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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문보살서경_K0418_T0458_001 본문

경전

문수사리문보살서경_K0418_T0458_001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19. 6. 26. 00:46



®

『문수사리문보살서경』
K0418
T0458

서경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해제[있는경우]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문수사리문보살서경_K0418_T0458 핵심요약




♣0418-001♧
『문수사리문보살서경』

서경

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원문번역문



문수사리문보살서경

 

문수사리문보살서경(文殊師利問菩薩署經)



지루가참(支婁迦讖) 한역

김달진 번역




사리불(舍利弗)이 나아가 길게 꿇어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묻고자 하오니 부처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이에 감히 묻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사리불이여. 

마땅히 물어야 하리라. 


네가 문수시리(文殊尸利)로부터
여래[怛薩阿竭]1)의 행[署]에 대한 인연법의 명칭만 듣고
그 사실은 다 듣지 못했으리라. 

이제 너를 위해 말하겠으니, 

자세히 들어라.”



사리불은 아뢰었다.

“분부하시는 대로 받겠습니다.”

그러자 마하목건란(摩訶目犍蘭)과 마하가섭(摩訶迦葉)과 마하가전연(摩訶迦栴延)과 마하구치빈(摩訶拘絺邠)과
이문타불(利文陀弗)ㆍ수보리(須菩提)ㆍ아난율(阿難律)ㆍ주리감(朱利敢)ㆍ마하감(摩訶敢)ㆍ내타화라(奈吒和羅)ㆍ아난(阿難) 등과
낱낱 존자 나한(羅漢)들이 다 모임 가운데 있다가
모두 일어나서 부처님께 예배하고 아뢰었다.


“즐거이 듣기를 원하옵니다. 

보살들로 하여금 다 그 인연에 따라 큰 서원[摩訶僧那僧涅]을 내게 하고, 

어떤 남자나 여인이라도 들은 이가 있다면 다 이것을 구하게 하며, 

여러 성문들 역시 이 법으로 인하여 큰 서원을 구하므로
일체 그 해탈해야 할 자로 하여금 다 나한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낱낱 존자 비구들이 다 꽃을 부처님 위에 뿌려 여래의 행에 공양하고, 

모든 욕계의 천자들은 날아다니면서 하늘 꽃을 공양하는 동시에 하늘의 기악(伎樂)으로써 즐겁게 하니, 

왜냐하면 그들이 본래부터 그 명자(名字)마저 듣지 못했거늘 하물며 지금 구족히 들은 것이랴. 

한편 석제환인(釋提桓因)은 천상의 구기화(拘耆華)나무로써
그 기원(祇洹)에 가득 차게 변화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 부처님께서는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여래의 행[恒薩阿竭署]이란 네 가지 일이 있으니, 

네 가지 일이 무엇이냐 하면, 

첫째는 뜻을 내는 것이고, 

둘째는 퇴전하지 않는 것[阿惟越致]이고, 

셋째는 보살이 나무 아래 앉는 것이고, 

넷째는 불법을 구족하는 것이니라. 

이것이 네 가지이니라.”



사리불은 물었다.

“무슨 인연으로 뜻을 낸다는 것입니까?”


■ “보살로서 뜻을 내는 것이 첫째의 행이라. 

이른바 뜻을 냄이란
하는 일이 일체 시방을 위해 공덕을 지음이니, 

왜냐하면 다 큰 서원[僧那僧涅]을 얻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첫째 행이라 하며, 


■ 퇴전하지 않음이란
일체 하는 일에 희망을 갖지 않고
다만 안온한 자리[地]와 생각 없는 자리와 견고한 자리를 구함이니, 

이것이 바로 부처님 법의 기본 경계이기 때문에 둘째 행이라 하며, 


■ 나무 아래 앉음이란
헛되이 일어나지 않고
 일어나려면 곧 도를 성취하기 때문에
힘을 여의지 않으면 두려움이 없음이니 이것을 셋째 행이라 하며, 

■ 여래의 행이란
행하는 그대로가 진리인지라. 

그 행과 같은 행은 헤아릴 수 없고
특히 높은 행이어서
이미 여래[怛薩阿竭]ㆍ아라하(阿羅呵:阿羅漢)ㆍ삼야삼불타(三耶三佛陀:正遍知)에 머무른 법교(法敎)이니, 

이것을 넷째 행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는 다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또 두 가지 행이 있으니, 

두 가지 행이란, 

성문을 위해 법 바퀴를 굴리는 것과
퇴전하지 않는 이를 위해 법 바퀴를 굴리는 것이니, 

이것이 두 가지 행이라. 



여래께서 행하신 그 행도 이미 그 가운데 있는 것이어서
곧 법에 따라 교(敎)가 있고 세간의 법인 동시에 부처님의 법이며, 

느끼고 생각하고 나고 죽고 의식하는 법인 동시에 부처님의 법이다. 



사리불아, 

그 법이란 부사의한 법이어서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이 법은 얻을 수 있고, 

이 법은 얻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으니라.”



■ 부처님께서는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얻을 수 없는 것은 버릴 수 없는 것이니, 

본래 공한 것이 모든 교법이기 때문에 여래의 행이라 하노라.”




사리불은 물었다.

“어떤 것이 바로 여래의 행이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그것이 바로 여래의 행이니라.”


부처님께서는 사리불에게 반문하셨다.

“어떤 지혜가 이 행이겠는가?”



사리불은 대답하였다.

“여래께서는 법으로 법을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법이란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지혜의 행이라 하니, 

이것이 보살로서 배워야 할 것입니다. 


배우는 자로서 여래의 행을 배움에 있어서
과거 세속의 법을 생각하지 않고 도법에 응해야 하며, 

세속 법이 나쁘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 동시에
도법(道法)이 좋다는 것도 말하지 않아야 하나니, 

이와 같이 배우는 자라야 여래의 행을 배운다 하리며, 

‘이것은 배울 것이고 이것은 배울 것이 아니다’라는 의식을 갖지 않는가 하면, 

‘이렇게 배워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아야만
여래의 행을 배우는 이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물질[大]을 분별하지 않아야 하나니, 

물질이란 눈[眼]과 빛깔[色]과 의식[識]입니다. 

분별하지 않아야 하는 것을 눈으로 분별하여 일체 생각을 둔다면
이는 여래의 행을 배우지 못한 이라 하리며, 

‘이 사람은 제도할 수 있고, 

이 사람은 제도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는 자도
여래의 행을 배우지 못한 이라 할 것입니다. 


여래의 행이란 일체 사람의 행인만큼
이러한 것을 배운 사람은 여래의 행을 배운 이라 할 것입니다. 


여래의 행인 그 한량없는 행을 배워서
일체 법에 끊임이 없어야만
여래의 행을 배우는 이라 하겠습니다.”



■ 부처님께서는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법이 나는[生]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여래의 행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것이 없어야만
여래의 행을 배움이라 하리니, 

있다거나 없다는 것을 다 생각하지 않아야 하리라.”




부처님께서는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 “그 여래의 행을 배우려 하는 자는
여래라는 생각마저 하지 않아야만
여래의 행을 배우게 되며, 

모든 법에 대해서도
구하는 것이 없어야만 이것을 행이라 하리니, 

이것이 바로 여래의 행이니라.”



부처님께서는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 “색법(色法)이 곧 부처님의 법이며, 

느끼고 생각하고 나고 죽고 의식하는 법 역시 여래의 법이니, 

모든 법에 집착하는 바 없이
행에 따라 일체 모든 법을 가르치는지라, 


■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고 나서
그 있고 없는 것까지 생각하지 않으면
이것이 곧 가르침을 따름이며, 


■ 이미 있고 없음에 집착하지 않으면
근본 없는 가르침을 따름이니, 

이와 같이 배우는 것이 바로 여래의 행을 배우는 것이리라. 


■ 그리고 행이란 것은
또 과거ㆍ미래ㆍ현재가 없으므로, 

이러한 행은 일체를 보기도 하고
일체를 보지 않기도 하느니라.”





사리불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본다 하는가 하면, 

덮임도 없고 가림도 없으므로 죄다 보는 것이니
이를 여래의 행이라 하며, 


무엇을 일체 보지 않는다 하는가 하면, 

이른바 그 문(門)을 보지 않아
들어가는 데가 없으므로
보지 않는 것이니
이를 여래의 행이라 하며, 


또 행에 있어서
공과 합하지 않고
생각하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고
볼 수도 없고
얻을 수도 없어
진리 그대로 고요함이 바로 그 행의 청정한 것인 만큼

행이란 길고 짧음을 얻을 수 없고, 

행이란 또한 도와줌이 없고 도움을 받을 수도 없으며, 

행이란 또한 다름이 있지도 않나니, 

이것이 바로 행이어서
어디로부터 나는 데가 없는 행이므로, 

이 행을 여래의 행이라 합니다.


