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대반야바라밀다경
- 장아함경
- 증일아함경
- 반야심경
- 대반열반경
- 가섭결경
- 종경록
- 잡아함경
- 금강삼매경론
- 대승기신론
- 원각경
- 정법화경
- 마하승기율
- 대방광불화엄경
- 무량의경
- 수능엄경
- 마하반야바라밀경
- 중아함경
- 유마경
- 아미타불
- 방광반야경
- 마명
- 묘법연화경
- 백유경
- 대방광불화엄경60권본
- 유가사지론
- 유마힐소설경
-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
- Japan
- 대지도론
- Since
- 2551.04.04 00:39
- ™The Realization of The Good & The Right In Wisdom & Nirvāṇa Happiness, 善現智福
- ॐ मणि पद्मे हूँ
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4-10-19_사리불아비담론-K0969-019 본문
『사리불아비담론』
K0969
T1548
제19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안내
○ 해제[있는경우]
● TTS 음성듣기 안내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사리불아비담론』
♣0969-019♧
제19권
♥아래 부분은 현재 작성 및 정리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 2018_0419_130336_can
○ 2020_0525_175425_can
○ 2020_0606_141455_can
○ 2020_0606_175444_can
○ 2018_0419_123716_can
○ 2020_0606_181225_can
○ 2016_1008_141550_can
○ 2020_0606_193047_can
○ 2020_0606_190116_can
○ 2016_1008_131536_can
○ 2016_1008_141121_can
○ 2018_0419_135128_can
○ 2020_0606_181435_can
○ 2020_0525_190709_can
○ 2020_0525_190914_can
○ 2020_0606_134257_can
○ 2018_0419_140248_can
○ 2018_0419_140703_can
○ 2018_0419_140430_can
○ 2018_0419_130449_can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舍利弗阿毘曇論卷第十九 ...
사리불아비담론 제19권
담마야사
담마굴다 등 한역
11) 번뇌품 ②
무엇을 안의 모임[內集]1)이라고 일컫는가.
안의 법 중에서
욕염과
공욕염(共欲染)과
비부증(非不增)2)과
애욕을 즐김과
욕망과
심화된 욕망과 궁극의 욕망과
만족하지 못함과
충만하지 못함과
탐욕의 흩어뿌림이 물이 흐르고 새는 것과 같은 것,
그리고 갈애의 가지에 침몰함과
그물과
생의 근본과
바램[希]과
기호(嗜好)와
집착과
초갈(燋渴)과
집과
지속함과
진창(塵瘡)과
갈애 등이니,
이를 안의 모임이라고 한다.
무엇을 밖의 모임이라고 일컫는가.
밖의 법 중에서 욕염과 공욕염과 나아가 진창과 갈애 등이니,
이를 밖의 모임이라고 한다.
무엇을 안과 밖의 모임이라고 일컫는가.
안과 밖의 법 중에서 욕염과 공욕염과 내지 진창과 갈애 등이니,
이를 안과 밖의 모임이라고 한다.
무엇을 욕망이라고 일컫는가.
스스로 선한 법을 지닌 것을 욕망이 있는 까닭에 남으로 하여금 알게 하려고 하는 것이니,
이를 욕망이라고 한다.
무엇을 큰 욕망이라고 일컫는가.
의뢰함과 바람이 많은 것이니,
이를 큰 욕망이라고 한다.
무엇을 나쁜 욕망이라고 일컫는가.
스스로 선한 법을 지니지 않았으면서 욕망이 있는 까닭에 남으로 하여금 알게 하려고 하는 것이니,
이를 나쁜 욕망이라고 한다.
무엇을 탐욕이라고 일컫는가.
자신의 물건과 재산과 선물과 처자 등에 대해 탐욕과 욕염과 탐착이 있는 것이니,
이를 탐욕이라고 한다.
무엇을 나쁜 탐욕이라고 일컫는가.
남의 물건과 재산과 선물과 처자 등에 대해 나의 소유로 만들려는 탐욕과 욕염과 탐착이 있는 것이니,
이를 나쁜 탐욕이라고 한다.
무엇을 법 아닌 욕염이라고 일컫는가.
어머니 또는 스승의 처에 대해 욕염의 행위를 실행하는 것이니,
이를 법 아닌 욕염이라고 한다.
무엇을 세 가지 선하지 않은 근이라고 일컫는가.
탐욕의 선하지 않은 근,
성냄의 선하지 않은 근,
어리석음의 선하지 않은 근이니,
이를 세 가지 선하지 않은 근이라고 한다.
무엇을 세 가지 난복(難伏)이라고 일컫는가.
애욕의 난복,
성냄의 난복,
어리석음의 난복이니,
이를 세 가지 난복이라고 한다.
무엇을 세 가지 어둠이라고 일컫는가.
탐욕의 어둠,
성냄의 어둠,
어리석음의 어둠이니,
이를 세 가지 어둠이라고 한다.
무엇을 세 가지 황폐함이라고 일컫는가.
애욕의 황폐함,
성냄의 황폐함,
어리석음의 황폐함이니,
이를 세 가지 황폐함이라고 한다.
무엇을 세 가지 얽어 맴이라고 일컫는가.
애욕의 얽어 맴,
성냄의 얽어 맴,
어리석음의 얽어 맴이니,
이를 세 가지 얽어 맴이라고 한다.
무엇을 세 가지 움직임이라고 일컫는가.
애욕의 움직임,
성냄의 움직임,
어리석음의 움직임이니,
이를 세 가지 움직임이라고 한다.
무엇을 안의 세 가지 때라고 일컫는가.
애욕의 때,
성냄의 때,
어리석음의 때이니,
이를 안의 세 가지 때라고 한다.
무엇을 안의 세 가지 다툼이라고 일컫는가.
애욕의 다툼,
성냄의 다툼,
어리석음의 다툼이니,
이를 안의 세 가지 다툼이라고 한다.
무엇을 안의 세 가지 원망함이라고 일컫는가.
애욕의 원망함,
성냄의 원망함,
어리석음의 원망함이니,
이를 안의 세 가지 원망함이라고 한다.
무엇을 안의 세 가지 그물이라고 일컫는가.
애욕의 그물,
성냄의 그물,
어리석음의 그물이니,
이를 안의 세 가지 그물이라고 한다.
무엇을 안의 세 가지 해침이라고 일컫는가.
애욕의 해침,
성냄의 해침,
어리석음의 해침이니,
이를 안의 세 가지 해침이라고 한다.
무엇을 안의 세 가지 증오라고 일컫는가.
애욕의 증오,
성냄의 증오,
어리석음의 증오이니,
이를 안의 세 가지 증오라고 한다.
무엇을 안의 삼독(三毒)이라고 일컫는가.
애욕의 독,
성냄의 독,
어리석음의 독이니,
이를 안의 삼독이라고 한다.
무엇을 세 가지 승리라고 일컫는가.
아만(我慢)과 불여만(不如慢)과 증상만(增上慢)이니,
이를 세 가지 승리라고 한다.
무엇을 세 가지 어둠의 쌓임이라고 일컫는가.
곧 ‘나는 과거에 있었는가.
나는 과거에 없었는가.
나의 성씨는 과거에 무엇이었는가.
과거에는 어떤 원인이 있었는가’에 대한 의혹이 있을 것이다.
또한,
‘나는 미래에 있을 것인가.
나는 미래에 없을 것인가.
나의 성씨는 미래에 무엇일까.
미래에는 어떤 원인이 있을까’에 대한 의혹이 있는 것이다.
또한 ‘나는 현재에 있는가,
없는가.
현재에는 무슨 성씨인가.
현재에는 어떤 원인이 있는가’에 대한 의혹이 있는 것이다.
이를 세 가지 어둠의 쌓임이라고 한다.
무엇을 세 가지 칼이라고 일컫는가.
애욕의 칼,
성냄의 칼,
어리석음의 칼이니,
이를 세 가지 칼이라고 한다.
다시 무엇을 세 가지 칼이라고 일컫는가.
