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왕화님으로부터 갑자기 연락이 왔는데 인턴연구원이 하던 학업을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온다는 소식이다. 몸이 받쳐주지 못해서 그렇다고 하는데 알고보면 몸이 기본이다.
본인이 불교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다고 권유했었는데 불교공부가 좋다는 것을 일반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기에 인턴연구원도 당시 아예 본인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자신이 해볼만큼 해보고 돌아오는 것이니, 이번에는 잘 하면 본인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그런데 대학에 진학하던 취직을 하던 세간에서 의견이 거의 같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어떤 부분이 여러모로 좋다는 것에 사회적합의가 이뤄진 듯하다.
그런데 본인 입장에서 그 이면과 표면을 놓고 검토해보면 전혀 그 반대라고 보게 된다. 그리고 왜 그렇게 한 생을 살다가 가려고 하는지 잘 이해가 안 된다. 물론 본인도 과거를 놓고 생각해보면 그만한 때에는 또 그런 것을 놓고 한번씩 진지하게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
그런데 나중에 그 표면과 이면을 다 살펴보는 가운데 잘 따져보면 그것이 아니라고 보게 되는 것이다.
비유하면 소똥구리와 낙타의 비유가 여기에 적용이 된다고 할만한데 그러나 소똥구리나 낙타가 죽을 때까지 자신이 똥이나 짐을 지고 어느 지점까지 옮겨 놓은 일에 대단히 긍지를 갖고 임하고 불만이 없음을 본다. 다만 본인은 연이 된다면 어떻하던 그 소똥구리나 낙타의 상태에 있는 이를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주고자 하는 마음을 속으로 갖는 것 뿐이다.
그런 경우 가장 빠른 방안은 소똥구리나 낙타가 원하는 똥과 짐을 원하는 만큼 죽기 직전까지 제공해주는 것이 한 방안이다. 그러면 사실 죽음에 이르는 시기도 상당히 빨라진다. 과로를 해서 그런 것이다. 중국의 황제가 평균수명이 짧은 사정도 사실은 마찬가지다.
그런데 연이 된다면 그 소똥구리나 낙타가 어떻하던지 그런 상태에 놓이는 것을 미리 막고
앞과 같은 실험은 실제로 하지 말고 간단히 이미지 트래이닝만으로 생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신이 소원하는 것을 극한까지 다 성취했다고 마음에 그리고 그 지점으로 빨리 가서 마음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때문에 그런 상태를 자신이 원한 것인가. 그 상태가 되어서 무엇을 도대체 어떻게 해보려고 그런 것인가. 그 답을 그 상태에서 찾아내야 한다는 의미다.
대부분 이 부분에서 맹목적인 답을 붙잡고 답이라고 제시하기 쉽다. 이유가 없이 그냥 좋다거나 좋은 것이 좋다거나 그런 식이다. 산이 있어서 올라가고 다시 산에서 보니 아래 평지가 있어서 내려오고 또 평지에서 보니 또 산이 있어서 올라가고 이런 식으로 답하는 것이다 .
그래서 솔직히 옆에서 이 답을 검토하면 안타깝고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러나 당사자는 그에 불만이 없고 그 상태로 현실에 임하는 것이다.
원래는 그 답을 하나 잘 제시해도 그 답을 다시 또 놓고 또 앞 질문을 던져 그 답을 구하고 또 그 답을 놓고 또 앞 질문을 다시 던져 답을 구해서 최종적으로 답을 잘 작성해야 한다고 보는데 이런 의식 자체가 없이 그냥 돌진하는 것이다.
그런 결과 대부분 그 삶 전반이 별 의미없는 희생타가 된다. 안타까운 일이다. 욕계에서 번뇌에 묶여 사역을 당하고 다른 생명을 사역시켜나가는 과정의 실질이 이렇다.
한마디로 지렁이와 비슷하다. 지렁이를 풀어 놓으면 땅이 기름져지는 것 같은 상태와 비슷하다. 그 상태에서 지렁이도 불만이 없고 또 한편 지렁이가 활동하는 땅도 지렁이 배설물로 기름지게 되는 것도 문제는 아닌데 여기서 그 지렁이의 삶은 도대체 무언가가 궁금한 것이다.
