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도록 직관적인 형태로 척 보아 버튼만 누르면 사용할 수 있는 형태가 되도록 노력을 했는데 그러나 어디엔가 버그가 숨어 있으리라 본다. 현재 이들 내용을 통해서 블로그에 내용을 올리려면
조금 편집에 관련한 스크립트가 더 필요할 수 있다.
알고보면 아름다운 풍광 공양 사진은 일체가 다 복사한 내용인데 이 경우 문서편집 스크립트 안에 들어 있는 ctrl +아래화살표 핫키나 ctrl +D 핫키를 이용한 연쇄 복사 기능 만으로는 조금 부족할 수 있다.
그러나 본인은 기생성 블로거로서 자료를 섭취하게 되는 숙주사이트의 건강도 고려해야 하고 현재 티스토리에서 올리는 형태와 다른 경우는 차이가 있어서 일반화하기는 곤란하고
결국 사용자가 자신이 행하는 일련작업을 스스로 잘 관찰해서 개별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매일 경전이 뽑혀서 살피면 의미에 따른 문단이 잘 정리가 안 되어서 일일히 줄 바꾸기를 실행해야 겨우 읽기에 편한 형태가 된다.
그래서 좀 불편하다는 생각도 하게 되는데 그런데 그런 필요가 있어서 그렇게 수작업으로 정리를 하면서 읽으면 그나마 좀 덜 질린 느낌을 받으면서 경전 분량을 읽어나가게 된다. 그래서 일부로 그렇게 제공해준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정연하게 정리가 되어 있으면 잘 읽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게 느끼고 보자마자 졸립다는 느낌을 갖고 대하게 되는 경우가 보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기에 이것을 정리해가면서 읽다 보면 그래도 그 분량은 읽는다는 그런 부작용을 갖게 된다.
부작용? 그런데 지금 너무 졸리어서 조금 쉬어야 할 것 같다. 일단 쉬기로
○ [pt op tr]
▼mus0fl--Indochine - La chevauchée des champs de blé.lrc
옥상기지에 등공양을 올리는 시설이 고장이 나서 오늘 수리를 했다. 왜 안 켜지는가 보았더니 원래 낮에는 자동으로 빛을 인식해서 꺼지고 밤에 켜져야 하는데 그 스위치가 고장이 나서 낮에도 계속 켜져서 그런 것으로 보게 된다.
분해를 해서 살펴보는데 잘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선이 2 선이 나와 있는데 기판에 한 부분에 같이 납땜처리가 되어 있다.
그런데 기판을 보면 같은 줄이기에 처음 본 것처럼 그냥 같이 붙여주어도 이론상 관계가 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여하튼 기판만 보고는 어떤 부분이 고장이 난 것인지 알 수가 없어서 일단 이 부분을 이상하게 여기고 이 부분을 떼어내서 따로 따로 기판 자리에 붙여 주었다.
그 다음에 보니 정상으로 잘 작동하는데 고쳐져도 왜 고쳐졌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론을 알고 고치는 것이 아니고, 그냥 한 번 이것저것 살피다가 더러워 보이는 부분은 닦아주기도 하고 혹시 선이 끊어진 부분이 보이면 연결하고 그러다가 되면 되고 안 되면 포기하는 것이 본인의 수리 방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하튼 원인은 잘 모르지만, 그렇게 수리를 마치고 나서 원래는 이 등시설은 옥상에 비치한 화분에서 살아가는 중생을 위한 등시설이었는데 전과 달리 길게 늘여서 옥상에 희덕여래님 기지까지 등공양선을 연결했다.
별 뜻은 없고 아무리 화분에 살아가더라도 부처님과 연결이 되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눈을 떠서 보니 짜장면 모습이 보인다. 그 짜장면을 보니 음식이나 배고픔 등의 관념분별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짜장면을 대해 먹으니 맛과 좋음이 느껴지고 졸립다. 이런 형태로 a => b => C 형태로 각 내용을 얻는 것이어서
이 각 영역의 내용이 아주 무관한 것은 아니라고 보게 되는데 그런데 정작 그렇게 얻어진 일정한 영역의 C 자체는 그 바탕이 된 그 영역에서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는 내용이고 또 다른 영역에서도 그 사정이 마찬가지여서 그것이 그런 조건에서 얻게 되는 내용이지만, 실다운 내용이 아니라는 사정도 함께 살핀 것이다.
더욱이 자신이 그런 관계에서 일정한 영역에서 C 를 그렇게 얻었다고 해서 그것을 얻게 된 바탕이 된 영역에 그런 내용이 그렇게 있다고 여기면서 실답게 이를 여기는 것은 전도된 망상분별의 근본이 된다고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수많은 영역 가운데 바로 그처럼 자신의 영역의 내용을 다른 영역의 내용에 접착시키는 활동을 행하면서 망상분별을 행하고 그에 바탕해 집착을 일으키는 활동을 하는 영역이 관념분별 영역이기에 현실에서는 이 부분을 특히 주의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감각현실 <-> 관념분별 사이에서 이 둘을 접착시켜서 이해하는 활동은 감각현실 영역에서 행하는 일이 아니고 바로 관념분별 영역에서 행하는 일이라는 의미다.
