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ain Souchon - Cest Deja 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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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 RITA MITSOUKO - Les Histoires d'A
● [pt op tr] fr sfed--불설당래변경_K0518_T0395.txt ☞당래변경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의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서 큰 비구 대중 5백 명과 여러 보살들과 함께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 “장차 미래 세상에 어떤 비구가 하나의 법이 있어 이로 인하여 법의 교화를 따르지 아니하고 법을 헐어 없애 증장하고 이익되게 하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 어떤 것이 하나의 법인가?
금계(禁戒)를 지키지 않고,
마음을 지키지 않으며,
지혜를 닦지 않고 그 뜻을 방일하게 하여 오직 화려한 명성만 구하여 도의 가르침을 순종하지 않고 세상을 제도하는 업을 부지런히 우러러 받들고 본받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의 일로써 법을 헐어 없애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두 가지 일이 있어 법을 헐어 없어지게 하리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 금계를 지키지 아니하며 그 마음을 다스리지 않고 지혜를 닦지 않으며 처자식을 먹여 살리고 마음과 뜻을 방자하게 하며 물건을 사고 팔아 생업으로 꾸리며 서로서로 함께 살아감이요,
둘째 끼리끼리 무리를 지어 서로 엉키고 달라붙어 법을 받드는 이를 미워하여 함정에 빠지게 하고 그 때문에 일부러 아첨하고 안으로 악행을 범하고 겉으로는 거짓 청렴하고 결백한 체 하느니라.
이것이 바로 두 가지 일로써 법을 없애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세 가지 일이 있어 법을 헐어 없어지게 하나니,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첫째 이미 금계를 지키지 않았으며 능히 마음을 가다듬지도 않았고 지혜도 닦지 않았음이요,
둘째 스스로 문자를 읽는다면서 구두점을 찍을 줄 모르고 위의 것을 아래에 붙이고 아래의 것을 위에 붙여서 글머리와 글말미가 뒤집혀서 능히 완전한 뜻의 귀착점을 알지도 못하면서 스스로 옳다고 여김이요,
셋째 밝은 이를 비웃어 그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도리어 원망하여 성을 내며 서로서로 질투하고 뜻을 아는 것은 적으며 이치를 분별하지 못하는 것은 많으면서 모두 옳다고 말함이다.
이것이 바로 세 가지 일로써 법을 헐어 없애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네 가지 일이 있어 법을 헐어 없어지게 하나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 장래에 비구가 이미 집을 버리고 비고 한적한 곳에 있으면서 도업(道業)을 닦지 아니함이요,
둘째 인간 세상의 시끄러운 저자 가운데 다니며 떠들고 이야기하며 기쁘게 노닐고 좋은 가사와 오색 의복을 구함이요,
셋째 거만하게 높이 바라보고 멀리 쳐다보며 화려한 비단옷으로 장식하고 스스로 덕이 높다고 여기며 능히 자신에게 미칠 수 있는 자가 없다 하며 자잘하고 잡다한 지식으로 해와 달의 밝음에 견주며 교만을 쌓아감이요,
넷째 세 가지 일을 다스리지 아니하고 감각기관을 지키지 않으며 부녀자 사이에 다니며 글을 퍼뜨리고 말을 꾸미며 말을 많이 하여 패거리를 모으고 인심을 선동하여 청정한 이를 변화시켜 탁하게 하며 몸의 행실이 거칠고 난잡하며 정법을 쇠퇴시켜 떨쳐 일어나지 못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 네 가지 일로써 법을 헐어 없애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다섯 가지 일이 있어 법을 헐어 없어지게 하나니,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 어떤 비구가 본래 법으로써 출가하여 수도함에 심오한 경전의 가르침인 12인연(因緣)ㆍ37품(品)과 대승경전의 깊고 미묘하고 그윽하고 공(空)의 지혜와 반야바라밀의 끝없음과 선교방편과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의 지극한 교화의 차례를 폐하여 없애버림이다.
