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 제56권
대당 삼장 의정(義淨) 한역
송성수 번역
14. 불설입태장회(佛說入胎藏會) ①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박가범(薄伽梵)께서는 겁비라성(劫比羅城)의 다근수원(多根樹園)에서 큰 비구 대중과 한량없는 사람들과 함께 계셨다.
그때 세존의 아우 되는 난타(難陀)라는 이가 있었는데 몸은 금비와 같고 30상호[相]를 갖추었으며,
부처님보다 네 손가락[四指]만큼 키가 작았다.
그의 아내 손타라(孫陀羅)는 용모가 단정하여 세간에 드문 뛰어난 미인이었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보기 좋아하였다.
난타는 그에게 반하여 잠시도 떨어지지 않았으며
애정이 두터웠으므로 죽을 때까지 같이 있기를 맹세하였다.
세존은 그를 교화할 때가 왔음을 아시고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구수(具樹) 아난타(阿難陀)를 시자(侍者)로 삼아 성(城)으로 들어가 차례로 걸식하시다가
난타의 집에 이르러 문 앞에 서서 대비(大悲)의 힘으로써 금빛 광명을 놓으셨다.
그 광명이 난타의 집 안을 두루 비추어 모두가 금빛으로 되자,
그때 난타는 곧 생각하기를 ‘광명이 갑자기 비치는 것을 보니
반드시 여래이시리라’고 생각하고 심부름하는 이를 시켜 나가서 보게 하였더니
심부름하는 이는 부처님께서 와 계신 것을 보고 곧바로 돌아와서 난타에게 말하였다.
“세존께서 문 앞에 와 계십니다.”
이 말을 듣자마자 바로 나가서 세존을 맞이하고 예배하려 하는데,
그때에 손타라는 생각하기를
‘내가 만일 놓아 보내면 세존께서는 반드시 그를 출가시키리라’ 하고,
옷을 잡으며 나가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자 난타가 말하였다.
“잠시 동안만 놓아주시오.
세존께 예배한 뒤에 바로 돌아오겠소.”
손타라는 말하였다.
“같이 약속을 하셔야 가실 수 있습니다.
이 화장품(化粧品)의 물기가 마르기 전에 즉시 돌아오셔야 합니다.
만일 더디거나 어기면 벌금이 500전입니다.”
난타는 말하였다.
“좋소. 그렇게 합시다.”
그리고는 곧 문 앞으로 가서
부처님의 발에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 여래의 발우를 받아
집 안으로 들어와서 맛있는 음식을 가득히 담아가지고 문 앞으로 갔다.
세존께서는 마침내 떠나시면서 곧 아난타에게 몸짓으로 발우를 받지 못하게 하셨으므로
여래․대사(大師)의 위엄과 존중 때문에 감히 불러 세우지 못하고 다시 아난타에게 주려고 하였다.
그러자 아난타는 물었다.
“당신은 누구에게서 그 발우를 받으셨습니까?”
난타가 대답하였다.
“부처님께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부처님께 드려야 합니다.”
“저는 이제 감히 대사께 경솔하게 굴지 못하겠습니다.”
그리고는 잠자코 뒤를 따랐다.
▸ 세존께서는 절에 이르셔서 손발을 씻은 뒤에 자리에 나아가 앉으셨다.
그제야 난타가 발우를 가져다 바치자 세존은 받아서 다 잡수신 뒤에 말씀하셨다.
“난타야, 너는 내가 남긴 밥을 먹겠느냐?”◂
난타가 대답하였다.
“먹겠나이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곧 그에게 주셨다.
난타가 다 먹고 나자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너는 출가하지 않겠느냐?”
난타가 대답하였다.
“출가하겠나이다.”
그리고 부처님 세존께서는 옛날 보살도를 행하실 때에 부모와 스승과 어른이며
그 밖의 높은 이의 모든 가르침과 분부를 거역한 일이 없었으므로 오늘날 말씀하시면 어기는 이가 없었다.
즉시 아난타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난타의 수염과 머리를 깎아 주어라.”
아난타는 대답하였다.
“예,
세존의 분부대로 하겠나이다.”
그리고는 곧 머리 깎는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를 깎아주게 하였다.
난타는 머리 깎는 사람을 보고 말하였다.
“당신은 지금 알고 있습니까?
나는 장차 오래지 않아서 전륜왕(轉輪王)이 될 터인데 당신이 만일 함부로 나의 머리를 깎게 되면 장차 당신의 팔을 끊어 버리겠소.”
이 말을 들은 그는 몹시 두려워하면서 머리 깎는 기구를 도로 싸 가지고 나오려고 하였다.
그때에 아난타가 부처님께 가서 아뢰자 부처님께서는 몸소 난타에게로 와서 물으셨다.
“난타야,
너는 출가하지 않겠느냐?”
난타는 대답하였다.
“출가하겠나이다.”
이때 세존께서는 스스로 병에 든 물을 가져다
그의 머리 위에 부어 주셨고 정인(淨人)은 곧 그의 머리를 깎았다.
그러자 그는 생각하기를 ‘내가 지금 세존을 공경하기 위하여 출가한다 하였지만,
저물면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하더니 날이 저물자 길을 찾아 떠나갔다.
그때 세존께서는 그가 가는 길에다 변화로 큰 구덩이를 만들어 놓으셨다.
그것을 보고 문득 생각하기를 ‘손타라와 멀어지게 되었구나.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말이다.
나는 지금 손타라를 생각하면 죽을 지경이다.
이대로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가 새벽이 되면 떠나야겠다’ 하고,
손타라를 생각하며 밤 내내 괴로워하였다.
그때 세존께서 그의 뜻을 아시고 아난타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가서 난타에게 지사인(知事人)을 삼겠다고 일러 주어라.”
그는 곧 가서 일러 주었다.
“세존께서 당신을 지사인으로 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난타가 물었다.
“어떤 것을 지사인이라 하십니까?
무슨 일을 시키려 하십니까?”
“절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보살펴야 합니다.”
“어떠한 일들을 해야 하는 것입니까?”
“구수(具壽)여,
지사(知事)라 함은 만일 모든 비구들이 밥을 빌러 나갔을 때에는 절 안의 도량에 물을 뿌리고 쓸며,
방금 눈 쇠똥을 가져다 차례로 깨끗이 발라야 하고 정신 차리고 지켜서 실수가 없게 해야 합니다.
조금 있으면 평장사(平章事)가 대중 스님들에게 알릴 것입니다마는
만일 향과 꽃이 있으면 마땅히 가서 대중에게 주어야 하며
밤이 되면 문을 닫고 새벽이 되면 열어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대소변을 하는 곳은 언제나 깨끗이 씻고 닦아야 하며,
만일 절 안에 파괴된 곳이 있으면 즉시 보수도 해야 합니다.”
이런 가르침을 듣고 나서 대답하였다.
“대덕(大德)이시여,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저는 모두 하겠습니다.”
그때에 모든 비구들은 아침 식사 때가 되었으므로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겁비라성으로 가서 밥을 빌고 있었다.
그때에 난타는 절에 사람들이 없는 것을 보고 곧 생각하기를 ‘나는 마당을 다 쓴 뒤에 집으로 가야겠다’ 하고,
마당을 쓸기 시작하였다.
세존께서는 그의 마음을 아시고 신통력으로써 깨끗이 쓸어 놓은 곳에 쓰레기가 도로 가득히 차게 하자,
그는 또 생각하기를 ‘나는 쓰레기를 다 치운 뒤에 돌아가야 한다’ 하고,
비를 놓아두고 쓰레기를 거두어서 가져다 버렸으나 끝이 없었으므로 다시 생각하기를 ‘문을 닫아 놓고 떠나가야겠다’고 하였다.
