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에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 기사굴산(耆闍崛山)1)에서 대비구 대중 1,250명과 만여 명의 보살과 함께 계셨다.
그 보살들의 이름은 지당(智幢)보살ㆍ법당(法幢)보살ㆍ월당(月幢)보살ㆍ일당(日幢)보살ㆍ무량당(無量幢)보살ㆍ발타바라(跋陀波羅) 등의 16정사(正士)2)였고,
문수사리(文殊師利)보살 등의 6천여 명과 미륵보살 그리고 현겁(賢劫)의 일체 보리살타(菩提薩埵)와 뜻을 같이 하셨다.
그 때 무진지(無盡智)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의복을 단정히 하고,
오른쪽 어깨를 벗어 메고,
오른쪽 무릎을 꿇고,
여러 가지 보배의 꽃을 부처님을 향하여 뿌리면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쭐 것이 있습니다.
오직 원컨대 열어 보여 해설해 주십시오.”
이때 세존께서 무진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선남자야,
만약 의심나거나 물을 것이 있으면 네 생각대로 질문하도록 하라.
여래가 마땅히 너의 질문에 따라 해설하여 너를 기쁘게 해 주리라.”
그 때에 무진지보리살타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는 보리심(菩提心)이라고 하셨는데,
세존께서 말씀하신 보리심이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알 수 있습니까?
보리살타는 어떻게 해야 보리심을 성취할 수 있습니까?
어떤 것이 보리심이 되며,
또한 어떤 것이 보리심이 없는 것이 됩니까?
보리살타가 얻을 수는 없으나 또한 보리를 여의지도 아니한 것을 보리심이라고 합니까?
보리라는 것은 또한 말할 수도 없고 볼 수 없고 대상도 없는 것입니까?
보살이 얻을 수 없다면 어떻게 이 모든 법을 깨달아 알 수가 있겠습니까?”
● 보리와 보리심의 정체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보리라고 하는 것은 대개 말에 불과하며 세속적인 생각이고 방편인 것이다.
선남자야,
보리라고 하는 것은 말도 아니며 세속적인 생각도 아니고 방편도 아니니라.
선남자야,
만약 보리가 말이 아니라면,
보리살타가 마음으로 일체법에 이를지라도 또한 이와 같을 것이니,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또한 만약 이와 같은 마음을 보리심이라고 한다면 보리라고 하는 것 역시 과거ㆍ미래ㆍ현재가 아니며,
아른바 보리살타의 마음 또한 과거ㆍ미래ㆍ현재도 아닌 것이니라.
만약 이와 같이 안다면 보리살타는 얻을 수 없으며,
다른 곳에서도 모두 얻을 수가 없나니,
일체법에 대해서 얻은 것이 없는 것을 얻었을 때에야 보리심을 얻었다고 하느니라.
저 아라한(阿羅漢)이나 아라한과(阿羅漢果)도 역시 얻을 수 없으며,
그들도 모두 얻은 바가 없느니라.
다만 이것은 세속적인 생각이나 말에 불과할 뿐이며,
일체법에 대해서도 얻을 바가 없나니,
이것을 보리심이라고 이름하느니라.
또한 처음 발심한 보리살타의 도의(度義)를 보리살타라고 부르는 것도 아니며 저 마음도 아니고 방편으로 마음을 시설(施設)한 것도 아니며,
중생도 아니고 방편으로 중생을 시설한 것도 아니며,
성문도 아니고 방편으로 성문을 시설한 것도 아니며,
벽지불도 아니고 방편으로 벽지불을 시설한 것도 아니며,
보리살타도 아니고 방편으로 보리살타를 시설한 것도 아니며,
유위도 아니고 방편으로 유위법을 시설한 것도 아니며,
무위도 아니고 방편으로 시설한 무위법도 아니다.
보리심은 얻을 수 없고 이미 얻었으며 반드시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다만 부처님의 설법을 믿고 실천하기 때문이며,
일체 선근(善根) 등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초발심은 보시바라밀[檀波羅蜜] 의 실천으로 인한 것이니,
이것은 마치 대지가 일체를 소지하고 있는 것과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제2심(第二心)을 일으키는 것은 지계바라밀[尸波羅蜜] 의 실천으로 인한 것이나,
이것은 마치 사자가 뭇 짐승의 왕으로서 용맹을 떨치는 것과 같은 것임을 알아야 한다.
