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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4-12-07_잡아함경-K0650-014 본문
『잡아함경』
K0650
T0099
제14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안내
○ 해제[있는경우]
● TTS 음성듣기 안내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잡아함경』
♣0650-014♧
○ 2018_0419_085418_nik_ab53
○ 2018_0419_134729_can_exc
○ 2018_0419_125114_can_ct27
○ 2018_0419_140659_can_ab38
○ 2020_0525_170848_can_ct27
○ 2018_0419_130307_nik_ar45
○ 2018_0419_140825_can_ct27
○ 2020_0525_171439_can_exc
○ 2020_0525_191134_can_ct27
○ 2016_1008_150604_can_ar45
○ 2020_0525_163850_nik_ab25
○ 2018_0419_140306_can_ct27
○ 2020_0525_165356_nik_ct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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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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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雜阿含經卷第十四
K0650
잡아함경 제14권
송 천축삼장 구나발타라 한역
343. 부미경(浮彌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그때 존자 부미(浮彌) 비구는 기사굴산(耆闍崛山)에 머물고 있었다.
이때 많은 출가(出家)하여 수행하는 외도들이 존자 부미가 있는 곳으로 찾아와 서로 문안인사를 나누고 경하하고 위로하였다.
서로 문안인사를 나눈 다음에 경하하고 위로하고 나서 한쪽에 물러나 앉아 존자 부미에게 말하였다.
“물을 것이 있는데 한가하다면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존자 부미가 모든 출가한 외도들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의 물음을 따라 설명하겠습니다.”
이때 많은 출가 외도들이 존자 부미에게 물었다.
“괴로움과 즐거움은 자기 자신이 지은 것입니까?”
존자 부미가 대답하였다.
“모든 출가 외도들이 ‘괴로움과 즐거움은 자기 자신이 지은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세존께서는 ‘그것은 무기(無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물었다.
“괴로움과 즐거움은 다른 사람이 지은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괴로움과 즐거움은 다른 사람이 지은 것이다’라는 주장에 대해 세존께서는 ‘그것은 무기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물었다.
“괴로움과 즐거움은 자기와 남이 같이 지은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괴로움과 즐거움은 자기와 남이 같이 지은 것이다’라는 주장에 대해 세존께서는 ‘그것은 무기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물었다.
“괴로움과 즐거움은 자기도 아니요 남도 아닌 인(因)이 없이 지어진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괴로움과 즐거움은 자기도 아니요 남도 아닌 인이 없이 지어진 것이다’라는 주장에 대해 세존께서는 ‘그것은 무기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출가한 외도들이 물었다.
“어떻습니까?
존자 부미여.
‘괴로움과 즐거움은 자기가 지은 것인가?’ 하고 물어도 무기(無記)라고 대답하고,
‘괴로움과 즐거움은 남이 지은 것인가?’ 하고 물어도 무기라고 대답하며,
‘괴로움과 즐거움은 자기와 남이 지은 것인가?’ 하고 물어도 무기라고 말하고,
‘괴로움과 즐거움은 자기도 아니요 남도 아닌 인이 없이 지어진 것인가’고 물어도 무기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제 사문 구담(瞿曇)은 괴로움과 즐거움이 어떻게 생긴다고 말씀하십니까?”
존자 부미가 대답하였다.
“모든 출가한 외도들이여,
세존께서는 ‘괴로움과 즐거움은 인연으로부터 일어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많은 출가 외도들은 존자 부미의 말을 듣고 마음이 불쾌하여 꾸짖으면서 떠나갔다.
그때 존자 사리불(舍利弗)은 존자 부미에게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의 한 나무 밑에 앉아 있었다.
그때 존자 부미는 여러 외도들이 떠난 줄을 알고는 존자 사리불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 도착해서는 사리불을 만나 서로 경하하고 위로하였다.
경하하고 위로하기를 마친 뒤에 저 외도들이 물은 일을 존자 사리불에게 모두 아뢰었다.
“제가 이렇게 대답한 것이 세존을 비방한 것이나 아닌지요?
세존의 말씀 그대로 말한 것이며,
법답게 말하지 않거나 법을 그대로 따르고 법을 행한 것이 아니지나 않습니까?
법에 근거해 의논하는 자들이 찾아와 힐난하거나 꾸짖을 빌미는 없겠습니까?”
존자 사리불이 말하였다.
“존자 부미여,
당신이 말한 것은 진실로 부처님의 말씀 그대로여서 여래를 비방한 것이 아닙니다.
세존의 말씀 그대로 말하였고,
법답게 말하였으며,
법에 따라 법을 행하는 말이었고,
법에 근거해 의논하는 자들이 찾아와 힐난하거나 꾸짖을 빌미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왜냐 하면 세존께서는 괴로움과 즐거움은 인연으로부터 일어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존자 부미여,
저 여러 사문 바라문들이 ‘괴로움과 즐거움은 자기가 지은 것인가?’ 하고 물은 것도 또한 인(因)으로부터 일어난 것입니다.
‘인으로부터 일어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그 말은 옳지 않습니다.
‘괴로움과 즐거움은 다른 사람이 지은 것이다,
자기와 다른 사람이 지은 것이다,
자기도 아니요 다른 사람이 아닌 인이 없이 지어진 것이다’라고 말한 것도 또한 인연으로부터 일어난 것입니다.
만일 ‘인연으로부터 일어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그 말은 옳지 않습니다.
존자 부미여,
저 사문 바라문들이 ‘괴로움과 즐거움은 자기가 지은 것이다’라고 말한 것 역시 접촉[觸]을 인연하여 생긴 것들입니다.
만일 ‘접촉으로부터 생긴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괴로움과 즐거움은 다른 사람이 지은 것이다,
자기와 다른 사람이 지은 것이다,
자기도 아니요 다른 사람이 아닌 인이 없이 지어진 것이다’라고 하는 것도 역시 접촉을 인연하여 생긴 것입니다.
만일 ‘접촉을 인연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그때 존자 아난은 사리불에게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의 한 나무 밑에 앉아 있다가 존자 사리불과 존자 부미가 토론하는 것을 들었다.
그 말을 듣고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발에 예를 올린 뒤에 한쪽에 물러나 앉았다.
그리고는 존자 부미와 존자 사리불이 서로 토론한 내용을 낱낱이 빠짐없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아난아,
존자 사리불은 찾아와 묻는 사람이 있으면 때맞춰 적절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다.
훌륭하구나.
사리불은 시기에 적절한 지혜가 있기 때문에 찾아와 묻는 사람이 있으면 때맞춰 대답할 수 있다.
만일 나의 성문(聲聞)이라면,
수시로 묻는 사람이 있을 때 때맞춰 적절하게 대답하기를 사리불이 말한 것처럼 해야 한다.
아난아,
내가 예전에 왕사성의 산 속 선인(仙人)이 살던 곳에서 머물고 있었을 때,
여러 출가한 외도들이 이와 같은 이치ㆍ이와 같은 글귀ㆍ이와 같은 맛으로 내게 물어온 적이 있었다.
나는 그때 그들을 위해 이와 같은 이치ㆍ이와 같은 글귀ㆍ이와 같은 맛으로 분명하게 설명하였으니,
바로 지금 존자 사리불이 말한 것과 같으니라.
아난아,
만일 여러 사문 바라문들이 ‘괴로움과 즐거움은 자기가 지은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나는 곧 그에게 가서 물을 것이다.
‘그대가 정말 〈괴로움과 즐거움은 자기가 지은 것이다〉라고 말하였는가?’
그러면 그는 내게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나는 곧 그에게 ‘네가 그 이치를 굳게 고집하여 〈이것이 진실이요,
다른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내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 하면 내가 설명하는 괴로움과 즐거움이 일어나는 원인은 그것과 다르기 때문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가 만일 내게 ‘괴로움과 즐거움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다르게 말하는 구담의 설명은 무엇인가?’ 하고 물으면 나는 곧 그에게 대답할 것이다.
‘저 인연으로부터 괴로움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이다.’
이와 같이 ‘괴로움과 즐거움은 다른 사람이 지은 것이다,
자기와 다른 사람이 지은 것이다,
자기도 아니요 다른 사람이 아닌 인(因)이 없이 지어진 것이다’라고 말한다면나는 또한 그에게 찾아가 위와 같이 말할 것이다.”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이치대로 저는 이미 이해하였습니다.
태어남이 있기 때문에 늙음과 죽음이 있는 것이지,
다른 것을 인연하는 것이 아닙니다.
태어남이 있기 때문에 늙음과 죽음이 있고 ……(내지)…… 무명(無明) 때문에 행(行)이 있는 것이지,
다른 것을 인연한 것이 아닙니다.
무명이 있기 때문에 행이 있고 무명이 소멸하면 행이 소멸하며,
……(내지)……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음ㆍ병듦ㆍ죽음과 근심ㆍ슬픔ㆍ번민ㆍ괴로움이 다 소멸하며,
이렇게 하여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소멸합니다.”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존자 아난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물러갔다.
344. 구치라경(拘絺羅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그때 존자 사리불(舍利弗)과 존자 마하구치라(摩訶拘絺羅)는 기사굴산에 있었다.이때 존자 마하구치라가 해질 무렵에 선정에서 일어나 사리불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 서로 경하하고 위로하였다.
서로 경하하고 위로한 뒤에 한쪽에 물러나 앉아 존자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물을 것이 있는데 한가하시면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존자 사리불이 존자 마하구치라에게 말하였다.
“당신께선 무엇이든지 물으십시오.
아는 대로 대답하겠습니다.”
존자 마하구치라가 존자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 법(法)과 율(律)에서 어떤 법을 성취하기에,
소견이 구족하고 곧은 소견을 성취하여 부처님에 대한 무너지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성취하고,
바른 법에 들어와 이 바른 법을 얻으며,
이 바른 법을 깨달았다고 불려집니까?”