그리고 같은 방식으로 실재 <-> 감각현실 실재 <-> 관념분별
기타 좋고 나쁨이나 선악판단의 내용까지 이처럼 각 영역의 내용과 결합시키고 접착시켜서 대하게 하는 활동을 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에서 행하는 일인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에 바탕해서 업을 행하고 그런 전제에서는 심각한 고통으로 대하게 될 형태로 다른 영역의 내용을 변화시키는 일을 행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인 것이다.
그것이 감각현실을 담당하는 제 1,2,3,4,5 식과 분별을 행하는 제 6 식 사이의 문제이기도 한데
1,2,3,4,5,6,7,8 이렇게 여러 정신을 구분하는 경우 이와 같은 현상이 근본정신인 제 8 식과 제 7 식 사이에서도 일어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알고보면 현실에서 분별을 행하는 영역에서 일정한 부분을 자신이라고 여기고 집착을 갖는 그 기본 사정도 이 부분에 기인하는 것으로 제시하게 된다.
그런데 이들 각 내용이 a => b => C 의 관계로 본 바탕에서 물거품과 같이 실답지 않은 내용을 얻은 것이라는 사실을 잘 관하고 수행에 임해야 수행을 원만하게 성취할 수 있다고 경전에서 제세된다.
수행을 하더라도 그런 사정을 잘 관하지 못한 가운데 수행목표나 수행덕목 자체에 집착을 갖고 수행에 임하면 그 수행 역시도 집착으로 인한 문제를 일으키고 결국 그 수행을 원만하게 성취하지 못하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수행을 아예 행하지 않은 경우보다도 훨씬 더 많은 해독을 가질 수도 있다고 제시되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에서 얻는 내용들이 이처럼 실답지 않음을 관하고 그에 대해서 집착을 갖지 않는 것이 요구되는데
그러나 현실에서 생활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실답지 않은 내용을 여러개 겹쳐 놓으면 그로 인해서 마치 그것이 실다운 내용이 되는 것처럼 이해하고 대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자신이 커피를 컵에 담아 마시는데 이 현실이 실다운 것은 단지 이렇게 눈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손으로 컵을 두드리면 소리도 나고 코로는 커피 향기도 맡게 되고 혀로는 커피 맛도 느끼고 손으로 촉감도 느끼게 되니 이런 다양한 감각을 주는 이 내용을 어떻게 실답지 않다고 하겠는가.
그리고 심지어 이런 커피를 마시면 또 이후 졸음을 덜 느끼게 된다거나 그런 영향도 이후 받게 되는데 이런 점을 생각하면 더 그렇지 않은가.
이렇게 여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 내용 하나하나가 다 앞과 같은 사정으로 서로 서로 간에 실답지 않다는 사정을 제시하는 내용들인데 이 내용을 모두 나열하고 이를 합쳐서 대하면서 그로 인해 이들 내용이 다 함께 실다운 내용이라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a 가 정말 실다운 내용이고 옳은 내용인가를 문제삼을 때 이와 비슷한 성격을 갖는 다른 b , c, d, ..... 등을 제시하면서 마치 이런 내용들이 처음 문제삼은 a 가 실다운 내용인 것을 보증해주는 내용인 것처럼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데 알고보면 그렇게 제시하는 b , c, d, 와 같은 내용 역시 실답지 않은 내용인 것이다.
그래서 실답지 않은 내용을 계속 쌓아 놓으면 그로 인해서 어떤 것이 실답게 되는 것처럼 이를 대하면서 임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이런 내용을 기준으로 현실을 대해서 그런 실답지 않은 내용이 갑자기 없어지면 그로 인해서 깊은 고통을 받는 경우도 많다. 왜냐하면 그 입장에서는 그것을 기준으로 놓고 그에 모든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부여하고 집착한 가운데 다른 것을 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그런 생사고통을 겪게 되는 것은 바로 그처럼 무명에 바탕해서 그런 내용을 대하고 그런 사정으로 그것이 실답다고 여기고
그처럼 실답지 않은 내용을 집착해서 그것을 기준으로 잡아 놓고 다른 내용을 대하기에 그런 상태가 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그런 문제를 얻을 수 없는 본 바탕의 영역을 기준으로 잡고 각기 위에 물거품 처럼 쌓여진 내용을 검토해나가면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또 관할 수 있게 된다.
오늘 화엄경이 뽑혀서 짧게 10 명품을 살핀다. 그런데 수행자가 갖게 되는 여러가지 좋은 특성을 나열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내용들이 있다고 제시되지만, 정작 이런 내용을 어떻게 해서 얻게 되는가는 이 부분에서는 잘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근본 경전들에서는 이런 내용은 수행과정에서 마음을 하나에 집중해서 숨을 세고 정려 수행에 진입해 들어가서 점차 얻게 되는 것으로 제시된다.
그래서 정려 수행을 하면 경전에서 제시되는 약간 믿거나 말거나 형태로 여겨지는 많은 능력을 취득하게 된다.
이론상 처음 마음을 일으켜서 수행을 시작한 초발심 수행자는 위와 같은 경전에 소개되는 내용을 다 취득하고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mun 님을 보아도 그렇고 본인을 놓고 생각해도 먹고 싸고 놀고 하고 쉬고 자는 이런 일외에 위에 나열한 내용 가운데 하나라도 해당되는 내용이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런데 그렇다면 문제다.
적어도 경전내용을 놓고 판단해보면 이런 경우는 수행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말로만 수행자인 것처럼 하는 사이비 수행자다.
