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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2-08-22_법원주림_036 본문

과거조각글/불기2562(2018)

불기2562-08-22_법원주림_036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18. 8. 22. 13:00



®



법원주림
K1406  
T2122

법원주림 제 36 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법원주림_K1406_T2122 핵심요약



♣1406-036♧

♧법원주림 제 36 권


법원주림 제 36 권 

서명사 사문 석도세 지음 

32. 현번편(懸幡篇) [여기에 2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인증부(引證部) 

(1) 술의부(述意部) 


>>>


■■

◆vvsc3687

◈Lab value 불기2562/08/22/수/21:23





○ [pt op tr]  mus0fl--Alain Souchon - Le Mystère.lrc
♥ 잡담 ♥반복하는엉뚱함의실다움


세상은 엉뚱하다. 
여기서 엉뚱하다는 것은 
일반인이 엉뚱하다고 여기는 그런 일이 아니고 
일반인들이 일반적으로 대하는 세상현실이 모두 그와 같이
엉뚱하다고 제시하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들에 나무가 있어 나무를 두드리니 자동차가 하나씩 나온다. 
이러면 얼마나 엉뚱한가. 
나무에는 자동차가 없는데
그런데도 왜 나무를 두드리면 그런 자동차가 나오는가. 
이는 이들 내용이 엉뚱한 관계임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무를 두드리면 그런 자동차가 하나씩 나오고 
그 나무를 두드리는 일을 멈추면 자동차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더 이상하다. 

그런데 이런 내용은 지금 본인이 엉뚱한 내용을
소개하기 위해 그냥 지어낸 내용이어서
세상에 비록 이런 경우가 별로 없는데 

만일 이런 엉뚱한 내용도 
오늘부터 그 나무에서 반복해 그런 관계로 일어나게 되면 
사람들은 이제 거기에 길들여지게 되고 
그 나무를 두드리면 으레 그런 자동차가 나오는 법이라고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 말하고 있는 그런 엉뚱한 내용과 
그 각각의 관계가 
현실에서 일반인들이 대부분 
대하고 있는 현실 내용이다. 

예를 들어 
원래 각 생명은 그렇게 생사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는데 
각 생명은 여기서 태어나 저기서 죽는 이상한 일을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종이에 불을 붙이면 매번 
종이에서는 보이지 않던 연기와 재가 나타난다. 
이처럼 이상하고 대단히 엉뚱한 일이
현실에서 대단히 많이 반복해 일어나고 있다. 

마찬가지로 손을 마주치면 
손에서는 보이지도 않던 소리가 매번 나타난다. 

일일히 나열하면 끝이 없는데 
사람이 걸어다니는 것도 이상하고 
날씨가 덥거나 춥거나 관계없이 몸 체온이 비슷하고 
몸이 썩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그런 가운데 벌이 꽃가루를 따 꿀을 만들어 내는 것도 이상하고 
상어가 바다 속에서 살아가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어떻게 보면 이런 각 내용들이 비록 엉뚱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럴 수도 있다고 인정한다면 

벌도 상어처럼 바다 속을 헤엄치고 다닐 수 있어야 하는데
바다 속을 헤엄치고 다니지는 못한다.

반대로 상어는 날라다니며 꽃가루를 따 꿀을 만들 수 있어야 하는데
정작 날라다니며 꽃가루를 따 꿀을 만드는 중요한 일은 못한다. 

그러니 생각해보면 
벌이 날라다니며 꿀을 만들고 
상어가 바다에서 헤엄치고 돌아다니는 일은 
얼마나 이상하고 엉뚱한가. 

이번 조각글에서 살피는 『법원주림』도
이와 비슷한 사정을 여러가지 전하고 있다. 
이는 일반적인 입장에서 볼 때도 엉뚱하고 기이한 일이라고 여기는 
내용들을 기록으로 남겨 놓은 것이다. 

즉, 원래 그런 일은 평소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일들인데
그러나 그런 일이 어느 시기 어느 장소에 일어나서 이상하다고 하여 
이것을 기록으로 전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살피는 것은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정상적인 일들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내용을 놓고
이것을 당연하고 정상적인 일이라고 여기는 것이 문제이고 
사실은 이들이 하나같이 엉뚱한 일들이라고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현실에서 일반인들이 대하고 생각하는 그 일체는 
모두 망상분별에 의한 현상일 뿐 아니라,
바로 이런 상태에서 생사고통을 겪기에 이것이 문제임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이전 조각글에서도 살폈지만, 
비록 현실 일체가 알고보면 엉뚱하고 실답지 않은 것이지만,
그러나 이런 내용을 놓고 
어떤 주체가 아무런 고통을 겪지 않는다면 무슨 문제인가. 

그런데 이런 엉뚱한 내용 가운데 
그로 인해 자신이 고통을 받는다면 
이것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다. 
그것이 엉뚱한 것도 문제인데 
그런 일로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되니 
더 문제다. 

그러니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이것이 수행자가 수행을 해서 
이들 정체를 잘 관하고 
이런 생사고통에서 벗어나는 수행을 하는 사정이다. 







mus0fl--Indochine - J'ai Demandé À La Lune.lrc


현실 일체가 엉뚱하다고 하는 것을 앞에서 제시했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을 나열해보자. 

현실에서 어떤 이가 눈을 뜨면 세상과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것이 하필 왜 그런가. 
즉, 원래 그렇게 보여야 할 특별한 사정이 없는데 
그렇게 보이니 얼마나 이상하고 엉뚱한가. 
또 눈을 감으면 그렇게 보이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이 정상이었다면 이제 보이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나머지 감각도 다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런 감각을 얻고 나서 
일정 부분이 꽃이다 영희다 철수다. 그리고 자신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이것이 본래 없다가 있게 되고 그러다가 다시 없게 되어 사라지는 것이어서
그처럼 생멸을 하고
또 이와 같은 것이 저기에 있다가 여기로 오고 간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이것도 엉뚱한 일이다. 

알고보면 자신이 얻은 감각현실에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는데 
그런 내용을 얻고 나면
그런 부분이 각기 그런 내용으로 그렇게 있는 것처럼 여겨지게 되니 이상한 일이다. 

늘 이상하고 엉뚱한 이런 일을 경험하는 이는 
자신이 매 순간 대하는 이런 내용이 엉뚱한 내용에서
엉뚱한 내용을 얻으며 임하고 있다는 사정을 잘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감관을 의존해 살아가는 다른 생명체를 표준으로 놓고 
생각해보거나, 
감각기관은 반응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정작 식물인간 상태로 어떤 분별을 못하는 입장을 놓고 
자신의 상태와 비교해보면
자신이 얼마나 이상하고 엉뚱한 상태에 있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각 생명이 생노병사과정을 겪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알고보면 매 순간 여기저기에서 
없던 아이가 나타나고 
그러다가 어린아이로 변화하고 
또 어린아이가 사라지고 
청년이 사라지고 
노인이 사라지고 
멀쩡해보이던 이들이 이런 질병 저런 사고를 겪으면서 사라지고 있는데 
대단히 이상하고 엉뚱한 일이 아닌가. 

그리고 이제 세계나 자연의 모습을 대하면 더 이상하다. 
요즘도 가끔 라이터로 불을 만들어 내는 기적을 일으켜보고는 하는데 
생각해보면 종이에 불을 붙이면 연기가 나는 것처럼 
대단히 신비하고 이상하고 엉뚱하기까지 한 일이다. 
결국 현실 각 단면의 내용과 변화과정 전체가 다 엉뚱하고 이상하다. 