또한 발을 계교하지도 않고 복사뼈를 계교하지도 않고, 

무릎을 계교하지도 않고 종지뼈[臏]를 계교하지도 않고, 

배[腹]를 계교하지도 않고 팔을 계교하지도 않고, 

손을 계교하지도 않고 턱[頤]을 계교하지도 않고 머리를 계교하지도 않으며, 

안을 계교하지도 않고 바깥을 계교하지도 않고 중간을 계교하지도 않고, 

끝나지 않음을 계교하지도 않고 끝남이 없음을 계교하지도 않고, 

위아래와 네 간방[四維]과 동서남북을 계교하지도 않으며, 

사람을 계교하지도 않고 수다원(須陀洹)을 계교하지도 않고, 

아라한[羅漢]을 계교하지도 않고 벽지불(辟支佛)을 계교하지도 않고, 

또한 여래를 계교하지도 않으며, 

유여(有餘)이거나 무여(無餘)임을 계교하지도 않고, 

해탈이거나 해탈이 아님을 계교하지도 않고, 

법의 그 소재(所在)를 계교하지도 않나니, 

계교할 수 없는 것이 이 행인 만큼
아무런 명자(名字)가 없는 이러한 행이 바로 여래의 행이옵니다.”






부처님께서는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모인 비구들 가운데 이것을 듣지 못한 이가 많으리라. 

듣지 못함으로써 있는 것이 무엇이고 없는 것이 무엇임을 계교하여 말하되, 

‘나의 이 몸뚱이처럼 모든 법이 다 그러하다’고 하나니, 

이렇게 말하는 자는 곧 그 말에 따라 행을 지어 계교하지 않아야 할 것을 계교하고, 

법에 있어서도 이러한 계교로 인하여 주고받을 것이 있는 줄을 생각하며, 

또 생명이 있는 것을 생각하여 오랜 수명을 얻으려 하고, 

오랜 수명을 얻으려 하기 때문에 그 수명에 대한 집착을 갖게 되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행도 또 법을 따르지 않는가 하면 법 아닌 것을 따르지도 않고, 

또한 있음을 따르지 않는가 하면 없음을 따르지도 않나니, 

이 따름이란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지라, 

여래의 행은 따라도 역시 따르는 것이 아니며, 


또 여래의 행이란 무너져 없어지지도 않고
생각하여 깨닫는 것도 아닌 이것이 바로 여래의 행인 만큼, 

그 깨달음을 들을 수도 없나니, 

이 때문에 이러한 말을 들으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모든 진리의 말씀은 다 공(空)을 말씀하신 그 진리와 같으니라.”



부처님께서는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어디로부터 오는 데가 없는 그것이 바로 여래의 행이고, 

오는 처소가 없는 그것이 바로 여래의 행이고, 

처소에 의지함이 없는 그것이 바로 여래의 행이고, 

의지하여 굽히는 일도 없고 펴는 일도 없는 그것이 바로 여래의 행이니, 

여래의 행을 얻을 수 없듯이 모든 법을 얻을 수 없음도 역시 그러하느니라.


마음이란 나는 데가 없기에 편히 머무는 데도 없고, 

공덕을 짓는 데에도 구하는 것이 없나니, 

교화하는 그대로 아무런 행이 없는 그것이 바로 행이니라. 


이 종자가 나는 데가 없기 때문에 이 공덕 역시 근본도 없고 진실함도 없으며, 

큰 서원[僧那]이란 얽매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고 조작하는 것도 없기에 이를 정진이라 하며, 

보는 것이 없고 본다는 생각을 하지도 않기에 보는 자가 곧 두 가지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며, 

지혜란 얻을 것이 없어 그 지혜가 하는 것이 없고 일으키는 것도 없고 증득하기 위해 구하는 것도 없나니, 

이와 같이 구하고 이와 같이 생각함이란 아무런 명자(名字)가 없는 것이며, 

그 말만 주장하는 이는 자비를 얻을 수 없나니, 

그러므로 얻었다고 말하는 자도 없거니와 그렇게 생각할 사람도 없으며, 

그 수호하는 자도 잠깐 염(念)하거나 잠깐 염하지 않는 그것마저 일으키지 않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지혜 없는 것이 바로 이 지혜이어서
12인연도 나는 데가 없고, 

그 화합하는 것도 화합함이 없으며, 

도를 얻을 수 없는 것이 곧 도를 얻는 것이며, 

생각함이 없는 그것이 곧 비구의 생각이며, 

가질 것이 없는데도 발우를 잡고 옷을 입으며, 

깎을 것 없는 그것이 곧 머리를 깎는 것이며, 

계율을 받을 것 없는 그것이 곧 계율을 지키는 것이니, 

이와 같이 비구가 도를 좋아하나 좋아하는 것이 없는 것이 바로 비구가 좋아하는 것이다.

정(定)에 뜻을 둔 이는 다른 뜻이 없고, 

이미 정에 든 이는 몸과 마음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나니, 

이러한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곧 비구의 지혜이니라.

이미 만족함을 말하는 자는 사실 만족함을 모르는 것이니, 

비구의 만족이란 아무리 적고 적은 것일지라도 만족하게 여기기 때문에 만족한 것이라, 

헤아릴 수 없는 법을 알 수 있다거나, 

도는 알 수 없다고 말하는 자는 이미 부처님의 법을 따르지 않는 자이며, 

부처님의 법을 따르지 않는 자라면 그는 부처님의 가르침 그대로의 경계가 아니니, 

이 때문에 부처님의 경계에는 법이 없는가 하면, 

여래의 법은 법을 조작함이 없고, 

법을 조작함이 없기 때문에 그 법이 없다고 말하며, 

모든 법에 들어가되 들어감이 없는 그것이 여래의 행이라, 

들어가지 않고서 모든 법에 이미 걸맞기 때문에 여래의 행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만약에 여래의 행을 배우려는 이가 있다면, 

그 용맹이 사자와 같아야 하며, 

남자나 여인으로서 마땅히 청정한 계율을 닦아 다른 뜻이 없어야만 마음이 청정하리니, 

청정한 지혜의 일으킴이고 생각 없는 것의 일으킴이니라. 

그 음식에 있어서도 만족을 취할 뿐이어서 만일 걸식하되
모든 생각이 이미 청정하여 다른 마음이 없으므로
일체 사람들에게 생각을 가지지 않고, 

모든 법에 희망을 두지 않으며, 

상ㆍ중ㆍ하의 일을 생각하지도 않아 하는 일이 항상 평등할 것이니, 

비구가 이렇게 배운다면 이미 배우는 이라 하리라.”



부처님께서는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그 구하는 것이 없이 배우는 자가 바로 여래의 행을 배우는 것이니라.”





마하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비구는 한 가지 일로써 배우되 큰 서원[僧那僧涅]을 내고 나서
여래의 행을 배워야 하리니, 

한 가지 일이 무엇이냐 하면,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음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래의 행을 배우는 것입니다.”




수보리(須菩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비구는 두 가지 일로써 배워야 하리니, 

두 가지 일이 무엇이냐 하면, 

모든 법에 희망하는 것이 없음과, 

일체 사람들에게 평등한 마음으로써 하되
일체 평등하게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음이 이 두 가지 일입니다. 

비구는 이와 같이 여래의 행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마하목건련(摩訶目犍連)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비구는 세 가지 일로써 배워야 하리니, 

세 가지 일이 무엇이냐 하면, 

법의 요지만을 배우고 꾸밈을 배우지 않는 것과, 

나[我]를 가까운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과, 

또 나를 먼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세 가지 일입니다.”




문타불(文陀佛)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비구는 네 가지 일로써 배워야 하리니, 

네 가지 일이 무엇이냐 하면, 

어디로부터 얻을 것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어떤 것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일체가 다 같이 청정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음가짐을 허공처럼 하는 것, 

이것이 네 가지 일입니다. 

이와 같이 배운다면 여래의 행을 배우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마하가전연(摩訶迦栴延)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비구는 다섯 가지 일로써 배워야 합니다. 

다섯 가지 일이 무엇이냐 하면, 

탐내거나 아낌이 없는 것과, 

법으로써 제사를 받으려고 하는 것과, 

일체를 위해 인자한 마음을 지니되 일체 인자한 마음을 지닌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또 그 밖의 일체의 것을 생각하지 않음과, 

모든 법에 구하는 것이 없음이 이 다섯 가지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래의 행을 배우는 것입니다.”




내타화라(奈吒和羅)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비구는 여섯 가지 일로써 배워야 하리니, 

여섯 가지 일이 무엇이냐 하면, 

한 가지 뜻도 내지 않는 것과, 

공(空)함을 구하지 않는 것과, 

진여의 경지[本際]를 배우지도 않는 것과, 

두 가지 일을 인연하지 않는 것과, 

이미 부처님 말씀에 귀향함과 어떤 것이 부처님께서 증득하신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음이 이 여섯 가지 일입니다. 