존자 사리불이 존자 마하구치라에게 말하였다.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착하지 않은 법[不善法]을 사실 그대로 알고,
착하지 않은 근[不善根]을 사실 그대로 알며,
착한 법[善法]을 사실 그대로 알고,
착한 근[善根]을 사실 그대로 압니다.
어떻게 착하지 않은 법을 사실 그대로 아는가?
착하지 않은 몸의 업[身業]ㆍ입의 업[口業]ㆍ뜻의 업[意業],
이것을 착하지 않은 법이라 하나니,
이와 같이 착하지 않은 법을 사실 그대로 압니다.
어떻게 착하지 않은 근을 사실 그대로 아는가?
세 가지 착하지 않은 근이 있으니,
탐욕이라는 착하지 않은 근[貪不善根]ㆍ성냄이라는 착하지 않은 근[恚不善根]ㆍ어리석음이라는 착하지 않은 근[癡不善根]입니다.
이것을 착하지 않은 근이라 하나니,
이와 같이 착하지 않은 근을 사실 그대로 압니다.
어떻게 착한 법을 사실 그대로 아는가?
착한 몸의 업ㆍ입의 업ㆍ뜻의 업,
이것을 착한 법이라고 하나니,
이와 같이 착한 법을 사실 그대로 압니다.
어떻게 착한 근을 사실 그대로 아는가?
이른바 세 가지 착한 근이라는 것은 탐욕이 없고,
성냄이 없으며,
어리석음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세 가지 착한 근이라고 하나니,
이와 같이 착한 근을 사실 그대로 압니다.
존자 마하구치라여,
이와 같이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착하지 않은 법을 사실 그대로 알고,
착하지 않은 근을 사실 그대로 알며,
착한 법을 사실 그대로 알고,
착한 근을 사실 그대로 압니다.
그 때문에 이 법과 율(律)에서 바른 소견을 구족하고 곧은 소견을 성취하여,
부처님에 대한 무너지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성취하고,
바른 법에 들어와 이 바른 법을 얻고 이 바른 법을 깨닫게 됩니다.”
존자 마하구치라가 존자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바로 그런 것들만 있고 다른 것은 없습니까?”
존자 사리불은 말하였다.
“있습니다.
혹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음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고,
음식의 발생ㆍ음식의 소멸ㆍ음식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기도 합니다.
음식[食]에 대해 어떻게 사실 그대로 아는가?
이른바 네 가지 음식[四食]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첫째는 거칠고 덩어리진 음식[麤摶食]이요,
둘째는 섬세한 감촉이라는 음식[細觸食]이며,
셋째는 의지와 의도라는 음식[意思食]이요,
넷째는 식이라는 음식[識食]입니다.
이것을 음식이라 하나니,
이와 같은 음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압니다.
음식의 발생[食集]에 대해 어떻게 사실 그대로 아는가?
이른바 미래의 존재를 받게 하는 애욕에 탐욕과 기쁨이 함께 하여 이것저것을 즐거워하고 집착하는 것이니,
이것을 음식의 발생이라 하며,
이와 같이 음식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압니다.
음식의 소멸[食滅]에 대해 어떻게 사실 그대로 아는가?
만일 미래의 존재를 받게 하는 애욕에 탐욕과 기쁨이 함께 하여 이것저것을 즐거워하고 집착하면,
그것을 남김없이 끊어버리고 완전히 토하며,
탐욕을 떠나 소멸하고 쉬고 사라지게 하나니 이것을 음식의 소멸이라고 하며,
이와 같이 음식의 소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압니다.
음식의 소멸에 이르는 길[食滅道跡]에 대해 어떻게 사실 그대로 아는가?
이른바 8성도(聖道)로서 바른 소견ㆍ바른 뜻ㆍ바른 말ㆍ바른 업ㆍ바른 생활ㆍ바른 방편ㆍ바른 기억ㆍ바른 선정이니,
이것을 음식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고 하며,
이와 같이 음식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압니다.
만일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가 이 음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고,
음식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며,
음식의 소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고,
음식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안다면,
그 때문에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바른 법과 율에서 바른 소견을 구족하고 곧은 소견을 성취하여,
부처님에 대한 무너지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성취하고,
바른 법에 들어와 이 바른 법을 알고 이 바른 법을 깨닫게 됩니다.”
존자 마하구치라가 다시 물었다.
“바로 그런 것들만 있고 다른 것은 없습니까?”
존자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존자 마하구치라여,
다시 다른 것이 있습니다.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가 병을 사실 그대로 알고,
병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며,
병의 소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고,
병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압니다.
병에 대해 어떻게 사실 그대로 아는가?
이른바 세 가지 병이니 탐욕의 병[欲病]ㆍ존재의 병[有病]ㆍ무명의 병[無明病]입니다.
이것을 병이라고 하나니,
이와 같이 병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압니다.
병의 발생에 대해 어떻게 사실 그대로 아는가?
무명의 발생이 곧 병의 발생이니 이것을 병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병의 소멸에 대해 어떻게 사실 그대로 아는가?
무명의 소멸이 곧 병의 소멸이니,
이와 같이 병의 소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압니다.
병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어떻게 사실 그대로 아는가?
이른바 8정도로서 앞에서 말한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병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압니다.
만일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가 병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고,
병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며,
병의 소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고,
병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안다면,
그 때문에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 법과 율에서 바른 소견을 구족하고 ……(내지)…… 이 바른 법을 깨닫게 됩니다.”
존자 마하구치라가 존자 사리불에게 물었다.
“바로 이런 것들만 있고 다른 것은 없습니까?”
존자 사리불이 존자 마하구치라에게 대답하였다.
“다시 다른 것이 있습니다.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괴로움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고,
괴로움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며,
괴로움의 소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압니다.
괴로움[苦]에 대해 어떻게 사실 그대로 아는가?
이른바 태어남의 괴로움ㆍ늙음의 괴로움ㆍ병의 괴로움ㆍ죽음의 괴로움ㆍ은혜롭거나 사랑스런 이와 이별하는 괴로움ㆍ원수나 미운 이와 만나는 괴로움ㆍ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는 괴로움,
이와 같은 것을 간략히 말하면 5수음(受陰)의 괴로움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괴로움이라 하며,
이와 같이 괴로움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압니다.
괴로움의 발생[苦集]에 대해 어떻게 사실 그대로 아는가?
미래의 존재를 받게 하는 애욕에 탐욕과 기쁨이 함께 하여 이것저것을 좋아하고 집착하는 것,
이것을 괴로움의 발생이라고 하며,
이와 같이 괴로움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압니다.
괴로움의 소멸[苦滅]에 대해 어떻게 사실 그대로 아는가?
만일 미래의 존재를 받게 하는 애욕에 탐욕과 기쁨이 함께 하여 이것저것을 좋아하고 집착하면 그것을 남김없이 끊고 ……(내지)…… 나아가 쉬고 사라지게 합니다.
이것을 괴로움의 소멸이라 하며,
이와 같이 괴로움의 소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압니다.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苦滅道跡]에 대해 어떻게 사실 그대로 아는가?
8성도를 말하는 것이니,
위에서 말한 것과 같습니다.
이것을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고 하며,
이와 같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사실 그대로 압니다.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와 같이 괴로움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고,
괴로움의 발생ㆍ괴로움의 소멸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압니다.
이와 같이 거룩한 제자는 우리 법과 율에서 바른 소견을 구족하고 곧은 소견을 성취하여,
부처님에 대해 무너지지 않는 깨끗함을 성취하고,
바른 법에 들어와 이 바른 법을 얻고 이 바른 법을 깨닫게 됩니다.”
다시 존자 사리불에게 물었다.
“바로 그런 법들만 있고 다른 것은 없습니까?”
존자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다시 다른 것이 있습니다.
이른바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늙음과 죽음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고,
늙음과 죽음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며,
늙음과 죽음의 소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고,
늙음과 죽음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나니,
분별경(分別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늙음과 죽음의 발생에 대해 어떻게 사실 그대로 아는가?
태어남의 발생은 곧 늙음과 죽음의 발생이요,
태어남의 소멸은 늙음과 죽음의 소멸이니라.
늙음과 죽음의 소멸에 이르는 길은 8정도를 이르는 말이니,
앞에서 말한 것과 같습니다.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 늙음과 죽음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고,
나아가 늙음과 죽음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압니다.
이와 같이 거룩한 제자는 우리 법과 율에서 바른 소견을 구족하고 곧은 소견을 성취하여,
부처님에 대해 무너지지 않는 깨끗함을 성취하고,
바른 법에 들어와 이 바른 법을 알고 이 바른 법을 깨닫게 됩니다.
이와 같이 태어남[生]ㆍ존재[有]ㆍ취함[取]ㆍ애욕[愛]ㆍ느낌[受]ㆍ접촉[觸]ㆍ6입처(入處)ㆍ명색(名色)ㆍ식(識)ㆍ행(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니,
거룩한 제자는 행(行)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고,
행의 발생ㆍ행의 소멸ㆍ행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압니다.
행에 대해 어떻게 사실 그대로 아는가?
행에 세 가지가 있으니,
몸의 행ㆍ입의 행ㆍ뜻의 행입니다.
이와 같이 행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압니다.
행의 발생에 대해 어떻게 사실 그대로 아는가?
무명(無明)의 발생이 곧 행의 발생이니,
이와 같이 행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압니다.
행의 소멸에 대해 어떻게 사실 그대로 아는가?
무명의 소멸이 곧 행의 소멸이니 이와 같이 행의 소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압니다.
행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어떻게 사실 그대로 아는가?
이른바 8성도이니 앞에서 말한 것과 같습니다.
