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Pat Benestra Orchestra - Un Brin De Muguet.lrc
Lab value 불기2564/02/22/토/17:18
[오래된조각글재정리]
☎잡담☎ = 순전한 잡담부분
● = 논의부분
사이트가없어진개인촬영사진 = 사진파일명만 기재
Lab value 불기2562/02/22
● 중생제도와 제한없는 방편 수행
『성가니분노금강동자보살성취의궤경』에는
방편이 구극이라고 표방하는 밀교부 경전의 특성을 살필 수 있다.
경전에 다음 내용이 나온다.
...
식재법(息災法)ㆍ증익법(增益法)ㆍ경애법(敬愛法)ㆍ항복법(降伏法)을 말하여서
불법(佛法)의 큰 위덕(威德)과 신통(神通)의 자재(自在)함을 알게 하고,
...
수행자가 사용하는 방편에 재난을 없애주고
이익을 주는 식재법 증익법과 관련된 방안외에도
상대를 항복받기 위해 때로는 상대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방안까지 제시되고 있다.
그래서 과연 이런 내용을 제시하는 경전이
과연 부처님의 가르침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하기도 한다.
그런데 알고보면
수행자가 수행에 임하는 영역은
본래 생사를 얻을 수 없는 청정한 니르바나의 영역이 아니다.
본래 생사를 얻을 수 없는데도
생사가 있다고 여기며 업의 장애를 일으키며
실답지 않은 생사고통을 생생하고 실답게 받아나가는 생사현실 영역이다.
그래서 수행도 이 영역에서 행해진다.
중생제도나 불국토장엄이나 성불도 이 영역에서 행해진다.
그런 가운데 중생제도를 위한 방편을 닦는 수행도 이 영역에서 그런 목적으로 행해진다.
그런 가운데 수행자는 중생제도를 위해 원칙적으로 선교방편을 취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선교방편만으로는 도무지 조복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수행자는 무조건 자비롭기에
수행자를 상대로 아무렇게 해도 무방하다고 임하면서
극단적으로 악을 행하는 경우도 현실에는 있다.
그런 경우 그처럼 극악무도하고 막무가내로 임하는 상대를
조복시킬 아무런 방편이 없이 상대가 행하는 대로 내맡기면 곤란하다. 이는 알고보면 상대를 더욱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아나가도록 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수행자의 수행을 장애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수행자의 중생제도를 방해하는 결과가 된다.
그래서 그런 경우에 사용하는 방편으로
항복법과 같은 내용도 밀교부 경전에 담겨 제시되는 것이다.
다만 이런 방편은
그런 방편을 행하는 수행자가 안인을 성취하지 못하여
그 자신부터 극심한 고통을 받는 상황에서 물러나는 상태면 곤란하다.
따라서 일단 자신부터 안인을 성취하고 무생법인을 증득하여 불퇴전위에 이르러야 한다.
그래서 그런 방편을 택하여 중생을 제도할 때 그로 인해 자신이 되돌려 받는 내용 또한 편안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보살의 명호 안에 분노가 들어 있는 것은
그런 방편으로 제도할 상대에게
그런 방편까지 사용해도 되는 상태에 이른 보살이라는 의미다.
대표적으로 문수사리보살님의 서원을 살피다 보면
상대와 원수가 되더라도 상대를 깨달음에 이르게 하고 제도하겠다는 내용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중생제도를 위해서는
그로 인해 자신이 무간지옥에 들어가게 되더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방편을 통해서라도 상대를 제도하겠다는
내용이 제시된다.
이론이나 말로는
무간지옥이나 극락이나 차별없이 공하여
둘이 아님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자신의 손가락이 꺽히거나 잘려 피가 흐르면
그 자신부터 비명을 지르게 된다. 그리고 수행을 그만두어야겠다고 물러나기 쉽다.
만일 그런 상태라면
그런 결과를 초래하는 방편은 처음부터 취하기가 곤란하다.
그래서 이론적으로만 이해하고 그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생사현실에서 자신의 손과 발이 끊어지고
허리가 부러지고 잘리고 하는 상태에서도 물러나지 않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금강경』에 제시되는 것처럼 가리왕이 사지를 절단하는 상황에서도
안인수행을 통해 평안하게 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무생법인을 증득하고
더 이상 이전의 전도망상분별을 행하고 임하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더 이상 범부의 상태로 다시 물러나지 않는 불퇴전위에 이르러야 한다. 그런 가운데 상대를 제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그런 중생제도 노력으로 인해 자신이 무간지옥에 들어가게 되더라도 평안하게 임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무간지옥을 극락이나 차별없이 여기는 가운데
평안하게 그 상태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상태에 이르러야
중생을 제도할 방편에서 어떤 한계나 제한도 없는 상태에서
그런 방편까지도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각 중생에 맞추어서
중생을 무량하게 제도해나갈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야 수준높은 수행자가 될 수 있다.
요즘 현실을 보면
분노 조절이 제대로 안 되어
여기저기에서 대형 사고를 일으키는 사건이 많다.
자신의 입장에서 옳다고 보는 내용을 상대가 행하지 않아서 분노를 일으키기도 한다. 또는 자신이 불쾌하게 여길 언행을 상대가 행해서 분노를 일으키기도 한다. 또는 상대가 억울하게 고통을 주어서 분노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런 등등의 사정으로 분노를 일으키며 그 상대를 가혹하게 다룬다.
세상에는 이런 유형의 무서운 선생님들이 대단히 많았다.
대표적으로 자신의 뜻에 맞지 않다고 600 만명을 살해한 경우도 있다. 또는 몇백만명을 시베리아 얼음지대에 유배를 보내 고통을 받게 한 경우도 있다.
