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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2-09-25_불설장아함경_017 본문
불설장아함경(佛說長阿含經)
K.647(17-815),
T.1(1-1)
후진(後秦) 홍시(弘始) 연간에 불타야사(佛陀耶舍)ㆍ축불념(竺佛念) 한역
불설장아함경 제17권
● 27. 사문과경(沙門果經)1)
28. 포타바루경(布吒婆樓經)
29. 노차경(露遮經)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sfed--불설장아함경_K0647_T0001 핵심요약
mus0fl--Michel Delpech - La Maison Est En Ruine.lrc
장아함경 27 사문과경에서는
왕의 입장과
6사외도가 주장하는 내용과 함께
불교 수행자가 수행을 해서 현세에서 얻는 과보에 대한 내용이 제시된다.
○ [pt op tr]
Lab value 불기2562/11/11/일/01:25
장아함경 27 사문과경에서는
왕의 입장과
6사외도가 주장하는 내용과 함께
불교 수행자가 수행을 해서 현세에서 얻는 과보에 대한 내용이 제시된다.
이들 각기 다른 입장은
오늘날 현실을 생활하는 입장에서도
거의 동일한 형태로 문제된다.
현실에서 어떤 직업활동을 한다면
그 직업활동에 따라 일정한 직위를 얻고 수익을 얻는 등의
일정한 결과를 현세에서 얻는다고 보게 된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그 최고의 상태에 이르면
또 얻는다고 기대하게 되는 일정한 내용이 있다.
그런데 경전에 제시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을 한다면 도대체 무엇을 얻는 것일까.
그리고 불분명한 사후의 내용을 떠나
당장 현세에서 얻는 과보는 무엇이 있을 것인가.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
그 차이를 알아야 자신이 지금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더 나은 것인지 선택을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불교 경전에서는
세계가 이렇고 세계에 임하는 자신의 생사 전후가 이렇고
인과과 어떻고 실재가 어떻고 이런 내용을 제시하는데
그러나 수많은 종교와 각 종교 사상가나 철학자들마다
제각기 다른 주장을 한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과연 어떤 주장이 옳은 것인가.
이런 내용도 잘 파악해야
자신이 위와 같은 선택을 실수없이 잘 하게 되리라 보게 된다.
그래서 이들 내용의 대강이
여기에 소개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런 질문을 하는 아사세왕은
왕위에 오르기 위해 부왕을 살해한 왕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왕은 더욱더 그런 행위를 통해
어떤 과보를 받게 되는 것인가
또 그런 상태에서 자신은 앞으로 어떤 선택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더 절실했으리라 본다.
이런 내용은 그래서 오늘날 현실을 살아가는
입장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우선 이 부분에서 제시되는 6 사외도의 입장을
사전을 통해서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6 사외도는 석존 당시 나름대로 상당히
영향력이 있던 사상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주장에는 외관상
불교의 가르침과 엇비슷해보이는 주장도 일부 있다.
어떤 주장의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비슷하지만, 그와 다른 주장을 놓고
이와 잘 대비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손을 씻으면 손을 씻지 않은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잘 파악하려면
단지 손을 씻은 후 손을 잘 보는 것보다는
그렇게 씻은 손과 씻지 않은 손을
같이 놓고 이 두 손이 무엇이 서로 다른가를
비교 대조해보는 것이
그 차이를 뚜렷이 잘 파악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6 사외도의 주장이
비록 불교의 입장과는 다르지만,
이것을 놓고 검토하는 것은
부처님이 가르침이 이들 주장과
과연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고
이 가운데 어떤 내용이 옳다고 할 것인가의 문제를
좀 더 분명하게 파악하게 해주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본다.
불교 경전을 대하다 보면
나중에는 이들 주장과 외관상 거의 유사해 보이는 내용도
다시 만나는데
자칫 이들 내용을 잘못 이해하면
결국 부처님 가르침을 배운다면서
6 사외도의 주장과 같은 내용을 떡 붙잡고
그것이 부처님 가르침인 것처럼 여기고 수행에 임하게 되는
경우마저도 없지 않게 된다.
그래서 이런 각기 다른 입장의 내용을
기본적으로 잘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앞에서도 보았듯 이들 6 사외도의 주장은
그 주장 자체가 옳고 타당하다기 보다는
일반적으로 이런 주장에 혹해서 그것을 옳다고 믿고 행하기 쉬운 한편
이런 주장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어떤 부분에서 어떤 차이가 있고
또 부처님의 가르침이 왜 이런 입장과 달리
옳은 것인가를 명료하게 구별해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기에
그런 의미에서 기본적으로 먼저 잘 파악해야 할 내용이라고 본다.
그래서 또 이들 주장도
각기 잘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그런데 조금씩 명칭도 달리 표기되기에
어려움이 있다.
한문 경전을 기본으로 한다면
일단 한자어를 기준으로 잡고 그리고 범어 글자도 덧붙여 안다면
무방하리라 본다.