이것이 비구로서 여래의 행을 배우는 것입니다.”








■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일체 법이나 일체 사람을 모두 여래의 행으로써 보되
달리 보지도 않고
자연으로 보지도 않고
법으로 보지도 않아야 하리니, 

이렇게 배운다면 여래의 행을 배우는 것이 되리라.



내타화라야, 

다시 비구가 배워야 할 끝없는 행에 대해서 들어라. 

이것이 곧 여래의 행을 배우는 것이니라. 

그 즐거운 것을 즐거움이라고 보지 않는 이러한 행을 닦는 비구라면
그는 여래의 행을 배우는 것이 되고, 

여래의 행을 배우는 자는 곧 불법을 배우는 것이 되나니, 

부사의한 법이 일체를 작용하는 법이기 때문이니라.”


내타화라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약에 비구가 여래의 행을 배우려면 어떻게 스스로 가져야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비구의 뜻에 일체 사람이 있음을 생각하지도 않고
일체 법이 있음을 생각하지도 않으며, 

편안하게 여기지도 않고 위태롭게 여기지도 않아야 하리니, 

이것이 비구로서 스스로 가져야 할 것이니라.”



내타화라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제 여래는 누구를 위해 여래의 행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는 대답하셨다.

“그 참다운 행을 배우려는 자에게 말하는 것이니라.”


“누가 배울 자입니까?”


■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큰 서원을 내는 자를 위해 그 때문에 말하노니, 

이것저것과 중간을 생각하지 않고 일체 구하는 것이 없어야 이것이 여래의 행이니라. 


그 어떤 생각이 있어서 행하는 자는 이 때문에 행이 아니니, 

이러한 자는 스스로 훌륭한 체하고 다른 사람을 천하게 여기느니라.

그 간탐하고 질투하는 자도 이 행에 맞지 않으며, 

그 아첨하여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와
허망한 말을 하는 자도 다 이 행에 맞지 않으며, 

그 중생을 사랑하지 않는 자이거나, 

그 홀로 가지려고 하는 자이거나, 

나쁜 것을 좋아하는 자이거나, 

다른 사람이 안온한 것을 기뻐하지 않는 자이거나, 

그 어떤 생각함이 있어 자기 존재를 부르짖는 자이거나, 

그 두 가지 마음을 가지는 자이거나, 

좋아하고 싫어함이 다름이 없다 하여 그러한 생각을 일으키는 자이거나, 

깊은 법을 여의는 자이거나, 

맞지 않는 일을 생각하는 자이거나, 

이롭거나 해로움을 구하는 자이거나
발우 또는 의복[震越]ㆍ침구ㆍ의약 등을 시주들에게 구걸하는 자이거나, 

음식을 구하려고 하는 자이거나, 

선우[迦羅蜜]를 여의고 나쁜 스승에게 아부하는 자이거나, 

과거 부처님께 공덕이 없었던 자이거나, 

항상 진여의 경지[本際]를 두려워하는 자이거나, 

세속 일에 마구 뛰어들어 그 하는 일이 명자(名字)만을 구하려 하고 도달함이 없는 자이거나, 

다섯 가지 욕락을 좋아하는 자이거나, 

그 하는 일이 어떤 소득이 있기를 희망하는 자이거나, 

이러한 자로서 산간 한적한 곳에 머물러 인자한 마음을 닦지 못하는 자이거나,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여의고 항상 마군의 일에 빠져 부처님의 계율을 믿지 않는 자이거나, 

하는 일이 모두 그 법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항상 산란한 마음과 안온하지 않는 마음을 좋아하는 자이거나, 

그 마음이 미치고 어지럽고
그 마음이 갈래가 많음으로써
좋은 마음을 여의고
미묘한 마음을 여의고
극진한 마음을 여의는 자이니라.

다만 부처님의 형상 몸[色身]만을 생각하고 법을 보려고만 생각하고 비구승가를 보려고만 생각하는 자이거나
5음(陰)의 공덕을 여의고 4대(大)의 공덕을 여의고 6쇠(衰:色ㆍ聲ㆍ香ㆍ味ㆍ觸ㆍ法)의 공덕을 여의고
12인연의 공덕을 여의고 일체 사람의 공덕을 여의는 자 등
이러한 마음을 가진 자도 모두 여래의 행에 맞지 않으며, 


그 반면
아첨하지 않고 항상 질박하여 깊은 법을 생각하는 이러한 마음을 가진 자라면, 

이는 이미 여래의 행에 맞으리니, 

항상 부처님을 찬탄하는 자로서 이미 일체 부처님을 염(念)하기 때문이고, 

여래의 행을 배우려 하기 때문이니라. 

그 배움이 있는 자이건 배움이 없는 자이건
여래께서는 그들을 다 아시고 또 관찰해 보시는 만큼, 

부처님의 뜻이란 저 도시ㆍ촌락ㆍ산중 어느 곳에 있어서도 보는 것이 있기에
여래의 행은 이것을 다 보시느니라.”



부처님께서는 내타화라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여래의 행을 알 수 있겠느냐?”


내타화라는 대답하였다.

“부처님께 묻고 부처님께 들어야 하거늘 제 자신이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원컨대 부처님께서 말씀해 주소서. 

비구로서 가져야 할 것을 듣고자 하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내타화라가 말한 바와 같으니라.”



그리고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나머지 범부의 뜻으로선 여래의 행을 알 수 없나니, 

여래의 도 자리[道地]를 만들지 못하기에 여래의 행을 알 수 없고, 

그 궁극의 수(數)를 다할 수 없기에 이 때문에 행이라 하며, 

관찰해 볼 수 없나니, 

관찰해 볼 수 없기 때문에 여래의 행이라 하노라. 


■ 그 여래의 행을 알려고 하는 자는
자신의 목숨과 그 밖의 일체를 아끼지 않고
일체 사람들에게 평등한 마음을 가짐으로써
일체 허식(虛飾)된 일이 그 속에 있지 않아야 하리니, 

그 두 가지 마음이 있는 자는 함께할 수 없다. 

여래의 행을 배우고자 하는 자는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하리라.”




■ 내타화라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모임 가운데 여래의 행을 배울 만한 이가 있습니까?”


■ 대답하셨다.

“문수시리보살이 있느니라.”


부처님께서는 다시 내타화라에게 말씀하셨다.

“마치 어떤 사람이 큰 바다의 값진 보배인 마니(摩尼)구슬이 있는 곳에 이르렀는데, 

구슬의 값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으나, 

그 사람이 값진 보배가 있는 곳에 머물면서도 마니구슬의 값을 알지 못하므로, 

어떤 사람이 그 보배가 있는 곳에 머무는 자에게 이르기를, 

‘지금 이 보배가 있는 곳에 있으면서 정녕 마니구슬이 있는 곳을 모르느냐?’라고 하니, 

그 사람이 도리어 ‘모른다’고 대답하는 것과 같나니, 

왜냐하면 그 사람이 마니구슬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이제 내타화라 역시 유명한 보배 속에 있으면서 보배가 있는 곳을 알지 못하니, 

왜냐하면 뭇 마하연(摩呵衍) 속에 있으면서도 마하연을 모르기 때문이니라.”





다시 사염(闍炎)이라는 비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약에 큰 서원을 배우는 이가 없다면
제가 평등한 마음으로 광명을 일체에 비추고자 하옵니다.”


다음엔 삼파시사리(三陂諟師利)라는 비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여래의 행을 배우려 하오니, 

왜냐하면 일체 모든 법에 제가 구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엔 삼마사리(三摩師利)라는 비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도 여래의 행을 배우기 위해 모든 법에 두 가지 마음을 가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도무지 보는 것이 없기 때문이니, 

이와 같이 배우는 것이 곧 여래의 행을 배움이라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배우는 자로선 마땅히 그렇게 배워야 하리라.”



다시 염사리(染師利)라는 비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일체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또한 사람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이 있지도 않으며, 

사람을 제도하되 제도할 사람을 보지도 않고, 

또 법을 보되 어떤 법으로 가르쳐야 할 것을 보지 않으려 하오니, 

이렇게 하여 여래의 행을 배우고자 하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행을 배우려면 마땅히 그와 같이 배워야 하리라.”




다시 발(勃)이라는 비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인욕[忍]으로써 일체 사람들에게 훌륭한 체하는 일이 없으니, 

왜냐하면 다른 사람이 스스로 훌륭한 체하더라도 제 자신은 훌륭한 체하지 않기 때문이며, 

또 저는 있는 것을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므로
어떤 사람이 마음속으로 훌륭한 체함이 있더라도 저 자신은 마음속으로 훌륭한 체함이 없으니, 

왜냐하면 일체 사람들을 염려하기 때문에 일체 사람들을 염려하여 그들을 다 안온케 하려 하고, 

제가 또한 나쁜 것으로써 머물지 않고 법의 광명으로 머물기 때문에
일체 사람들을 염려하여 다 어두움이 없이 밝게 하려 함이니라. 

