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IENNE DAHO - Un Homme A La Mer 불기2562-07-31_대반야바라밀다경_166 Michel Berger - Jouer Du Banjo http://buddhism007.tistory.com/5055 ● [pt op tr] fr sfed--대반야바라밀다경_K0001_T0220.txt ☞대반야바라밀다경 제166권
○ [pt op tr]
♣0001-166♧
대반야바라밀다경 제166권
30.
교량공덕품-64
...
이 반야바라밀다를 한량없는 문의 교묘한 글과 뜻으로
남에게 널리 말하고 연설하며,
해석을 명확하게 하고,
이치를 분별하여
알기 쉽게 하며,
다시 말하기를
'오너라.
선남자여,
그대는 이 아주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지극한 마음으로 듣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잘 통달하여 이치대로 생각하며
이 법문에 따라 부지런히 닦고 배워야 하느니라'고 하면,
이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얻는 공덕은 앞의 것보다 훨씬 더 많으니라.
왜냐 하면 교시가여,
♣0001-166♧모든 독각과 독각의 깨달음은 모두 이 반야바라밀다에서 흘러나오기 때문이니라.
○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ETIENNE DAHO - Un Homme A La Mer.lrc
♥ 잡담 ♥반야바라밀다와 가치저울에서 가치의 측정문제
과거에 추구미 작전을 수행하면서 가치의 문제를 놓고 어떤 것이 어떤 것보다 얼마나 더 가치가 있는가를 판단하기 위해 가치저울과 가치를 재는 기본 가치저울의 추를 제시한 적이 있다.
한쪽에 심장이나 두 눈을 놓고 이와 가치비교가 문제되는 다른 것을 올려 놓아서 어느 쪽이 더 가치있는 것으로 기울게 되는가 이런 것을 비교하는 문제다.
그래서 돈으로 평가해 환산할 수 있는 가치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우선 나누게 되고 돈으로 평가해 환산할 수 있는 가치는 한쪽에 심장을 놓고 가치저울에 올려 놓으면 이것보다 가치있다고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을 기본적으로 제시하게 된다.
그래서 수행자가 생사현실에서 행하는 노력이란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가치를 갖는 것들을 가지고 자꾸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 그래서 가치 기준으로 사용하는 눈이나 심장보다 훨씬 가치가 높은 것들로 바꾸어 놓는 일을 꾸준히 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자신이 당장 어떤 한 측면에서 집착을 갖고 초점을 맞추면 동전 이나 구슬 하나에 불과한 것을 놓고도 그것이 심장보다도 더 가치있는 것으로 잘못 판단하게 되기 쉽다. 이는 일종의 망상 분별의 증폭현상과 관련된다.
자신이 대하는 그 내용에 자신이 생각하고 믿는 그런 것이 얻어지거나 있다고 여기는 가운데 그에 초점을 맞추고 눈을 가리면 그것이 자신의 두 눈이나 심장보다 가치있다고 그것을 붙잡고 늘어지는 현상이다.
추구미작전에서는 가치와 관련된 문제를 많이 다뤘는데 특히 가피 중첩관계와 생사에 묶이는 업의 장애현상과 관련되는 문제는 자신의 심장이나 두눈의 가치는 우주보다 더 가치가 높다고 여기면서 이것을 돈으로 환산하거나 비례해서 나누기가 곤란하다고 여기는 한편
그러나 더운 복날이 되면 자신의 건강이나 즐거운 맛을 위해 다른 생명을 해쳐 그 고기를 먹으면서 그런 다른 생명의 심장이나 두 눈을 구하는데는 만원을 들여도 대단히 비싸다고 생각하면서 함부로 다른 생명을 대한다는 현상이 이와 관련된다.
즉, 자신의 심장이나 두 눈은 우주보다 가치가 더 높다고 여기는데 다른 이의 심장이나 두 눈은 몇 십만원도 비싸다. 이렇게 여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주체가 그런 바탕에서 업을 행하면 행할수록 그 업의 장애에 의해 생사에 묶이고 생사고통을 받게 된다는 내용이 결국 부처님이 가르쳐 주시는 핵심이기도 하다.
