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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4-08-24_대방광불화엄경-K0079-009 본문
『대방광불화엄경』
K0079
T0278
제9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안내
○ 해제[있는경우]
● TTS 음성듣기 안내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대방광불화엄경』 ♣0079-009♧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大方廣佛華嚴經卷第九
K0079
대방광불화엄경 제9권
동진 천축삼장 불타발타라 한역
이운허 번역
그때 제석천이 법혜보살에게 아뢰었다.
“불자여,
처음으로 발심한 보살은 얼마만 한 공덕 창고를 성취할 수 있습니까?”◂
법혜가 대답했다.
“불자여,
그 이치는 매우 깊어,
알기 어렵고 믿기 어려우며,
이해하기 어렵고 말하기 어려우며,
통달하기 어렵고 분별하기 어려우니라.
그러나 나는 부처님 신력을 받들어 자세히 설명하리라.
불자여,
가령 어떤 사람이 동방의 아승기 세계 중생들에게
한 겁 동안 오락 도구를 공양한 뒤에
그들로 하여금 오계(五戒)를 깨끗이 닦게 하되
동ㆍ서ㆍ남ㆍ북과 네 간방과 상방ㆍ하방에도 그와 같이 했다면,
불자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의 공덕이 많다고 하겠는가?”
제석이 말하였다.
“불자여,
그 사람의 공덕은 여래 이외에는 아무도 측량할 수 없을 것입니다.”
법혜보살이 제석에게 말하였다.
“불자여,
처음으로 발심한 보살의 공덕 창고에 비하면 그 사람의 공덕은 그 백분의 하나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요,
천분ㆍ백천분ㆍ억분ㆍ백억분ㆍ천억분ㆍ백천억분ㆍ
백 나유타분ㆍ천 나유타분ㆍ백천 나유타분ㆍ억 나유타분ㆍ백억 나유타분ㆍ천억 나유타분ㆍ백천억 나유타분,
내지 셀 수 없음 분ㆍ비유할 수 없음 분ㆍ말할 수 없음 분의 그 하나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불자여,
이 비유는 그만두고,
가령 어떤 사람이 시방의 열 아승기 세계 중생들에게
백 겁 동안 오락 도구를 공양한 뒤에 그들로 하여금
십선을 깨끗이 닦게 하고 다음에는 천 겁 동안 일체 오락 도구를 공양한 뒤에 다시 사선(四禪)을 깨끗이 닦게 하며,
다음에는 백천 겁 동안 일체 오락 도구를 공양한 뒤에 사무량심(四無量心)을 행하게 하고,
다음에는 억 겁 동안 일체 오락 도구를 공양한 뒤에 다시 사무색정(四無色定)을 행하게 하며,
다음에는 백억 겁 동안 일체 오락 도구를 공양한 뒤에 다시 수다원과를 얻게 하며,
다음에는 천억 겁 동안 일체 오락 도구를 공양한 뒤에 다시 사다함과를 얻게 하고,
다음에는 백억 겁 동안 일체 오락 도구를 공양한 뒤에 다시 아나함과를 얻게 하며,
다음에는 억 나유타겁 동안 일체 오락 도구를 공양한 뒤에 아라한과를 얻게 하고,
다음에는 천억 나유타겁 동안 일체 오락 도구를 공양한 뒤에 다시 다 연각을 이루게 한다면 불자여,
어떻겠는가.
그 사람의 공덕이 많다 하겠는가?”
제석이 말하였다.
“그 사람의 공덕은 부처님 이외에는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법혜는 말하였다.
“불자여,
처음으로 발심한 보살의 공덕 창고에 비하면 그 사람의 공덕은 그 백분ㆍ천분,
내지 셀 수 없음 분ㆍ비유할 수 없음 분ㆍ말할 수 없음 분의 그 하나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불자여,
모든 부처님이 처음으로 발심할 때에 시방의 열 아승기 세계 중생들에게
백겁 내지 천억 나유타겁 동안 일체 오락 도구를 공양하기 위해 세상에 나오신 것이 아니며,
또 그 중생들로 하여금 오계ㆍ십선ㆍ사선ㆍ사무량심ㆍ사무색정ㆍ
수다원과ㆍ사다함과ㆍ아나함과ㆍ아라한과ㆍ벽지불도를 깨끗이 닦게 하기 위해 세상에 나오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처음에 보리심을 낸 것은 부처 종자가 끊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요,
시방 일체 세계에 가득하기 위해서며,
일체 중생을 다 제도하기 위해서요,
일체 세계의 이뤄지고 무너짐을 다 알기 위해서요,
일체 세계 중생들의 더러움과 깨끗함이 일어나는 것을 다 알기 위해서며,
일체 세계의 제 성품이 청정함을 다 알기 위해서요,
중생들의 허망함과 번뇌와 습기를 다 알기 위해서요,
중생들이 여기서 죽어 저기서 나는 것을 다 알기 위해서며,
중생들의 근성과 방편을 다 알기 위해서요,
중생들의 마음과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을 다 알기 위해서며,
삼세 일체 중생을 다 분별하기 위해서요,
모든 부처님의 평등한 경계를 다 알기 위해서니라.
불자여,
또 이 비유는 그만두고,
가령 어떤 사람이 한 찰나 사이에 동방의 한량없는 세계를 지나간다고 하자.
그러나 그는 이런 자재한 신력으로 여기서 동쪽으로 한량없고 수없는 아승기겁 동안 가더라도 그 세계의 끝에는 닿을 수 없다.
또 둘째 사람도 자재한 신력으로 한 찰나 사이에 앞 사람이 한량없고 수없는 아승기겁 동안 가더라도 그 세계(世界)의 끝에는 닿을 수 없다.
또 셋째 사람도 자재한 신력으로 한 찰나 사이에 앞 사람의 한량없고 수없는 아승기겁 동안 간 세계를 지나갔고,
넷째 사람도 자재한 신력으로 한 찰나 사이에 앞 사람의 한량없고 수없는 아승기겁 동안 간 세계를 지나갔으며,
또 다섯째 사람도 자재한 신력으로 한 찰나 사이에 앞 사람의 한량없고 수없는 아승기겁 동안 간 세계를 지나갔고,
또 여섯째 사람도 자재한 신력으로 한 찰나 사이에 앞 사람의 한량없고 수없는 아승기겁 동안 간 세계를 지나갔으며,
또 아홉째 사람도 자재한 신력으로 한 찰나 사이에 앞 사람의 한량없고 수없는 아승기겁 동안 간 세계를 지나갔고,
또 열째 사람도 그 가장 훌륭한 자재한 신력으로 여기서 동쪽으로 한량없고 수없는 아승기겁 동안 가더라도,
그 세계 끝에는 닿을 수 없으며,
시방세계에 있어서도 또한 이와 같다.
이렇게 차례로 백 사람이
모두 이 가장 뛰어난 자재한 신력으로 무량 무수한 아승기겁 동안 지나갔다면
그 시방세계의 끝은 그래도 알 수 있지만
처음으로 발심한 보살의 공덕 창고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처음으로 발심한 보살은 그들 세계의 중생들만을 위해 보리심을 낸 것이 아니요,
시방의 일체 세계 중생을 위해 보리심을 내었기 때문이며,
일체 중생을 제도하고 일체 세계를 분별해 알기 위해 보리심을 낸 것이기 때문이니라.
즉,
작은 세계가 곧 큰 세계요,
큰 세계가 곧 작은 세계며,
적은 세계가 곧 많은 세계요,
많은 세계가 곧 적은 세계며,
넓은 세계가 곧 좁은 세계요,
좁은 세계가 곧 넓은 세계며,
한 세계가 곧 무량무변한 세계요,
무량무변한 세계가 곧 한 세계며,
무량무변한 세계가 한 세계에 들어가고
한 세계가 무량무변한 세계에 들어가며,
더러운 세계가 곧 깨끗한 세계요,
깨끗한 세계가 곧 더러운 세계임을 알기 위해서며,
또 한 털구멍 안에서 일체 세계를 분별해 알고 일체 세계 안에서 한 털구멍의 성품을 알며,
한 세계가 일체 세계를 내고 일체 세계가 마치 허공 같음을 알며,
한 생각에 일체 세계를 남김없이 다 알기 위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낸 것이니라.
불자여,
이 비유는 그만두고,
가령 어떤 사람이 한 찰나 사이에 동방의 무량무변한 아승기 세계의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수를 다 분별해 안다고 하자,
그러나 이 사람이 부지런한 방편으로 찰나마다 차례로 무량 무수한 아승기겁 동안 동방 세계의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수를 다 세어 알고자 하더라도 그것을 알 수 없으리라.
또 둘째 사람이 앞 사람의 무량 무수한 아승기겁 동안에 세계의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수를 한 찰나 사이에 다 안다고 하자,
그러나 이 사람이 부지런한 방편으로 찰나마다 차례로 무량 무수한 아승기겁 동안 세더라도 동방 세계의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수를 다 알 수는 없으리라.
이와 같이 차례로 열 사람에 이르되,
저 열째 사람이 아홉째 사람의 무량무변한 아승기겁 동안에 센 세계의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수를 한 찰나 사이에 다 안다고 하자,
그러나 이 사람이 부지런한 방편으로 찰나마다 차례로 무량무변한 아승기겁 동안 세더라도 동방 세계의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수를 다 알 수는 없으리니,
시방(十方)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으리라.
