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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4-03-03_보계경사법우바제사_001 본문
『보계경사법우바제사』
K0553
T1526
우바제사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해제[있는경우]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보계경사법우바제사_K0553_T1526 핵심요약
♣0553-001♧
『보계경사법우바제사』
우바제사
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원문번역문
보계경사법우파제사
보계경사법우바제사번역기
[寶髻經四法憂波提舍飜譯之記]
보계경은 『대방등대집경[大集]』 가운데의 한 품[集]이다.
그 종지인 4법이 아득하고 깊고 오묘하며 비밀스럽기에
천친보살이 그 이해의 문을 정리해 열었다.
그 때문에 우바제사(優波提舍)라고 한 것이데,
성스럽고 자재한 힘으로 이를 실행한 그 옛날의 사람과 처소와 모임에 대한 기록이 여기에 나온다.
때는 흥화 3년 세차(歲次) 신유년 9월 초하룻날 아침 경오(庚午) 일에
오장국(烏萇國) 사람이며 찰리왕(剎利王) 종족인 삼장법사 비목지선(毘目智仙),
중천축국 바라문 구담류지(瞿曇流支),
호법대사(護法大士) 위(魏) 표기대장군(驃騎大將軍)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어사중위(御史中尉) 발해(勃海) 고중밀(高仲密),
법을 아끼는 사문 담림(曇林) 등 도속(道俗)이 함께 업성(鄴城)의 금화사(金華寺)에서 번역하였으니 4,997자(字)이다.
보계경사법우바제사(寶髻經四法憂波提舍)
천친(天親) 지음
비목지선(毘目智仙) 한역
이미령 번역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바가바께서 왕사성 기사굴산에 대비구승과 대보살의 무리들과 함께 계셨다.
■ 이때 세존께서 보계보살에게 이르셨다.
‘선남자여,
보살의 네 가지 발기정진(發起精進)1)은 보시를 여의지 않는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모든 중생들을 만족케 하는 발기정진이요,
둘째는 일체불법을 만족케 하는 발기정진이요,
셋째는 구경상(究竟相)과 수형호(隨形好)의 발기정진이요,
넷째는 불세계(佛世界)를 깨끗하게 하는 발기정진이다.’”
이와 같은 네 가지 정진과 나아가 이 수다라를 모두 설하려 한다.
이와 같은 보살의 네 가지 올바른 법은
대승경에서 모든 보살행을 섭수하여 증명하는 말씀이니,
이것을 지금 해석하려고 한다.
무슨 까닭에 저 헤아릴 수 없고 깨끗한 정근과 흔들리지 않는 가장 훌륭하고 견고한 정진의 큰 힘을 두루 갖추는 것일까?
이와 같이 세존께서 설하셨으니,
이 경의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존이신 모니왕은
한량없이 정진하시고
티 없는 정근으로 움직임 없어서
가장 훌륭하신 정진력으로
이 수다라를 설하시나니
어떤 이익이 있는 것일까?
또한 무슨 까닭에 이름을 세존이라고 하는가?
무슨 이익이 있어 왕사성에 계시는가?
무슨 까닭에 세존께서는 저 보계(寶髻)보살에게 이르시는가?
무슨 까닭에 그 보살을 이름하여 보계라고 하는가?
‘선남자여,
보살의 네 가지 발기정진은 보시를 떠나지 않는다’라고 할 때 이와 같은 보살은 어떤 종성인가?
이 뜻을 해석하고자 한다.
무슨 까닭에 네 가지 정진을 일으키되 그 수가 더 많지도 적지도 않은 것인가?
무엇이 보시이고 몇 가지 보시가 중생의 발기정진을 만족케 하는가?
이것을 해석하려 한다.
무엇이 중생인가?
있다고 해야 하는가,
없다고 해야 하는가?
만약 중생이 있다면 모든 법은 중생을 여읜다는 설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는가?
만약 중생이 없다면 더구나 모든 중생들을 만족케 한다고 말한 것과는 상응하지 않는다.
보살의 보시는 모든 중생들을 만족하게 하는가?
만족하게 하지 못하는가?
만약 모두가 만족한다면 어떤 인연으로 일체 중생들은 자각하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가?
마치 세존께서 그러한 말씀을 용왕에게 “만약 내가 설한 네 가지 법이 이미 중생을 취했다면 저 모든 중생들은 모두 다 나의 설법을 알 것이다”라고 설하신 것과 같다.
만일 만족하지 못했다면 설해진 수다라의 말을 스스로 어기는 것이다.
만약 일체 불법을 만족하는 발기정진을 말씀한다면,
그 말씀에서는 무엇을 이름하여 불법이라고 하는가?
또 어떻게 보살이 보시해야 이와 같은 일체 불법을 만족시키는가?
왜 6바라밀을 다시 설해야 하는가?
만약 저 보시가 이와 같이 일체 불법을 만족시킨다면 다섯 가지 바라밀은 없어야 할 것이다.
