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백유경
- 반야심경
- 장아함경
- 마하반야바라밀경
- 유마경
- 정법화경
- 가섭결경
- 방광반야경
- 종경록
- 대지도론
- 금강삼매경론
- 수능엄경
- 마명
- 아미타불
- 묘법연화경
- 대반야바라밀다경
- 대반열반경
- 증일아함경
- 대방광불화엄경
- 유가사지론
- 잡아함경
- 유마힐소설경
- Japan
- 중아함경
- 대승기신론
-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
- 대방광불화엄경60권본
- 마하승기율
- 원각경
- 무량의경
- Since
- 2551.04.04 00:39
- ™The Realization of The Good & The Right In Wisdom & Nirvāṇa Happiness, 善現智福
- ॐ मणि पद्मे हूँ
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4-08-25_십주비바사론-K0584-012 본문
『십주비바사론』
K0584
T1521
제12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안내
○ 해제[있는경우]
● TTS 음성듣기 안내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십주비바사론』 ♣0584-012♧
제12권
♥아래 부분은 현재 작성 및 정리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 2017_0322_121713_nik_ct19.jpg
○ 2020_0113_190415_nik_BW21_s12.jpg
○ 2020_0128_094331_can_Ab35.jpg
○ 2017_0215_021859_nik_ct37.jpg
○ 2018_0630_163214_nik_ab7.jpg
○ 2020_0507_184133_can_ct28.jpg
○ 2020_0131_161340_can_CT33.jpg
○ 2020_0606_140120_can.jpg
○ 2020_0131_161306_can_Ab31_s12.jpg
○ 2020_0326_145310_can_ct27.jpg
○ 2018_0722_143030_can_ct18.jpg
○ 2018_0722_144854_can_Ar26.jpg
○ whaletts.jpg
○ 2020_0211_134415_nik_ct18.jpg
○ 2018_0815_121330_can_ct32.jpg
○ 2019_0405_153725_can_Ab7.jpg
○ 2020_0606_164708_nik_bw17.jpg
○ DSCN6757_exc.jpg
○ 2017_0224_161535_can_ct8.jpg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十住毘婆沙論卷第十二 資
K0584
십주비바사론 제12권
용수 지음
후진 구마라집 한역
번역
24. 찬게품(讚偈品)
이미 이와 같이 마흔 가지 특수한 법을 풀이하여 마쳤으므로,
이 마흔 가지 특수한 법의 모양을 지니고 부처님을 생각하여야 한다.
또 여러 게송으로써 부처님을 찬탄하되 마치 현재 앞에 대면하여 같이 말하는 것처럼 하여야 하리니,
이와 같이 하면 곧 염불삼매(念佛三昧)를 이루리라.
다음 게송의 말씀과 같다.
거룩하신 어른께서 크게 힘써 나아가
마흔 가지의 법을 혼자만이 지녔나니
저는 이제 부처님의 앞에서
존경하는 마음으로 찬탄하옵니다.
뜻대로 함과 날아다니시는
그 힘은 그지없고 한계 없나니
성스러움과 뜻대로 하시는 중엔
견주며 같을 이가 없사옵니다.
소리 듣는 가운데에 자재하시고
다른 이의 마음 아신 지혜 한량없으며
마음을 잘 조복할 수 있으시어
뜻을 따라 알맞게 하시옵니다.
그 생각은 마치 큰 바다와 같아서
담연(湛然)히 편안함과 고요함에 계신지라
세간에서는 능히
요란할 수 있는 이의 법이 없사옵니다.
금강삼매의 보배야말로
모든 부처님께서 찬탄한 바이니
그를 얻어 가슴 안에 간직하심이
어진 이의 정직한 마음 품은 것 같나이다.
정해지지 않은 법을 잘 아시고
4무색정의 일과
미세하여 분별하기 어려운 것도
남김없이 모두 다 아시옵니다.
중생이 이미 없어진 것과
이제 없어지고 장차 없어질 것을
오직 혼자 세존만이 지니고 계신
지혜로써 능히 통달하옵니다.
마음과 서로 응하지 않는
빛깔이 아닌 법[非色法] 중의 일과
일체의 모든 세간에서
모두 다 알 수 없는 것을 잘 아옵니다.
세존의 크신 거룩한 힘과
공덕이야말로 헤아릴 수 없으며
지혜도 끝이 없어서
모두가 같을 이 없사옵니다.
네 가지의 묻고 대답하는 중에선
뛰어나시어서 짝할 이가 없으며
중생들 모두가 질문하여도
일체 모두를 쉽게 대답하옵니다.
만약 모든 세간의 가운데에서
부처님을 해치려 하는 이 있다면
이 일은 모두가 이뤄지지 않으리니
살생(殺生) 않는 법을 이룬 까닭이옵니다.
아침과 낮과 밤의 세 때 동안에
여러 가지 하신 말씀 계신다 하면
그 말씀은 반드시 허망하지 않아서
언제나 큰 과보가 있사옵니다.
무릇 말씀하신 법이 있으면
이는 있기 드문 일 아님이 없으며
뜻도 오히려 그릇되지 않거든
하물며 하시는 말씀이겠나이까.
세 성인[三聖]의 제자 가운데는
상ㆍ중ㆍ하로 등급이 갈라지며
4쌍(雙) 8배(輩)의 무리 중에서
첫째가는 크신 길잡이이옵니다.
몸ㆍ입ㆍ뜻의 업과 생활에 있어
마지막까지 항상 깨끗하시나니
그러므로 이 가운데에선
다시는 막고 지킬 필요가 없나이다.
스스로가 일체지(一切智)라 말씀하실제
어떤 사람이 와서 부처님께
아마도 모르는 것 있으리라 힐난해도
마음엔 의심과 두려움이 없나이다.
스스로가 번뇌의 다한 모습 말씀하며
샘이 없는[無漏] 끝까지 모두 이르셨는데
남은 번뇌 다하지 않았다고 할 적에
마음엔 의심과 두려움이 없나이다.
스스로가 장애되는 법을 말씀하시되
거기에서 의혹과 망설임이 없나니
어떤 이가 이 법을 쓴다고 하더라도
능히 장애하지 못하리이다.
여덟 가지 거룩한 도를 말씀하는데
말하기를 이 여덟 가지 도로서는
해탈에 이를 수 없으리라 하여도
마음엔 의심과 두려움이 없나이다.
이것이 원인이며 이것이 결과요
이는 인과 아님을 사실대로 아시므로
일체지 지닌 이라 부르시나니
명성의 유포됨이 한량없나이다.
3세의 온갖 업의
이 모든 업의 정해진 과보요
그리고 정해지지 않은 과보라는 것을
갖가지로 모두 다 아시옵니다.
모든 선정과 삼매 중에
거칠고 세밀하고 깊고 얕은 일을
모두 다 분명히 아시는지라
선정 중에서 같은 이가 없사옵니다.
먼저 중생들의 근기의
상ㆍ중ㆍ하의 차별 있음과
갖가지 즐겨함과 성품을 아시어서
마땅함을 따라 법을 말씀하옵니다.
도를 행하여 모든 이익 얻으시고
겸하여 사람들을 교화하시나니
이로써 가르침을 받는 이들은
사실대로 좋은 이익 얻사옵니다.
전생 일 아심이 한량없으며
하늘눈으로 봄도 그지없나니
온갖 사람과 하늘 중에선
그의 한계를 아지 못하옵니다.
금강삼매에 머무르시어
번뇌와 습기를 없애셨으며
또 사람의 번뇌 다함을 아시나니
그러므로 번뇌 다한 힘[漏盡力]이라 하옵니다.
번뇌의 장애와 선정의 장애와
그리고 온갖 법의 장애인
세 가지 장애에서 해탈을 얻었기에
걸림 없는 해탈[無礙解脫]이라 부르옵니다.
마혼 가지의 함께 할 수 없는 법은
그 공덕이 한량없어서
자세히 말할 수 있는 이가 없지만
제가 이미 간략하게 말씀하였나이다.
세존께서 혹은 1겁 동안에
이 부처님의 법을 말씀하여도
오히려 다할 수 없을 것인데
하물며 지혜 없는 저이겠나이까?
세존의 크신 사랑과 음덕으로
한량없는 업을 잘 모으셨으며
네 가지의 공덕 때문에
부처님의 한량없는 법을 얻었나이다.
세존께서 칭찬하며 말씀하시는
네 가지 공덕의 훌륭한 것은
저는 이제 도리어 이것으로써
여래를 찬탄하겠나이다.
서른두 가지 모습을 갖추시어
모습마다 백 가지 복덕을 지닌
여든 가지 잘 생긴 모습이 있사온데
삼계에서 그 뉘가 지닐 수 있으리.
삼천대천세계의
중생들이 지닌 온갖 복과
과보를 백 갑절하게 되어야
모습엔 이만큼의 덕을 지녔나이다.
이와 같은 모든 복과 덕이며
그리고 아울러 그의 과보를
다시 백 갑절하게 되어야
하나의 흰털 모습[白毫相] 이루옵니다.