또 일정지역에서 전쟁을 벌여 수천만명에 이르는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한다.
전쟁 과정에서 상대지역에 들어가
강도강간에 해당하는 행위를 광범위하게 행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내용이 역사상 수없이 많이 일어난다.
이런 내용들 하나하나가 그런 사례다.
그리고 그런 사례가 현재에도 곳곳에서 진행된다.
오늘날 사람을 살해하는 방식이 대단히 간편해졌다.
그저 손가락만 잘 움직이면
곧바로 상대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도구가 널리 보급되어 있다.
그런 상태여서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데에는
복잡한 진언을 염송하지 않아도 쉽게 행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상대가 자신이 믿는 종교를 믿지 않는다고 죽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축구경기를 보지 말라고 했는데 보았다고 죽이기도 한다.
또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않도 다닌다는 사유로 죽이기도 한다.
그런 사유로 분노를 일으키고 손가락만 움직여 살해를 한다.
그런데 왜 진언을 념송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취지와 방편 자체가 모두 성격이 이와 다르다.
현실에서는 굳이 분노가 아니더라도
조그마한 이익이나 즐거운 맛을 위해서
다른 생명을 극악하게 해치는 사례도 많다.
그리고 그런 행위를 매일 쉼없이 찾아 행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아무 의식없이
자신이 한 끼 식사를 맛있게 하기 위해서
다른 생명을 살해하는 행위를 매일 습관적으로 반복한다.
또는 일정한 이익을 얻기 위해서
그렇게 다른 생명을 도살해 판매하기도 한다.
그리고 다른 생명이 죽임을 당하는 문제에서
대부분 아주 대범하고 평안하게 임한다.
그런데 자신이 그 반대 상황이 되어
자신의 손가락 하나라도 끊어야 하는 상태가 되면 그렇지 못하다.
그 상황에서는 안색이 노랗게 변하고
황망한 상태가 된다. 그리고 안절부절못하는 상태가 된다.
그런 문제는 단지 생사문제에서만 그렇지 않다. 아주 자그마한 이익이나 손해가 걸린 문제에서도 그렇다. 그리고 단지 즐거움이나 불쾌가 달린 문제에서도 그렇다.
존재에 대해 일으키는 전도망상분별은 대단히 복잡하다. 그런데 하나의 대상이 갖는 의미가 기본적으로 다양하다.
현실에서 존재의 정체가 문제되는 다양한 내용을 다음처럼 나열할 수 있다.
현실에서 주로 문제삼는 내용을 그림으로 표시해 나열했다.
[img1] 08pfl--image/존재의_영역_설명.png
존재의 정체와 유무는 이 가운데 대표적으로 실상(實相 dharmatā ; dharma-svabhāva) - 상(相 Lakṣaṇa ) - 상(想 Saṃjña)이 문제된다.
그런데 하나의 대상은 그 정체 파악과정에서 대단히 다양한 형태로 파악된다. 그리고 다양한 측면에서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물 하나를 놓고도 사정이 그와 같다. 이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현실에서 하나의 물이라고 보는 내용이 있다고 하자. 이를 하늘 생명이 대하면 감로수라고 대한다. 아귀가 대하면 이를 타는 불이라고 대한다. 공수병에 걸린 개가 이를 대하면 공포를 주는 어떤 것이라고 대한다. 일반인이 대하면 그냥 그것은 물이라고 대한다. 이처럼 각 주체마다 그 내용을 달리 대한다.
조금 더 쉽게 사정을 살피면 각 주체가 어떤 감관을 가지고 대하는가에 따라 그 내용을 달리 파악한다.
그래서 하나의 물을 대하더라도 눈이 대하면 그런 모습이라고 물을 여긴다. 귀나 코로 대하면 그저 그렇고 혀로 대하면 그런 밋밋한 맛을 주는 것이라고 대한다. 손으로 대하면 그런 미끈한 촉감을 주는 것이라고 대한다.
이런 식으로 그 정체부터 달리 파악한다.
다시 그 주체가 그 직전에 어떤 상태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생활했었는가 등등의 사정에 따라서도 또 그 판단이 제각각 다르다. 예를 들어 그 전에 짠 음식을 대단히 많이 맛 본 상태와 그렇지 않은 경우는 같은 물을 대하더라도 그 판단이 달라진다.
그리고 어떤 하나의 물을 그 전에 차가운 물에 손을 담그고 있다가 손을 대는 경우와 뜨거운 물에 손을 담그고 있다가 손을 대는 경우 그 평가가 달라진다.
조금 이해가 쉽게 설명하면 사람이 바위가 녹아 용암이 되어 흐르는 모습을 대하면 대단히 뜨겁다고 느끼게 된다.
그런데 물이 흐르는 상황도 입장에 따라서는 얼음에 해당하는 바위가 다 녹아서 흐를 정도로 뜨거운 상황으로 느낄 수 있다.
그런 가운데 과학교과서에서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사람이 물로 보는 그 물은 열이 빠지면 눈이나 서리 얼음이 된다. 열이 더해지면 수증기나 구름이 된다. 또 오늘날 아예 전기로 분해하면 수소나 산소로 분해가 된다. 물 하나도 상황 따라 그 형체나 성질이 모두 다 달라진다.
사정이 그렇다고 물에서 얼음의 모습이나 성질을 찾아보면 찾아지지 않는다. 또 반대로 얼음에서 물의 모습이나 성질을 찾으면 찾아지지 않는다. 나머지도 다 마찬가지다.
또 사정이 이렇기에 하나의 물을 얻는 관계도 다 제각각 다르다.