그래서 이런 현실을 놓고 자신과 연이 되고 가까운 이가 또 한마리의 지렁이가 되어 현실에 임하려 하거나 또 한마리의 소똥구리가 되어 들판을 내달리려고 하거나 이런 경우는 되도록 빨리 구조팀을 편성해서 구조에 임해야 한다고 보는데 이런 경우 그 당사자부터 구조에 비협조적이고 때론 너무 완강하게 저항하는 것이다.
과거에 그에 관련된 노래를 들었던 적이 있는데 우연히 뽑히면 그 곡이 그 곡인 것을 알지만 일부로 찾아내 듣기는 쉽지 않다. 곡명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한 번 뽑혀 들었었는데 그렇다고 지금 페이지를 다시 뒤지며 찾을 수도 없고 일단 그렇다.
일단 자신이 한마리의 소똥구리가 되어서 한번 임해보겠다고 하면 그나마 잘 하기나 하면 좋겠는데 대충 보면 잘 하지도 못하기에 더 안타까운 것이다.
불교대학진학을 권유하면 해당 학생도 그렇지만, 그 주변 후원인도 본인을 상대로 마구 성을 내는 상황이 되는데 노래에서도 그 상황을 메세지로 전한다고 시감상을 하게 되어 당시 인상이 남았던 곡이다.
부처님도 같은 이야기는 두 번 정도만 하고 두 번 해도 듣지 않으면 그냥 죽인다고 하는데 본인도 심정이 마찬가지다. 아무리 사정을 이야기해주어도 귀를 기울이지 않고 들으려 하지 않는데 무슨 방안이 있는가. 그냥 방치할 도리 밖에는 없다고 보게 된다.
그런데 현실에서 왜 이렇게 되는가를 소똥구리나 낙타 지렁이 등을 놓고 비유하는데 그 입장에서는 그렇게 임하게 되는 사정이 있다.
낙타를 놓고 이야기하면 그 낙타가 짐을 많이 지고 가게 되면 일단 낙타 주인이 특별 대우를 하게 된다. 다른 낙타는 음식을 별로 신경쓰지 않는데 매끼 식사도 조금 더 좋게 해주고 그리고 다른 낙타에 비해 휘장도 조금 멋있게 해주고 그런 식이다. 그래서 다른 낙타들이 자신의 밥그릇에 담긴 음식과 비교해보고 또 자신이 걸친 옷도 이와 비교해 보는 가운데 부러워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 낙타 입장에서는 그런 눈빛을 또 보고 만족을 느끼는 심리가 생기는 것이다.
알고보면 그것뿐이다. 사우디에서 중국까지 그 낙타가 짐을 날랐다고 해도 그것뿐이다. 그것이 자신의 것이 아닌데 낙타만 그렇게 여기고 그것을 집착하고 대하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경전에서 반복해 제시하는데 그러나 낙타의 입장에서는 그 내용이 마음에 와 닿지 않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착시현상이고 환각현상이기도 하고 경전표현에 의하면 망상분별 집착 증상인데 이 증상에서 벗어나기가 도무지 쉽지 않다.
그래서 그런 증상을 일으키는 라이언일병이나 영희를 그 현장에서 구출해내기가 상당히 어렵다.
그렇게 구출해내오려 하면 만일 그 일을 하지 못하게 하면 앞으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어떻게 먹고 살라고 하는건가 이렇게 따지기 쉽다. 잘못하다가는 낙타를 인솔하는 축사 주인대신 낙타의 매끼 식사를 자신이 도맡아 해결해주어야 할 것 같은 부담까지 받게 된다.
그리고 그런 경우 그런 낙타를 인솔하고 그 낙타로부터 많은 수익을 얻게 되는 축사 주인도 본인을 싫어하기 마련이다. 상황이 이러니 왠만하면 구조를 포기하게 마련인 것이다 .
그런 경우 낙타 자신이 돌아다닐만큼 돌아다니다가 깨닫던지 아니면 죽고 나서 다른 세계에 들어가서 달리 계기를 찾던지 그런 수 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한번 그런 경향을 갖고 임한 경우 평생 그 경향을 갖고 죽을 때까지 그 상태로 임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죽기 3 일전에 그 상황을 파악하고 그 때라도 뱡향을 돌리면 그 나마 다행이라고 일단 보지만, 그러나 그런 경우마저도 현실적으로 희박하다.