만약 여섯이 있다고 하면 설해진 수다라의 말을 스스로 어기는 것이다.
만일 구경상(究竟相)과 수형호(隨形好)의 발기정진을 설한다면,
상(相)과 수형호의 뜻에서 무엇이 상호(相好)인지 말해야 한다.
또한 이 뜻은 세존께서 이미 설하셨다.
만일 세존께서 구경상호(究竟相好)와 발기정진의 시(尸) 바라밀을 설하신다면 부처님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신다.
“만일 어떤 보살이 상과 수형호를 희망하여 얻고자 해서 보시한다면,
마땅히 알아야 하니,
그는 바로 집착을 취하는 보살이다.”
왜 그러한가?
여기서는 시라(尸羅:持戒)바라밀을 따라서 설하였는데 저 처소에서는 이와 같은 인연을 막으니,
이 뜻을 반드시 설해야만 한다.
만일 청정 불세계의 발기정진을 설한다면,
모든 불세계 가운데 몇 종류가 청정하고 몇 종류가 부정한가?
이 뜻을 반드시 설해야만 한다.
또 이 세존석가모니불의 세계는 청정한가,
청정하지 않은가?
만일 모두 청정하다면 『아미타장엄경』의 설과 어긋나나니,
그 경에서 여래께서 설하시기를 “나는 이제 오탁악세에 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깨닫는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만약 청정하지 않다면 무슨 까닭에 이렇게 말씀하시겠는가?
보살의 네 종류의 발기정진이 보시를 여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이 뜻을 반드시 설해야만 한다.
요컨대 무엇이 일체중생의 발기정진을 이와 같이 만족시키고 나아가 무엇이 청정불세계의 발기정진인가?
세존께서 이미 설하신 이 모든 것이 의문이다.
이와 같은 가장 무구청정(無垢淸淨)하고 훌륭한 수다라는 의문들에 대해서 그 뜻을 이제 설한다.
이 설한 법의 뜻은 무엇인가?
무슨 뜻이기에 저 걸림이 없고 헤아릴 수 없으며 더러움을 여읜 뛰어난 지혜가 불가사의한데다 훌륭한 몸과 입과 뜻이 으뜸이어서 천인과 아수라들의 공양을 받으며 고요하고 뛰어난 행이 불가사의할까?
견줄 바 없는[無等等] 빛인 여래께서는 이미 설하셨으니,
이 경의 게송에서는 말한다.
걸림 없이 광활하고 한량이 없이
수승한 지혜는 삼계의 위이시며
몸은 불가사의하시고
입과 뜻 역시 그러하여
천인과 아수라
온갖 무리에게 공양을 받는데,
무슨 까닭으로
이 위없고 때[垢)를 여읜 행을 설하십니까?
바른 가르침을 부처님께서 이미 설하셨으니
적정의 으뜸가는 행에
불가사의함이 있으시고
견줄 바 없는 광명이 있도다.
이 뜻을 이제 의심 있는 자에게 설해서 의심을 끊고 요익케 하고자 한다.
큰 모임에는 하늘도 있고 사람도 있고 아수라도 있지만,
만일 용이나 야차,
구반다 등이라면 불세존께서 보살에게 “음식이나 수레,
의복과 장식하는 갖가지 진귀한 보배와 또는 말이나 코끼리,
그리고 수도할 곳,
동산이나 놀이터,
성읍이나 취락,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곳,
혹은 물가의 땅,
아내나 자식,
머리와 눈,
손과 발,
심장과 피부 그리고 살점과 피와 골수와 상반신 등을 나누어서 보시하라”라고 설하시는 가르침을 듣고 나면
‘보살이 얼마나 발기정진하여야 이 같은 갖가지 행하기 어려운 보시를 하겠는가?’ 하고 의심을 일으킨다.
여래께서 그들에게 의심이 일어나는 것을 관찰하여 아시고 그 의심을 끊기 위하여
“선남자여,
보살의 네 가지 정진은 보시를 여의지 말아야 한다”고 하시고는 이 경을 말씀하셨다.
일체지인(一切智人:여래)께서는 이미 이 법을 설하셨으니,
이른바 보살은 보시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네 가지 발기정진에는 이와 같은 이익이 있다.
또 여래께서는 어떤 이익되는 바가 있어 이와 같은 단(檀:布施)바라밀의 시행청정(施行淸淨)함을 설하시는가?
어떤 사람이 ‘부처님께서 단바라밀의 시행청정을 설하시는 것을 듣고자 한다’고 억념(憶念)하면 듣고 나서 이익을 얻는다.
어떤 사람이 이것을 듣고자 하는가?
내가 지금 설하고자 한다.
이른바 보계 등의 여러 보살이 이와 같은 대성(大聖) 보살들과 함께 선응세계(善應世界)로부터 이곳에 이르러 갖가지 수승하고 묘한 것으로 세존께 공양하였다.
