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현실에서 평소 거울을 보고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것을 자신이라고 여기면서 살아가는데 별 이상이 없고
커피가 든 컵을 손에 쥐고 그 컵 모습을 보고 컵을 두드리면서 소리도 듣고 그리고 커피 향도 맡고 그리고 커피 맛도 보고 그리고 손에 컵의 촉감도 느끼면서 자신이 대하는 컵이 바로 이것이다
이렇게 여기면서 살아가는데 별 이상이 없는데 왜 이것을 자꾸 전도망상 분별이라고 하는지 그 사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결국 생사에 묶이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최근 이런 망상분별 증상을 핫키 망5 에 축약시켜 넣었는데 다음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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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
분명 종이에 불을 붙이면 연기가 나고
자신이 컵에 커피를 담아 마시면서 컵을 가볍게 두드린다고 할 때
눈으로는 그런 모습을 보고
귀로는 컵 소리를 듣고
코로는 커피 향을 맡고
입으로는 커피 맛을 보고
손으로는 촉감을 느끼고
이 커피를 영희나 철수에게 건네니
역시 영희나 철수도 같은 내용을 보고한다고 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자신이 대하는 이런 내용은
외부 세계의 내용이고
자신의 감관이 대하는 외부대상이고
정신 밖에 있는 정신과는 별개인 외부물질이고
이것은 자신 뿐만 아니라, 영희나 철수를 포함해 모든 이가 함께 대하게 되는
외부의 객관적 실재라고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이런 내용 가운데
스스로 자신이라고 보는 부분은
이런 내용을 얻는 주체로 여기고
이런 부분을 실다운 자신이라고 여기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이 대표적으로 일반인이 일반적으로 갖는
전도망상분별증의 기본적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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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옥상기지에서 담배를 통해서 향공양을 올리고 소신공양에 자주 임하는데 앞으로 몸에 별로 좋지 않은 커피 대신 담배를 예로 들어서 위 내용을 바꿔 설명할까 생각 중이다.
그런데 담배를 혀로 대해서 어떤 맛을 본다 이 부분이 조금 마음에 걸린다. 연기를 들이 마시면서 혀로 어떤 맛을 보는가라고 흡연하는 분에게 물어보면 좀 쓰다 이런 맛을 느낀다고 할까 좀 애매하다. 그래도 가능하면 커피보다는 담배로 바꾸는 것이 수행면에서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담배나 커피나 돈도 많이 들고 건강에 그렇게 좋다고 볼 내용이 아닌데 왜 담배가 그나마 낫다고 보는가 하면 담배를 태워 향을 피우고 소신공양에 임하면 연기를 부수적으로 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 멀쩡한 담배가 불을 붙이면 이런 연기가 나오는가. 그리고 건강을 위해서 담배를 끊어야 한다고도 보는데 그러나 왜 의지만으로 쉽게 잘 끊어내지 못하는가. 그리고 이런 담배에 대한 중독이나 탐욕 현상의 측면에서 이에 대한 번뇌를 끊어내려면 평소 어떤 자세를 취해야 잘 끊어내게 되는가. 그리고 담배를 태우면 자신의 몸을 태워 소신 공양을 올리는 수행처럼 결국 자신의 건강을 해치기 마련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담배를 태우면서 그런 수행을 해야 하는가. 이런 주제가 실상과 연기와 수행 각 방면에 대해서 깊은 연구를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개인적으로 본다.
수행노력이 반드시 건강이나 장수에 도움이 된다고 할 수는 없는데 수행 덕목 가운데 오후불식이라거나 옷을 세벌만 가지고 구걸을 하면서 숲 무덤가 옆에 자리를 잡고 두타행을 행한다는 등등을 오늘날 입장에서 보면 건강과 장수에 큰 도움이 안 된다고 보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런 건강과 장수가 바로 망집에 바탕해서 일으킨 분별이기에 무량겁에 걸쳐서 생사고통을 벗어나는 수행의 측면에서는 오히려 그것이 도움이 안 되는 것이다.
삶이란 누가 오래 이 생에 버티는가 이런 경기를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사를 벗어나고 다른 중생을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데 있어서 어느 정도 건강과 장수함이 필요한 것은 사실인데 그 범위를 넘어서 무조건 수행자가 현재의 생에서 건강하게 오래 살아남으면 되는 어떤 경기에서 우승하는 것을 목표로 수행에 임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그래서 알고보면 몸을 다 없애고 망상이 가득한 지식을 다 제거하여 열반에 들어가는 회신멸지가 원칙적인 수행의 목표점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각 중생들이 스스로 알아서 이런 상태에 들어갈 수 있으면 수행자가 굳이 다시 생사현실에 들어서 그런 생사현실이 그에 대한 망집만 제거하고 대하면 그 생사현실이 곧 청정한 니르바나임을 관하면서
무량한 수행을 해나갈 필요도 거의 없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지 않기에 결국 수행자가 생사현실에 들어서 중생을 제도하고 불국토를 장엄하고 성불을 해나가기 위한 무량한 수행을 하게 되는 사정이 있는 것이다.
여하튼 그런 전반적인 사정을 잘 이해하려면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으로 만져지지도 않는 마음을 놓고 마음의 정체와 마음의 현상에 대해서 잘 살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그 마음을 옆에 있는 영희나 철수의 마음을 가지고 연구하기가 곤란하다.
잘 빌려주지도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은 마음을 그것도 다른 이의 마음을 가지고 연구를 하려면 상당히 복잡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무착 보살님이 자상하게 언어를 통해서 설명을 해주시는데 문제는 이 언어표현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그 부분부터 대부분 답답함을 느끼고 어려움을 호소하게 마련인 것이다.
알고보면 자신이 늘 행하는 내용인데 문제는 각 언어표현이 이 가운데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하는 부분부터 오락가락하게 되는 증상이 나타난다는 의미다.
왜 그러겠는가. 일반적으로 대부분 전도망상분별을 일으키고 그 바탕에서 오래 생활해왔기에
자신이 대하는 언어표현이 자신이 이해하는 그런 내용일 것이라고
먼저 오해를 한 가운데 이것을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 답답해지는 것이다.
일단 그림을 보면서 왜 서로 답답해지는가. 이 부분을 잘 검토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앞에 일반인의 입장과 지금 마음 현상에 대해 논의를 전개하는 무착보살님의 입장 차이를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한 그림을 붙여 놓았는데 그림만 대하면 이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고도 본다.
이들 그림은 오래전에 작성해서 자주 반복해 설명한 내용인데 그러나 조각글 특성상 이 조각글을 처음 대하는 입장에서는 생소한 내용이기도 한 것이다.
점차 조각글을 잘 정리해나가면 앞으로 반복되는 부분은 일정 페이지에 링크를 걸어 놓고 되도록 링크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그런데 여하튼 기본적인 사정을 잘 이해해야 논서를 잘 이해해나갈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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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논서에서 여러 마음을 나누어 명칭을 붙여서 제시하는데 앞에서 이 마음은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런 상태이니 이것을 있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가지고 그것이 있다고 하는가가 처음에 문제된다.
현양성교론 첫부분에서도 그 주제를 다루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런데 부처님이 일정한 경전에서 이러이러하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제시하고 있는데 부처님을 믿는 입장에서는 이 내용으로 그렇다고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처음부터 부처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의지를 갖는 입장에서는 바로 그런 사정때문에 그 내용은 엉터리다 이렇게 생각하기도 쉽다.
그런데 이 사정을 잘 검토해보자.
위 논서에서 제시하는 그런 내용들이 단지 무착보살님에게만 그리고 그 당시 그런 특수한 상황에서만 해당되는 내용이겠는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생명인 이상 눈에 잘 안 보이는 이나 개미나 모기 이런 생명부터 코끼리를 포함해서 그리고 지금 이런 논서를 살피는 자신까지 모두 공통된 내용인 것이다.
그래서 위 논서에서 제시하는 각 마음은 지금 현재 이 순간에도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고 사정이 그렇기에 이 현실 이 상황에서 스스로 그 내용을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노력해서 그런 내용을 잘 스스로 확인할 수 있도록 논서 내용을 잘 검토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위 그림에서 동그라미나 타원형 형태로 논서에서 제시하는 각 마음을 그림으로 대강 표시했는데 그러나 마음이 과연 타원형이겠는가 동그라미형태겠는가. 그렇지 않다.
그런데 일단 그림으로 위와 같이 표시한 것이다.
이 부분을 잘 이해해야 한다.
현실 어떤 생명에게도 저런 그림과 같은 형태의 마음은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위 그림과 같은 형태로 일단 나타내고 그런 마음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논서를 대하거나 경전을 대할 때 바로 이 부분을 처음에 잘 이해해야 한다.
이것이 시설 안립 가명 이런 표현으로 설명하는 부분이다.
본래 그런 것을 그렇게 얻을 수 없는데 그러나 그런 사정을 설명하기 위해서 언어나 그림을 통해서 그처럼 일정한 시설을 해서 그런 내용을 가리키면서 그에 관한 논의를 하고 설명을 해나가게 된다는 의미다.
이것이 경전에서 제시하는 뗏목의 비유와 사정이 같다.
그 뗏목이나 시설의 취지나 목표가 무언가 하면 이를 통해서 현실에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는 사정을 이해시키고 평소 그에 대해 갖는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하여 그 주체가 그런 망집에 바탕해 받아나가게 되는 생사고통을 제거하고 그 주체를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시설로 설명을 하다보면 나중에는 일정하게 일반적으로 갖는 망집은 어느 정도 제거하기도 하는데 그러나 정작 그런 상태에 이르게 하기 위해 시설한 내용에 대해서 다시 기존의 망집과 유사한 형태로 또 다른 망집을 일으켜 이를 대하는 현상이 또 일어나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무슨 식, 무슨 식이라고 명칭을 붙여서 여러 내용을 나열하게 되면
나중에는 이런 내용은 실답게 존재하는 내용이라고 또 이에 대해 망집을 일으켜서 이를 대하는 상태가 초래된다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사실 병을 고치기 위해서 약을 사용하면 나중에 그 약으로 또 다른 부작용을 일으켜 병이 걸리는 현상과 유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정으로 그런 시설에 대해서 일으키는 망집을 제거하라고 제시하면 이제는 그 시설에 대한 망집만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설로 가리킨 내용까지 다 뜯어내 없애려는 입장도 또 나타나게 된다.
왜 그런가 하면 그 주체가 처음부터 그 시설 뿐만 아니라 온갖 언어나 관념분별을 일으키고 사용할 때 그런 상태로 각 영역의 내용을 다 접착시켜 놓고 이것을 매 순간 대해왔기에 그렇게 매번 임하게 된다고 사정을 이해하게 된다.
지금 그림을 놓고 잘 살펴보자.
눈을 떠서 무언가 내용을 얻는 정신을 타원형으로 표시했다고 해서 그런 타원형이 어떤 주체의 마음에 있겠는가. 그런 것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왜 이런 타원형 그림을 그려 그런 내용을 나타내는가.
그런 방편을 사용하지 않으면 그런 내용에 대해 살피거나 논의하는 것이 힘들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타원형과 원 그림은 이를 통해서 내용이 이해가 되고 나면 이제 철거해야 할 내용인 것이다.
그런데 이 철거에서 이런 타원형을 지우는 것은 관계없지만, 그렇다고 처음에 타원형으로 가리켰던 그런 영역의 그런 내용까지 같이 철거해야 할 것인가는 이와는 별개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이 각 영역의 사정을 처음에 잘 이해하고 논서내용을 살펴나가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매 경우 어떤 내용이 제시되면 그 입장은 그런 내용이 실재하는 내용이라거나 또는 다른 내용과 달리 실다운 내용이라고 제시하는 것인가가 문제된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그것이 망집을 제거하는 데 취지가 있기 때문이고 망집은 바로 그 부분에서 일어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문제삼는 일체의 것이 각 영역에서 그런 내용을 실답게 얻지 못하므로 그에 대한 집착을 제거해야 생사를 벗어나게 된다. 이 부분을 제시하기 위한 것인데
이런 내용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여러 내용을 시설해서 제시하면 이제 이것은 그런 것과는 달리 실재 영역에 존재하는 것이라거나, 그렇지는 않아도 실답게 각 영역에 그런 내용이 있다거나 하는 식으로 또 망집을 일으키게 된다는 의미다.
그렇게 되면 병이 치유되기는 커녕 악화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나중에 현실에서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는 내용은 실다운 자신이 아니고 자신이 매 생 매순간에 걸치는 옷과 같은 것에 불과하고 사실은 근본정신이라고 할 아뢰야식이 생사를 넘어서 각 주체를 이어주는 그런 핵심이라고 제시하면
이제 진짜 자신은 현실에서 자신이라고 여기는 그 부분이 아니고 바로 이 아뢰야식이 진짜 자신이라고 여기면서 또 이 아뢰야식에 대해서 평소 자신이 자신이라고 여기면서 가졌던 망집을 이 근본정신 아뢰야식 부분으로 옮겨 놓는 부작용을 일으키게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부처님 가르침은 거울에 보이는 자신의 모습은 실다운 자신이 아닌데 그러나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이 아뢰야식이나는 정신이 바로 실다운 자신이니 이 실다운 자신을 찾아서 잘 사용하자. 이런 가르침인 것으로 또 오해하게 되기 쉽다.
그러면 되겠는가.
