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eng]
corridoir $ 불어 corridor, passage [chn_eng_soothil]
活命 Life, living; to revive. [vajracchedikā prajñāpāramitā sūtraṁ]
▼●[羅什] 「須菩提, 若有善男子善女人, 以恒河沙等身命布施, 若復有人, 於此經中, 乃至受持四句偈等, 爲他人說, 其福甚多.」 “수보리야, 어떤 선남자나 선녀인은 항하의 모래 같이 많은 목숨을 보시하 고, 또 다른 어떤 사람은 이 경에서 한 4구게 만이라도 받아 지니고 다른 사람에게 말해 준다면 그 복이 (저 복보다) 더 많으리라.” [玄奘] 佛復告善現言: 「假使若有善男子或善女人, 於日日分, 捨施殑伽河沙等自體, 如是經殑伽河沙等劫數捨施自體; 復有善男子或善女人, 於此法門乃至四句伽他受持、讀誦、究竟通利, 及廣為他宣說開示、如理作意. 由是因緣所生福聚, 甚多於前, 無量無數.」 [義淨] 「妙生, 若有男子女人, 以弶伽河沙等身命布施; 若復有人, 於此經中受持一頌, 并為他說. 其福勝彼, 無量無數.」 13-10 भगवानाह-यश्च खलु पुनः सुभूते स्त्री वा पुरुषो वा दिने दिने गङ्गानदीवालुकासमानात्मभावान् परित्यजेत्, एवं परित्यजन् गङ्गानदीवालुकासमान् कल्पांस्तानात्मभावान् परित्यजेत्, यश्च इतो धर्मपर्यायदन्तशश्चतुष्पादिकामपि गाथामुद्गृह्यपरेभ्यो देशयेत् संप्रकाशयेत्, अयमेव ततोनिदानं बहुतरं पुण्यस्कन्धं प्रसुनुयादप्रमेयमसंख्येयम्॥१३॥ bhagavānāha | yaśca khalu punaḥ subhūte | strī vā puruṣo vā dine dine gaṅgānadīvālukāsamānātmabhāvān parityajet | evaṁ parityajan gaṅgānadīvālukāsamān kalpāṁstānātmabhāvān parityajet | yaśceto dharmaparyāyād antaśaścatuṣpādikāmapi gāthāmudgṛhya parebhyo vistareṇa deśayet samprakāśayet | ayameva tatonidānaṁ bahutaraṁ puṇyaskandhaṁ prasunuyādaprameyamasaṁkhyeyam ||13|| 복덕갖춘분께서 말씀하셨다. “그리고 참으로 다시, 수보리여! 여자나 남자가 매일 강가강의 모래알 숫자와 동일한 자기 몸들을 바칠 수 있고, 그렇게 바치면서 강가강의 모래알 숫자와 동일한 劫만큼 자기 몸들을 바칠 수 있다 하더라도, 이 법문에서 단지 네 구절만큼의 게송만 가지고라도 다른 이들을 위해 상세하고 가르쳐줄 수 있고 설명해줄 수 있다면, 그것이 오직 그 원인이 되어 측량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더욱 많은 공덕무더기를 생성해낼 수 있을 것이다.” ▼▷[bhagavānāha] ① bhagavān(ƾ.nom.) + āha(ƺ.) → [복덕갖춘분께서、 말씀하셨다.] ▼▷[yaśca] ① yaḥ(pn.ƾ.nom.) + ca(ƺ.) → [그리고、 (어떠한) 그것은] ▼[khalu] ① khalu(ƺ.) → [참으로] ▼[punaḥ] ① punaḥ(ƺ.) → [다시] ▼[subhūte] ① subhūte(ƾ.voc.) → [수보리여!] ▼▷[strī] ① strī(Ʒ.nom.) → [여자거나] ▼[vā] ① vā(ƺ.) ▼[puruṣo] ① puruṣaḥ(ƾ.nom.) → [남자거나] ▼[vā] ① vā(ƺ.) ▼[dine] ① dine(ƾ.loc.) → [날에] ② dina(ƾƿ. a day) ▼[dine] ① dine(ƾ.loc.) → [날에] → 매일 ▼[gaṅgānadīvālukāsamānātmabhāvān] ① gaṅgā+nadī+vālukā+samān(nj.→ƾ.acc.pl.) + ātmabhāvān(ƾ.acc.pl.) → [강가강의 모래알과 동일한(→ 모래알 숫자와 동일한) 자기 몸들을] ② gaṅgā(Ʒ. the river Ganges; the Ganges personified as a goddess) ② nadī(Ʒ. a river, any flowing stream) ② vālukā(Ʒ. sand, gravel; powder; camphor in general) ② sama(nj. same, identical; equal, as in: ƾ. : ƿ. a level plain, flat country) ② ātmabhāva(ƾ. existence of the soul; the self proper; the body) < ātman(ƾ. the soul; self) + bhāva(ƾ. being, existing; state, condition) ▼[parityajet] ① parityajet(pot.