때 
아난 존자가 인과란 쉬운 내용이 아닌가라고 
반문할 때 그렇게 보지 말라고 제시한 것이다. 
현실에서 인과를 잘 본다면 
자신이 뻔히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무량하게 받아나갈 
그런 내용을 취하고 떡 3 악도에 들어가겠는가. 
왜 어차피 차별이 없고 마찬가지인데 
하필이면 그런 것을 취해서 
그런 상태에 임하려고 하겠는가. 

그것을 먼저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이해가 잘 안된다는 아난존자에게 
아난존자가 죽고 난후에 가게 되는 하늘 세계를 먼저 보여주고 
그리고 그 이후 다시 가게되는 지옥 세계를 보여주어서 
이제 이런 관계를 알았으니 
어떻게 할 것인가 되물은 것이다. 

수행을 할 것인가 말것인가 이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제시하는
인과 내용 자체가 
사실은 본 바탕에서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고 
이 일체가 무상하고 고이고 무아 무자성이고 열반 적정이고 공하다는
내용을 함께 제시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인과 내용을 대한 대부분은 
그렇게 내용을 제시하니까. 
그것이 실다운 내용이라고 또 오해를 하게 되는 사정이 있다. 

이것이 뗏목의 비유가 의미하는 어려운 사정이다. 

부처님이 본 바탕이 그렇지 않다는 사정을 이해시키고자
상대에 맞추어 방편을 시설해서 가르침을 베풀면 
상대는 그 내용으로 생사를 벗어나오지 못하고 
오히려 그 내용을 붙잡고 다시 망집을 일으키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 증상해결이 간단하지 않다. 

시간과 공간과 마음의 문제를 살피기 전에 
현실에서 대하는 내용의 본 정체가 무언가를 놓고 
그것 하나 올바로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기존에 핫키로 축약헤 제시한 망집 현상을 
일반적으로 그대로 일으킨 상태로 현실에 떡 임하고 
그것도 앞과 같이 협단천 방식에 의한 내용을 붙잡고 
그것이 자신이 추구하는 좋음을 가져다 준다고 
매 순간 임하는 것이다. 
또 그 내용이 그 당장만 놓고 보면 또 그럴듯 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비유하면 장발쟝이 떡을 훔치고 
교도소에서 19 년을 보내기 전까지는 
그 방안이 떡을 얻는 방안이라고 믿기에 
그렇게 행하게 된다는 의미다. 
그러니 씨를 뿌려 놓고 열매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원숭이와 곰이 주장하는 내용이 맞게 보이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사정이 그렇기에 
일반적으로 망집을 바탕으로 하고 
단멸관과 협단천 관찰에 바탕해서 그렇게 떡 임하고 있는 것이 
현실 거의 대부분 상황이다. 


그래서 그 증상부터 해결하는 것이 요구된다. 
그 자체가 해결안되어서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는 상태에 이르면 
그렇지 않아도 그 내용이 이해가 안 되는데 
그 상태에서만 그 사정이 이해될 사유가 있는가. 
없다. 
씨를 볼 때 열매를 보지 못하는 이가 
열매가 나타나면 그 내용이나 관계를 이해하게 되는가하면 
그렇지 않다. 
그것도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는 상태는 
앞에서 비유한 상황처럼 정신이 없고 
뭐가 뭔지 모르는 가운데 정신없이 구르기 바쁜 것이다. 

그러니 일단은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 
수행의 첫걸음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본 바탕에서 이 내용을 놓고 보면 
사실은 일체가 다 청정하고 
죄와 복이 다 차별없이 공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그 내용을 가지고 
그런 생사고통을 받는 상황에서 그 내용을 적용해서 
그 생사고통을 벗어날 수 있는 경우가 
극히 드물고 희박한 것이 문제다. 

사정이 그렇기에 부처님이 자비를 바탕으로 
생사현실에 들어오셔서
방편을 그렇게 펼쳐서 
깨달음을 얻어서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이끄는 과정이다. 


단축키 내용을 다시 제시하면 
그 기본 내용이 다음이다. 

-

---


현실에서 눈을 뜨면 일정한 모습을 얻게 된다.

