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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64-09-28_방광반야경-K0002-004 본문

과거조각글/불기2564(2020)

불기2564-09-28_방광반야경-K0002-004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20. 9. 28. 13:05



®


『방광반야경』
K0002
T0221

제4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안내

○ 해제[있는경우]
● TTS 음성듣기 안내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방광반야경』 ♣0002-004♧





제4권





♥아래 부분은 현재 작성 및 정리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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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放光般若經卷第四

방광반야경 제4권


서진 우전국 무라차 한역
소진홍 번역


19. 문마하연품(問摩訶衍品)

그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큰 서원입니까? 
세존이시여, 
보살이 대승에 나아가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이 승(乘)을 타고 마땅히 어느 곳에 이르는 것이며, 
누가 마땅히 이 승을 이루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6바라밀이 보살마하살의 대승이다. 
여섯 가지는 무엇인가? 
단(檀)ㆍ시(尸)ㆍ찬(羼)ㆍ유체(惟逮)ㆍ선(禪)ㆍ반야(般若) 바라밀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보살의 단바라밀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보시하는 뜻은 살운야(薩云若)에 상응하여 내외에 가지고 있는 바를 보시하며 이미 가지고 있는 공덕은 중생에게 빠짐없이 베풀며 중생과 함께 아뇩다라삼야삼보를 발하는 것이 보살마하살의 단바라밀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시바라밀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계를 지킬 때 살운야에 상응하는 뜻을 발하여 스스로 10선(善)을 가지며, 
타인에게도 10선을 행할 것을 가르친다. 
그러나 또한 그것에 의지함이 없어야 한다. 
이것이 보살이 계를 무너뜨리지 않고 의지함이 없는 데 응하는 것이 된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찬바라밀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스스로 인지(忍地)를 구족하며, 
또 타인에게 권하여 인욕을 행하게 하면서도 의지함이 없는 것이 보살마하살이 찬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유체바라밀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의 뜻은 살운야에 상응하여 다섯 바라밀을 폐하지 않고 또 중생에게 다섯 바라밀을 세우게 하면서도 의지하지도 않는데, 
이것이 보살의 유체바라밀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선바라밀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살운야의 뜻으로써 스스로 구화구사라(漚惒拘舍羅)를 가지고 모든 선(禪)에 들어가서 선을 따라 생하는 것도 없으며 또한 다시 타인을 가르치며 선을 행하게 해도 의지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보살의 선바라밀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보살의 반야바라밀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살운야의 뜻으로 모든 법에 들어가지 않고 모든 법의 성품을 관하면서도 의지하지 않는다. 
또한 다른 사람도 모든 법에 들어가지 않고 모든 법의 성품을 관하게 하면서도 의지함이 없게 가르친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반야바라밀이며,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마하연(摩訶衍)이다.
또 수보리여, 
다시 마하연이 있는데 내공(內空)ㆍ외공(外空)ㆍ유무공(有無空)이 이것이다.
어떤 것을 내공이라고 하는가? 
내법(內法)으로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를 말하는 것이다. 
눈은 본래 공해서 번뇌[垢]에 집착하지 않고 또한 파괴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본래 성품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귀에서는 귀가 본래 공하고, 
코에 있어서는 코가 본래 공하고, 
혀에 있어서는 혀가 본래 공하며, 
몸에 있어서는 몸이 본래 공하고, 
뜻에 있어서는 뜻이 본래 공하여 또한 번뇌에도 집착하지 않고 또한 파괴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본래 성품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내공(內空)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외공이라고 하는가?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세활(細滑)ㆍ법(法)을 말하는 것이다. 
색은 본래 공해서 번뇌에 집착하지 않고 또한 파괴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색의 본래 성품이 그러하기 때문이며, 
성ㆍ향ㆍ미ㆍ세활ㆍ법도 모두 그러하다. 
왜냐하면 본래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외공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내외공이라고 하는가? 
안으로 6쇠(衰), 
밖으로 6쇠가 내외법이다. 
외법으로써 하면 내법이 공하며, 
내법으로써 하면 외법이 공하다. 
또한 집착하지도 않고, 
또한 파괴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본래 성품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내외공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공공(空空)이라고 하는가? 
모든 법이 공함과 모든 법이 공하다는 생각을 가진 공도 공하다. 
이것을 공공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대공(大空)이라고 하는가? 
팔방과 상하가 모두 공한 것을 대공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최공(最空)이라고 하는가? 
니원(泥洹)에 집착하지도 않고, 
파괴하지도 않는다. 
이것을 최공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유위공(有爲空)이라고 하는가? 
집착하지도 않고 파괴하지도 않으니 삼계가 본래 공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유위공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무위공(無爲空)이라고 하는가?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다르지 않음에 머물며 집착하지도 않고 파괴하지도 않는데 모두 공한 것이다. 
왜냐하면 본래 공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무위공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지경공(至竟空)이라고 하는가? 
변제(邊際)를 가히 얻을 수 없는 것이니, 
이것을 지경공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원공(原空)을 얻을 수 없다고 하는가? 
모든 가히 온다고 인정하는 것도 어디로부터 오는지를 알 수 없어서 처소가 없으므로 이것을 원공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무작공(無作空)이라고 하는가? 
모든 법에서 버릴 것이 없는 것을 무작공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성공(性空)이라고 하는가? 
모든 법의 성품과 유위ㆍ무위의 성품은 나한ㆍ벽지불과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지은 것이 아니다. 
이것을 성공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제법공(諸法空)이라고 하는가? 
모든 법이란 5음ㆍ12쇠ㆍ18성ㆍ유위법ㆍ무위법이다. 
이것이 모든 법이며 집착하지도 않고 파괴하지도 않는 것이 모든 법의 성품이다. 
이것을 제법공이라고 한다. 
무엇을 자상공(自相空)이라고 하는가? 
색상(色相)과 소수상(所受相)과 소지상(所持相)과 소유상(所有相)과 느끼는 상[所覺相]과 나아가 유위ㆍ무위상에 이르기까지와 유위ㆍ무위상에서부터 모든 법은 다 공하다. 
이것을 자상공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무소득공(無所得空)이라고 하는가? 
처음부터 집착함도 없고 파괴됨도 없어서 무소득법에 이르는 것이며, 
또 얻을 것이 없는 것을 무소득공이라고 한다. 
무엇을 무공(無空)이라고 하는가? 
그 가운데에 소견(所見)이 없는 것을 무공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유공(有空)이라고 하는가? 
모든 법에는 우연이 없으며, 
모든 것이 화합한 가운데도 모두 실(實)이 없다. 
이것을 유공이라고 한다. 
무엇을 유무공(有無空)이라고 하는가? 
모든 것이 모인 가운데도 또한 실이 없다. 
이것을 유무공이라고 한다.
또한 수보리여, 
유는 유위공을 쓰고, 
무는 무위공을 쓰며, 
이(異)는 이위공(異爲空)을 쓴다. 
어떤 것을 유(有)라고 하는가? 
유라는 것은 5음의 성품[性]을 말하는 것인데, 
이 성품은 성품으로써 공하며 이것을 유공(有空)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무(無)라고 하는가? 
무위공이므로 이루는 바가 없고, 
이루는 것이 없으므로 공한 것이다. 
공이란 지혜로 지은 것이 아니고 견해로 지은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여사공(餘事空)이라고 하는가? 
부처가 있든 부처가 없든 법성ㆍ법ㆍ고요함ㆍ여여함과 나아가 진제(眞際)에 머무는 것도 이와 같다. 
그러므로 이것을 이공(異空)이라고 하며 여사공이라고 한다. 
수보리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고 한다.



수보리여, 
다시 마하연이 있는데 무엇을 마하연이라고 하는가? 
107삼매에 각각 이름이 있다. 