그러나 시방의 무량무변한 세계의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수는 그래도 알 수 있지만 처음 발심한 보살의 공덕 창고는 알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처음 발심한 그 보살마하살은 다만 그 세계의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겁수만을 알기 위해 보리심을 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보살마하살은 일체 세계의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겁수를 알기 위해 보리심을 내었고 또 긴 겁이 곧 짧은 겁이요,
짧은 겁이 곧 긴 겁이란 것과 한 겁이 곧 셀 수 없는 아승기겁이요,
셀 수 없는 아승기겁이 곧 한 겁이란 것과 일체 부처가 있는 겁과 일체 부처가 없는 겁과 한 부처 겁 가운데 무량한 부처가 있고 무량한 부처 겁 가운데 한 부처가 있다는 것과,
다른 겁 가운데 다르지 않은 겁이 있고 다르지 않는 겁 가운데 다른 겁이 있다는 것과 다함 있는 겁이 곧 다함없는 겁이요,
다함없는 겁이 곧 다함 있는 겁이란 것과 한량없는 겁이 곧 한 찰나요,
한 찰나가 곧 한량없는 겁이란 것과 일체 겁이 겁 없는 데 들어가고 겁 없는 것이 일체 겁에 들어간다는 것과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세계가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겁수 등을 다 알기 위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낸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큰 서원으로 장엄하여 일체의 겁을 다 아는 밝은 지혜라 하느니라.
불자여,
이 비유는 또 그만두고,
가령 어떤 사람이 한 찰나 사이에 무량무변한 아승기 세계 중생들의 갖가지 욕락(欲樂)을 모두 안다고 하자,
그러나 이 사람이 부지런한 방편으로 찰나마다 차례로 무량 무수한 아승기겁 동안에 동방 일체 세계 중생들의 욕락을 다 알고자 해도 알 수는 없으리라.
이렇게 차례로 열째 사람에 이르되,
저 열째 사람이 아홉째 사람의 무량 무수한 아승기겁 동안 부지런한 방편으로 안 중생들의 갖가지 욕락을 다 안다고 하자,
그러나 이 사람이 부지런한 방편으로 찰나마다 차례로 무량 무수한 아승기겁 동안 동방 일체 세계 중생들의 갖가지 욕락을 알고자 해도 알 수는 없으리니 시방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으리라.
그러나 그런 시방의 무량무변한 아승기 세계 중생들의 갖가지 욕락은 그래도 알 수 있지만 처음 발심한 보살의 공덕 창고는 알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불자여,
처음 발심한 보살마하살은 다만 그 세계 중생들의 갖가지 욕락만을 알기 위해 보리심을 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시방 일체 세계 중생들의 갖가지 욕락을 알기 위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낸 것이요,
또 갖가지 한량없는 욕락이 곧 한 욕락으로서 그것은 또 일체의 욕망의 성품[欲性]을 무너뜨리지 않는다는 것과 일체 중생의 욕락 바다를 다 알고,
한 중생의 욕망은 곧 일체 중생의 욕망이라는 것과 일체 중생들의 과거ㆍ미래ㆍ현재의 갖가지 욕락을 다 알면 서로 비슷한 욕망과 서로 같지 않은 욕망을 알고 일체의 욕망이 곧 한 욕망이요,
한 욕망이 곧 일체의 욕망이라는 것과 여래의 갖가지 욕락의 힘을 모두 얻기 위해 보리심을 낸 것이니라.
또 위가 있는 욕망과 위가 없는 욕망,
남음이 있는 욕망과 남음이 없는 욕망,
평등한 욕망과 평등하지 않은 욕망,
의지함이 있는 욕망과 의지함이 없는 욕망,
함께하는 욕망과 함께 하지 않는 욕망,
끝이 있는 욕망과 끝이 없는 욕망,
선한 욕망과 선하지 않는 욕망,
세간의 욕망과 출세간의 욕망,
큰 지혜에 대한 욕망,
깨끗한 욕망,
훌륭한 욕망,
걸림없는 지혜에 대한 욕망,
걸림없는 지혜를 가진 부처의 해탈에 대한 욕망,
깨끗한 욕망과 깨끗하지 않은 욕망,
넓은 욕망과 좁은 욕망,
미세한 욕망과 거친 욕망 등을 알기 위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낸 것이니라.
그는 모든 중생이 각각 가진 욕망을 모두 알려고 했으니 이른바 고통으로 인해 생기는 욕망,
방편에 대한 욕망,
희망에 대한 욕망,
맛에 대한 욕망,
원인에 따라 생기는 욕망,
반연[緣]을 따라 생기는 욕망,
다하려는 욕망,
일체를 가지려는 욕망이니,
처음 발심한 보살마하살은 이런 모든 욕망 그물을 다 분별해 알기 위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낸 것이니라.
불자여,
이 비유는 또 그만두고,
가령 어떤 사람이 한 찰나 사이에 무량무변한 아승기 세계 중생들의 갖가지 근성을 다 안다 하자.
그러나 그는 그 지혜의 부지런한 방편으로도 찰나마다 차례로 무량 무수한 아승기겁 동안에 동방 일체 세계 중생들의 갖가지 근성을 다 알지 못하며,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고) 내지 일체 중생이 각각 가진 열 가지 근성을 다 안다 하더라도……
불자여,
이 비유는 또 그만두고,
가령 어떤 사람이 한 찰나 사이에 동방의 무량무변한 아승기 세계 중생들의 갖가지 희망을 다 알며,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고) 내지 일체 중생이 각각 가진 열 가지 희망을 다 안다 하더라도……
불자여,
이 비유는 또 그만두고,
가령 어떤 사람이 한 찰나 사이에 무량무변한 아승기 세계 중생들의 갖가지 방편을 다 알며,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고) 내지 일체 중생이 각각 가진 열 가지 방편을 다 안다 하더라도……
불자여,
이 비유는 또 그만두고,
가령 어떤 사람이 한 찰나 사이에 무량무변한 아승기 세계 중생들의 갖가지 업을 다 알며,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고) 내지 일체 중생이 가진 열 가지 업을 다 안다 하더라도……
불자여,
이 비유는 또 그만두고,
가령 어떤 사람이 한 찰나 사이에 동방의 무량무변한 아승기 세계 중생들의 갖가지 번뇌를 다 안다 하자.
그러나 그는 부지런한 방편으로 찰나마다 차례로 무량 무수한 아승기겁 동안에도 동방의 일체 중생들의 갖가지 번뇌는 다 알지 못한다.
이렇게 차례로 열 사람에 이르러,
그 열째 사람은 아홉째 사람의 무량 무수한 아승기겁 동안에 안 중생들의 갖가지 번뇌를 한 찰나에 다 알지만 그는 그런 부지런한 방편으로 찰나 찰나마다 차례로 무량 무수한 아승기겁 동안에도 일체 중생의 갖가지 번뇌는 다 알지 못하며 내지 시방에 있어서도 그와 같다.
그러나 그 세계 일체 중생의 갖가지 번뇌는 그래도 알 수 있지만 처음 발심한 보살의 공덕은 알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불자여,
처음 발심한 보살은 다만 그 세계 중생들의 갖가지 번뇌만을 알기 위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일체 중생의 갖가지 번뇌를 다 분별해 알기 위해 보리심을 낸 것이니 이른바 가벼운 번뇌와 무거운 번뇌,
맺고 부리는 번뇌[結使煩惱],
얽어매는 번뇌[纏煩惱],
낱낱 중생의 한량없는 번뇌,
중생들의 갖가지 관찰하는 번뇌[覺觀煩惱],
무명을 의지하는 번뇌,
애욕과 어울리는 번뇌,
좋지 못한 탐욕의 번뇌,
좋지 못한 분노의 번뇌,
좋지 못한 우치의 번뇌,
평등한 성품에 대한 번뇌[等分煩惱],
일체의 번뇌,
근본 번뇌,
나와 내 것에 대한 번뇌[我我所煩惱],
아만의 번뇌,
삿된 기억에서 허망하게 생기는 번뇌,
신견(身見)에서 생기는 예순 두 가지 견해 등의 모든 번뇌,
덮음의 번뇌[蓋煩惱],
막음의 번뇌[障礙煩惱] 등이니,
그는 일체 중생의 이런 번뇌 그물을 다 알고
큰 자비와 일체를 낱낱이 아는 지혜를 모두 갖추기 위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낸 것이니라.
불자여,
이 비유는 또 그만두고,
가령 어떤 사람이 한 찰나 사이에 동방의 무량무변한 세계에 현재 계시는 모든 부처님과
모든 중생을 다 보고 그를 공경하고 예배하며,
존중하고 찬탄하면서 일심으로 관찰하고는,
한량없는 맛난 음식과 향ㆍ꽃ㆍ영락ㆍ비단ㆍ당기ㆍ일산과 훌륭한 궁전ㆍ장식한 휘장ㆍ보배 그물과 온갖 보배로 장엄한 사자좌를 공양하고,
또 부지런한 방편으로 찰나마다 차례로 이런 묘한 공양거리로써 무량 무수한 아승기겁 동안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며,
또 중생들을 권해 그런 온갖 묘한 공양거리로 무량 무수한 아승기겁 동안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였다 하자.
그리고 그 여래께서 열반하신 뒤에는 다시 그 낱낱 부처님을 위해 한량없는 보배로 탑을 세워 공양하는데 그 탑은 모두 높고 넓어 무량무변한 세계에 두루 차며,
또 아주 훌륭하고 묘한 온갖 보배로 장엄하였고 그 낱낱 탑 안에는 무량 무수한 여래 형상을 모셨는데 그 형상의 광명은 무량무변한 모든 부처 세계를 두루 비추었었다.
또 그 낱낱 중생들을 권해 여래를 위해 온갖 보배탑을 세웠는데,
그 장엄은 앞의 것 같으며 시방세계에도 다 이와 같이 했다면,
불자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의 공덕은 얼마나 많겠는가?”
제석은 대답했다.
“그 사람의 공덕은 부처님 이외에는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법혜보살이 말했다.