얼음을 녹여도 물을 얻는다. 수소를 폭발시켜도 물을 얻는다. 비가 내려서도 물을 얻는다. 우물을 파서도 물을 얻는다. 그런 여러 관계를 또 살필 수 있다.
그리고 이제 그렇게 얻어진 물을 일단 비슷하게 같이 대하더라도
다시 사막에서 목마른 상태에서 대하는 물 물고문을 받는 상황에서 대하는 물 그리고 일반인이 수도를 틀어 얻는 물 등에 대한 가치 평가가 다 다르다.
어떤 경우는 대단히 가치있고 귀하다고 평가하게 된다. 또 어떤 경우는 정반대로 대단히 고통을 주는 것으로 평가한다. 각 입장 각 경우마다 극과 극으로 차이가 있게 된다.
그리고 다시 이런 물을 어떤 주체가 어떻게 대해 그로부터 각기 어떤 결과를 얻는가도 다 다르다.
예를 들어 벌이 그 물을 취하면 그로 인해 꿀을 만들어 낸다. 뱀이 그 물을 취하면 그로 인해 독을 만들어 낸다. 일반인이 그 물을 취하면 그로 인해 피와 땀과 오줌을 만들어 낸다.
이처럼 같은 내용을 취하더라도 각 주체가 각 상황에서 얻는 결과가 제각각 다르다.
원효대사님이 중국으로 마음현상에 대해 연구를 하기 위해 유학을 떠나기 위해 길을 가는 도중 동굴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잠을 자다가 목이 말라 해골물을 마시고 깨달음 얻었다는 전한다.
원효대사가 처음 잠을 자다가 물을 마셨을 당시는 갈증을 해소시켜주고 대단히 상쾌함을 준 물로 느끼며 잘 마셨다. 예를 들어 오늘날 냉장된 유산균 음료를 마시는 경우와 비슷하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그 물을 다시 보니 그 물이 해골이 썩은 물로 구더기가 떠다니는 물임을 보고 곧바로 구토증세를 일으키며 다 토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이로 인해 원효대사님이 마음현상을 글자로 연구하고 배우기 위해 중국까지 갈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유학을 포기하고 돌아섰다고 전한다.
그래서 알고보면 그 물은 결과적으로 그런 깨달음을 원효대사님에게 가져다 준 법수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여하튼 이 각 부분에 어떤 차이가 있었기에 각 경우마다 다른 내용으로 대하고 다른 내용을 얻게 하였는가가 문제된다. 그런 가운데 그 물의 본 정체는 무엇으로 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이는 마음현상의 이해와 관련해 상당히 어려운 문제다.
이런 내용을 많이 반복했다.
그런데 이들의 어떤 존재의 정체나 그것이 나타나는 연기(인과) 관계에 관련된 사실 판단 좋고 나쁨 그리고 선악을 판단하는 가치 판단 가치있는 상태를 실현하는 수행방안과 관련된다.
○ 선과 단순한 좋음의 구분
영미권 언어에서는 좋음이나 선을 다 good 이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이 구분이 언어표현만으로는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선이나 정의 좋음의 문제에 대해서는 현실에서 크게 입장이 대립된다.
우선 좋음이 넓고 길고 깊게 이런 좋음이 중첩된 상태를 다음처럼 생각할 수 있다. 즉, 자신도 좋고 남도 좋고 온 생명이 제한없이 모두 좋고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고 오래오래 무량하게 좋고 이 측면도 좋고 저 측면도 좋고 두루두루 모든 측면이 좋다고 할 상태로서 넒고 길고 깊게 관찰할 때도 좋고 좋다고 할 상태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상태를 무엇이라고 표현하던 이는 단순한 좋음과는 다르다.
그래서 이처럼 좋음이 넓고 길고 깊게 이런 좋음이 중첩된 상태를 선이라고 달리 칭할 수 있다.
그런 경우 이런 선은 단순한 좋음과는 구분된다.
그런데 어떤 주체가 어떤 순간에 단순히 좋다고 느끼는 느낌에서부터
각 입장은 다르다.
그런데 각 주체가 대하는 것의 정체에 대해서부터 망상분별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이를 살피려면 그 기본 바탕부터 살펴야 한다.
쉽게 이 상황을 살피면 다음과 같다. 어떤 범인은 일정한 행위가 자신에게 이익을 주고 즐거움을 준다고 보기에 그렇게 행한다. 절도범이나 강도범이나 강간범이나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 상대는 이를 대단히 불쾌와 고통을 오래 주는 행위로 여간다. 그리고 일반적인 입장에서도 이는 형벌로 고통을 가해서 미리 예방해야 할 악행이라고 이를 보게 된다.
그래서 입장마다 하나의 현상을 놓고 좋고 나쁨의 평가가 다르다. 선은 단순히 한 주체가 어떤 내용을 한 단면에서 좋다고 느끼는 측면과 무관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자신입장에서 지금 당장 이 측면에서 무엇을 좋다고 느끼는 것과는 조금 구별애햐 한다.
여하튼 이들이 모두 각 주체가 그렇게 느끼는 그런 좋음을 구성요소로 한다는 점은 공통하다. 그래서 영미권 언어에서는 이를 다 good 이라고 표현하는 사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각 영역에서 문제되는 내용을 하나하나 살펴나가자면
상당히 분량이 많아진다.
○ 다양한 존재의 관계에 대한 망집의 발생
매 현실상황마다 각 주체가 거꾸로 뒤집힌 전도망상분별을 일으켜 임하게 되는 그 배경 사정은 사실은 간단하다.
