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Prabhūtaratna 동방 보정세계(寶淨世界)의 교주(敎主). 보살로 있을 때에 “내가 성불하여 멸도한 뒤, 시방세계(十方世界)에서 『법화경』을 설하는 곳에는 나의 보탑(寶塔)이 솟아나와 그 설법을 증명하리라”고 서원한 부처님. 석존이 영산(靈山)에서 『법화경』을 설할 때에도 그 탑이 솟아나왔다고 하였음.
主 ■ (임금 주/ 주인 주/심지 주 )
049▲ 正左主且冊 ■ 정좌주차책 49 ( 바를 정/ 정월 정 )( 왼 좌 / 증명( 證明) 낮은 자리 )(임금 주/ 주인 주/심지 주 )( 또 차, / 공경스러울 저, 도마 조 )( 책 책 )
050▲ 凸出平包勹 ■ 철출평포포 50 ( 볼록할 철 )( 날 출/ 단락 척 )( 평평할 평 / 다스릴 편 )( 쌀 포/ 꾸러미 포 )( 쌀 포 )
재춘법한자
■ 영-중-일-범-팔-불어 관련-퀴즈 [wiki-bud]Niyama [san-chn]
anye 別, 或, 有師, 有餘人, 有餘師, 餘說, 餘師 [san-eng]
kārye $ 범어 work [pali-chn]
pañca-sikkhā-padāni 五學處 [pal-eng]
atithi $ 팔리어 m.a guest; stranger. [Eng-Ch-Eng]
大方廣如來藏經 Dafangguang rulaizang jing; (Tatha^gatagarbha-su^tra) 1 fasc. trans. Bukong 不空; T 667.16.460b-468a; See T 666.16.457a-460b. [Muller-jpn-Eng]
相順 ソウジュン mutual accordance [Glossary_of_Buddhism-Eng]
PARAMITA☞ Syn: Perfection. See also: Other Shore. Means “the perfection of” or “reaching the other shore” (Enlightenment) as contrasted with this shore of suffering and mortality. The paramitas are usually six in number (charity, discipline, forbearance, energy, concentration and lastly wisdom) or expanded to ten (adding expedients, vows, power and knowledge). The Mahayana tradition emphasizes the paramita of expedients, or skill-in-means. Editor / Tam: 158-159 “Perfections: The six (or ten) stages of spiritual perfection followed by the Bodhisattva in his progress to Buddhahood. They include the practice and highest possible development of charity, morality, forbearance, zeal, meditation and wisdom. The following four are sometimes added: skillful means of teaching, power over obstacles, spiritual aspiration, and knowledge, these last four being, however, regarded as amplifications of Prajna, or wisdom.” Murt: 52 “Dana paramita (charity) consists of beneficence and giving in both 【book-page-568 569】 the material and spiritual senses. This includes being compassionate and kind and not keeping accumulated merit for oneself but rather dedicating it to the liberation of all beings. Shila-paramita (discipline) includes proper behavior conductive to the eradication of all passions and the securing of a favorable rebirth for the sake of liberating all beings. Kshanti paramita ( forbearance) refers to the patience and tolerance that arise from the insight that all the problems of beings have causes. Virya paramita (zeal ) is resolute effort that does not permit itself to be diverted by anything. Dhyana paramita (concentration) here means meditation as [a] way of cutting through the illusion of an ego and of not experiencing oneself as separate from other beings. Prajna paramita (wisdom) is the