그래서 왜 그런가라고 이유를 살피다보면 
그 본 정체가 과연 무언가. 그리고
왜 없던 것이 새로 있게 되는가. 
왜 있던 것이 어떤 것은 없어지지 않고 계속 머무르는가. 
왜 있던 것이 계속 있지 않고 없어지는가. 
이런 식의 질문을 현실 일체에 대해 제기하게 된다. 

그런데 이들은 단순히 지적 호기심을 갖고 의문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지만, 
이 가운데 가장 심각하고 어려운 문제는 
자신이 평소 대단히 집착을 갖고 대하는 그런 것들의 생멸이 문제다. 
예를 들어 자신이나 자신이 사랑하는 자신의 가족이나 재산 등등을 놓고 
제기하는 위 질문은 대단히 심각한 질문이다. 
그것은 그 내용이 자신의 좋고 나쁨에 대단히 밀접하기에
그 각 내용이 자신에게 고통과 공포 걱정 불안 등을 주는 정도가 
대단히 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각 내용이 엉뚱하고 
그 각 내용의 관계가 또 엉뚱한 것도 문제지만, 
이런 엉뚱한 내용이 자신에게 극심한 고통을 장구하게 반복해 줄 때는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가 심각한 문제가 된다. 

물론 경전에서 이에 대한 진단과 
그 원인과 그 해결방안은 결론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그런 것과 그 생멸이나 생사고통은 본래 얻을 수 없는 것인데 
매 순간 그런 것이 있다고 여기면서 대하는 것이 바로 망상분별증이고
그것이 바로 그런 문제의 근본원인이므로
그로 인해 심각한 고통을 받을 때는 
근본적으로 그 증세부터 치료해야 한다. 
이것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망상분별과 집착에 바탕해 무엇을 행하면, 
그로 인해 상태가 더 악화되니, [ 혹-업-고 ]
그로 인해 대단히 엉뚱하면서도 극심한 고통을 받는 상태로 진입해 들어가지 않으려면 
평소 그런 자세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위해나가는 자세를 중지하고 
주로 그와 반대되는 방향이라고 할 수 있는 수행방안을 택해서 임해야 된다고 
그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이 각 내용이 엉뚱하게 관계가 되는 생사현실에서
그나마 복덕과 수명과 지혜자량을 구족해낼 수 있는 방안이다. 

그런데 사정이 왜 그런가. 그 자세한 사정을 이어 살피기로 한다. 

그런데 요즘 글 입력이 힘들어지고 
모니터는 붙이는 것마다 상태가 안 좋아서 
시스템을 일단 조금 살펴보고 이어나가기로 한다. 
이 현상도 생각해보면 상당히 엉뚱한데 
그러나 사람을 얼마나 피곤하게 만드는가. 
대단히 피곤하다. 

이전 조각글에서 이 상황을 설명한 적이 있다. 

게임 안에서 키보드를 누르면 이상한 화면이 나타나는데 
대단히 이상하고 엉뚱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게임에서는 그렇고 
그런 내용이 대단히 반복하고 
또 그런 내용은 자신만 그런 것이 아니고 
그 게임을 하는 영희나 철수 등에게  모두 그런 것이어서
그 게임을 하는 입장에서는 대단히 실답게 느껴진다. 

물론 이런 내용이 실답지는 않다고 보는데 
그렇다고 꿈도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이 그 게임에서 
초점을 맞추는 어떤 부분이 
자꾸 부서지고 파괴되어서 너무 속이 상하다. 
이것이 한두번도 아니고 할 때마다 그런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증세를 겪는 이들이 또 대단히 많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경우 가장 근본적으로는
그냥 그것이 엉뚱한 것임을 알고 
일단 그에 집착을 무시하고 게임에서 진 빚을 모두 다 청산하고 나서 
밖으로 나오라고 하게 된다. 

그러면 이렇게 물을 것이다. 
게임 안에 있는 저 대단히 소중한 캐릭터나 아이템들은 다 어떻게 하는가. 

지금 그런 캐릭터나 아이템이 하나같이 다 엉뚱하고 실답지 않은 내용이어서 
집착을 갖고 대할 내용이 아니라고 제시하고
그에 집착을 갖지 말고 그냥 벗어나오라고 한 것인데 
오히려 그것을 기준으로 붙잡고 계속 고집해 임한다면 
상황이 어렵다. 

그러나 정말 그것을 계속 기준으로 붙잡고 임하려고 한다면 
지금까지 게임에 임하던 방식을 일단 떠나야 한다고 제시하고 
게임 치트키를 통해서라도 새로운 방안으로 임해야 함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게임상황의 비유처럼 
현실에서 겪는 생사고통에 대해 제시하는 방안이 곧 수행방안이다. 

알고보면 게임 안에서 그렇게 어려운 상태가 되게끔 하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화면만 피상적으로 대하면서 따라 다니면
그 상황을 개선하기 힘들다. 

우선 정려 수행에 준하는 수행으로
화면으로 대하는 게임 내용 이면의 깊은 정체를 관할 수 있어야 하고
다시 깊은 실상을 관하는 반야바라밀다를 통해
게임이 그렇게 나타나는 본 바탕이라고 할 
프로그램 내용 자체에 상응한 내용들을 
실상을 꿰뚫어 관하는 가운데 
이를 바탕으로 그에 대한 해결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그래서 예를 들어
생사를 벗어나는 해탈문에 해당하는 키를 3 개 누르고
엔터를 길게 누르면 새로운 장면이 나온다.
그런 경우 이후
아이템은 원하는 숫자만큼 적어 놓고 시작할 수 있고 
케릭터의 수명은 무한해 수없이 계속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케릭터가 갖는 파워가 몇 배 증진된다. 

현실에서 아이들이 행하는 게임마다 이런 식으로
게임을 변화시키는 비밀키가 있는데
이런 것을 치트키라고 보통 표현한다. 

물론 일반 사용자는 이런 치트키를 쉽게 알아내지 못하지만,
게임 세계에는 그런 것이 있다. 

그래서 생사현실안에서도 이런 방안을 찾아내 제공해서
게임 안에서도 사용자가 많은 아이템을 획득한 가운데
같은 동료 게이머들을 게임 안에서 만나 
하나하나 구출해내는 일을 하는 것이 결국 수행이다. 

공해탈문을 통해 법이 공함을 알고 벗어난 다음
다시 중생제도를 위해 생사현실의 공한 자리에 임하고 
무상해탈문을 통해 상을 제거해 안인을 성취한 다음
안인을 옷으로 갖추어 입고 생사현실에 임하고 
무원무작해탈문을 통해 쓸데없는 소원과 이를 집착해 추구하는 활동을 제거하고 
대신 자비의 마음을 바탕으로 중생제도를 위한 무량한 서원을 갖추어 
자비를 방으로 현실에 임한다. 
이처럼 법화경에 수행자가 갖춰야 할 기본 자세를 제시하는 내용이
바로 그런 내용이다. [참고 법화경 법사품] 





그런데 이 수행의 핵심은 
그 게임 내용이 전반적으로 엉뚱하고 실답지 않은 내용이어서 
그 게임에서 케릭터나 아이템에 집착하고 임하면 
결코 안 되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기본이다. 

예를 들어 그 게임에서 케릭터나 아이템이 설령 다 없어져도
그것이 하나같이 엉뚱하고 실답지 않은 것이었기에
아무 일이 없다. 무방하고 괜찮다. 
이런 사정을 먼저 잘 관하고 이해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 핵심이 된다. 

그리고 반야바라밀다심경에서 
관자재보살님께서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하시고 쉭하고 세상의 일체고액을 벗어나 건넜다 
즉 도일체고액했다는 내용이 바로 이 내용과 관련된다. 