마하구치라여,
이것이,
거룩한 제자는 행을 사실 그대로 알고 행의 발생ㆍ행의 소멸ㆍ행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사실 그대로 알기에,
우리 법과 율에서 바른 소견을 구족하고 곧은 소견을 성취하여,
부처님에 대한 무너지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성취하고,
바른 법에 들어와 이 바른 법을 얻고 이 바른 법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하구치라는 다시 존자 사리불에게 물었다.
“오직 그 법만 있고 다시 다른 것은 없습니까?”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마하구치라여,
당신은 왜 그렇게 자꾸 추궁하십니까?
당신은 끝내 모든 이론을 완전히 알아 그 끝을 얻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만일 거룩한 제자로서 무명을 끊어버리고 밝음[明]을 낸다면 다시 구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이때 두 정사(正士)는 서로 논의를 마치고 각각 자기 처소로 돌아갔다.
345. 집생경(集生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가란다죽원에 계셨다.그때 세존께서 존자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내가 말하는 것은 파라연야(波羅延耶)1)에 있는 아일다(阿逸多)2)의 질문과 같다.
모든 법의 가르침을 얻거나
혹은 또 갖가지 배우는 사람들
그들이 갖춘 위의(威儀)와 행(行)을
저를 위해 분별하여 말해 주소서.
사리불이여,
어떤 것을 배움[學]이라고 하며,
어떤 것을 법수(法數)라고 하는가?”
이때 존자 사리불은 잠자코 대답하지 않았다.
두 번째,
세 번째에도 또한 잠자코 있었다.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진실한 것인가?
사리불아.”3)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진실한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비구는 진실하다고 여겨지는 것에 대해 싫어하는 마음을 내고 탐욕을 여의고 완전히 소멸하는 방향으로 향합니다.음식의 발생으로 무언가 생기면,
그 비구는 그것이 음식 때문임을 알아 싫어하는 마음을 내고 탐욕을 여의며 완전히 소멸하는 방향으로 향합니다.
그 음식이 소멸하면 저 진실하다고 여겼던 것도 소멸함을 깨달아 안 뒤에,
그 비구는 싫어하는 마음을 내고 탐욕을 여의고 완전히 소멸하는 방향으로 향합니다.
이것을 배움[學]이라고 합니다.”
다시 물으셨다.
“진실한 것인가?
사리불아.”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진실한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라면 진실하다고 여겨지는 것에 대해 싫어하는 마음을 내고 탐욕을 여의고 완전히 소멸시키며,
모든 번뇌[漏]를 일으키지 않아 마음이 잘 해탈합니다.
그것은 음식의 발생으로부터 생겼으므로,
진실하다고 여겼던 것이 곧 완전히 소멸하게 되면 그것을 깨달아 안 뒤에,
비구는 소멸에 대하여 싫어하는 마음을 내고 탐욕을 여의고 완전히 소멸시키며,
모든 번뇌를 일으키지 않아 마음이 잘 해탈합니다.
이것을 수법(數法)4)이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렇다.
그대의 말과 같다.
비구가 진실하다고 여겨지는 것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내고 탐욕을 여의며 완전히 소멸시키는 것,
이것을 법수(法數)라고 하느니라.”
이와 같이 말씀하신 뒤에 세존께서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좌선(坐禪)하셨다.
그때 존자 사리불은 세존께서 떠나신 것을 알고,
조금 있다가 모든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나는 세존께서 처음 물으셨을 때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잠자코 있었습니다.
조금 있다가 세존께서는 나를 위하여 다시 기쁘게도 물어주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곧 그 이치를 이해하였습니다.
설사 세존께서 하루 낮 하룻밤 내지 이레 밤 동안 다른 글귀와 다른 맛으로 이 이치를 물으신다 하더라도,
나 또한 그 모든 것을 이레 밤에 이르는 동안까지 다른 글귀와 다른 맛으로 해설할 수 있습니다.”
이때 어떤 비구가 부처님 계신 곳으로 찾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아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존자 사리불은 기이하고 특이하게도 일찍 없었던 말을 하면서,
대중들 가운데서 한결같이 사자처럼 외치기를 ‘나는 세존께서 처음 물으셨을 때에는 도저히 대답할 수 없었고 세 번까지 물으셨는데도 잠자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세존께서는 곧 다시 기쁘게도 물어주셨고 나는 곧 이해하였습니다.
설사 세존께서 하루 낮 하룻밤 내지 이레 밤 동안 다른 글귀와 다른 맛으로 이 이치를 물으신다 하더라도,
나 또한 그 모든 것을 이레 밤에 이르는 동안까지 다른 글귀와 다른 맛으로 해설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저 사리불 비구는 실로 내가 하루 낮 하룻밤 내지 이레 밤 동안 다른 글귀와 다른 맛으로 묻는 이치에 대해,
이레 밤에 이르는 동안까지 다른 글귀와 다른 맛으로 그것을 해설할 수 있다.
왜냐 하면 사리불 비구는 법계(法界)에 잘 들어갔기 때문이니라.”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그 비구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346. 삼법경(三法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가란다죽원에 계셨다.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세간에서 사랑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으며 뜻에 맞지 않는 세 가지 법이 있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늙음ㆍ병듦ㆍ죽음을 이르는 것이니라.
만일 사랑할 만하지 않고 생각할 만하지 않으며 뜻할 만하지 않은 이 세 가지 법이 세간에 없었더라면,
여래(如來)ㆍ응공[應]ㆍ등정각(等正覺)은 세간에 출현하지 않았을 것이요,
세간에서도 알고 보아 바른 법과 율을 설하는 여래ㆍ응공ㆍ등정각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
사랑할 만하지 않고 생각할 만하지 않으며 뜻에 맞을 만하지 않은 늙음ㆍ병듦ㆍ죽음,
이 세 가지 법이 세간에 있기 때문에 여래ㆍ응공ㆍ등정각께서 세간에 출현하셨고,
세간에서도 안 것과 본 것으로 바른 법(法)과 율(律)을 설하는 여래ㆍ응공ㆍ등정각이 계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세 가지 법을 끊지 못하기 때문에 늙음ㆍ병듦ㆍ죽음을 여의지 못하나니,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탐욕[貪]ㆍ성냄[恚]ㆍ어리석음[癡]이니라.
또 세 가지 법이 있는데,
그 법을 끊지 못하기 때문에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을 능히 끊지 못한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이른바 몸을 나라고 보는 소견[身見]ㆍ금계에 대한 집착[戒取]ㆍ의심[疑]을 일컫는 것이니라.
또 세 가지 법이 있는데,
그 법을 끊지 못하기 때문에 몸을 나라고 보는 견해ㆍ금계에 대한 집착ㆍ의심을 여의지 못한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바르지 못한 사유[不正思惟]ㆍ사도를 가까이 하고 익힘[習近邪道]ㆍ게으른 마음[懈怠心]을 이르는 말이니라.
또 세 가지 법이 있는데,
그 법을 끊지 못하기 때문에 바르지 못한 사유ㆍ사도를 가까이 하고 배움ㆍ게으른 마음을 여의지 못한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생각을 잃음[失念]ㆍ바르게 알지 못함[不正知]ㆍ어지러운 마음[亂心]이 그것이니라.
또 세 가지 법이 있는데,
그 법을 끊지 못하기 때문에 생각을 잃음ㆍ바르게 알지 못함ㆍ어지러운 마음을 여의지 못한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들뜸[掉]ㆍ율의를 어김[不律儀]ㆍ계를 배우지 않음[不學戒]이니라.
다시 세 가지 법이 있는데,
그 법을 끊지 못하기 때문에 들뜸ㆍ율의를 어김ㆍ계를 배우지 않음을 여의지 못한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믿지 않음[不信]ㆍ가르치기 어려움[難敎]ㆍ게으름[嬾墯]을 이르는 말이니라.
또 세 가지 법이 있는데,
그 법을 끊지 못하기 때문에 믿지 않음ㆍ가르치기 어려움ㆍ게으름을 여의지 못한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성인을 뵈려고 하지 않음[不欲見聖]ㆍ법을 들으려고 하지 않음[不欲聞法]ㆍ항상 남의 단점을 찾는 것[常求人短]을 일컫는 것이니라.
또 세 가지 법이 있는데,
그 법을 끊지 못하기 때문에 성인을 뵈려고 하지 려 하지 않음ㆍ항상 남의 단점 찾는 것을 여의지 못한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공경하지 않음[不恭敬]ㆍ사나운 말[戾語]ㆍ나쁜 벗과 사귐[習惡知識]이 그것이니라.
또 세 가지 법이 있어 그것을 끊지 못하기 때문에 공경하지 않음ㆍ사나운 말ㆍ나쁜 벗과의 사귐을 여의지 못하나니,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제 자신에게 부끄러워함이 없음[無慚]ㆍ남에게 부끄러워함이 없음[無愧]ㆍ방일(放逸)한 것이 그것이니라.
이 세 가지 법을 끊지 못하기 때문에 공경하지 않음ㆍ사나운 말ㆍ나쁜 벗과의 사귐을 여의지 못한다.
왜냐 하면 제 자신에게 부끄러워함이 없고 남에게 부끄러워함이 없기 때문에 방일하게 되며,
방일하기 때문에 공경하지 않고,
공경하지 않기 때문에 나쁜 벗과 사귀게 되며,
나쁜 벗과 사귀기 때문에 성인을 뵈려고 하지 않고 법을 들으려고 하지 않으며 항상 남의 단점만 찾게 되느니라.
남의 단점을 찾기 때문에 믿지 않고 가르치기 어려우며 말이 거칠고 게을러지며,
게으르기 때문에 들뜨고 율의(律儀)를 어기고 계를 배우지 않게 되며,
계를 배우지 않기 때문에 생각을 잃고 바르게 알지 못하고 어지러운 마음이 되느니라.