저는 이와 같이 여래의 행을 배우고자 하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마땅히 네가 배우는 바 그대로 배워야 하리라.”







다시 사이 종족(奢夷種族)으로서 다화광(多和光)이란 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일체 사람들을 가르치되 생사를 벗어났거나, 

또는 생사를 벗어나지 못했더라도
제도할 수 있는 자는 다 여래의 행을 배우게 하려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마땅히 행을 배우되, 

배운 것과 같아야 하리라.”







다시 유사기교사(惟闍耆橋沙)라는 비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부처님께서 부처님 나무[佛樹] 아래에 계시는 것처럼
부처님 나무를 보지도 않고 얻지도 않으려 하오니, 

이와 같이 하여 여래의 행을 배우고자 하옵니다.”







다음엔 지라말(坻羅末)이란 비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모든 법을 배우지 않겠습니다. 

세속의 법은 물론 불법도 배우지 않겠으며, 

그 밖의 모든 법이란 법을 다 배우지 않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네가 말하는 것과 같노라. 

여래의 행은 일체에 작용하기 때문에 배우려고 하는 것이니라.”



때마침 그 좌중에 있던 1만 비구니와 3천 사람이 다 일어나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희들도 여래의 행을 배우고자 하오니
일체에 작용하기 때문에 구족히 배우고자 합니다.”


다음엔 7천 우바새와 5천 우바이가 다 자리에서 일어나 아뢰었다.

“저희들도 온전하게 배워야 하겠습니다.”







그때 또 8만 천자들이 다 말하였다.

“저희들도 다 온전하게 배워야 하겠으니, 

일체를 가르쳐 주옵소서.”



다음엔 사가난(私呵難)이란 비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모든 법은 얻을 것이 없고, 

모든 법은 얻을 수도 없거늘 어떻게 여래의 행을 배운다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행을 배운 바와 같이 마땅히 배워야 하리라.”




다음엔 이삼복(利三匐)이란 비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일체 법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어떻게 여래의 행을 배운다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행을 배운 바와 같이 마땅히 배워야 하리라.”





다음엔 왕자의 종족인 마가파나타유촉(摩呵波那陀惟★)이란 비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噞+刃]

“나[我]라는 것이 없지도 않고 나라는 것이 있지도 않으며, 

지혜가 있지도 않고 지혜가 없지도 않으며, 

파괴라는 것도 없고 증득하는 것도 없으며, 

이 뜻 가짐이 다름이 없고 모든 인연이 인연됨이 없나니, 

이와 같이 여래의 행을 배우려 하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행을 배운 바와 같이 마땅히 배워야 하리라.”







다음엔 사이(奢夷) 종족인 비타변(非陀遍)이란 비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일체 모든 법의 변제[際]를 볼 수 없음은 변제란 것이 없기 때문이거늘, 

있다거나 없다거나 또는 변제가 없다거나 없다는 그것마저 없다거나, 

명자(名字)도 없다고 이른다면 이러한 것은 곧 소홀한 말이라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느니라. 

만약 변제가 없다면, 변제가 없고 나면 원(願)도 없고
원하는 이도 없으리니, 

이 때문에 보살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너의 말과 같노라. 

원이 없음은 곧 헤아릴 수 없고
알 수 없고 생각할 수 없고 머무를 수 없고 두려울 것이 없으며, 

명자[字]마저 없고 평등하여 배울 것이 없으며, 

가질 것도 없고 무너뜨릴 것도 없고, 

조작할 것도 없음이니, 

그 일체 얻을 것이 없고 명색(名色)이 없기 때문이다. 


■ 보살도 역시 명색이 없는 만큼
스스로 옳다 함이 옳음이 아니고
스스로 그르다 함도 그름이 아니어서야
거리낌이 없느니라.”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배울 바 행과 같이 마땅히 배워야 하리라.”





■ 그때 5백 바라문들이 사위국(舍衛國)을 나와 길을 앞지르면서
부처님 처소에 이르러 나아가 예배하고 물러서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말씀하시는 대로 즐거이 듣고자 하오니 항상 안온하게 하여 주옵소서.”


부처님께서는 여러 바라문들에게 물으셨다.

“무엇 때문에 듣고자 하는가?”


여러 바라문들은 말하였다.

“사람들에게 이것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것을 누리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여래의 행이 있으니, 

과거부터 여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므로 이제 나도 이것을 말하리라.”


그러자 수환사리(羞桓師利)라는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머니 배 속에 있으면서 이미 여래의 행을 들었습니다.”


다음엔 삼마진시(三摩震諟)라는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마침내 어머니 태중에 들어가자마자, 

이미 여래의 행을 들었습니다.”


다음엔 설진제(雪眞提)라는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출생하자마자 곧 여래의 행을 들었습니다. 

사면이 환하기에 보니 여래께서 허공에 계시면서 손으로 저의 머리를 만지며 말씀하시기를, 

‘너는 앞으로 불가견정불(不可見頂佛)이란 명호를 얻으리라’ 하셨습니다.”


다음엔 알진제(頞眞提)라는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출생한 이래 오래지 않아 곧 여래의 행을 들었으니 공중에서 부처님께서 내려와 말씀하시기를, 

‘너는 앞으로 여래의 행을 듣고 배울지니라’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음엔 나라사목갈(那羅沙目竭)이라는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지금 바로 밤중에 사면에서 네 부처님께서 저의 처소에 오시기에 곧 엎드려 예배하였더니, 

여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부사의한 여래의 행이 있노라. 

저 기원(祇洹)의 석가모니부처님[釋迦文佛] 처소에 가서 받아 들어라’ 하셨으니, 

이것이 저의 과거의 서응(瑞應)입니다.”


다음엔 아진제라무야(阿眞提羅蕪耶)라는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지금 바로 밤중에 키가 20리 이고 32상(相)과 모든 종호(種好)를 구족하신 부처님께서 저에게 이르기를
‘앞으로 여래의 행을 배울지니라’ 하시는 것을 보았는데, 

듣고 나선 홀연히 다시 볼 수 없었으니, 

이것이 저의 과거의 서응입니다.”






다음엔 삼파기(三波耆)라는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출생하여 땅에 떨어질 적에
어떤 사람이 오는데 온 집안이 환하더니, 

그 사람이 저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젖을 먹이지 말고 이 아이로 하여금
여래의 행으로서 음식을 삼게 하시오’ 하므로, 

어머니께서 듣고 기뻐하셨으니, 

이것이 저의 과거의 서응입니다.”





다음엔 예삼불(倪三颰)이라는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과거 바라문의 일을 배울 적에
 공중에서 32상과 모든 종호(種好)를 구족하신 부처님을 보았는데,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너는 마땅히 배우고 너는 마땅히 섬겨야 하리라’ 하시기에, 

제가 이 말씀을 들은 즉시 땅에 엎드려 예배하고 묻기를, 

‘어떤 것을 배우고 어떤 것을 섬겨야 하리까?’ 하였습니다.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래의 행이란 것이 있노라. 

이것을 네가 배우고 이것을 네가 섬길지니 이것을 배우기만 한다면 모든 법을 다 알 수 있으며, 

또 이것이 바로 법도이고 이것이 바로 여래의 행이기 때문에
세속에 목욕하는 자는 이른바 그 때[垢]를 제거하고
부사의함에 목욕하는 자는 이것이 곧 보살의 목욕이어서
이른바 모든 법이 다 앞에 있으니, 

해탈한 이나 해탈하지 못한 이나
바라문 가운데 존귀한 이가 되려면
마땅히 이 행을 배울지니라’ 하셨습니다. 

제가 그 말씀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하면서
두뇌 속에 그 교훈을 받아 간직한 나머지
이제 부처님께 묻자오니, 

무엇 때문에 앞서 이러한 서응이 있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것이 바로 여래의 행에 대한 서응이니라.”