그래서 다시 반성을 하고 수행에 정진해서 위에 나열된 내용 가운데 한 두어개라도 이번 생에 취득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몸이 안 좋아 병원을 방문하면 의사는 식사를 잘 하고 운동을 시작하라고 권한다. 그런데 몸이 안 좋은 입장에서는 운동하는 일을 더 부담스럽게 여기게 된다.
운동을 하면 운동을 하지 않는 것보다 몸이 더 힘들게 느낀다. 그런데 운동을 하면 몸이 좋아진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공부가 잘 안 되어서 무엇을 보아도 곧 잊는데 이런 경우도 그럴수록 자꾸 공부를 하면 점차 기억도 잘 하게 되고 어려운 내용도 이해를 잘 하게 된다.
과거에 어릴 때 입시를 위해 공부할 때는 더 공부하면 머리가 폭발할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은 적이 있다. 그 당시는 대부분 그랬다. 그러나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머리가 폭발하는 일은 드물다.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
몸이 피로함을 느끼고 잠이 올 때 힘들지만, 그래도 한 10 분 20 분 앉아서 정려 수행에 들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잠을 자면 일어날 때 훨씬 몸과 마음이 평안하고 상쾌함을 반복해 느끼게 된다. 이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
잠이 오면 그냥 쓰러져 누어서 잠을 자는 것이 그 순간만 놓고 보면 더 편한 것 같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일어나서도 몸이 상쾌하지 않고 자기전의 피로가 많이 남아 이어지는 느낌을 받곤 한다.
여하튼 생활의 팁으로서 무엇이던 갑자기 무리하게 하면 곤란하다. 운동이나 공부나 정려 수행 등등이 좋다고 갑자기 무리하면 곤란하다.
둘레길 입구에는 산에서 사망하는 사례가 많으니 환자들은 특별히 주의하라는 경고 주의문이 붙어 있다. 그런데 그 사정을 생각해보면 건강이 많이 나빠진 상태에서 몸을 좋게 하고자 가벼운 코스를 택해 산행에 나섰다가 그런 상태에 처하는 경우가 많다고 보게 된다.
본인도 최근 숙왕화님이 가까운 둘레길이나 한번 같이 가보자고 해서 미리 준비한다고 계단오르내리기를 한 300 번 정도 했다. 그런데 그 다음날 부터 지금까지 근육통에 시달리고 있다.
계단 300 번이 산행과 비슷한지는 모른다. 그런데 여하튼 몸이 안 좋은 상태에서 무언가를 갑자기 무리하게 하면 그 부작용이 심하다.
그래도 운동을 해야 하는데 마음은 급하더라도 천천히 조금씩 정도를 높여가는 것이 낫다.
그런데 급발진 급브레이크 이런 형태를 선호하기에 위험이 많이 발생할 수 있다.
오늘 화엄경 10명품을 놓고 살피는데 일단 수행자가 취득해야 할 수행목표점으로 이런 내용의 키워드라도 기억해두는 것이 좋다, 막상 해보려면 이것도 어렵다.
60 화엄경10 명품의 내용은 무언가가 문제된다면 최소한 10 개 키워드는 기억이 나야 한다. 그런데 그것도 잘 안 된다.
그리고 이런 목표를 마음에 인식했다면 어떻게 해야 이런 내용을 취득할 수 있는가를 놓고 또 연구를 해야 한다.
경전에서 제시하는 방안은 결국 계 정 혜의 수행방안 외는 별것은 없다.
계란 좋음은 베풀고 나쁨은 가하지 않고 자신의 나쁨은 평안히 참는 것이라고 간단히 제시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런 수행목표를 성취하는데 계가 가장 먼저 우선되는가 하는 사정은 현실을 놓고 이해하면 쉽다.
만일 어떤 이가 교도소나 중환자실에 수용되어 있다면 그에게는 일반인이 일상생활에서 누리는 모든 편익시설 등이 제한을 받게 마련이다. 때로는 볼펜이나 치솔 이런 것도 소지가 금지된다. 그런데 관리자 입장에서 이를 대하면 그 사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내용이 곧 수행에서 계가 가장 먼저 우선되는 사정이기도 하다.
계가 성취가 되지 않으면 업의 장애가 해소되지 않고 따라서 생사의 묶임에서 풀려나지도 못하고 또 그 이후 복덕이 성취가 되지 않기에 정려나 반야 지혜를 닦는 수행에 진입할 도리가 없다.
그래서 계를 성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경전만 외우고 벽만 바라본다고 쉽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널리 다른 생명이 집착하는 좋음을 베풀고 반대로 다른 생명이 집착하는 좋음을 침해하며 나쁨을 가하지 않고 자신이 어떤 고통을 받을 때는 또 이를 평안히 참는 수행이 완성이 되어야 이후의 단계에 진입할 수 있다.
일상생활을 놓고 본다면 일단 감옥이나 병원 입원실에서 나와야 핸드폰도 마음대로 사용하고 자동차 운전도 하고 이런 것이 가능하게 되는 것과 사정이 비슷하다.
생사현실에 임한 가운데 계를 성취하지 않고도 다른 수행이 가능할 것 같지만, 그것이 잘 안된다.