어떤 삼매를 수능엄(首楞嚴)삼매라고 이름하는가? 
무엇을 수능엄삼매라고 하는가? 
모든 삼매문이 나아가서 모이는 곳이며, 
모두 와서 그 가운데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능엄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또 삼매가 있으니, 
보인(寶印)이라고 이름한다. 
어떤 것을 보인삼매라고 하는가? 
모든 삼매가 소유한 인(印)을 모두 인정한다.
또 삼매가 있으니 사자유희(師子遊戱)삼매라고 이름한다. 
무엇을 사자유희라고 하는가? 
이 삼매에 머물면 빠짐없이 모든 삼매 가운데서 유희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월(月)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능히 광명으로 모든 삼매를 비출 수 있다. 
또 월당(月幢)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를 지닐 수 있다. 
또 제법상(諸法上)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가 그 가운데에서 생겨나온다. 
또 조정(照頂)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광명으로써 모든 삼매 위를 비출 수 있다.
또 법성필(法性畢)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법을 결정코 알 수 있는 것이다. 
또 필조당(必造幢)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 가운데서 반드시 견고한 당(幢)을 가지게 된다. 
또 금강(金剛)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가 이 삼매를 감당할 수 없다. 
또 법소입인(法所入印)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법인(法印)과 서로 상응할 수 있다. 
또 안주(安住)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바로 모든 삼매에 머물 수 있다.
또 방광명(放光明)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곧 모든 삼매를 두루 비출 수 있다. 
또 세진(勢進)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이 세력으로 모든 삼매를 가르칠 수 있다. 
또 등보(等步)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를 평등하게 행할 수 있다. 
또 입변재교수(入辯才敎授)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를 변별하여 알 수 있다. 
또 과량음성(過量音聲)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무량한 명자(名字)삼매에 들어갈 수 있다.
또 조처처(照處處)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서 능히 두루 모든 방면을 비출 수 있다. 
또 총지인(總持印)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인(三昧印)을 가질 수 있다. 
또 불망(不忘)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를 잊지 않는다. 
또 일체법소취해(一切法所聚海)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능히 일체 모든 삼매를 평등하게 행할 수 있다. 
또 허공보(虛空普)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두루 모든 삼매를 만족하게 할 수 있다.
또 금강부(金剛部)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부(三昧部)를 가질 수 있다. 
또 보승(寶勝)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번뇌[垢濁]로부터 항복받을 수 있다. 
또 치염(熾炎)삼매에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능히 빛의 광염(光炎)으로 모든 삼매를 비출 수 있다. 
또 무원(無願)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법에서 취함이 없다. 
또 심주(審住)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법에 주처(住處)가 있다는 것을 보지 않는다.
또 선택(選擇)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서 생각하는 의념상(意念想)이 없다. 
또 무구등(無垢燈)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서 등불과 같이 밝음을 갖는다. 
또 무한광(無限光)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 한량이 없다. 
또 작광명(作光明)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서 능히 곳곳을 비출 수 있다. 
또 보조명(普照明)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가 모두 다 눈앞에 현전한다.
또 정요(淨要)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등정(等淨)삼매를 체득할 수 있다. 
또 무구광(無垢光)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의 번뇌를 없애 버릴 수 있다. 
또 조락(造樂)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의 즐거움을 받는다. 
또 전명(電明)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를 등불과 같이 밝게 비춘다. 
또 무진(無盡)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다하지 않음으로 다함을 보지 않는다.
상위(上威)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 가운데서 위덕(威德)이 홀로 우뚝하다. 
또 필진(畢盡)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를 보되 볼 수 있는 바를 다해 보지 않음과 같다. 
또 부동(不動)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를 움직이지 않고, 
지각하지도 않고 희론(戱論)도 없다. 
또 불별(不別)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이별을 보지 않는다. 
또 일등(日燈)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문을 비춘다.
또 월무구(月無垢)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능히 모든 삼매의 어둠을 제거할 수 있다. 
또 정광명(淨光明)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서 네 가지 걸림이 없는 지혜[四無礙慧]를 분별한다. 
또 작명(作明)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문을 위해서 빛을 만든다. 
또 조작(造作)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를 위해서 필경(畢竟)을 짓는다. 
또 제혜(諸慧)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혜를 볼 수 있다.
또 금강(金剛)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를 결단할 수 있다. 
또 주의(住意)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동요하지도 않고 흔들리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으며, 
또한 의상(意想)이 없다. 
또 현명(現明)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 가운데서 모든 것을 다 밝게 볼 수 있다. 
또 안립(安立)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 편하게 처한다. 
또 보적(寶積)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널리 모든 삼매의 보배를 볼 수 있다.
또 법인(法印)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로부터 나오는 인(印)이나 인 아닌 것도 모두 법인을 할 수 있다. 
또 등(等)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법이 등(等)에서 벗어남을 볼 수 없다. 
또 기락(棄樂)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즐거움을 다 버릴 수 있다. 
또 과법정(過法定)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법의 어둠을 멸해서 모든 삼매 위에 있게 된다. 
또 산결(散結)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를 나누어 쓸 수 있다.
또 해제법구(解諸法句)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와 모든 법구(法句)를 알 수 있다. 
또 등문자(等文字)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여러 가지 문자를 얻을 수 있다. 
또 필자(畢字)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한 글자도 보지 않는다. 
또 단인연(斷因緣)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인연을 끊을 수 있다. 
또 무태(無態)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법태(法態)를 얻지 않는다.
또 무행(無行)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법의 행을 보지 않는다. 
또 무굴행(無屈行)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의 굴 속 같은 행이 없다. 
또 필음(畢陰)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음(陰)을 청정하게 할 수 있다. 
또 주행(主行)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의 행을 볼 수 있다. 
또 불기(不起)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가 일어남을 보지 않는다.
또 도경계(度境界)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경계를 통과할 수 있다. 
또 취제선(聚諸善)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법과 모든 삼매를 얻을 수 있다. 
또 지선(止選)삼매가 있으며, 
이삼매에 머물면 뜻이 타락하지 않는다. 
또 청정화(淸淨華)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의 청정화를 얻는다. 
또 주각(主角)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 7각의(覺意)가 있다.
또 무한변(無限辯)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한량없는 변재를 얻을 수 있다. 
또 무등등(無等等)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곧 등차가 없는 평등[無等等]을 얻을 수 있다. 
또 도제법(度諸法)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삼계를 초월할 수 있다. 
또 결단(決斷)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능히 모든 법을 볼 수 있으며, 
모든 삼매의 일을 결단함을 볼 수 있다. 
또 산제호의(散諸狐疑)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법과 삼매가 흩어짐을 체득한다.
또 무주(無住)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법처(法處)를 보지 않는다. 
또 일행(一行)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법에 둘[二]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또 중생소입(衆生所入)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중생도 보지 않고 또한 들어갈 곳도 보지 않는다. 
또 일사(一事)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의 일을 보지 않는다. 
또 염해중사(厭該衆事)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다름이 있음을 보지 않는다.
또 산제생사로원(散諸生死勞怨)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것을 싫어하는 삼매를 속히 얻어서 지혜가 들어가는 곳마다 깨닫는 것이 없다. 
또 중행음소입(衆行音所入)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온갖 행의 음성이 모두 다 쫓아옴을 얻는다. 
또 탈제음향자(脫諸音響字)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가 소리와 문자에서 벗어남을 볼 수 있다. 
또 연거(然炬)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 가운데서 위덕이 홀로 밝다.
또 정상(淨相)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능히 일체의 삼매상(三昧相)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 
또 무준(無准)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서 끊어짐을 볼 수 없다. 
또 구족중사(具足衆事)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서 모두 구족함을 얻을 수 있다. 
또 불원고락(不願苦樂)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 고락이 있음을 보지 않는다.
또 사불감(事不減)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가 다함이 있음을 보지 않는다. 
또 지적(持迹)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를 빠짐없이 볼 수 있다. 
또 사정취(邪正聚)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서 사(邪)와 정(正)을 보지 않는다. 
또 멸에쟁(滅恚諍)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서 성냄과 다툼을 보지 않는다. 
다시 무에(無恚)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법과 모든 삼매에서 성냄이 있음과 성냄이 없음을 보지 않는다.
또 무구광(無垢光)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서 광명도 보지 않고 또한 번뇌[垢]도 보지 않는다. 
또 주요(主要)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서 중요하지 않음을 보지 않는다. 
또 명월만무구염(明月滿無垢炎)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을 원만하고 구족하게 함이 마치 보름달과 같다. 
또 대장식(大莊飾)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능히 모든 삼매를 보기 좋게 장엄할 수 있다.
또 여세간작광명(輿世間作光明)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광명이 널리 시방과 모든 법을 비춘다. 
또 삼매가 있는데 삼매등(三昧等)이라고 이름하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법에서 산란함도 보지 않고, 
또 선정도 보지 않는다. 
또 무분(無忿)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서 분한 마음이 없다. 
또 무의무굴무락(無倚無窟無樂)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서 소굴(巢窟)을 보지 않는다.
또 최여(最如)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서 여여(如如)함을 굴리지 않는다. 
또 삼매가 있는데 신해(身骸)라고 이름하며, 
이 삼매에 머물면 이러한 삼매의 성품을 보지 않는다. 
또 삼매가 있는데, 
단구행여공합(斷口行輿空合)이라고 이름하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 언어가 있음을 보지 않는다. 
또 삼매가 있는데 허공본탈무색(虛空本脫無色)이라고 이름하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법이 본래 공함을 체득한다.
수보리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마하연이라고 한다.





20. 다린니품(陀隣尼品)