게임안 캐릭터를 기준으로 잡고 집착하고 임하면 
물론 이런 내용은 현실적으로 대단히 행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한데 
그러나 위와 같이 그 기본 사정을 뚜렷하고 깊게 잘 관하면 
그 게임 전체에서 쉭 벗어나는 일이 또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러면 게임 케릭터는 어떻게 하나요?
이렇게 의문을 갖는 수가 많다. 
그런데 그것은 그 캐릭터를 기준으로 잡고 볼 때의 문제고 
간단히 말해 그렇게 변화된 상태는 
그 이전 상태에서 최고에 최고에 이른 상태보다도
기본적으로 훨씬 더 뛰어나고 낫다고 평가하게 된다. 

그래서 이후 그런 캐릭터가 남아 있거나 있지 않게 되거나, 
그 캐릭터를 그렇게 붙잡고 신경쓰던 당신 자체는 
그로 인해 그와 관계없이 여전히 계속 잘 지내게 되고
오히려 그런 자세로 인해 그 이후 내용까지도 함께  
대단히 좋고 좋게 된다. 



왜냐하면 그 상황에서 
대단히 중요하고 자신이라고 여기는 그러한 내용들이 
원래 자신이라고 할 그런 내용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하나같이 엉뚱하고 실답지 않는 내용이어서 
마치 길거리에 있는 벽돌과 같다. 

물론 이들 내용은 현실에서는
그런 본래 자신과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고
자신이 올라타 운전하는 자동차나 
자신이 입고 여기저기 다니는 옷처럼 
자신과 관계가 밀접한 것이기는 한데
그러나 알고보면 그렇다. 

그래서 그런 것이 다 없어지고 파괴되어도 
정작 초등학교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더 나아가 무량겁에 걸쳐 계속 이런 형태로 임해나갈
본래 자신은 그와 본래는 별 관계없다. 

그런데 만일 지금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는 것이 
정말 자신이고
이것이 없어지고 파괴되면 정말 큰 일이라고 여긴다면 
그런 경우는 오히려 그런 망상분별과 집착으로 인해 
오히려 그런 본래의 자신까지 이에 함께 묶이게 되고 
그로 인해 상황이 매번 어렵게 된다. 

그리고 만일 그렇게 매순간 임한다면 
이미 초등학교 때 그렇게 자신이라고 본 그 내용은 
지금 이 순간에는 이미 다 없어진 상태인데도 
그에 대해서는 왜 슬퍼하지 않는 한편 
왜 엉뚱하게 지금 이순간은 또 그와는 전혀 다른 이상한 내용을 붙들고
그에 집착하면서 그렇게 태연하게 임하고 있는가 
이 문제부터 먼저 잘 생각해서 답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상태가 그다지 좋지 못한 것은 
사실 초등학교 시절에도 그렇고 
지금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매 순간 그렇게 엉뚱한 것을 자신이라고 붙잡고 집착해 임했기에
상태가 안 좋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태로 이 이후로도 계속 임해 나가면 
상태는 점차 더 안 좋아질 뿐 아니라, 
나중에는 극심한 고통을 생생하게 받는 
3 악도에 입소하게 된다는 사정을 지금 제시한다. 

그것은 또 다른 한편으로는
처음부터 만일 그런 망집을 갖고 임하는 상태에서 벗어나 
매 순간마다 다른 자세로 임했다면 
지금은 이미 우주를 무대로 중생을 제도하며 
무량한 복덕과 지혜를 구족해가는 상태에 있었을 것인데 

그러나 그렇지 못하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상대적으로 티끌보다도 가치가 적은 것만 붙들고
그로 인해 생사고통을 무량하게 장구히 받아나갈
상태에 처해 있어서 대단히 그 차이가 크다. 

그러니까 이 문제를 잘 생각하고 
현실에 임하는 자세를 바꾸어야 한다. 





mus0fl--France Gall - Les sucettes.lrc

현재 각 기기가 7 년 정도 주기로 

계속 불량이 발생함을 경험하는데 
현재 모니터 하나가 이상해서 조금 좋은 모니터로 교체했는데도 상태가 이상하다. 

대충 모니터 화면이 오락가락 몇 번 하면 
몇 달 지나지 않아 아예 화면이 나오지 않는 상태가 되고는 하는데 
연구에 사용하는 주 모니터는 조금 상태가 좋아야 한다고 보고 
또 교체를 생각 중이다. 

화면이 하나인 경우와 두 개인 경우는 작업 능률이 다르다. 
작업을 하면서 보조 참고되는 자료를 다른 창에서 보는 것과 
매번 화면을 바꾸면서 보는 것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알아보니 모니터 가격이 많이 싸졌다. 
과거 모델을 알아보니, 과거 모델은 흔적 자체가 잘 보이지 않는다. 
기기를 사용하다보면 대략 7 년 주기로
무언가 새로운 것이 나타나고 
과거의 것들은 무대에서 사라지는 이런 현실이 
거의 모든 분야에 적용이 된다. 

사람도 누가 일일히 각 세포의 상태를 확인하고 검사했는 지 모르지만, 
사람도 알고보면 대략 7 년 정도의 기간이 지나면 
7 년전에 생체를 구성하고 있던 물질은 모두 사라지고 
새로운 물질로 구성이 되게 된다고 의학계에서 보고한다. 

매일 식사 - 소화 - 흡수 - 배설 이런 생체활동을 하는데 
이것이 알고보면 자신의 생체를 구성하는 레고블럭과 같은 것을 
쉼없이 교체하고 새로 구성하는 작용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7 년전을 기준으로 하면 
예를 들어 배추밭이나 축사의 동물안에 들어 있던 레고블럭들이 
지금 현재의 자신의 몸을 구성하는 부품으로 전부 교체되어 들어온 것이고 
기존의 부품은 거꾸로 이제 그런 배추밭이나 축사에 레고블럭 형태로 
흩어져 있다. 

예를 들어 평소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그리고 물을 마시고 활동하면 땀과 오줌 등으로 배설이 되는데 
그런 가운데 매 순간 조금씩이라도 그 내용과 형태가 달라지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또 그런 가운데 한 주체는
그렇게 매번 그 내용과 형태가 달라지는 각 순간의 내용을 
모두 나열해 놓고 이것을 매순간 모두 자신이라고 여기고 임하고 있다. 

갓난아이때부터 노인이 될 때까지의 과정을
문자로 α,β,γ,δ,ε,ζ,η,θ,ι,κ,λ,μ,ν,ξ...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면 
지금의 ξ(크시) 형태에는 
과거 갓난아이때 그 갓난아이가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던  α(알파)의 내용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 내용으로나 남아 있지 않고 그 내용이 모두 달라졌는데 
그러나 한 주체는 각 순간의 각기 다른 α,β,γ,δ,ε,ζ,η,θ,ι,κ,λ,μ,ν,ξ...
이들 모든 내용을 다 자신이라고 여기면서 대한다. 

그래서 사실 α,β,γ,δ,ε,ζ,η,θ,ι,κ,λ,μ,ν,ξ... 
이 각 순간의 내용과 관련해서 그것을 모두 다 자신이라고 관념분별할 수 있게 만드는 그 무엇 
그래서 이 각 순간마다 일정하게 있다고 할 자신의 본 내용 
그러나 눈으로 보이지도 않고 손으로 만져지지도 않는 그 무엇을 
일단 U 라고 표시한 다음 
그런 U 때문에 그렇게 된다고 이해한다면 
그 U 를 우선 잘 찾고 확인해야 한다. 

이런 사정도 사실 생각하면 엉뚱하고 이상한 일인데 
여하튼 우리가 임하는 현실 상황은 그렇다. 