서른 가지 모습 하나하나의
복과 덕이며 그리고 과보를
다시 천 갑절 하게 되어야
하나의 살상투 모습[肉髻相]이루옵니다.
세존의 모든 공덕이야말로
잴 수도 없고 헤아릴 수 없는 것이
마치 사람이 한 자와 한 치로써
허공을 헤아릴 수 없는 것 같나이다.
맨 처음 큰마음을 내어서부터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까닭에
한량없는 겁 동안 굳은 마음 지녔나니
그 때문에 부처님 도(道) 이뤘나이다.
이와 같은 크신 서원을
애써 충만하게 이루려 하여
한량없는 겁을 지나는 동안에
여러 어려운 고행을 행하셨나이다.
옛날의 모든 부처님같이
네 가지 공덕을 말씀하셨는데
한량없는 겁 만에 이루셨으니
이젠 그에 편안히 머무르게 되었나이다.
본래 참된 진리[實諦]를 보호하기 위하여
몸과 친히 하고 사랑한 이며
재보와 부귀함과 안락 등을 버렸나니
그러므로 완전히 갖추게 되었나이다.
한량없는 겁을 지나는 동안에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법으로써
매양 먼저 잘 생각한 뒤에야
사람들을 위하여 말씀하셨나이다.
만약 보지 못한 것 등에
그리고 그 중에 의심을 지니면
능히 사실대로 말씀하시니
이익된 것이 한량없사옵니다.
다른 이의 숨은 일을 말하지 않고
싫어하고 헐뜯으며 거역하여도
생각을 언제나 지혜에 편히 두며
순탄하게 만들어서 안온하게 하나이다.
첫째가고 참되며 미묘한 진리에
열반이 진실로 으뜸이 되나니
그 밖의 것은 모두 허망한데
세존의 공덕은 안전하시나이다.
음식과 침구 등과
집과 다락과 아름다운 망루며
이름 있고 좋은 코끼리ㆍ말ㆍ탈 것과
단정하고 엄숙한 여러 채녀며
금과 은이며 값진 보배 등과
마을과 여러 성과 읍이며
국토와 그리고 영광스런 지위와
또 아울러 사천하며
사랑하는 아들과 친히 하는 아내와
뼈마디와 그리고 머리와 눈이며
살을 잘라서 골수를 내는 등
온몸을 보시하였사옵니다.
모든 중생을 가엾이 여겨
모두 보시하되 인색함이 없었으며
나고 죽음을 벗어나기 위하여
자기 낙(樂)은 구하지 않았나이다.
허공에 있는 여러 별들과
땅 위에 있는 모래의 숫자라 하더라도
세존께서 보살일 적에
보시한 숫자는 이보다 더하옵니다.
끝끝내 그릇된 법으로써는
재물을 구하여 보시하지 않았나니
모르며 보시함이 없으셨으며
남을 괴롭히면서 보시한 일 없나이다.
좋은 물건을 탐내거나 아끼어
나쁜 것으로써 보시하지 않았으며
아첨하는 마음으로 보시함이 없었고
아끼면서 억지로 보시한 일 없나이다.
성냄이 없고 의심이 없으며
삿됨이 없고 비웃음이 없으며
싫어함이 없었고 믿지 못하여
갸웃하며 보시한 일 없사옵니다.
이것은 해야 하며 저것을 안 된다는
분별하는 마음이 없으셨으며
가엾이 여기는 마음만으로
평등하게 보시를 하셨나이다.
중생을 가벼이 여기시어서
복밭[福田]이 아니라 여기지 않으며
성인(聖人)을 보면 마음으로 공경하고
파계(破戒)한 이는 불쌍하다 하셨나이다.
스스로가 그 몸을 높은 체하셨거나
다른 사람을 낮춰보지 않았으며
또한 칭찬도 하지 않았고
갚음 구하며 보시하지 않았나이다.
뉘우침이 없고 근심 걱정 없으며
천히 여긴 마음으로 보시함도 없었고
급히 굴며 원망함을 기다림이 없으며
으레 보시해야 하는 법도 없나이다.
공경하는 마음으로 보시하셨고
땅에다 버리면서 보시함도 없으며
구한 이를 괴롭히며 보시함도 없었고
시샘하며 이기려고 보시함도 없나이다.
구하는 이를 희롱함도 없으시고
손수 보시하지 않음이 없으시며
적은 물건이라 하여 가벼이 여기거나
많다 하여 뽐내며 보시함도 없나이다.
성문승이거나
벽지불승으로써 보시하지 않았으며
한 세상의 보시에 한정하지 않았고
때 아닌 때의 보시도 없었나이다.
세존께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겁 동안에
여러 있기 드문 보시를 행했나니
모두가 위없는 도를 위한 것이며
자기 안락 구함이 아니옵니다.
모든 부처님의 법 가운데
집을 나와 멀리 떠나가셔서
모든 부처님의 법을 닦고 익히어
사람과 하늘들 위해 말씀하셨나이다.
이러한 보시 법을 말씀했나니
모든 보시 중에 으뜸인 것이
마치 햇빛의 밝은 광명이
별빛 달빛보다 뛰어남과 같나이다.
이와 같이 훌륭하게 보시하심은
모든 하늘과 사람에서 초월한 것이
이를테면 또한 세존께서
온갖 세간에서 으뜸인 것 같나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훌륭한 보시를
완전히 갖출 수가 있으셨나니
이름이 한량없는 겁 동안에
널리 퍼져 다함이 없사옵니다.
세존께선 한량없는 겁 동안에
깨끗한 계율을 보호하며 지녔고
모든 선정의 문을 여시어
깊고 고요한 곳을 얻게 되셨나이다.
먼저 다섯 가지 형상[五相] 여의고
뒤에는 여덟 가지 해탈을 행했으며
깨끗한 세 가지 삼매에 드셨고
세 가지 해탈에도 머무셨나이다.
세존께서 예순다섯 가지 선[六十五種禪]을
잘 분별하시었나니
먼저부터 내지 않은 선정이라곤
하나의 선정도 없었나이다.
이 모든 선정 가운데
또한 그 맛[味]을 느끼지도 않았지만
세존께서는 모든 선정으로 인하여
세 가지 신통을 얻으셨나이다.
이로써 중생을 제도하셨고
그 때문에 일체에서 훌륭하시며
세존께서는 한량없는 겁 동안에
평등심으로 인자한 덕화를 펴셨나이다.
아승기 중생들을
범천세상에 머무르게 하셨음은
능히 교묘한 방편으로써
선정을 잘 말씀하신 까닭이옵니다.
세존께서 보살이었을 적에
언제나 한량없는 세상을
탐냄의 번뇌에 얽힘이 없으면서
세간을 오가고 계셨나이다.
지나간 세상에 만나게 된 이들은
한량없이 천상에 나게 되었고
지나간 세상의 모든 보살은
적멸(寂滅)을 행할 수 있게 되었나이다.
세존께서 보살이었을 적에도
또한 같아서 다름이 없었나니
그러므로 적멸에 있어서
훌륭한 데가 다 가득히 찼었나이다.
세존께서 보살이었을 적에
모든 지혜를 지니시어서
지혜로써 보리를 구하신지라
이제 바로 지혜 과보 이루셨나니
생활을 돕는 온갖 음식은
사람이 땅을 의지해 삶과 같나이다.
세존께서는 세상마다
열 가지의 어두운 나쁜 길을 버리고
언제나 열 가지의 착한 길을 행했나니
이야말로 지혜의 기운 때문이옵니다.
다섯 가지 욕심[五欲]과 다섯 덮개[五蓋] 버리고
갖가지 선정을 얻으셨지만
한량없는 겁수(劫數)의 세상 동안에
다른 이로부터는 받지 않으셨나니
장하시옵니다,
큰 성인이시여
모두 이는 지혜의 세력이옵니다.
중생들은 세존으로 인하여
한량없는 이들이 6천(天)에 났고
범천의 세상에도 이르게 되었나니
이는 모두 지혜의 힘 때문이옵니다.
세존께서는 나고 죽음에 있어서
괴로움과 즐거움에 헷갈리는 것이었으나
보리의 마음을 잃지 않으셨나니
이는 모두 바로 지혜 힘이옵니다.
세존께서는 나고 죽음에 있어서
즐기지 않으면서 언제나 계셨고
열반을 즐기면서도 취택하지 않나니
이는 모두 바로 지혜 힘이옵니다.
도량(道場)에 편안히 앉아계실 적에
악마의 군사들을 항복하시고
모든 중생들을 제도 해탈하셨나니
이는 모두 바로 지혜 힘이옵니다.
본래 보리를 구하실 때에
한량없는 도 돕는 법을 모았으므로
듣는 이가 언제나 헷갈렸거든
하물며 능히 받아 행하는 이오리까?
세존께서는 견디며 참을 수 있었나니
이는 모두 바로 지혜 힘이옵니다.
경전과 글과 모든 기술은
세상마다 나면서 스스로 아셨으며
겸하여 사람도 가르칠 수 있었나니
이는 모두 바로 지혜 힘이옵니다.
