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Pyromorphite-46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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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 ■ ( 석 삼 )
012▲ 宀凡士巳三 ■ 면범사사삼 12ㅡ 집에서 평범한 선비가 머물면 뱀과 같은 지혜가 3개나 생겨난다. ( 집 면 [사방이 지붕으로 덮어 씌워져 있는 집] 갓머리( 부수( 部首)의 하나) )( 무릇 범 )( 선비 사 )( 뱀 사 )( 석 삼 )
038▲ 句丘冬令立 ■ 구구동령립 38 ( 글귀 구/ 올가미 구, 글귀 귀 ) ( 언덕 구 )( 겨울 동 / 북소리 동) ( 하여금 령 / 영) (설 립 / 입, 자리 위 )
재춘법한자
“Emperor of India, founder of the Maurya Dynasty. A great Buddhist ruler, who was converted to Buddhism from Hinduism after a long period of wars of conquest. He abolished wars in his Empire, restricted hunting or killing for food, built hospitals for man and beast, and engraved on rocks and pillars throughout the Empire his famous Edicts, setting forth the moral precepts of Buddhism. He sent his son Mahinda and daughter Sanghamitta to Sri Lanka where they converted the ruler and people to Buddhism.” Hump: 36 “Held the third Buddhist Council at the capital Pajaliputra, India, in the seventeenth year of his reign. He erected stupas and stone pillars all over the country and dispatched missionaries abroad. He launched many philanthropic activities based on the spirit of Buddhism.
During his reign Buddhism spread throughout India, Southeast Asia, and into some areas of western Asia.”
38 기쁨․즐거움․재물․보배 등을 증장시키고, 타계, 託契<三十八> takki (이하~) 현세의 왕이시여! 지옥과 불에 떨어진 이들을 보호하고 보호 하소서.
『대승대집지장십륜경』
♣0057-001♧
12 관세음보살께서 거듭 부처님께 사루어 말씀하시되, "세존이시여, 제가 기억하기를, 과거 무량 억겁 전에 한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셨으니 명호는 천광왕정주(天光王靜住) 여래(如來) 응정등각(應正等覺) 명행원만(明行圓滿)이시라. 이 부처님께서 저를 어여삐 생각하시고 또한 일체 중생을 위하는 까닭에 이 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廣大圓滿無碍大悲心陀羅尼)를 설하시고 금색 손으로써 저의 이마를 만지시며 이렇게 말씀하시되 "선남자야, 너는 마땅히 이 대비심주문을 가지고 널리 미래 나쁜 세상에 악한 죄업이 무거운 일체중생을 위하여 큰 이익을 지어주라 하셨습니다. ● 나모나라근타(나모나라근지) 南無那羅謹墀<十二> na mo na ra ki dhi
『불설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
♣0294-001♧
