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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63-02-16_점비일체지덕경_001 본문

과거조각글/불기2563(2019)

불기2563-02-16_점비일체지덕경_001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19. 2. 16. 12:17



®

『점비일체지덕경』

K0089
T0285

점비일체지덕경 제1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해제[있는경우] 
● TTS 음성듣기 안내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점비일체지덕경_K0089_T0285 핵심요약




『점비일체지덕경』  ♣0089-001♧
점비일체지덕경 제1권

- 일명 10주(十住) 또는 대혜광삼매(大慧光三昧) -

서진(西晉) 월지(月支) 축법호(竺法護) 한역

1. 초발의열예주품(初發意悅豫住品)



■ 용어 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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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비일체지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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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비일체지덕경(漸備一切智德經) 제1권

[일명 십주(十住) 또는 대혜광삼매(大慧光三昧)]


서진(西晉) 월지(月支) 축법호(竺法護) 한역

이한정 번역

 



1. 초발의열예주품(初發意悅豫住品)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제6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에 천왕궁(天王宮)의 여의장주묘보전(如意藏珠妙寶殿)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대보살(大菩薩)들과 함께 계셨으니, 

그들은 각 곳의 여러 불국토[佛刹土]에서 이곳으로 모인 금강장보살(金剛藏菩薩) 등이었다.

 

이때에 금강장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대혜광삼매(大慧光三昧)를 정수(正受)1)하여 정의(定意)2)를 조적(調適)3)해서 현재 시방세계의 모든 불찰토에 응적(應迹)4)하였다. 

매 방위마다 10억의 불찰토(佛刹土)가 원만한 가운데 여러 찰진(刹塵)5)의 수천억 국토의 모든 여래 곁에 시현한 보살의 명호가 모두 금강장이었으니, 

이처럼 시방세계마다 그 명호가 모두 똑같았다.

 

이때 모든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찬탄하셨다.

“훌륭하구나, 

훌륭하구나. 

네가 이 대혜광보살삼매를 정수해서 시방의 불국토에 각각 10억의 불찰토가 원만한 가운데 여러 찰진의 모든 여래께서 일체가 평등한 명호를 건립하였으니, 

이 모두가 여래ㆍ지진(至眞)을 조명(照明)6)하려는 본원(本願)에 의해서 이같이 건립된 것이구나. 

인자(仁者)의 지혜 청정함으로 인해 다시 모든 보살 등도 불가사의한 법광(法光)의 성지(聖旨)에 따라 명지지(明智地)에 머물러 해탈하는 이가 많으니, 

일체 뭇 덕(德)의 근본을 섭취해서 모두 3세 부처님의 본소행(本所行)7)을 이루고, 

시방의 중생을 가엾이 여겨서 선교방편(善巧方便)을 깨달아 성도(聖道)의 교화를 베풀고 법의 지혜를 널리 전해서 시방세계로 퍼져가게 하는구나. 

경(經)을 강의함에 그 뜻이 마땅하여 모두로 하여금 굳게 머무르도록 하고, 

밝은 지혜는 밝아 본뜻을 훼손함이 없으니, 

그 때에 따라8) 마땅하게 세워서 모두 안온함을 얻게 하는구나.

 

세간을 떠돌더라도 세속에 집착하지 않고 세간을 청정하게 제도하고, 

선법(善法)의 근본을 잘 세워 불가사의한 지혜의 경계에 들어가서, 

일체지(一切智)의 높고도 먼 성도(聖道)를 통달하는구나. 

아울러 여러 보살 등을 이끌되 저들에게 10주행(住行)이 없으면, 

개사(開士)9)의 대중(大衆)이 마땅히 건립해야 할 것에 따라 왕반(往返)의 주선(周旋)10)을 선양하여 무루법(無漏法)을 지니게 하고, 

광명을 널리 비추어 잘 사유해서 원리심(遠離心)을 간직하고, 

시기(時機)를 잘 알아서 대지혜의 광명으로 어질지 못한 이를 성도의 문으로 제도해서 해탈시키면서도, 

이에 집착하지 않는구나.

 

내행(內行)에 머물며 위없는 대승법(大乘法)을 한결같이 정성스럽게 받들어 수지하니, 

그 변재(辯才)의 지혜는 헤아릴 수 없구나. 

위덕(威德)을 널리 비추어 어둠을 없애고, 

이미 뭇 행(行)을 초월하고 도무극(度無極)11)을 선양하며, 

비록 불지(佛地)에 머물더라도 보살의 뜻을 내어 중생을 가엾이 여기고 이들을 잊거나 저버리지 않는구나. 

3세의 모든12) 부처님ㆍ지진(至眞)의 선교방편에 들어가 노닐면서 여러 가지 얽힌[結] 그물을 터놓고13) 부처님의 성지(聖旨)를 받들어 자유자재로 강설하니, 

이와 같은 법문을 어찌 터득하지 못했으랴.

 

여래께서 세상에 계시기 때문에 이같이 건립하는 것도 그대의 훌륭한 본원(本願)이 이룬 청정한 행업(行業)일지니, 

이로써 일체 법계(法界)를 세세히 장엄하고, 

또 중생을 미혹14)으로부터 구제해서 법신의 지극히 성스러운 지혜의 바탕에 다다르게 하는구나. 

모든 부처님께서 내셨던 본지(本地)의 지원(志願)15)을 구족하고 몸소 행하되 모두 세속을 초월해서 세간의 이롭지 못한 업을 널리 벗어나게 하니, 

세간을 제도하는 법을 장엄하고 청정하게 하는구나.

 

모든 불세존께서 금강장(金剛藏) 보살 대사(菩薩大士)를 위해 아낌없이 각각 그 화신(化身)을 나타내시되, 

한량없는 변재로써 이치를 펴시고 그 청정한 지혜의 분별을 확연하게 풀어서 마음속에 새겨 잊지 않게 하시고, 

경우에 따라 자유자재로 건립하고 드러내어 대중의 의심을 풀어 주시자, 

3세 모든 부처님의 정념(正念)16)에 섭입(涉入)17)하게 되니, 

이는 모든 등정각(等正覺)의 10력(力)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래의 4무소외(無所畏)의 가피를 받아18) 두려움이 없었기에 지극한 가르침을 널리 펴시자, 

모두들 지업(智業)으로 분별하는 모든 언사를 뛰어넘어 도법(道法)을 득입(得入)하여19) 깨닫고는 모든 여래의 신행(身行)ㆍ구행(口行)ㆍ심행(心行:意行)에 섭입되었다.

 

그 이유는 모두가 이 같은 정(定)에 의거해 성취하기 때문이다. 

또 그 원력에 의해 자재한 행20)이 곧게 서게 되고, 

그 마음이 청정해져 염오(染汚)가 없어지고, 

내성(內性)을 깨달아 언제나 청정함을 지니면서 위덕을 널리 비추어 지혜의 도량에 들어가게 되니, 

이에 행한 모든 업들이 어찌 갖추어지지 않겠는가? 

이렇게 건립하고 모든 것이 구족된 그 도기(道器)의 원지[意]는 한량없어서 청정한 믿음[信志]이 올곧게 서 널리 총지문(摠持門)에 이르되, 

어그러짐 없어 언제나 법계(法界) 혜문(慧門)의 인(印)으로 일체를 잘 인가(印可)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불세존께서 화신을 나타내시고는 각각 오른쪽 팔을 뻗어 금강장보살의 정수리를 어루만지셨다. 

이때 금강장보살이 모든 세존께서 그의 정수리를 쓰다듬어 주시자, 

바로 도와 덕이 뚜렷해지며 단박에 성취하였으니, 

그 위덕이 휘황하게 빛나 부처님과 다름없을 정도였다. 

이때에 바로 삼매에서 일어나 모든 보살을 청하여 이같이 연설하였다.

“가장 뛰어나신 이들이여, 

저는 이미 모든 보살의 원력을 밝게 깨달아 의심의 그물을 없앴습니다. 

이제는 다시 없앨 것이 없어서 세간에는 다시 태어나지 않기에21) 죄업 또한 없습니다. 

법계(法界)가 넓고 넓어도 멀고 가까움 없이 이에 노닐며 머무는 것이, 

비유하면 허공처럼 거침없으니, 

이와 같이 구제하여 시방의 모든 중생을 옹호하는 그 까닭을 그대들은 아셔야 합니다. 

과거의 보살들은 예전에 옛 부처님들을 찾아뵙고는 이 같은 지혜지(智慧地)에 의해 제도되었으며, 

미래나 지금 또한 이와 같음을 모든 불자(佛子)께서는 아셔야 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을 보살지(菩薩地)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모든 보살의 학(學)에는 10도지(道地)가 있어서 이로 인해 위없는 정각(正覺)을 성취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것은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으로, 

첫 번째 보살주(菩薩住)를 열예(悅豫)라 이름하고, 

두 번째 보살주를 이구(離垢)라 이름하고, 

세 번째 보살주를 흥광(興光)이라 이름하고, 

네 번째 보살주를 휘요(暉曜)라 이름하고, 

다섯 번째 보살주를 난승(難勝)이라 이름하고, 

여섯 번째 보살주를 목견(目見)이라 이름하고, 

일곱 번째 보살주를 현묘(玄妙)라 이름하고, 

여덟 번째 보살주를 부동(不動)이라 이름하고, 

아홉 번째 보살주를 선재의(善哉意)라 이름하고, 

열 번째 보살주를 법우(法雨)라 이름하니, 

이것이 모든 보살의 10주도지(住道地)입니다.

 

제가 시방의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부처님을 관찰해 보더라도, 

모든 여래ㆍ지진께서 이 같은 10주(住)의 업을 말씀하시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불자들이시여, 

이 같은 10주는 모든 보살로 하여금 현전에서 청정도(淸淨道)와 무위의 모든 법문을 친근케 하는 것으로, 

그 명호를 멀리 시방의 수없는 불국토에 현시하게 되면, 

삼계의 중생이 이에 감동하여 제도를 받게 되는 것인지라, 

천하를 비추는 것이 햇빛과 같고, 

중생의 병을 다스리는 것이 의왕(醫王)과 같고, 

많은 사람을 건네주는 것이 뱃사공과 같고, 

시방을 밝히는 것이 마치 만월(滿月)22)과 같고, 

일체를 살리는 것이 마치 대지와 같고, 

중생을 편안케 하는 것이 마치 감우(甘雨)와 같고, 

도법(道法)을 머금은 것이 마치 허공과 같고, 

올바르고 견실하게 머무는 것이 마치 수미산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가르침을 널리 펴서 바로 10도지(道地)에서 견실하게 건립할 수 있거나, 

또 이 같은 보살지의 불가사의한 모든 보살주를 깨닫는다면, 

모두들 성스러운 지혜로 섭입(涉入)할 수가 있습니다.”

 

이때에 금강장보살이 그 법요(法要)를 간추려 이와 같은 보살십주지의 업을 찬탄하고서, 

바로 침묵을 지켜서 다시 설명하지 않았다. 

이때 대중들은 모두 그 마음이 허전하던 차에23) 마침 이와 같은 보살십주도(菩薩十住道)의 이름자를 듣고 나자, 

다시금 분별하여 그 이치를 풀어내어 이를 듣고는 모두 깨달아서 그 마음을 도(道)로 섭입시켜 온갖 전도(顚倒)를 여의고자 원하였기에, 

각기 마음속으로 이와 같이 생각하였다.

‘금강장보살이 지금 법요를 간추려 10주의 보살업도(菩薩業道)를 널리 펴면서 그 이름자를 찬양하다가, 

어째서 다시 침묵하여 그 본말을 더 이상 풀이하지 않을까?’

 

이때에 저들의 회상에 모인 대중(大衆) 가운데 월해탈(月解脫)이라 이름하는 보살이 있었으니, 

역시 이곳의 법회에 함께 참석하였다. 

이때에 월해탈보살 대사가 그 개사(開士) 대중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게송으로 이를 찬탄하면서 금강장보살에게 이와 같이 한 그의 취지를 물었다.

 

마음을 깨끗이 닦되 어떻게 해야

지혜를 머금는 공훈(功勳)이라 부릅니까?

지혜를 밝히는 것에 10주(住)가 있다 하나

그것에 들어가는 방편을 거듭 풀이하지 않으셨으니,

 

여러 보살이 비록 용맹 정진하더라도

오히려 마음속에는 각기 의혹이 남습니다.

어떻게 그 이치와 명자를 설명해야 하는지

도지처(道地處)에 대해 일찍이 듣지 못했습니다.

 

모두들 함께 이를 듣고자 하니

가장 뛰어난 이시여, 

무외(無畏)를 베푸셔서

이치를 결택(決擇)하여 평등으로 섭입하시고

소행(所行)을 도지(道地)에 머물게 하소서.

 

회상(會上)에 모인 대중이 모두 환희심을 내어

아첨[諛諂]을 깨끗이 제거하고

견실하게 머물도록 10도지를 해명하여

공훈과 지혜가 평등하고 고르게 하소서.

 

여기 모인 이들이 모두 일어서서 예배하며

서로를 돌아다보며 간절히 설법을 기다리면서

미묘하고 티 없는 마음으로

위없는 감로법을 구합니다.

 

금강장보살의 설법을 듣고서

무외의 큰 지혜를 일으켜

언제나 기쁨으로 대중을 이끌고

어질고 옳은 뜻으로 부처님 법을 말하며

 

일찍이 없었던 가장 어려운

보살행을 드러내어

도지(道地)에 따라 분별하되

최상승(最上乘)에 의거하길 바랍니다.

 

미묘하여 깨닫기 힘들다는 생각을 버리고

원리심(遠離心)에 항상 머물되

부드럽고 어진 행으로 지혜를 이루어

그 깊은 취지를 전해 듣고

 

금강처럼 머물러야

부처님의 지혜를 가장 먼저 깨달을 것이니,

뜻을 세워 나를 버리고

이같이 위없는 지혜 법을 듣습니다.

 

여래의 법을 깨우치되 허공같이 하고

욕심을 여의되 허공같이 하고

무루(無漏)의 지혜가 마른 땅처럼 굳더라도

별법(別法)을 일으키는 것24)이 가장 알기 힘듭니다.

 

도(道)란 이처럼 무념(無念)인 것이나

이를 믿기가 참으로 힘듭니다.

부처님의 지혜는 불가사의하시니

침묵으로 더 이상 말씀하지 않으시는군요.

 

다시 월해탈보살이 이같이 말했다.

“금강장이시여, 

불자께서는 이 법회에 참석한 모든 이들이 성행(性行)이 돈독하고 청정하여 진예(塵穢)를 여의었고 그 심지(心志)가 어진 것을 살펴보십시오. 

모든 보살이 이처럼 행이 진실하고 올바르니, 

그 공덕이 날 적마다 뛰어나져서 6도무극(度無極)으로 스스로를 장엄하고, 

4등(等)과 4은(恩)으로 선교(善巧)방편을 익히는지라, 

그 뛰어난 공덕이 멀리 미쳐서 명덕(名德)이 한량없습니다. 

대자대비로 도의 교화[道化]를 일으켜 법교(法敎)를 3승(乘)으로 갈라서 삼계의 모든 고통 받는 중생을 구제하니, 

그 어둠을 물리치는 것이 햇빛과 같고, 

도품(道品)이 생기는 것이 비옥한 전답과 같고, 

정각을 이루는 것이 마치 허공처럼 거침없고, 

교법을 오래도록 펴는 것이 끊임없이 흐르는 물과 같고, 

간특한 의심을 없애는 것이 햇살과 같고, 

3독(毒)을 치유하는 것이 의왕(醫王)과 같고, 

생사의 바다를 건네주는 것이 마치 뱃사공에 비유되니, 

이러한 까닭에 불자시여, 

훌륭하십니다. 