몸의 칼,
말의 칼,
뜻의 칼이니,
다시 이를 세 가지 칼이라고 한다.
무엇을 세 가지 갈애라고 일컫는가.
애욕의 갈애,
존재의 갈애,
비존재[非有]의 갈애이니,
이를 세 가지 갈애라고 한다.
무엇을 세 가지 섭수하지 못함이라고 일컫는가.
몸의 섭수하지 못함,
말의 섭수하지 못함,
뜻의 섭수하지 못함이니,
이를 세 가지 섭수하지 못함이라고 한다.
무엇을 세 가지 악행이라고 일컫는가.
몸의 악행,
말의 악행,
뜻의 악행이니,
이를 세 가지 악행이라고 한다.
무엇을 몸의 세 가지 악행이라고 일컫는가.
살생ㆍ도적질ㆍ사음이니,
이를 몸의 세 가지 악행이라고 한다.
무엇을 뜻의 세 가지 악행이라고 일컫는가.
탐욕ㆍ성냄ㆍ삿된 소견이니,
이를 뜻의 세 가지 악행이라고 한다.
무엇을 세 가지 깨끗치 못함이라고 일컫는가.
몸과 말과 뜻의 깨끗치 못함이니,
이를 세 가지 깨끗치 못함이라고 한다.
무엇을 세 가지 깨닫지 못함이라고 일컫는가.
몸과 말과 뜻의 깨닫지 못함이니,
이를 세 가지 깨닫지 못함이라고 한다.
무엇을 세 가지 굽음이라고 일컫는가.
몸과 말과 뜻의 곧지 못함이니,
이를 세 가지 굽음이라고 한다.
무엇을 세 가지 담음(痰癊)3)이라고 일컫는가.
애욕의 담음,
성냄의 담음,
어리석음의 담음이니,
이를 세 가지 담음이라고 한다.
무엇을 세 가지 애욕이라고 일컫는가.
애욕으로서의 애욕,
성냄의 애욕,
해침의 애욕이니,
이를 세 가지 애욕이라고 한다.
무엇을 세 가지 생각이라고 일컫는가.
애욕의 생각,
성냄의 생각,
어리석음의 생각이니,
이를 세 가지 생각이라고 한다.
무엇을 세 가지 사유라고 일컫는가.
애욕의 사유,
성냄의 사유,
해침의 사유이니,
이를 세 가지 사유라고 한다.
무엇을 세 가지 구함이라고 일컫는가.
몸의 구함,
말의 구함,
뜻의 구함이니,
이를 세 가지 구함이라고 한다.
무엇을 세 가지 불이라고 일컫는가.
애욕의 불,
성냄의 불,
어리석음의 불이니,
이를 세 가지 불이라고 한다.
무엇을 삼온(三熅)이라고 일컫는가.
애욕의 온,
성냄의 온,
어리석음의 온이니,
이를 삼온이라고 한다.
무엇을 삼난(三暖)이라고 일컫는가.
애욕의 더움,
성냄의 더움,
어리석음의 더움이니,
이를 삼난이라고 한다.
무엇을 세 가지 구움[炙]이라고 일컫는가.
애욕의 구움,
성냄의 구움,
어리석음의 구움이니,
이를 세 가지 구움이라고 한다.
무엇을 세 가지 열이라고 일컫는가.
애욕의 열,
성냄의 열,
어리석음의 열이니,
이것을 세 가지 열이라고 한다.
무엇을 세 가지 그을림이라고 일컫는가.
애욕의 그을림,
성냄의 그을림,
어리석음의 그을림이니,
이를 세 가지 그을림이라고 한다.
무엇을 세 가지 악함이라고 일컫는가.
몸의 악함,
말의 악함,
뜻의 악함이니,
이를 세 가지 악함이라고 한다.
무엇을 삼유(三有)라고 일컫는가.
애욕의 존재,
색의 존재,
무색의 존재이니,
이것을 삼유라고 한다.
무엇을 삼루(三漏)라고 일컫는가.
애욕의 누,
존재의 누,
무명의 누이니,
이를 삼루라고 한다.
무엇을 세 가지 탁함이라고 일컫는가.
몸과 말과 뜻의 탁함이니,
이를 세 가지 탁함이라고 한다.
무엇을 세 가지 부드럽지 않음이라고 일컫는가.
몸의 부드럽지 않음,
말의 부드럽지 않음,
뜻의 부드럽지 않음이니,
이를 세 가지 부드럽지 않음이라고 한다.
무엇을 세 가지 경안하지 않음[不輕安]이라고 일컫는가.
몸의 경안하지 않음,
말의 경안하지 않음,
뜻의 경안하지 않음이니,
이를 세 가지 경안하지 않음이라고 한다[세 법으로 된 것을 마침].
무엇을 네 가지 흐름이라고 일컫는가.
애욕의 흐름,
존재의 흐름,
견해의 흐름,
무명의 흐름이니,
이를 네 가지 흐름이라고 한다.
무엇을 네 가지 움켜 쥠이라고 일컫는가.
애욕의 움켜 쥠,
존재의 움켜 쥠,
견해의 움켜 쥠,
무명의 움켜 쥠이니,
이를 네 가지 움켜쥠이라고 한다.
무엇을 사취(四取)라고 일컫는가.
애욕의 취함,
존재의 취함,
계율의 취함,
자아의 취함이니,
이를 사취라고 한다.
무엇을 네 가지 물듦이라고 일컫는가.
애욕의 물듦,
색의 물듦,
무색의 물듦,
견해의 물듦이니,
이를 입이 네 가지 물듦이라고 한다.
무엇을 입의 네 가지 악행이라고 일컫는가.
거짓말ㆍ험담ㆍ이간질하는 말,
그리고 욕이니,
이를 네 가지 악행이라고 한다.
무엇을 네 가지 결박이라고 일컫는가.
희망신(希望身)의 결박,
진에신(瞋恚身)의 결박,
계도신(戒道身)의 결박,
견실신(見實身)의 결박이니,
이를 네 가지 결박이라고 한다.
무엇을 네 가지 화살이라고 일컫는가.
애욕의 화살,
성냄의 화살,
교만의 화살,
견해의 화살이니,
이를 네 가지 화살이라고 한다.
무엇을 네 가지 식의 주처라고 일컫는가.
곧 “비구여,
식의 색에 의지하고 색에 머물러 경계를 삼으니,
색 가운데서 갈애를 멈추어 있게 하여 상속하고 증대하고 확대하는 것을 얻는다.” 수ㆍ상ㆍ행이라는 주처도 역시 그와 같다.
이를 이름하여 네 가지 식의 주처라고 한다.
무엇을 갈애를 일으키는 네 가지 연이라고 일컫는가.
비구가 옷에 연하여 갈애를 일으키고,
음식에 연하여 갈애를 일으키고,
와구(臥具)를 연하여 갈애를 일으키고,
의약품을 연하여 갈애를 일으키는 것이니,
이를 갈애를 일으키는 네 가지 연이라고 한다.
무엇을 갈애와 서로 연이 되는 네 가지라고 하는가.
갈애를 연하여 갈애가 생하고,
갈애를 연하여 증오가 생하고,
증오를 연하여 증오가 생하고,
증오를 연하여 갈애가 생하는 것이니,
이를 갈애와 서로 연이 되는 네 가지라고 한다.
무엇을 네 가지 악도행(惡道行)이라고 일컫는가.
애욕의 악도행,
성냄의 악도행,
두려움의 악도행,
어리석음의 악도행이니,
이를 네 가지 악도행이라고 한다.
무엇을 네 가지 업의 번뇌라고 일컫는가.
살생하는 업의 번뇌,
훔치는 업의 번뇌,
사음하는 업의 번뇌,
거짓말하는 업의 번뇌이니,
이를 네 가지 업의 번뇌라고 한다.
무엇을 네 가지 전도(顚倒)라고 일컫는가.