어지러운 마음이기 때문에 바르게 사유하지 못하고 사도(邪道)를 가까이 하고 익히며 게으른 마음이 생기고,
게으른 마음이 생기기 때문에 몸을 나라고 보고 금계에 집착하고 의심하게 되며,
의심하기 때문에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여의지 못하며,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여의지 못하기 때문에 늙음과 병듦과 죽음을 여의지 못하게 되느니라.
세 가지 법을 끊기 때문에 늙음ㆍ병듦ㆍ죽음을 여읠 수 있게 된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이른바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이니,
이 세 가지 법을 끊고 나면 늙음ㆍ병듦ㆍ죽음을 여읠 수 있느니라.
또 세 가지 법을 끊기 때문에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을 여읠 수 있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이른바 몸을 나라고 보는 견해ㆍ금계에 대한 집착ㆍ의심이니,
이 세 가지 법을 끊기 때문에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을 여읠 수 있느니라.
또 세 가지 법을 끊기 때문에 몸을 나라고 보는 견해ㆍ금계에 대한 집착ㆍ의심을 여읠 수 있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바르지 않은 사유ㆍ사도를 가까이하고 배움ㆍ게으른 마음이니,
이 세 가지 법을 끊기 때문에 몸을 나라고 보는 견해ㆍ금계에 대한 집착ㆍ의심을 여읠 수 있느니라.
또 세 가지 법을 끊기 때문에 바르지 않은 사유ㆍ사도를 가까이하고 배움ㆍ게으른 마음을 여읠 수 있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생각을 잃은 마음ㆍ바르게 알지 못함ㆍ어지러운 마음을 이르는 것이니,
이 세 가지 법을 끊기 때문에 바르지 않은 사유ㆍ사도를 가까이하고 배움ㆍ마음의 게으름을 여읠 수 있느니라.
또 세 가지 법을 끊기 때문에 생각을 잃은 마음ㆍ바르게 알지 못함ㆍ어지러운 마음을 여읠 수 있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들뜸ㆍ율의를 어김ㆍ계를 범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니,
이 세 가지 법을 끊기 때문에 능히 생각을 잃은 마음ㆍ바르게 알지 못함ㆍ어지러운 마음을 여읠 수 있느니라.
또 세 가지 법을 끊기 때문에 들뜸ㆍ율의를 어김ㆍ계를 범하는 것을 여읠 수 있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믿지 않음ㆍ가르치기 어려움ㆍ게으름을 이르는 말이니,
이 세 가지 법을 끊기 때문에 능히 들뜸ㆍ율의를 어김ㆍ계를 범하는 일을 여읠 수 있느니라.
또 세 가지 법을 끊기 때문에 믿지 않음ㆍ가르치기 어려움ㆍ게으름을 여읠 수 있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성인을 뵈려 하지 않음ㆍ법 듣기를 좋아하지 않음ㆍ남의 단점 찾기를 좋아함을 이르는 말이니,
이 세 가지 법을 끊기 때문에 능히 믿지 않음ㆍ가르치기 어려움ㆍ게으름을 여읠 수 있느니라.
또 세 가지 법을 끊기 때문에 성인을 뵈려 하지 않음ㆍ법을 들으려고 하지 않음ㆍ남의 단점 찾기를 좋아하는 것을 여읠 수 있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이른바 공경하지 않음ㆍ사나운 말ㆍ나쁜 벗을 가까이하는 것이니,
이 세 가지 법을 끊기 때문에 성인을 뵈려고 하지 않음ㆍ법을 들으려고 하지 않음ㆍ남의 단점 찾기를 좋아하는 것을 여읠 수 있느니라.
또 세 가지 법을 끊기 때문에 공경하지 않음ㆍ사나운 말ㆍ나쁜 벗을 가까이하는 것을 여읠 수 있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이른바 제 자신에게 부끄러워함이 없음ㆍ남에게 부끄러워함이 없음ㆍ방일한 것을 이르느니라.
왜냐 하면 제 자신에게 부끄러워하기 때문에 방일하지 않고,
방일하지 않기 때문에 공경하고 말에 순종하며 착한 벗을 위한다.
착한 벗을 위하기 때문에 현인(賢人)과 성인(聖人) 뵙기를 좋아하고 바른 법 듣기를 좋아하고 남의 단점을 찾지 않으며,
남의 단점을 찾지 않기 때문에 믿음을 내고 말에 순종하고 열심히 정진(精進)한다.
열심히 정진하기 때문에 들뜨지 않고 율의에 머무르고 계를 배우며,
계를 배우기 때문에 생각을 잃지 않고 바르게 알고 어지럽지 않은 마음에 머무른다.
마음이 어지럽지 않기 때문에 바르게 사유하고 정도(正道)를 가까이 하고 마음이 게으르지 않으며,
마음이 게으르지 않기 때문에 몸을 나라고 보는 소견에 집착하지 않고금계에 집착하지 않고 의혹을 없앤다.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을 일으키지 않고,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을 여의었기 때문에 늙음ㆍ병듦ㆍ죽음을 끊을 수 있느니라.”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347. 수심경(須深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가란다죽원에 계셨다.그때 왕이나 대신ㆍ바라문ㆍ장자ㆍ거사와 그 밖의 세상 사람들에게 공경과 존중과 공양을 받으면서,
부처님과 모든 성문들은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 등의 큰 이양을 얻었다.
그러나 여러 삿된 이도(異道)들은 공경하지도 않고 존중하지도 않아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 등을 공양 받지 못하였다.
그때 많은 이도들은 미증강당(未曾講堂)에 모여 이와 같이 의논하였다.
“우리는 옛날부터 늘 국왕ㆍ대신ㆍ장자ㆍ거사들과 다른 모든 사람들로부터 받들어 섬김과 공경을 받아왔고,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을 공양 받아왔다.
그러나 지금은 다 끊어져버렸다.
저들은 사문 구담과 성문 대중만을 공경하고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을 공양하고 있다.
지금 이 대중들 가운데,
저 사문 구담의 무리에 몰래 출가하여 그의 법을 엿듣고 돌아와 자세히 설명할 지혜와 큰 힘을 가진 자가 누구일까?
우리가 또 그 들은 법으로 국왕과 대신ㆍ장자ㆍ거사를 교화한다면 그들로 하여금 믿고 즐거워하게 하고 또 예전처럼 공양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때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수심(須深)5)이라고 하는 총명하고 영리한 한 소년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라면 사문 구담의 무리 가운데 가만히 출가하여 그 법을 들은 뒤에 다시 돌아와 모두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때 모든 외도들은 수심이 있는 곳으로 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오늘 모든 대중이 미증강당에 모여 ‘우리는 예전부터 국왕ㆍ대신ㆍ장자ㆍ거사들과 모든 세상 사람들로부터 공경받고 받들어 섬김을 받았으며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을 공양 받아왔다.
그러나 지금은 다 끊어지고 국왕ㆍ대신ㆍ장자ㆍ거사들과 온 세상 사람들은 모두 사문 구담과 성문 대중들만 받들어 섬긴다.
지금 이 대중들 가운데,
저 사문 구담의 무리 속에 가만히 잠입하여 도를 배우고 그의 법을 듣고 돌아와 자세히 설명하며,
국왕과 대신ㆍ장자ㆍ거사를 교화하여 우리 대중들이 다시 예전처럼 공경과 존중을 받고 공양을 받게 할 수 있는 그런 총명함과 영리함을 가진 자가 누가 있을까?’ 하고 의논하였다.
그때 어떤 사람이 ‘사문 구담의 법 가운데 몰래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그 설법을 들은 뒤에,
그 모두를 기억하고 돌아와 자세히 설명할 수 있는 총명함과 영리함을 가진 사람은 오직 수심뿐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우리가 일부러 찾아와 청하는 것이니,
그대가 가 주어야겠다.”
이때 수심은 잠자코 청을 받아들인 뒤에,
왕사성의 가란다죽원으로 갔다.
이때 많은 비구들은 방에서 나와 한데서 경행(經行)하고 있었다.
그때 수심이 많은 비구들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 존자시여,
저도 이제 바른 법과 율 안에서 출가하여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범행을 닦을 수 있겠습니까?”
이때 많은 비구들은 그 수심을 데리고 세존께서 계시는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서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지금 이 외도인 수심이 바른 법 안에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범행을 닦고자 합니다.”
그때 세존께서 외도 수심이 마음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다 아시고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저 외도 수심을 제도하여 출가시켜라.”
이때 모든 비구들은 수심을 제도시키고자 원하였다.
그가 출가한 지 반 달이 지나,
어떤 비구가 수심에게 말하였다.
“수심이여,
마땅히 알라.
우리들은 나고 죽음이 이미 다하였고 범행도 이미 섰으며,
할 일을 이미 마쳐 후세에 몸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다 안다.”
이때 수심이 그 비구에게 말하였다.
“존자여,
어떻습니까?
탐욕과 악하고 착하지 못한 법을 여의는 것을 배워,
지각[覺]도 있고 관찰[觀]도 있으며 떠남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初禪)을 완전히 갖추어,
모든 번뇌[漏]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잘 해탈하셨습니까?”
비구가 대답하였다.
“아니다.
수심이여.”
또 물었다.
“어떻습니까?
지각과 관찰을 떠나서 안으로 깨끗한 한 마음이 되어,
지각도 없고 관찰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禪)을 완전히 갖추어,
모든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잘 해탈하셨습니까?”
비구가 대답하였다.
“아니다.
수심이여.”
또 물었다.
“어떻습니까?