마땅히 현재의 학행(學行)을 널리 펴서 이 도지(道地)의 연수(緣修)로 돌이켜 이 법회에 모인 이들에게 제각기 지혜를 열어 주시되, 

마치 어둠 속에 빛을 비춰주거나 병에 따라 약을 주듯이, 

남는 의심이 없게 해 주십시오.”

 

이때에 월해탈보살 대사가 이와 같은 이치의 본말을 재차 풀이해서 귀취를 드러내 알고자, 

게송으로 금강장보살에게 이렇게 권유하였다.

 

대중이 이처럼 수특(殊特)25)한

최상의 법을 간곡하게 원하니

사람 가운데 상인(上人)으로 행하는 것이

여러 보살의 업인지라,

 

그 가르침을 자세히 설명해서

도지에 머무른다면

성스러운 지혜가 아주 청정해지고

인화(仁和)의 업이 우뚝 설 것입니다.

 

회상에 모인 이들이 청정하다 해도

제일이라 할 수 없으니

정로(正路)에 굳게 머물되

심지가 굳고 믿음이 독실해야만

 

공덕을 잘 쌓아

수없는 부처님을 봉양하리니

각자 결정된 지해(知解)를 얻고자 하면

10주지에 이르도록 해야 합니다.

 

금강장보살이 월해탈보살에게 대답하였다.

“불자께서는 지금 대중이 사방에 운집한 것을 살펴보십시오. 

그들을 어떻게 보아야 하느냐 하면, 

생각은 올곧고 어질고 부드러우면서 티 없이 청정해야 하니, 

‘어떻게 해야 머뭇거리지 않고 간특한 의심을 여읠 수 있겠는가?’ 또 ‘이 같은 법요(法要)에 처해26) 어떻게 해야 고원(高遠)한 행(行)으로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대앙(戴仰)27)도 없겠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다른 이의 가르침에 따르지 않는다면 그 진퇴가 편안하지 못하고, 

그 알음알이로 따져보는 것28)이 오래되어 병이 되면 다스릴 수 없으며, 

총총한 그물에 곧게 매여서 깊은 구덩이를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마침내 62의(疑)ㆍ4도(倒)ㆍ5개(蓋)ㆍ화림(火林)ㆍ사실(蛇室)ㆍ12견련(牽連)ㆍ10중각(重閣)ㆍ3갱(坑)ㆍ3호(戶)ㆍ3류(流)에 쫓겨 광야를 떠돌면서 불문(佛門)으로 향하지 못하기에, 

설령 이 같은 법을 듣더라도 머뭇거리면서 가까이하지 못할 것입니다.

 

또 어떤 이는 이 같은 불가사의한 법을 듣더라도 이 같은 도주(道住)에 대해 다른 마음을 품는지라, 

이를 듣더라도 의심을 내어 독실하게 믿지 않기에, 

이 같은 혹란에 의해 무명의 긴긴 밤이 편안치 못하니, 

영원토록 이롭게 하는 이치를 잃고서는 근본을 버리고 지엽을 취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까닭에 제가 지금까지 침묵하여 더 이상 설명하지 않는 것이니, 

자비로써 이들을 가엾게 여기기에, 

비록 침묵의 낙(樂)에 머물긴 하나 즐겁지가 않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게송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기 모인 대중들의

지혜는 청정무구(淸淨無垢)하며

성도(聖道)를 잘 펼칠 수 있으며

제근(諸根)이 미묘하게 통하여

 

공경할 것도 없음을 어찌 볼 수 있으랴.

태산처럼 꿋꿋해서

마음속에 노여움이나 원한을 품지 않고

잔잔한 바다와 같이 평등한 사유로

 

어떠한 행(行)을 닦고 익혀야

그 지혜가 비길 데 없게 되며

낙(樂)에 머물면서 식견을 내어

옳은 지혜와 믿음을 구할 수 있으랴.

 

이 법문을 듣고서 두려움으로 머뭇거리면

바로 악취로 떨어지리니

그렇기 때문에 내 이를 가엾게 여기나

지혜로 머무는 도지를 말하지 않노라.

 

그러자 월해탈보살이 다시 금강장보살에게 권유했다.

“인자(仁者)시여,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여래의 밀지(密旨)를 선양해서 사방을 감동시켜 거짓을 버리고 진리로 나아가게 해서, 

모든 번뇌[塵垢]를 없애고 얽혀 막힌 것을 씻어내고 삼계의 그물을 찢어낸다면, 

끝없는[無極] 지혜로 통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다시 설명해서 이처럼 저 불가사의한 모양을 본받도록 잘 기른다면, 

도량 넓은 이들은 반드시 믿음과 즐거움[樂]을 내어 머뭇거리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에 대해 불자께서는 마땅히 아셔야 합니다. 

이 같은 가르침을 펴시는 때에 일체의 보살이 모두 3세 부처님을 호념(護念)해서 경(經)의 이치에 통달하고, 

이를 받들어 옹호하여 혜도(慧道)의 지(地)를 행하게 되는 것이니, 

어찌 이에 힘입지 않고서 평안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 이유는 이 같은 소행(所行)은 반드시 평등하신 3세 부처님의 도법(道法)에 귀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부처님의 도법이 불자에게 구현되는 것처럼, 

일체의 글도 단지 문자로써 설명되는 것이기에, 

이는 모두 마음[心意]을 근원으로 삼는 것입니다. 

심지(心地)의 인연에 의탁하는 글은 자체적으로 문구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기에 문자로 연출되더라도 마음은 본래 공(空)한 것이니, 

이를 말씀하시더라도 모두 비어 있고 없는 것[虛無]입니다.

 

불자시여, 

이처럼 일체의 불법은 근원에 머물러 행하는 것으로 이루어지기에 도지에 의거해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지혜를 이루게 됩니다. 

이치가 이러하니 이를 말씀해 주십시오. 

일체의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 도력(道力)으로 그대를 도우실 터이니, 

분별(分別)을 건립하여 이 같은 문자를 다듬으셔서 장차 정법이 이로써 세간에 오래 남아 있되 다른 번뇌[餘結]가 없도록 보호해 주십시오.”

월해탈보살은 이에 다시 게송을 읊어 이같이 권유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청정법을 연설하여

일체지를 깨닫게 하십니다.

도요(道要)를 두루 유행(遊行)하면서

지극하게 깨달아 성스러운 지혜를 이루게 하십니다.

 

시방 3세의 부처님께서

가장 뛰어난 도에 안주하시니

혜실(慧室)29)의 지극한 경계로써

모두를 가엾게 여기시고

 

지혜에 친근(親近)한 행을 건립하시니

이야말로 구경(究竟)의 자취라.

3세 부처님의 비길 데 없는 법은

모두 한량없이 많은 업에 의거하기에

 

글자와 뜻이 부합하는 것도

마음 씀씀이에 달린 것처럼

도의(道意)에 머무는 것이 이와 같다면

불도에 거침없이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마침내 일체의 보살들이 각자 발심하여 모두 함께 권청(勸請)하면서 자비에 근본해서 뜻을 세우고자 하였으니, 

부지런히 공덕을 쌓아 한량없는 공덕을 이루어 허공처럼 거침없이 환난을 구제하되, 

겁수(劫數)를 힘들어 하지 않고 생사를 떠돌아도 마음속으로 항상 정성을 다해서 일체 중생을 제도하면서도 집착하는 마음을 내지 않으니, 

그 행이 마치 연꽃이 진흙 속에 피어 있는 것처럼, 

삼계의 고통에 거리낌 없이 오직 그 상해(傷害)를 가엾이 여겨 3세의 나무에서 번뇌의 뿌리를 뽑아내어 영원히 남기지 않겠다고 서원하였다. 

이때 모든 보살이 동시에 소리를 내어 금강장보살을 찬탄하며, 

게송으로 이렇게 읊었다.

 

가장 뛰어나고 특별하며 지념각(志念覺)30)은 고원(高遠)하여

한량없이 많은 변재를 심념(心念)에 갖추시고

부드러움으로 전(傳)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에 이르게 하시니

으뜸가는 지진은 참으로 미묘하시도다.

 

그 마음이 견고하고 행이 청정하기에

중생을 저버리지 않는 10력(力)으로

분별하여 변증하는 까닭에 행을 이루니

원컨대 가장 높은 도법(道法)을 연설하소서.

 

마음속의 생각이 밝은 구슬 같은지라

뜻이 고요해져 견(見)의 욕진(欲塵)이 없어지게 해서

지금 여기 모인 대중은 간특한 의심을 여의고

모두 기꺼이 인자(仁者)의 설법을 바라옵니다.

 

가르침의 말씀에 목말라 하는 것이 사막에서 우물 찾듯 하고,

인자의 설법을 갈구하는 것이 환자가 의사를 기다리듯 하니,

굶주리면 맛있는 떡이 눈에 선한 것처럼

감로의 법미(法味)를 달갑게 맛보려 하오니

 

어진 마음을 베푸시어 이 뜻을 펴게 하시고

뛰어남에 머물러 번뇌[塵垢]를 없게 하시며

정안(正安)에 조적(調寂)하여 근본(根本)을 버리지 않게 하시고

모두에게 법을 연설하고 행을 도와 환란이 없게 하소서.

 

마침내 세존께서 모든 보살에게 성스러운 광명을 놓으셨으니, 

명호가 역세(力勢)였다. 

부처님께서 미간으로 이같이 휘황한 광채를 발하시자, 

그 한량없는 갈래의 빛줄기가 시방의 모든 불국토를 비춰서 모든 악취(惡趣)를 소멸시켜 고통이 그치도록 하였으니, 

다시 고통을 받지 않고 모두 평안하게 되었다. 

이처럼 여래의 모든 도량과 시방의 불국토를 비추어서 법강(法講)을 건립하되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으니, 

참으로 3세 부처님의 경계는 불가사의한 것이었다.

 

저 광명이 다시 되돌아와 부처님을 세 번 돌고 나서 공중에 머물면서 한 줄기 큰 빛으로 합쳐지자 광명이 뚜렷해지면서 빛줄기가 교로(交露) 장막처럼 드리워졌다. 

다시 모든 부처님께서 세간에 나타나시자 위덕이 자연히 빛났으니, 

그 미간에서 이 같은 광륜(光輪)이 펼쳐졌다. 

모든 보살에게 역세(力勢) 광명을 이같이 시현하시되 신비로운 변화를 일으켜 이곳의 인세계(忍世界)31)를 밝혔으니, 

능인중회(能仁衆會)의 도량 및 금강장보살과 사자좌를 비추면서 그대로 허공에 떠 있자, 

마침 교로 장막처럼 빛줄기가 드리워졌다.

 

이에 능인ㆍ불께서 미간의 백호(白毫)로 광명을 넓고 멀리 놓아 모든 암흑을 비추시자, 

시방 부처님 세계의 대중이 모여 있는 도량으로서 그 광명을 받지 못한 곳이 없었으며, 

다시 지금 이 자리의 모든 보살 대사의 머리 위로 현현(顯現)해서 일체를 환히 비추었다. 

시방의 여러 불국토에 화현하신 모든 여래께서 연출하신 미간의 휘황한 광명이 모두 이곳 인세계(忍世界)에 있는 능인중회의 보살도량을 다시금 환히 비추면서 높고 넓은 사자좌를 두루 밝혔으니, 

마침내 금강장보살의 몸에 큰 빛줄기가 뚜렷하게 드러나면서 광채가 구슬처럼 드리워졌다. 

이에 제각기 앉아 계시던 부처님께서 금구(金口)로부터 한결같이 게송으로 이렇게 찬탄하셨다.

 

견줘 보고자 해도 이와 같은 부류가 없고

일러 주고자 해도 허공과 같으니

저 10력(力)의 경계는 참으로 존귀하기에

그 공훈 헤아릴 수 없어라.

 

가장 높고 뛰어나기에

세간을 통틀어도 위없으니

으뜸가는 업이야말로

석가모니 인사자(人師子)의 법이라.

 

그대가 대중에게 연설하여 불자를 안주케 해서

실로 삼계도사(三界導師)의 자비로운 은혜를 받게 하니

인류의 교종(敎宗)이신 법왕께서

미간에서 광명을 내는구나.

 

불도(佛道)의 지혜를 선양해서

묘행(妙行)으로 대중을 근본에 이르게 하되

10력의 가피에 힘입어

이를 분별해서 대중을 널리 교화하고

 

도지를 건립해서 안주하게 했으니

이 법을 듣고 널리 관조(觀照)해서

법보(法寶)를 스승 삼아

그 품성을 적멸(寂滅)케 하라.

 

머무르는 일체에 염오(染汚)가 없이

본원(本願)의 구족이 원만케 하여

10력의 가장 뛰어남에 의지해서

간절하게 존귀한 길을 구한다면

 

바닷물도 마를 수가 있으며

일체의 유정수(有情數) 또한 끝을 알 수 있으리라.

이를 건너가고자 하면

경솔하게 듣지 말아야 하리니

 

반드시 욕심을 여의고자 하는 심지(心志)로써

온갖 간특한 의심을 영원히 끊고서

일절 사사로운 마음을 두지 아니하고

이 경전으로 비추어라.

 

이리하여 변재존(辯才尊)32)으로써

지혜에 머무르는 지름길을 삼고

처처마다 이 같은 보살행을 받들되

이르는 곳마다 본업(本業)에 의지하고

 

지극한 행으로 경계를 섭입해서

부처님의 성스러운 지혜에 다다르되

일체 중생을 가엾이 보고

이 같은 법인(法因)을 전파하라.

 

마침내 금강장보살이 시방을 둘러보고 회상에 모인 대중이 기쁜 마음을 내어 법을 갈구하며 끝없는 대자대비를 일으키자 때가 되었음을 보고는 게송으로 이와 같이 찬탄하였다.

 

대성인의 도법(道法)은

미묘하면서도 심원하기에

무념(無念)으로 유념(有念)을 버려서

청정하기가 영원히 어려우나

 

성인의 명(明)으로 그윽한 미묘법을 달통하고

지혜로써 그 행(行)을 이해하면

있는 그대로의 업(業)이 고요하고 평안하고

부드럽고 어질어 쟁송(諍訟)과 환난이 없어지네.

 

있는 그대로의 공(空)은 청정하고

고요하여 괴로움과 환난을 없애 주니

자재로운 삶이 해탈에 이르면

평등한 멸도(滅度)를 건립하리라.

 

한량없고 끝없는 이치로

말씀마다 해탈에 가까이 가고

3세를 뛰어넘어

그 행이 허공과 같도다.

 

중우(衆祐)께서 행하시는 바가

고요하고 담박하기에

일체 행업(行業)의 지름길은

실로 체득하기 어렵다네.

 

행동도 도지에 맞아야 하고

품성도 이러해야 하거늘

설명조차도 어려운데

어떻게 이를 헤아려 깨치겠는가.

 

마음조차 버려서

마음의 자취를 영원히 없애고

중우(衆祐)의 행하는 바

지혜로써 헛된 말을 하지 않노라.

 

행한다는 것이 없기에

음(陰)과 여러 쇠입(衰入)이 없으리니

성도(聖道)의 통달은 혜업(慧業)에 의지하는 것으로

마음에 상념이 없어야 하리라.

 

나는 새가

허공을 다니는 것처럼

말로 할 수도 없는데

하물며 이를 볼 수 있겠는가.