한량없는 부처님을 친근하면서
감로의 가르침을 다 마셨으며
갖가지를 청하며 묻고 하면서
또한 따르며 분별하셨나이다.
경전의 법과 지혜안에선
아직 일찍이 인색한 일 없었으며
종과 나이 어린 하인에게 까지도
또한 좋은 말을 묻고 받았나니
세존께서는 이런 연고로
지혜가 훌륭한 곳에 유포되었나이다.
세존께서는 예전 세상에
이 보리를 구하실 적에
일체의 중생들에게
큰 자비심을 행하셨나이다.
첫째가는 지혜로써
언제나 큰 세력 내시어
모두 한량없는 종류의
있기 드문 어려운 일들 지으셨나이다.
일체의 모든 세간이
똑같이 한량없는 겁을 다하도록
이를 설명해도 다할 수 없고
또한 산수로도 미치지 않으리다.
이와 같은 등의 여러 가지 일은
사람과 하늘들을 뛰어넘었으며
온갖 세간 가운데에서
기특하여 견줄 데 없사옵니다.
큰 업으로 얻게 된 결과는
일체지를 완전히 갖춘 것이니
생사의 임금을 능히 깨뜨려
법왕(法王)의 처소에 편히 머무시옵니다.
보살은 마땅히
이 마흔 가지 특수한 법으로써
부처님들의 법신(法身)을 생각해야 하니
부처님께서는 색신(色身)이 아닌 까닭이다.◂
이 게송은 차례로 마흔 가지 특수한 법의
여섯 가지 품[六品] 중의 이치를 간략하게 풀이하는 것이다.
다음에 법신인 부처님을 생각한다.
왜 그러한가?
새로 뜻을 낸 보살은
서른두 가지 모습과 여든 가지 잘 생긴 모습으로써
부처님을 생각하되
먼저 말한 것과 같이 하여 차츰차츰 깊이 들어가 중간의 세력을 얻어야 하고,
법신으로써 부처님을 생각하여 마음에 차츰차츰 깊이 들어가
상위의 세력을 얻어야 한다.
참 모습[實相]으로써 부처님을 생각하되 탐하거나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법신에도 집착하지 않나니
온갖 법을 잘 알게 되면
영원히 고요하여 마치 허공과 같다.◂
이 보살은 상위의 세력을 얻고서
색신과 법신으로써 깊이 부처님을 탐하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왜 그러한가?
공(空)의 법을 믿고 즐기는 까닭이다.
모든 법은 마치 허공과 같은 줄 알 것이니,
허공이라 함은 장애가 없는 까닭이다.
장애되는 인연이란
모든 수미산과 유건타(由乾陀) 등의 열 개의 보배 산이며 철위산(鐵圍山)ㆍ흑산(黑山)ㆍ석산(石山) 등이니,
이와 같은 것이 한량없는 장애의 인연이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아직 하늘눈을 얻지 못한 까닭에
다른 지방 세계 부처님을 생각하면 여러 산이 있어서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새로 뜻을 낸 보살은
열 가지 명호의 미묘한 형상으로써 부처님을 생각해야 하나니,
다음의 말과 같다.
새로 뜻을 낸 보살은
열 가지 명호의 묘한 형상으로써
부처님을 생각하되 잃어버림 없음이
마치 거울 안의 형상과 같이 한다.
‘열 가지 명호의 미묘한 형상’이라 함은,
이른바 여래(如來)ㆍ응공(應供)ㆍ정변지(正遍知)ㆍ명행족(明行足)ㆍ선서(善逝)ㆍ
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조어장부(調御丈夫)ㆍ천인사(天人師)ㆍ불세존[佛世尊]이시다.
마치 허공같이 여기며 법에 잃어버림이 없다.
왜냐하면 모든 법은 본래 남이 없어 고요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온갖 법의 모두가 역시 그와 같은 것이다.◂
이 사람이 명호를 반연함으로써
선정의 법이 더욱 자라나면,
능히 형상을 반연하게 된다.
이 사람은 그때에 곧 선정의 법에서 형상을 얻으리니,
이른바 몸에 특수한 쾌락을 얻게 되면
반주삼매(般舟三昧)를 이루게 된 줄 알아야 한다.
삼매가 이루어진 까닭에 모든 부처님을 뵐 수 있나니,
마치 거울 가운데의 형상과 같다.
만약 보살이 이 삼매를 이루고 나면
마치 맑고 밝은 거울에서 자기의 얼굴 모습을 보는 것과 같고
맑고 잔잔한 물속에서 그 몸이 형상을 보는 것과 같다.
처음의 시기에는 먼저 생각한 부처님을 따라 그의 색상(色像)을 뵙게 되고,
이 색상을 뵌 뒤에 만약 다른 지방의 모든 부처님을 뵈려고 하면
생각하는 것을 따라 곧 모든 부처님을 뵐 수 있고 장애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비록 아직 신통이 없다 하더라도
날아가서 거기에 이르게 되어
모든 부처님을 뵐 수 있으며
법을 듣되 장애가 없을 것이다.
이 새로 뜻을 낸 보살은 모든 수미산 등의 여러 산에 장애를 받게 됨이 없으며,
역시 아직은 하늘 눈ㆍ하늘 귀의 신통을 얻지 못하여
이 국토로부터 저 국토까지 날아갈 수는 없지만
이 삼매의 힘 때문에 이 국토에 머물러 있으면서
다른 지방 모든 부처님을 뵙고 말씀하시는 법을 들을 수가 있다.
언제나 이 삼매를 닦고 익힌 까닭에 시방의 진실한 부처님들을 뵐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는가?
【답】선지식을 친하고 가까이 하고
힘써 나아가 게으름이 없으며
지혜가 매우 굳으며 단단하고
믿는 힘을 망령되이 움직이지 않는다.
이 네 가지 법으로써 이 삼매를 낼 수 있다.◂
‘선지식을 친하고 가까이 한다’ 함은 이 삼매로써 가르치는 사람을 선지식이라 한다.
공경을 더하고 부지런한 마음으로 친근하여야 하며,
게을러서 그만 물러나거나 버리고 떠나지 않으면
곧 이 깊은 삼매의 의리지(義利智)ㆍ통달지(通達智)ㆍ불실지(不失智)를 들을 수 있나니,
이름을 굳으며 단단하다고 하며 믿음의 뿌리가 깊고 단단하다.
사문ㆍ바라문ㆍ하늘ㆍ악마ㆍ범천이며
그 밖의 세상 사람으로서는 기울이거나 움직일 수 없나니,
믿음의 힘을 움직일 수 없다고 한다.
이와 같은 네 가지 법이 삼매를 낼 수 있다.
부끄러워하고 사랑하고 공경하면서
법을 말씀하는 이를 공양하기를
마치 모든 세존같이 여기면
이 삼매를 낼 수 있느니라.
‘부끄러워하고 사랑하고 공경한다’ 함은
법을 말씀하는 이에게 깊은 부끄러움을 내며
공경하고 사랑하고 좋아하면서 공양하되 마치 부처님같이 여기는 것이다.
이와 같은 네 가지 법이 이 삼매를 낼 수가 있다.
또 다음에,
처음 네 가지 법으로써
첫째 석 달 동안에 잠도 자지 못하며 오직 대소변과 먹고 마시는 데에 앉고 일어남만은 제외되며,
둘째 석 달 동안에 손가락 튀기는 순간만이라도 나(我)라는 마음을 내지 않으며,
셋째 석 달 동안에 거닐기를 쉬지 않으며,
넷째 석 달 동안에 겸하여 법 보시를 하되 이양을 구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 법이다.
또 네 가지 법이 있는데,
첫째 능히 부처님을 뵈오며,
둘째 편안히 위로하면서 남에게 이 삼매 듣기를 권하며,
셋째 언제나 보리 마음 행하는 이를 시샘하지 않으며,
넷째 보살이 행하여야 할 도의 법을 모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네 가지 법이다.
또 네 가지 법이 있는데,
첫째 불상과 탱화를 조성하며,
둘째 이 삼매의 경을 잘 쓰고 베껴서 믿고 좋아하는 이가 얻은 뒤에 외우고 읽게 하며,
셋째 뛰어난 체하는 법을 떠나게 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며,
넷째 모든 부처님의 바른 법을 보호하고 지녀야 한다.
이것이 네 가지 법이다.
또 네 가지 법이 있는데,
첫째 말이 적으며,
둘째 집에 있는 이와 집을 떠난 이가 함께 살지 않으며,
셋째 언제나 마음을 매어서 반연할[所緣] 형상을 지니며,
넷째 멀리 떠나서 비고 한가하고 고요한 데를 즐기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 법이다.
처음의 다섯 가지 법으로서,
첫째 생멸 없는 지혜의 법으로
온갖 함이 있는 법[有爲法]을 싫증내어 떠나고
모든 나게 되는 처소를 좋아하지 않으며
온갖 외도의 법을 받들지 않고 일체세간의 모든 욕심을 싫어하는 등,
이에 생각을 하지 않는 데까지 이르거든 하물며 몸소 가까이 하겠는가?