가끔 초중고 시절 때 친하게 지냈거나 관심을 갖고 지내던 친구들은
어떻게 지금 지내고 있는가 하고 확인을 해보면 
거의 대부분 확인이 잘 안 되는 한편 
확인이 되는 몇몇 친구는 어떤 경우는 과거에 예상했던 것처럼
그런 형태로 잘 지내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러나 또 어떤 경우는 과거에 예상했던 것과는 아주 다르게 
특이한 형태로 잘 지내고 있는 경우도 보고는 한다. 

그래서 사람의 삶이란 사실 잘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게도 되는데 
여하튼 그렇다.
그와 함께 시간이 지나면 결국 그렇게 조금씩 변화해가던 이들이 
모두 제각각 과거 7 년전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 되어지는 것을 
현실에서 확인하게 된다. 

최소한 과거 어릴 때 모습들은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고 
대부분 할아버지 할머니 상태가 되어서 
어떤 친구는 묘자리를 할 산을 열심히 찾아다닌다고
sns 에서 글을 올려 놓고 있는 경우도 있고 
대부분 아들 딸 결혼한다고 소식을 올려 놓기도 하는 것을 보는데 
여하튼 세월이 흐르면 이렇게 되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런데 이와 같은 현실에서 각 주체가
망집을 바탕으로 생사고통을 겪어 나가는 부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경전에서 제시하고 있다.  

이것이 무슨 문제인가. 

한 순간에 잘못 판단하고 엉터리 망상분별을 행하고 
그 이후 죽 그렇게 임해왔기에 
과거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장래도 무량하게 그렇게 엉터리로 임하면서 
생사고통을 받아나가게 된다는 점이 바로 문제다. 

이미 처음에도 제시했지만, 
그것이 엉터리이고 망상분별이라고 해도 
그로 인해 그 주체가 어떤 고통을 겪지 않는다면 
굳이 그것을 문제삼을 이유는 별로 없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지 않다. 
그것이 엉터리이고 망상분별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바로 그런 사정으로 그 주체가 매 순간 그렇게 겪지 않아도 될 생사고통을 겪고 
그런 형태로 매순간 임하는 가운데 그 상태로 무량하게 임하게 되기에 
바로 그것이 문제다. 

그래서 수행을 통해 
한 현실 단면을 놓고 그 정체를 올바로 관하고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 요구될 뿐 아니라, 

더욱이 매 단면 단면을 놓고도
그 상태에서 좋고 좋은 상태로 나아가려면 
역시 그 본 정체를 올바로 관한 가운데 
그런 바탕에서 매 순간 임하는 자세를 
수행방안으로 바꾸어서 임해야 한다. 




현실에서 종이를 불에 태우면 
처음 종이를 대하던 상황에서는 보지 못하던 연기와 재가 나온다. 
이런 현실 내용을 대부분 경험한다. 

현실에서 너무 많이 경험해서
이런 내용은 너무 당연한 내용으로 이해하게 되는데 
왜 이것이 엉터리인가
이렇게 거꾸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대부분 망집환자의 상태다.

그런데 위 내용을 잘 검토해보아야 한다. 

왜 연기와 재가 없던 종이에 불을 붙이면 
금이 나오지는 않고
하필 연기와 재가 나오는가. 
이 문제다. 

즉 엉뚱한 것에서 왜 엉뚱한 것이 매번 나타나는가. 
이것을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망집환자는 이것을 거꾸로 대하고 이해한다. 

엉뚱한 것에서 엉뚱한 것이 나타나는데 
그러나 그것이 한 번이 아니고 여러 번 반복하므로 
오히려 이것은 엉뚱한 것이 아니다. 
이렇게 그 엉뚱한 내용이나 관계에 길들여지고 순응하게 된다. 

그리고 나서 
다시 이렇게 엉뚱한 내용에서 엉뚱한 것이 나타나는 관계가 반복되면
그런 사정으로 인해 그 엉뚱한 관계나 그런 내용마저도 실답다고 해야 한다. 
심지어 사정이 그렇기에 이 현실에서만 그런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그런 관계가 있다고 여기며 나아가게 된다. 

그런데 이미 그런 관계가 현실에서 많이 반복해도 
그것이 엉뚱한 것과 엉뚱한 것을 서로 관련지은 것이고 
그런 사정으로 그 내용이나 관계가
바로 엉뚱하고 실답지 않음을 자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인데 

이제 그런 내용이나 관계가
설령 다른 영역에도 그렇게 있다고 해도 
그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사실은 다른 영역에서는
또 그런 관계나 내용도 얻어지지도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놓고 잘 생각해야 한다. 


현실에서 얻는 내용을 매 순간 실답다고 여기면서 
그에 집착해 반응하고
그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겪는 3 악도에 묶여가는 각 주체가 그렇게 되는 사정은 
바로 그렇게 엉뚱한 현실내용을 대하여
그것을 대단히 실답다고 여기면서 집착하여
그에 바탕해 생각하고 말하고 행해나가는 그 자세때문에
그런 상태에 처하게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그렇게 현실을 대하고 그렇게 여기면 
각 순간마다 그런 반응을 그렇게 하지 않을 도리가 도무지 없다고 여기는 가운데 
그래서 그렇게 매순간 임하여 행해 나가면
그로 인해 최종적으로 3 악도에 진입하지 않을 도리가 도무지 없는 상태가 된다고
경전에서 제시한다. [혹-업-고]

사정이 그렇지 않고 
이렇게 하던 저렇게 하던 
어느 경우나 본 자신이 별 일이 없고 고통을 받지 않으면 
이것을 굳이 문제삼을 이유가 없는데 
사정이 그렇지 않고
이로 인해 앞과 같은 대단히 극심한 차이가 나타나기에 
이를 문제삼는다. 

망집에 바탕해 매 순간 업을 행해 나가면 
그로 인해 무량겁에 걸쳐 극심한 생사고통을 반복해 받아나가는 상태에 처하고 
망집을 제거하고 수행의 방안을 실천해 임하면 
무량겁에 걸쳐 복덕과 수명과 지혜를 구족한 상태가 되는 차이가 발생한다. 

즉, 현실의 정체를 어떻게 관하고 
어떻게 매순간 임하고 행위를 해가는가에 따라서 

본래의 자신이 매 순간 그리고 무량겁에 걸쳐 
어떤 상태로 나아가게 되는가 하는 점에서 
대단히 극심한 차이가 발생하기에 
이것이 현실에서 중요한 문제가 된다. 




이것을 게임을 놓고 생각하면 그 사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아예 그런 게임에 들어가지 않는 것도 한 방안인데 

그러나 그 게임에 임하면서 어떻게 자세를 취하고 게임을 대해야
그 게임에서 계속 좋고 좋은 상태가 되는가가 
또 부차적으로 문제된다. 

수행과 생사현실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본래 무여열반을 얻고 아라한의 상태가 되어
이후 생사현실 자체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데 

그런데 생사 현실에서 생사고통을 받는 주체가 무량하다. 
그래서 수행자는 자신만 생사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고
이런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이 생사현실에 들어가 임하게 되는데 
이 상태에서 위 문제가 다시 제기된다. 

그래서 생사현실의 본 정체를 올바로 관하고 
생사현실 안에서 어떻게 해야 
우선 자신이 극심한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에서 벗어나게 되고 

다시 그 상태에서 어떻게 해야 
복덕과 지혜자량을 구족하여 
중생을 제도하고 불국토를 장엄하고 성불할 수 있는가를 놓고 
진지하게 살피고
그 방안을 원만하게 즐겁게 잘 실천해나가야 하는 것이 
생사현실의 수행문제다. 


올려진 노래 안에서 지옥에 간 마술사를 소개하는데 
현실의 마술사란 망집상태에서
한 번 더 망집을 일으키게 하여 묶는 역할을 한다. 