계를 통해서 업의 장애를 제거하지 못하면 무슨 수행을 하려고 해도 빚쟁이가 자꾸 빚받으러 찾아와 괴롭히는 상황처럼 되어서 수행에 잘 진입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업의 장애가 해소가 되어도 또 사정이 마찬가지다. 교도소에서 나온다해도 그것만으로 모든 이들이 일반 사회에서 환대를 하거나 직업을 마련해주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가운데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임하다보면 또 상황이 마찬가지가 된다.
그래서 계는 이후에도 계속 닦아서 이를 통해 복덕자량이 마련이 되어야 비로소 정려나 반야 수행을 임할 수 있다.
현실에서 한 순간도 쉴 틈이 없고 쉴 틈에는 다시 자신을 체포하려 오는 이를 경계해야 한다거나 쉬는 동안 정말 쉬어야 한다거나 이런다면 도대체 언제 시간을 내서 정려 수행도 하고 경전 공부도 하고 반야 지혜도 닦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여하튼 어느 정도 업의 장애도 해소하고 복덕자량도 성취해서 설령 생활이 편하다고 해도
다시 자신의 마음에 자신을 묶어 두는 탐욕과 분노와 같은 번뇌 망상이 많으면 시간이 주어지는대로 모두 그 탐욕과 분노에 소진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어떤 이가 자신이 혼자 누어서 자신 마음대로 공상을 할 수 있을 때 그 때 자신의 마음에 떠오르는 핵심내용이 바로 자신이 지금이나 다음 세상에 임할 세계의 내용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것은 현실에서 거리에 수많은 상점이나 집들이 있는데 이것이나 저것이나 다 같다고 보면서도 하필이면 왜 어떤 가게에 들어가는가하는 사정과도 마찬가지다.
그가 만일 거리를 걷다가 어떤 가게에 들어간다면 도대체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겠는가는 바로 그 내용이라고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사실 가장 한가하고 자유로울 때 자신이 마음 속에서 가장 성취하고 싶은 내용을 마음대로 떠올릴 때 그 내용이 무언가를 놓고 잘 검토해보아야 한다.
하루 종일 어떻게 하면 지금 갖고 있는 1 억원의 돈을 2 배로 키울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한다면 이후 그가 초점을 맞추고 응시하는 내용은 사실은 대부분 이와 관련된 내용이고 그렇지 않은 내용은 무시하고 건너뛰게 마련이다.
다른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 코스를 쉽게 미리 파악할 수 있다.
실험실에서 어떤 용액이 산성인가 알칼리성인가를 파악하고자 할 때 리트머스 용지 한장을 잠깐 담가서 판정한다.
그 넓은 바다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바다도 어느 한 부분에서 맛을 보면 전체 바다를 다 살피지 않아도 그 사정을 쉽게 파악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가장 한가로울 때 자신의 마음을 차지하는 핵심 내용이 무언가를 혼자 검토해보면 자신이 장차 어느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를 이를 통해서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잘 외어지지 않지만, 경전 게송 구절이나 핵심 키워드 몇 글자를 외우고 앞과 같은 경우에 이를 붙잡고 떠올릴 수 있다면 사정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4 홍 서원이라고 압축되는 골격을 중심으로 자신이 갖는 서원의 내용이 대단히 구체적이고 풍부하고 아기자기할 수록 자신의 수행과정에서 임하는 세계도 그처럼 대단히 좋고 좋은 상태가 된다.
그러니 오늘 대하는 10 명품의 아이템을 외어두는 것이 좋겠는가 무시하고 지나치는 것이 좋겠는가. 이런 문제를 이런 경우에 고려해볼 만하다.
그 외 경우는 아무리 내용을 제시해도 그 내용이 효용이 없다고 일반적으로 보게 마련이다.
맹귀에게 경읽기 이런 구절이 바로 이런 사정을 제시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지금 절벽에 서서 뛰어내려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이런 상황에서 그런 내용이 들어오겠는가. 또는 자동차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려야 하는가 왼쪽으로 돌려야 하는가 매 순간 살펴야 하는 상황에서 정려 수행이 가능하겠는가. 그래서 앞과 같은 순서로 천천히 하나하나 임해서 각 부분을 성취해야 비로소 오늘 경전에서 제시하는 내용들을 목표로 하고 수행에 진입할 수 있게 된다.
뽑힌 노래를 들으면서 글을 쓰는데 자꾸 한국 여인들이 수행에 정진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이 사정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그리고 또 죽음이 가까이 다가온 것을 파악한 다음에야 비로소 무언가를 베풀려고 마음을 일으키는 사례도 제시하는데 이런 경우도 꼭 닥치지 않아도 언제나 미리 충분히 그 사정을 파악할 수 있으므로 미리 수행에 임하는 것이 훨씬 낫다.
그것은 관찰자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이 차이를 보기 때문이다.
자신이 필요가 없는 박스를 거리에 내다놓으면서 이것이 자신이 베푸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치에 맞는가. 그런데 같은 박스라도 상황이 다르면 또 다르다.
그래서 수행의 가장 고급 힌트는 빚이 진 상태에서 다시 빚을 내서 공양을 올리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현실에서 1000 억 자산가가 1 억을 사회에 기부하는 것과 1 억 가진 이가 1 억을 사회에 기부하는 것을 사람들이 달리 본다. 그런데 만일 1 억을 빚진 이가 다시 빚을 져서 1 억원을 사회에 기부한다면 또 달리 보게 된다.