그런데 생사현실 안에서 행해야 할 가장 기본되는 이런 계행의 수행도 일반적으로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이 다른 이의 두 눈이나 심장의 가치를 생명보험 회사에서 평가하는 방식으로 평가하게 되면 같은 원리로 자신의 두 눈이나 심장도 그런 평가를 받고 그와 같이 취급된다.
또 자신이 시장에서 닭이나 소의 살고기값을 몇만원으로 평가하고 구해가지고 들어오면 자신의 생명도 그와 마찬가지로 취급당하게 된다.
그런 일을 한다해도 지금 당장은 마치 봄날에 밭에 씨를 뿌리고 아직 열매가 나타나지 않을 때까지는 그로 인해 아무 일이 없다고 여기듯 그로 인해 아무일이 없게 되리라 여기지만, 사실 그 주체가 이후 생사고통을 받는 사정은 바로 그런 자세 때문인 것이다.
어떤 주체가 어떤 생사고통을 받는 것은 아무 원인이 없이 그저 우연히 재수가 없어서 어떤 생사고통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어떤 이는 평생 지내도록 별다른 고통도 받지 않고 잘 사는데 어떤 이는 매 경우마다 많은 질병과 곤란을 겪는다는 것이 아무런 사정도 없이 공연히 일어나는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런 사정에 관한 내용을 이전 조각글에 올려진 경전에서도 살폈는데 여기서는 수행을 하는 가운데 이런 수행은 저런 수행과 비교하여 어떤 것이 더 가치가 높다고 할 것인가. 또 그 사정은 무엇인가 이런 것을 부처님이 제시하는 부분이다.
다른 경전에서도 이런 가치 비교를 하는 부분이 많이 나온다. 어떤 수행을 하면 공덕을 얻는데 이런 수행을 한 경우와 저런 수행을 한 경우 각 공덕에 어떤 우열이 있는가. 이런 것을 제시하는 부분이다.
대반야바라밀다경전이 대단히 분량이 많은데 같은 구절이 대단히 많이 반복하면서 분량이 많은 것이어서 반복되는 구절을 파악하고 읽어나가면 오히려 대단히 쉽게 읽어나갈 수 있다.
그래서 오늘 살피는 분량도 내용은 긴 것 같지만, 핵심 내용은 간단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처음 세계의 4 대주와 하늘과 지옥 이런 것이 모두 갖춰진 1 세계 그리고 그런 세계가 1000 개가 모인 소천세계 다시 백만개가 모인 중천세계 그리고 다시 십억개가 모인 3천대천세계 이런 세계의 모든 생명을 다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난 독각의 깨달음에 이르게 한 것보다 반야바라밀다를 닦으라고 권하는 일이 왜 더 가치가 있다고 제시되는가.
물론 경전에서 그 사정을 이런 모든 것이 반야바라밀다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그 근거를 밝히고 있다.
이미 가치저울로 가치를 서로 비교하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는데 과거에 아난 존자가 부처님에게 부처님의 이모님이 부처님을 어릴 때 젖을 주고 키운 공덕이 크지 않은가 이런 질문을 했을 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사실 그 공덕은 대단히 크다. 그런데 부처님이 지금 제시해주는 가르침의 공덕이란, 한 생에서 어떤 이익이나 복덕을 주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무량한 생사의 고통을 벗어나게 해주고 무량한 복덕과 지혜를 구족하게 해주는 가르침인 것이다.
그래서 1 생에서 젖을 주고 키운 공덕 또한 대단히 큰 것이 사실인데 1 생의 공덕 전체를 모래 한 알로 놓는다면 무량한 생사의 고통을 벗어나게 하는 공덕은 나머지 우주에 있는 모래의 수보다 더 그 공덕이 많고 크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치 저울을 잘 사용하여 처음의 가치도 대단히 크지만, 그 다음 것의 가치는 그보다 훨씬 크고 많다. 이런 식으로 가치 저울을 사용해서 각 내용의 가치 상태를 제시해주는 것이다.
3 천 대천세계에 금은 보물을 가득 채우고 이것을 다 보시를 한다. 이러면 그 가치가 얼마만한가. 대단히 크다.
일단 우주에 가득한 금은 보물 그 자체만 놓고 보아도 그 가치가 대단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것을 다시 필요한 이들에게 무상으로 보시를 했으니 그 가치는 또 얼마나 높은가. 대단히 큰 것이다.