Ⅲ.sg.) → [버릴 수 있다.] → 바칠 수 있고, Ʋ : 공간적으로 현생에서 항하사 숫자만큼인 자신의 몸을 바치다. ② parityaj(1.ǁ. to leave, quit, abandon; to resign, give up, discard) ▼▷[evaṁ] ① evaṁ(ƺ.) → [그렇게] ② evam(ƺ. thus, so, in this manner or way) ▼[parityajan] ① parityajan([nj.→]ƾ.nom.) → [바치는 그가] ② parityajat(pres.p.) < parityaj(1.ǁ. to leave, abandon; give up, discard) ▼[gaṅgānadīvālukāsamān] ① gaṅgā+nadī+vālukā+samān(nj.→ƾ.acc.pl.) → [강가강의 모래알과 동일한(→ 모래알 숫자와 동일한)] ▼[kalpāṁstānātmabhāvān] ① kalpān(ƾnp.acc.pl.) +|s|+ tān(pn.ƾ.acc.pl.) + ātmabhāvān(ƾ.acc.pl.) → [겁 만큼인、 그(것들을)、 자기 몸들을] 'gaṅgānadīvālukāsamān'은 'kalpān'의 형용사이며, 'kalpān'은 동격명사로서 'ātmabhāvān'을 형용해준다. : 강가강의 모래알과 동일한 겁만큼의 자기 몸들을… ② kalpa(ƾ. a day of Brahmā or 1,000Yuga, being a period of 432 million years of mortals) ▼[parityajet] ① parityajet(pot.Ⅲ.sg.) → [버릴 수 있다.] → 바칠 수 있더라도, Ƴ : 공간적으로 Ʋ처럼 하고, 더하여 시간적으로 항하사 숫자만큼의 劫 동안 자신의 몸을 바치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행함. ▼▷[yaśceto] ① yaḥ(pn.ƾ.nom.) + ca(ƺ.) + itaḥ(ƺ.) → [그리고、 (어떠한) 이가、 이(로부터)] ▼[dharmaparyāyād] ① dharma+paryāyāt(ƾ.abl.) → [법문으로부터] ▼[antaśaścatuṣpādikāmapi] ① antaśaḥ(adv.) + catur+pādikām(nj.→Ʒ.acc.) + api(ƺ.) → ▼[그만큼、 네 구절로 된、 단지] ▼[gāthāmudgṛhya] ① gāthām(Ʒ.acc.) + udgṛhya(ger.) → [게송을 가지고 → 게송을 가지고라도 api ] ▼[parebhyo] ① parebhyaḥ(ƾ.dat.pl.) → [다른 이들을 위해] ▼[vistareṇa] ① vistareṇa(ƾ.ins.→adv.) → [상세함으로 → 상세하게] ▼[deśayet] ① deśayet(pot.Ⅲ.sg.) → [가르쳐줄 수 있다.] → 가르쳐줄 수 있으며 ▼[samprakāśayet] ① samprakāśayet(caus.pot.Ⅲ.sg.) → [보여지게 할 수 있다.] → 설명해줄 수 있다면, ② saṁ(ƺ. with) + prakāśay(caus. to show, display) < prakāś(1.Ʋ. to shine, gleam; to become visible or manifest) ▼▷[ayameva] ① ayam(pn.ƾ.nom.) + eva(ƺ.) → [이것은、 오직] ▼[tatonidānaṁ] ① tataḥ(ƺ.) + nidānaṁ(ƿ.acc.→adv.) → [그것으로부터、 까닭하여 → 그것이 원인이 되어] ▼[bahutaraṁ] ① bahu+taraṁ(nj.→ƾ.acc.) → [더욱 많은] ▼[puṇyaskandhaṁ] ① puṇya+skandhaṁ(ƾ.acc.) → [공덕무더기를] ▼[prasunuyādaprameyamasaṁkhyeyam] ① prasunuyāt(pot.Ⅲ.sg.) + aprameyam(nj.→ƾ.acc.) + asaṁkhyeyaṁ(nj.→ƾ.acc.) → [생성해낼 수 있다(→생성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측량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善燈世界一劫, 선등 세계의 한 겁은 광명장불(光明藏佛)이 계시는 묘광명(妙光明) 세계의 하루 낮 하룻밤이요, 묘광명 세계의 한 겁은 법광명연화개부불(法光明蓮華開敷佛)이 계시는 난초과(難超過) 세계의 하루 낮 하룻밤이요, 난초과 세계의 한 겁은 일체신통광명불(一體神通光明佛)이 계시는 장엄혜(莊嚴慧) 세계의 하루 낮 하룻밤이요, 장엄혜 세계의 한 겁은 월지불(月智佛)이 계시는 경광명(鏡光明) 세계의 하루 낮 하룻밤이니라.