경전에서 보시하는 이나 보시를 받는 이나 보시하는 행위나 보시하는 물건을 본래 하나도 얻을 수 없다. 죄와 복이 모두 차별없이 공하다. 본래 사정은 그런데 생사현실에서는 차별이 있다.
그런데 업의 장애나 생사문제는 바로 이 생사현실에서 있는 문제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수행도 이 생사현실 영역에서 행해야 할 내용이다.
앞과 같은 본 바탕의 상태에서는 그런 것을 요구한 적도 없고 그런 노력을 통해서 성취할 바나 보호할 어떤 것이 있지 않다.
그런데 왜 이 내용을 늘 함께 제시한다. 그것은 현실에서 생사고통에 묶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 본 바탕의 사정을 먼저 잘 관해야 현실에서 그런 수행도 원만히 성취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더 나아가 당장 고통을 받는 상황에서도 바로 이 본 바탕을 기준으로 잡고 수행에 임해서 그 고통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본 바탕만 기준으로 잡고 임한다면 이런 내용 자체를 얻을 수 없다. 사정이 그렇기에 본 바탕에서는 그런 것을 일체 묻거나 따지지 않는다.
그러나 생사현실의 문제는 그 본 바탕에서 문제된 것이 아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역시 이 생사현실영역에서 일정한 수행을 원만히 성취해야 이 생사현실 영역의 문제가 해결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생사현실 영역에서 고통받는 다른 중생도 또 제도해나갈 수 있다.
그리고 기초적인 계행이 충족된 상태가 되면 정려 수행은 3 초면 진입할 수 있다.
물론 상대적이어서 3 초면 진입할 수 있는 세계도 어떤 경우는 무량겁을 노력해도 진입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 사정을 앞에 제시했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우는 그렇다.
이 사정은 비유를 들면 최면술사가 최면에 들게 할 때 어떤 경우는 아무리 노력해도 최면에 들게 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손 한번 잡거나 손가락 한번 튀기는 행위로 곧바로 최면에 들게 한다.
만일 어떤 이가 자꾸 의문을 일으키고 마음 안에서 회의를 품고 회의를 행하면 이 상태는 최면에 잘 들어가지 못한다.
그런데 본인이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는데 본인도 당시 담배를 물고 구경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장소에 갑자기 폭발물이 터졌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마구 뛰어간다. 그런데 어떤 이가 내 불 붙은 담배를 어떻게 하다보니 손에 쥐고 마구 뛰어간다. 그것을 보고 괜찮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그 당시는 괜찮은데 나중에 보면 왜 자신 손이 이렇게 되었을까 궁금하게 여기게 되리라 본다.
수학여행을 다닐 때 일찍 자는 친구에게 안경을 씌우고 그 안경에 빨간 물감을 칠해 놓고 불이야 하고 소리치면 일어나서 내복 차림으로 마구 뛰어서 계단을 내려가게 된다. 그 친구가 특히 뉴스 등에서 최근에 화재 사고에 대한 내용을 많이 보았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런 장난을 잘못 하면 이 친구가 너무 당황한 나머지 게단으로 나가지 않고 창문으로 뛰어 내리는 수도 있다. 자신 눈에 전 사방이 다 불길이어서 그렇게 하기 쉽다. 또 계단도 하나 둘 내려가지 않고 십여 계단을 한꺼번에 뛰어 내리려고 하기 쉽다. 그래서 이런 장난을 하면 - 특히 본인 글을 읽고 난 후에 하면 - 고의 살인범이 되기 쉽다.
그런데 여기서 그 친구가 잠을 자다가 그렇게 행동하게 되는데 몇 초가 걸리지 않는다는 점이 여기서의 핵심이다. 알고 보면 망상분별도 사정이 이와 비슷하다. 그리고 나서 그 상태에서 풀려 나오지 못하는 한 그 상태로 계속 나아가게 된다.
앞의 사례에서 안경과 같은 경우는 어느 순간에 벗어진다. 그러나 현실의 삶에서 처음 일으킨 공중 3 회전에 걸친 전도망상분별의 매듭은 그렇게 쉽게 벗겨지지 않는다.
현실에서 수사관에 의해 체포되는 범인이 원하지 않지만, 교도소에 수용된다. 이와 같이 그런 상태에서 업의 장애가 해소되지 않으면 똑같은 형태로 원하지 않는 세계에 들어가 묶이게 된다. 그 입장에서는 자신이 잘하면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보기 쉽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노력을 수행의 방향으로 임하고 또 좋은 서원을 자꾸 만들어내는 것이 낫다. 그런 노력이 관찰자 입장에서 파악되면 그러한 내용들이 문제상황에서 벗어나게 되는 핵심 사유가 된다.
현실에서 극심한 피해를 받은 경우 상대가 무엇을 행하면 더 이상 문제삼지 않겠다고 한다. 그런데 상대는 무엇을 결코 할 수 없다고 임한다.
이 문제를 입장을 오가며 살펴보면 수행이 업의 장애를 해소하는 방안이 되는 사정을 쉽게 이해할 수도 있다.
여하튼 이런 방안들로 경전에서 제시하는 내용들을 성취할 수 있다. 따라서 방안은 파악하고 임해야 한다
그래서 안인을 성취하고 무생법인을 증득하고 더 이상 이전 상태로 물러나지 않는 불퇴전의 단계에 이르러야 이전 단계의 수행자와 수준이 다른 수행자가 된다.