그런데 이것은 자신이 눈을 뜸으로써 얻는 감각현실로써

자신의 마음에 얻어 자신의 마음 안에 머무는 마음 내용이고

따라서 그런 내용에는 그런 내용을 얻게 한 대상은 없고

또 이는 마음을 떠나 마음 밖에 있는 내용이 아니다.


그리고 이는 그런 감각기관을 통해 그런 조건에서만 얻는 내용이고

따라서 그 내용은 본 바탕인 실재의 지위에 있는 내용이 아니고,

또 본 바탕인 실재 영역에서도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은 다른 감관 귀나 코 등으로 얻는 내용이나

분별을 통해 일으키는 분별 내용도 그 안에서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는 마치 침대에 누어 꾼 바다나 황금의 꿈 내용처럼

비록 대단히 생생하게 매순간 얻는 내용이지만,

실답지 않은 내용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일반적으로

자신이 현실에서 얻는 이런 감각현실은

외부 세계의 내용이고

자신의 감관이 대하는 외부대상이기도 하고

정신 밖에 있는  정신과는 별개인 외부물질이고

이것은 자신 뿐만 아니라, 영희나 철수를 포함해

모든 이가 함께 대하게 되는 내용이어서

외부의 객관적 실재라고 이해한다.


그리고 또 이런 감각현실에 대해 자신이 각 부분을

묶고 나누어 각 부분이 무엇무엇이라고 분별을 할 때

그런 분별내용을 놓고도

또 앞과 마찬가지 형태로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즉 자신이 그렇게 일으킨 그런 분별내용은

그 감각현실에 그렇게 들어 있고

그래서 그 감각현실은 곧 그런 분별내용인 것이고

또 자신이 생각하는 분별내용은 그런 감각현실을 그 구성요소로 갖고 있는 것이라고 여기면서

그런 사정으로 그 관념분별은 감각현실과 관련해 얻는 실다운 내용으로 여기는 한편,

본 바탕인 실재와 관련해서도

앞과 마찬가지 사정으로 실다운 내용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리고 한 단면의 내용을 놓고서 그런 망상분별을 일으킬 뿐 아니라.

변화나 생멸을 놓고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이해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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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현실에서 눈을 뜨면 일정한 모습을 보게 되고

또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기게 되는 부분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이런 내용을 얻는 자신에 대해서는

이렇게 판단한다.

즉 일정 부분은 매번 자신이 눈을 뜨면 그 때마다 달라지는 주변모습과는 달리 늘 일정하게 보게 되는 부분이고 [상]

또 그 부분은 자신이 어디론가 움직여 가겠다고 뜻을 가지면 그런 자신의 뜻에 따라 움직여

즐거움과 좋음을 가져다 주는 부분이고[락]

또 그 부분이 다른 부분에 닿을 때는 다른 부분과 달리 그로 인해 촉감을 느끼게 되는 부분이고

또 그 부분에 손을 대면 다른 부분과 달리 양 쪽에서 촉감을 느끼게도 된다.

그래서 그 부분은 곧 외부의 내용을 대상으로 하여 감각을 얻는 자신의 주관이 위치하는 부분이고[아]

그런 사정들로 이 부분은 다른 존재와 달리 깨끗하고 소중한 바로 자신이다. [정]

이런 식으로 평소 자신이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부분을 대한다.



그런 가운데

자신이 컵에 커피를 담아 마시면서

눈으로는 그런 모습을 보고

컵을 가볍게 두드린다고 할 때

그런 모습을 그렇게 대하는 가운데



눈으로는 그런 모습을 보고

귀로는 컵 소리를 듣고

코로는 커피 향을 맡고

입으로는 커피 맛을 보고

손으로는 촉감을 느낀다고 여긴다.



또 이 커피를 영희나 철수에게 건네니

역시 영희나 철수도 같은 내용을 보고함을 일상적으로 경험한다.


그리고 이런 가운데

종이에 불을 붙이면 분명 반복해 연기와 재가 나타나는 모습과

그 관계를 보게 된다.