또한 수보리여, 
또 마하연이 있는데 무엇을 마하연[衍]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4의지(意止)가 이것이다. 
무엇을 4의지라고 하는가? 
보살이 스스로 자신의 몸을 관하고 타인의 몸도 관하고, 
안팎의 몸을 관하고 난 뒤에는 몸에 대한 생각[身想]도 없으며, 
의지함도 없다. 
행동하든 고요하든 항상 세간의 어리석음으로부터 고뇌가 있음을 생각한다. 
안의 통(痛)ㆍ의(意)ㆍ행ㆍ법을 관하고, 
밖의 통ㆍ의ㆍ행ㆍ법을 관하고, 
안팎의 통ㆍ의ㆍ행ㆍ법을 관한다. 
행하든 고요하든 항상 세간의 어리석음과 고뇌를 생각한다.
수보리여, 
어떻게 보살은 내신행(內身行)을 관하는가? 
보살은 스스로 행할 만하면 행할 줄 알고, 
머물 만하면 머물 줄 알고, 
앉을 만하면 앉을 줄 알고, 
누울 만하면 누울 줄 알고, 
몸이 행하는 바를 모두 스스로 안다. 
이것을 보살이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행동하든 고요하든 항상 세간의 고뇌를 생각한다.
또 수보리여, 
보살은 출입하고 나아가고 멈출 때 침착하고 주의 깊게 하며 망령되지 않게 쳐다보고 좌우로 앉고 누울 때도 침착하고 주의 깊게 하고 3법의(法衣)를 입고 위의(威儀)를 잃지 않아야 한다.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보살은 스스로 안팎의 몸을 관하고, 
행하는 것도 이와 같이 하되 의지함이 없다. 
보살은 항상 호흡의 출입을 관하며, 
호흡이 긴 줄 알며, 
호흡이 짧은 줄 안다. 
비유하면 도륜(陶輪)과 같아서 그 느리고 급함을 조절한다. 
보살은 뜻과 식이 함께여서 함께 나오고 함께 들어감을 스스로 안다. 
이것을 보살이 안으로 몸의 행을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행동하는 고요하든 항상 세간의 어리석음ㆍ괴로움ㆍ환난을 생각한다.
또한 수보리여, 
이처럼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항상 몸은 지ㆍ수ㆍ화ㆍ풍의 네 가지 원소로 되어 있다는 것을 관해야 한다. 
비유하면 소를 잡는데 네 부분으로 나누는 것처럼 보살은 몸이 네 가지로 분별됨을 관해야 하며, 
근본으로부터 지말[末]에 이르기까지 이와 같은 것이다. 
이것을 보살이 안팎의 몸을 관하는 것이라고 하며, 
또한 의지함도 없는 것이다.
또한 수보리여, 
보살은 몸이 머리에서부터 발까지 단지 부정(不淨)한 것만 있음을 관해야 한다. 
머리카락ㆍ털ㆍ손톱ㆍ치아와 근육ㆍ뼈ㆍ5장(藏)ㆍ36물(物)에 어떤 탐할 만한 것이 있겠는가? 
비유하면 농가에 농기구와 오곡이 가득하지만 눈 밝은 선비가 열어 농기구를 분별하여 아는 것과 같다. 
보살은 몸을 관하되, 
몸 가운데 있는 것도 이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보살이 스스로 안의 몸을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행동하든 고요하든 항상 세간의 어리석음ㆍ애착ㆍ고통을 생각하며 또한 그것을 의지함도 없어야 한다.
또한 수보리여, 
보살은 사람을 관해야 한다. 
처음 죽은 날로부터 닷새가 지나 살이 문드러지고 악취가 나고 신체는 점점 무너져 더러운 물이 줄줄 흘러나오니 깨끗한 곳이 없다. 
혹은 날아다니는 새가 쪼아 먹기도 하고 걸어 다니는 짐승이 먹기도 한다. 
혹은 반을 먹다가 내버리니 보기 흉하게 드러나서 깨끗하지 못하다. 
혹은 어떤 죽은 자는 근육과 뼈가 흩어지며 해골에서 피고름이 흐르기도 하다. 
어떤 죽은 자는 피와 살점이 이미 다 없어지고 근육과 뼈로 서로 연결되었고 그 가운데 해골이 으스러진 것은 마디마디가 다른 곳에 흩어져 있다. 
혹은 죽은지 오래되어 해골이 청백색인 것도 있으며, 
혹은 부패하여 파괴된 것도 있으며, 
혹은 썩어서 땅과 같은 색이 된 것도 있다.
보살은 모두 이와 같이 관해야 하며, 
이와 같이 관한 후에는 도리어 내 몸은 이 법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으며 아직 떠나지도 못했으며, 
마땅히 그러하리라고 헤아려야 한다. 
이것이 보살이 안으로 몸의 법을 관하는 것이며, 
다른 사람의 몸도 관하는 것이며, 
의지하여 탐할 것도 없는 것이다. 
행동하든 고요하든 항상 세간의 어리석음ㆍ괴로움ㆍ재난과 환난을 생각한다. 
스스로 각의법(覺意法)을 관하며, 
또한 타인의 각의법도 관해야 한다. 
분별하고 생각하는 어리석음과 미혹의 뜻을 끊어야 한다. 
수보리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고 한다.
수보리여, 
또 마하연이 있는데 점점 4의단(意斷)1)을 수지하여 나아가야 한다. 
무엇이 넷이 되는가? 
악의법(惡意法)이 아직 생기지 않았으면 즐겁게 익히고 정진하고 뜻을 섭수하여 생기지 않게 한다. 
악의법이 이미 일어났으면 또 즐겁게 정진하고 뜻을 섭수하고 익혀서 끊게 한다. 
아직 생기지 않은 선한 일과 법을 가지려면 기쁜 뜻으로 정진하고 익혀서 생기게 한다. 
이미 생긴 선한 법의 생각들은 널리 구족하게 나타내어 잊지 않게 한다. 
또한 다시 기쁘게 정진하고 익히고 뜻을 섭수하여 나아가면 이루어진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미하연이라고 한다.
수보리여, 
또 마하연이 있는데 4신족(神足)이 이것이다. 
무엇이 넷이 되는가? 
이미 즐거움의 선정[樂定]을 얻어서 모든 지은 행동을 없애고 신족을 총섭(總攝)한다. 
정진의 선정[精進定]으로 모든 지은 행동을 없애고 신족을 총섭한다. 
뜻을 지닌 선정[持意定]으로 모든 지은 행동을 없애고 신족을 총섭한다. 
지혜의 선정[智之定]으로 모든 지은 행동을 없애고 신족을 총섭한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고 한다.
수보리여, 
또 마하연이 있는데 5근(根)이 이것이다. 
무엇을 5근이라고 하는가? 
신근(信根)ㆍ정진근(精進根)ㆍ지근(志根)ㆍ정근(定根)ㆍ지혜근(智慧根)이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고 한다.
수보리여, 
또 마하연이 있는데 5력(力)이 이것이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신력(信力)ㆍ정진력(精進力)ㆍ지력(志力)ㆍ정력(定力)ㆍ지혜력(智慧力)이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고 한다.
수보리여, 
또 마하연이 있는데 7각의(覺意)가 이것이다. 
무엇이 일곱 가지인가? 
지각의(志覺意)를 가지는 것이며, 
법각의(法覺意)를 가지는 것이며, 
정진각의(精進覺意)를 가지는 것이며, 
열희각의(悅喜覺意)를 가지는 것이며, 
신각의(信覺意)를 가지는 것이며, 
정각의(定覺意)를 가지는 것이며, 
나아가서는 이러한 각의(覺意)를 가졌다는 집착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고 한다.
수보리여, 
또 마하연이 있는데 현성팔품도(賢聖八品道)가 이것이다. 
무엇이 여덟 가지가 되는가? 
정견(正見)ㆍ정념(正念)ㆍ정언(正言)ㆍ정행(正行)ㆍ정업(正業)ㆍ정습(正習)ㆍ정지(正志)ㆍ정정(正定)이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고 하며, 
또한 의지할 것도 없는 것이다.
수보리여, 
또 마하연이 있는데 3삼매(三昧)가 이것이다. 
무엇이 세 가지가 되는가? 
공삼매(空三昧)ㆍ무상삼매(無相三昧)ㆍ무원삼매(無願三昧)이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고 한다.
또 마하연이 있는데 온갖 지혜[慧]를 갖고 있는 일이다. 
고혜(苦慧)ㆍ습혜(習慧)ㆍ진혜(盡慧)ㆍ도혜(道慧)ㆍ소혜(消慧)ㆍ무소기혜(無所起慧)ㆍ법혜(法慧)ㆍ명혜(明慧)ㆍ각각지타인소념혜(各各知他人所念慧)ㆍ진혜(眞慧)이다.
무엇을 고혜라고 하는가? 
고통을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을 고혜라고 한다. 
무엇을 습혜라고 하는가? 
나쁜 습관은 없애고 끊어버리면 이것을 습혜라고 한다. 
무엇을 진혜라고 하는가? 
모든 고통스런 일들을 모두 소멸하는 것을 진혜라고 한다. 
무엇을 도혜라고 하는가? 
현성팔품도를 도혜라고 한다. 
무엇을 소혜라고 하는가? 
음욕ㆍ성냄ㆍ어리석음이 모두 다하는 것을 소혜라고 한다. 
무엇을 불기혜(不起慧)라고 하는가? 
생사를 받지 않는 곳을 불기혜라고 한다. 
무엇을 법혜라고 하는가? 
5음을 끊을 줄 아는 것을 법혜라고 한다.
무엇을 명혜라고 하는가.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가 무상하며, 
색ㆍ성ㆍ향ㆍ미ㆍ세활ㆍ법도 또한 무상한 것을 명혜라고 한다. 
무엇을 각각지타인소념혜라고 하는가? 
일체 중생의 마음 가운데 갖가지 생각이 일어나는 바를 모두 다 아는 것을 각각지타인소념혜라고 한다. 
무엇을 진혜라고 하는가? 
여래의 살운야지(薩云若智)를 말하는 것이며, 
이것을 진혜라고 하며, 
또한 의지할 것도 없다. 
수보리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고 한다.
또 마하연이 있는데 3근(根)이 이것이다. 
무엇을 3근이라고 하는가? 
학사(學士)들이 백의(白衣)에서 수다원에 이르기까지의 5근(根)으로 이것이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아직 다 알지 못하는 것이다. 
사다함에서 아나함에 이르기까지 또한 5근이 있는데 알아야 할 것을 마땅히 아는 것이다. 
아라한ㆍ벽지불ㆍ보살에서 부처에 이르기까지에도 또한 5근이 있는데, 
이는 이미 알고 있어 다시 배울 것이 없음을 말한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수보리여, 
또 마하연이 있는데 3삼매가 이것이다. 
무엇을 세 가지라고 하는가? 
첫째는 유각유관(有覺有觀)이고, 
둘째는 무각유관(無覺有觀)이며, 
셋째는 무각무관(無覺無觀)이다. 
무엇을 유각유관이라고 하는가? 
제1선(禪)을 말하며 이것을 유각유관이라고 한다. 
무엇을 무각유관이라고 하는가? 
제1선에서 2선에 이르지 않는 그 중간에 있으며 이것을 무각유관이라고 한다. 
무엇을 무각무관이라고 하는가? 
제2선에서 무사상무사상혜선(無思想無思想慧禪)에 이르는 것이며 이것을 무각무관이라고 한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고 한다.
수보리여, 
또 마하연이 있는데 10념(念)이 이것이다. 
불념(佛念)ㆍ법념(法念)ㆍ승념(僧念)ㆍ계념(戒念)ㆍ시념(施念)ㆍ천념(天念)ㆍ멸념(滅念)ㆍ안반념(安般念)ㆍ신고념(身苦念)ㆍ사망념(死亡念)이며, 
의지할 것은 아니다. 
이것을 마하연이라고 한다.
수보리여, 
또 마하연이 있는데 4선(禪)ㆍ4등(等)ㆍ4무형선(無形禪)ㆍ8유무선(惟無禪)ㆍ9차제선(次第禪)ㆍ부처님의 10종력[佛十種力]ㆍ4무소외(無所畏)이다.
10종력이란 것은 부처님의 몸과 상호에 나타난 신족변화를 말한다. 
많은 삿된 무리를 감동시켜서 올바른 곳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 첫 번째의 힘이다. 
입에서 말하는 것은 온갖 지혜의 위에 있어서 의심 맺힌 것을 열어서 해탈케 하는 것이 두 번째의 힘이다. 
뜻이 공의 선정[空定]에 들어가며 청명(淸明)하여 6달(達)하게 되며, 
삿된 신[邪神]이 도의 뜻을 요란하게 하여도 동요하지 않는 것이 세 번째의 힘이다. 
묵연하여 생각을 끊으며 신족(神足)도 하는 것이 없으며 삼천대천과 일월을 감동시키되 사람에게는 놀라움과 두려움을 주지 않는 것이 네 번째의 힘이다. 
도의 뜻이 총명하고 슬기롭고 법을 연설하여 포교하니, 
시방이 두루 유익하게 되고 각각 그 편안함을 얻게 하는 것이 다섯 번째의 힘이다.
온갖 뜻을 거슬러 알고 사람들이 행하는 취향을 깨달아서 묶여 있거나 벗어나거나 빠짐없이 해산시킬 수 있는 것이 여섯 번째의 힘이다. 
삼세에 지은 재앙과 복의 근본과 받는 과보를 큰 지혜로써 모두 알며 걸림이 없는 것이 일곱 번째의 힘이다. 
일체 인민들의 온갖 행위의 근원과, 
각양각색으로 몸을 받는 것이 다른 그 본제(本際)의 인연이 일어난 곳을 모두 깨닫는 것이 여덟 번째의 힘이다. 
혜안이 청정하여 통찰하는 바가 무한하여 모든 생사에 왕래하고 떨어짐을 보는 것이 아홉 번째의 힘이다. 
큰 지혜는 이미 구족했고, 
방편도 이미 갖추었고 생사는 이미 끊어졌고 집착하는 행은 이미 다했고 지은 바를 이미 마쳐서 받지 않는다. 
자연히 스승 없는 일체지라고 말하는 것이 열 번째의 힘이다.
4무소외(無所畏)라는 것은 부처님께서 정각을 이루었을 때 혹은 사문(沙門)이나 바라문, 
혹은 마군, 
혹은 천(天), 
혹은 범(梵), 
다른 대중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나에게 와서 힐난하는 자가 없으며, 
부처님께서는 또한 이러한 뜻을 일으키는 자도 보지 못하신다. 
이와 같이 증득했으므로 부처님의 행은 안온하여 두려움이 없음을 체득하는 것이 첫 번째의 무소외이다. 
정진을 행해서 최고의 장소를 얻을 줄 알며, 
대중 가운데서 사자후(師子吼)를 얻어서 능히 범륜(梵輪)을 굴린다. 
모든 사문ㆍ바라문과 모든 천[諸天]ㆍ범(梵)ㆍ마(魔)는 일체의 다른 법을 굴리지 못하고, 
오직 부처님만이 능히 굴릴 수 있는 것이 두 번째의 무소외이다.
부처님께서는 이미 번뇌[漏]를 다했다. 
만약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혹은 천ㆍ마ㆍ범이 감히 부처님의 번뇌가 아직 다하지 않았다고 말할 자가 없는 것이 세 번째의 무소외이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말씀처럼 진실하여 어긋남이 없고 선악의 과보가 행해짐을 잃지 않으며, 
일체의 나머지 대중들과 모든 천ㆍ마ㆍ범은 감히 부처님의 말씀이 위배됨을 보지 못한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처럼 현성팔도(賢聖八道)를 행하면, 
득도하고 온갖 괴로움을 제도할 수 있다. 
일체의 나머지 무리들과 모든 천ㆍ마ㆍ범은 또한 이 가르침을 위배할 자도 없으며, 
부처님께서도 또한 이러한 곳이 있음을 보지 않는 것이 네 번째의 무소외이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고 하며 의지함도 없어야 한다.
수보리여, 
또 마하연이 있는데 4무애혜(無礙慧)가 이것이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모든 법의 일을 아니 그 지혜가 걸림이 없고, 
모든 경구의 뜻을 아니 그 지혜가 걸림이 없고, 
변재로 분별하니 그 지혜가 걸림이 없고, 
말씀하시는 것이 분명하게 확실하니 그 지혜가 걸림이 없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고 한다.
수보리여, 
또 마하연이 있는데 부처님의 18법(法)을 말한다. 
무엇을 18법이라고 하는가? 
첫 번째는 부처님께서는 성불하신 이래로 처음부터 그릇됨이 있을 때가 없었다. 
두 번째는 성불하신 이래로 말에 추함이 없었으며 누실(漏失)됨도 없었다. 
세 번째는 뜻을 잊어 버린 적이 없었다. 
네 번째는 여러 가지 생각이 없었다. 
다섯 번째는 뜻에 선정 아닌 때[不定時)가 없었다. 
여섯 번째는 처음부터 다른 것을 관한 적이 없었다. 
일곱 번째는 자재함이 줄어듦이 없었다. 
여덟 번째는 정진함이 줄어듦이 없었다. 
아홉 번째는 지념(志念)이 줄어든 적이 없었다. 
열 번째는 지혜가 줄어든 적이 없었다.
열한 번째는 해탈이 줄어든 적이 없었다. 
열두 번째는 견해탈혜가 줄어든 적이 없었다. 
열세 번째는 일체의 몸으로 행하는 바가 지혜로워서 가장 앞에 있었다. 
열네 번째는 입으로 말한 것이 지혜로워서 언제나 앞에 있었다. 
열다섯 번째는 뜻으로 행하는 것이 지혜로워서 가장 앞에 있었다. 
열여섯 번째는 과거의 일을 보아서 그 지혜가 걸림이 없다. 
열일곱 번째는 미래의 일을 보아서 그 지혜가 걸림이 없다. 
열여덟 번째는 현재의 일을 보아서 지혜가 걸림이 없다. 
이것을 마하연이라고 하며 또한 의지함이 없다.



