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이해가 쉽도록 위 사이트 원 번역문 내용을 단문형태로 끊어 표현을 바꿔 기재한다.
다만, 여건상 일부분만 살피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작업중 파일을 별도로 만든다.
그리고 클라우드 드라이브 폴더에 보관한다.
그리고 이후 계속 수정보완해가기로 한다.
그리고 완료되면 본 페이지에 직접 붙여나가기로 한다.
작업중인 파일은 다음 폴더 안에서 K0009_T0225_in 파일을 참조하면 된다.
https://drive.google.com
●차후 링크가 변경되어 연결되지 않을 때는 다음 페이지 안내를 참조한다. buddhism0077
061▲ 州竹至舛虫 ■ 주죽지천충 61 ( 고을 주 ) ( 대 죽 )( 이를 지, / 덜렁대는 모양 질 )( 어그러질 천 )( 벌레 충, / 벌레 훼, 찔 동)
009▲ 亠干巾彐彑 ■ 두간건계계 9 ( 돼지해머리 두 )( 방패 간 / 줄기 간, 마를 건, 들개 안, 일꾼 한 )( 수건 건 )( 돼지 머리 계 / [彐,⺕] 튼가로왈 )( 돼지 머리 계 )
재춘법한자
■ 영-중-일-범-팔-불어 관련-퀴즈 [wiki-bud]Buddhism in Afghanistan [san-chn]
śrotra-vihīna 聾 [san-eng]
ladduka $ 범어 laddoo, a sweet-ball [pali-chn]
virāga-saññā 離想 [pal-eng]
pavisitvaa $ 팔리어 abs. of pavisatihaving gone; having entered. [Eng-Ch-Eng]
preparation 資糧 [Muller-jpn-Eng]
福方丈 フクホウジョウ (term) assistant abbot [Glossary_of_Buddhism-Eng]
HUNDREDFOOT POLE☞ See also: Awakening / Enlightenment. “An analogy often used in Zen to describe one of the final stages in meditation before an awakening is reached.” “The instant one perceives only stillness and experiences liveliness; it is called in Zen parlance ‘reaching the top of a hundred-foot pole’. All Masters advise their disciples not to abide in this state, which is not real.” “From the hundred-foot pole, as the Chinese say, at the top of which is the height of thought, we must take the existential leap to direct awareness, and this super-thinking is, in particular, the springboard of the Chinese ‘Ch’an’ which became in Japan ‘Zen’ Buddhism.” Title of a well-known Zen koan.
[fra-eng]
envoie $ 불어 sends [chn_eng_soothil]
勢 bala, sthāman. Power, influence, authority; aspect, circumstances. [vajracchedikā prajñāpāramitā sūtraṁ]
▼●[羅什]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於燃燈佛所, 有法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연등불(燃燈佛)에게서 아뇩다라삼먁 삼보리의 법을 얻은 것이 있느냐?” [玄奘] 佛告善現: 「於汝意云何, 如來昔於然燈如來、應、正等覺所, 頗有少法能證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 [義淨] 「妙生, 於汝意云何, 如來於然燈佛所, 頗有少法是所證不?」 