세존께서는 곧 그가 방문을 닫은 뒤에 다시 다른 방문을 닫으면 먼저 닫힌 문이 열리게 하였으므로 마침내 그는 근심하고 괴로워하다가 다시 생각하기를 ‘비록 도둑이 들어서 절을 부순다 해도 이것 또한 걱정할 것이 없다.
내가 장차 왕이 되면 여기보다 백천 배도 더 되는 좋은 절을 지어 줄 것이다.
나는 그대로 두고 집으로 가야겠다.
만일 큰길로 가면 세존을 만날까 두렵구나’ 하고는 곧 작은 지름길을 따라 가고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그의 생각을 다 아시고 작은 길을 따라 오고 계셨다.
그는 멀리서 부처님을 보고는 서로 만나지 않으려고 길 곁에 가지가 드리워서
그늘이 진 나무가 있었으므로 즉시 그 아래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부처님께서는 그 나무의 모든 가지를 위로 높이 올리며 그의 몸이 드러나게 하시고는 난타에게 물으셨다.
“너는 어디서 오느냐?
나를 따라오너라.”
그는 몹시 부끄러워하면서 부처님의 뒤를 따랐다.
부처님께서는 생각하시기를 ‘이는 그의 아내를 몹시 그리워하고 있음이니 마땅히 떨어지게 해야겠구나’ 하시고,
그를 인도하기 위하여 겁비라성을 나와 실라벌(室羅伐)로 가셨다.
그곳에 도착하신 뒤에 비사가녹자모원(毘舍佉鹿子母園)에 계시면서 부처님께서는 생각하시기를 ‘이 난타는 어리석고 미혹하여 아직도 그의 아내를 생각하며 애정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방편을 써서 그의 마음을 쉬게 해야겠구나’라고 하시고,
곧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전에 향취산(香醉山)에 가 본 일이 있느냐?”
그는 대답하였다.
“아직 못 보았나이다.”
“그렇다면 나의 옷자락을 잡아라.”
그리하여 그는 곧 나아가 옷자락을 붙잡자,
그때에 세존은 마치 아왕[鵝王]과 같이 허공으로 올라서 향취산에 닿으셨다.
▸ 그런 뒤에 난타를 데리고 좌우를 돌아보는데 과일나무 아래에서 암컷 원숭이가 나타났다.
그 원숭이는 애꾸눈이었는데 곧 얼굴을 들어서 세존을 똑바로 보고 있었으므로
부처님께서는 난타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애꾸눈의 원숭이를 보고 있느냐?”◂
그는 대답하였다.
“예, 보고 있나이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애꾸눈의 원숭이를 손타라와 비교하면 누가 더 뛰어나겠느냐?”
“저 손타라는 석가의 종족으로 마치 천녀(天女)와 같아서
용모와 거동[儀容]이 제일이며 이 세상에서는 짝할 이가 없나이다.
이 원숭이를 그에게 비교한다면 천만억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어 말씀하셨다.
“너는 천상의 궁전을 본 일이 있느냐?”
그는 대답하였다.
“아직 못 보았나이다.”
“그렇다면 다시 이 옷자락을 붙잡아라.”
그가 또 옷자락을 붙잡자,
마치 아왕처럼 허공으로 올라가셔서 삼십삼천에 이르신 뒤에 난타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천궁(天宮)의 훌륭한 곳을 모두 구경하여라.”
난타는 곧 환희원(歡喜園)과 채신원(婇身園)과 추신원(麤身園)과 교합원(交合園)과 원생수(園生樹)며 선법당(善法堂) 등 이러한 모든 하늘의 동산과 꽃과 열매와 목욕하는 곳과 재미있게 노는 곳으로 가서 두루 살펴보았고,
다음에는 선견성(善見城) 안으로 들어가서 또 갖가지의 북과 악기며 거문고와 퉁소 등의 미묘한 소리를 들었고,
환히 트인 곁채에 평상과 장막을 화려하게 설비하여 놓고 곳곳에서 모든 하늘의 아름다운 채녀(婇女)들과 함께 서로 즐기고 있는 것도 보았다.
난타는 이렇게 두루 구경하다가 한 곳을 보았더니
천녀(天女)들만 있을 뿐 천자(天子)들이 없었으므로 그 천녀들에게 물었다.
“무슨 까닭에 다른 곳에는 남녀들이 뒤섞여서 모든 쾌락을 느끼고 있는데
당신들은 어째서 여인들만이 있고 남자들은 보이지 않습니까?”
천녀가 대답하였다.
“세존께 아우가 있으니,
그 이름이 난타입니다.
부처님께 출가하여 오로지 범행(梵行)만을 닦다가
목숨을 마친 뒤에는 이곳에 날 것이므로 우리들은 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난타는 그 말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하며 속히 부처님께로 돌아오자,
▸ 세존께서 물으셨다.
“너는 모든 하늘의 훌륭한 일들을 다 보았느냐?”◂
그는 대답하였다.
“예,
보았나이다.”
“너는 어떠한 일들을 보았느냐?”
그는 보았던 그대로를 세존께 자세히 아뢰자,
부처님께서는 난타에게 말씀하셨다.
“천녀들을 보았느냐?”
“예,
보았나이다.”
“이 모든 천녀들을 손타라와 비교하면 누가 더 아름답더냐?”
“세존이시여,
손타라를 이 천녀들에게 비교하는 것은
마치 저 향취산에 살고있는 애꾸눈의 원숭이를 손타라와 비교하는 것과 같아서 백천만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리이다.”
부처님께서는 난타에게 말씀하셨다.
“청정한 행을 수행한 이는 이런 뛰어난 이익이 있나니,
너는 이제 굳건하게 범행을 닦아 장차 천상에 나게 되어서 이러한 쾌락을 받도록 하라.”
이런 말씀을 듣고 그는 기뻐하면서 잠자코 서 있었다.
그때 세존께서는 난타와 함께 바로 천상에서 사라져 서다림(逝多林)에 와 닿으셨다.
이때 난타는 천궁을 사모하면서 범행을 닦고 있었으므로 부처님께서는 그런 뜻을 아시고 아난타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제 가서 비구들에게 알리기를 ‘어느 누구도 난타와는 자리를 같이 앉지 말 것이요,
같은 곳에서 거닐지도 말 것이며,
같은 횃대에 옷도 걸지 말 것이요,
동일한 곳에 발우를 놓거나 물병도 두지 말 것이며,
같은 곳에서 경전도 독송하지 말라’고 하라.”
아난타는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모든 비구들에게 전하였으므로
비구들은 받들어 모두가 거룩한 뜻을 따랐다.
이때에 난타는 여러 사람들이 그와 함께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몹시 부끄러워하였다.
뒷날 어느 때에 아난타와 여러 비구들이 공시당(供侍堂)에서 옷을 깁고 있었으므로
난타는 그것을 보고 나서 생각하기를 ‘이 여러 비구들은 모두가 나를 버리고 같이하지 않지만
이 아난타만은 나의 아우인데 어찌 나를 싫어하겠느냐?’고 하면서,
곧 그곳으로 가서 같이 앉았다.
그때 아난타는 벌떡 일어나 피하므로 그는 말하였다.
“아난타여,
다른 비구들에게 버림을 받는 것은 참을 수 있겠으나
그대는 나의 아우인데 어째서 그토록 싫어한단 말이오?”