스님의 속성은 방씨(房氏)이고 상산(常山)의 진정현(眞定縣) 사람이다. 집안은 대대로 선비들의 존경을 받았고, 지방과 나라의 칭송을 받았다. 혜정은 수나라 조정에서 국자감(國子監) 박사(博士)를 지낸 휘원(徽遠)의 조카이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천성적인 뛰어난 재주로 수많은 책들을 섭렵하였고 풍채와 인격이 고상하고 도량이 깊고 넓었다. 어린 나이에 일찍이 수많은 고전을 익히고 곧 글과 게송의 뜻을 깨달아 고을에서 영예로운 이름이 으뜸이었다. 그는 14세에 출가하였는데 그의 뜻은 넓고 원대하였으며, 하루에 8천 여 마디를 외우고 문장의 뜻을 빠짐없이 헤아리니 그에 견줄 만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강론하는 자리를 찾아다니며 강의를 듣고 크게 의문되는 것을 묻고 현묘한 이치를 궁극까지 따져서 늘 심오한 극치에 도달하였다. 『대지도론』과 그 밖의 경전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그의 풍채는 남달리 뛰어나서 보고 듣는 사람들이 놀라고 남다르게 여겼다. 당시에 지념(志念)이라는 논사(論師)가 있었는데 그는 동하(東夏:중국)에서 이름을 날려 당시 그를 소승(小乘)을 통달한 암혈지사(巖穴之士)라고 불렀다. 그는 곧 그 논사로부터 『잡심론(雜心論)』과 『대비바사론(大毘婆沙論)』 강의를 두 차례 듣고 익혀서 그 큰 뜻에 정통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근본과 지엽적인 것을 찾고 구하는 데 힘써 맑은 운치로 이를 포괄하게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훌륭한 소문이 먼 곳까지 알려지게 되고 학도들이 그를 흠모하고 따랐다. 개황(開皇) 말엽에는 황제가 있는 성안에 들어가 여러 번 어려운 관문(關門)을 겪어서 다시 명예를 날리게 되었다. 대업(大業) 초기에 고적(古跡)을 찾는 일로 하여 괴리(槐里)라는 곳에 이르러 시평의 현령[令] 양굉(楊宏)을 만났는데, 여러 도인과 속인들을 지장사(智藏寺)에 모여 놓고 도사로 하여금 먼저 『도경(道經)』을 강의하게 하려고 하였다. 이때 불법을 배우는 사람들이 비록 많기는 하였지만 감히 이에 대항하는 사람이 없었다. 혜정은 이것을 알고 말하였다. “현령[明府]은 크게 사부대중을 모아놓고 두 교(敎)를 저울질함에 있어서 가만히 생각하니 석연치 못한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청컨대 의심나는 것을 물으려고 합니다. 무엇인가 하면 주인과 손님의 예절에는 마땅히 법도가 있는데, 이것은 마치 갓과 신발을 바꾸어 사용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불교 절에서 도사에게 먼저 주인노릇을 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현령의 가르침에도 순서가 있어야 할 것이니, 업적을 땅에 떨어뜨리지 말기를 바랍니다.” 현령이 말하였다. “뜻있는 말이다. 자칫하면 여러 후배들을 그르칠 뻔하였다.” 그리고는 곧 스님들을 앞자리에 앉게 하여 욕됨이 없게 되었다. 이때 도사(道士) 우영통(于永通)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자못 당대에 찬양을 받고 있었으며, 현령이 마음속으로 존중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뒤쫓아 도교의 뜻을 내세우면서 말하였다. “한 물건이 있는데 혼합되어 이루어지니 천지에 앞서 생겨났습니다. 나는 그 이름이 무엇인지 모르나 세상에서 그 글자[字]를 도(道)라고 부릅니다.” 그러자 현령은 이에 대하여 풀이해서 논하라고 명하면서 계속해서 말하였다. “법사는 반드시 말의 이치가 절대적이어야 하며, 평두상미(平頭上尾:머리를 숙이고 꼬리를 치켜드는 일) 하여서는 안 된다.” 당시 현령은 평평한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혜정은 희롱조로 말하였다. “나는 모자를 쓰고 있지 않으니, 어떻게 평두(平頭)를 범하는 일이 있겠습니까?” 그러자 현령이 말하였다. “만약 평두를 범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상미(上尾)를 범하게 될 것이다.” 이에 혜정이 말하였다. “나는 신발을 벗고 법상(法床)에 올라왔으니 스스로 올라올 수 있으며 꼬리는 없습니다. 현령[明府]은 두건을 벗고 모자를 썼으니 평평하기만 하고 머리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현령은 무안해하였다. 혜정은 이어 우영통(于永通)에게 말하였다. “한 물건이 있어 혼합되어 이루어졌다고 하였는데, 본체가 하나인 것이 혼합된 것입니까? 아니면 본체가 다른 것이 혼합된 것입니까? 만약 그 본체가 하나인 것이 혼합된 것이라면 그것이 혼합될 때 이미 스스로 하나로 이루어졌으니, 이 하나는 도(道)에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또 만약 본체가 다른 것이 혼합된 것이라면 아직 혼합되지 않았을 때에 이미 스스로 두 개로 되어 있었을 것이니, 두 개라는 것은 하나가 생기기 전에 먼저 생긴 것이 아닙니다. 