제3심을 일으키는 것은 인욕바라밀[羼提波羅蜜] 의 실천으로 인한 것이니,
마치 나라연(那羅延:
天上의 力士)의 용맹스러운 큰 방편과 같은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제4심을 일으키는 것은 모든 번뇌의 도적을 꺾어 항복받는 것이니,
이것은 정진바라밀[毘梨耶波羅蜜] 의 실천으로 인하여 갖가지 선근 공덕의 꽃이 열린 것과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제5심을 일으키는 것은 비유하면 제석천[天帝釋] 의 대회상(大會上)에 있는 구비타라수(拘毘陀羅樹)3)와 같나니,
이것은 선정바라밀[禪那波羅蜜] 의 실천으로 인한 것으로 마치 태양의 한량없는 빛이 비치는 것과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제6심을 일으키는 것은 다 능히 일체 어두움을 제멸(除滅)하는 것이니,
이것은 지혜바라밀[般若波羅蜜] 의 실천으로 인한 것으로 마치 본원공덕(本願功德)이 널리 나투어 장엄하는 것과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제7심이 일어나는 것은,
마치 한 상인이 모든 상인들의 대장이 되어서 능히 광야를 건너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이것은 방편바라밀(方便波羅蜜)의 실천으로 인한 것으로 모든 과오를 맑게 없애고,
하고자 하는 바를 뜻과 같이 하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제8심이 일어나는 것은 만족하고 밝고 깨끗하기가 마치 가을 하늘의 달이 원하는 곳마다 두루 비치는 것과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제9심이 일어나는 것은 모든 지은 것을 다 그쳐 쉬게 하는 것이니,
마치 가난한 사람이 무진보장(無盡寶藏)을 얻은 것과 같고 허공이 티끌을 여의고 맑게 빛나는 것과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제10심이 일어나는 것은 구경인 일체공덕으로서 이니,
피안의 지혜변재(智慧辯才)와 다함없는 온갖 법의 주인이 마치 전륜왕과 같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img2-49] [그림]
- 이하 아래 부분은 현재 [작성, / 표현교정, 수정, 보완/ 문단 재배치 순서 정리 등 ] 작업중입니다. -
작업 시점 2563_0613_215520
이와 같이 선남자야,
이 열 가지 마음을 성취한 사람을 보리살타(菩提薩埵:
깨달은 보살)ㆍ마하살타(摩訶薩埵:
위대한 보살)ㆍ제일살타(第一薩埵:
제일의 보살)ㆍ최상살타(最上薩埵:
최상의 보살)ㆍ이죄살타(離罪薩埵:
죄를 여읜 보살),
최존살타(最尊薩埵 : 가장 존귀한 보살)이라 한다.
그러나 선남자야,
보리살타의 마음은 최고의 법[眞理] 이기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라.
선남자야,
보리살타가 제1심을 일으키는 것은 진리의 세계에서 삼마제(三摩提:
三昧)를 일으켜 마음을 섭취해서 보리살타를 내는 것이고,
보리살타가 제2심을 일으키는 것은 부동(不動)삼마제로 마음을 섭취하는 것이며,
제3심을 일으키는 것은 선주삼마제(善住三摩提:
잘 안정된 삼매)로 마음을 섭취하는 것이고 제4심을 일으키는 것은 불퇴전삼마제(不退轉三摩提:
修行이 뒤로 물러나지 않는 삼매)로 마음을 섭취하는 것이며,
제5심을 일으키는 것은 집화(集華)삼마제로 마음을 섭취하는 것이고,
제6심을 일으키는 것은 일광(日光)삼마제로 마음을 섭취하는 것이며,
제7심을 일으키는 것은 의만족(義滿足)삼마제로 마음을 섭취하는 것이고,
제8심을 일으키는 것은 혜거(慧炬) 삼마제로 마음을 섭취하는 것이며,
제9심을 일으키는 것은 불견재전삼마제(佛見在前三摩提:
부처님께서 앞에 나타난 삼매)로 마음을 섭취하는 것이고,
제10심을 일으키는 것은 수능엄(首楞嚴)삼마제로 마음을 섭취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초지(初地) 보살은 먼저 아름다운 상서[嘉瑞] 를 보고 삼천대천(三千大千) 불국토(佛國土)의 억백천의 진기한 보배를 다 경계에 나타내는 것이고,
제2지 보살은 먼저 아름다운 상서를 보고 삼천대천 불국토가 평탄하기가 마치 수면[水掌] 과 같이 모든 경계를 다 나타내는 것이며,
제3지 보살은 먼저 아름다운 상서를 보고 용맹스럽고 강건하게 손으로 병장기를 잡고 모든 경계에 나타나는 것이고,
제4지 보살은 먼저 아름다운 상서를 보고 만다라(曼陀羅)의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와서 갖가지 꽃을 날려 널리 대지에 뿌리는 것으로 모든 경계에 나타나는 것이며,