그런데 이것보다 경전 4 구게 하나를 외우고 그것을 다른 이에게 알려주는 것이 갖는 가치가 더 크다. 이런 내용들이 경전에서 제시된다.
그런데 이런 형태를 문제되는 각 내용의 가치를 비교하여 제시하면 앞에 제시한 내용은 가치가 별로 없고 적은 것이 아닌가 . 이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그것이 아니다.
그래서 위 경전에서도 제석천이 대단히 크다고 답을 반복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제시한 내용도 가치가 대단히 높은데 그러나 뒤의 내용은 이보다 훨씬 가치가 높다고 제시하는 부분인 것이다.
그러니 이 사정을 잘 이해하는 이는 뒤의 내용을 당연히 우선시 하고 중시해 대하지만, 그렇다고 앞의 내용을 경시하지도 않고 이 역시 함께 잘 하려고 임하는 것이다.
앞 경전에서 제시되는 내용 아라한이나 독각이란 그 각 주체가 생사의 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난 상태를 말하고 그런 독각의 깨달음이란 연기 인과의 사정을 잘 관해서 스스로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난 그런 상태를 갖게 해주는 깨달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런 깨달음은 본래 그 자체로 대단히 높은 가치평가를 받는 것이다.
그런데 사정이 그런데도 그러나 반야바라밀다를 설하고 그 수행을 권하는 것이 훨씬 더 가치있다고 부처님이 강조해 제시하고 있는 부분인 것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는 그런 독각의 깨달음도 대단히 가치가 높은데 다시 반야바라밀다의 가치를 더 높게 보는 사정이 무언가. 이것을 깊이 있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날씨가 더워서 더위를 피해 밤 늦게 글을 적기 시작하는데 벌써 지친다. 조금 쉬었다가 이어 살피기로 한다.
그것이 생사고통에서 벗어나는 독각의 깨달음을 온 우주의 생명을 대상으로 해서 제각각 다 얻게 한 것보다 그 가치가 더 높다고 경전에서 제시하는가.
반야바라밀다를 단순히 사전적으로만 풀이하면 반야바라밀다는 큰 지혜로 피안에 건넌 상태 또는 피안에 건너게 하는 큰 지혜 이런 식으로 풀이할 수 있다.
산스크리트어로는 prajñā-pāramitā 라고 적고
의역하여 혜도피안(慧到彼岸), 지도(智度), 지도무극(智度無極), 명도(明度), 명도무극(明度無極). 혜(慧)바라밀, 지혜(智慧)바라밀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피안 즉 저 언덕이라는 것은 차안 즉 이쪽 언덕이 망집을 일으켜 생사에 묶여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를 의미한다면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 생사고통을 벗어난 상태를 의미한다.
그런 피안에 깊은 지혜를 통해 이른 상태 또는 그런 피안에 이르게 하는 깊은 지혜 이런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결국 현실에서 문제되는 것을 놓고 이에 대해 그 실상을 꿰뚫어 관하는 깊은 무분별지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일반적으로 세속에서 이해하는 지혜는 왜 반야나 prajñā 라고 표현하지 않는가부터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한마디로 세속에서 지혜라고 일컫는 것은 그 바탕이 전도망상을 일으킨 상태에서 그 전도망상을 증폭시킨 상태이기 때문에 그렇다라고 할 수 있다.
간단히 생각해보자. 요즘 더위가 심하다. 거리에 서 있으면 도로에서 열기가 올라오고 자동차가 여기저기 오간다.
이 가운데 어떤 것에 대해서 궁금해서 의문을 일으킨다고 하자.
자동차가 저런 시속 40 KM 속도로 가면 얼마쯤이면 부산에 가닿을까. 또는 5 월달에 평균기온이 25 이고 7 월말에 평균기온이 30 도라고 한다면 이런 추세로 나아가면 6 개월 후에는 평균기온이 몇도가 될까.