이미 현실 자체가 엉뚱한 내용들이 서로 관련된 상태인데 
마술은 다시 이것을 한 번 더 엉뚱하게 묶어서 
그것이 마치 서로 관련이 되는 것처럼 보여주는 활동을 한다. 

즉 종이에서 연기와 재가 나타난다고 이해하고 대하는 자체가 
망상분별인데 
마술사는 다시 모자를 흔들면 연기와 재가 나타나는 것처럼 보여주어서 
또 다른 망상분별을 증폭시키는 활동을 한다. 

그런데 수행을 통해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는 수행과정에서도 
사실 이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풀려나는 방안은 묶이는 방안의 반대방향을 역순으로 
하면 된다고 제시하게 되기 때문이다. 





mus0fl--Lynda Lemay - Anne.lrc

이제 왜 현실이 엉뚱하고 실답지 않다고 하는가를 놓고 

현실에서 어떻게 임해야 하는가를 잘 살펴보자.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눈으로 보면 분명 손가락인데 
이 부분을 손을 대면 그 때마다 
자신이 보는 그 모습과는 다른 이상한 촉감을 얻게 된다. 

일반 입장에서 이것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여길 수도 있는데 
다음과 같은 일은 또 이상하다. 

분명 봄에 작은 씨를 뿌렸는데 
그 뒤 그 곳에 가니 씨에서 볼 수 없었던 엉뚱한 내용
예를 들어 오이도 자라고 호박도 자라고 
가지도 자라고 이런 일이 일어난다. 

이것을 해당 농사를 짓는 분에게 물어보면 
매번 그런 모습을 보기에 그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고 
오히려 그렇게 씨를 뿌리고 경작하는데 
가끔 태풍이 온다거나 가뭄이 지나쳐서 
그런 열매가 안 맺는 경우가 오히려 문제가 된다고 답하게 된다. 


부처님이 제시하는 3 계 6 도의 사정도 알고보면 
마찬가지다. 

본래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는데 
이상하게 그런 엉뚱하고 실답지 않는 내용이 
그런 상황에서 매번 반복해서 있게 되고 
그것은 그 주체만 그런 것이 아니고 
대단히 많은 중생이 그런 아귀 축생 지옥계에 수용되어서 
그것도 단순히 그런 한 측면만 그런 것이 아니고 
온갖 감각을 통해 그런 생사고통을 아주 생생하고 실답게 
장구하게 겪어 나간다. 
이런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자신이 열대 정글이나 밀림에 있는
각종 곤충이나 축생의 상태는 대강 알지만,
아귀나 지옥세계는 직접 지금 보지 못해서 
그런 것이 있는지 없는지 궁금하므로 
한 번 직접 들어가보고 나서 확인을 마치고 나서 
수행을 해보겠다고 임하면 소원대로 되기 쉽다. 
3 악도 입문은 평소대로 하면 바로 입소가 되고
그다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단 들어가고 나서는  
거기에서 나오는 것 자체가 쉽지 않고 
그 상태에서 지금 제시한 수행 방안을 하나라도 
제대로 하기가 쉽지 않다. 

그 상황에 대한 소개가
마치 장님에게 칙칙한 어떤 그림을 소개하거나 
귀가 먼 이에게 아름다운 음악 선율에 대해 소개하는 것처럼 
잘 이해하지 못할 수 있는 내용인데 
사정이 그렇지만,
비록 그런 내용 역시 실답지 않더라도 
봄에 어떤 씨를 뿌리면 가을에 그런 열매를 보게 되듯 
현실에서 망집에 바탕해 매 순간 행하게 마련인 행위를 열심히 행하다보면 
결국 그런 세계로 장소를 옮겨서
그런 상황에서 아주 장구하게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겪어 나가게 된다고 
부처님이 제시하고 있다. 

오늘날도 기자가 아프리카나 어떤 곳을 방문해서 
그 곳은 사정이 이렇다고 소개하면 
별로 거짓을 보고할 특별한 이유가 없는한 
그 사정을 잘 검토하고
꼭 자신이 그 내용을 직접 하나씩 경험을 해보고 나서
자신의 방향을 정하겠다고 임하면 곤란하다.
따라서 이런 내용을 참조를 잘 해야 한다. 

여기서는 현실에서 대부분 직접 확인가능한 내용만 놓고 
이 문제를 살피자. 

어떤 이가 술을 마시고 자동차를 운전하면 곤란하다고 했는데 
술을 마시고 운전해서 큰 부상을 입고 
장애를 겪는 상태가 되었다고 가정하자. 
이것이 이상한 일이다. 

자세히 보면 이 관계가 
왜 씨를 뿌렸는데 결과는 씨와는 전혀 다른 모습인 열매인가 
이 질문과 성격이 같다. 

그런데 그런 내용이 이 생사현실에서 확인되고
있다고 보게 된다. 
그래서 이 관계를 놓고 엉뚱하다고 하게 된다. 

그 성격이 다 마찬가지이므로 
다시 앞 내용으로 넘어가자. 
손가락 모습을 보고 손가락을 대는데 
왜 그 모습과는 전혀 엉뚱한 촉감이 느껴지는가. 

그런데 이 상황에서 그 촉감이 대단히 고통스럽고 불쾌하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어떻해야 하는가. 

또 두번째 내용도 마찬가지다. 
어떤 씨를 뿌리면 가을에 이상한 열매가 나온다고 하자. 
이것도 엉뚱한 내용들이다. 
왜 씨에서 보이지 않던 그런 내용이 나중에 나오는가. 이 문제다. 

그런데 여하튼 그 열매가 대단히 보기도 싫고 
먹거나 만지거나 하면 바로 바로 극심하 고통을 받는다고 하자. 
이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것이 곧 생사현실의 문제다. 

앞과 뒤 내용이 조금 차이가 있는 것은 
앞 내용은 각기 다른 감관으로 각기 다른 엉뚱한 내용을 얻고 
이들을 관련시키는 성격의 문제다. 
앞 사례에서는 눈으로 본 모습과 손으로 얻는 촉감의 관계를 살폈던 것이다. 

그런데 뒷 내용은 하나의 감관으로 얻는 내용들 간에서 
그 관계를 관련시킨 성격이다. 
즉, 눈으로 보는 모습들 안에서 각 내용이 갖는 관계를 살핀 것이다. 

더 자세히 살피면 경우를 더 세분할 수는 있는데 
여하튼 그 성격이 대부분 이와 같다. 

이것을 a + b = > C 의 내용으로 놓고 표현하면 
아무리 이 내용을 수없이 각 주체가 반복하고 또 반복해 경험해도 
이 a + b = > C  관계 자체가 
이 C 라는 내용이 엉뚱하고 실답지 않다는 사정을 

매번 자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이 사정을 잘 파악해야 한다는 의미다. 
a + b = > C  내용은 
무엇을 먼저 말하는가하면 
그 C 는 앞 a + b 에서는 얻을 수 없는 내용이고 
그런 상황에서만 그렇게 얻어지는 것임을 지금 제시하고 있다. 

비록 이 내용을 무한히 반복해 얻어도 
이 내용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런 사정으로 매번 얻는 C 가
그런 사정으로 실답지 않다고 반복해 말하는데 
그렇게 반복해 C 를 말한다고 
그 C 가 실답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지금 그런 내용을 제시하는데 
이 관계에 대해 망집을 일으킨 입장은 
사정이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런 C 나 그 관계가 대단히 실답다 이렇게 임하면서 
그 게임이 일어나는 게임판에 떡 태연하게 임하면서 
쉼없이 게임을 해나간다는 점이다. 