제5지 보살은 먼저 아름다운 상서를 보고 일체 여인이 장신구로 장식하고 첨복화만(瞻蔔華鬘)ㆍ해탈화만(解脫華鬘)ㆍ우발라화만(憂鉢羅華鬘)ㆍ파리사화만(婆利師華鬘)으로 머리를 장엄하여 모든 경계에 나타나는 것이고,
제6지 보살은 먼저 아름다운 상서를 보고 많은 보배의 연못과 여덟 가지 공덕수[八功德水] 로 그 가운데에 가득 채우고 사계(四階:
소승 보살이 도과를 얻어 성불하는 순서를 네 계단으로 분별한 것)의 길에 금모래를 깔아 깨끗하고 맑아져 자신의 몸이 그 가운데에 유희함을 경계에 나타내는 것이며,
제7지 보살은 먼저 아름다운 상서를 보고 좌우에 큰 지옥의 고초가 혹독한데 스스로 자기의 몸이 지옥의 고난에서 벗어났음을 아나니,
이것을 모든 경계에 나타내는 것이고,
제8지 보살은 먼저 아름다운 상서를 보고 자기의 두 어깨에 사자수왕(師子獸王)이 머리에 비단으로 관을 하고 몸은 웅장하여 일체의 독해와 모든 악한 짐승을 항복받는 것을 모든 경계에 나타내는 것이며,
제9지 보살은 먼저 아름다운 상서를 보고 전륜성왕과 대신 및 왕족의 많은 권속들이 법으로써 일체 중생들을 교화하여 인도하고 손에 증개(繒蓋:
비단 일산)를 잡고 백천 가지 많은 보배로 머리를 장엄하여 모든 경계에 나타내는 것이고,
제10지 보살은 먼저 아름다운 상서를 보고 스스로 부처님 몸에 황금의 원만한 빛이 한 길이나 되며 억백천 범천(梵天)들에 둘러싸여 설법하는 것을 보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이것이 보리살타의 10지(地)에 오르기 전의 모습이니,
다 10지와 삼매에서 나온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리살타가 처음 발심해서 최승처다라니(最勝處陀羅尼)를 얻고,
제2지에서 난복(難伏)다라니를 얻으며,
제3지에서 선주(善住)다라니를 얻고,
제4지에서 난당(難當)다라니를 얻으며,
제5지에서 공덕화보집장엄(功德華普集莊嚴)다라니를 얻는데,
제6지에서 지광명(智光明)다라니를 얻고,
제7지에서 승취(勝趣)다라니를 얻고 제8지에서 8만 4천 다라니를 얻는데,
징정사(澄靖司)다라니가 으뜸이 되며,
제9지에서 60나유타(那由他) 다라니를 얻는데,
무진(無盡)다라니가 으뜸이 되며,
제10지에서 항하사(恒河沙) 다라니를 얻는데 무량(無量)다라니를 내는 것으로 으뜸이 되나니,
이것이 보라살타의 10지 다라니가 되느니라.
또한 선남자야,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처음 발심한 보살이 보시바라밀을 구족하며,
제2지 보살이 지계바라밀을 구족하며,
제3지 보살이 인욕바라밀을 구족하며,
제4지 보살이 정진바라밀을 구족하며,
제5지 보살이 선정바라밀을 구족하며,
제6지 보살이 지혜바라밀을 구족하며,
제7지 보살이 방편바라밀을 구족하며,
제8지 보살이 원(願)바라밀을 구족하며,
제9지 보살이 역(力)바라밀을 구족하며,
제10지 보살이 지(智)바라밀을 구족하나니,
이와 같은 10지 바라밀을 10지 가운데에서 다 성취하느니라.
또한 선남자야,
열 가지의 보시[檀] 바라밀이 있나니,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신근(信根)이 보시바라밀의 으뜸이 되고,
삼마제가 보시바라밀의 으뜸이 되며,
대자(大慈)가 보시바라밀의 으뜸이 되고,
대비(大悲)가 보시바라밀의 으뜸이 되며,
진리를 추구하는 마음[深心] 으로 희망하는 것이 보시바라밀의 으뜸이 되고,
일체지(一切智)가 보시바라밀의 으뜸이 되며,
중생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보시바라밀의 으뜸이 되고,
4섭법(攝法:
布施ㆍ愛語ㆍ利行ㆍ同事)이 보시바라밀의 으뜸이 되며,
정법(正法)을 호지하는 것이 보시바라밀의 으뜸이 되며,
불법(佛法)을 즐거이 구하는 것이 보시바라밀의 으뜸이 되느니라.
또 열 가지의 지계[尸羅] 바라밀이 있나니,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8난(難:
地獄ㆍ畜生ㆍ餓鬼ㆍ長壽天ㆍ鬱檀越ㆍ聾盲瘖ㆍ佛前佛後ㆍ世智辯聰)을 여의는 것이 지계바라밀의 으뜸이 되고,
불법을 건립하는 것이 지계바라밀의 으뜸이 되며,
성문(聲聞)과 벽지불(辟支佛)의 경지를 초월하는 것이 지계바라밀의 으뜸이 되고,
신업(身業)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 지계바라밀의 으뜸이 되며,
구업(口業)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 지계바라밀의 으뜸이 되고,
의업(意業)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 지계바라밀의 으뜸이 되며,
마음을 장엄하는 것이 지계바라밀의 으뜸이 되고,
중생[人]
세계가 청정한 것이 지계바라밀의 으뜸이 되며,
일체의 원(願)으로 만족을 구하는 것이 지계바라밀의 으뜸이 되고,
해롭게 하지 않는 것이 지계바라밀의 으뜸이 되느니라.
