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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2-03-14_오음비유경_001 본문

과거조각글/불기2562(2018)

불기2562-03-14_오음비유경_001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18. 3. 14. 10:42



®

『오음비유경』
K0743
T0105

오음비유경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오음비유경_K0743_T0105 핵심요약



♣0743-001♧

오음비유경




『오음비유경』




◆vrsf1899

◈Lab value 불기2562/03/14/수/01:17




○ [pt op tr]  mus0fl--Jean-Louis Murat - J'ai Tue Parce Que Je M'ennuyais.lrc


♥ 잡담 ♥새역사의 창조방안 

오늘은 5음비유경을 살펴보는데 
분량이 적어서 대단히 부담이 적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루는 주제는 간단하지 않다. 
비유는 이해를 돕기 위해 사용하는 방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데 이 비유와 관련해서 비유학이라고 할 만큼 
방대한 내용이 또 제시되기도 한다. 

그리고 각 경전에서 핵심적인 공통적인 내용을 제시하기 위해 
일정하게 반복해 사용하는 비유도 있고 
또 각 경전마다 특유하게 사용하는 비유도 있는데

때로는 비유로 든 내용 자체가 더 어렵게 느껴져서 
무슨 의미를 나타내는 것인지 엉뚱하게 붙잡고 
나아가는 경우도 가끔 있다. 

사람이 집착을 갖는 몸과 마음이 실답지 않다는 사정을 제시하기 위해 
비유로 
몸은 물거품과 같고 
마음은 바람과 같다고 제시하면 
몸은 물거품처럼 가볍고 
마음은 바람처럼 부드럽다는 것을 나타내는구나 
이렇게 이해하고 나아가면 조금 엉뚱하지 않은가. 

위 경전에서도 
행은 파초와 같다는 비유를 드는데 
문제는 파초가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는 
이 비유가 무슨 내용을 나타내려고 하는 것인지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본인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파초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렇게 물으면 양파인가 파인가. 
이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경우는 차라리 파나 양파를 가지고 비유를 하면 좋은데 
원래는 쉽게 현실에서 대할 수 있고
그래서 그 사정을 잘 파악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비유를 든 것인데 
파를 전혀 보지 못한 이에게 파를 가지고 비유를 하는 경우처럼 
경우따라 비유가 오히려 이해하기 힘들다고 호소하는 사례도 
가끔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경전에서 제시된 비유를 다시 놓고 
연구하는 비유학이 생기는 사정이기도 한 것이다. 


파초란 무엇인가. 


○ [pt op tr]Musa_basjooSochi1




○ [pt op tr]Musa_basjoo,_Glasgow_Botanic_Gardens


불교사전을 참조하면 
다음과 같이 

[Kor]파초
[Chn]芭蕉
[San]kadalī
[Eng]banana

[mean]바나나 나무.

사물의 실체가 없다는 점을 비유하는 데 사용되는 식물.
바나나 나무의 껍질을 벗기면 아무 것도 없다는 데에 연유한다.

이렇게 제시된다. 

쌀은 매일 먹지만, 쌀나무는 못 보았다고 하는 경우처럼 . 
바나나는 많이 먹었지만, 바나나 나무는 못 보았다하는 경우가 많다. 
보여주지를 않는데 어떻게 보겠는가.  

그래서 파초 사진을 올리는데 
저작권문제를 제거해 복사가 가능한 사전이 
지구상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 일인가. 

그런데 파초 사진을 올렸는데 
어떤 이가 사진을 보면서도 초점을 엉뚱한 데 맞추어서 철사부분을 
파초로 이해하는 것은 조금 지나치다고 보지만, 
그러나 같은 사진을 보면서도 
파초의 비유는 파초가 푸르다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구나. 
또는 파초가 가지마다 넓직한 잎을 갖는 것처럼 
가지를 쳐서 넓게 나아가는 것을 의미하는구나 
이런 식으로 이해하면 
비유를 든 효용이 없어지고 오히려 더 곤란하다. 



한편 비유와 관련해서는
통상적으로 
부처님이 가르치고자 하는 내용을
비유를 통해 쉽게 그 내용을 이해하고 얻게 되므로 
이런 비유를 어떤 진리를 얻는 수단이 된다고 할 것인가. 
아닌가도 또 세심하게 문제삼고 따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비유 하나만 놓고 논의해도 
백과사전이 나올 수 있을 정도로 
방대한 내용이 제시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관련 분야로 넘기고 
비유란 이해하기 쉽게 하기 취하는 방편인 것이어서 
비유로 든 내용이 곧 어떤 내용을 논증하는 수단은 아니지만, 
그러나 이 비유를 통해서 그 내용을 빨리 쉽게 이해하면 
대단히 그 효용이 크기에 
이 비유를 통해서 빨리 이해하고 
나중에는 그 비유만 떡 제시하면 
무슨 내용인지 바로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또 중요하다. 

찰떡~ 이렇게 말하면 한국사람은 
일일히 따지지 말고 
토를 달지 말고 말하고자 하는 본 핵심을 빨리 파악해서 임하라.
이런 말을 나타내는 의미로 쉽게 알아듣기도 한다. 

그런데 어떤 이가 수퍼마켓에 가서 
찰떡을 사가지고 오면 
또 엉뚱하다. 

그리고 비유를 들어 제시한 내용의 옳고 그름을 따질 때 
비유로 든 내용을 가지고 이것을 따지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비유는 단지 제시하는 내용을 
이해를 돕기 위해 사용한 방편일 뿐이어서 
행에 대해 제시하고자 한 내용을 
파초로 비유했다면 
파초는 식물인데 
왜 행은 식물이 아닌가
또는 파초의 잎은 이런데 왜 행은 그렇지 않은가.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곤란하다. 



♥ 잡담 ♥풍광용 카데고리신설 

예술작품과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스크립트에 

버그가 없는가를 테스트하기 위해
다양하게 테스트 중인데 

그런 가운데 본 웹 페이지 상에는 
풍광용 카데고리를 하나 또 신설할 필요를 느껴서 
신설했다. 
이는 원래는 불교예술 코너에 같이 있었는데 
넓게 보면 사바세계 일체 색상문자가 다 불교와 관련이 되지만, 
간혹 이 장소가 왜 불교와 관련된다고 불교예술 코너에 넣었는가하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고 
방문하는 대학교 가운데에는 기독교나 천주교 등 다른 종교재단에서 설립한 곳도 많고 
관광장소에도 다른 종교 시설이나 유적지도 많이 포함되는데 
공연히 오해를 받는 것도 문제되기에 
이번에 카테고리를 하나 따로 신설하였다. 

그런데 원래 구글 다음 네이버 맵 이용은 해당 사이트에서 하는 것인데
본인이 이것을 다 찾아서 복사할 의미는 없고 
또 계속 링크를 걸어 올려 놓으면 
해당 사이트에서도 의아하게 대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카테고리에는 샘플 차원에서 37 장소만 올려 놓기로 하였다. 

아무리 free 한 이용을 제공해도 
적절하게 free 한 이용을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고 
방침을 정하고 명칭도 37-sight seeing으로 정하였다. 
사실은 올려진 것이 37 페이지인 상태여서 그런 것이지만, 
여하튼 37 이란 숫자가 불교에서는 나름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숫자이다. 

지금 뽑혀 나온 대학교도 살펴보면 
들판만 보이는데 
가끔 대학교라고 해서 방문해보면 
일반 건물 하나만 놓고 대학을 운영하는 곳이 
상당히 있다. 

이곳은 어떤 유령대학인가 이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본인은 이런 대학들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학문을 연구하는데 무슨 큰 건물이나 공간이 필요한가. 

요즘은 문명이 발달해서 굳이 그런 시설이 많이 필요없다. 
특히 특정 학문분야에서는 아예 강의실이나 실험실이 없어도 되는 경우도 있다. 
요즘 사이버대학이 그런 이념을 잘 구현하고 있다. 
그래도 캠퍼스나 넓은 운동장이나 도서관 이런 것이 함께 있는 것이 좋지
않은가 생각하는데 
그것은 전 세계에 있는 국립공원 도서관 운동장 이런 것이 
다 그 대학의 캠퍼스내 시설이라고 생각하고 임하면 된다. 

그래서 가끔 한 3,4 층 되는 건물 하나만 있는 대학교
또는 들판만 보이는 대학교 
이런 곳이 나오면 이것은 대단히 좋은 대학이라고 긍정적으로 본다. 

또 이를 놓고 반대로 생각하면 
뜻만 있으면 또 오늘날도 어느 장소에서도 
그런 좋은 공익 시설을 설립해 운영하는 것도 
그처럼 가능하다는 점을 파악해 임하는 것도 
대단히 바람직하다. 

나중에 보면 캠퍼스가 너무 넓고 넓어서
첫 강의는 예를 들어 마치 인천에서 듣고 
수업 끝나고 서둘러 가방에 책들을 챙겨 종로로 옮겨가 두번째 강의를 듣고
이런 것이 학문연구에 별로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캠퍼스가 크다는 것은
공연히 운영비용만 많이 들고 내실은 별로 없고 
오히려 학문연구에 장애를 초래한다. 

