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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수행의 길목(본각 스님) 본문
수행의 길목
수행자의 본 모습을 찾아서
본각 스님/중앙승가대학교 교수․비구니수행관 관장
나는 긴 세월 동안을
출가 사문으로 살아오면서
그간에 많은 일들을 경험 할 수 있었던 것을
새삼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76년 가을
재가생활을 마감하고
다시 출가를 결심 할 때에는
모든 시시비비로부터
초연해서 살아갈 것을
제일 먼저 마음에 새겼던 일을
머리에 떠올리고
언제나
초발심에 돌아가고자
되새겨 보곤합니다.
나에게
지금도 고향처럼 생각되는
수행도량은
석남사 입니다.
이십여년전
새로운 결심으로
석남사를 찾아서
산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십년간을
강원과 학교공부를 위하여
떠나 있다가
본 고향에 되돌아 온
나에게
대웅전 부처님의
다함없는 미소와
삼형제 바위랑
옥류 동의 계곡은
변함없는 모습으로
옛 수행자를 맞이하여
주었습니다.
나 또한 본 모습에
돌아가서
학벌도 명성도
모두 놓아 버리고
다시 사문의 길을 걷고자
서원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그때 석남사를 다시 찾아서
새롭게 느껴졌던 단상들이
뇌리에 스쳐갈 때
허상을 버리고
본원에 돌아갈 것을
깨우쳐 주는
소중한 기억들이 남아있습니다.
몹시 바람이 불던
늦은 가을밤에
나는 대웅전에서
혼자 밤을 새워
삼천배 절을 시작하였습니다.
십여년 세월을 떠나있던
옛 고향의 부처님 앞에서
무수한 절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큰 다행스러움 이었습니다.
산천을 뒤흔들던
광란의 밤바람도 잠자고
중야(中夜)가 깊어 갈 즈음에
나는 참으로
부처님의 자비로운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용케도
먼길을 헤매어
고향의 땅에 돌아온 나 자신을
어루만져 주시는
부처님의 체온을 느낄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집을 잃었던
궁자(窮子)와 같이
고향의 풍요로움에
눈뜨고
깊은 믿음으로 본원을 잃지 않는
수행인이 될 것을
서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날 희미한 불빛 아래서
발우공양을 하고
마지막 발우를 행군 물에
삭발한 나의 모습을 비추어 보면서
진리를 찾는 수행의 길에는
결코 유행을 따를 것도,
변화를 추구할 것도 없음을
몸소 체득하는 성스러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불교가 시대를 따라서
변화해야 되고
더욱이 현대화를 강요하는 것은
오직 중생을 이끌기 위한 방편을
도출해 내기 위함인 것일 뿐이며,
사문의 길에는
결코 어떠한 변화도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그날 이후
마음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말씀을 통하여
여래의 마음과
여래의 실천과
또한 여래의 찬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단지 그것을
어떻게 각자의 삶속에
작은 부분이라도
실행에 옮길 수 있는가가
이제 남은 과제일 뿐입니다.
「법화경 방편품」의 게송속에
“모든 법의 본 모습은
항상 고요함 그 자체이니(諸法從本來 常自寂滅相)
불자가 행할바
도를 이루어 마치면
미래에
반드시 부처를 이루리라(佛子行道已 來世得作佛).”
라는 글귀가 있습니다.
이 말씀을 외우고 있으면
나 자신 무엇인가에
아둥바둥 고뇌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무한한 편안함에
젖어 들어가게 됩니다.
이미 여래에 의하여
길이 제시되어 있는데,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허둥거리지 않으면
안되는 것인지
깊이 반성해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단지 중요한 것은
지금 현재 불자로서
행할 바가 무엇인가를 찾아서
곧바로 실천에
옮기는 일이 남아 있을 뿐이라는
커다란 가르침에 다가서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묵묵히 모든 시비를 놓아 버리고
스스로 행할 바 도에
매진할 수 있을까를 화두로 삼고서
수행의 길을 걷고자
서원해야 할 것입니다.
요즈음 세상은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경제적 빈곤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갑자기 다니던 직장을 잃고
들어오던 생활비가 끊어진 상황에
직면한 재가자에게
우리 출가자는
어떠한 말로
어떻게 그들을 위로하고
이끌어야 할지
고요히 생각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나 자신에게는
변함없는 수행자의 본 모습에
돌아가라고
채찍을 들어야 될 것입니다.
더욱이 삼의일발(三衣一鉢)로
만족할 줄 알도록
자신에게
타이름으로서,
재가자에게는
소욕지족(少欲知足)으로서
제일의 부(富)를 삼으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일생을 중생과 더불어
살아가셨듯이
그 길에 나아가고자 하는
우리 자신들도
그간에 쌓아온
공덕의 세계를
천변만화로
중생에게 베풀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불변(不變)과 수연(隨緣)의 세계를
오늘날 우리 수행자는
바로 자신의 삶 속에서
나타내 보이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초기교단에서
부처님께서 타이르셨던 제자의 본 모습을
언제나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며
이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불변의 세계로서
받아 들여야 합니다.
또한 그 반대로
끝없이 변화하는 세상에
물이 흐르듯 자재롭게 따라 흐르면서
인연을 따라서
최선의 행을 실천하는
수행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오늘을 살아가는 나 자신이 참으로
부처님의 중도정신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오랜 세월동안
배우고 말하는 것과
실지로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나 많이 괴리(乖離)되어 있었던 것을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번에
우리가 당면한 경제난국을 계기로
이제 사회는
거짓을 거두어 버리고
진실된 생활로 복귀하고자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여기에
진실도(眞實道)로서
생명을 삼는 출가 사문이
구태의연한 안일함에
빠져있거나
사회를 밝히는 등불로서의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한다면
지금보다 더 큰 지탄과
비난의 소리를 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수행자로서의 본 모습을
가다듬어 간직하고
그 청정한 힘으로
무한한 중생세계를 이끄는
여래의 심부름꾼이 될 것을
새로이 다짐해야 할 것입니다.
東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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