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Kālāśoka 가라아수가(迦羅阿輸迦)ㆍ가라육(迦羅育)이라고도 쓰며, 흑무우(黑無憂)라 번역. 중인도 마갈타국 임금. 불멸 후 1백 년(445 B.C.) 경부왕 수수나가의 뒤를 이어 즉위, 재위 28년. 이 때에 제2회 결집이 있었다. 본디 아육왕(阿育王)이라 하였으나, 1백 년 뒤에 뛰어난 업적을 이룬 대아육왕이 났으므로 그와 구별하기 위하여 가라아육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는 남방에서 전한 것이고, 북방에서는 이 왕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마 연대의 형편에 따라 가설한 것인 듯하다.
臣 ■ (신하 신 )
057▲ 戌囟臣羊亦 ■ 술신신양역 57 ( 개 술 / 열한째 지지 술) --CF-- 戍 수자리 수 ( 정수리 신 ) --CF-- 囱 창 창, 바쁠 총(신하 신 )( 양 양 / 상서( 祥瑞)롭다 배회( 徘徊)하다 양 )(또 역 / 클 혁 )
005▲ 匚卜匕冫厶 ■ 방복비빙사 5 ( 상자 방 )( 점 복/ 무 복, 짐바리 짐 )( 비수 비 )( 얼음 빙 )( 사사 사 / 아무 모 )
재춘법한자
유시劉時는 옹주雍州 만년현萬年縣 평강방平康坊 사람이다. 그는 영륭永隆 2년(681)에 병이 든 지 이틀 만에 죽었다. 죽은 지 엿새가 지났는데도 심장의 온기가 남아 따뜻하였다. 그리하여 가족들은 이미 장례 치를 준비를 마치고 날짜까지 정했으면서도 감히 염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레째 되던 날 새벽에 갑자기 다시 깨어나 말하였다. “그 당시 어떤 사람에게 붙들려 큰 성으로 들어가니, 궁전과 누각이 웅장하고도 화려하여 이상하게 생겼는데, 염라대왕이 보였다. 대왕이 말하기를, ‘그대가 세상에서 지은 공덕을 말하라’ 하므로, ‘생시에 『법화경』 두 권을 읽었을 뿐이고, 그 밖에 특별한 공덕은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대왕이 죄 문서와 업業의 저울을 찾아내어 달아 보니, 『법화경』 두 권이 죄 문서보다 더 무거웠다. 대왕은 죄 문서를 검토해 보고, ‘이 사람은 90세까지 살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죄 문서를 맡은 이에게 ‘이 사람을 석방하여 세상으로 돌려보내라’라고 명하였다. 이 때문에 내가 다시 살아나게 된 것이다.” 이후 유시는 계戒를 받고 술과 고기를 먹지 않았으며, 금으로 『법화경』을 조성하여 오래오래 공양하였다. 『홍찬법화전』 권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