 

있는 그대로의 지혜에 안주하여

도(道)를 행할지니

마음으로 분별하여 헤아려서는

깨닫지 못하리라.

 

어느 곳을 섭입하더라도

뛰어난 지혜의 토대인지라

가엾이 여기는 마음에서 자애심을 일으켜

일체를 구비하고자 원력을 세우네.

 

점차로 온갖 행을 구족하고

마음 또한 상념(想念)이 없어야만

마음의 본성을

지혜로써 밝게 터득하리니

 

이 같은 행업은

미묘해서 실로 체득하기 어렵다네.

나[我]라는 심지의 성품이 없다는 것도

순식간에 깨우치기 힘든 것인데

 

어떻게 이를 풀어낼 수 있으며

안주하겠다는 생각을 하겠는가.

모두들 정성을 다하여

그윽하고 미묘한 가르침을 똑똑히 들으리.

 

바르고 참된 지혜를 섭입하여

진여(眞如)의 도주33) 그대로 행하되

만약 억천 겁 동안

그 구경(究竟)을 다하지 못해도

 

모두 함께 기쁜 마음을 내어

법문만을 한결같이 경청해야 하리라.

묘하고 진실한 이치에 정성을 다해서

싫증내거나 이심(異心)을 품지 말라.

 

어지럽히지 말고

마치 큰 바다를 이루는 듯해야 하리라.

여러 중우(衆祐)께서 행하시는 도(道)를

지금 세세히 풀어 말할 터인즉

 

널리 설교하되

수승한 법음(法音)으로

온갖 비유를 들어

정(正)과 진(眞) 등의 문자로써

 

헤아려 낱낱이 일러 주면

어렵더라도 터득할 수 있으리라.

행업에 안주하는 일이

이처럼 측량할 수 없네.

 

바로 지금 오아(吾我)의 자연34)을

터득할 수 있으리니

기꺼운 마음으로 한마디 한마디35)

잘 새겨들으라.

 

이때 금강장보살이 이렇게 말했다.

“여기 모이신 대중이시여, 

불자께서는 살펴보십시오. 

모든 중생을 거두어 공덕의 근본을 쌓아 진제(眞諦)를 행하되 거짓이 없어야 하니, 

이미 이룬 행업은 아주 잘 간직해야 합니다. 

3세 부처님께서 출세하시면 언제나 부지런히 공양을 올리되, 

청정한 법[淸白法]에 빈틈없이 부합해야 하고, 

언제나 선지식을 섬기면서 근심을 덜어내어 성품을 넉넉하게 지녀야 합니다. 

미묘한 정의(定意)의 평등(平等)을 독실하게 믿어서 그 낯빛을 자비롭게 지니고, 

마음은 언제나 3세 부처님의 성스러운 지혜를 사모하면서 모든 중생이 도심(道心)을 일으키도록 제도해서, 

모두 지진의 훌륭한 일체지(一切智)에 이르게 해야 합니다.

 

그 10력(力)이 강하고 힘이 있기에 사바세계를 떠돌더라도 두려움 없이 태연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정법을 이루고 이를 옹호해서 일체 중생을 제도해야 합니다. 

중생의 괴로움을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닦되 그 가엾이 여기는 마음 또한 청정하게 지니면서 시방세계 일체를 남김없이 터득하여 밝은 지혜를 현전케 하고, 

일체 불국토의 무위청정을 눈앞에 모두 드러내어서 한순간에 3세의 세간사를 환히 깨닫고, 

대법륜을 굴려 중생의 병을 다스려야 합니다.

 

보살 대사는 잠깐 동안 뜻을 내더라도 중생을 불쌍히 여겨 끝없는 대비로 근본을 삼아야 하고, 

명료한 지혜가 뚜렷하도록 언제나 학업에 힘써 선교방편을 수지하되, 

마음을 부드럽게 지녀서 도법(道法)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여래의 10력은 한량없어서 모든 사람의 능력 가운데 부처님의 능력이 으뜸이시기에 그 선양하신 법문에 걸림이 없도록 잘 사유하고 선택해서 자재하신 지혜에 화합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일체 법을 환히 아시는 것과 모든 부처님께서 출세하시는 것도 이렇게 자재하시기에 도법의 성취가 법계의 행 가운데 으뜸이 되는 것입니다.

 

허공 끝이 다하도록 크게 발심해서 미래의 보살 마음을 나타내어 도의(道意)를 일으켜서 범부지(凡夫地)를 벗어나되, 

보살지조차도 넘어서서 여래의 종성(種姓)으로 거듭 나면, 

그 명호를 무소종생(無所從生)이라 부르리니, 

마침내 죄업이 없어지게 됩니다. 

삽시간에 세속의 취향을 바꾸어서 세속을 넘어서되, 

세간을 제도하는 행에 의거하여 보살도의 법을 세워 이에 머물러야 하고, 

이미 보살도의 법을 세워 머물렀다면, 

3세 부처님의 가르침에 순응해서 도의 이치를 깨치도록 지성(至誠)으로 힘써서 언제나 제일의(第一義)를 탐구해야 하니, 

저 보살이 도법(道法)에 머무는 것이 이러하다면 그것이 바로 열예도지(悅豫道地)입니다.

 

불자는 알아야 합니다. 

이처럼 보살도에 머무는 법을 세웠다면 그 행이 흔들리지도 않고 물러서지도 않게끔 보살의 열예지(悅豫地)에 머물러야 합니다. 

이처럼 기쁨으로 가득한 마음을 내기 때문에 이를 보는 이마다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는지라, 

언제나 이를 공경하며 이익과 공양을 베풀게 됩니다. 

와서 보는 이마다 모두 함께 기뻐하는지라, 

이에 대중을 개화(開化)하면 모두 가르침을 받들고자 사방에서 운집하여 서로 즐거워하게 됩니다. 

가깝거나 멀거나 모두 견고하지 못함을 헤아려 언제나 인화(仁和)로써 포용하여 상해(傷害)를 입히지 않고 늘 기쁜 마음으로 원한을 품지 않기에 안색이 화창해서 노여워하지 않는 것이 보살의 열예지입니다.

 

도의 가르침에 머물러 모든 불세존을 다 같이 호념(護念)하되, 

불법을 사유하는 것을 가장 기뻐하는지라, 

마침내 열예를 일으켜 보살 대사의 본업(本業)을 호념하게 되고, 

마침내 열예를 일으켜 보살행을 호념하게 되고, 

마침내 열예를 일으켜 청정하고 끝없는 6도(度)를 호념하게 되고, 

마침내 열예를 일으켜 개사(開士)가 머무는 바의 뛰어남을 호념하게 되고, 

마침내 열예를 일으켜 도를 사유하되 가장 미세해서 짝할 것이 없게 되고, 

마침내 열예를 일으켜 중생을 다스리는 까닭에 도의 이치를 이롭게 하고, 

마침내 열예를 일으켜 심묘한 법으로 나아가게 되고, 

마침내 열예를 일으켜 여래ㆍ지진의 가르침을 호념하게 되고, 

일체 중생을 방편으로 교화[權化]하게 되고, 

마침내 열예를 일으켜 모든 보살이 여래의 지혜에 정진하는 업에 섭입하는 것을 호념하게 됩니다.

 

다시 사유를 되풀이해서 불체(不逮)36)를 거두어 득도(得度)시키고자, 

모든 중생이 흠모하는 경계를 말해 주고 이를 보살펴서 3세 부처님의 평등하신 성품에 진입케 하되, 

이미 우치(愚癡)의 경지를 멀리 벗어났으면, 

도량을 가까이하게 해서 모든 악취의 모진 고통을 끊어 주고자 여러 중생을 교도(敎導)하는 수장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미 여래ㆍ지진을 친견했다면, 

여래의 경계를 구족하게 성취해서 모든 보살의 정평등(定平等)의 업을 분별하는 까닭에 기뻐하는 것이며, 

일체의 공포를 영원히 소멸해서 옷자락이나 머리카락이 서는 일이 없는 까닭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불자여, 

모든 보살의 학업은 열예로써 보살도지를 세우게 되고, 

보살도지를 세워 이에 머물러 모든 두려운 일이 영원토록 환난으로 되풀이하지 않으니, 

명안(命安)이 없기에 세속의 두려움도 없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습니다.

 

악취를 두려워하지 않기에 회상(會上)의 대중 사이에 참석하더라도 기피[忌]하는 환난이 없으니, 

모두 일체의 공포가 영원히 끊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나[我]라는 생각[想]이 없기에 자신의 몸도 탐착하지 않는데, 

어찌 일체의 영고성쇠(榮枯盛衰)에서 생겨나는 업을 탐애하겠습니까? 

명이 짧은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데다 요행을 바라는 생각조차 없기에, 

오직 군생(群生)이 갖고 있는 일체의 끝없는 업을 가엾이 여겨 여러 궁핍하고 빈곤한 이들이 도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으로부터 구제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세속의 두려움이 없는 것은 도명(道明)을 성취해서 신체를 자기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니, 

비록 신체를 잃을지라도 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라는 생각이 없기에 죽음에 임박하더라도 두렵지 않으며, 

비록 신체의 수명이 다하더라도 보살행을 이루어 3세 부처님을 여의지 않는 까닭에 악취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간을 널리 관찰하되 도심(道心)에 견줄 만한 부류가 없는 것을 살피고 성품조차 인자하니, 

어느 누가 이보다 나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러한 까닭에 회상의 대중 사이에 있더라도 기피하는 환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니, 

공포를 여의었기에 옷자락이나 머리털이 쭈뼛 서지 않습니다.

 

불자는 알아야 합니다. 

보살 대사는 대비를 구족해서 중생을 상해하지 않고 본정심(本淨心)을 닦아 가되, 

더욱 정진하여 일체 뭇 덕의 근본을 거두어 합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도 독실한 믿음으로써 위신력의 점차적인 구비[漸備]에 이르게 되면, 

기쁨이 충만해져서 모든 불신(不信)을 정화하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독실한 믿음을 일으켜서 언제나 자비를 행하여 끝없는 자비로 거두되, 

생사의 고난을 거리끼지 않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그 뜻을 차츰 참괴법(慚愧法)으로 향하도록 스스로 마음자리[心所生處]를 장엄해서 인욕하고 인화(仁和)해야 합니다. 

약간의 물건이라도 여래ㆍ지진ㆍ최등정각(最等正覺)께 공양 올리면서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정진하여 경전을 암송하되 싫증내지 않고, 

공덕의 근본을 쌓아 선지식을 가까이하고 법락(法樂)을 스스로 즐기며, 

널리 설법을 듣고 배우되 게으르지 않아야 합니다.

 

만약 설법을 들었다면 이에 따라 사유하고, 

사유를 행하였다면 집착을 내지 말아야 하니, 

의식(衣食)을 따로 구하지 말고, 

모든 이양(利養)의 업을 마음속으로 부러워하지 말며, 

세속 만물의 은혜를 여의고 오직 삼보만을 의롭게 구하여야 합니다. 

발심하는 무렵에는 정행(正行)을 버리지 말고 일체지의 본지(本地), 

즉 여래의 10력ㆍ4무소외와 18불공법(佛共法)을 흠모하면서 부지런히 닦아야 하니, 

6도무극을 전적으로 받들어 행하면서 허위를 버리고 아부하는 마음을 없애서 한결같은 언행으로 생각과 말이 어긋나지 않도록, 

가는 곳마다 언제나 언행을 조순(調順)하여 여래의 종성을 손상시키지 않고, 

언제나 일심으로 보살의 금계(禁戒)를 호념해야 합니다.

 

일체지의 마음으로 동요하지 않고 마치 태산(太山)처럼 무너지지 않으며, 

일체의 세간사를 부러워하지 않고 세간을 건너는 업만을 흠모하면서, 

정법을 듣지 못한 이를 제도하고 도품(道品)을 공부하되 싫증내지 않고 자족하며 마음을 항상 가다듬어 수승(殊勝)한 일을 구해야 합니다. 

불자라면 이 같은 청정업도(淸淨業道)를 본받아 청정한 보살법에 종사해야만 비로소 열예의 초지(初地)에 견실하게 머물게 됩니다.

 

세존께서는 ‘만약 열예의 초지를 세울 수 있다면, 

보살의 주법을 성취해서 광대한 무극의 도를 건립할 수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으니, 

이 같은 경모(景模)야말로 한량없이 큰 원력과 크나큰 서원의 갑옷인 것입니다.

다시 10사법(事法)이 있으니, 

어떠한 것이 10사(事)인가 하면, 

끊임없이 전도하는 것이고, 

듣기 좋은 말소리가 비할 데 없으면서 널리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것이고, 

3세 부처님께 일체 진보(珍寶)를 공양 올리되 미묘하고 청정한 업을 독실하게 믿는 것이고, 

법계가 공적(空寂)하기에 뜻을 공계(空界)에 두어 이를 터득하는 것이고, 

미래세의 일체에 대해서 상념을 내지 않기에 바라는 것이 없는 것이고, 

불도를 중흥시키되 즐겁다는 생각을 내지 않는 것이고, 

그 섬기는 일이 오직 끝없는 공양으로 뜻을 큰 서원에 두도록 주력하는 것이고, 

3세의 여래께서 연설하신 가르침을 호념하여 정법의 안목을 지니는 것이고, 

3세의 부처님과 보살들의 업을 수호하여 일체가 평등하다는 각훈(覺訓)에 어긋나지 않는 것입니다.

 

위와 같은 법훈(法訓)을 구족해야만, 

도솔천[兜術天]에 태어나고, 

천상에서 강림하여 모태 속에 들어가 태장(胎藏) 속에 처하게 됩니다. 

모태에서 나와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손을 들어 ‘내가 삼계에서 가장 존귀하다’고 선언하면, 

제석천과 범천이 모두 머리 숙이고, 

여러 용이 그 보체(寶體)를 씻어 주리니, 

문무(文武)를 갖춰 익히고서 사문유관(四門遊觀)으로 세간을 살펴보고 출가 입산해서 마군을 항복시키고 성불하게 됩니다. 

제석천왕과 범천왕의 권청으로 대법륜(大法輪)을 굴리다가 대멸도(大滅度)를 시현하게 되리니, 

사리의 공양으로써 도화(道化)를 펴되, 

온갖 경의 바른 이치를 현시해서 모두 일시에 불퇴전지(不退轉地)에 이르게 합니다.

 

법계는 넓고 넓어 한량없는지라, 

허공계(虛空界)에 이르기까지 미래세를 구경토록 터득해서 일체의 염(念)에 처하더라도 상념을 내지 말고 수없는 겁을 거쳐야 불도를 성취하게 됩니다. 

독실한 믿음으로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모두 다 열반할 때까지 의음(義音)을 선양하고 끝없이 넓은 서원으로 보살의 모든 행을 널리 베풀되, 

다함없고 한량없고 셀 수 없도록 모든 도무극을 섭수해서 청정도(淸淨道)에 머물러야 하니, 

회상에 모인 대중의 그 법음(法音)에 반응하는 품류(品類)가 유상(有相)인지 무상(無相)인지, 

그 이합집산(離合集散)이 유위(有爲)인지 무위(無爲)인지 헤아려서 일체 보살의 수장이 되어야 합니다. 