그래서 그런 부분에 일으킨 망집을 또 철거해 내야 하는데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처음 그런 표현으로 가리킨 그 무엇까지 철거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닌 것이다.
무슨 말인가.
현실에서 사람이 거리에서 오고 간다고 할 때 그 상황에 오고감이나 그렇게 오고가는 사람을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하면
평소 그렇게 여기고 대한 망집만 제거하면 되는 것이고 그렇다고 자신이 눈을 떠서 대한 그런 내용은 비록 그것이 실답지 않은 것이고 그것을 그렇게 얻어도 되고 얻지 않다도 무방하다고는 보지만, 앞에서 그런 망집을 제거해야 한다고 할 때 그 내용까지 같이 묶어서 제거해야 한다고 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그런데 오고가는 이가 그 상황에 있다는 망집을 제거하라고 하면 망집만 제거하는 것이 아니고 그런 내용까지 다 같이 제거해야 한다고 또 임하는 부작용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중생을 제도하는 데에도 비용이 든다는 메세지를 듣게 되었다. 물론 엉뚱한 시감상을 통해 그런 것인데 생각해보면 중생 제도에 비용이 든다는 측면은 당연하고 또 이 부분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것이 곧 금강경에서 제시하는 내용이기도 하고 또 수행자가 보시, 정계, 안인, 정진과 같은 계율 항목에 해당하는 수행을 원만히 성취해야 이후 수행도 원만히 성취할 수 있다는 내용과 관련이 된다고 본다.
페이지를 보다가 아주 뛰어난(?) 작품을 보았는데 알고보니 컴퓨터 그림판에 그렸던 본인의 작품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그냥 별 생각없이 그렸던 작품인데 시간이 지나 보게 되니 어떤 유명한 예술가의 작품인 것처럼 여겨진다 요즘 세계 예술품을 자꾸 대하다 보니 그런 착시현상이 생긴 것으로 본다.
앞에서 마음 현상과 관련된 부분을 살폈는데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마음이 이런 마음이 있고 저런 마음이 있다는 등으로 제시한다.
그런데 이 경우 그런 마음이 있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그것이 있다고 하는 것인가부터가 문제된다고 하였다.
무엇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이 '없다'는 말하는 것과 어떤 측면에서 무엇이 다르기에 그렇게 말하는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이다.
현실에서 저기 컵이 있다고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는 그 컵이 눈에 보인다거나 손에 만져진다는 사정을 그렇게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데 그러나 컵은 저기 있다고 누군가 제시한다면 앞과 같은 질문을 다시 해야 할 것이다.
당신이 그 컵이 있다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로 그렇게 말하는 것인가. 이런 내용이다.
그래서 있다 없다의 문제는 이런 측면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논의를 불러 일으키는 어려운 문제라고 본다.
그런데 여하튼 이런 마음 또 저런 마음이 있다고 논서나 경전에서 제시하는 것은 적어도 그런 마음이 이런 형태로 보이거나 만져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니 무슨 의미로 그런 마음이 그렇게 있다고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조금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과거에 이런 있다 없다의 논의와 관련해서 일으키는 여러 혼동에 대해서 한번 제시한 적이 있는데 그 내용을 먼저 참조하면 도움이 되리라 본다.
현재 작업 편의상 컴퓨터 키보드를 교체했더니 키보드 자체가 속도 제한을 건다 한 글자 한 글자 입력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아무래도 부팅을 다시 해보고 글을 작성해야 할 것 같다. 다시 쉬기로 한다.
부팅을 다시 하려다 일반 텍스트 창에서 입력을 해보니 참을만 하다. 그래서 문제가 키보드에 있지 않고 인터넷 브라우저에 있지 않은가 생각하게 된다. ...
아무래도 키보드를 다시 교체해야 할 것 같다. 입력과정에 상황이 어렵다. ... 키보드를 교체하니 조금 낫긴 한데 아무래도 인턴연구원이 사용하는 게임용 키보드를 본인도 구해서 앞으로 사용해야 할 것 같다.
알고 보면 본인이 키보드를 하루 중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데 키보드만이라도 좀 좋은 것을 사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을 갑자기 하게 된다.
좀 가격이 비싸다는데 키보드가 비싸면 얼마하겠는가. 사치품이라고 해도 가방 하나 가격만 하겠는가.
왜 중요한 내용을 제시하려고 글을 작성하는데 엉뚱하게 키보드 이야기인가. 지금 교체한 키보드가 조금 나은데 그런데 또 엔터키 부분이 이상하다.
잠깐 인터넷 구매 창을 다녀오기로 한다.
...
구매주문을 해도 휴일이라 조금 여유가 있다고 보고 일단 주변에 있는 키보드를 다 한번씩 테스트해보기로 했다.
엔터키가 잘 안되는 키보드 하나는 부품을 뜯어 보니 안에 쿠션 역할을 하는 철사가 빠져 있는 상태임을 보았다.
과거에 도서관 환경에서 작업할 때는 되도록 소리가 나지 않는 키보드를 구하느라고 온갖 키보드를 찾아다닌 기억이 난다. 도서관에서 컴퓨터작업을 할 때 소리가 많이 나면 이것이 시비의 원인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서 조금 소리가 나도 무방한데 키보드를 알아보니 청축 적축 갈축 이런 생소한 표현을 대하게 되어서 또 공부를 하게 된다.
인턴연구원이 게임할 때 사용하는 키보드가 청축인 것 같은데 키보드 입력시 나는 소리가 경쾌한데 듣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괴로운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본인은 이번에 기계식 가운데 조금 소리가 덜 난다고 하는 적축을 사고 몇몇 부분만 특징적으로 소리가 나도록 몇몇 키만 청축 형태로 구성을 해볼까 생각 중이다.
자신이 입력하며 자신이 듣게 되는 소리는 상당히 좋게 느낄 수 있는데 그러나 듣는 입장에서는 별로 그렇지 않다.
말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신나게 하는 입장에서는 속이 다 시원하다고 여기는데 그것을 참고 들어주는 입장에서는 대단히 힘들고 괴로운 일이라고 본다.
그래서 대부분 말이 많으면 그 말과 같이 상대가 어떤 형태로 변화하거나 자신의 의견에 공감하고 동의해주어야 효과가 있다고 보는데 대부분 그런 경우 그 결과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게 된다.
나중에는 똑같은 소리를 반복한다며 아예 귀를 기울이지도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긴 글이나 긴 말이나 별로 권장사항이 아닌데 그러나 말을 하거나 글을 적는 입장에서는 잘 시정이 안 되는 현상이다.
키보드는 요즘 작업환경이 바뀌어서 낯선 키보드를 사용하려다 보니 키보드에 익숙하지 않아 생긴 일인데 키보드 이야기는 그만하고 원래 적고자 한 내용으로 넘어가기로 한다.
먼저 앞에서 살핀 마음의 유무문제에 대한 내용은 과거에 작성한 부분에 링크를 걸고 넘어가기로 한다.
현재 현실 내용이 실답지 않다는 내용을 계속 살폈는데 이것은 마음 현상에도 역시 적용이 되는 내용이다.
현실 내용은 실답지 않은데 그러나 마음만은 실답다. 또는 마음 가운데에서도 가장 근본이 되는 근본 정신 아뢰야식만은 실답다
이런 내용을 제시하기 위해서 다양한 마음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실답다라고 하는 것과 실답지 않다고 하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는가를 먼저 잘 살펴야 한다고 본다.
역시 이해가 쉬운 꿈을 놓고 이 문제를 살펴보기로 한다.
꿈을 생생하게 꾸었는데 그 꿈을 실답지 않다고 하게 되는 사정을 이전 조각글에서 살폈다.
꿈은 그런 조건 그런 상황에서만 그렇게 얻는 일시적인 내용이고 그렇게 생생하게 꾼 꿈 내용은 꿈안에서만 얻는 내용으로서 다른 영역에서는 얻지 못하는 내용인 것이고 또 그 내용에 대해 기대하는 다른 성품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기에 꿈은 아무리 생생하게 꿈을 꾸는 순간 얻더라도 실답지 않다고 하게 되고 따라서 이에 대해 집착을 갖고 대하면 곤란하다. 이렇게 제시하게 된다고 보았다.
그런데 만일 사정이 이러한데 이런 꿈을 실답다고 여긴다면 이 꿈을 어떻게 잘못 대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자면서 바다나 황금꿈을 꾸었다고 하자.
그런데 그가 자신이 꾸면서 본 그 바다나 황금이 그처럼 자면서 꿈을 꾸는 그런 상황에서만 얻는 내용이 아니고 그런 조건이나 상황에 관계없이 늘 그렇게 있는 내용이라고 여기고 대한다거나,
또는 자신이 꾼 그 바다나 황금은 꿈에서만 얻는 것이 아니고 그 꿈을 자면서 꾼 현실의 침대나 방안에도 그것이 그렇게 있는 것이라고 여긴다거나,
또 자신이 꿈에서 꾼 그 바다나 황금은 정말 배를 띄울 수도 있고 그 안에 물고기도 살고 그리고 황금은 황금대로 바다에 던지면 가라앉는 것이라는 등으로 대한다면 그런 것이 모두 자신이 꾼 바다나 황금꿈을 실다운 내용으로 여기고 대하는 꿈과 관련한 망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현실에서 자신이 꾼 꿈을 가지고 위와 같은 형태로 대하면서 이 꿈을 실답다고 여기는 경우는 드물다.
장자가 나비 꿈을 꾸고 나서 나비가 장자가 된 것인가. 아니면 장자가 잠시 나비가 되었던 것인가라는 이야기를 했다는 내용이 전하기도 하지만,
여하튼 위 꿈이 실답지 않다는 내용을 통해서 이 꿈의 비유를 통해 현실 내용을 실답다고 여기면 왜 곤란한가를 함께 잘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눈을 떠 보니 거리에서 여기저기 사람이 오가는 모습이 보인다. 이런 현실 상황을 놓고 생각해보자.
일반적으로 이 상황에서 어떤 망상분별을 행하는가 하는 것을 위 꿈의 비유를 놓고 잘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우선 자신이 다음에 나열하는 각 항목에 해당한다하더라도 너무 당황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본다. 또는 이런 자신을 망상분별 상태라고 제시한다고 해서 본인에게 너무 기분 나빠할 필요도 없다.
현실에서 부처님과 같은 몇 분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 생명이 거의 예외없이 그런 상태로 망상분별을 일으켜서 생사고통을 받아나가는 상황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이런 망집상태를 제거해야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므로 그냥 방치해서 된다는 의미는 또 아니다.
여하튼 그런 입장에서 이 문제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앞과 같은 상황에서 어떤 이가 눈을 떠서 그런 모습을 보는 상황에서 그가 생각하기를
저기 걸어오는 것은 영희다. 영희가 저기에서 여기로 걸어오고 있다.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관념분별을 행할 때 마치 꿈의 경우처럼 그런 관념분별을 관념분별 영역에서 일으킬 수도 있고 일으키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지만, 일단 그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런 관념분별을 일으킨 상태에서 어느 부분에서부터 망상분별로 진입해들어가는가 하는 부분에 초점을 잘 맞추어야 한다고 본다.
여기서 앞에서 꿈을 놓고 제시한 내용을 현실 내용과 관련해 잘 대조해가면서 살펴야 한다.
꿈을 꿀 때 그런 꿈을 꾸었다고 누가 책망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꿈을 꾸고 그것이 '실답다고' 여기면서 대하는 그 부분부터 문제가 있다고 제기하는 것이다.
관념분별도 이와 마찬가지다 . 감각현실을 대하고 그에 대해 관념분별을 일으켰다고 누가 책망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소설가나 시인의 심정이 되어서 감각현실을 얻고 나서 엉뚱한 관념분별을 일으킨다고 해도 그것만 가지고 문제라고 할 도리는 없다는 의미다.
그런데 자신이 그렇게 일정한 관념분별을 일으킨 다음 그 내용을 엉뚱하게 대하고 그런 내용이 다른 영역에서도 얻어지는 실다운 내용이라고 여기면서 집착을 일으키고 그에 바탕해서 현실에 임하는 그 부분부터가 문제인 것이다.
이렇게 관념분별을 일으킨 상태에서 이 관념분별 내용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실답지 않은 내용을 실답게 대하는 것인가. 이것을 앞에서 살핀 내용에 준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어떤 이가 앞과 같이 일정한 관념분별을 일으킨 다음
그런 관념분별은 자신이 한 번 생각한 이상 자신이 그런 관념분별을 일으켜 얻는 그런 조건이 아니더라도 그와 관계없이 늘 그렇게 있는 내용이라고 여긴다거나,
또 자신이 관념영역에서 일으킨 그 내용은 자신이 대한 '감각현실 영역'에도 그대로 '있다'고 여기면서 그 현실을 대한다거나,
또 그 관념분별 내용은 관념분별 내용대로 그런 감각현실 영역에서 얻는 내용을 다 그 안에 갖고 있다고 여기며 현실을 대한다거나 한다면 이것이 모두 실답지 않은 관념분별 내용을 실답다고 여기는 현상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우 앞에서 꿈에 대해 살핀 내용들이 모두 여기에 적용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부분을 시정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처럼 잘못된 망상분별 부분을 시정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러나 눈을 떠서 그런 모습을 보게 된 것과 또 그런 모습을 보고 그런 생각을 일으킨 부분은 비록 앞과 같은 망상을 일으키는데 사용한 소재는 되지만, 그 자체는 일단 여기서 시정해야 할 부분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물론 엄격하게 본다면 이런 감각현실이나 관념분별 내용은 본 바탕인 실재영역과 마찬가지로
진짜라고 할 내용이 없는 것이고 [무아 무자성] 그래서 실다운 내용이 아니란 점은 마찬가지이지만,
그러나 그 자체는 생사고통을 겪게 하는 망집을 일으킨 소재일뿐 그 자체가 망상분별과 집착 현상 자체는 아닌 것이다.