아난타는 말하였다.
“진실로 이 이치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다른 도(道)를 행하고 있고 나는 다른 길[路]을 좇고 있으니,
그 때문에 피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나의 도라 하고 어떤 것이 당신의 길입니까?”
“당신은 천상에 나기를 좋아하며 범행을 닦고 있고,
나는 원적(圓寂)을 구하므로 욕심을 없애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나서 갑절이나 더 근심하고 슬퍼하였다.
그때에 세존께서는 그의 마음을 아시고 난타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전에 나락가(捺洛迦)에 가 본 일이 있느냐?”
그는 대답하였다.
“아직 못 가 보았나이다.”
“너는 나의 옷자락을 붙잡아라.”
그가 곧 나아가서 옷을 붙잡자,
부처님께서는 그를 데리고 지옥으로 갔다.
그때에 세존께서는 한편에 서 계시면서 난타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여러 지옥들을 구경하여라.”
난타는 즉시 돌아다니며 먼저 재가 흐르는 강물을 보았고 다음에는 칼로 된 나무가 있는 곳과 똥오줌만이 가득히 있는 곳과 불로 된 강물이 흐르는 곳으로 가서 그곳들을 자세히 살피며 중생들이 받는 갖가지 고통을 보았으며,
혹은 또 부젓가락으로 혀를 뽑고 이를 비틀고 눈을 후벼 파내는 것을 보았고,
혹은 때로는 톱으로 그 몸을 썰어내며 도끼로 손발을 자르고 혹은 몽둥이로 때리고 창으로 찌르기도 하였으며,
혹은 쇠몽둥이로 부수어 가루가 되게 하기도 하였고 혹은 이글거리는 구리 물을 입에다 부어 넣기도 하였으며,
혹은 칼로 된 산과 칼로 된 나무에 오르게 하고,
방아에 찧고 돌에 갈며 이글거리는 구리 기둥과 쇠 평상에서 극심한 고통을 받기도 하였고,
혹은 맹렬한 불에 펄펄 끓어오르는 가마솥에서는 유정들을 삶고 있기도 하였다.
이렇게 고통받는 일들을 보고 나서 다시 한 가마솥을 보았더니
거기에 물은 펄펄 끓고 있었으나 속에 유정은 없었으므로 두려워하면서 옥졸에게 물었다.
“무슨 인연으로 다른 가마솥에서는 모두 유정들을 삶고 있는데 이 가마솥은 끓기만 하고 비어 있습니까?”
옥졸이 대답하였다.
“부처님의 아우 난타는 천상에 나기만을 원하면서
오로지 범행을 닦으므로 천상에 나서 잠시 동안 쾌락을 받다가 거기서 목숨을 마친 뒤에는 이 가마솥 안으로 들어올 것입니다.
그 때문에 나는 지금 끓이기만 하면서 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난타는 이 말을 듣고 몹시 두려워서 몸의 털이 모두 곤두서고 구슬 같은 흰 땀이 줄줄 흘렀으므로
생각하기를 ‘이 옥졸이 만일 내가 난타인 줄 알면 산 채로 작살로 찔러서 가마솥에 넣겠구나’라고 하면서
급히 도망쳐서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오자,
▸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너는 지옥들을 보았느냐?”◂
그러자 난타는 슬피 울며 목이 메인 가느다란 소리로 아뢰었다.
“예,
보았나이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너는 어떠한 것들을 보았느냐?”
▸ 그는 곧 보았던 그대로를 세존께 자세히 아뢰자,
부처님께서는 난타에게 말씀하셨다.
“혹 인간을 원하고 혹은 천상을 구하면서 범행을 부지런히 닦는 이라면 이러한 허물이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너는 마땅히 열반을 구하며 범행을 닦아야 하고 천상에 나기를 바라면서 애써 수고하지 말 것이니라.”◂
난타는 이 말씀을 듣고 나서 몹시 부끄러워하며 대답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때 세존께서는 그의 뜻을 아시고 나서 지옥을 나와 서다림으로 오신 뒤에 곧 난타와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에는 세 가지의 때[垢]가 있나니,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그것이니라.
이것을 버려야 하고 이것을 멀리하는 법을 닦고 배워야 되느니라.”
그때 세존은 서다림에 머무르신 지 며칠이 되기도 전에
인연 따라 중생들을 제도하시려고 모든 도중(徒衆)들과 함께
점파국(點波國)으로 가셔서 게가못[揭伽池] 가에 머물러 계셨다.
그때 저 난타와 500의 비구들도 부처님을 따라와서 세존께 나아가 모두가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 있었다.
그때 부처님 세존은 대중이 다 앉은 것을 보시고 난타에게 말씀하셨다.
“나에게 법요(法要)가 있으니 처음도 중간도 나중도 훌륭하고 글과 뜻이 교묘하며 순일하고 원만하며 청백한 범행이니,
이른바 어머니의 태 안에 드는 경[入母胎經]이 그것이니라.
너는 자세히 듣고 지극하게 뜻을 지어 잘 생각할지니,
나는 이제 너를 위하여 연설하리라.”
난타가 말하였다.
“그러하오리이다.
세존이시여,
즐거이 듣고자 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난타에게 말씀하셨다.
“비록 어머니의 태(胎)가 있다 하더라도
들어가고[入] 들어가지 못함[不入]이 있느니라.
어떻게 어머니의 태 속으로 들어가 생(生)을 받는가 하면,
부모가 더러운 마음으로 음행을 하고 그 어머니의 뱃속이 깨끗하고 월기(月期)의 때가 이르고
중온(中蘊)이 그 앞에 나타나게 되면
그러한 때에 어머니의 태 속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아야 하느니라.
이 중온의 형상에는 두 가지가 있나니,
하나는 형색이 단정한 것이요,
둘은 용모가 누추한 것이니라.
지옥의 중유(中有)는 용모가 누추하며 마치 불에 탄 등걸과 같고 축생의 중유는 그 빛이 마치 연기와 같으며,
아귀의 중유는 그 빛이 마치 물과 같고 사람과 하늘의 중유는 형상이 마치 금빛과 같으며,
색계(色界)의 중유는 형색이 산뜻하고 무색계천(無色界天)에는 원래 중유가 없나니,
형색이 없기 때문이니라.
중온의 유정은 혹 두 손과 두 발이 있기도 하고
혹은 네 발 또는 여러 개의 발이 있기도 하며 혹은 발이 없기도 하나니,
그가 전생에 지은 업을 따라가서 의탁하여 태어날 곳에 감응하는 중유이므로 곧 저 형색과 같다.
만일 하늘의 중유이면 머리를 곧 위로 향하고 있고
사람과 축생과 아귀의 중유면 머리를 모로 돌려서 다니며
지옥의 중유면 머리를 곧장 아래를 향하는 것이니라.
무릇 모든 중유는 모두가 신통을 갖추고 있어서
허공을 날아다니며 마치 천안(天眼)과 같이
그가 태어날 곳을 멀리서 보게 되느니라.
월기(月期)가 이르렀다 함은 태 속으로 받아들이는 시기를 말하는 것이니,
난타야,
모든 여인들은 혹은 3일 동안이기도 하고 혹은 5일 동안 또는 반 달 동안 또는 한 달 동안이기도 하며,
혹은 인연을 기다리면서 오랫동안 있다가 월기의 물이 비로소 이르기도 하느니라.