그렇게 캠퍼스가 넓으면 
해당대학에서 하다못해  노벨상이라도 받는 이가 

한 두명 정도라도 배출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도 못한 가운데 캠퍼스만 넓고 시설이 좋은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같은 상표 같은 질의 같은 모자를 하나 구입하는데 
시장에서 500 원이면 사는 모자를 
공연히 백화점에 가서 5 만원 주고 산다음 
비용을 많이 치뤘다고 그 모자가 좋은 모자라고 여기려는 그런 
상태와 같다. 

요즘 대학교는 내실이 없어서 
알고보면 공무원 시험 준비 학원 보다도 못하다고 평가받는 경우도 
간혹 있다. 
알고보면 얻는 수익도 학원이 더 많고
합격률이나 성취률도 학원이 더 높다. 
그것은 강의에 임하는 강사나
이를 대하는 학생의 사정이 또 그렇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언가 제각각 원하는 좋은 것을 주지 못하고 
자체적으로 실속없는 명예를 위한 학위증 발급과
학내 교수 직위 획득과 자체 보직 순환을 위한 학교라면
문제다.  

그런데 이처럼 올려진 사진 하나를 놓고 
너무 가지를 쳐서 나아가면 문제가 된다. . 

원래 논의하고자 한 새 역사창조방안에 대해서 
살펴야 한다. 


여기서 새 역사 창조란 무엇을 말하는가. 

역사란 흘러간 과거를 말한다. 
그리고 과거란 이미 흘러가서 변경할 수가 없다고 
일반적으로 본다. 
그런데 그 과거를 그렇게 놓고
다시 그 내용이나 의미를 좋게 바꾸는 방안을 
여기서는 새 역사 창조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현재나 미래 시간대에
어떤 할 일을 좋게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미래에 무언가를 좋게 잘 하는 것을 여기서 새역사 창조라고 한 것이 아니다. 

이미 흘러가 버린 과거를 그것을 그대로 놓고
그것을 다시 좋은 형태로 바꾸는 것을 
여기서 새 역사 창조라고 표현한다.  

조금 의미 혼동이 있다면 
역사의 새 창조 이렇게 표현하기로 한다. 


그런데 우선 
과거가 좋으면 무엇하려고 새로 바꾸겠는가만 
과거가 마치 컵이 깨져 엎지러진 물과 같은 상태가 된 경우처럼 
별로 좋지 않은 내용이 있을 때 
어떻게 해야 이것을 다시 복구하고 좋게 만들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여기서
그런 역사의 새 창조라는 주제로 살핀다. 



현실에서도 어느날 갑자기 파산을 당하거나 
갑자기 나락으로 굴러 떨어져서 
앞으로는 도저히 다시 회복할 수 없다고 보는 상태에 
처한 경우가 가끔 있는데 
이런 경우 정말 그렇게 두는 것이 
그 당사자나 다른 이 모두에게 바람직한가. 
이런 문제를 놓고 

과거는 과거지만, 
그 상태에서 어떻게 무엇을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고 해서 
이전보다 훨씬 좋은 상태가 될 수 없는가를 
살피고자 하는 것이다. 

불교경전에는 그런 경우를 
환골탈태 방안이나 
앙굴마라나 주리반특가와 같은
성인의 사례를 들어 살필 수도 있다. 

이는 999 명을 살해한 살인자가 
나중에는 수행자 가운데 최고의 상태인 아라한 성인이 되고 
게송은 단 한 게송도 못 외우는 상태에서 
경전을 다 외우고 있는 아난 존자도
부처님 열반시까지도 쉽게 성취하지 못한 아라한의 지위를 
이룬 사례들이 
앞의 내용과 관련이 된다. 

그래서 현실에서 이제 삶의 기간은 얼마 남지 않았고 
이제 다시 무엇을 새로 시작해서 바꿔볼 방안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고 
여기고 체념하기 쉬운 
임종 직전 3 분전을 놓고라도 
이 3 분안에 무엇을 넣고 빼고 곱하고 나누면 
그 앞 내용이 모두 질적으로 변화해서 
단순히 원상 회복이 될 뿐 아니라 
이전보다 훨씬 더 좋고 좋은 상태가 될 것인가. 
그런 방안은 없는가를 놓고 연구를 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연구를 한다는 것이지 
명확한 정답이 미리 준비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본인 입장에서는 정답이라고 보지만,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정답이라고 보기 힘든 답이 하나 있다. 
일전에도 이런 문제 해결방안을 제시한 적이 있다. 

깨진 유리컵 + ( - X % ) U = 이전보다 훨씬 좋고 좋은 상태 
이렇게 식을 작성해 놓고 
그 답을 U 라고 제시하고 
그렇게 U 라는 답을 얻었다고 하면서 
글을 마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누군가는
그 U 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하고 
자꾸 물어보게 된다. 
그러면 조금 구체적으로 이를 표현해
'그렇게 결과를 만들어 내는 수행'이라고
간단히 답을 하면 된다. 

그래서 해결이 간단하다. 오늘 조각글 끝. 

그러나 그럴 수는 없고 
조금 쉬었다가 기력이 조금 생기면 
다시 이어가기로 한다. 




mus0fl--Eddy Mitchell - Pauvre baby doll.lrc


식사할 시간이 되었는데 
옥상기지에서 쉬는 동안 
연구 중간 결과가 나와서 
서둘러 보고하고 
식사를 하기로 한다. 

앞에서 비유를 들어 내용을 설명했으므로 
역사의 새창조에 대한 주제도 
비유로 설명을 해보고자 한다. 

산수가 쉬우면 앞에서 든 덧셈 곱셈 뺄셈 나눗셈을 가지고 
설명해도 된다, 
그러나 자연현상이 더 쉬우므로 이것을 비유로 들기로 한다. 

모래가 쏟아졌다고 하자. 
이것은 모래인데 만일 이 모래를 화분에 담아 
난초를 심으면 이제 그것은 난초 화분이라고 보게 된다. 
물론 이 화분을 들여다 보면 여전히 모래가 보인다. 

또 다른 경우를 놓고 보자. 
염소가소는 독가스라고 할 수 있다. 
나트륨도 상당히 위험한 물질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염소에 나트륨을 결합시키면 이제 염소와 나트륨은 없어지고 
염화나트륨 즉 우리가 아는 소금이 나타난다. 

이 경우는 아무리 소금을 들여다 보면서 
이 안에서 염소나 나트륨이 갖고 있던 성품이나 모습을 
찾아보아도 찾기 힘들다. 

이런 변화를 자연이나 실험실에서 본다고 할 때 
어느 하나는 기존의 재료가 그대로 남아 보이는 형태이고 
하나는 그렇지 않기에 
하나는 물리적 변화, 
또 하나는 화학적 변화라고 명칭을 붙여 구분하게 된다. 

결국 덧셈 곱셈이라는 산수식이 의미하는 것은 
이런 내용과 같다. 

이 가운데 특히 그 변화가 심한 화학적 변화를 하나 놓고 
그렇게 결과가 나타나면
그 전에 분명히 있었던 어떤 재료와는 
전혀 다른 성품과 모습을 갖는 형태가 나타나는 한편 
이전 재료는 없어지고 그런 모습이나 성품이 보이지 않게 되니 어리둥절하게 된다.

그런데 과학자는 
비록 그 직전에 있었던 그 재료는 지금 보이지 않지만, 
그것이 어디로 간 것이 아니고 
지금 나타난 화합물에 그대로 들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설명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런 비유로 지금 제시하고자 하는 과거 역사의 새창조 방안이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비유는 비유고 
지금 문제삼는 어떤 사건 사고는 
모래도 아니고 염소나 나트륨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한가 문제삼을 수 있다. 

그래서 비유를 통한 이해문제는
찰떡~이런 비유를 동원해서 
다시 그 사정을 이해해야 한다. 

덧셈 곱셈도 그렇지만, 
또 뺄셈 나눗셈도 마찬가지다. 

여하튼 이런 변화를 통해 
결과상태에서 여전히 과거에 대한 성품과 모습이 파악되면 
그것은 조금 질적으로 불완전한 변화이거나 
물리적 변화로 비유해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처음 앙굴마라가 999 명을 살해하고 
부처님에 의해 인도되어 
수행을 하고 상당한 단계에 이르렀는데도 
동네에 구걸을 하러 나가면 
동네 사람들은 여전히 앙굴마라를 흉악한 살인자로 보고 
그를 향해 돌을 던지곤 했다는 내용이 경전에 소개되고 있다. 

이 경우는 앞의 비유를 놓고 보면 
수행을 많이 했는데도 
여전히 과거 흔적이 보이는 상태와 비슷해서 
물리적 변화상태라고 비유할 수 있다. 

그래서 이 문제로 고민하는 앙굴마라에게 
부처님이 다시 다음과 같은 촉매를 투여해서 
완전히 질적인 변화를 이루게 한 내용이 소개되고 있다. 
그 내용은 경전을 참조하면 된다. 