둘째, 마음은 언제나 한량없는 모든 법을 닦아 익히고
한 곳에 안정하여 있으며
중생들에게 성내거나 방해함이 없고
마음은 항상 따르면서 네 가지 거두어 줌[四攝]의 법을 행한다.
셋째, 사랑함ㆍ가엾이 여김ㆍ기쁨ㆍ버림을 잘 성취하여 남의 과실을 들추어 내지 않는다.
넷째,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많이 모아서 말씀하신대로 행한다.
다섯째, 몸ㆍ입ㆍ뜻의 업과 소견을 깨끗이 하는 것이다.
이것이 다섯 가지 법이다.
또 다섯 가지 법이 있는데,
첫째 경전에서 칭찬한 것과 같은 보시를 즐기면서
아끼는 마음이 없고 깊은 법 말하기를 좋아하여
인색함이 없으며 또한 능히 자신도 머무른다.
둘째,
욕을 참고 온화하며 같이 살면서 기뻐하며 욕설과 꾸짖음과 매질하며 속박하여도
다만 업의 인연으로 미루고 다른 사람에게 성내지 않는다.
셋째 언제나 이 삼매 듣기를 즐기면서 읽고 외우고 통달하여 알아서
사람들을 위하여 해설하고 더욱 넓혀 유포되게 하며 부지런히 행하고 닦아 익힌다.
넷째,
마음에 시샘이 없고 스스로 높은 체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낮춰보지 않으며 잠의 번뇌를 없앤다.
다섯째,
불ㆍ법ㆍ승 3보에 대한 믿는 마음이 깨끗하고
위와 중간과 아래 앉은 자리에 깊은 마음으로 이바지하고 받들며
다른 이에게 조그마한 은혜가 있으면 언제나 기억하여 잊지 않고
언제나 진실한 말의 가운데서 머무르는 것이다.
이것이 다섯 가지 법이다.
집을 떠난 모든 보살은
배우는 것이 삼매의 법이지만
집에 있는 보살로서도
이 법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첫째 깊이 믿는 마음으로써 하여야 하고,
둘째 업의 과보를 구하지 않고,
셋째 온갖 안팎의 물건을 보시하여야 하고,
넷째 3보(寶)에 귀명하고,
다섯째 다섯 가지 계율을 깨끗하게 지니고 깨뜨림이 없으며,
여섯째 열 가지 착한 길을 완전히 갖추어 행하며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법 안에 머무르게 하고,
일곱째 음욕을 끊어 없애고,
여덟째 다섯 가지 욕심을 헐뜯고,
아홉째 시샘하지 않고,
열째 아내와 아들들에게 애착심을 내지 않는다.◂
열한째 마음으로 언제나 집 떠나기를 원하며,
열둘째 언제나 재계(齊戒)를 받들며,
열셋째 마음에는 절에 머물기를 즐기며,
열넷째 제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을 두루 갖추며,
열다섯째 계율 깨끗한 비구에게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키며,
열여섯째 법에 인색하지 않으며,
열일곱째 법을 말씀하는 이에게 사랑과 공경하는 마음을 깊이 지니며,
열여덟째 법을 말씀하는 이에게 부모라는 생각과 큰 스승이라는 생각을 내며,
열아홉째 법을 말씀하는 이에게 모든 즐거움의 도구로써 공경하는 마음으로 공양하며,
스무째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는 것이다.
이와 같이 집에 있는 보살이 이러한 등의 공덕에 머무르게 되면 이 삼매를 배울 수 있다.
집을 떠난 보살로서 이 삼매의 법을 닦고 익히는 이는,
이른바 첫째 계율에 흠이 없으며,
둘째 계율을 지니되 뒤섞여 더럽히지 않으며,
셋째 계율을 지니되 흐리지 않으며,
넷째 계율을 깨끗이 하며,
다섯째 계율에 손감이 없으며,
여섯째 계율을 취하지 않으며,
일곱째 계율에 의지하지 않으며,
여덟째 계율을 얻지 않으며,
아홉째 계율에서 물러나지 않으며,
열째 성인이 칭찬하는 계율을 지닌다.
열한째 지혜로운 이에게 칭찬받는 계율을 지니며,
열두째 바라제목차계(波羅提木叉戒)를 따르며,
열셋째 위의와 행하는 처소를 완전히 갖추며,
열넷째 아주 작은 죄에 이르기까지 마음에 크게 두려워하며,
열다섯째 몸ㆍ입ㆍ뜻의 업을 깨끗이 하며,
열여섯째 깨끗한 생활을 하며,
열일곱째 있는 모든[所有] 계율을 모두 받아 지니며,
열여덟째 매우 깊은 법을 믿고 즐기며,
열아홉째 얻을 것 없는 법에 마음으로 잘 참고 공(空)ㆍ모양 없음ㆍ소원 없음의 법 중에 마음으로 놀라지 않으며,
스무째 부지런히 정진을 낸다.
스물한째 생각을 언제나 앞에다 두며,
스물둘째 믿는 마음이 견고하며,
스물셋째 제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을 두루 갖추며,
스물넷째 이양을 탐내지 않으며,
스물다섯째 시샘이 없으며,
스물여섯째 두타(頭陀)의 공덕에 머무르며,
스물일곱째 미세한 행의 법 중에 머무르며,
스물여덟째 세간의 속된 말을 하기 좋아하지 않으며,
스물아홉째 모여 말하는 것을 멀리 여의며,
서른째 은혜 갚을 줄을 아는 것이다.
서른한째 은혜를 지으면 은혜 갚을 줄을 알며,
서른둘째 화상과 아사리에게 공경심과 어려워하는 마음을 내며,
서른셋째 교만을 깨뜨려 없애며,
서른넷째 나[我]라는 마음을 항복받으며,
서른다섯째 선지식은 만나기 어려운 까닭에 부지런히 애써 공급하며,
서른여섯째 이 법을 듣게 된 곳과 경책을 얻고 입으로 외는 곳의 이 사람에게 부모라는 생각,
착한 벗이라는 생각,
큰 스승이라는 생각,
크게 부끄러워하고 사랑하고 공경하는 생각을 내며,
서른일곱째 언제나 아련야(阿練若)를 즐기며,
서른여덟째 성읍과 마을에 살기를 좋아하지 않으며,
서른아홉째 단월과 잘 아는 이의 집을 탐내고 집착하지 않으며,
마흔째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마흔한째 마음에서 언제나 죽음을 생각하며,
마흔두째 이양을 보존하지 않으며,
마흔셋째 모든 물건 중에 마음에서 물들거나 집착하지 않으며,
마흔넷째 애착하는 것이 없으며,
마흔다섯째 바른 법을 수호하며,
마흔여섯째 옷과 발우에 집착하지 않으며,
마흔일곱째 저축하여 남기지 않으며,
마흔여덟째 걸식만을 하고 싶어 하며,
마흔아홉째 차례로 걸식하며,
쉰째 언제나 부끄러워할 줄 알아서 마음에 항상 뉘우침을 지닌다.
쉰한째 금은의 값진 보배와 돈과 재물을 쌓지 않고 모든 착하지 못한 뉘우침을 여의며,
쉰두째 마음에 얽매임의 때가 없으며,
쉰셋째 언제나 인자한 마음을 행하며,
쉰넷째 성냄을 끊어 없애며,
쉰다섯째 언제나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행하며,
쉰여섯째 애착을 끊어 없애며,
쉰일곱째 언제나 일체세간의 이익과 편안을 구하며,
쉰아홉째 언제나 거닐기를 좋아하며,
예순째 잠을 물리쳐 없애는 것이다.
집을 떠난 보살은 이와 같은 등의 법 안에 머물러서 이 삼매를 닦고 익혀야 한다.
그 밖에 삼매법을 닦는 것에도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
무엇인가?
첫째 부처님의 은혜를 반연하여 언제나 앞에 계시는 듯 생각하며,
둘째 마음을 산란하지 않게 하며,
셋째 마음을 매어 앞에다 두며,
넷째 감관의 문을 수호하며,
다섯째 음식에 그치고 족한 줄 알며,
여섯째 초저녁과 새벽에 언제나 삼매를 닦으며,
일곱째 모든 번뇌의 장애를 여의며,
여덟째 모든 선정을 내며,
아홉째 선정 중에 맛을 느끼지 않으며,
열째 빛깔의 형상을 흩어 무너뜨린다.
열한째 깨끗하지 못하다는 형상을 지니며,
열둘째 다섯 가지 쌓임[五陰]을 탐내지 않으며,
열셋째 18계(界)에 집착하지 않으며,
열넷째 12입(入)에 물들지 않으며,
열다섯째 성바지를 믿지 않으며,
열여섯째 교만을 깨뜨리며,
열일곱째 온갖 법에 대하여 마음은 항상 비고 고요히 하며,
열여덟째 모든 중생들을 친척이라는 생각을 내며,
열아홉째 계율을 취하지 않으며,
스무째 선정을 분별하지 않는다.
