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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6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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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8-001♧
중아함경_핵심
중아함경_K0648_T0026_001
Serge Gainsbourg - I'm The Boy
Gilbert Becaud - Mr Winter Go Home
La Pompe Moderne - La Boule
● [pt op tr] fr sfed--중아함경_K0648_T0026.txt ☞중아함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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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ed--중아함경_핵심
K0648V17P1030b23L;
人旣出得信善法持戒布施多聞智慧修習善法
인기출득신선법지계보시다문지혜수습선법
彼於後時信固不失持戒布施多聞智慧堅固不失住
피어후시신고불실지계보시다문지혜견고불실주
善法中知苦如眞 知苦習知苦滅知苦滅道如眞
선법중지고여진 지고습지고멸지고멸도여진
如是知如是見
여시지여시견
欲漏 心解脫
욕루 심해탈
有漏無明漏 心解脫
유루무명루 심해탈
解脫已便知解脫
해탈이편지해탈
生已盡 梵行已立 所作已辦 不更受有
생이진 범행이립 소작이판 불경수유
知如眞是
지여진시
謂有人出已而住 住已而觀 觀已而渡 渡已至彼岸 至彼岸已
위유인출이이주 주이이관 관이이도 도이지피안 지피안이
謂住岸梵志
위주안범지
-- 4) 수유경(水喩經)
사람이 이미 물 속에서 나와
믿음의 선법을 얻고
지계 보시 다문 지혜의 선법을 닦아 익히며,
뒷날에 가서도
믿음이 견고하여
그것을 잃지 않고,
지계 보시 다문 지혜까지도
견고하여 잃지 않는다.
그리하여
선법에 머물면서
괴로움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괴로움의 발생
괴로움의 소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
그는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았으므로
욕루(欲漏)에서 심해탈(心解脫)하고,
유루(有漏)와 무명루(無明漏)에서 심해탈하며,
이렇게 해탈한 뒤에는
곧 해탈한 줄을 안다.
그리하여
생명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성립되었으며,
해야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뒷세상의 생명을 받지 않음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것을 어떤 사람이
나온 뒤에는 머물고, 머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르고,
저쪽 언덕에 이른 뒤에는 그 언덕에 머무는 범지라고 하는데,
>>>
1. 칠법품(七法品) 제 1 ①
1) 선법경(善法經)1) 제 1
[초 1일송(日誦)]
>>>
"만일 어떤 비구가
일곱 가지 법(法)을 성취한다면,
곧 현성(賢聖)의 도(道)에
환희를 얻어서
바로 누진(漏盡)의 경지에
나아가게 되리라.
어떤 것이 그 일곱 가지인가 하면,
이른바
비구가
법을 알고[知法],
뜻을 알며[知義],
때를 알고[知時],
절제할 줄 알며[知節],
자기를 알고[知己],
무리를 알며[知衆],
사람의 잘나고 못남을 아는 것[知人勝]이니라.
어떤 것을 비구가 법을 안다고 하는가 하면,
정경(正經) 가영(歌詠) 기설(記說)
게타(偈) 인연(因緣) 찬록(撰錄)
본기(本起) 차설(此說) 생처(生處)
광해(廣解) 미증유법(未曾有法) 및 설의(說義)를
아는 것이니,
이것이 비구가 법을 아는 것이니라.
>>>
어떤 것을 비구가
뜻을 아는 것이라 하는가 하면,
이른바
비구가 이러이러한 말의 뜻에 대하여,
이것은 저런 뜻이고
이것은 이런 뜻임을
아는 것이니,
이것을 비구가 뜻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
어떤 것을 비구가 때를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하면,
이른바
비구가
지금은 하상(下相)을 닦을 시기이고,
지금은 고상(高相)을 닦아야 할 때이며,
지금은 사상(捨相)을 닦아야 할 때임을 아는 것이니,
>>>
어떤 것을
비구가 절제할 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하면,
이른바
비구가 절제할 줄 알아
마시거나 먹거나
떠나거나 머물며,
혹은 앉거나 눕거나
말하거나 침묵하며,
혹은 대소변을 보며,
잠을 덜 자고
바른 지혜를 수행하는 것이니,
이것을 비구가
절제할 줄 아는 것이라고 한다.