존자여,
기쁨을 떠난 평정한 마음으로 바른 기억[正念]과 바른 지혜[正智]에 머물러 몸과 마음으로 즐거움을 느끼고,
성인들께서 말씀하신 평정이 있는 제3선을 완전히 갖추어,
모든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잘 해탈하셨습니까?”
대답하였다.
“아니다.
수심이여.”
또 물었다.
“어떻습니까?
존자여,
괴로움도 여의고 즐거움도 쉬며,
근심과 기쁨은 먼저 끊어져,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평정과 청정한 기억과 한마음이 있는 제4선을 완전히 갖추어,
모든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잘 해탈하셨습니까?”
대답하였다.
“아니다.
수심이여.”
또 물었다.
“만일 그렇다면,
또 색(色)과 무색(無色)을 일으키는 고요한 해탈을 몸으로 증득하고 완전히 갖춰 머물러,
모든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잘 해탈하셨습니까?”
대답하였다.
“아니다.
수심이여.”
수심이 또 물었다.
“왜 존자께서는 하시는 말이 한결같지 않고 앞뒤가 서로 맞지 않습니까?
어떻게 선정도 얻지 못했으면서 그렇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까?”6)
비구가 대답하였다.
“나는 혜해탈(慧解脫)을 얻었다.”
이렇게 말한 뒤에 모든 비구들은 각각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그때 수심은 많은 비구들이 떠난 것을 알고 이렇게 생각하였다.
‘저 여러 존자들은 말이 한결같지 않고 앞뒤가 맞지 않다.
바른 선정을 얻지 못했다고 말하고선 또 〈증득했다는 것을 스스로 안다〉고 말한다.’
이렇게 생각한 뒤에,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아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 많은 비구들은 제 앞에서 ‘〈나의 생은 이미 다하였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을 이미 다 마쳐 후세에는 몸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안다’고 분명히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곧 그 존자들께 ‘탐욕과 악하고 착하지 않는 법을 여의고……(내지)…… 몸으로 증득하였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제게 ‘아니다,
수심이여’라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곧 ‘말이 한결같지 않고 앞뒤가 서로 맞지 않습니다.
바른 선정에 들지 않았다고 말하고선 또 〈증득했다는 것을 스스로 안다〉고 말씀하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들은 제게 ‘혜해탈을 얻었다’고 대답한 뒤에 각각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습니다.
저는 이제 세존께 여쭈겠습니다.
왜 저들은 말이 한결같지 않고 앞뒤가 서로 어긋나며,
바른 선정을 얻지 못하고서 또 ‘증득했다는 것을 스스로 안다’고 말합니까?”
부처님께서 수심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은 먼저 법에 머무를 줄을 알고 뒤에 열반을 알았느니라.
그 모든 선남자(善男子)들은 홀로 어느 고요한 곳에서 골똘히 정밀하게 사유하면서 방일하지 않고 지내며,
나라는 소견[我見]을 여의고 모든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잘 해탈하였느니라.”
수심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지금 ‘먼저 법에 머무를 줄을 알고 뒤에 열반을 알았다.
그 모든 선남자들은 홀로 어느 고요한 곳에서 골똘히 정밀하게 사유하면서 방일하지 않고 지내며,
나라는 소견을 떠나 모든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잘 해탈하였다’는 말씀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수심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알건 모르건 상관없이,
먼저 법에 머무를 줄을 알고 뒤에 열반을 안 것이다.
저 모든 선남자들은 홀로 어느 고요한 곳에서 골똘히 정밀하게 사유하면서 방일하지 않고 지내며,
나라는 소견을 떠나 마음이 잘 해탈하였느니라.”
수심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저를 위해 설법하시어 제가 법에 머무르는 지혜[法住智]를 알게 하시고,법에 머무르는 지혜를 보게 하소서.”
부처님께서 수심에게 말씀하셨다.
“내 이제 너에게 물으리니 뜻대로 내게 대답하라.
수심이여,
너의 생각에는 어떠하냐?
태어남이 있기 때문에 늙음과 죽음이 있다.
태어남을 떠나 늙음과 죽음이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수심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태어남이 있기 때문에 늙음과 죽음이 있습니다.
태어남을 떠나 늙음과 죽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와 같이,
태어남[生]ㆍ존재[有]ㆍ취함[取]ㆍ애욕[愛]ㆍ느낌[受]ㆍ접촉[觸]ㆍ6입처(入處)ㆍ명색(名色)ㆍ식(識)ㆍ행(行)ㆍ무명(無明)도 마찬가지이니,
무명이 있기 때문에 행이 있고 무명을 떠나 행이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수심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무명이 있기 때문에 행이 있습니다.
무명을 떠나 행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수심에게 말씀하셨다.
“태어남이 없기 때문에 늙음과 죽음이 없다.
태어남의 소멸을 떠나 늙음과 죽음이 소멸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수심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태어남이 없기 때문에 늙음과 죽음이 없습니다.
태어남의 소멸을 떠나 늙음과 죽음이 소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와 같이 ……(내지)…… 무명이 없기 때문에 행이 없다.
무명의 소멸을 떠나 행이 소멸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수심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무명이 없기 때문에 행이 없고,
무명의 소멸을 떠나 행이 소멸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수심에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는 자들은 악하고 착하지 못한 법을 여의고……(내지)…… 몸으로 증득하고 완전히 갖춰 머물렀는가?”
수심 부처님께 아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수심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을 ‘먼저 법에 머무를 줄을 알고 뒤에 열반을 알았다.
그 모든 선남자들은 홀로 어느 고요한 곳에서 골똘히 정밀하게 사유하면서 방일하지 않고 지내며,
나라는 소견을 여의고 모든 번뇌를 일으키지 않아 마음이 잘 해탈하였다’고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존자 수심은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 법안(法眼)이 깨끗하게 되었다.
그때 수심은 법을 보고 법을 얻고 법을 깨달아 의심을 뛰어넘었으며,
남의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남의 제도를 받지 않고 바른 법 안에서 마음에 두려움이 없게 되었다.
그는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의 발에 예배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허물을 뉘우칩니다.
저는 이 바른 법(法)과 율(律)에 몰래 거짓으로 출가하였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허물을 뉘우칩니다.”
부처님께서 수심에게 말씀하셨다.
“왜 이 바른 법과 율 안에 몰래 거짓으로 출가하였느냐?”
수심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많은 외도들이 제게 찾아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밀이여,
마땅히 알라.
우리는 예전에 국왕ㆍ대신ㆍ장자ㆍ거사와 그 밖의 세상 사람들로부터 공경과 공양을 받아 왔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끊고 모두들 사문 구담과 그 성문 대중들을 공양한다.
너는 이제 몰래 저 사문 구담의 성문 대중들 가운데 출가하여 법을 얻고,
그 법을 얻은 뒤에 도로 돌아와 우리에게 모두 설명하라.
그리하여 그 들은 법으로써 세상을 교화하여 저들이 이전처럼 공경하고 공양하게 하라.’
그래서 세존이시여,
저는 바른 법과 율 안으로 몰래 거짓 출가하였었는데,
이제 그 허물을 뉘우칩니다.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저를 가엾이 여기시어 저의 참회를 받아주소서.”
부처님께서 수심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참회를 용서하리니 너는 마땅히 ‘저는 예전에 어리석고 착하지 못하고 지혜가 없어,
바른 법과 율 안으로 몰래 거짓 출가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허물을 뉘우치고,
스스로 죄를 보았고 스스로 죄를 알았습니다.
미래 세상에서는 율의(律儀)를 성취하며 공덕을 더하고 길러 끝내 물러서거나 감하지 않겠습니다’라고 갖추어 말하라.
왜냐 하면 무릇 죄가 있는 사람이 스스로 보고 스스로 알아 허물을 뉘우치면,
그는 미래 세상에서는 율의를 성취하여 공덕을 더하고 길러 끝내 물러서거나 감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또 수심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비유로 설명하리라.
지혜로운 사람은 비유를 들어 말하면 잘 이해하게 되느니라.
비유하면,
국왕의 순라(巡邏)하는 사람이 도적을 잡아 묶어서 왕에게 데리고 가 이렇게 아뢰었다.
‘대왕이여,
이 사람은 도적입니다.
왕께서는 죄를 내리소서.’
그러자 왕은 ‘이 죄인을 끌고 가 두 팔을 뒤로 묶고 거친 목소리로 호령하면서 온 나라를 돌아다녀라.
그런 뒤에 죄인에게 형벌을 주는 성 밖에 있는 곳으로 끌고 가서 창으로 온몸을 백 번 찌르거라’라고 명하였다.
형을 담당한 사람은 왕의 명령을 받고,
그 죄인을 보내 두 팔을 뒤로 묶고 거친 목소리로 호령하면서 온 성(城)과 읍(邑)을 두루 돌아다녔다.
그리곤 성 밖 죄인에게 형벌을 주는 곳으로 끌고 가서 창으로 온몸을 백 번 찔렀다.
한낮이 되어 왕이 물었다.
‘죄인이 아직 살아 있느냐?’
신하가 아뢰었다.
‘아직 살아 있습니다.’
왕이 또 신하에게 명령하였다.
‘다시 창으로 백 번 더 찌르거라.’
해질 무렵이 되도록 또 창으로 백 번을 찔렀지만 그 죄인은 그래도 죽지 않았다.”
부처님께서는 수심에게 말씀하셨다.
“그 왕이 죄를 다스리며 창으로 3백 번을 찔렀다면 그 죄인의 몸에 성한 곳이 손바닥만큼이나 있겠느냐?”
수심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없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또 수심에게 물었다.
“수밀이여,
그럴 때 그 죄인은 창에 3백 번 찔린 인연으로 극심한 고통을 느끼겠느냐?”