다시 마하 가루나(迦婁那)라는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목욕을 하고 나서 큰 불을 일으켜 제사를 지내려다가
32상과 모든 종호(種好)를 구족하신 부처님의 몸을 머리 위에서 보았는데,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네가 불을 일으켜 제사 지내는 그러한 법은 옳지 않으니, 

왜냐하면 불이란 것은 일어나서 다시 사라지기 때문이니라’ 하시기에, 

제가 다시 묻기를, 

‘이를 끄지 않으면 어떻게 꺼지겠습니까?’ 하였던 바, 


■ 그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남이란 것을 생각하지 않고
나[我]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수명(壽命)이란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있다거나 없다는 것을 생각하지도 않고
화합이란 것을 생각하지지도 않고
나뉨이란 것을 생각하지도 않고
어떤 사상을 생각하지도 않으면, 

이 불은 사라지게 하는 이가 없어도 스스로 사라지는 것이니 만큼, 

그 불은 자연히 된 것이요, 

섶[薪]을 쓰지 않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자세히 들은 즉시 합장하고
부처님께 다시 묻기를, 

‘불을 일으키는데 어찌 섶을 쓰지 않겠습니까?’ 하였더니,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부사의한 여래의 행이 있으니, 

네가 이것을 배워라. 

이것을 배우고 나면 곧 불을 일으키되 섶을 쓰지 않으며, 

이것을 배운 자는 음욕[婬]과 진심[怒]과 우치[癡]를 생각하지도 않으리니, 

이 때문에 불이 곧 사라지느니라’ 하셨습니다. 


제가 듣고서 두뇌 속에 그 교훈을 받아 간직했으니, 

이와 같이 본 것이 바로 저의 과거의 서응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네가 말한바 그대로가 바로 여래의 서응이니라.”







다시 모리사리(牟梨師利)란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마침 제각(提胳)을 불 속에 넣어서
불을 치성하게 하려다가
문득 몸에 32상과 모든 종호(種好)를 구족하신 여래를 보았는데,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이 불을 섬기기보다는 여래의 행이 있거늘 어째서 배우지 않는가?’ 하시기에, 

제가 곧 그 부처님께 묻기를, 

‘어느 곳에 가서 배워야 하리까?’ 하였더니, 

‘기원(祇洹)의 석가모니부처님 처소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저의 과거의 서응입니다.”






다음엔 분진자교천(分畛者橋泉)이란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집[盧]에 이르러 꽃을 따서 가지고 돌아오려다가
몸에 32상과 모든 종호(種好)를 구족하신 여래의 몸을 보았는데,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꽃을 따되 너처럼 꽃을 따지 말지니
꽃을 땀으로 해서 무너뜨림이 있기 때문이니라’ 하시기에, 

제가 즉시 묻기를, 

‘꽃을 어떻게 따야 합니까?’ 하였더니,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손으로 따지 말고 그 가지를 흔들지 않고서 꽃을 따야 하리라. 

여래의 행을 배우는 자는 스스로 지혜의 손이 있어 그 꽃을 따느니, 

지혜의 손이란 부사의한 꽃을 딸 수 있는지라, 

일체 사람들이 다 바로 꽃인 만큼
그들을 교화한다면 열반을 얻게 할 수 있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저의 서응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마땅히 여래의 행을 배움에는 네가 배운 바와 같아야 하리라.”







다시 빈타시(邠陀施)라는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저자에 가다가 길 복판에 돈이 떨어져 땅에 있는 것을 보고
그 돈을 모아 가지려 하던 차에 마침 머리 위를 우러러보자, 

32상과 모든 종호(種好)를 구족하신 여래의 몸을 보았는데, 

나에게 물으시기를,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하시기에, 


■ 제가 대답하기를, 

땅에 떨어진 돈을 줍고 있습니다’ 하였더니,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어렵지 않지만, 

다섯 갈래[五道] 생사에 떨어진 일체 사람들을 줍되
그 가운데서 세어 보지도 않고
어떤 생각을 하지도 않는 이것이 어려운 일이노라’ 하셨으며, 


제가 또 묻기를, 

‘이것을 배우려면 그 무엇부터 듣고 무엇부터 배워야 하리까?’ 하였더니,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래의 행이란 것이 있노라’ 하셨으며, 

‘어느 곳에 가서 들어야 하리까?’ 하였더니, 


곧 말씀하시기를, 

‘기원(祇洹)에 계시는 석가모니부처님께 가서 들어라. 

전세(前世)에 지은 것인 만큼 금세에 얻을 수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이것이 저의 과거의 서응입니다.”







다음엔 분하주(分訶舟)라는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저자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잡향(雜香)을 사서 돌아오는데
집에까지 못 와서 여래를 보고 마음이 즉시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 부처님께 물으시기를, 

‘손에 가진 것이 무엇이냐?’ 하시기에, 

곧 대답하기를, 

‘잡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였더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향은 말할 것이 못되고
불가의향(不可議香)이란 유명한 향이 있어
그 향내가 위아래와 네 간방과 동서남북에 두루 풍기느니, 

이러한 향을 구해야 하리라’ 하셨으며, 

제가 즉시 묻기를, 

‘그렇다면, 

이 향은 뿌리ㆍ밑둥ㆍ줄기ㆍ가지ㆍ잎ㆍ꽃ㆍ열매
그 어디에서 실제로 향내가 나는 것입니까?’ 하였더니,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이 향은 뿌리도 없고 밑둥도 없고 줄기도 없고 가지도 없고 잎도 없고 꽃도 없고 열매도 없으면서
실재로 향내를 풍기니
마땅히 이 향을 구해야 하리라’ 하셨으며, 

즉시 또 묻기를, 

‘어느 곳에 가서 구하리까?’ 하였더니, 

곧 말씀하시기를, 

‘기원(祇洹)의 석가모니부처님 처소에 가서 여래의 행을 들어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제가 들은 바의 과거 서응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네가 들은 바 그대로이니라.”






다시 아누가유연(阿耨迦惟延)이라는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성(城) 밖에 가서 나무 아래 앉으매
마음이 안정되기를 마치 선정에 들어간 것 같이 하였는데, 

사방에 넓고 큰 광명이 비추는 그곳에서 한량없는 부처님들을 보았는가 하면, 

그 부처님들께서 다 말씀하시기를, 

‘이렇게 좌선(坐禪)을 해서는 옳지 않노라’ 하시기에, 

제가 즉시 그 부처님들께 물었더니, 


■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生] 것도 없고 사라지는 것도 없는 이것이 올바른 선정이라
보는 바가 있기 때문이니, 

보는 바가 없는 그것이 바로 보는 것이니
마음에 없으면 무엇에 얽매일 것이 있으랴. 

왜냐하면 그 마음에 아무런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선정을 닦을 것이니, 

여래의 행이라는 법이 있다. 

석가모니부처님께 가서 묻고 이 법을 배워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저의 과거의 서응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마땅히 그와 같이 배워야 하리라.”






다시 나나의다(羅那懿多)라는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마침 저자에 가서 금(金)을 사는데
저울로서 금을 달아보려고 하다가
문득 여래를 보았는데, 그 광명이 매우 밝았습니다. 


■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금을 달아서 무엇 하랴. 

저울질할 수 없는 법이 있으니
마땅히 이 법을 구해야 하네’ 하시기에, 

제가 즉시 묻기를 ‘저울질 할 수 없는 법이란 어떤 것입니까?’ 하였더니,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법은 저울로써 달 수 없는지라. 

마치 허공을 저울로써 달 수 없듯이
일체 법도 그러하노라’고 하셨으며, 


제가 다시 묻기를, 

‘즐거이 듣고자 합니다. 

어떻게 이 법을 배울 수 있으리까?’ 하였더니,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래의 행이란 것이 있으니
이것을 배우고 이것을 들어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들은 것이 바로 저의 과거의 서응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마땅히 들은 바 그대로 배울지니 이것이 다 전세(前世)의 공덕 때문에 얻어진 서응이니라.”






다시 아피아차(阿披阿遮)라는 바라문이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한밤중에 바깥으로 나가서 별을 관찰하다가
큰 광명이 있으므로 보니 여래인지라. 

땅에 엎드려 예배하자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별을 보되 너처럼 보아서는 아니되느니라’라고 하시기에, 

제가 즉시 물었더니, 


그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별을 쳐다보지 말라’ 하시고, 

그 부처님께서 다시 반문하시기를, 

‘지금 네가 보는 별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시기에, 

제가 즉시 대답하기를, 

‘모르겠습니다’ 하였더니,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별의 이름이 실진(悉盡)이라, 

네가 배울 바와 같이
모든 법이 들어가는 바를 배우면
보는 바 너의 일을 다 알리라’고 하시기에, 

곧 다시 묻기를, 

‘어느 곳에 가면 이 법을 들을 수 있으리까?’ 하였더니,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기원(祇洹)의 석가모니부처님 처소에 가야만 이 말씀을 들으리라’ 하시고는, 

홀연히 보이지 않아 그곳을 알 수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여래의 행을 들었으니, 

이것이 바로 저의 과거의 서응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마땅히 들은 바 그대로 배워야 하리라.”





