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중-일-범-팔-불어 관련-퀴즈 [wiki-bud]Sakyapa [san-chn]
paryanviṣṭa 修, 求 [san-eng]
narādhamān.h $ 범어 the lowest of mankind [pali-chn]
sammati-ñāṇa 世俗智 [pal-eng]
pa.tijaggita $ 팔리어 pp. of pa.tijaggatiwatched over; looked after; tended; nourished to repair. [Eng-Ch-Eng]
倒 (1) Upside down, perverted, inverted, contrary, mistaken. Same as 顛倒. (viparya^sa, viparyaya, paryasta, viparita). (2) But, nevertheless, and yet. [Muller-jpn-Eng]
念 ネン (term) mindfulness, memory [Glossary_of_Buddhism-Eng]
AUSPICIOUS KALPA☞ Syn: Good Eon; Good Kalpa; Propitious Kalpa. See also: Cosmic Age. “A kalpa is the period of time between the creation and recreation of a world or universe. In the Mahayana tradition, the present kalpa is called ‘Worthy’ because during its span, 1,000 Buddhas will appear to save sentient beings.” Chan: 485 #0174
법향은 속성이 이씨(李氏)이며 양주(揚州) 해릉현(海陵縣) 갈강(葛岡) 사람이다. 그는 키가 8척이고 용모가 우람차고 걸출하였으며 눈썹과 눈은 특이하였다. 타고난 성품은 위엄이 있고 말할 때에는 아무 말이나 막하지 않았으며 발바닥에는 둥글고 청정하고 선명한 검은 점이 있었다. 그래서 관상쟁이가 그에게 말하기를 “앞으로 장수가 되어 천하에 명성을 날리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16세에 부모들과 이별하고 출가하였는데 맡은 일에 정진하였고 마음을 쓰는 것이 다른 사람들과 전혀 달랐으며 늙은 비구니가 참례(參禮)하여도 그와 마주 서서 말한 적이 없었고 계율을 따르는 행위는 청정하였으며 『법화경(法華經)』을 통달하였다. 섭산(攝山)에 있는 서하사(栖霞寺)의 공(恭) 선사는 법에 머무르는 후현으로서 대중들이 귀의하고 우러르는 사람이었다. 그는 널리 퍼진 법향의 명성을 듣고 초청하여 사원 곁에 법화당(法華堂)을 세우고 지자(智者) 대사가 행한 법화참법(法華懺法)을 행하게 하자 법향은 법대로 행하였는데 21일 동안 오로지 전심하여 상서로운 감응을 크게 얻었다. 이것을 알면서도 말은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얼마 후 공 선사가 수도로 가고 법향은 강북(江北)으로 돌아갔다. 이때 해릉(海陵)과 영해(寧海)의 두 현에서 각각 그를 맞아들여 공양하였다. 수나라 말엽에 해릉 대녕사(大寧寺)의 승려 지희(智喜)가 승방을 열고 그를 맞아들이자 그는 그 안에서 조용히 좌선하였다. 그는 어느 날 낮에 누워 있다가 놀라서 일어나며 소리쳤다. “불이 났다.” 지희가 나가서 사방을 둘러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자 법향이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귀에 병이 생겨 잘못 들은 것인가?” 다음날 낮에도 놀라서 소리쳤는데 이렇게 세 번씩이나 되풀이하고는 드디어 동쪽의 영해로 다시 돌아갔다. 그가 떠난 후 역적인 이자통(李子通)이 현을 파괴하고 사원을 불살랐는데 법향이 전에 말한 것처럼 되었다. 당시 범이 하루에도 수십 명의 사람들을 해쳐 그 재앙이 없애기 위한 큰 재회(齋會)를 열었는데 갑자기 한 마리의 범이 법당에 뛰어들더니 한 사람을 덮쳐들고 달아나려고 하였다. 그러자 법향이 범의 뒤를 쫓아가면서 소리치기를 “서라. 왜 그런 짓을 하는가? 지금 시주를 위해서 재회를 열었으니 그 사람을 놓아주라” 하자 범은 그의 말대로 그 사람을 놓아주었다. 이때 범들을 모아 놓고 그가 지팡이로 머리를 두드리면서 설법하자 곧 범들은 서로 줄을 지어 멀리 떠나갔다. 또한 그는 천태산(天台山)에 가서 지자 대사의 고적을 찾아보려고 하다가 제자에게 말하였다. “나는 비록 천태산에 가려고 하였지만 거기에 이르지 못한 채 강남(江南)의 어느 산 속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곳에서 서북쪽을 바라보니 한 개의 성이 보였는데 강을 건너가니 강음현(江陰縣)이었다. 