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2562-06-11_무량수여래관행공양의궤_001
Michel Sardou - Parce Que C'etait Lui, Parce Que C'etait M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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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Mathieu Boogaerts - Un Peu Trop Pres D'la Lune.lrc
♥ 잡담 ♥무량한서원과모래계산법
앞 조각글에서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갖는 망집현상에 대해 살폈다. 그것은 길가에 놓여 있는 벽돌이나 배추밭에 있는 배추를 어떤 계기로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기면서 집착을 갖고 대하게 되는가 하는 내용과 관련된다.
그래서 운전사가 운전하는 버스로 이 상황을 비유했는데 이를 자신이 걸치는 옷이나 신발 또는 자신이 몰고가는 수레에 비유해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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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엄경이나 원각경에서 제시하는 것은 이런 현상들이 각 정신에 맺히는 내용과 함께 그 모두가 그대로 본 바탕의 진여 실재를 떠나지 않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사정은 그렇지만, 그렇다고 이를 바탕으로 일으키는 망집 현상과 생사고통을 그대로 방치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알고보면 지옥이나 아귀 축생세계에서 받는 고통도 그 본 바탕이 청정한 니르바나라는 사정은 다르지 않은데 문제는 그 당사자 자신은 그런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망집에 바탕해 그 상황에서 극심한 고통을 생생하게 받아나가는 것이 생사현실의 문제다.
그리고 그렇게 받아나가는 생사고통은 사실은 그 당사자가 처음에 망집을 바탕으로 자신의 본질이 아니고 단지 자신의 마음에 맺혀 들어온 손님과 티끌[객진]과 같은 것을 자신이라고 여기고 이에 집착을 갖고 대하는 가운데 그 자신이 좋다고 보는 것을 추구하면서 업을 행하여 결과적으로 그런 상태에 놓이게 된다는 사정까지 대강 살폈다.
왜 자신이 좋다고 보는 것을 열심히 추구한 것 뿐인데 그런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가 되는가 하는 것은 자신의 입장을 붙잡고 이를 살피지 말고 어떤 다른 주체가 그렇게 행하면 그의 상태가 이후 점차 어떻게 변화해가는가를 놓고 살피는 것이
더 이해하기 쉽다고 제시했다.
조금 더 쉽게 이해하면 현실에서 심한 고통을 받는다고 보게 되는 감옥이나 병원 입원실이나 또는 축사와 같은 곳에 수용되는 입장을 놓고 그렇게 되는 그 전후과정을 생각해보면 이 사정을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많은 비난을 받는 강도강간범죄를 행한 이가 감옥에 들어간다고 할 때 그가 그것을 원해서 그곳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가 그런 강도강간범죄를 행하는 사정도 그가 그것을 통해 좋음을 얻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임도 알 수 있다. 문제는 그가 좋음을 얻기 위해 행하는 그런 업이 그 주체가 그 순간 초점을 맞추는 그 측면에서는 좋음을 주는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자신도 좋고 남도 좋고 온 생명이 모두 좋고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고 오래오래 무한하게 좋고 이 측면도 좋고 저 측면도 좋고 두루두루 모든 측면이 좋은 것이 아닌 것이어서 그런 바탕에서 무언가 좋지 않다고 하는 그 부분이 바로 그런 주체를 그가 원하지 않는 세계로 묶어 이끌어 가게 하는 원인이 된다는 사정을 보는 것이다.
현실에서 어떤 이가 소원을 가질 때 그 소원이 성취되기 어려운 사정 그 소원의 성취가 장애가 발생하게 되는 사정 그리고 그 소원이 성취되고 나서 곧바로 허물어지는 사정도 이와 마찬가지다.
옛말에 나무를 심고 가꾸기는 힘들지만, 나무를 자르고 뽑아내기는 쉽다는 말이 있다.
이것이 바로 소원의 성취 방안과 관련된 내용이다.
현실에서도 그런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어떤 이가 어떤 지위에 올라 뜻을 펼치려고 하는데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곧바로 끌려 물러나게 되는 모습을 많이 보는데 알고보면 그 사정이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데는 그가 그 이전까지 그가 관계한 다른 이들이 모두 그런 방향으로 노력해서 그렇게 되는 것임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자신의 입장에서 지금 이 순간 이 측면에서 좋다고 보는 것이 온 생명에게 제한없이 오래오래 두루두루 좋은 것이 아니기에 바로 그 부분에서 그런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임을 살필 수 있다.