다시 또 열 가지의 인욕[羼提] 바라밀이 있나니,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참는 힘이 인욕바라밀의 으뜸이 되고,
중생을 성숙시키는 것이 인욕바라밀의 으뜸이 되며,
불법의 참된 뜻을 아는 것이 인욕바라밀의 으뜸이 되고,
법인(法忍)을 깊이 믿는 것이 인욕바라밀의 으뜸이 되며,
번뇌를 끊는 것이 인욕바라밀의 으뜸이 되고,
성냄[瞋恚] 을 여의는 것이 인욕바라밀의 으뜸이 되며,
몸을 헤아려 공교히 하지 않는 것이 인욕바라밀의 으뜸이 되고,
목숨[命] 을 헤아려 공교히 하지 않는 것이 인욕바라밀의 으뜸이 되며,
모든 무지(無智)를 끊는 것이 인욕바라밀의 으뜸이 되고,
모든 법을 평등이 관하는 것이 인욕바라밀의 으뜸이 되느니라.
다시 또 열 가지의 정진[毘梨耶] 바라밀이 있나니,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정진의 근본이 정진바라밀의 으뜸이 되고,
정진의 힘이 정진바라밀의 으뜸이 되며,
여러 가지 방편이 정진바라밀의 으뜸이 되고,
4념처(念處:
身ㆍ受ㆍ心ㆍ法)가 정진바라밀의 으뜸이 되며,
일체 중생을 대신하여 몸으로 짓는 것이 정진바라밀의 으뜸이 되고,
일체 중생을 수순하여 구업(口業)과 의업(意業)을 전(轉)하여 반연하는 것이 정진바라밀의 으뜸이 되며,
불퇴전(不退轉)이 정진바라밀의 으뜸이 되고,
최상으로 정근(精勤)하는 것이 정진바라밀의 으뜸이 되며,
일체 번뇌를 조복(調伏)받는 것이 정진바라밀의 으뜸이 되고,
일체지(一切智)의 지혜가 정진바라밀의 으뜸이 되느니라.
다시 또 열 가지의 선정[禪] 바라밀이 있나니,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정근(定根 : 선정의 작용)이 선정바라밀의 으뜸이 되고,
정력(定力 : 선정의 힘)이 선정바라밀의 으뜸이 되고,
등정(等定 : 한결같은 선정)이 선정바라밀의 으뜸이 되고,
모든 선정의 해탈이 선정바라밀의 으뜸이 되며,
선법(善法)이 선정바라밀의 으뜸이 되고,
시처(是處)가 선정바라밀의 으뜸이 되며,
산란하지 않는 것이 선정바라밀의 으뜸이 되고,
비처(非處)가 선정바라밀의 으뜸이 되며,
일체의 번뇌[結使] 를 끊는 것[害] 이 선정바라밀의 으뜸이 되고 몸을 안정하여 만족하는 것이 선정바라밀의 으뜸이 되느니라.
다시 또 열 가지 지혜[般若] 바라밀이 있나니,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혜근(慧根:
지혜의 작용)이 지혜바라밀의 으뜸이 되고,
혜력(慧力:
지혜의 힘)이 지혜바라밀의 으뜸이 되며,
정견(正見)이 지혜바라밀의 으뜸이 되고,
정념(正念)이 지혜바라밀의 으뜸이 되며,
5음(陰)의 공교한 방편이 지혜바라밀의 으뜸이 되고,
18계(界)와 6입(入)을 관찰하는 것이 지혜바라밀의 으뜸이 되며,
성스러운 진리가 지혜바라밀의 으뜸이 되고,
장애가 없는 것이 지혜바라밀의 으뜸이 되며,
일체 망견(妄見)을 없애는 것이 지혜바라밀의 으뜸이 되고,
무생법인(無生法忍)4)이 지혜바라밀의 으뜸이 되느니라.
다시 또 열 가지 방편지(方便智)바라밀이 있나니,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중생이 희망하는 방편행이 방편바라밀의 으뜸이 되고,
중생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방편바라밀의 으뜸이 되며,
대비(大悲)가 방편바라밀의 으뜸이 되고,
중생을 교화함에 게으르지 않는 것이 방편바라밀의 으뜸이 되며,
성문ㆍ벽지불의 경지를 초월하는 것이 방편바라밀의 으뜸이 되고,
모든 바라밀을 깨닫는 것이 방편바라밀의 으뜸이 되며,
제법(諸法)을 여실하게 관찰하는 것이 방편바라밀의 으뜸이 되고,
불가사의한 힘이 방편바라밀의 으뜸이 되며,
불퇴전(不退轉)하는 것이 방편바라밀의 으뜸이 되고,
많은 마군을 항복받는 것이 방편바라밀의 으뜸이 되느니라.
어떤 것이 바라밀의 정신[義] 인가?