스물한째 부지런히 많이 배워야 하며,
스물둘째 배움이 많은 것으로써 교만하지 않으며,
스물셋째 모든 법에 의심이 없으며,
스물넷째 모든 부처님을 어기지 않으며,
스물다섯째 법을 거역하지 않으며,
스물여섯째 승가를 무너뜨리지 않으며,
스물일곱째 언제나 모든 성현에게 나아가며,
스물여덟째 범부를 멀리 여의며,
스물아홉째 세간 벗어나는 의론을 즐기며,
서른째 여섯 가지 화경법(和敬法)을 닦는다.
서른한째 언제나 다섯 가지의 해탈처[五解脫處]를 닦고 익히며,
서른둘째 아홉 가지 성나며 괴로운 일을 없애며,
서른셋째 여덟 가지 게으름과 법을 끊으며,
서른넷째 여덟 가지 정진을 닦으며,
서른다섯째 언제나 아홉 가지 생각[相]을 자세히 살피며,
서른여섯째 거룩한 분의 여덟 가지 깨달음[大人八覺]을 얻으며,
서른일곱째 모든 선정 삼매를 완전히 갖추며,
서른여덟째 이 선정을 탐내는 것도 없고 얻는 것도 없으며,
서른아홉째 법을 듣되 마음을 오로지하며,
마흔째 다섯 가지 쌓임이라는 생각을 무너뜨린다.
마흔한째 일이라는 생각[事相]에 머무르지 않으며,
마흔두째 나고 죽음을 깊이 두려워하며,
마흔셋째 다섯 가지 쌓임을 원수라는 생각을 내며,
마흔넷째 모든 감관은 헛된 모임이라는 생각을 내며,
마흔다섯째 네 가지 원소[四大]는 독사라는 생각을 내며,
마흔여섯째 열반은 고요하고 없다는 생각과 편안하고 즐겁다는 생각을 내며,
마흔일곱째 다섯 가지 욕심은 침을 뱉는다는 생각을 내어 마음에서 떠나기를 좋아하며,
마흔여덟째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기지 않으며,
마흔아홉째 일체 중생들과 다투는 것이 없으며,
쉰째 중생을 교화하여 일체 공덕에 편안히 머무르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삼매의 과보를
보살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
보살은 이 반주삼매를 행하면서 과보도 알아야 한다.
【문】이 삼매를 닦고 익히면,
어떠한 과보를 얻는가?
【답】위없는 도에서 물러나지 않는 과보를 얻는다.
또, 경전에서 말씀하신 과보로서는
부처님께서 발타바라(颰陀婆羅)보살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다.
“‘마치,
어떠한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의 땅을 꺾고 부수어 모두 작은 티끌과 같게 하고,
또 삼천대천세계 중의 온갖 풀ㆍ나무ㆍ꽃ㆍ잎 등의 모든 물건을
모두 작은 티끌로 만들고서,
발타바라여,
하나의 작은 티끌을 한 부처님 세계로 만들며
그렇게 많은 세계의 안에 모두 훌륭한 값진 보배를 가득히 채워서
그로써 보시하는 것과 같으니라.
발타바라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사람은 보시의 인연으로써 복을 얻음이 많겠는가?’
‘매우 많겠나이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발타바라여,
나는 이제 진실로 그대에게 말하리라.
만약 어떤 선남자가 모든 부처님이 앞에 나타나는 삼매를 듣게 되어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 그 복은 한량없거든,
하물며 믿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며 사람들에게 해설하는 것이겠는가?
하물며 안정된 마음으로 한 마리 젖소에서 우유 짜는 동안만큼이라도 닦고 익히는 것이겠는가?
발타바라여,
나는 이 사람의 복덕도 오히려 한량없다 말하겠거든,
하물며 이 삼매를 이룰 수 있는 이겠는가?’
부처님께서 또 발타바라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어떤 선남자ㆍ선여인이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면,
겁이 다할 때에 설령 불[火]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불이 곧 꺼지리라.
발타바라여,
이 삼매를 지닌 이는 관청 일이 있거나 또 도둑ㆍ사자ㆍ범ㆍ이리 등의 나쁜 짐승과 나쁜 용ㆍ여러 독충 등이며 야차ㆍ나찰ㆍ구반다(鳩槃茶)ㆍ비사사(毗舍闍) 등과 사람인 듯 아닌 듯한 따위를 만나게 되어 몸을 해친다든지 목숨을 해친다든지 계율을 깨뜨린다든지의 일은 있을 수 없느니라.
만약 읽고 외며 사람에게 연설할 때에도 손해와 괴로움이 없으며,
다만 업보로 반드시 받아야 되는 것만은 그렇지 않느니라.
또 발타바라여,
보살이 이 삼매를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울 때에는 눈ㆍ귀ㆍ코ㆍ혀ㆍ입ㆍ이 등의 병과 바람과 추위에 관계된 병이며 이와 같은 따위의 갖가지와 그 밖의 병에 든다 하더라도 이 병 때문에 목숨을 잃거나 하는 일은 있을 수 없으며,
다만 업보로 반드시 받아야 되는 것만은 그렇지 않느니라.
또 발타바라여,
이 삼매를 받아 지니고 읽고 외는 이는 여러 하늘이 수호하고 여러 용ㆍ야차ㆍ마후라가ㆍ사람인 듯 아닌 듯한 것과 사천왕ㆍ제석ㆍ범천왕이며,
모든 불세존께서 모두가 같이 보호하며 생각하느니라.
또,
이 사람은 여러 하늘들의 사랑과 생각함을 받게 되며 모든 부처님들에 이르기까지 다 같이 사랑하고 생각함을 받느니라.
또,
이 사람은 모든 하늘들의 똑같은 칭찬을 받으며,
모든 부처님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함께 칭찬함을 받느니라.
또 여러 하늘들이 모두가 이 보살을 보려고 그 처소에 와 이르며,
부처님들까지 모두 이 보살을 보려고 그 처소에 와 이르시느니라.
또,
이 보살이 이 삼매를 받아 지니면 아직 듣지 못했던 경전을 저절로 듣게 되며,
또 보살이 이 삼매를 얻으면 꿈속에서까지 모두 이러한 여러 이익되는 일을 얻느니라.
발타바라보살이여,
설령 내가 1겁 동안 혹은 1겁을 덜 하는 동안에 이 삼매를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는 이의 공덕을 말하더라도 다할 수가 없거든 하물며 성취하게 되는 일이겠느냐.
발타바라여,
어떤 사람이 백 년 동안에 몸의 힘이 가뿐하고 건장해서 그의 빠름이 마치 바람과 같은데,
이 사람이 백 년 동안 쉬지 않고 다니면서 언제나 동쪽ㆍ남쪽ㆍ서쪽ㆍ북쪽과 네 간방이며 위와 아래에 이른다고 하면,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사람이 나아갔던 시방을 어떤 사람이 그 이수(里數)를 셈하여 알 수 있겠는가?’
발타바라는 말하였다.
‘셈할 수 없겠나이다.
다만 여래와 사리불과 아유월치(阿惟越致)만을 제외한 그 밖의 사람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발타바라여,
만약 어떤 선남자ㆍ선여인이 이 사람이 다니던 곳의 그 안에 가득히 진금을 채우고서 보시한다고 하자.
또 어떤 사람은 다만 이 삼매만을 듣고 네 가지의 따라 기뻐함[隨喜]으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면,
즉 언제나 많이 듣기를 구하면서,
≺과거의 모든 부처님께서 보살의 도를 행하실 적에 이 삼매를 따라 기뻐하신 것처럼 저도 그와 같겠나이다.
지금 현재의 보살이 이 삼매를 따라 기뻐하는 것처럼 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미래의 모든 부처님께서 보살의 도를 행하실 적에 이 삼매를 따라 기뻐하시는 것처럼 저도 그렇게 하겠나이다.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보살이 행하는 바의 삼매처럼 저도 따라 기뻐하면서 모두 많이 들을 수 있게 하겠으며 나도 이와 같이 많이 들음을 구하는 까닭에 이 삼매를 따라 기뻐합니다≻라고 하느니라.
발타바라여,
이 따라 기뻐하는 이의 복덕과 위의 복덕을 비교하면 위의 복덕은 백분의 1도 못되고 백천만억분의 1도 못되며 산수와 비유로서는 미칠 수 없나니,
이 삼매는 이와 같은 한량없고 그지없는 과보를 얻느니라’라고 하셨다.”
이 삼매의 머무는 곳에는
적음ㆍ중간ㆍ많음으로 차별되나니
이러한 여러 가지의 모양은
모두 다 마땅히 논의되어야 한다.
이 삼매가 머무르게 되는 곳에는 적은 모양과 중간 모양과 많은 모양 등의 이와 같은 것을 분별하여야 하며,
이 일은 당연히 해석해야 될 줄 안다.
‘머무르는 곳’이라 함은,
이 삼매를 혹은 초선(初禪)에서 얻을 수 있기도 하고,
혹은 제2선 혹은 제3선 혹은 제4선에서 얻을 수 있기도 하며,
혹은 초선의 중간에서 세력을 얻어 이 삼매를 낸다.