또 사정이 그렇기에 어떤 주체가 자신의 입장에서 좋다고 보는 것을 열심히 추구한 경우 그로 인해 그 주체가 이후 무량한 생사고통을 3 악도에 묶여 겪어나가게 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이는 예를 들어 자신이 매일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살생을 통해 음식을 섭취해 좋음을 누렸다면 이후에는 그에 비례해서 자신도 그런 상태에 놓이게 된다고 제시하는 것이고 알고보면 이것이 공평한 세상의 이치이기도 한 것이다.
문제는 자신이 좋음을 얻을 때는 문제가 없는 것처럼 이를 대했지만, 입장이 바뀌게 되면 그것이 모두 하나하나 그 주체가 도저히 견디기 힘든 생사현실의 생사고통의 문제가 된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록 망집에 바탕해서 현실에 임하더라도 이 관계를 넓고 길고 깊게 관해서 제한없이 모든 생명에게 좋고 좋음을 주기 위해서 노력하면 그것이 자신에게 결과적으로 가장 좋고 좋음을 가져다주게 되는 사정을 올바로 관해서 평소 그런 방향으로 자신의 소원을 추구한다면 그 문제가 해소될 수 있다고도 보게 된다.
물론 자신이 현실적으로 자신의 문제만 놓고 추구해도 이를 잘 해결하기 곤란한데 어떻게 자신이 온 생명을 제한없이 오래오래 좋고 좋음을 주는 상태를 추구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그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자신이 작은 방에서만 생활한다고 해도 그 작은 방에 어떤 생명이 들어오던 이에 대해 차별하지 않고 자신이 대하는 모든 생명을 모두 좋게 해주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각 상황에 임하면 그로 인해 그것이 성취가 되는 것이다. 그 자세로 자신이 작은 방에 임하면 그 방 범위만큼 그런 뜻이 성취가 되고 자신이 한 마을에 임하면 도 그 마을 범위만큼 그런 뜻이 성취가 되는 것이고 나중에 그런 자세로 10 억 세계를 관장하는 상태가 되어도 또 마찬가지가 된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자신이 작은 방에 임할 때 그 마음 자세로 인해 그렇게 성취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성취를 장애하고 방해하는 요소가 무언가하면 어떤 주체가 현실과 자신의 정체에 대해 잘못된 망상분별과 집착을 갖고 매순간 임하기에 그러한 수행이 원만히 성취되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결국 현실 일체가 본 바탕인 청정한 진여 실재를 떠나있는 것이 아닌데 그런 청정한 니르바나를 바탕으로 해서 어떤 주체가 생사현실 안에서 극심한 생사고통을 받아나가는 상태에 묶이는 사정은 그 주체가 망집을 바탕으로 업을 행해서 그렇게 되는 것임을 볼 수 있다.
평소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고 집착을 갖는 것이 자신과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이는 단지 이번 생 이 순간에 잠시 자신이 걸치고 활동하는 옷이나 또는 자신이 올라타서 운전을 하는 버스와 같은 것이라고 올바로 관하고
그에 대해 집착을 제거하고 수행의 방향으로 전환해 임하면 그로 인해 망집에 바탕해 생사고통을 받아나가는 상태로부터 풀려나고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그것이 곧 수행자가 취하는 수행의 기본 방향이 된다.
생사현실에 임하는 수행자도 일반인의 상황과 생사현실에 임하는 사정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 즉 일반인이 자신이 어떤 뜻을 가지면 자신이 보는 내용 가운데 자신의 몸이라고 보는 그 부분이 그 뜻에 따라 움직이고 활동하는 것처럼 수행자도 그 상황이 다르지 않다.
그런데 무엇이 다른가하면 이 내용을 놓고 일반인은 이것이 마치 세세생생 자신을 대표하는 내용이고 그 자신 자체인 것처럼 집착을 갖고 임하는데 반해서
수행자는 그것이 비록 지금 자신의 뜻에 따라 움직이고 활동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임시적으로 걸치고 있는 옷이나 수레와 같은 것이라고 여기는 한편 이 옷과 수레를 통해서 하는 활동을 통해서 그 옷과 수레와 관련된 자신이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풀려나 벗어나고 더 나아가 다른 중생들도 그처럼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생사현실에서 무량한 수명과 복덕과 지혜를 구족하고 그리고 불국토를 장엄하고 중생을 제도하고 성불하는 방향으로 자신이 걸친 그런 옷과 수레를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고자 수행에 임한다는 점이 다른 것이다.