수행함에 더욱 정진하고 그 뜻에 만족하는 것이 바라밀의 정신이고,
수승하고 미묘한 지혜에 만족하는 것이 바라밀의 정신이며,
유위법(有爲法)과 무위법(無爲法)에 집착하지 않는 그 뜻이 바라밀의 정신이고,
생사(生死)의 잘못됨을 깨닫는 그 뜻이 바라밀의 정신이며,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는 것이 바라밀의 정신이고,
일체의 다함이 없는 법장(法藏)을 열어 보이는 그 뜻이 바라밀의 정신이며,
간단(間斷)없고 걸림 없는 해탈을 구족하는 그 뜻이 바라밀의 정신이고,
평등하게 보시하는 것을 깨닫는 그 뜻이 바라밀의 정신이며,
계율을 잘 지키고[持戒]
정진하는 일심의 지혜를 평등하게 깨닫는 그 뜻이 바라밀의 정신이고,
완전한 선교(善巧)방편의 그 뜻이 바라밀의 정신이며,
일체 중생의 법성(法性)을 아는 그 뜻이 바라밀의 정신이고,
무생법인(無生法忍)을 만족하는 그 뜻이 바라밀의 정신이며,
보살의 지위(地位)에 만족하여 물러서지 아니하는 그 뜻이 바라밀의 정신이고,
불국토를 깨끗이 장엄하는 그 뜻이 바라밀의 정신이며,
중생들을 성숙케 하는 그 뜻이 바라밀의 정신이고,
깨달음의 도량을 구족케 하는 그 뜻이 바라밀의 정신이며,
많은 마군을 항복받는 그 뜻이 바라밀의 정신이고 일체의 불법을 만족하는 것이 바라밀의 정신이며,
10력(力:
보살에게 구족된 열 가지 지혜의 힘)과,
4무소외(無所畏:
불ㆍ보살이 설법할 때에 두려운 생각이 없는 네 가지 지혜의 힘)와,
18불공법(不共法:
부처님만이 지니고 있는 열여덟 가지 공덕)을 만족하는 그 뜻이 바라밀의 정신이고,
일체의 법을 섭취하여 중생을 교화하는 그 뜻이 바라밀의 정신이며,
삼전십이행(三轉十二行)5)의 법을 펴는 그 뜻이 바라밀의 정신이다.”
이 때에 법회 가운데 있던 사자당무애광요(師子幢無㝵光耀)라는 사람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신기하고 특이합니다.
이 이름이 일체 구족이며,
구경(究竟)의 일체 불법 공덕입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그러하니라.
여러 하늘에 선남자 선여인이 이 법을 듣고 잊지 않고 바르게 생각하는 자가 있으면 그가 바로 아유월치(阿惟越致:
不退轉) 보리살타이니라.
왜냐 하면 천자(天子)야,
이 선남자 선여인은 선근(善根)이 성숙하였기 때문에 이근(耳根)으로 이 경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니라.
일체의 선근이 성숙되었기 때문에 이 경을 듣고 깨닫게 된 것이며,
마침내 진실관(眞實觀)을 여의지 않고 여러 불세존을 여의지 않으며,
모든 불법을 여의지 않고,
전법륜(轉法輪)을 여의지 않으며,
해인다라니(海印陀羅尼)를 여의지 않고,
무진다라니(無盡陀羅尼)를 여의지 않으며,
변입중생행(遍入衆生行)다라니를 여의지 않고,
무진광일당(無盡光日幢)다라니를 여의지 않으며,
월무구상(月無垢相)다라니를 여의지 않고,
무구등기상(無垢等起相)다라니를 여의지 않느니라.
만약 보살이 이러한 다라니를 얻는다면 모두 다 일시에 몸을 바꾸어 부처가 될 수 있으며,
두루 시방에 가득한 중생을 교화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일체의 모든 법에서도 죽지 않고 멀어지지도 아니하면서도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케 할 것이니라.
그러나 그러한 중생 역시 얻을 수는 없는 것이고 모든 문자들로 설법하고 교화하는 것도 또한 얻을 수가 없나니,
죽고 나는 것과 또한 나지 아니하는 것도 나타내 보여 제법이 평등하여 가고 오는 것이 없고 또한 지음도 짓지 아니하는 것도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니라.”
이 법을 말씀하실 적에 3천의 보살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
“또 다시 천자야,
만약 이 법을 찬탄하고 외워 지니는 자는 마침내 일체의 번뇌하게 하는 다라니를 여의지 않고,
금강처럼 견고하고 일체의 번뇌산을 깨뜨리는 다라니를 여의지 아니하며,
마침내 무언(無言)을 말하여 널리 여러 바라밀을 깨닫는 다라니를 여의지 않고,
마침내 여러 가지 다른 명구(名句)의 온갖 말로써 능히 말하는 다라니를 여의지 아니하며,
허공처럼 티끌을 여의고 무진인(無盡印)을 생겨나게 하는 다라니를 여의지 않고 무량한 불신(佛身)을 성취하여 일체의 생명을 무진케 하는 다라니를 여의지 아니하느니라.”
이 법을 설할 적에 한량없는 중생이 모두 무생법인을 얻었고,
한량없는 중생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을 일으켰다.
부처님께서 이 법을 말씀하실 때 무진지(無盡智)보살과 사자당무애광요천자와 여러 큰 성문과 천인과 아수라가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모두가 큰 환희심을 일으켰다.
---------
1 범어 Grdhrakuta 또는 기사다.
영취산(靈鷲山)이라 번역.
줄여서 영산(靈山).