예를 들어 침대에 누어서 바다나 황금꿈을 꾸었다고 할 때 그런 꿈을 침대나 그렇게 누어 꾼 꿈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렇게 바다나 황금의 꿈을 꾸고나서 그런 꿈내용이 침대에 있다고 하면서 황금을 찾는다고 침대를 뒤지고 흔들고 하는 그 부분부터가 문제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감각현실을 얻고 나서 그에 대해 관념분별을 일으킬 때 이들 내용을 소재로 일으키는 망상분별과 이에 바탕한 집착 증상이 문제이고 또 이후 이에 바탕해 행해 나가는 생각과 말과 행위가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관념분별이 실답지 않은 것처럼 감각현실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런데 어떤 감각현실을 얻고 나서 그런 감각현실이 실답다고 여기는 현상은 정작 감각현실 영역에서 행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눈을 떠서 생생한 모습을 얻지만, 이것이 실답다 실답지 않다 이런 분별은 그런 감각현실을 얻는 영역이나 그런 내용을 얻는 눈이 그런 분별을 행하고 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래서 그런 감각현실을 얻고 그 감각현실이 실다운 내용이라고 여기는 현상도 결국 관념분별 영역에서 그렇게 망상 분별을 일으키는 현상인 것이다.
그런데 감각현실도 그것을 얻기 이전의 본 바탕인 실재를 놓고 생각하면 앞에서 꿈에 대해 그 꿈이 실답지 않다고 보는 상태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래서 이런 감각현실에 대해서도 또 앞처럼 잘못된 망상분별을 일으켜서 그런 내용이 실다운 내용이라고 여기면서 대하면 역시 곤란하다는 의미다.
즉 그런 감각현실을 한번 얻으면 자신이 그런 내용을 얻게 된 그런 상황과 조건을 떠나서도 그런 내용이 그렇게 늘 존재하는 것이라고 여긴다거나,
자신이 얻는 감각현실은 본 바탕이라고 할 실재 영역에서도 그렇게 있는 내용이라고 여긴다거나,
또 자신이 얻는 감각현실은 그것이 시각정보라면 그 안에 다른 청각정보나 후각, 미각 촉각 정보가 그 안에 들어 있다고 여긴다거나, 또는 그에 대해 일으킨 여러 관념분별 내용도 그런 감각현실 안에 그처럼 들어 있다고 여긴다면 이것도 마찬가지로 잘못된 망상분별이 되는 것이다.
사정이 그렇지 않은데 그렇다고 잘못 망상분별을 일으켜 그렇게 여기고 그것을 대해 나가기 때문에 문제가 있게 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자신이 커피가 담긴 컵을 바라보면서 컵을 두드리며 소리도 듣고 그 컵안의 커피도 마시고 그 컵을 손에 쥐고 촉감도 느끼는 것이 일상생활의 경험인데
이 경우 대부분 자신이 그 컵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게 되면 자신이 보는 그런 컵의 모습이 바로 그런 소리를 일으켰다고 여기기도 하고 그래서 그 컵 모습은 그런 소리를 갖고 있는 것이라고 여기면서 대하기 쉽다.
자신은 안 그럴 것 같지만, 어떤 상점에서 컵을 고르면서 이 컵은 소리가 좋다거나 별로 안좋다는 등으로 말을 한다는 경우
그 소리가 어디에서 나는 것이고 어디에 있었다고 여기면서 대하는가를 잘 스스로 검토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눈으로 본 내용에 왜 귀로 듣거나 코로 맡거나 혀로 맛보거나 손으로 만지면서 느끼는 촉감이 그 안에 있겠는가.
그리고 왜 청각정보를 시각정보가 만들어내겠는가.
그럴 이치가 없는데 현실에서는 그것이 대단히 당연한 내용이라고 여기면서 이를 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감각현실을 얻는 가운데 관념분별을 행하게 되면
자신이 행한 그 관념분별 내용이 바로 그 감각현실에 그렇게 있다고 여기면서 매 순간 대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꿈은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잘 이해하지만, 감각현실과 관념분별은 꿈과 달리 그 상화관계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여기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 부분을 잘 이해하려면 눈을 감았다가 뜰 때 그 때 보게 되는 내용을 마음에서 잘 붙잡아 두려고 노력을 먼저 하는 것이 필요하다.
붙잡으려고 한다고 해서 붙잡이지는 않겠지만, 눈을 자꾸 감았다 떴다 해보면서 눈을 뜨는 순간 얻게 되는 내용을 일단 잘 확보해 놓도록 노력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눈을 감고 뜨고 하는 것과 관계없이 일정하게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으므로 그것을 또 눈을 감은 상태에서 잘 붙잡아 확보해 놓도록 노력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이 두 내용을 놓고
눈을 뜨는 순간 얻는 감각현실이 곧 그런 관념분별 내용인가.
반대로 눈을 감아도 떠올릴 수 있는 관념분별이 곧 그런 감각현실인가를 자꾸 대조해보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위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하게 되는가.
그렇다면 또 고민을 해보아야 한다.
그러나 위 실험을 잘 하면 사정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눈을 감고도 떠올릴 수 있는 관념분별 내용에 자신이 눈을 뜨는 순간 얻는 감각현실 가운데 단 한 부분이라도 찾아지는가 이런 문제를 스스로 잘 검토해보아야 하는 것이다.
사정이 그렇지 않기에 그렇지 않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정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생각한 관념분별 내용은 감각현실 안에도 그처럼 들어 있는 내용이라거나,
또는 반대로 관념분별 안에는 감각현실에서 얻은 내용이 그렇게 구성요소로 들어 있다는 등으로 여기면서 이들 내용을 대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즉 자신이 얻는 감각현실에는 자신이 생각한 관념분별이 그렇게 있다고 여기는 것이 우선 잘못된 망상분별인 것이다.
또 반대로 자신이 생각하는 관념분별에는 자신이 눈을 떠서 얻는 감각현실이 그 구성요소로 있다고 여기는 것이 망상증상인 것이다.
그리고 이 내용이 곧 바다나 황금꿈을 꾸고 나서 그 바다나 황금이 그 꿈을 꾼 침대에 들어 있다고 여기면서 대하는 망상증상과 같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그런 망집을 일으키고 현실에 임하는 추체를 이후 생사고통에 묶이게 하는 근본 원인이 되기에 시정해야 한다고 하는 부분인데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런 접착을 일으키게 한 소재가 된 그 내용 자체까지 문제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 내용을 놓고 그 내용을 본래 얻을 수 없는 다른 영역 즉 본 바탕이 되는 실재 영역이나 감각현실 영역 등에 그런 내용이 그렇게 있다고 여기고 그런 사정으로 그렇게 일으킨 내용을 실답다고 여기면서 집착을 일으켜 그 각 내용을 대하는 그 부분부터가 망상의 문제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내용을 얻지만, 그런 내용은 다른 영역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것임을 잘 이해하고 그래서 비록 그처럼 생생하고 명료하게 얻지만, 그러나 실답지 않은 것임을 이해하고 그래서 그에 대해 집착을 제거하고 대할 수 있다면
마치 현실에서 꿈을 꾸지만, 꿈은 꿈일 뿐이라고 여기면서 대하는 경우처럼 그런 망집 현상이 제거된 상태라는 의미다.
일단 쉬기로 한다.
작업환경이 바뀌다 보니 여러가지 손을 보아야 할 부분이 많아서 글 작성이 힘들다.
○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Marka - Vivement Les Martiens.lrc
노래를 듣다보니 무엇이라 부르지말라는 메세지가 들리는데 이런 메세지를 듣다보니 문수보살님이 떠오른다.
문수보살님이 찾아 오셔서 문수보살님이라고 부르면 문수보살님이 그렇게 자신을 대하면 여기에 2 문수가 있게 된다며 질책을 하신다는 내용이 경전에 있다.
왜 그런가. 이는 앞 내용과 관련이 되는 부분이다.
현실에서 거리에 서서 여기저기 차가 오가고 사람이 오가는 모습을 보고
영희가 저기에서 여기로 온다 그리고 누군가 담배를 태워서 없던 담배연기가 나타나면 연기가 그렇게 생겨난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보통인데
그러나 경전에서는 이런 현실에 그런 생멸을 얻을 수 없고 그런 영희나 그런 영희의 오고감도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그렇게 제시하면 자신이 일으킨 망상분별을 이를 통해 제거하려고 생각하지는 않고 일반적으로 이것이 무슨 이야기인가. 말도 안되고 이치에 맞지도 않는 이야기 아닌가. 이렇게 어리둥절하게 대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그 사정을 앞 내용을 놓고 잘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여기서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무엇이 생멸한다고 여길 때는 무엇을 가지고 생멸한다고 하는가 하면
자신이 눈을 떠서 보니 그 전에 보지 못한 무언가가 새로 보이고 감각현실에서 무언가가 들고 나고 한다. 이런 내용을 놓고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런 현실을 똑같이 대하면서 이런 현실에 그런 생멸이 없다고 제시하는 것은
그 현실에 자신이 그에 대해 일으킨 관념분별과 같은 내용으로서 그처럼 없다가 있다고 할 어떤 a 도 얻을 수 없고 또 그런 생멸 즉 그런 무언가가 없다가 있다거나[생] 또는 있다가 없음[멸]도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감각현실을 얻게 된 본 바탕인 실재 영역에서도 그런 내용은 마찬가지로 얻을 수 없음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감각현실이나 관념분별은 본 바탕이라고 할 실재의 지위에 있는 내용도 역시 아님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러그러한 본 바탕인 실재 영역에 아무 내용도 전혀 없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또 감각현실 영역에서도 그 주체가 그렇게 얻은 그러그러한 내용을 얻지 못한다고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또 마찬가지로 관념분별 영역에서 그러그러한 관념분별을 일으키지 못한다고 제시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무엇이 문제라고 제시한 것인가하면 자신이 그러그러한 내용을 얻고 그러그러한 관념분별을 일으키고 나서
자신이 분별한 그런 분별 내용이 그런 감각현실 영역에 그처럼 있다고 여기는 그 부분이 문제이고
또 그렇게 얻은 감각현실도 본 바탕인 실재 영역에 그렇게 있다고 여기면서 그래서 그러한 감각현실이 실다운 내용이라고 여기며 대하는 그 부분이 문제인 것이다.
마치 침대에 누어 바다나 황금꿈을 꾼 이가 자신이 꾼 바다나 황금이 그 침대나 그 방에도 있다고 여기는 것처럼 잘못된 내용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이것이 왜 문제인가 하면 그런 망집에 바탕해서 그가 이후 그렇게 각 영역에서 얻을 수 없는 생사고통을 받아나가게 되기에 문제라고 하는 것이다.
본 바탕이라고 할 실재영역이나 감각현실 영역이나 관념분별 내용 자체만 놓고 보면 비록 그 각 내용 역시도 진짜라고 할 내용은 없고[무아, 무자성] 그래서 실답다고 할 내용은 아닌데
그러나 그 내용만 놓고 보면 생사현실에서 겪게 되는 생사고통은 여기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고 비록 그것이 앞과 같은 망집의 소재가 되기에 문제는 문제지만, 그 자체만 가지고는 그것을 문제로 보지는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런 실답지 않은 내용을 각 영역에서 일으켜 얻고 나서는 그런 내용이 각 영역에 실답게 있다고 여기면서 망상분별을 일으킨 다음 그에 바탕해 집착을 갖고 그런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하게 되면 그로 인해 생사고통을 무량겁에 걸쳐 극심하게 받아나가게 되므로 그것이 문제라고 하는 것이다.
즉 앞과 같이 망집을 바탕으로 한 상태에서는 각 영역에서는 본래 얻을 수 없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러나 그런 내용이 실답게 있다고 여기는 가운데 극심한 고통을 받는 3악도에 묶여서 생생하고 실답게 여겨지는 생사고통을 그처럼 무량하게 극심하게 받아나가게 되기에 그것을 문제로 보는 것이다.
물론 이미 이전 조각글에서 제시했듯 이런 감각현실이나 관념분별 들이 어차피 실답지도 않을 뿐더러 이것이 소재가 되어서 그런 망집을 일으켜 생사고통을 받아나가는 것이므로
처음부터 이런 내용을 모두 다 제거하여 회신멸지의 상태가 되는 것을 원칙이라고 제시하지만,
그러나 앞과 같은 망집을 일으켜 대하지 않는다면 또한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보게 되고
또 한편 비록 실답지는 않지만 이런 내용들을 통해서 본 바탕의 사정을 이해하고 그런 망상분별 상테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므로 그런 의미에서는 또 생사고통을 벗어나는데 유용한 것이기도 한 것이다.