도주(道住)의 진공묘유(眞空妙有)를 장절(章節)과 구절로 연설하고, 

여러 가지 도무극을 마땅히 베풀어 행하되, 

정행(正行)을 힘써 닦아 태어나지 않게 하고, 

바로 발심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처럼 모든 법을 구족할 수 있어야 중생 경계에 대한 체득이 구족되기에 유색상(有色想)ㆍ무색상(無色想)ㆍ무상유상무상(無想有想無想)의 물이나 뭍에 사는 일체의 생류(生類)로서 삼계에 형체를 받고 6품(品)에 취향(趣向)하는, 

이와 같이 직접 형체를 받거나 처소로서 몸을 받아 형상 없는 신체를 받게 되는 일체의 비할 데 없이 많은 중생계를 모두 분별하고서 이를 교화하여 불법으로 섭입하여 일체 유위의 소생(所生)을 끊어내야만 바로 일체지를 건립하여 이를 성취할 수가 있으니, 

이를 넓고 큰 법계라 이름합니다.

 

허공의 세계에 있으면서 미래세의 최후에 이르기까지 모든 상념의 유위업을 마음으로 체득하고서 독실하게 믿음을 내어 부지런히 법음을 연출하되, 

끝없이 넓은 서원의 업에 이르기까지 이 같은 일체 중생 세계를 이해하고, 

도속(道俗)을 모두 깨달아 통하지 않는 것이 없고, 

여러 불세계가 넓거나 좁거나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크거나 작거나 모두 널리 시현하게 되면, 

유량(有量)인지 무량(無量)인지 참으로 막연해서 이름붙이기도 힘듭니다. 

저 멀리 극단까지 평등으로 섭입하고, 

이미 평등으로 섭입했다면, 

제근(諸根)을 깨우쳐 얽혀 있는 모든 그물을 문빗장처럼 벗겨내어 시방 3세로 들어가 지혜로 널리 관조하여 법계 허공의 원제(原際)를 체득하면, 

바로 끝없이 넓은 서원을 깨우쳐 섭입하게 됩니다.

 

다시 한 국토에서 일체의 국토까지 평등하게 조어(調御)해서 청정하여 티가 없게끔 한량없는 불국토에 광명을 널리 비추어 여러 국토를 장엄해서 영원토록 더러운 번뇌를 없애게 됩니다. 

문장과 구절을 청정하게 분별해서 성스러운 지혜의 도량으로 되돌려 셀 수 없는 중생의 소원을 만족시키고 3세 부처님의 미묘하신 경계를 현시해야 하니, 

중생[黎庶]에 따라 본행(本行)을 일으켜 현전에서 교화하되, 

법계가 넓고 크더라도 그 허공계를 살펴서 영원토록 가장자리에 치우치지 않게 하고, 

구경의 본제(本際)에 이르도록 일체의 상념(想念)을 헤아려 이에 계합하되, 

잠시도 쉬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믿음을 내지 못하고 삿된 행업(行業)을 따르는 이들도 청정하게 닦도록 해서 넓은 서원의 갑옷을 이루게 하고, 

미처 정법을 듣지 못한 이를 교화해서 여러 보살을 적화(寂和)의 성품으로 섭입시켜야 합니다. 

지성으로 행하여 공덕을 쌓되 하나의 연(緣)으로 나아가도록 일체의 보살을 권화해서 이끌어 보살의 업도와 위배되지 않게 생각에 따라 풀이해서 부처님의 출세를 현시해야 하니, 

이미 발심하였다면 여래의 가르침을 사유해서 다시 생사를 헤매지 않고 신통을 이루어 여러 국토로 다니기에 성스러운 큰 지혜란 참으로 불가사의합니다.

 

보살업을 행하되, 

법계가 넓고 커서 허공계가 끝이 없을지라도 미래세가 다하도록 다니면서 제상(諸想)의 수(數)를 통달하니, 

부처님과 중생수(衆生數)를 그 수(數)에 따라 행하되 이를 훼손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스러운 지혜로 섭입해서 언행을 구사하되 끝없이 넓은 서원으로 보살도를 행하면, 

그 마음이 전전하여 법륜에서 퇴전하지 않으니, 

그 신(身)ㆍ구(口)ㆍ의(意)의 3업이 거짓되지 않습니다.

부처님을 친견하거나 경법(經法)의 가르침을 듣게 되면, 

성중(聖衆)을 선양하여 명지(明智)의 업을 연설해서 마침내 열예를 일으켜 진로(塵勞)를 없애고 참다운 품성을 이루기에 마치 대의왕(大醫王)처럼 중생의 병을 치료하게 됩니다. 

일체의 온갖 보살행을 닦는 까닭에 넓고 넓은 법계라 이름합니다.

 

허공계의 끝이 없어서 미래세를 터득하여 모두 일체 무앙수겁(無央數劫)의 선취(善趣)나 악취(惡趣)로 나아가는 중생의 행적(行迹)을 익히 알고 시방의 모든 불국토에서 위없는 정진도(正眞道)를 이루는지라, 

최정각(最正覺)을 위해 금색신(金色身)의 모든 털구멍[毛孔] 속에 들어가 여러 털구멍을 두루 편력해서 그 태어나는 처소마다 부처님께서 계신 나무 아래에 참례하니, 

부처님께서 법륜을 굴리시다가 대멸도(大滅度)를 시현하시면, 

대경계(大境界)를 수습해서 부처님의 지혜 업을 선양하게 됩니다.

 

중생계에 있으면서 본행(本行)에 따라 부처님께서 출세하실 적마다 그 몸을 나타내어 중생을 거듭 개화하여 중생의 진예행(塵穢行)을 소멸시켜 한결같은 불도를 이루도록 법계에 두루 공양하되 자기를 낮추어 공경하는데, 

어찌 두루 보살피지 못하겠습니까? 

한 번 설법의 목소리를 내기만 하면 일체 중생의 심성을 기쁘게 하니, 

대멸도(大滅度)를 시현하더라도 10력을 훼손하지 않고 본지를 크게 밝혀서 일체의 법장(法藏)을 현시해서 널리 퍼뜨리고, 

신족(神足)한 법의 지혜와 6신통의 업으로 시방의 모든 부처님 경계를 널리 다니는 까닭에 넓고 넓은 법계라고 이름하니, 

허공계(虛空界)에 끝이 없어서 미래세를 터득하여 무앙수겁 이후에 불도(佛道)를 이루어 대신통과 넓은 서원의 갑옷에 이르게 됩니다.

 

이러한 것이 불자ㆍ보살의 열 가지 원력이기에 열 가지가 구족한 원력을 가까이 행하는 것으로써 이루 말할 수 없는 무앙수의 여러 보살 대중이 열예의 마음을 품고 보살지에 머물러 시기에 따라 개화하는지라, 

부처님께서도 ‘이 같은 보살의 학업을 이러한 원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아무리 선교(宣敎)하더라도 구경(究竟)에 이르지 못하는 10사(事)가 있으니, 

10사란, 

중생의 경계를 구경할 수 없는 것이고, 

3세 부처님의 경계 또한 다함이 없는 것이고, 

그 허공계 또한 헤아릴 수 없는 것이고, 

법의 경계를 사유하더라도 또한 남에게 풀어낼 수 없는 것이고, 

무위의 경계 또한 한량없는 것이고, 

부처님의 경계 또한 밑이 없는 것이고, 

여래의 경계 또한 가없는 것이고, 

그 마음의 인연 또한 한량없는 것이고, 

지혜행의 본말 또한 그 끝을 알 수 없는 것이고, 

비록 3세 부처님의 경계에 들고 날 수 있어도 법을 돌이켜 지혜를 굴리는 것 또한 구경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이 같은 10사로써 비록 중생 경계에 구경이 없더라도 넓고 큰 서원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이 같은 10사의 업 일체는 모두 그 구경을 다할 수 없는 것이니, 

온갖 계(界)가 허공이고 법계가 무위일지라도, 

부처님께서 여래와 더불어 그 혜심(慧心)의 행으로써 온 누리에 법을 굴려 지혜 법으로 나아가 성취하게 하십니다. 

이 같은 넓고 큰 서원은 다하려 해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니, 

중생계도 역시 다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온갖 공덕의 근본은 다할 수 없기에 이처럼 구경토록 그 도혜(道慧)를 이루어도 이러할진대, 

어찌 온갖 공덕의 근본이 다할 수가 있겠습니까? 

넓은 서원의 갑옷을 흠집 없이 성취하니, 

마음이 미묘하고 성정이 어질기에 언제나 지성으로 독실하게 믿음을 내는 것이 꾸밈없이 순박합니다. 

이처럼 여래의 크신 교화를 믿고 좋아하기에 평등한 깨침에 뿌리내린 서원을 섭입하고, 

온갖 도무극을 믿고 좋아하게 됩니다. 

도지(道地)의 수특한 업을 믿음으로 섭입하고 10력을 믿어 시방을 개화하니, 

무소외(無所畏)ㆍ4사(事)ㆍ불호(不護)에 대한 믿음이 구족하여 삼계를 홀로 걷게 됩니다. 

3세 부처님의 18불공법(不共法)의 이치가 뛰어나서 비견될 짝이 없음을 믿고, 

부처님 법이 불가사의하다는 것을 믿고, 

여래의 경계가 그 끝을 알 수 없음을 믿어서, 

성스러운 가르침이 다하지 않는다는 것을 널리 전파하여 여래의 한량없는 도업을 믿음으로 섭입하게 됩니다.

 

여러 보살행이 평등해서 편중되지 않음을 믿고 여래법에 머물러 도의 가르침을 선양하게 됩니다. 

저들은 이와 같이 여래의 도법은 깊고 미묘해서 이처럼 우뚝 서고 가없이 고요하고 담박한 법미(法味)가 한량없어서 가없이 공적하고 청정한 무상(無相)임을 호념해서 마침내 적멸로써 집착을 없애고 지극히 넓은 도량으로 이 같은 무극을 끝없이 섭입하게 됩니다. 

이 같은 것조차도 참으로 행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부처님 법을 어느 누가 한계 지을 수 있겠습니까?

 

뭇 범부들의 소견은 전도(顚倒)되어 있는지라 삿되어 바르지 못하니, 

오로지 그 생각이 어리석고 어두워 무익한 일만 구하기에 마음속으로 이를 가리면서 진로(塵勞)에 떠돌게 됩니다. 

은혜와 애정의 그물을 얻고자 아부하는 마음을 따르기에 마음 씀씀이가 거짓되어 시기하고 탐욕을 부리고, 

뜻을 생사에 두기에 이에 떠돌면서 나고 죽는지라, 

3독(毒)을 끌어안아 탐[婬]ㆍ진[怒]ㆍ치(癡)의 때가 끼여 끝없이 윤회하게 됩니다.

 

성내어 해롭게 하는 마음을 불길이 타오르듯 거세게 일으켜 전도된 업에서 죄악만을 짓게 됩니다. 

세속의 모든 은혜와 애정이란 무명의 누(漏)이기에 마음속으로 늘 이것만 생각하면 의식이 얽매어져 삼계를 유전하면서 그 재앙에 고뇌하게 됩니다. 

그릇된 행실만을 거두기에 가고 오는 것이 그치지 않으니, 

이에 명색(名色)이 구유(俱有)하여 바탕이 생겨나고, 

이 같은 명색의 증장이 생겨나면, 

바로 온갖 쇠퇴의 화택(火宅)이 되는 6입(入)이 있게 되니, 

6입이 생겨나 그 바탕을 되돌려 합류해서 다시 훈습되어 고통[痛痒]이 일어나면,

 

낙탐(樂貪)이 갑절로 늘어나게 됩니다. 

고통의 업에서 업이 성장하여 은혜와 애정을 기르게 되고, 

이로써 생에 다다르게 되니, 

금생에 이르게 되면 노(老)ㆍ병(病)ㆍ사(死)ㆍ우(憂)ㆍ뇌(惱)ㆍ제(啼)ㆍ곡(哭)이 마음 가득히 열뇌(熱惱)를 쌓아 큰 우환을 이루게 됩니다. 

중생을 헤아려 보면, 

이러한 까닭에 고음뇌신(苦陰雷身)이 생겨나니, 

만약 나[吾我]를 여의고자 하면 마음으로 따져 살펴보아야 합니다. 

다시 이같이 나라는 몸[我身]은 무명(無明)에 연유하는 것이니, 

비유하면 풀ㆍ나무ㆍ기와ㆍ돌ㆍ벽돌의 형체가 마치 그림자처럼 본디 이름이 없는 것임을 깨닫고 나면, 

이로 인해서 명색(名色)의 5음신(陰身)에서 해탈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온갖 견(見)의 예순두 가지 의혹을 없애고, 

이로써 끝없는 대비를 성취하게 됩니다.

 

우리들이 보살펴 구제하려는 이 같은 행(行)은 그 뜻이 영원히 변치 않고 도지(道地)에 안주해서 대자(大慈)를 일으켜 성스러운 지혜를 넓혀야만 하니, 

보살이 이같이 자비로울 수 있어야 이로 인해 불자가 인화를 이루어 진실하고 바른 도에 순종하고 의업(意業)을 최초로 일으키게 될지니, 

일체 만물의 이익과 자양(自養)을 간절하게 탐내는 마음을 버리고 업을 넓고 크게 닦아야만 합니다. 

그러한 의지를 안으로 간직해서 모든 진보(珍寶)와 창고에 넣어둔 금ㆍ은ㆍ유리ㆍ수정과 모든 명월주ㆍ자거ㆍ마노(馬瑙)ㆍ산호ㆍ호박(虎珀)ㆍ묘옥(妙玉)ㆍ영락(瓔珞)ㆍ옥구슬과 훌륭한 코끼리가 끄는 수레[象車]와 마차 및 하인과 집사 등의 모든 권속을 널리 베풀되, 

아끼지 말고 은혜를 베풀 수 있어야 하니,

 

나라ㆍ도읍ㆍ촌락ㆍ원림(園林)ㆍ저수지ㆍ과수원ㆍ처자식이나 자신이 아끼는 머리ㆍ눈ㆍ살갗ㆍ근육ㆍ골수ㆍ지체(支體) 등의 모든 소유물을 아낌없이 잘 보시하여 어려운 이에게 나누어 주어 부처님의 거룩하게 밝으신 무극(無極)의 대도(大道)를 섭입하는, 

이러한 것을 처음 발심하여 첫 번째 도지를 얻어 세우는 것이라 이름합니다.

 

널리 보시하는 품성으로 이 같은 행을 이루되, 

가엾이 여기는 마음에서 자비를 베풀어 중생을 구제하니, 

이에 보태어 세간을 건너는 업을 살펴보고 이로운 이치를 추구해서 장차 무리 속에서 싹트는 것을 순조롭게 하되, 

싫어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속으로도 게으르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 보전(寶典)의 미묘한 경전을 힘써 배워서 모든 경전에 통달하고, 

일체의 소조업(所造業)을 깨우쳐 그 진퇴에 의거하여 온갖 이치의 법장을 다스려서 여러 중생의 무리들을 살펴보고, 

상ㆍ중ㆍ하의 근기에 따라 그 생각하는 바에 순응해서 각자 성취한 본래의 그릇에 의거하여 성취케 해야 합니다. 

성취의 크고 작음에 상응해서 세간사를 터득해야 하니, 

세간사를 터득해서 시의(時宜)에 따라 행하여야 합니다. 

나와 남을 보호하되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일으켜 다스려 계율의 공덕에 스스로를 훈도(薰陶)해야 하니, 

인욕으로 마음을 조화롭게 하고 허물없이 정진해서 일심(一心)의 지혜에 의해 정진을 행하되, 

자신과 대중을 위해 부끄러워하는 행을 성취해야 합니다.

 

이같이 수행해야만 비록 출가하더라도 마음이 동요하지 않고 세속에 경도되지 않고, 

그 힘이 강하고 연(緣)이 굳세어져 여래를 공양하면서 그 가르침을 받들게 되니, 

이러한 까닭에 도지를 닦아 엄정하게 다스려서 정법을 중흥시키는 것 내지는 독실한 믿음과 자비로써 대중에게 보시하는 등, 

이 같은 것을 모두 구족해야만 보살의 열예지에 머무르게 됩니다.