수보리여, 
또 마하연이 있는데 다린니목거(陀隣尼目佉)가 이것이다. 
무엇을 다린니목거라고 하는가? 

글자의 무리와 말의 무리가 들어가는 문이다. 
무엇을 자문(字門)이라고 하는가? 
첫 번째는 아아(阿阿)라는 것인데, 
모든 법이 와서 들어가지만 일어남이 있음을 보지 않는다. 
두 번째는 라라(羅羅)라는 것인데, 
번뇌[垢]의 모양이 모든 법 속에는 어떤 티끌도 없다. 
세 번째는 파파(波波)라는 것인데, 
모든 법에서 니원이 가장 제일임을 가르친다. 
네 번째는 차차(遮遮)라는 것인데, 
모든 법에서 생사가 있음을 보지 않는다.
다섯 번짼는 나나(那那)라는 것인데, 
모든 법에서 모든 글자를 다 마쳤으니, 
글자의 본성은 또한 얻음도 없고 잃음도 없다. 
여섯 번째는 라라(羅羅)라는 것인데, 
세상을 건너 애정의 가지와 각 인연을 이미 멸한 것이다. 
일곱 번째는 타타(陀陀)라는 것인데, 
모든 법이 여여해서 단절한 때가 없었다. 
여덟 번째는 파파(波波)라는 것인데, 
모든 법은 이미 지옥을 여의었다. 
아홉 번째는 다다(茶茶)라는 것인데, 
모든 법에서 번뇌가 이미 다했다. 
열 번째는 사사(沙沙)라는 것인데, 
모든 법에 걸림이 없다.
열한 번째는 화화(和和)라는 것인데, 
모든 법의 언행이 이미 끊어졌다. 
열두 번째는 다다(多多)라는 것인데, 
모든 법은 여여하여 움직이지 않는다. 
열세 번째는 야야(夜夜)라는 것인데, 
모든 법은 진리[諦]여서 생겨남이 없다. 
열네 번째는 타타(吒吒)라는 것인데, 
모든 법은 강한 번뇌를 볼 수 없다. 
열다섯 번째는 가가(加加)라는 것인데, 
모든 법이 조작되는 것을 또한 볼 수 없다.
열여섯 번째는 사사(娑娑)라는 것인데, 
모든 법은 얻을 때가 없으며, 
굴릴 것도 없다. 
열입곱 번째는 마마(摩摩)라는 것인데, 
모든 법에서는 나를 볼 수 없다. 
열여덟 번째는 가가(伽伽)라는 것인데, 
모든 법을 수지함을 볼 수 없다. 
열아홉 번째는 타타(他他)라는 것인데, 
모든 법처를 얻을 수 없다. 
스무 번째는 사사(闍闍)라는 것인데, 
모든 법이 생하는 것도 얻을 수 없다.
스물한 번째는 습파습파(濕波濕波)라는 것인데, 
모든 법이 선한다는 것은 얻을 수 없다. 
스물두 번째는 대대(大大)라는 것인데, 
모든 법성(法性)은 얻을 수 없다. 
스물세 번째는 사사(赦赦)라는 것인데, 
모든 법이 적정함을 얻을 수 없다. 
스물네 번째는 거거(佉佉)라는 것인데, 
모든 법은 허공과 같아서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스물다섯 번째는 차차(叉叉)라는 것인데, 
모든 법이 소멸됨을 얻을 수 없다.
스물여섯 번째는 치치(侈侈)라는 것인데, 
모든 법은 각각 처한 곳에 있어 동요하지 않는다. 
스물일곱 번째는 약약(若若)이라는 것인데, 
모든 법의 지혜는 얻을 수 없다. 
스물여덟 번째는 이타이타(伊陀伊陀)라는 것인데, 
모든 법의 뜻은 얻을 수 없다. 
스물여덟 번째는 번번(繁繁)이라는 것인데, 
모든 법은 한가할 때가 없다. 
서른 번째는 거거(車車)라는 것인데, 
모든 법에는 가히 버릴 것이 없다.
서른한 번째는 마마(魔魔)라는 것인데, 
모든 법은 구릉이나 분묘가 없다. 
서른두 번째는 파파(叵叵)라는 것인데, 
모든 법은 분별할 수 없다. 
서른세 번째는 차차(蹉蹉)라는 것인데, 
모든 법에 사망이라는 것을 얻을 수 없다. 
서른네 번째는 아아(峨峨)라는 것인데, 
모든 법에는 붕당(朋黨)이 없다. 
서른다섯 번째는 타타(咃咃)라는 것인데, 
모든 법에는 각각 다름이 있어 장소가 있지 않음이 없다.
서른여섯 번째는 나나(那那)라는 것인데, 
모든 법은 옴도 없고 감도 없으며 머물지도 않고 또한 앉지도 않고 눕지도 않으며 구별하지도 않는다. 
서른일곱 번째는 파파(破破)라는 것인데, 
모든 법은 삼계에서 불안한 것이다. 
서른여덟 번째는 가가(歌歌)라는 것인데, 
모든 법성을 얻을 수 없다. 
서른아홉 번째는 차차(嵯嵯)라는 것인데, 
모든 법은 항상함을 얻을 수 없다. 
마흔 번째는 차차(嗟嗟)라는 것인데, 
모든 법은 분리되어 나가 버리니 얻을 수 없다.
마흔한 번째는 타타(吒吒)라는 것인데, 
모든 법에는 제도함이 없다. 
마흔두 번째는 노노(嗏嗏)라는 것인데, 
모든 법의 변제(邊際)가 다한 곳에는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많은 글자가 있지만 노(嗏)자를 뛰어넘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 글자는 수(數)가 없으며 또 이 글자를 생각하고 말하지 않아도 잃지 않으며 또한 보는 것도 아니며, 
또한 설하는 것도 없으며, 
또한 서사[書]하는 것도 없으며, 
또한 나타나지도 않는다.