‘무상한 것을 상주하는 것’으로 일컫는 생각의 전도와 마음의 전도와 견해의 전도,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일컫는 생각의 전도와 마음의 전도와 견해의 전도,
‘무아인 것을 자아’로 일컫는 생각의 전도와 마음의 전도와 견해의 전도,
‘부정한 것을 깨끗한 것’으로 일컫는 생각의 전도와 마음의 전도와 견해의 전도 등이니,
이를 네 가지 전도라고 한다.
무엇을 네 가지 두려움이라고 일컫는가.
왕의 법에 대한 두려움,
도적에 대한 두려움,
불의 두려움,
물의 두려움 등이니,
이를 네 가지 두려움이라고 한다.
무엇을 다른 네 가지 두려움이라고 일컫는가.
늙음의 두려움,
병의 두려움,
죽음의 두려움,
악취(惡趣)의 두려움이다.
무엇을 또 다른 네 가지 두려움이라고 일컫는가.
파도의 두려움,
큰 파도가 솟구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소용돌이의 두려움,
악어의 두려움이다.
무엇을 또 다른 네 가지 두려움이라고 일컫는가.
스스로 쇠퇴하는 두려움,
비방의 두려움,
홀로 남은 두려움,
자식이 없는 두려움 등이니,
이들을 또 다른 네 가지 두려움이라고 한다.
무엇을 네 가지 퇴전하는 법이라고 일컫는가.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다.
곧 네 가지 퇴전하는 법이 있다.
무엇을 넷이라고 일컫는가.
비구가 성냄을 존중하고 정법을 존중하지 않으며,
증오와 질투를 존중하고 정법을 존중하지 않으며,
이익을 존중하고 정법을 존중하지 않으며,
공경받는 것을 존중하고 정법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성냄과 증오 및 질투와
이익과 공경
이들을 존중하는
비구는 도(道)를 잃는다.
좋은 밭에 뿌려진 썩은 종자와 같이
선한 법을 일으키지 못한다.
이를 이름하여 네 가지 퇴전하는 법이라고 한다[네 법으로 된 것을 마침].
무엇을 오욕(五欲)이라고 일컫는가.
눈으로 색을 식별하되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하고 뜻에 맞고 좋은 모습이어서 욕염이 상속되는 것이니,
귀ㆍ코ㆍ혀ㆍ몸으로 식별하는 촉감도 역시 그와 같이 설명된다.
이를 이름하여 오욕이라고 한다.
무엇을 오개(五蓋)라고 일컫는가.
욕염의 덮개ㆍ성냄ㆍ수면ㆍ흥분과 뉘우침ㆍ의혹의 덮개이니,
이를 오개라고 한다.
무엇을 오하분결(五下分結)이라고 일컫는가.
신견(身見)ㆍ계금취(戒禁取)ㆍ욕염ㆍ성냄이니,
이를 오하분결이라고 한다.
무엇을 오상분결(五上分結)이라고 일컫는가.
색의 염착(色染)ㆍ무색의 염착ㆍ무명ㆍ교만ㆍ흥분이니,
이를 오상분결이라고 한다.
무엇을 오도(五道)라고 일컫는가.
지옥ㆍ축생ㆍ아귀ㆍ인간ㆍ천신이니,
이를 오도라고 한다.
무엇을 다섯 가지 마음의 황폐함이라고 일컫는가.
비구가 세존을 의혹하여 믿지 않고 제도받지 않고 지향하지 않는다.
이 비구는 마음으로 세존을 의혹하고 마음으로 믿지 않고 제도받지 않고 지향하지 않은 뒤에,
결국 이 비구의 마음은 세존에게 향하지 않고 믿지 않고 친근히 하지 않고 지향하지 않은 채 마치게 된다.
이를 이름하여 처음의 마음의 황폐함이라고 한다.
법(法)과 승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다시 비구가 계율을 빠트리며 실행하고 황폐하게 실행하고 때묻히며 실행한다.
이 비구가 계율을 빠트리며 실행하고 황폐하게 실행하고 때묻히며 실행한 뒤에,
이 비구의 마음은 계율을 향하지 않고 믿지 않고 친근히 하지 않고 지향하지 않은 채 마치게 된다.
이를 이름하여 네 번째 마음의 황폐함이라고 한다.
다시 비구가 마음으로 여러 청정한 범행자(梵行者)를 괴롭히고 마음으로 황폐하게 하여 믿지 않고 헐고 꾸짖고 나쁜 말을 하고,
여러 청정한 범행자를 경솔하게 비방한다.
이 비구가 여러 청정한 범행자를 괴롭히고 여러 가지로 괴롭힘과 함께 마음으로 황폐하게 하고,
믿지 않기에 헐고 꾸짖고 나쁜 말을 하고 여러 청정한 범행자를 경솔하게 비방한 뒤에,
이 비구의 마음은 여러 청정한 범행자를 향하지 않고 믿지 않고 친근히 하지 않고 지향하지 않는다.
결국 이 비구의 마음은 여러 청정한 범행자를 향하지 않고 믿지 않고 친근히 하지 않고 지향하지 않은 채 마치게 된다.
이를 이름하여 다섯 가지 마음의 황폐함이라고 한다.
무엇을 다섯 가지 마음의 얽어 맴이라고 일컫는가.
비구가 몸으로 염착을 떠나지 않고 애욕을 떠나지 않고 갈애를 떠나지 않고 목마름을 떠나지 않고 그을림과 뜨거움을 떠나지 않는다.
이 비구가 염착을 떠나지 않고 애욕을 떠나지 않고 갈애를 떠나지 않고 목마름을 떠나지 않고 그을림과 뜨거움을 떠나지 않은 뒤에,
이 비구의 마음은 열심히 정진함과 믿음과 적정함과 결박을 단절함으로 향하지 않는다.
결국 이 비구는 열심히 정진함과 믿음과 적정함과 결박을 단절함으로 향하지 않은 채 마치게 된다.
이를 처음의 마음의 얽어 맴이라고 일컫는다.
다시 비구가 색욕(色欲) 등의 즐거움을 열심히 실행하고 와구(臥具)와 수면의 즐거움을 열심히 실행한다.
이 비구가 색욕 등의 즐거움을 열심히 실행하과 와구와 수면의 즐거움을 열심히 실행한 뒤에,
이 비구의 마음은 열심히 정진함과 바른 믿음과 적정행과 결박을 단절함으로 향하지 않는다.
결국 이 비구의 마음은 열심히 정진함과 바른 믿음과 적정행과 결박을 단절함으로 향하지 않은 채 마치게 된다.
이를 제이ㆍ제삼의 마음의 얽어 맴이라고 한다.
다시 비구가 조금 정진하다 문득 머물러 높은 것을 추구하니,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으려 하고 아직 요해하지 못한 것을 요해하려 하고 아직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려 한다.
이처럼 비구가 조금의 정진력을 얻은 뒤에 문득 머물러 높은 것을 추구하여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으려 하고 아직 요해하지 못한 것을 요해하려 하고 아직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려고 한 뒤에,
이 비구는 열심히 정진함과 바른 믿음과 적정행과 결박의 단절함으로 향하지 않는다.
결국 이 비구의 마음은 열심히 정진함과 바른 믿음과 적정행과 결박의 단절함으로 향하지 않은 채 마치게 된다.
이를 제사의 마음의 얽어 맴이라고 한다.
다시 비구가 여러 천상(天上)에 태어나기를 희망하는 까닭에 청정한 범행을 실행하고,
‘나는 이 계율의 길과 고행과 청정한 범행을 실행했으니,
이것은 나로 하여금 천왕(天王)이 되게 할 것이며,
또는 보신(輔臣)이 되게 할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이 비구가 여러 천상에 태어나기를 희망하는 까닭에 청정한 범행을 행하고 ‘나는 이러한 계율의 길과 고행과 청정한 범행을 실행하였으니,
이것은 나로 하여금 천왕이 되게 할 것이며,
또는 보신이 되게 할 것이다’라고 생각한 뒤에,
이 비구의 마음은 열심히 정진함과 바른 믿음과 적정행과 결박을 단절함으로 향하지 않는다.