공양하기를 마치고 나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아직 보살에게 몇 가지의 정행(淨行)이 있는지를 알지 못하나이다.
부디 세존께서 들려주십시오.
저희들은 지금 듣고자 합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보살은 네 가지 정행을 갖추어야 한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바라밀의 정행이고,
둘째는 보리분법(菩提分法)의 정행이고,
셋째는 통지구경(通智究竟)의 정행이고,
넷째는 중생순숙(衆生淳熟)의 정행이다.
어떤 것이 보시바라밀의 정행인가?
그분은 어떻게 설하시는가?
세존께서는 보살의 네 가지 발기정진이 보시를 여의지 않는다고 설하신다.
이와 같은 것 등에는 이와 같은 요익이 있다.
또한 이 뜻에는 어떤 이익이 있는가?
이것을 내가 지금 설하고자 한다.
이 뜻은 자신뿐 아니라 남도 이롭게 한다.
자신과 남을 이롭게 하는 인(因)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여래께서는 자기 자신과 남을 이롭게 하는 인을 나타내 보이셨다.
이런 까닭에 이 수다라를 설하셨다.
일체지인께서는 무엇 때문에 그것을 나타내 보이셨는가?
어떤 사람이 보리심을 발한 뒤에 네 가지 발기정진으로 보시하면 그 사람은 자신과 남의 이익을 구족하니,
오직 구경상호의 발기정진만을 억념해서 불법의 발기정진을 만족시키는 것과는 다르다.
이런 까닭에 보시는 스스로 이익을 얻어서 중생의 발기정진을 만족하고 불세계의 발기정진을 청정케 한다.
이런 까닭에 보시는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얻게 하는데 이와 같이 요익케 한다.
또한 어떤 다른 이익이 있는가?
이제 이 뜻을 설하고자 한다.
만일 어떤 보살이 시지(施智)를 배우지 않았다면 그 보살로 하여금 시지를 배우게 하나니,
이와 같은 요익을 일체지인께서는 나타내 보인다.
만일 어떤 보살이 시지를 배우지 않고도 보시를 행한다면,
시(施)라고 이름할 수 있어도 바라밀은 아니다.
세존께서 단바라밀을 설하시면서 그 가운데에서 “만일 어떤 사람이 항하사 겁 동안 보시를 하였어도 시지를 배우지 않았다면,
이와 같은 보살은 시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어도 바라밀은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또 다시 어떤 이익이 있는가?
이제 이 뜻을 설하고자 한다.
만일 어떤 보살이 조금 보시를 행하고 많은 과보를 얻고자 한다면,
어떤 방편을 저 불학인(不學人)에게 써야겠는가?
일체지인께서 훌륭하신 방편(方便)으로 저 불학인을 배우게 해서 그를 이롭게 하기 때문에 이 경을 설하신다.
일체지인께서는 네 가지 방편을 나타내 보이셨으니,
이 방편으로 조금 보시를 행하고도 많은 과보를 얻는다.
이는 『선방편수다라』에서 이렇게 설한 것과 같다.
“선방편(善方便) 보살은 조금 보시하여 널리 짓는다.
널리 짓기가 무량하니 이와 같은 요익함이 있다.”
또 어떤 이익이 있는가?
이제 이 뜻을 설한다.
만일 어떤 보살이 원지(願智)를 여의고 있으면 그 보살로 하여금 원지와 화합케 한다.
이와 같은 이익을 일체지인께서는 나타내 보이시는데,
보살이 원하지 않으면 곧 보시하지 않는다.
또한 이와 같이 ‘내가 지금은 음식 등의 보시를 만족하나니,
원하건대 미래세에는 위없는 법으로 보시하여 힘[力]과 두려움 없음[無所畏]과 불공법 등을 만족할지어다.
이와 같이 부처의 법과 상과 수형호를 모두 증득하면 나는 선정불(善淨佛)의 세계를 얻으리라’고 원해서 이와 같은 이익이 있다.
또 어떤 이익이 있는가?
이제 그 뜻을 설한다.
보살이 네 가지 구족을 구하면서 그 인(因)을 배우지 않으면,
인을 배우는 이익을 일체지인께서 나타내 보이신다.
만일 네가 네 가지 구족을 구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네 가지 발기정진을 행하여 보시를 해야만 한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중승(衆僧)구족,
둘째는 지(智)구족,
셋째는 신(身)구족,
넷째는 불세계(佛世界)구족이니,
일체지인께서 나타내 보이신다.
만일 그대가 네 가지 구족을 구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네 가지 발기정진을 행하여 보시를 행해야 한다.
만일 일체 중생이 만족하는 것을 설한다면 발기정진이 중승구족을 얻고,
만일 일체 불법이 만족함을 설한다면 발기정진이 지구족을 얻고,
만일 구경상과 수형호를 설한다면 발기정진이 신구족을 얻고,
만일 청정불의 세계를 설한다면 발기정진이 불세계구족을 얻는다.