거기에서 도인과 속인들이 만류하여 현의 동남쪽 산에 사원을 세우고 정산사(定山寺)라고 이름지은다음 그곳에서 여러 해를 보냈다. 후에 천하가 점차 안정되자 또다시 해릉의 염정(鹽亭)으로 돌아왔는데 그때에도 그곳의 백성들이 나를 만류하였다. 거기에는 소고산(小孤山)이라는 산이 있었는데 높이가 땅에서 1백 길이나 솟아 있었으며 사방에는 풀이나 나무가 없었다. 나는 그 산 앞에 사원을 짓고 정견사(正見寺)라고 한 다음 거기에 거처하였다.” 정관(貞觀) 4년 초겨울에 그는 문인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너희들과 이별하게 되었다. 근래의 꿈이 나쁜 것을 보아 장차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는 마침내 20일 동안 자리에 누웠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끓인 물을 찾더니 목욕을 하고 진시(辰時)부터 유시(酉時)까지 머리를 깎은 다음 서쪽을 향하여 앉아서 생을 마쳤다. 그때 그의 나이는 78세였다. 그는 임종의 시각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몸을 새와 짐승들에게 보시하기를 원하지만 여기에는 나무와 숲이 없어서 새와 짐승들이 먹다가 다 먹지 못하면 사람들의 눈길을 어지럽힐 것이다. 그러니 나를 산의 서남쪽에 묻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말대로 그곳에 묻으려고 땅을 파다가 반석이 있어서 그 깊이가 얕아 시신을 묻을 수 없게 되자 다시 다른 곳을 파서 마침내 한 곳을 정하게 되었다. 그곳은 돌 위에 우묵한 구덩이가 있어 시신을 안치하기에는 적합하였으므로 그 안에 그의 시신을 안치하고 그 위에 탑을 세웠다. 법향은 살아 있을 때 타림(陀林)의 들에서 살면서 맹수들을 길들이고 서방의 정토를 관찰하면서 입으로 나무불(南無佛)을 외웠으며 많이 설법하지 않고 인연에 따라 한두 마디만 설법하였고 어떤 사람에게 재앙의 징조가 있으면 꿈속에서 본 것이라고 핑계를 대면서 피하게 하였다. 정관 2년에 상주(常州)의 어떤 사람이 유주(幽州)에 가서 한 여인을 만났는데 그 여인이 물었다. “해릉의 법향 선사께서는 건강하십니까? 또한 그분을 아십니까?” 상주 사람이 대답하였다. “모르오.” 그러자 그 여인은 오사포(烏絲布)로 만든 두건을 그에게 주면서 법향 선사에게 전달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러나 이 사람은 병에 걸려 한 해가 지나도록 상주에 이르지 못하였는데 법향은 이 사실을 미리 알고 늘 “어째서 오지 않는가?” 하고 탄식하였다. 후에 그 사람은 강음현(江陰縣)에 이르러 두건을 해릉 사람에게 주면서 법향에게 전달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해릉 사람이 그곳에 이를 무렵에 법향은 제자를 보내 그를 맞이하게 하였는데 마침 그가 문어귀에 이르러 서로 만나 두건을 부탁하고 해릉 사람은 돌아갔다. 법향은 그 두건을 손에 쥐고 들여다보다가 슬프게 한탄하며 그것을 찢어서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한 조각씩 받은 사람도 있었고 전혀 받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정관 3년에 나라에서는 의녕(義寧) 지방에서 남몰래 제도한 사람들을 크게 단속하였는데 나오지 않는 사람은 목을 자르겠다고 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그들은 모두 두려워하였는데 두건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법에 의하여 속세로 돌아가고 그것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지금도 출가인으로 남아 있다. 그해 겨울에 많은 눈이 내려 몇 자나 쌓였는데 법향이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나에게는 신선한 나물이 필요하다.” 제자들이 말하였다. “눈이 깊어서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법향이 말하였다. “산에 올라가서 찾아보면 어디엔가 있을 것이다.” 그의 말대로 산에 올라가 몇 리를 찾아다니다가 한 나무 아래에 이르니 그곳에는 푸르고 싱싱한 나물뿐이었다. 그래서 그것을 가지고 사원으로 돌아왔다. 그가 앞으로의 일들을 미리 아는 것이 모두 이와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