그리고 그 차이로 인해서 그 이후 모든 차이가 나타나는 것이다. 알고보면 본 바탕에서는 일체가 다 청정한 니르바나인데 그러나 생사현실에서는 무량한 차별이 또 나타나는 사정이 바로 이것이다.
여기서 본 바탕의 측면만을 붙잡고 이것을 관하면 생사현실이 이렇든 저렇든 또 어떤 이가 수행을 하던 하지 않던 모두 무방하다고 관하면서 사정이 그렇기에 그냥 이를 방치해도 무방할 것처럼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러나 생사현실이란 측면은 비록 꿈처럼 실답지 않지만, 정작 꿈은 아닌 것이어서 그것을 그대로 방치해서 각 중생이 생사고통을 생생하고 실답게 겪어나가게 하는 것은 곤란하고 이 생사현실의 측면도 본 바탕의 측면에 준해서 청정한 니르바나의 상태에 상응하게 만들고 그런 바탕에서 생사현실의 내용까지도 좋고 좋은 상태가 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생사현실에서 수행자가 수행을 하는 방향이 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차별없이 청정한 니르바나를 원본으로 갖춘 가운데 또 그 바탕에서 나타나게 되는 실답지 않은 다른 측면의 내용까지도 모두 다 좋고 좋게 만들어 나가는 동가 홍상의 수행원리라고 할 수 있다.
어차피 차별이 없이 일체가 다 청정한 니르바나의 상태인데 그런 바탕에서 왜 하필이면 망집을 일으켜 생사고통을 무량하게 서로 주고 받아나가는 상태에 묶여 있고 또 그런 상태가 되게끔 하는 업을 해나갈 것인가. 그럴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현실에서 그런 상태에 묶이고 그렇게 되는 업을 행하게 되는 것은 사실은 그 사정을 넓고 길고 깊게 관찰하지 못하는 한편 현실 자체에 대해서 망집을 일으켜 그것을 대하기 때문에 그렇게 임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현상을 생사현실안에서 시정해내는 것이 수행의 기본적인 목표이기도 한 것이다.
보통 수행자가 앞으로 어떻게 수행을 할 것인가하는 문제가 제기되면 넓게 4 홍서원이란 골격을 가지고 이 문제를 대하게끔 된다.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이런 내용이다.
즉, 생명이 끝이 없으니, 이들을 제도하고
번뇌가 다함이 없으니, 이를 끊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량하니, 이를 배우고
불도가 위없으니, 이를 성취하겠다 이런 골격으로 서원을 갖게 된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그것을 어떻게 성취해나갈 것인가가 결국 생사현실에 임한 수행자의 구체적 수행 내용이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현실에 임하는 이들은 3 년 계획 10 년 계획 이런 식으로 계획을 세우는데 지금 좋다고 보는 내용이 있으면 이를 계속 유지하고 그것을 키워 나가려고 일반적으로 꿈을 갖고 계획을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은 비록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만, 사실 자신이 3 년 후에 생사현실에서 어떤 상태가 될 것인지는 누구나 쉽게 장담하지 못한다.
지금 연구실 상황도 마찬가지다. 10 년전을 놓고 생각하면 옆에서 같이 연구하던 연구원들이 지금은 이미 볼 수 없게 된 경우도 있고 또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어떤 좋은 상태가 있으면 그것을 무량하게 계속 유지하고 싶은 것은 일반적으로 각 주체가 공통적으로 희망하는 내용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먼저 잘 관해야 한다.
여기에서 앞에 처음 제시한 내용이 똑같이 적용된다.
