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伽 실담悉曇 【☆☆】 【abs】개요 한자伽는 부수인 亻(사람인변 인)에 加(더할 가)를 합쳐 절, 사찰을 뜻한다. <가>라고 읽는다. 그러나 불교에서 이 한자는 인도의 범어 글자[梵字범자] gha (오늘날 데와나가리 형태) घ를 소리로 음역해 한자로 표기한 것이기도 하다. 실담글자 형태는 <다음 그림>의 ખ 형태다.
이 범어글자는 한자로 竭(갈)ㆍ恒(긍 /항)ㆍ[口*恒](긍)ㆍ鍵(건)ㆍ搋(체) 이라고도 표기한다. 불교에서는 글자 gha(घ, ખ)가 들어가는 범어 낱말들 가운데 ghana, ghaṭana, ghoṣa 등을 대표로 취한다. 범어에서, ghana는 빽빽함 즉, 조밀(稠密)을 뜻한다. ghaṭana는 합쳐짐 즉, 합(合)을 뜻한다. ghoṣa는 소리를 만들어냄 즉, 작음(作音)을 뜻한다. 그리고 불교에서는 이 글자에 수행과 관련된 의미를 붙여 새긴다. 그래서 이를 빽빽하고 은밀한 어리석음[無明무명]의 어둠을 꺾는 소리로 새긴다. [摧稠密無明闇冥聲최조밀무명암명성] 그리고 모든 법이 하나로 합쳐짐[一合일합]은 얻을 수 없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새긴다. [一切法一合不可得일체법일합불가득] 또 여래의 항상한 설법소리를 나타내는 것으로 새긴다. [如來常音여래상음] 【disc】논의 ♠ 실담(悉曇)과 수행 범어 글자는 원칙적으로 단순한 말소리를 표시하는 기호다. 한편 하나의 소리를 사용해 나타낼 수 있는 단어는 많다. 그러나 수행자는 그 가운데 수행에 의미가 깊은 단어를 그 소리나 글자로 떠올린다. 그리고 그 소리나 단어는 그런 의미가 함축된 것으로 새겨 대한다. 그래서 이를 통해 수행목표나 수행의 중요한 덕목을 마음에 떠올린다. 그리고 수행시 수행의 방향을 자각함에 사용한다. 그래서 수행에 도움을 받고 효용을 갖게 한다. [mem] 키워드기억: 자네, 조선시대 형벌도구인 나무칼 가(伽)를 평생 목에 채우고 지내려는가. 아니면 범어gha를 나타내는 사찰伽가 자에 담긴 깊은 뜻을 이해하고 이번에 생사고통의 묶임을 모두 벗어나겠는가. 한국에서는 가나다순이기에, 수행의 천리길도 범어gha 사찰伽가 자의 이해부터 시작한다. 이는 - 조밀ghana 가나, 일합 ghaṭana 가따나, 작음 ghoṣa 고샤, 라는 단어를 토대로 - 최-조밀-무명-암명-성, 제법-일합상-불가득, 여래-상음을 뜻한다. 고대 범어글자 ખ 는 '가슴'의 ㄱㅎ가 로 형태를 기억합시다. 오늘날 데와나가리 형태 घ 는 옆에서 본 '가슴'의 ㄱㅎ가 로 형태를 기억합시다. (출전 : 무명씨) 불기2567-11-07 ------------ 【mean】설명 [mean1] 가(伽)는 범어 gha를 한자로 나타낸 글자다. 이는 실담체문(悉曇體文) 42자(字), 50자문(字門)의 하나다. ♠ 실담(悉曇) - 체문(體文), 마다(摩多) 여기서 실담(悉曇)은 인도의 범어(산스크리트) 문자를 뜻한다. 넓은 뜻으로는 체문(體文)과 마다(摩多)를 총칭한다. 체문은 자음[父音부음]을 뜻한다. 이는 소리를 낼 때 발성기관에서 장애를 받으며 내는 소리다. 한글에서 'ㄱ', 'ㄴ' 등과 같다. ☞ 구체적 내용 참조 구 홍법원사전 1818 1819 마다(摩多)는 모음(母音)을 뜻한다. 이는 소리를 낼 때 발성기관에서 장애를 받지 않고 내는 소리다. 한글에서 ‘ㅏ’, ‘ㅑ’ 등과 같다. 실담(悉曇)은 좁은 뜻으로는 마다(摩多)의 12운(韻)만 말하기도 한다. 이 마다(摩多) 12운은 모두 완전한 제소리가 있다. 또 체문에 점획으로서 붙여, 여러 가지 소리를 구성한다. 그래서 마다는 점획(點劃)이라 번역하기도 한다. ☞ 참조 구 홍법원사전 1820 그리고 이를 실담(悉曇)이라 음역한다. 또한 성취(成就)ㆍ길상(吉祥)이라 의역한다. 범어로는 siddhaṃ이라고 한다. [mean]2 경(經)에서는 이를 빽빽하고 은밀한 어리석음의 어둠을 꺾는 소리로 해석한다. 즉, 이 글자를 최조밀무명암명성(摧稠密無明闇冥聲)을 나타내는 것으로 새긴다. ** 여기서 摧최는 꺽을 최, 稠密조밀은 빽빽함, 無明무명은 근본 어리석음을 뜻한다. 