예를 들면 이렇다. 위 그림에서 현실에서 문제삼는 각 내용이 그릇에 올려진 떡처럼 그려져 있다. 이는 하나의 존재에 의존하여 각기 다른 영역에서 얻는 내용들이다. 그런 사정으로 이들 각 내용이 서로 결합된 것으로 잘못 분별하게 된다. 그래서 이들 각기 다른 차원의 내용을 서로 접착시킨다. 그리고 하나의 영역에서 얻는 내용이 다른 영역에도 그처럼 있다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그런 사정으로 각 영역에서 얻는 내용을 실다운 내용으로 잘못 여긴다. 그리고 그런 사정으로 그에 집착을 일으켜 갖게 된다. 그런 가운데 그런 전도망상분별을 바탕으로 이들 각 내용에 대해 좋고 나쁨의 평가를 행한다. 그리고 다시 망집을 일으킨다. 즉, 어떤 주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것을 대해 좋음이나 나쁨을 느꼈다면 그런 좋음이나 나쁨은 그 대상에 그렇게 '있다'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그런 내용은 하나같이 실다운 것으로 잘못 여긴다. 그리고 이를 집착하며 추구해 나가게 된다.
각 주체가 처음부터 자신이 대하는 현실 내용에 대해 기본적으로 이런 형태로 전도망상분별을 일으킨다.
짜장면 비유를 통해 이 사정을 이해해보자.
어떤 이가 배고픈 상태에서 짜장면을 먹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 짜장면이 대단히 맛있고 좋다고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짜장면을 대해 좋음을 느낀다. 그러면 그 짜장면에 그런 맛과 좋음이 있다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짜장면 안에는 그런 맛과 좋음이 본래 들어 있다고 잘못 여긴다. 그래서 그런 맛과 좋음은 하나같이 실다운 것이라고 집착하며 대한다.
그런데 그런 이가
어떤 경우에 강제로 묶여서 짜장면으로 고문을 당하는 경우를 가정해보자. 예를 들어 그가 묶여 있다. 그리고 짜장면 10 그릇을 30 분내에 다 먹을 것을 강요받는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몽둥이로 죽을 때까지 맞고 죽게 된다고 협박을 받는다. 그리고 실제로 자신 옆에 그렇게 이미 맞아 죽은 다른 이의 시신이 많이 쌓여 있다. 그런 상태에서 짜장면 10 그릇을 억지로 먹어야 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런 상태에서는 그는 그 짜장면에 그런 맛과 좋음이 있다고 여기지 않게 된다. 그래서 처음 그가 짜장면에 그런 맛과 좋음이 들어 있다고 여긴 것은 잘못임을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침대에 누어 꿈에서 바다 꿈을 꾸었다고 하자. 그런데 그가 그런 사정으로 꿈에서 꾼 바다를 침대에 있다고 여긴다고 해보자. 그리고 그런 꿈내용을 실답다고 여긴다고 하자. 그리고 그에 집착하고 그에 바탕해 현실에 임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그것이 많은 문제를 일으키게 됨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의 각 영역마다 이런 망상분별을 일으키면 마찬가지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 망상분별과 생사고통의 해결방안
사정이 본래 그렇지 않다. 즉, 그 정체가 문제되는 각 내용을 대할 때 이상하게 현실에서 이들 각 내용을 접착해 이해한다. 그리고 각 영역의 각 내용의 정체나 관계에 대해 잘못된 망상분별을 일으켜 대한다.
그런 상태에서 그 각각에 집착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위한다. 그리고 그런 업이 쌓여 업의 장애현상을 겪게 된다.
그런 가운데 결국 3 악도에 진입해 들어가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는 상황에 처한다. 그리고 그것이 곧 혹-업-고라는 관계가 제시하는 내용이다.
이것이 한 주체가 생사고통을 겪는 과정을 나타내는 관계다. 이를 혹업고의 관계라고 표현한다. 즉, 혹[번뇌,전도망상분별,집착] -> 업[신,구,의3 업, 생각-말-글-행위-태도..] -> 고[생사현실 생사고통]의 관계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망상분별을 바탕으로 일정한 부분을 자신이나 재산 가족 등으로 여긴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이에 대해 집착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는 그것을 침해받기도 한다. 그런 경우 그에 따른 행위를 도저히 행하지 않을 도리가 없게 된다. 또 그와 관련된 이익을 얻기 위해서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것이 현실에서 생사고통을 겪는 근본원인이다.
○ 당면한 고통을 벗어나는 원칙적 방안 현실에서 3 악도에서 극심한 생사고통을 받는 것을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그런 고통을 받는 현실 단면에서 직접 그것을 붙잡고 해결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그러나 그런 상태에 이르게 하는 근본원인을 미리 제거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손가락이 잘려 고통을 극심하게 느낀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 현실단면에서 그 고통을 벗어나는 것도 필요하다.
이런 경우 그 상황에 그가 문제삼는 그런 내용을 본래 얻을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즉 그런 현실의 본 바탕이 공함을 관하여야 한다. 그래서 본 바탕에서 얻을 수 없는 내용을 임시적으로 그렇게 얻는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 방안으로 당면한 일체고액을 벗어나야 한다. 이를 고통을 벗어나는 원칙적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 예방적 방안
그러나 손가락이 잘리기 이전에 손가락을 잘려지게 되는 원인단계에서 이를 예방하는 것도 방안이다. 그리고 이런 예방방안이 조금 더 쉽고 낫다.
그래서 미리 그런 상태에 처하게 하는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 상태에 처하게 되는 행위를 미리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행위를 하게끔 하는 전도망상분별을 근본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반대로 그런 업을 제거하고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수행을 행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수행을 원만히 성취할 수 있도록 현실의 정체를 올바로 관해야 한다. 이런 방안이 예방적 방안이다.