역시 그런 상황의 문제점을 앞에서 보았는데 
사정이 그와 같아서
그렇게 얻는 C 가 실답지 않고 엉뚱한 내용이라고 해도 
그로 인해 그 주체가 어떤 고통을 받지 않는다면 
역시 무방하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즉 그렇게 실답지 않고 엉뚱한 형태로
C 를 얻을 때마다
그가 비명을 지르면서 극심하 고통을 그 순간 겪는데
그 관계가 앞에서 본 것처럼 한 순간만 그런 것이 아니고 
그런 상황에서 장구하게 그렇게 겪고 
또  그 주체만 그런 것이 아니고 
영희나 철수를 비롯해 그런 상태를 겪는 상황에 들어간 이들은 
다 함께 그런 상태가 되고 
또 다양한 감각과 분별을 통해서 그런 상태로 생사고통을 겪어나가니 
이것이 문제다. 

그러니 위 식을 놓고 
이제 여기에 대한 해결방안을 무엇이라고 제시하겠는가. 
그런 고통을 겪는 a + b => C  사정을 모른다면 모르겠지만,
그렇게 엉뚱한 C 를 얻는 그 엉뚱한 관계를 파악했으니
이제 그 C 를 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제시하겠는가.


경우를 조금 나누어야 한다. 

여하튼 지금 C 의 상태에 놓여 있는 경우 하나와 

지금은 C 의 상태에 놓여 있지 않지만, 

지금 a 는 갖추고 있어서 나머지 b 만 충족되면
곧바로 C 를 얻게 될 그런 상태에 있는 경우와 

앞과 비슷하지만
여하튼 a 를 취득할까 말까를 놓고 고민 중인 입장에게  

무슨 내용을 어떻게 제시하고 
어떻게 현실에서 임하라고 제시할 것인가. 
이 문제다. 


결론은 이미 앞에서 제시했지만, 
그 근거를 자세히 이어서 살피기로 한다. 




mus0fl--Coeur De Pirate - Place De La République.lrc


현실 내용이 엉뚱한 관계를 살피는데 
노래를 듣다 보면 더 엉뚱한 내용을 대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연구원에서 가장 태만한 숙왕화님의 본 기지 위치를 알려주는 한편, 
숙왕화님이 귀먹은 것처럼 평소 행한다고 제시한다. 
노래를 듣고 숙왕화님의 평소 모습을 대하면 정말 그렇다고 여기게도 된다. 

이전 노래에서는 용수보살님이 제시한 내용을 
좀 쉽게 알아듣게 설명을 하라는 메세지를 듣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용수보살님이 중론송에서 제시한 내용 등은 
원래 경전에서 부처님이 제시한 내용이기도 하다. 

다만 그것을 이해하려면 조금 기본적 내용을
제대로 하나하나 파악한 다음에
무엇이 문제가 되어서
그런 논의를 전개해가는 그 사정과 논의취지를 이해하고 대해야 
그 내용을 이해하게 되므로 
조금은 더 시간을 들여야 한다. 

그런데 원칙적인 내용을 알면 
그 바탕에서 바로 수행에 임하면 되고 
사실은 불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그 논의는 그런 원칙적인 내용으로도 쉽게 자세를 전환하지 못하고 
평소 가졌던 망집과 사견을 고집해서 계속 나아가는 그런 경우에
그런 논의가 필요하다. 


앞에서 a + b => C 이 관계를 통해서 제시하는 C 가
침대에 누어 꾼 바다나 황금꿈처럼
엉뚱한 내용으로서  실답지 않는 내용이기에 집착을 갖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엉뚱한 내용들에서 다시 좋고 좋은 내용을 얻으려면 
그런 집착을 갖고 무조건 C 를 향해 돌진해가는 그런 자세를 잘 수정하여 제거하고 
수행 방안으로 임하면
무량한 복덕과 지혜자량을 얻을 수 있고 중생을 제도할 수 있다. 
이것만 하나 잘 확인해도 그 문제는 바로 해결된다. 

그런데 정작 a + b => C 와 같은 내용을 같이 제시받고도 
현실에서 그런 a + b => C 내용을 한 번만 경험하지 않고 
대단히 반복해 장구하게 같은 내용을 경험하고 
자신만 아니라 영희 철수를 비롯해 대다수가 그것을 경험하고 
한 측면만 그런 것이 아니고 수많은 감각을 통해서 대단히 다양하게 얻기에 
그런 사정으로 그렇게 얻는 C 는 대단히 실답다. 
그리고 심지어 그런 관계도 그렇다. 
이렇게 이해하고 떡 위 내용을 붙잡고 
그것을 하나같이 실다운 것이라고 여기고 이를 집착하고 임하면 
원래 망집에 바탕해 생사고통에 들어가던 그 상태가 된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결국 가정적 논의에 깊숙이 들어가서
상대 주장을 그대로 고집하면
그로 인해 그 상대가 결국 어떤 상태에 귀착되는가를 스스로 파악할 수 있게 하고 
그로 인해 그런 망집에서 스스로 벗어나게끔 노력하는 것이 또 필요하다. 
그러니 사실 그런 논의를 살펴서 
비로소 그 문제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은 상당히 상태가 안 좋다. 


여하튼 차근차근 하나씩 살펴서 
왜 눈앞에 자동차가 저기 있다가 이리 오는 것을 눈으로 보고 
그래서 현실에 그런 오고감도 있고 생멸도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기게 되는데 
그런 것을 얻을 수 없다고 불생불멸 불상부단 불일불이 불래불출
이런 내용을 제시하는가 
이런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우선 여기서 간단히 확인할 점은 
이러 현실 내이 그 일체가 공하고 실답지 않다. 이런 내용을 제시하는 입장은
그 어떤 주체가 눈을 떴을 때 
그가 무엇인가가 생멸한다거나 오고간다고 여기고 대하게 되는  
그런 감각현실을 그처럼 생생하게 얻지 못한다고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또 그런 상태에서 그가 무언가가 생멸하고 
무언가고 오고간다고 여기는 그런 분별을 그렇게 일으키게 된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이는 침대에서 꾼 꿈이 실답지 않다고 제시할 때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꿈이 실답지 않다고 한 것은
꿈을 그처럼 생생하게 꾸지 못한다거나 
그 꿈을 꾼 침대가 없다고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런 꿈 내용은 그런 상황에서 얻는 내용일 뿐 
그 내용은 그런 조건과 상황을 떠난 상태 예를 들어 침대에서는 얻지 못한다. 
이것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에서 각 주체가 얻는 감각현실이나 관념분별 자체는 별 문제가 없는데 
문제는 각 주체가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내용이 
그 감각현실에도 그렇게 있는 것이고 
더 나아가 이런 내용을 얻는 본 바탕에도 그런 내용이 그렇게 있다고 자꾸 생각하면서 
그것이 실답다고 여기며 집착을 일으키고 
그에 바탕해 행위를 해나가기 시작하기에 이것이 문제다. 
그리고 이 부분이 망집이다. 

그래서 처음 이 내용을 놓고 
그렇게 일으키는 망집을 잘 해결하면 
욕계에서 겪는 3 악도의 근본 상태가 제거되는 데 
그러나 처음 그 망집을 잘 해결하지 못하므로 이것이 문제다. 

그리고 그 망집상태에서는 
그 이후 3 악도에 진입하게 만드는 업을 행해 나가는 것을
중지시키는 것도 대단히 힘들게 된다. 

엉뚱한 내용을 놓고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상태인데 
어떻게 그렇게 그 부분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행해 나가는 온갖 행위를 
멈출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처럼 업을 행하는데 어떻게 3 악도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곤란하다. 



앞에서 
한 주체가 갓난아이로 태어나 노인이 될 때까지 과정을
α,β,γ,δ,ε,ζ,η,θ,ι,κ,λ,μ,ν,ξ 형태로 제시했다. 