순서는 큰 관계없으므로
자신 나름대로 첫글자를 떼내서 연상이 잘 되는 말이 되게끔
만들어 외우는 것도 도움이 된다.
부산말 아니까, 로 외어도 좋고
불광사전에서 분류한 방식에 따라
순서에 조금 의미가 있다고 보고
산 - 가부말 - 아니 형태로 외어도 좋다고 본다.
*
산 - 회의론
가부말 - 아지비가(ājīvika - 邪命) 외도
가부말아니 => 유물론 취적설
니 => 고행주의
말은 안 되지만, 산에 사는 과부의 말이 어디 있는지 아는가 이런 6 사외도의 질문이라고
그냥 생각하면 조금 잘 외울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하나하나 부처님의 입장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잘 대조해 살필 필요가 있다.
● 산사야비라지자(刪闍耶毘羅胝子 산자야 벨랏티풋타 (巴 Sañjaya Belaaṭṭhiputta), 궤변론(詭辯論), 회의설(懷疑說).
懷疑論者. 不承認認知有普遍之正確性, 而主張不可知論, 且認爲道不須修, 經八萬劫自然而得. ).
아무것도 단정해서 말할 수 없다는 회의론 또는 불가지론
아래에 다음 내용이 나온다.
'대왕이여,
(현세에 사문에게 과보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에 대한 대답은 이렇습니다.
(이 일은 사실이다. 이 일은 사실과 다르다. 이 일은 사실과 다른 것도 아니요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
대왕이여, (현세에 사문에게 과보가 없느냐)하고 묻는다면 여기에 대한 대답은 이렇습니다.
(이 일은 사실이다. 이 일은 사실과 다르다. 이 일은 사실과 다른 것도 아니요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
대왕이여, (현세에 사문에게는 과보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가) 하고 묻는다면 여기에 대한 대답은 이렇습니다.
(이 일은 사실이다. 이 일은 사실과 다르다. 이 일은 사실과 다른 것도 아니요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
대왕이여, (현세에 사문에게는 과보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는가) 하고 묻는다면 여기에 대한 대답은 이렇습니다.
(이 일은 사실이다. 이 일은 사실과 다르다. 이 일은 사실과 다른 것도 아니요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
위 내용이 무슨 내용인가?
그런데 이 입장을 놓고 보면
불교에서도
논서에서
어떤 것의 실상에 대해 설명할 때
위에 제시된 4 구 분별 형식을 빌려
살피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有,․無,․亦有亦無, 非有非無]
그래서 산사야비리지자가
4구 분별 형태로 주장하는 것과
부처님의 입장이 과연 어떤 차이가 있고
이 가운데 어느 입장이 더 타당하다고 보는가.
그 근거는 무엇인가 이런 내용을 주제로 놓고
일단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과연 같은 입장이라고 할 것인가.
또 나머지도 마찬가지다.
● 가라구타가전연(迦羅鳩馱迦旃延). 파쿠다 캇차야나(pakudha kaccāyana)
유물론적인 주장.
무인무연설(無因無緣說)과 지, 수, 화, 풍, 고통, 쾌락, 영혼 등의 7요소설을 주장하였다.
생명은 불멸이므로 살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는 윤리적 회의론자로 분류된다.
無因論之感覺論者. 認爲地․水․火․風․空․苦樂․靈魂爲獨立之要素.
아래 경전에 다음 내용이 나온다.
...
'대왕이여,
힘도 없고 정진(精進)함도 없는 사람은
힘도 없고 방편도 없습니다.
인(因)도 없고 연(緣)도 없는 중생은 염착(染著)하게 되고
인도 없고 연도 없는 중생은 청정해집니다.
목숨이 있는 일체 중생들은 모두 힘이 없고 자재(自在)하지 못하며
원수도 있을 수 없습니다.
수(數) 가운데 정해져 있는 대로 이 6생(生) 중에서
온갖 고락을 받는 것입니다.'
...
부처님은 5 온 지수화풍 4 대 6 대 12 처 18 계 이런 내용을 제시하고
연기를 제시하고
업을 행하면 과보를 받는다고 제시하는 한편
나중에는 일체중생이 다 본래 청정하다는 내용도 제시하시기도 하는데
그 내용과 위 내용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이런 것을 대조해 살피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부처님 10 대 제자중에도 논의제일 가전연(迦旃延)존자가 있는데
이 분과 6 사외도 가전연을 혼동할 수도 있으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하나하나 주장을 잘 정리한 가운데
부처님의 입장과 잘 대조해서 명료하게
그 차이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조금 쉬었다가 또 이어 살피기로 한다.
여하튼 4 문과경에서는 간단하게
이들 6 사외도가 각기 주장하는 내용이 소개되는 한편,
현실에서 왕이 되면 얻을 수 있다고 보는 여러 내용이 제시되고
또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하면
일단 현실에서 얻게 되는 과보에 대해 간략하게 제시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간단하게 내용이 제시되는데
그러나 이 주제를 놓고 깊게 살피면
자세하게 살필 부분이 상당히 많다고도 보게 된다.
