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portrait-of-a-man-holding-gloves.jpg!HD
rtist: Frans Hals the Elder (1582 – 26 August 1666) 는 from https://en.wikipedia.org/wiki/Frans_Hals Title : portrait-of-a-man-holding-gloves.jpg!HD Info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1280px-München_Amalienstraße_bei_Universität
Deutsch: Deutschland, Bayern, München, Postkarte: Amalienstraße hinter der Universität um 1900 Author Unknownwikidata:Q4233718 Permission & Licensing : Wikipedia ● [pt op tr] fr
↔ 안립진여. 2진여의 하나. 진여에 진여(眞如)ㆍ여상(如常) 등 여러 가지 의리차별(義理差別)이 있음을 안립진여, 또는 안립제(安立諦)라 하며, 진여의 체성(體性)이 본래 말로 표현할 수 없고 마음으로 생각할 수 없어서 적멸무위(寂滅無爲)한 것을 비안립진여, 또는 비안립제(非安立諦)라 한다. 안립진여는 진여의 모양, 비안립진여는 진여의 체성. 『기신론』에서는 이를 의언진여(依言眞如)ㆍ이언진여(離言眞如)라 함.
답 후보
● 비안립진여(非安立眞如)
빈자일등(貧者一燈)
사가행위(四加行位)
사계(四界)
사근본번뇌(四根本煩惱)
支 ■ ( 지탱할 지 )
033▲ 支辶尺天艹 ■ 지착척천초 33 (( 지탱할 지 )( 쉬엄쉬엄 갈 착 )( 자 척 )( 하늘 천 ) 초두머리 초 )
059▲ 衣衤耳而印 ■ 의의이이인 59 ( 옷 의 )( 옷의변 의 )( 귀 이 / 잉손 잉 )( 말 이을 이 / 능히 능 )(도장 인 / 벼슬 인 )
재춘법한자
33 대비심을 갖춘 이(관세음보살)는 범왕을 위해 다시 재앙을 멀리 여의는 청량(淸凉)한 게송을 말씀하셨다. "넓은 들을 가거나, 산과 못을 가는 중에 호랑이나 늑대와 모든 나쁜 짐승과 뱀과 도깨비 귀신을 만나도 이 주문을 듣거나 외우면 해치지 못하며 ● 자라자라 遮囉遮囉<三十三> ca la ca la
『불설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
♣0294-001♧
제목 : 사리불이여, 어느 나라의 한 취락에 부유한 장자(長者)가 살고 있었는데, 나이는 많이 들었지만 재물이 한량이 없었고 전답과 가옥, 노비가 매우 많았느니라.
그의 집은 광대했지만 대문은 오직 하나 뿐이었고, 사람들도 많아서 1백, 2백 때로는 5백 명이 그 속에 살고 있었는데, 집과 누각은 낡아서 벽과 담이 무너지고 기둥뿌리도 썩었으며 대들보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위태로웠느니라. 그런데 집 주위에서 홀연히 일시에 불이 일어나 집들을 태웠는데, 장자의 아이들이 대략 십ㆍ2십 내지 3십 명이 집안에서 놀고 있었느니라. 장자는 사방에서 커다란 불길이 솟아나는 것을 보고는 크게 놀라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비록 불타고 있는 문에서 안전하게 빠져 나오기는 했지만, 아이들은 불타는 집에서 장난하느라 불이 난 줄 알지도 못하고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구나. 앞으로 불길이 몸에 닿아서 고통이 심할 것인데도 싫어하거나 걱정할 줄도 몰라서 빠져 나오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구나.’ 사리불이여, 장자는 또 이렇게 생각하였느니라. ‘내 몸에 아직 힘이 있으니, 옷 담는 함이나 책장에 앉혀서 밖으로 벗어나게 해야겠다.’ 그러다가 장자는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느니라. ‘이 집에는 문이 하나 뿐이고 매우 협소하다.