그리고 闇암은 어두울 암, 冥명은 어두울 명이다. { K1309V36P0978b05L; 伽<去> 字時是摧稠密無明闇冥聲 『문수문경자모품제십사』(文殊問經字母品第十四) 1권 } 또는 ‘온갖 어리석음[無明무명]의 어둡고 두텁고 중하게 가린 꺼풀을 없애라’라는 의미의 소리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즉, 이 글자를 제멸일체무명흑암후중예막성(除滅一切無明黑暗厚重瞖膜聲)을 나타내는 것으로 새긴다. 여기서 瞖예는 흐릴 예 , 膜막은 꺼풀 막을 뜻한다. { K0111V09P0563b21L; 除滅一切無明黑暗厚重瞖膜聲 『방광대장엄경』(方廣大莊嚴經) 제4권 10. 시서품(示書品) } 이는 범어로는 ghaṇa-paṭa-vidyā-moha-andhakāra-vidhāmana 이다. 그리고 이는 범어 가나(伽那 ghana)에 토대를 둔다. 범어 ghana는 빽빽함, 즉, 조밀(稠密)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mean]3 경(經)에서는 또 한편, 이를 모든 법의 일합(一合:하나로 합함)은 얻을 수 없음을 나타낸다고 해석한다. 즉, 이 글자를 일체법일합불가득(一切法一合不可得)을 나타내는 것으로 새긴다.** { K0287V11P0747c05L; 伽<上>字門解一切法一合不可得故 『불공견삭신변진언경』(不空羂索神變眞言經) 제14권 다라니진언변해탈품(陁羅尼眞言辯解脫品) 제23} { K1370V37P0287a01L; 伽<去引>字門一切法一合不可得故 『유가금강정경석자모품』(瑜伽金剛頂經釋字母品)}
이를 대일경에서는 모든 법의 일합상(一合相)은 얻을 수 없음을 나타낸다고 해석한다. 여기서 일합상(一合相)은 하나로 합해진 모습을 뜻한다. '제법일합상불가득'(諸法一合相不可得)이라고 표현한다. { K0427V13P0911b22L; 諸法一合相不可得故現伽字形 『대비로자나성불신변가지경』(大毘盧遮那成佛神變加持經), 권6(卷六) 백자성취지송품(百字成就持誦品) 제22, 선무외. 일행역(唐 善無畏. 一行譯), T0848 } 이런 해석은 범어 ghaṭana에 토대를 둔다. 범어 ghaṭana 는 합쳐짐, 즉 합(合)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그래서 이를 일합(一合)의 가(伽)자라 한다.** 한편, 가(伽)는 위 두 내용 즉 조밀(稠密)과 일합(一合)을 합해 밀합(密合)이란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여기서 일합(一合)은 금강반야바라밀경의 다음 구절과 관련된다. “수보리야, 한 덩어리란 것은 곧 말할 수 없는 것이거늘 다만 범부들이 그것을 탐내고 집착하느니라.” { K0013V05P0984a10L; “須菩提 一合相者 則是不可說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 예를 들어 세상을 대할 때 일정부분을 잘게 나눠서 대하면 티끌로 나누어 대한다. 그러나 일정부분을 전체로 모아 합쳐 대하면 내몸, 영회, 고양이, 바위, . . . . . 하나의 우주 등으로 대하게 된다. 이 때 예를 들어 내몸 및 우주 등으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을 일합상(一合相)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여기고 가리키는 부분은 감각현실이다. 그리고 그런 감각현실을 하나로 합쳐 관하거나, 나누어 관하는 활동은 관념영역에서 행한다. 그리고 그처럼 마음에서 각 부분을 묶거나 나누어 가며 그에 대응해 관념을 일으킨다. 그러나 그런 경우 정작 그처럼 일으킨 관념적 내용은 그런 감각현실 부분에서는 얻을 수 없다. [諸法一合相不可得제법일합상불가득] 한편, 그런 관념내용은 본 바탕 실상에서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그에 대해 언설로 표현할 도리도 본래 없다. 그처럼 각 영역마다 그 내용의 성격이나 지위가 다르다.