중인도 마갈타국 왕사성의 동북쪽에 솟아 있으며,
석존께서 설법하시던 곳으로 이름난 산.
2 보살을 말함.
극미한 집착과 삿된 소견을 여의고 바른 법리를 보는 이라는 뜻.
3 범어로는 Kovidara,
흑단(黑檀)나무의 하나.
의역하면 지파수(地破樹).
나무의 크기는 매우 높고 크며 형상은 수려하고 나뭇잎이 번성하며 오래도록 마르지 아니하고 일체 비바람의 해를 입지 않는다고 함.
4 불생불멸(不生不滅)하는 진여법성(眞如法性)을 인지(認知)하고,
거기에 안주하여 움직이지 않는 것.
5 석존께서 세 번 사성제의 가르침을 설한 것.
시전(示轉),
권전(勸轉),
증전(證轉)의 세 가지로 4성제(聖諦)의 법을 설한 것.
● [pt op tr] fr
○ [pt op tr] mus0fl--Jeanne Moreau - Le Vrai Scandale C'est La Mort.lrc
Lab value 불기2563/06/13/목/18:42
● 얻은 것이 없는 것을 얻었을 때는 얻은 것인가 얻지 못한 것인가.
『불설대방광보살십지경』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만약 이와 같이 안다면 보리살타는 얻을 수 없으며,
다른 곳에서도 모두 얻을 수가 없나니,
일체법에 대해서 얻은 것이 없는 것을 얻었을 때에야 보리심을 얻었다고 하느니라.
그래서 얻은 것이 없는 것을 얻었을 때는 얻은 것인가 얻지 못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얻은 것이 없는 것을 얻었을 때 무언가를 얻지 못한다고 한다면, 범부와 아라한과 연각과 보살과 부처님은 하등 차별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또 얻은 것이 없는 것을 얻었을 때 무언가를 얻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얻을 것이 실답게 영원불변한 본체로서 있다고 하므로 본래 범부가 수행해서 아라한이나 연각이나 보살 부처님도 될 수 없는 한편, 범부나 아라한 연각 보살 부처님은 본 바탕에서 차별을 얻을 수도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한다. 그것은 부처님이 가르치시는 가르침의 본 핵심과 어긋나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런 모든 분별은 이미 이 구절 앞에서 제시한 것처럼 그런 사정에 놓여 있는 것이다.
『불설대방광보살십지경』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
보리라고 하는 것은 대개 말에 불과하며 세속적인 생각이고 방편인 것이다.
선남자야,
보리라고 하는 것은 말도 아니며 세속적인 생각도 아니고 방편도 아니니라.
...
왜 연이어 서로 모순되고 반대되는 표현을 경전에서 사용한 것인가. 그리고 왜 얻은 것이 없는 것을 얻는 것을 보리심을 얻었다고 이해하기 힘든 표현으로 제시하는가.
이 사정을 이해하려면 일반적으로 현실에서 무언가 있다거나 없다고 하는 표현을 사용할 때 그 말로 나타내는 의미가 무언가부터 차근차근 잘 생각해야 한다.
관련된 내용을 자세히 적은 부분도 있지만, 간단히 적으면 다음과 같다.
각 영역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얻는다고 가정하자.
● -○ -▼ -▽ -▲
이 상황에서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감각현실 영역에서 ▽ 라는 내용을 얻고 그에 바탕해 분별영역에서 그 부분이 ▲ 라고 생각을 하게 되면 ▽ 라는 내용을 얻고 그런 생각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 라는 내용을 얻는 영역이나 ▽ 부분에 ▲ 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이 일반인이 생사현실에서 일으키는 망집현상이다.
그리고 아라한 연각 보살 부처님등과 같은 경우는 생사현실에서 수행을 통해 그런 각 영역에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이 말은 현실에서 얻는 것은 ● -○ -▼ -▽ -▲ 이런 것이라면 그런 것 뿐이고 ● -○ -▼ -▽ 을 얻는 영역에 ▲ 과 같은 내용은 얻을 수 없음을 깨닫고 이해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중생을 제도하는 입장에서는 다시 일반인들이 ▽ 을 감각현실 영역에서 얻고 ▲ 과 같은 분별을 일으키면 그 상황에서 ▽ 에 ▲ 이 있다고 여기면서 현실에 임하는 그런 상태에 눈 높이를 맞추어서 그 생사현실에 들어가 그런 상태의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가르침을 베푸는 입장이다.
그래서 그런 입장에서는 또 ▲가 같은 상태가 있다고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알고보면 그것은 말 뿐이라고 제시하게 되는 내용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런 상태에서 생사고통을 겪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행하는 언어시설이고 세속적인 생각이고 방편이고 그래서 강을 건너기 위해 사용하는 임시방편인 뗏목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 상황은 알고보면 ● -○ -▼ -▽ -▲이런 내용을 얻는 것 뿐이고 ▲ 은 다른 영역에서 얻을 수 없는 것임을 제시하는것이다.