간단히 소개하면 
앙굴마라에게 산고를 겪는 산모를 찾아가서 
자신은 살해한 일이 없다라고 선언하고 
무죄 입증을 받으라고 제시하면서 
수행을 하면 새로 태어난 것과 같고
그 이후 수행을 통해 아라한을 증득한 이는 

그런 일과 일체 무관하다는 것을 선언하고 
산고를 겪는 산모가 무사히 출산하게 되는 것을 가지고 
입증해 보이라고 제시했다.  

여하튼 부처님의 가피와 지도에 힘입어서 
앙굴마라는 수행자의 최고 단계인 아라한이 되어 
성인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이런 사례를 하나하나 들면 끝이 없는데 
8대 종파의 종조의 지위에 있어서 
거의 모든 불교 신자가 존중하는 용수보살님은 
출가전에는 성추행 강간범으로 왕의 추격을 받는 
상태였다고 용수보살전에 전해진다. 

그런데 오늘날 용수보살님을 놓고 
그런 내용을 들어 비방하는 수행자는 드물다. 
그 사정이 앞에 적혀 있다. 

문제는 그런 경우는 그렇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또 여전히 문제가 남아 있다. 
그래서 역사의 새창조 방안은 
이처럼 비유나 사례를 통해 설명이 마쳐졌다. 


과거는 이미 흘러간 일이어서 변경할 도리가 없는 한편 
원래의 기본 재료는 그대로라고 과학자가 설명하지만 
그렇지만, 그 상태에서 다시 무엇을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는 노력을 하니 
그 과거가 앞에 제시한 화학적 변화처럼 
그 과거의 내용들이 그 형체 모습이나 성품이 하나도 파악되지 않게 된다고
일단 이론적으로 제시하였다. 

그러나 현실에서 사람이 행하는 일들은 
사정이 다르다고 보는 입장도 있다. 

물론 물리적 변화일 때는 많이 모습이나 성품이 변하더라도 
여전히 그 내용을 과거시점으로 가보면 찾아 볼 수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화학적 변화처럼 질적으로 차원이 높은 변화가 이뤄지면
이제 그 시점에 가보아도 그런 내용과 그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게 된다. 
 
그러나 화학실험실 내용은 그렇다지만, 
현실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하고
또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다시 보충설명을 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지금 당면한 내용을 a 라고 써 놓고 나서 
이 현실단면이 a 라고 지금 보게 된다면
이제 나중에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순간의 이 단면의 내용은
a 로 결정된 것이어서 변화시킬 수 없다고 가정 해보자. 

만일 그렇다면 화학적이던 물리적 변화던 
이것을 달리 변화시킬 도리도 전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사정이 본래 그렇지 않음을 
금강경에서도 무유정법이라는 구절로서 제시한다. 

이 말은 결정되서 정해져 있는 것이란 없다는 의미다. 
그리고 무아 무자성 공의 이론이 모두 이와 관련된다. 

그래서 현실이 본래 그렇지 않은데 
다만 그렇다고 여기고 대하는 것은 
그 주체가 그런 전도망상 분별을 일으켜 
그에 집착해 그것을 대하기에 그렇다. 

그래서 이 사정을 그렇게 이해해야 한다. 



만일 과거가 a 이고 그래서 그것도 나쁘지만, 
그로 인해 지금 그로 인해 얻게 된 결과 상태 b 도 나쁘다. 
마음에 안 든다. 
그래서 이것을 바꾸기 위해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타임머신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서 과거내용을 바꾸고
그래서 현재를 원하는 대로 좋은 상태로 바꾸려고 한다고 가정해보자. 

소설이나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런 내용에는
많은 이론적 설명이 더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 다음 문제를 제기해보자.

먼저 과거가 a 였다고 전제하였다. 
그리고 그 과거 상황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렇게 과거로 돌아가 대한 그 현실 단면이 a 다. 
만일 과거로 돌아가 보니 그 단면 내용이 a 가 아니라면
이 경우는 처음 전제에서는 엉뚱한 시간대로 돌아간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여하튼 그렇게 과거 시간대로 돌아가 그 상황을 대하니 
그것은 a 다. 
이제 그 a 를 대하는 가운데 그것이 문제이므로 
다른 c 로 변경해 그로 인해 나타날 현재결과를 
또 바람직한 d 로 바꿀려고 한다고 해보자. 

그런데 이 문제를 잘 살피면 
이 문제가 처음 제기한 문제와 성격이 같음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즉 지금 대하는 현실 단면을 
a 라고 보는데 
그러나 그 상태에서 이 현실을 다른 내용으로 바꾸라는 요구와
성격이 같다. 

그런데 다시 살펴서 그것이 가능하다면 
왜 굳이 과거 시간대로 돌아가 그 a 를 c 로 바꾸고 
그래서 지금 내용을 b 에서 d 로 바꿀 필요가 있는가. 
그것이 가능하다면 
지금 현실 단면의 b 를 그냥 d 로 바꾸면 된다. 

그런데 만일 어느 한 단면에서도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면 
지금도 그것이 불가능하고 
과거도 돌아간다고 해도 그것은 불가능하고 
또 사정이 그렇기에 미래 또한 
이와 마찬가지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런 입장에서는 사실은 
어느 단면에서나 그 내용을 달리 변경할 방안이 없다고 보고
논의를 끝내야 마땅하다. 

그러나 앞의 무유정법을 제시하는 입장에서는
그것이 전도망상분별 상태를 바탕으로 
그런 망집을 일으켜 현실을 이해하고 대하는 상태에서 
갖는 문제임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현실내용에 본래 그렇게 결정되어 고정된 내용이란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하는 입장에서는 
이 문제를 처음부터 그렇게 대하지 않는다. 

즉, 그렇게 한 주체가 대하는 현실 내용을 a 라고 여기고 
그런 a 가 거기에 있고 
그런 a 가 다시 그렇게 없다가 있게 되고
또 한편 그렇게 있다가 없게 되고 해서 생멸이 있고 
다시 그것은 또 이전에 본 다른 b 와 c  등등에 의해 그렇게 된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 자체가 전도망상분별이다. 

그리고 그렇게 전도망상분별을 일으킨 입장에서만
그렇게 고집하여 대하고 
그런 사정으로 생사고통을 그런 상태로 받아나가게 된다.
이렇게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앞과 같이 무유정법을 제시하는 입장에서는
이와 반대로 
그런 내용은 실답게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제시한다. 



과거, 미래, 현재와 

안과 밖 

거칠고 고움, 

아름답고 추함, 

멀고 가까운 것을

일체 얻을 수 없고 
그런 것은 실답게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제시한다. 

또 이처럼 현실을 올바로 파악할 때는 
그런 가운데 
현실에서 망집을 바탕으로 
어떤 a 를 놓고 그것을 문제로 삼는다면 
그 a 를 뜻처럼 좋고 좋은 형태로 
다시 바꿀 수 있다고 제시한다. 

이 두 내용은 서로 근거가 된다. 

즉, 사정이 그렇기에
현실 내용도 그렇게 바꾸고 변화시킬 수 있고
또 사정이 그렇기에
무유정법이라고 제시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또 한편 
사정이 그렇기에 
현실 내용에서 그런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겪게 되는 문제도
그런 바탕에서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과거나 현재나 미래를 얻을 수 없기에 
앞의 이론만으로도 그처럼 원하는 상태를
지금 얻어내는 것은
굳이 타임머신이 아니더라도 가능하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다면 
왜 현재 문제삼는 b 를 달리 좋은 d 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굳이 타임머신을 의존해서 과거로 돌아가고
또 그 과거의 내용을 다시 변경시킨다는
두 단계에 걸친 힘든 노력을 통해 
현재 내용을 바꾸려 할 것인가. 

이는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현명한 방안이라고 보기 힘들다. 

그래서 현실에서 문제삼는 내용을 
좋고 좋게 바꾸려면
지금 현실단면을 붙잡고 지금 내용을
변화시키는 것이 가장 간단하다. 


그래서 경전에서 
수행자의 도를 돕는 37가지 수행방안 가운데 
제시되는 4 의단(정근)의 내용을 보면 

엎지러진 물을 놓고 
과거로 돌아가서 그것을 다시 엎질러지지 않게 
조치를 취하라는 내용은 제시하지 않는다. 

이미 있는 악은 더 키우지 말고 
아직 없는 악은 새로 만들지 말고 
이미 있는 선은 더 키우고 
아직 없는 선은 새로 만들라. 
이처럼 제시한다. 

이 내용을 잘 살피면 
과거로 돌아가서 과거 내용을 어떻게 수리를 다시 해보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지금 당면한 이 순간에서 행할 바를 제시한다. 

그런데 이 내용도 마찬가지다. 


만일 현재의 어떤 내용이 
과거가 그렇기에 그렇게 행하게 되도록
이미 묶여 있어서 그렇게 결정된 내용이라고 
기계적 인과론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그렇게 행하라는 말은 좋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되어 있는 상태에서 
어떻게 이것을 하게 될 것인가. 
이렇게 대하게 된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망집상태에서 
현실의 변화과정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입장이다. 

그 본 사정이 그렇지 않기에 
또 현실 영역의 내용도 그렇게 변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내용도 알고 보면 
현실에서 지금 발가락을 잠깐 움직여서 
피를 돌게 하는 일과 마찬가지로 
마음을 갖고 일으키면 
아주 간단하게 행할 수 있는 일들이다. 