둘째 도리어 잡된 글귀와 천박하고 지말적인 경문과 세속의 행동거지를 익힘이니,
왕자(王者)의 경전은 도를 어지럽히는 근원이로되 이러한 업을 익히기를 좋아하고 세상일을 쉽게 잘 이해하며 인심에 영합하여 그들을 기쁘게 하고 그로 인하여 이름을 드날림이요,
셋째 새로 설법을 들은 사람이 견해가 천박한 법사는 뜻이 아주 묘하고 상쾌하다고 여기고,
깊이 통달한 법사는 좋은 법이라 여기지 아니함이요,
넷째 하늘과 용과 귀신이 기뻐하지 아니하고 마음에 근심과 슬픔을 품고 있음이니,
입으로 이런 말을 하여 큰 법을 없애고자 한다.
그 때문에 그렇게 되어 버리게 하며 미묘한 법의 교화를 버리고 도리어 잡구(雜句)를 널리 퍼뜨리니,
모든 하늘이 눈물을 흘리며 속히 떠나가 버림이며,
다섯째 이로 말미암아 정법이 점점 사라짐을 보고 정성스럽게 수행하는 자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다섯 가지 일로써 법을 헐어 없애는 것이다.”
■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멸도한 뒤에 이러한 삿된 일과 열다섯 가지 어지러운 것이 법을 헐어 없애는 것이니 어찌 슬프지 아니하랴?
■ 만약 어떤 비구가 도를 배워 자세히 알고자 하면 비단옷을 버리고 명예가 드러나기를 구하지 말며,
질박하게 천성을 지키고 바른 경을 널리 전할 것이니라.
부처님의 바르고 깊은 법의 교화는 많은 말을 하지 않느니라.
본래 말한 경을 상고하여 바른 구절을 버리지 말고,
희귀한 말씀이 거듭된 가운데 부처님의 뜻을 잃지 말며,
거친 옷을 입고 음식에 대해서는 맛난 음식을 얻어도 달게 여기지 말고,
거친 음식을 얻어도 싫어하지 말지니라.
의복과 음식의 좋고 나쁜 것은 보시하는 자의 뜻을 따라 성내거나 기뻐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 몸과 입과 뜻을 다스려 모든 감각기관을 잘 지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기지 말며,
목숨은 매우 짧아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리니 꿈에 본 듯 깨어나서도 바로 알지 못하니 3악도의 어려움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느니라.
부지런히 부처님의 법을 닦아 머리에 난 불을 구하는 것 같이 할지니라.
■ 5계(戒)ㆍ10선(善)ㆍ6도(度)는 끝이 없고 4등(等:慈ㆍ悲ㆍ喜ㆍ捨)과 4은(恩:父母恩ㆍ衆生恩ㆍ國王恩ㆍ三寶恩)은 지혜의 좋은 방편이니 모두 다 정성껏 닦으면 비록 부처님이 세상에 계시는 때를 만나지 못했을지라도 출가하여 도학(道學)을 배우는 것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 본마음을 평등하게 하여 부처님께서 시방 세계의 중생을 불쌍히 여겨 은혜를 베풂을 생각해야 하느니라.”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Giovanni-Battista-Piranesi-caprice-decoration-a-group-of-ruins-inhabited-by-snakes-surmounted-by-an-ancient-tomb-a
Artist: Giovanni-Battista-Piranesi https://en.wikipedia.org/wiki/Giovanni_Battista_Piranesi Title : caprice-decoration-a-group-of-ruins-inhabited-by-snakes-surmounted-by-an-ancient-tomb-a Info Permission & Licensing : Wikiart ● [pt op tr] fr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Roos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Roos.jpg Nederlands: Roos Author voor Elisa ● [pt op tr] fr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2448px-Guanyin_Statue_in_the_Summer_Palace
https://en.wikipedia.org/wiki/File:Guanyin_Statue_in_the_Summer_Palace.JPG English: A statue of Guanyin inside the Tower of Buddhist Essence in the Summer Palace (Beijing, China). Cast in 1574 AD, 5 meters tall. Author Tojan76 Permission & Licensing : Wikipedia ● [pt op tr] fr
♡수국사(서울)
○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새해 설날을 맞이하여 소원의 성취방안을 살폈다. 그런데 막상 자신의 현실에 이를 적용해보려면 많은 장애를 보게 된다. 그래서 현실과 이상의 벽을 느끼게 된다.