수보리여, 
일체 법은 비유하면 허공과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문자를 배워 들어가는 것은 모두 다린니에 들어가는 문이다. 
만약 어떤 보살마하살이 이 문자의 일을 깨달아 알았다면 언수(言數)에 머물지 않고 곧 말의 지혜를 알 수 있다. 
만약 어떤 보살마하살이 42자(字)가 들어가는 구절을 듣고 인(印)자를 소지하여 풍송(諷誦)하고 만약 다른 사람을 위하여 그 뜻을 해설하여 망령되지 않게 소지하고 독송하면 마땅히 스무 가지 공덕을 얻는다.


무엇이 스무 가지인가? 
첫 번째는 강하게 생각하는 힘을 얻는 것이고, 
두 번째는 참괴수치의 힘[慚愧羞恥力]을 얻는 것이고, 
세 번째는 견고하게 행하는 힘을 얻는 것이고, 
네 번째는 깨달아 아는 힘을 얻는 것이고, 
다섯 번째는 변재(辯才)가 있어서 교묘하게 말하는 힘을 얻는 것이고, 
여섯 번째는 다린니(陀隣尼)가 어렵지 않은 힘을 얻는 것이다. 
일곱 번째는 말하는 바가 급하지 않은 일을 설하지 않는 것이다. 
여덟 번째는 끝내 경에 대해서 여우처럼 의심하지 않는다. 
아홉 번째는 선을 듣고도 기뻐하지 않고, 
악을 듣고도 근심하지 않는 것이다. 
열 번째는 또 스스로 높이지 않으며, 
또한 스스로 낮추지도 않는 것이다. 
열한 번째는 나아가고 멈출 때 침착하고 주의 깊게 하여 위의를 잃지 않는 것이다.
열두 번째는 5음(陰)과 6쇠(衰)를 깨달아 아는 것이다. 
열세 번째는 4제(諦)와 12연기를 잘 아는 것이다. 
열네 번째는 인연의 일을 잘 아는 것이다. 
열다섯 번째는 법혜를 잘 알아 능히 모든 감관[根]을 만족하게 갖추는 것이다. 
열여섯 번째는 타인의 생각하는 바 길흉의 인과응보를 아는 것이다. 
열일곱 번째는 천이(天耳)로 명확하게 들으며, 
스스로 숙명을 아는 것이다. 
열여덟 번째는 중생이 생하는 바를 잘 아는 것이다. 
열아홉 번째는 능히 모든 번뇌[漏]를 소멸할 수 있는 것이다. 
스무 번째는 왕래하는 곳곳마다 가르치기를 잘하는 것이다.
수보리여, 
이것이 다린니문이고 자문(字門)이고, 
들어가는 문이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고 한다.”