>>>
어떤 것을
비구가 자기를 아는 것이라 하는가 하면,
이른바
비구가 스스로 나에게는
저러한
믿음
계율
지식과
보시
지혜
변재(辯才)
아함(阿含),
그리고 소득이 있음을
아는 것이니,
이것을 비구가 자기를 아는 것이라고
한다.
>>>
어떤 것을 비구가 무리를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하면,
이른바
비구가
'이것은 찰리(刹利)의 무리이고
이것은 범지(梵志)의 무리이며,
이것은 거사(居士)의 무리이고
이것은 사문(沙門)의 무리이다.
나는 저 무리들이
이와 같이 다니고
이와 같이 머무르며
이와 같이 앉고
이와 같이 말하며
이와 같이 침묵하는지를 안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을 비구가
무리를 아는 것이라고 한다.
>>>
이른바
법을 알고
뜻을 알며
법에 향하고
법에 머물며,
법을 따르고
법대로 실천하는 사람에도
또 두 종류가 있으니,
자기 자신을 요익(饒益)하게 하고
또 남도 요익하게 하며,
많은 사람을 요익하게 하고
세간을 불쌍히 생각하고 가엾게 여기며,
하늘과 사람을 위해
이치를 구하거나
요익하게 되기를 바라며
안온하고 쾌락해지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고,
자기 자신도 요익하게 하지 않고
또 남도 요익하게 하지 않으며,
많은 사람을 요익하게 하지도 않고
세간을 불쌍히 생각하고 가엾게 여기지도 않으며,
하늘과 사람을 위해
이치를 구하거나
요익하게 되기를 바라지도 않으며,
안온하고 쾌락해지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도 있다.
만일 자기 자신도 요익하게 하고
남도 요익하게 하며,
많은 사람을 요익하게 하고
세간을 불쌍히 생각하고 가엾게 여기며,
하늘과 사람을 위해
이치를 구하거나
요익하게 되기를 바라며,
안온하고 쾌락해지기를 바라는 사람이면,
이 사람은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으뜸이 되고
큰 사람이 되며
위[上]가 되고
최고가 되며
훌륭한 사람이 되고
존경받는 이 되며
미묘한 사람이 된다.
>>>
2) 주도수경(晝度樹經)2) 제 2 [초 1일송]
>>>
이런 이치와 같이
성인[聖]의 제자들에게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여
그들은 출가하기를 생각하면
이 때 거룩한 제자들을
엽황(葉黃)이라 부르는데,
마치 삼십삼천에 있는
주도수 나뭇잎이 시들어
누렇게 되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다시 거룩한 제자들이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捨舍]
집 없이 도를 배우게 되면,
이 때 거룩한 제자들을
엽락(葉落)이라 부르는데,
마치 삼십삼천에 있는
주도수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다시 거룩한 제자들이
탐욕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며,
각(覺)도 있고 관(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초선(初禪)을 얻어 성취하여 노닐게 되면,
이 때 거룩한 제자들을 엽환생(葉還生)이라 부르는데,
마치 삼십삼천에 있는 주도수 나뭇잎이
다시 나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또 거룩한 제자들이
각과 관이 이미 그쳐
안으로 고요히 한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第二禪)을 얻어
성취하여 노닐게 되면,
이 때 거룩한 제자들을 생망(生網)이라 부르는데,
마치 삼십삼천에 있는
주도수에 잎이
그물처럼 덮는 것과 같은 경우이니라.
또 거룩한 제자들은
기쁨의 탐욕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저 성인이 말한
성인의 평정[捨] 기억[念] 즐거움에 머묾[樂住] 공(空)을 갖추어
제 3 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닐게 되면,
이때 거룩한 제자들을 생여조훼(生如鳥喙)라 부르는데,
마치 삼십삼천에 있는 주도수가
새부리 같은 꽃봉오리를 내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또 거룩한 제자들은,
즐거움도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근본은
이미 다 멸한 상태이다.