이런 식으로 어떤 문제가 제출되면 이에 대해 답을 얻어내고자 하는 것이 지혜의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강원도 도청 소재지는 어디인가. 이런 질문에 대해 과거에 배운 내용을 가지고 답을 한다면 이는 또 지식이라고 구분해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세속에서 지혜나 지식이라고 표현하는 내용 대부분이 모두 그 바탕이 거꾸로 뒤집힌 상태에서 얻어낸 것이므로 이것은 단지 수행자가 생사현실에 임해 그런 중생을 제도하고자 할 때 그런 중생에 맞추어 그런 중생을 제도할 방편시설을 얻어내고자 하는 과정에서 요구되는 분별지혜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이것은 반야라고 칭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왜 반야 지혜는 사정이 다른가.
이것을 간단히 이해해보자.
이미 지난 조각글에서 용수보살의 중론송도 살피고 여러 내용을 살폈는데 각 경전과 논서에서 제시되는 핵심은
일반인들이 이 생사현실에는 생멸이 있고 이리저리 오고감도 있다고 보고 이런 저런 분별을 하고 임하는 상태인데 그런데 그런 생사현실에 그런 생멸이나 생사나 오고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잘 관하는 것이 요구된다.
일반적으로 생사현실에 임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내용이 오히려 이해가 안 되고 생멸이나 생사나 오고감이 있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옳은 내용이 아닌가. 이렇게 일반적으로 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세속의 분별지와 지금 살피는 반야지혜가 극과 극으로 차이가 나는 사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사정을 쉽게 이해해보자.
어떤 이가 브라질에서 아주 특이한 차를 가지고 왔다고 해보자.
이제 그 차의 맛을 맛을 본 이와 차의 맛을 보지 않은 이는 서로 차이가 난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그 차는 다른 차와 달리 어떤 맛인가. 이것이 문제가 된다고 해보자.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차의 맛이 어떤가가 문제될 때 만일 어떤 이가 그 차의 맛을 본 이를 일일히 방문해서 그 차맛에 대해 보고하는 내용을 받아 적어서 백과사전에 실어 놓고 그것이 바로 그 차맛이라고 제시하면 과연 어떨까.
아무리 수만장에 걸쳐서 그런 보고 내용을 적어 놓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차맛이 아니다라는 것을 기본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현실에서 문제되는 온갖 것이 그런데 다 이 비유와 그 사정이 같은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눈을 떠서 본 내용 귀로 들은 내용 코로 냄새 맡은 내용 혀로 맛 본 내용 손발로 얻는 촉감내용 이런 것이 무언가를 논의할 때도 사정이 같다.
그리고 그런 감각현실을 얻고 각 부분을 묶고 나누어 관념분별을 한 내용에 대해서도 사정이 같다.
그런데 이런 내용은 현실에서 그 내용을 얻는데도 그 사정이 그러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이렇게 얻는 현실 내용을 놓고 그것의 본 바탕의 내용은 무언가. 그것은 꿈과는 달리, 그 안에 참된 진짜라고 할 내용이 있는가 없는가 . 이런 것을 논의하게 되면 그 사정은 더 한층 더해지는 것이다.
이것을 언어로 분별해서 설한 것은 그런 측면에서는 조금 시원해진다고 할 수는 있는데 늘 그 언어가 가리키고 나타내고자 하는 그 자체는 그것이 아니라는 사정을 함께 이해해야 한다.
지금 반야바라밀다라는 것은 현실에서 문제되는 온갖 것을 놓고 또 특히 생사현실에서 가장 문제되는 생사고통과 관련된 문제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수행방안들을 살필 때 그것을 놓고 그 본 바탕이 되는 실재를 꿰뚫어서 그 실상을 관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임할 때 요구되는 내용인 것이다.
그래서 과학책이나 백과사전 등에서 제시되는 내용과는 그 차원이 다르게 된다는 것을 기본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만일 그렇게 임하지 않으면 결국 망집에 바탕해서 자신이 언어로 분별하고 기술한 내용이 정말 그 생사현실에 그렇게 있다고 여기면서 그런 망집을 가지고 대하는 것이어서 이런 내용을 가지고는 생사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도리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내용을 놓고 그 실상을 올바로 관하고 그 문제되는 내용을 살펴야 비로소 그 문제의 해결방안이 찾아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이 곧 무량한 기간에 걸쳐 생사에 묶인 중생을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가장 핵심이 되는 내용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겅젼에서 생사현실에서 가치가 많다고 보는 내용이 가치가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 반야바라밀다가 그보다 더 가치가 높다고 강조하게 되는 것이다.