“불자여,
그 사람의 공덕도 처음 발심한 보살마하살의 공덕 창고에 비하면
그 백분,
천분 내지 셀 수 없음 분,
비유할 수 없음 분,
말할 수 없음 분의 하나에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불자여,
가령 어떤 사람이 첫째 사람의 권유를 받은 중생이 부지런한 방편으로 찰나마다 차례로 무량 무수한 아승기겁 동안에 지은 공덕의 공양거리를 한 찰나 사이에 다 분별해 안다면,
그가 이렇게 부지런한 방편으로 찰나마다 차례로 무량 무수한 아승기겁 동안에 공양한 공덕은(앞에서 자세히 말한 것과 같고) 이와 같이 차례로 열째 사람에 이르러(또 앞에서 자세히 말한 것과 같고) 그것도 처음 발심한 보살마하살의 공덕 창고에 비하면 백분,
천분 내지 셀 수 없음 분,
비유할 수 없음 분,
말할 수 없음 분의 그 하나에도 미치지 못하느니라.
왜 그러냐 하면 불자여,
그 보살은 다만 그 부처님만을 공양하기 위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그는 시방 법계ㆍ허공계와 같은 세계의 삼세 부처님께 공양하기 위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낸 것이요,
그 마음을 낸 뒤에는 과거 부처님들의 걸림없는 지혜를 다 알고 미래 부처님들의 공덕을 모두 믿으며,
현재 부처님의 설법하는 지혜를 다 알게 되느니라.
그 보살마하살은 모두 믿고 향하며,
받아 지니고 닦아 익히며,
몸으로 증득하여 모든 부처님의 일체 공덕과 같으니라.
왜 그러냐 하면 처음 발심한 보살마하살은 일체 부처 종성(種姓)을 끊이지 않기 위해 보리심을 내었고,
자비심을 모든 세계 중생들에게 남김없이 채우고 일체 중생을 다 구제하며,
일체 세계 중생들의 마음에 일어나는 더러움과 깨끗함을 다 알고 삼유(三有) 중생들을 다 깨끗하게 하며,
중생들 마음의 번뇌와 습기를 다 알고 중생들이 여기서 죽어 저기서 나는 것을 다 알며,
중생들의 근성과 방편을 다 알고 중생들의 마음과 마음의 작용을 다 알기 위해 보리심을 내었느니라.
또 삼세의 일체 중생들을 다 알기 위해 발심하였고 삼세 부처님의 갖추신 공덕을 다 알고 삼세 부처님 법의 평등한 모양을 다 알며,
삼세 부처님의 위없는 지혜와 인연의 청정함을 다 알고 삼세 부처님의 지혜의 힘을 다 알며,
삼세 부처님의 두려움 없는 법을 모두 갖추고 삼세 부처님의 불공법(不共法)을 모두 갖추어 장엄하며,
법계와 같은 무량무변한 삼세 부처님의 평등한 지혜를 얻기 위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느니라.
왜 그러냐 하면 처음 발심한 그 보살은 곧 부처이기 때문이니,
그들은 다 삼세 여래들과 평등하고 삼세 부처님의 경계와 평등하며,
삼세 부처님의 바른 법과 평등하고 여래의 한 몸과 한량없는 몸을 얻으며,
삼세 부처님의 평등한 지혜와 교화한 중생이 다 평등하고 모든 세계를 다 진동시키며,
일체 세계를 두루 비추고 일체 세계 모든 나쁜 갈래의 고통을 다 쉬게 하고 일체 세계를 다 깨끗이 하며,
모든 세계에서 부처 된 것을 나타내 보이며,
일체 중생을 다 기쁘게 하고 중생들이 다 깊은 법계를 알게 하며,
부처님 종성을 다 잘 보호해 가지고 부처님의 지혜의 광명을 모두 얻을 것이니라.
처음 발심한 그 보살마하살은
삼세 부처님과 그 법과 일체의 보살ㆍ연각ㆍ성문과 또 그 행과 세간 출세간법과 중생과 그 법 등을 언제나 떠나지 않고,
오로지 보리를 구해 그 지혜가 걸림이 없느니라.”
그때 부처님의 신력과 처음 발심한 보살의 공덕 창고를 기뻐한 힘으로
시방의 각각 만 부처 세계 티끌 수 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고 온갖 하늘 꽃과 하늘 향,
하늘 가루향,
하늘 화만,
하늘 보배,
하늘 장엄 도구들이 내리며,
미묘한 음악 소리가 저절로 나고 또 사자처럼 외치는 소리를 떨치며,
큰 광명을 놓아 시방을 두루 비추었다.
만 부처 세계 티끌 수 같은 부처님이 계셨는데
그 명호는 모두 법혜였다.
그분들은 각기 그 몸을 나타내어 법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장하다.
불자여,
그대는 처음 발심한 보살의 공덕 창고를 잘 말하였다.
우리 부처 세계 티끌 수 여래도
또한 처음 발심한 보살의 공덕 창고를 연설하고
시방세계 부처님도 또한 그렇게 말하느니라.
그대가 처음 발심한 보살의 공덕 창고를 말할 때
만 부처 세계 티끌 수 중생들이
다 처음 발심한 보살의 공덕 창고를 얻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다.◂
이 다음 세상에 그들은 각기 시방에서 한꺼번에 성불하여
그 이름을 모두 정심(淨心) 여래ㆍ응공ㆍ등정각이라 하리라.
그리고 우리는 미래의 모든 보살을 위해 이 법을 보호해 지니리라.◂
지금 이 사바세계 사천하 염부제의 보리수 밑,
수미산 꼭대기의 묘승전 위에서 이 법을 연설해 중생을 교화하는 것처럼,
시방세계 천억 나유타 헤아릴 수 없고,
셀 수 없고 불가사의하고 끝이 없고 말할 수 없는 법계ㆍ허공계 같은 세계에서도
또한 이 법을 연설하여 중생을 교화하느니라.
그 법을 연설하는 이는 다 법혜라 이름할 것이니,
그것은 부처님의 신력과 부처님의 본래 원력 때문이며,
또 불법을 나타내 보이고 지혜의 광명이 두루 비치며,
최상의 진리[第一義]를 알기 때문이니,
법이 으레 그렇기 때문이다.
또 보살들이 기뻐하고 부처님 공덕을 찬탄하며,
모든 불법의 평등함을 알고 법계는 둘이 없음 등을 알리기 위한 때문이니라.”
그때 법혜보살이 시방세계 모든 대중과 허공계와 성취한 중생계를 두루 관찰하매,
그들은 다 업보를 어기지 않고 청정하기가 허공과 같았다.
그리하여 삼계 중생의 번뇌를 없애어 그들을 다 큰 해탈을 얻게 하고 또 그들의 갖가지 근성 등을 알며,
또 삼세와 열반으로 바로 나아감을 관찰하고
자기의 매우 깊고 청정한 갖가지 공덕을 나타내기 위해
부처님 신력을 받들어 게송을 외웠다.
인자하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
일체 시방세계에 가득히 차
모두 부처 세계와 그 부처 법과
그리고 삼세를 잘 분별하네.
부처님의 가지가지 많은 공덕과
보살의 법 창고를 모두 갖추고
모든 중생들에게 이익 주려고
보살은 처음으로 보리심을 내었네.
저 허공과 같은 온 법계와
일체 중생의 모든 무리와
모든 부처님과 또 그 법을
모두 알기 위하여 발심하였네.
일체 부처님이 갖가지 길에
이르는 그 힘을 모두 다 얻고
끝까지 변하거나 안 물러나고
중생에게 이익 주려 발심하였네.
온 세상 일체 중생 무리에 대해
언제나 사랑하고 슬퍼하는 마음 내고
노여워하는 생각 아주 버리고
이익 주려 닦아 익히네.
자비스런 광명은 시방 비추어
중생들 위해 귀의하는 곳 되며
모든 부처님이 항상 보호하나니
그 공덕은 진실로 헤아리기 어렵네.
일체의 모든 부처님의 세계와
매우 깊어 생각하거나 또 말하기 어려운
여래의 묘하신 그 법의 몸을
분별해 알기 위해 발심하였네.
한량없는 갖가지 공덕 창고와
그 지혜 매우 깊고 또 넓나니
그 때문에 처음으로 마음을 내어
오로지 부처님의 보리 구했네.
온 세상 일체의 중생 무리와
시방의 모든 세계 어디에서나
그 지혜 막히거나 걸림이 없어
그런 것들 알기 위해 발심하였네.
거칠고 미세한 모든 세계들
좁거나 혹은 넓기 한량없음과
모든 것 가운데서 하나를 알고
그 하나 가운데서 모든 것 아는
보살은 거기서 수행할 때에
부지런히 노력해 방일치 않고
괴로움과 즐거움에 집착 없나니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함이었네.
그 앞에 나타나는 부처님을
즐겨 보아 싫어하는 생각이 없고
깊고도 깊은 법과 또 한량없는
공덕의 그 바다에 다 들어가네.
다섯 길에 헤매는 모든 중생을
마치 외동아들처럼 가엾이 여겨
그들의 온갖 번뇌 다 없애 주고
맑고 깨끗한 법을 갖추게 하네.
모든 부처님의 그 종성을
영원히 끊어지지 않게 하고
일체의 마군들을 다 항복 받아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없애네.
일체의 부처님과 또 삼세의
모든 법의 모양을 평등하게 보고
매우 깊고도 또 미묘한 법을
방일하지 않고서 언제나 닦네.
일체 모든 부처님의 그 경계를
보살은 항상 즐겨 관찰하나니
그러므로 저 모든 여래는
그 정수리에 감로의 지혜를 쏟네.
부처님을 믿는 마음 막을 수 없고
견고하기 마치 저 금강과 같아
모든 여래의 그 처소에서
그 은혜를 알고 또 그 은혜 갚네.
가장 훌륭한 부처님의 경계와
한량이 없는 그 지혜의 광명을
남을 안 의지하고 스스로 깨치려고
보살은 처음으로 발심하였네.
다섯 갈래 중생들의 온갖 욕망과
갖가지의 그 모든 업의 과보와
그들의 그 마음의 온갖 작용들
그것들을 모두 잘 분별해 알고
그들의 날카롭고 둔한 근기와
무량하고 무수한 모든 성질과
훌륭한 모든 경계 알기 위하여
보살은 처음으로 발심하였네.