여기 줄지어선 다른 도관(道冠)을 쓴 사람들이여, 의문이 있다면 물어보기 바랍니다.” 이에 우영통은 마침내 망연자실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겸연쩍어하면서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혜정이 말하였다. “선생께서 이미 관문을 열고 적을 맞아들인 이상 마땅히 세차게 북을 쳐서 남은 용기를 발휘하여야 할 것입니다. 어찌 일은 복숭아꽃이나 오얏나무꽃처럼 아름다운 일인데, 여기에 다시 가시가 돋아나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는 계속하여 현령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현령은 기왕에 도교를 돕는 입장이었으니, 어떻게 구제하겠습니까?” 마침내 현령은 얼굴이 붉어지고 부끄러워하였다. 그 이후에도 도교를 따르고 후원하는 일이 있었으나 모두 임기응변하여 이것을 잠재웠고 예전의 관례를 뒤엎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때부터 대승과 소승을 함께 완미(玩味)하였고, 그 연구에 더욱 깊이 몰두하였으며, 주석을 달고 저술하고 근원을 찾느라 겨를이 없었다. 한적한 곳에서 사람들의 왕래를 끊고 옛 종문의 요지를 통합하고 줄여서 『잡심현문(雜心玄文)』 30권을 편찬하였다. 이 책에는 여러 경전의 내용을 한데 묶어 고금의 이론을 정립하였는데, 사방 먼 곳에 있는 영걸한 스님들이 모두 찾아와 그 내용에 깊이 잠겨들었다. 말년에는 또 번역된 『구사론(俱舍論)』의 말뜻이 광대하고 풍부하여 비록 지난날의 자취가 있기는 하나, 그래도 연구를 다하지 못한 점이 있다고 하여, 마침내 스승 없이 홀로 깨달아 표현과 내용을 생각하고 선택해서 해설서 30여 권을 지었다. 마침내 경전의 오묘한 뜻이 밝은 시대에 명맥을 이어 계빈국(罽賓國)의 바른 종문을 훌륭히 만세에 전하게 되었다. 또한 영천(穎川)의 학사 유초손(庾初孫)이 『금강반야경(金剛般若經)』에 주석을 달아달라고 요청하자 곧 그를 위해 내용을 풀이하고 뜻을 거론하여 훌륭한 대작을 이루었으니, 진제(眞諦)와 속제(俗諦)에 대한 교리의 근원을 궁극적으로 설파하고, 대승의 비밀한 교리를 극진히 하여 가깝거나 먼 여러 고을에 유포시키니, 모두들 이것을 베껴 쓰거나 외우고 간직하였다. 그의 문학은 사림(詞林:文學界)에서 모든 사람의 마음과 입에 전해져서 그 명성과 업적을 서로 찬미하였는데, 중단되는 일이 없이 항상 듣게 되었다.
태상박사(太常博士) 저량(褚亮)은 영명한데다 문장마저 맑고 뛰어나 그 명예가 일찍부터 세상에 알려졌다. 그의 훌륭한 재주를 흠모하여 서문을 지었는데, 다음과 같다. “만약 땅덩어리의 형태를 균형 있게 하려면 지혜로써 만물을 따르게 하고,정(情)은 도가 익혀짐으로써 바뀌게 되며, 성품은 생각에 의하여 변화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모든 것을 낱낱이 끝까지 통달하고 살펴보는 것이 선각자보다도 밝을 것이며, 지혜의 횃불을 밝혀 깊은 어둠을 걷어내고 애욕의 강물에서 몸을 건져내서 피안에 오를 것이다. 이것은 만겁 동안 생사를 수레바퀴처럼 윤회하면서 6진(塵)에 의해 마음이 덮이고 오염되어 끝없이 달려가는 얼룩말과 같다. 그러니 지름길을 달려가는 사람들과 동시에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영천의 유초손은 일찍부터 독실하게 신앙심을 키워온 사람이다. 그는 『반야경(般若經)』에서 밝힌 것은 정도(正道)에 귀착되며 대승의 실상을 밝히고 머무르는 것이 없다는 가르침의 끝을 나타내며 마음과 생각의 밖을 벗어나고 말과 형상을 벗어나는 것을 끊어버렸다고 생각하였다. 그런 까닭에 상투를 튼 상태에서 이것을 받아 지니고서 여러 해 동안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비록 그가 미묘한 음성으로 연설하고 빠짐없이 외우게 되었지만 영혼의 근원은 길고도 오묘하여 혹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 있을 때는 방향을 잃고 머지않아 길을 잃어버리지나 않을까 안타까워하였고 장애물에 가로막힌 길을 돌아보면서 크게 한숨을 쉬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