다섯 가지 쌓임[5 온五薀-세계의 기본 구성요소 5가지]이 모두 공(空)한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괴로움과 재앙을 벗어나 건넜느니라.
사리불(舍利弗)이여,
색[色]이 공(空)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色]과 다르지 않으며,
색[色]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니,
느낌[수受]과 생각[상想]과 지어감[행行]과 의식[식識]도 그러하니라.
사리불이여, 이 모든 법의 공한 모양은
나지도 않고[불생不生] 없어지지도 않으며[불멸不滅]
더럽지도 않고[불구不垢] 깨끗하지도 않으며[부정不淨]
늘지도 않고[부증不增] 줄지도 않느니라[불멸不減].
...
그래서 반야바라밀다를 통해 생사현실의 본 정체를 살피면 결국 위와 같은 결론을 제시하게 된다는 사정을 잘 이해하고
이런 바탕에서 생사현실에 임해 각 내용을 대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게 하면 우선 그 본인자신이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풀려나 세상의 온갖 괴로움과 재앙에서 벗어나게 될 뿐 아니라,
그런 바탕에서 중생제도를 위해 다시 생사현실에 임할 때도 역시 수행을 원만히 성취해서 뒤에 나오는 것처럼 전도몽상을 멀리 떠나 니르바나의 상태를 얻고 최상의 깨달음을 얻는 상태에 이르러 성불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미 이전 조각들에서 현실에서 각 감관으로 감각현실을 얻고 그것을 각 부분을 묶고 나누어 이 부분은 영희 철수 꽃 그리고 이 부분은 자신 이런 식으로 분별을 행하는 것의 문제를 살폈는데
이제 반야바라밀다의 수행은 다시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그런 현실 내용의 본 바탕이 어떤 상태인가를 관하는 지혜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실상이 공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반야바라밀다의 핵심 내용이 된다.
만일 현실에서 문제삼고 대하는 영희나 철수 그리고 자신의 생사가 정말 실재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가지고 생사고통을 겪는 것도 그럴 듯한 일이라고 볼만한데
알고보면 이런 내용은 그 실상이 공한 가운데 꿈과 같은 성격으로 얻는 내용이어서 실답지 않다. 그런데 그 사정을 모르고 그런 망상분별에 집착해서 임하면 그로 인해서 무량겁에 걸쳐 그 상태로 업의 장애를 일으켜 그런 상태의 중생들과 얽혀서 생사고통을 겪어 나가게 된다는 의미다.
꿈이 실답지 않은 것은 꿈을 꾸는 상황에서 그 꿈을 생생하게 얻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또 꿈을 침대에 누어서 꿀 때 그 침대가 또 그렇게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꿈의 내용은 꿈에서만 생생하게 얻을 뿐 꿈에서 꾼 바다나 황금은 침대에서는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생생하게 각 감관을 통해서 각 내용을 얻고 그것은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 다양한 형태로 얻고 그것은 또 지금만 그런 것이 아니고 천년전이나 천년후나 그와 비슷한 조건에서는 비슷하게 그런 내용을 반복해 얻게 되고 그것은 또 자신만 그런 것이 아니라 비슷한 형태의 생명인 다른 영희나 철수도 다 함께 그런 내용을 얻는 것이어서 이것만 놓고 보면 그것이 대단히 실다운 내용으로 여겨지게 되고 그런 사정으로 축생들은 축생대로 아귀는 아귀대로 지옥 중생은 지옥 중생대로 각 중생들이 대하고 겪는 그 생사고통의 현실이 제각각 대단히 실답다고 여기면서 그런 생사고통을 겪어 나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눈을 뜨고 사과를 보는 가운데 그 사과를 손으로 두드리면 소리를 듣게 되고 코를 대면 사과향을 맡게 되고 입으로 먹으면 맛을 보게 되고 손으로는 촉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현실에서는 마치 눈으로 보는 그 색깔의 한 부분이 그런 소리를 얻게 하는 대상처럼 여겨지고 그런 향기를 얻게 한 대상 그런 맛을 주는 대상 그런 촉감을 주는 대상으로 여기는 가운데 이들 내용이 자신 외부에 있는 외부 세계의 내용이고 그런 감각을 주는 외부대상이고 그리고 이들은 마음밖에 있는 마음과는 별개의 외부 물질이라고 여기는 한편
이런 내용을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영희나 철수도 함께 얻고 보고하므로 이들 내용이 곧 외부의 객관적인 실재라고 여기고 이를 실답게 여기고 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반야바라밀다를 닦아 이것들의 본 바탕인 실상을 꿰뚫어 관하게 되면 그런 내용은 본 바탕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어서 이는 한 단면 한 단면의 내용 뿐만 아니라 그 모두를 모은 것 일체가 다 함께 마치 침대에서 엉뚱한 바다나 황금꿈을 꾼 것처럼 실답지 않은 것이어서 집착을 갖고 대할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깨달음을 통해서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는 해탈문이 곧 공해탈문인 것이다.