결국 이 비구의 마음은 열심히 정진함과 바른 믿음과 적정행과 결박을 단절함으로 향하지 않은 채 마치게 된다.
이를 이름하여 다섯 가지 마음의 얽어맴이라고 한다.
무엇을 다섯 가지 두려움이라고 일컫는가.
살생하면 살생을 연한 까닭에 현세에 두려움이 있고 미래세에 두려움이 있다.
도적질ㆍ사음ㆍ거짓말ㆍ음주하여 방일하는 경우의 두려움도 역시 그와 같다.
이를 이름하여 다섯 가지 두려움이라고 한다.
다섯 가지 원망함도 역시 그와 같다.
무엇을 오무간(五無間)이라고 일컫는가.
아버지를 죽이는 무간업(無間業),
어머니를 죽이는 무간업,
아라한을 죽이는 무간업,
화합 승단을 파괴하는 무간업,
악심으로 부처님의 몸에서 피가 나게 하는 무간업 등이니,
이를 오무간이라고 한다.
무엇을 오범계(五犯戒)라고 일컫는가.
살생ㆍ도적질ㆍ사음ㆍ거짓말ㆍ음주하여 방일하는 것 등이니,
이를 오범계라고 한다.
무엇을 다섯 가지 법이 아닌 말이라고 일컫는가.
때 아닌 말,
진실 아닌 말,
뜻 없는 말,
법 아닌 말,
조리 없는 말 등이니,
이를 다섯 가지 법이 아닌 말이라고 한다.
무엇을 다섯 가지 즐기지 않음이라고 일컫는가.
홀로 거처함을 즐기지 않음,
세간을 벗어남을 즐기지 않음,
적정함을 즐기지 않음,
범행을 즐기지 않음,
여러 선한 법을 즐기지 않음 등이니,
이를 다섯 가지 즐기지 않음이라고 한다.
무엇을 다섯 가지 증오함이라고 일컫는가.
친해서는 안 될 것에 스스로 친하는 것,
꾸짖어서는 안 될 것을 제멋대로 꾸짖는 것,
흰 옷 입은 재가자의 집에 자주 드나드는 것,
항상 기뻐서 말이 많은 것,
빌어 구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등이니,
이를 다섯 가지 증오함이라고 한다.
친해서는 안 될 것에 스스로 친하는 것,
꾸짖어서는 안 될 것을 제멋대로 꾸짖는 것,
흰 옷 입은 재가자의 집에 자주 드나드는 것,
항상 기뻐서 말이 많은 것,
빌어 구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등이니,
이를 다섯 가지 증오함이라고 한다.
무엇을 성냄이 근본이 되는 다섯 가지 법이라고 일컫는가.
장애를 만드는 것,
부딪쳐 괴롭히는 것,
성냄,
쟁송,
오로지 집착하는 것 등이니,
이를 성냄이 근본이 되는 다섯 가지 법이라고 한다.
무엇을 근심[憂]이 근본이 되는 다섯 가지 법이라고 일컫는가.
근심ㆍ슬픔ㆍ괴로움ㆍ고뇌와 많은 괴로움[衆苦]이니,
이를 근심이 근본이 되는 다섯 가지 법이라고 한다.
무엇을 다섯 가지 질투라고 일컫는가.
집에 관한 질투,
호족(豪族)에 관한 질투,
이익에 관한 질투,
명성에 관한 질투,
공경에 관한 질투 등이니,
이를 다섯 가지 질투라고 한다.
무엇을 수면을 일으키는 다섯 가지 연(緣)이라고 일컫는가.
하품,
흐릿함,
즐겁지 않음,
몸의 무거움,
마음의 침몰 등이니,
이를 수면을 일으키는 다섯 가지 연이라고 한다.
무엇을 범계의 다섯 가지 환난이라고 일컫는가.
스스로의 쇠퇴와 손실을 초래하고,
남에게 꾸짖음과 질책을 받고,
악명이 유포되고,
죽을 때에 후회하고,
죽은 뒤에 악취에 떨어진다.
이를 이름하여 범계의 다섯 가지 환난이라고 한다.
무엇을 범계의 또 다른 다섯 가지 환난이라고 일컫는가.
범계를 연한 까닭에 아직 얻지 못한 재물을 얻지 못하고,
이미 얻은 재물은 속아 빼앗기고,
왕조그이 무리 또는 바라문의 무리 또는 거사의 무리 또는 사문의 무리 속에 이르러서는 마음에 두려움을 품게 되고,
사문 또는 바라문이 되기에는 지나치게 악하다고 일컫어지고,
몸이 부서져 목숨을 마치면 문득 악취에 떨어진다.
이를 이름하여 범계의 다섯 가지 환난이라고 한다.
무엇을 다섯 가지 경순(敬順)하지 않음이라고 일컫는가.
아버지ㆍ어머니ㆍ사문ㆍ바라문ㆍ어른을 경순하지 않는 것이니,
이를 다섯 가지 경순하지 않음이라고 한다[다섯 법으로 된 것을 마침].
무엇을 탐욕에 의지한 여섯 가지 희(喜)라고 일컫는가.
눈이 색을 식별하여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하고 뜻에 맞고 좋은 모습이고 욕염이 상속하는 것이 있다.
이것을 현재에 얻기에,
또한 미래에 얻기를 희망하기에,
또한 이전에 얻은 것이 과거에 변하고 멸하였음을 기억하기에 기쁨이 일어난다.
이를 탐욕에 의지한 처음의 희라고 일컫는다.
귀ㆍ코ㆍ혀ㆍ몸ㆍ뜻에 있어서도 역시 그와 같으니,
이를 탐욕에 의지한 여섯 가지 희라고 한다.
무엇을 탐욕에 의지한 여섯 가지 우(憂)라고 일컫는가.
눈이 색을 식별하여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하고 뜻에 맞고 좋은 모습이고 욕염이 상속하는 것이 있다.
이것을 현재에 얻지 못하기에,
또한 미래에 얻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기에,
또한 이전에 얻은 것이 과거에 변하고 멸하였음을 기억하기에 근심이 일어난다.
이를 이름하여 탐욕에 의지한 처음의 우라고 한다.
귀ㆍ코ㆍ혀ㆍ몸ㆍ뜻에 있어서도 역시 그와 같으니,
이를 탐욕에 의지한 여섯 가지 우라고 한다.
무엇을 탐욕에 의지한 여섯 가지 사(捨)라고 일컫는가.
범부가 눈으로 색으로 보고 평정함을 일으킨다.
그러나 어리석은 것이 어린아이와 같아 환난을 관찰하지 못하고 과보를 알지 못한다.
이처럼 색을 알지 못하고 분별하지 못하기에 평정한 것이니,
이를 탐욕에 의지한 처음의 사(捨)라고 한다.
귀ㆍ코ㆍ혀ㆍ몸ㆍ뜻에 있어서도 역시 그와 같으니,
이를 탐욕에 의지한 여섯 가지 사라고 한다.
무엇을 여섯 가지 물듦이라고 일컫는가.
색 중에 염착이 있고,
소리ㆍ냄새ㆍ맛ㆍ촉감ㆍ법 중에 염착이 있는 것이니,
이를 여섯 가지 물듦이라고 한다.
무엇을 여섯 가지 즐거움이라고 일컫는가.
색 중에 즐거움이 있고,
소리ㆍ냄새ㆍ맛ㆍ촉감ㆍ법 중에 즐거움이 있는 것이니,
이를 여섯 가지 즐거움이라고 한다.
무엇을 또 다른 여섯 가지 즐거움이라고 일컫는가.
여러 일을 즐기고,
말을 즐기고,
수면을 즐기고,
모임을 즐기고,
집에 있는 것을 즐기고,
유희를 즐기는 것이니,
이를 또 다른 여섯 가지 즐거움이라고 한다.
무엇을 여섯 가지 갈애라고 일컫는가.