또 어떤 여인은 몸에 위세가 없으면
모진 고통을 많이 받고 형용이 누추하며 음식을 좋아함이 없어서
월기가 비록 온다 하더라도 속히 그쳐버림이
마치 마른 땅에 물을 뿌릴 때에는 쉽게 말라버리는 것과 같지만,
만일 어떤 여인이 몸에 위세가 있으면 항상 안락함을 느끼고 용모가 단정하며 음식을 좋아하게 되어서
월기가 속히 그치지 않음이 마치 윤기 있는 땅에 물을 뿌릴 때에는 바로 말라버리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어찌하여 들어가지 못하는가 하면,
아버지의 정수(精水)가 나올 때에 어머니의 정수가 나오지 않거나,
어머니의 정수가 나올 때에 아버지의 정수가 나오지 않거나 둘 다 같이 나오지 않거나 하면 모두 수태(受胎)하지 못하느니라.
또 어머니의 것은 깨끗하지 않은데 아버지의 것만 깨끗하거나
아버지의 것은 깨끗하지 않은데
어머니의 것만 깨끗하거나 둘 다 깨끗하지 않거나 하면 역시 수태하지 못하느니라.
또 어머니의 음처(陰處)에 풍병(風病)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황병(黃病)․담병(痰病)․두드러기가 있거나,
혹은 혈기(血氣)가 태에 맺혀 있거나 혹은 살덩이가 생겨 있거나 혹은 약을 먹었거나 혹은 맥복병(麥腹病)․의요병(蟻腰病)이 있거나,
혹은 산문(産門)이 마치 약대의 입과 같거나 혹은 가운데가 마치 뿌리 많은 나무와 같거나 혹은 쟁기의 머리와 같거나 혹은 수레의 끌채와 같거나 혹은 등나무의 줄기와 같거나,
혹은 나뭇잎과 같거나 혹은 보리의 까끄라기 같거나 혹은 뱃속 아래가 깊거나 혹은 위가 깊거나 혹은 태의 그릇이 아니거나,
혹은 항상 피가 흘러나오거나 혹은 물이 흐르거나 혹은 까마귀의 입과 같아서 늘 열려만 있고 다물어 있지 않거나,
혹은 위아래와 주위가 넓기도 하고 좁기도 하여 같지 않거나 혹은 높고 낮아서 볼록하기도 하고 오목하기도 하거나,
혹은 속에서 벌레가 파먹어서 문드러지고 깨끗하지 않거나 하는 이러한 허물이 있는 어머니는 다 같이 수태하지 못하느니라.
또 부모는 존귀한데 중유가 비천하거나 혹은 중유는 존귀한데 부모가 비천 하면 이러한 종류도 수태가 되지 않으며,
부모와 중유가 다 같이 존귀한데도 그들의 업(業)이 화합되지 못하여도 수태가 성립되지 않으며,
또 그 중유가 앞의 경계에서 남자 또는 여자의 두 편에 대한 애정이 없어도 받아 나지 못하느니라.
난타야,
어떻게 중유가 어머니의 태 속에 들어갈 수 있는가 하면,
어머니의 뱃속이 깨끗하고 중유가 그 앞에 나타나서 음행 하는 일을 보고
위에서의 설명과 같은 여러 허물들이 없고
부모와 아이가 서로 감응할 업이 있어야
비로소 어머니의 태 속에 들어가게 되느니라.
또 저 중유가 태로 들어가려 할 때에는 마음이 곧 뒤바뀌게 되나니,
만일 이것이 남자라면 어머니에 대하여 애정을 내면서 아버지에 대하여는 증오심을 내며,
만일 이것이 여자라면 아버지에 대하여 애정을 내면서 어머니에 대하여는 증오심을 내게 되느니라.
▸ 또 전생에 지었던 모든 업 때문에
허망한 생각을 일으키어 삿되게 이해하는 마음을 가지며,
춥고 차다는 생각과 큰바람이 불고 큰비가 오고 구름과 안개가 끼었다는 생각을 내며
혹은 대중들이 떠드는 소리를 듣기도 하나니,
이런 생각을 낸 뒤에 업의 우열(優劣)을 따르느니라.
또 열 가지 허망한 생각을 일으키게 되나니,
어떤 것이 열 가지이냐 하면
‘나는 지금 집으로 들어간다.
나는 누각에 오르려 한다.
나는 대전(臺殿)에 올라간다.
나는 평상에 올라간다.
나는 풀로 지은 집으로 들어간다.
나는 낙엽으로 지은 집으로 들어간다.
나는 우거진 풀에 들어간다.
나는 숲 속으로 들어간다.
나는 담 구멍으로 들어간다.
나는 울타리 사이로 들어간다’고 하느니라.
난타야,
그때에 중유는 이러한 생각을 한 뒤에 곧 어머니의 태로 들어가는 것이니,
그렇게 수태되는 때의 이름을 갈라람(羯羅藍)이라 하는데
아버지의 정기와 어머니의 피요 다른 물건이 아니니라.
아버지와 어머니의 정기와 피가 화합하는 인과 연으로 말미암아
의식[識]이 반연하는 대상에 의지(依止)하여 머무르는 것이니,
비유하면 마치 타락의 병(甁)이 뚫릴 적에는
사람의 공(功)에 의지하되 움직임이 그치지 않으면 소(酥)가 나올 수 있고
이것과 다르면 생기지 않는 것처럼
부모의 깨끗하지 못한 정기와 피로 된 갈라람의 몸도 그와 같으니라. ◂
또 난타야,
네 가지 비유가 있나니,
너는 마땅히 잘 들을지니라.
마치 푸른 풀[靑草]에 의지해야 벌레는 비로소 생기는 것이나 풀 그것이 벌레는 아니요,
그렇다고 벌레는 풀을 떠나서 있는 것도 아니며,
그러나 풀에 의지하는 인(因)과 연(緣)이 화합하여야 벌레는 비로소 생기며 몸이 푸른 색깔로 되는 것과 같나니,
난타야,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아버지의 정기와 어머니의 피로 된 갈라람의 몸도 이와 같아서 인과 연이 화합하여 4대(大)의 근본이 생기는 것이니라.
마치 쇠똥[牛糞]에 의지하여 벌레가 생기나 쇠똥 그것이 벌레는 아니요,
그렇다고 벌레는 쇠똥을 떠나서 있는 것도 아니며,
그렇지만 쇠똥에 의지하는 인과 연이 화합하여야 벌레는 비로소 생기게 되어 몸이 누런 색깔로 되는 것과 같나니,
난타야,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아버지의 정기와 어머니의 피로 된 갈라람의 몸도 이와 같아서 인과 연이 화합하여 4대의 근본이 생기는 것이니라.
마치 대추[棗]에 의지하여 벌레가 생기나 대추 그것이 벌레는 아니요,
그렇다고 벌레는 대추를 떠나서 있는 것도 아니며,
그렇지만 대추에 의지하는 인과 연이 화합하여야 벌레가 생기게 되어 몸이 붉은 색깔로 되는 것과 같나니,
난타야,
알아야 하느니라.
아버지의 정기와 어머니의 피로 된 갈라람의 몸도 이와 같아서 인과 연이 화합하여야 4대의 근본이 생기는 것이니라.
마치 타락[酪]에 의지하여 벌레의 몸이 흰 색깔로 되는 것도 앞에서 자세하게 설명한 것과 같나니,
나아가 인과 연이 화합하여 4대의 근본이 생기는 것이니라.
또 난타야,
부모의 부정(不淨)에 의지하여 생기는 갈라람이기 때문에 땅의 요소[地界]가 앞에 나타나면서 딱딱한 성품이 되고 물의 요소[水界]가 앞에 나타나면서 축축한 성품이 되며,
불의 요소[火界]가 앞에 나타나면서 따뜻한 성품이 되고 바람의 요소[風界]가 앞에 나타나면서 움직이는 성품이 되느니라.