수없이 많은 부처님께서 광명을 비추어 호념하시기에 무량억(無量億)ㆍ백천해(百千姟)ㆍ무한조(無限兆)ㆍ재(載)37)의 3세 부처님께 보호받아 바르고 밝게 나아갑니다. 

그 원력의 힘으로 저들이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을 친견하고서 인화의 마음으로 받들어 섬기면서 영안(永安)의 보살업을 쌓기에 모든 군생(群生)이 재난에 처하면 찾아가 보살피면서 이 같은 덕의 근본으로 가피를 주어 위없는 정진도를 일으키게 해 줍니다.

 

3세의 부처님을 공양하여 중생을 개화하여 성취하게 하는지라, 

중생을 교화하고자 음식을 보시하되 먼저 법미에 기갈 들린 것을 구제해서 4은(恩)을 베풀기에 그 즐거움에 힘이 생깁니다. 

상품(上品)의 사람은 받들어 모시고 중품(中品)의 사람은 존경하고 하품(下品)의 사람은 가엾이 여겨 거스르지 아니하니, 

인애(仁愛)를 베풀어 사람들을 이롭게 하되, 

평등하게 이롭게 해서 일체의 죄업을 소멸시켜 남은 재앙을 없애 주어 다시는 재앙의 씨를 뿌리지 않게 해 줍니다. 

부처님께 공양 올리고 중생을 개화하되 구경토록 이를 행하여 이 같은 도지에 머무르니, 

이러한 덕의 근본으로 일체지를 권하여 온갖 신통 자재와 대비의 지혜를 더욱 왕성하게 해 줍니다. 

불자는 마치 자마색(紫磨色)의 순금과도 같은지라, 

대장장이가 순금을 제련하고자 불을 지피면 그 색이 더욱 새로워지는 것처럼, 

보살도 이처럼 3세의 부처님을 공양하고 중생을 교화하는 것으로 공덕이 더욱 왕성해지고 엄정(嚴淨)해지기에 이 같은 법으로 도지에 머물고, 

이 같은 공덕의 근본으로 본원(本願)을 일으켜 세우되, 

그 본원의 진퇴조차 자유롭게 행해야 합니다.”

 

금강장보살이 다시 이렇게 말했다.

“불자는 잘 들으십시오. 

보살이 초발심의 도지에 머무르게 되면, 

마땅히 이렇게 구하면서 그 행적을 관찰하며 본말을 묻는다면, 

3세의 불ㆍ보살께서 수호하는 선지식이 되실 것입니다. 

정행(正行)에 싫증내지 않고 도품(道品)을 이루면서 보시행(布施行)에 머물러야 하니, 

이러한 까닭에 제1지(地)의 주법(住法)이라 이름하게 됩니다.

 

이런 연후에야 제2 주지(住地)에서 행하는 업을 물어야 할지니, 

이 주지(住地)에 다다르는 법에 대해서는, 

모든 불ㆍ보살께서 밝은 스승과 어진 벗이 되어 주시기에 법을 행하더라도 싫증내지 않고 도주에 머무르게 되는지라, 

그 요점만 가려내어 이같이 말씀드립니다. 

이처럼 제2 주지, 

제3 주지, 

제4 주지, 

제5 주지, 

제6 주지, 

제7 주지, 

제8 주지, 

제9 주지, 

제10 주지의 마땅히 시행해야 하는 본말을 묻고자 하면, 

모든 불ㆍ보살께서 밝은 스승과 어진 벗이 되어 주시는지라, 

법을 행하더라도 싫증내지 않고 도지를 성취하게 됩니다.

 

도지의 품류마다 도업을 관찰해서 덕의 근본을 받들어 행하고, 

도지의 처소에서 방편을 깨달아 이를 낱낱이 분별하게 됩니다. 

도지를 청정하게 가꾸어 성스러운 지혜로 수승하게 섭입되는 것을 진(眞)이라 이름하니, 

각각의 도지에 다다라 물러나지[退轉] 않게 됩니다. 

저들이 이같이 청정한 보살주로써 여래의 한량없고 성스러운 지혜를 별해(別解)하여38)이 같은 방편을 세워 시절 인연에 따르는, 

이 같은 것이 보살의 제1 도지이기에 물러서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일찍이 물러선 적이 없이 이처럼 나아가[進] 10주를 성취하게 되면, 

다시 성문ㆍ연각으로 떨어지지 않고 지혜 법에 머무는 것을 밝게 드러내서 부처님 지혜의 무극 광명에 차츰 가까워지게 됩니다.

불자(佛子)는 마치 슬기로운 길 안내자가 상단(商團)을 보호하여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험난한 길을 건너가 목적하는 나라의 큰 도성 안에 안착시키는 것처럼, 

길을 가더라도 그 길이 넓은지 좁은지, 

좋은지 나쁜지, 

험한지 편한지 환히 알기에 어느 길이 안전하고 어느 길이 불안한지, 

여러 갈래의 길을 재차 수소문하여 우마차(牛馬車)나 코끼리가 끄는 큰 수레를 타고 지나가더라도 탈이 없도록 주선하는 것과 같이, 

제1 주지도 이와 같습니다.

 

이 사람이 큰 도성으로 이어지는 각처의 편안한 길을 환히 알기에 이리저리 헤매지 않는 것처럼, 

제1주로부터 도지를 세우고 지혜 법을 받드는 것도 이처럼 통달하지 않음이 없기에 대부호가 무궁한 업으로써 대중을 평등하게 교화하여 큰 성채 안에 안착시켜 더러운 곳에 빠지지 않고 환난을 만나지 않게 하는 것처럼, 

자신으로 인해서 상단들이 위험에 빠지지 않게 합니다.

 

이처럼 불자여, 

보살은 슬기로운 길 안내자처럼 제1 도지에 안주하는 것으로 여러 도지를 환히 깨닫고 일체의 도지를 엄정하게 닦아서 10주에 이르기까지 보살의 일체 도지를 터득하게 됩니다. 

여래의 지혜에 섭입해서 보살의 무극의 복덕을 섭취해서 덕업을 쌓아 성스러운 지혜가 쌓이기에 지어야 할 것을 이미 마쳤고, 

중생을 크게 인도하여 그 생각하는 바에 상응해서 개화하되, 

생사에 오고 가는 큰 환난의 무궁한 광야에서 법미에 굶주리는 고통을 뛰어넘고, 

일체지를 통달하여 끝없는 법의 성(城)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자시여, 

보살 대사는 게으른 마음 없이 언제나 수도에 정진해서 수특(殊特)하고 엄정한 도지에 이르러야만 하며, 

이 같은 불자를 이름하여 열예의 제1 주지의 보살 대사라 하며, 

도문(道門)에 들어가서 평등한 가르침을 널리 펴게 되는 것입니다. 

보살이 이에 머물러 천하를 주유하니, 

국토의 곳곳마다 커다란 복덕으로 도법을 보호하고, 

큰 보시로 중생을 제도하되 어진 공덕으로 탐욕과 질투를 없애고, 

그 오탁(汚濁)을 물리쳐 무궁한 보시를 베푸니, 

공덕의 근본을 일으켜 중생을 제도하고, 

목숨처럼 아끼는 여러 가지 것으로 중생을 제도하고, 

4은의 이치를 행하면서 인애(仁愛)를 베풀어 사람들을 이롭게 하되 평등하게 이롭게 하는지라, 

일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중생과 섞여 살더라도 부처님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정법의 성스러운 대중을 사모하는 것이 보살의 업이기에 보살행의 여러 가지 도무극의 10주지에 그 뜻을 두어 10력ㆍ4무소외ㆍ18불공의 3세 부처님 법을 호념해서 일체지를 남김없이 구족하게 됩니다. 

이 같은 덕으로써 일체의 지극히 존귀한 무극의 대복덕상(大福德相)을 내는 것이 가장 뛰어나고 높아 비견할 만한 부류가 없고, 

대등할 만한 짝이 없습니다. 

널리 인도하여 교화하되 뭇 사람들이 일체지를 이루도록 드러내 주고, 

액난에서 구제하고, 

발심할 때가 되면 힘써 수도에 정진해서 모두 교화에 순응하게 해 줍니다.

 

세속적인 이양(利養)과 재물의 업을 부러워하지 않을 때가 되면, 

도법을 바르게 해서 출가하여 도를 배우게 하고, 

불법의 가르침을 받들어 순식간에 무앙수(無央數)의 온갖 삼매의 선정에 들어가 3세에 계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불세존을 친견하게 해 줍니다. 

이같이 무앙수천(無央數千)의 여러 세계를 살펴서 무수한 국토를 제도하겠다는 생각을 내어 모든 경계를 비추고 중생을 개화하고, 

과거와 미래의 여러 겁을 마음속으로 가려내어 법문(法門)으로 거두어들이고자 여러 몸을 나타내서 무앙수재(無央數載)의 여러 보살의 몸을 나타내되 권속이 에워싸도록 합니다.

 

보살은 이로 말미암아 역바라밀(力波羅蜜)을 건립하여 수특한 원력에 들어가 신변(神變)을 나타내는 곳마다 선법(善法)을 일으켜 은혜로운 보시를 널리 베풀어야 하며, 

나아가 무수억ㆍ해ㆍ백천의 겁수 동안 이렇게 봉사해야 합니다.”

마침내 금강장보살 대사는 이 같은 보살이 들어가 머물러야 할 이치를 사유하고 관찰하였으며, 

이때 게송으로 이같이 읊었다.

 

청정한 법[淸白法]을 쌓아서

온갖 공덕의 근본을 심고

3세의 부처님께 귀의하여

자비의 업을 따라 행하네.

 

믿음으로 해탈에 들어가니

이는 청정한 선법의 근원이라.

마음을 조어하되 한량없어야

가장 뛰어나고 성스러운 지혜이네.

 

부처님께서는 일체지의

청정한 역바라밀로 그 염처를 시현하셨으며

중우(衆祐)39)께서는

군려(群黎)40)를 이끌어 이롭게 거두시네.

 

대비행으로

뛰어난 법륜을 굴리셨노라.

여래의 복전(福田)은 윤택하여

발심을 일으키기에 존귀하여라.

 

일시에 깨달아

열반[泥洹]의 업을 사유하사

중생을 깨우치고자

때에 꼭 맞게 그 이치를 드러내네.

 

일체의 공덕을 합치니

이 분이야말로 대중을 인도하는 스승이시니

마음으로 두루 섭입하심이

마치 허공과 같네.

 

그 지혜 가장 위엄 있기에

대비의 본행(本行) 선교방편으로 권화하고

독실한 믿음에 뜻을 두어

청정한 힘이 한량없이 많네.

 

걸림 없이 살펴보아

정법을 외면하는 중생[外衆生]을 제도하고

평등한 업의 씨를 심으니

사유로써 안주(安住)를 호념하리.

 

마음의 보배를 낳아

중우(衆祐)의 있는 그대로 지혜를 북돋고

대력행(大力行)으로

구경의 부처님 도법에 통하네.

 

10력의 종성이 생겨나

온갖 재앙이 영원히 없어지리니

가장 뛰어나게 빛나는 정진도로써

존귀한 상품의 도에 다다르네.

 

마음을 어질게 동화(同化)하여

지극히 태평한 도지를 나타내니

수미산처럼 동요하지 않고

나라마다 평등하게 행하네.

 

모두 기쁜 마음을 내어

수행에 뜻을 두고 독실하게 믿고

기꺼이 두루 감응하되

묘한 이치에 뜻을 두니 참으로 훌륭하구나.

 

온갖 두려움을 여의고

노여움을 행하지 않으니

때에 꼭 맞게 진예를 버리고

지성으로 선법을 기르는구나.

 

군생(群生)을 즐거이 구제하니

성스러운 지혜에 비견될 짝이 없으며

뛸 듯이 기쁜 마음으로

온갖 비법처(非法處)를 제거하네.

 

다섯 가지 공포를 없애니

이로 인해 도지에 이르게 되며

죽더라도 목숨을 아끼지 않기에

여러 악취(惡趣)를 멀리하네.

 

회상의 대중이 지닌 두려움을 버려서

공포심을 끝까지 없애 주노라.

어떠한 인연으로 본래 없다는 것이

내[我]가 없다는 것에 이르렀는가?

 

만약 두려움을 여의었다면

오로지 자비만을 행하며

지극한 믿음으로 정성스럽게 닦아 가되

부귀공명을 바라지 말라.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면서

온갖 공덕의 근본을 닦아 익히되

정법의 지극한 믿음을 세워

탐욕에 더럽혀지지 말라.

 

마음으로 부처님 경전을 얻어 듣거든

잘 익히되 싫증내지 말고

애욕의 이양(利養)을 영원히 끊고

늘 불도를 즐거워하리.

 

청정한 지혜력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부처님의 경법을 닦아

여러 도무극을 구하여

아부하는 업을 버리네.

 

언제나 언행이 일치하되

끝끝내 거짓말을 하지 않고

가장 뛰어난 종성(種姓)으로 진예를 여의면

불도를 속히 이루리라.

 

세간사를 여의어서

세간의 온갖 이익을 즐기지 말고

청백법을 거스르지 말고

최상의 행을 닦아 가며

 

공훈의 이치를 힘써 닦되

오직 정법만을 좋아하고

서원으로 남을 인도하여

가장 뛰어난 법으로 돌이키게 하네.

 

법을 지켜서

질투를 내지 않으며

넓은 서원에 순응해서

몸으로 늘 묘행(妙行)을 행하고

 

모든 불국토를 엄정히 해서

여러 군생(群生)을 개화하는 것이

모든 불국토에 편력하여

3세의 부처님과 함께 노니는 것이네.

 

부처님은 이름이 하나이시니

그 사이[彼此]에 거짓이 없어서

일체를 모두 체득하여

최상의 이치를 깨달으셨네.

 

이처럼 한량없는 원력으로

이롭게 인도해야 영원한 평안에 이르노라.

이것이 한량없이 넓고 커서

무외를 이루네.

 

중생이란 마치 허공 같아서

제법이 생겨나는 인(因)이 되니

가장 뛰어난 구경에 이르도록

세속에서 지혜의 도지를 일으켜

 

모든 마음의 경계를

성스러운 지혜로 섭입하고

세 가지에 통달한[三達] 지혜를 이루어

중생을 개화하며

 

넓은 서원이 구경(究竟)에 이르도록

내 스스로 이 같은 원력을 얻으니

이같이 통달하고

이같이 행하는지라.

 

은혜를 잘 갈무리하여

어진 마음으로 부드럽게 대하고

부처님 공덕을 독실하게 믿어

중생의 본원(本願)을 관찰하며

 

행을 연하여 대비(大悲)를 섭입해서

대자(大慈)를 일으키노라.

내 스스로 잘 보살피고 길러내서

중생[黎庶]을 안립하고자

 

보시를 베풀되

약간이라도 베풀 것이며

나라ㆍ도읍ㆍ촌락이며

보물ㆍ코끼리ㆍ말

 

머리ㆍ눈과 수족

아울러 내 몸의 살까지

일체를 보시하더라도

겁을 내지 않네.

 

온갖 부처님 경전을 모시되

싫증내거나 힘겨워하지 않고

세간의 모든 경전을 깨달아

속세에서 권화하네.

 

그 지혜가 3세를 초월하고

참괴심은 더욱 굳건해져서

둘도 없는 분을 공양하고

여러 어른들을 받들어 공경하네.