고통을 직접 당장 받는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 원칙적 방안이다. 그리고 원인단계에서 이를 예방하는 것은 예방적 수행이다. 이 각 경우에 생사고통을 벗어나올 수 있는 원칙은 다 마찬가지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 두 방안이 모두 다 힘들고 어렵다. 그래서 각 주체가 모두 잘 행하지 못한다. 이런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려면 결국 일정한 계기로 그 한 단면에서 망집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수행을 통해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와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 상태로 매순간 임하는 가운데 무량겁을 나아가게 된다. 그래서 무량겁에 걸쳐 생사고통을 받아나가게 된다. 그것은 알고보면 그 주체가 일으킨 전도망상분별때문이다.
그래서 반대로 이를 살피면 생사고통을 벗어나는 방안을 다음처럼 순서를 제시할 수 있다.
먼저 가장 근본이 되는 단계에서 전도망상분별을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각 영역의 내용의 본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그 각 내용이 실답지 않다는 것을 관해야 한다. 그래서 그에 대해 집착을 갖지 않게 된다.
즉 혹(번뇌)를 일으키고 대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망집에 바탕해 행하던 업을 중지해야 한다.
그리고 이미 그런 바탕에서 행해 쌓아 놓은 업의 장애를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업의 장애를 제거할 수행을 원만히 행해야 한다. 이런 수행을 통해 이런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풀려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중생제도나 불국토 장엄 성불을 향한 수행을 해나가야 한다. 그래야 각 영역이 넓고 길고 깊은 측면에서 좋고 좋은 상태가 된다.
○ [pt op tr]
▼mus0fl--Jean-Louis Murat - L'ange Dechu.lrc
쉬는 가운데 노래를 듣는다.
각 경우가 극과 극으로 다르다. 그런 가운데 어떤 경우는 막무가내로 함부로 행한다. 그런 가운데 모나미 볼펜을 가진 경우는 봐준다. 그렇지 않으면 몽둥이를 사용하거나 죽일 수도 있다. 이런 협박성 메세지를 전하는 듯하다. 이는 이미 살핀 경전 내용이 영향을 미쳐 그런 시감상을 하게 된 듯하다.
● 방편 시설의 철거 문제
○ 시설의 의미
부처님이 설법을 하시고 그 내용이 경전에 담겨져 오늘날 전한다. 이 경우 부처님이 말씀하시고 경전에 담겨 전해지는 일체가 다 그런 시설에 해당한다. .
불교에서 사용하는 시설(施設)이란 표현을 좀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언어나 관념으로 표상되어 제시되는 그 일체를 나타낸다. 이는 가명(假名)이나 안립(安立) 또는 건립(建立) 발기(發起)라고도 표현한다.
경전에서는 이를 비유적으로 강을 건너는데 사용하는 뗏목이라고도 나타낸다.
경전이나 논서에서 언어로 어떤 내용을 제시한다.
그러나 그것은 실재가 그렇다고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본 사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언어로 표현하고 제시하는 것 뿐이다. 그래서 가명이고 시설이라고 한다. 따라서 경전에서 표현된 그런 언어표현 일체가 모두 기본적으로 그런 성격임을 나타낸다.
○ 시설에 의존한 망집의 제거
부처님은 중생들이 깨닫게 하기 위해 방편을 시설해 사용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지금 '가정적' 논의라고 표현해 살핀다. 이는 이런 표현이 오늘날 조금 이해가 쉽다고 보기 때문이다.
처음에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현실내용을 외부에 있는 외부세계의 내용이고 외부대상이고 객관적 실재이며 잘못 여긴다. 그래서 이를 실다운 내용이라고 잘못 여기며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내용을 집착한다. 그런 가운데 문제 상황으로 묶여 나아간다.
이제 그런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 본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이해시키기 위해 일정한 내용을 언어로 시설하고 방편을 마련한다.
그래서 그런 취지로 방편상 세운 내용을 가명이고 시설이라고 제시한다. 이는 이런 방편 시설은 실답지 않음을 나타낸다. 그런데 그런 시설을 세워 내용을 제시하게 되는 사정이 있다.
즉 그런 상태에서 그런 시설로 내용을 제시하지 않으면 그 본 사정을 상대가 이해하게 할 방안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렇게 시설을 해서 그런 내용을 제시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그 본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이해시키게 된다.
따라서 부처님이 제시하는 그 모든 내용을 놓고
그런 내용이 뗏목과 같은 기능을 잘 해서 그런 깨달음에 이르고 생사를 벗어나는 상태가 되야 한다.
○ 시설의 철거 문제
부처님이 언어 시설을 세워 설법을 통해 중생의 망집을 제거한다. 그러나 나중에 이를 통해 그 본 사정을 이해하게 되면 이제 그에 사용한 임시시설을 다시 철거해야 한다.
즉, 그런 방편으로 생사를 벗어난 이후 그런 기능을 수행한 뗏목에 해당하는 시설이나 방편을 놓고 그것이 단지 그런 뗏목이고 방편이라는 사정을 잘 관하고 그것을 철거해야 한다.
부처님이 언설을 통해서 내용을 제시할 때 그 언설이 갖는 성격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약으로 제시한 내용을 붙들고 집착해서 이를 독으로 취해 사용하게 되기 쉽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부처님이 제시한 설법 내용은 이런 문제해결에 대단히 소중하다. 그리고 부처님이 제시했다는 사정 때문에 다른 것은 모르지만, 그런 내용만은 절대적인 내용으로 집착하고 대하기 쉽다.
그래서 이것을 대하는 입장에서는 나중에는 이 임시시설이 정말 그처럼 그 영역에 그렇게 실재한다고 잘못 여기게 된다. 이 경우에는 다시 그런 취지로 시설한 내용을 놓고 처음에 일으킨 망상증상과 똑같은 형태로 망상집착을 일으키고 이를 대하는 경우가 된다.