난타야,
만일 부모의 부정으로 된 갈라람의 몸에 땅의 요소만 있고 물의 요소가 없다면 곧 바짝 말라서 모두 다 분산하게 되리니,
비유하면 마치 손으로 마른 미싯가루나 재 따위를 움켜쥐는 것과 같은 것이며,
만일 물의 요소만 있고 땅의 요소가 없다면 곧 여의고 흩어져서 마치 기름 방울이나 물과 같으리니,
물의 요소 때문에 땅의 요소가 흩어지지 않고 땅의 요소 때문에 물의 요소가 흐르지 않느니라.
난타야,
갈라람의 몸에 땅과 물의 요소만이 있고 불의 요소가 없다면 곧 부서지고 무너져서 마치 여름철에 응달에 둔 고깃덩이와 같으며,
난타야,
갈라람의 몸에 땅․물․불의 요소만이 있고 바람의 요소가 없다면 곧 더 자라지도 못하고 넓고 커지지도 못하느니라.
이들은 모두가 전생의 업으로 말미암아 인(因)이 되고 또 서로 연(緣)이 되어서 서로가 함께 부르고 감응하여 의식[識]이 생기게 되며 곧 태어날 수 있다.
땅의 요소로 지탱할 수 있고 물의 요소로 포섭할 수 있으며 불의 요소로 이익 되게 하고 바람의 요소로 자라게 하느니라.
난타야,
또 마치 어떤 사람이나 그의 제자가 엿을 만들면서 곧 공기를 불어넣어 그것을 넓고 크게 하여 속이 텅 비게 하는 것이 연뿌리와 같게 하는 것처럼 안의 몸의 요소인 땅․물․불․바람과 업의 힘을 자라게 하는 것도 이와 같으니라.
난타야,
부모의 부정(不淨)으로 갈라람의 몸이 있는데 어머니의 배도 아니요 또 업도 아니요 인도 아니요 연도 아니요,
다만 이들의 많은 연(緣)이 어울려 모임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수태함이 있느니라.
마치 새로운 종자를 바람을 쏘이고 햇볕을 쪼여 손상되거나 무너지지 않고 단단하고 알차고 구멍이 없게 잘 간직하였다가 윤택한 좋은 밭에다 뿌리면 인과 연이 화합한지라 비로소 싹과 줄기와 가지와 잎이며 꽃과 열매가 차례로 점점 자라나는 것과 같으니라.
난타야,
이 종자는 연을 여의지 않고 화합한지라 싹 등이 생기는 것이니,
이와 같아서 부모만도 아니요 다만 업과 남은 연만으로 수태가 되는 것도 아니며,
반드시 부모의 정기와 피와 인과 연이 화합함으로써 수태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느니라.
난타야,
마치 눈 밝은 사람이 불을 구하기 위하여 일광주(日光珠)를 햇빛에다 놓아두고 마른 쇠똥을 그 위에다 놓아야 비로소 불이 생기는 것처럼 이와 같아서 부모의 정기와 피와 인과 연이 합해져야 비로소 수태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느니라.
부모의 부정으로 된 갈라람을 물질[色]이라 하고 느낌[受]․생각[想]․지어감[行]․의식[識]은 곧 이름[名]이어서 이름과 물질[名色]이라 하는데 이런 쌓임의 무더기[蘊聚]인 미워할 만한 이름과 물질이 모든 존재[有]에 의탁하여 태어나는 것이므로
조그마한 부분이나 찰나(刹那)까지라도 나는 찬탄하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모든 존재 속에 태어나게 되면 그것은 큰 괴로움이기 때문이니,
마치 더러운 찌꺼기는 적은 것도 악취가 나는 것처럼 모든 존재 속에 태어나면 적은 것도 괴로운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이 5취온(取蘊)의 물질․느낌․생각․지어감․의식은 모두가 나고[生] 머무르고[住] 자라고[增長] 쇠하여 무너지는[衰壞] 것이니,
나는 것은 곧 괴로운 것이요 머무르는 것은 곧 병(病)이며 자라고 쇠하여 무너지는 것은 곧 늙어 죽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난타야,
누가 존재의 바다[有海]에 대하여 사랑하는 맛을 내겠느냐?
어머니의 태 속에 눕게 되면 이런 극심한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니라.
또 난타야,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무릇 태 속에 들어가면 대략의 수(數)로 말하여 서른여덟 번의 7일이 있느니라.
첫 7일 동안 어머니의 태 속에 있을 때에는 막대기 같고 부스럼 같은 것이 더러운 찌꺼기 위에 누워 있는 것이 마치 냄비 속에 있는 것과 같으며,
몸[身根]과 의식이 한곳에 같이 있느니라.
그것이 왕성한 열(熱)에 볶이면서 극심한 고통을 받게 되는데 그 이름을 갈라람(羯羅藍)이라 하며 형상은 마치 죽의 즙(汁)과 같고 혹은 타락의 물과 같으니라.
이것이 7일 동안에 안의 열[內熱]에 끓여지고 삶아지면서 땅의 요소의 단단한 성품과 물의 요소의 축축한 성품과 불의 요소의 따뜻한 성품과 바람의 요소의 움직이는 성품이 비로소 나타나기 시작하느니라.
난타야,
두 번째 7일 동안 어머니의 태 속에 있을 때에도 더러운 찌꺼기 위에 누워 있나니,
마치 냄비 속에 있는 것과 같고 몸과 의식이 한곳에 같이 있으며 맹렬한 열에 볶이며 극심한 고통을 받게 되느니라.
어머니의 뱃속에서는 저절로 일어나는 바람이 있어서 그 이름을 변촉(遍觸)이라 하는데 전생에 지은 업을 좇아 생기게 되느니라.
이 바람이 태(胎)에 부딪칠 때를 알부타(頞部陀)라 하나니,
그 형상은 마치 빡빡한 타락과 같기도 하고 혹은 엉긴 소[酥]와도 같으며,
이 7일 동안에 안의 열에 끓여지고 삶아져서 네 가지 요소[四界]가 나타나게 되느니라.
난타야,
세 번째 7일 동안의 자세한 설명은 앞에서와 같으며,
어머니의 태 속에는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도초구(刀鞘口)라 하는데 전생에 지은 업을 좇아 생기게 되느니라.
이 바람이 태에 부딪칠 때를 폐시(閉尸)라 하나니,
그 형상은 마치 쇠젓가락과 같기도 하고 혹은 지렁이와 같으며,
이 7일 동안에 네 가지 요소가 생기게 되느니라.
난타야,
네 번째 7일 동안의 자세한 설명은 앞에서와 같으며,
어머니의 태 속에는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내문(內門)이라 하는데 전생에 지은 업을 좇아 생기게 되느니라.
이 바람이 태전(胎箭)에 불어 칠 때를 건남(健南)이라 하나니 그 현상은 마치 짚신[鞋]과 같기도 하고 혹은 따뜻하게 달군 돌과도 같으며,
이 7일 동안에 네 가지 요소가 생기게 되느니라.
난타야,
다섯 번째 7일 동안의 자세한 설명은 앞에서와 같으며,
어머니의 태 속에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섭지(攝持)라 하는데 이 바람이 태에 부딪칠 때에 다섯 개의 모양이 나타나나니,
두 개의 팔과 두 개의 넓적다리와 머리가 그것이니라.