21. 치지품(治地品)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보살마하살이 마하승나승녈로 마하연에 나아가는 것[摩訶衍三拔致]에 대해서 물었다. 
보살이 6바라밀을 행하면서 한 지[一地]에서 다른 한 지에 이르는 것이다.”
“무엇을 보살이 한 지에서 다른 한 지에 이르는 것이라고 합니까?”
“모든 법에는 지나간 법이 없으며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으며, 
또 지나감이 없고 지나가지 않음도 없다. 
모든 법에는 무너짐이 없으며 또 높이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머무는 지(地)의 일을 다스리며 또한 지(地)를 보지 않는다. 
무엇을 보살이 지의 일을 다스리는 것이라고 하는가? 
제1지(地)로부터 머물면서 열 가지 일[事]을 행한다.
무엇이 열 가지가 되는가? 
첫째는 우선 세 가지의 번뇌[垢]로부터 깨끗해야 하며, 
또 의지함도 없어야 한다. 
둘째는 베풀고 주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또 의지해서도 안 된다. 
일체 중생들을 위해서 4등심(等心)으로 청정하게 하지만 또한 중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셋째는 보시를 하지만 주는 것이 있지 않으며, 
받는 자가 있지 않다. 
넷째는 선지식과 함께 하고 또한 아만을 부리지 않는다. 
다섯 번째는 법을 얻으려고 하지만 모든 법은 있지 않다.
여섯째는 출가를 하고자 하니 애욕이 있지 않다. 
일곱째는 부처님의 몸이 되고자 하지만 상호(相好)는 있지 않다. 
여덟째는 법의 가르침을 널리 퍼뜨리니 법에는 무너짐이 없다. 
아홉째는 아만[虜怙]에서 스스로 법재(法財)가 아닌 것을 멸하고자 하는 것이다. 
열째는 진실되게 설하고자 하나 언교(言敎)가 없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이것이 지(地)를 다스리는 것이며, 
보살은 마땅히 이 열 가지 일을 해야 한다.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은 2지(地) 가운데서 항상 여덟 가지 법[八法]을 염(念)해야 하고 또 마땅히 이루어야 한다. 
무엇이 여덟 가지인가? 
첫째는 계(戒)를 청정하게 하는 것이고, 
둘째는 항상 보은(報恩)을 생각하는 것이고, 
셋째는 인욕에 머무는 것이고, 
넷째는 환희하는 뜻을 얻는 것이고, 
다섯째는 일체를 버리지 않는 것이고, 
여섯째는 대자비로 시작하는 것이고, 
일곱째는 사존(師尊)을 공경하고 섬기며 독실히 믿는 것이고, 
여덟째는 모든 바라밀에 대해서 항상 세존을 받들어 모시듯이 숭상하고 익히는 것이다.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은 2지 가운데서 마땅히 이 여덟 가지 법을 구족해야 한다.
또 수보리여, 
보살은 3지(地) 가운데서 마땅히 다섯 가지 법에 머물러야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배우고 묻기를 많이 하여 싫어함이 없는 것이고, 
둘째는 문자법에 들어가지 않고서도 법시(法施)를 베풀되 또한 스스로 높이지 않는 것이고, 
셋째는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는 것이고, 
넷째는 선의 근본[善本]을 베풀되 스스로 높이지 않는 것이고, 
다섯째는 수치스러워하고 부끄러워하는 지(地)에 머무는 것이다. 
수보리여, 
이것이 3지 가운데서 다섯 가지 법에 머무는 것이다.
수보리여, 
보살은 4지(地) 가운데서 마땅히 10사법(事法)을 봉행하여 버리지 않아야 한다. 
첫째는 연좌(宴坐)를 버리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욕심을 적게 갖는 것이고, 
셋째는 만족할 줄 아는 것이고, 
넷째는 사문의 12법행(法行)을 버리지 않는 것이고, 
다섯째는 계(戒)를 버리지 않는 것이고, 
여섯째는 욕망을 더러움으로 보는 것이고, 
일곱째는 니원과 같은 뜻을 일으키는 것이고, 
여덟째는 몸에 소유한 것을 아끼지 않는 것이고, 
아홉째는 게으름이 없는 것이고, 
열째는 소유(所有)하고 있는 것을 사모하지 않는 것이다. 
수보리여, 
이것이 보살이 4지 가운데서 마땅히 10사를 봉행하고 버리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수보리여, 
보살은 5지(地) 가운데서 마땅히 여덟 가지 법을 여의어야 한다. 
무엇이 여덟 가지가 되는가? 
첫째는 가업(家業)을 멀리 여의는 것이고, 
둘째는 비구니를 멀리 여의는 것이고, 
셋째는 공덕을 쌓되 멀리 질투를 여의는 것이고, 
넷째는 세상의 모임을 멀리 여의는 것이고, 
다섯째는 분쟁을 멀리 여의는 것이고, 
여섯째는 싸우는 것과 소송하는 것을 멀리 여의는 것이고, 
일곱째는 높은 데 머무는 것을 멀리 여의는 것이고, 
여덟째는 사람을 멸시함을 멀리 여의는 것이다. 
수보리여, 
이것이 5지 가운데 머물면서 여덟 가지 일을 멀리 여의는 것이다.
수보리여, 
보살은 6주지(住地)에서 여섯 가지 법을 구족해야 한다. 
무엇이 여섯 가지인가? 
그것은 6바라밀을 말하는 것이다. 
또 여섯 가지의 일이 있는데, 
행해서는 안 된다. 
무엇이 여섯 가지인가? 
첫째는 성문(聲聞)의 뜻이 없는 것이고, 
둘째는 벽지불(辟支佛)의 뜻이 없는 것이고, 
셋째는 적은 뜻이 없는 것이고, 
넷째는 찾던 것을 보고도 만족하는 뜻을 멀리 여의는 것이고, 
다섯째는 소유한 좋은 물건을 보시한 후에 후회하는 뜻을 멀리 여의는 것이고, 
여섯째는 나[我]라고 하는 생각을 멀리 여의는 것이다. 
수보리여, 
이것이 보살이 6주지 가운데서 여섯 가지 일을 구족하고, 
또 여섯 가지 일을 멀리 여의는 것이다.
수보리여, 
보살은 7주지(住地)에서 해서는 안 되는 스무 가지 일이 있다. 
무엇이 스무 가지인가? 
나라는 것이 있고, 
중생이라는 것이 있고, 
수명(壽命)이라는 생각이 있고, 
끊어짐[斷]이 있고, 
항상함이 있고, 
염상[念想]이 있고, 
온갖 상[種想]이 있고, 
음(陰)에 들어가고, 
성(性)에 들어가고, 
쇠(衰)에 들어가고, 
삼계에 태어나고자 하고, 
부처님의 견해에 의지하여 들어가지 않고, 
법견(法見)을 의지하여 들어가지 않고, 
승견(僧見)을 의지하여 들어가지 않고, 
계(戒)를 의지하여 들어가지 않고, 
공(空)에 들어가지 않고, 
무상(無相)에 들어가지 않고 무원(無願)에 들어가지 않고, 
도(道)에 들어가지 않는다. 
이것이 마땅히 해서는 안 되는 스무 가지의 일들이다.
또 마땅히 스무 가지의 일을 구족해야 한다. 
무엇이 스무 가지인가? 
공ㆍ무상(無相)을 깨닫고, 
바람이 없는 지혜[不願慧]를 증득하고, 
몸[身]ㆍ입[口]ㆍ뜻[意]을 청정하게 하고, 
일체 중생을 자비로 보살펴야 하고, 
또한 중생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모든 법을 평등하게 관하고, 
비록 그렇다 하여도 들어감이 없어야 하고, 
인도하여 모시려고 하여도 또한 아만을 부리지 않고, 
무소생인(無所生忍)이고, 
한 도(道)로써 교화하고, 
모든 분별을 끊고, 
생각을 전환하고, 
견(見)을 전환하고, 
모든 구견(垢見)을 멸함을 전환하고, 
혜지(慧地)에서 스스로 조절하고, 
의혜(意慧)는 걸림이 없고 욕사(欲事)에서 물들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수보리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7주지(住地)에서 마땅히 구족해야 하는 스무 가지의 법이다.
또한 수보리여, 
보살은 마땅히 8주지(住地)에서 네 가지 법을 구족해야 한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신통으로 두루 관하여 중생의 뜻에 들어가는 것이며, 
모든 불국토에 이르러서 기특(奇特)한 일들을 관하는 것이며, 
그 불국토는 스스로 장엄하는 것이며, 
실제로 부처님의 몸을 관하는 것처럼 모든 부처님께 가서 뵙고 예경하고 공양하는 것이다. 
이 네 가지의 법을 구족해야 한다.
또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은 8주지에서 마땅히 네 가지 법을 구족해야만 한다. 
무엇을 네 가지 법이라고 하는가? 
지혜로써 모든 감관을 구족하고,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고, 
항상 여환(如幻)삼매에 들어서 중생이 본래 지은 공덕을 알고, 
얻고자 하는 바에 따라 응해서 성취하게 한다. 
수보리여, 
보살은 8주지에서 네 가지 법을 구족해야 한다.
또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은 9주지(住地)에서 열두 가지 법을 구족해야 한다. 
무엇이 열두 가지인가? 
무한한 곳에서 광대한 원(願)을 가졌으므로 각자에게 그 응하는 바에 따라서 각각 증득을 주는 것이며, 
천ㆍ용ㆍ열차(閱叉:
야차)ㆍ건다라 등이 모두 구족하며, 
음성을 알아서 변재(辯才)로써 원인이 되는 바를 가르쳐 주고, 
포태(胞胎)를 성취하고, 
집에 기거하는 것을 성취하고, 
부모를 성취하고, 
종성(種姓)을 성취하고, 
종친을 성취하고, 
태어남을 성취하고, 
출가를 성취하고, 
불수(佛樹)를 장엄함을 성취하고, 
모든 선한 공덕을 성취해야 한다.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은 9주지에서 마땅히 이 열두 가지 법을 성취해야 한다.
수보리여, 
10주(住)의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여래라고 불린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을 보살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청정하게 한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많은 선을 지어서 살운야의 뜻과 상응하는 것이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무엇을 보살이 중생에게 평등하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4등심(等心)으로 청정하게 하는 것이 중생에게 평등하게 하는 것이다.”
“무엇을 보살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베푸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중생에게 베풀어 주되 분별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보살은 어떻게 선지식과 함께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으로 하여금 살운야에 들어가게 하도록 부지런히 수행하고 힘써 도와주어야 한다. 
마땅히 이런 사람과 함께하여 스승을 공경하고 가르침을 받는다. 
이것을 보살의 선지식이라고 한다.”
“무엇을 법을 얻는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법은 행하되 단지 살운야법을 구하면 나한ㆍ벽지불지에 떨어지지 않는다.”
“무엇을 보살이 항상 출가해서 도를 닦는 것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출생하는 곳마다 언제나 사문이 되어 중도(中道)를 행하는 데 걸림이 없는 것이며, 
처음부터 출가할 일을 잊지 않는 것이다.”
“무엇을 뜻으로 부처님의 신상(身相)을 발원하는 것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형상(形像)을 보면 뜻은 항상 부처님께 두어야 하고, 
살운야를 얻을 때까지 이것을 여읜 때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무엇이 법을 교화하는 것을 널리 퍼뜨리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나 반니원에 드신 후에도 보살이 12부(部)의 경전을 수지하고 가르치는데, 
처음의 가르침도 또한 진실하고 중간의 가르침도 진실하고 마지막의 가르침도 또한 진실하며 본말(本末)의 뜻을 알아서 청정함을 구족하는 것이다.”
“보살이 어떻게 해야만 스스로 서고 포로가 되지 않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성냄과 분노를 멸한 이래로는 처음부터 하천한 곳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무엇을 보살이 진제(眞際)를 설하는 것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입에서 설하는 말이 행동과 상응(相應)하면 이것이 보살이 열 가지 법을 행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보살이 계(戒)를 청정하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한ㆍ벽지불의 뜻과 다른 나쁜 계와 도를 비방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계를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무엇을 보살이 보은(報恩)하고 염은(念恩)하는 것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도를 행하면 작은 은혜도 오히려 잊지 않는데 하물며 큰 은혜를 잊겠는가? 
이것을 염은(念恩)이라고 한다.”
“무엇이 보살이 인욕력을 세우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중생에게 침입함이 없고, 
성냄이 없으면 이것이 인욕의 힘이다.”
“무엇이 보살이 환희하는 즐거움을 얻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중생을 가르치는 것으로써 즐거움을 삼는 것이다.”
“무엇이 보살이 중생을 버리지 않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일체를 구원해 주려고 하는 것이다.”
“무엇이 보살이 대비를 가지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 마음속으로 ‘나는 마땅히 한 명 한 명의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지옥에서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겁 동안 많은 고통을 대신 받더라도 한 명 한 명의 중생이 모두 부처님의 도를 얻어 반니원에 들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이 즐거움이며 대비(大悲)이다.”
“무엇이 보살이 스승을 존경하고 믿고 공경해야 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부모를 섬기듯 하고, 
세존을 생각하듯 하는 것이다.”
“무엇이 보살이 모든 바라밀을 익히려고 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다른 일을 멀리 여의고 단지 모든 바라밀만을 구하는 것이다.”
“무엇이 보살이 배우기를 즐겨하며 싫어함이 없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시방의 부처님 세존께서 설하신 것을 모두 수지(受持)하는 것을 싫어함이 없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이 보살이 희망하는 바 없이 법시(法施)를 널리 유포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법시를 베풀고도 도(道)를 희망하지 않는데, 
하물며 나머지이겠는가?”
“무엇을 보살이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선의 근본의 갖가지 공덕을 행하며, 
이 공덕을 가지는 것이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무엇을 보살의 생사는 무량하여 아승기겁의 제한이 없는 것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공덕을 구비하였으므로 중생을 양육하고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고, 
살운야를 구족할 때까지 싫어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는 것이다.”
“무엇이 보살이 참괴(慚愧)에 서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한ㆍ벽지불의 뜻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무엇이 보살이 연좌(宴坐)를 버리지 않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나한ㆍ벽지불은 여기에 이르지 못하며 이것이 보살이 연좌를 버리지 않는 것이다.”
“무엇이 보살이 하고자 하는 것에 욕심을 적게 내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도(道)도 오히려 원하지 않는데, 
하물며 나머지 욕심이겠는가?”
“무엇이 보살이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살운야를 얻는 것이 만족함을 아는 것이다.”
“무엇을 보살이 사문의 두타덕행(頭陀德行:
탁발)을 버리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깊이 법인(法忍)에 들어간 것을 말하는 것이다.”
“무엇을 보살이 계를 버리지 않는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계를 이용하지 않는 것이 계를 버리지 않는 것이다.”
“무엇을 보살이 색욕을 더러워한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음욕과 질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무엇을 보살의 뜻과 니원이 동등한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에게는 일체의 모든 법이 없는 것이다.”
