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Renoir still-life-with-apples-and-pears-1903
Artist: Pierre-Auguste Renoir from https://en.wikipedia.org/wiki/Pierre-Auguste_Renoir Title : still-life-with-apples-and-pears-1903 Info Permission & Licensing : Wikiart ● [pt op tr] 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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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_○ 2020_1114_140055_can_BW22 삼각산 도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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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nne Clark - Respire
태장계 만다라의 중앙에 있는 원(院). 이 원에는 여덟 잎의 연꽃이 있고, 그 중앙에는 대일여래(大日如來)가 계시며, 주위의 여덟 잎에는 보당여래(寶幢如來)ㆍ개부화여래(開敷華如來)ㆍ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ㆍ천고뢰음여래(天鼓雷音如來)의 네 부처님과 보현보살ㆍ문수보살ㆍ관음보살ㆍ미륵보살의 네 보살이 계신다. 이 여덟 연꽃 잎은 중생이 본래 갖추고 있는 8엽(葉)의 육단심(肉團心)을 상징한 것으로, 그것이 곧 네 부처와 네 보살이며, 이렇게 하여 범부의 몸이 그대로 부처의 몸임을 여실하게 표시한 것.
朱 ■ ( 붉을 주 )
060▲ 朿自在舟朱 ■ 자자재주주 60 ( 가시 자 / 가시나무 극 )( 스스로 자 ) ( 있을 재 ) ( 배 주 ) ( 붉을 주 )
021▲ 丹斗屯六丏 ■ 단두둔륙면 21 (붉을 단 / 란, 난 )(말 두 / 구기 주, 싸울 투 ) (진 칠 둔 / 어려울 준 )( 여섯 륙 / 죽이다 륙, 육 )( 가릴 면 )
재춘법한자
제목 : 부처님의 치아가 모셔진 가람에서 동쪽으로 10여 리를 가다 보면 북쪽 산 낭떠러지 사이에 작은 가람이 있는데 옛날 색건지라(索建地羅) 대논사65)가 이곳에서 『중사분비바사론(衆事分毘婆沙論)』을 지었다.
작은 가람 안에 돌로 만들어진 솔도파가 있는데 높이는 50여 척이다. 이곳에는 아라한의 유신사리(遺身舍利)가 안치되어 있다. 옛날에 어떤 아라한이 있었는데 그의 몸집은 매우 컸고 그가 먹는 음식은 코끼리의 양과 똑같았다. 그러자 당시 사람들이 이를 비난하며 말하였다. “하릴없이 포식할 줄만 아니 어찌 옮고 그름을 가리겠느냐?” 그 아라한이 장차 적멸에 들게 되자 사람들에게 일렀다. “내가 이제 오래지 않아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에 들게 되니 내 몸이 증득한 묘법(妙法)을 설하고자 한다.”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서로 비웃음치며 모두들 과연 그 말대로 이루어질지 보려고 모여들었다. 그러자 아라한이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본생인연(本生因緣)을 설하겠다. 이 몸의 전신은 코끼리 몸이었고 동인도의 한 왕궁의 코끼리 우리에 살고 있었다. 마침 이 나라에 어떤 사문이 있었는데 그는 멀리에서부터 인도로 유행하면서 성스러운 가르침과 여러 경전과 논서를 두루 찾아다녔다. 이 때 왕이 나를 사문에게 보시하면서 불경을 짊어지고 가게 하였다. 그리하여 이곳을 지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 후 오래지 않아 나는 목숨을 마쳤고, 경을 싣고 간 복덕의 힘으로 마침내 인간의 몸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복덕을 심은 덕에 일찍이 법복을 입게 되었으며 부지런히 해탈을 구하여 잠시도 편하게 쉬지 않았다. 그리하여 6신통을 얻고 삼계의 탐욕을 끊었다. 하지만 먹는 것은 이전의 습관이 여전히 남아있었으므로 언제나 스스로 몸을 조절하여 3분의 1만을 먹었다.” 이렇게 말하였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믿으려하지 않았다. 그러자 사문은 허공으로 올라가 화광정(火光定)66)에 들어서 몸에서 연기와 불꽃을 내뿜더니 적멸에 들었다. 남은 유해가 아래로 떨어지자 사람들은 그것을 거두어서 솔도파를 세운 것이다. 왕성의 서북쪽으로 2백여 리를 가다 보면 상림(商林)가람에 이른다. 포라나(布剌拏)67) [당나라 말로는 원만(圓滿)이라고 한다] 논사가 이곳에서 『석비바사론(釋毘婆沙論)』을 지었다.
성의 서쪽으로 140~150리를 가다 보면 큰 강이 나오는데 북쪽으로 산을 접해 있으며, 남쪽으로 가다 보면 대중부(大衆部)가람에 이른다. 승도는 백여 명 있으며 옛날 불지라(佛地羅)논사68)가 이곳에서 『대중부집진론(大衆部集眞論)』을 지었다.
이곳에서 서남쪽으로 산을 넘고 험한 길을 지나서 7백여 리 가다 보면 반노차국(半笯[奴故反]嗟國) [북인도의 경계이다] 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