realization of supreme wisdom.” Sham: 169-170 Background: “The paramitas constitute an important teaching of the Prajnaparamita Sutras, of which the Diamond and the Heart Sutras are summaries. See the following passage: ‘Since that which is real includes nothing worth begrudging, they [Bodhisattvas] give their body, life, and property in charity, without regret, without the vanity of giver, gift or recipient, and without bias or attachment … And as with charity, they also practice the other virtues. But while practicing the six virtues [paramitas] to eliminate delusion, they practice nothing at all. This is what’s meant by practicing the Dharma.’ (‘Outline of practice’ in Red Pine, tr., The Zen Teaching of Bodhidharma, p.7.)” Zen: 102 There is no distinction between oneself and other beings, between the savior and the saved because at the supramundane level of the Arhats and above, the ego has been transcended. It is just like one’s two hands. Because they belong to the same person, one would auto- 【book-page-570 571】 matically clasp the other if hurt and neither would hold a grudge against the other for accidentally striking it (when missing the head of a nail, for example). Editor / Thich: 308 #0398
49 좋은 말씀은 모든 희망을 능히 채워주며 지 리, 祁<上聲>[口*梨]<四十九> -gire (~!~) 마음의 보호를 성취케 하시고, 온갖 눈병(惡相)으로부터 보호하소서
『대승대집지장십륜경』
♣0057-001♧
49 만약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다라니를 외우고 지니면서 강이나 바다에서 목욕하는 경우, 그 속에 있는 중생들이 이 사람이 목욕한 물이 몸에 닿게 되면 일체 악업과 큰 죄가 다 녹고 곧 다른 정토에 옮겨 태어나 연꽃에 화생하며 다시는 태의 몸이나 내지 습기와 알로 낳는 몸을 받지 않거늘 하물며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는 자이겠는가. ● 니라간타(나라근지) 那囉謹墀<四十九> na ra kin di
『불설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
♣0294-001♧
49 나가차 나 만리다 나 비 諾訖剎<二合>拏<引>挽哩哆<二合>曩<引>鼻<四十九>
『성관자재보살일백팔명경』
♣1122-001♧
제목 : 생각하건대 과거 무수겁에 비마대국(毘摩大國)의 사타산(徒陀山)에 여우[野干]가 한 마리 살고 있었소.
사자가 뒤를 따라 잡아먹으려 하니, 여우는 겁이 나서 달아나다가 어떤 우물 안에 떨어졌는데, 나오지 못한 채 사흘이 지났소. 죽게 되었음을 마음속으로 깨닫고 게송으로 노래하였소.”
애달프구나, 오늘날 괴로움에 쫓기어 우물 속에 떨어져 죽게 되었네. 일체 만물 모두가 무상하거늘 사자에게 안 먹힌 것이 한이 되는구나.
슬프구나, 어찌할까, 죄 많은 몸이 목숨을 탐내다가 이룬 공도 없이 죽네. 공도 없이 죽는 것도 서럽지만은 더러운 몸뚱이로 남의 식수(食水)마저 버렸네.
나무(南無) 참회(懺悔) 시방불이시여 이내 마음 맑음을 굽어보소서. 전생에 지은 바 3업의 죄를 이 몸으로 갚아서 다하여지이다.
모든 죄가 다하면 3업이 맑으니 그 마음 고요하여 진실을 찾네. 이로부터 세세(世世)에 밝은 스승을 만나서 법에 맞게 수행하여 부처를 이루리라.
그때 제석(帝釋)이 부처님의 이름을 듣고 가만히 머리를 숙여 옛 부처님을 생각하는데, 자기는 외로이 길잡이[導師]를 못 만나서 다섯 가지 욕망에 탐닉하여 스스로 빠지고 애욕의 감옥을 벗어나지 못하니 생각할수록 마음에 사무쳐서 눈물을 흘렸네.
즉시 모든 하늘 8만 4천이 우물로 날아 내려 예배하려니 여우가 우물 밑에 빠져 있어서 두 손으로 더듬거려도 나오지 못하네.
제석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성인께서 나타나시는 것이 여러 가지니 지금 내가 보기에는 여우이지만 반드시 보살이지 범기(凡器)가 아니로다.
지금 내가 물어서 의심을 없애면 모든 하늘 따라서 법을 얻으리라.
천제(天帝)가 말하였다. 성교(聖敎)를 못 들은 지도 아득한 시간 언제나 스승 없는 어둠 속에 있었다네.