그런 사정으로

자신이 눈을 떠서 대하는 이런 내용은

곧 자신의 외부에 있는 외부세계의 내용이고

그리고 자신의 감관이 대하는 외부대상이고

따라서 정신 밖에 있는  정신과는 별개인 외부물질이고



또 이것은 자신 뿐만 아니라, 영희나 철수를 포함해 모든 이가 함께 대하게 되는

외부의 객관적 실재라고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편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 자신이라고 보는 부분은

이런 내용을 얻는 주체로 여기고

이런 부분을 실다운 자신이라고 여기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이 대표적으로

일반인이 일반적으로 갖는

전도망상분별증의 기본적인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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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떠서 어떤 내용을 얻는 경우처럼



어떤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다른 내용을 일으켜 얻는 관계를

a + b => C 의 관계로 표시한다고 할 때



a + b => C 의 관계식 자체가

그런 내용을 얻는 바탕이 되는 a 는 그런  C가 아니고

a 에는 그런 C가 없는 상태임을 이미 제시하고

더 나아가 이런 관계로 각 내용을 얻는 현실 일체가

무상, 고, 무아무자성, 열반, 공 임도 다 제시하고 있다.



즉 그렇게 그런 관계로 그 내용을 얻는다고 보는

그런 C 는 그런 조건에서 얻고 그런 조건을 떠나 얻지 못하는 것이므로 무상이고

그런 성격의 무상한 내용인 C 에 집착을 갖고 대하면 그에 따라 고통을 얻게 되는 것이고

그리고 그런 C 는 그런 조건을 떠나 불변하고 고정된 내용이 아니고

그런 불변하고 고정한 진짜의 내용이 있다면 얻을 수 없는 관계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고

그리고 그런 관계를 통해 얻는 그런 C 는 그런 관계를 떠난 영역에서는

본래 얻을 수 없는 내용임도 제시하고 있는 것이고

그래서 이들은 본래 현실에서 문제삼는 생사고통을 얻을 수 없고 그런 것은 적어도 아닌 그 무엇으로서

청정한 니르바나인 것이고

따라서 그런 관계를 떠나 실재하는 본 바탕은

그런 관계로만 내용을 얻는 주체로서는 그 내용을 끝내 얻을 수 없는 것이어서

있다 없다 이다 아니다 같다 다르다 깨끗하다 더럽다 등의 온갖 2 분법상의 분별을 떠나고 [불이不二]

공한 것임을 함께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제시하는 관계를

스스로 a + b => C 라고 이렇게 표시해 놓고


오히려 그  c 를 매번 이런 관계에서 그것을 반복해 얻게 되기에

이런 사정으로 그런 c 를 얻게 하는 바탕이 되는 a 에는 본래 그런  C가 있다거나

또는 그  a 가 곧 그런 C 라고 보는 형태가

바로 망상증의 공통적인 형식이다.



즉 침대에 누어 바다나 황금꿈을 꾸었다고 해서

그런 사정으로

꿈에서 꾼 바다나 황금이 그 침대에도 그렇게 있다거나

그 침대가 곧 그 바다나 황금이라고 여기면서

자신이 꾼 바다나 황금이 실답다고 여기면

그것이 곧 꿈을 통해 일으킨 망상증상이라고 하게 되는 것처럼

현실에서 얻는 이들 내용을 그렇게 이해하는 것은

잘못된 망상분별인 것이다.


---



단축키에 축약한 내용이 알고보면 상당히 길다. 
본인도 다시 읽어 보려면 상당히 골치 아프다. 

그런 가운데 사정이 그런데 
왜 현실에서는 자꾸 
그런 내용을 그렇게 대하게 되고 
그렇게 여기고 그렇게 반응하게 되는가를 
설명하려면 

또 앞에 제시한 형태처럼 
각 주체가 처음 생을 출발할 상태에서 
그 전에 어떻게 임했기에 
그런 상태로 삶을 출발하고 
현실을 대하게 되었는가부터 
다시 설명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현실에서 기준으로 삼고 
매 순간 문제삼는 그 내용은 
1234567 이런 파생분화된 정신을 바탕으로 얻는 사정을 제시하는 한편 