처음 불교를 대한 입장에서는
대강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추구하는 좋음의 상태와
그리고 다양한 사상가들이 주장하는 각기 다른 주장의 대강을 살피고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대해 나가면서
대강 입장이 다르다 정도로만 이해하고
나아가기 쉽고
어떻게 보면 그 정도로도 충분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나중에 점차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 깊이 있게 살펴나가려면
결국 이들 문제를 놓고 대단히 깊게
하나하나 그 차이를 잘 살필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뒤 입장에서
이들 문제를 조금 더 자세하게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과거에 금강삼매경론과 같은 논서를 살피면
있고 없음의 문제에 대해서
자칫 잘못하면
처음 제시한 산사야비라지자의 입장처럼
오락가락하는 주장을 나열한 것처럼
오해하면서 각 내용을 대하기도 쉽다.
한마디로 불교에서는
무엇이 있고 없음의 문제를 따질 때
어떻게 보면 있다고도 하는 것 같고
어떻게 보면 없다고도 하는 것 같고
또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고 주장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도 같다.
그래서 도무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이해를 하는 가운데
결국 이런 입장은 처음 6 사외도 가운데
산사야비라지자가 제시한 회의론이나 불가지론의 입장에
귀결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이해하게도 되는 것이다.
또 대승의 공사상을 깊이 살피고
부처님이 일체 중생은 다 청정하다라고 제시하는 내용을 대하다 보면
결국 가라구타가전연이 주장한 내용과 같은 내용을 제시한 것이 아닌가.
또 예를 들어 중론과 같은 논서에서 인과의 문제를 살필 때
인과란 알고보면 실재하지 않는다라고 제시하니
이 입장이 결국 이런 입장과 같은 것 아닌가.
이런 식으로 혼동된 이해로 나아가기도 쉽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좀 더 깊이있게 살피려 한다면
결국은 위 문제로 다시 돌아와
과연 부처님이 제시하는 가르침은
이들 입장과 어떤 점에서 구분이 되는가를
또 자세하게 다시 한번 살펴야 할 필요가 제기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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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Korea-tipitaka-dic
육사외도
[Kor]육사외도[Chn]六師外道[San]ṣaṭ śāstāraḥ[Tib]mu stegs can pa drug[Eng]the six non-buddhist masters
[mean]고대 인도의 대표적인 자유 사상가였던 여섯 명을 가리켜 불교에서 부르는 이름.
석가모니는 6사 외도와 그들의 추종자들을 논쟁을 통해서 설복시킴으로써, 당대 최고 스승의 자리에 올랐다.
불교 경전에는 석가모니가 그들과 대론하고, 논박을 통해서 불교가 우위를 차지하는 정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1. 푸라나 카쉬야파(pūraṇa kāśyapa)는 무작용설(無作用說)과 도덕 부정설을 주장하였다. 어떠한 행위도 죄가 되거나 공덕이 되지 않는다고 하여 업과를 인정하지 않는다.
2. 막칼리 고샬라(makkhali gośāla)는 영혼, 지(地), 수(水), 화(火), 풍(風), 허공(虛空), 득(得), 실(失), 고통, 쾌락, 태어남, 죽음 등의 12요소설과 결정론을 주장하였다. 모든 사람은 이미 정해진 기간 동안 윤회하게 되어 있다고 하여 인간의 자유 의지를 부정하는 숙명론자로 분류된다.
3. 아지타 케샤캄발린(ajita keśakambalin) : 과보와 내세를 부정하고 지, 수, 화, 풍이라는 4요소만으로 모든 것이 성립하므로 인간도 죽으면 그 4요소로 되돌아간다고 하는 유물론을 주장하였다.
4. 파쿠다 캇차야나(pakudha kaccāyana)는 무인무연설(無因無緣說)과 지, 수, 화, 풍, 고통, 쾌락, 영혼 등의 7요소설을 주장하였다. 생명은 불멸이므로 살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는 윤리적 회의론자로 분류된다.
5. 니르그란타 갸티푸트라(nirgrantha jñātiputra)는 나중에 자이나교의 교조가 되었으며, 영혼, 운동, 정지, 허공, 시간, 물질 등의 6요소설을 주장했다. 불살생 등의 계율과 고행을 중시하는 윤리적 엄격주의를 채택한다.
6. 산자야 벨랏티풋타(sañjaya belaṭṭhiputta)는 아무것도 단정해서 말할 수 없다는 회의론 또는 불가지론을 주장했다.
From fk-ks-v10
육사외도
【六師外道】 p1282-中≫又作外道六師. 古印度佛陀時代, 中印度(恒河中流一帶)勢力較大之六種外道. 外道, 係以佛敎立場而言, 實爲當時反對婆羅門思想之自由思想家, 而在一般民衆社會中所流行之思想體系. 凡六種, 卽:
(一)珊闍耶毘羅胝子(巴 Sañjaya Belaaṭṭhiputta), 懷疑論者. 不承認認知有普遍之正確性, 而主張不可知論, 且認爲道不須修, 經八萬劫自然而得.