이와 같은 이익으로 자신과 남을 이롭게 하는 까닭에 이 경을 설한다.
또 어떤 뜻이 있어서 세존이라고 이름하는가?
어떤 이익되는 바가 있어서 왕사성에 계시는가?
이 두 가지 의문은 『보리심(菩提心)우바제사』에서와 같으니,
그 설을 알아야만 한다.
무슨 까닭에 보살을 보계라고 이름하는가?
이제 그 뜻을 설한다.
이와 같이 무량무수 백천아승기겁에 선근(善根)이 완성되어서 주보계(珠寶髻)를 얻었고
실로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7보를 만났으니,
이런 까닭에 저 성현을 이름하여 보계라고 하였다.
비유하면 손에 금강저를 지닌 까닭에 금강수(金剛手)보살이라고 이름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상투 속에 보배구슬이 있기 때문에 이름하여 보계라고 하였으니,
『삼선구족(三善具足)우바제사』의 그 설을 모름지기 알아야 한다.
무슨 까닭에 네 가지 정진을 일으키되 많지도 적지도 않은 것일까?
이제 그 뜻을 설한다.
이 네 가지 발기정진을 사념(思念)으로 인(因)함으로써 사념의 요익을 구족하여 구경(究竟)에 이른다.
저것에는 어떤 물건이 있어서 사념의 요익이 되는가?
이에 내가 지금 설하겠으니,
자기와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저것은 많아서도 안 되고 또한 적어서도 안 된다.
또 사념을 요익해서 구경에 이르는 것은 적다고 말할 수 없다.
이와 같은 네 종류를 세존께서는 이미 설하셨다.
비유하면 대장부가 두 다리로 길을 갈 때는
다리가 많아도 필요 없고
다리가 하나만 있어서도 갈 수 없다.
이것 또한 이와 같다.
무엇이 보시인가?
몇 종류의 보시가 있는가?
이 두 가지의 의문은 『삼선구족우바제사』의 설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무엇이 중생인가?
중생은 있는가, 없는가?
『보리심우바제사』에서와 같으니,
그 설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보살의 보시는 일체 중생을 만족케 하는가,
만족케 하지 못하는가?
이제 그 뜻을 설한다.
보살은 어떻게 만족케 하는가?
보살은 일채 중생에게 두루 마음이 평등해서 모든 물건을 희사하여 널리 중생에게 보시하나니,
모든 중생들의 소원을 만족케 하는 까닭이다.
보살은 어떻게 모든 물건과 자신이 지닌 안팎의 모든 물건을 희사하는가?
일체 중생의 해탈을 염원해서 청정심으로 희사하여 구하고,
바라는 사람이 오면 자기의 물건처럼 생각하도록 하니,
모든 중생들의 평등한 마음을 취하기 때문이다.
만일 보살의 보시가 나와 남이라는 허물을 여의고 옷과 음식 등을 보시하면,
이는 모든 중생들을 만족시킨다.
만일 취하지 않으면 이는 보살의 허물이 아니다.
보살이 모든 구하는 자에게 마음을 베푸는 것은 마치 용왕과 같다.
비유하면 용왕이 일체를 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주지만,
받지 않는다면 그것은 용왕의 허물이 아닌 것과 같다.
또 비유하면 용왕이 대밀운(大密雲)을 일으켜 허공을 덮고 평등하게 비를 내리면,
약초와 숲,
나무가 자라나고 산비탈이나 연못이 모두 만족하지만 높은 곳은 받아들이지 않나니,
이것은 용왕의 허물이 아닌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보살은 모든 구하는 사람에게 평등하게 두루 베풀지만 만일 받지 않는 자가 있다고 해도 이것은 보살의 허물이 아니다.
모든 중생들의 바람을 만족하게 하기 위하여
보살은 보시할 때에 이와 같은 소원을 짓는다.
“내가 일체 중생의 위없는 즐거움을 만족케 하기 위하여
갖가지 물건을 태어나는 모든 곳마다 베풀어 항상 모든 중생들을 만족케 할지어다.”
이런 까닭에 보살이 소원을 지어서 보시하면 태어나는 곳곳마다 커다란 부귀와 안락함을 얻으며,
그의 원력과 보시력의 훈습으로 인하여 태어나는 곳곳마다 갖가지로 보시하여 한량없는 중생들이 모두 다 만족한다.
살생 등의 갖가지 불선(不善)을 여의면 이것이 바로 두려움 없는 보시라서 모든 중생들이 두루 다 만족하나니,
세존께서 “살생을 그치게 하는 까닭에 이것이 바로 보시이니,
일체 중생이 두려워하지 않고 미워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이런 까닭에 만약 그들을 위하여 필경 열반을 나타내 보이면 한량없는 중생들이 열반의 즐거움에 안주한다.
모든 보살들이 부처의 수기를 받은 후에야 보살은 스스로 열반을 취하니,
이러한 인연으로 괴로움을 버리고 즐거움을 얻어서 이와 같이 일체중생을 만족케 한다.