17-05 तत्किं मन्यसे सुभूते अस्ति स कश्चिद्धर्मो यस्तथागतेन दीपंकरस्य तथागतस्यान्तिकादनुत्तरां सम्यक्संबोधिमभिसंबुद्धः ? tatkiṁ manyase subhūte asti sa kaściddharmo yastathāgatena dīpaṁkarasya tathāgatasyāntikādanuttarāṁ samyaksambodhimabhisambuddhaḥ |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보리여! 그렇게오신분에 의해 빛을밝히시며그렇게오신분의 곁에서 위없는 바르고동등한깨달음을 철저히 깨달았다고 할˚ 그 어떤 법이 있다고 하겠느냐?” ▼▷[tatkiṁ] ① tat(pn.ƿ.acc.) + kiṁ(ƺ.) → [그것을、 어떻게] ② kim(ƺ. a particle meaning 'why' 'wherefore') ▼[manyase] ① manyase(pres.Ⅱ.sg.) → [(그대는) 생각하는가?] ② man(4.8.Ʋ. to think, believe; to consider, regard, look upon) ▼[subhūte] ① subhūte(ƾ.voc.) → [수보리여!] ▼[asti] ① asti(pres.Ⅲ.sg.) → [(있다 → 있는가? (→있다고 하겠는냐?)] ② as(2.ǁ. to be, live, exist; to belong to) ▼[sa] ① saḥ(ƾ.nom.) → [그] ▼[kaściddharmo] ① kaścit(pn.ƾ.nom.) + dharmaḥ(ƾ.nom.) → [어떤、 법이] ② kimcit(ƺ. to a certain degree, somewhat, a little) ② dharma(ƾ. that which is established or firm, law; usage, practice, duty; right, justice) ▼[yastathāgatena] ① yaḥ(pn.ƾ.nom.) + tathāgatena(ƾ.ins.) → [(어떠한) 그것이、 그렇게오신분에 의해] ▼[dīpaṁkarasya] ① dīpaṁkarasya(nj.→ƾ.gen.) → [빛을밝히시며] ② dīpaṁkara(ƾ.) < dīpa(ƾ. a light, lamp) +|ṁ|+ kara(nj. a maker) ▼[tathāgatasyāntikādanuttarāṁ] ① tathāgatasya(ƾ.gen.) + antikāt(nj.abl.) + anuttarāṁ(nj.→Ʒ.acc.) → [그렇게오신분의、 곁으로부터、 위없는] 곁으로부터 → 곁에서 → 곁에 계시며 ② antika(nj. near, proximate; reaching to the end of, reaching to; lasting till, until) ② anuttara(nj. principal, chief; best, excellent; without a reply, silent, unable to answer) ▼[samyaksambodhimabhisambuddhaḥ] ① samyaksambodhim(Ʒ.acc.) + abhisambuddhaḥ(nj.→ƾ.nom.) → [바르고동등한깨달음을、 철저히 깨달았다고 할.] ② samyaksambodhi(Ʒ.) < samyak(ƺ. rightly) + sam(ƺ. with) + bodhi(ƾ. enlightenment) ② abhisambuddha(p.p.) < abhi(ƺ. towards, into, over, upon) + sambuddha(p.p. wellunderstood; very wise or prudent; wide awake) 출처 봉선사_범어연구소_현진스님_금강경_범어강의
『능단금강반야바라밀다경』(能斷金剛般若波羅密多經) - 범어 텍스트 vajracchedikā prajñāpāramitā sūtraṁ
♣K0116-001♧
♣K0117-001♧