다시 술사사리(術闍師利)라는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마침 농작물의 씨를 뿌리다가
문득 여래께서 앞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천 명의 비구 승가를 데리고 함께 계시는 것을 보았는데,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처럼 농작물의 씨를 뿌려서는 옳지 않노라’ 하시기에, 

제가 즉시 묻기를, 

‘어떻게 씨를 뿌려야 합니까?’ 하였더니, 

그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 ‘가져오지도 않고 내버리지도 않으니 이렇게 뿌린 씨라야만
그 씨가 나지도 않고 시들지도 않으니라’

라고 하시기에, 

곧 다시 부처님께 묻기를, 

‘어느 곳에 가서 이 법을 배우리까?’ 하였더니,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래의 행이란 것이 있으니, 이것을 배우고 들어라. 

이것을 듣고 나면 이러한 씨는
일체 법을 취할 것도 없고
취하지 않을 것도 없고 조작할 것도 없고 생각할 것도 없노라. 

이렇게 아는 이는 그 법이 나는 데가 없는지라. 

조작함이 없기 때문에 나는 것이 없고
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시들거나 사라짐이 없으며, 

씨가 없기 때문에 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부처님께 묻자오니 이것이 어떠한 서응이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것이 여래의 행의 서응이니 그 불수(佛樹) 아래 앉는 이라야 이러한 서응이 있느니라.”





다시 아화진(阿禾眞)이란 바라문이 있었는데, 

이 아화진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집을 나와 마을 입구에서 죽은 사람을 보고
문득 죽은 사람을 생각하면서 즉
시 무슨 말을 홀로 중얼거리다가 곧 부처님을 만나보았는데,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처럼 생각해서는 옳지 않으니, 

왜냐하면 나쁜 물질을 보고 곧 생각을 가지기 때문이라. 


■ 모든 법은 얻을 수도 없고 얻을 것도 없다고 마땅히 이렇게 생각할지니라. 


그 도를 얻은 이가 하는 일은 생각을 하지 않고 얻으려 하지도 않기 때문에
다른 생각이 있거나 두 가지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 없나니, 

생각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이 없다. 

이것이 도를 얻은 이가 짓는 생각이고, 

얻은 것 없는 그것이 바로 도를 얻음이며, 

두 가지 마음을 아는지라
이 때문에 구하는 것 없는 그것이
바로 도를 얻은 이가 하는 일이고, 

보는 것 없는 그것이 바로 도의 보는 것이니라. 


뒷날 법이 다하려고 할 적에 생각하는 것으로써 사람을 가르치되
혹은 무덤 사이에서 마른 흰 뼈를 보고 앉아서 곧 해탈하기를 생각하거나, 

혹은 오색 빛을 보고서 그 가운데로부터 계교하여 해탈하기를 구하거나, 

혹은 내쉬는 숨과 들이쉬는 숨을 계교하여 해탈하기를 구하리니, 

알아 두라. 

법이 다 되려고 할 적엔 이러한 일을 하리라’ 하시기에, 


제가 즉시 부처님께 묻기를, 

‘무엇을 배워야만 이러한 일을 여읠 수 있으리까?’ 하였더니,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땅히 도를 배우고 이러한 법을 배우되 여래의 행을 배울지니
여래께서 하시는 일, 그 법의 이름이 여래의 행인 만큼, 

이것을 듣고 배우려면 마땅히 석가모니부처님으로부터 들어야 하리라’ 하시고는, 

보이던 것이 홀연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것이 여래의 행의 서응이니, 

마땅히 도 자리[道地]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니라.”






다시 아유시진(阿惟示眞)이란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넓은 들판에 갔다가
많은 죽은 사람들 중에
혹은 축생들에게 뜯어 먹힌 것이 있고, 

혹은 냄새가 나거나 허물어진 것이 있고, 

혹은 푸른빛ㆍ붉은빛ㆍ검은빛으로 변한 것이 있음을 보고서
문득 스스로 생각에 잠겨 그 자리에 앉아서 이것을 계교하고 수습하려다가
곧 동방에서 오시는 부처님의 32상을 보고 먼 곳을 향하여 예배하였는데,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비록 이런 물건을 보더라도 생각할 수 있는가?’ 하시기에
제가 즉시 그 부처님께 묻기를, 

‘무슨 법을 배워야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생사를 벗어나게 할 수 있으리까?’ 하였더니,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래의 행이란 법이 있으니, 

이 법을 듣고 또 배워라. 

이것을 배운 자는 일체 모든 갈래를 위해 공덕을 지으니, 

석가모니부처님께 가면 구족히 들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슨 과거의 서응입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것이 여래의 행의 서응이니라. 

이 행을 배우는 자는 배우기 위해 불수 아래에 앉아 있느니라.”






다시 파리만다(波梨漫多)라는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밤에 그 문으로부터 빠져나왔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에
다섯 개의 횃불을 켜서 그것으로 촛불로 삼았으니, 

왜냐하면 험한 도랑과 구덩이와 갚은 우물을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곧 스스로 생각하기를, 

‘무슨 법을 배워야 일체 중생들을 위해 광명을 일으켜서 그 어두움을 없앨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던 차에 문득 부처님을 보았는데, 

부처님께서 허공에 서서 말씀하시기를, 

‘훌륭하고 훌륭하다, 

이는 훌륭한 사람이 하는 일이고
범인들이 하는 일이 아니나니, 


모든 진심ㆍ탐욕ㆍ우치와 아첨ㆍ허식 등 이러한 것이 없는 이라야
이 일을 생각할 수 있고, 

그 밖의 사람으로선 미칠 수 없는지라, 

평등한 마음으로 일체를 생각하고
또한 자주 일어나는 생각을 생각하지 않음이
마치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 앉아서 성문(聖文)조차 생각하지 않으심과 같네’ 하시고, 


그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여래의 행이 있으니 이 법을 듣고 배우면 너의 뜻에 구족하리라’ 하시기에, 

다시 그 부처님께 묻기를, 

‘누구에게 들어야 하리까?’ 하였더니,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석가모니부처님으로부터 들을지니, 

그 들어야 할 자는 모두 거기에 가서 듣느니라. 

그리고 산ㆍ언덕ㆍ도시ㆍ촌락과 성곽(城郭)ㆍ군국(郡國)에서도
다 이 법 가운데서 보고 듣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끝나자 홀연히 그곳을 알 수 없었으니, 

이것이 무슨 서응이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네가★★ 마땅히 여래의 행을 듣고 배워야 하기 때문에 이 서응이 있었던 것이니, 

그 보살로서 배워야 할 것이 모두 이 법에 있느니라.”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몇 가지 행의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경계처럼 그 행도 그러한지라, 

그 행이 부처님의 경계와 다름이 없어 모든 법이 다 이 행을 따르나니, 

마음을 명령하는 서응과 같으니, 

다시 나에게 물어라. 

이 법의 미묘하고도 심오함이 이러한 만큼
이것은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느니라.”





다시 실달슬(悉達膝)이란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수백천 바라문들과 함께 사당에 나아가 제사를 지내면서
깊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어떻게 제사를 지내야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다 해탈하여
그 애쓰는 고통을 없앨 수 있을까?’라고 핬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다가 문득 여래의 광명과 상(相)과 모든 종호(種好)를 보았는데,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훌륭하고 훌륭하다, 

네가 이러한 생각을 했으니, 

마땅히 네가 하려는 그 생각대로 해야 하리라’ 하시고, 


그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사위국(舍衛國) 기수급고독원[祇洹阿難邠祇阿藍]의 석가모니부처님 처소에 가면
그 제사에 대한 뜻을 자세히 말씀해 주실 것이며, 

여래의 행이란 법이 있으니, 

그 법을 듣고 배워라. 

이 법은 다 과거 모든 부처님들께서 설하신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 “어떻게 제사를 지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보살이 음식으로써 사람들에게 보시하는 것으로 이 제사를 지내어 삼계(三界)를 해탈시킴이요, 

의식의 제사가 있나니 스스로 구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음이요, 

인욕의 제사가 있으니 나쁜 마음으로 일체 중생을 대하지 않음이요, 

정진의 제사가 있으니 이는 5도(道)를 벗어나려 함이요, 

삼매의 제사가 있으니 어떤 인연을 지어 희망을 가지지 않음이요, 

다문(多聞)의 제사가 있으니 온갖 문자[名身]와 글귀[數身]로써 바라밀의 지혜를 구족하려 함이요, 

법시(法施)의 제사가 있으니 사람의 욕심을 행하는 자에게 법으로써 일체를 교화함이라. 


어떤 축생이 법을 듣고자 하더라도 중간에 버리지 않음은 물론
그를 위해 경을 설해 주고 물질[色]로써 설해 주지 않으며, 

법의 인자한 마음으로 일체를 교화해야 하리라.”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훌륭한 사람은 그 몸을 아끼지 않고서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각각 안온케 하기 위해 근심하지 않고 사람들을 교화하나니, 

왜냐하면 다시 좋은 몸을 얻기 때문이니라. 