어진 이[仁者]께서 조금 전에 외운 비범(非凡)한 말씀 모든 하늘을 위하여 말씀하소서.
이때 여우가 위를 보고 대답하였지. 그대는 천제건만 교양이 없어 시의(時宜)도 모르고 심히 교만해 법사는 아래 있고 자기는 위에 서서 아무런 공경하는 마음도 없이 법문을 묻는가. 법의 물이 맑고 깨끗해야 사람을 건지니 어떻게 아만(我慢)2) 을 품고 얻으려 하는가.
천제는 이 말 듣고 부끄러워했건만 모시던 모든 하늘이 놀라고 비웃으며 천왕께서 내리신 뜻이 무참하게도 저렇게 무안[慚愧]을 당하니 놀랍습니다.
제석이 하늘에게 이르는 말이 행여나 이것으로 놀라지 말라. 이는 내가 어리석어 어긴 탓이니 반드시 이로 인해 법을 들으리라.
즉시 하늘의 보배로운 옷이 드리워져 여우를 끌어 올리고 합장[叉手]하며 잘못된 점을 사죄드리며 예배[叩頭]하고 용서를 구하는 말이
모든 하늘 진실로 님의 말과 같아 다섯 가지 욕망에 얽매어서 거칠어진 것은 모두가 좋은 길잡이를 만나지 못한 탓이니 고락(苦樂)과 상(常)ㆍ무상(無常)을 말해 주소서.
모든 하늘 그를 위해 감로(甘露)의 밥을 베푸니 여우는 밥을 얻고 활기를 얻었네. 뜻밖의 재앙에서 이런 복을 만난 것이니 마음속 기쁜 모습이 어쩔 줄을 몰랐네.
“그때에 여우는 마음속으로 생각하였소. ‘축생의 갈래에서도 추하고 헐벗고 곤궁하고 액난(厄難)스러운 것으로 여우보다 더할 게 없거늘 지혜의 힘으로 이렇게 되었구나.’ 다시 생각하였소. ‘형벌을 받고 남은 이 몸, 본래부터 사랑스러운 곳이 없거늘 경사스럽다고 칭찬하며 또 크게 즐거워하니 모두 교화[通化]하는 때문이리라. 이 어리석은 하늘들은 모두가 제석(帝釋)이 먼저부터 가지고 있는 반야(般若)의 조그마한 공덕을 힘입어 함께 와서 법을 듣고자 하여 기이하다고 찬탄하니, 어쩌면 이렇게도 다행스러울까. 이제 교화하여 나의 공덕을 이루리라.’
다시 생각하였소.
‘오늘의 은혜는 모두가 나의 선사(先師) 화상(和尙)께서 자비심으로 가르쳐 주신 지혜와 방편의 공덕에 의한 것이다. 나무(南無) 반야시여, 나무 반야시여, 비록 올바른 실천을 잃고 나쁜 갈래에 태어났지만 지난 세상[宿命]을 알고, 그 업의 인연[業緣]을 아는 반야의 힘은 능히 모든 하늘이 내려오셔서 건져 주고 공양하게 하였으며, 또다시 교화하여 저의 작은 마음을 펴게 하였나이다.’ 그때 제석이 모든 하늘에게 말하였소. ‘스승께서 하신 말씀과 같이 반드시 설법을 하실 터이니, 우리들이 이제 와서 너무나 큰 이익을 얻게 되었다. 이제 모두가 머리를 땅에 대고 정성을 기울여 설법을 청하여라.’ 모두가 기뻐하며 각각 공경을 다하여 오른 어깨를 벗고 여우를 돌며, 다시 꿇어앉아서 합장하고 이구동성(異口同聲) 게송으로 노래하였소.”
어질고 거룩하시어라 여우 화상이시여 바라옵건대 설법하시어 하늘 사람을 열어 주소서.
하늘 사람은 어두워서 다섯 가지 욕심에 얽매이고 항상 복이 다할까 두려워하며 무상(無常)에 쫓기옵니다.