“무엇을 보살이 소유한 것을 버린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안팎의 소유를 받지 않는 것이 버리는 것이다.”
“무엇이 보살에게 싫어함도 없고 게으름도 없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두 가지를 식별하는 경우가 생기지 않는 것이 싫어함이 없는 것이다.”
“무엇을 보살이 모든 소유하고 있는 것을 연모(戀慕)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물건에 생각이 없는 것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이 보살의 거업(居業)을 멀리 여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불국토를 다니면서 출생하는 곳마다 항상 머리카락과 수염을 깎고 가사를 입는다. 
이것이 가업을 멀리 여의는 것이다.”
“무엇이 보살이 비구니의 무리를 멀리 여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손가락을 튀기는 짧은 시간이라도 함께 머물지 않으며 손가락을 튀기는 짧은 시간이라도 그런 뜻을 내지 않는다. 
이것이 보살이 비구니를 여의는 것이다.”
“무엇이 보살이 질투를 여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마땅히 생각하기를 ‘나는 마땅히 중생을 안온하게 해야 하고, 
질투하는 마음을 내지 말아야 한다’고 해야 한다.”
“무엇이 보살이 모임을 멀리 여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 모임에 있을 때 나한ㆍ벽지불의 뜻을 가진다면 항상 멀리 여의어야 한다.”
“무엇이 보살이 성냄과 분한 마음을 멀리 여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화를 내고 해치고 투쟁하는 마음이 틈을 얻을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자기를 과시하는 것을 멀리 여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법(內法)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타인을 멸시하는 것을 멀리 여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외법(外法)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10악(惡)을 멀리 여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10악의 일은 항상 현성의 도를 파괴하려고 하는데 하물며 어떻게 부처님의 도로서 멀리 여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마땅히 10악을 멀리 여의어야 하는 것이다.”
“무엇이 보살이 포악한 것을 여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높일 만한 법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이것이 보살이 포악한 것을 여의는 것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스스로 사용하는 것을 멀리 여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형상이 있는 것을 보지 못하는데 어느 곳에서 마음대로 사용하겠는가?”
“어찌하여 보살이 전도(顚倒)됨을 여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형상으로써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음욕ㆍ성냄ㆍ어리석음을 멀리 여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음욕ㆍ성냄ㆍ어리석음의 형상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보살이 6주(住)에 있으면서 6바라밀을 구족한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부처님 세존과 성문ㆍ벽지불은 6바라밀에 머물러 피안(彼岸)에 이른다. 
이것을 보살이 6바라밀을 구족한다고 하는 것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성문의 뜻을 갖지 않는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성문의 일은 평등한 도가 아니므로 작은 뜻을 갖지 않는다. 
왜냐하면 또한 평등한 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을 싫어하지 않는다고 합니까?”
“싫증을 내는 것도 또한 평등한 도가 아니므로 버리고 나서 후회하지 않는다. 
후회하는 것도 평등한 도가 아니다. 
처음 뜻을 발하면 곧 베풀어 주어야 하고, 
또한 아까워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나라는 상[我想]을 짓지 않는다고 합니까?”
“본래부터 볼 수 없기 때문이며, 
나아가 중생과 수명상(壽命想)이 있다는 것도 본래부터 또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생겨난다는 견을 끊지 않는다고 합니까?”
“모든 법에는 단절(斷截)이 없으며, 
처음부터 생기함이 없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상견(常見)을 갖지 않는다고 합니까?”
“법에는 생하는 것이 없다고 보는 것이며, 
또한 항상함이 없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염상(念想)을 짓지 않는다고 합니까?”
“번뇌가 없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종상(種相)을 짓지 않는다고 합니까?”
“모든 견(見)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명색(名色)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합니까?”
“형상이 있음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5음(陰)에 들어가지 않고 또한 성(性)에 들어가지 않고 또한 쇠(衰)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합니까?”
“그 실체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삼계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합니까?”
“삼계 또한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주처(住處)를 만들지 않는다고 합니까?”
“허공과 같아서 기한을 짓지 않으며 의지함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형상이 없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불견(佛見)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합니까?”
“부처님을 보려고 하는 생각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헛된 쟁론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까?”
“일체법은 공하고 공하여 헛된 쟁론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을 보살이 공을 구족한다고 합니까?”
“상(相)을 구족하려고 함이 공을 구족하는 것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무상(無相)을 증득한다고 합니까?”
“모든 상(相)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무원지(無願智)를 얻는 것입니까?”
“삼계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3사(事)2)를 청정하게 한다고 합니까?”
“10선(善)을 구족했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혜(慧)로써 중생을 애민히 생각하는 것을 구족하는 것입니까?”
“대비(大悲)로써 중생을 이롭게 하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중생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까?”
“불국토를 깨끗하게 하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모든 법을 평등하게 관하는 것입니까?”
“모든 법에 높고 낮음이 없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도를 깨닫는 것입니까?”
“모든 법을 따라서 깨닫게 하고 해탈을 얻게 하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무소생인(無所生忍)을 얻는 것입니까?”
“모든 법이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참을 것도 없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무소생혜(無所生慧)를 얻는 것입니까?”
“명색(名色)은 일어남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한 도[一道]의 가르침을 얻는 것입니까?”
“두 가지 가르침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모든 분별을 멸하는 것입니까?”
“모든 법에는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전견(轉見)을 닦지 않는 것입니까?”
“나한ㆍ벽지불을 구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번뇌[垢濁]을 전환하는 것입니까?”
“모든 익혀진 번뇌[漏]를 멸하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모든 번뇌[垢]를 멸해서 청정함을 얻게 하는 것입니까?”
“살운야의 지혜를 얻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스스로 뜻을 조절하는 것입니까?”
“삼계를 싫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뜻을 멸하는 것입니까?”
“6근을 제어하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의 지혜에 걸림이 없는 것입니까?”
“불안(佛眼)을 얻었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정욕(情欲)이 견고하지 못한 것을 아는 것입니까?”
“6쇠(衰)를 관하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중생의 뜻에 들어가는 것입니까?”
“오로지 하나의 뜻을 가져 중생이 생각하는 것을 모두 아는 것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신통에서 노니는 것이라고 합니까?”
“한 불국토에서 다른 한 불국토에 이르기까지 처음부터 불국토라는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이 보살이 불국토를 관하는 것입니까?”
“그 국토에 머물러 두루 모든 불국토를 보되, 
또한 불국토라는 생각이 없는 것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그 소견을 따라서 모든 불국토를 스스로 이루는 것입니까?”
“차가월라지(遮迦越羅地)3)에 머물러 모든 삼천대천국토에 노닐기 때문이다.”
“무엇이 보살이 모든 부처님을 뵙고 모시는 것입니까?”
“법을 보는 것이 부처님을 뵙는 것이다.”
“무엇이 보살이 참으로 불신(佛身)을 보는 것입니까?”
“법성을 깨닫는 것이 참으로 보는 것이다.”
“무엇이 보살이 지혜가 구족한 힘을 가지는 것입니까?”
“이미 세존의 10력의 지위에 머물렀으면 곧 능히 중생력을 구족한 것이다.”
“무엇이 보살이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는 것입니까?”
“중생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어찌하여 보살의 환과 같은 삼매[如幻三昧]입니까?”
“응해주는 곳을 따라 지어서 움직이지[動轉] 않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항상 삼매에 머무는 것입니까?”
“이미 보응(報應)을 얻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보살이 모든 공덕에 들어가는 것입니까?”
“도법(道法)을 따라서 해탈을 얻게 하는 것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다시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까?”
“스스로 능히 일체를 성립할 수 있고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보살이 원하는 바를 조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까?”
“6바라밀을 구족하게 행하는 것이 해우(諧偶)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모든 천ㆍ용ㆍ귀신의 아는 것과 말을 아는 것입니까?”
“변재혜(辯才慧)를 가지므로 알지 못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태 안에 듦을 성취하는 것입니까?”
“태어남에서 항상 화생(化生)하기 때문이다.”
“태어나는 보살이 가문[居家]을 성취하는 것입니까?”
“부자이면서 귀한 집에 태어나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부모를 성취하는 것입니까?”
“찰제리와 바라문가에 태어나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종성(種姓)을 성취하는 것입니까?”
“과거에 모든 보살의 종성을 이었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의 종친을 성취하는 것입니까?”
“많은 보살들의 권속이 되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보살이 출생을 성취하는 것입니까?”
“태어날 때 광명이 무량한 국토를 두루 비추고, 
무량한 국토를 진동하게 하는 것이다.”
“무엇이 보살이 출가를 성취하는 것입니까?”
“보살이 출가할 때 모든 무량한 백천 중생들을 편안하게 하고, 
삼승의 원을 원만하게 구족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보살이 불수(佛樹)를 장엄하는 것입니까?”
“황금으로 나무를 삼고, 
7보(寶)로 줄기와 잎을 삼으며, 
그 줄기와 잎의 광명이 시방의 무량한 찰토(刹土)를 빠짐없이 두루 비추는 것이 불수를 성취하는 것이다.”
“무엇이 보살이 모든 선한 공덕을 성취하는 것입니까?”
“보살마하살이 불토를 청정하게 하고 중생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 모든 공덕을 청정하게 성취하는 것이다.”
“무엇을 10주(住) 보살이라 하며, 
여래(如來)라고 이름하는 것입니까?”
“6바라밀을 구족하고, 
부처님의 18법(法)을 모두 익혀서 얻으며, 
살운야혜를 구족하는 것이다. 
수보리여, 
이런 까닭으로 보살마하살은 이미 10주를 얻어 여래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무엇이 보살이 이미 10지(地)에 머문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구화구사라로써 6바라밀을 행하고 나아가 37품과 18법을 행하며, 
멸정지(滅淨地)ㆍ종성지(種性地)ㆍ팔지(八地)ㆍ견지(見地)ㆍ박지(薄地)ㆍ멸음노치지(滅婬怒癡地)ㆍ이작지(已作地)ㆍ벽지불지(辟支佛地)ㆍ보살지(菩薩地)를 지나는 것이다.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은 이 9지(地)를 지나 곧 불지(佛地)에 머무는 것이다. 
수보리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10주의 지(地)이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삼발치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22. 문출연품(門出衍品)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보살마하살에게 연(衍)은 어느 곳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마땅히 어느 곳에 머무는 것인가를 질문하였다. 
지금 이것을 설하겠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삼계를 나와서 살운야를 따라서 머무니 의지함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하연과 살운야라는 이 법은 함께 평등하기 때문이다. 
또 다르지도 않고 같지도 않고, 
또한 형상도 없고 견해도 없고, 
또한 한 가지 모양[一相]에도 걸림이 없는 것이다. 
한 가지 모양이란 이른바 모양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모양이 없는 법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또한 나오지 않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만약 무상법(無相法)을 출현하게 한다면 법성도 또한 다시 생겨나는 것이다. 