어떤 것이 불법(佛法)인가?
이제 그 뜻을 설한다.
법신은 열 가지 힘[十力]과 두려움 없음[無畏]과 부처님만이 지닌 법[不共法] 등에 의지하니,
이것이 바로 불법이다.
저 일체법이 모두 불지(佛知)이니,
그런 까닭에 불법이라고 이름한다.
저 성자 문수사리가 게송에서 설한 것과 같다.
불가사의한 정각과
헤아릴 수 없는 여래는
성문 연각 등으로서는
측량할 수 없는 바이거늘
하물며 일체중생이
어찌 저 여래를 알 수 있으랴.
범부는 희론을 하지만
여래께는 희론이 없다.
오직 부처만이 부처를 잘 알며
부처는 법행(法行)에 의지하니,
스스로 그러한 몸과 마음과 지혜[自然身心智]는
부처님이 아니고서는 능히 깨닫는 이 없으리.
또한 보살은 어떻게 보시해야 이와 같은 일체의 불법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왜 6바라밀을 설해야만 하는가?
이제 그 뜻을 설한다.
실제로 여섯 가지가 있는데,
무엇 때문에 오직 보시만을 말하는가?
이제 그 뜻을 설한다.
이것은 바로 보살의 선방편의 뜻이다.
선방편 보살의 보시는 곧 능히 6바라밀을 만족시키는 것과 같으니,
『선방편(善方便)수다라』의 설과 『욱가라문(郁伽羅問)수다라』의 설에서와 같다.
재가 보살의 보시는 6바라밀을 만족시키는데,
어떻게 만족시키는가?
이른바 보살이 가지각색의 물건을 구하러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두루 다 베풀어 주되 마음으로 분별하지 않으면 이것을 단(檀:布施)바라밀이라고 한다.
보리심에 의해서 보시를 수행하면 이것을 시(尸:持戒)바라밀이라고 한다.
구걸하는 사람에게 화내지 않고 동요하지 않으면 이것을 찬제(羼提:忍辱)바라밀이라고 한다.
만일 다른 사람에게 보시하면서 내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 힘이 있으면,
이것을 비리야(毘梨耶:精進)바라밀이라고 한다.
만일 와서 구걸하는 자가 있을 때 물건을 주는데,
주고 나서 아까워하거나 후회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기뻐하면서 선한 뜻과 마음을 일으키면,
이것을 선(禪)바라밀이라고 한다.
만약 보시하고 나서 모든 법에 대해 마음으로 얻는 바가 없고 과보를 바라지 않아서 저 힐혜(黠慧:반야)로 사소한 법에도 탐착하거나 기뻐하거나 즐거워하지 않는 것과 같다면,
즉 이와 같이 집착하지 않으며 오직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소원한다면 이것을 반야(般若:智慧)바라밀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6바라밀에 만족하는 것이니,
요약하여 말하자면 모든 것을 구족하는 것이다.
또 세존께서 대승경에서 무량한 구족을 설하신 것과 같으니,
이와 같이 모든 것이 이 속에 섭수된다.
또 대지에 머무는 모든 보살들에게는 이와 같은 뜻이 있다.
저 대지에 머무는 모든 보살들의 뜻은 보시로 모든 부처님의 법을 만족시키는 것이며,
또 모든 중생들을 대치(對治)하기 때문에 세존께서 법을 설하신다.
어떤 중생에게는 보시문(布施門)으로 설하여서 모든 부처님의 법을 만족시키며,
또 어떤 중생에게는 혜문(慧門)으로까지 설하신다.
또 보살의 소원을 나타내 보이기 위함이니,
보살은 구걸하는 사람의 뜻을 만족케 하면서 이와 같이 소원한다.
“내가 그와 같이 구하는 자의 뜻을 만족케 할 것이며,
이 선근으로 일체 불법을 만족케 하기를 염원하노라.”
이렇게 설하면 곧 허물이 없다.
무엇이 상호인가?
이제 그 뜻을 설한다.
32상이란 손과 발에 바퀴 무늬가 있고,
발바닥이 평평하여 지면에 밀착되게 안주할 수 있고,
손가락 사이에 얇은 그물막이 있고,
손과 발이 부드럽고,
일곱 곳이 평평하고 원만하고,
손가락이 길고 몸집이 넉넉하고,
몸이 크고 반듯하며,
목덜미가 마치 조개와 같고,
몸의 털이 위로 감겨져 있고,
장딴지가 사슴의 발꿈치 같고,
넓적다리와 팔뚝이 평평하고,
남근이 말이나 코끼리의 것처럼 몸속에 내밀히 감추어져 있으며,
피부색이 묘한 금색이고,
털구멍 하나에 털이 하나이고,
미간에 백호가 있어 얼굴에 나타나고,
사자의 윗몸과 같고,
어깨의 앞뒤가 둥글고,
등이 평평하고 반듯하고,
맛 중의 으뜸가는 맛을 얻으며,
신체가 원만한 것이 니구타(尼拘陀)와 같고,
정수리 위가 높고 둥글고,
키가 크고 혀가 길고,
미묘한 범천의 음성이고,
사자의 뺨과 턱과 같고,
치아는 희고 고르고 평평하고 촘촘하며,
마흔 개의 치아가 있고,
눈썹은 감청색이며,
소의 왕과 같은 눈이다.