죽어서 나쁜 길에 떨어지면 건져 줄 사람을 만날 수 없으리니 영원한 겁으로부터 수만억 년 동안이었습니다.
이제 한 번 만났사오니 참으로 도움이 되는 복밭[福田]이시여 자비심을 드리우시어 법언(法言)을 말씀하소서.
하늘 사람이 복을 얻고 중생도 그러하리니 원컨대 화상님에게로 영원히 따르오리다.
불도(佛道)를 이룰 때까지 항상 인연이 되옵소서. 밝은 사람을 만나기 어려워 서원(誓願)을 세우나이다.
“그때 여우가 모든 하늘 사람이 간절히 부탁하면서 법문을 듣고자 하는 것을 보고 더욱 기뻐하며 천제에게 말하였소. ‘내가 지난날의 일을 생각하니 그때 세상 사람들은 법을 듣고자 하면 먼저 높은 자리를 펴 엄숙하게 꾸미고 맑고 깨끗하게 한 뒤에 바야흐로 법사(法師)를 모셔서 자리에 올라 설법케 하였으니, 무슨 까닭인가. 불경과 불법은 소중하여 공경하면 복을 얻기 때문이니라. 가벼이 여기는 마음으로 자기의 복을 줄게 하는 것은 옳지 않느니라.’
천제와 하늘 사람들이 듣고 모두 옳다 하여 하늘의 보배 옷을 벗어서 높은 자리를 쌓아 올리니 잠깐 동안에 장엄하게 꾸며서 맑고 깨끗한 것이 제일이었소. 여우가 자리에 올라 천제에게 말하였소. ‘내가 지금 설법을 하는 것은 바로 두 가지 큰 인연이 있기 때문이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설법이니 하늘 사람을 깨우쳐 주는 것이 복이 한량없기 때문이요, 둘째는 먹을 것을 보시한 은혜를 보답하려 함이니 어찌 말하지 않을 수 있겠소.’ 천제가 여쭈었소. ‘우물의 액난을 면하시어 몸과 목숨을 보전하신 공덕이 마땅히 크겠거늘 존자(尊者)께서는 어찌하여 설법으로 은혜를 갚는다 하시면서 이것은 언급치 않으시니, 무슨 까닭입니까? 일체 천하의 것이 살기를 좋아하고 편안함을 구하면서 죽고자 하는 것이 없으니 이 까닭에 생명을 보전한 공덕이 어찌 크지 않겠나이까.’ 여우는 대답하였소. ‘죽고 사는 데 마땅함은 사람마다 다르니 어떤 사람은 살기를 탐내고, 어떤 사람은 죽기를 즐기느니라. 어떤 사람이 살기를 탐내는가. 그 사람은 세상에 살면서 어리석고 어두워서 죽은 뒤에 다시 태어나는 것을 모르고 부처를 어기거나 법을 멀리하며, 밝은 스승을 만나지 못하고 살생ㆍ도둑질[偸盜]ㆍ음행ㆍ거짓말[妄語]로 악한 짓만 좇으니 이러한 사람은 살기를 탐내고 죽기를 두려워하느니라. 어떤 사람이 죽기를 좋아하는가. 밝은 스승을 만나서 삼보를 섬기고 악을 고쳐 선을 닦으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스승[師長]을 공손하게 섬기며, 처자와 노비 권속에게 화순하며, 사람에게 공경하고 겸손하면 이런 사람은 살기를 싫어하고 죽기를 좋아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착한 사람이 죽으면 복은 마땅히 하늘에 태어나서 5욕락(欲樂)을 받을 것이고, 악한 사람이 죽으면 마땅히 지옥에 들어가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기 때문이니라. 착한 사람이 죽는 것은 죄수가 감옥을 벗어나는 것과 같고 악한 사람이 죽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죄수가 감옥에 드는 것과 같으니라.’ 천제가 물었소. ‘님의 말씀이 생명을 보전한 것은 공덕이 없다 하시니 진실로 그러할진대 그 밖의 두 번째 공덕, 밥을 베풀고 법을 베풀면 어떠한 공덕이 있나이까. 바라옵건대 말씀해 주셔서 어둠을 열어 주옵소서.’
