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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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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63-08-30_불설살라국경_001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19. 8. 30. 13:05



®

『불설살라국경』
K0503
T0520

살라국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불설살라국경_K0503_T0520 핵심요약



♣0503-001♧
『불설살라국경』


살라국




◆vtsr1051

◈Lab value 불기2563/08/30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Barbara - Medley.lrc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Theophile Steinlen-aux-iles-original-drawing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Astrophytum_flower_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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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aly ,Rome


○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상세정보=> http://buddhism007.tistory.com/5795


♥ 잡담 ♥한마디로 불교는 무엇을 제시하는가. 

요즘 경전 사이트에서 계속 1514 권 경전을 모두 한번 살펴보려고
살피는데 솔직히 많이 피로함을 느낀다. 
정신적인 피로감이 더 심하다. 

그런 가운데 불교는 무엇을 제시하고 일반적인 입장과 무엇이 다른가. 
이런 가장 기본적인 점을 생각해보게 된다. 
즉, 도대체 이런 많은 경전은 무슨 내용을 제시하려고 그런가. 
이런 의문을 갖는다. 

그래서 생각해보면 불교는 나쁨을 모두 제거하고
좋음을 주기 위한 부처님의 가르침이다라고 간략히 제시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도 단순한 좋음이 아니고 
자신도 좋고 남도 좋고 온 생명이 제한없고 차별없이 모두 좋고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고 오래오래 무량하게 좋고 
이 측면도 좋고 저 측면도 좋고 두루두루 모든 측면이 좋은 상태를 
성취하게끔 하기 위한 내용이라고 제시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상태를 성취하게끔 하기 위한 방편이 
일반적으로 좋음을 얻기 위한 방편과 대부분 극단적으로 그 내용이 반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일반적 입장에서 이 사정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왜 이런 극단적인 입장 차이가 나타나는가를 
또 간단하게 제시한다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그것은 결국 한 주체가 현실에서 대하게 되는 내용의 정체에 대해서 
그리고 그로 인해 인과관계상 발생하는 결과에 대해서 
일반인의 입장과 극단적으로 그 내용이 다르기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본다. 

어떤 이가 눈을 떠서 자신의 몸도 보고 세상의 모습도 본다고 할 때 
우선 그렇게 보게 되는 내용의 정체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일반인의 입장과 불교 경전에서 제시하는 입장이 극단적으로 다르다. 

그런 가운데 예를 들어 
지금 어떤 이가 이런 행위를 하면 그로 인해 
어떤 결과를 얻게 되는가에 대해서도 
그 인과를 살피는 기간도 다르고 
그런 결과 그 구체적 판단도 다르다. 

중국고사에도 새옹지마라는 이런 내용이 있다. 
어떤 이가 말을 하나 얻었는데 그것이 어떤 결과를 일으키는가. 
그래서 그 사건이 과연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 
이런 문제가 제기될 때 이 새옹지마라는 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처음 말 한마리를 공짜로 얻었다. - 좋다. 
그런데 그것을 아들이 타고다니다 떨어져서 발이 불구가 되었다. - 나쁘다. 
그런데 이후 전쟁이 났는데 아들은 불구 상태라 다행히 죽지 않았다. - 좋다. 
또 그런 말이 어느날 없어졌다. - 나쁘다. 
그런데 그 말이 나중에 보니 밖에 나가서 다른 암말을 하나 데리고 돌아왔다. - 좋다. 

대충 순서가 맞는지 모르지만, 하나의 말을 얻게 된 이후 
그 말로 인해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이 이처럼 다양하다. 

그래서 하나의 사건을 좁고 짧고 얕게 관찰하는 협단천 관찰 입장에서 그에 대해 판단하는 내용과 
대단히 넓고 길고 깊게 관찰하는 광장심 관찰 입장에서 판단하는 내용이 
하늘과 땅의 차이처럼 극단적으로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앞의 새옹이라는 할아버지가 말을 얻은 후
그 이후 시점에서 그 말과 관련해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이 다양한 성격이 됨을 보았지만, 
그러나 이 사건도 할아버지의 입장이나 다른 아들의 입장이나 
또는 이웃 주민이 보는 입장이 다 다르기에 그것도 또 고려해야 하고
또 한 정지단면을 놓더라도 어떤 기준에서 어떤 측면을 놓고 판단하는가에 따라 
그 판단내용이 달라지게 된다. 

그래서 지금 땅에 하나의 씨를 뿌린다고 할 때 
그것이 장차 어떤 열매를 맺게 되는가를 
협단천 관찰입장에서 보는 것과 
광장심 관찰 입장에서 보는 내용이 극단적으로 달라진다. 

가장 짧게 보면 땅에 씨를 하나 뿌리는 것은 
그 씨를 버리고 낭비하는 일이 될 뿐이다. 
그런데 길게 보면 그렇지 않다. 
그래서 이것이 정반대 방향이 된다. 

그런데 일반적인 입장에서도 이런 인과를 관찰하고 판단하지만, 
다시 이런 일반적 입장과 불교의 입장이 달라지는 사정은 
한 주체의 한 생의 기간만을 한정해 이를 살피지 않고 
생사를 넘어서 그 이후 무량겁에 걸쳐 펼쳐지는 인과문제를 놓고 
이를 판단하는 점에서 또 다시 극단적으로 차이가 나게 된다. 

그래서 경전에서 제시하게 되는 좋음을 얻기 위한 방안과 
일반인의 입장에서 좋음을 얻기 위한 방안으로 생각하는 내용이 
극단적으로 차이가 나고 대부분 반대 방향이 된다. 