80종호는 손톱이 두툼하고 붉으며,
지문의 무늬가 둥글고,
힘줄이 깊어서 보이지 않고,
손발의 복사뼈가 평평하고,
뼈마디가 단단하며,
두 발등이 평평하고,
발바닥의 무늬가 길고,
손발이 평정(平正)하며,
지문이 깊고 매끄럽다.
혀는 차례대로 말을 하며,
입술의 색은 빈바과(頻婆果)처럼 붉고 보기 좋으며,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으며,
혀가 붉고 부드럽고 작은 것이 백상왕의 혀와 같으며,
목소리가 우레와 같아서 듣기 좋으며,
그 음성은 마치 문수의 메아리와 같다.
모든 상호를 만족하고 양 어깨가 평평하며,
몸이 정결하고 의상 또한 그러하며,
넓은 몸은 부드럽고 모든 부분이 동등하며,
차례로 선밀(善密)하고,
몸의 마디마디가 좋으며,
마디마디가 넓고 넉넉하며,
훌륭한 좌석이 원만하다.
혀는 올바르고 바른 말을 하며,
말씀은 차제가 있고,
혀를 가지런히 함이 모두 깊고,
비밀을 행하는 선왕(仙王)이 두루 기뻐할 만하며,
가장 착하고 청정하다.
어둠을 여읜 것이 번갯불과 같아서 두루 광명을 비추고,
사자우왕과 용왕 같고,
거위의 걸음처럼 오른쪽으로 돌아서 간다.
혀가 길지도 짧지도 않고 원만하고 보기 좋으며,
배와 옆구리가 튀어나오지 않고,
사악한 탐욕을 여의었으며,
몸은 검지 않고,
티끌과 악함이 없으며,
밖은 둥글고도 날렵하며,
또한 앞다리는 높이 솟아올라 있지 않고,
깨끗해서 티끌과 더러움이 없으며,
미소를 지으시니 너그러우시고,
눈은 푸른 연꽃 같고,
바라야(婆羅耶)에 머물며,
웃음은 법답고,
눈썹이 얼굴에 자리한 곳은 차례대로 상응하고,
눈썹이 반듯해서 삿되지 않고,
적지도 않고 많지도 않은지라 모든 허물을 여의어서 비난을 할 수 없고,
모두가 싫어할 수 없으며,
모든 감각기관이 뛰어나고 좋다.
이마 한가운데는 원만하고 으뜸가서 기뻐할 만하고,
얼굴과 이마는 서로 비슷하며,
윗몸은 평평하고 원만하고,
희지도 않고 검지도 않으며,
갖가지 향기가 있고,
단단하지 않고 탁하지도 않으며,
차례대로 팽팽하고,
뛰어나고 미묘한 문장으로 난제선발타마나(難提旋跋陀摩那)가 있고,
몸의 형체가 양에 적당하고,
머리카락이 가지런하여 뒤섞이지 않았다.
부처님께서는 무슨 까닭으로 이 중에서 상호구경 시바라밀을 가르쳐 보이시는가?
거기에서는 문득 차단했지만 이제 그 뜻을 설하리니,
초업(初業) 보살이 상호를 억념해서 그를 요익함을 얻고자 희망했기 때문에 방편으로 가르쳐 보이신 것이다.
그가 아직 오래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호를 사랑해서 요익을 버리고 여의더라도 비심(悲心)으로 보시하면 요익에 상응하게 되니,
이와 같기 때문에 차단한 것이다.
또 다시 만일 어떤 사람이 미묘한 색의 구경상호에 탐착하여 억념을 희망하면 그 사람을 위해서 차단이 된다.
만일 어떤 중생을 성숙하고 요익케 하려면 그에게 모름지기 가르쳐 보여야 한다.
여기에 어떤 중생이 여래 몸의 상호의 장엄을 보고 보리심을 발하기 때문에 이와 같이 설하나니 『전여신(轉女身)수다라』에서 설한 것과 같다.
또다시 아직 보리심을 발하지 않은 자에게는 요익을 가르쳐 보이고,
또한 오래 전에 보리심을 발한 자에게는 공(空)과 동등하게 상응하는 요익 때문에 차단한다.
또 복덕만족의 요익을 갖추니,
이런 까닭에 지혜가 만족의 요익을 구족함을 가르쳐 보이기 때문에 차단한다.
또 세존의 32상과 80수형호의 만족구경(滿足究竟)을 구해서 집착을 취하는 까닭에 차단한다.