(二)阿耆多翅舍欽婆羅(巴 Ajita Kesakambala), 唯物論․快樂論者. 否認因果論, 乃路伽耶派之先驅.
(三)末伽梨拘舍梨(巴 Makkhali Gosāla), 宿命論之自然論者. 主張苦樂不由因緣, 而惟爲自然産生. 係阿耆毘伽派之主導者.
(四)富蘭那迦葉(巴 purāṇa Kassapa), 無道德論者. 否認善․惡之業報.
(五)迦羅鳩馱迦旃延(巴 Pakudha Kaccāyana), 無因論之感覺論者. 認爲地․水․火․風․空․苦樂․靈魂爲獨立之要素.
(六)尼乾陀若提子(巴 Nigaṇṭa Nātaputta), 耆那敎之創始人. 主張 苦樂․罪福等皆由前世所造, 必應償之, 竝非今世行道所能斷者.
以上(三)․(四)․(五)屬 阿耆毘伽派,
與(六)均屬於 苦行主義派;
又除(一)之外, 餘均站在 唯物論之立場, 主張 聚積說.
[雜阿含經卷四十三․中阿含卷五十七箭毛經․增一阿含經卷三十二․卷三十七․四分律卷五十一․有部毘奈耶破僧事卷二․有部毘奈耶出家事卷一․大智度論卷四十二․注維摩詰經卷三․百論疏卷上之中․摩訶止觀卷十上․印度哲學硏究第二]
육사외도
●육사외도 ◀六師外道▶
석존 당시에 중인도에서 가장 세력이 크던 6인의 철학자. 종교가의 교파(敎派).
(1) 부란나가섭(富蘭那迦葉). 선악 행위와 그 보응(報應)을 부정하는 외도.
(2) 말가리구사리자(末伽梨拘賜梨子). 운명론, 불교에서는 사명외도(邪命外道)라고 함.
(3) 산사야비라지자(刪闍耶毘羅胝子). 궤변론(詭辯論), 회의설(懷疑說).
(4) 아기다시사흠바라(阿耆多翅舍欽婆羅). 유물론, 쾌락설.
(5) 가라구타가전연(迦羅鳩馱迦旃延). 유물론적인 주장.
(6) 니건타야제자(尼犍咤若提子). 기나교(耆那敎). ⇒아이다시사흠바라아이다시사흠바라(阿夷多翅舍欽婆羅)((운허_동국역경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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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를 함에 있어서
가끔 포복절도하는 일이 있다.
병사왕은 아사세왕의 아버지로서 서로 부자관계인데
병사왕은 병사한 것이 아니고 아사를 한 것으로 전해지고
아사세왕은 아사한 것이 아니고 병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부자관계인데 알고보면 원수관계처럼 되어 있다.
자세한 내력은 또 다음 기회로 미루지만,
이 장면만 보면 아사세왕이 천인공노할 인물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마치 이성계와 이방원의 관계나
수양제와 수문제의 관계를 연상시키지만,
사실은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것이 넓고 길고 깊게 관찰할 때의 입장이다.
거리에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쓰러뜨린 가운데
심하게 구타를 한다.
이런 경우와 같다.
이 장면만 놓고 보면 그렇게 폭행을 하는 사람이
대단히 문제가 많은 사람처럼 보이는데
그런데 자세히 알고보면 그 사정이 반대인 것과 사정이 같다.
그 사정을 보충해주면 지나가는 행인들이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사실 왜 그런가 하고 의문을 갖게 되는 경우도 또 많다.
그런데 사실 다시 더 보충하면 또 사정이 달라진다.
매번 예약된 대장경 경전과 논서을 올리면서 올려지는
부분을 조금씩 살피게 되는데
한 부분에서 어떤 아주머니의 아이를 잡아 먹는 늑대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대비바사론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경우와 같다.
누가 보아도 늑대가 문제라고 보는데
그런데 사정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의미다.
그 아이의 어머니가 500 생에 걸쳐서
지금 늑대 캐릭터를 맡아 활약하는 쪽의 아이를 해쳤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장면만 보아도 또 문제가 된다.
사실은 그렇기에 자신도 그렇게 저 아주머니의 아이를
지금 500 번 째에 걸쳐서 또는 501 번째 해치고 있는 중이라는
그런 이야기다.
그래서 이분들은 이분들끼리 계속 시리즈를 이어서
무대를 옮겨가면서 이 사업을 진행 중인 것이다.
그 후일담은 그 당시 그 아주머니의 뜻을 물었다는 것이다.
앞으로 저 늑대의 아이를 해치지 않으려 하는가.