그런데 또 이 문제를 살피려면 
일반적으로 한 주체가 자신이라고 여기며 대하는 내용의 정체가 무엇이고 
도대체 생사를 넘어서까지 한 주체가 자신이나 자신과 관련된 일들로 고려해야 하는 것들의
정체가 무언가부터 또 잘 판단해야 한다.

일전에도 시공간 여행을 하는 주체의 문제로 이를 살폈는데 
이는 간단히 다음의 문제다. 


눈을 감고 뜨는 그 두 순간에 자신이 계속 존재한다고 여기는가. 
그렇다면 이 두 시점에 계속 유지되고 이어지는 자신은 무엇인가. - 일단 눈으로 보게 되는 내용은 아니다. 

그리고 잠을 자거나 깨거나 
또는 사고나 음주로 의식을 잃거나 의식을 잃지 않거나 이런 두 순간에 자신이 계속 유지되고 존재한다고 여기는가. 
그렇다면 이 두 시점에 계속 유지되고 이어지는 자신은 무엇인가. - 일단 감각을 하거나 분별을 하는 그런 내용은 아니다.

그리고 다시 자신이 사망해서 장례식을 치루고 화장터로 들어간 전 후 이 두 순간에 자신이 계속 유지되고 존재한다고 여기는가. 
이런 것이 찾아지지 않는다면 여기까지가 현실에서 자신의 일로 고려할 범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앞과 같은 입장에서 자신의 본 정체를 확인하다보면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확인하게 되고 
따라서 한 주체는 생사를 넘어서 이어지는 자신을 놓고 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불교 용어로는 제 8 식이나 아뢰야식과 관련되는 문제다. 
그래서 결국 이런 내용 때문에 현실에서도
정신적 육체적 그 내용이 전혀 다른 갓난아이와 노인시절이 일들이 하나의 주체의 일로 판단되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이런 여러 입장 때문에 
비록 무언가 나쁨을 제거하고 좋음을 추구한다는 기본 성격은 공통하더라도 
경전에서 제시하는 방안과 
일반적인 입장에서 판단하는 내용은 극과 극으로 정반대 방향의 내용이 제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욱이 한 정지단면에서 한 주체가 대하는 내용의 본 정체가 무언가에 대해서도 
그 판단은 극과 극으로 다르게 된다. 

예를 들어 자신이 눈을 떠 평소 자신의 몸으로 여기고 대하게 되는 그 부분이나
또는 자신이 눈을 떠 책상이나 사과로 여기고 대하게 되는 그 부분을 놓고
그 본 정체가 무언가에 대해서도 그 판단은 극과 극으로 다르다.

일반적 입장은 당연히 이들 내용이 
곧 자신의 몸이기도 하고 자신이기도 하고 
또 책상이나 사과라고 여기고 
그것이 곧 외부 세계의 내용이고 
자신의 감관이 대하는 외부대상이기도 하고 
그리고 이런 내용들은 자신의 마음 밖 외부에 있는 내용으로서 
마음과는 구별되는 외부 물질이고 
이런 내용은 자신 뿐만 아니라 영희나 철수를 비롯해 대부분이 같이 얻고 대하는 
외부의 객관적 실재라고 여기지만, 

불교 경전의 입장은 기본적으로 이런 판단이 모두 잘못된 망상분별임을 
제시하는 데 핵심이 있다. 

그래서 어떤 한 내용을 놓고 그 본 바탕이 되는 실재를 꿰뚫어 관하는 가운데 
그 정체를 올바로 관하고 
또 그 내용도 무량겁에 걸쳐 넓고 길고 깊게 관해서 그 내용을 살피기에 
결국 이들 판단은 극과 극으로 차이가 있게 된다. 

경전의 입장은 결국 
현실에서 어떤 이가 A( 자신이나 세상)라고 여기고 대하는 그 부분은 
그런 A 가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는 데에 핵심이 있다. 
그래서 그런 부분은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A의 상을 얻을 수 없고
그런 A 가 아닌 가운데 단지 그런 부분을 A 라고 일컬어 가리키면서
현실에 임하게 된다는 사정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이런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어하고 
또 경전에서 제시하는 입장에 대해서도 쉽게 공감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물론 감각현실은 관념분별이 아니고 
또 관념분별은 감각현실이 아니다. 
그리고 이들 내용은 또 본 바탕의 실재가 아니고 
또 본 바탕의 실재도 이들 내용이 아님을 잘 이해함으로써 
쉽게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취하는 입장과는 극단적으로 차이가 난다. 

결국 이는 현실에서 각 주체가 일반적으로 집착하고 대하는 내용에 대해서 
집착을 갖고 임하는가 아닌가의 차이를 발생시킨다. 
그리고 경전에서 한 주체가 극심한 생사고통을 무량하게 겪게 되는가 
아닌가 하는 차이도 바로 이 부분에서 발생한다고 제시한다. 

즉 무명 어리석음 망집분별 번뇌 집착 - 업 - 생사고통의 관계가 
일반적인 생사현실의 문제현상이 되고
반대로 이런 문제현상을 제거하고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고 
또 다른 주체들도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게끔 하는 것이 
불교 경전에서 제시하는 수행의 내용이 된다. 
또 이를 위해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받는 다른 중생에 눈높이를 맞추어서 
그런 생사현실에 들어가 임해서 
그 안에서 무량한 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쌓아서
불국토를 장엄하고 무량한 중생을 제도하고 성불하는 것을
경전에서 수행의 궁극적 목표점으로 제시하게 되는 사정도 이런 현실 사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문서정보 ori http://buddhism007.tistory.com/8485#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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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63-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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