보리심은 한량없이 크고도 넓어
맑고 깨끗한 법계와 같고
집착도 없거니와 의지하는 데 없고
또 물듦이 없어 허공과 같네.
부처님의 지혜를 모두 이루어
그 마음에 아무런 장애가 없고
진실한 그 경지를 분명히 알아
적멸하여 모든 허망 아주 떠났네.
중생들의 마음을 잘 알아도
중생이란 생각이 조금도 없고
방편으로 모든 법 잘 분별하여
끝내는 저 언덕에 이르러 가네.
한량없고 셀 수 없는 그 모든 겁을
모두 다 분별하여 능히 잘 알고
부처님 계신 세계 모두 나아가
깊고도 깊은 법을 환히 아네.
한량이 없는 모든 부처님 법과
맑고 깨끗한 법계 창고들
만일 그것을 잘 분별해 알면
모든 것 분명하여 의혹 없으리.
중생들의 근성을 자세히 알고
마지막에는 저 언덕에 이르러
평등하게 모든 법 잘 관찰하면
그는 곧 부처님과 같다 하리라
맑고 깨끗한 한량없는 마음으로
언제나 부처님 앞에 있어
인간의 사자를 공경도 하고
존중하고 또 공양도 하네.
모든 부처님을 친히 뵈옵고
즐거이 관찰하여 싫증 없으면
저 여러 여래들은
그 보살을 생각해 보살펴 주리.
깊고도 또 묘한 갖가지 법을
분별해 아무런 장애가 없고
집착도 없고 의지하는 데 없어
그 마음 깨끗하기 허공과 같네.
인간 사자의 그 지혜 바다가
깊고도 또 넓음 그는 잘 알고
고요히 바른 선정에 들어
삼세를 관찰하여 장애가 없네.
저해할 수없는 견고한 마음
어느 것도 그것을 깨뜨릴 수 없나니
오로지 위없는 그 도를 생각하여
일찍이 한 번도 끊인 적 없네.
어둠을 떠나 밝음으로 나아가고
선법(善法)에 뜻을 두어 그것 배우며
언제나 적멸한 법 즐겨 관찰해
진실한 그 성품을 두루 갖추네.
모든 말이 끊어진 고요한 도를
평등하게 관찰해 딴 생각 없고
어떤 법에 대해서도 분별 않나니
그것은 곧 진여로 좇아 났기 때문이네.
모든 부처님의 깊은 경계를
모두 다 분별하여 환히 알고
고요히 바른 선정에 들어가
세 가지 지혜에 걸림이 없네.
온 시방세계 가운데 있는
일체 모든 부처님 세계를
보살은 자재한 신통력으로
한 찰나에 두루 모두 돌아다니네.
한량이 없고 셀 수도 없는
갖가지 방편을 모두 갖추어
온 시방세계를 두루 노니나니
그런 이야말로 참 불자이네.
가엾이 여기는 마음 모두 갖추어
목마른 듯한 애욕 다 없애 주고
인자한 마음으로 일체를 생각하나
저 허공과 같이 걸림이 없네.
저 일체의 모든 중생에 대해
중생이라는 생각을 내지도 않고
허망한 마음을 이미 다 떠나
청청하게 시방세계 돌아다니네.
저 일체의 모든 중생들에게
아무런 두려움도 없게 하나니
이렇게 진실한 행 행하는 이는
그야말로 여래와 같다 하리라.
언제나 매우 깊은 법을 말하나
청정하여 거기에 집착 없나니
그러므로 시방의 모든 부처님
그를 항상 생각해 보살피시네.
지나간 세상과 오는 세상의
한량이 없고 셀 수없는 겁
그때의 일을 차례로 기억하고
하나도 남김없이 분별해 아네.
그리고 또 보살은 지금 세상의
일체의 모든 시방세계를
남김없이 두루 다 돌아다니며
중생의 무리들을 다 제도하네.
깊은 지혜로 바로 다 관찰하여
걸림없이 모두를 환히 알고
인연이 모여 된 것 견고치 않아
없어지고 말 것임을 모두 다 아네.
일체의 모든 중생들 중에
어떤 고난에 처해 있는 것 있으면
보살은 그 고난을 없애 주고는
법 안에 편히 머물게 하네.
두려움 없는 보살의 힘은
일체의 마군들을 다 항복 받고
그들은 또 모든 중생들 위해
우치의 어둠을 다 없애 주네.
세계가 이뤄지고 무너지는 것
그것을 분별해 모두 아나니
만일 이와 같이 잘 관찰하면
그는 부처 경계에 의혹 없으리.
삼세의 모든 법을 잘 관찰해
의심 그물을 아주 끊어버리고
여래 계신 곳에 나아가나니
깨끗한 그 믿음은 부술 수 없네.
믿는 힘에 편안히 머물러 있고
지혜의 힘을 다 성취했나니
그 지혜는 맑고도 청정하기에
결정코 진실한 뜻 다 이해하네.
오는 세상이 모두 다 끝나도록
일체의 중생들을 이롭게 하고
또 일체의 중생들로 하여금
끝내는 모두 해탈을 얻게 하네.
끝없이 나고 죽는 가운데서도
부지런히 수행해 싫증 안 내고
일체의 지옥에서 고통 받나니
그것도 다 중생들을 위해서네.
한량없는 공덕과 지혜의 창고
그것을 다 완전히 성취하였고
일체의 모든 중생 그들 근성을
모두 다 낱낱이 분별해 아네.
그리고 중생들의 갖가지 업을
모두 다 분별하여 낱낱이 알고
그들의 업을 따라 다스리려고
보살은 그들 위해 법을 말하네.
인자하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세간의 온갖 행을 모두 따르고
갖가지 일체 법은 모두 공(空)하여
나[我]라는 것 없음을 환히 알며
그리고 하나하나 음성으로
한량없는 가르침을 다 연설하네.
그리고 또 보살은 큰 광명 놓아
가지가지의 미묘한 그 빛깔로
시방의 일체 세계 두루 비추어
어둠이란 어두움 모두 없애네.
그 하나하나의 광명 끝에는
청정한 보배 꽃의 받침 있는데
보살들은 모두 다 그 위에 앉아
중생들을 위하여 설법하나니
보살은 한 털의 구멍 안에다
시방의 모든 세계 다 나타내고
묘하게 장엄한 그 모든 세계에
부처님과 보살들 다 모였네.
그 낱낱 여래 계신 곳에는
한량없는 대중이 둘러쌌는데
그들은 다 청정하고 묘한 지혜로
중생들의 그 마음을 환히 아네.
일체 시방세계의 가운데 있는
한량이 없는 모든 부처 세계를
보살들은 갖가지 신통 힘으로
한 찰나에 거기를 모두 다니네.
부처님을 공경하고 또 공양하며
모든 중생들에게 이익 주려고
길잡이 계신 곳을 돌아다니며
매우 깊은 이치를 다 물어 보네.
일체의 모든 부처님에 대해서는
먼저 인자한 아버지라 생각하고
그리고 중생들을 이롭게 하기 위해
갖가지 보살행을 분별해 닦네.
밝고 또 깨끗하고 날카로운 지혜로
깊은 법의 이치를 다 통달하고
그리고 또 한량없는 그 지혜 내어
부처님 법에 대해 걸림이 없네.
한량이 없고 셀 수도 없는 겁과
법계를 하나하나 분별해 말하나니
겁의 수는 그 끝을 알 수 있으나
법계는 그 끝을 다 알 수 없네.
모든 법을 평등하게 관찰하나니
그 마음에 아무런 집착이 없고
나고 죽는 고통을 싫어하지 않나니
그 지혜에 아무런 장애가 없네.
위없는 부처님의 종성과
삼세의 모든 법과 그 가문과
일체 여래의 그 모든 법
이것들을 의지해 보살은 났네.
맑고 또 깨끗하고 묘한 법의 몸
중생 위해 온갖 형상 나타내나니
그것은 마치 저 큰 요술쟁이가
좋아하는 모든 것 보이는 것과 같네.
어떤 때에는 모든 중생들 위해
보살의 온갖 행을 모두 이루고
또 혹 어떤 때는 세상에 처음 나와
집을 떠나 도 배움을 나타도 내네.
또 혹 어떤 때는 보리나무 밑에서
나 혼자서 스스로 정각 이루고
또 혹 어떤 때는 중생들 위해
열반에 드는 모양 나타도 내네.
매우 깊고 묘하며 무한 자재한
그 법에 머무름을 나타내나니
그런 것은 성문이나 벽지불로는
도저히 측량할 수 없는 것이네.
보살의 몸과 입과 또 그 뜻은
적멸해 나는 모양 전연 없지만
일체 세상 중생들에 두루 응하여
방편으로 무엇이나 다 나타내네.
이와 같이 참 불자의
그 경계는 매우 깊고 미묘하나니
만일 중생들로서 그것 생각할 때는
그 마음 어지러워 발광하리라.
모든 것을 다 완전히 구족하여
걸림없는 지혜에 편히 머물러
모든 여래의 한량이 없는
자재한 힘을 두루 다 나타내네.
보살의 갖가지 그 공덕 창고
세간에는 그것과 짝이 없는데
하물며 부처님의 한량이 없고
말하거나 생각하기 어려운 그것이랴.
보살은 비록 모든 것을 다 아는
그 지혜를 완전히 못 얻었으나
한량없는 모든 법 그 문에 들어
끝내는 저 언덕에 이르게 되리.
훌륭하고 미묘한 일체의 법을
모두 다 이미 완전히 갖추었고
한결같이 보리 구해 나아가나니
최종에는 일승도(一乘道)를 모두 이루리.
일체 모든 중생들을 두루 관찰해
때와 때 아님을 다 잘 알고
그들에게 이익을 주기 위하여
큰 신통의 힘을 나타내 뵈네.