그리고 
이런 내용은 단지 불교 경전에서만 제시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종교 경전에서도 공통적으로 제시한다. 

예를 들어 심판이 있는 직전까지 
○○을 하라
●●을 하지 말라는 내용이 제시되는 것은 

아무리 그런 ○○ 을 하고 ●● 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이미 과거내용들로 인해
그 각 상황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이 미리 그렇게 결정된 상태이고
심지어 이로 인한 심판 내용도 다 결정되어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도대체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그런 일을 쓸모없이 하거나 하지 말라고 요구할 필요가 있는가. 


그러나 사정이 그렇지 않다. 
다른 종교나 현실적 규범 내용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래서 현실 규범들도 각 경우마다 
○○을 하라거나 ●●을 하지 말라는
내용이 많이 제시되는데 

앞과 같이 이를 대한다면 
이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렇게 이 내용을 이해하게 되는 것은 
그가 처음에 하나의 변화나 현실 내용을 놓고 
이 내용을 이해하는데 
망상분별과 집착을 일으키고
엉뚱하게 잘못된 해석을 하고 대하기에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어떤 이가
만일 어떤 존재를 그렇게 믿고 따른다면
그 존재가 하라거나 하지 말라고 한 그런 내용을 놓고 
그 믿음만큼 그 내용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간혹 그런 믿음을 갖는다면서도 
제시된 여러 내용가운데 
유독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골라 취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신이 하늘에 가는 것은
그런 사정으로 이미 그렇게 정해진 것이라고 여기면서 
매 순간 자신에게 유리한 내용만 취해 행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이런 경우 결국 그런 상태로 임하면
대부분 출입구 부분에서 박대를 당하고 쫒겨나게 된다고 
제시되어 있지만, 망집이 너무나 확고 부동해서 
왠만한 설명으로는 해결하기 힘들다. 

입시시험으로 비유하면
누가 보아도 시험합격에 필요한 노력은
하나도 안하여 낙방이 뻔한데 
당사자만은 무슨 근거인지 
그렇게 계속 임해 세계 최고 일류대학에 
합격한다고 믿고서 임하는 경우와 사정이 비슷하다. 

그런 가운데 근거없는 낙관과 믿음을 갖고
마음대로 살아가면 
하늘에 들어가 살게 된다고 
여기고 현실에 임한다. 

이 근거없는 희망과 기대와 낙관은
알고보면 그런 망상분별에 바탕한 것이다. 

현실적으로 
시험의 경쟁률이나 커트라인 등이
그 성취가 힘든 사정을 알려주듯
낙타, 또는 동아줄이 바늘귀를 들어가는 등의 비유가 이런 어려움을 알려준다. 

그리고 부처님은 
인간세계에서 하늘로 가 태어나 살게 되는 비율이나
또 낮은 단게의 하늘에서 다시 조금 높은 단계의 하늘로 태어나게 되는 비율이
하나의 산에 있는 흙과 손 바닥에 올려놓은 흙의 비율처럼
대단히 희박하다고 제시한다. 

상황이 이런데 
당사자들만 근거없이 태연하게 임하는 것을 현실에서 많이 보게 된다. 

그러나 만일 이런 이가 
자신 스스로 심사관이 되어 자신을 심사해 보면 스스로 
합격증을 줄만하다고 여기겠는가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자신을 성찰해 보아야 한다.

그런데 여하튼 
근거없는 낙관을 갖고 현실에서 막무가내로 임하게 되는 사정은
결국 처음부터 잘못된 망상분별을 일으켜 
희망과 객관적 상황을 혼동하여  뒤섞어놓고 
현실을 대하기에 그렇다.




엎지러진 물이 있을 때 
이것을 그대로 두고 무엇을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고 하면 
이제 과거 내용이 쑥 없어져버릴 수 있는가.
방안이 없다면 제시할 필요도 없고
무엇을 어떻게 하라거나 하지말라고
각 경전에서도 그와 관련된 내용을 제시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지 않다. 


그리고 그런 사정을  
앞과 같은 비유를 통해서 잘 헤아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자신의 상황에서 그 모호한 U 에 해당하는 방안들을 
최소한 임종 3 분전까지는 찾아내서
잘 실천해 행하는 것이 그 방안이다.
그리고 이것이 자신의 삶과 관련된 과제다. 

그리고 이렇게 사정을 잘 헤아리면 
이와 반대로 평소 아무리 수행을 많이 했다해도
자신이 질적인 변화를 하게 될 그 시점
예를 들어 임종 3 분전에 달리 임하면
마찬가지로 엉터리가 되는 사정도 잘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기 위해 계획하고 
기차표도 예매하고 준비도 마쳤는데 
기차에 올라타기 3 분전
갑자기 마음을 바꾸어 
티겟을 찢어 버리고
다른 영화표를 사서 극장에 들어가면 
결국 목적지에 가지 못하고
대신 극장에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반대로 3 분전에 역에 나타나서 
입석표라도 구해서 떠나면
또 떠나게 된다. 

그러나 어느 경우던지 
기차가 다 떠난 다음에 
왜 그 기차는 자신을 놓고 이렇게 떠났는가라고  
문제를 제기하면 곤란하다. 

그리고 삶이 저물어갈 때는 
이런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미리 잘 헤아려야 한다. 



자신이 어렸을 때 어떠어떠했는데 
그런데 지금처럼 이렇게 늙을 줄은 몰랐다고 
부모님이 말하곤 한다. 

그런데 요즘 본인이 이 구절을 떠올리게 된다. 
마음은 청춘인데 
거울을 대하면 객관적으로 그렇지 않음을 쉽게 확인한다. 
그리고 과거에 부모님이 하셨던 그런 구절을
똑같이 되내이게 된다. 

그런 가운데 또 세월이 가면 
또 그 이후 내용도 또 그처럼 어쩔 도리가 없다. 
약간 우울하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나중에 역사를 보면
까마득한 과거 시점에 활약해던 이들도
그 사정이 지금 자신의 상황과 마찬가지였음을 이해하게 된다. 

과거 까마득한 몇천년전이라고 해서 
그 당시 어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그렇게 그 시기를 살고 간 것이 아니고
처음 어린이로 태어나서 총천연색으로 청춘을 보내고
그렇게 살다 간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자신도 얼마 지나지 않아 
과거의 수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맞이했던 일들을
곧 겪고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이런 생사현실에서는
그 이후가 사실은 더 문제다. 

물론 세상에는 
그렇게 한 번 죽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이라고 여기고 
삶을 대하는 경우도 많다. 

경전에서는 바로 
그런 자세가 현실에서 일으킨 망상분별 때문에
그렇게 임하는 것임을 제시한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앞에 제시된 기본 경전의 내용과 같이
가장 기초적으로 
자신이나 세계의 구성요소라고 보고 대하는 5 가지 내용[5온]을 놓고 
그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하나하나 자세히 제시하는 것이다. 




[img2-49] [그림] - 이하 아래 부분은 현재 [작성, / 표현교정, 수정, 보완/ 문단 재배치 순서 정리 등 ] 작업중입니다. -

작업 시점 2563_0912_210704


 



mus0fl--Coeur De Pirate - Place De La République.lrc


본인이 글을 쓰고 나서 
옥상기지에 올라가 쉬며 
본인이 쓴 글과 관련된 메세지를 전하는 노래를 듣게 되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본인이 글을 쓰고 그런 노래를 들을 때는 
그 직전까지 생각한 내용을 바탕으로
그런 내용을 그렇게 대하고 듣게 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노래를 들어도 
다른 생각을 하다가 들으면 
그런 내용을 그렇게 듣지 않게 된다. 
그래서 그런 입장에선 그것은 우연은 또 아니다. 

현실에서 어떤 생멸을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하지만, 
그러나 한 번 행한 업은 또 사라지지 않는다고 
이중적으로 제시하는 사정은 
그렇게 잘 헤아려 이해할 필요가 있다. 

반복해서 제시하지만, 
현실에서 처음 수행을 문제삼게 된 사정은 
그런 내용을 본래 얻을 수 없고 청정한 니르바나의 상태인 진여 실재영역에서 
어떤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본 바탕에는 그런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영역에서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겪는 문제가 있기에 
그것을 문제삼은 것이다. 

그리고 그 생사현실 영역에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 현실 영역에서 이런 본 바탕의 실재를 잘 관하고 
그 현실 영역에서 그처럼 수행을 잘 성취해서 
생사를 벗어나야 한다고 제시한다. 

그러나 이것은 또 실재 영역에서 그로 인해
어떤 내용을 얻어낸다거나
또는 그렇게 얻어내야 한다고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본 바탕은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는데 
현실 영역에서는 그런 바탕에서 겪을 수 있는 생사현실을 
수행을 통해서 그렇게 벗어나 
청정한 니르바나의 본 바탕과 상응하게 여여하게 
현실에 임할 것을 요구한다. 