그러면 지금 아이를 해치지 않게 하겠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말은 해치지 않으련다라고 답했지만,
그 마음이 여전히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늑대도 그 아이를 해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만 지나가는 행인 a 행인 b 만
그 사정을 잘 모르는 가운데 대충 좁고 짧고 얕게 관찰하게 되면
그런 이상한 판단을 하게 되는 것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병사왕과 아사세왕의 관계는 그런 관계임을
경전의 다른 부분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원래 이름은 Bimbisāra Ajātaśatru,
로서 한쪽은 무언가를 사라고 하고 한 쪽은 사투를 벌이는 형태로 되어 있지만,
한자어로 번역된 이름을 놓고 보면 이상하게
생노병사와 관련해 이름이 서로 엇갈려 있음을 보게 된다.
죽는 과정에서 아사로 죽는 것이 나은가. 병사하는 것이 나은가는
각 경우마다 다른데 여하튼 그런 시감상을 하게 하는 이름이다.
왕들이 왕으로 지낼 때는
자신의 상태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상태라고 착각을 하게끔 된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다른 이들이 겪는 생사고통은 다 남의 일이고
자신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처럼 또 착각을 한다.
그래서 이런 입장에서 세상에서 가장 좋고 바람직하고 행복한 상태는
바로 자신이다라고 생각하게 되고
이런 입장에서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행복하고 좋은 상태를 성취했는가
라는 퀴즈가 제출되면
자신이라고 이름을 써놓게 되기 쉽다.
그래서 부처님에게도 그런 입장에서 질문을 던지기 쉽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또 이에 대한 그 잘못을 시정해준 내용도
전해진다.
그렇다. 왕은 그렇다. 다만 왕은 그런 상태에서
그런 조건이 충족될 때만 그렇다.
또 그것은 그런 조건이 되면 누구나 그렇게 된다.
마치 거리에서 지나가는 행인을
아무도 괴롭히지 않으면 대부분 성인군자처럼 행동하는 것과
사정이 마찬가지다.
문제는 그 나머지 경우가 문제다.
그래서 하루 종일 묶여서 움직일 수 없는 상태라거나
묶여서 사지가 잘려 나가는 상황이라거나
이런 경우는 또 다 예외없이 비명을 지르고
고통을 호소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누구나 억울한 상황에 놓여
자신이 피해를 당하는 것 같으면
앞에서 하나같이 성인군자처럼 행동하던 이들이
또 다 하나같이 비명을 지르는 한편
또 늑대처럼 변신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야비하게
상대를 물어뜯으며 해치려고 나서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분 어느 경우에서나
평안하고 행복하고 바람직한 형태로
행하는 존재가 누구이겠는가.
사실은 이것이 그 퀴즈의 답인 것이다.
다른 퀴즈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손과 발이 잘라지지 않는한
대단히 용감하게 적을 몇백만이라도 살해하는 자가
용감한 장군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라면
그것은 누구나 그런 상황에서는 그렇게 행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도
자신의 손과 발에는 아무 이상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반대가 될 때
평안히 참고
또 자신의 탐욕과 분노 이런 것을 극복해서
자제할 수 있는가
또는 더 나아가 백만명의 목숨을 살리고 평안하게 해주기 위해서
자신의 손 하나를 스스로 톱으로 잘라낼 수 있겠는가.
이런 형태로 문제가 제출되면
또 하나같이 그 정반대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누가 가장 용감하고 굳센가
이런 퀴즈의 답도 현실의 판단과는 전혀 반대인 것이다.
그렇게 용감해 보이던 무사가
남의 손과 발을 자르고 남의 목을 잘라내는데는
능숙하다가
반대상황이 되어 자신의 손가락 하나 잘려지고 묶이거나,
자신의 목이 잘려지니까
온갖 비명을 지르고 억울해하고 힘들어한다.
그런 사례를 삼국지에도 자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에서 왕이 되면 현생에서 어떤 과보를 얻고
또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가.
또 반면 현실에서 수행을 하면 현생에서는 어떤 과보를 얻고
또 그 이후에 어떻게 되는가의
퀴즈도 이런 입장에서
잘 살펴야 하는 주제다.
여기서 착각과 잘못된 판단을 하는 요인은
결국 협단천 관찰방식과
광장심 관찰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다.
처형장에 끌려가는 죄수가 처형되기 직전까지는
살아가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고 보이기에
그래서 이상이 없다고 보면 그렇다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처형되기까지 처형장까지
그의 발로 걸어가고 그런 점에서 별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을 주장하면 그럴 듯하다고 해야 하지만,
그것이 바로 좁고 짧고 얕은 지혜로 협단천 관찰에 의존해
판단을 하는 경우의 입장인 것이다.
현실에서 각 단어가 달리 감상할 수 있는 소재가 되기에
병사왕과 아사세왕의 관계를 살피게 되는데
이들이 부자관계이지만, 알고보면 원수관계라는 것도
그 사정이 같다.