수행자는 처음 보리심을 일으켜야 함을 강조했다. 보리심을 일으키고 현실을 대하면 당장 자신 뜻처럼 현실에서 전변을 일으키는 것이 곤란함을 보게 된다.
그리고 원래 행하던 것처럼 여전히 반복해 업을 행하며 생사고통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원래 불구경 싸움 구경이 재미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남의 일처럼 구경하다보면 결국 그 피해를 고스란히 돌려받게된다. 처음엔 다른 남들의 일이었는데 그것이 자신의 일이 된다.
그래서 매일 아침 137 도 심신 상태를 만들어 보리심을 잉으키고 이것을 실천하는 수행을 행해야 한다.
137 도란 상징적인 숫자다. 지금껏 하루 감가상각비가 137 억원을 초과함을 강조했다. 오늘 하루 137 억원을 초과하는 가치를 얻어내지 못하면 고스란히 부담해야 하는 손해액을 의미한다. 이는 물론 자신이 100 년을 넘겨 살기 힘들다. 100 년이 되면 폐기처분된다는 사정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생명 신체를 최소한 500 조원을 초과한다고 보고 계산된 감가상각비용이다.
그런 가운데 아침에 기상할 때 이 137이란 숫자를 각성해야 한다. 자신이 이 숫자를 낮추면 스스로 자신의 생명이나 신체의 가치를 저평가하는 것이 된다. 만일 하루당 감가상각비를 만원으로 책정하면 하루에 이를 상회하는 수익을 거두기 쉽다. 그런데 그것은 자신을 축생수준으로 스스로 평가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스스로 잘 헤아려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자신의 생명신체에 대한 감가상각비용을 책정하면 하루에 어떤 활동을 해도 이를 상회하는 현금 수익을 거두기 불가능하다. 그런데 방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그런 비용을 넘는 수익은 결국 수행과 도에 있다. 그리고 보리심을 장착하여 일으켜야 그 모든 것이 원만히 성취된다.
따라서 이런 보이지 않는 감가상각비용을 늘 자각한 가운데 현실에 임해야 또 이를 초과하는 수익을 거둘 방안이 의식되게 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자신부터 잘 되지 않는 것이 있다.
현실에서 일반적 입장에서 생사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수행을 해야 한다고 보게 된다. 그런데 일반인 입장은 마비 상태와 같다. 해야 한다는 의식도 없고 하려고 해도 대단히 힘들게 여기면서 행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잘 행하게 하는 것이 수행자의 목표점이다.
그러려면 먼저 자신부터 그와 비슷한 것을 놓고 먼저 자신부터 잘 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 자신은 잘 하지 못하면서 다른 이에게만 잘 하라고 요구하면 안 된다.
그래서 수행은 복을 많으라고 요구하는 일이 아니고 다 함께 복을 받자라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
남도 복을 많고 자신도 복을 함께 받자. 이런 취지로 임해야 한다.
그런데 복을 주으려면 먼저 해야 할 일이 잘 안되는 상태에 놓여 있다. 그런 문제의식을 갖고 위 문제를 먼저 대해야 한다.
새해부터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 또는 담배를 태우지 않겠다.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상황이 되면 그렇게 행하지 못하고 평소 행하듯 하게 된다.
현실의 생사고통도 이런 문제와 성격이 같다. 일반적으로 그렇게 하기 힘들다고 여기는 상황에서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다.
수행자는 자신 스스로도 그렇게 수행에 임해야 하고 또 다른 중생도 그렇게 행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이것이 보리심과 관련된다. 그것이 자신을 최상의 상태로 전변시키는 방안이고 다른 중생도 최상의 상태로 전변시키는 방안이다.
이는 교육학에서 연구하는 교육이론과도 성격이 같다.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내용을 먼저 관찰해야 한다. 이를 일반적으로 '무조건 반사과정'이라고 한다. 교육은 이와 관련해 파블로프가 행한 조건반사 실험을 생각하면 쉽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우선 파블로프의 실험내용을 먼저 살펴보자.