그리하여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捨] 기억 [念] 청정(淸淨)이 있는 제 4 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닐게 되면,
이 때 거룩한 제자들을 생여발(生如鉢)이라 부르는데,
마치 삼십삼천에 있는 주도수가
발우와 같은 꽃을 피우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다시 거룩한 제자들은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하고,
심해탈(心解脫)과 혜해탈(慧解脫)을 이루어
현재에 있어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며
성취하여 노닌다.
그래서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梵行)이 이미 서고
해야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뒷세상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뜻을 알게 되면,
이 때 거룩한 제자들을
진부개(盡敷開)라 부르는데,
마치 삼십삼천에 있는 주도수가
꽃을 활짝 피운 것과 같은 경우이다.
그가 번뇌가 다한
아라하비구(阿羅訶比丘)가 되면
삼십삼천 대중들은
선법정전(善法正殿)에 모여
칭송하고 찬탄한다.
'저 아무개 높은 제자는
아무개 마을에서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게 되었다.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하고
심해탈과 혜해탈을 성취하여
현재 세계에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해 노닌다.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서고
해야 할 일을미 마쳐
다시는 뒷세상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뜻을 알았다.'
이것을
번뇌가 다한 아라하(阿羅訶)의 모임이라 하나니,
마치 삼십삼천 대중들이
주도수 밑에 함께 모인 것과 같으니라."
>>>
3) 성유경(城喩經)4) 제 3 [초 1일송]
>>>
이와 같이
만일 거룩한 제자들이
7선법(善法)을 얻는다면
4증상심(增上心)을 체득하기가 어렵지 않느니라.
그 때문에
거룩한 제자들은
마왕이 틈을 노릴 대상이 되지 않고,
또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따르지 않으며,
더러움에 물들지도 않고,
다시는 뒷세상의 생명을 받지 않게 된다.
>>>
거룩한 제자들이
7선법을 얻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거룩한 제자들은
견고한 믿음을 얻어
여래에게 깊이 의지하며,
믿음의 뿌리가 이미 확립되어
끝내 다른 사문(沙門) 범지(梵志)
혹은 천(天)이나 마군[魔]이나 범(梵)이나
다른 세간을 따르지 않는다.
이것을 거룩한 제자들이 첫 번째 선법을 얻은 것이라 한다.
또 거룩한 제자들은
항상 스스로 부끄러워할 줄 알아,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은 더러운 번뇌로서
그것은 모든 악한 과보를 받고
생사의 근본을 만드는 것이므로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인 줄 안다.
이것을 거룩한 제자들이 두 번째 선법을 얻은 것이라 한다.
>>>
...
남에게 부끄러워해야 할 것인 줄 안다.
이것을 거룩한 제자들이 세 번째 선법을 얻은 것이라 한다.
>>>
또 거룩한 제자들은
항상 정진(精進)을 실천하여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끊고
모든 선법(善法)을 닦으며,
항상 스스로 뜻을 일으켜
전일(專一)하고
견고하게 하여
모든 선의 근본을 위해서
방편을 버리지 않는다.
이것을 거룩한 제자들이 네 번째 선법을 얻은 것이라 한다.
>>>
또 거룩한 제자들은
널리 배우고 많이 들은 것을
받아 지녀 잊지 않으며
쌓고 모으며
널리 듣는다.
...
이러한 모든 법을
널리 배우고
많이 들어 익히기를
천 번에까지 이르고,
마음이 생각하고
관(觀)하는 바대로
밝게 보고 깊게 사무친다.
이것을 거룩한 제자들이 다섯 번째 선법을 얻은 것이라 한다.
또 거룩한 제자들은
항상 기억[念]을 행하되
바른 생각[正念]을 성취하고,
오래 전부터 익혀온 바와
오래 전부터 들은 바를
항상 기억[憶]하여
잊지 않는다.