왕이 국내에 신칙하여 뭇 더러운 것이 태자가 가는 길에 나타나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다. 태자가 성을 나가니 제2의 천제(天帝)가 노인으로 화하여 그 수레 앞에 당도하니, 머리는 희고 등은 굽었는데, 지팡이에 의지하고 비틀걸음을 쳤다. 태자가 말하였다. “이 사람은 무엇인가?” 수레를 모는 사람이 대답하였다. “늙은 사람입니다.” “무엇을 늙는다고 하는가?” “4대의 근(根: 六根)이 익어서 남은 목숨이 얼마 없는 것입니다.”
“나도 뒤에 역시 늙을 것인가?” “자고로 늙음을 면한 성인은 없었습니다.” ‘나를 존귀하고 영화롭다 하여 보통과 다르다고 하지만 이런 것을 면하지 못한다면 영화라는 것이 내게 무슨 이익됨이 있으랴’ 하고, 궁으로 돌아와서 이를 생각하고 일심으로 선(禪)을 얻었다. 왕이 신하에게 물었다. “태자가 나아가서 노니는데 나라를 보고 기뻐하더냐?” “길에서 늙은이를 보고는 세상이 항상함이 아님을 생각하고 마음으로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왕이 나라를 버릴까 무서워서 음악하는 사람들을 더 늘려서 영화로써 혹하게 하고, 여러 가지 음악으로써 어지럽혀서 그의 도에 대한 뜻을 무너뜨리고 임금의 자리를 지키게 하고자 하였다. 뒤에 다시 나아가 노니는데 왕이 거듭 신칙하여 말하였다. “늙은이가 길가에 있는 일이 없도록 하라.” 먼젓번 그 제석이 다시 병자로 화하여서 몸은 기진 맥진하여 살은 다 빠지고 뼈만 남았는데, 게다가 오로를 몸에 바르고 문 옆에 의지하여 있었다. 태자가 물었다. “이건 또 무슨 사람이냐?” “병든 사람입니다.” “어떻게 해서 병이 드는가?” “음식을 절도 있게 하지 않고 눕고 일어남을 항상함이 없게 하므로 이러한 병을 얻어서 혹 낫기도 하고 혹 죽기도 하옵니다.” “나도 역시 음식을 절제하지 않고 눕고 일어남을 항상함이 없이 하면 병들 것이 아닌가.” “몸뚱이가 있으면 곧 병이 따르는 것이니 이 환을 면할 수 없습니다.” 태자가 말하였다. “나도 환을 면하지 못할 것이니 뒤에는 반드시 이와 같을 것이다.” 궁에 돌아와서 이를 생각하고 일심으로 선에 들었다. 뒤에 나갔을 때는 제석이 다시 죽은 사람으로 화하여서 들것에 메여 가는데, 만장을 세우고 애통해 하는 행렬이 길을 막으니, 태자가 물었다. “이것은 또 어떻게 된 사람이냐?” “죽은 사람입니다.” “무엇을 죽었다고 하느냐?” “목숨을 마치면 혼신은 옮겨 가고 몸뚱이가 분산되어 길이 친척들과 더불어 여의는 것이오니, 애통하여 그 자리에 있기 어렵습니다.” “나도 또한 그러하겠구나.” “높은 성인의 순수한 덕으로도 이 환은 면할 수 없습니다.” 수레를 돌려 궁으로 돌아가서 일심으로 선에 들었다. 뒤에 다시 나아가 노니는데, 왕의 농원 여막에 가서 나무 밑에 앉아 밭가는 것을 보니, 파 뒤집은 흙에서 벌레가 나오는데, 혹은 상하였거나 혹은 죽은 것을 새가 쫓아가서 먹는지라, 마음에 처량하여 길이 탄식하였다. ‘애닲다. 중생들의 불안함이여,
안타까워도 어찌할 수 없구나.’ 이를 생각하고 슬퍼하여 일심으로 선에 들었다. 그때 해가 한창 성하게 나와 태자의 몸에 쬐니 나무가 가지를 숙여 가려서 해에 그을지 않게 하였다. 왕이 찾아 나왔다가 멀리 위없는 성덕(聖德)의 영(靈)을 보고 슬픔과 기쁨이 뒤섞여서 자기도 모르게 절을 하니, 태자가 또한 땅에 머리를 조아렸다. 부자간의 인사가 끝나고 왕은 궁으로 돌아갔으며, 태자는 일심으로 선에 들었다. 보살은 선(禪)으로 저 언덕에 이르렀으니, 마음을 하나로 함이 이와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