담운의 속성과 가문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 수 없으나 그는 고양(高陽) 사람이다. 처음에 속세를 싫어하다가 출가하여 『법화경(法華經)』을 두 권 남짓 외웠다. 그는 19세에 곧 항산[恒岳]의 옆에 있는 포오산(蒲吾山)에 몸을 의탁하고 그 조용한 숲 속에 가서 이 경의 독송을 마쳤다. 후에 서은(栖隱) 선사를 만났는데 서은 선사가 서 있다. “경을 외우는 것이 도를 이루는 인연이 아니라고 할 수 없지만 늘 경을 외운다고 하여 도를 이루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을 관찰하고 염(念)을 떠나는데 있다. 그래야 비로소 바른 도에 부합될 뿐이다.” 담운은 이 말을 처음으로 듣고 삼가 받아 지니고 그대로 닦아 오로지 염혜(念慧)를 닦는데 정진을 쏟아 부어 행하여야 할 것은 행하고 버려야 할 것은 버리는 심오한 지혜를 갖추게 되었다. 또한 오대산(五臺山)이 『화엄경』에서 말하는 청량산(淸凉山)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세간에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이 늘 머무르고 있는 곳이어서 옛날부터 내려오면서 승려들이 여기에 많이 들어가 기도하고 청을 드렸는데 감응으로 문수사리보살을 만나는 자들은 구체적으로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옛날에 원위(元魏)의 효문제(孝文帝)가 일찍이 이곳의 중대(中臺)에 대포사(大布寺)를 세웠는데 황제는 그곳에서 유람하고 머무르면서 불상을 갖추어 놓고 받들었다. 앞에는 꽃을 심어 정원을 만들었는데 너비가 2경(頃)이나 되었으며 여름철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 비단을 펴놓은 것 같이 광채가 눈부시게 빛나 사람들의 마음과 눈을 산란하게 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아름다운 소문이 자주 돌자 정신이 깨끗해지고 귀가 솔깃해져서 그는 마침내 걸음을 옮겨 이곳에 자리 잡게 되었다. 그는 두루 오대산을 돌아다니며 영험한 현상을 구체적으로 보았다. 처음에는 북대봉[北臺]의 목과사(木瓜寺)에 20여 년 동안 머무르면서 단신으로 그림자와 함께 기와 가마 같은 곳에서 살았으며 몸에는 해진 옷을 입고 땅에는 풀을 깔고 지냈으며 음식은 한 가지만 들면서 다른 음식은 먹지 않았다. 그리고 이 산은 추위가 심하여 수림이 시냇가와 골짜기에만 생겼으며 그밖에 봉우리와 영마루들은 평탄하여 멀리까지 확 트였다. 담운은 밤에는 돌아다니고 낮에는 좌선하면서 어두운 마음을 줄였고 늦게라도 이런 곳을 만나게 된 것을 기뻐하였다. 앞에서 외우던 경은 30여 년 동안 입이나 마음으로 되새기지 않았는데 어느 날 틈이 생겨 시험 삼아 외워 보았더니 한자도 남김없이 다 외웠다. 그래서 곧 다시 남은 글을 외우기 시작하여 그 부분의 경전들을 모두 외우게 되었다. 인수 연간에 이르러 찬(瓚) 선사가 있었는데 그는 선정을 닦는 학승들을 모아 승상(繩床)을 등에 지고 안문천(雁門天)의 사원에서 도를 닦았다. 담운은 오랫동안 산에 거처하면서 지난날에 품었던 뜻을 펴볼 생각을 하고 있다가 소문을 듣고 도에 몸을 붙이고 곧 찬 선사의 대중들을 따라갔다. 그리하여 한번 청정한 교화를 받고 찬 선사의 빛나는 지략을 우러러보았고 착한 스승으로 의지하고 따랐으니 그것은 완전히 깨끗한 행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수나라의 고조가 사원을 짓고 선문을 특별히 중시하면서 찬 선사를 맞이하여 수도로 들어오게 하였다. 대중들이 자기들의 주인을 잃자 사람들은 각기 자기의 마음대로 뿔뿔이 수림과 골짜기로 돌아갔다. 담운은 마침내 비간산(比干山)에 몸을 의탁하였다가 다시 남부(南部)ㆍ이석(離石)ㆍ용천(龍泉)ㆍ문성(文成) 등의 군들로 돌아다녔는데 7부의 대중이 바라고 향하는 것은 오랑캐의 나라나 중국이나 별로 다름이 없어 열 가지 착한 일이 닦아지니 도인들과 속인들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원래 이 황하(黃河) 주변에는 계율을 받아 지니는 법이 없어 설사 계율을 받아 지닐 뜻이 있다 해도 모두가 태원(太原)으로 가야만 했다. 그러나 오랑캐의 나라와 중국은 사이가 서로 어그러진 사정으로 하여 사람들이 모두 태원으로 가기를 꺼려하였다. 