나무를 심고 가꾸기는 힘이 드는데 그것을 자르고 뽑는 것은 대단히 쉽다는 내용이 여기에도 적용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그 나무가 어떤 나무인가에 따라서 그 사정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 나무가 어떤 주체가 자신에 대한 망집을 바탕으로 당장 자신에게만 자신이 초점을 맞추는 그 측면에서만 좋은 나무로서 그것을 심었다면 그것은 반대로 그것을 뽑아내고 자르고자 하는 힘이 그만큼 많은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런 경우는 그 나무 자체도 곧바로 뽑히게 될 뿐만 아니라, 그 나무를 심은 그 주체도 계속해서 그 나무 주변에 머물 수 있게 되지 않고 바삐 3 악도로 거처를 옮겨가게 되는 사정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반면 수행자도 어차피 생사현실에 일반 중생과 같이 머무는 것은 차이가 없는데 수행자의 생사현실이 일반 망집에 바탕한 생사와 다르다고 하는 점은 수행자가 발심해서 수행에 임하게 되면 그 수행자는 일반인이 받아나가는 분단생사과정을 겪지 않고 변역생사과정을 밟게 되기에 차이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위 나무를 놓고 비유하면 그 나무가 무슨 사정인지 몰라도 그 누구도 그것을 뽑아야 할 사정이 보이지 않고 오히려 그 나무를 심은 수행자의 그 취지를 이해하게 되면 어떤 이는 물을 준다거나 어떤 이는 비료를 준다거나 그런 식으로 각 주체가 자신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서 오래 오래 보전하고 가꿔야 할 나무로 대하게 되고 또 그 나무가 바람에 가지가 꺽이거나 병충해가 입게 되면 어떤 수단을 다해서라도 보호하고자 하는 그런 형태의 나무로 바뀌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수행자가 갖는 서원은 아무리 그 서원이 무량하더라도 그 서원은 쉽게 성취되고 성취가 된 이후에도 오래 유지되게 되는 사정이 있다.
또한 수행자가 키운 나무는 나무대로 사정이 그렇지만, 그 나무 주변에서 계속 그런 활동을 하고자 수행자가 서원을 가지면 또 앞의 경우와는 달리 그 생사현실을 통해서 수행자의 수행이 끊기지 않고 계속 이어져 나가게 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현실을 놓고 비유하면 감옥에 끌려가는 입장은 자신이 그것을 원하지 않지만 수사관이 그를 끝내 체포해서 그를 감옥에 가두게 되고 또 그가 탈주하면 온 시민이 이 범인을 다시 체포하기 위해 온 신경을 기울여 체포해 가두고 이후 그가 편리하게 사용하던 물품을 모두 빼앗고 사용하지 못하게끔 제한을 두게 되듯 업의 장애로 겪게 되는 생사현실의 과정도 그 사정이 마찬가지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업의 장애에 묶인 주체는 매 생사현실과정에서 포맷이 되어 끊긴 상태로 다시 엉뚱한 세계에서 삶을 살아가게끔 분단생사과정을 밟게 되는 것이다.
이 사정은 자신이 자신의 목숨이나 재산을 빼앗은 어떤 상대가 있다면 자신이 그 상대를 이후 어떻게 대하고자 하는가를 놓고 생각하면 그 사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욕계의 지옥 아귀 축생의 3 악도는 반대로 말하면 욕계의 하늘과 아수라 인간의 세계와 함께 그런 관계로 나타나게 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에서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는 것을 처음에 그 정체를 무엇으로 보고 대하는가가 중요하다.
수행자가 이 내용을 비록 자신과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걸치는 옷이나 자신이 올라타는 버스나 수레와 같은 것으로 여기고 자신이 이번 생에 이런 옷과 버스에 올라타서 어떤 방향으로 운전을 하고자 하는가 그 내용에 따라서 그런 차이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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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현실에서 수행자가 현실의 정체를 올바로 관하고 임하게 되면 일반적으로 생사고통을 겪어 나가는 현실에 생사나 오고감이 있다고 보지 않고 그럼으로써 생사를 벗어나게 된다.
그러나 생사를 벗어난다고 해서 그가 대하는 현실이 없게 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침대에 누어 바다나 황금꿈을 꾼 이가 이제 침대에 바다나 황금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대할 때 그렇다고 침대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또 꿈에서 꾼 바다나 황금꿈이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런 올바른 인식을 갖춤으로써 이제 무량한 생사현실에서 생사를 벗어나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무량한 수명과 무량한 복덕과 지혜자량을 갖추어 불국토를 장엄하고 성불하는 수행을 행할 바탕이 그렇게 마련되는 것 뿐이다.