혹은 ‘적음’이라 함은 사람의 세력이 적은 까닭에 적다고 이름하며,
또 적은 시간 동안 머무르는 까닭에 적다고 하며,
또 적은 부처님세계를 본 까닭에 적다고 하나니,
중간과 많음도 역시 그러하다.
이 삼매를 설명하면,
혹은 거친 생각[覺]이 있고 세밀한 생각[觀]도 있다고 말하기도 하며,
혹은 거친 생각은 없고 세밀한 생각만이 있다고 하며,
혹은 거친 생각도 없고 세밀한 생각도 없다고도 하며,
혹은 기쁨과 서로 응한다고 하기도 하며,
혹은 즐거움과 서로 응한다고 하기도 하며,
혹은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것과 서로 응한다고 하기도 한다.
혹은 들숨ㆍ날숨이 있기도 하고,
혹은 들숨ㆍ날숨이 없기도 하고,
혹은 결정코 이는 착한 성품이기도 하고,
혹은 샘이 있기도 하고[有漏],
혹은 샘이 없기도 하고[無漏],
혹은 욕심세계의 매임[欲界繫]이기도 하고,
혹은 형상세계의 매임[色界繫]이기도 하고,
혹은 무형세계의 매임[無色界繫]이기도 하고,
혹은 욕심세계의 매임이 아니기도 하고 혹은 형상세계의 매임이 아니기도 하고,
혹은 무형세계의 매임이 아니기도 하다.
이 삼매는,
바로 심수법(心數法)이며,
마음과 서로 응하며,
마음을 따라 행해지는 법이며,
마음과 한가지로 나는 법이며,
빛깔이 아니며,
나타나지 않으며,
능히 반연하며,
업이 아니며,
업과 서로 응하며,
업을 따라 행하며,
전생의 업과 과보가 아니며,
원인과 과보가 제거되며,
닦을 만하고 알 만하고 증득할 만하며,
또한 몸으로써 증득하고 지혜로써도 증득하며,
혹은 끊을 수도 있고,
끊을 수 없기도 하다.
샘이 있음[有漏]은 끊어야 하고 샘이 없음[無漏]은 끊지 않아야 하며 지견(知見)도 역시 그와 같고 7각(覺)과 합쳐지지 않는다는 등,
이와 같이 온갖 것으로 삼매의 이치를 분별하나니,
모두가 이 가운데서 설명되어야 한다.
또,
이 삼매를 닦고 익히면 모든 부처님을 뵐 수 있나니,
다음의 말과 같다.
모든 부처님을 뵙게 된 뒤에는
부지런히 애써서 공양할지니
착한 뿌리가 더욱 자라게 되면
빠르게 중생들을 교화할 수 있느니라.
공양이란 마음과 뜻을 깨끗이 하여 공경하고 기뻐하면서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이니,
한량없는 공덕이 있다.
갖가지로써 찬탄하면 입으로 공양하는 것이며,
공경하고 예배하며 꽃ㆍ향 등은 몸으로 공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과 덕은 차츰차츰 더 자라게 되어 마치 곡식의 씨가 땅에 있을 적에 비가 내려 젖어서 싹이 나고 자라는 것과 같다.
‘빠르게 교화한다’ 함은 중생들을 3승(乘)중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면 보살은 더욱 착한 뿌리가 자라게 된다.
첫째와 둘째의 거두어 줌의 법[攝法]으로써
모든 중생들을 거두어 주며
나머지 두 가지의 거두어줌의 법은
아직 모두 믿으며 받을 수 없다.
처음의 두 가지는 보시와 사랑하는 말[布施ㆍ愛語]이며,
이익과 일을 같이 함[利益ㆍ同事]이 뒤의 두 가지이다.
이는 보살이 초지에 있으면서 완전히 이해할 수 없으므로 다만 믿으며 받을 수 있을 뿐이다.
이때에 모든 착한 뿌리를
부처님의 도에 회향한다면
마치 저 금을 불에 달굴 적에
알맞게 달궈지면 쓸 만한 것과 같다.
지혜의 불로써 달구어지는 까닭에,
보살의 하는 일들 중에서 착한 뿌리가 성숙되면 맡겨 쓸 만 하리라.
26. 비유품(譬喩品) ①
이 보살은 지(地)의 형상을 듣고
닦아서 결과를 얻어야 하나니
모든 지의 몫[地分]을 얻기 위하여
그 때문에 부지런히 힘써 나아간다.
‘형상’이라 함은 바로 모양인데 그로 인하여 알 수 있으며,
‘얻는다’ 함은 성취한다는 것인데 이 법을 쓰는 까닭에 이 법을 성취한다는 것이다.
‘닦아서’라 함은 얻어서 닦고 행하되 항상 생각함[常念]을 닦는 것이며,
‘결과’라 함은 원인으로부터 일이 이룩되는 것을 결과라 한다.
이 보살이 10지(地)의 행을 얻고자 하면,
형상을 잘 듣고 닦아서 결과를 얻어야 한다.
‘듣는다’ 함은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로부터 듣게 되는 것이며,
자기보다 나은 이로부터 듣는 것이다.
‘모든 지의 몫을 얻기 위하여’라 함은,
이 지의 몫을 얻기 위하여 그 때문에 부지런히 힘써 나아간다.
이 중의 초지 형상은 먼저 말한 것과 같다.
보살은 처음의 초지에 있으면서
견디며 받아낼 것이 많이 있으며
송사하며 다투는 일 좋아하지 않고
그 마음은 기쁨과 즐거움이 많으며
언제나 맑고 깨끗함을 즐기고
가엾은 마음으로 중생들을 생각하며
성내는 마음이 없는 것이니
이 일곱 가지 일을 많이 행한다.
그러므로 견디며 받아냄과 다투지 않음과 기뻐하며 즐거움과 맑고 깨끗함과
가엾이 여기는 마음과 성냄이 없는 등의 일곱 가지 법이 바로 초지의 형상이며,
이 견디며 받아내는 등의 일곱 가지 법을 성취하면 얻는다고 이름하고,
또 견디며 받아내는 등의 일곱 가지 법의 형상이 곧 이는 초지의 얻음[得]이다.
다음 게송으로 말한 바와 같다.
또 두터이 착한 뿌리를 심고
모든 행을 잘 행하며
소용되는 물건들을 잘 모으고
모든 부처님을 잘 공양하며
선지식의 보호를 받고
깊은 마음을 완전히 갖추며
가엾은 마음으로 중생을 생각하고
위없는 법을 믿고서 이해한다.
이 여덟 가지의 법을 갖춘 뒤에는
마땅히 서원을 세우며 말하되
나는 이미 스스로가 제도되었으므로
또 다시 중생을 제도하여야겠다.
열 가지 힘을 얻기 위하여
필정취(必定聚)에 들어갈 것이며
곧 여래의 집에 태어나서
모든 허물과 잘못이 없으리라.
곧 세간의 길을 바꾸어
세상 벗어나는 길에 들 것이니
이 초지를 얻게 됨으로써
이 지의 이름이 환희지이니라.
그러므로 보리를 위하여 얻는 결정된 마음을 ‘초지의 얻음’이라고 하는 줄 알아야 한다.
‘닦음’이란,
처음 마음을 내서부터 모든 부처님께서 앞에 나타나는 삼매에 이르기까지 이다.
그 중간에 자세히 모든 지의 공덕을 설명하였다.
이 모든 공덕을 능히 내고 낸 뒤에는 닦고 모아서 더욱 자라게 하나니,
이름이 초지이다.
‘결과를 닦는다’ 함은 먼저 이미 곳곳에서 여러 복덕을 얻는 것과 성문과 벽지불의 지에 회향하지 않을 것을 말하였지만,
이제 다시 말하여야겠다.
보살이 초지의 결과를 얻으면,
보살이 백 가지 정(定) 등을 얻을 수 있다.
초지의 몫[分]이란,
모든 법이 초지에 합쳐서 이루어지므로 모든 몫[諸分]이라 하는데,
마치 누룩과 쌀이 합쳐서 술이 될 수 있는 까닭에 술의 인연이라고 하는 것처럼
모든 법이 초지를 이룰 수 있게 하므로 초지의 몫이라고 한다.
이른바,
믿음의 힘이 차츰 더 향상하고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 성취하며
중생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고
선행을 닦는 마음에 게으름이 없다.
미묘한 법에 기뻐하며 즐기고
언제나 선지식을 가까이 하며
부끄러워하고 공경하면서
부드러움으로써 그 마음을 조화한다.
법을 살피기 좋아하여 집착이 없고
한 마음으로써 많이 듣기 구하며
이양을 탐내지 않고
간사함과 속임과 아첨을 여읜다.
부처님들 집을 더럽히지 않고
계율을 깨뜨려서 부처님 속이지 않으며
깊이 살바야[薩婆若]를 즐거워하고
움쩍하지 않음이 큰 산과 같다.
항상 닦고 익히는 행을 즐기고
으뜸가는 미묘한 법을 굴리며
세간을 벗어나는 법을 좋아하고
세간의 법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곧 환희지를 다스리되
다스리기 어려운데도 다스릴 수 있나니
그러므로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이 여러 법들을 부지런히 행한다.