또한 희락(喜樂)을 탐착하는 등의 허물을 적정으로 요익해서 그를 위하므로 차단한다.
이와 같은 인연이 있기 때문에 이 경에서는 상호구경의 요익을 차단하지 않은 것이다.
모든 불세계 가운데 몇 종류가 청정하고 몇 종류가 부정한가?
그 의미를 설하지 못한다.
그 청정하지 않은 것에는 요컨대 두 종류가 있다.
무엇이 두 종류인가?
하나는 중생상(衆生相)이고,
둘은 행상(行相)이다.
중생상은 중생의 허물이고,
행상은 행의 허물이다.
중생의 허물의 악행이란 중생이 갖가지 허망한 견해들에 의지(依止)하는 것이다.
행의 허물이란 구덩이와 흙무더기,
가시 등의 허물이다.
이와 같이 땅은 많은 음식이나 의복이나 보배 등을 수용하는 데 모두 갖추지 않는다.
이와 같이 중생의 공덕과 행공덕을 상대(相對)하기 때문에 세계가 청정하다.
그는 다시 보살의 무량한 갖가지 원력의 자재함이 마땅히 이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
모든 부처님세계의 공덕은 가없고,
보살의 원력이 자재함도 가없고,
정진을 일으키는 것 또한 가없으니,
이와 같은 갖가지를 이루 다 설할 수 없다.
또 이는 모든 불세계의 청정함 가운데 오직 일부분만을 설하였으니,
나머지는 세존의 설과 같음을 알아야 한다.
열두 가지의 모든 공덕장(功德場)이 화합하여 한 덩어리가 되면,
그 청정한 자각이이 부처의 세계를 얻는다.
무엇이 열둘인가?
첫째는 겁장(劫場)이 화합하여 모이는 까닭에 공덕장으로 얻는 것이 모두 구경이다.
둘째는 시장(時場)이 화합하여 모이는 까닭에 법행(法行) 등으로 얻는 것이 때[時]를 지나치지 않는다.
셋째는 중생장(衆生場)이 화합하여 모이는 까닭에 법지(法智)로써 얻는다.
넷째는 세계장(世界場)이 화합하여 모이는 까닭에 선정(善淨)으로써 얻는다.
다섯째는 조어중생장(調御衆生場)이 화합하여 모이는 까닭에 수레를 묶는 가죽이 없는 것으로 얻는다.
여섯째는 승장(乘場)이 화합하여 모인 까닭에 일행(一行)으로써 얻는다.
일곱째는 다라니장(陀羅尼場)이 화합하여 모인 까닭에 나머지 물건이 없음으로써 얻는다.
여덟째는 불법장(佛法場)이 화합하여 모인 까닭에 일체 외도법이 없음으로써 얻는다.
아홉째는 공덕장(功德場)이 화합하여 모인 까닭에 아첨하지 않음으로써 얻는다.
열째는 직심심심장(直心深心場)이 화합하여 모인 까닭에 본성이 맑고 태어남이 맑고 중생(衆生)의 처소가 맑음으로써 얻는다.
열한째는 성장(聖場)이 화합하여 모인 까닭에 복전을 여의지 않음으로써 얻는다.
열두째는 도량(道場)이 화합하여 모인 까닭에 앞의 부처님께서 타신 수레를 탐으로써 얻는다.
다시 이 세존 석가모니불의 세계는 청정한가,
청정하지 않은가?
이제 청정하다고 말하나니 어떻게 그것을 아는가?
세존의 마음이 선하고 청정하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제 마음이 청정하지 않아서 이 불세계를 청정하지 않다고 본다면,
이는 그의 뜻에 의지하는 까닭이다.
세존께서는 “내가 지금의 오탁악세에 출현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깨닫는다”라고 말씀하셨으니,
마치 『무구칭수다라』에서 다음과 같이 설하는 것과 같다.
“보살이 불세계를 청정하게 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그 마음을 청정하게 해야 하나니,
그 마음의 청정함에 따라서 불세계가 청정해진다.
이때 혜명 사리불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아서 이런 의심을 일으킨다.
‘만일 보살의 마음이 청정해야 불세계가 깨끗해진다면,
지금 우리 세존 석가모니불께서 보살행을 하실 때
마음이 일찍이 깨끗하지 못하여서 지금의 블세계가 이렇게 부정하다는 말인가?’
이때 세존께서 혜명 사리불의 생각을 아시고 그에게 물으셨다.
‘사리불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 사리불은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
해와 달이 청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맹인이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인가?’
혜명 사리불이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은 맹인의 잘못이지 해와 달의 허물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리불이여,
중생도 그러하다.
지혜가 없는 죄 때문에 여래세계의 청정함을 보지 못하는 것은 여래의 허물이 아니다.
사리불이여,
나의 세계는 언제나 스스로 청정하지만 네가 보지 못할 뿐이다.’