사정이 그렇기에 
이런 내용은 알고보면 실다운 내용이 아니고 

이 안에서 비록 어떤 좋음을 얻는다해도 
그것은 비유하면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모래 한알의 좋음을 취하고 
나머지 운동장에 있는 모래알수에 해당한 
생사고통을 받거나 
갠지스강의 모래알 하나에 해당한 좋음을 얻고 
나머지 모래알에 해당한 생사고통을 무량겁에 걸쳐서 
받아나가는 과정이라고 제시한다. 
이것이 광장심 관찰을 바탕으로 
부처님이 제시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처음에 일반인이 갖는 단멸관처럼 
이번 생만 적당히 살고 마치면 
끝이 아니라는 내용도 
위 내용을 통해서 파악하게 되는 내용이다. 

그리고 그 내용은 
멀리 무량겁을 앞 뒤로 오갈 수 있는 상태에서만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고 
지금 이 순간 찰나 전후를 걸쳐서 
위에 제시한 내용이 다 파악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무량겁 전에 자신이 어떤 상태였는가를 알고 싶은가 
또 무량겁 후에 자신이 어떤 상태가 될 것인가를 지금 알고 싶은가 
지금을 놓고 살피면 안다. 
이렇게 제시한 것이다. 


지금 망집을 벗어나지 못하면 
그 상태로 매 순간 대하는 가운데
무량겁을 나아가게 된다. 
그러면 그 내용이 그렇다는 것을 
제시한다. 

그런 가운데 1234567 과
그 안에 담기는 현실내용은 알고보면 
실답지 않고 
무량겁에 걸쳐 생사고통을 받게 하는 바탕이기에 
실답지 않은 이런 부분을 완전히 제거해 버리고 
다시 나타나지 않게 하는 것이 
처음에 그 수행자 개인만 놓고 볼 때 
그 수행자가 수행목표로 취하게끔 되는 사정이 있다. 

신화엄경론에서도 첫 부분에 그래서 그 내용을 
그렇게 제시하고 있다. 

현실에서는 위 12234567에 그 주체가 좋다고 
보는 것을 가득가득 얻어내고 
어떤 내용을 많이 알아내는 것이 목표라고 보겠지만, 
알고보면 그렇지 않다. 

그런데 그것은 그 수행자 개인만 놓고 볼 때 
그리고 부처님 입장에서 
당장 각 생명을 그 생명이 받는 생사고통을 벗어나게 하고자 할 때 
제시하는 방안은 되지만, 

그러나 보다 깊은 측면에서 보면 
본래 1234567 이나 이를 바탕으로 얻는 생사현실 자체가 
본래 그런 생사고통을 얻을 수 없고 
청정한 니르바나라는 것까지 깨우치고 
그런 바탕에서 

이 생사현실에 임해서 
그런 생사고통을 받는 다른 중생을 
무량하게 제도하는 수행을 또 
그 생사현실에서 해나가는 것이 
요망되는 사정이 또 있다. 

무슨 사정인가하면, 
1234567 이 실답지는 않지만, 
그러나 '망집을 제거하고' 임하면 
그런 내용들 자체가 하등 
또 문제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그 내용대로 
안인을 원만히 성취하고 
현실에 임할 수 있는 상태가 
기본적으로 요구된다. 

이 상태가 되어야
더 이상 물러나지 않는 불퇴전위에 이른 상태가 되고 
그런 바탕이 되어야 
이후 생사현실에 임해 
중생을 제도해나가는 
무량행문을 닦고 
무량한 수명과 복덕과 지혜자량을 구족해서 
중생을 제도할 불국토도 장엄하고 
성불할 수 있다. 

문제는 
병원을 운영하여 병을 치료하는 의사입장에서는 
당장 그 자신부터 병으로 고통받는 상태의 상대에 대해서는 
일단 그 병을 치유해 퇴원시키는 것이 
1차적 목표상태가 되고 

그 환자가 퇴원한 다음 
그 상태에 있다가 다시 
다른 환자를 치유하는 의사가 되어서 
앞으로 병원에서 활동하겠다고 마음을 갖고 
그에 필요한 수련을 시작하는 것은 
그 이후 문제다. 