개는 먹이를 먹으며 침을 흘리게 된다. 그런데 이는 '무조건반사'에 의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런데 개에게 종소리를 들려준 후, 종소리가 난 후에 먹이를 준다. 이 과정을 반복하여 학습을 시킨다. 이를 조건부여라고 한다. 조건부여가 충분히 되면 이제 종소리만으로 침을 흘리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현실 문제는 침을 흘리는 것은 아니다.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고 복덕을 얻으려면 일정한 수행을 해야 한다. 좋음(+)을 아끼지 않고 베풀어야 한다. [보시] 상대가 집착하는 좋음(+, 생명, 신체, 재산, 가족, 지위, 명예...)을 함부로 침해하지 않고 나쁨을 가하지 않아야 한다. [정계] 자신이 좋음을 침해당하고 나쁨을 받을 때 평안히 참아야 한다. 그리고 분노를 일으키지 않고 미움과 원망을 갖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보복하며 해를 가하지 않아야 한다. [안인] 이런 내용을 꾸준히 해야 한다.
이렇게 행하면 이를 통해 인과관계상 업의 장애가 해소되고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그 뒤에는 무량한 복덕을 쌓게 된다. 그래서 최상의 상태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무량한 방편 지혜를 쌓을 수 있게 되고 불국토를 장엄하고 다른 중생을 제도하고 성불한다.
그런데 문제는 현실 일정 상황에서 대부분 이렇게 반응하지 않는다. 자신도 평소 현실에서 이렇게 행하기 힘들다. 이것이 문제다.
그리고 일정한 망집을 일으킨 바탕에서는 그 반대 방향으로 무조건 본능적으로 행하게끔 된다. 그것은 망집상태에서 대하는 현실을 실답게 여기고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장 집착하는 것을 대하면서 위와 같이 도무지 행하지 못한다.
그래서 수행자는 그렇게 못하는 상황에서 그것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목표다 앞에서 처음 불가능과 가능의 경계선에서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내용을 가능하게 만들도록 노력해야 할 필요성이 이 부분에 있다.
수행자 자신부터 잘 하지 못하면서 다른 중생에게 이렇게 행하라는 것은 문제다.
이 부분에서 처음 파블로프가 행한 실험을 잘 헤아릴 필요가 있다.
원래 잘 행하는 반응이 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할 내용은 그것이 아니다. 그 반응은 중지하고 수행덕목에 해당하는 내용을 행하는 것이 과제다. 이 부분을 99% 대부분 힘들게 여긴다. 불가능은 아닌데 불가능에 가깝게 여긴다. 특히 안인 수행 부분에 들어가면 더더욱 그렇다. 가장 기본적인 보시 항목도 사정이 비슷하다.
그래서 처음 잘 행하던 관계를 이용해야 한다. 이것은 파블로프 실험에서 개가 침을 흘리는 반응과 같다. 어떤 상황이 되면 => 그것을 아주 잘한다. 그런데 정작 해야할 상황에서는 => 그것을 하지 못한다.
이 부분은 파블로프가 좋을 울리는 경우와 같다. 종을 울린다고 침을 흘리지는 못한다. 그런데 어떻게 하니까 종을 울리는 상황에서 침을 흘리게끔 바뀌었다. 이 부분이 의미가 있다.
그래서 수행덕목에 해당하는 내용을 일반적으로 잘 행하던 상황을 놓고 생각해야 한다. 어떤 경우는 도무지 행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에 해당하는 행위를 어떤 경우는 아주 잘 행한다. 불가능과 가능의 경계선이라는 것이 의미하는 내용이 이것이다.
이제 이것을 파블로프 실험처럼 처음엔 접착시킨다. 그러다가 이제 일정부분을 뺀다. 그래서 원래 수행덕목을 행하는 것이 필요할 때 => 곧바로 수행덕목을 행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먼저 이런 상태로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또 마찬가지 방식으로 다른 중생도 그처럼 행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이미 부처님이 선배 보살님들이 이런 방향으로 수많은 처방을 마친 상태다.