어린 것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장난에만 정신이 팔려 있으니, 혹시라도 떨어지면 불에 탈 것이다. 그러므로 화재의 무서움을 알려주어서 집안이 이미 불길에 휩싸였으니 속히 집밖으로 벗어나야 불에 타지 않을 수 있다고 해야겠다.’ 이렇게 생각한 장자는 아들들에게 속히 집밖으로 벗어나라고 외쳤느니라. 아버지가 불쌍히 여겨서 간곡한 말로 타일렀건만, 아이들은 장난하는 일에만 빠져서 믿으려 하지 않았으며, 놀라지도 않고 두려움도 없어서 나오려는 생각조차 없었다. 더구나 불이 무엇인지, 집이 무엇인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른 채 그저 장난하는 일에 동분서주하면서 아버지를 바라볼 뿐이었느니라. 이 때 장자는 또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집은 이미 불길에 휩싸여 있으니, 아이들이 이 시각에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반드시 불에 탈 것이다. 나는 이제 방편을 써서 아이들로 하여금 이런 재난을 면하게 하리라.’ 아버지는 아이들이 갖가지 진기하고 기이한 장난감을 좋아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렇게 말했느니라. ‘너희들이 갖고 놀기 좋은 희귀한 장난감이 여기 있는데, 지금 당장 취하지 않으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여기 갖가지 양이 끄는 수레, 사슴이 끄는 수레, 소가 끄는 수레가 지금 문 밖에 있어서 갖고 놀기 좋으니, 너희들은 이 불타는 집에서 당장 나오너라. 너희들이 바라는 대로 너희에게 주겠다.’ 그러자 아이들은 아버지가 말하는 진기한 장난감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매우 기뻐하면서 서로 밀치고 다투면서 불타는 집에서 빠져 나왔느니라. 이 때 장자는 아이들이 안전하게 빠져 나와서 네거리 길 복판의 맨 땅에 앉아서 더 이상의 장애가 없게 되자, 그 마음이 태연해지면서 기쁘기 한량없었느니라. 그 때 아이들이 아버지에게 말했느니라.
‘아버지께서 주시겠다던 양이 끄는 수레, 사슴이 끄는 수레, 소가 끄는 수레를 지금 저희들에게 주시기 바랍니다.’ 사리불이여, 그 때 장자는 아이들에게 똑같이 큰 수레를 나누어주었으니, 그 수레는 크고 넓고 온갖 보배로 꾸며져 있었으며, 수레 주위에는 난간이 쳐져 있었으며 사면에는 방울이 달려 있었느니라. 또 그 위에는 갖가지 기이한 보배로 장식된 덮개가 씌워져 있었는데, 보배 끈이 엮어져 있고 온갖 꽃과 영락이 드리워졌으며, 부드럽고 편안한 자리를 겹겹으로 깔고 붉은 베개가 놓여 있었느니라. 또 흰 소에 멍에를 메웠는데, 그 소는 빛깔이 깨끗하고 형체가 특히 좋았으며, 힘이 좋아서 걸음이 바르면서도 바람처럼 빨리 달렸느니라. 또한 여러 하인들이 수레 곁에서 호위하였으니, 왜냐 하면 장자는 재물이 한량없어서 온갖 창고마다 보배로 가득했기 때문이니라. 장자는 이렇게 생각하기도 했다. ‘내게 재물은 한량이 없으니, 변변치 못한 작은 수레를 아이들에게 주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이 아이들은 모두 나의 자식이니 치우침 없이 똑같이 사랑해 주리라. 내게는 이와 같이 칠보로 장엄된 큰 수레가 한량없이 많으니 응당 평등한 마음으로 골고루 나누어 줘야지 차별해서는 안 되리라. 왜냐 하면 나의 재물은 한 나라의 국민들에게 나누어주더라도 여전히 남게 되거늘, 하물며 내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는 경우이랴.’ 그 때 아이들은 각기 커다란 수레를 타고서 일찍이 없었던 것을 얻게 되었지만, 이는 본래 소망하던 것이 아니었느니라. 사리불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장자가 아이들에게 보배 수레를 똑같이 나누어 준 것이 허망한 짓인가, 허망한 짓이 아닌가?” 이에 사리불이 답했다. “허망하지 않나이다, 세존이시여. 이 장자가 단지 여러 아이들로 하여금 화재를 면하게 해서 목숨을 온전하게 한 것만으로도 허망한 짓이라고 할 수 없겠나이다. 