비유하면 마치 봄철에 하늘에서 단비가 내리면 나무가 울창해지고 가지와 줄기가 더욱 자라게 되는 것처럼 이것 역시 그와 같아서 다섯 가지 모양이 나타나게 되느니라.
난타야,
여섯 번째 7일 동안의 어머니의 태 속에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광대(廣大)라 하는데 이 바람이 태에 부딪치면서 네 가지 모양이 나타나게 되나니,
두 개의 팔꿈치와 두 개의 무릎이 그것이니라.
마치 봄철에 비가 내리면 싹과 풀이 가지에서 돋아나는 것처럼 이것도 그와 같아서 네 개의 모양이 나타나게 되느니라.
난타야,
일곱 번째 7일 동안에도 어머니의 태 속에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선전(旋轉)이라 하는데 이 바람이 태에 부딪치면서 네 개의 모양이 나타나게 되나니,
두 개의 손과 두 개의 다리가 그것이니라.
마치 거품 무더기와 같기도 하고 혹은 물에 있는 이끼와도 같이 네 개의 모양이 있게 되느니라.
난타야,
여덟 번째 7일 동안에도 어머니의 태 속에는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번전(翻轉)이라 하는데 이 바람이 태에 부딪치면서 스무 개의 모양이 나타나게 되나니,
손가락 열 개와 발가락 열 개가 이로부터 처음 생기느니라.
마치 새봄에 비가 오면 나무 뿌리가 생기기 시작하는 것과 같으니라.
난타야,
아홉 번째 7일 동안에도 어머니의 태 속에는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분산(分散)이라 하는데 이 바람이 태에 부딪치면서 아홉 가지의 모양이 나타나게 되나니,
두 개의 눈과 두 개의 귀와 두 개의 코와 입과 그리고 아래에 있는 두 개의 구멍이 그것이니라.
난타야,
열 번째 7일 동안에도 어머니의 태 속에는 바람이 있어서 그 이름을 견경(堅鞭)이라 하는데 이 바람이 태를 견실(堅實)하게 만들며,
또 이 7일 동안에 어머니의 태 속에는 바람이 있어서 그 이름을 보문(普門)이라 하는데 이 바람이 태 안을 불룩하게 하여 마치 부낭(浮囊)과 같게 되면서 공기를 가득히 채우느니라.
난타야,
열한 번째 7일 동안에도 어머니의 태 속에는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소통(疎通)이라 하는데 이 바람이 태에 부딪치면서 태로 하여금 환히 통하게 하여 아홉 개의 구멍이 나타나게 되느니라.
만일 어머니가 가거나 서거나 앉고 누울 때에는 그 바람이 빙빙 돌면서 빈 데로 통하여 구멍이 커지나니,
곧 그 바람이 위로 향하면 위의 구멍이 열리고 아래를 향할 때에는 곧 아래의 구멍이 통하는 것이니라.
비유하면 마치 대장장이나 그의 제자가 풀무질을 할 때에 위와 아래로 공기를 통하게 하는 것과 같나니,
바람이 제 할 일을 다하면 곧 가만히 사라지느니라.
난타야,
열두 번째 7일 동안에도 어머니의 태 속에는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곡구(曲口)라 하는데 이 바람이 태에 불면 왼편과 오른편의 대장(大腸)과 소장(小腸)을 만드는 것이 마치 연뿌리와 같나니,
이와 같은 것들은 몸에 의지하여 서로 교차되어 엉켜서 머무르게 되느니라.
그리고 이 7일 동안에 다시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천발(穿髮)이라 하는데 그것이 태 안에서 더도 덜도 없는 103개의 마디를 만들며,
다시 이 바람의 힘으로 말미암아 101개의 금처(禁處)를 만드느니라.
난타야,
열세 번째 7일 동안에도 어머니의 태 속에는 앞에서와 같은 바람의 힘으로써 배고픔과 목마름을 알게 하며,
어머니가 음식을 먹어서 생긴 모든 양분은 배꼽으로부터 들어가 그 몸을 돕게 되느니라.
난타야,
열네 번째 7일 동안에도 어머니의 태 속에는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선구(線口)라 하는데 그 바람이 태로 하여금 일천 개의 힘줄을 만들게 하나니,
몸 앞에 250개가 있고 몸 뒤에 250개가 있으며,
오른편에 250개가 있고 왼편에 250개가 있게 되느니라.
난타야,
열다섯 번째 7일 동안에도 어머니의 태 속에는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연화(蓮花)라 하는데 태의 아이에게 스무 가지의 맥(脈)이 만들어지게 되어 모든 양분을 흡수하나니,
몸 앞에 다섯 개가 있고 몸 뒤에 다섯 개가 있으며 오른편에 다섯 개가 있고 왼편에 다섯 개가 있게 되느니라.
그리고 그 맥에는 갖가지 이름과 갖가지 색깔이 있으니,
혹은 이름을 반(伴)이라 하기도 하고 역(力)이라 하기도 하고 세(勢)라고 하기도 하며,
그 색깔에는 푸르고 누르고 붉고 흰색이 있고 콩․소유(蘇油)․타락 등의 색도 있으며,
또 여러 가지 색깔이 함께 서로 뒤섞여서 된 색도 있느니라.
난타야,
그 20개의 맥에는 각각 40개씩의 맥이 권속을 이루고 있으므로 합하면 800개의 기운을 흡수하는 맥이 있나니,
몸 앞뒤와 좌우에 각각 200 개씩 있느니라.
난타야,
이 800개의 맥에도 각각 100개씩의 도맥(徒脈)으로 권속을 이루어 서로가 연결되어 있으므로 합하면 8만 개가 되나니,
앞에 2만 개가 있고 뒤에 2만 개가 있고 오른편에 2만 개가 있고 왼편에 2만 개가 있느니라.
난타야,
이 8만 개의 맥에는 또 여러 개의 많은 구멍이 있으니,
혹은 한 개의 구멍이 있기도 하고 2개의 구멍이 있기도 하며,
나아가 7개의 구멍이 있기도 한데 이 하나하나는 저마다 털구멍과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마치 연뿌리에 있는 많은 구멍과 같으니라.
난타야,
열여섯 번째 7일 동안에도 어머니의 태 속에는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감로행(甘露行)이라 하는데 이 바람이 방편을 써서 태에 있는 아이의 2개의 눈이 제자리에 박히게 하며,
이와 같이 두 귀와 두 코와 입과 목구멍과 가슴 등도 그렇게 하여 먹은 음식이 들어가 멈추고 저장되는 곳이 있게도 하고 들이쉬는 숨과 내쉬는 숨이 통과하게도 하느니라.
비유하면 마치 옹기장이나 그의 제자가 좋은 진흙 뭉치를 가져다 받침대 위에 놓고 그 만들려는 기물(器物)에 따라 형세를 벌이면서 조금도 어그러짐이 없게 하는 것처럼 이것도 업의 바람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눈 등을 만들되 그 형세에 따라 벌이면서 들이쉬는 숨과 내쉬는 숨이 통과되기에 이르기까지 역시 틀림이 없게 하느니라.
난타야,
열입곱 번째 7일 동안에도 어머니의 태 속에는 바람이 있어서 그 이름을 모불구(毛拂口)라 하는데 이 바람이 태에 있는 아이의 눈․귀․코․입․목구멍․가슴 및 음식이 들어가는 곳을 미끄럽고 윤택하게 하며,
들숨․날숨이 통하게 하는 곳도 제자리에 놓이게 하느니라.