그렇게 되면 처음에 그런 망상과 집착으로 문제를 일으킨 것처럼 이로 인해 다시 여러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그런 가운데 처음 일반인이 현실내용을 대하면서 일으킨 전도망상분별 집착 증세를 이들 내용으로 옮겨 가지고 온다. 그래서 이런 부분에 대해 처음과 마찬가지로 문제 상태가 된다. 그래서 이 부분이 다시 문제된다.
따라서 이런 뗏목이 뗏목임을 잘 이해하고 이에 대한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다시 이 시설의 철거문제가 제기된다.
뗏목의 비유가 의미하는 바가 그것이다. 일단 강을 건너기 위해서 뗏목을 사용한다. 그리고 그 뗏목을 이용해서 강을 건넌다. 그러나 강을 건넌 후까지 그 뗏목을 붙들고 늘어지면 안 된다. 임시시설을 이용해서 어떤 작업을 다 마쳤다. 그 이후에는 그런 시설을 잘 철거해 제거해야 한다.
○ 시설의 철거시 잘못된 철거의 문제
뗏목을 이용해 강을 건넌 다음 뗏목을 버린다. 또는 시설을 이용해 망집을 제거한 다음 그 시설을 철거해 제거해야 한다.
그렇다고 하여 그것을 통해 얻어낸 어떤 내용까지 제거하면 곤란하다. 또 그런 시설을 제거할 때 본래부터 있던 내용까지 제거하면 곤란하다. 그런데 여기서 제거할 것은 망집이고 그를 위해 세운 시설이다. 따라서 시설과 관련된다고 관련된 모두를 제거하면 또 그것도 문제된다.
예를 들어 자동차나 사람이 이리저리 바삐 오가는 거리가 있다. 이 경우 이 현실에 그런 오고감이나 생멸 변화가 없다고 제시한다.
그런 경우 그런 현실이나 그런 현실의 본 바탕이 되는 실재에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따라서 평소 그런 현실이나 실재에 그런 내용이 실답게 있다고 여긴 망상분별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하는 그 자세를 제거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망상과 집착을 제거할 때 그런 현실까지 다 제거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그 현실에서 행해야 하는 수행까지 다 필요없다고 여기면 문제다.
선이나 악과 같은 내용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사정이 있다. 그것은 처음에 일으킨 전도몽상분별 증상때문이다.
그런 망집현상이 처음 현실을 대할 때도 그렇고
문제를 시정하기 위한 시설을 대할 때도 그처럼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각 부분에 치료가 잘 안 되기에 그렇다.
그래서 처음 어떤 사정때문에 그런 시설을 그렇게 하게 되는 사정부터 잘 살펴야 한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런 시설을 다시 철거하는 사정을 살펴야 한다. 그리고 철거시에는 무엇은 철거하고 무엇은 철거하면 안 되는가를 또 잘 살펴야 한다.
그래서 원칙적으로는 처음 논의가 시작될 때부터
그 사정을 미리 잘 파악하고 그 각 내용을 그렇게 대하는 것이 낫다.
그러나 현실 사정상 그것이 그렇게 잘 안 되는 사정이 있다. 처음부터 그런 망집이 잘 제거되지 않는 경우에 그런 방편 시설이 그렇게 취해진다.
따라서 그런 시설 철거는 일단 그런 시설을 통해서 충분히 처음에 일으킨 망집을 제거한 후의 문제가 된다.
실재나 현실 내용의 관계를 살필때도 마찬가지다. 마음현상을 살필 때도 보이지 않는 마음을 언어로 시설해 제시하게된다. 그리고 '언어'로 일정 내용을 시설해 살피게 된다. 그런 가운데 현실에서 일으키는 망상분별을 제거한다.
이런 과정에서 앞에 제시한 것 같은 문제가 대단히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래서 이 시설과 관련된 문제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 사정이 결국
법화경에서 제시하는 내용과 같다.
법화경에서는 모든 내용이 종국적으로는 생사를 벗어나게 하고 성불의 상태에 이르게 하는 방편임을 제시한다. 그래서 그 방편은 그런 사정으로 진실됨을 제시한다. 그리고 회삼귀일 등을 제시한다. 이런 내용이 모두 이와 관련이 된다.
○ 시설 문제에 대한 비닐마술의 비유
망집과 이를 제거하기 위한 시설의 문제를 비닐 마술을 통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비닐 마술은 다음과 같은 간단한 마술이다.
비닐 하나에 세모를 그려 놓고 다른 비닐 하나에 큰 동그라미를 그려 놓는다. 그리고 이 두 비닐을 겹쳐 놓는다. 그러면 그 상황에서 각 비닐에는 없다고 할 안이 세모인 도너츠 모양이 거기에 나타나 보인다.
이는 알고보면 대단한 마술은 아니다. 그러나 이 마술이 시설의 철거문제와 관련이 된다.
- 시설을 통한 망집의 제거
일반적으로 앞과 같이 비닐을 겹쳐 대하면 각 비닐에는 없다고 할 안이 세모인 도너츠가 거기에 실답게 있다고 여긴다. 이것이 망상분별이다. 그런 가운데 그런 도너츠를 집착한다. 그리고 그에 바탕해 온갖 것을 행한다. 그리고 그런 전제에서 생사고통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상태에 처하게 된다.
이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본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이해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편이 동원된다.