다른 부분도 이와 사정이 마찬가지다. 가리키고자 하는 상태는 예를 들어 본 바탕인 실재의 ● 과 같은 내용인데 그것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한 방편은 ▲ 이다. 그래서 위와 같이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있다 없다와 관련된 자세한 논의는 다음 부분에 모아 정리해가고 있다.
참고
■■■
○있고 없음의 일반적 판단문제
http://buddhism007.tistory.com/3483#069
sfed--금강삼매경론_K1501_T1730.txt ☞○있고 없음의 일반적 판단문제
sfd8--불교단상_2562_08.txt ☞○있고 없음의 일반적 판단문제
----
●
dict-list--editing_text.TXT
출처: http://buddhism007.tistory.com/entry/마음-현상의-이해#gsc.tab=0
[불교진리와실천]
○ 마음현상에 대한 논의 - 전체 내용
개인적으로 일반적인 입장에서 이해하기 쉽게 내용이 정리되면 본인이 가입해 활동하는 SNS 등에 올리기도 하는데 한번에 한 30 곳 이상을 올리기도 한다.
그런데 아무리 쉽게 풀어서 적어도 다시 읽어보면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최근에 『회쟁론』 내용부분을 정리하면서 실답지 않은 현실을 실답게 잘못 여겨 망집을 일으키게 되는 사정을 정리한 다음 SNS 등에 올렸는데 공교롭게 그 이후로 발이 많이 아프다.
그리고 쉬면서 노래를 듣다보니, 목장 주인과 목장에 갇힌 소가 있다고 할 때 함부로 소를 구출해 내려고 하면, 목장 주인이 불쾌하게 여겨서 무언가 조치를 취한다는 사정을 떠올리게 된다. 더 나아가 그 목장에서 그간 편하게 보호받고 지내던 소도 소대로 어리둥절하게 여기거나 불편하게 여기게 된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늘 목장 주인부터 잘 천도해서 욕계 이상의 하늘에 안착시키는 것이 구출의 순서라고 보게 된다.
서부 텍사스에서 이렇게 함부로 임하면 바로 목장 주인에게 총을 맞기도 쉬운 것이 생사현실이기도 하다.
그래서 좀 안타깝더라도 우선 여유가 있는 목장 주인부터 더 좋은 성으로 안내한 다음 그 다음 사정을 보아가면서 우리 안에 갇혀 정신없이 갇혀 지내는 축생을 구출하고 보호하는 것이 좋다고 보게 된다. 그것이 또 욕계에서 중생제도에 임하는 수행자가 욕계에서 수행하고 중생제도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잘못 임하면 그 어느 일방을 압박해서 해결사처럼 문제를 해결하려고 임하기 쉽다. 매에 쫒기는 비둘기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살을 발라낸 전생의 석가모니 부처님 사례가 제시하듯, 사실은 상당히 힘든 문제다. 그런데 일방적으로 비둘기만 생각하고 비둘기를 음식으로 삼아 살아가는 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으면, 잘못하면 꿩새끼를 구한다고 뱀을 죽여서 자신까지 생명이 위협받는 치악산의 한 어리석은 선비처럼 되기 쉽다. 알고보면 그냥 방치하고 두는 것보다 희생 총계가 더 크다. 일반적으로 해결사처럼 현실에 임하면 당장은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대부분 위와 같은 어리석은 선비가 꿩을 구출한다는 경우처럼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
구해준 꿩도 결국 자신을 구해준 선비를 다시 구하느라 종에 머리를 부딛혀 죽고 뱀은 뱀대로 죽고 선비 자신은 선비 자신대로 생사를 오락가락하는 상태에 처하게 된다.
그래서 그렇게 임하지 말라고 반면교사의 내용으로 전해지는 치악산의 고사는 그러나 잘못 생각하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잘못 교훈을 받는 경우도 많다.
앞으로 SNS 에 글을 올릴 때는 전후 사정을 잘 살피고 불교 관련 내용을 소개해야 한다고 보게 된다.
우선 글 내용 자체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경우도 드물다. 더 나아가 또 앞과 같은 부작용도 함께 받는 것이다. 어느 일방만 편들고 문제를 해결했다고 좋아하는 것은 결국 어리석은 수행자의 짧은 견해이기도 한 것이다.
경전코너에서경전관련한 내용은 경전 관련 페이지에 백업관리되고 경전코너 조각글상자안의 글은 따로 경율논코너에 백업관리되는데 정작 그 내용은 니르바나 행복론과 관련된 내용을 적기로 되어 있다. 일반현실에서 추구하는 행복과 경전의 수행을 접목시키기 위함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잡담이 필요하다. 그래서 어떻게 니르바나 행복론 내용을 체계적으로 서술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발생했는데 다행히 잘 해결되었다.
링크로 체계적으로 배열하는데 링크걸기 위한 북마크를 생성시에는 경전관련부분은 B 를 사용하고 현재 니르바나행복론 관련부분은 색인기호로 N 을 사용하고 기타 일반 주제는 색인기호 없이 날짜만 색인기호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구별하면 되고 조각글 코너에서는 어디에서든지 잡담을 허용한다고 한다. 연구하는 이의 숨결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대신 최종 정리과정에서는 한 쪽으로 제일 끝 부분등에 한쪽으로 몰아서 정리하고 정리가 되었다는 의미에서 ☎잡담☎ 이런 표시를 따로 붙여서 관리한다고 한다.