만일 자신이 지금 눈으로 이런 색을 보기에 그런 내용이 외부 실재이거나 실재영역에 그런 내용이 있다고 한다면 귀나 코나 입이나 몸은 또 이 내용을 놓고 각기 엉뚱한 내용으로서 소리나 향기 맛 촉감 등등을 얻은 것이라고 해야 한다.
또 반대로 이들 각 소리나 향기 맛 촉감을 그대로 실재한 것이라고 여긴다면 이제 또 다른 감관은 그런 내용을 놓고 각기 엉뚱한 내용을 얻은 것이라고 해야 한다.
이에 대해 행하는 관념분별도 그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의미다.
자신이 무언가를 대하여 촉감을 얻었지만, 알고보면 그것은 시각으로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고 엉뚱한 색깔이라고 보게 되듯,
본 바탕인 실재와 생사현실에서 얻는 현실 내용의 관계도 그 사정이 마찬가지라고 잘 이해해야 한다.
본 바탕인 실재 영역에 전혀 아무 것도 없다면 단순히 무라고 표현하고 그치면 될 것이다.
또 반대로 실재 영역에 현실에서 어떤 주체가 얻는 내용이 그대로 있다면 그 실재는 그런 내용이고 그런 내용이 있다고 제시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사정이 그렇지 않아서 그 실재에 전혀 아무 것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현실에서 각 내용을 위와 같은 관계로만 얻는 각 주체로서는 그 내용을 끝내 직접 얻을 도리가 없으므로 그것을 공하다라고 표현해 제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여하튼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에서 얻는 그런 내용은 일단 그런 지위에 있는 내용도 아니고 그런 내용은 아닌 그 어떤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현실에서 얻는 내용이 마치 꿈과 같이 실답지 않다는 것을 이해해주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곧 꿈에서 꾼 내용은 비록 그 꿈을 꾸는 상황에서는 생생하지만, 꿈의 내용은 그런 침대의 현실 내용의 지위에 있는 내용이 아니고 꿈을 꾸는 침대의 현실에서는 그런 내용을 얻지 못하기에 그 꿈을 실답지 않다고 하는 것과 사정이 같다는 의미다.
그래서 아무리 현실이 매 순간 생생하고 진짜처럼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처럼 여겨져도 그런 것은 본래 얻을 수 없고 실답지 않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더욱이 자신이 평소 현실에서 자신이라고 보는 내용도 사정이 같아서 자신이 아무리 생사를 겪고 여기서 태어나고 저기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것처럼 여겨져도 그런 일은 본래 얻을 수 없고 본래 자신이라고 볼 내용은 그와 무관하다. 이렇게 제시하는 내용인 것이다.
그런데 사정은 그렇지만, 그 사정을 잘 관하지 못하면 그렇게 본래 무관한 그 본래이 자신이 매번 그런 망집을 일으킨 가운데 이상한 생사현장에서 대단히 생생하고 실답게 여기면서 그 고통을 겪어 나가게 되는 것이어서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
이는 비유하면 어떤 어리석은 이가 있어서 아무리 영화나 드라마가 현실이 아니라고 설명을 해도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진짜라고 여기면서 공포를 겪고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때론 흥분해서 주변의 재털이를 영화관에 집어 던져서 영화관 관리인에게 붙들려 혼나고 하는 상황과 사정이 비슷한 것이다.