여하튼 본 바탕인 실재 영역은 진짜라고 할 내용이 없지만,[무아 무자성] 그렇다고 전혀 아무것도 없다고 할 내용도 아닌데
다만 현실에서 문제삼는 그런 생사고통은 얻을 수 없고 적어도 그것은 아닌 그 무엇이라는 점에서 생사고통을 떠난 청정한 니르바나라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정은 현실에서 얻는 내용도 앞과 같은 망집을 바탕으로 그것을 대하지 않는한 그 사정이 마찬가지라는 의미다.
앞에서 눈을 떠 거리에 오가는 사람이나 차를 보는데 그 내용만 놓고 본다면 그것은 그처럼 생생한 그 무엇이면서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내용은 얻을 수 없는 그 무엇이라는 의미다.
이것을 놓고 자신이 어느 부분을 영희라고 보고 또 그 상황에서 영희가 그렇게 오고간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런 관념분별 내용은 그 분별이 가리키는 그 부분에서는 얻을 수 없다는 의미다.
자신이 그것을 대해서 그런 생각을 일으킨 사정은 이해하지만, 그것은 침대에 누어서 바다꿈을 꾸었다고 해서 그 바다가 침대애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그런 분별 내용은 그 부분에서 얻을 수 없다는 의미다.
짜장면을 먹어서 좋음을 느낀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짜장면에 그 좋음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내용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런 매 경우마다 그런 과정으로 일정한 내용을 얻으면 그렇게 얻은 내용이 그 영역에 그렇게 실답게 있다고 여기면서 그것을 대하는 것이 문제라고 제시하는 것이다
이제 마음의 현상에 대해 이해할 때도 이와 사정이 마찬가지다.
눈에도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각 마음을 그처럼 시설해 제시하는 사정은
사실은 현실에서 앞에 제시한 것과 같은 여러 내용을 얻고 그에 대해 앞에 제시한 것과 같은 여러 망상분별을 일으켜 생사고통을 받아나가기에
그렇게 된 그 사정을 이해시키고자 앞에 제시한 것처럼 현실에서 얻고 그렇게 있다고 보게 되는 그런 내용을 가지고 다시 그런 내용을 얻는 마음을 시설해 제시하는 사정이 있는 것이다.
처음에 자신이 눈을 떠 무언가를 놓고 영희라고 생각한다고 할 때 그 무언가를 얻은 것은 사실인데 거기에는 그런 영희는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하면 이해를 잘 하지 못하는 것처럼
자신이 매 순간 그런 내용을 현실에서 얻으면서 그렇게 대하게 된 과정을 스스로 잘 이해하지 못하게 되므로 일단 그런 시설을 해서 그런 내용을 그렇게 얻게 된 과정을 설명하여 본 바탕이 본래 그렇지 않다는 사정을 이해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에 대한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하게 하기 위해서 현실에서 얻는 내용을 바탕으로 그런 마음을 시설해 제시하고 설명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처음 그런 시설을 하게 된 영희나 연기나 꽃 이런 것부터가 처음부터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는 내용임을 이를 통해서 이해해야 하듯,
최종적으로 이렇게 시설한 여러 마음 현상도 그 사정이 마찬가지라는 것을 잘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다.
먼저 수행자의 계율항목에 자찬타훼 금지 항목이 있다. 사정은 누구나 자신을 자랑하고 다른 이를 비난 비판하는 경향이 있는데 또 누구나 그렇게 임하는 다른 이를 보면 역겨워하게 되는 경향을 갖는 것이다. 따라서 그렇게 임하면 다른 이로부터 존중받지도 못하고 그렇기에 그가 자신의 생사를 벗어나기도 힘들 뿐 아니라, 그런 상태로는 다른 이를 제도하기도 힘든 것이다. 그러니 그런 자세를 취하라고 하겠는가.
알고보면 그런 것이다.
본인이 장난삼아 그린 그림을 올려 놓고 언뜻보니 대단한 예술가의 작품인줄 알았다는 내용을 적었는데 이것도 사정이 비슷하다. 대부분 그런 부분에서 구토증을 일으키기 마련인 것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인이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그런 내용을 올린 것은 매번 예술작품을 올리면서 대하다보니 그런 착시현상도 생긴다고 소개한 것 뿐이다. 그런데 내용이 그렇다보니 그런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또 처음 글을 시작할 때 낯뜨거운 핫한 이슈를 언급했는데 아니 이것이 본인 책임이겠는가. 글자가 그렇게 적혀 있으니 핫하다고 보는 것인데 그것이 세종대왕 책임이겠는가.
그러나 그런 측면도 있지만, 알고보면 그렇지 않은데 있는 측면을 없다고 하기도 그렇고 그래서 이것을 기화로 읽다보면 골치 아파오고 복잡하고 난해한 논서 내용을 관심을 갖고 잘 연구해보자 이런 취지인 것이다. 굳이 해명하지도 않아도 되는데 잘못하면 위험하다고 본다.
그리고 본 논서에서는 마음 현상에 대해 대단히 자세하게 내용을 소개한다고 보는데 그런데 본인이 미리 이런 내용을 살피기 전에 그런 내용을 그처럼 자세하게 시설해 제시하는 본 취지와 사정부터 제시한 것이다.
그래서 이들 내용은 현실이 하나같이 실답지 않은데도 그러나 이를 실답다고 여기면서 매생마다 그렇게 생을 시작해서 번뇌에 묶여 헛된 사역을 당하고 그리고 삶을 헛되이 마치고 그리고 나서 그런 업으로 인해 극심한 생사고통을 받는 3 악도에 들어가 무량겁에 걸쳐서 고통을 받아나가게 되는 그 사정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그와 같은 여러 내용을 시설해 설명하게 되는 사정을 먼저 제시한 것이다.
그래서 대단히 복잡한 여러 내용이 제시되는데 그러나 이 역시 그런 취지에서 제시되는 내용인 것이어서 이런 내용을 대하는 가운데 다시 이들 내용이 실답지 않은 현실 내용과는 달리 실다운 내용인 것으로 또 여기고 대하면 역시 곤란한 사정을 먼저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제시하면 이 내용이 마치 이 논서의 내용을 기본적으로 비판한 것이라고 오해하기도 쉽다고 본다.
자세하게 이 사정을 소개하고 싶지만, 불교계에서 이를 단축시키는 방안으로 경증이라는 방안이 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경전에 그와 같은 내용이 있다고 제시하면 적어도 부처님을 믿고 수행하는 입장에서는 이 내용을 수긍하고 받아들이게 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본 논서에서도 처음에 일반인이 평소 잘 있는지 없는지 조차 잘 의식하지 못하고 그래서 아뢰야식과 같이 일반 입장에서는 생소하게 대하는 표현을 통해 표현하여 제시하는 그런 근본 정신이 왜 그처럼 있다고 보게 되는가하는 부분에서 이와 같은 경증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이 이러이러하게 말씀하셨다. 그러니 그렇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의미인 것이다.
이 내용이 부처님을 이미 믿고 수행하는 입장에서는 효과가 좋은 방안인데
그러나 처음부터 부처님을 믿지 않으려고 하는 의지를 강하게 갖고 각 내용을 대하는 입장에는 효과가 오히려 없기 때문에 일반적인 입장에서도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또 몇몇 내용을 추가하게 되는 사정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하튼 앞에 제시한 내용은 경전에 그런 내용을 부처님이 제시한 내용인 것이고 본인이 본인 생각으로 그렇게 보자고 제시하는 내용이 아니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경증의 방안을 사용하기 보다는 일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안을 다시 하나 덧붙여 살펴보기로 한다.
이런 사례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길가에 벽돌이 하나 있는데 어떤 이가 이것을 자신이라고 여기면서 대한다고 가정해보자.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그런데 그가 그렇게 임하게 된 데에는 사정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눈만 뜨면 그 벽돌이 늘 어느 한 구석에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자신이 어디론가 움직여야겠다고 하면 그 벽돌만 유독 그 때마다 그렇게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벽돌이 어딘가 부딪히면 그 때마다 자신이 촉감도 얻고 그런다는 것이다. 그리고 벽돌을 보니 다른 것과는 달리 상당히 깨끗하고 좋아보인다고 그가 여기면서 그것이 곧 자신이라고 여기면서 매 순간 그것을 대한다는 것이다 .
이상하지만,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왜 이 벽돌은 그런 것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닌데 왜 그것이 그런 자신이겠는가하면서 물어보니
그가 답하기를 당신의 눈에는 이 벽돌이 보이지 않는가. 그리고 이 벽돌을 보면서 자신이 그러그러한 사정으로 그것을 자신이라고 명료하게 생각하고 이 처럼 이 두 내용이 다 확실한데 왜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가 . 이렇게 답을 한다는 것이다.
참 답답한 일이다.
자신이 눈을 떠서 그런 벽돌을 확실하게 얻는 한편 그에 대해서 그런 사정으로 그것이 무엇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명료하게 생각하는 것이고 그래서 이 두 내용이 다 확실한데 왜 그 벽돌이 자신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내용을 제시하고 이런 내용들은 자체적으로 명확한 것이므로 더 묻고 따질 일이 없다. 이렇게 임한다는 것이다.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 알고보면 현실에서 어떤 이가 무언가를 보고 그것이 바위라거나 꽃이라거나 또는 영희라거나 철수라거나 또는 자기자신이라고 여기는 과정이 다 이와 같은 상태인 것이다.
왜 자신이 꽃이라고 보고 대하는 그 감각현실 부분이 꽃인가라고 어떤 논리학자에게 물으면 그것이 참인 것은 자명한 것이어서 더 이에 대해 묻고 따질 일 자체가 없다. 이러면서 이 부분을 쉭하고 넘어간다는 의미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가 문제인 것이다.
이 증상은 병원에서 치료받는 망상환자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치솔을 놓고 개라고 여기는데 그도 마찬가지로 답하는 것이다.
여기 이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그리고 이것을 이렇게 잡아 당기면 이렇게 반갑게 몸을 흔드는데 이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개가 아니고 무언가.
이처럼 지금 생생하게 눈을 떠 이 모습을 대하고 그것을 놓고 지금 명료하게 개라고 생각하는 데 이들 내용 외에 무슨 다른 근거가 필요한가. 이렇게 임한다는 의미다.
알고보면 참 답답한 일이다.
그런데 그 사정은 알고 보면 같은 것이다 . 자신이 그런 감각현실을 얻고 그것을 대하면서 그러그러한 생각을 명료하게 일으키고 대하는데 왜 그것을 놓고 그것이 아니라고 하는가 이렇게 반문하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의미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서로 자신과 다른 입장은 또 그런 상태에서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또 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각 입장이 결국 상태가 같은 것이어서 자신이 그런 감각현실을 대단히 생생하게 얻었고 그 내용을 대하면서 그 각 부분이 무엇무엇이라고 명료하게 생각하는데 이 외에 여기에 그것이 그것이라는 근거가 무엇이 또 필요하는가. 이렇게 각기 임하면서 생사고통의 현장에 돌진한다는 의미다.
물 속의 잉어나 상어나 고래도 상태가 그렇고 땅에 두더지나 곰도 그렇고 그리고 사람도 상태가 같다는 의미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잠깐 스톱을 외치면서 무엇을 주의해야 한다고 하는가하면 그가 자신이나 꽃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벽돌 즉 그 감각현실 부분에 그가 생각하는 그런 내용은 얻을 수 없는데
그러나 그가 그런 망상증상 때문에 그것을 대해 엉뚱한 생각을 일으킨 다음 그리고나서는 그 내용이 거기에 있다고 대하면서 그에 바탕해서 계속 업을 행하고 있기에 그런 전제에서는 생사고통을 피할 도리가 없다. 이 내용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증상을 겪는 입장에서는 물론 그런 설명을 듣다보면 그렇다고도 일면 볼 수 있는데 그러나 왜 그런지 몰라도 자신이 매번 대하는 이 벽돌은 여하튼 앞에 제시한 형태로 매번 자신이 그런 형태로 대하게 된다. 이 증상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처음 생을 시작해서 임하게 된 그 사정을 또 그 바탕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할 필요가 있게 되었다는 의미다.
왜 그것이 자신이 아닌데도 왜 매번 자신이 눈만 뜨면 그런 모습을 또 보게 되고 또 자신이 어디론가 움직여 가야겠다고 하면 유독 그 부분만 그렇게 이동해 오는가. 그 사정이 무언가 이 부분이 이해가 잘 안된다는 부분이다.
그러니 그렇게 장치가 되어서 현재 생에 그런 형태로 생을 시작하게끔 처음부터 망상분별을 일으키고 생을 시작하게끔 된 그 사정을 설명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번 생과 마찬가지 형태로 그런 자세로 계속 임해 나가면 또 다음생도 지옥이나 아귀 축생세계에서 그와 같은 형태로 또 그처럼 생을 시작해서 살아가게 되고 그런 가운데 역시 마찬가지로 자신이 어떻게 그렇게 된 것인지 제대도 파악하지 못하고 그런 상태로 매 생마다 생사고통을 받아나가게 된다는 그 사정을 지금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이런 문제가 있다.
벽돌을 놓고 자신이 그것을 놓고 꽃이라거나 자신이라고 여기는 어떤 이에게
그 벽돌에서는 그가 생각하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런 내용이 없다. 이렇게 제시하면
이제 그가 2 중의 공황상태에 빠지기 쉽다고 보게 된다.