한량없는 일체의 부처 세계에
한 몸이 모두 다 가득히 차서
깨끗한 광명을 흘려 내나니
아무것도 그 빛남에 짝할 것 없네.
그 광명은 시방세계 두루 비추어
일체의 어두움을 모두 없애고
미묘한 법의 비를 고루 내림은
마치 저 큰 바다의 용왕과 같네.
법이란 모든 법은 다 허망하여
그것은 마치 허깨비 같지만
중생들이 번뇌의 업력 때문에
생사에 항상 돌아다님 보나니
그는 큰 자비스런 마음으로써
모든 중생들을 두루 다 보호하고
맑고 깨끗하며 미묘한 방편으로
한량없는 중생을 다 구제하네.
보살의 갖가지 그 공덕 힘은
모든 부처님과 다르지 않아
그 한량이 없는 지혜 바다는
맑고 또 깨끗해 허공과 같네.
한량이 없고 셀 수없는 겁 동안에
갖가지 보살의 행 갖추 다 닦고
부지런히 노력하는 방편으로써
모든 중생들 다 건지려 하네.
일체 중생들의 갖가지 행을
낱낱이 분별해 모두 잘 알고
맑고 또 깨끗한 업을 다 닦아
위없는 도를 뜻해 구하게 하네.
그리고 또 저 모든 보살마하살
훌륭하고 미묘한 이 법 행하며
굳건히 결심하여 안 물러나고
모두 아는 지혜를 분명히 보네.
한량이 없는 일체 모든 세계는
생각하거나 말하기 어렵지만
보살은 능히 한 찰나 사이에
그 세계를 모두 다 돌아다니네.
갖가지의 허망한 생각을 떠난
그 마음은 마치 저 허공 같으며
청정한 법의 몸은 하나이지만
일체의 세간 따라 두루 응하네.
언제나 고요하여 안 움직이나
시방세계 어디에도 다 나타나고
모든 법을 낱낱이 분별하지만
모든 법의 모양에 집착 안 하네.
모든 법을 다 환히 통달하지만
그 마음에 아무런 물듦이 없고
모든 중생을 다 제도하지만
또한 해탈시킨 사람도 없네.
일체의 모든 중생 무리들
그들의 가지가지 바라는 것과
선과 악과 그리고 또 무기법(無記法) 따위
그것들 다 적멸하여 허공과 같네.
일체의 모든 중생 무리들
그들의 가지가지 좋아함 따라
한량없는 자재한 신통 힘으로
거기 응해 그들을 다 교화하네.
마치 저 능숙한 요술쟁이가
갖가지 몸을 잘 나타내는 것처럼
그와 같이 보살의 자재한 힘은
온 시방세계에 가득 차 있네.
보살의 깨끗하고 묘한 법의 몸
그것은 한량없기 허공과 같아
중생들의 갖가지 좋아함 따라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 곳 없네.
그 마음은 아무 데도 물들지 않고
진실하여 허망이 전연 없나니
그러므로 그에게는 청정하거나
번뇌라는 법 등이 조금도 없네.
해탈이거나 해탈이 아니거나
그 마음은 거기에 집착이 없고
다만 괴로워하는 중생들에게
위없는 열반락을 베풀어 주네.
이 세간의 무엇에 대해서나
그 지혜는 아무런 두려움 없고
갖가지의 상호(相好)를 두루 갖추어
끝내 위없는 도를 모두 이루네.
일체의 갖가지 법의 모양을
한 생각 가운데 다 분별하여
지난 세상 오는 세상 지금 세상
구하여도 그것은 얻을 수 없네.
보살은 과거를 잘 관찰하여
지난 세상을 환히 알고
또 미래를 잘 분별하여
완전히 아는 것도 그러하니라.
모든 부처님의 여러 세계를
낱낱이 분별하여 모두 다 알며
갖가지의 번뇌를 없애 버리고
갖가지의 공덕을 모두 갖추네.
언제나 고요함을 관찰하기 좋아해
마지막에는 열반으로 나아가고
다툼 없는 삼매를 즐거워하여
그 마음은 어디에고 의지하는 데 없네.
보살은 진실한 이치와 평등하여
아무도 그들과 짝할 이 없고
어디까지나 그 행은 견고하여
결정코 다시는 안 물러나네.
그는 훌륭한 온갖 행을 닦지만
적멸하여 아무런 의지하는 데 없고
그 마음은 언제나 편히 머물러
요동하지 않기가 수미산 같네.
보살의 깨끗하고 미묘한 행은
모든 법계에 두루 가득하나니
그러므로 부처님과 모든 보살이
낱낱이 분별해 모두 다 아네.
큰 길잡이의 그 지혜와
어디까지나 가장 훌륭한 도와
일체를 다 아는 깊은 지혜와
위없는 해탈왕을 구하려 하면
씩씩하고 부지런히 항상 정진해
빨리 보리심을 내어야 하고
또 가장 훌륭한 즐거움 구하려면
빨리 온갖 번뇌를 끊어야 하네.
저 보살마하살이 처음으로
맑고 깨끗한 마음을 내면
그 마음의 공덕 창고들
그것은 이루 다 말로 못하리.
모든 중생에게 이익 주려고
여래의 행을 찬탄하나니
가장 훌륭한 그 행한 도를
일심으로 자세히 잘 들어라.
한량이 없는 부처 세계를
모두 부수어 티끌 만들고
한 티끌에 한 세계를 두어도
그것을 다 잘 분별해 아네.
그 모든 세계 가운데
거기 계시는 모든 여래도
첫 발심한 공덕 창고들
그것을 이루 다 말로 못하리.
중생들을 잘 분별하면서
그래도 중생이란 생각이 없고
일체의 말을 잘 이해하면서
그래도 말이라는 생각이 없네.
깊고도 깊은 걸림없는 지혜로
모든 세계를 잘 분별하고
겁의 성패(成敗)를 잘 알면서
그래도 성패라는 생각이 없네.
맑고 깨끗하며 광대한 마음
그것은 마치 허공 성품과 같아
과거 미래 현재의 삼세 법과
일체 모든 세간을 환히 아네.
갖가지 번뇌를 없애 버리되
아주 없애 버리어 남김이 없고
걸림없이 적멸을 관찰하나니
그것은 곧 부처님네 바른 법이네.
시방의 한량없는 모든 세계의
일체 여래의 계신 곳으로
한 찰나 사이에 두루 다녀도
그 마음에 조금도 집착이 없네.
생멸이 없는 일체의 법은
모두가 여여(如如)한 실제이어서
가지가지의 모양이란 다
진실이 아님을 잘 이해하네.
한량이 없고 셀 수도 없는
여래 계신 곳에 모두 나아가
청정한 그 권속들과 함께
예배하고 또 공양도 하네.
매우 깊고 또 미묘한 법과
모든 보살의 그 서원과
그리고 또 맑고 깨끗한 행을
항상 즐겨 여래께 여쭈어 보네.
시방의 한량없는 모든 세계의
일체의 길잡이 부처님을
한 찰나 사이에 모두 보지만
그래도 그 마음에 집착이 없네.
삼유 가운데 한량이 없는
가장 훌륭하고 미묘한 공덕
그러한 깨끗하고 맑은 행으로
모든 부처 세계를 다 장엄하네.
걸림이 없는 지혜 눈으로
일체 중생을 잘 이해하고
아무것도 없음을 분별하고는
그것을 멀리 떠나 집착이 없네.
모든 중생들의 그 근성과
온갖 번뇌와 또 그 습성과
또 가지가지의 그들 욕망의
불가사의함을 환히 아네.
모든 보살마하살들은
먼저 중생들 마음 알고는
제도할 만한 지혜로운 이
그들을 위해 법을 말하네.
그 때의 맞음과 맞지 않음과
중생들의 깨끗하고 더러운 행 알아
차츰 그들을 청정하게 해
끝내는 해탈을 다 얻게 하네.
한량없고 수없는 나유타 수의
매우 깊고 또 깊은 삼매 있거늘
보살은 자재한 신통 힘으로
한 찰나 사이에 다 들어가네.
일어나고 머무르는 삼매의 모양
그것을 분별해 다 잘 알고
그리고 한량없는 모든 경계의
머물고 일어나는 인연도 아네.
이와 같은 갖가지 모든 지혜를
이미 모두 완전히 갖추었나니
그는 오래지 않아 보리를 얻어
무엇에도 아무런 장애 없으리.
언제나 중생에게 이익 주려고
지혜의 광명으로 나아가나니
그는 끝내 모든 중생들에게
위없는 대장부의 법을 다 주네.
일체 겁의 길고 짧음을
그는 분별해 모두 잘 알고
낮과 밤과 그리고 또 해와 달
그런 것도 그는 잘 관찰해 아네.
바른 생각으로 방일하지 않고
모든 세간의 일을 잘 이해하며
모든 부처 세계는 다 진실하여
차별이 없음을 분별해 아네.
일체 모든 세계 갖가지 일을
모두 다 분별해 잘 알지마는
그는 그 시방의 세계에 대해
조금도 분별하는 생각이 없네.
이와 같이 시방의 모든 세계를
모두 다 바로 잘 관찰하고는
그 모든 국토를 장엄하지만
그래도 그 마음에 집착이 없네.
온갖 지혜의 힘을 다 성취하여
모든 여래와 평등하나니
옳은 것 그른 것을 아는 힘으로
중생들을 모두 다 분별해 아네.
한량없는 일체의 중생 무리들
그 선악의 모든 업보를 다 잘 알고
지난 세상 오는 세상 지금 세상의
모든 일을 환히 알아 걸림이 없네.
일체의 한량없는 모든 세계의
중생들의 갖가지로 다른 근성들
그것을 그는 삼유 가운데서
모두 잘 분별하여 환히 아네.
일체의 한량없는 모든 중생의
상품ㆍ중품ㆍ하품의 갖가지 근성
그것을 저 보살마하살들은
모두 잘 분별하여 환히 아네.