이것을 거룩한 제자들이 여섯 번째 선법을 얻은 것이라 한다.
>>>
또 거룩한 제자들은
지혜를 닦고 행하여
흥하고 쇠하는 법을 관하고,
이와 같은 지혜를 얻어서는
거룩한 지혜로
밝게 통달하여 분별하고
밝게 깨달아
그로써 진정 괴로움을 없앤다.
이것을 거룩한 제자들이 일곱 번째 선법을 얻은 것이라 하느니라.
거룩한 제자들이
4증상심(增上心)을 체득하기가
어렵지 않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거룩한 제자들은
탐욕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각(覺)도 있고 관(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初禪)을
체득하고 성취하여 노닌다.
>>>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 2 선(第二禪)을
체득하고 성취하여 노닌다.
>>>
성인의 평정[捨] 기억[念] 즐거움에 머묾[樂住] 공(空)을 갖추어
제 3 선을
체득하고 성취하여 노닌다.
>>>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不苦不樂] 평정[捨] 기억[念] 청정(淸淨)이 있는
제 4 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이것이 거룩한 제자들은
네 번째 증상심을 체득하기가 어렵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거룩한 제자들이
일곱 가지 선법을 얻으면
네 가지 증상심을
체득하기가 어렵지 않다.
>>>
따라서
마왕이 틈을 엿보지 못하고,
또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따르지 않으며,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또 다시는 뒷세상의 생명을 받지 않느니라.
왕의 변성에
망보는 다락집을 세우고
땅을 견고하게 쌓아 무너지지 않게 하여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하는 것처럼,
거룩한 제자도
견고한 믿음을 얻어
여래에게
깊이 의지하고
믿음의 뿌리가 이미 세워져서
끝내 다른 사문 범지나
혹은 하늘 마군 범(梵)이나
다른 세간을 따르지 않나니,
이것을 거룩한 제자가
믿음이라는 망보는 다락집을 얻어
악과 불선을 없애고
모든 선법을 닦는 것이라고 한다.
>>>
4) 수유경(水喩經)5) 제 4 [초 1일송]
>>>
"사람이 항상 누워 있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혹 어떤 사람은
착하지 않은 법에 덮이고
더러움에 물들게 되어
나쁜 법의 과보를 받고
생사의 근본을 짓는데,
이것을 어떤 사람은
항상 누워 있다고 하는 것이니,
마치 사람이 물에 빠진 채
물 속에 누워 있는 것처럼
내가 그 사람에 대해 말한 것도
또한 그와 같은 것이다.
이것이 첫 번째 물과 관련된
사람에 대한 비유로서
세상 이치도 또한 그러하다.
>>>
사람이 물에서 나왔다가 다시 빠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이 이미 물에서 나왔다고 말한 것은
믿음의 선법(善法)을 얻고
지계(持戒) 보시(布施) 다문(多聞) 지혜(智慧)의 선법을 닦아 익혔으나
그가 뒷날에
믿음을 잃고
견고하지 못하며,
지계 보시 다문 지혜까지도 잃고
견고하지 못하게 된 것을
사람이 물에서 나왔다가 다시 빠졌다고 하나니,
마치 사람이 물에 빠졌다가
이미 나왔으나 도로 빠지는 것처럼
내가 그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
>>>
사람이 이미 나와 머문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사람이 이미 나왔다는 것은
믿음의 선법을 얻고
지계 보시 다문 지혜의 선법을 닦아 익힌 것으로
뒷날에 가서도
믿음이 견고하여 그것을 잃지 않고
지계 보시 다문 지혜까지도 견고하여 잃지 않는 것을
어떤 사람이 이미 물에서 나와 머문다고 하는 것이니,
마치 어떤 사람이 물에 빠졌다가 이미 나와 머무는 것처럼
내가 그 사람에 대해 말한 것도
또한 이와 같다.