여우가 대답하였소. ‘음식을 보시하면 하루의 목숨을 건지고, 진기한 보물을 보시하면 한 평생의 복을 건지거니와, 나고 죽는 것이 커지고 늘어나는 것은 인연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니라. 설법하고 교화하는 것을 법시(法施)라 하니, 능히 중생들을 세간의 길[世間道]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출세간의 길[出世間道]은 무릇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아라한이요, 둘째는 벽지불(辟支佛)이며, 셋째는 불법(佛法)이니라. 이 3승(乘)의 사람은 모두 법을 듣고 말씀과 같이 수행한 데서 나왔느니라. 어떤 중생이 세 가지 나쁜 길[三惡道]을 면하거나 인천(人天)의 즐거움을 받는 것은 모두 법을 들은 까닭이니라.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법으로써 보시한 공덕이 한량이 없다 하시느니라.’ 천제가 여쭈었소. ‘스승의 지금 몸은 업보[報]의 몸입니까? 아니면 응화(應化)3) 의 몸입니까?’ 여우가 대답하였소. ‘이는 죄업으로 받은 몸이지 응화한 몸이 아니니라.’ 하늘 사람들이 듣고 깜짝 놀라 슬퍼하고 애달피 여겨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일어나 다시 절하고 여우에게 여쭈었소. ‘저희들 뜻에는 보살께서 응화로 나타나시어 중생을 제도하신다고 믿었는데, 이제 죄 받는 몸이라 하시니 그 까닭을 모르겠나이다. 바라옵건대 불쌍히 여기시어 그 까닭을 일러 주옵소서.’
여우가 대답하였소. ‘듣고자 하니 훌륭하구나. 내가 이제 말하리라. 생각하건대 지난 세상에 바라나국(波羅捺國)의 바두마성(波頭摩城)에 태어났을 때 나는 가난한 집의 아들이었다. 이름은 아일다(阿逸多)요 찰제리(刹帝利)의 성받이[種姓]로서 어릴 때에는 총명하여 학문을 좋아하였다. 나이가 열두 살이 되자 밝은 스승을 따라 깊은 산에 들어가 애써 섬기고 학문을 연마하며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스승께서도 아침저녁으로 깨우치고 가르쳐 주셔서 때를 잃지 않았다. 50년이 지나 56종의 경서(經書)와 논설(論說), 의술(醫術), 주문(呪文), 길흉(吉凶)을 점치는 법과 재앙을 물리치는 법에 이르기까지 통달하지 못한 것이 없었다. 높은 재주와 슬기로운 덕망이 날로 멀리 떨치었다. 그때 아일다는 생각하였다.
≺오늘날 내가 구제를 받는 것은 모두 스승님, 화상(和尙)께서 교화하신 은혜이니 그 공덕을 갚기가 어렵구나. 집이 가난하여 공양조차 올릴 것이 없으니 오직 몸을 팔아서 스승의 은혜를 갚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생각하고 꿇어앉아 합장하고 스승에게 여쭈었다. ≺제자가 지금 저의 몸을 팔아 스승님의 은혜를 갚고자 하나이다.≻ 스승이 대답하였다. ≺산에 있는 도사(道士)는 걸식으로 살아가니 다섯 가지 일[五事]에 부족한 것이 없는데, 너는 무엇 때문에 귀중한 몸을 훼손해 팔아 나에게 이바지하려 하느냐? 너는 지금 지혜와 말재주[辯才]를 성취하였으니, 천하의 인민을 교화하여 법의 등불을 밝혀라. 교화하는 공덕이 어찌 나에게 은혜를 갚는 것이 아니겠느냐. 부디 다른 일은 하지 않기 바라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