그래서 수행자는 기초적으로 
일단 다른 중생을 이런 상태에 이르게 하는 것을 
1차적 목표로 하여 생사현실에 임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아개령입무여열반 이런 구호나
4 홍서원이 의미하는 기본 내용이다. 

그런데 부처님 수준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중생을 제도함에 있어서 
그런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복덕과 지혜자량의 취득과 같은 
방편 자체의 획득이 수행의 종국적 목적은 아니므로 
그런 수행자가 더 쉽고 편하게 빨리 
그런 방편을 취득해 중생제로를 해나갈 수 있도록 불국토를 장엄하고 
그런 가운데 다시 수행자들이 모두 성불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또 목표로 임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놓고 보면 상당히 장기적인 사업이 되는데 
사바세계 현실에서 
가장 성불할 가능성이 높은 분이 미륵보살님인데 
그 분이 56 억 7 천만년을 더 수행을 해야 
성불식을 치루고 제도에 임하게 되는 것이므로 
일단 미륵보살님을 사바세계에서 모두 주목하고 
대하게 되는 사정이 있다. 

그러나 일단 급한 생사고통의 해결은 
미륵보살님이 성불할 시점에 제도하는 아라한의 숫자에 들어가서
벗어나는 상태가 되기보다는
우선 당장 시급하게 당장 벗어나야 하는 것이어서 
이것이 일단 각 수행자에게 급한 문제다. 

그렇게 되어야 이후 무생법인도 증득하고 
불퇴전위에 오르고 
무량행문 등의 수행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화엄경 내용을 아무 생각없이 처음부터 펼쳐서 
읽어나가면 글자는 글자고 내용은 모르겠다. 
구라성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대하는 것은 
그 사정을 처음부터 잘 이해하지 못한 가운데 
자신의 현실문제조차 잘 해결하지 못하면서 
내용을 대하기에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서 
수행을 성취하면 
어느 단계에서부터는 
그 내용이 하나하나 생생하게 의미를 주고 
그 내용을 현실에서 하나하나 붙잡고 
성취해갈 내용으로 대하게 된다고 그 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 

일단 그림만 걸어 놓고 
대충 사정을 소개하고 쉬기로 한다. 



○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Anne Germain - Claude Parent - Les Demoiselles De Rochefort - CHANSON DES JUMELLES.lrc


일반적으로 볼 때 
지금쯤은 발이 나아야 하는데 
아직도 발이 낫지 않아서  
밖에 나가지를 못하고 있다. 
상당히 증상이 오래간다. 

알고보면 이런 통증 하나도
이론만 붙들고
평안하게 대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여하튼 
부처님이 생사고통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편시설을 통해 
가르침을 베풀고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3 승의 가르침을 제시하고 

어떤 것은 방편적인 가르침이고 
어떤 것은 구경의 실상의 가르침으로서 요의경이라고 제시하지만, 
그러나 그 수행 내용의 형식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처음 망집에서 무엇인가가 그렇게 
실답게 있다고 여기면서 
업의 장애를 제거하고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행해야 한다고 제시되는 수행내용이나, 

나중에 생사현실에 들어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중생을 제도하는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복덕과 지혜자량을 얻기 위해 행해야 한다고 제시하는 수행이나 
그 내용이 다른 것은 아니다. 

다만 좀 더 수준이 높아질수록 
그런 수행 자체도 
실답게 무언가가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생사현실에서 수행자자신부터 생사현실에 묶이지 않고 
다른 중생을 잘 제도할 수 있으려면
수행자 자신부터 계를 잘 지켜 복덕자량부터 확보해야 하기에
그처럼 그런 수행 역시
그런 내용을 실답게 얻을 수 없는 것임을 잘 관하고
무소득을 방편으로 집착을 제거하고 상을 취하지 않은 가운데 
그렇게 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기본적 수행을 원만히 성취못하는 사정도 
알고보면 여전히 망집을 제거하지 못하고 
그런 수행을 대단히 어렵다고 여기는 상태에 있기에 
그 수행자가 그렇게 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는 
또 다른 3 악도에서는 더욱 그 상황이 어렵게 되는 것이다. 
자신도 3 악도에 묶여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도 복덕자량을 구족하지 못한 가운데 
다른 중생을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것이 
말은 그럴 듯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계의 항목 가운데 
안인을 원만히 성취해서 
불퇴전위에 이르지 못하면 
또 마찬가지다. 