지금 문제는 이미 지난간 어떤 과거 시점에 
어떤 일이 크게 잘못되었다고 보는 가운데 
이미 이렇게 된 상태에서 다시 무엇을 
어떻게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면 
그 일이 완전히 질적으로 다른 내용이 되어서 
아예 그 과거에 가보아도 그런 내용이 없다고 여길 정도가 되는가 
이런 문제를 살피고자 한다. 

삶의 현실에서 요구하는 문제가 그것이기 때문이다. 

보통 생사현실에 자신을 묶어 무량한 생사고통을 겪게 하는 사정으로 
그 주체가 과거 무량겁에 걸쳐서 행한 업의 장애를 들게 되는데 
앞과 같이 결정적으로 이 관계를 보면, 
사정이 그렇기에 앞으로 무량겁에 걸쳐서 그에 상응한 생사고통을 
받을 도리 밖에 없고 이것을 달리 할 방안은 전혀 없다고 제시하고 
부처님도 사정이 그렇다면 더 이상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제시하지 않고
끝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사정은 그렇지만 
그 상태에서 다시 무언가를 어떻게 행하면 
그것이 해소되고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날 방안이 있기에 
또 그것을 그렇게 제시하는 것임을 잘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어떤 현실을 놓고 보면 
비록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다고 해도 
그것이 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아니고 
그 가운데 일부가 마음에 들지 않고 
일부는 마음에 들고 그런 상태일 수 있다. 
여기서 초점을 맞출 부분은 
좋은 것은 더 키우고 없으면 새로 만들어 내되 
안 좋다고 보는 것은 또 더 키우지 않고 새로 만들지 않는 노력을 
행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이제 화학적으로 원하는 변화가 
나타남을 제시하는 것이다. 

현실에서 재벌이 좋다고 여긴다. 
그런데 그 재벌 그 상태로 곧바로 지금 들어가게 한다면, 
돈이 많다는 이 부분은 좋은데 
다른 부분은 별로라고 여기게 된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한 부분만 취하고 
나머지는 취하지 않으면 안 되겠는가하고 주춤하게 된다. 

예를 들어 재벌이 할아버지에 치매 상태인데 
돈은 수십조원이라면 어떤 부분은 취하고 싶지만, 
나머지 부분은 빼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수행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다며 
그 방안을 수행방안으로 정리해 제시한다. 

그리고 그 기초 이론을 위해서 
앞에서 살핀 것처럼 
세상의 구성요소이자 자신을 구성하는 요소가 되는 
5 가지 요소를 나열해서 
그런 굳은 것(실다운 어떤 것)이 아님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런 주제에서 
그러면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예를 들어 재벌이 꿈인데 
현실의 재벌에서 좋다고 보는 내용은 그대로 취하고 
좋지 않다고 보는 것은 또 하나하나 나열해서 다 빼버리고자 한다면 
어떤 방안을 취해야 할 것인가. 
이런 문제도 제시할 답은 위와 마찬가지다. 

현재의 자신의 상태 + (x - % ) U=  자신이 원하는 상태 
이렇게 식을 제시해 놓고 
그 U 가 그 답이라고 제시한다. 

대부분 현실에서 이 답을 얻기 힘들다고 보지만, 
본 사정이 그렇지 않기에 그 답을 U 로 제시한다. 


이 경우 다시 이렇게 물을 것이다. 
구체적 현실에서 그 U 에 해당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 경우 앞의 내용을 다시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조금 달리 표현하면 이렇게 제시할 수 있다. 

그 U 에 해당하는 답을 자신이 찾기 힘든 것은 
그 답을 자신의 입장을 고정시켜 놓고 찾기에 그렇다. 

그 상황에서 그 상대나 다른 이들은 
그 U 에 해당하는 내용을 대단히 쉽게 찾고 
그것이 상당히 간단하다. 

물론 모든 병이 그렇지만, 
초기에 그렇게 행하면 정말 간단하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조금씩 더 힘들어진다.
그러나 여하튼 그런 방안이 있고 
그것은 대단히 간단하다. 

실례를 들어보자. 

과거에 얽힌 어떤 문제로 이웃나라 국민이나 대표에게 
뭔가를 열심히 행할 것을 원하다고 가정해보자. 

어떤 경우는 남의 입장에서 서쪽에 있는 바다를 
동쪽에 있는 바다로 부르자라고 요구하는 것처럼 
상대입장에서 엉뚱하다고 보는 내용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그냥 그렇게 불러주면 되는 것 아닌가. 
그것이 얼마나 쉬운가 이렇게 생각해보자. 

그래서 상대가 사실 흔쾌히 그렇게 해주면 되고 
그래서 그 답이 그렇게 있다고 본다.
그리고 알고보면 행하기도 쉽다고  본다.
그러나 그 상대입장에서는 그 내용을 잘 찾지 못하는 한편 
설령 찾아도 그것만은 도저히 행하기 힘들다고 보게 된다. 

바로 위에 제시했던 그런 사정때문이다. 
즉, 처음부터 전도몽상분별을 일으켜서 
한번 동쪽이면 영원히 동쪽인 것이고 
그것이 입장따라 상황따라 북쪽도 되고 서쪽도 되고 남쪽도 되고 
시적으로 명칭으로
서쪽도 동이라고 표현해 부를 수도 있고
그렇게 부르면 그만인데 
그것을 그렇게 어렵게 여긴다. 


그런데 경전에서 제시하는 내용은 
본 바탕도 그렇고 
알고보면 문제삼는 감각현실도 그렇고 
본래 그런 내용을 본래 처음부터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오죽 답답하면
안이나 밖도 그렇고 
앞 시간이나 뒤 시간이나 사정이 모두 그렇다고
일일히 문제되는 내용을 나열해 그 사정을 제시하겠는가. 

그래서 각 경우마다 문제되는 그런 U 를 
쉽게 찾으려면 자신의 입장을 
자신과 관련된 상대에 들어가서 찾으면 
3 분이 안 결려서 쉽게 찾을 수 있고 
행하기도 간단하다. 

그런데 또 현실의 망집을 기준으로 하면 
그것은 결코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보고 임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 상태에서는 지금 이 순간 그런 것처럼 
다시 무량겁을 또 나아가고 나아가더라도 마찬가지로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런데 그 문제가 오직 한 쪽만 있지 않고 
사실은 다 마찬가지다. 

그래서 앞과 같이 동해 서해 이런 표현이 문제될 경우는
상대는 상대대로 남의 동쪽에 있는 바다를 놓고
서해로 같이 부르자고
또 거꾸로 요구한다. 

그리고 어떤 사건이 문제가 되어 표면에 나타나는 경우는 
대부분 이에 관련된 당사자들 가운데 
어느 한 쪽도 요구되는 방향을 취하지 않고
다 같이 그렇게 임할 경우에
그런 문제 상황에 들어가 임하게 된다. 

그래서 예를 들어 이 가운데 
단 한 주체라도 부처님이나 아라한이나 예수님 보살님 이런 자세로
그 상황에 임한다면 
그런 사건 자체가 문제되지 않고 
또 이로 인해 관련된 나머지도 
또 그처럼 그렇게 변화해가게 된다. 

앞에 대학교 관련 이야기를 적었더니 
듣는 노래에서
계속 너 동대지 이런 메세지를 욕을 섞어 하는데 
이는 오해다. 동대가 아니고 본인은 서대다.



 



mus0fl--Doriand - Guillaume Cantillon - On Aimerait Bien.lrc


쉴 때 본인을 비난하는 듯한 노래메세지를 듣고 올렸는데 
그러나 이 노래가 긍정적인 것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여전히 활동중이라고 메세지를 전하는 한편 
숙왕화님의 본거지를 알려주는 부분이라고 본다. 

과거 같으면 과거 조각글의 노래나 사진 글 들을 문제삼아 
doctr 님이나 mun 님 등이 통편집을 단행했었을 경우가 많다고 본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censorship 을 발동하지 않고 있어서
별 제한없이 올린다. 
그것은 물론 doctr  님이나 mun 님등이 일반적인 전도망상 증상을 바탕으로

아후쿵텡풍텡테 현상을 일으킬 경우가 많기에 
사전 예방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 [특수전문용어 참고] - 아후쿵텡풍텡테



그러나 사실 그대로 두어도
또 이후 듣게 되는 노래 가운데 
부작용을 서로 상쇄 중화시킬 수 있는 노래도 함께 올리는 가운데 
자체적인 정화를 이루게 된다. 
 
그래서 늘 한 단면만 보고 무엇을 속단하고 고집하는 것은
늘 지나치다. 

요즘 미투 운동이 문제가 되어서 
최근 양경존찬이란 사업 기획안도 제시하는 가운데 
다양한 내용을 제시한다. 

본래 이런 부분은 
성경에 간략하게 해결방안이 정리되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런 내용을 무시한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수영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에게 다가가 
당신은 왜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못 따는가라고 
문제를 삼으면 무엇이라고 답하겠는가. 

원래는 
"죄송합니다. 부족함에 대해 참회반성하고 
더 노력해서 마라톤도 금메달을 따 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라고 답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런데 보통 그런 경우 그렇게 하지 않고 
나는 수영에서 금메달이라도 땄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는 당신은 
무엇 하나 잘 하는 것이라도 있는가라고 말하게 된다.  