그래서 부자관계란 말을 하나 들으면
일반적인 의미외에
시감상과정에서 같이 동원해서 함께 넓고 길고 깊게
음미해야 할 내용이 최소한 3 개이상은 있어야 하고
또 전문 수행자라면 최소한 7 개 이상 무량한 의미를
꺼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사실은 다라니와 관련되는 부분이다.
본래 뜻이 없는데 그 안에 무량한 뜻을 담는 것이
다라니이듯,
현실에서 사용되는 언어표현도 사정이 그렇다는 것을
잘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다른 이들의
불행하고 비극적인 관계를 살피면서
이들 왕들의 이름이 이성계나 이방원이라고 해서
계를 성취해서 방원역지의 수행을 해야 한다고
또 시감상을 하게 되듯
병사왕과 아사세왕의 이름을 보면서
또 이런 형태의 나쁜점을 제거하고
좋은 점을 증폭시키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고
시감상을 또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좋은 측면을 취하면서
그것이 모두 본래 본 바탕에서는 얻을 수 없는 가운데
현실에서는 또 진지하게 그런 형태로
각기 배역을 맡아서 임하게 된다는 점을 보고
또 한편 포복절도를 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도 포복절도라는 말은
의미를 최소한 3 개
전문수행자라면 7 개 이상은 끌어내 시감상할 수 있도록
훈련을 평소해야 한다.
일단 연습삼아서 해보자.
포복절도 -> 일반적의미 =>배를 붙잡고 구르면서 웃는다.
=> 포복해서 절도행위를 하려하지 말자.
=> 평소 포복 훈련도 하고 절도있게 임하자.
=> 표용하고 번뇌를 굴복시키고 절에 가서 절제하며 도를 닦자.
=> ........ 00 [=무한]
문제는 여러 의미 가운데
각 상황에 맞추어 가장 좋고 좋은 상태가 되도록
그 의미를 뽑아 취하고 감상하고
그에 바탕해 행위해나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런데 오로지 매번 딱 표준적이라고 보는 의미 하나만 붙잡고
그 상황을 대하면 결국 3 악도에 묶이게 되는 것이다.
탐욕을 갖고 임하는 각 주체의 상황에 대해
일반적으로 아귀상태나 아비지옥의 상태나 종이 한장 차이라는
속설이 있다.
굶주린 개들이 먹이를 찾고 다닐 때 상황은
아귀에 준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 상황을 지옥상황으로 바꾸는 방안은
그런 개들이 있는 곳에 뼈다귀 하나를 던져주면
곧바로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아귀는 아비지옥의 문 앞에서 그렇게
분주히 임하는 상황인 것이다.
결국 아귀가 아비지옥에 들어가는 입구는
그 아귀가 자신이 간절히 갈구한 음식을 먹게 될 때
그 이후부터인 것이다.
그래서 아귀를 위해서는 그냥 방치하는 것도 곤란하지만,
그렇다고 그 소원을 성취해주기 위해서
음식을 건네면 또 바로 지옥으로 들어가기에
그것도 곤란한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경우 이 둘은 그 방안이 아니고
출구는 따로 있는 것이다.
병사왕과 아사세왕이 연출한 비극은
사실 이들이 집착하고 있는 왕위가 주는 즐거움과 이익에
접착된 상태에서 이들이 각기 임할 때
설령 부자관계라고 해도 그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사례들은 역사서를 살피면 쉼없이 찾아낼 수 있다.
앞에서도 수양제 수문제 이런 이야기를 했지만,
그뒤의 역사에서도 곧바로 그런 장면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런데 또 그런 상황이지만, 또 정반대의 모습도
가끔씩 찾아낼 수도 있다.
그리고 현실을 보면 재벌을 놓고 보아도 그렇고
재벌은 아니지만, 돈 십만원도 안 되는 문제
예를 들어 주차문제나 사용료를 가지고 시시비비를 벌이는
이웃 사촌들간의 사정이 다 이와 마찬가지다.
그런데 상황은 같아도 또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례도 많다.
왕위를 놓고 조카와 대립각을 세운 세조도 이 부분에서
연상이 되지만 주나라에서는 이와는 또 정반대 사례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은 생사현실에서
수행자가 취해나갈 수행의 방안이 제시하는 방향이기도 한 것이다.
다만 그렇게 현실에서 임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기에
이것이 생사현실의 문제점인 것 뿐이다.
즉 어느 관계나 은혜와 원한이 서로 중첩되어 있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은 현실에서 어느 부부나 어느 부자나 형제자매관계를
보아도 그 사정이 비슷하다.
문제는 그 경우 어느 경우라고 해도
최극단의 원수관계마저도 모두 결국은 은혜를 서로 쌓고
덕을 베풀고 복락을 같이 누리는 좋고 좋은 관계로 바꾸는 것이
방안이고 그것은 결국 수행방안이라고 제시하는 의미다.
그런데 그 반대는 그 반대인 것이다.
즉 이 경우는 극단적으로 오로지 은혜만 주고 받은 관계라고 해도
잘못된 방안으로 임하면 이후는 극단적인 원수관계로 남아서
대하게 되는 방안인 것이다.