그것이 자신이 별로 집착하지 않았던 바위나 꽃이라면 별 문제가 없는데 그것이 자신이 대단히 평소 집착하고 대하던 자신이라거나 자신이 자신 이상 아끼고 대하는 자신의 배우자나 가족인 영희나 철수 등등이라고 한다면 이 경우에
그 벽돌을 그런 것이라고 여기고 대했는데 그 벽돌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고 제시하면 마치 자신이 사망한 것과 비슷한 공황증세를 일으키기 쉽다고 보는 것이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지금껏 그 벽돌이 자신이라고 여기면서 대단히 소중하게 여기고 현실 모든 내용을 그 벽돌과 관련시켜서 온갖 고민을 다 하고 온갖 무량한 if문제를 다 나열해 놓고 살펴왔는데 그 벽돌이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하니 얼마나 당황스러운 일인가.
이 상황은 비유하면 벽돌에 있다고 본 자신이 이제 사망해서 없어진 상태와 비슷하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벽돌 측면에서 그런 것이고
자신이라고 그런 생각을 일으킨 그 측면에서는 그 측면대로 자신이라고 생각한 그 내용은 감각현실 부분에서 그에 상응한 내용이 이제 사라진 것이 되어서 또 황당하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눈에 벽돌은 보이는데 그 벽돌에는 자신이 지금껏 생각해온 자신이란 내용이 없고
더 나아가 그 본 바탕인 실재 영역도 사정이 마찬가지고
그래서 자신이라고 생각한 내용이 갑자기 없어졌다고 여기게 되니 황당한 것이다.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것을 피하겠지만, 이것은 벽돌과 본 바탕의 측면이 그렇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가 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 경우는 그래도 그 벽돌은 그대로 보이는 상태다.
그런데 이제 그 벽돌마저도 안 보이게 되는 경우를 또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 벽돌이 있던 장소에 벽돌이 더 이상 보이지 않고 벽돌이 부서진 모래나 흙만 보인다거나 어느날 비가 내려서 그것도 보이지 않고 이제 그 자리에 풀만 보인다거나 하는 경우가 또 문제가 된다.
그러나 앞 내용이 여기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다만 조금 다르게 표현하는 것이다.
거기에 자신이라고 본 그 벽돌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원래부터 그 벽돌에 자신이 생각한 그런 내용은 없었던 것인데
그렇게 없었던 벽돌이 사라졌다고 해서 무엇이 있었던 것이 새삼스럽게 없어진 것이겠는가. 이렇게 그 내용을 제시하게 되는 것뿐이다.
즉 본래 그런 내용이 거기에 없었는데 그 벽돌이 이제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로 인해서 무언가가 있던 것이 없어지는 일이 거기에 왜 있겠는가 이런 의미다
그것은 눈으로 감각해 얻는 감각현실만 그런 것이 아니고 본 바탕이 되는 실재영역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리고 또 이 사정은 그런 관념분별을 일으킨 관념분별 영역도 마찬가지다.
본래 그 관념분별 영역에서 행한 관념분별에는 그런 내용들이 있지도 않았는데 그런데 그런 일로 어떤 있었던 벽돌이란 감각현실이 그로 인해서 없어지는 일이 있곘는가.
다만 매 순간 그런 망집을 갖고 대한 입장에서는 그 내용을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없어지고 없었던 것이 그렇게 있게 된다고 매 순간 그렇게 대하면서 생사고통을 겪는 상태라는 내용인 것이다.
이 비유를 가지고 조금이나마 현실 상황을 이해한다면 다행이지만, 이것이 이해가 안 되면 다시 꿈의 비유를 놓고 좀 더 자세히 살펴야 한다고 본다.
대부분 실답지 않음을 이미 잘 이해하고 있는 꿈을 놓고 이 상황을 이해하면 좀 더 쉽다
침대에 누어 바다와 황금꿈을 꾼 것이다 .
그런데 그가 깨어나서 침대를 바라보면서 그 침대에 누어 그런 꿈을 꾸었기에 자신이 꿈에서 본 바다와 황금이 그 침대에 있다고 여긴다면 어떤가.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그렇지 않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 침대를 의존해서 잠을 자고 그 침대에 누어 그런 꿈을 꾼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꿈에서 꾼 내용이 침대에 있지는 않다는 의미다.
이 내용이 현실에서 얻는 내용과 그에 대해 분별하는 내용이 갖는 관계와 같다는 의미다.
두번째는 그런 상황에서도 꿈 내용을 집착하고 꿈을 모든 사실과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대하면 앞과 같은 내용을 제시받게 되면 그로 인해서 자신이 꿈에서 보고 그렇게 집착한 황금이나 바다가 그 침대에 있지 않다고 하니, 그로 인해서 대단한 상실감을 받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은 꿈에서 본 황금이 침대에도 있다고 믿는데 그러나 없다고 자꾸 제시하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이런 경우는 거의 드물지만, 여기서 꿈을 놓고 그 꿈이 실답다고 여기면서 대하는 상황이 비유적으로 그렇다는 의미다.
그러니 어떡하는가.
이렇게 설명하게 되는 것이다.
꿈에서 황금을 생생하게 꾸고 얻은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침대가 있는 현실에서 없던 황금이 그로 인해 생겨난 일도 없고
또 마찬가지로 그 황금이 사라진다고 해서 본래 없던 황금이 그로 인해 있다가 그리고 다시 없게 된 것도 아니라고 설명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침대에 자신이 꾼 꿈 내용이 그처럼 실답게 있다고 믿고 대하는 꿈 망상상태의 환자에게는
이제 이러이러한 사정으로 침대에는 본래 그런 황금이 없다고 제시하게 되면
이런 내용을 대하면서 자신이 그렇게 실답게 있다고 여긴 황금이 거기에 없다고 하니 앞과 비슷하게 당혹한 상태로 이를 대하게 되는 것이다.
즉 자신은 그런 꿈을 꾸고 나서 그 꿈을 꾼 그 침대에 그런 황금이 있다고 보았는데 이제 그 침대에 그 홤금이 없다고 하니 이제 그 황금이 그 침대에서 사라진 것이니 이제 자신은 어떡하는가. 이렇게 임한다는 의미다.
그런 경우 그 사정에 대해 앞과 같은 형태로 그 본 사정을 설명하게 된다는 의미다.
즉, 그런 망상으로 그 침대를 대한다고 해서 본래 없던 황금이 있게 된 적이 본래 없는데 그런데 그 상태에서 그 망상을 그렇게 제거한다고 해서
그렇다고 있었던 황금이 그로 인해 없어진 일이 거기에 있겠는가. 본래부터 그런 황금은 그 침대에 없었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꿈을 침대에서 꾼 이의 방에서 그 침대가 제거되고 다른 가구가 들어올 때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 침대가 그렇게 없어진다고 해서 그로 인해서 자신이 꿈에서 본 황금이 새삼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본래 그 침대에 그렇게 없어질 내용 자체가 본래 없었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이런 사정이 곧 각 주체가 대하는 현실의 본 사정이라고 제시하는데 그러나 꿈의 사정은 그렇게 이해해도 현실이 그렇다는 것을 이 꿈의 비유로 이해하기 힘들면
이제 원칙적인 방안을 다시 잘 붙잡고 시간을 내서 혼자 조용히 실험을 반복해 보아야 한다.
자신이 눈을 감았다가 뜰 때 그 순간에 얻는 내용을 자신이 혼자 잘 확보해 보려고 노력하고
또 그 각 부분에 대해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일으켜서 집 하나를 놓고 이 부분은 기둥 저 부분은 마루 이 부분은 창문 저 부분은 침실 그리고 다 합치면 시가 10 억원의 집
이런 식으로 다양하게 생각한다고 할 때 이제 그런 생각 내용은 눈을 감고도 잘 할 수 있으므로 그런 상태에서 잘 붙잡아 놓고
앞 내용과 뒷 내용을 놓고 이들이 서로 무슨 관계인가를 잘 음미해보는 것이다.
현실에서 이 둘이 아주 무관하다고 하는 이는 없다. 부처님도 그렇게 보는 것은 아니다 관계는 없는 것이 아니고 대단히 밀접한 것이다.
침대에 누어 바다꿈을 꿀 때 침대가 그렇게 자고 꿈을 꾸는데 전혀 관계가 없겠는가. 그렇지는 않은 것이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다고 침대에 누어 꾼 바다나 황금이 침대에 들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지금 현실상황도 마찬가지다.
본 바탕인 실재를 바탕으로 해서 감각현실을 처음에 얻고
또 그렇게 얻는 감각현실을 바탕으로 이렇게 묶고 저렇게 나누어가면서 이런 저런 온갖 생각을 다 일으키는 것은 사실인데 반복해서 주의를 환기시키는 부분은
그런 사정으로 그런 내용을 얻었다고 해서 그런 내용이 그런 영역에 그렇게 있다고 여기면 곤란하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침대에 누어 바다나 황금꿈을 꾸었다고 그 바다나 황금이 침대에 있다고 여기면서 자꾸 침대를 대하는 상황과 그 사정이 마찬가지이므로 곤란하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물론 망상이나 공상은 자유인데 문제는 그런 자세가 그 이후 그가 겪는 모든 생사고통의 근본 원인이 되는 것이므로
이 단계에서 그것을 제거하지 못하면 대단히 심각하게 곤란하다고 반복해 제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영역에서 얻는 다른 내용도 물거품과 같이 실답지 않은 것은 사정이 같은데 그것은 앞과 같은 망상분별을 일으키게 하는 소재는 되지만,
정작 생사고통을 겪게 하는 근본원인 부분은 바로 위 부분이기에 위 부분을 잘 제거해야 한다고 반복해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제시하면 사정은 그렇지만 하고 그러나 하면서 말을 또 이어나가는 부류가 또 있는 것이다.
즉 사정은 그렇다지만, 그러나 현실에서 자신이 컵을 손에 쥐고 바라보고 커피 향을 냄새 맡고 이러다 보면 아무리 그렇다 해도 자신이 대하고 보는 이 컵이 그런 소리도 얻게 한 것이고 그리고 이 컵은 대단히 실다운 것이라고 보게 되고
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거울을 대하고 보는 자신의 모습도 이와 사정이 같다.
이제 그만, 말로는 그럴듯하지만 이치에 맞지 않는 궤변으로 그만 현혹하시오 이렇게 임하게 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그런 내용을 본래 얻을 수 없는데도 어떤 과정을 거쳐서 공중 3 회전에 걸친 망집을 일으켜서 이번 생을 단단히 망집에 묶여 출발했기에 그렇게 현실을 대하게 되었는가 그 자세한 사정을
또 각종 언어로 그런 내용을 시설해서 설명해 나가게 되는 사정이 있게 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여하튼 여기까지 일단 보충 설명을 마치고 추가로 원래부터 부처님 말씀을 잘 이해하고 믿는 입장에는 또 경전에서 내용을 뽑아서 앞과 같은 내용이 본인이
독식 (dog shit) 철학가적인 입장에서 제시하는 내용이 아님을 제시해줄 필요도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 작업은 경전을 검색해 인용해 붙여야 하는 작업이므로 조금 쉬었다가 하기로 한다.
노래에서 돈에 비굴하게 임하면 무서움을 받게 되는 상태에 처하게 된다고 노래에서 메세지를 전하는데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의 망집에 바탕해 현실에 임하면 백약이 효과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증상을 바탕으로 현실에서 쓸데없이 분주하게 임하게 만드는 기본 망집증상을 제거해내는 것이 중생제도 부분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 것이다.
노래에서 제도란 단어가 나오는데 사정이 그런 것이다.
글을 마치려니 보충하려던 내용이 또 생각이 난다.
실재 본 바탕과 감각현실 관념분별 이런 각 영역의 내용을 놓고 꿈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는데
꿈에서 본 황금을 집착하는 입장에서는 그 꿈에서 깨어나고 그 꿈 내용이 사라지면 대단히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
그것은 꿈을 기준으로 그것을 절대시하고 대하면 현실의 일반인도 마찬가지가 된다.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가 그 내용을 모든 사실과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붙잡고 임하니까 그런 것이어서 그런 자세에서는 그런 현상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런데 이런 현상에 대해서 이렇게 제시하게 된다.
꿈을 깨서 꿈에서 본 황금이 사라진다고 해서 꿈을 꾼 침대가 사라지는가. 그렇지 않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현실도 마찬가지다.
앞에서 본 바탕이 되는 실재나 감각현실 느낌 관념분별 이런 여러 내용을 나열해 제시하는데
바다에서 일어나는 물거품이 사라진다고 해서 그 본 바탕이 되는 바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현실에서 눈을 떠서 감각현실을 얻는 상태에서 이 부분은 천만원짜리 난초고 저 부분은 호박이고 이런 식으로 여러 분별을 행하다가 갑자기 멍한 상태가 되어서 그런 분별을 설령 행하지 않게 되었다고 해서
그렇다고 눈을 뜨고 보고 있던 감각현실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리고 그 감각현실도 또 본 바탕인 실재 영역의 내용과의 관계는 마찬가지라는 의미다.
자신이 눈을 떠서 세상 모습을 보았는데 자신이 갑자기 눈을 감아서 그 모습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고 해서 그렇다고 본 바탕이 실재가 어떻게 되는 것이라고 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버스를 운전하는 어떤 이가 갑자기 그렇게 멍하게 있게 되면 곤란한 일이 아니겠는가.
일반적으로는 곤란하다고 보게된다.
그런데 이것도 따지고 보면 그 기준을 계속해서 분별을 행하는 그 영역에서 그렇게 기준을 잡고 대하니까 계속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앞에서 벽돌의 비유와 상황이 같다.