그런데 현실에서 무언가를 자신이나 자신의 것으로 여기고 그에 집착이 되어 임하기에 이 성취가 어렵다.
평소 왠만한 일은 다 참는다. 심지어 어떤 섬에서 지진이 나서 수만명이 몰살을 당했다는 뉴스가 나와도 대범하게 임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자신의 지갑을 소매치기 당했다던지 자신의 손이 다른 사람과 부딪혀 부러졌다던지 하면 그렇게 임하지 못한다.
그것은 또 평소 현실에서 무엇을 놓고 매 순간 자신이라고 여기면서 대하는가 하는 문제와 직접 관련된다.
그래서 결국 안인을 성취하려면 평소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는 부분을 놓고 자신이라고 상을 취해 집착해 임하는 그런 망상분별을 제거해야 한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요양병원등에 수용되어 임종을 맞이할 때까지 임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경우 간호하는 이들은 환자가 침대에 떨어지는 것을 보호하려고 침대에 환자를 묶어 두는 경우가 많다.
병원구조를 전통구조로 만들고 침대시설을 이용하지 않으면 좀 나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역시 환자가 이상한 행동을 많이 행하면 역시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되면 환자가 대단히 고통스럽게 여기게 된다. 더 심한 경우를 생각하면 하반신이 마비된 상태로 생활하게도 된다. 그래서 이처럼 자신이 예상할 수 있는 극한 상황을 놓고 평소에도 안인 수행을 잘 훈련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상황이 고통스러울 때 이를 고통스럽게 참는 고인의 경우가 있고 고통은 고통이지만, 이를 평안하게 받아들여 참는 안인의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는 서로 다르다.
또 고통스럽다고 하여 이 고통 자체를 제거하는 방안으로 마취제를 사용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안인을 성취한 것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처음부터 자신이 참아야 할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려 수행을 통해 사마타 수행으로 임해 고통을 아예 제거하는 것은 이런 안인 수행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결국 안인 수행이란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자신이라고 보는 내용을 놓고 이에 대해 그런 부분이 자신이라고 여기면서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갖고 임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부분은 마치 강건너 불타는 나무나 자신이 이번 생에 잠시 걸치고 있는 옷과 같은 것에 불과하다고 잘 이해해야 한다. 그 상태에서 평안하게 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 상태가 되어야 무생법인을 증득한 상태가 된다. 본래 이 생사현실에 그런 생멸이나 생사를 본래 얻을 수 없음을 스스로 인가해 현실에 적용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안인을 성취해서 더 이상 생사현실에 묶이지 않고 또 고통에 처하여 원래의 상태로 물러나지 않는 불퇴전위가 된다. 그래야 부처님을 비롯해서 대단히 수행력이 높은 대력 보살님들도 이 수행자에게 무량한 방편을 무량하게 제한없이 제공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안인을 성취하는가 못하는가를 경계점으로 해서 수행자 수준에 대단히 큰 차이가 있게 된다.
만일 수행자의 상태가 그렇지 않으면 그가 참지 못하는 고통을 받는 상태에 임하면 결국 그가 취득한 그 모든 방편이 그 자신도 해치고 다른 중생도 해치는 원인이 된다. 사정이 그렇기에 또 그런 상태의 수행자에게는 방편을 제공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어떤 수행자가 안인을 성취해서 불퇴전위에 오른 상태인가 아닌가가 수행자의 수준을 다르게 하는 핵심요소가 된다.
그리고 안인을 성취하려면 평소 자신이 가장 집착을 갖고 대하는 자신이나 자신의 것들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부분을 놓고 상을 일으켜 취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그에 바탕해 집착을 갖지 않고 임하는 수행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는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가 대단히 힘들다.
당장 자신의 손이 잘려져 나가서 피가 흐르는 상황만 되어도 얼굴색이 변하고 당혹하게 된다.
한편 아무 사유도 없는데 대단히 억울한 고통을 받는 경우에도 안인을 성취하기 힘들다. 이런 경우 자다가도 다시 생각이 나서 잠이 오지 않는다. 일일히 예를 들지 않더라도 그런 경우가 현실에 대단히 많다. 그런데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안인을 성취하는 방안은 그런 상황에 자신이 억울하게 대할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음을 먼저 자신이 잘 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상태에서 이를 대해야 안인을 성취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성삼문이 역적으로 몰려 견디기 힘든 고문을 당했다. 그리고 그 처자식은 모두 노예의 신분으로 전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것을 참을 수 있는가. 또 참더라도 고통스럽게 참고 임하는가. 아니면 평안히 이를 받아들이는가가 문제된다.
사실 성삼문 입장에서는 대단히 억울한 상황이다. 오히려 왕이 되기 위해 자신의 조카를 제거한 그 상대가 잘못이 많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수양대군 입장에서는 당신은 성씨이면서 왜 이씨 집안일에 관여하는가. 또 그렇다면 왜 정몽주처럼 처음부터 임하지 않았는가. 이런 식으로 힐난할 수도 있다.
서로 각 입장마다 다르다. 그런데 수행자가 이런 상태를 놓고 파악해야 할 핵심은 바로 이 상황에 그런 내용을 본래 얻을 수 없는 점이다. 그런데 다만 서로가 그렇게 여기지 않는 가운데 이런 상태에 묶여서 임하게 됨을 잘 관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수행자 자신은 극도로 심한 고통을 받고 또 그 사유도 대단히 억울한 경우를 놓고 평소 꾸준히 수행에 임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 상황에서 안인 수행 수료증을 받아내야 한다.