마치 마니(摩尼) 구슬을 물에 씻어 더욱 좋게 만들어 두면 그 왕의 아들들이 모두 사랑하고 기뻐하는 것과 같으니, 

왜 사랑하고 기뻐하는가 하면 티와 더러움이 없기 때문이라. 

그 법사(法師)도 이와 같아서 비록 생사를 겪더라도 다시 몇 배의 좋은 몸을 얻느니, 

왜냐하면 그 몸이 나쁨도 없고 비방할 이도 없기 때문이며, 

왜냐하면 항상 부처님을 찬탄하기 때문에
비록 부처님과의 거리가 멀더라도 항상 친근하려 하며, 

왜냐하면 이미 구하는 것 없이 곧 제사 지나는 것이 제사이다. 

신심을 내는[三拔致] 이도 제사가 있을 뿐 다른 것이 없으니, 

왜냐하면 원한의 마음이 없기 때문에 일체에게 나쁜 뜻이 없느니라. 

보살이 하는 이 제사보다 더 훌륭한 것이 없는 만큼 이것을 염하는 자는 이 때문에 훌륭하고, 

염하지 않는 자는 훌륭한 것이 없나니, 

공덕으로써 자신과 다른 사람을 길러내기 때문에 보살의 뜻이니라. 

왜냐하면 법으로써 싸우지 않으므로 투쟁이 없고 얽매임이 없고 갇힘[閉]이 없으며, 

이 제사를 지내는 자에겐 그 누구도 진심[瞋]을 낼 자가 없으므로
어떤 법을 계교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느니라. 

이것이 바로 훌륭한 사람의 하는 일인 만큼, 

자기가 처할 바를 관찰하여 공덕 가운데 어떤 생각을 갖지도 않고 파괴하여 죄를 짓지도 않나니, 

왜냐하면 그 근본을 잃어버리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허물이 없으며, 

또 보살의 높은 법이란 능히 교화받을 자를 오게 하여 기뻐하기도 하고 게을리 하지도 않아
사람들에게 성내는 마음을 갖지 않는지라. 

왜냐하면 마하연(摩訶衍)은 이러한 것을 따라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마하연이라 함이니, 

그 마하연이란 것을 생각하지도 않느니라.”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실달슬이여, 

네가 지내던 그 본래의 제사를 버리고 이러한 제사를 지낼지니, 

이것이 바로 보살 제사의 서응(瑞應)이고, 

네가 보았던 여래처럼 이 모두 과거세에 마하연을 닦음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라. 

왜냐 하면 눈을 뜨고서 부처님을 본 것은 다 과거의 서응이기 때문이니라.”








다시 난두다라(難頭多羅)라는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흐르는 물에 어떤 사람이
외나무 다리[一木橋] 놓는 것을 보고서 생각하기를, 

‘이 사람의 하는 일이 매우 적구나. 

왜 좀 넓고 크게 하지 않을까?’ 하였으니, 

왜냐하면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다 건너갈 수 있게 하려는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다가 마침 동방에서 백 부처님께서 나타나심을 보았는데, 

그 부처님들께서 다 말씀하시기를, 

‘훌륭하고 훌륭하다, 

이야말로 훌륭한 사람의 생각이로다. 


■ 일체 사람들로 하여금 건너게 할 수 있는 것 역시 무수한 사람들의 길이라. 


이제 석가모니부처님께서 기원(祇洹)에 계시니, 

그대가 그곳에 가서 법을 모두 받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본래 나의 서응이니, 

여래를 뵈옵고 그 교훈을 들은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그대가 말한 바와 같노라.”






다시 전울다사리(旃鬱多師利)라는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성문 바깥을 나갔더니
어떤 거사[迦羅越]가 저에게 말하기를, 

‘나의 집에 들러 주신다면 당신에게 2백만을 보시하리다’ 하기에, 

곧 그를 따라가 집에 들어가니, 

크고 높은 자리가 있는지라. 

저를 자리에 앉게 하고 향을 살러 공양하는 동시에
음식을 갖춰 대접하고서
과연 2백만을 보시[達儭]하므로, 

제가 즉시 생각하기를, 

‘무슨 방편을 세워야 이 보시보다 더할까? 

만약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청정한 보시를 하면, 

보다 더 특이하리라’고 이렇게 생각하다가
문득 동방으로부터 천 부처님께서 날아오시는 것을 보았는데, 

여래께서 다 앞에 서서 말씀하시기를, 

‘훌륭하고 훌륭하다. 

이야말로 훌륭한 사람이 하는 것과 같이
일체 사람들을 위해 하려고 하거든
곧 기원(祇洹)의 석가모니부처님 처소에 가라. 

그대를 위해 자세히 그 법을 설하여 주시리라. 


만약 청정함을 얻기만 한다면 그 보시를 받을 수 있고, 

받는 자는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다 안온하게 하리라. 

왜냐하면 삼천대천세계가 다 열 가지 선한[十善] 일을 받들어 행하므로
그 보시를 받는다 하더라도

■ 보살이 뜻을 내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위해 보시를 받는 것보다는 못하리니, 

이것이 위의 하는 일에 비하면 휠씬 뛰어나기 때문이니라’고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황홀히 그곳을 알 수 없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것이 곧 여래 행의 서응이니, 

왜냐하면 과거에 시방 부처님들을 공양했기 때문에 이 법은 체득하는 것이니라.”





다시 염부사리(閻符師利)라는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산중에서 마치 선(禪)을 얻은 것처럼 안심하고 앉아 있다가
공중에 계시는 오백 부처님들을 보았더니, 

사방이 다 향기로움이 천상의 향내와 같았는데, 

그 부처님들께서 다 저의 이름을 부르고 말씀하시기를, 

‘훌륭하고 훌륭하다. 


■ 네가 구하는 바 그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을 구하고
다른 선정을 닦지 말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무엇이냐 하면, 

일체 사람들을 모두 인자한 마음으로써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남이란 생각을 하지 말고
부사의한 선정을 닦으며, 

이 선정을 닦되 마음에 어떤 생각을 갖지 말고
일체를 다 안온케 하기 위해
남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가 하면, 

자신이란 생각도 하지 말지니라’

고 하셨으며, 


그 여러 부처님들은 또 말씀하시기를, 

‘기원(祇洹)의 석가모니부처님께 가면 마땅히 그대를 위해 그 법을 갖춰 말씀하시리니, 

여래의 행이란 것을 배워라. 

이것을 배운 자는 있는 곳마다 할 일을 할 수 있느니라’고, 

이렇게 말씀하신 뒤엔 모든 부처님들의 곳을 알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저의 과거의 서응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과연 네가 본 바와 다름이 없노라. 

왜냐하면 불수(佛樹) 밑에 앉아야 할 자는 곧 이러한 서응이 있기 때문이니, 

이러한 서응은 이미 과거세에 7천 부처님들을 공양했기 때문이니라.”





다시 하사만(荷沙漫)이란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여러 바라문들을 보았는데,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은 바라문들이
갠지스 강 물에서 목욕하고 나서 저에게 말하기를, 

‘그대가 다시 목욕을 한다면 몸에 있는 오로(惡露)와 뭇 악이
죄다 물을 따라 제거되리라’고 하기에, 

문득 스스로 생각하기를, 

‘어찌 목욕을 한다 해서 몸의 모든 뭇 악이 다 물을 따라 제거될 수 있으랴’고, 

이렇게 생각하다가 마침 허공에 계시는 부처님을 보았는데,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무엇을 생각하느냐’ 하시기에, 

제가 즉시 대답하기를, 

‘여러 바라문들이 저로 하여금 목욕을 하면
몸의 뭇 악이 죄다 물을 따라 제거될 것이라 하므로
앉아서 이 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였더니,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기원의 석가모니부처님 처소에 가면 너를 위해 법[現法]을 설해 주시므로, 

모든 뭇 악이 죄다 제거되리라’고 하시며, 

그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유명한 법이 있으니 이 법은 아주 깊어 밑이 없고, 

그 물이 매우 아름다운 만큼
여기에서 목욕하는 자는 다 청정결백하게 되는지라. 

만약 목욕하려는 자가 이 물 속에서 목욕하면 뭇 삿된 악을 소멸할 수 있고, 

목욕한 뒤엔 모든 하늘ㆍ사람과 일체 중생이 다 안온하게 되고, 

법으로써 교화하되 두루하지 않는 곳이 없나니, 

왜냐하면 과거 부처님들께서도 다 요기에서 목욕하신지라. 

이 때문에 이 서응을 나타내노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마땅히 여래의 행이란 것을 들을지니, 

이것이 바로 과거의 서응이니라.”