그리고 7 년 주기설까지 제시했다.
7 년이 되면 몸을 구성하는 물질이 다 달라진다. 
이런 의학계 내용까지 제시한 것이다. 

그래서 다음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7 년전에는 배추밭에 있던 어떤 물질이 어떤 상태가 되면 
이제 지금 이 순간 그것이 내 몸의 한 부분이어서
도저히 함부로 할 수 없는 그런 소중한 부분이라고 여기게 되는가. 

또 반대로 지금 이 순간 
내 몸의 한 부분이어서 도저히 함부로 할 수 없는 그런 소중한 부분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상태가 되면 
이제 배추밭에 있는 돌조각처럼 
이렇게 되던 저렇게 되던 아무 관계가 없고 
무방한 것이라고 여기게 되는가. 

이 문제를 먼저 잘 살펴야 한다. 

이것이 벽돌의 비유가 나타내는 내용이기도 하다. 

원래 벽돌이 길에 떨어져 깨지거나 말거나 
벽돌 자체도 그것을 문제삼지 않지만, 
이 벽돌을 바라보는 입장도 별로 문제삼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을 문제삼는 것은 
그 벽돌이 자신의 머리를 부딪혀 부상을 입힌다거나, 
아니면 그 벽돌이 앞과 같은 과정으로 
자신이 도저히 무시할 수 없고 대단히 소중하게 여기는 
자신의 신체 한 부분이 되어 있는 상태면 
이것은 대단히 문제가 된다고 이것을 심각하게 대한다. 
그래서 이 사정을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 

여기에는 이런 벽돌을 자신으로 처음 대하고 
살아가게 되는 과정에 관여하는 
제 7 식이라고 하는 내용을 먼저 잘 살펴야 한다. 

그리고 이 제 7 식을 이해하려면 
먼저 현실의 표면에서 작용하는 1,2,3,4,5,6 식을 
또 잘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쉽다. 

우선 1,2,3,4,5는 각기 엉뚱한 형태로 감각내용을 얻게 하는 
한 주체의 정신이다. 

그리고 6 은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각 부분이 무엇이라고 또 각 부분을 이리저리 묶고 나누면서
엉뚱하게 관념분별을 일으키는 그런 정신이다. 

문제는 어떤 한 주체가 자신의 몸이라고 보는 그런 부분은 
이처럼 평소 감각하거나 분별하지 않아도 
자체적으로 이미 잘 이뤄지고 있는 부분이다. 

잘 생각해보면 
자신의 몸은 자신이 일일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이 부분을 이렇게 움직이자 아니다 움직이지 말자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임해야만 움직이는 부분도 있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자체적으로 대부분 잘 이뤄지고 있는 부분인 것이다. 
그리고 심장활동이나 평소 호흡하는 활동 등이나 
각종 신체 부분에서 일정한 기능이 이뤄지고 있는 내용들은 
바로 이런 정신을 바탕으로 행해지고 있다. 

그런데 이 부분이 제 7 식이 담당하는 내용인데 
앞에서 처음 제기한 문제 
즉 배추밭에 있던 레고블럭이 
어느 계기로 이제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신체부분이 되고
그렇게 여겨지게 된 것인가는 
바로 이 제 7 식이 작용해서 그렇다는 의미다. 

그래서 알고보면 엉뚱하게 벽돌을 붙들고 
그처럼 엉뚱하게 집착하고 현실에 임하게 된 그 책임은 
제 7 식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그것도 또 단순하게 볼 일은 아니다. 

여하튼 현실에서 자신이 분별을 해서 
일정한 부분을 자신이라고 여기고 집착을 갖고 대하는 것은 
분별을 행하는 부분이 그렇게 분별을 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고 

제 7 식이 먼저 그렇게 그 부분을 붙들고 늘어진 가운데 
그런 상태에서 이번 생의 삶을 처음 시작하게 된 것이고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사후적으로
뒤에 그렇게 제 7 식이 붙들고 늘어지는 그 부분을 놓고 
그렇게 분별하고 임하게 되었다는 의미다. 

그런데 그렇게 제 7 식이 이번 생에 그렇게 임하게 된 사정도 
단순히 제 7 식만 놓고 그것을 살피면 곤란하고 
그렇게 된 전후과정을 자세히 살피면 

마치 지금 1,2,3,4,5,6 식의 활동을 통해서 
매순간 일정한 생각과 말과 행위를 해가면서 
제 7 식이 붙잡는 그런 부분이 조금씩 변화해 가듯 
그런 상호관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즉 예를 들어 지금 자신이 치킨집에서 치킨을 하나 불러 먹으면 
그것은 제 6 식이 그런 분별을 해서 그런 활동을 하게 된 것인데 
이후 그로 인해 자신의 생체 안에 닭의 몸 부분이 레고블럭으로 들어오고
이후 제 7 식이 다시 그런 부분을 또 계속 자신으로 붙잡고 임하게 되는 것처럼 
세세생생 각 세계에서 각 생명형태로 옷을 바꿔 입으면서 
본래의 자신이라고 할 내용이 그런 부분을 붙들고 함께 놓이게 되는
그 사정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제시한다. 

또 사정이 이러므로 지금 어떻게 해야 
다음 생에 제 7 식이 장차 닭이나 돼지가 될 어떤 부분을 붙잡고 
접착되어 묶이지 않게 될 것인가. 

수행자는 일단 이 부분에 기본적으로 초점을 맞추고 
잘 살펴야 한다. 

일단 부모가 닭인 상태에서 새 삶을 시작하면 
그 삶을 마칠 때까지는 크게 기대하기 힘든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3 악도의 현실 상황이다. 
그러니 그 상태에서 어떤 수행을 해보겠다고 계획을 갖기 보다는 
일단 그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 기본적 수행목표다. 

그런데 만일 사정과 그런 상태가 되는 그 관계를 잘 파악한다면 
제 정신을 갖고 있는 이 가운데 누가 그런 상태가 되기를 희망하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 그렇게 되는 것을 원하지는 않지만, 

지금 자신도 특별히 지금 상태를 원해서 
매순간 그런 모습으로 그렇게 살아가게 된다고 여기지 않듯 
그 생사과정이 자신의 뜻처럼 자유롭게 되지 않고 
지금까지 행한 업에 묶여서 주어지는 상태를 그렇게 받아들이고
생사현실에 임하고 있다.

그래서 현실에서 어떤 주체가 업을 행하면
그런 내용은 마치 씨가 되어 밭에 뿌려지고
이후 열매는 그로 인해 엉뚱하게 그 씨와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것처럼 
현실에서 자신이 처하는 상황도 그와 같은 관계로 나타나고
그래서 자신이 평소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하면
그 바탕에서 비록 자신은
3 악도에서 묶여 생활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묶여 생활하게끔 된다는 그 관계를 제시한다. 

비유적으로 설명하면 
현실에서 교도소에 들어가 생활하는 입장을 놓고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해서거나 
자신의 분노를 해결하기 위해서 무언가를 한 것이지 
자신이 교도소에 들어가 구속된 상태에서 생활하고자 
그 순간에 무엇을 생각하고 말하고 행한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그런 무언가를 행하면 그것이 씨가 되어서 
그런 상태에 묶이게 되는 것일 뿐이다. 


이처럼 씨와 열매가 각 주체가
각 순간마다 생각하고 의도한 것과는 결과적으로 엉뚱할 수는 있는데 
여하튼 망집에 바탕해서 
탐욕 분노 어리석음을 바탕으로 계속 행을 해나가면 
이제 그것이 축적되어서 임계점을 넘어서면 
이제 세계를 달리해서 그 주체가 
축생이나 아귀 지옥 생명의 옷을 입고 그 세계에서 
임하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도 잘 이해해야 한다. 