>>>
사람이 나온 뒤에는 머물고 머문 뒤에는 살펴본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사람이 이미 나와
믿음의 선법을 얻고
지계 보시 다문 지혜의 선법을 닦아 익힌 것으로,
뒷날에 가서도
믿음이 견고하여 그것을 잃지 않고,
지계 보시 다문 지혜까지도 견고하여 잃지 않으며,
선법 가운데 머물면서
괴로움[苦]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괴로움의 발생[苦習]
괴로움의 소멸[苦滅]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苦滅道]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
그는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았으므로
3결(結)이 곧 다 끊어진다.
신견결(身見結)
계취결(戒取結)
의결(疑結)의 3결이 이미 다하면
수다원(須陀洹)을 얻어
악법에 떨어지지 않고
결국 정각(正覺)에 나아가
마지막에는 7유(有)를 받는데
천상과 인간에
일곱 번 오가기를 마치면
곧 괴로움의 끝[苦際]을 얻는다.
>>>
사람이 나온 뒤에는 머물고 머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넌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사람이 이미 물에서 나와
믿음의 선법을 얻고
지계 보시 다문 지혜의 선법을 닦아 익히고,
뒷날에도 믿음이 견고해 그것을 잃지 않고,
지계 보시 다문 지혜까지도
견고하여 잃지 않으며,
선법에 머물면서
괴로움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괴로움의 발생
괴로움의 소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
그는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았으므로
3결이 곧 다 끊어진다.
신견결 계취결 의결의 3결이
이미 다 끊어져 없어지면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지고
천상과 인간 세계를 한 번 오가게 된다.
한 번 오간 뒤에는
곧 괴로움의 끝을 얻는다.
이것을 어떤 사람이 나온 뒤에는 머물고, 머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간다고 하는 것인데,
마치 사람이 물에 빠졌다가, 나온 뒤에는 머물고, 머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는 것처럼
내가 그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
>>>
사람이 나온 뒤에는 머물고, 머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른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이 물에서 이미 나와
믿음의 선법을 얻고
지계 보시 다문 지혜의 선법을 닦아 익히며,
뒷날에 가서도
믿음이 견고하여
그것을 잃지 않고,
지계 보시 다문 지혜까지도
견고하여 잃지 않는다.
그리하여
선법에 머물면서
괴로움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괴로움의 발생
괴로움의 소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
그는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았으므로
5하분결(下分結)6)이 다 끊어진다.
탐욕(貪欲)
진에(瞋恚)
신견(身見)
계금취견(戒禁取見)
의(疑)의
5하분결이 이미 다하면
그는 천상에 나서
곧 반열반(般涅槃)에 들어
물러나지 않는 법[不退法]을 얻어
이 세상에
돌아오지 않는다.
>>>
사람이 나온 뒤에는 머물고, 머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르며,
저쪽 언덕에 이른 뒤에는 그 언덕에 머무는 범지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이 이미 물 속에서 나와
믿음의 선법을 얻고
지계 보시 다문 지혜의 선법을 닦아 익히며,
뒷날에 가서도
믿음이 견고하여
그것을 잃지 않고,
지계 보시 다문 지혜까지도
견고하여 잃지 않는다.
그리하여
선법에 머물면서
괴로움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괴로움의 발생
괴로움의 소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
그는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았으므로
욕루(欲漏)에서 심해탈(心解脫)하고,
유루(有漏)와 무명루(無明漏)에서 심해탈하며,
이렇게 해탈한 뒤에는
곧 해탈한 줄을 안다.
그리하여
생명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성립되었으며,
해야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뒷세상의 생명을 받지 않음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것을 어떤 사람이
나온 뒤에는 머물고, 머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르고,
저쪽 언덕에 이른 뒤에는 그 언덕에 머무는 범지라고 하는데,
마치 어떤 사람이 물 속에 빠졌다가, 나온 뒤에는 머물고, 머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르며,
저쪽 언덕에 이른 뒤에는 그 언덕에 머무는 사람이라 하는 것처럼
내가 그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
>>>
5) 목적유경(木積喩經)7) 제 5 [초 1일송]
>>>
"너희들 생각은
어떻하냐?