안인을 성취해야 
이후 중생을 제도하는 방편을 취하는데 
제한이 없게 되고 
말 그대로 유마경에 제시되거나 
화엄경에 제시되는 것처럼 
3 계 6 도에서 자재하게 
중생을 제도해나갈 수 있게 되는데 

자신부터 무생법인을 증득하지 못하고 
조그만 고통만 겪게 되어도 
곧바로 물러나는 상태는 
스스로 생사현실에서 망집을 일으켜
여전히 자신부터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인 것이고 
그런 상태에서는 
무량방편을 취득해서 다른 중생을 제도할 상태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는 
그가 취득하는 온갖 방편은 
그 스스로부터 그로 인해 신속하게 
지옥으로 수행처를 옮겨 가게 되는 
방편이 되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므로 
결국은 기본 경전에서 제시한 수행부터 
철저하게 원만히 성취하는 것이 요구되는 것은 
어느 경우나 다르지 않은 것이다. 

비로자나부처님이 
수행자에게 중생제도를 위해서 
네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계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런 계를 철저히 지키되 
그런 내용이 본 바탕에서 얻을 수 없는 것임을 잘 이해하고 관하는 가운데 
상을 취하지 않고 
집착을 제거한 가운데 
무소득을 방편으로 수행에 정진해야 한다고  
제시하는 것 뿐이다. 

나머지는 이후 자신부터 안인을 원만히 성취하고 
그 이후에 행해나갈 성격의 내용이다. 

당장 자신이 겪는 통증하나 극복하지 못하는 가운데  
자신이 방에 삼천대천세계를 들여 놓고 빼고 하고
자신을 뜻대로 변화시키는
여환삼매를 취득한다는 것은 어- 불성설이다. 

그리고 그런 상태가 되어서 
앞에 제시한 12345678 과 같이 
현실에서 망집을 일으키는 재료가 되었던 내용이 
생사 즉 니르바나임을 잘 관하고 
현실에서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과 같이 
모든 집착의 근본이 되는 부분에서부터 
망상을 일으켜 취하지 않는 가운데  
안인을 원만히 성취하고 
무생법인을 증득해서 

그 실질 내용이 변화가 되면 
그런 상태에서부터는 
그런 12345678 도 
명칭을 달리해 표현하게 된다. 

성소작지 
묘관찰지 
평등성지
대원경지 
이런 식으로 표현을 달리하게 되는데에는 
그런 여러 수행이 뒷받침되어서 
질적으로 상태가 달라졌다는 의미다. 

여하튼 그런 복잡한 사정때문에 
복잡하게 내용을 제시하게 되지만, 
당장 현실에서 중요한 핵심은 
당장 자신을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받아나가도록 
묶고 있는 
망집을 제거하고 
탐욕 분노 어리석음을 대치해서 
수행을 잘 행해 성취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내용인 것이다. 

그 연후에 시공간과 마음의 자세한 내용도 살피고 
여환삼매도 증득하는 수행도 하고 
더 수승한 상태를 향해 
구호중생이중생상 등일체제불 회향하면서 
방향을 높여 전환시켜 수행해나가는 것이 필요하지 
회향할 내용 자체가 없는 상태에서 
회향항목을 살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런 문제다. 







문서정보 ori http://buddhism007.tistory.com/4601#2273
sfed--신화엄경론_K1263_T1739.txt ☞◆vbyh2273
sfd8--불교단상_2562_05.txt
불기2562-05-27  
θθ

 




-- 아래에 조각글 작성시 휴식시점에 붙인 노래가사,사진,풍광,예술작품 자료를 편집상 옮겨 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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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K North Pyongan Chonjusa Yongbyon 천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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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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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Albert-Bloch-vision-in-a-summer-night-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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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포드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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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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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Renoir the-edge-of-the-forest-in-brittany-1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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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 Si Khom Kham วัดศรีโคมค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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