[mean]4 경(經)에서는 또 한편, 이를 여래의 항상한 음을 나타낸다고 해석한다. 즉 이 글자를 여래상음(如來常音)을 나타내는 것으로 새긴다.** { K0105V09P0071c23L; ...[口*恒]者如來常音何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북량 담무참역(北涼 曇無讖譯), 卷第八 여래성품(如來性品) 제4 第四之五, T0374 } { K1403V38P0796a16L; 重音伽者如來常音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卷第八 문자품(文字品) 제13 송 혜엄등의니원경가지(宋 慧嚴等依泥洹經加之), T0375 } 북본(北本)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권8에서는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가([口*恒] gha:무거운 음의 가)는 여래의 항상한 음이다. 무엇을 여래의 항상한 음이라 하는가? 여래는 항상 머물고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가’라고 한다 이런 해석은 범어(梵語) ghoṣa에 토대를 둔다. 범어 ghoṣa는 소리를 만들어냄, 즉, 작음(作音)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 영-중-일-범-팔-불어 관련-퀴즈 [wiki-bud]Dhammakaya Movement [san-chn]savāsana-kleśa-jñeyâvaraṇa 煩惱障智障 [san-eng]kāmāt.h $ 범어from desire [pali-chn]cha-anussati-ṭṭhānāni 六念 [pal-eng]aarocesi $ 팔리어 aor. of aarocetitold; informed; announced. [Eng-Ch-Eng]heavenly realm 天上 [Muller-jpn-Eng]三諦相卽 サンタイソウソク unity of the three truths [Glossary_of_Buddhism-Eng]UNIVERSE☞ Syn: Cosmos. See also: Billion-World Universe; Cosmology (Buddhist); Dharma Realm; World System. “On certain occasions, the Buddha has commented on the nature and composition of the universe. According to the Buddha, there are a multitude of other forms of life existing in other parts of the universe. As a result of today’s rapid scientific progress, we may soon find some living beings on other planets in the remotest parts of our galaxy. Perhaps, we will find them subject to the same laws as ourselves. They might be physically quite different in both appearance, elements and chemical composition, and exist in different dimensions. They might be far superior to us or they might be far inferior. Why should the planet earth be the only planet to contain life forms? Earth is a tiny speck in a huge universe. Sir James Jeans, the distinguished astrophysicist, estimates the whole universe to be about one thousand million times as big as the area of space that is visible through the telescope. In his book, The Mysterious Universe, he states that the total number of “universes” is probably something like the total number of grains of sand on all the sea shores of the world. In such a universe, the planet Earth is only one-millionth of a grain of sand. He also informs us that the light from the sun takes probably something like 100,000 million years to travel across the universe! Such is the vastness of the cosmos. When we consider the vastness of the many universes making up what is popularly known as ‘outer space,’ the hypothesis that other-world systems might exist is scientifically feasible. In the light of modern scientific discoveries, we can appreciate the limitations of the human world. Today, science has demonstrated that our human world exists within the limitations of the vibrational frequencies that can be received by our sense organs. And science has also shown us that there are other vibrational frequencies which are above or below our range of reception. With the discovery of radio waves, X-rays, T. V. waves, and microwaves, we can appreciate the extremely limited perception that is imposed on us by our sense organs. We peep at the universe through a ‘crack’ allowed by our sense organs, just as a little child peeps out through the crack in a door. This awareness of our limited perception demonstrates to us the possibility that other world systems may exist that are separate from ours or that interpenetrate with ours. As to the nature of the universe, the Buddha said that the beginning and ending