한량없는 일체의 중생 무리들
상품ㆍ중품ㆍ하품의 좋아함과
또 그들의 깨끗하고 깨끗하지 않음을
보살은 분별하여 모두 잘 아네.
모든 중생들이 죽어서 갈 곳
그것을 모두 잘 분별해 알고
계속하는 인연을 아주 다 끊어
끝내는 삼유를 떠나게 하네.
일체의 가지가지 모든 삼매
바로 드는 선정이며 또 해탈의
더러움과 청정함의 일어나는 것
그것을 다 분별하여 모두 잘 아네.
그리고 그들이 각각 전생에
받던 고락을 차례로 다 아나니
이와 같이 모두를 분별하는 것
그것은 다 여래의 주신 힘이네.
일체의 선하거나 선하지 않은
중생들의 갖가지 번뇌의 업과
그들이 다섯 곳에 태어났다가
끝내 열반 얻을 것 분별해 아네.
온갖 번뇌가 없어지지 않으면
곳곳으로 다니며 태어나지만
번뇌와 그 습성이 다 없어지면
끝내는 위없는 도 다 성취하리.
갖가지 방편으로 중생 제도해
더러움을 없애고 깨끗한 길 갖게 하네.
이것을 분별하는 지혜로운 이
그는 바로 인간의 대장부라네.
열 가지 힘을 두루 갖추어
지혜의 광명 온갖 어둠 없애나니
부처님의 그 힘에 편히 머물러
끝내 그 의혹 완전히 없어지네.
하나하나의 모든 털구멍 속에
모든 부처 세계가 한량없나니
저 모든 보살마하살들은
그것을 모두 다 환히 보네.
더러운 것과 혹은 청정한 것과
또 가지가지의 묘한 장엄들
그런 그들의 지은 업 따라
보살은 분별하여 모두 잘 아네.
그 하나하나 티끌 속에 있는
일체의 갖가지 부처 세계와
모든 부처님과 또 보살
불자는 그것을 모두 다 보네.
그 모든 세계는 겹쳐졌거나
또 뒤섞이거나 비좁지도 않으며
모두가 한 세계에 다 들어가나
그러나 거기에는 들어감 없네.
일체 시방의 모든 국토가
저 허공과 법계와 같은데
그것을 능히 한 털구멍에서
모두 잘 분별해 환히 아네.
일체 시방의 모든 세계 가운데
거기 계시는 모든 부처님과
미묘하고 청정한 온갖 장엄과
일체 부처 세계를 두루 다 보네.
일체의 모든 여래와
그리고 그의 장엄한 국토를
지혜로운 사람은 한 털구멍에서
그것들을 모두 다 환히 보네.
삼세의 갖가지 다른 모양과
그리고 또 일체의 모든 세계의
해와 달과 계절의 이어가는 것
그것을 모두 알고 해탈을 얻네.
이와 같이 참 불자 보살들은
무엇에도 아무런 두려움이 없나니
그는 바로 인간의 대장부로서
밝게 통달한 지혜로운 사람이네.
이러한 깊고도 깊은 법문을
지혜로운 사람은 모두 분별하나니
그는 모든 여래께 나아가
공경하고 기뻐함이 한량이 없네.
한량없고 셀 수없는 오랜 겁 동안
갖가지 공덕 창고 자꾸 늘리고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
중생들 구제하기 위해서이네.
한량없는 자재한 신통력으로
온갖 것을 나타내 다 보이나니
그런 이의 그러한 지혜 경계는
모든 여래와 다름이 없네.
한량없는 부처님 계신 곳에서
배운 바 모든 것을 다 성취하여
고요하고도 깊은 법의 창고를
모두 즐거워하여 싫증이 없네.
길잡이이신 모든 부처님에 대해
공경하고 또 존중하는 그 마음
그는 갖가지의 보살행 닦아
맛난 법의 감로를 항상 마시네.
그는 모든 것 잘 분별해 알고
온갖 지혜의 법을 다 기르나니
보리에 대한 변재 걸림이 없고
그의 온갖 삼매는 깊고도 깊네.
그의 믿는 마음은 움직일 수 없나니
그것은 마치 저 수미산 같고
그리고 또 저 모든 중생의
그 공덕 창고를 자꾸 늘리네.
일체의 저 모든 보살마하살
큰 자비의 마음 한량이 없어
모든 중생을 두루 생각하지만
그 마음은 거기에 집착이 없네.
갖가지의 지혜를 즐거워하고
모든 중생들에게 보시 행하며
일체 세간을 다 구원하기 위하여
번뇌의 더러움을 아주 떠났네.
저 일체의 보살마하살
가엾이 여기는 마음 한량이 없어
부처님과 또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관찰해 다름이 없네.
이 세상 모든 법은 허공 같다고
적멸한 그 모양을 즐겨 관찰하나니
이와 같이 저 지혜로운 사람은
일체의 진실성을 잘 관찰하네.
보살이 처음으로 마음을 낸
그 공덕 창고는 깊고 깊나니
한량없고 셀 수도 없는 겁 동안
아무리 찬탄해도 다 말 못하리.
보살의 첫 발심은 여래와
연각의 고요한 그 즐거움과
모든 성문의 자재함과
일체의 성현을 내는 까닭이네.
일체의 시방세계 가운데 있는
한량없는 모든 부처 세계와
그리고 또 거기 있는 모든 중생들에게
한량없는 겁 동안 공양도 하네.
그리고 또 다시 다섯 가지 계율과
열 가지 선(善)과 네 가지의 선정과
네 가지 무량심과 무색계의 선정과
적멸의 모든 해탈 다 닦게 하네.
그리고 다시 한량없는 겁 동안
온갖 즐거운 도구를 보시하고
또 그가 더욱 훌륭해져서
번뇌 없애고 아라한이 되게 하네.
이와 같은 갖가지의 그 공덕은
그래도 헤아릴 수 있겠지마는
처음으로 발심한 공덕 창고는
비유로도 모두 다 말할 수 없네.
또 한량없는 중생 교화해
모두 다 벽지불을 이루게 하고
고요한 삼매를 이루게 하는
갖가지 그 공덕은 매우 깊으리.
그러나 그런 그의 공덕 더미도
첫 발심한 공덕에 비기어 보면
그 백분의 하나에도 미치지 못하고
나아가선 산수로도 못 미쳐가리.
한량이 없고 또 그 끝이 없는
티끌과 같은 모든 부처 세계를
가령 신통력 가진 어떤 사람이
한 찰나 사이에 지낸다 하자.
그런데 그와 같은 신족(神足) 힘으로
한량없는 겁 동안 날아간다면
그래도 그 세계는 셀 수 있지만
발심한 그 공덕은 알기 어렵네.
지난 세상 오는 세상 현재의 겁은
한량도 없거니와 그 끝도 없네.
그러나 그와 같은 그 많은 겁도
세어서 그 수를 알 수 있으리.
그러나 보살의 처음 발심한
한량없는 갖가지 공덕 창고들
그것은 마치 저 허공과 같아
아무도 그 한계를 알지 못하리.
지난 세상 오는 세상 지금 세상의
한량없는 일체의 모든 겁의 수
보살들은 그것을 찰나 사이에
모두 잘 분별하여 환히 아네.
보살이 처음으로 마음 보배를 내어
과거 미래 현재를 다 통달하되
그것을 한 찰나에 알려는 것은
중생들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네.
한량이 없는 시방세계의
그 세계에 있는 모든 중생들
그들이 가진 갖가지의 욕망을
보살은 한 찰나에 다 분별하네.
중생들의 근성과 모든 방편과
찰나찰나 생각하는 마음 작용과
저 허공은 능히 측량할 수 있어도
보살의 보리심은 알기 어렵네.
보리심을 측량할 수없는 까닭은
큰 자비가 한량없기 때문이거니
그것으로 일체의 즐거움 보시하여
온 시방세계에 가득히 차네.
모든 부처님 법의 창고와
해탈의 즐거움을 얻게 하려고
처음으로 보배 창고 마음 내나니
그러므로 공덕의 힘 한량이 없네.
중생들의 욕망과 그 방편과
또 그들이 마음으로 원하는 바와
그들의 몸과 입과 그 뜻의 행과
그리고 또 그들 근성 각각이거니
저 보살들은 한 찰나 사이에
그것들을 낱낱이 모두 잘 알고
일체를 아는 지혜 얻기 위하여
마음 내어 간절히 보리 구하네.
저 일체의 모든 중생 무리들
그 번뇌의 업이 한량없나니
그들의 짓는 그 업으로 말미암아
여러 세계 헤매면서 그 생(生)을 받네.
이와 같이 갖가지로 맺는 그 업보
그것들의 끝 간 데는 알 수 있지만
처음으로 마음 낸 공덕 창고는
전연 생각하거나 말할 수 없네.
생각커나 말할 수 없는 까닭은
위없는 큰 서원 세우게 하고
모든 부처님에게 다 공양하고
갖가지 번뇌를 길이 여의게 함이네.
그리고는 겸하여 모든 중생의
일체 번뇌의 업을 모두 없애고
삼세의 고통에서 그들 건지어
그 큰 자비심을 모두 이루네.
시방의 가지가지 모든 세계의
한량없고 셀 수 없는 모든 부처님에게
한 찰나에 모두 다 공양하고는
다시 중생들에게 그것 권하네.
묘하고 뛰어난 피우는 향과
보배 당기ㆍ번기와 온갖 일산과
하늘 옷과 보배롭고 묘한 화만과
아주 맛난 감로 같은 온갖 음료들
계절을 따라 사는 온갖 궁전과
그리고 또 침대와 장엄 도구와
몸을 편안히 하고 도의 마음에 맞는
맑고도 또 깨끗한 거니는 땅들
이러한 갖가지의 공양거리와
한량없는 보배로 된 모든 장엄과
찬란한 빛을 내는 온갖 보주(寶珠)들
이런 것은 모두 다 향락 도구이거니
이와 같이 부처님께 다 공양하고
다시 중생들에게 그것을 권하면서
생각하거나 말할 수 없는 겁을
끊임없이 이런 공양 늘 행하네.