그래서 문제는 주어진 상황이나 과거 여건이 문제라거나
어떤 각 개인의 특성이 문제가 아니고
한 주체가 매 순간 주어진 상황을 놓고 이에 대하는 마음과 자세가 문제인 것이다.
온 생명을 제한없이 좋고 좋은 상태로 이끄려는
서원을 일으키고 수행방안을 취해 임해야
어느 경우나 다 좋고 좋은 상태가 된다고 제시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인 것이다.
예를 들어 원수들만 가득한 곳에서도
그 주체가 보안자의 방안
즉 보시- 안인 - 자비의 마음을 갖고
그에 바탕에 매 순간 상황에 임하면
이로 인해 극단적인 원수인 경우마저도
결국 모두 다 친부모부자관계처럼 되지만,
그 반대의 방안을 취해 임하면
설령 친부모부자관계라고 해도
곧바로 서로 원수가 되어 이후 임하는
비극적인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현실 사건 사고의 내용은 대부분 이런 형태로
나타나기에 생사현실의 문제로 지적되는 것이다.
그리고 매 사건 사고의 당사자들을 살피면
그 내용이 보이는 것이다.
mus0fl--Edith Piaf - La Goualante Du Pauvre Jean.lrc
6 사외도의 사상적 입장과 부처님의 입장의 차이를
살피려다가
이 주제가 의외로 상당히 복잡하기에
골치가 아파온다고 보고
조금 논의 초점을 바꾸었는데
그러나 조금 쉬고 이것을 이어서 살펴나가야 한다고 본다.
경전에서는 간단하게 제시하고
부처님도 자세히 제시하지 않지만,
그것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런 입장에 놓인 왕을 대해서
왕이 약을 찾는데
만일 부처님이 약학대학에서 교수가 연구원을 상대로 하는
약리 설명을 했다면
왕도 역시 골치가 아파하면서 도망치게 되었을 것이다.
현실과 마찬가지다.
감기약 하나 사러 약국에 들렀는데
약사 선생님이 갑자기 약국 한쪽 벽에 붙어 있는 칠판에
분필을 들고 감기약의 효능과 부작용
그리고 그 약을 복용하는 상대의 신체 상태 인체 구조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설명하면
진저리를 치면서 다시는 그 약국에 가지 않게 될 것이다.
지금 왕을 상대하는 부처님의 입장도 이와 엇비슷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살피는 경전은 그런 상태의 내용인 것이다.
그런데 자세하게 살피자면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처음 산사야비라지자라는 이가 제시한
4 구 분별에 대응한 문제는
우선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고 이런 식으로
단순히 2 가 분별체계로 단순히 현실에 임하는 차원과는
또 다른 문제다.
그런데 그것도 또 역시 문제가 있기에
이것은 한마디로 취급하기 곤란한 문제인 것이다.
불교 경전이나 논서에서도 일부 이런 내용이 제시되지만,
그것은 부처님 본 입장이 그래서가 아니고
부처님을 대하는 상대가 그 수준이어서
방편상 그렇게 제시하게 되는 것 뿐이다.
예를 들어 공하다는 내용이 무언가 물으면
불생불멸 이렇게 일단 제시하는 것과
그 사정이 같다.
그런데 어떤 이가 이 말을
'불'생, '불'멸 이렇게 이해하고 취해가면
그것은 여전히 문제인 것이다.
사정이 그런데도 그렇게 표현해 제시하는 것은
그 사정이 그렇게 표현해 제시하는 입장에 사정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상대가 그렇게 표현해야만 그래도 엇비슷하게
그것을 이해하는 상태에 놓여 있기에 그런 것 뿐이다.
그래서 4 구 분별에 대해서도 살펴야 할 문제가
상당히 많다.
그런데 이 부분부터 이렇게 제시하고 하나하나 살피다 보면
이것이 결국은 ○○철학 개론 이런 형태로
하나 묶어서 편집할 정도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곤란한 것이다.
그런 가운데 논의는 하기는 해야 하는데
상황을 보가면서 쉬면서 진행하려다가
노래를 듣다보니
이미 앞에서 여하튼 무언가를 사라고 하는 왕과
사투를 벌이겠다는 왕과의 문제도 그렇지만,
산을 사야 지자가 된다는 이상한 사상가의 주장도 그렇고
앞에 소개한 대비바사론의 내용처럼
왜 이 문제를 500 세에 걸쳐서 이어서 살피려고 하는가.
지금 이 현세만 놓고 보아도 충분하다.
이런 메세지를 듣게 된다.
그래서 사실 간단하게 살피면 그런 것이다.
그래서 무량겁 전의 상황을 이해하려거나
무량겁 후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렇게 멀리 갈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상황 이 시점 전후를 놓고
그 사정을 살피면 충분한 것이다.
그렇다고 보는가.
6 사외도가 되었던
병사왕과 아사세왕의 관계를 보던
그런 내용이 옳다고 보는가.