색ㆍ소리ㆍ냄새ㆍ맛ㆍ촉감ㆍ법 중에 갈애가 있는 것이니,
이를 여섯 가지 갈애라고 한다.
무엇을 여섯 가지 성냄이라고 일컫는가.
색ㆍ소리ㆍ냄새ㆍ맛ㆍ촉감ㆍ법 중에 성냄이 있는 것이니,
이를 여섯 가지 성냄이라고 한다.
무엇을 여섯 가지 갈고리라고 일컫는가.
색ㆍ소리ㆍ냄새ㆍ맛ㆍ촉감ㆍ법 중에 갈고리가 있는 것이니,
이를 여섯 가지 갈고리라고 한다.
무엇을 여섯 가지 지키지 않음이라고 일컫는가.
색ㆍ소리ㆍ냄새ㆍ맛ㆍ촉감ㆍ법 중에서 지키지 않는 것이니,
이를 여섯 가지 지키지 않음이라고 한다.
무엇을 여섯 가지 다툼의 뿌리라고 일컫는가.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다.
곧 “비구들아,
여섯 가지 다툼의 뿌리가 있다.
이를 마땅히 요해하고 요햐한 뒤에 열심히 수행하여 단절토록 하라.
무엇이 여섯 가지인가.
비구에게 성냄이 있으면 언제나 원망스럽고 싫은 것만을 상념하여 세존에 대해 공경하지도 존중하지도 찬탄하지도 않고 향과 꽃으로 공양하지도 않는다.
그는 버과 승단에 대해서도 역시 그와 같다.
그리고 계율에 있어서는 빠뜨리며 실행하고 황폐하게 실행하고 때 묻히며 실행하고,
여러 비구에게 알린다.
만약 비구에게 성냄이 있으면 언제나 원망스럽고 싫은 것만을 상념하여 화합된 승단 속에서 성냄을 일으키고 서로 다투게 된다.
그리고 다툼을 연하여 많은 중생에게 손실과 감솔르 야기하고 많은 중생에게 괴로움을 받게 하고 천신과 인간을 쇠퇴하고 줄어들게 하고,
여러 비구에게 알린다.
이러한 선하지 않은 다툼이 뿌리를 자신이든 남이든 아직 단절하지 못한 것을 관찰하면 마땅히 서로 화합하여 열심히 정진하고 용맹심을 발휘해 선하지 않은 다툼의 뿌리를 단절하고,
여러 비구에게 알린다.
이러한 선하지 않은 다툼의 뿌리가 자신과 남에게서 단절되었음을 관찰하면 자신의 마음으로 다시는 일으키지 않겠다고 전념해야 한다.
이와 같이 해야 문득 선하지 않은 다툼의 뿌리가 단절됨을 얻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시 비구가 한(恨)을 품어 그것에 그을리고 뜨거워하거나,
질투와 인색함이 있거나,
궤기(詭欺)와 긴비(姦非)가 있거나,
또한 여러 견해를 추구하여 남을 비방하고 언제나 기억하여 버리지 않거나,
또한 삿된 견해[邪見]와 변견(邊見)이 있는 것도 역시 그와 같다.
이를 이름하여 여섯 가지 다툼의 뿌리라고 한다[육법으로 된 것을 마침].
무엇을 칠공염(七共染)이라고 일컫는가.
여인이 스스로 여인의 몸,
여인의 형태,
여인의 특징,
여인의 옷 치장,
여인의 애욕,
여인의 음성,
여인의 영락(瓔珞)을 사유하여,
그 여인은 이 물건들을 즐기고 이것에 물든다.
이 물건들에 즐기고 물든 뒤에 밖의 남자의 몸,
남자의 형태,
남자의 특징,
남자의 옷 치장,
남자의 애욕,
남자의 음성,
남자의 영락을 사유하여 그 여인은 그물근들도 즐기고 그것에 물든다.
그 물건들에 즐기고 물든 뒤에 화합을 사유한다.
그리고 화합을 연한 까닭에 기쁨과 즐거움을 일으키고 여인의 몸을 탐착하고 즐기고 사랑한다.
화합을 즐기고 난 뒤에는 이와 같은 것에 의하여 항상 여인의 몸을 전환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또한 남자가 스스로 남자의 몸을 사유하고,
나아가 남자의 몸을 전환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도 역시 그와 같다.
이를 이름하여 칠공염이라고 한다.
무엇을 칠공욕염(七共欲染)이라고 일컫는가.
한 좋은 가문의 바라문이 있었다.
그가 여래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러 안부를 여쭙고 물러나 한 쪽에 앉은 뒤에 세존께 여쭈었다.
“사문 구담(瞿曇)이시여,
스스로 청정한 범행자라고 보십니까?”
세존께서 바라문에게 대답하셨다.
“바르고 청정한 범행자를 말한다면 내가 그자이다.
무엇을 말미암은 까닭인가?
바라문이여,
나는 청정한 범행을 빠뜨리지도 황폐하게 만들지도 때 묻혀 더럽히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바라문이 다시 물었다.
“사문 구담이시여,
청정한 범행에 황폐함과 결핍됨과 때 묻어 더럽혀짐이 존재합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청정한 범행에도 황폐함과 결핍됨과 때 묻어 더럽혀짐이 존재한다.”
바라문이 다시 물었다.
“어떻게 청정한 범행에 황폐함과 결핍됨과 더렵혀짐이 존재합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말한다.
‘나는 바로 청정한 범행자이니,
여인과 교통(交通)하지 않았다’라고.
그렇지만 그는 여인이 베푸는 목욕ㆍ의복ㆍ안마ㆍ조신(調身)을 받았다.
그리고 이로써 기쁨과 즐거움을 삼고,
이로써 기운을 차린다.
내가 바라문에게 고하여 말하니,
이것을 공욕염(共欲染)이라고 일컫는다.
따라서 이것은 청정한 범행이 아니다.
황폐함과 결핍됨과 때 묻어 더럽혀짐을 지니어 아직 삶과 늙음과 병과 죽음과 근심과 슬픔과 괴로움과 고뇌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니,
여러 괴로움이 쌓이고 모일 뿐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것을 아직 괴로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일컫는다.
다시 바라문이여,
어떤 사람이 말한다.
‘나는 바로 청정한 범행자이니,
여인과 교통하지 않았고,
여인이 베푸는 목욕ㆍ의복ㆍ안마ㆍ조신을 받지 않았다’라고.
그렇지만 그는 여인을 가까이하였고,
말과 희롱하는 웃음과 조롱을 하였다.
그리고 이로써 기쁨과 즐거움을 삼고,
이로써 기운을 차린다.
내가 바라문에게 고하여 말하니,
이것을 공욕염이라고 일컫는다.
따라서 이것은 청정한 범행이 아니다.
황폐함과 결핍됨과 때 묻어 더럽혀짐을 지니어 아직 삶과 늙음과 병과 죽음과 근심과 슬픔과 괴로움과 고뇌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니,
여러 괴로움이 쌓이고 모일 뿐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것을 아직 괴로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일컫는다.
다시 바라문이여,
어떤 사람이 말한다.
‘나는 바로 청정한 범행자이니,
여인과 교통하지 않았고,
여인이 베푸는 목욕ㆍ의복ㆍ안마ㆍ조신을 받지 않았고,
또한 여인을 가까이하지 않았고,
말과 희롱하는 웃음과 조롱을 하지 않았다’라고.
그렇지만 그는 여인과 눈을 맞추고,
서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로써 기쁨과 즐거움을 삼고,
이로써 기운을 차린다.
내가 바라문에게 고하여 말하니,
이것을 공욕염이라고 일컫는다.
따라서 이것은 청정한 범행이 아니다.
황폐함과 결핍됨과 때 묻어 더럽혀짐을 지니어 아직 삶과 늙음과 병과 죽음과 근심과 슬픔과 괴로움과 고뇌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니,
여러 괴로움이 쌓이고 모일 뿐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것을 아직 괴로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일컫는다.
다시 바라문이여,
어떤 사람이 말한다.