즉 문제라고 보는 부분은 벽돌과 그 벽돌이 깨지고 모래가 된다고 보게 되는 그 감각현실영역에서 그런 문제가 있어서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 각 경우마다 그로 인해서 자신이라고 보는 벽돌이 완전히 깨졌다거나 아니면 다행이 무사하다 이런 식으로 매순간 분별을 행하는 그 분별영역의 내용을 기준으로 해서 그것이 매 경우마다 문제가 된다고 본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런데 각 내용이 본래 그렇지 않다고 제시하는 것은 그런 기준을 떠나서 제대로 하나하나 사정을 잘 관하면 사정이 그렇지 않다고 제시하는 측면인 것이다.
여하튼 자신을 벽돌로 보고 그렇게 벽돌이 되던지 벽돌이 되지 않던지 간에 앞에 제시한 내용을 놓고 혼자 자신의 마음을 놓고 앞으로 잘 연구를 해나가야 한다고 본다.
이것이 그 유명한 화두 Was ist das? What is this? 이것은 과연 무엇인가 화두의 주제인 것이다.
불교계에서는 이뭣꼬 화두라고 약칭되는 화두인 것인데 결국 자신이 가장 집착하여 평소 대하는 자신과 자신의 것을 앞에 놓고 이것이 과연 무언가라고 그 정체를 확인해나가는 연구작업이자 수행인 것이다. 그 가운데 좀 더 심화되면 이런 의문을 던지고 고민하는 자신의 마음의 본 정체는 또 무언가 이런 식으로 자꾸 그 문제를 넓고 길고 깊게 잘 관찰해나가면서 그 답을 얻어내서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와야 하는 것이 기본 목표인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그 상태에서 재주를 피우고 지혜를 발휘하면 그 만틈 더 깊게 자신의 묘혈을 파고 생사현실에서 더 넓고 길고 깊은 생사고통을 받아나가는 상태로 묶여 들어가는 상태가 되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쉬는 가운데 경전에서 관련내용을 찾아 붙이려고 찾는데 문제는 본 논서를 제시하는 무착보살님이 소의 경전이 되는 이 경전의 내용을 몰라서 이 내용을 제시했다고 위와 같은 내용을 제시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런 내용을 대하고 끝까지 전후 좌우 관련 경전이나 논서 내용을 다 살피지 않고 대충 살피고 나서
앞과 같이 그런 취지로 그런 내용을 시설하여 현실에서 각 주체가 그런 형태로 공중 3 회전에 걸쳐 단단하게 망집을 일으킨 상태로 생을 시작하고 마치게 된다는 사정을 이해시키기 위해
이와 같은 내용을 시설해 제시한다는 사정을 일반적으로 잘 이해하지 못하고 적당히 자신이 망집을 바탕으로 이 내용을 대해 이해하고 뗏목으로 사용하라고 시설해 제시하는 내용을 붙들고 또 다시 망집을 일으켜서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현실에 대단히 많다고 보기에 처음에 이 내용을 제시한 사정이 있는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 노래를 듣다보니 그런 증상은 죽을 때까지 바뀌기 힘들다. 이런 절망적인 메세지를 전하는 노래를 또 듣게 된다.
한번 담배를 피워 중독이 된 이는 사실상 죽을 때까지 담배를 피우다 죽음을 맞이하고 한번 술을 마셔 술에 중독이 된 이도 그 사정이 마찬가지고 도박에 중독이 된 이는 도박으로 전 재산을 탕진한 상태에서도 카지노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그 옆에서 복권을 긁으면서 또 임한다는 현실 사정을 보는 것이 현실이다.
대부분 죽을 때까지나 아니면 거의 죽음 직전에 이르러 하고 싶어도 도저히 할 수 없는 상태까지 그 자세를 바꾸지 않고 계속 나아가게 마련인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본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잘 관하고 그런 망집을 제거하고 수행으로 전환해 임해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고 그런 바탕에서 무량겁에 걸쳐 복덕과 지혜자량을 구족하는 상태로 나아갈 것을 제시하지만, 그러나 현실을 놓고 보면 그렇지 못한 것이 거의 대부분임도 또 함께 보는 것이다
사정이 그렇기에 원칙적인 내용은 간단하지만, 그러나 그 원칙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에 옮겨 지옥의 공 수행자가 되어 생사현실에서 3 악도에 묶여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대단히 드물다고 보는 것이다.
또 사정이 그렇기에 수행자는 또 수행자대로 무량한 겁에 걸쳐서 수행을 계속 해나가게 되는 어려운 사정이 있는 것이다.
여하튼 상황의 심각성을 제각각 잘 관하여 가위에 눌린 상태에서 발가락 하나를 제대로 움직이게 되면 그로 인해서 온 몸이 다 가위에서 풀려나게 된다는 사정처럼 수행으로 전환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하나하나 행하여 이런 생사묶임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사정을 잘 이해하고 실천해나갈 필요가 있다.
그래서 알고보면 지옥의 공 수행자가 되는가. 극락에 임한 수행자가 되는가는 물방울 하나의 차이에 있는 것이다.
여하튼 위 논서가 소의 경전으로 하고 있는 경전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뽑아 붙여 놓고 긴 글을 마치기로 한다.
경전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는 논서를 서술해 제시하는 무착보살님이 그 소의 경전이 되는 경전 내용을 읽지도 않고 또 이해하지도 못하고 위와 같이 내용을 제시했다고 이해하는 것이 이치에 맞겠는가. 그러나 일반의 이들 내용을 대하고 이해하는 입장은 또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고 보기에 이 내용을 찾아 붙이는 것이다 .
그런데도 잘못 오해하면 본인이 무착보살님을 상대로 비판을 하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기에 자꾸 설명을 붙이게 되는 것이다.
다음 내용이다.
마땅히 알라.
여섯 세계[6취六趣]의 나고 죽음에서
이런 저런 유정은 이런 저런 유정의 무리에 떨어지니,
난생(卵生)이나 태생(胎生)이나 습생(濕生)이나 화생(化生)으로 태어나
몸의 부분[신분身分]이 생긴다.
그 가운데서
최초의 일체 종자인 심식(心識)이 성숙하고,
차례로 화합해 자라고 넓어져서는
2 가지 집수(執受)에 의지한다.
첫째는 유색(有色)의 모든 근(根)과 그것들이 의지하는 집수요,
둘째는 모습[상相]․이름[명名]․분별(分別)의 말과 희론인 습기(習氣)의 집수이다.
유색계(有色界)에는 2 가지 집수가 구족하지만
무색계(無色界)에는 2 가지 집수가 구족하지 않는다.
광혜여,
이 식을
또한 아타나식(阿陀那識)이라고 부르니,
무슨 까닭인가?
이 식이 몸을 따르고 집착하여 지니기 때문이다.
또한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고 부르니,
무슨 까닭인가?
이 식이 몸을 받아들이고 갈무리하며
편안함과 위태로움을 함께한다는 뜻 때문이다.
또한 심(心)이라 부르니, 무슨 까닭인가?
이 식이 빛깔[색色]․소리[성聲]․냄새[향香]․맛[미味]․감촉[촉觸] 등을
쌓아 모으고 자라게 하기 때문이다.
광혜여,
아타나식을 의지하고 건립하는 까닭에
6 가지 식신(識身)이 구르니,
이른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이다.
..[....이하 줄임...]
폭포의 물과 같은 아타나식을 의지하고 건립한 까닭에,
만일 그때 하나의 안식이 생길 인연이 나타나면
곧 그때 하나의 안식이 구르고,
만일 그때 나아가 다섯 식신이 생길 인연이 나타나면
곧 그때 다섯 식신이 구르는 것이다.
광혜여, 이와 같아서
보살이 비록 법주지(法主智)를 의지하고 건립한 까닭에
심․의․식의 비밀에 공교하다 해도,
그러나 모든 여래는 이에 한하여
그를 일체 심․의․식의 비밀에 공교한 보살이라고 시설하지 않는다.
광혜여,
만일 모든 보살이 안으로 각각 다른 것들에 있어서
K0154V10P0715b02L; 諸菩薩於內各別如實不見阿陁那
여실하게 아타나를 보지 않고,
아타나식을 보지 않고,
아뢰야를 보지 않고,
아뢰야식을 보지 않고,
쌓이고 모임[집적積集]을 보지 않고,
심(心)을 보지 않고,
눈과 빛깔과 안식을 보지 않고,
귀와 소리와 이식을 보지 않고,
코와 냄새와 비식을 보지 않고,
혀와 맛과 설식을 보지 않고,
몸과 감촉과 신식을 보지 않고,
의(意)와 법(法)과 의식(意識)을 보지 않으면
이를 승의에 공교한 보살이라 부르며,
여래는 그를 승의에 공교한 보살이라고 시설한다.
광혜여,
이에 한하여
심․의․식 일체의 비밀에 공교한 보살이라 하고,
여래가 이에 한하여
그를 심․의․식 일체 비밀에 공교한 보살이라고 시설한다.”
그때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아타나식(阿陀那識)
매우 깊고 미세해
일체 종자 폭포의 흐름 같도다.
내가 어리석은 이들에겐 말하지 않나니
그들이 분별하여
아(我)라 할까 두렵구나.
...
이렇게 현양성교론의 소의 경전이 되는 해심밀경에 내용이 제시되고 있다.
그래서 현실에서 각 주체가 그런 망집을 일으킨 상태로 생을 시작하게 된 그 사정을 위와 같이 여러 내용을 시설해서 설명하고 이해시키게 되지만,
그렇게 하면 그런 망집을 일으킨 상태에서 이 내용을 대하는 일부의 경우는 현실에서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고 대하던 그런 내용이 이제 실다운 자신이 아니고
이체 부처님이 제시하는 이런 근본정신이 되는 내용이 곧 실다운 자신이구나 하면서 또 새로운 망집을 일으키고 이를 대하게 되기 쉽고 이러면 곤란하다. 이 사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비록 그런 사정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그런 그런 다양한 마음을 분별해 시설해 설명하지만, 그러나 또 그렇다고 그런 내용이 실답게 있는 내용이라고 다시 망집을 일으켜서 이를 대하면 역시 곤란하다는 사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와 같이 자세하게 이 내용을 설명해가는 논서를 대하는 일반적인 입장에서도 이런 사정을 미리 잘 이해하고 내용을 대해도 대해야 한다는 의미다.
Louis Comfort Tiffany (1848 년 2 월 18 일 -1933 년 1 월 17 일)는 장식 예술 분야에서 일하면서 스테인드 글라스 에서 가장 잘 알려진 미국 예술가이자 디자이너입니다 . 그는 아르 누보 ( Art Nouveau ) 및 미적 움직임 과 가장 관련이있는 미국인 예술가이다 . 그는 록우드 드 포레스트 (Lockwood de Forest) , 캔더스 휠러 (Candace Wheeler ), 새뮤얼 콜먼 (Samuel Colman) 등의 Associated Artists로 알려진 디자이너들의 권위있는 공동 작업자와 제휴했습니다 . 티파니는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과 램프 , 유리 모자이크, 불어 유리, 도자기, 보석, 법랑과 금속 세공을 디자인했습니다. [2]그는 아버지 찰스 루이스 티파니 (Charles Lewis Tiffany)가 설립 한 가족 회사 인 Tiffany & Co. 의 첫 디자인 디렉터였습니다 .[...이하 줄임...] from https://en.wikipedia.org/wiki/Louis_Comfort_Tiffany Title : vase-1900-2 Info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John_Singer_Sargent,_Gondoliers’_Siesta
Artist [show]John Singer Sargent (1856–1925) Blue pencil.svg wikidata:Q155626 s:en:Author:John Singer Sargent q:en:John Singer Sargent Title English: Muddy Alligators wikidata:Q38296302 Date 1917 Medium Watercolor over graphite on paper Dimensions 34.3 × 52.1 cm (13.5 × 20.5 in) Current location [show]Worcester Art Museum Link back to Institution infobox template wikidata:Q847508 Worcester, Massachusetts, USA Accession number 1917.86retrieved from Wikidata Source/Photographer http://jssgallery.org/Paintings/Muddy_Alligators.htm JSS Gallery http://www.philly.com/philly/entertainment/planner/The-5-must-see-paintins-at-the-Art-Museums-.html image Permission & Licensing : Wikipedia ● [pt op tr] fr
여수시 덕충동 1830번지, 마래산(馬來山) 중턱 충민사 서쪽에 위치한 석천사는 이충무공과 연관이 깊은 사찰이다. 정유재란이 끝난 3년 후(1600) 임란을 슬기롭게 승리로 이끄는데 큰 역할을 한 바 있는 옥형 스님과 자운 스님이 충무공의 전선을 함께 타고 전쟁에 종군한 승장으로서 이충무공의 인격과 충절을 잊을 수 없어 충민사 곁에 공의 넋을 추모하기 위한 암자를 건립하였다. 석천사는 충민사 뒷편 바위 아래 샘(石泉) 하나가 있어 붙여진 이름인데, 몇 해 전 법당이 불에 타버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법당과 종각, 요사 등을 새로 짓고 보수했으나 충민사 정화 사업때 법당과 요사의 원래 위치가 바뀌었고 일주문도 없어졌다. 이용안내 쉬는날 연중개방 주차시설 주차 가능 애완동물가능여부 불가 문의및안내 석천사 061-662-1607 관련 홈페이지 석천사 http://www.scsa.or.kr [네이버 지식백과] 석천사(여수)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 [참조링크1]terms.naver.com
종교/불교, 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덕충동 1830[충민사길 52-21] 시대 조선/조선 출처 디지털여수문화대전-석천사 목차 정의건립경위 및 변천활동사항현황 정의 조선 중기 옥형과 자운이 전라남도 여수시 덕충동에 창건한 사찰.