비유하면 마치 솜씨 있는 장인(匠人)으로서 그 남자 또는 여자가 먼지가 낀 거울을 기름이나 재로써 혹은 가는 흙으로 닦고 씻어서 깨끗하게 하는 것처럼 이 업의 바람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잘 만들어져 제자리에 놓이는 것에 장애가 없느니라.
난타야,
열여덟 번째 7일 동안에도 어머니의 태 속에는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무구(無垢)라 하는데 태에 있는 아이의 여섯 감관을 깨끗하게 하느니라.
마치 해와 달을 큰 구름이 가렸을 때에 사나운 바람이 갑자기 일어나서 구름을 사방으로 흩어버리면 해와 달이 깨끗하게 되는 것처럼,
난타야,
이 업의 바람의 힘으로써 태에 있는 아이의 여섯 감관을 깨끗하게 하는 것도 이와 같으니라.
난타야,
열아홉 번째 7일 동안에도 어머니의 태 속에 있는 아이의 눈과 귀와 코와 혀의 네 가지 감관을 성취하게 하며,
어머니의 태 속에 들어갈 때에 먼저 이미 세 가지 감관은 얻었나니,
몸과 목숨과 뜻이 그것이니라.
난타야,
스무 번째 7일 동안에도 어머니의 태 속에는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견고(堅固)라 하는데 이 바람이 태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왼쪽 다리에 발가락의 마디와 스무 개의 뼈가 생기게 되고 오른쪽 다리에도 스무 개의 뼈가 생기게 되며,
발꿈치에는 네 개의 뼈가 있게 되고 발목에는 두 개의 뼈가 있게 되며,
무릎에도 두 개의 뼈가 있게 되고 볼기짝에도 두 개의 뼈가 있게 되며,
엉덩이에는 세 개의 뼈가 있게 되고 등골에는 열여덟 개의 뼈가 있게 되며,
갈비에도 스물네 개의 뼈가 있게 되느니라.
또 왼손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손가락의 마디와 스무 개의 뼈가 생기게 되고 또 오른손에 의지하여 있으면서 역시 스무 개의 뼈가 생기게 되며,
팔뚝에는 두 개의 뼈가 있게 되고 팔에는 네 개의 뼈가 있게 되며,
가슴에는 일곱 개의 뼈가 있게 되고 어깨에도 일곱 개의 뼈가 있게 되며,
목에는 네 개의 뼈가 있게 되고 턱에는 두 개의 뼈가 있게 되며,
이에는 스물두 개의 뼈가 있게 되고 해골에는 네 개의 뼈가 있게 되느니라.
난타야,
비유하면 마치 흙으로 형상을 만드는 이나 혹은 그의 제자가 먼저 단단한 나무로 그 모양을 만들고 다음에는 줄로 얽은 뒤에 진흙을 발라 그 형상을 이룩하는 것처럼,
이 업의 바람의 힘이 모든 뼈를 만들어 펴는 것도 역시 이와 같으니라.
여기서는 큰 뼈만을 세어서 200개가 있다는 것이며 나머지의 작은 뼈들은 제외되었느니라.
난타야,
스물한 번째 7일 동안에도 어머니의 태 속에는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생기(生起)라 하는데 태에 있는 아이의 몸 위에 살이 생기게 하나니,
비유하면 마치 미장이가 먼저 진흙을 잘 이긴 뒤에 담장이나 벽을 바르는 것처럼 이 바람이 살을 생기게 하는 것도 이와 같으니라.
난타야,
스물두 번째 7일 동안에도 어머니의 태 속에는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부류(浮流)라 하는데 이 바람이 태에 있는 아이의 몸에 피가 생기게 하느니라.
난타야,
스물세 번째 7일 동안에도 어머니의 태 속에는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정지(淨持)라 하는데 이 바람이 태에 있는 아이의 몸에 피부가 생기게 하느니라.
난타야,
스물네 번째 7일 동안에도 어머니의 태 속에는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자만(滋漫)이라 하는데 이 바람이 태에 있는 아이의 피부를 광택 있게 하느니라.
난타야,
스물다섯 번째 7일 동안에도 어머니의 태 속에는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지성(持城)이라 하는데 이 바람이 태에 있는 아이의 몸에 피와 살이 더욱 불어나게 하고 또한 윤택하게 하느니라.
난타야,
스물여섯 번째 7일 동안에도 어머니의 태 속에는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생성(生成)이라 하는데 태에 있는 아이의 몸에 머리칼과 털과 손발톱이 생기게 되며,
그리고 이 하나하나는 모두 맥(脈)과 서로 연결되게 하느니라.
난타야,
스물일곱 번째 7일 동안에도 어머니의 태 속에는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곡약(曲藥)이라 하는데 이 바람이 태에 있는 아이의 머리칼과 털과 손발톱이 모두 다 완성되게 하느니라.
난타야,
그 태에 있는 아이가 전생에 나쁜 업을 지었으며 간탐을 부리고 인색하였으며 모든 재물에 몹시 집착하여 보시하기를 좋아하지 않았고 부모와 스승과 어른의 말씀과 가르침을 받지 않았었다면 몸과 말과 뜻으로 지었던 착하지 않은 업이 밤낮으로 더욱 자라서 이러한 과보를 받게 되느니라.
즉 인간으로 태어나도 받게 되는 과보가 모두 마음에 맞지 않을 것이니,
만일 세간 사람들이 긴 것을 좋아하면 그 반대로 짧게 되고 짧은 것을 좋아하면 그 반대로 길게 되며,
거친 것을 좋아하면 그 반대로 가늘게 되고 가는 것을 좋아하면 그 반대로 거칠게 되며,
팔다리의 마디뼈가 가까운 것을 좋아하면 그 반대로 서로가 떨어지게 되고 서로 떨어진 것을 좋아하면 그 반대로 서로 가깝게 되느니라.
또 세간 사람들이 많은 것을 좋아하면 그 반대로 적게 되고 적은 것을 좋아하면 그 반대로 많게 되며,
살찐 것을 좋아하면 반대로 야위게 되고 야윈 것을 좋아하면 반대로 살찌게 되며,
겁내는 것을 좋아하면 반대로 용감하게 되고 용감한 것을 좋아하면 반대로 겁이 많게 되며,
흰 것을 좋아하면 반대로 검게 되고 검은 것을 좋아하면 반대로 희게 되느니라.
난타야,
또 나쁜 업으로 말미암아 얻는 나쁜 과보는 귀머거리․소경․벙어리며 어리석고 누추한 이가 되게 하고 그가 내는 음성은 사람들이 듣기를 싫어하며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마치 아귀와 같이 되므로 친족들조차 모두가 미워하여 서로 보려고도 하지 않거늘 하물며 다른 사람들이겠느냐?
그리고 모든 3업(業)으로써 남을 향해 말할 때에도 다른 이들이 믿고 듣지도 않고 뜻에 두지도 않나니,
왜냐 하면 그가 전생에 지은 모든 악업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과보를 얻기 때문이니라.
난타야,
그 태 속에 있는 아이가 전생에 복된 일을 닦고 보시를 좋아하고 간탐하지 않았으며 가난한 이들을 가엾이 여기고 모든 재물에 아끼는 마음이 없었으면 그가 지었던 착한 업이 밤낮으로 점점 자라서 마땅히 훌륭한 과보를 받을 것이니라.