 

온갖 성스러운 행이 이러하여

밤늦도록 노력하여 포기하지 않기에

찬란한 온갖 공덕이

마치 단련을 한 순금 같은지라.

 

저들이 이 같은

보살의 10주지를 부지런히 행하여

무위업(無爲業)을 흠모해서

모든 유위(有爲)를 교화하는 것이

 

마치 길 안내자가

상단(商團)을 가엾이 여겨

편안한 길을 수소문해서

앞장 서 인도하는 것처럼

 

보살도 이처럼

제1주에 처음 발심하여

점차로 제10주로 나아가

무애도(無礙道)를 성취하노라.

 

이 같은 이치에 머무를 수 있다면

마침내 공훈을 얻으리니

자애로운 마음으로 남을 해치지 않고

정법으로 중생을 가르쳐

 

시의(時宜) 적절하게 온 누리를

개화하여 모두 보살피고

중생에게 베푸는 것으로

부처님의 성스러운 지혜를 좋아하기에

 

성스러운 발심에 이르렀을 때

나라를 버리고 왕궁을 떠나

불법의 가르침에 귀의하고자

출가하여 수행에 매진해서

 

삼매를 이루어

한량없는 부처님을 친견해서

모든 불국토에 감득(感得)하되

광명을 뵙고 찾아가 설법을 듣고

 

수없는 중생을 청정하게 교화해서

도법의 문으로 섭입하되

백천 겁을 다니면서

때에 따라 그 몸을 나타내고

 

온갖 가장 뛰어난 본업으로

중생의 잠을 깨우니

과거세의 부처님께서

중생의 무명을 일깨우신 것처럼

 

이 같은 제1주를

가장 뛰어나게 널리 펴 나가되

세간을 가엾이 여겨야

무상(無上)의 보살이 되리라.

 

여러 보살이 이 같은 위없는 도업을 듣고 나서 모두 기뻐하며 이 같은 행을 존중하였으니, 

마음속 깊이 열예에 사무쳐서 편안하고 즐거웠다.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조아려 금강장보살을 맞이하며 허공으로 솟아올라 온갖 하늘의 꽃을 뿌리면서 묘한 음성으로 이같이 찬탄하였다.

“훌륭하십니다, 

금강장보살이시여. 

용맹(勇猛)이 거룩하시기에 두려움이 없으십니다. 

도주(道住)를 깨달으셔서 보살법을 행하시기에, 

회상의 대중이 기뻐하며 해탈의 본원을 경청하였으니, 

이제 제2 도주(道住)의 행이 어떠한지 여쭈어 보겠습니다. 

저희가 받들어 사유할 터인즉, 

대지(大智)께서 이를 말씀하셔서 듣는 이로 하여금 확연하게 무극(無極)으로 나아가도록 중생을 개화하여 주십시오.”

 

2. 

이구주품(離垢住品)

 

금강장이 대답했다.

“모든 불자여, 

이 같은 보살 대사가 제1주에서 처음으로 발심하고 나면, 

바로 제2주를 사모하게 됩니다. 

그 심성이 독실하기에 10사(事)를 받들어 닦게 되니, 

어떠한 것이 10사인가 하면, 

첫 번째는 품성이 부드러워 거친 것이 없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정진(正眞)의 업을 닦아 삿된 생각이 있지 않은 것이고, 

세 번째는 그 행이 질박하기에 영원히 속임이 없는 것이고, 

네 번째는 마음을 어질게 다스리기에 노여움이나 원한을 맺지 않는 것이고,

 

다섯 번째는 그 행실이 적연(寂然)하기에 어지럽지 않은 것이고, 

여섯 번째는 마음속으로 지진(至眞)을 호념하기에 거짓되지 않은 것이고, 

일곱 번째는 그 행실에 절도가 있기에 혼란하지 않은 것이고, 

여덟 번째는 나아가고 그치는 것이 평정되기에 탐욕을 부리지 않는 것이고, 

아홉 번째는 행실이 미묘하기에 열등(劣等)하지 않은 것이고, 

열 번째는 그 도량이 넓기에 소심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 같은 10사로 인해서 보살의(菩薩意)의 성품이 독실해져서 초주지를 구족하게 이루게 되면 제2주에 이르게 됩니다.”

 

금강장보살이 다시 이렇게 말했다.

“또 모든 불자와 보살께서 제2 주지인 이구지(離垢地)에 이미 머물렀다면, 

살생을 여의게 되는지라 칼과 창을 버리고, 

마음속으로 참괴심(慚愧心)을 내어 군생을 가엾이 여기게 되기에 언제나 자애로운 마음을 일으켜 중생을 제도하되, 

그러한 생각조차 내지 않습니다.41) 마음속으로 살의를 품지도 않고 다른 사람을 그렇게 시키지도 않기에42) 다른 이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게 하니, 

자기 몸의 편안함을 저버리고 중생의 환난을 풀어 주되 다른 마음을 품지 않는데, 

어찌 이 같은 일을 범하겠습니까?

 

또 남의 것을 훔치지 않게 되니, 

마음속으로 언제나 베풀기를 좋아하고 다른 이의 재물을 탐내지 않습니다. 

있는 재물만으로 자족하여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다른 이가 소유한 온갖 물건[萬物]이나 생업이나 재보의 이로움을 보더라도 질투심을 내지 않기에, 

대중이 받들어 모시지 않는 일이 없게 됩니다. 

한 포기의 풀, 

한 장의 나뭇잎, 

한 오라기의 털, 

한 톨의 곡식도 그냥 갖지 않고, 

오직 널리 보시하여 모든 곤궁한 이를 구하는 것만을 생각하기에, 

그 몸이라도 베어내서 온갖 어려운 이를 구제하되, 

바람에 쓸려 와 허우적거리면서 땅바닥을 기어 다니며 숨을 헐떡이는 장구벌레로부터 물짐승ㆍ뭍짐승에 이르기까지 모두 평안케 하여 온갖 환난을 만나지 않게 합니다.

 

또 애욕의 삿된 음행을 버리게 되니, 

이를 다시 익히지 않고 자신의 아내만으로 족함을 알아서 다른 이의 아내를 사모하는 마음을 내지 않되, 

그러한 생각조차 내지 않습니다. 

다른 이의 아내를 범하지 않고, 

청백법을 받들어 행하면서 더럽히지 않습니다. 

마치 어머니나 누이나 딸자식과 다름없이 대하기에 그 청정이 티 없이 선명해져서 다른 마음을 품지 않는데, 

어찌 여색(女色)을 범하겠습니까?

 

또 거짓말을 하지 않게 되니, 

헛된 말조차 즐기지 않습니다. 

하는 말마다 지성을 다하기에 언행이 올바르고 진실하며 이치에 맞게 말하되, 

하는 말이 때에 어긋나지 않고 실수로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기에 꿈속에서라도 법이 아니면 펴지 않는데, 

어찌 백주대낮에 그리하겠습니까? 

안색조차 거짓됨이 없는데 마음속 생각은 어떻겠습니까? 

언제나 정법인 부처님의 바른 경전[正經]만을 말하여 저속한 말로 인해 이롭지 못한 업으로 잘못 가지 않게 됩니다.

 

또 이간질하는 언행[兩舌]을 여의게 되니, 

피차(彼此)의 말을 전해서 사람들 사이에 다툼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양쪽 모두 눈이 멀어 제대로 보지 못하도록 잘못 알려 불화를 일으켜 다투게 하지 않기에 다른 이를 침범하지 않습니다. 

저곳의 나쁜 말을 이곳으로 전하지 않고, 

이곳의 나쁜 말을 저곳으로 퍼뜨리지 않아서, 

다툼을 화해시켜 원망이 없게 합니다. 

공덕을 닦아 국법으로 인한 재앙이 없게 하고, 

경전이나 논서를 강의하더라도 편장(篇章)을 지키게 됩니다.

 

또 남을 욕하지 않으니, 

거친 말을 입 밖에 내거나 추악한 말을 해서 다른 이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습니다. 

세간 사람의 말이란 구업이 어질지 못하기에 다른 사람을 분노케 하는 것입니다. 

숨길 것이 없어 사람들을 대해도 떳떳하며43) 언제나 인화(仁和)를 행해서 남에 대한 노여움이나 원한 또는 해치려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기에, 

다른 이로 하여금 심정이 끓어올라 고뇌하게 하는 환난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입 밖으로 내는 말이, 

모든 이가 마음으로 하여금 옳다고 여기게끔 부드럽고 인자한지라, 

그 말을 듣는 이가 편안해 하고 마음속으로 기꺼워하여 만나는 것을 즐거이 여기면서 기뻐하게 됩니다. 

멀거나 가깝거나 이 같은 말을 전해 듣고 오래 생각할수록 그 말이 싫증나지 않습니다.

 

또 꾸미는 말을 하지 않게 되니, 

말을 그릇되게 꾸며대지 않기에 말로써 남을 침범하지 않고, 

또 남의 말을 퍼뜨리지 않으면서 언제나 신업과 구업을 보호하여 끝내 우스갯소리로라도 남을 그릇되게 교사하지 않는데, 

어찌 이익이 된다 하더라도 그러한 말을 하겠습니까? 

커다란 재물이 생기거나 벼슬을 얻는다 하더라도 이를 모두 물리칠 터인데, 

어찌 헛된 말을 하겠습니까?44) 비록 물에 빠져 죽더라도 이치에 어긋난 말을 하지 않을 터이니, 

신업과 구업이 상응하여 언행이 서로 부합해서 바른 정신을 잃지 않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또 질투하지 않는 데다 먹을 것을 탐하지 않게 되니, 

온갖 욕구나 다른 이의 재물이건 부귀영화[高德貴性]를 흠모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옳지 못한 이익을 탐하는 어리석은 마음을 내지 않고, 

다른 이가 영화롭고 부귀한 것을 보더라도 질투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도의를 간직하니, 

마치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정진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또 노여움이나 원한이 없으니, 

마음속에 언제나 인자함을 갖추되, 

가엾게 여기는 마음으로써 마음을 조화시키고 편안케 하고 부드럽게 지니게 됩니다. 

마음속으로 언제나 일체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생각을 내어 잘 보살피게 됩니다. 

가령 마음속에 노여움이 일어나는 경우, 

혹시라도 환난을 겪게 되면 곧 싫증을 내어 자제하지 못하고 온갖 진구(塵垢)의 고액(苦厄)을 만나 마음속으로 고초를 겪게 되기에, 

그 근원을 찾아 번성하지 못하도록 인화(仁和)를 생각해서 자애로운 마음으로 누그러뜨리니, 

마치 살모사나 맹수가 모여 있는 것처럼 경계한다면, 

악한 마음이 바로 그쳐서 인화를 이루게 됩니다.

 

또 사견을 버리게 되니, 

정견을 받들어 외도의 학문에 떨어지지 않고 길일(吉日)을 따지는 헛된 술법에 욕심내어 매달리는 것을 버려서 시절의 길흉45)을 따지지 않고 왕위(王位)조차 도외시하게 됩니다. 

혹시라도 제위(帝位)에 있는 이를 만나더라도 이를 귀하게 여기지 않고, 

아부하는 마음을 품지 않으며, 

겉과 속이 한결같아서 심성이 인화하기에 불ㆍ법ㆍ승을 받들어 삼보를 잊지 않고 삼계(三界)의 중생을 가엾이 여겨 모두 해탈하게 합니다. 

이러한 것이 10선(善)이기에 언제나 이 같은 10선의 공덕을 수호해야 하니, 

마음 씀씀이를 이같이 사유해서 받들어 행해야 합니다. 

만약 중생이 여러 가지 악업을 범하여 악취(惡趣)로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되면, 

열 가지 선한 일로써 이를 개화하게 됩니다.

 

또 유학(有學)의 개사(開士)가 정견을 이미 건립하여 지진(至眞)을 받들어 행하면서 또한 여러 사람들이 지진으로 섭입되도록 권유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몸으로 공덕을 닦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교화하여 도덕을 세운다는 것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들이 생각을 바르게 해서 10선을 받들어 행한다면, 

3악도의 지옥ㆍ아귀ㆍ축생의 처소에 떨어지지 않고, 

그 10선의 행으로써 인간으로 태어나거나 천상의 삼십삼천에 태어나게 됩니다.

 

또 이 같은 10선을 받들어 행하는 이는 대지혜를 이루고 그 이치를 사유해서 삼계를 두렵게 여겨 대비심을 일으키기에 중생에게 손해를 입히지 않습니다. 

타인에게서 불법을 선양하는 음성을 전해 듣고 성취하는 것이 바로 성문(聲聞)이고, 

자연(自然) 속에서 청정한 심지를 닦아 타인을 따르거나 타인에게 전수받지 않고도 마음으로 터득하여 정각의 성취를 구하고자 대비심을 잘 세워서 중생에게 손해를 입히지 않으며 마음으로 깊은 법요를 섭입하여 12인연을 사유해서 무근(無根)46)을 벗어나지 않고 성취하는 것이 바로 연각(緣覺)의 업(業)입니다.

 

넓고 넓은 마음이 위없이 지극해서 한량이 없으니,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지라 방편을 가늠하여 넓은 서원의 무극(無極)의 갑옷을 단단히 세우고, 

자취 없는 공적한 마음으로 일체 중생의 부류를 구하고자 삼계를 떠나지 않으며, 

부처님 지혜의 무애도(無礙道)를 성취하는 근원이 되는 보살행의 청정한 도지에서 무궁한 업을 이루되, 

이를 거듭하여 마침내 최상으로 전의(轉依)해서 중생을 구경에 계합시키고[宜], 

10력에 다다라 부처님의 18불공법(不共法)을 이루는 것을 우리가 이미 익히 들었으니, 

마땅히 학문에 뜻을 두어 일체지를 배우고자 힘써 닦아 정진해야 합니다. 

이 같은 10악과 10선의 장절과 구절을 깊이 관찰해 보면, 

큰 죄는 지옥으로 가는 과보를 불러오고, 

중간 정도의 죄는 축생이 되고, 

미약한 죄는 아귀가 됩니다.

 

이러한 까닭에 우리들이 만약 살생하는 경우, 

지옥ㆍ축생ㆍ아귀로 떨어지고, 

설령 인간으로 태어나더라도 두 가지 악보(惡報)가 있게 됩니다. 

그 두 가지는 태어나는 처소마다 수명이 짧거나 질병의 고통이 극심한 곳이기에 도중에 요절하기도 하고, 

또 집안에 우환이 있어 근심이 끊이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 도둑질을 하더라도 3악도의 고통에 떨어지니, 

혹시라도 인간으로 태어나는 경우에도 또 두 가지 과보가 있게 됩니다. 

그 두 가지는 재물에 관련된 복이 적거나 원수에게 약탈당하고, 

집안이 망해서 약간의 재물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이를 괴롭히고 다른 이의 부인을 범하는 경우에도 3악도에 떨어지게 되니, 

여기에도 두 가지 과보가 있습니다. 

권속이 정숙하지 못하거나 수시로 다투게 됩니다. 

거짓말을 즐겨 하는 이도 3악도의 고통에 떨어지게 되니, 

이것도 두 가지 악한 과보를 받게 됩니다. 

그 두 가지란 사람들에게 비난을 많이 받거나, 

옳은 말을 하더라도 신용을 얻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간질하는 이도 3악도의 고통에 떨어지게 되니, 

이 또한 두 가지의 과보를 받게 됩니다.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거나, 

좋지 못한 가정에 태어나 그들과 한데 어울리게 되는 것입니다.