가령 무상법이 출생한다면 여여함도 또한 마땅히 다시 출생하는 것이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하면 진제(眞際)를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 된다. 
만약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다시 불가사의한 성품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 된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다시 안온한 성품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 된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멸진(滅盡)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 된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멸진의 체를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색의 공함과 통ㆍ상ㆍ행ㆍ식의 공함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색의 공함은 삼계에서 나오지도 않고 또한 살운야에도 머물지 않기 때문이며, 
통ㆍ상ㆍ행ㆍ식의 공함도 또 그러한 것이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인가? 
수보리여, 
색은 색 자체가 공하고 통ㆍ상ㆍ행ㆍ식도 자체가 공한 까닭이다. 
무상법을 출생하려고 한다면 안공(眼空)을 출생하려고 하는 것이며, 
의공(意空)을 출생하려고 하는 것이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6쇠(衰)와 12인연이 공함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6쇠가 공하다는 것은 삼계에서 나오지도 않고 또한 살운야에 머물지도 않기 때문이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꿈ㆍ허깨비ㆍ불꽃ㆍ메아리ㆍ광명ㆍ그림자를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 된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여래가 지은 변화를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꿈ㆍ허깨비ㆍ불꽃ㆍ메아리ㆍ광명ㆍ그림자와 여래가 지은 변화는 삼계에서 나오지도 않고 또한 살운야에 머물지도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꿈은 몽사(夢事)로써 공하고, 
염사(炎事)ㆍ환사(幻事)ㆍ향광사(響光事)ㆍ영사(影事) 나아가 여래께서 변화한 일도 모두 자체가 공하기 때문이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단(檀)바라밀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시(尸)바라밀ㆍ찬(羼)바라밀ㆍ유체(惟逮)바라밀ㆍ선(禪)바라밀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 된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6바라밀의 일은 또한 삼계에서 나오지도 않고 살운야에 머물지도 않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인가? 
6바라밀은 6바라밀이 공하기 때문이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내외공(內外空)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유공(有空)ㆍ무공(無空)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내외공의 일에서부터 유무공에 이르기까지는 스스로 공하며 또한 삼계에서 나오지도 않고 살운야에 머물지도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내외공은 공한 것이며, 
나아가 유무공도 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4의지(意止)ㆍ4의단(意斷)ㆍ4신족(神足)4)ㆍ5근(根)ㆍ7각의(覺意)ㆍ8정행(正行)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18법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나한ㆍ벽지불과 위로는 여래ㆍ등정각(等正覺)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한ㆍ벽지불에서 부처에 이르기까지 삼계에서 나오지도 않고, 
또 살운야에 머물지도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나한은 나한의 모습이 공한 것이며, 
벽지불은 벽지불의 모습이 공하며, 
부처는 부처의 모습이 공하기 때문이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수다원과ㆍ사다함과ㆍ아나함과ㆍ벽지불과ㆍ불과(佛果)를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 된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살운야를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 된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명상(名相)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며, 
행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며, 
법을 설하고 가르치는 일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이름은 공한 것이고, 
나아가 시설된 가르침과 법과 행도 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름의 공함도 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생함이 없음과 멸함이 없음과 집착함이 없음과 끊음이 없음과 소유가 없음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보리여, 
마하연은 삼계로부터 나와서 움직임이 없는 곳인 살운야에 머무는 것이다.
수보리여, 
그대는 마하연은 어느 곳에 머무느냐고 물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하연은 머무는 곳이 없다. 
왜냐하면 모든 법도 또한 머무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마하연이 머무는 것은 머묾이 없음과 같다. 
비유하면 법성은 머무는 것도 아니고 또한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니다. 
마하연은 머무는 것도 아니고 또한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니다. 
생함이 없음도 또한 머무는 것도 아니고 또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니다.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고 단절되지도 않는 것이다. 
소유함이 없음도 또한 머무는 것도 아니고 또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니다. 
마하연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법성의 모습[法性事]도 또한 머무는 것도 아니고, 
또한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니다. 
법성의 모습 자체가 스스로 공하며 나아가 무소유(無所有)이고, 
무소유 또한 스스로 공하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그러므로 마하연은 머묾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법은 머묾이 없이 머물러서 움직임이 없다.
수보리는 누가 마하연을 출생시키는가를 물었다. 
마하연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없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나오는 것과 마하연이 마땅히 나오는 것은 또한 없는 것이며 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모든 법 또한 볼 수 없는 것인데 어느 곳으로부터 법이 나오겠는가?
왜냐하면 나를 볼 수 없으며, 
나아가 수명ㆍ지견의 일도 근본에서부터 지말에 이르기까지 청정하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사람에서부터 지견(知見)과 법성에 이르기까지도 볼 수 없으며, 
이와 같음도 또한 볼 수 없는 것이다. 
진제(眞際)라 하는 것도 또한 볼 수 없으며, 
마침내는 청정한 것이다. 
불가사의한 성품ㆍ음(陰)ㆍ쇠(衰)도 볼 수 없고 6바라밀도 또한 볼 수 없으며, 
마침내는 청정한 것이다. 
내외공(內外空)에서 유무공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볼 수 없고 마침내는 청정한 것이다. 
37품과 부처님의 18법도 또한 볼 수 없고 마침내는 청정한 것이다.
수다원에서부터 나한ㆍ벽지불에 이르고 위로는 부처에 이르기까지도 볼 수 없고, 
마침내는 청정한 것이다. 
수다원도에서부터 나한ㆍ벽지불도에 이르고, 
위로는 아뇩다라삼야삼보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볼 수 없고 마침내는 청정한 것이다.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고 단절되지도 않고 무소유도 볼 수 없고 마침내는 청정한 것이다. 
과거ㆍ미래ㆍ현재도 무소유이며 마침내는 청정한 것이다. 
가고 머물고, 
여기에서 저기에 이르러도 또한 무소유이고 마침내는 청정한 것이다. 
늘어나고 줄어듦도 또한 볼 수 없고 마침내는 청정한 것이다.
그러면 어떤 것이 생하지 않는 것이며, 
볼 수 없는 것인가? 
법성은 생하지 않으며 볼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법성은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볼 수 없는 것도 아니고, 
볼 수 없다는 그 소견도 볼 수 없는 것이다. 
공ㆍ진제에서 반야바라밀에 이르기까지도 무소유이며, 
볼 수 없는 것이다. 
내외공(內外空)에서 유무공(有無空)에 이르기까지도 무소견(無所見)이고 볼 수 없는 것이다. 
37품과 18법도 무소유이며 볼 수 없는 것이다.
수다원에서부터 부처에 이르기까지도 무소유이며 볼 수 없는 것이다. 
수다원도에서부터 불도ㆍ아뇩다라삼야삼보에 이르기까지도 무소유이며 볼 수 없는 것이며, 
생하는 것도 없고 볼 수 없어야 무소유에 이르는 것이며, 
무소유에서 무소유도 볼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무소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초주지(初住地)에도 또한 볼 수 없는 것이고, 
십주지(住地)에 이르러도 무소유이며, 
볼 수 없는 것이며, 
무소유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이며, 
마침내는 청정한 것이다.
무엇을 초주지(初住地)ㆍ멸정지(滅淨地)ㆍ종성지(種性地)ㆍ제팔지(第八地)ㆍ견지(見地)ㆍ박지(薄地)ㆍ제구지(除垢地)ㆍ소작이작지(所作已作地)ㆍ벽지불지ㆍ보살지ㆍ불지라고 하는가? 
내외공에서도 볼 수 없고 초지(初地)에서도 볼 수 없고, 
나아가 내외공ㆍ유무공도 무소유이다. 
제2주지와 제3ㆍ제4ㆍ제5 제6ㆍ제7ㆍ제8ㆍ제9, 
나아가 제10에 이르기까지도 무소유이다. 
내외공ㆍ유무공에서 제10주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1주(住)에서 10주에 이르러도 또한 무소유이며 또한 볼 수 없고, 
마침내 청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외공에서 유무공에 이르기까지에서 중생을 청정하게 함도 무소유이며, 
마침내는 청정한 것이다. 
내외공에서 유무공에 이르기까지에서 불국토를 청정하게 함도 무소유이며, 
마침내는 청정한 것이다. 
내외공ㆍ유무공에 이르기까지에서 5안(眼)도 무소유이며, 
마침내는 청정한 것이다.
수보리여,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이 모든 법에 의지함이 없으므로 마하연으로써 살운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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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대보적경(大寶積經)』에서 나온 말로서 첫째는 몸이 신정계(身淨戒)를 갖는 것을 말하는데, 
몸으로 모든 계를 받아지키고 궐(闕)함이 없으며 법을 범함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둘째는 언정계(言淨戒)이고, 
셋째는 의정계(意淨戒)이다.
2)
2) 『화엄경』에 나오는 42자문(字門)에서 마흔 번째의 실자문(室字門)이며, 
실(室) 자(者)는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에서는 차(遮)라고 나온다. 
범어로는 차라지(遮羅地)라 하며, 
중국말로는 동(動)이다. 
일체법이 부동상(不動相)인 줄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3)
3) 4정근(正勤)과 같다. 
범어로 catvāri-samyak-prahānāni. 
또는 4정단(正斷)ㆍ4의단(意端)이라고도 한다. 
열반에 나아가기 위하여 수행함에 서른일곱 가지 종류가 있는데 4념처(念處) 다음에 닦는 법이다.
4)
4) 4여의족(如意足)을 말한다. 
욕여의족(欲如意足)ㆍ염여의족(念如意足)ㆍ정진여의족(精進如意足)ㆍ사유여의족(思惟如意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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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Jack-Bush-summer-cottage-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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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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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stria ,Graz -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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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chreibung Deutsch: Rathaus Graz Datum 16. Mai 2017 Quelle Eigenes Werk Urheber © Ralf Roletsch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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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ish: Graz vista desde el Schlossberg Date 11 July 2008, 15:03:28 (according to Exif data) Source Own work Author Kermoar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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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m und Mausoleum in Graz, Austria, vom Schlossberg gesehen (seen from Schlossberg) Tarikh 26 November 2006 Sumber Self-photographed Pengarang Marion Schneider & Christoph Aistleit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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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종 비량의 1. 어떤 사물의 모양에 의하여 다른 사실을 추축하는 것. 곧 연기를 보고 불이 있는 줄 아는 것과 같은 따위.

답 후보
● 상비량(相比量)
상행삼매(常行三昧)
색구경천(色究竟天)
색욕(色欲)

생공법유(生空法有)
생멸(生滅)
생사해(生死海)




ॐ मणि पद्मे 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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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 방광반야경_K0002_T0221 [문서정보]- 일일단상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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