즉 인간에 태어나서 얻게 되는 과보가 모두 다 마음에 맞을 것이니,
만일 세간 사람들이 긴 것을 좋아하면 길게 되고 짧은 것을 좋아하면 짧게 되며,
거칠고 가는 것도 법도에 맞고 팔다리의 마디도 적당하며,
많고 적고 살찌고 야위고 용감하고 겁이 많고 얼굴빛에 이르기까지 모두 사랑하지 않는 이가 없으며,
여섯 감관도 완전하게 갖추고 단정함이 남들보다 뛰어나며,
말씨가 분명하고 음성이 청아하며 사람의 몸매가 모두 갖추어져서 보는 이들이 기뻐하게 되느니라.
그리고 3업(業)으로 남을 향하여 말할 때에도 다른 이들이 모두 믿고 받아 공경하는 생각으로 마음에 새겨두나니,
왜냐 하면 그가 전생에 지은 모든 착한 업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과보를 얻기 때문이니라.
난타야,
태 속에 있는 아이가 만일 남자라면 어머니의 오른편 겨드랑이에 쭈그리고 앉아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어머니의 등골을 향하여 있을 것이요,
만일 여자라면 어머니의 왼편 겨드랑이에 쭈그리고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어머니의 배를 향하여 있을 것이니라.
이 아이는 생장(生藏)은 아래요 숙장(熟藏)은 위인지라 생 물건은 아래로 누르고 익은 물건은 위를 찌르므로 마치 온몸을 속박하면서 뾰족한 나무 끝에 끼워 놓은 것과 같으며,
또 어머니가 음식을 많이 먹거나 때로는 적게 먹어도 모두가 고통을 받느니라.
이와 같이 아주 기름진 음식을 먹거나 혹은 바짝 마른 음식을 먹거나 극히 차고 극히 뜨겁고 짜고 싱겁고 쓰고 신 음식을 먹거나 혹은 너무 달거나 매운 이런 음식을 먹을 적에도 모두 고통을 받게 되며,
어머니가 음욕을 행하거나 혹은 급히 가거나 달려가거나 때로는 똑바로 앉아 있거나 오래 앉아 있거나 오래 누워 있거나 또는 뛸 때에도 모두 고통을 받느니라.
난타야,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어머니의 태 속에 있을 때에는 이러한 모든 고통이 있어서 그 몸을 핍박하는 것을 이루 다 말로는 할 수 없느니라.
사람세계[人趣]에서도 이러한 고통을 받거늘 하물며 나쁜 세계[惡趣]인 지옥이겠느냐?
그 고통이야말로 비유하기조차 어려우니라.
그러므로 난타야,
지혜 있는 이라면 어느 누가 나고 죽음이 끝이 없는 괴로움의 바다에 있으면서 이런 액난(厄難)을 받기 좋아하겠느냐?
난타야,
스물여덟 번째 7일 동안에는 어머니의 태 속에 있는 아이가 문득 여덟 가지 뒤바뀐 생각을 내느니라.
어떤 것이 여덟 가지인가 하면,
집이라는 생각이요 탈 것이라는 생각이며,
동산이라는 생각이요 누각이라는 생각이며,
나무숲이라는 생각이요 평상이라는 생각이며,
강물이라는 생각이요 옷이라는 생각이 그것들이니,
실은 이런 경계가 없는데도 허망하게 분별을 일으키는 것이니라.
난타야,
스물아홉 번째 7일 동안에도 어머니의 태 속에는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화조(花條)라 하는데 이 바람이 태 안에 있는 아이에게 불어서 그 형색을 산뜻하고 깨끗하게 하기도 하며,
혹은 업의 힘 때문에 빛깔을 검게 하기도 하고 혹은 푸른빛이 되게 하기도 하고 또 갖가지로 뒤섞인 얼굴빛을 갖게 하기도 하고,
혹은 바짝 말라서 윤기가 없게 하기도 하며 흰 빛과 검은 빛이 그 색깔에 따라 나오게 하기도 하느니라.
난타야,
서른 번째 7일 동안에도 어머니의 태 속에는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철구(鐵口)라 하는데 이 바람이 태 속에 있는 아이에게 불어서 머리칼과 손발톱을 자라게 하나니,
희고 검고 한 모든 빛은 모두가 업에 따라 나타나는데 위에서의 설명과 같으니라.
난타야,
서른한 번째 7일 동안에는 어머니의 태 속에 있는 아이가 점차로 커지며,
이와 같이 서른두 번째 7일 동안과 서른세 번째 7일 동안과 서른네 번째 7일 동안에는 더욱더 자라고 커지느니라.
난타야,
서른다섯 번째 7일 동안에는 아이가 어머니의 태 속에서 팔다리가 완전하게 갖추어지느니라.
난타야,
서른여섯 번째 7일 동안에는 그 아이가 어머니의 태 속에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게 되느니라.
난타야,
서른일곱 번째 7일 동안에는 어머니의 태 속에서 아이가 세 가지 뒤바뀌지 않는 생각을 내게 되나니,
깨끗하지 못하다는 생각이요,
냄새나고 더럽다는 생각이며,
검고 어둡다는 생각이 그것이니라.
이것은 일부분에 의지하는 설명이니라.
난타야,
서른여덟 번째 7일 동안에도 어머니의 태 속에는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남화(藍花)라 하는데 이 바람이 태 속에 있는 아이로 하여금 몸을 움직여 아래를 향하면서 두 팔을 길게 펴고 산문(産門)을 향해 나아가게 하며,
그 다음에 또 바람이 있으니,
그 이름을 취하(趣下)라 하는데 업의 힘 때문에 이 바람이 태 속의 아이에게 불어서 머리를 아래로 향하고 두 다리를 위로 향하면서 장차 산문으로 나오려고 하느니라.
난타야,
만일 그 태에 있는 아이가 전생 몸으로 수많은 나쁜 업을 지었거나 남에게 낙태(落胎)를 하게 하였다면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장차 나오려 할 때에 손과 다리가 멋대로 놓이고 움직여지지 않아 곧 어머니의 뱃속에서 죽게 되느니라.
그때 어떤 지혜 있는 여인이나 용한 의사가 따뜻한 소유(蘇油)나 혹은 느릅나무 껍질 즙이나 혹은 그 밖의 미끄러운 물질을 그의 손위에다 바르고 곧 날카롭고 창 끝 같은 얇은 칼을 가운데 손가락에 끼고,
저 속이 마치 똥누는 뒷간 같고 캄캄하고 더러운 냄새가 나는 나쁜 구덩이요 한량없는 벌레가 살고 있으며,
냄새나는 즙이 늘 줄줄 흐르고 정기와 피가 썩어서 몹시 싫증이 나며,
나쁜 업으로 된 부스럼 같은 것이 얇은 가죽에 싸여 있는 저 더러운 데에 손을 밀어 넣어서 날카로운 칼로써 그 아이 몸을 조각조각 저미어 끊으면서 빼내는 것이므로 그 어머니는 이로 말미암아 마음에 달갑지 않은 극심한 고통을 받으면서 이로 인하여 죽게도 되며 설령 산다 해도 죽는 것과 다름이 없게 되느니라.
난타야,
만일 저 태 속에 있는 아이가 착한 업이 감응하여 생기게 되었다면 가령 뒤바뀐다 해도 그의 어머니를 손상하지도 않고 안온하게 출생하며 모진 고통은 받지 않게 되느니라.
난타야,
설령 예사로운 일로서 이런 재액이 없다 해도 서른여덟 번째 7일이 되어 출산하려 할 때면 그 어머니는 큰 고통을 받게 되어 생명이 거의 죽을 뻔하여야 비로소 태에서 나오게 되느니라.
난타야,
너는 자세히 살펴야 하며 장차 이런 일에서 벗어나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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