그리고 그 생사현실에서 자신이 수행하는 것은 역시 평소 자신이 자신의 몸으로 보고 대한 그런 내용을 통해서 그런 수행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단지 달라진 것은 이전에는 그것이 자신의 본 정체라고 이해하였다면 이제 그것은 환과 같고 꿈과 같은 것으로서 생사현실에서 임시적으로 자신이 올라타서 중생을 제도하는 수행을 하는 버스나 수레와 같은 것임을 잘 이해하는 가운데 집착을 갖지 않고 생사현실에 임해 수행하는 것이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수행자는 앞에 제시한 4 홍서원을 골격으로 구체적으로 어떤 방안으로 중생을 제도하고 번뇌를 끊고 법문을 배우고 어떤 형태로 불국토를 장엄하고 성불할 것인가. 이런 계획을 서원의 형태로 잘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렇다고 당장 할 수 있는 일도 아닌 몇 겁후의 계획까지 미리 다 세세하게 살필 것은 아니지만, 최종 목표점과 그 직전 직후의 내용과 함께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지금 당장 현실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살피면 된다고 본다.
번뇌를 끊는다는 문제도 자세히 살피면 번뇌가 무량하기에 그 방안도 무량함을 볼 수 있다.
현실적으로 자신이 담배나 술 식사 운동 이런 것을 잘 조절하지 못하고 중독상태에 있다면 그것부터 하나하나 착수해서 잘 조절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도 그런 수행목표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담배 이야기가 나와서 이야기인데 드디어 한번 더 필 정도만 남아 있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담배를 더 피지 못하게 되었는데 못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못하는 것은 상황이 바뀌어서 다시 밖에 나가 담배를 구하게 되면 또 열심히 피우게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안 피우는다는 것은 상황이 이렇거나 저렇거나 자신이 담배를 안 피우게끔 자세를 갖춘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행도 마찬가지다. 3 악도에 들어가 생사고통을 겪는 것이 큰 문제라고 본다고 해서 어떤 다른 이를 당근과 채찍을 사용해서 억지로 수행에 임하게 하거나 또는 일정한 행위를 하지 못하게 만든다면 그 주체의 입장에서는 그것을 억눌려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것 뿐이다. 그것은 또 상황이 바뀌면 또 다시 그런 업을 행하는 상태가 쉽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행자가 발심을 하고 서원을 세우고 수행을 하는 것은 앞과 같은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리고 더 나아가 어떤 어려운 상황이 되어도 물러나지 않고 수행을 해나가는 상태로서 불퇴전위에 이른다는 것은 그 상태가 더욱 견고해진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처음 수행에 임하는 입장은 이런 상태에 이르기까지 수행에 정진해야 하는 것이다.
온 생명을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중생제도 사업은 수행자 자신이 우선 그런 상태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곧 온 생명을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방안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가운데 자신이 쉽게 극복하지 못하는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의 번뇌를 하나하나 제거하고 극복해가고 경전이나 게송, 다라니 이런 내용도 하나하나 익혀 나가고 그러는 가운데 자신의 서원의 성취에 점점 다가서는 것이다.
본 바탕에서는 어떤 차별을 얻을 수 없는데도 이런 노력을 하는 것은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고 또 벗아나게 하고자 하는 측면의 문제인 것이다.
올려진 노래에서 데칼코마니라는 메세지를 전하는데 데칼코마니라는 미술기법은 복사판을 만들어 내는 방안이기도 하다.
한쪽에 그림을 잘 그리고 이것을 누르면 양쪽이 다 같은 좋은 형태의 그림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한쪽에 엉터리 그림을 그리고 누르면 양쪽이 다 엉터리 그림이 나오게도 된다.
그러니 중생을 제도하고 불국토를 장엄하고자 하는 서원을 갖고 아개령입 무여열반 작전과 수행에 임하는 이는 수행자는 자신부터 망집을 제거하고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의 번뇌를 제거해내는 질적인 변화를 이뤄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야 데칼코마니를 통해 다른 중생도 그와 같이 제도해낼 수 있는 것이다.
오늘 뽑힌 무량수여래관행공양의궤는 아미타 부처님과 관련이 된 경전인 듯 한데 판본에 다라니가 많이 들어 있어서 이것을 정리하는 것이 숙제로 남아 있다.
다라니를 이렇게 살피기만 하고 다라니 하나도 외우지 않고 마치면 상당히 안타까운 일이라고 보게 된다.
그래서 다음 진언 하나를 외우기로 하였다.
...
보시를 기꺼이 행하고
금계(禁戒)․인욕․정진․선정․지계를 닦아 수지하고
닦은 선품은 모두 회향하여
모든 중생과 한 가지로 동일하게
정토에 태어나되 상품상생하여
환희지를 증득하여
위없는 보리의 기별(記別)을 받습니다.