그래야 사바세계에서 다른 불국토로 자유롭게 여행을 다닐 여행허가도 받게 된다. 또 반대로 다른 불국토로부터도 그 출입이 자유로운 입국허가 비자도 받게 된다. 그렇게 되어야 수준이 높은 수행자가 된다.
만일 자신의 망집을 기준으로 집착을 일으키면 바닷속만 들어간다고 해도 곤란하게 된다. 자신과 다른 생명체를 만날 때 그가 반응하는 자세와 태도가 문제가 된다. 그래서 그런 수행자가 다른 불국토는 차치하고 세계에서 문화나 풍속이 다른 나라를 방문하기도 힘들다. 또 아프리카의 초원이나 아마존의 정글도 방문하기 힘들다. 이 사정을 이해하면 왜 다른 불국토의 방문에 안인 수행의 성취가 먼저 요구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조금만 견해가 달라도 상대를 해치려 하면 곤란하다. 성씨가 조금 다르거나 신분만 달라도 달리 임하면 곤란하다. 이러면 사바세계 안에서도 수행이 성취되기 힘들다. 더 나아가 다른 불국토는 더더욱 어렵다.
그런데 그렇게 임하게되는 것은 자신이 평소 갖는 아상과 인상때문에 그렇다. 여기서 인상이란 불교 전문용어로는 보특가라상이라고 표현한다. 생사를 받는 주체를 의미하는 표현이다. 여하튼 자신은 다른 생명과 달리 인간으로서 상당히 존귀한데 다른 생명은 그렇지 않다고 여기는 망집이다. 이런 망집이 바로 이런 부분에서 이런 문제를 일으킨다.
그래서 온갖 억울하고 극심한 고통의 상황을 놓고 평안하게 임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 또 보기만 해도 끔직하게 여겨지는 그런 생명체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런 경우에 평안히 임할 수 없으면 그렇다고 더 좋은 세계로 가는 경우는 없다. 오히려 그런 상태를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로 오히려 나아가게 된다.
그 사정은 교도소와 비슷하다. 교도소 식사나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만을 일으키고 난동을 피우고 임하기 쉽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다고 그를 어떤 고급호텔로 옮겨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반대로 처음 상태가 대단히 좋은 상태라고 받아들일 수 있게끔 될만한 또 다른 시설로 오히려 옮겨 가게 된다. 이것이 수행자의 상황과 마찬가지다.
누구나 임종을 맞이하게 되고 그 이전에 상당히 고통스런 상태에 임하게 된다. 그 극한은 결국 자신이 의식이 있고 스스로 숨은 쉴 수 있는데 나머지 부분은 하나도 자신 뜻대로 안 되어 갑갑하면서 온 몸에서 고통을 느끼는 상태가 지속되는 경우다. 그것이 짧으면 좋겠지만, 만일 1 년 3 년 10 년이 이어지면 대단히 고통이 심하다. 그런데 현실에는 그런 경우가 많다. 그리고 아무리 고통이 짧아서 한 3 시간 정도에 불과해도 그 당사자는 그 3 시간을 한 3 년 정도로 느끼면서 대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상태에 수행자가 미리 마음으로 임해서 평소 수행을 잘 해야 한다.
그 고통이나 억울함이 자신의 수행 수준에 맞지 않으면 이 상태에서 정려에 들어가 사마타의 수행방안으로 임하면 된다.
그러나 조금 훈련을 많이 해서 안인 수료증을 받는 수준 높은 수행자로 나아가려면 앞에 제시한 것처럼 원칙적으로 그 상태에서 상을 취하지 않고 안인 수행을 성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수행자에게 선택 옵션이 있다. 숨을 세면서 정려 수행에 진입해 들어가는 것이 하나의 방안이다.
아무리 힘든 경우에도 숨을 자신의 의지로 쉰다. 만일 그렇지 못한 경우는 보호자 입장에서만 안타까울 뿐 환자 자신은 고통 자체를 느끼지 못하는 상태다. 그래서 차이가 있다.
호흡을 집중해 행하고 이에 정신을 집중하면 자신이 몸이라고 보는 부분과 마음을 서로 일치시키게 된다. 그렇게 해서 졍려 수행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이후 자신이 평소 연구주제로 갖는 문제를 깊이 관찰한다거나 이후 성취할 서원의 내용을 세세하게 구상하며 평안하게 임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평안해서 그 상황에 자신이 고통으로 여길 내용이 일체 없게 되면 그것은 안인 수행은 아니다.
현실에서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내용이거나 외부 세계라고 여기는 내용을 놓고 그것이 자신의 뜻과 맞지 않아 고통을 느끼게 된다. 그런 고통을 받는 상황에서 그것을 평안히 참는 상태에 이르러야 안인이 성취된다. 그래서 조금 차이가 있다.
그런 상황에서 본 바탕의 사정을 철저히 파악하고 그 측면으로만 임할 수 있어야 한다. 즉 그런 생사현실에 본래 그런 생사나 생멸을 얻을 수 없음을 철저히 잘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상을 취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바탕에서 이 상황을 평안히 참을 수 있게 된 경우 안인이 성취된다.
그런데 현실에서 대단히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어떻게 이에 상을 취하지 않고 평안히 임할 수가 있는가.