of the universe are inconceivable. Buddhists do not believe that the world will suddenly end in complete and utter destruction. There is no such thing as complete destruction of the whole universe at once. When a certain section of the universe disappears, another section remains. When the other section disappears, another section reappears or evolves out of the dispersed matters of the previous universe. This is formed by the accumulation of molecules, basic elements, gas and numerous energies, a combination supported by cosmic implosion and gravity. Then some other new world systems appear and exist for some time. This is the nature of cosmic energies. This is why the Buddha says that the beginning and the end of the universe are inconceivable. It was only on certain special occasions that the Buddha commented on the nature and composition of the universe. When He spoke, He had to address Himself to the understanding capacity of the enquirer. The Buddha was not interested in the kind of metaphysical speculation that did not lead to a higher spiritual development. Buddhists do not share the view held by some people that the world will be destroyed by god, when there are more non-believers and more corruptions taking place amongst human beings. With regard to this belief people can ask, instead of destroying with his power, why can’t this god use the same power to influence people to become believers and to wipe out all immoral practices from men’s mind? Whether the god destroys or not, it is natural that one day there will be an end to everything that comes into existence. However, in the language of the Buddha, the world is nothing more than the combination, existence, disappearance, and recombination of mind and matter. In the final analysis, the Teaching of the Buddha goes beyond the discoveries of modern science however startling or impressive they may be. In science, the knowledge of the universe is to enable man to master it for his material comfort and personal safety. But the Buddha teaches that no amount of factual knowledge will ultimately free man from the pain of existence. He must strive … diligently until he arrives at a true understanding of his own nature and of the changeable nature of the cosmos. To be truly free a man must seek to tame his mind, to destroy his craving for sensual pleasure. When a man truly understands that the universe he is trying to conquer is impermanent, he will see himself as Don Quixote fighting windmills. With this Right View of himself, he will spend his time and energy conquering his mind and destroying his illusion of self.” Dham: 300-303 #1978
52 좋은 말씀은 또 일체의 보살들로 하여금 가호하고 따라 기뻐[隨喜][주-67]하게 합니다. 돈계, 敦祇<五十二葵計反> tunje (이하~) 성스러운 가문에 출생 토록 전진 전진케 하소서. 『대승대집지장십륜경』 ♣0057-001♧
78 만약 이 다라니를 의심하여 믿지 않는 자는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영원토록 큰 이익을 잃어버리고, 백천만겁토록 윤회하되 항상 나쁜 곳에 태어나 벗어날 기약이 없으며 부처님도 항상 뵙지 못하고, 영원히 부처님 법(法)도 듣지 못하며 또한 보살이나 아라한이나 내지 스님도 보지 못하게 되리라." 이 큰 법회중에 보살마하살과 금강밀적(金剛密迹)과 범왕과 제석과 사천왕과 신선과 용과 귀신들이 부처님여래께서 이 다라니 찬탄함을 듣고, 다 크게 환희하며 가르침을 받들어 수행하였다. ● 사바하 娑婆訶<七十八> s vā hā 『불설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 ♣0294-001♧
선사가 대답했다. “여섯 감관의 문이란 것이 무엇인가?” “어떻게 하루를 보내야 도와 상응하겠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억지로 짓지 말라.” “그렇지만 시간 속에 있는데야 어찌하겠습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시간 속이란 것이 무엇인가?” “대장경 안에도 종문宗門의 일이 있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그것이 무엇인가?” “어떤 것이 종문의 일입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우레 소리는 요란해도 빗방울이 전혀 떨어지지 않는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