무량수여래의 심진언을 송하겠습니다.
옴 로계새바 라라자하리 唵<引>路計濕嚩<二合>囉囉惹訖哩<二合入引>
이 진언을 한 번 염송하면
『아미타경』을 한 번 염송하는 것과 같아서
말할 수 없이 두루 비밀하고 수승하기 때문에
무거운 장애와 어려움을 깨뜨릴 것입니다.
[그 공덕이 너무 광대하므로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다].
마음 같아서는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지만, 일단 하나를 확실하게 외어야 그 다음 또 하나를 더 추가할 것이 아닌가.
옴 로계새바 라라자하리 이 진언을 분석해보건대 하나하나 글자를 떼어서 해석하면 모두 쉽게 그 의미가 파악된다.
그 다음 한글자 두글자 세글자씩 묶어서 살펴도 또 쉽게 의미가 파악된다.
6 바라밀다 수행을 원만히 성취하고 10지 가운데 초지인 환희지를 증득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기 위해 나아가고
그 기별을 받는다. 이런 의미가 바로 파악되는 것이다.
어떻게 해석했기에 그런가는 다라니는 그 자체에 뜻이 없고 그런 가운데 무량한 뜻을 담는 방편인데 그 핵심적 결론이 이미 제시되었기에 그렇게 간단하게 해석하게 되는 것이다.
외국어를 배울 때 쉽게 배우는 방안은 한쪽에 외국어를 놓고 또 다른 한쪽에 잘 번역된 문장을 놓고 이 문장은 이런 뜻이라고 반복해 외우는 것이 한 방안이다. 대부분 외국어를 능통하게 잘 하는 이들은 이렇게 외국어를 처음 익히는 것이다.
옴 로계새바 라라자하리 => 그런 뜻. 이렇게 외우는 것이 그 방안이다.
그리고 시간이 나면 옴은 => 로는 => 로계는 => 로계새는 => 로계새바는 => 이런 식으로 분석을 하면 왜 그렇게 되는지 또 다시 이해를 할 수 있게 된다고 본다.
이른바 지록위마형 해석법이다.
올려진 노래를 듣다보니 어떻게 모은 다라니인데 이렇게 좋은 것을 왜 하지 않는가. 라고 메세지를 전하는데 알고보면 다라니란 참 좋은 수행방안이다.
다라니를 왜 일일히 풀어서 거기에 담겨진 자세한 내용을 알기쉽게 제시하지 않는가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하고 알 수 없기에 미신적이라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우선 방편에 속하는 내용은 대단히 분량이 많아서 일일히 그 내용을 나열하기 힘든 사정도 있고
또 방편은 늘 선악무기의 성격을 함께 갖기에 그것을 그대로 제시할 수 없는 성격도 갖기 때문이다. 그 성격이 라이터와 같아서 좋게 사용하면 한없이 좋지만 나쁘게 사용하면 한없이 나쁘게 사용할 수도 있는 것이 방편인 것이다. 그래서 통제가 되지 않은 형태로 방편을 갖게 되면 자신도 해치고 다른 중생도 무량하게 해치게 되는 것이 또 방편인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살펴도 그 의미를 알아보지 못하는 형태로 다라니가 제공되고 수행자는 그것을 열심히 외우는 가운데 그 효용을 얻을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부처님 보살님들의 승인을 받아서 그 효용을 얻어 사용하는 방안이 좋은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 더 자세한 다라니 수행은 또 그 수행자가 불퇴전위에 이르고 나서 또 계속 닦아나가야 한다고 보게 된다.
대단히 많은 다라니가 함께 담겨 있어서 한번에 다 외우지는 못해도 그래도 그 가운데 하나는 붙잡고 외우고 또 이 다라니를 대한 경전 이름도 함께 붙여 외우면서 조각글을 마치는 것이 좋다고 본다.