수심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지극히 괴로울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혹 창에 한 번만 찔려도 그 고통은 견디기 어려운데 하물며 창에 3백 번이나 찔리는 것을 견딜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수심에게 말씀하셨다.
“그래도 그것은 오히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만일 바른 법과 율 안으로 몰래 거짓 출가하여 법을 도둑질해 기억하고 사람들에게 널리 말한다면,
그로 인해 마땅히 받아야 할 고통은 그것보다 곱이나 더할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법을 말씀하셨을 때,
외도 수심은 번뇌가 다하고 마음으로 이해하였다.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존자 수심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348. 십력경(十力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의 가란다죽원에 계셨다.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여래(如來)는 열 가지 힘을 성취하고,
네 가지 두려움 없음을 얻으며,
예전 부처님들께서 머무셨던 곳을 알고,
능히 법륜(法輪)을 굴리며 대중 가운데서 사자의 목소리로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
이른바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고 …… (이 사이의 자세한 내용은 앞에서와 같다.)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발생하며,
……(내지)……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소멸한다’고 말한다.
비구들아,
이것이 바로 밝게 드러난 진실한 가르침의 법으로서 삶과 죽음의 흐름을 끊고,
……(내지)…… 그 사람들도 모두 밝게 잘 드러낼 것이다.
이와 같이 밝게 드러난 진실한 가르침의 법은 삶과 죽음의 흐름을 끊으며,
선남자들로 하여금 바른 믿음으로 출가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므로 방편을 써서 닦고 익히며 방일하게 지내지 말고,
바른 법과 율에서 꾸준히 힘쓰고 고행하라.
가죽과 힘줄과 뼈가 드러나고 피와 살이 마르더라도,
만일 그 얻어야 할 것을 얻지 못했거든 간절한 정진을 버리지 말고 방편으로써 굳게 참아야 하느니라.
왜냐 하면 게으름으로 괴롭게 살아가는 자들은 능히 갖가지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일으키고,
미래의 존재에 대한 번뇌가 불꽃처럼 늘어나고 자라며,
미래 세상에서는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으며 그 큰 이치에서 물러나게 되기 때문이다.
열심히 정진하며 홀로 지내기를 좋아하는 자들은,
갖가지 악하고 착하지 못한 법과 괴로움의 과보를 불꽃처럼 일으키는 미래의 존재에 대한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미래 세상에서도 태어남ㆍ늙음ㆍ병듦ㆍ죽음을 더하거나 자라게 하지 않으며,
큰 이치를 만족하여 제일가는 가르침의 도량을 얻을 것이다.
말하자면 큰 스승께서 적멸(寂滅)ㆍ열반(涅槃)ㆍ보리로 바로 향함ㆍ잘 감ㆍ바른 깨달음에 대해 설법하시는 것을 면전에서 친히 듣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아,
마땅히 자기를 이롭게 하고 남을 이롭게 하며,
자기와 남을 함께 이롭게 할 것을 관찰하고 꾸준히 힘써 공부해야 하느니라.
즉 ‘나는 이제 출가하여 어리석지도 않고 미혹하지도 않으니 큰 과보가 있고 즐거움이 있으리라.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 등 모든 것을 공양한 사람들도 큰 과보와 큰 복과 큰 이익을 얻을 것이다’라고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하느니라.”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349. 성처경(聖處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가란다죽원에 계셨다.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잘 왔다.
비구들아,
잘 출가하여 자기의 이익을 잘 얻으면 이 넓은 세상에서 때때로 거룩한 곳에 태어나모든 근(根)이 원만히 갖춰지고,
어리석거나 미련하지 않으며,
손을 써서 말하지 않아도 되고,
좋은 말이나 나쁜 말이나 능히 그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는 이제 이 세상에서 부처가 되어,
여래(如來)ㆍ응공(應供)ㆍ등정각(等正覺)ㆍ명행족(明行足)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조어장부(調御丈夫)ㆍ천인사(天人師)ㆍ불세존(佛世尊)으로서 적멸(寂滅)ㆍ열반(涅槃)ㆍ보리로 바로 향함[菩提正向]ㆍ잘 감[善逝]ㆍ평등하고 바른 깨달음[等正覺]의 법을 설하느니라.
말하자면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나나니,
즉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고,
행을 인연하여 식이 있으며 ……(내지)……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발생하고,
무명이 소멸하면 행이 소멸하고 ……(내지)……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소멸한다’고 설하느니라.
비구들아,
그대들은 얻기 어려운 것을 이미 얻어 거룩한 곳에 태어나 모든 감관[根]을 원만히 갖추었으며,
……(내지)…… 나는 현재 ‘ ……(내지)…… 완전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발생하고,
……(내지)…… 완전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소멸한다’고 설하고 있느니라.7)그러므로 비구들아,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 제 자신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며,
자기와 남을 모두 이롭게 하라.
이와 같이 출가하여 어리석지도 않고 미련하지도 않으니 결과가 있고 즐거움이 있으며 즐거운 과보가 있을 것이다.
또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을 공양한 사람들도 모두 큰 결과와 큰 복과 큰 이익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아,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하느니라.”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350. 성제자경(聖弟子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가란다죽원에 계셨다.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무엇이 있기 때문에 이것이 있고,
무엇이 일어나기 때문에 이것이 일어나는가?
무엇이 없기 때문에 이것이 없고,
무엇이 소멸하기 때문에 이것이 소멸하는가?’ 하고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저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
즉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고 ……(내지)……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발생하며,
무명이 소멸하기 때문에 행이 소멸하고 ……(내지)……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소멸한다’고 아느니라.”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351. 무사라경(茂師羅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존자 나라(那羅)ㆍ존자 무사라(茂師羅)ㆍ존자 수승(殊勝)ㆍ존자 아난(阿難)은 사위국 상이(象耳)라는 못 가에 머물고 있었다.그때 존자 나라가 존자 무사라에게 말하였다.
“다른 믿음ㆍ다른 의욕ㆍ다른 들음ㆍ다른 행(行)과 지각[覺]과 생각[想]ㆍ다른 견해와 진리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는데도,
말하기를 ‘태어남이 있기 때문에 늙음과 죽음이 있는 것이지 태어남을 떠나서 늙음과 죽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그러한 바르게 스스로 깨달은 지견[正自覺知見]이 생길 수 있습니까?”
존자 무사라가 말하였다.
“다른 믿음ㆍ다른 의욕ㆍ다른 들음ㆍ다른 행과 지각과 생각ㆍ다른 견해와 진리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어도,
‘태어남이 있기 때문에 늙음과 죽음이 있는 것이지 태어남을 떠나서 늙음과 죽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그런 바르게 스스로 깨달은 지견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있다고 말합니다.”
“존자 무사라여,
다른 믿음 ……(내지)…… 다른 이해를 가지고 있는데도,
‘존재가 소멸하면 적멸(寂滅)이고 열반(涅槃)이다’라는 그런 바르게 스스로 깨달은 지견이 생길 수 있습니까?”
존자 무사라가 대답하였다.
“다른 믿음 ……(내지)……다른 이해를 가지고 있어도,
‘존재가 소멸하면 적멸이고 열반이다’라고 하는 그런 바르게 스스로 깨달은 지견이 생길 수 있습니다.”
또 물었다.
“존자 무사라여,
‘존재가 소멸하면 적멸이고 열반이다’라고 말하는 그대는 지금 바로 아라한이고,
모든 번뇌가 다하였습니까?”
존자 무사라는 잠자코 대답하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물어도 여전히 잠자코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존자 수승(殊勝)이 존자 무사라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일단 가만히 계십시오.
제가 그대를 위해 존자 나라에게 대답하겠습니다.”
존자 무사라가 말하였다.
“저는 일단 가만히 있겠습니다.
그대가 저를 위해 대답해 주십시오.”
그때 존자 수승이 존자 나라에게 말하였다.
“다른 믿음 ……(내지)…… 다른 이해를 가지고 있어도,
‘존재가 소멸하면 적멸이고 열반이다’라고 하는 그런 바르게 스스로 깨달은 지견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때 존자 나라가 존자 수승에게 물었다.
“‘다른 믿음 ……(내지)…… 다른 이해를 가지고 있어도,
〈존재가 소멸하면 적멸이고 열반이다〉라고 하는 그런 바르게 스스로 깨달은 지견이 생길 수 있다’고 말하는 그대는 지금 바로 아라한이고,
모든 번뇌가 다하였습니까?”
존자 수승이 말하였다.
“저는 ‘존재가 소멸하면 적멸이고 열반이다’라고 말하지만 번뇌가 다한 아라한은 아닙니다.”
존자 나라가 말하였다.
“그 말씀이 한결같지 않고 앞뒤가 서로 어긋납니다.
존자께서 말씀하신 대로라면 ‘존재가 소멸하면 적멸이고 열반이다’라고 하셨는데,
또 ‘번뇌가 다한 아라한은 아니다’라고 말씀하십니까?”
존자 수승이 존자 나라에게 말하였다.
“이제 비유로 설명하겠습니다.
대개 지혜로운 사람은 비유로써 이해하게 됩니다.
광야(曠野)에서 길가에 우물이 있었는데 그 물을 뜰 수 있는 줄도 없고 두레박도 없었습니다.
이때 길을 가던 어떤 사람이 더위와 갈증에 시달려 우물 주위를 맴돌며 찾아보았지만 줄도 없고 두레박도 없었습니다.
우물을 자세히 관찰하여 확실히 알고 보았지만 몸이 닿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저는 ‘존재가 소멸하면 적멸이고 열반이다’라고 말은 하지만,
스스로 번뇌가 다한 아라한은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때 존자 아난이 존자 나라에게 말하였다.
“저 존자 수승의 말씀에 대해 그대는 또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존자 나라는 존자 아난에게 말하였다.