다시 유기선(惟耆先)이란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꽃을 가지고 바라문의 신사(神祠)에 가서
그 신사 문에 들어가다가
여래께서 공중에서 날아와서 멈추어 계시는 것을 보았는데, 

그 부처님께서 저에게 묻기를, 

‘이 꽃을 가지고 누구에게 줄 것인가?’ 하시기에, 

곧 대답하기를, 

‘신(神)에게 올리려고 합니다’ 하였더니,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천중천(天中天)이란 여래께서 계시니, 이 꽃을 올려 공양할지니라. 

왜냐하면 이것으로 인하여 공덕이 있게 되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며, 

곧 아뇩다라의 선정을 얻기 때문이니라’고 하시므로, 

제가 곧 꽃을 받들어 공양하려 하니, 

그 꽃이 모두 부처님으로 변화하여
다 자마금(紫磨金) 빛에다가 그 광명이 일곱 자[尺]이고 32상(相)과 80종호(種好)를 구족하며, 

여러 부처님들께서 다 말씀하시기를, 

‘그 마음이 공덕에 견고한 자는 이러한 서응을 이룩하노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즉시 또 묻기를, 

‘어떤 방편을 닦아야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을 짓게 됩니까?’ 하였더니,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 ‘만약 보살로 부처님을 보는 자가 있다면 다 이것으로 인하여 공덕을 짓기 마련이라. 


그 중에 화신 부처님[化佛]을 보는 자도 이것으로 인하여 공덕을 짓고
그 중에 절을 보는 자도 이것으로 인하여 공덕을 짓고, 

그 중에 부처님의 앉고 일어나는 곳을 보는 자도 이것으로 인하여 공덕을 짓고, 

그 중에 부처님의 경행(經行)하는 곳을 보는 자도 이것으로 인하여 공덕을 짓고, 

그중에 부처님의 음성을 듣는 자도 이것으로 인하여 공덕을 짓고, 

그중에 위아래와 네 간방과 사방에 부처님의 훈계하시는 일체를 듣는 자도 이것으로 인하여 공덕을 짓고, 

그 중에 부처님의 사리(舍利)를 모시는 자도 이것으로 인하여 공덕을 짓고, 

그중에 늙고 병들고 죽음을 보고서 스스로 계교하는 자도 이것으로 인하여 공덕을 짓고, 

국토의 도시ㆍ촌락이 파괴되거나 곡식이 귀하며 인민들이 굶주림을 보고서 스스로 계교하는 자도 이것으로 인하여 공덕을 지으니, 

왜냐하면 앞에 말한 이 모든 일들을 생각하기 때문에
이것으로 인하여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이 있기 때문이니, 

이른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공덕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사갈말(沙竭末)이란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바다에 들어가 목욕하다가 마침 이런 생각이 들었고, 

곧 만 부처님을 보았는데, 

모두 말씀하시기를, 

‘그대의 생각처럼 바다를 건너려 해서는 부당하노라’고 하시며, 

또 제가 스스로 생각하기를, 

‘그 나머지 목욕하는 자들도 역시 여기에서 들으면
마땅히 이런 이상함이 있어서
바다를 건너거나 목욕하고자 생각하리라’고, 이렇게 생각하니, 


다시 만 부처님들을 보게 되어 모두 말씀하시기를, 

‘그대의 생각처럼 바다를 건너거나 목욕하려 해서는 부당하니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즉시 묻기를, 

‘어떤 묙욕을 해야 합니까?’ 했더니,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법을 벗어나는 도가 있으니, 

그 법 가운데 목욕하여라. 

이러한 목욕을 한 자는 이미 제도되었느니라’고 하시며, 

그때 제가 다시 묻기를, 

‘세간을 제도할 이가 누구입니까?’ 했더니, 

대답하기를, 

‘부처란 이가 이미 제도하셨느니라’고 하시며, 

또 제가 묻기를, 

‘어떤 법으로서 누구를 따라 배워야 합니까?’ 했더니, 

‘석가모니란 부처님께서 기원에 계시니 그 부처님을 따라 배우고 물어라. 

네 소원대로 모두 갖추어 들을 수 있고, 

또 너를 위해 다 설하시어 너로 하여금 깨닫게 하리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을 듣고 나선 홀연히 그곳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곧 부처님께 물었다.

“어떤 법이 제도할 수 있는 것입니까? 

일체를 제도하는 모든 법이란 바라밀이 곧 그것입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 “네가 모든 법을 제도하려면 마땅히 일체 사람들에게 평등한 마음을 가져야 하리라. 

왜냐하면 일체 사람들의 생사를 제도하려고 생각하는 것이
마치 바다를 건너는 것과 같으며, 

이 일을 배워 일체 모든 법을 제도할 수 있으며, 

또한 법이 있음을 생각하지도 않고 법이 없음을 생각하지도 않아야 하니, 

이렇게 한 후에는 일체 사람들을 위해 법을 설할 수 있으리라.”



부처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셨다.

“사갈말(沙竭末)이여, 


보살이 한 가지 일로써 모든 지혜를 구족케 하나니, 

한 가지 일이 무엇이냐 하면, 

세간의 나쁜 법이 다 되려고 할 그때에
■ 그 법을 제정하여 일체를 가르쳐
법을 끓어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 한 가지 일이라, 

이것으로써 모든 지혜를 구족케 하며, 



또 두 가지 일이 있어서 보살이 이것을 배워 빨리 부처를 체득하나니, 

두 가지가 무엇이냐 하면, 

■ 모든 법을 내 것이라든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일체 모든 법을 보되 자연 그대로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것이 두 가지 일이다. 




또 세 가지 일이 있으니, 

만약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것을 받들어 행한다면 빨리 성불할 수 있나니, 

세 가지가 무엇이냐 하면, 

■ 모든 법을 광명처럼 보아서 모든 법을 밝히는 것과, 

많음도 없고 적음도 없어서 많다거나 적다는 생각을 하지 않음과, 

이미 법에 순응하여 한결같이 다른 마음을 갖지 않음이다. 

왜냐하면 모든 법은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이 세 가지로 인하여 부처라 이르나니 이것이 바로 세 가지 일이다. 




또 네 가지 일이 있으니, 

네 가지 일이 무엇이냐 하면, 

■ 첫째 모든 법을 다 가지는 것이고, 

둘째 항상 여래께 공덕을 짓는 것이고, 

셋째 마음을 허공처럼 가져 일체 남이란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고, 

넷째 공양하는 자와 공양하지 않는 자에게 그 마음의 다름이 없는 것이라. 

만약 남자나 여인이 이 법을 받들어 행한다면 빨리 부처에 이르리니, 

이것이 네 가지 일이며, 



또 다섯 가지 일이 있으니, 

다섯 가지 일이 무엇이냐 하면, 

■ 첫째 모든 경계에 아무런 생각이 없음이라. 

이른바 경계란 눈의 빛과 귀의 소리와 코의 냄새와 혀의 맛과 몸의 부드러움[細滑]과 뜻의 얻고자 함인데
이러한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고, 

둘째 항상 불법(佛法)에 있어서 공덕을 짓는 것이고, 

셋째 같은 보살을 보면 그 마음을 즐겁게 함이라. 왜냐하면 소용이 실로 크기 때문이고, 

넷째 일체 중생들에게 허식하는 마음이 없음이라. 왜냐하면 내가 제도해야 하기 때문이고, 

다섯째 그러면서도 이 가운데 생각하는 것이 없음이니, 

이것이 다섯 가지일이니라.”


사갈말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다섯 가지 일을 받들어 행하는 자는 빨리 성불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 스스로가 성불하리니, 

이것이 생사의 바다를 건너는 것인 만큼
법으로써 일체 중생들 가르치기를 여래처럼 한다면
제도하지 못하는 것이 없으며, 

그 지극한 마음으로 보살의 공덕에 굳게 머무는 자도
곧 이 서응을 얻으리라. 


그러나 만약 생각이 있으면
중도에 증득하였다 할까 염려되지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이러한 법은 근심하지 말고
여래의 열 가지 힘을 구족해야 한다’고 하노라.”


모든 들은 이들이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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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스크리트 tathāgata에서 마지막 a가 빠진 것의 음역으로서 여래(如來)와 같은 뜻이다. 

이하 달살아갈(恒薩阿竭)은 여래로 번역한다.


○ [pt op tr]





Lab value 불기2564/02/21/금/16:40

[오래된조각글재정리]

☎잡담☎ = 순전한 잡담부분

● = 논의부분

사이트가없어진개인촬영사진 = 사진파일명만 기재



















































♥아래 부분은 현재 작성 및 정리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vlly1043

◈Lab value 불기2563/06/26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John-Henry-Twachtman-abandoned-mill-1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Flowers_-_Uncategorised_Garden_plants_187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Palau_Capitol_Complex,_Olbiil_Era_Kelulau_Building


♥Yendegaia National Park ,Chile



○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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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63-06-26
θ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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