그러자 나계범왕이 혜명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대덕 사리불이시여,
그대의 뜻으로 이 불세계를 일컬어 청정하지 못하다고 말씀하지 마십시오.
지금 이 세존 석가모니의 세계는 청정합니다.’
혜명 사리불이 범왕에게 물었다.
‘이 불세계가 어떻게 청정하다는 말입니까?’
나계범왕이 말하였다.
‘대덕 사리불이여,
비유하자면 타화자재천궁의 장엄이 아주 뛰어나고 묘한 것처럼,
제가 보건대 우리 세존 석가모니의 세계도 청정한 공덕으로 장엄된 모습이 그와 같습니다.’
혜명 사리불이 다시 범왕에게 말하였다.
‘나는 지금 이 불세계가 다만 구릉이나 구덩이,
가시와 모래와 자갈과 흙과 돌,
그리고 산들과 더럽고 지저분한 것들로 가득 찬 것으로만 보입니다.’
나계범왕이 말하였다.
‘대덕 사리불이여,
그대가 그런 마음이기에 언덕과 구덩이 같은 더러운 것이 있습니다.
믿음이 청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 불세계의 더러운 것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덕 사리불이여,
만일 능히 일체중생의 마음이 모두 평등하여 심심(深心)이 청정하다면 곧 이 불세계의 청정함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때 세존께서 발가락으로 대지를 누르시자
즉시 삼천대천세계가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공덕의 진귀한 보배들로 모두 장엄된 모습이 나타났다.
그 모습은 비유하자면 보장엄불의 무량공덕승묘진보장엄세계와도 같았는데,
이때의 삼천대천세계도 그와 같았다.
대중들이 모두 그것을 보고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고 하면서 찬탄하였다.
게다가 자신들이 저절로 보배연꽃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때 세존께서 혜명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사리불이여,
너는 지금 나의 불세계가 한량없는 공덕으로 훌륭하게 장엄된 것을 보는가?’
혜명 사리불이 말하였다.
‘보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일찍이 보지도 듣지도 못하였던 것입니다.
지금 세존의 불가사의한 장엄세계의 청정함이 모조리 드러나 있는 것을 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리불이여,
우리 불세계의 청정함은 이와 같지만 하열한 중생은 부정한 모습만을 볼 뿐이다.
사리불이여,
비유하자면 모든 하늘이 같은 보배그릇으로 식사할 때
그 업력에 따라서 밥이 같지 않은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사리불이여,
중생은 똑같이 하나의 부처세계에 태어나지만 마음이 깨끗하면 세존의 세계가 깨끗한 것을 보게 된다.’”
내가 지금 이 수다라를 가늠하여 청정함을 설명하였다.
■ 요점을 말하자면
중생을 만족케 하는 발기정진은 일체중생에게 평등한 마음으로 시현하고,
불법을 만족시키는 발기정진은 자증(自證)으로 시현하고,
구경상호 발기정진은 곧 보현의 의지(依止)를 시현하고,
청정세계 발기정진은 일체중생에게 즐거움과 부(富)를 시현한다.
■ 또 이런 뜻이 있다.
첫째는 병을 싫어하는 것과 같고,
둘째는 약에 대해 듣는 것과 같으며,
셋째는 약을 바라는 것과 같고,
넷째는 병자가 사는 집과 같다.
■ 또 다시 시현하나니,
첫째는 대비력이고,
둘째는 시지력(示智力)이고,
셋째는 신심력(身心力)이고,
넷째는 직심심심수력(直心深心修力)으로서 이와 같이 시현한다.
■ 또 이런 뜻이 있다.
첫째는 일체중생을 버리지 않을 것을 설하고,
둘째는 10력(力)과 4무소외(無所畏)와 불공법(不共法) 등의 일체 불법을 얻으며,
셋째는 부처님 몸의 상호에 대해 혐오하지 않음을 얻으며,
넷째는 부처님이신 위없는 법왕(法王)이 상응하는 세계를 얻는다.
■ 또 이런 뜻이 있다.
중생을 만족케 하는 발기정진은 단바라밀과 비리야바라밀을 시현하고,
부처님의 법을 만족시키는 발기정진은 반야바라밀과 지바라밀을 시현하고,
구경상호의 발기정진은 찬제바라밀과 방편바라밀을 시현하며,
부처님세계를 청정하게 하는 발기정진은 시바라밀과 선바라밀을 이와 같이 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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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발기(發起)란 어떤 물체가 처음으로 생기는 것 또는 다른 사람을 일으켜 세워서 어떤 일을 하도록 시키는 것이다.
발기정진(發起精進)은 발근정진(發勤精進)이라고도 하는데,
부지런히 노력을 일으키는 것이다.
○ [pt op 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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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 value 불기2564/03/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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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ed--보계경사법우바제사_K0553_T1526.txt ☞우바제사 sfd8--불교단상_2564_03.txt ☞◆vowu1363 불기2564-03-03 θ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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