이것만 놓고 보면 사실은 간단한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데
그런 메세지를 무슨 노래가 전한다고 하는가도
사실은 마찬가지다.
처음에 포복절도를 최소 7 개 의미를 꺼내서
가장 좋게 취하라고 제시하거나
여시아문의 구문을 대해도 마찬가지로
최소 7 개는 꺼내서
가장 실다운 의미에 가깝게 이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제시하는 것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가 원 가사에 있던 없던.
그렇게 시감상하고 넘어가면 되는 것이다.
곤란하다면 곤란한 입장에서
앞에 제시한 방식을 놓고
하나하나 검토해 나가면 된다.
앞에서 금강삼매경론을 언급했는데
그 부분을 살피면서
이미 그 관련내용을 약간 살폈기에
일단 이 부분은 링크처리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
○있고 없음의 일반적 판단문제
http://buddhism007.tistory.com/3483#069
sfed--금강삼매경론_K1501_T1730_x.txt ☞○있고 없음의 일반적 판단문제
sfd8--불교단상_2562_08.txt ☞○있고 없음의 일반적 판단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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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고 없음의 일반적 판단문제
나머지 부분들도 마찬가지다.
나중에 보면
니건타야제자 부분에서는
니건타야제자가 제시하는 계율은 어떻게 보면
부처님이 제시하는 계율과 거의 흡사하기도 하다.
그리고 고행은 부처님도 수행시에 6 년간 극도로 했던 내용도
제시되기에 또 혼동을 일으키기 쉽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지 않다.
부처님이 술회하시기를 그 고행은 무익하다.
그것을 깨달었기에 부처가 된 것이다.
깨달음을 얻는데 무용한데도 그런 고행을 하게 된것도
알고보면 부처님 개인적인 업 때문이었다.
결국 무익한 것은 하지 않아야 한다.
이런 입장인 것이다.
그런데 잘못 이해하면 부처님이 여하튼 그렇게 하셨기에
수행이란 고행을 해야 하는 것인가 보다.
또는 안인 수행도 강조되므로
수행자는 쉴 때마다 그런 것을 찾아서 힘써야 되는 것인가보다.
이러면서 일부로 찾아 나서기도 하고
세상에서는 또 그런 형태로 임하는 경우를
또 존중하기도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또 사정이 그렇지 않은 것은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이 악기의 취지라면
그렇게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상태가 가장 적절한 것이고
극단적으로 줄을 팽팽하게 당긴다거나,
또는 극단적으로 느슨하게 푸는 것은 다 방안이 아닌 것이고
그렇다고 중간의 어정쩡한 것이 다 좋다는 것은 아닌데
여하튼 수행을 행하는 목표를 가장 잘 얻어내는 그 지점은
그런 극단을 떠난 상태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부처님의 중도의 입장인 것이다.
그 사정은 또 위와 같은 것이다.
오날늘 박물관 천정에 붙은 불을 켜려고 한다면
방안이 천정면에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전구를 돌리는 것이 방안이겠는가.
아니면 불이 켜질 때까지 바닥을 포복해서 다니는 것이 방안이겠는가.
그것은 아닌데 그렇다고 그 중간 벽면을 다 더듬고 다니는 것이
방안이겠는가.
불을 켜는 스위치를 찾아서 불을 켜는 것이 방안인데
그것은 위 두 극단이 아닌 벽면 어딘가에 있다.
그것을 찾아서 켜야 한다는
그런 의미로 잘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수행과정에서 비록 안인 수행이
불퇴전위에 이르는 고비점으로서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수행자가 매번 왕을 상대로
왕을 자극해서 성삼문과 같은 상태에 놓여서
인두로 살을 태우고 눈과 혀를 뽑히고 그런 상황에 들어가
그 수행을 해야 한다고 제시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이해하면
또 말리기도 곤란하고 ... 그렇다고 방관하기도 곤란하고
여하튼 적절한 방안을 또 찾아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현재 조각글 작업을 시일이 지나서 하는데
예약 경전글까지 함께 살피는 가운데
과거와 현재 미래 파일을 함께 살피게 된다.
2562-11-11 일에 작업한다면
11 월 11 일자의 조각글도 살피지만,
이 조각글처럼 9월 25 일자의 조각글도 살피는 한편,
2563 년 3 월 9 일자로 올라갈 예정의 대장경 부분도 함께 살피게 된다.
3 월 9 일자는 고승전이 뽑혀 올려지게 되어 살피는데
올려진 음악을 들으면서 작업하다보니
음악에 고승전에 나오는 분이 들리는 듯하다.
● [pt op tr] fr
불설장아함경 제17권
후진 홍시 연간에 불타야사ㆍ축불념 한역
[제3분] ⑤
27. 사문과경(沙門果經)1)
○ [pt op tr] sfed--불설장아함경_K0647_T0001 핵심요약
◈Lab value 불기2562/09/28/금/04: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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