그런 경우
그에 대한 정답도
"알고보면 그렇습니다. 
저 역시 참회반성을 하고 이런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고 
앞으로는 궁금한 일이 있어도 혼자 연구해 보고
실례되는 질문은 조심하겠습니다." 
이렇게 임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그렇게 답하지 않고 
"내가 하면 수영도 금메달이고 마라톤도 금메달인데 
다만 안 할 뿐이고 
대신 요즘은 사격과 검도에 관심이 있는데 솜씨를 보여주겠다" 하면서 
무조건 죽도로 죽도록 내리치기 쉽다. 

그런데 이 가운데 어느 한 일방이라도 정답을 제출했다면 
사실은 그 이후 연속되는 사건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고난탐정의 입장에서 매번 문제되는 사건을 정리해보면 
같은 성격의 문제가 계속 반복됨을 보게 된다. 

그런데 왜 그런가. 


우선 어떤 주체도 완벽하지 않다. 
그리고 이 사바세계의 성격 자체가 
안인을 초점으로 수행하는 수행처로서
수행을 하는 장소이고 
그래서 사실 성경버전처럼 내용을 대해야 적절하다. 

미투 운동이 시작되게 만든 하나하나 사건마다
바로 그 버전을 적용해 임해야 함을 
이미 2000 년전에 제시해주었던 것이다. 

이 때 어떤 이가 
예수님은 그런 입장과는 사정이 다른데
왜 직접 돌을 안 던지십니까라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데 
또 그에 대해서도 그 사정을 잘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그렇게 알려준대로
정답을 잘 적어 제출해 내는가가 핵심문제다. 


아이들의 문제로 놓고 살펴보자 
두 아이가 하나의 구슬을 놓고 서로 자기것이라고 하면서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초점으로 놓고 대해야 하는 것은 
이 가운데 누가 철이 많이 들어서 
그런 것이 본 문제가 아님을 관하고 
양보하고 벗어나올 수 있는가이다. 

또 누구라도 그렇게 될 수 있도록 
그런 내용을 힌트나 답으로 그렇게 제시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상태에서 어떤 아이가 
그렇게 문제되는 것을 상대에게 양보하고 
이후 상대와 친하게 지내는 어떤 아이가 있다면 
그는 이미 그런 수준의 아이가 아니다. 

그러면 그런 수행을 더 할 필요는 없고 
조금 수준 높은 곳으로 장소를 옮겨서 
또 필요한 수행을 하게 된다.  

그러나 첫 문제를 잘 풀지 못하면 
그렇다고 상황이 좋은 곳으로 옮겨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 상황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할 
그보다 더 심한 상태로 옮겨가서 다시 수행에 임하게 된다. 

이런 사바세계의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수영에서 금메달은 땄지만,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는 
또 마라톤 훈련에 성실히 임하고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수영에서는 금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는 그 선수대로 
또 수영 훈련에 성실히 임해나가게 된다. 

만일 처음에 이 문제를 다 함께 그렇게 대하지 않았다면 
두 선수가 다 함께 제 각각
교도소나 병원 한 방향으로 방향을 잡아 나아가
자리를 잡게 된다. 

그리고 이후 이전 조각글에서
제시한 것과 같은 3 부작에 걸친 종합 가치 판단이 이뤄지게 된다. 



어떤 한 사람이 몽둥이를 들고 
다른 이를 너무 심하게 폭행하고 있어서 
사람들이 둘러싸서 그렇게 심하게 폭행하는 것은 나쁘다며 비난을 한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지금 이 상대가 1 주일전에 
자신의 집을 붙 태웠다고 사정을 설명한다. 

이제 이 내용을 놓고 살피면
그 상대가 맞을 만한 사정이 있어서 그렇다고 보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맞던 이가 숨을 돌리면서 
자신이 그렇게 집을 붙 태운 것은 
알고보면 지금 자신을 때리는 이가 
1 달전에 자신의 부모집에 들어가 부모집을 불태우고 
물건을 훔쳐갔기에 그런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내용을 또 대하면 또 어떻게 보게 되는가. 

그런데 이런 1-2-3 의 이야기가 
사정을 살피면 살필수록 
무량하게 나열 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상태 어느 한 단면에서 이것을 
처음 제시한 형태로 잘 임해서 변화시키지 못하면 
앞으로도 무량겁에 걸쳐서 
같은 성격의 시리즈물을 또 보게 된다. 

그런데 원래 처음 제시한 U 나 수행의 방향으로 
전환한 상태에서는 이상한 보물 창고를 따로 두어서
그 안에 다양한 내용을 보관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수행자가 지니는 7 재나 10 무진장의 내용이다. 

그런데 그 창고에서 중요한 보물창고가 
과거에 자신이 행한 어떤 실수나 잘못을 참회하고 반성하는 내용을
각기 참 괴로 제시하면서 
이 두 창고를 수행자의 보물장고로 제시한다. 

그 창고에 그 내용을 참괴의 항목으로 보관하면 
이후 전개되는 무량겁에 걸친 고통을
그로 인해 제거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앞의 상황에 임해서 
같은 시행착오를 또 하고 또 하면서 
가해와 피해가 중첩된 상태가 된다. 

그런데 같은 내용인데도
그 상태에서 무언가를 더하고 빼는 수행을 하는 가운데 
그 참 괴를 보물창고에 보관하면 
그 가피 중첩이 부처님과 보살님의 가피중첩으로 바뀌어서 
빛이 나는 보물이 된다. 

이제 이런 상태에서 용수보살전에
왜 용수보살님의 추문이 적혀 있는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알고보면 미륵보살님도 사정이 비슷하고
석가모니 부처님도 또 사정이 비슷하다. 

그리고 이것이 앞에 설명한 내용이다. 






○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Cali - Qui Se Soucie De Moi.lrc


조각글을 쉬고 쓸 때마다 많은 멀티자료가 붙는데 

그것은 조각글을 다양한 자료와 함께 
쉬면서 대하는 것이 좋다고 보기에 그런 것이다. 

쉬는 가운데 TV를 하나 보았는데 
그림 하나를 놓고 그림에 얽힌 사연을 1 시간 동안을 
설명하는 것을 보았다. 
알고보면 피렌체 가문과 관련된 그림인데 
이것이 나중에 2 차대전시까지 관련이 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지금 여기 붙이는 예술작품이나 장소도 알고보면 
그런 사정이 다 있다

그것은 평소 아무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더라도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볼 때 자신에게 많은 사연이 있음을 검토해보면 쉽게알 수 있다. 
그래서 동네 할아버지나 할머니마다 다 자신의 과거 삶을 이야기하면 
소설책으로 한 10 권을 써도 부족하다고 말하게 된다. 

그러니 그림 하나를 놓고 1 시간에 걸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은 
그다지 심하지 않다. 
꽃도 다 그저 다른 꽃들과 비슷해보이지만, 알고보면 다 사연이 있고 
사정이 다르다. 


그런데 본 조각글의 핵심 주제는 다음이다. 
좋은 것은 무량하게 얻고 
나쁜 것은 남김없이 제거하는 방안을 찾는 가운데 
가장 해결하기 힘들다고 보는 부분 
즉 이미 엎질러진 물과 같은 
과거 부분에 있는 어떤 나쁨을 남김없이 제거하고 
또 동시에 그 가운데 있는 좋은 내용은 또 다 취하고 
그런 가운데 좋은 것은 무량하게 증폭시켜 얻어나가고 
나쁜 것은 무량겁에 걸쳐 일체 받지 않는 방안이 무엇인가이다. 

아직 불확정인 상태라 알 수 없다고 보는 미래는 
아무 제한없이 희망하는 대로 마음껏 밑그림을 그려 놓고 
그렇게 하자고 제시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흘러간 과거 내용을 놓고 대할 때는 
일반적으로 그것이 곤란하다고 보는 것이 또 일반적 입장이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대하기 때문에 
과거에 자꾸 얽혀서 수렁으로 끌려들어가기도 쉽다. 

그래서 시체가 하나 발생하면
그와 관련된 당사자들이 제각각
그 위에 다른 시체를 무수히 쌓아 놓고 
그런 상태가 되어야 첫 문제가 잘 해결되는 것이라고 서로 여긴다.
그런 가운데 무량하게 그런 시체를 산처럼 쌓아가는 일을 행해나가게 된다. 

이 사정을 앞 노래에서 형제들이 대를 이어서
무언가를 상속해 받아가려 한다는 메세지로 전한다. 

상식적으로 좋은 일이라면 모르지만, 
현명한 이들이라면 왜 좋지 않은 것을 그렇게 반복해서 
대를 이어 물려주려고 임할 것인가. 
그런데 그렇게 되는 사정이 각 입장마다 그렇게 있다. 

그것이 앞에서 소개한 3 부작에 걸친 종합적 가치 판단과 관련된 내용이기도 하다. 
또 그런 내용이 처음 시작한 부분에서는 
제각각 처음 그렇게 임하게 된 사정이 또 있어서 그렇다. 