-- 아래에 조각글 작성시 휴식시점에 붙인 노래가사,사진,풍광,예술작품 자료를 편집상 옮겨 붙입니다.--
mus0fl--Mathieu Boogaerts - Un Peu Trop Pres D'la Lune.lrc
mus0fl--Mathieu Boogaerts - Un Peu Trop Pres D'la Lune.mp3
mus4fl--Mathieu Boogaerts - Un Peu Trop Pres D'la Lune.mp4
>>>
https://www.youtube.com/watch?v=pt-6-NUrIwc
[00:00]Lyrics
J'aurais pas pu rêver mieux
J'aurais pas pu rêver plus fort
C'est juste là sous mes yeux
Dire qu'hier j'en rêvais encore
C'est ça c'est sûr
C'est sûr c'est ça
C'est ça j'suis sûr
C'est pas faux
C'est ça c'est sûr
C'est sûr c'est ça
C'est ça j'suis sûr
C'est pas faux
Mais c'est trop beau beau beau beau
Qu'est c'que j'fais j'tourne en rond
Qu'est c'que j'fais je m'pose ou pas
Jamais rien vu d'aussi blond
J'peux pas passer à côté ah
C'est ça c'est sûr
C'est sûr c'est ça
C'est ça j'suis sûr
C'est pas faux
C'est ça c'est sûr
C'est sûr c'est ça
C'est ça j'suis sûr
C'est pas faux
Mais c'est trop gros gros gros gros
Un peu trop près d'la lune
Un peu trop près de là
Un peu trop près d'la lune
Un peu trop près d'la dune
Une foulée plus qu'une
Oui c'est clair mais voilà
Même pas j'ose faire le pas
Même pas j'ose toucher pour voir
Tellement pleine d'éclat
J'ai du mal à la croire
C'est ça c'est sûr
C'est sûr c'est ça
C'est ça j'suis sûr
C'est pas faux
C'est ça c'est sûr
C'est sûr c'est ça
C'est ça j'suis sûr
C'est pas faux
Mais c'est trop haut haut haut haut
Un peu trop près d'la lune
Un peu trop près de là
Un peu trop près d'la lune
Un peu trop près d'la dune
Une foulée plus qu'une
Oui c'est clair mais voilà
>>>
I could not have dreamed better
I could not have dreamed harder
It's right there under my eyes
To say that yesterday I dreamed of it again
That's it's sure
It's sure it's that
That's it I'm sure
It's not wrong
That's it's sure
It's sure it's that
That's it I'm sure
It's not wrong
But it's too beautiful beautiful handsome
What am I doing I'm going around in circles
What do I do I ask myself or not
Never seen anything so blond
I can not miss out on ah
That's it's sure
It's sure it's that
That's it I'm sure
It's not wrong
That's it's sure
It's sure it's that
That's it I'm sure
It's not wrong
But it's too big big fat big
A little too close to the moon
A little too close to there
A little too close to the moon
A little too close to the dune
A stride more than a
Yes it's clear but that's it
Not even I dare to take the step
Not even I dare to touch to see
So full of brilliance
I can not believe it
That's it's sure
It's sure it's that
That's it I'm sure
It's not wrong
That's it's sure
It's sure it's that
That's it I'm sure
It's not wrong
But it's too high up high up
A little too close to the moon
A little too close to there
A little too close to the moon
A little too close to the dune
A stride more than a
Yes it's clear but that's it
>>>
나는 더 나은 꿈을 꿀 수 없었다.
나는 더 열심히 꿈꿔 왔을 수 없었다.
내 눈 바로 아래에 있어요.
어제 그것을 말하면 나는 그것을 다시 꿈꿨다.
그게 확실하다.
그것은 그것이 확실하다.
그게 확실 해요.
틀리지 않아.
그게 확실하다.
그것은 그것이 확실하다.
그게 확실 해요.
틀리지 않아.
하지만 너무 아름답고 잘 생겼어.
내가 뭘하고있어 서클에서 돌아 다닌다.
나는 무엇을해야합니까? 나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금발을 결코 보지 못했습니다.
나는 아에 놓칠 수 없다.
그게 확실하다.
그것은 그것이 확실하다.
그게 확실 해요.
틀리지 않아.
그게 확실하다.
그것은 그것이 확실하다.
그게 확실 해요.
틀리지 않아.
하지만 너무 뚱뚱해.
달에 너무 가까이있다.
조금 너무 가까이에 있어요.
달에 너무 가까이있다.
사구에 너무 가깝다.
한 걸음 더 걸음
예, 분명합니다.하지만 그게 전부입니다.
감히 내가 감히 발걸음 치지 않아.
감히 나는 감히 만나서 보지 못한다.
이렇게 광휘로 가득 차있다.
믿을 수 없어
그게 확실하다.
그것은 그것이 확실하다.
그게 확실 해요.
틀리지 않아.
그게 확실하다.
그것은 그것이 확실하다.