‘나는 바로 청정한 범행자이니,
여인과 교통하지 않았고,
여인이 베푸는 목욕ㆍ의복ㆍ안마ㆍ조신을 받지 않았고,
또한 여인을 가까이하지 않았고,
말과 희롱하는 웃음과 조롱을 하지 않았고,
여인과 눈을 맞추지도 서로 쳐다보지도 않았다’라고.
그렇지만 그는 장벽 밖에서 여인의 음성과 가무 소리와 울고 흐느끼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이로써 기쁨과 즐거움을 삼고,
이로써 기운을 차린다.
내가 바라문에게 고하여 말하니,
이것을 공욕염이라고 일컫는다.
따라서 이것은 청정한 범행이 아니다.
황폐함과 결핍됨과 때 묻어 더럽혀짐을 지니어 아직 삶과 늙음과 병과 죽음과 근심과 슬픔과 괴로움과 고뇌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니,
여러 괴로움이 쌓이고 모일 뿐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것을 아직 괴로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일컫는다.
다시 바라문이여,
어떤 사람이 말한다.
‘나는 바로 청정한 범행자이니,
여인과 교통하지 않았고,
여인이 베푸는 목욕ㆍ의복ㆍ안마ㆍ조신을 받지 않았고,
또한 여인을 가까이하지 않았고,
말과 희롱하는 웃음과 조롱을 하지 않았고,
여인과 눈을 맞추지도 서로 쳐다보지도 않았고,
장벽 밖에서 여인의 음성과 가무 소리와 울고 흐느끼는 것을 듣지 않았다’라고.
그렇지만 그는 여인과 과거에 함께 일하고 놀며 웃고 말하고 서로 오락하던 때를 억념하였다.
그리고 이로써 기쁨과 즐거움을 삼고,
이로써 기운을 차린다.
내가 바라문에게 고하여 말하니,
이것을 공욕염이라고 일컫는다.
따라서 이것은 청정한 범행이 아니다.
황폐함과 결핍됨과 때 묻어 더럽혀짐을 지니어 아직 삶과 늙음과 병과 죽음과 근심과 슬픔과 괴로움과 고뇌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니,
여러 괴로움이 쌓이고 모일 뿐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것을 아직 괴로움을 q서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일컫는다.
다시 바라문이여,
어떤 사람이 말한다.
‘나는 바로 청정한 범행자이니,
여인과 교통하지 않았고,
여인이 베푸는 목욕ㆍ의복ㆍ안마ㆍ조신을 받지 않았고,
또한 여인을 가까이하지 않았고,
말과 희롱하는 웃음과 조롱을 하지 않았고,
여인과 눈을 맞추지도 서로 쳐다보지도 않았고,
장벽 밖에서 여인의 음성과 가무 소리와 울고 흐느끼는 것을 듣지 않았고,
여인과 과거에 함께 일하고 놀며 웃고 말하고 서로 오락하던 때를 억념하지 않았다’라고.
그렇지만 그는 장자와 장자의 아들이 다섯 가지 애욕의 대상물들을 갖추어 서로 오락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이로써 기쁨과 즐거움을 삼고,
이로써 기운을 차린다.
내가 바라문에게 고하여 말하니,
이것을 공욕염이라고 일컫는다.
따라서 이것은 청정한 범행이 아니다.
황폐함과 결핍됨과 때 묻어 더럽혀짐을 지니어 아직 삶과 늙음과 병과 죽음과 근심과 슬픔과 괴로움과 고뇌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니,
여러 괴로움이 쌓이고 모일 뿐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것을 아직 괴로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일컫는다.
다시 바라문이여,
어떤 사람이 말한다.
‘나는 바로 청정한 범행자이니,
여인과 교통하지 않았고,
여인이 베푸는 목욕ㆍ의복ㆍ안마ㆍ조신을 받지 않았고,
또한 여인을 가까이하지 않았고,
말과 희롱하는 웃음과 조롱을 하지 않았고,
여인과 눈을 맞추지도 서로 쳐다보지도 않았고,
장벽 밖에서 여인의 음성과 가무 소리와 울고 흐느끼는 것을 듣지 않았고,
여인과 과거에 함께 일하고 놀며 웃고 말하고 서로 오락하던 때를 억념하지 않았고,
또한 장자와 장자의 아들이 다섯 가지 애욕의 대상물들을 갖추어 서로 오락하는 것을 보지 않았다’라고.
그렇지만 천상에 태어나는 것을 원하는 까닭에 청정한 범행을 행하고,
곧 ‘나는 이 계율로써 또한 이 도로써 또한 이 고행과 청정한 범행으로써 실행하였으니,
이것은 나를 천왕으로 만들고 또는 보신(輔臣)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로써 기쁨과 즐거움을 삼고,
이로써 기운을 차린다.
내가 바라문에게 고하여 말하니,
이것을 공욕염이라고 일컫는다.
따라서 이것은 청정한 범행이 아니다.
황폐함과 결핍됨과 때 묻어 더럽혀짐을 지니어 아직 삶과 늙음과 병과 죽음과 근심과 슬픔과 괴로움과 고뇌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니,
여러 괴로움이 쌓이고 모일 뿐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것을 아직 괴로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일컫는다.
다시 바라문이여,
내가 이 일곱 가지 공욕염을 나의 내심을 관찰하여,
설령 일곱 가지 공욕염이 마땅히 아직 단절되지 않았음을 본다면,
나도 역시 스스로가 바르고 청정한 범행자라고 말하지 못한다.
바라문이여,
나는 일곱 가지 공욕염을 단절한 까닭에 바르고 청정한 범행자이며,
무소외(無所畏)를 얻었다 말하는 것이다.”
이를 이름하여 일곱 가지 공욕염이라고 한다.
무엇을 일곱 가지 식의 주처라고 일컫는가.
먼저 여러 몸과 여러 생각을 지닌 중생들이 있으니,
욕계의 사람과 천신이다.
이를 처음의 식의 주처라고 일컫는다.
또한 여러 몸과 한 생각을 지닌 중생들이 있으니,
처음 태어난 범천의 천신들이다.
이를 이름하여 제이의 식의 주처라고 한다.
또한 한 몸과 여러 생각을 지닌 중생들이 있으니,
광음천(光音天)의 천신들이다.
이를 이름하여 제삼의 식의 주처라고 한다.
또한 한 몸과 한 생각을 지닌 중생들이 있으니,
변정천(遍淨天)의 천신들이다.
이를 이름하여 제사의 식의 주처라고 한다.
또한 끝없는 공무변처의 중생들이 있으니,
이를 제오의 식이 주처라고 한다.
또한 끝없는 식무변처의 중생들이 있으니,
이를 제육이 식의 주처라고 한다.
또한 무소유처의 중생들이 있으니,
이를 제칠의 식의 주처라고 한다.
이들을 이름하여 일곱 가지 식의 주처라고 한다.
무엇을 일곱 가지 교만이라고 일컫는가.
교만,
같지 않다는 교만,
뛰어나다는 교만,
증상만(增上慢),
아만,
사만(邪慢),
교만 중의 교만 등이다.
무엇을 교만이라고 일컫는가.
‘내가 뛰어나다’라고 하여 마음이 저들에 대해 공고(貢高)한 것이니,
이를 교만이라고 한다.
무엇을 같지 않다는 교만이라고 일컫는가.
‘저들이 나와 같지 않다’라고 하여 마음이 저들에 대해 공고한 것이니,
이를 같지 않다는 교만이라고 한다.
무엇을 뛰어나다는 교만이라고 일컫는가.
‘나와 뛰어난 자는 동등하다’라고 하여 마음이 저들에 대해 공고한 것이니,
이를 뛰어나다는 교만이라고 한다.
무엇을 증상만이라고 일컫는가.
아직 얻지 못한 것에 대해 얻었다는 생각을 일으켜 마음이 저들에 대해 공고한 것이니,
이를 증상만이라고 한다.
무엇을 아만이라고 일컫는가.