 

남을 욕하는 이도 3악도의 고통에 떨어지게 되니, 

이 또한 두 가지 과보가 있게 됩니다. 

그 두 가지는 사람들에게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거나, 

욕을 많이 듣게 되는 것입니다. 

말을 잘 꾸며대는 이도 3악도의 고통에 떨어지게 되니, 

이 또한 두 가지 과보가 있게 됩니다. 

그 두 가지란 사람들에게 고뇌를 받거나, 

일이 생겨도 스스로 처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음식을 탐하는 이도 3악도의 고통에 떨어지게 되니, 

이 또한 두 가지 과보를 받게 됩니다. 

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잔병이 많은 것입니다.

 

질투하는 이도 3악도의 고통에 떨어지게 되니, 

이 또한 두 가지 과보가 있게 됩니다. 

그 두 가지는 만약 사람으로 태어나는 경우에는 사견에 떨어지거나, 

족함을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노여움을 타는 이도 3악도의 고통에 떨어지게 되니, 

이 또한 두 가지 과보가 있게 됩니다. 

그 두 가지는 스스로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거나, 

사람들에게 괴로움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견에 빠진 이도 3악도의 고통에 떨어지게 되니, 

만약 사람으로 태어나는 경우, 

이 또한 두 가지 과보가 있게 됩니다. 

두 가지란 예순두 가지의 사견에 빠지거나,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사람들에게 아부를 행하는 것입니다.

이같이 많은 환난은 고음(苦陰)을 이루는 원인이기에, 

이로써 불선법(不善法)의 근본이 합하여 이루어집니다.

 

중생으로 하여금 이 같은 10악을 버리게 하려면 도법(道法)으로 그 마음을 조복시켜야 하기에, 

자기가 먼저 10악을 버리고 10선을 세우고 나서 다른 이를 권유하여 10선에 머물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에 큰 자애를 더해서 중생을 가엾이 여겨 그 마음을 넓게 지녀서 자애로운 마음ㆍ가엾이 여기는 마음ㆍ조화로운 마음ㆍ널리 은혜를 베푸는 마음ㆍ풀고 감싸 안는 마음[散擁護心]ㆍ제 몸같이 여기는 마음ㆍ스승으로 섬기는 마음으로 중생을 세존처럼 공경하되, 

마음속으로 일체 중생이 사견에 결박되어 마음과 생각이 전도되고 뜻과 생각이 엇갈려서 헛된 행동을 일으키는지라, 

마땅히 궁극토록 10선도를 세워서 진실법에 머물게 하고 수행에 정진하여 언행에 상응하도록 안립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중생이 일체를 파괴하면서 서로 비방하여 늘 노여움을 품는지라, 

우리들은 마땅히 무상(無上)의 대비와 무극(無極)의 대자로써 행을 견고히 세워 나와 남의 분별을 없애야 합니다. 

중생이 결박의 환난을 싫어하지 않고 다른 이의 업을 질투하면서 어긋나고 삿된 행만을 일삼아 도의 근본에 순응하지 않는지라, 

우리들이 그 신업을 청정하게 하고, 

또한 구업과 의업을 청정하게 해야 합니다.

 

중생은 마음이 혼미하여 죄와 복을 엇갈려 짓기에 탐[婬]ㆍ진[怒]ㆍ치(癡)를 익혀 3개(蓋)의 장애로 인해 번뇌[塵垢]의 그물에 걸려들어 언제나 제 스스로 편하지 못한 자리만을 찾아가는지라, 

마땅히 견고한 선권방편을 구해 온갖 고달픈 일체 환난을 소멸시켜서 다시는 환난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중생이 우치(愚癡)의 고액에 있으면서 무명(無明)에 결박되어 6명(冥)에 머물러 큰 지혜를 멀리하고 어두운 문으로 떠돌기에 침침하고 나쁜 업만을 행하는지라, 

우리들이 저들을 교화하여 엄하게 다스리되 걸림 없이 청정한 혜안으로 일체 법을 바로 세워 서약한 대로 자재를 성취하는 것에 연유해서 인법(人法)을 대앙(戴仰)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중생들이 생사에 갇혀 지옥ㆍ축생ㆍ아귀의 고통스러운 문으로 떨어지고, 

사견(邪見)에 표류하여 예순두 가지 의혹의 조밀한 그물에 얽매여 우치에 가려지니, 

사도(邪道:邪徑)에 미혹되어 눈멀고 귀먹은 길로만 다녀서 성스러운 스승을 가까이하지 않기에, 

구호를 받지 못하고 취(趣)로 떨어져도 해탈의 업이 없어서 도적에게 겁탈당하고, 

마군이 마음에 깃들어 마음속으로 부처님을 멀리하게 되는지라, 

우리들이 잘 보살펴 생사의 광막한 들판의 험난한 길을 건네주되 어려움이 없도록 두려움을 여읜 일체지(一切智)의 성채의 문전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중생이 숲 속의 불길 속에 있는 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처소로 떨어져서 세 곳의 깊은 연못에 떠돌다가 생사의 급류에 부침하면서 은애(恩愛)의 강물을 따라 커다란 환난에 섭수되니,

 

우치가 강성하여 마음속으로 음욕을 탐하고 위험한 것만 생각하여 끝내 도적 노릇만을 하고자 나의 몸이 있다고 계탁(計度)하는 것이, 

마치 바닷가에서 음욕의 귀신에게 미혹되듯이 하고, 

방일에 떠돌아다니면서 욕망에 빠져들어 스스로 잘난 체함에 머물면서 제각각 다른 마음[異心]47)을 내어 득도(得道)하지 못했으면서 득도하였다고 여기다가, 

혹 쇠입(衰入)에 두려워 떨면서도 도리어 온갖 덕의 근본을 멀리하는지라, 

우리들이 마땅히 교화하여 커다란 공덕의 근본을 닦아 그 도력으로 건져내 구제하고 멸도시키되 두려운 온갖 고액을 여의어 일체지에 이르도록 건립해야 합니다.

 

중생이 모두 탐(貪)과 낙(樂)에 결박되어 수없이 고통을 받고 고뇌에 상이 찡그려지더라도 마음속으로 이를 흠모하여 사랑과 미움에 붙들려 서로 만나거나 헤어지면 이에 연연하고 애달파 하니, 

무명에 가려져 삼계에서 그 고통을 받는지라, 

우리들이 마땅히 바른 길을 개시(開示)하여 걸림 없이 삼계의 환난을 여의도록 멸도의 무위도(無爲道)를 세워야 합니다. 

중생들이 모두 헛되게 내[吾我]가 있다고 여겨서 5음(陰)과 여러 입(入)에서 전이(轉移)하지 못하고 4전도(顚倒)에 처하고 6쇠사(衰舍)에 의지하면서 악한 도적들에게 공격받아 한량없이 고통을 받는지라, 

우리들이 마땅히 교화하여 모든 고액(苦厄)과 일체의 음(陰)ㆍ개(蓋)를 없애서 무위에 이르게 해야 합니다.

 

중생이 하열한 업에 뜻을 두고 존귀하고 지혜로운 일체지의 마음이 결핍되어 인천(人天)의 도(道)가 없기에 두려운 생사의 길만 염두에 두고 성문과 연각만을 좋아하는지라, 

우리들이 마땅히 교화하여 미묘하고 광대한 마음을 세우게 하겠다고 다짐해야 합니다. 

이러한 것이 불자ㆍ보살이 섭입해야 하는 것이니, 

이 같은 계율의 힘으로 빈천한 이를 권화하되, 

언제나 자비심을 내어 선권의 방편으로 보살 이구품(離垢品)의 도지(道地)를 건립해야 합니다.

 

이로써 무앙수억 백천해의 부처님을 친견하고 옷ㆍ이불ㆍ음식ㆍ평상ㆍ와구 및 병들었을 때의 의약품을 공양하면서 일체를 보시하여 그 신명(身命)을 편안하게 해 주면서, 

스스로 여래ㆍ지진ㆍ평등정각에 귀의하여 계율을 수지하여 청정에 이르면, 

10선을 받들어 행하여야 하니, 

비록 이를 받아 지니면서 행하더라도 어긋난 바가 없어야 합니다. 

무앙수억ㆍ백천해ㆍ조(兆)ㆍ재(載)의 겁수 가운데 신체의 형태[身形]를 받았으니,

 

약간의 겁이라도 탐욕ㆍ질투ㆍ범계(犯戒)의 번뇌[塵垢]에 더럽혀진 무익한 업을 생각지 않고 보시를 좋아하여 계율을 청정하게 받들어 지키는 것이, 

마치 어떤 이가 땅바닥에 굴렀다 하더라도 단정하게 가꾸고서 바로 씻어내기만 하면 때가 없고 깨끗해지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습니다. 

이 개사(開士)의 이구지에서 무앙수억ㆍ백천해ㆍ조ㆍ재의 겁수 동안 신체의 형태를 받더라도 탐욕ㆍ질투ㆍ범계의 번뇌에 더럽혀진 무익한 업을 생각지 않고 4은(恩)을 행하고 인애(仁愛)를 은혜롭게 베풀어 사람들을 이롭게 하되, 

평등하게 이롭게 해서 번뇌가 엉겨 있는 중생을 구제하여 온갖 고액[危厄]을 뽑아 버려야 합니다. 

열 가지 도무극(度無極)을 힘써 닦아 정진하되, 

계도무극(戒度無極)을 모두 구족하여 모자람이 없게 합니다.

 

또 족성자(族姓子)여, 

보살이 이미 이 같은 최초의 제일주에서 봉사하였다면, 

다시 제2주가 있으니, 

바로 이구(離垢)라 이름합니다. 

보살이 이에 머무르게 되면 전륜왕이 되어 정법으로 다스리되 7보가 있기에, 

설사 중생이 퇴실(退失)하여 계율을 범해서 10악(惡)의 업을 짓더라도 선권의 방편으로 이를 다시 세우도록 권유하여 10선(善)을 행하게 합니다. 

만약 복시(福施)를 일으켜 사람들에게 은혜롭게 베풀더라도, 

그 인애의 공덕이 이롭게 하는 것은 바로 평등한 이익의 이치인지라, 

일체를 저버리지 않고 언제나 마음속으로 부처님을 호념하면서 오직 정법만을 흠모하되, 

뜻은 도당(徒黨)에 두게 됩니다.

 

보살의 업이면서 개사의 행이 되는 6도무극은 10주(住)의 근원이기에, 

10력ㆍ4무소외ㆍ18불공법의 모든 부처님 법을 생각하면서 온갖 행으로 널리 갖추어 일체지를 호념합니다.

어떠한 방편으로 중생을 권화하여 지존에 이르게 하는가 하면, 

제일이면서 으뜸이고 뛰어나면서 넘어서는 무상(無上)에 다다를 때까지 대중의 길잡이가 되어 일체를 권화하여 잘 길러 보살피니, 

일체지에 이르러 발심하는 무렵에는 가업과 애욕의 암흑을 버리고 여래의 가르침에 순종해서 출가하여 사문이 됩니다. 

만행(萬行:普行)에 정진하여 백천 가지 삼매에 다다라 한량없는 부처님을 친견하고,

 

모든 부처님을 친견하고 나면 도의(道誼)를 건립하여 백천의 나라로 다니면서 그 한 나라에 태어나고자 원하면 바로 무한한 국계(國界)를 건너가는지라, 

수없이 많은 세계를 엄하게 다스려 청정하게 하고, 

한량없는 중생을 개화하여 해탈로 섭입한 것이 원래의 숙명(宿命)에서 거쳐 내려온 겁수에 그 한계를 짓지 못할 정도입니다. 

간절히 구하는 뜻을 잘 가려내되 헤아릴 수 없는 도법(道法)의 온갖 법문으로 시방세계 중생의 형상을 굽어보고 한량없는 모든 보살의 법회를 관찰하여 그 유학의 원지(願志)에 맞추어 보살의 수특(殊特)하고 넓은 서원으로 섭취하는지라, 

억ㆍ백천해ㆍ조ㆍ재의 겁수가 걸리더라도 이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이때 금강장보살 대사가 이 같은 도주(道住)를 연설하고서 바로 게송으로 이같이 읊었다.

 

이처럼 그 마음이 순수하기에

자신의 심성을 닦아 다스리노라.

그 뜻이 이미 진실하고

유순하며 조화로워서

 

온갖 탐욕의 습관을 버리고

최상의 도를 흠모하노라.

그 행이 지극히 넓고 크더라도

한결같이 제2의 업에 있으니

 

공덕을 지켜서 여기에 머물되

온갖 덕의 근본을 쌓아서

살생을 멀리 여의었기에

마음속으로 해친다는 생각조차 내지 않고

 

인색하고 질투하는 행을 여의어

남의 아내를 넘보지 않고

진실하기에 거짓말 하지 않고

욕설이나 아첨하는 말도 안 하고

 

노여워하고 탐내는 행을 없애서

언제나 대자비를 닦으며

정견의 업에 들어가

질박한 행동으로 아첨하지 않고

 

애착을 끊어 스스로 잘난 체 함을 버리는 것으로

성품을 삼아 법요를 거행하며

장차 세존이 가르침을 수호하여

언제나 행하되 게으르지 않노라.

 

지옥은 고통스러우며

축생 또한 이러하니

부처님 가르침의 휘황한 빛이

언제나 아귀의 기갈을 면하게 하네.

 

모든 사악하고

착하지 못한 마음씨를 버리고

온갖 해로운 것을 소멸시켜

뜻을 크게 하여 법을 섬기고

 

스스로 그 마음을 닦아서

날 적마다 좋은 곳으로 나아가

삼십삼천에 이르니

그 적연한 영안(永安)에 한없이 편안할세라.

 

연각승(緣覺乘)

성문승(聲聞乘) 및 정각(正覺)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열 가지 일이

청백(淸白)이란 구절에서 생겨날지니

 

이것을 관찰하여

게으름 피우지 말고 늘 닦아 가거라.

금계(禁戒)에 굳게 뜻을 세우고서

남을 권화하되

 

이에 한층 대비심을 보태면

품성이 햇빛처럼 자애로우리니

고뇌 받는 중생을 관찰하고서

애틋한 마음을 일으키노라.

 

모두 사견에 떨어져

이런 것을 마음에 새겨 두고

독한 마음으로 노여움을 품어

생각마다 남과 다투기를 좋아하니

 

늘 속된 생활48)을 싫어하지 않고

도리어 그 경계를 아끼는지라.

내 마땅히 이를 제도하여

이 같은 3액(厄)을 벗겨 내리라.

 

커다란 암흑으로 이루어진

그 성품이 참으로 어리석기에

나쁜 길로 빠져들어

사견의 그물에 떠도는지라

 

내가 생사를 오고 가면서

방편의 행으로 이를 제도하리니

6도의 유정을 제도하여

5음을 벗겨 내리라.

 

온갖 진로(塵勞)를 소멸시켜

4사(使)의 구렁을 넘어가고

고통스러운 삼계의

불타오르는 고뇌를 소진해서

 

영원히 아신(我身)의 세력과

오아상(吾我想)에 대한 탐착을 끊어 내리라.

내가 이 같은 이유로

고행을 하여 중생을 해탈시키되

 

속마음은 가장 존귀하고

위없는 부처님 지혜에 둘지니

여기에 인도받아 지성으로 닦아서

열등하고 나약한 마음을 버리고

 

뜻을 넓게 세워

모든 여래의 지혜도에서

한량없는 정진에 힘써서

부처님 도를 견고하게 성취하리라.