왜냐 하면 목숨을 보존한 것만으로도 이미 좋아하는 장난감을 얻은 것인데, 게다가 방편을 써서 그들을 불난 집에서 무사히 구제했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설령 이 장자가 가장 작은 수레 하나마저 주지 않았더라도 허망한 짓이라 할 수 없으니, 왜냐 하면 장자가 앞서 생각하기를 ‘나는 방편을 써서 아이들을 집밖으로 구해내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장자의 행위는 허망하다고 할 수 없는데, 하물며 자신의 재산이 한량없음을 알고서 아이들을 이롭게 하기 위해 큰 수레를 골고루 나누어준 것이겠습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그대의 말과 같으니라. 사리불이여, 여래 또한 그와 마찬가지로서 모든 세간의 아버지이니라. 여래는 온갖 공포, 나약함, 근심걱정, 그리고 무명의 어두운 가리움이 영원히 남김없이 다했으며, 한량없는 지견(知見), 열 가지 힘과 무소외(無所畏), 대신통력과 지혜의 힘을 성취했고, 방편바라밀과 지혜바라밀을 구족하게 갖추었고, 대자대비로서 늘 게으름에 빠지지 않고 항시 착한 일로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느니라. 그리하여 삼계의 낡고 썩은 불타는 집에 태어나서 중생들을 생로병사와 근심걱정, 슬픔, 고뇌, 어리석음과 미혹과 같은 삼독(三毒)의 불길로부터 구제하기 위하여 가르침을 베풀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내가 중생들을 살펴보니, 그들은 생로병사, 근심걱정, 슬픔, 고뇌의 불꽃에 타고 있고, 또한 다섯 가지 욕심과 재물의 이익에 빠져서 온갖 고통을 받고 있으며, 또 탐욕과 집착으로 인해 현세에서 갖가지 괴로움을 당하다가 나중에는 지옥ㆍ축생ㆍ아귀의 고통을 받기도 하며, 어쩌다가 천상이나 인간 세상에 태어난다 할지라도 가난과 빈곤의 고통, 원망과 애증의 괴로움을 겪으니, 이와 같은 온갖 고통 속에 푹 빠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생들은 노는 일에만 정신이 팔려서 아무 것도 알지도 못하고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더욱이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키지도 않아서 해탈을 구하려고 하지도 않느니라. 이처럼 삼계라는 불타는 집에서 동분서주할 뿐 설령 커다란 고통을 만날지라도 그것을 걱정하지도 않느니라.” 사리불이여, 부처님은 중생의 이런 모습을 보고 이렇게 생각하였느니라. ‘나는 중생의 아버지로서 마땅히 저 고통을 뿌리뽑아서 중생으로 하여금 한량없고 가이없는 부처님 지혜의 기쁨을 주어서 누리도록 하리라.’
사리불이여, 여래는 또한 이렇게 생각하였느니라. ‘내가 만일 신통력과 지혜의 힘만으로 방편을 저버리고 중생을 향해 여래의 지견과 힘과 무소외(無所畏)를 찬탄하기만 한다면 중생은 구제를 받을 수 없으리라. 왜냐 하면 중생들은 생로병사, 근심과 슬픔, 고뇌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채 삼계라는 불타는 집에서 타고 있거늘, 어떻게 부처님의 지혜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사리불이여, 예컨대 저 장자는 비록 몸에 큰 힘이 있을지라도 그것을 쓰지 않고 다만 은근히 방편을 통해서 아이들을 불난 집에서 구해 낸 뒤에 진귀하고 보배로운 커다란 수레를 각각에게 주었듯이, 여래 또한 마찬가지라서 비록 힘과 무소외가 있지만 사용하지 않고 단지 지혜와 방편만으로 삼계라는 불타는 집에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성문ㆍ벽지불ㆍ불승(佛乘)의 삼승을 설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느니라. ‘그대들은 삼계라는 불타는 집에 머물기를 즐기지 말고, 거칠고 변변치 않은 모양, 소리, 냄새, 맛, 감촉에 탐닉하지도 말라. 만일 탐닉하여 애착한다면 그대로 타게되리라. 그러나 그대들이 속히 삼계에서 벗어나면 성문ㆍ벽지불ㆍ불승의 삼승을 증득할 것이니라. 내 이제 그대들을 위해 이 일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보증할 터이니, 모름지기 부지런히 수행하고 정진해야 하리라.’ 여래는 이러한 방편으로 중생을 달래서 나오게 한 뒤에 다시 이렇게 말하였느니라. ‘그대들은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 삼승법은 모든 성인이 칭찬하고 찬탄한 바로서 아무런 속박 없이 자재하며 의지하여 구하는 바가 없느니라. 이 삼승법을 탄다면 무루(無漏)의 근(根)ㆍ힘[力]ㆍ깨달음[覺]ㆍ선정ㆍ해탈ㆍ삼매 등을 스스로 즐기면서 문득 한량없는 안온함과 쾌락을 얻게 되느니라.’