건립경위 및 변천 정확한 창건 연대는 불분명하다. 일부 견해에 의하면 1195년 인근의 흥국사와 함께 보조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자료의 뒷받침이 부족하다. 임진왜란 당시 300여 명의 의승수군 대장역을 맡았던 옥형과 자운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이충무공전서』에서는 “자운이라는 승려가 장군의 진영을 따라다니며 많은 공을 세우기도 하더니, 공이 돌아가신 후 정미 600석으로 남해 노량에서 수륙재를 열고 음식을 성대히 차려 충민사에 제사지냈다”라고 하고, 또한 “옥형이라는 이도 역시 승려로서 공을 위하여 군량을 대며 자못 신임을 얻더니, 때에 이르러 스스로 아무런 보답도 하지 못했다고 생각한 나머지 이곳을 찾아 날마다 쓸고 닦고 하기를 죽을 때까지 하였다”라고 전한다.
『승평지』에서도 “충민사에 옥형이라는 승려의 일화가 있다. 그는 본시 충무공 이순신의 배를 타고 전투를 하던 이로서 언제나 공의 곁을 떠나지 않더니, 공이 전몰한 뒤에는 그 인품과 충절을 잊지 못해 충민사 사당 곁에 작은 정사를 짓고 이곳에서 수직하면서”라고 전한다. 이 기록이 석천사 창건 연대와 관련하여 지금까지 가장 신뢰할 만하다는 게 관련 연구자들의 대체적인 견해이다.
다시 말해, 1598년 11월 충무공 이순신이 관음포에서 전사하여 아산으로 시신이 옮겨진 후, 향교 교리로서 의병으로 참전했던 박대복이 혼자서라도 공에게 제향을 올리고 싶어 평소 충무공 이순신이 자주 오르내리면서 석간수를 마시던 곳에 두어 칸의 사당을 지었고, 이어 옥형이 그 옆에 작은 정사를 지어 충무공 이순신의 영정과 일생을 같이 했다고 한다. 이후 1601년(선조 34) 백사 이항복의 청에 의해 왕명으로 충민사가 건축된 약 3년 사이에 석천사가 창건되었다는 것이다.
석천사의 사찰 이름의 유래로는 『여수읍지』(1902년) 「사찰조」에서 “충민사 뒤편 큰 바위 아래 샘이 하나 있는데, 이름을 석천(石泉)이라 하여 ‘석천사’라 했다”라고 한다. 한편 1980년대에 법당이 소실되어 정면 3칸, 측면 2칸의 법당을 새로 지었다. 그 외에도 종각과 요사 등을 짓고 보수하였다. 하지만 1978년 박정희 정권에 의해 충민사 정화 사업의 일환으로 일주문이 철거되고 건물의 위치도 바뀌는 등 사찰의 본래 모습이 많이 훼손되었다.
활동사항 석천사의 주요 활동은 크게 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포교이고, 다른 하나는 복지 사업이다. 다종교 시대를 맞이하여, 자기 종교를 주변에 알리거나 퍼뜨리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되었다. 석천사에서는 이러한 자각에 입각하여 활발한 포교 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법회가 이루어지고 있다. 사찰에서 이루어지는 법회는 대개 초하루, 보름 및 각종 재일에 국한되게 마련이다. 내용 또한 전통 법식의 반복적 답습 내지 기도 의식이 주종을 이룬다. 불교의 주요 가르침을 알기 쉽게 풀어 전하는 법문 위주의 법회를 여는 사찰도 있지만 일주일에 한두 차례인 곳이 대부분이다.
석천사에서는 월요일 오전에 합창단 정기 법회을 연다. 신도들끼리 함께 모여 「찬불가」를 부른다. 저녁에는 티베트 불교를 배우는 『입보리행론(入菩提行論)』 법회가 있다. 화요일은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법회 날이다. 수요일에는 『금강경』 법회, 목요일에는 처음 불교를 배우는 이들을 위한 기초 교리 법회가 있고, 금요일에는 정토회 법회가 마련되어 있다. 아울러 매월 음력 초하루 및 동지, 입춘, 초파일, 백중 등의 세사 행사도 성대히 열리고 있다.
한편 매주 토요일에는 특별한 행사가 있다. 석천사 어린이 불교학교가 그것이다. 여수 지역 어린이들에게 불심을 심어주기 위해 개설된 이 법회는 지역 불교의 발전된 미래상을 가늠케 해준다. 유치부 취학반 및 초등학교 6학년까지의 어린이가 적을 두고 있으며, 인원은 현재 130여 명 정도이다. 다도, 명상, 기초 교리, 한문 등의 과목을 배우고 있다.
또한 복지 사업에도 많은 정성을 기울인다. 석천사에서는 지난 10여 년 동안 각급 사회 복지 시설을 수탁하여 운영에 진력을 다했다. 이는 불교에 대한 한국 사회의 요구에 능동적으로 부응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인구의 노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여수 지역의 노인 복지 분야에서 석천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괄목할 만하다. 문수종합사회복지관, 동여수노인복지관, 여수시노인복지관, 노인요양시설 하얀연꽃, 여수지역자활센터, 여수시니어클럽, 옹달샘 어린이집, 연꽃 어린이집, 문수지역아동센터 등 지역의 사회 복지 시설을 아우르고 있다.
석천사의 복지 사업은 1994년 문수종합사회복지관을 수탁, 운영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현 석천사 주지이며 보문복지회 이사장인 승려 진옥이 초대 관장으로 취임하면서 출범한 문수종합사회복지관은 이후 어린이집, 경로당, 목욕탕, 건강 관리실, 재가복지봉사센터, 가정봉사원파견센터, 자활 후견 기관 등을 잇달아 개설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황 석천사의 신도 규모는 여수 지역의 불교 사찰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평가된다. 불교계의 대표적 연례 행사인 ‘부처님 오신 날’에 모이는 신도 수만 보아도 알 수 있다. 2008년 2월 현재 석천사 재적 신도는 세대 수 2, 000에 도합 3, 000명에 달한다. 석천사 전체 신도들의 조직은 석천사 신도회이다.
신도회는 다시 보문공덕회로 통합된다. 보문공덕회는 ‘복지를 통한 중생 구제’라는 신행 지표에 따라 여수 지역 사찰 및 신행 단체들이 조직한 협의 기구이다. 주요 활동으로 지역 내 사찰들이 수탁, 운영하는 각급 사회 복지 시설 협의체인 보문복지회를 후원하고 있다. 산하 단체 수는 20여 개이고. 석천사 신도회를 비롯하여 보문복지회의 각 시설, 지역 내 관련 사찰, 여수 산단 내 신행 단체 등이 망라되어 있다. 대웅전, 의승당, 요사, 종각 등 모두 5동의 당우가 있다.
Salvador Domingo Felipe Jacinto Dalí i Domènech, Marquis of Dalí de Púbol (11 May 1904 – 23 January 1989), known professionally as Salvador Dal 스페인 (카탈로니아) 초현실주의 화가로서 가장 잘 알려진 그의 작품 <기억의 지속성 The Persistence of Memory >은 1931 년 8 월에 완성되었습니다. 그의 괴팍한 태도와 주목을 끄는 행동은 때로 그의 작품보다 관심을 끌었으며, 자신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의 경악과 비평가들의 짜증을 불러 일으켰다. [...이하 줄임...] from https://en.wikipedia.org/wiki/Salvador_Dalí Title : the-voyeur Info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Red_and_gold_flower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Red_and_gold_flower.jpg Description English: Image title: Red and gold flower Image from Public domain images website, http://www.public-domain-image.com/full-image/flora-plants-public-domain-images-pictures/flowers-public-domain-images-pictures/red-and-gold-flower.jpg.html Date Not given Transferred by Fæ on 2013-03-01 Source http://www.public-domain-image.com/public-domain-images-pictures-free-stock-photos/flora-plants-public-domain-images-pictures/flowers-public-domain-images-pictures/red-and-gold-flower.jpg Author Leon Brooks Permission (Reusing this file) This file is in public domain, not copyrighted, no rights reserved, free for any use. You can use this picture for any use including commercial purposes without the prior written permission and without fee or obligation. Licensing[edit] Public domain This work has been released into the public domain ж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6/6c/Red_and_gold_flower.jpg ▩ mus3fl--Red_and_gold_flower.jpg ● [pt op tr] fr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the-thames-near-walton-bridges
The Thames near Walton Bridges J.M.W. Turner Date: c.1807 Style: Romanticism Genre: cityscape Dimensions: 37 x 73.4 cm Location: Tate Modern, London, UK Tags: rivers-and-waterfalls, forests-and-trees File Source: www.the-athenaeum.org Permission & Licensing : Wikipart ● [pt op tr] fr
용인 용덕사 극락보전 나한상 이미지 크게보기 유형 유적 시대 고대/삼국 성격 절, 사찰 건립시기·연도 9세기(신라 문성왕 연간) 소재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묵리 산57 목차 정의개설역사적 변천내용 정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묵리성륜산(聖輪山)에 있는 절.
개설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역사적 변천 신라 문성왕 때 염거선사(廉居禪師)가 창건하였고, 신라 말기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3층석탑 1기와 보살상, 철인(鐵人) 3위를 조성하면서 중창하였다. 그 뒤 1736∼1795년 사이에 석담(石潭)이 중수하였으며, 1825년(순조 25)에는 정사(淨舍)가, 1884년(고종 26)에는 성월(聖月)이 중수하였다.
내용 용덕사는 1990년에 본래의 사찰이 자리하였던 산 아래에 대웅전을 지으면서 위채와 아래채로 전각이 나누어져 있다. 대중의 대부분은 아래채에서 기거하고 있으며, 위채에는 극락전ㆍ산신각ㆍ굴암 등이 있다. 정면 3칸, 측면 1. 5칸의 대웅전 내에는 석가여래삼존불이 봉안되어 있고 우측에는 57위의 나한상이 있는데, 모두가 화강암 석재로서 백분을 입혔으며, 고려 중기 이전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암굴 입구에는 도선국사가 조성하였다는 보살좌상 1구가 있다. 머리와 오른손이 결손되었지만 반가사유상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정교한 작품으로서, 가슴에 드리워진 영락(瓔珞)이 생동감 넘치는 귀중한 작품이다. 이 암굴에는 1, 000년이 다 되어 여의주를 얻은 용이 아버지의 병을 고치고자 치성을 드렸던 처녀에게 여의주를 주어 아버지의 병을 고치게 하였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연유로 용덕사라 하였다는 유래가 있다.
이밖에도 도선국사가 조성하였다는 파손된 3층석탑 1기와 철인 3위 가운데 2위가 전해지고 있으며, 지금의 절터보다 아래쪽에는 옛 절터의 석축이 남아 있다. 3층석탑은 절에서 약 100m 정도 아래쪽에 있는데, 병란을 겪으면서 도굴되고 파괴되었던 것을 뒤에 조합해 놓은 것이다.
또, 현재 석굴에는 높이가 각 48㎝와 44㎝인 철인 2위가 있다. 이는 도선국사가 이곳의 산세와 자리에서 솟아나는 기운으로 말미암아 터가 드세므로 이를 누르기 위하여 조성한 것이라고 하는데, 예로부터 지기(地氣)를 누를 수 있는 것은 쇠[鐵]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철로써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 석굴에 안치함으로써 음기를 막도록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철인상의 남녀구분은 확실하지는 않으나 둥근 얼굴모형에 이목구비를 표현하였고, 양손은 모두 형식적으로 배열하였으며 짙은 미소를 띠고 있다.
▶▶▶ [관련링크5]www.google.nl 용덕사 용덕사 이미지 크게보기 용덕사 분류 인문(문화/예술/역사) > 역사관광지 > 사찰 위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묵리 산 57 출처원문보기 대한민국구석구석 원문보기 목차 개요 이용안내 주차시설 애완동물가능여부 문의및안내 상세정보 화장실 외국어 안내서비스 개요 용덕사는 경기도 용인시 성륜산 서쪽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성륜산은 용인 남쪽, 안성과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옛날에는 양지현(陽智縣)에 소속되어 있으며, 옛 양지현 소재지의 주산이었다고 한다. 성륜산은 동쪽으로 문수봉(해발404. 2m), 남쪽으로 시궁산(514. 9m)과 쌍령산(해발502m), 북쪽으로 형제봉(해발459m) 등 비교적 높은 산들이 이어지고 있다.
서쪽으로는 넓지는 않지만 남북으로 흐르는 진위천을 따라 들이 펼쳐져 있다. 동쪽과 남쪽 및 북쪽이 산으로 연결되고 서쪽이 열려 있는 지형이다. 또 산의 서쪽 기슭에는 용덕저수지가 있다. 용덕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다.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 묵리 산57번지 성륜산(聖輪山) 서쪽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절 뒤편 산언덕으로 오른 곳에 있는 극락전 뒤 바위에 암굴이 있어 일명 ‘굴암절’이라고도 한다. 절이 위치한 성륜산은 용인의 남쪽, 안성과의 경계에 위치한다. 주변에 높은 산들이 연달아 이어지고 있는 높고 깊은 산이다. 절은 이 산의 중턱에 위치하여 맑고 깨끗한 공기와 탁 트인 시원한 풍광, 그리고 맑은 약수를 자랑으로 삼고 있다. 절 안 곳곳에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석축과 유물들이 있어 유서깊은 사찰임을 보여준다.