본 바탕에서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는데 
현실에서 자신의 눈을 뜨고 대하면 세상 모습이 그렇게 보이고 
각 감관이 그런 내용을 얻고 
이것을 바탕으로 현실에서 분별하고 생활해가는 것도 
자신이 특별히 원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보듯, 
위 상태에 임하는 그 과정이나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 부분을 잘 파악하고
평소 생사현실에서 이 사정을 잘 관하고 수행으로 잘 전환해 
그렇게 3 악도에 들어가는 업의 장애를 잘 해소해 벗어나는 한편, 
또 그런 바탕에서 이후 복덕과 지혜를 구족할 수 있는 수행도
역시 잘 해나가야 함을 제시한다. 



그런데 이 부분이 생각 외로 쉽지 않다. 

왜냐하면 평소 대부분 
자신이 눈을 떠 대하는 내용을 
곧바로 외부 세상이고 외부 대상이고 
자신의 마음과는 별개의 외부물질이고 
그리고 자신만 그렇지 않고 영희나 철수가 다 함께 대하는 
외부의 객관적 실재라고 여기는 한편 

그 내용 가운데 일부를 놓고 
그것이 바로 자신이라고 여기면서 
현실에 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정작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 현실에 이렇게
평소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는 그런 형태로
그런 옷을 걸치고 떡 현실에 임하면서
그에 대해 온갖 집착을 갖고 활동하게 되었는가. 
그 사정 자체를 본인 자신이 잘 파악하지 못한 가운데 임하고 있기에
이 망집의 해결이 우선 어려운 것이다. 


일단 글이 길어지는데 
이전 조각글에서도 반복해 살핀 문제이므로 
그림으로 이 내용만 간단히 제시하고 
이후 내용은 다음 조각글로 넘겨 살피기로 한다. 






[img2-9]
08pfl--image/8식-9.jpg



그림만 제시하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렇게 마치면 무슨 내용인지 잘 파악하기 힘드므로 
조금만 설명을 붙이기로 한다. 

위 그림에서 1! 라고 표시한 부분은 
눈을 떠서 얻게 되는 내용을 얻는 그런 정신을 나타낸다. 
나머지 2,3,4,5, 는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얻는 정신을 나타낸다. 

그리고 위 그림에서 1! 안에서
a! 로 표시한 ◇ 부분은 
평소 자신이 눈을 떠서 자신이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그런 부분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런 부분을 대하면서 
그 부분은 자신이라고 여기는 그런 생각내용은 
6@ 로 표시한 부분에서 a@ 라는 형태로 표시되어 있다.

현실에서 표면으로 파악되는 내용은 이런 내용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a! 와 같이 
시각 정보로 얻는 내용을 
각 주체는 그것이 마음안 내용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것이 곧 마음 밖 외부세계의 내용이자, 
각 감관이 대하는 외부대상이고 
마음과는 별개의 외부 물질이라고 여기고 
이것을 자신 뿐 아니라 영희나 철수를 비롯해 모두가 객관적으로 
얻는 객관적 실재라고 일단 엉터리로 이해하고 대한다. 

사과를 놓고 그것을 눈으로 보고
그 사과를 손으로 만지면서 촉감을 느낄 때 
자신이 눈으로 보는 사과가 촉감을 얻게 한 대상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것이 일반인의 상식적인 내용인데
그것이 망집상태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그 망집을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그렇게 그 각 내용의 관계를 파악하게 되는 그 사정은 
그런 상태로 후발적으로 얻는 감관이나 분별에 책임이 있다기 보다는 
처음 생을 출발한 단계에서 
그렇게 각 감관이나 정신을 분화생성시킨 초기 단계에서 
처음 제 7 식이 그렇게 임했기에 그렇게 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부분은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지만, 
여하튼 앞 내용에서 그 사정을 일부 그렇게 제시한다. 

그것은 현실에거 자신이 감관을 닫고 
그에 대해 그런 생각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여전히 그렇게 일정부분을 붙잡고 그것이 자신이라고 여기면서
이뤄지는 활동은 조금씩 변화가 있게는 되지만,
여하튼 자신이 이번 생에 삶을 마치는 순간까지는 

어쩔 도리없이 계속 이뤄진다. 

그런데 그런 과정으로 처음 자신이라고 본 ◇ 부분이 
이제 완전히 사라진다고 해서 
본래 자신이 사라진다고 이해해서는 곤란하다는 의미다. 

그래서 처음 자신이라고 본  ◇의 정체가 무언가를 
먼저 잘 파악해야 한다. 

이것이 본 바탕에서는 무언가 하는 것도 
그런 측면에서 잘 살펴야 할 문제가 된다. 

더 나아가 눈을 떠 그런  ◇과 같은 모습을 얻게 될 때 
그런 내용을 얻게 되는 그 정신도 
본 바탕과 관련해서 그것이 과연 무언가도 함께 잘 살펴야 한다. 

마음 자체가 곧 실재인가. 
실재가 곧 마음 인가. 
그렇다고 마음이 실재를 떠나 있는 것인가. 

이런 것을 놓고 그 관계나
그 각 내용의 정체를 잘 살펴야 한다. 

앞에서 현실에서 파악하는 각 내용이 
본 바탕의 내용과 관련시켜 파악하면 
그 내용들이 하나같이 
엉뚱하고 실답지 않다는 것은 
결국 이 부분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들 각 정신은 매 생마다 어떻게 어떤 과정으로 분화 생성되면서 
각 세계에서 각기 다른 생명 형태에 얹혀
마치 지금 순간 자신이 보는 자신의 형태처럼
생활해  나가게 되는가. 
이것을 또 잘 살펴야 한다. 

이것이 앞에서 간단히 
a + b => C  식으로 나타낸 내용이기도 하다. 

그래서 하나같이 실답지 않고 엉뚱하기는 한데 
문제는 그런 가운데 
각 주체가 대단히 고통을 호소하는 상태에 진입해서 
장구하게 빠져 나오지 못한다. 
이런 문제다. 

자신이 아무 문제가 지금 문제가 없으면 
이것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대범하게 여길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어릴 때 어떤 사고를 겪어서 육체에 한번 장애를 겪으면
그 생에서 이후 그것을 극복해내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그런데 3 악도에 진입해 들어가 묶이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 문제다. 
한번 들어가 제 7 식이 그런 형태에 묶이고 나면
이후 이 상태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현재 이 사정을 파악한다고 
내일 아침에는 제 7 식을 변화시켜서 
자신이 다른 생명으로 변화할 수 있는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그런 상태에 묶이지 않도록
미리 그렇게 묶이게 만드는 업의 장애를 제거할 수 있도록
수행을 통해 예방조치를 해야 된다. 

결국 망집을 제거하고 
망집에 바탕해 엉뚱한 것을 놓고 
탐욕과 분노를 일으키며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는 것을 중단해야 하는데 
그 가장 근본이 되는 내용으로서 
현실에서 무엇을 과연 자신이라고 여기고 
매 순간 그렇게 임하는가부터 
잘 파악해야 한다. 

그것이 엉뚱하게 되면 
그 이후는 백약이 대부분 무효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일단 쉽지 않고
3 악도에서 예를 들어  축사에서
이리저리 묶여 다니는 상태에서
그것을 스스로 파악하고 벗아나는 것은
도무지 쉽지 않다. 








문서정보 ori http://buddhism007.tistory.com/5105#3687
sfed--법원주림_K1406_T2122.txt ☞◆vvsc3687

sfd8--불교단상_2562_08.txt

불기2562-08-22
θθ






   -- 아래에 조각글 작성시 휴식시점에 붙인 노래가사,사진,풍광,예술작품 자료를 편집상 옮겨 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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