그리고 그 사정이란
각 순간 대하는 그 단면에서 
그런 상태를 벗어날 방안을 찾지 못하고 
그에 묶이게 되는 사정을 의미하는데 

그 근본 사정이 바로 
매 순간 대하는 현실 내용을 놓고 
전도망상분별을 일으킨 가운데 
이를 바탕으로 엉뚱한 것을 자신이나 세상의 내용으로
여기고 대하는 것이 바로 근본 문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자신이라고 보고 세상이라고 보는 
그 내용을 5 가지 요소로 나열한 가운데 
그런 망상분별을 제거시키려고 
그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제시하는 것이다. 

또 이것이 잘 이뤄지면 
그런 바탕에서 
본 바탕인 청정한 니르바나의 상태와 상응하게 여여하게 임해서
무량겁에 걸쳐서 복덕과 지혜를 구족할 수 있는
그런 수행방안을 다시 제시하게 된다. 


그래서 
무량한 겁에 걸쳐서 받게 될
무량한 생사고통은 남김없이 제거하는 한편 

그런 바탕에서 다시 동가홍상의 원리에 의해 
그런 망집으로 받는 생사고통과 나쁨을 다 제거한 상태에서 
다시 생사 즉 열반이라는 사정을 잘 관하고 
중생제도와 불국토장엄과 성불에 대한 서원을 일으켜 
생사현실에 임해서 
무량한 수명과 복덕과 지혜를 구족하는 수행이 필요하다. 

그래서 처음에 이 내용을 U 라고도 제시하고 
그렇게 되는 수행방안을 취해 이를 실천하고 성취해가는 것을 
바로 그 방안이라고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앞 문제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 임하면 
다른 입장에서는 쉽게 찾고 
행하기도 쉽다고 보는 내용들을  
정작 그 반대 입장에서는 
죽는 한이 있어도 결코 행할 수 없고 
그래서 도저히 행하기 힘들다고 보게 되는 사정이 
무엇인가를 잘 이해해야 한다. 


이를 결론적으로 쉽게 이야기하면 
수행자 입장에서는 다음 문제로 바꿔 놓고 이해하면 쉽다. 

우선 본 바탕을 놓고 보면 
문제삼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런데 왜 생사현실에 임해 수행함에 있어서는 
굳이 그런 계, 정, 혜의 수행방안을 취해서 
임해야만 한다고 할 것인가. 
이런 문제와 그 성격이 같은 문제가 된다. 

그래서 이 문제를 추가로 잘 살펴야 한다. 

이는 쉽게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저 상대가 내 팔을 잘랐다. 
이런 극단적인 문제라고 하자. 

그런데 처음에 그런 일이 
본 바탕에서는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이것부터
처음에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보지만, 
여하튼 경전이나 논서 내용을 자주 대하는 가운데 
그런 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하자. 
  
그런데 사정이 그렇다면 
자신이 다시 그 상대의 팔을 자르면 또 어떤가. 
그렇다 해도 마찬가지라고 
이해하기 쉽다. 

그런데 왜 이렇거나 저렇거나 
본 바탕에서는 모두 그 내용을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하면서 
수행자는 자신의 팔이 잘려질 때는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일으키지 않고 
그런 현실에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음을 관하고
그런 내용을 붙잡아 취하거나 머무르지 않아야 하고 
그에 바탕해 행하지 않는 가운데
평안히 임하라고 제시하는가. 

이 부분이 처음 문제된다. 

그 상황에서는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팔이 잘려져 그 이후 겪게 되는 불편과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고
잘못하면 자신도 사망에 이르게 된다고 보게 되는데 
이것이 왜 아무 일이 아닌가.

그런 경우에 평안히 임하는 자신이 따로 있다면 
그런 팔이 잘려진 그런 자신이 아니고
그 상태에 무엇이 따로 있어서 그렇게 평안히 임할 것인가. 
그리고 그 상태에 
팔리 잘려진 그런 자신 외에 도대체 무엇이 따로 있어서
그렇게 하면 무량겁에 걸쳐 생사현실에서 수행을 이어가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매 생마다 
포맷이 되어서 한 일 또 하고 또 하면서 
생사고통을 묶여 받아 나가게 된다고 하는가. 

이런 의문과 함께

설령 사정이 그렇다고 해도 
사정이 그러므로
그런 사정은 상대도 마찬가지이므로
그런 경우는 자신도 같이 상대의 팔을 잘라버리면 되는 것이지
왜 그렇게 하지 않고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하는가. 
이런 의문이 이어져 나올만한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처음에 제시한 입장을 관철하면 
그런 주장도 그럴 듯해 보이게도 된다.

그리고 이론과 현실이 늘 같지는 않기에 
이론적으로 그런 내용을 이해해도 
당장 자신의 손가락 하나만 부러지거나 잘려져도 
비명을 지르게 되는 것이 현실이어서 
이런 요구는 상당히 수용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사정이 그렇기에 
어떤 순간에서나 경전에서 제시하는 내용을 그처럼 행해서 
그 상황을 벗어나오기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결국 그렇게 하지 말라는 내용을 제시하는 경전에 
손을 얹고 기도하면서 
그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과감히 나아가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또 일반 전쟁이 아니라
종교적 성격을 갖는 전쟁에 임했던 당사자들의 사정이기도 한 것이다. . 

그러니 이 문제를 잘 이해하지 못하면 
수행을 해도 마찬가지라고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정은 다음과 같이 잘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본 바탕의 측면에서 보면 
현실에서 문제삼는 내용 일체는 그런 내용 자체를 
얻을 수 없다. 

그런데 문제되는 생사고통의 문제는
그런 본 바탕에 있는 것이 아니고 
현실 영역에서 전도망상분별을 일으킨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해결이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또 하나의 사정은 
그런 상태에서는 스스로 그 사정을 관하고 
그것을 벗어나오는 것이
앞과 같은 사정으로 대단히 힘든 것이어서 

결국 그런 사정을 잘 이해하는 수행자나 
부처님이 그런 상태에 있는 상대를 생사고통에서 벗어나오게 하고자 하는 취지로
그 생사현실에 같이 임하게 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수행자가 좋음(+)을 필요로 하는 이에게 아낌없이 베풀고 
상대가 집착하는 좋음(+)은 또 그대로 존중하고 함부로 침해하지 않고
동시에 상대가 집착하는 나쁨(-)은 나쁨대로 그것을 가하지 않고 

그런 가운데 거꾸로 상대가 그렇게 좋음을 침해하고 나쁨을 가할 때는
자신은 상대와 사정이 다르므로
그것이 본래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잘 관하고 
그것을 평안히 참고 받아들이라고 하는 수행내용을 제;시하지만,

그러나 본 바탕에서는 그런 내용 역시도 사실 얻을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런 수행으로 무량한 복덕을 얻는다해도 
그런 생사현실에서 그런 복덕을 얻고 머무는 것이 
수행자가 그런 수행을 행하는 목적도 아니고 

다만 중생을 제도하는 방편상 필요하기에 
그렇게 수행에 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정을 경전에서
그대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앞과 같이 수행자가 생사현실에 임해 생사를 받는 가운데 
무언가를 베풀고 
또 계를 지켜 무언가 다른 중생이 집착하는 것을 함부로 침해하지 않고 
또 무언가를 평안히 참고 받아들인다는 경우에 있어서 

수행자만은 그런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보지 않는 가운데 
그렇게 행해야 함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무슨 이야기인가. 

예를 들어 억울하고 고통스런 상황에서 
그것을 평안히 참는 안인 수행을 한다면 
수행자만은 그런 상황에 
그렇게 억울하거나 고통이라고 여길 그런 내용 자체를 
거기에서 얻을 수 없다는 사정을 기본적으로 잘 관하고
그런 수행을 해야 하고 

또 그런 안인 수행을 한다고 해도
또 그로 인해 어떤 것을 얻게 된다고 보지 않는 가운데 
그러나 그렇게 안인 수행을 임해야 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다른 수행덕목도 마찬가지다. 

무언가 다른 생명을 침해하지 않고 
다른 생명이 집착하는 좋음을 존중하고 베풀고 
그런 것을 침해하지 않는 수행을 할 때도 
그 수행자만은 거기에 그런 내용이 그렇게 실답게 있다고 관하지 않는 가운데
그런 것을 행하라고 한 것이다. 

또 수행자가 참괴를 한다거나 할 때도 
또 그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래서 보시를 행할 때는 
그 상황에 보시를 하는 이나 
보시를 받는 이가 그렇게 있다거나 
또 보시하는 물건이나 
보시하는 행위가 그 상황에 그렇게 있다고 
여기면서 그렇게 상을 취하여 임하면 곤란하고 
그런 상을 일으키지 않고
그에 머물지 않는 가운데 
그러나 그런 보시를 무량하게 행하라고 한 것이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할 때도 
중생을 제도하는 이나 제도받는 이가
그 상황에 그렇게 있다고 여기지 않는 가운데 
그러나 그렇게 무량하게 중생을 제도하라고 
제시한 것이다. 