이 내용은 최면술사의 최면 자료를 놓고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조금 낫다.
자신이 무언가를 좋다고 보거나 또 어떤 것을 대단히 고통스럽거나 억울하고 끔직하다고 여긴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그 본 정체가 무언가를 놓고 먼저 잘 파악해야 이 수행이 잘 성취될 수 있다.
그래서 과거에 붙인 자료를 찾아서 여기에 다시 붙이고 이 내용을 잘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최면 Want Girls to ALWAYS Love You? Hypnotist Marc Savard Shows You How! https://www.youtube.com/watch?v=AArKwwGYCIA
가장 섹시한 남성으로 보이게 하는 최면
Hypnotist in Las Vegas is the Sexiest Man Alive! Watch and See!
https://www.youtube.com/watch?v=DUDqgZ_iwrM
가장 혐오스럽게 보이게 하는 최면
Hypnosis Video - Most Disgusting Man Alive
https://www.youtube.com/watch?v=fpmshRXuYu0
혁대를 뱀으로 보이게 하는 최면
Snakes on a Stage! Starring Samuel Jackson and Marc Savard
https://www.youtube.com/watch?v=y6ynovdrJM0
현실상황에서 자신이 최면이 아니고 정말 뱀을 좋아하지 않는데 목에 뱀이 매달려 있다면 끔직하다.
뱀을 좋아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여하튼 평소 자신이 대단히 싫어하는 무언가를 놓고 생각하면서 이 내용을 다시 검토해 보아야 수행에 도움이 된다.
그런데 자신이 현실에서 대단히 실답게 진짜 뱀이라고 보는 어떤 내용이 그 본 사정이 그러함을 경전에서 제시한다.
이 때 위 자료에서 나오는 여러 인물들 가운데 관객입장에서 안인 수행덕목을 통과했다고 보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은 아니다. 그렇지만, 만일 깊은 믿음(신)이나 사랑 하나만 갖추어져도 사실은 이런 문제를 잘 극복할 수 있다. 그런 사례가 위에 들어 있다.
그러나 여하튼 나머지 경우는 이 상태로는 수료증을 받기 힘들다. 그래서 또 다른 수행코스에서 또 임해야 한다.
최면이 걸려 별 이유없이 무언가를 놓고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경우 망집을 일으키게 된 사정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수행을 원만히 성취했는가를 심사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상태로는 지금보다 나은 세계로 진입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보게 된다.
현실은 꿈과 같고 환과 같고 물거품 같고 번개와 같고 환사의 환술과 같고 신기루와 같고 물에 비친 달그림자 같다. 그런데 위와 같은 상황이 그런 내용을 제시한다. 또 한편 현실에서 정말 그런 상황에 임할 때 위 내용을 잘 미리 이해하지 못하면 곤란하다. 그래서 평소 수행훈련을 성취하지 못하고 망집에 바탕한 탐욕 분노 반응으로 임하면 대부분 낙방이 된다. 그러면 또 대부분 3 악도로 진입할 도리 밖에 없다.
따라서 미리 스스로 그런 내용을 이해해야 한다.
○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Emmanuel Moire - Je Fais De Toi Mon Essentiel.lrc
글을 쓰고 옥상기지에서 쉬며 위 노래를 듣는다. 노래에서 결코 성취하지 못할 것이라는 메세지를 시감상으로 듣게 된다.
경전에서는 경전에서 제시하는 이런 수행을 성취하여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 극히 힘들다고 제시한다.
또는 그렇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10 선법을 성취해서 다음 세상에 3 악도에 들어가지 않고 하늘에서 태어날 수 있게 되는 비율을 산 전체와 손바닥에 올려진 흙의 비율로 제시한다. 현실 사정이 그렇기 때문이다.
따라서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이런 수행을 원만히 성취하는 것을 기대하기 힘들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더라도 임종 3 시간 전부터라도 잘 임하면 충분히 이를 만회할수도 있다.
또 시감상에서 전하는 메세지는 또 그 반대의 내용도 함께 담아 제시한다고 긍정적으로 보게 된다.
그 사정은 모든 현실 내용이 금강경에서 제시하는 것처럼 무유정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 말미에 다시 이 노래를 덧붙여 놓게 된다.
만일 모든 것이 어떤 형태로 정해져 있다면 이런 문제를 이렇게 해결하라고 제시하는 의미 자체가 본래 없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지 않기에 또 수행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이미 무량겁 동안 그렇게 임해왔다고 해도 여전히 지금 이 순간 달리 전환시킬 방안이 있기 때문이다.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Summer_Palace_at_Beijing_15
https://en.wikipedia.org/wiki/File:Summer_Palace_at_Beijing_15.jpg English: Paiyunmen Gate and octagon tower on the Longevity Hill, Summer Palace at Beijing, China Author Kallgan Permission & Licensing : Wikipedia ● [pt op tr] 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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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Perito_Moreno_Glacier_Patagonia_Argentina_Luca_Galuzzi_2005.JPG English: Perito Moreno Glacier, in Los Glaciares National Park, southern Argentina taken by LucaG. ● [pt op tr] 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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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Utagawa-Kuniyoshi https://en.wikipedia.org/wiki/Utagawa_Kuniyoshi Title : the-courtesans-usugomo-haruka-and-yayoi-of-the-tamaya-teahouse Info Permission & Licensing : Wikiart ● [pt op tr] 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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