이와 같이 으뜸가는 미묘한 법을
보살은 능히 성취하나니
이것이 곧 보살이 초지 중에
편안하게 머무름이 되는 것이다.
【문】보살은 무엇 때문에 이 초지의 형상을 들어라 하는가?
【답】보살은 초지의 형상 등의 법 중에서 방편을 잘 알아야 하나니,
그러므로 들어야 한다.
【문】보살은 이 법 중에서만 방편을 잘 알아야 하는가?
다시 다른 법 중에서도 방편을 잘 알아야 하는가?
【답】이 모든 법 중에서 방편을 잘 알아야 하고,
다른 법에서도 방편을 잘 알아야 한다.
【문】만약 그렇다면 간략하게 말할 수 있는가?
【답】지(地)를 도울 수 있는 법이 있고
지를 어기는 법이 있으며
지를 낼 수 있는 법이 있고
지를 무너뜨릴 수 있는 법이 있다.
모든 지의 형상과 결과가 있고
모든 지 중에서 얻음[得]이 있으며
모든 지의 깨끗한 몫[淸淨分]으로
지로부터 하나의 지에 이른다.
지에 머무르며 차츰 더욱 더하여
물러나게 할 수 있는 이가 없나니
보살의 깨끗한 지로부터
한량없는 부처님의 지에 이른다.
이 모든 일 중에서
방편을 잘 알아야 하나니
착한 사람들에게 청하고 물어서
교만을 깨뜨려 없앨지니라.
‘초지를 돕는 법’이라 함은,
이른바 믿음ㆍ계율ㆍ들음ㆍ버림ㆍ정진ㆍ생각ㆍ지혜 등이니,
이와 같은 것과 그 밖의 모든 법으로서 초지를 따르는 것을 바로 돕는 법이라 한다.
‘서로 어기는 법’이라 함은
믿지 않음ㆍ계율을 깨뜨림ㆍ적게 들음ㆍ간탐ㆍ게으름ㆍ어지러운 생각ㆍ지혜 없음 등과 그 밖에 따르지 않는 것이니,
초지를 돕는 것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지를 없애는 법’이라 함은 이 지를 잃고 방해하며 나타나지 않게 하는 것이니,
마치 겁이 다할 때에 만물이 모두 없어지는 것과 같다.
어떤 것이 바로 보리 마음을 빼앗을 수 있는 법인가 하는 것은 바로 먼저 이미 말하였다.
‘지를 내는 법’이라 함은 초지를 낼 수 있고 이룩할 수 있는 것이니,
이른바 보리 마음을 빼앗을 수 없는 법인데 이는 먼저 이미 말하였다.
지의 형상과 얻음과 결과며 지의 몫에 관하여는 위에서 이미 말하였다.
‘깨끗한 법’이라 함은 이 법을 이용하여 초지를 깨끗하게 할 수 있나니,
이른바 먼저 말한 바와 같다.
초지 중의 일곱 가지 법은,
보살은 처음의 초지에 있으면서
견디며 받아낼 것이 많이 있으며
송사하며 다투는 일 좋아하지 않고
그 마음은 기쁨과 즐거움이 많으며
언제나 맑고 깨끗함을 즐기고
가엾은 마음으로 중생들을 생각하며
성내는 마음이 없는 것이니
이 일곱 가지 일을 많이 행한다.
이와 같은 일곱 가지 법으로 초지를 깨끗이 다스릴 수 있다.
‘하나의 지로부터 하나의 지에 이른다’ 함은 초지로부터 2지에 이르고 2지로부터 3지에 이르는 것과 같으니,
나머지도 역시 그러하다.
초지로부터 2지에 이르게 됨은 아첨하고 간사하지 않는 등의 열 가지 마음을 얻는 까닭이며,
2지로부터 3지에 이르게 됨은 믿음과 즐거움 등의 열 가지 마음을 얻는 까닭이다.
이와 같은 등의 가지가지 마음과 갖가지 법을 얻는 까닭에 하나의 지로부터 하나의 지에 이를 수 있다.
‘지에 머무르며 차츰 더욱 더하여’라 함은 마치 초지 중에서는 보시바라밀다이며,
제2지 중에서는 지계(持戒)바라밀다이며 또 믿음 등의 모든 법과 같이 차츰차츰 세력을 얻는 것이며,
제3지 중에서는 많이 들음과 많이 또 보시하고 계율을 지니며 믿음 등으로,
차츰차츰 세력을 얻는 것이니,
그 밖의 지 중에서도 역시 그와 같다.
‘물러나게 할 수 있는 이가 없다’ 함은 이 지 중에 머무르면 사문ㆍ바라문이거나 하늘ㆍ악마ㆍ범천이거나 그 밖에 세간에는 물러나게 할 수 있는 이가 없다.
왜냐하면 큰 공덕의 힘을 얻은 까닭이며,
법 성품의 밑까지 깊이 들은 까닭이며,
크게 믿고 아는 까닭이다.
‘보살의 깨끗한 지로부터서 한량없는 부처님의 지에 이른다’고 함은,
만약 보살이 깨끗한 온갖 지를 완전히 갖추고 나면 곧 부처님 지를 얻나니,
이 여러 일 중에서 모두 방편을 잘 알아야 한다.
‘착한 사람들에게 청하고 묻는다’ 함은 바른 법을 성취한 까닭에 착한 사람이라 한다.
바른 법이란,
간략하게 말하면 첫째 믿음,
둘째 정진(精進),
셋째 생각[念],
넷째 정(定),
다섯째 지혜,
여섯째 몸ㆍ입ㆍ뜻의 율의(律儀),
일곱째 탐냄이 없고 성냄이 없고 어리석음이 없는 것이다.
‘교만을 없애 버린다’ 함은 스스로가 말하기를
“나야말로 훌륭한 사람들 중에서도 훌륭하다”라고 하면 크게 잘난 체[大慢]함이라 하고,
자기와 같은 또래 중에서 나은 척하며 마음으로 제가 높은 체하면 잘난 체[驕慢]함이라 하며,
크기가 남보다 못하면서 오히려 작아서 “나만 못하다”고 말하면 못난 체[小慢]하는 것이라 한다.
【문】그대는 이 모든 법 중에서 방편을 잘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는데,
이 방편을 얻어서 무엇에 쓸 것인가?
【답】보살이 만약 모든 지 중에서
형상과 얻음[得]을 잘 안다면
부처님의 도를 이루지 못하고선
끝끝내 초지에서 물러나지 않으리라.
‘형상’이라 함은 모든 지를 돕는 등의 일곱 가지 법이며,
‘얻음’이라 함은 서로 어기는 법이니 여덟 가지가 있으며,
없애는 등의 여덟 가지 법은 행하지 않아야 한다.
만약 보살이 이 법을 잘 알면,
부처님의 도를 얻지 않고서는 끝끝내 물러나지 않는다.