그게 확실 해요.
틀리지 않아.
하지만 너무 높다.
달에 너무 가까이있다.
조금 너무 가까이에 있어요.
달에 너무 가까이있다.
사구에 너무 가깝다.
한 걸음 더 걸음
예, 분명합니다.하지만 그게 전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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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Jean-Léon_Gérôme_in_his_studio
https://lh5.googleusercontent.com/-5e1vr6BHG6M/VkANdCYJ_EI/AAAAAAAALnc/yorH6E2dW5Q/w1198-h813-no/2015_1109_112339_canon.jpg https://en.wikipedia.org/wiki/File:Jean-Léon_Gérôme_in_his_studio.jpg Description Jean-Léon Gérôme in his Paris studio Date between circa 1885 and circa 1890 Source Frick Collection Author Unknownwikidata:Q4233718 Permission (Reusing this file) Courtesy of the Frick Collection/Frick Art Reference Library Archives. Licensing[edit] Public domain This work is in the public domain ● [pt op tr] fr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Flower-center141447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oers,_2010-12_CN-I,_Nebel_Schwafheim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Moers,_2010-12_CN-I,_Nebel_Schwafheim.jpg Deutsch: Panoramablick über die Felder (Bezeichnung dieses Gebietes der dortigen Einwohner) beim Moerser Ortsteil Schwafheim, eingetaucht in einen tiefen Nebel während des Sonnenunterganges an einem leicht bewölkten Wintertag im Dezember. Aufgenommen von der Düsseldorfer Straße, Teile dieser sind links im Bild zu sehen.
English: Panoramic view over the Felder (name of this area of the local inhabitants) in the Moers district Schwafheim, North Rhine-Westphalia, Germany, immersed in a deep fog during the sunset on a slightly overcast winter day in December. View from Düsseldorfer Straße. Part of this can be seen on the left side.
Español: Vista panorámica sobre el Felder (nombre local de esta zona) en el distrito Moers de Schwafheim (Renania del Norte-Westfalia, Alemania) inmerso en una espesa niebla al anochecer de un día invernal ligeramente nublado de diciembre. Tomada desde la Düsseldorfer Straße, parte de la cual puede verse a la izquierda
Français: Par un soir d'hiver en décembre, le Felder est recouvert d'un brouillard épais alors que le Soleil se couche. Vue panoramique au-dessus du Felder (c'est ainsi que les habitants du coin appelle cette région) depuis la Düsseldorfer Straße de la ville de Moers dans la Rhénanie-du-Nord-Westphalie en Allemag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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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 December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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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tennoji University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시텐 노지 대학 Shitennoji University ( 四 天王寺 大学Shitennōji daigaku ) 는 일본 오사카 ,하비 키노에 있는 사립 대학 입니다 . 학교의 전임자는 1922 년에 설립되어 1957 년 주니어 컬리지로 설립되었습니다. 1967 년에 4 년제 대학이되었으며, 1981 년에 현재의 이름을 채택하면서 남녀 공학이되었습니다. 학교는 International Buddhist University 또는 IBU 라고도 합니다. ▶▶▶ [참조링크1]en.wikipedia.org
Ivan Konstantinovich Aivazovsky (Russian: Ива́н Константи́нович Айвазо́вский; 29 July 1817 – 2 May 1900) was a Russian Romantic painter who is considered one of the greatest masters of marine art. Baptized as Hovhannes Aivazian, he was born into an Armenian family in the Black Sea port of Feodosia in Crimea and was mostly based there.[...이하 줄임...] from https://en.wikipedia.org/wiki/Ivan_Aivazovsky Title : view-of-yalta-1867.jpg!HD Info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Begonia_×_hiemalis_cv.07
Description Русский: Бегония × зимняя (Begonia × hiemalis), неизвестный сорт. Горшечное растение, выращиваемое в комнатных условиях. English: Begonia × hiemalis (unknown cultivar). Indoor pot plant grown. Date 25 May 2010, 19:49:03 Source Own work Author Kor!An (Андрей Корзун) Permission & Licensing : Wikipedia ● [pt op tr] fr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Vaiaku_Lagi_Hotel
Description English: Vaiaku Lagi Hotel Date 13 September 2012, 13:26:17 Source https://www.flickr.com/photos/lirneasia/8005363580/ Author lirneasia Permission & Licensing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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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山県立大学_Toyama_Prefectural_University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