그것이 곧 금강경에서 제시하는 내용이기도 하고 
반야경전 전반에 걸쳐서 제시하는 핵심 내용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왜 그런가하는 것은 
본래 사정이 그렇기에 그런 것인 것이기도 하고 
그처럼 본래 사정이 그런데도 
그러나 전도망상분별을 일으키고 그런 상에 집착한 생명들이 
다 그렇게 임해 생사고통을 받는 것이므로 
그 상태를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수행자 자신은 그런 본 바탕의 사정을 한편으로 잘 이해하고 관한 가운데 
다시 생사현실에서 고통을 받는 중생에 대해 자비의 마음을 일으켜서 
그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방편을 취해 
자신이 그렇게 임하고
그 현실에서 그런 복덕과 지혜를 구족해야만
그런 본 쥐치를 잘 성취할 수 있게 되기에
그렇게 행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쉽게 이 상황을 비유로 설명하면
정신병원에서 망상환자들이 다툴 때
의사가 그렇게 망상환자들이 문제삼는 그런 내용이 거기에
얻을 수 없음을 잘 이해하지만,

그러나 그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
상대가 개라고 치솔을 여기고 대할 때도
의사도 그 상태에 같이 들어가서 
치솔도 개라고 하면서 같이 쓰다듬고
상대가 먹이라고 여기는 치약도 주고 그렇게 해야
그 환자가 이제 의사를 따라
병을 치료하는 상태로 나아가게 되기에
그렇게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취지로 그 상태에 임한 의사마저도 
나중에 그 상황에 몰입해서 
상대가 그 치솔을 부러뜨리니까
자신의 손을 부러뜨렸다고 여기면서 비명을 지르고 
또 치약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상대환자와 싸우고 그런다면 

환자의 치료는 고사하고 
그 의사 자신부터 문제상황에 처해서 
병원내 감금시설에 묶여 감금되게 되고
그런 경우는 일반 환자보다 더 심하게 고통을 받게 되는
상태가 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이러 내용은 반야경전 지옥(니리)품에 제시되는 내용이기도 한데 
수행자는 그 사정이 본래 그와 같음을 잘 이해해서임해야만 
그 생사현실에서 수행도 수행대로 원만하게 성취하고 
이를 통해 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구족한 상태가 되어야
또 그런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받는 중생도 잘 제도할 수 있게 되기에 
그런 내용들이 요구된다는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사정으로
그런 중생제도를 위한 온갖 방편은
곧 진실이라는 관계식도 법화경 등에서 제시되고 

방편이 없는 지혜
또는 지혜가 없는 방편은 
그 수행자부터 생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묶인 속박상태라고 유마힐경 등에서 제시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결국
본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잘 이해하는 것이 
반대로 말하면
현실에서 요구되지만 구체적으로 행하기 힘들다고 보는
그런 내용들을 
또 매 경우 원만하게 잘 성취하게 만드는
기본 바탕이기도 한 것이다. 


이를 거꾸로 말하면 
어떤 입장에서 도저히 참을 수 없고 억울하다고 보는 내용을 놓고 
거기에 그런 내용이 실답게 있다고 전도망상분별을 일으켜 대하는 입장에서는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행해야 한다고 보는 수행 내용들은
하나같이 죽는 한이 있어도 도저히 행하지 못할 일로 여기게 되고 
그런 사정으로 매순간 그렇게 임하는 가운데
무량겁을 나아간다해도
결국 그런 상태에서 스스로 벗어나오지 못하게 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사정이 이러므로
그런 수행을 매 경우마다 쉽고 원만하게 잘 성취하는 바탕은 
일정한 계기를 통해 그렇게 행하지 못하게 만드는
전도된 망상분별을 제거하는 것이 그 방안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내용 역시
수행자 입장에서 스스로 잘 행하고
또 다른 이도 그렇게 잘 행할 수 있도록 하려면
결국 또 앞과 마찬가지의 내용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매 경우 상대가 알아서
스스로 그런 상태를 잘 벗어날 수 있다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보지만,

사정이 그렇지 않기에
일단 수행자부터 그런 상태를 기준으로 
상대가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 주어야 
그 이후부터 수행자가 그에게 건네주는
생사해탈을 할 수 있는 뗏목이나 수레나 열쇠 등을
모두 다 받아서 잘 사용하게끔 되는 것이다. 


현실에서 어떤 극악한 범죄인이 포위된 상태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게 하려면 
어떤 철학자가 나서서 그 사정을 설명하면 그렇게 행하게 되는가. 
아니면 경찰관이 확성기로 권하면 그렇게 하게 되는가. 

그런 상황에서 대부분 그것이 잘 안 되는데 
그래도 누군가가 호소하고 설득하면 
그 경우는 된다고 보는 경우는 또 어떤 경우인가.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러니 수행자가 어떻게 임해야 한다는 것도 
바로 이와 관련되는 것이고 

그런 가운데 
어떤 수행자가 정작 그런 범인의
친부모나 아내나 남편도 아닌데 
그런 각 상황마다 그렇게 잘 할 수 있게 되기 위한 바탕이 
또 무엇인가를 살피면 

먼저 수행자부터
본 바탕에 그런 내용을 일체 얻을 수 없는데 
현실에서는 전도 망상분별을 일으켜 
각 환자가 그런 상태에 있게 된 사정을 잘 이해하고 
그 상황에 임하는 것이 기본인 것이다. 

그래서 또 현실에서 어떤 요구되는 내용이 있지만 
제 각각 도저히 못한다고 하는 내용을 
어떤 경우가 되면 잘 하게 된다고 보는 그 사정도
이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렇게 그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런 전도된 상태에서 
결국 하지 못한다고 보는 것은 못하고 마는 것이고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는
아무리 생사를 받고 또 받아 나아가더라도 
그 상태로 그대로 무량겁을 나아가게 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이 부분에서 
그런 사정을 먼저 잘 관하고
수행에 임하는 수행자는
이후 무량겁에 걸쳐 그 수행을 그렇게 
이어 나갈 수 있는 변역생사과정에 들어가게 된다고 제시하는 것이고 

만일 그렇지 못하면 
한 번 행한 일 또 그렇게 행하고 
무한히 그렇게 반복해 행해 나아가도
또 같은 덫에 같은 형태로 걸리고 고통받는 붕어처럼
매 순간 매 생사현실에 그렇게 임하게 되는 것이어서 
이를 분단생사라고 구별해 표현하게 되는데

바로 이 분단생사과정이 
삶에서 문제삼는 생사고통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Jean - Jacques Goldman - Quand La Musique Est Bonne.lrc



글의 오타를 고치고 손보는 데 
연구원 가운데 한 분이 
혹시 최근의 어떤 사건 때문에 이 글을 이렇게 쓰는 것이 
아닌가 하고 묻는다. 

그런데 본인은 이런 질문에 대해서 
반대로 물어 보고 싶다. 
그 연구원이 살아온 평생의 어느 하루를 놓고 대하더라도 
이 글과 관련되지 않은 사건이 있다고 보는가. 

물론 최근의 어느 사건을 놓고 
특별히 이와 관련된다고 보는 것도 크게 부당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렇게 이해하면 곤란한 것은
현실에서 문제되는 문제나 사건 가운데
4 의단이나 4 정근 
망상분별 집착 이런 내용과 관련되지 않는 사건이 
하나라도 있다고 보는 그 의식 자체가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간단히 오타만 수정하고 
글을 마치려고 했는데 
바로 이런 의식이 
결국 모든 현실 내용을 대하거나 
어떤 노래나 사진을 하나 대하고 
문에 걸린 표시를 하나 대하거나 할 때마다 
그런 망상분별로 대하고 

때로는 이미 앞에 제시한 

아후쿵텡풍텡테 반응을 일으키는 사정이기도 하고 
※ [특수전문용어 참고] - 아후쿵텡풍텡테


결국 생사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임하는 
일체의 생사고통이 바로 이런 바탕에서 
얻게 되는 것임을 잘 이해하고 
임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오늘 살핀 5 음 비유경의 내용이 
이해가 잘 안 되면 
첫 단계부터가 진입이 안 되는 사정이 
그래서 그런 것이라고 이해를 해야 한다. 

그렇다고 과거 조각글에 자세히 살핀 내용을 
또 가지고 와서 
하나하나 되풀이할 도리는 없고 
일단 오늘 조각글은 여기서 마치기로 한다. 




문서정보 ori http://buddhism007.tistory.com/4182#1899
sfed--오음비유경_K0743_T0105.txt
sfd8--불교단상_2562_03.txt  ☞◆vrsf1899
불기2562-03-14

θθ

 


-- 아래에 조각글 작성시 휴식시점에 붙인 노래가사,사진,풍광,예술작품 자료를 편집상 옮겨 붙입니다.--


>>>


mus0fl--Jean-Louis Murat - J'ai Tue Parce Que Je M'ennuyais.lrc

▼ DSCN9513.jpg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ichiel_van_Musscher_002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Rose_Gypsy_Lantern_ジプシー_ランタン_(5515991915)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Ningbo_Ayuwang_Si_2013.07.28_13-59-36


♡신창중학교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Naver 지도

>>>

▼ 2016_0111_163318_nikon.jpg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Adriaen_Pietersz._van_de_Venne_-_An_Amorous_Peasant_Couple_Conversing_-_WGA24547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Pisar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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