그런데 갖가지의 이런 공덕은
그래도 그 끝 간 데 말할 수 있지만
보살이 발심한 공덕 창고는
어떠한 비유로도 다 말 못하네.
앞에서 자세하게 분별해 말한
일체의 가지가지 그런 공덕도
첫 발심한 공덕에 비교하려면
무량분의 그 하나에도 못 미쳐가리.
삼세 인간에서 높으신 어른
한량없는 일체의 공덕업과
위없는 최상의 보리 열매도
모두 첫 발심에서 생긴 것이네.
셀 수 없는 오래인 억겁 동안에
위없는 도를 수행했나니
그것은 셀 수 없고 한량도 없어
일체의 분량을 다 지나가네.
일체지(一切智)를 완전히 이룰 때에는
그 힘은 어떻다 헤아릴 수 없나니
그는 보리의 저 언덕에 이르러
일체 중생 세계를 뛰어 넘으리.
보살이 처음 낸 보리 마음은
넓고 커서 마치 허공과 같아
갖가지의 공덕을 모두 내나니
그 모양은 법계와 같네.
모든 법의 성품은 진여와 같아
다른 모양 없음을 평등하게 보고
모든 세계의 생(生)을 길이 여의었나니
그의 성품은 저 견고한 선비(부처님) 같네.
매우 깊고도 깊은 참 법성인데
미묘한 지혜 따라 거기에 들고
모든 부처 국토는 끝이 없는데
잠깐 사이에 두루 돌아다니네.
일체를 아는 지혜 모든 것 알아
무엇이나 관찰하지 않는 것 없어
한량이 없는 모든 부처 경계를
환히 알아 아무런 걸림이 없네.
언제나 닦는 미묘한 공덕은
무엇도 그것과 짝할 수 없고
원만히 갖춘 미묘한 계율은
청정하여 조금도 더러움 없네.
안이나 밖의 모든 것 보시하고
평등한 마음으로 일체에 보시하며
언제나 끊임없이 늘 보시하고
부지런히 정진해 안 물러나네.
갖가지 선정의 공덕 창고를
일심으로 생각해 언제나 닦고
깊고도 넓어 그 끝이 없는
미묘한 지혜를 항상 익히네.
가장 훌륭한 이 지위를 성취한
진정한 부처 아들 보살들은
진실한 이치에 맞는 지혜와
매우 깊고 평등한 행을 얻었네.
지난 세상 오는 세상 지금 세상의
일체의 그 모든 여래는
처음으로 발심한 보살을
신력으로 모두 보호해 주시네.
매우 깊고 묘한 온갖 삼매와
한량없는 그 모든 다라니들과
모든 부처님의 자재하신 힘
첫 발심한 보살을 다 장엄하네.
이 세간의 모든 중생으로서
아무도 그것을 측량하지 못하나니
그것은 한량없고 끝 간 데 없어
마치 저 허공의 경계와 같네.
보살이 처음 낸 보리 마음은
한량이 없고 또 끝 간 데 없어
이 인간 세계의 사람 사자는
모두 다 첫 발심을 의지해 나네.
모든 여래의 열 가지 힘과
네 가지 변재와 두려움 없음
이와 같은 한량없는 모든 공덕은
모두 다 첫 발심을 의지해 나네.
이 세상 길잡이인 부처님의
열여덟 가지 함께하지 않는 법
이와 같은 뛰어나고 훌륭한 지혜
그것 모두 첫 발심을 의지해 나네.
모든 부처님의 묘한 색신과
갖가지로 장엄한 모든 상호와
끝까지 허망함을 완전히 떠난
깨끗하고도 맑은 참 법신과
하늘과 사람들이 다 공양하는
매우 깊고 걸림없는 그 지혜 등
이와 같은 갖가지 모든 공덕은
모두 다 첫 발심을 의지해 나네.
일체의 벽지불과
한량없는 성문들
그런 모든 성현도
모두 다 첫 발심을 의지해 나네.
네 가지의 선정과 무색계 선정
매우 깊은 갖가지 모든 삼매 등
그러한 한량없는 모든 즐거움
그것 모두 첫 발심을 의지해 나네.
지난 세상 오는 세상 지금 세상의
시방세계 그 모든 하늘 사람들
그들이 그 모든 세계에 있어
곳곳에서 태어나는 즐거움과
방편과 부지런히 정진하는 것
모든 감관이 모두 잘 제어된 것 등
이와 같은 한량없는 즐거움들도
모두 다 첫 발심을 의지해 나네.
그렇다면 그 까닭은 그 무엇인가.
그 일체의 모든 보살마하살은
처음으로 발심한 그것에 의해
여섯 가지 바라밀 모두 갖추고
모든 중생 무리들 다 교화하여
그릇된 길 버리고 바른 길에 들게 하며
그리하여 그들을 삼계에서
이런 온갖 즐거움 받게 하기 때문이네.
보살의 깊고 묘한 지혜는
무엇에나 통달해 걸림이 없어
모든 중생들 깨우치고 인도해
뛰어나고 깨끗한 업 다 닦게 하네.
또 그들의 갖가지의 번뇌와
온갖 나쁜 행들을 모두 없애고
저 열반의 길을 닦아 익히어
모두 제도해 해탈을 얻게 하네.
그 한량이 없는 지혜 광명은
마치 저 깨끗한 햇빛과 같고
완전히 갖춘 맑고 깨끗한 행은
마치 저 뚜렷한 보름달 같네.
가없는 갖가지 공덕 창고는
마치 저 시방의 바다와 같고
때도 없거니와 물듦도 없어
청정하기 마치 저 허공과 같네.
보살이 처음으로 발심한 공덕
그것은 이루 다 칭찬할 수 없나니
그는 저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갖가지 즐거움을 다 받게 하네.
한량이 없고 셀 수도 없는 겁에
갖가지 큰 서원을 모두 다 닦고
언제이고 공덕의 업을 짓나니
그것은 중생들 다스리기 위해서이네.
한량도 없거니와 셀 수도 없는
청정한 그 서원은 헤아리기 어려운데
그는 그것을 다 모두 이루어
중생들을 맑고도 깨끗이 하네.
일체의 법을 두루 관찰할 때에
그것은 공이요 모양도 원(願)도 없네.
그러나 넓고 큰 서원 힘으로
그 마음 청정하여 두려움 없네.
모든 법의 진실한 그 성품은
청정하기 허공과 같음을 알매
안정과 어지러움 다 평등하고
그리고 적멸하여 있는 것 없네.
매우 깊고 미묘한 갖가지 법은
한량없어 헤아리기 어렵지마는
언제나 대중 위해 설명하면서
그 마음엔 조금도 집착이 없네.
한량없는 시방의 모든 세계의
거기 계신 일체의 여래는
처음으로 발심한 모든 보살의
그 공덕을 언제나 찬탄하나니
한량이 없는 미묘한 공덕으로
처음으로 낸 마음 장엄하나니
그는 청정한 저 언덕에 이르러
여래와 그 성품 평등하리.
한량없고 수없는 오랜 겁에도
처음으로 발심한 보살의 공덕
그것을 이루 다 찬탄 못하리.◂
모든 부처님의 공덕 창고
보살은 그것을 의지하여 났나니
그러므로 저 모든 삼유 가운데서
그가 가장 훌륭해 짝할 이 없네.
모든 부처님의 밝고 깨끗한
지혜의 등불을 얻고 싶거든
부디 크고도 넓은 서원을 세워
빨리 보리심을 내어야 하네.
아무리 많은 온갖 공덕 중에도
보리심의 공덕이 최상이니
걸림없는 지혜를 얻기 때문이요
그것은 불법의 교화로부터 생기네.
이 세상의 모든 중생들 마음
그것은 다 분별해 알 수 있어도
이 모든 세계의 무한한 티끌
그 수는 다 세어 알 수 있어도
시방의 모든 허공 세계를
한 털로 재어 다할 수 있어도
보살이 처음으로 발심한 공덕
그것은 끝내 측량하지 못하리.
보살이 처음 낸 보리심에서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나오고
모든 중생들 가지가지의
아주 묘한 즐거움도 거기서 나네.
부처님의 찬탄하는바 공덕
그것도 이로 인해 모두 갖추고
모든 부처님의 경계에 대해
그 마음에 아무 의혹이 없네.
만일 그 보살로서 모든 의혹을
능히 영원히 떠날 수 있으면
그는 곧 중생들의 한량이 없는
모든 장애를 다 없앨 수 없으리.
보살이 처음 낸 보리심으로
모든 부처 세계를 다 장엄하고
일체의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미묘한 지혜를 모두 갖추게 하네.
만일 모든 시방세계에 있는
삼세 부처님을 보려 하거든
그리고 한량없고 깊고도 깊은
갖가지 공덕 창고 얻으려거든
그리고 또 중생들의 한량이 없는
나고 죽는 고통을 없애려거든
부디 굳건한 서원을 세워
빨리 보리심을 내어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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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협(知狹) :
뒷글자는 후(侯)와 협(夾)의 반절이다.
이둔(利鈍) :
뒷글자는 도(徒)와 곤(困)의 반절이다.
발광(發狂) :
뒷글자는 거(巨)와 왕(王)의 반절이다.
묘찬(妙䉵) :
뒷글자는 사(士)와 련(戀)의 반절이고,
또한 찬(饌)으로 쓰기도 한다.
노장(露漿) :
뒷글자는 즉(卽)와 량(良)의 반절이다.
○ [pt op tr]
제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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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생과 정식 수행자의 BORDER LINE = 발보리심
여기서 중생은 생사에 묶이고 분단생사를 받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에 반해 생사현실에 임하지만, 생사에 묶이지 않고
중생을 제도하고 성불하려는 서원을 갖고 임하는 것을 정식 수행자라고 표현한다.