‘나는 선한 법을 지녔다’라고 하여 마음이 저들에 대해 공고한 것이니,
이를 아만이라고 한다.
무엇을 사만이라고 일컫는가.
선한 법을 지니지도 않은 채 마음이 저들에 대해 공고한 것이니,
이를 사만이라고 한다.
무엇을 교만 중의 교만이라고 일컫는가.
남의 교만을 보고 교만을 일으켜 마음이 저들에 대해 공고한 것이니,
이를 교만 중의 교만이라고 한다.
다시 아만이란 신견(身見)을 지닌 자의 마음이 저들에 대해 공고함을 일으킨 것이니,
이를 아만이라고 한다.
다시 사만이란 삿된 견해를 지닌 자의 마음이 저들에 대해 공고함을 일으킨 것이니,
이를 사만이라고 한다.
다시 교만 중의 교만이란 ‘나는 뛰어난 것 중에서 뛰어나고 귀한 것 중에서 귀하다’라고 하여 마음이 저들에 대해 공고함을 일으킨 것이니,
이를 교만 중의 교만이라고 한다.
이들을 이름하여 일곱 가지 교만이라고 한다.
무엇을 일곱 가지 공경하지 않음이라고 하는가.
부처님을 공경하지 않고,
법을 공경하지 않고,
승단을 공경하지 않고,
계율을 공경하지 않고,
정을 공경하지 않고,
지혜를 공경하지 않고,
선한 법을 공경하지 않는 것이니,
이를 일곱 가지 공경하지 않음이라고 한다.
무엇을 일곱 가지 누(漏)라고 일컫는가.
봄으로 끊을 누,
인욕으로 끊을 누,
친근함으로 끊을 누,
떠남으로 끊을 누,
조복(調伏)으로 끊을 누,
계율로 끊을 누,
사유로 끊을 누가 있으니,
이를 일곱 가지 누라고 한다.
무엇을 일곱 가지 겁약한 법[怯弱法]이라고 일컫는가.
살생ㆍ도적질ㆍ사음ㆍ거짓말ㆍ이간질하는 말ㆍ욕ㆍ쓸데없는 말 등이니,
이를 일곱 가지 겁약한 말이라고 한다.
무엇을 일곱 가지 흔들림이라고 일컫는가.
나는 미래에 있다는 것,
나는 미래에 없다는 것,
나의 색이 미래에 있다는 것,
나의 색이 미래에 없다는 것,
나의 상(想)이 미래에 있다는 것,
나의 상이 미래에 없다는 것,
나는 미래에 상을 지니는 것도 아니고 지니지 않는 것도 아닌 상태로 있다는 것 등이니,
이를 일곱 가지 흔들림이라고 한다.
일곱 가지 스스로의 의뢰함ㆍ일곱 가지 구함ㆍ일곱 가지 모방함ㆍ일곱 가지 지음ㆍ일곱 가지 생 역시 그와 같다[칠법으로 된 것을 마침].
무엇을 여덟 가지 세간법이라고 일컫는가.
이익ㆍ쇠퇴ㆍ훼손ㆍ명예ㆍ칭찬ㆍ나무람ㆍ괴로움 그리고 즐거움 등이니,
이를 세간의 여덟 가지 법이라고 한다.
무엇을 여덟 가지 성스럽지 않은 말이라고 일컫는가.
보지 않은 것을 보았다고 말하고,
본 것을 보지 않았다고 말하고,
듣지 않은 것을 들었다고 말하고,
들은 것을 듣지 않았다고 말하고,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달았다고 말하고,
깨달은 것을 깨닫지 못했다고 말하고,
식별하지 못한 것을 식별했다고 말하고,
식별한 것을 식별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이니,
이를 여덟 가지 성스럽지 않은 말이라고 한다.
무엇을 여덟 가지 게으른 일이라고 일컫는가.
비구가 이렇게 사유한다.
‘나는 오늘 마을에 들어가 걸식을 했는데 나는 거칠고 미세한 음식을 얻었으나,
충분하지 못하고 부족한 까닭에 나는 약해지고 여위게 된다.
그래서 경행(經行)과 좌선을 즐길 수 없으니,
나는 누워서 자고 싶다’라고.
이에 그 게으른 비구는 문득 누워서 자니,
열심히 정진하여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으려 하고,
아직 요해하지 못한 것을 요해하려 하고,
아직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려는 행위가 불가능하다.
이를 이름하여 처음의 게으른 일이라고 한다.
다시 게으른 비구가 이렇게 사유한다.
‘나는 오늘 마을에 들어가 걸식하여 거칠고 미세한 음식을 얻었으되,
너무 충분하여 몸이 무겁고 꺼려지니,
고기 주머니에 돈이 가득한 것과 같다.
그래서 경행과 좌선을 즐길 수 없으니,
나는 누워서 자고 싶다’라고.
이에 그 게으른 비구는 문득 누워서 자니,
열심히 정진하여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으려 하고,
아직 요해하지 못한 것을 요해하려 하고,
아직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려는 행위가 불가능하다.
이를 이름하여 제이의 게으른 일이라고 한다.
다시 게으른 비구가 이렇게 사유한다.
‘나는 오늘 일을 해서 피로하다.
그래서 경행과 좌선을 즐길 수 없으니,
나는 누워서 자고 싶다’라고.
이에 그 게으른 비구는 문득 누워서 자니,
열심히 정진하여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으려 하고,
아직 요해하지 못한 것을 요해하려 하고,
아직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려는 행위가 불가능하다.
이를 이름하여 제삼의 게으른 일이라고 한다.
다시 게으른 비구가 이렇게 사유한다.
‘나는 내일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마땅히 몸이 피로할 것이다.
그래서 경행과 좌선을 즐길 수 없으니 나는 누워서 자고 싶다’라고.
이에 그 게으른 비구는 문득 누워서 자니,
열심히 정진하여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으려 하고,
아직 요해하지 못한 것을 요해하려 하고,
아직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려는 행위가 불가능하다.
이를 이름하여 제사의 게으른 일이라고 한다.
다시 게으른 비구가 이렇게 사유한다.
‘나는 오늘 어디에 갔다 와서 몸이 극도로 피곤하여 경행과 좌선을 즐길 수 없으니,
나는 누워서 자고 싶다’라고.
이에 그 게으른 비구는 문득 누워서 자니,
열심히 정진하여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으려 하고,
아직 요해하지 못한 것을 요해하려 하고,
아직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려는 행위가 불가능하다.
이를 이름하여 제오의 게으른 일이라고 한다.
다시 게으른 비구가 이렇게 사유한다.
‘나는 내일 가야 한다.
따라서 몸이 반드시 극도록 피곤해질 것이다.
그래서 경행과 좌선을 즐길 수 없으니 나는 누워서 자고 싶다’라고.
이에 그 게으른 비구는 문득 누워서 자니,
열심히 정진하여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으려 하고,
아직 요해하지 못한 것을 요해하려 하고,
아직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려는 행위가 불가능하다.
이를 이름하여 제육의 게으른 일이라고 한다.
다시 게으른 비구가 이렇게 사유한다.
‘나는 지금 아프고 괴롭다.
그래서 경행과 좌선을 즐길 수 없으니 나는 누워서 자고 싶다’라고.
이에 그 게으른 비구는 문득 누워서 자니,
열심히 정진하여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으려 하고 아직 요해하지 못한 것을 요해하려 하고 아직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려는 행위가 불가능하다.
이를이름하여 제칠의 게으른 일이라고 한다.
다시 게으른 비구가 이렇게 사유한다.
‘나는 병에서 나은 지 오래 되지 않아 나의 몸은 매우 약하다.
그래서 경행과 좌선을 즐길 수 없으니,
나는 누워서 자고 싶다’라고.
이에 그 게으른 비구는 문득 누워서 자니,
열심히 정진하여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으려 하고,
아직 요해하지 못한 것을 요해하려 하고,
아직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려는 행위가 불가능하다.
이를 이름하여 여덟 가지 게으른 일이라고 한다.