예를 들어 부처님은 경전에서 자신이 대하는 모든 생명이 과거생에 자신의 부모였음을 잘 관하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사실 이는 과거생에 다른 생명이 또 다른 관계였음도 함께 의미한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반대로 살피면 아무리 가까운 부모자식관계라도 과거생에 원한관계였음도 의미한다. 그런데 부처님은 과거에 은혜관계던 원한관계던 이 모든 관계를 모두 좋은 관계로 바꾸는 처방전을 제시한 것이다. 만일 이를 반대로 적용하면 아주 가까운 부자관계마저도 그 반대로 된다.
그래서 이는 두 방향으로 실천할 것을 제시한다.
부모자식관계에서 무언가를 공양하고 공경 존중하고 찬탄하는 행위부터 잘 행해야 한다. 그리고 그 관계처럼 일반 생명을 대할 때 행한다.
또 일반생명을 대할 때는 그 대상을 부모자식관계로 대하여 그처럼 정성껏 공양 공경 존중 찬탄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것이 파블로프가 행한 실험과 그 성격이 같다.
수행덕목과 관련된 내용이 일반적으로 행하는 모든 부분에 그처럼 적용된다. 따라서 이를 용응하면 매 경우마다 수행덕목을 잘 성취하게 된다.
『대방광불화엄경』 정행품에서는 문수사리보살님이 바로 이런 방안으로 일상 모든 생활을 수행의 내용으로 전환시킬 것을 제시한다.
부처님이 일상생활의 내용에 대해 시를 통해 모두 수행의 의미로 전환시키는 것도 같은 사정이다.
농부가 농사짓는 일을 놓고 수행과 관련시킨다거나, 목축업자가 가축을 키우는 일을 가지고 수행과 관련시키는 것도 이와 사정이 같다. 경전마다 이런 내용이 수없이 제시된다. 예를 들어 해심밀경에서는 일반인들이 거리를 수레를 타고 지나서 궁궐에 도착하는 내용을 수행덕목과 관려시킨다. 이렇게 행하면 일상생활의 모든 부분을 수행의 내용으로 전환시키게 된다.
이를 응용하면 제한없이 모든 영역에 수행덕목이 적용된다.
수행자는 중셍재도를 위해서 일반인이 잘 행하지 못하는 다라니 삼매 신통을 구족해야 한다.
무언가를 잘 외어야 하고 정려 삼매 수행을 잘 행해야 하고 중생들이 소원하지만 잘 성취하지 못하는 분야도 잘 성취해야 한다.
중생들이 병에 걸릴 때 이 병을 잘 고치는 것은 수행목표와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병이 걸릴 때 고쳐야 하는가하면 병을 고칠 수도 있고 고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각 경우 그런 행위는 중생제도와 성불의 측면과 관련하여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그런데 만일 중생제도와 성불의 측면에서 어떤 병을 고쳐줘야 할 필요가 있을 때 그것을 고칠 수 없다면 수행자에게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수행자는 이런 측면에서 무량한 복덕과 방편지혜를 취득하고 다라니 삼매 신통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 수행과정에서는 다음을 잘 헤아려야 한다.
우선 자신이 자신의 손을 잘 보는데 그러나 자신의 눈은 자신이 보지 못한다. 그리고 작은 새끼 손가락은 자유롭게 움직이는데 발가락은 그렇게 잘 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것이 가능과 불가능의 중간 경계점이다. 이 부분부터 샘플삼아 훈련을 시작해야 한다. 이 원리가 결국 수행자가 갖춰야 하는 다라니 삼매 신통력과 관련된다.
처음 수행을 시작할 때는 경전에서 제시되는 내용들이 하나같이 공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내용으로 여겨진다. 즉 불가능이라고 여기게끔 된다.
그런데 그것을 수행자가 닦아 나가려면 우선 그런 성격의 내용 가운데 가능하게 되는 부분을 먼저 찾아 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과정도 앞에서 살핀 것과 사정이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