이에 걸맞게 절에 전해져 오는 기록에는 용덕사가 신라 문성왕 때 염거(廉居)화상에 의해 창건되었고, 신라 말에 도선국사에 의해 중창된 것으로 전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기록에는 전하지 않고 있으나 절에 전하는 유물들로 미루어 보아 고려시대에는 상당히 번성했던 사찰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고 일제강점기에는 절 아래 이동면 일대의 땅 대부분이 사찰에 속해 있었을 정도의 사세를 자랑했다.
근래에는 절 뒤편의‘용굴’이라 불리는 암굴과 극락전, 삼성각 및 요사 정도가 있던 작은 사찰로 위축되었던 것을 1998년에 주지로 부임한 성효(性曉) 스님의 원력으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 절에는 대웅보전을 비롯하여 법당, 미륵전, 범종각, 극락전 등의 전각과 요사 여러 채를 갖추고 있다.
그밖에 도선국사가 조성하였다는 삼층석탑, 나한상, 보살상, 철인 2기가 전하고 있으며, 마을 아래 저수지에 있었던 석조여래입상(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11호) 등의 유물이 남아 있다. 현재 절에는 주지 스님인 성효(性曉) 스님을 비롯하여 모두 세 분의 스님이 거주하고 계신다. 현 주지스님의 말에 의하면 지장전과 시민선방, 국제선원 등을 지을 예정에 있다고 한다. 법회로는 초하루와 지장재일 및 나한재일 법회를 거행하고 있다.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Paul_Cézanne_139
https://lh4.googleusercontent.com/-oi7jSMDVoKs/WEF-wfvzzHI/AAAAAAAAZKk/zs_wCRkUB4kP22wHTV0DHO3mrZNVu1vqgCL0B/w1198-h908-no/2016_1202_174723_nikon_ct26.jpg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Paul_Cézanne_139.jpg Artist Paul Cézanne (1839–1906) Link back to Creator infobox template wikidata:Q35548 s:fr:Auteur:Paul Cézanne Title Deutsch: Porträt eines alten Mannes Date circa 1865-1868 Medium oil on canvas Dimensions 51 × 48 cm (20.1 × 18.9 in) Current location Deutsch: Musée d'Orsay Paris Source/Photographer The Yorck Project: 10.000 Meisterwerke der Malerei. DVD-ROM, 2002. ISBN 3936122202. Distributed by DIRECTMEDIA Publishing GmbH. Permission (Reusing this file) [1] Licensing[edit] Public domain This work is in the public domain ● [pt op tr] fr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Quiringh_van_Brekelenkam_-_Tailor's_Workshop
https://en.wikipedia.org/wiki/File:Quiringh_van_Brekelenkam_-_Tailor's_Workshop.jpg Artist [show]Quiringh Gerritsz. van Brekelenkam (fl. 1648–1669) Link back to Creator infobox template wikidata:Q2123501 Title The Tailor's Workshop. wikidata:Q17341851 Date 1661 Medium oil on canvas Dimensions Height: 66 cm (26 in). Width: 53 cm (20.9 in). Current location [show]Rijksmuseum Amsterdam Link back to Institution infobox template wikidata:Q190804 not on view Accession number SK-C-112 Object history by 1854: Adriaan van der Hoop (1778-1854), Amsterdam 1854: bequeathed to the city of Amsterdam by Adriaan van der Hoop, Amsterdam 30 June 1885: lent to the Rijksmuseum Amsterdam, Amsterdam, by the city of Amsterdam Inscriptions Monogram and date bottom left: Q.B. 1661 - On the back of a chair References Rijksmuseum Amsterdam online catalogue, as 1661, inv. SK-C-121. RKDimages, Art-work number 39895, as 1635-1679, inv. C 121. Source/Photographer Art Renewal Centre : Home : Info : Info Licensing[edit] This is a faithful photographic reproduction of a two-dimensional, public domain work of art. The work of art itself is in the public domain for the following reason: Public domain This work is in the public domain ж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7/75/Quiringh_van_Brekelenkam_-_Tailor's_Workshop.jpg ▩ mus3fl--Quiringh_van_Brekelenkam_-_Tailor's_Workshop.jpg ● [pt op tr] fr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Yakushiji_Nara05s3s4200
English: Yakushi-ji's West Pagoda in Nara, Nara prefecture, Japan. Yakushi-ji was registered as part of the UNESCO World Heritage Site "Historic Monuments of Ancient Nara".
日本語: 薬師寺 西塔, 奈良県奈良市。薬師寺はユネスコ世界遺産「古都奈良の文化財」の一部。
Camera: Sony NEX-5
Lens: Sony SEL1855
Date 25 September 2010
Source Own work
Author 663high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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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using this file)
GFDL+creative commons2.5
Camera location 34° 40′ 06.08″ N, 135° 47′ 03.52″ E Kartographer map based on OpenStreetMap. View this and other nearby images on: OpenStreetMap - Google Earth Permission & Licensing : Wikipedia ● [pt op tr] fr
♥Sabhal Mòr Ostaig university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Site 방문일자 불기2562-01-26_2003
Sabhal Mòr Ostaig Isle of Skye, Sleat IV44 8RQ 영국 smo.uhi.ac.uk +44 1471 888000 ▶▶▶ [참조링크2]www.google.nl
Sabhal+Mòr+Ostaig,+Sleat+on+Skye,+and+Islay Google 지도 검색 길찾기 57°05'13.3"N 5°52'18.7"W 57.087016, -5.871846 Talla Mhòr Isle of Skye IV44 8RQ 영국 57.087197, -5.871857 ▶▶▶ [참조링크1]www.google.nl Isle of Skye, Sleat ▶▶▶ [위성_참조링크4]www.google.nl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Paul_Cézanne_136
https://lh5.googleusercontent.com/-H043AZQYypk/VgeV2Wd69RI/AAAAAAAAKY0/uATXb_lIReA/w1020-h1346-no/2015_0919_133353_nikon.jpg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Paul_Cézanne_136.jpg Artist Paul Cézanne (1839–1906) Link back to Creator infobox template wikidata:Q35548 s:fr:Auteur:Paul Cézanne Title Deutsch: Porträt des Vallier (Der Matrose) Date 1902-1906 Medium oil on canvas Dimensions 107.4 × 74.5 cm (42.3 × 29.3 in) Current location National Gallery of Art Link back to Institution infobox template wikidata:Q214867 Notes Landscape art Source/Photographer The Yorck Project: 10.000 Meisterwerke der Malerei. DVD-ROM, 2002. ISBN 3936122202. Distributed by DIRECTMEDIA Publishing GmbH. Permission (Reusing this file) [1] Licensing[edit] Public domain This work is in the public domain i ● [pt op tr] fr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Flowers_-_Uncategorised_Garden_plants_278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Flowers_-_Uncategorised_Garden_plants_278.JPG Description English: Flowers - Uncategorised Garden plants Date 30 December 2012, 16:54:57 Source Own work Author Vinayaraj Camera location 11° 59′ 05.96″ N, 75° 40′ 33.74″ E View this and other nearby images on: OpenStreetMap - Google Earth 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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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childe-harold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이다. 절의 이름은 대웅전 동쪽에 토끼 모양의 바위가 있고, 남쪽에는 달 모양의 월봉(月峰)이 있어 마치 토끼가 달을 바라보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신라 경순왕(재위 927∼935)의 태자가 이곳에 은거하였다고 한다.
고려시대인 1066년(문종 20) 혜거국사(慧拒國師)가 중창한 이후의 연혁은 확실하지 않으나, 여러 차례의 전란으로 황폐해졌다가 조선시대인 1691년(숙종 17) 동계(東溪) 설명(卨明)이 중건했다. 1779년(정조 3)에 영월(暎月)이 선월당(先月堂)을 세웠고, 1800년에는 선월당을 영산전(靈山殿)터로 이전했으며, 1818년(순조 18)에는 칠성각을 신축했고, 1827년에는 절 전체를 중수했다. 1880년(고종 17) 완송(玩松)이 중건한 뒤 1882년 완송이 영산전을 다시 세웠으며, 1884년 인파(仁坡)가 독성각(獨聖閣)을 건립했다. 1885년 완송이 약사전(藥師殿)을 건립했고, 1901년 인파가 큰방을 보수했다. 1906년 회광(晦光) 사선(師璿)이 선실(禪室)과 설법루(說法樓)를 중수했고, 1941년 김응운(金應運)이 약사전을 중건했다. 1969년 주지 춘성(春城)이 퇴락한 선실을 철거하고 2층의 석조 대웅전을 지었으며, 1972년에는 주지 도관(道觀)이 본래 있던 염불당과 낙가암(洛迦庵)을 헐고 현대식 건물의 낙가암을 새로 지었다. 1986년부터는 주지 능엄(楞嚴)이 대웅전을 헐고 선방, 관음전,영산전,요사채를 신축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석조전(石造殿)을 비롯하여 영산전·칠성각·낙가암·선원· 범종각·요사채·범종루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망월사혜거국사부도(경기도 유형문화재 122)와 천봉 태흘(泰屹:1710∼1793)의 부도(경기도 문화재자료 66), 1793년에 세운 태흘의 천봉탑(天峰塔)과 1796년 수관거사(水觀居士)가 명(銘)한 망월사천봉선사탑비(경기문화재자료 67)가 있다.
이밖에도 부도 1기와 탑다라니판(塔陀羅尼板) 1매, 위안스카이[袁世凱]가 1891년 이 절을 유람하고 쓴 망월사 현판, 영산전 전면에 걸려 있는 주련(柱聯) 4매 등이 있다. 이 사찰에 관한 옛 기록에는 천봉선사탑비문과 신수망월사기선실설법루기가 있다.
망월사에서 30km 떨어진 곳에 광법암(廣法庵)이라는 부속암자가 있는데 원래 영산전 앞에 있던 것을 1965년 지금의 자리로 옮긴 것이다. 망월사는 명승들을 많이 배출하여 경기 지방의 이름 있는 선(禪) 사찰로 유명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망월사 [望月寺] (두산백과)
Ernst Ludwig Kirchner (6 May 1880 – 15 June 1938) 독일 표현주의 화가 이자 판화 인 이었으며 Die Brücke 또는 20 세기 예술 의 표현주의 의 기초가되는 핵심 그룹 인 The Bridge 의 창시자 중 한 명입니다 . 그는 제 1 차 세계 대전 에서 군 복무에 자원 했지만 곧 붕괴를 당하고 퇴역했습니다. 1933 년, 그의 작품은 나치에 의해 " 퇴보 " 라는 브랜드가 붙여졌고 , 1937 년에는 600 점이 넘는 그의 작품이 팔리거나 파괴되었습니다. 1938 년, 그는 총상에 의해 자살 했습니다 [...이하 줄임...] from https://en.wikipedia.org/wiki/Ernst_Ludwig_Kirchner Title : capelli-rossi-red-hair 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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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ovanni Battista (also Giambattista) Piranesi ( 4 October 1720 – 9 November 1778) 이탈리아 예술가로 피라네시 (Piranesi)는 베니스 공화국의 일부인 트레비조 (Treviso ) 근처의 모글리아노 베네토 (Mogliano Veneto )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형제 Andrea는 그를 라틴어 와 고대 문명에 소개했으며 나중에 삼촌 마테오 루체시 (Matteo Lucchesi)의 견습생이 되어, 역사적인 건축물을 설계하고 복원하는 Magistrato delle Acque 의 수석 건축가였습니다 .[...이하 줄임...] from https://en.wikipedia.org/wiki/Giovanni_Battista_Piranesi Title : view-of-the-piazza-navona-on-the-ruins-of-the-circus-agonale 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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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위치 효고현 고베시 스마 구 須磨寺 마치 4-6-8 위치 북위 34도 38 분 59 초 동경 135도 6 분 42.5 초 좌표: 북위 34도 38 분 59 초 동경 135도 6 분 42.5 초 山? 우에노 야마 교단 진언종須磨寺파 寺格 대본 산 본존 관세음 보살 창건 년 인화 2 년 ( 886 년 ) 개기 聞鏡, 고코 천황 (임금의 기원) 정식 이름 우에노 야마 福祥寺 찰소 등 진언종 열 여덟 본산 2 번 새로운西? 서른 세 개소 제 24 번 셋츠 국가 서른 세 개소 제 7 번 셋쓰 국 여든 여덟 곳 제 88 번 후쿠하라 서국 관음 영지 제 7 번 고베 칠복신 ( 福禄寿尊 ) 고베 육지 고객 번호 고베 열세 프랑스 영지 11 번 신불 영지 순례의 길 제 72 번 문화재 목조 십일면 관음 입상, 견본의色普賢十나찰 여자 동상, 본당 궁전及불단 (중요 문화재) 부 동명왕 입상, 돌 십 삼중 탑,当山역대 오래된 기록 2 권 (효고현 문화재) 지도 須磨寺 위치 (고베시) 須磨寺 법인 번호 1140005000798 템플릿을 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