무엇을 범행의 닦음을 막는 여덟 가지 난처(難處)라고 일컫는가.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니,
여래ㆍ응공ㆍ정등각자ㆍ명행족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조어장부ㆍ천인사ㆍ불ㆍ세존이시다.
그가 적정함과 멸진됨과 이욕(離欲)의 법을 말하고,
바로 나아가기만 하면 열반에 이르는 도(道)를 말한다.
그런데 어떤 중생이 지옥의 장소에 존재한다.
이를 이름하여 범행의 닦음을 막는 처음의 난처라고 한다.
다시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니,
여래ㆍ응공으로부터 불ㆍ세존에 이르기까지이다.
그가 적정함과 멸진됨과 이욕의 법을 말하고,
바로 나아가기만 하여 열반에 이르는 도를 말한다.
그런데 어떤 중생이 축생의 세계ㆍ아귀의 세계ㆍ장수천(長壽天)의 세계에 존재하거나,
또는 변방에 어리석은 자로 살고 있는데,
마침 그곳이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가 이를 수 없는 곳이다.
이를 이름하여 범행의 닦음을 막는 제오에 이르기까지의 난처라고 한다.
다시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니,
여래ㆍ응공으로부터 불ㆍ세존에 이르기까지이다.
그가 적정함과 멸진됨과 이욕의 법을 말하고,
바로 나아가기만 하면 열반에 이르는 도를 말한다.
그런데 어떤 중생이 나라의 한 가운데에 태어났는데도 삿된 견해와 전도된 견해를 지닌다.
그는 삿된 견해와 전도된 견해의 과보가 완전히 익게 되면,
그 까닭으로 반드시 지옥에 태어난다.
이를 이름하여 범행의 닦음을 막는 제육의 난처라고 한다.
다시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니,
여래ㆍ응공으로부터 불ㆍ세존에 이르기까지이다.
그가 적정함과 멸진됨과 이욕의 법을 말하고,
바로 나아가기만 하면 열반에 이르는 도를 말한다.
그런데 어떤 중생이 나라의 한 가운데에 태어났는데도 귀머거리 또는 소경 또는 벙어리어서 양과 같이 손으로 언어의 모습을 드러내니,
선함과 악함과 업과 과보를 말하여도 알지 못한다.
이를 이름하여 범행의 닦음을 막는 제칠의 난처라고 한다.
다시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지 않으셨으니 여래로부터 내지 불ㆍ세존에 이르기까지의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
따라서 적정함과 멸진됨과 이욕의 법을 말하는 일이 없고,
바로 나아가기만 하면 열반에 이르는 도를 말하는 일도 없다.
그런데 어떤 중생이 태어나 나라의 한 가운데에 살고,
귀머거리ㆍ소경ㆍ벙어리도 아니고 역시 선함과 악함과 업과 과보를 분별하여도 부처님 시대에 놓이지 못한 것이다.
이것이 여덟 번째이니,
이들을 이름하여 범행의 닦음을 막는 여덟 가지 난처라고 한다[팔법으로 된 것을 마침].
무엇을 구약간법(九若干法)이라고 일컫는가.
몇 가지 계(界)를 연하여 몇 가지 촉(觸)이 생하고,
몇 가지 촉을 연하여 몇 가지 수(受)가 생하고,
몇 가지 수를 연하여 몇 가지 상(想)이 생하고,
몇 가지 상을 연하여 몇 가지 사유가 생하고,
몇 가지 사유를 연하여 몇 가지 욕심이 생하고,
몇 가지 욕심이 연하여 몇 가지 이양(利養)이 생하고,
몇 가지 이양을 연하여 몇 가지 구함이 생하고 몇 가지 구함을 연하여 몇 가지 초열(焦熱)이 생하는 것이니,
이를 구약간법이라고 한다.
무엇을 갈애를 뿌리로 하는 아홉 가지 법이라고 일컫는가.
갈애를 연하여 구함이 생하고,
구함을 연하여 이양이 생하고,
이양을 연하여 일[所作]이 생기고,
일을 연하여 욕염이 생하고,
욕염을 연하여 지속함이 생하고,
지속함을 연하여 인색함이 생하고,
인색함을 연하여 쌓음이 생하고,
쌓음을 연하여 애호함ㆍ상해를 입힘ㆍ때리고 침ㆍ서로 묶어 가둠 및 서로 투쟁하는 것이 생한다.
이를 이름하여 갈애를 뿌리로 하는 아홉 가지 법이라고 한다.
무엇을 구중생거(九衆生居)이라고 일컫는가.
먼저 여러 몸과 여러 생각을 지닌 중생들이 있으니,
욕계의 사람과 천신들이다.
이를 중생의 처음의 거주처라고 일컫는다.
또한 여러 몸과 한 생각을 지닌 중생들이 있으니,
말하자면 처음 태어난 범천의 천신들이다.
이를 중생의 제이의 거주처라고 일컫는다.
다시 한 몸과 여러 생각을 지닌 중생들이 있으니,
광음천(光音天)의 천신들이다.
이를 중생의 제삼의 거주처라고 일컫는다.
또한 한 몸과 한 생각을 지닌 중생들이 있으니,
변정천(遍淨天)의 중생들이다.
이를 중생의 제사의 거주처라고 일컫는다.
또한 느낌도 생각도 없는 중생들이 있으니,
무상천(無想天) 중생들이다.
이를 중생의 제오의 거주처라고 일컫는다.
또한 끝없는 공무변처의 중생들이 있으니,
이를 중생의 제육의 거주처라고 일컫는다.
또한 끝없는 식무변처의 중생들이 있으니,
이를 중생의 제칠의 거주처라고 일컫는다.
또한 무소유처의 중생들이 있으니,
이를 중생의 제팔의 거주처라고 일컫는다.
또한 비상비비상처의 중생들이 있으니,
이를 중생의 제구의 거주처라고 한다.
무엇을 범계의 아홉 가지 환난이라고 일컫는가.
뉘우침,
즐겁지 않음,
기쁘지 않음,
편안하지 않음,
마음의 괴로움,
산란함,
여실히 알고 보지 못함,
해탈하지 못함,
방편을 갖추지 못함 등이니,
이것을 범계의 아홉 가지 환난이라고 한다[구법으로 된 것을 마침].
-----------------
1)
제18권의 명목에는 안의 화합으로 되어 있다.
2)
제18권의 명목에는 불친증(不親增)으로 되어 있다.
3)
제18권의 명목에는 담음(痰癊)으로 되어 있다.
○ [pt op tr]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Christophe Maé - La Rumeur.lrc
Christophe Maé - La Rumeur
◈Lab value 불기2564/10/19 |
COME LE ROUGE ET LE NOIR - Les Maudits Mots D'amour
♥단상♥ |
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10/2564-10-19-k0969-019.html#6597 sfed--사리불아비담론_K0969_T1548.txt ☞제19권 sfd8--불교단상_2564_10.txt ☞◆vfsq6597 불기2564-10-19 θθ |
■ 선물 퀴즈
방문자선물 안내페이지
다음에 해당하는 단어를
본 페이지
에 댓글로 적어주시면 됩니다.
이숙인(異熟因)으로 생긴 것. 〓이숙과.
답 후보
● 이숙생(異熟生)
이십팔천(二十八天)
이익(利益)
이제(二諦)
이종비구(二種比丘)
이차돈(異次頓)
인(印)
ॐ मणि पद्मे हूँ
○ [pt op tr]
○ [pt op tr]
● 사리불아비담론_K0969_T1548 [문서정보]- 일일단상키워드
'과거조각글 > 불기2564(2020)'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기2564-10-20_아비달마구사론-K0955-001 (0) | 2020.10.20 |
---|---|
사진추출테스트 (0) | 2020.10.20 |
불기2564-10-18_정법념처경-K0801-057 (0) | 2020.10.18 |
불기2564-10-17_정법화경-K0117-004 (0) | 2020.10.17 |
불기2564-10-16_과거현재인과경-K0777-002 (0) | 2020.10.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