경전코너 조각글에 붙이는 니르바나 행복론 내용은 벌써 여러차례 올리는데 매번 경전 페이지에서 작업하면, 그 페이지에서는 처음인 것처럼 느껴져서 반복해 올리게 된다.
생크림을 식빵에 발라먹을까 유혹을 느끼고 찾았는데, 생크림은 먹는 만큼 혈관이 막히고 이후 트래펑이나 아스피린으로도 쉽게 잘 안 뚫어지기에 운동을 열심히 해서 태워야 한다고 한다. 문제는 생크림이 이 경우 승차거부를 해서 잘 안타려고 해서 문제라고 하는데, 나이가 들어 노년이 되갈수록 이런 혈관사고에 조심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현재 본인이 발 부분이 막힌 듯하다.
여하튼 생크림과 유사한 것들이 주변에 식품으로 위장해서 많이 돌아다니기에 주의를 해야 하는 한편, 동물의 시체를 먹으면, 체내에 이미 빙의해 같이 살고 있는 미생물 및 기생충 들과 함께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하니 주의를 할 필요가 있다.
이미 이전 글에서 중독 문제를 언급했는데 사실 글관리문제가 정리가 안 되어서 내용은 다 적지 못했지만,
이런 생활상의 중독문제가 정신적 육체적 사회적 건강문제와 관련해 심각하다.
개인적으로 중독현상을 끊으려면, 중독이 된 그 부분을 그냥 끊고 그 뒤에 일정시점에 금단 증상으로 인한 불쾌감 괴로움 그리고 반대로 중독된 식품이나 물질을 공급하면 얻는다고 느끼는 좋음을 얻지 못해 답답함 등이 느껴지는 상황에서 그런 상황 자체가 실답지 않고 그런 중독된 것을 섭취하거나 행해 얻는 좋음이 집착을 가질만한 것이 아님을 잘 관하고 평안히 견디는 방안이 원칙이다.
그리고 이것이 수행과 밀접하다. 수행이 현실에 필요한 사정이 바로 이 부분에 압축되어 들어 있다.
그래서 현실에서 한 주체가 중독되기 쉬운 부분을 나열해서 잘 관리하고 임해야 한다.
식품- 밥이나 식사시 과잉해서 섭취하는 습관이 문제다. 수행자는 더 엄격해서 오후 불식 이런 계율내용까지 지켜야 한다. 기초적이지만, 대부분 잘 안 된다.
또 약품이나 기호품 종류로 마약이나 음주 흡연 차 이런 것에 중독되어 일정 시간이 되면 그런 약이나 술 담배 차 등을 섭취하지 않으면 업무를 보지 못하는 현상도 문제다.
그 다음에 수면 중독이 있다.
또 노는 분야에서 도박이나 사행성있는 오락 예를 들어 전자게임이나 기타 잡기성 오락에 중독되는 경우도 생활의 문제다.
그외에 경제 생활과 관련해서는 투자 부분에서 도박성향이 있는 주식투자 등에 중독되기도 하고 사치품 중독, 과잉소비 중독현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또 이성에 대한 연애 중독도 이와 비슷한 성격을 갖는다.
여하튼 이들 중독현상에는 공통적인 문제점이 있다.
좋은 부분이 일부분 있는 반면 장기적으로 다양한 측면에서 부작용이 발생해서 나쁜 점이 있는데 이것이 섞여 있는 한편 비록 그로 인해 상당히 부작용을 받게 된다는 것을 이성적으로는 헤아리기 되지만, 당장 그것을 대하는 순간에는 그 좋음의 유혹이 강력해서 왠만해서 거부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것을 잘 극복하고 설령 약간의 좋은 점은 잘 취해서 잘 사용할 필요도 있다고 보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폐해를 받지 않도록 현명하게 잘 대처해야 한다.
대부분 딱 지금 한번만 이런 식으로 임하면서 끝내 중독의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그 폐해와 부작용을 다 받게 되는데 결국 이것이 생사현실에서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하고 생사고통을 받는 과정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중독현상을 잘 극복하는 방안은 생사현실에서 수행을 잘 해서 생사를 벗어나는 문제와 같은 문제가 된다.
방안은 이미 기술한 바와 같다.
그외 DOCTR 님이 나열한 다양한 방안은 대부분 효과가 그다지 없다고 보아야 한다. 오랜 기간 실험해본 결과 보조적인 방안은 결국 병목현상에서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중독을 잘 끊지 못하고 만나게 되는 병목지점에서는 결국 앞에 제시한 원칙적인 방안, 무조건 끊고 그 이후 악착같이 참고 견디거나 평안히 받아들이고 견디거나 하는 것이 그 방안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다.
문제는 말은 쉽지만, 위에 나열한 항목 하나하나를 놓고 볼 때 쉽지 않고 현실에서 살아가는 거의 대부분이 무언가에 걸려 있다는 것을 관찰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