이 차이가 크다.
이런 경우 수행자는 생사에 처해도 변역생사 과정을 거치면서
서원에 맞추어 생사를 이어서 수행을 계속해나가게 된다.
그런 차이를 발생시키는 경계선에 초발심이 있다.
발심이란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을 의미한다.
보리심이란 각 중생에 갖추어져 있다.
그러나 중생 상태에서는 그 보리심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없는 상태에서 그것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없는 상태에서 그것을 찾아 얻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깨달음을 얻은 상태에서는
그것은 이미 자신에게 갖추어져 있는 것임을 이해하게 된다.
이런 경우는 있는 보리심을 일으켜 세우면 된다고 보게 된다.
그래서 이중적이다.
이는 비유하면 술취한 이가 안 주머니에 넣은 지갑과 상태가 같다.
경전에서는 비유해서 상투 속에 넣은 보물 이렇게도 표현한다.
문제는 당사자가 망집을 일으킨 상태에서는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마치 술 취한 이가 가진 지갑과 같다.
그는 이미 지갑이 안에 있어서 꺼내 사용하면 택시비도 지불할 수 있다.
그런데 그가 지갑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른다.
의식이 있어도 지갑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생사를 헤매 돌게 된다.
간단히 표현만 보면 깨달음의 마음 = 보리의 마음이다.
즉, 보리(깨달음)의 마음이다.
그것은 무명 번뇌가 덮히지 않고 망집을 일으키지 않은 상태의 마음이다.
그리고 실상을 있는 그대로 잘 파악하는 상태다.
그런데 이런 깨달음의 상태에서 보면 중생들이 겪는 생사는 부질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중생들은 망집을 일으킨 상태다.
그리고 이 실답지 않는 생사를 대단히 실답게 여기면서 겪어 나가고 있다.
따라서 깨달음이란 중생의 이런 상태를 관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는 당연히 이들 중생의 상태를 안타깝게 여기게 된다.
실답지 않는 생사를 실답다고 여기면서 무량하게 고통을 겪어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을 깨달은 입장은 이런 중생을 이런 생사에서 건져내려고 임하게 된다.
그래서 보리심을 일으킨다는 것은 결국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서원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
또 중생을 제도하려면 보살행을 닦아서 성불하는 것이 요구된다.
그래서 이것이 모두 보리심을 일으키는 내용이 된다.
그래서 보리심을 발한다. 일으킨다. 보리심을 찾아 구한다는 표현은
서원을 일으켜 추구해 나가는 상태로 전환함을 의미한다.
깨달음이 자신에게 없다고 여긴다면 이를 찾아 구해 얻어야 한다.
그런데 얻고 보면 원래 갖추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중생을 제도할 서원이 없으면 이를 만들어 일으켜야 한다.
그래서 보리심은 간단히 사홍서원의 내용으로 압축된다.
중생이 무량하다. 그러니 다 제도한다.
번뇌가 무량하다. 그러니 끊어 없앤다.
법문이 무량하다. 그러니 이를 배워 익혀 성취힌다.
불도가 위없이 높다. 그러니 이를 닦아 성취한다.
이런 내용이 보리심의 골격이 된다.
이런 마음을 갖지 않다가 갖추게 되는 일정한 계기가 있을 수 있다.
그 계기는 다양하다.
우선 부처님을 관찰하고 자신을 비교하면서 이렇게 변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이 생사와 해탈의 경계선이다.
생사현실에서는 일반적으로
중생이 망집에 바탕해 자신에게 당장 좋은 것만 집착하면 추구하는 상태였다.
자신의 좁고 짧고 얕은 관찰에 바탕해 그런 쓸데없는 희망을 집착하며 추구한다.
그러면 번뇌-업-고의 생사인과과정을 밟아나가게 된다. [혹-업-고]
따라서 첫 단계에서 이런 망집을 처음에 남김없이 다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대신 위에 제시한 서원으로 바꿔 채워야 한다.
그러러면 3 해탈문을 통해 기본 내용을 잘 갗추고
이제 다시 생사현실에 들어가 중생과 눈높이를 잘 맞추고 임해야 한다.
공 해탈문 => 실상이 공하다. 현실은 침대에 누어 꾸는 바다나 황금꿈과 같다.
얻어도 없는 것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잃어도 있던 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생사현실의 묶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 그렇게 벗어난 다음 다시 생사현실에 들어가 중생제도에 임할 때는
자신이 처한 현실 어느 상태나 공한 실상의 자리라고 여기고 현실에 임한다.
무상해탈문 => 현실에서 자신이나 영희나 바위나 꽃이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부분에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아상, 인상, 수자상 중생상을 제거하고 임해야 한다.
이는 각 주체가 가장 집착을 갖고 대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갖는 온갖 망집의 근본이 된다.
그래서 이를 제거해야 한다. 상을 취하지 않고 임해야 한다.
그러면 생사현실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는 상태에서도 평안히 참고 임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안인의 성취다. 또 불퇴전위에 이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사현실을 벗어난다.
이것이 성취되면 생사현실의 어떤 극한 상태도 모두 자신에게는
평안함을 주는 상태로 바뀐다. 생사고통 => 극락의 상태와 같게 된다.
이런 상태로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난다.
=> 그런 가운데 다시 생사현실에 들어가 중생제도에 임한다.
이 때는 안인을 자신의 갑옷으로 삼아 걸치고 생사현실에 임해야 한다.
무원무작해탈문 => 망집에 바탕해 일으키는 희망을 모두 제거한다.
그런 희망에 바탕해 행하는 업도 모두 중단한다.
그리고 한편으로 쌓아 놓은 업의 장애를 제거하는 수행을 행한다.
그렇게 해서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난다.
=> 그런 가운데 다시 생사현실에 들어가 중생제도에 임한다.
이 경우는 자비심을 일으켜서 이 자비심에 바탕한 서원과 방편행으로 대체헤 넣는다.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사업을 행하는 상태가 된다.
이 경우는 자비를 자신의 방으로 삼아 임한다고 표현한다.
그래서 수행자는 생사현실에서 제도하고자 하는 중생과 눈높이를 먼저 맞춘다.
그리고 공한 자리에 앉아서
인욕의 옷을 걸치고
자비의 방에 앉아서 무량행문을 닦아 나가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그 구극점에 성불이 위치한다.
그런데 화엄 교학에서는
초발심시 변성정각 이런 표현을 한다.
발심만 하면 머지 않아 곧 성불한다.
그래서 발심한 상태는 부처님의 상태와도 동일시 한다.
이런 취지다.
그래서 법화경에서는 위와 같은 취지로
수행자가 생사현실에 임하는 것을 아직 성불하지 않은 상태라고 해도
'여래'의 방에 들어가 '여래'의 옷을 입고 '여래'의 자리에 앉는다라고 표현한다.
이런 입장에서 대중을 상대하고 중생을 제도해나간다는 취지다.
[ 참고 『묘법연화경』 K0116, 법사품 제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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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 value 불기2564/08/24 |
○ 2018_0418_121525_can_exc.jpg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Christina-Robertson-princess-tatiana-vasilievna-yusupova-1841 ○ 2020_0606_191509_can.jpg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Fountain_Galway_01
prince 님이 요즘 곤경에 처해 있다. 이 prince 님은 자칭 타칭 Paul David 이다. 스스로는 현실에서 Paul David 를 지향해 나아간다라고 표현한다. 한국 표현으로 바울+다윗의 상태를 지향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야기를 듣다보면 하나님과 주로 엇비슷한 입장에서 대화를 하는 듯하다. 그래서 상당히 지위가 높고 수준이 높아 보인다. 다만 아직은 아니므로 prince 님이라는 애칭으로 연구원에서 부른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별 볼 일 없다. 그리고 세속적으로 좋게 표현하면 순진무구하다. 초등생이 생각할 만한 문제를 매번 진지하게 고민한다. 때로는 너무 상식을 몰라서 심하게 표현하면 소처럼 순박하게 여겨진다. prince 님이 현실에서 가끔씩 곤경에 처하게 되는 사정이다. 일반적으로 오해를 받기도 하고 이용도 당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곤경에 처해 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본인도 지장을 받고 있다. 과거에 prince 님 도움으로 연구 업무를 빨리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하나 직접 하려니 상당히 힘들다. 본인이 처음 prince 님에게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방편으로 참회 - 서원 - 실현 참음 - 미움과 원망을 버리고 용서하고 사랑하기 - 서원을 일으킴 - 실현 이런 방안을 제시했다. 그런데 prince 님은 자신이 참회할 것이 없고 떳떳하다고 하면서 본인 권고를 무시하고 나아갔다. 그리고 현실에서도 초등생처럼 계속 조금 답답하게 임했다. 보기에 안타까워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일단 종합적으로 prince 님이 결과가 좋아지기를 기다려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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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8/2564-08-24-k0079-009.html#1918 sfed--대방광불화엄경_K0079_T0278.txt ☞제9권 sfd8--불교단상_2564_08.txt ☞◆vrph1918 불기2564-08-24 θ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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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휘(法諱)ㆍ법호(法號)ㆍ계명(戒名)이라고도 한다. 불교에 들어온 이에게 주는 이름. 들어와서 득도식(得度式)을 마칠 적에 주고, 속가에 있는 신남(信男)ㆍ신녀(信女)에게는 수계(授戒)나 귀경식(歸敬式)을 할 때에 줌. ⇒<유사어>계명<참조어>계명(戒名)
답 후보
● 법명(法名)
법상부(法上部)
법성생신(法性生身)
법시(法施)
법아견(法我見)
법애(法愛)
법유아무종(法有我無宗)
ॐ मणि पद्मे हूँ
○ [pt op 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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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방광불화엄경_K0079_T0278 [문서정보]- 일일단상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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