그래서 사미(沙彌)로서 나이가 30세가 된 사람까지 있었다. 그리하여 담운이 교화를 펴고 다니며 가르침을 전하니 산과 성에 있는 대중들이 다 같이 구족계를 받는 덕을 입게 되었다. 그후 당나라의 운이 트이기 시작하고 군사가 정양(定陽)에 미치게 되어 담운은 자주 대중들이 모였다가 흩어지게 되는 일을 겪었으나 그의 본업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는 밤부터 낮까지 마음을 가다듬고 안일해지는 일이 없었으며 숨어사는 세월이 오래되어 옷이 낡고 해졌으며 벼룩과 이가 모여들었으나 한 번도 그것들을 버리지 않고 그것들이 마음대로 몸을 물어뜯게 하였으며 이것에 의탁하여 마음을 길들였다. 한번은 여름안거에 들어 좌선할 때였다. 그 산에 벼룩이 많았는데 그것들을 물리치거나 없애 버리려고 하지 않으니 담요는 마치 피가 엉겨 붙은 듯하였다. 그러나 그는 단지 자신을 미워하고 자책하면서 서로 전생에 진 빚을 갚게 되기를 바랄 뿐 마음에 아끼는 것이 없었다. 이와 같이 40여 년 동안 보시를 행하여 나이가 60세에 이르자 홀연히 벼룩과 이가 없어졌다. 담운은 오히려 깊이 자책하여 서 있다. “행위를 헤아려 보면 과보가 끝나지 않은 것이니 앞으로 고통 받는 세상에 들어가 그 과보를 받아야 하겠구나.” 또 문인들에게 서 있다. “내가 초(超) 선사를 만난 일이 있었는데 그가 남의 방에 들어가 머무르면 본래 병에 붙어 있던 벼룩들이 초 선사를 물지 않고 곧 두 갈래로 흘러나가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또 그가 독벌레를 기르는 집에서 식사를 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의 숟가락에 독벌레의 독이 묻어나도 그것을 바닥에 내려놓고 유쾌하게 여전히 식사하였으며 또 근심으로 여기지 않았으니 집주인이 두려워하였다. 나의 덕은 초 선사에게 미치지 못하니 어떻게 그의 경지를 이룰 수 있겠는가?” 그는 해마다 봄과 가을의 두 계절에 불명법(佛名法)에 의지하고 겨울과 여름의 안거 때는 식사를 줄이고 좌선하였다. 일찍이 그는 『법화경』을 베껴 쓰기를 바라며 꼭 깨끗하게 베껴 쓸 것을 서원하였는데 몇 년째 그 기회를 마련할 수 없었다. 그런데 문득 감응이 내려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서생이 나타나 서 있다. “내가 경을 잘 베껴 씁니다.” 담운은 그를 맞아들여 글을 써 보게 하고는 감당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드디어 그를 석실(石室)에 두고 깨끗하게 베껴 쓰도록 하니 그는 아침에 들어갔다가 저녁에 나오곤 하였는데 그의 행동이 매우 이상하였다. 열흘도 채 안 되어 그는 7축의 경전을 모두 베껴 썼고 곧 사례하려고 하자 눈앞에 보이지 않았다. 그후 도적들이 노략질하는 때를 만나 경을 바위굴에 감추어 두었다가 세상이 고요해지자 가서 거두어 경을 수풀 밑에 놓으니 상자와 보자기는 오래되어 썩었으나 경전은 처음과 같이 그대로였다. 이런 기이한 감응과 증험은 대부분 이와 같았다. 또한 그는 늘 별실에 거처하면서 스스로 부지런히 도를 닦았으니 다른 승려들은 그를 따를 수 없었다. 그는 늘 서 있다. “내 나이와 일이 이와 같은데 어떻게 내버릴 수 있겠는가?” 그는 좌선하다가 정신이 흐리거나 답답해지면 곧 일어나 부처님께 절을 하였다. 그는 일찍이 네 가지 위의를 채찍질하면서 도로 헤아리고 의거하였는데 훌륭한 경지에 도달한 승려들을 보아도 그의 덕과 견줄 만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는 정관 16년에 단정히 앉아 서하(西河)의 평요산(平遙山)에서 생을 마쳤는데 그때 그의 나이는 80세였다. 담운은 19세에 산에 들어가서부터 60여 년 동안 명예와 이익을 바라지 않고 심부름꾼을 두지 않았으며 관청에 구속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지 않았다. 무릇 이어받을 직책이 있으면 모두 다른 사람을 추천하여 그에게 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