“존자 수승께서 훌륭하게 설명하고 진실로 아시는데 또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이때 그 정사(正士)들은 각기 이야기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352. 사문바라문경(沙門婆羅門經) ①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사문 바라문들이 법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고 법의 발생ㆍ법의 소멸ㆍ법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면,
그는 사문이지만 사문의 수에 들어가지 않고 바라문이지만 바라문의 수에 들어지지 못한다.
또한 그것은 사문의 도리나 바라문의 도리대로,
현세에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증득하여 ‘나의 생은 이미 다하였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을 이미 다 마쳐 후세에는 몸을 받지 않는다’라고 스스로 아는 것도 아니다.
어떤 법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고,
어떤 법의 발생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며,
어떤 법의 소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고,
어떤 법의 소멸로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인가?
말하자면 늙음[老]과 죽음[死]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고,
늙음과 죽음의 발생ㆍ늙음과 죽음의 소멸ㆍ늙음과 죽음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이와 같이,
태어남[生]ㆍ존재[有]ㆍ취함[取]ㆍ애욕[愛]ㆍ느낌[受]ㆍ접촉[觸]도 마찬가지이며,
6입처(入處)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고 6입처의 발생ㆍ6입처의 소멸ㆍ6입처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법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고,
법의 발생ㆍ법의 소멸ㆍ법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니라.
만일 사문 바라문들이 법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고 법의 발생ㆍ법의 소멸ㆍ법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안다면,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런 사문 바라문은 사문이면 사문의 수에 들어가고 바라문이면 바라문의 수에 들어간다.
또한 그것은 사문의 도리와 바라문의 도리로써 현세(現世)에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증득하여 ‘나의 생은 이미 다하였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을 이미 다 마쳐 후세에는 몸을 받지 않는다’라고 스스로 아는 것이니라.
어떤 법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고,
어떤 법의 발생ㆍ법의 소멸ㆍ법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안다는 것인가?
말하자면 늙음과 죽음이란 법에 대해서 사실 그대로 알고,
늙음과 죽음의 발생ㆍ늙음과 죽음의 소멸ㆍ늙음과 죽음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안다.
이와 같이,
태어남ㆍ존재ㆍ취함ㆍ애욕ㆍ느낌ㆍ접촉도 마찬가지이며,
6입처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고 6입처의 발생ㆍ6입처의 소멸ㆍ6입처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법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고,
법의 발생ㆍ법의 소멸ㆍ법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이니라.”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353. 사문바라문경 ②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사문 바라문이 법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고,
법의 발생ㆍ법의 소멸ㆍ법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면,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런 사문 바라문은 사문이지만 사문의 수(數)에 들어가지 않고,
바라문이지만 바라문의 수에 들어가지 않는다.
또한 그것은 사문의 도리가 아니요,
바라문의 도리도 아니다.
즉 현세에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증득하여 ‘나의 생은 이미 다하였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을 이미 다 마쳐 후세에는 몸을 받지 않는다’라고 스스로 아는 것이 아니니라.
어떤 것을 법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고 어떤 법의 발생ㆍ법의 소멸ㆍ법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인가?
6입처(入處)라는 법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고,
6입처의 발생ㆍ6입처의 소멸ㆍ6입처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고도 접촉[觸]을 사실 그대로 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촉의 발생ㆍ촉의 소멸ㆍ촉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라.
이와 같이 느낌ㆍ애욕ㆍ취함ㆍ존재ㆍ태어남ㆍ늙음과 죽음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안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니라.
만일 사문 바라문이 6입처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고,
6입처의 발생ㆍ6입처의 소멸ㆍ6입처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안다면,
그가 접촉을 사실 그대로 안다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이치이다.
이와 같이 느낌ㆍ애욕ㆍ취함ㆍ존재ㆍ태어남ㆍ늙음과 죽음에 대해서 사실 그대로 안다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이치니라.”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354. 사문바라문경③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사이의 자세한 내용은 위 경에서 하신 말씀과 같으며,
다만 다른 내용은 아래와 같다.)“만일 사문 바라문들이 6입처(入處)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면서 접촉[觸]을 뛰어넘어 건너려고 한다면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접촉의 발생ㆍ접촉의 소멸ㆍ접촉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뛰어넘어 건넌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니라.
이와 같이 느낌ㆍ애착ㆍ취함ㆍ존재ㆍ태어남도 마찬가지이며,
늙음과 죽음을 뛰어넘어 건넌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늙음과 죽음의 발생ㆍ늙음과 죽음의 소멸ㆍ늙음과 죽음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뛰어넘어 건넌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니라.
만일 사문 바라문이 6입처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고,
6입처의 발생ㆍ6입처의 소멸ㆍ6입처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고서 접촉을 뛰어넘어 건너려고 한다면,
그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와 같이 느낌ㆍ애욕ㆍ취함ㆍ존재ㆍ태어남ㆍ늙음ㆍ죽음을 뛰어넘어 건넌다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며,
……(내지)…… 늙음과 죽음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뛰어넘어 건넌다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니라.”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늙음과 죽음 나아가 6입처에 대해 말씀하신 세 경과 마찬가지로,
늙음과 죽음…… (내지)……행에 대해 말씀하신 세 개의 소경도 또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55. 노사경(老死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늙음과 죽음을 깨달아 알고 늙음과 죽음의 발생ㆍ늙음과 죽음의 소멸ㆍ늙음과 죽음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깨달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내지)…… 행(行)과 행의 발생ㆍ행의 소멸ㆍ행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깨달아 알아야 한다.
늙음과 죽음에 대해 어떻게 깨달아 아는가?
태어남을 인연하기 때문에 늙음과 죽음이 있다고 깨달아 아나니,
이와 같이 늙음과 죽음을 깨달아 아느니라.
어떤 것이 늙음과 죽음의 발생인가?
태어남의 발생이 곧 늙음과 죽음의 발생이니,
이와 같이 늙음과 죽음의 발생에 대해 깨달아 아느니라.
늙음과 죽음의 소멸에 대해 어떻게 깨달아 아는가?
이른바 태어남의 소멸이 곧 늙음과 죽음의 소멸이니,
이렇게 늙음과 죽음의 소멸에 대해 깨달아 아느니라.
늙음과 죽음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어떻게 깨달아 아는가?
이른바 8성도(聖道)가 곧 늙음과 죽음의 소멸에 길이니,
이렇게 늙음과 죽음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깨달아 아느니라.
……(내지)…… 행(行)에 대해 어떻게 깨달아 아는가?
몸의 행ㆍ입의 행ㆍ뜻의 행의 세 가지 행을 말하는 것이니,
이와 같이 행에 대해 깨달아 아느니라.
행의 발생에 대해 어떻게 깨달아 아는가?
이른바 무명의 발생이 곧 행의 발생이니,
이와 같이 행의 발생에 대해 깨달아 아느니라.
행의 소멸에 대해 어떻게 깨달아 아는가?
무명의 소멸이 곧 행의 소멸이니,
이와 같이 행의 소멸에 대해 깨달아 아느니라.
행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어떻게 깨달아 아는가?
이른바 8성도가 곧 행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니,
이와 같이 행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깨달아 아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356. 종지경(種智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44종의 지혜가 있다.
자세히 듣고 잘 사유하라.
너희들을 위해 설명하리라.
어떤 것을 44종의 지혜라고 하는가?
이른바 늙음과 죽음[老死]에 관한 지혜ㆍ늙음과 죽음의 발생에 관한 지혜ㆍ늙음과 죽음의 소멸에 관한 지혜ㆍ늙음과 죽음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지혜이니라.
이와 같이 태어남[生]ㆍ존재[有]ㆍ취함[取]ㆍ애착[愛]ㆍ느낌[受]ㆍ접촉[觸]ㆍ6입처(入處)ㆍ명색(名色)ㆍ식(識)도 마찬가지이며,
행(行)에 관한 지혜와 행의 발생에 관한 지혜ㆍ행의 소멸에 관한 지혜ㆍ행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지혜이니,
이것을 44종의 지혜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357. 무명증경(無明增經) ①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77종의 지혜가 있다.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해 보아라.
너희들을 위해 설명해주리라.
어떤 것이 77종의 지혜인가?
생을 인연하여 늙음과 죽음이 있다고 아는 지혜,
생의 인연을 떠나 늙음과 죽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아는 지혜,
과거에도 생을 인연하여 늙음과 죽음이 있었다고 아는 지혜,
과거에도 생의 인연을 떠나 늙음과 죽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아는 지혜,
미래에도 생을 인연하여 늙음과 죽음이 있을 것이라고 아는 지혜,
미래에도 생의 인연을 떠나 늙음과 죽음이 있지 않을 것이라고 아는 지혜와 법에 머무르는 이러한 지혜도 무상(無常)한 것이고 함이 있으며,
마음을 인연하여 생기고 다하는 법이고 변하고 바뀌는 법이며,
탐욕은 여의어야 할 법이고 소멸하는 법이므로 끊어야 한다고 아는 지혜이다.
이와 같이 태어남ㆍ존재ㆍ취함ㆍ애욕ㆍ느낌ㆍ접촉ㆍ6입처ㆍ명색ㆍ행ㆍ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며,
무명(無明)을 인연하여 행(行)이 있다고 아는 지혜,
무명의 인연을 떠나 행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아는 지혜,
과거에도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었다고 아는 지혜,
과거에도 무명의 인연을 떠나 행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아는 지혜,
미래에도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을 것이라고 아는 지혜,
미래에도 무명의 인연을 떠나 행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아는 지혜와 법에 머무르는 이러한 지혜도 무상한 것이고 함이 있으며,
마음을 인연하여 생기고 다하는 법이고 변하고 바뀌는 법이며,
탐욕은 여의어야 할 법이고 소멸하는 법이므로 끊어야 한다고 아는 지혜이니,
이것을 77종의 지혜라고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358. 무명증경 ②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증가하는 법과 감소하는 법이 있다.