○ [pt op tr]
○ 2019_1201_151759_can_Ar26_s12.jpg
○ 2019_1106_111056_can_ct19_s12.jpg
○ 2019_1105_131452_can_exc_s12.jpg
○ 2019_1105_111428_can_Ar26_s12.jpg
○ 2019_1106_124227_nik_exc_s12.jpg
○ 2019_1105_161023_nik_ct8_s12.jpg
○ 2019_1201_155430_nik_BW17.jpg
○ 2019_1106_131117_can_CT28.jpg
○ 2019_1106_121531_nik_ct19_s12.jpg
○ 2019_1201_161641_nik_Ab31_s12.jpg
○ 2019_1105_125959_can_ct8.jpg
○ 2020_0211_134242_can_ct18.jpg
○ 2019_1201_154316_can_BW21_s12.jpg
○ 2019_1106_114643_can_fix.jpg
○ 2019_1105_111504_can_BW17.jpg
○ 2019_1106_095248_can_ab28_s12.jpg
○ 2019_1105_133719_nik_Ab27.jpg
○ 2019_1106_170539_can_bw24.jpg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Piaf Edith - Le Chasseur De L'hotel.lrc
◈Lab value 불기2564/08/25 |
○ 2019_1105_123807_can_bw24.jpg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ivan-aivazovsky-night-in-amalfi-1854 ○ 2018_0419_135105_can.jpg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King_vulture
이런 경우 해당 자료를 원하는 이가 친한 이에게 본인 논문을 나눠 준 적이 있다. 나중에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자신이 받아서 읽어보려고 했는데 내용을 알기 힘들어서 그냥 바로 버렸다고 솔직히 말한다. 친하기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또 그 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이다. 결국 같은 분야에서 연구하는 동학들 뿐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 가운데 서로간에 연구에 도움을 줘야 한다. 경전의 난이도를 대강 살펴야 한다. 각 대장경마다 경전과 논서 율장의 특성에 따라 일정한 체계를 두고 분류해 수록한다. 그런데 비교적 최근에 대장경을 편집한 신수대장경 체계가 그래도 상대적으로 낫다. 신수대장경 체계는 다음과 같다. 그래서 이 체계대로 점차 나아가면 그래도 무난하다. 아함부(1-151) (420) 본연부(152-219) (374) 반야부(220-261) (1277) 법화부(262-277) (94) 화엄부(278-309) (368) 보적부(310-373) (269) 열반부(374_396) (219) 대집부(397-424) (273) 경집부(425_847) (729) 밀교부(848-1420) (443) 율부(1421-1504) (573) 석경론부(1505-1535) (269) 비담부(1536-1563) (815) 중관부(1564-1578) (117) 유가부(1579-1627) (332) 논집부(1628-1692) (158) 경소부(1693-1803) (77) 율소부(1804-1815) (0) 논소부(1816-1850) (15) 제종부(1851-2025) (133) 사전부(2026-2120) 어떤 대학의 박사나 교강사라고 해도 다른 분야를 접할 때는 고등학교 졸업자 상태와 사정이 비슷하다. 전문용어도 낯설고 내용이 낯설다. 그런 가운데 고등학교나 타 분야 전문가 입장에서 불교 대장경을 처음 대할 때 무난한 대장경은 아함부와 본연부 정도라고 해야 한다. 알고 보면 이 경전들도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대단히 수준이 높다. 그런데 나머지는 불교를 오래 연구한 경우에도 또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 중에는 기복불교 차원으로 세속에서 갖는 소원을 빨리 성취하기 위한 방편으로 불교를 대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에는 오히려 밀교부 경전읃 대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밀교부 경전 자체는 대단히 수준이 높다. 그러나 대단히 기본적인 입장을 대상으로 하고 이를 초점으로 하여 제시되는 특성도 갖는다. 진언 다라니 수행이 그 대표적인 예다. 내용을 어차피 모른다. 그러나 그런 수행을 하면 소원은 성취되고 또 수행을 통해 거두고자 하는 상태에 가깝게 된다. 나머지 범주는 일반적으로 대단히 이해하기 힘들다. 한편 율장 부분은 내용은 비교적 쉽다. 그러나 이는 출가 수행자에게 적절한 내용이다. 일반적 입장에서는 신도 5 계 정도가 적절하다. 그래서 대장경 내 대부분은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수준이 맞지 않는 우이독경 범주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불교신자에게 널리 알려진 금강경 반야심경 법화경 화엄경 원각경 해심밀경 등은 알고보면 불교 안에서도 대단히 수준이 높은 경전들이다. 글 내용 자체는 평이해도 그에 담긴 뜻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법화경이 그런 사례의 하나다. 내용 자체는 대단히 평이하다. 그런데 법화경이 다루는 내용 자체는 대장경 전반을 다 이해한 다음 이를 총괄적으로 개관하는 입장이다. 그래서 문장이 평이하기에 읽을 수는 있어도 그 내용이 무엇을 나타내는가는 파악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대장경이 이런 형태로 제시된 사정이 있다. 분해는 조립의 역순이라는 말이 이 경우에도 적용된다. 원래 경전 내용이 제시되게 되는 배경 순서는 화엄경 법화경 -- 이런 순서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부처님이 처음 대하는 상대는 전혀 부처님 깨달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인이다. 그 중에는 글자 자체도 못 읽는 문맹 상태도 많다. 그런 사정 때문에 하나씩 단계를 높여가면서 최종적으로 부처님의 상태로 이끌어들이는 노력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가 대장경이다. 그래서 오늘날도 대장경 각 경전의 상호관계에 대해서 오해가 많다. 그리고 심지어 대승경전은 부처님 설이 아니라는 주장까지 제시되기도 한다. 그래서 혹자는 여래장설을 제시하는 경전은 위경이다. 또는 상락아정을 제시하는 열반경을 위경이다. 또는 밀교경전들은 위경이다. 이런 주장까지 제시된다. 한마디로 경전 내용에 대해서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이해되는 경전을 붙들고 그것은 부처님 가르침이라고 믿는 한편, 이해되지 않는 경전은 위경이라고 주장하는 경향을 갖는다. 그러나 사정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그런 경우 해당 경전은 상대적으로 우이독경의 범주에 남게 된다. 그리고 이런 어려움이 현실에 있다. 경전 안의 사정도 그렇지만, 논서 범주에서도 사정이 비슷하다. 대표적으로 대비바사론 구사론 중론 유가사지론 대승기신론 이런 식으로 각 논서의 특성이 다르다. 그래서 이들 논서도 순서적으로 하나씩 잘 살펴나가야 한다. 무조건 마음 내키는 대로 하나 붙들고 읽어나가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자신에게 적절한 경전과 논서를 찾아내려면 일단 대장경을 펼쳐 그 내용을 살펴보면 된다. 그래서 내용 가운데 한 7~80 %는 이해가 되고 나머지 2 -30% 를 모르겠다고 하면 그것이 적절한 경전과 논서다. 만일 100 % 다 안다면 굳이 살필 필요성은 적다. 또 내용의 반절도 모르겠다면 살피는데 너무 힘들게 된다. 그래서 위와 같이 찾아나가면 자신에게 적절한 경전과 논서가 찾아진다. 이는 수학을 배우는 과정과 같다. 불교내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경전과 논서가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그것부터 먼저 붙들고 살피면 이해하기 힘들다. 차근차근 단계적으로 살펴야 그 내용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전체 내용을 이해하게 되면 왜 대장경이 이렇게 제각각 조금씩 특성이 다르게 제시되었는가하는 사정도 이해하게 된다. 그것은 수학으로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수학과 대학원에서 학위를 받고 교수가 된 상태에서 살피면 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교과 내용이 그렇게 제각각 다른 형태로 제시되는가 그 사정을 이해하게 되는 것과 같다. 초등생이 고등학교 수학 책을 대하면서 처음부터 이해되지 않는다. 말도 안 된다. 작은 수에서 어떻게 큰 수를 뺄 수 있는가. 이런 식으로 의문을 제기하면 일단 곤란하다. 대장경도 마찬가지다. 부처님이 기본적으로 무상, 무아. 고, 공, 열반적정 이런 내용을 제시한다. 그리고 인과를 말씀하고 생사윤회를 말씀하신다. 그리고 생사고통을 벗어나는 수행을 말씀하신다. 그렇게 무아와 공을 말씀하시는데 상락아정을 제시하는 경전이 어떻게 부처님 경전인가? 무아를 말씀하시는데 어떻게 여래장을 제시할 수 있는가? 원칙적인 수행을 해야 마땅한데 진언수행이 왠 말인가? 생사 윤회를 말씀하시는데 불생불멸을 제시하는 것이 웬말인가. 생사 연기 인과를 말씀하시는데 생멸도 얻을 수 없고 인과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은 왠말인가. 이런 식으로 의문을 제기하기 쉽다. 그래서 이런 내용들의 상호관계를 잘 살피고 이해해야 한다.
|
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8/2564-08-25-k0584-012.html#1467 sfed--십주비바사론_K0584_T1521.txt ☞제12권 sfd8--불교단상_2564_08.txt ☞◆vxgy1467 불기2564-08-25 θθ |
■ 선물 퀴즈
방문자선물 안내페이지
다음에 해당하는 단어를 본 페이지 에 댓글로 적어주시면 됩니다.
빈녀일등(貧女一燈)이라고도 함. 가난한 어느 여자가 공양하는 한 등잔불은 큰 부자가 공양하는 만 등잔불보다 더 훌륭하다는 말. 옛날에 부처님이 아사세왕의 청장을 받아 왕궁에서 설법하고 밤이 되어 기원정사로 돌아가려 할 때에, 왕은 대궐에서 절까지 가는 길에 수만 개의 등불을 켜서 공양하였다. 그때에 한 노파가 왕이 이렇게 공양하는 것을 기뻐하여, 자기도 거리에서 구걸하여 얻은 돈 2전을 가지고 기름을 사서 등불 하나를 켜서 공양하였다. 이 한 등불은 왕의 수만 개 등보다 광명이 유달리 밝았고, 새벽이 되매, 수만 개의 등은 다 꺼졌으나, 이 한 등만은 더욱 불빛이 빛났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목련에게 “이 노파는 일찍 80억 부처님께 공양하였으니 30겁 후에는 부처가 되어 ‘수미등광여래’ 라고 이름하리라”하신 데서 기원한 말.
답 후보
● 빈자일등(貧者一燈)
사계(四界)
사근본번뇌(四根本煩惱)
사다라니(四陀羅尼)
사덕(四德)
사령운(謝靈運)
사만상대(四曼相大)
ॐ मणि पद्मे हूँ
○ [pt op tr]
○ [pt op tr]
● 십주비바사론_K0584_T1521 [문서정보]- 일일단상키워드
'과거조각글 > 불기2564(2020)'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기2564-08-27_대반야바라밀다경-K0001-273 (0) | 2020.08.27 |
---|---|
불기2564-08-26_증일아함경-K0649-019 (0) | 2020.08.26 |
불기2564-08-24_대방광불화엄경-K0079-009 (0) | 2020.08.24 |
불기2564-08-23_대반야바라밀다경-K0001-126 (0) | 2020.08.23 |
불기2564-08-22_대보적경-K0022-104 (0) | 2020.08.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