가장 원칙적인 방안은 비닐을 하나씩 붙잡고 처음 그 비닐에 있다고 본 도너츠가 그 비닐인가 아닌가를 직접 살피는 것이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게 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그래서 본 사정은 그렇지 않지만, 상대가 그렇게 보는 내용을 그렇게 거기에 있다고 일단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런 내용이 그렇게 있다고 가정적으로 전제한다. 그 다음에 그렇다면 그런 내용을 통해 본래의 사정이 어떻다고 보아야 하는가를 제시하게 된다.
또 그런 가운데 상대가 고집하고 주장하는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로 인해 만나게 되는 치명적인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이런 설명을 통해 원래의 본 사정을 이해시키는 노력을 행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설명을 위해서 가정적으로 시설하는 내용들이 곧 가명이나 안립 시설이다. 그리고 이런 시설을 통해서 본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이해하게 된다.
비닐마술의 경우 처음 상대 입장처럼 그런 도너츠가 있다고 받아들인다.
그런 전제에서 사정이 그렇다면 이제 이 세모가 당신이 말한 그 도너츠인가를 묻는다. 아니면 바깥 동그라미가 그 도너츠인가를 묻는다. 그리고 그 도너츠는 이런 이런 과정으로 나타나게 되고 나중에는 또 어떻게 된다는 등으로 제시한다. 그런 내용은 모두 그런 바탕에서 제시하는 방편이다.
이제 이런 방편들로 본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이해하게 된다.
- 시설의 제거
비닐에 도너츠가 있다는 망집이 제거되면 망집을 제거하기 위해 마련한 시설은 이제 불필요하게 된다. 그 이후에는 그런 내용을 처음 그렇게 시설하게 된 사정을 잘 이해한 후 그런 내용 역시 다시 철거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 시설에 대한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 따라서 이를 잘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 내용을 이해시키기 위해 시설한 도너츠와 관련된 내용들을 다시 제거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처음 망상분별을 일으킨 입장에서는 처음에 문제가 되었던 망상분별만 제거하면 된다. 즉, 도너츠와 그를 바탕으로 취한 내용들만 제거하면 충분하다.
- 제거하지 않아야 할 부분
도너츠에 대한 망집을 제거할 때 처음 도너츠라고 이해하고 잘못 대한 각 비닐안 내용까지 다 제거하면 문제다. 그래서 이 부분을 주의해야 한다.
처음에 비닐 마술이 비유로 드는 문제상황은 다음이다. 각 비닐에서는 얻을 수도 없고 그래서 없다고 해야 할 어떤 도너츠(생사현실, 생멸 등)를 놓고 그것이 그 각 영역에 그렇게 있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렇게 그 비닐을 대하고 임하는 것이 문제다.
그런데 그런 망상분별을 일으킨 입장에서는 그 도너츠는 곧 그 각 비닐에 있는 세모이기도 하고 또 동그라미라며 각 영역의 내용을 접착제로 접착시켜 대한다. 이것이 문제다.
여기서 제거하고 하는 망상분별은 그런 잘못된 접착과 집착현상이다.
이 부분을 제거할 때 평소 도너츠라는 내용에 기본적으로 접착시켜둔 각 영역의 내용까지 다 제거해야 한다고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다.
○ 건축물 철거의 비유
건축물에 어떤 부착물이 잘못 붙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런 경우 이를 철거하기 위해 건축물 옆에 비계라는 임시 구조물을 시설하여 작업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임시 시설을 만들어 작업을 다 마치면 다시 그 시설을 철거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임시 시설을 철거한다고 할 때 또 엉뚱한 것까지 같이 철거하면 역시 문제가 된다.
현실에서는 건축과정에서 앞과 같은 사례는 별로 없다. 그것은 이런 시설물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실생활에서 그렇게 임하면 당연히 이치에 맞지 않음을 쉽게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어로 이런 저런 내용을 시설해서 살피는 과정에서도 이런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런데 이 경우는 각 경우마다 이 시설로 인해 여러 혼동을 일으키고 잘못 임하기 쉽다.
비유하면 작업을 한 다음에는 그 작업에 필요해 설치한 '비계'만 제거하고 철수해야 한다. 그리고 그 '비계'를 통해 작업을 마친 내용은 그대로 남겨두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내용은 또 그 '비계'와는 관계없이 잘 사용해야 한다.
'비계'를 제거할 때 '비계'를 통해 작업한 내용까지 몽땅 다 제거하면 곤란하다.
다만 비유로 든 상황은 이해가 되지만, 경전이나 논서에서 제시하는 내용에서 어떤 내용들이 이에 해당하는가는 잘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 [pt op tr]
▼mus0fl--Jean-Jacques Goldman - Dors Bebe, Dors.lrc
● 마음현상의 이해와 방편시설
마음현상에 대해서는 경전에 수없이 제시된다. 마음 현상과 관련해 살피는 과정에서
마음에 일정한 내용을 얻게 되는 관계를 근본정신과 관련한 연기관계[뢰야연기]를 통해서 제시한다. 그리고 1,2,3,4,5,6,7,8 등의 여러 마음을 제시한다. 이들 논의는 이들 마음을 그렇게 시설해 가정적으로 살핀다. 그래서 그와 관련된 내용을 자세하게 살펴나간다.
그런데 마음이 현실에서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다.
따라서 논의는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그리고 낯설고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러나 조금씩 자꾸 살피면 곧 친해진다.
마음현상과 관련해 마음현상을 이해하고 논의하기 위해
처음 방편으로 시설하는 내용이 갖는 성격을 살피기로 한다. 그리고 이런 방편을 통해 본 사정을 이해한 가운데 논의를 위해 시설했던 시설물을 다시 철거하는 문제를 살피기로 한다.
일체가 마음안 내용임을 살필때는 다음을 살피게 된다.
우선 현실에서 대하는 내용이 왜 그렇게 마음에 나타나는가를 살펴야 한다.