저 큰 나무더미에
맹렬히 타오르는 불꽃을
끌어안거나
그 위에 앉거나
혹은 거기에 눕는 것과,
한창 젊은 나이의 찰리(刹利)족 여자나
범지(梵志) 거사(居士) 공사(工師 : 공인의 우두머리)의 여자로서
목욕하고
향을 피우며
밝고 깨끗한 옷을 갈아입고
화만(華鬘)과 영락(瓔珞)으로 그 몸을 장엄하게 꾸민
그런 여인을 끌어안거나
그들과 같이 앉거나
그들과 같이 눕는 것을
비교할 때
어느 것이
더 즐거우리라고 생각되느냐?"
>>>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들을 위하여 말한 것은
너희 배우는 사문들로 하여금
사문의 도를 잃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너희들이 위없는 범행(梵行)을
성취하고자 하는 자라면
차라리 나무더미에
맹렬히 타오르는 불꽃을 끌어안거나
혹은 거기에 앉고
거기에 누워야 하리라.
저들이 비록 이로 인해
괴로움을 받거나
혹 죽는다 하더라도
이 때문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지극히 나쁜 세계나
지옥에 가서
태어나지 않으리라.
만일 어리석은 사람이
계를 범하고
정진하지 않으며,
착하지 않은 법을 내어
범행이 아닌 것을 범행이라 일컫고,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이라 일컬으며,
또는 한창 젊은 나이의 찰리족 여자나
범지 거사 공사의 여자로서
목욕하고 향을 피우며
밝고 깨끗한 옷을 입고
화만과 영락으로 그 몸을 장엄하게 꾸민 그런 여인을
끌어안거나
같이 앉고
혹은 같이 눕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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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범지 거사 공사로부터 보시를 받거나
또는 신체와 팔다리의 뼈마디와 수족에 이르기까지
안마를 받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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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범지 거사 공사로부터
보시 예배 공경 영접을 받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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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범지 거사 공사로부터 보시하는 의복을 받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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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범지 거사 공사들로부터 보시하는
그지없이 맛있는 온갖 요리를 받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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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범지 거사 공사들이 보시하는 평상 요 와구를 받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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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범지 거사 공사들이 보시한 방사에
진흙을 바르고
흰 흙을 바르며
창문을 단단하게 밀봉하고
화롯불의 따뜻함을 받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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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어리석은 사람은
이것으로 인해
오랜 세월 동안
불선(不善)과
불의(不義)로써
악법의 과보를 받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지극히 나쁜 세계로 나아가게 되거나
지옥에 태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제 자신의 뜻도 관찰하고
상대방의 뜻도 관찰하되
두 뜻을 다 관찰하고는
이렇게 생각하라.
'내가 출가하여
배우는 것은
헛된 일이 아니요,
쓸데없는 일이 아니다.
이것은
결과가 있고
과보가 있으며
지극한 안락이 있고,
온갖 좋은 곳에 태어나
장수(長壽)하게 될 것이다.
남에게서
의복 음식 평상 요[褥] 탕약 따위의 보시를 받는 것은
모든 시주로 하여금
큰 복을 얻게 하고
큰 과보를 얻게 하며
큰 광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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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이 법을 설하시자
그 때 그곳에 있던 60명의 비구들은
번뇌[漏]가 다하고
의심[結]이 풀렸지만
다른 60명의 비구는
계율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왜냐 하면
세존께서
가르치시고 경계하심이
매우 깊고 어려웠으며
도를 배우는 일도
또한 매우 깊고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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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en.wikipedia.org/wiki/File:Paul_Cézanne_-_Bathers_(Les_Grandes_Baigneuses)_-_Google_Art_Project.jpg Artist [show]Paul Cézanne (1839–1906) ● [pt op tr] 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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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strophytum_flower_302.jpg Description Slovenčina: Astrophytum hybrid flower Author Skolnik Collection ● [pt op tr] 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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