자세히 듣고 잘 사유하라.
너희들을 위해 설명하리라.어떤 것이 증가하는 법인가?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고 하는 것을 말한다.
이른바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고,
행을 인연하여 식이 있으며 ……(내지)……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발생하나니,
이것을 증가하는 법이라고 하느니라.
어떤 것이 감소하는 법인가?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고,
이것이 소멸하기 때문에 저것이 소멸한다’고 하는 것을 말한다.
이른바 무명이 소멸하면 행이 소멸하고 ……(내지)……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소멸하나니,
이것을 소멸하는 법이라고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증가하는 법[增法]ㆍ소멸하는 법[減法]을 설한 데서와 같이,
생기는 법[生法]ㆍ변하고 바뀌는 법[變易法]ㆍ발생하는 법[集法]ㆍ소멸하는 법[滅法]에 대해서도 위에서와 같이 말씀하셨다.
마땅히 말해야 한다[當說]고 설한 위의 세 경과 같이,
마땅히 알아야 한다[應當知]는 세 경도 위에서와 같이 말씀하셨다.
359. 사량경(思量經) ①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사량(思量)하거나 또 망상(妄想)이 생긴다면 그 번뇌[使]를 반연(攀緣)하여 식(識)이 머무르게 되고,
반연하여 식이 머무르기 때문에 미래 세상의 태어남ㆍ늙음ㆍ병듦ㆍ죽음과 근심ㆍ슬픔ㆍ번민ㆍ괴로움이 있게 되나니,
이렇게 하여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발생하느니라.
만일 사량하지 않고 망상하지 않는다면 번뇌가 없고,
반연한 식의 머무름도 없게 된다.
반연한 식의 머무름이 없기 때문에 미래 세상의 태어남ㆍ늙음ㆍ병듦ㆍ죽음과 근심ㆍ슬픔ㆍ번민ㆍ괴로움이 소멸하나니,
이렇게 하여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소멸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360. 사량경 ②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사량하고 망상한다면 곧 번뇌를 반연하여 식의 머무름이 있게 된다.
반연한 식의 머무름이 있기 때문에 명색(名色)에 들어가고,
명색에 들어가기 때문에 미래 세상의 태어남ㆍ늙음ㆍ병듦ㆍ죽음과 근심ㆍ슬픔ㆍ번민ㆍ괴로움이 있게 되나니,
이렇게 하여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발생하느니라.
만일 사량하지 않고 망상이 없다면 번뇌가 없고 반연한 식의 머무름도 없게 된다.
반연한 식의 머무름이 없기 때문에 명색에 들어가지 않고,
명색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태어남ㆍ늙음ㆍ병듦ㆍ죽음과 근심ㆍ슬픔ㆍ번민ㆍ괴로움이 소멸하나니,
이렇게 하여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소멸하느니라.”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361. 사량경 ③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사량이 있고 망상이 있다면 곧 번뇌를 반연한 의식의 머무름이 있게 된다.
반연한 식의 머무름이 있기 때문에 명색에 들어가고,
명색에 들어가기 때문에 곧 가고 옴이 있게 되며,
나고 죽음이 있기 때문에 곧 미래 세상의 태어남ㆍ늙음ㆍ병듦ㆍ죽음과 근심ㆍ슬픔ㆍ번민ㆍ괴로움이 있게 되나니,
이렇게 하여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발생하느니라.
만일 사량하지 않고 망상이 없다면 번뇌가 없고 반연한 식의 머무름도 없게 된다.
반연한 식의 머무름이 없기 때문에 명색에 들어가지 않고,
명색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곧 가고 옴이 없게 되며,
가고 옴이 없기 때문에 곧 나고 죽음이 없고,
나고 죽음이 없기 때문에 미래 세상의 태어남ㆍ늙음ㆍ병듦ㆍ죽음과 근심ㆍ슬픔ㆍ번민 괴로움이 소멸하나니,
이렇게 하여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소멸하느니라.”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362. 다문제자경(多聞弟子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많이 들어 아는 비구[多聞比丘]가 있다.
여래는 많이 들어 아는 비구를 어떻게 주장하는가?”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는 법의 근본이시고 법의 눈이시며 법의 의지처이십니다.
오직 원하옵건대 많이 들어 아는 비구들은 그것을 들은 뒤에 마땅히 받아들이고 받들어 행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해보라.
너희들을 위해 설명해주리라.
비구들아,
만일 어떤 비구가 ‘늙음ㆍ병듦ㆍ죽음은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켜 탐욕을 여의고 모두 다 소멸시켜야 할 법이다’라고 듣는다면,
그를 많이 들어 아는 비구라고 하느니라.
이와 같이 ‘태어남ㆍ존재ㆍ취함ㆍ애욕ㆍ느낌ㆍ접촉ㆍ6입처ㆍ명색ㆍ식ㆍ행은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켜 탐욕을 여의고 모두 다 소멸시켜야 할 법이다’라고 듣는다면,
그를 많이 들어 아는 비구라고 하나니,
이런 이를 여래가 주장하는 많이 들어 아는 비구라고 하느니라.”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363. 설법비구경(說法比丘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설법하는 비구라고 말하고 있다.
어떤 이를 설법하는 비구라고 하는가?
여래는 설법하는 비구를 어떻게 시설(施設)하는가?”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는 법의 근본이시고 법의 눈이시며 법의 의지처이십니다.
원하옵건대 설법하는 비구에 대해 설명해 주소서.
모든 비구들은 그 말씀을 들은 뒤에 마땅히 받아들이고 받들어 행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해 보아라.
너희들을 위해 설명해주리라.
비구들아,
만일 어떤 비구가 ‘늙음ㆍ병듦ㆍ죽음은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켜 탐욕을 여의고 모두 다 소멸시켜야 할 법이다’라고 말한다면 그를 설법하는 비구라고 한다.
이와 같이 ‘태어남ㆍ존재ㆍ취함ㆍ애욕ㆍ느낌ㆍ접촉ㆍ6입처ㆍ명색ㆍ식ㆍ행은 곧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켜 탐욕을 여의고 모두 다 소멸시켜야 할 법이다’라고 말한다면,
그를 설법하는 비구라고 하느니라.
모든 비구들아,
이런 이를 여래가 주장하는 설법하는 비구라고 하느니라.”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364. 설법경(說法經) ①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법을 따르고 법으로 향하는 것[法次法向]이라고들 말한다.
비구들아,
어떤 것을 법을 따르고 법으로 향하는 것이라고 하는가?”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는 법의 근본이시고 법의 눈이시며 법의 의지처이십니다.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오직 원하옵건대 말씀하여 주소서.
모든 비구들은 그 설법을 들은 뒤에 마땅히 받들어 행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비구가 늙음ㆍ병듦ㆍ죽음에 대하여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켜 탐욕을 여의고 모두 다 소멸시킨 곳으로 향한다면,
이것을 ‘법을 따르고 법으로 향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태어남[生]과 ……(내지)…… 행(行)에 이르기까지 다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켜 탐욕을 여의고 모두 다 소멸시킨 곳으로 향한다면,
이것을 ‘법을 따르고 법으로 향하는 것’이라고 한다.
비구들아,
이것을 여래가 주장하는 ‘법을 따르고 법으로 향하는 것’이라고 하느니라.”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1)
1) 팔리어로는 parāyana이다.
이 경에서 인용된 시가 나오는 경집(Suttanipāta) 제5품 pārāyanavagga의 이름이다.
2)
2) 팔리어로는 Ajita이고 Ajitamānava를 뜻한다.
그는 스승의 요청으로 부처님을 방문한 Bāvarī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3)
3) 고려대장경 원문은 ‘진실사리불(眞實舍利弗)’로 되어 있다.
팔리본에는 이 부분이 ‘사리풋다여,
이것은 생겨난 것이라고 보는가?’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팔리본과 대조해볼 때 ‘진실(眞實)’은 곧 현재 눈앞에서 진실한 것으로 여겨지는 ‘인연으로 생겨난 모든 사물’을 가리킨다고 이해된다.
4)
4) 앞뒤를 참조할 때 법수(法數)라고 해야 옳다.
법수는 팔리어로 saṅkhātadhamma이고,
saṅkhāta는 saṅkhāyati의 과거분사이다.
saṅkhāyati에는 두가지 뜻이 있으니 ‘수를 계산하다’는 뜻과 ‘깨닫다’는 뜻이 있다.
따라서 saṅkhātadhamma 즉 법수(法數)는 ‘이미 법을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5)
5) 팔리어로 Susīma이고 수시마(須尸摩)로 음역하기도 한다.
6)
6) ‘분명하게 말하다’에 해당하는 고려대장경 원문은 ‘기설(記說)’이다.
이는 곧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안다”라고 선언하는 것을 말한다.
7)
7) 고려대장경 원문에는 ‘나는 현재’ 와 ‘설하고 있느니라’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다.
이는 위의 문장을 인용하면서 중간을 생략한 것이므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이해를 돕기 위해 편의상 삽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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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 10호(號)의 하나. 등정각(等正覺)의 준말. 부처님은 무루정지(無漏正智)를 얻어 만유의 실상(實相)을 깨달았으므로 정각이라 불림.
답 후보
● 정각(正覺)
정성이생(定性離生)
정업(正業)
정정취(正定聚)
정토만다라(淨土曼茶羅)
정행진여(正行眞如)
제바(提婆)
ॐ मणि पद्मे हूँ
○ [pt op tr]
○ [pt op tr]
● 잡아함경_K0650_T0099 [문서정보]- 일일단상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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