그런 가운데 각 주체가 그런 현실 내용을 대하며 전도된 망상분별을 자꾸 일으키는 사정을 이해해야 한다. 즉, 일반적으로 자신이 대하는 내용을 외부세계이고 외부대상으로 잘못 여긴다. 그리고 정신과는 별개의 외부물질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모두가 다 함께 같이 대하게 되는 객관적 실재로 잘못 여긴다. 그래서 그것이 실다운 진짜의 내용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런데 그렇게 된 사정을 살펴야 한다.
그래서 마음이 처음 그렇게 분화 생성되는 과정을 연기관계를 통해 살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살피는 가운데 다양한 내용을 시설해 제시하게 된다.
그런데 나중에는 다시 이렇게 제시한 내용을 붙들고 망집을 일으키기 쉽다. 즉, 그렇게 제시한 내용들이 하나같이 참된 실재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그리고 이들이 실다운 진짜 내용이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그래서 그런 마음은 진짜 자신<아>에 해당되는 내용으로 잘못 여기게도 된다. 그런 가운데 집착을 일으키고 대하게 된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과거에 처음 문제가 된 망상분별과 집착을 다시 그것을 제거하기 위한 시설 방편에 대한 망상분별과 집착으로 대채한 것이 된다.
그런 가운데 처음의 망상증을 치료하기 위해 제시한 약을 거꾸로 독으로 취해 임하는 상태가 된다.
따라서 일단 이런 내용이 기본적으로 갖는 성격부터 잘 파악해야 한다. 대부분 경전이나 논서는 그 사정을 명확하게 제시한다. 그러나 나중에 보면 그 본 의미나 성격을 잘못 파악하고 엉뚱하게 임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 따라서 이를 잘 살펴야 한다.
하나의 내용을 놓고 극과 극으로 서로 달리 대한다.
결국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경전에서 제시하는 내용을 대하게 되면 대단히 어리둥절하게 여기며 오히려 그런 내용이 잘못된 궤변이라고 이해한다.
그런데 마음현상을 이해함에 있어서 시설해 제시하는 각 내용이나 그 연기관계도 결국은 일정한 깨달음에 이르게 하기 위한 방편이고 시설이다. 그런 점은 사정이 마찬가지다.
옥상기지에서 노래를 듣는데 갱스터와 형사가 나오고 그리고 금방 친해진다고 첫 부분에 메세지를 전하는 듯 하다.
다라니가 들어 있는 경전은 해당 부분이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해당 부분을 보충하는 작업을 하다 보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러다 보니 작업이 너무 늦어졌다.
다라니가 제시된 경전이 뽑히고 해당 부분이 기재가 되어 있지 않아서 그 부분을 보충하는 작업을 하느라 조금 시간이 많이 늦어진다.
지금은 오히려 새 조각글을 작성해야 하는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새조각글로 옮겨가 논의하고자 옥상기지에서 쉬는데 결국 이들 내용은 다 같은 방편의 문제임을 보게 된다. 그래서 이 조각글에서 살필 내용은 일단 살피고 넘어간다.
요즘 연구실이 진동을 일으키고 있다.
연구실 주변 건물들이 알고 보면 새로 지은 지 10 년이 채 안된 건물들이다.
그런데 건축하는 분이 주변의 좀 더 오래된 낡은 건물들과 이들 건물을 다 사서 여러 채를 함께 다 허물고 새 건물을 짓고 있다.
건물을 철거하고 건축하는 과정에서
옆에 세우는 구조물이 있다. 사진에는 건축하는 분들이 발판으로 삼아 이런 저런 작업을 하게 되는 임시구조물이 보인다. 이를 비계(飛階)라고도 칭한다.
건축을 하시는 분들은 이를 통상 '아시바'라고 표현한다. 건축관련 용어는 연혁상 일본어인 경우가 많다. 현대 건축기술은 처음 일본 기술자들로부터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축분야에서 일본어가 많이 사용된다.
그리고 그에 해당하는 한글 용어가 따로 있어도 잘 사용되지 않는다.
옆집 옥상에는 오래전부터 흙을 깔아 아름다운 꽃을 많이 길러서 옥상기지를 오르락 내리락하는 가운데 아름다운 꽃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이후 그 아름다운 화단과 꽃을 다 제거해서 이상하게 여겼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사정이 그렇게 있어서 그랬던 것으로 보게 된다.
글이 길어졌다. 논서 부분에서 관련 부분을 찾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 부분을 찾으려면 조금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어차피 늦어졌다. 따라서 조금 더 쉬고 이후 부분은 다음 조각글로 옮겨서 살피기로 한다.
현재처럼 문제를 살펴나가면 그 내용이 대단히 길어지게 된다. 그래서 앞으로 과거에 제시한 내용을 다시 제시할 필요가 있으면 어느 한 부분에 내용을 잘 정리해 제시해 놓고 이후는 링크로만 해결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 아래에 조각글 작성시 휴식시점에 붙인 노래가사,사진,풍광,예술작품 자료를 편집상 옮겨 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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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0fl--Pat Benestra Orchestra - Un Brin De Muguet.lrc 2011_1226_102316_ct16.jpg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ini_Rose_With_Drops_(260745426)
Description Mini Rose With Drops Date 4 October 2006, 09:58 Source Mini Rose With Drops Uploaded by Fæ Permission & Licensing : Wikipedia ● [pt op tr] fr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Sho_Kannon_Yakushiji
https://en.wikipedia.org/wiki/File:Sho_Kannon_Yakushiji.JPG English: Kannon(Avalokitesvara) , Bronze gilt Author OGAWA SEIYOU ● [pt op tr] fr
♥Shitennoji University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