 

이같이 적멸한 공훈에 머물러

온갖 덕의 근본을 쌓되

수없는 부처님을 뵙고서

모두 공양드리고

 

평등한 청백법의 구절을 터득하면

백천억의 겁수 동안

그 신업(身業)이 걸림 없으리니

의업과 구업 또한 이러하리라.

 

모든 불자가 이에 머물러

시의(時宜)에 맞게 법륜을 굴려서

중생을 개화하여

10선업을 행하게 하고

 

청정한 행의 근본을

모두 쌓아

중생을 구제하고 보호하니

중우(衆祐)의 10력(力)이 강성해져서

 

때가 되어 발심할 무렵에

나라와 재산을 버리고

부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사문이 되어

용맹스럽게 수행하리라.

 

큰 정진에 능통하여

존귀한 삼매의 선정에 들어가

수없는 모든 부처님을 뵙고서

때에 맞게 부처님 세계에 감응하듯이

 

신통을 약간이나마 나타낸 것이

헤아릴 수 없어라.

세계마다 나아가

각기 이러한 도주(道住)에 머물게 하고

 

이미 여기에 머물렀다면

최상의 미묘한 지혜 이루고자 원력 세워

약간의 신통 변화로써

중생을 개화하면

 

이것이 제2주의

대성인이 베푸는 것일지니

세간의 모든 중생들을 가엾게 여겨야

최상의 보살이 되리라.

 

이와 같은 최시상법(最始上法)의 보살 제2 주지의 경계가 불가사의하여 지진(至眞)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듣고 나자, 

모든 불자들이 기뻐하며 몸가짐을 공경스럽게 가다듬고 허공에 머물러 하늘 꽃을 비가 내리듯이 뿌리면서 제각기 외쳤다.

“훌륭하십니다. 

공덕이 수미산왕(須彌山王)과도 같습니다. 

금계(禁戒)의 근원을 이미 분별하여 말씀해 주셨으니, 

마음속으로 일체의 중생들을 가엾게 여기셔서 이제는 존귀하고 미묘한 세 번째 행의 근본을 풀이해 주십시오. 

하시는 말씀이 지극히 참되기에 영원히 변치 않을 것입니다. 

온갖 보살의 행이 가장 높은 위없는 것이기에 세간의 일체 중생을 안락하게 하고자 하니, 

원컨대 이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제1지는 그 수습이 미묘해서 한층 더 공순(供順)한 것이기에 인간과 천신이 존중하는 바입니다. 

제2 이구지(離垢地)의 보살의 존귀한 도주[住]는 애욕을 제거하여 정진을 이루는 지위이면서 커다란 법의 지혜를 건립하는 진여(眞如)의 행이기에, 

보시를 행하고 금계를 섬기면서 은혜를 베풀어 대성(大聖)을 이루고자 인욕에 정진하니, 

적연한 일심(一心)으로 어질게 지혜를 닦아 자심(慈心)이 뛰어나게 되고, 

대비로써 도를 행하되 대중을 돕고자 청정한 행을 선포하는 것이 마치 달빛과도 같습니다. 

금강장께서 제3주를 풀이해 주시되 즐거운 마음으로 잘 설명해 주신다면, 

모두 기뻐하며 이에 감득해서 도의(道意)를 일으키지 않는 이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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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범어 samaya의 한역어로서 불ㆍ보살과 일체 중생을 평등하게 가지(加持)하는 것. 

본문은 ‘대혜광삼매로써 불ㆍ보살과 일체 중생을 평등하게 가지한다’는 뜻이다.

2 산란(散亂)을 여의고 일심(一心)에 계합(契合)하여 사물의 전도상(顚倒相)을 관찰하는 것. 

정심(正心)이라고도 한다.

3 범어 karmaṇyatva의 한역어. 

‘조유(調柔)하다,’ ‘조적(調適)하다’라고 번역한다. 

이근(耳根)의 성품을 돌이켜 산란심을 여의고 선법을 수긍한다는 뜻이다. 

『지도론』에서는 “바람이 거세면 등잔에 불을 붙이지 못한다”고 우회적으로 설명하고 있기에, 

본문은 앞 구절의 정의와 연관을 지어 단지 마음을 가다듬는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4 ‘응화수적(應化垂迹)’의 준말. 

중생의 선근(善根)의 기연(機緣)에 감통(感通)하여 법신의 묘용(妙用)을 나타낸다는 뜻이다.

5 ‘미진수(微塵數)의 찰토(刹土)’란 뜻으로 ‘불국토의 수량이 한량없이 많다’는 뜻이다.

6 범어 prabhāsa의 역어. 

현현(顯現), 

즉 응신(應身)을 나타낸다는 뜻이다. 

또 ava-bhāsana의 역어이기도 하다. 

이 경우에도 조명(照明)은 사생(似生)이라 번역되나, 

이 또한 응신(應身)을 나타낸다는 뜻이 담겨 있다.

7 본행(本行)이라고도 한다. 

인위(因位)의 보살행이 성불의 과(果)를 가져오기에 본행이라고 한다. 

여기서 소행(所行)이나 행(行)은 범어 gocara의 역어로서 소(所)는 미래과를 현시하는 접두사로 쓰인다. 

또 buddha가 gocara와 격한정복합어(格限定複合語)로 결합하는 경우, 

경계(境界)로 의주석(依主釋, 

tatpuruṣa) 하는 번역의 예도 있다.

8 고려대장경 원문(이하에서는 고려대장경을 생략하고 원문이라고만 표기한다.)은 수시(隨時). 

범어 yathā kālam의 번역이다. 

‘시의 적절하게’라는 뜻이나 여기서는 ‘때에 따라’로 번역해 둔다.

9 보살의 의역이다. 

‘중생을 개화(開化)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10 『범망경』 하권의 “내가 지금 이 세계에 나온 것이 이미 8천 번이나 되니느라”라는 대목에 전거한다. 

원문의 왕반주선(往返周旋)은 “열반에 드셨다가 다시 나오시니”이다. 

여기서는 ‘왕반의 주선’으로 번역해 둔다.

11 여기서 도무극(度無極)은 paramita의 구역이다.

12 원문은 ‘일체제불(一切諸佛)’이니, 

sarva-buddha의 역어이다. 

여기서 sarva는 일체(一切), 

또는 소유(所有)로 한역된다. 

따라서 ‘제불(諸佛)’의 ‘제’는 여기서 단지 음독(音讀)을 돕기 위한 발어허사(發語虛詞)로 쓰이기에, 

지금까지 제불(諸佛)이나 제법(諸法)의 제를 ‘모든’으로 풀이한 것은 착오(錯誤)이다. 

본 번역에서는 ‘3세(世)의,’ 또는 ‘모든’으로 상황을 고려해 의역(意譯)해 둔다. 

참고로 제법(諸法)의 한역이 굳어진 것은 아마도 bhāva[有法]의 복수형을 제법(諸法)으로 번역한 것에서 유래해서 dharma도 서사(書寫) 과정에서 제법(諸法)으로 번역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13 원문은 ‘결망(決網)’. 

여기서 결(決)은 ‘터놓다’란 뜻이다.

14 원문은 ‘혹란(惑亂)’으로, 

이는 혹염(惑染), 

즉 탐ㆍ진ㆍ치 3독에 전도(顚倒)되어 실상을 깨닫지 못하고 진리에 어긋나게 이해한다는 뜻이다.

15 본원(本願)을 가리킨다.

16 원문은 ‘소념(所念)’. 

염(念)은 smṛti의 한역어로서 정념(正念)이라고도 역출된다.

17 원문은 ‘입(入)’. 

antar-gam의 한역어이므로 ‘섭입하다’로 번역해 둔다. 

참고로 처(處)의 구역(舊譯)인 입(入)은 āyatana이다.

18 원문은 ‘소치(所致)’. 

‘……인 까닭에’라는 뜻이나 여기서는 ‘가피를 받다’로 번역해 둔다.

19 득입(得入)은 prāpta의 한역어로서 『구사석론』에서 보이는 ‘지득(至得)’과 같은 뜻으로 ‘증득하다’란 의미이다.

20 원문은 ‘행통(行通)’. 

범어 abhijňa-caryā의 역어로서 신통행(神通行)이라 역출된다. 

여기서는 『법상명의집』에 근거해서 ‘자재한 행’으로 번역해 둔다.

21 원문은 ‘소생(所生)’. 

범어 jan의 과거수동분사 jāti의 역어. 

생(生)ㆍ소생(所生)등으로 역출된다. 

정의학(正義學)에서는 과거에 이미 행해졌다는 의미에 가차해서 관례적으로 과위(果位)에 배당한다. 

여기서는 ‘세간에 다시 태어나지 않기에’로 번역해 둔다.

22 원문은 ‘월성(月盛)’. 

‘달이 차다’는 뜻으로 공덕의 원만함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만월로 번역해 둔다.

23 원문은 ‘감회기허(感懷飢虛)’이며, 

직역하면 ‘감득하고자 하는 마음에 기갈이 들려’이다. 

이것은 ‘여러 보살이 법을 구하는 마음이 지극하다’는 뜻이다.

24 원문은 ‘흥별(興別)’. 

여기서 별(別)은 별삼승(別三乘)의 법(法)을 가리킨다. 

삼승법(三乘法)의 발흥은 여래승(如來乘)에 속하기에 경문에서 ‘별법을 일으키는 것이 가장 알기 힘들다’고 말하는 것이다.

25 수특(殊特)은 범어 at(i)-bhūta, 

즉 adbhuta의 한역어로서, 

초월적(超越的)이란 뜻의 형용사이다. 

대부분의 경전에는 기특(奇特)으로 번역되어 있다. 

여기서는 번역의 예가 특수하기에 수특(殊特)으로 직역해 둔다.

26 원문은 ‘기리호의무유예호어사법요(豈離狐疑無猶豫乎於斯法要)’이다. 

이 구문은 niṣkāṇkṣo dharma śāsana, 

즉 ‘어제법요무유의혹(於諸法要無有疑惑)’이다. 

원문은 ‘어제법요(於諸法要)’에 해당하는 ‘어사법요(於斯法要)’가 도치된 구문이나, 

본 경문에서는 후술되는 도치구를 나누어 놓았다. 

‘이호의(離狐疑)’는 원래 형용사 niṣkāṇksa의 번역이지만 본문의 맥락에 따라 ‘간특한 의심을 없애다’로 번역해 둔다.

27 ‘앙망하나이다’라는 뜻으로 서간체(書幹體)의 문구로 자주 쓰인다. 

여기서는 ‘세속적인 바람’이란 뜻으로 쓰인다.

28 원문은 ‘회포(懷抱)’로, 

‘마음속에 묻어 둔다’는 뜻이나, 

여기서는 ‘바르게 알지 못하고 이리저리 재보는 것’을 말한다.

29 dāna-ślā의 역어. 

‘보시를 베푸는 집’이란 뜻이다.

30 원문은 ‘지각(志覺)’, 

sati-saṃbojjhaṅga의 이역이다. 

7각지(覺支) 가운데의 염각지(念覺支)를 말한다.

31 세간인(世間忍)과 출세간인(出世間忍)을 본문에서는 인세계(忍世界)라 하였다.

32 4무애변(無礙辯)의 네 번째, 

변무애변(辯無礙辯)을 일곱 가지로 나눈 가운데에서의 첩질변(捷疾辯)ㆍ이변(利辯)ㆍ부진변(不盡辯)ㆍ불가단변(不可斷辯)ㆍ수응변(隨應辯)ㆍ의변(義辯)ㆍ일체세간최상변(一切世間最上辯)을 가리킨다. 

이 7변(辯)은 불ㆍ보살만이 가지(加持)하는 것이기에 본문에서 이를 높여 변재존(辯才尊)으로 달리 호칭하고 있다.

33 원문은 ‘여(如)’. 

sama-sādṛśa의 번역으로 본문에서는 전술된 문구에서 서술하는 대목을 연결해 주고 있다.

34 자연(自然)은 dharmatā의 역어로 법이(法爾)라고도 번역한다. 

따라서 본문의 ‘오아(吾我)의 자연’이란 바로 dharma-nairātmya-kovida, 

즉 무아법(無我法)의 해득(解得)을 가리킨다.

35 원문은 ‘함락여일적(咸樂如一滴)’. 

여기서 일적(一滴)은 bindu의 번역으로 운(韻)에 맞추어 수지한다는 뜻이다. 

한마디 말마다 분명하게 기억해서 실행하겠다는 의미이다.

36 본래는 감관이 결여된 불구자를 뜻하나, 

여기서는 무근(無根), 

즉 불신자(不信者)를 가리킨다.

37 십진수에서 정(正)의 1만 승(乘)에 해당하는 수(數)를 말한다.

38 성지(聖智)의 일불승(一佛乘)에서 중생의 근기에 따라 3승을 가르는 것을 가리킨다.

39 범어(梵語) bhagavat의 구역(舊譯). 

신역(新譯)은 바가범(婆加梵)이고, 

의역(意譯)은 세존(世尊)이다.

40 유발(有髮)이라는 뜻에 가차해서 중생을 가리키는 말로서 범어 vāla-patha-pṛthag- jana의 번역이다. 

보리류지(菩提流支) 번역의 『금강반야경(金剛般若經)』에서 ‘모도범부(毛道凡夫)’로 이역(異譯)되어 있다. 

일부에서 여서(黎庶)나 모도중생(毛道衆生)은 bāla-pṛthag-jana의 오전(誤傳)으로 간주하기도 하나, 

본문의 예에서 보이듯이 이것은 출가와 재가, 

즉 신해(信解)의 성취(成就) 여부를 분별하는 용어이다.

41 원문은 ‘무유사상(無有思想)’. 

중생을 구제하더라도 내가 중생을 구제하였다는 생각조차 일으키지 않는다는 뜻이다.

42 원문은 ‘불구인편(不求人便)’. 

타인을 교사하여 살인을 도모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43 원문은 ‘불미중인(不微中人)’. 

여기서 미(微)는 숨긴다는 뜻으로 범죄(犯罪)의 복장(覆藏)을 가리키며, 

중(中)은 응대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본 조문을 ‘숨길 것이 없어 사람들을 대해도 떳떳하다’로 번역해 둔다.

44 원문은 ‘황부유리 유획재보 공상귀견 이선허호(況復由利有獲財寶貢上歸遣而宣虛乎)’. 

본래는 한 문장이나 문맥의 편의상 구(句)를 나누어 ‘항부유리 이선허호(況復由利而宣虛乎)’와 ‘유획재보 공상귀견 이선허호(有獲財寶貢上歸遣而宣虛乎)’로 조정하여 번역해 둔다. 

원뜻은 ‘큰 재물이 생기거나 벼슬을 얻는다 하더라도 물리치고 사양할 터인데, 

어찌 이익 때문에 부당한 말을 하겠습니까?’이다.

45 원문은 ‘길량지일불택시절(吉良之日不擇時節)’. 

여기서 일(日)은 ‘점을 치다’라는 뜻이나, 

여기서는 단지 ‘시절의 길흉을 가리지 않고’ 정도로 번역해 둔다.

46 원문은 ‘불료무근(不了無根)’. 

여기서 근(根)은 뿌리란 뜻이 아니라 śraddhā- indriyam, 

즉 신근(信根)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연각이 숙세(宿世)의 선근(善根)으로 인해서 최후생(最後生)에 불법(佛法)을 믿고 좋아하지 않고도 해탈을 성취하는 것을 말한다.

47 원문은 ‘이심(異心)’. 

마음으로 여래(如來)의 염처(念處)에 조복(調伏)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48 원문은 ‘불염권속(不厭眷屬)’. 

처자식에 애착하여 이를 싫증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속된 생활’이라 번역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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