사리불이여, 어떤 중생이 마음에 지혜의 성품을 갖춰서 세존으로부터 법을 듣고서 믿고 받아들이고 꾸준히 정진하여 속히 삼계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열반을 얻고자 한다면, 그를 바로 성문승(聲聞乘)이라 하느니라. 예컨대 양이 끄는 수레를 구하기 위해 불타는 집에서 뛰쳐나온 아이들과 마찬가지이리라. 만일 어떤 중생이 부처님으로부터 법을 듣고서 믿고 받아들이고 은근히 정진해서 스스로 자연의 지혜[自然智]를 구하고, 혼자 고요한 곳에 있기를 즐기고, 일체법의 인연을 깊이 안다면, 그를 벽지불승(辟支佛乘)이라 하리라. 비유컨대 사슴이 끄는 수레를 구하기 위해 불타는 집에서 뛰쳐나온 아이들에 해당되느니라. 또한 어떤 중생이 부처님으로부터 법을 듣고서 믿고 받아들이고 부지런히 정진해서 일체지(一切智), 부처님의 지혜[佛智], 자연지(自然智), 스승 없이 직접 얻은 지혜[無師智], 여래의 지견, 힘, 무소외를 구하고, 무수한 중생을 가엾이 여겨서 안락하게 하고자 생각하고, 하늘과 사람을 이롭게 함으로써 일체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시킨다면 그를 대승 보살이라 말하리라. 이 대승의 수레를 구하는 까닭에 마하살이라 이름하기도 하나니, 비유컨대 소가 끄는 수레를 얻기 위해 불타는 집에서 뛰쳐나온 아이들에 해당되느니라. 사리불이여, 마치 저 아이들이 불타는 집으로부터 무사히 빠져 나와서 안전한 곳에 이르게 된 것을 보자, 장자가 자신의 재산이 한량없음을 생각해서 모든 아이들에게 똑같이 큰 수레를 나누어주었듯이, 여래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서 모든 중생의 아버지인지라 한량없는 억천(億千) 중생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하여 삼계의 고통과 두렵고 험한 길에서 벗어나 열반의 즐거움을 얻는 것을 보고는 여래는 이 때 이렇게 생각하였느니라. ‘나는 한량없는 지혜와 힘과 무소외 등 모든 부처님의 법장(法藏)을 가졌는데, 이 모든 중생들은 나의 자식들이니 평등하게 대승의 법을 주어야지 어느 한 중생만 멸도에 들게 하지는 않을 것이며, 똑같이 여래의 멸도로써 멸도에 들어가게 하리라.’ 그리하여 삼계에서 벗어난 중생에게 모든 부처님의 선정과 해탈 등의 오락기구를 주었으니, 모두 한 모양[一相] 한 종류[一種]로서 성인들이 칭찬하는 바라서 청정하고 미묘하기 으뜸인 즐거움을 낳느니라.’
사리불이여, 저 장자가 애초에 세 가지 수레로 아이들을 유인한 연후에 나중에 보배로 장엄된 지극히 안온한 수레를 주었으나, 그러나 저 장자에게는 허망한 허물이 없는 것처럼 여래 또한 마찬가지로 허망함이 없느니라. 처음엔 삼승을 설해서 대중을 인도한 연후에 단지 대승으로만 제도하여 해탈시켰으니, 왜냐 하면 여래는 한량없는 지혜와 힘과 무소외 등의 온갖 법장을 갖추고서 모든 중생에게 대승의 법을 전해줄 수 있지만 다만 중생이 다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니라. 사리불이여, 이런 인연으로 모든 부처님은 방편을 써서 일불승을 삼승으로 나누어 말하게 된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