이것은 앞에서 자신이 얻은 감각현실에는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는 무상해탈문과 또 그런 바탕에서 추구하는 온갖 것이 다 업의 장애를 일으켜 그 주체를 생사에 묶이게 하는 것이니 이 일체를 마음에서 제거하고 반대로 생사의 묶임에서 풀려나게 하는 서원과 수행을 채워 넣어야 한다는 무원무작 해탈문과 함께
한 주체를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하는 3 삼매 해탈문의 내용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자신이 이 3 삼매 해탈문과 자신이 쌓아 놓은 업의 장애를 해소하는 계정혜 3 학의 수행을 통해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되면 나중에는 다시 이 3 삼매 해탈문을 통해 다시 생사생멸문으로 들어와 그 안에서 생사고통을 겪는 중생을 제도하는 수행을 해나가야 하는데 그 상황에서도 이런 해탈문을 수행하고 또 계정혜 3 학의 수행을 해나가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 사정을 원각경 등에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처음 눈병에 걸려서 허공에 없는 꽃 모습이 보였다고 한다면 이후 그것이 자신의 눈병에 의해 보이는 꽃인 줄 깨닫게 되면 비록 이후엔 그런 꽃 모습이 허공에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런 깨달음을 갖고 있기에 더 이상 그런 허공의 꽃을 집착해 그에 휘둘리거나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생멸문에 들어와 생사현실에 임해 중생제도를 위한 수행을 할 때는 한편으로는 일반 중생이 겪는 그런 망집현상을 대하게 되지만, 그러나 그런 것이 그런 것이 아님을 한편으로 잘 관하고 그로 인해 생사에 묶이지 않는 가운데 중생제도를 위한 수행에 임하게 된다는 사정을 제시하는 것이다.
뽑혀 올려진 노래에서 두 줄만 잘 해석하면 불국토의 수도인 파리를 건너는 것과 같다고 메세지를 전하는데 이런 시감상이 비록 망상분별적인 시감상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시감상에 의해 망상분별을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것은 도움이 된다고 보게 된다.
그것이 생사현실에 임하는 수행자가 생사현실에서 중생의 눈높이에 맞춰 다시 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갖추고 온갖 방편을 시설해서 중생을 제도하는 수행에 임하는 사정이기도 한 것이다.
이 두 측면을 놓고 나중에 서로 혼동을 하면 상당히 혼동을 일으키기 쉬운데 그 사정을 미리 잘 파악해야 한다고 본다.
즉 현실에서 공해탈문 무상해탈문 무원무작해탈문을 완벽하게 사용하면 현실에서 다시 어떤 것을 무엇이라고 보고 중생을 제도한다거나 수행을 어떻게 한다는 자체를 제시하기가 곤란하게 된다.
그런데 반야바라밀다 수행이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다시 생사현실에 임해서 그런 반야바라밀다를 바탕으로 그런 실상을 잘 관하는 가운데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겪는 중생을 제도하는 수행을 원만히 잘 행해나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금강경이나 반야경전 들에서 본래 제도하는 중생이나 제도할 중생이나 제도하는 행위를 얻을 수 없지만, 그런 가운데 얻을 바 없음(무소득)을 방편으로 무량한 중생을 제도해나가야 한다고 제시하고
보시하는 이나 보시받는 이나 보시하는 물건이나 보시하는 행위를 본래 얻을 수 없지만, 그런 가운데 상을 취하거나 상에 머물지 않고 무량하게 보시를 해야 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두 측면을 골고루 다 원만히 성취해야 자신도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고 다른 중생도 역시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제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이런 해탈문을 수행해도 겨우 자신만 간신히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는 아라한이나 독각의 상태에 머물고 그치기 쉬운 것이다.
이것은 비유하면 어떤 환자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병이 낫지만, 정작 그 자신이 다른 환자들의 수많은 병을 다 잘 고치는 의사나 병원장이 되지는 못한 상태라고 보기에 가치 평가를 비교할 때 반야바라밀다가 이보다 훨씬 그 가치가 높다고 제시하게 되는 사정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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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Downtown Brooklyn skyline as seen from One World Observatory in June 2015 Author MusikAnimal Permission & Licensing : Wikipedia ● [pt op tr] 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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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0418_ar37.jpg Albrecht Dürer (1471–1528) Link back to Creator infobox template wikidata:Q5580 s:en:Author:Albrecht Dürer English: The Prodigal Son ● [pt op tr] 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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