현실에서 어떤 이가 무언가를 자신이라고 보고 또 무엇이라고 여기고 또 그 가운데 무엇이 좋다고 여기고 또 그것을 얻는 방안으로는 이러이러한 방안이 좋다고 여기는 이 일체를 거꾸로 뒤집힌 전도망상분별이라고 표현하게 된다.
앞에서 이를 착시현상 환각현상이라고 표현했는데 그것이 왜 그런가를 이해하는 것이 일단 쉽지 않다. 그 만큼 망집에 붙잡힌 정도가 극심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을 스스로 풀어내지 못한다.
생을 출발할 때 3 번에 걸쳐서 왠만해서는 풀려지지 않도록 단단히 매듭이 지어져서 이 욕계현실에 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단 앞의 내용이 착시현상이고 거꾸로 뒤집힌 내용이기에 현실 상태에서 무언가를 향하고 노력하고 추구할 때 그것이 성취된 것이 나은가 성취되지 않은 것이 나은가를 놓고 보면 둘 다 마찬가지라고 보게 된다. 그런데 그 가운데 그 나마 낫다고 보는 것은 차라리 성취되지 않은 것이 좀 더 낫다고 보게 된다. 그런데 여하튼 어중간하게 추구하는데 성취되지 못한 것도 그다지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결국 이 가운데에서 취할 것은 없는데 문제는 이 어느 경우나 그 과정이나 그 결과에서든 무언가를 계기로 그 상태를 벗어날 계기를 찾고 이를 통해 벗어나면 다행이라고 보게 된다.
그것이 일반의 세속의 입장과 극과 극으로 차이가 나기에 경전에서 이런 세속의 입장을 거꾸로 뒤집힌 망상분별 상태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물론 세속의 입장을 거꾸로 기준으로 잡고 고집하면 오히려 이처럼 경전에서 제시된 내용이 또 거꾸로 뒤집힌 내용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대하게 된다. 그것이 일반인들이 유명한 사찰 어리둥절에 도착해서 사찰에서 제시하는 내용을 대할 때 일반적으로 느끼는 어리둥절함이다.
그런데 그 사정을 과거에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많은 비유를 들었는데 그 상대의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설령 그 상대가 좋다고 보는 내용을 놓고 현실안에서 살펴도 마찬가지다.
그 상대가 좋다고 보는 내용을 가장 많이 잘 성취하는 방안이 무언가하면 그 상대가 좋다고 보는 내용과 그 방안을 모두 반대로 해서 임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본다는 의미다.
지금 원효대사가 저술한 금강삼매경론이란 논서를 살피는데 원효대사가 당시 활약한 그 시대배경은 원효대사는 세속에서 신라의 6두품 신분체계에서 관직에 진출할 수 있는 귀족의 지위에 있었고 같이 수학한 의상대사는 왕족출신으로 전해지고 있다.
고난탐정 입장에서 원효대사의 신원조회까지 한 것은 아니어서 확실하지는 않은데 검색을 통해 확인해보면 대강 다음과 같은 이력이 나온다. ...
아버지는 신라 17관등 가운데 11위 내마(柰麻)의 지위에 있던 담날(談捺)이다. 설총(薛聰)을 낳은 뒤에 스스로 소성거사(小性居士)·복성거사(卜性居士)라고 칭하기도 했으며, 고려 숙종 때(1101년)에는 대성화쟁국사(大聖和諍國師)라는 시호(諡號)를 받았다. 한국 불교 사상의 발달에 크게 기여하여 해동보살(海東菩薩), 해동종주(海東宗主)라고도 불린다.
15세 무렵에 집안의 재산을 희사(喜捨)하고 출가하여 자신의 집을 절로 지어 초개사(初開寺)라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태어난 사라수(裟羅樹) 곁에 사라사(沙羅寺)를 세웠다.
.... [네이버 지식백과] 원효 [元曉] (두산백과)
당시 원효대사라고 해서 세속의 일반인이 보는 내용과 특별히 다른 내용을 원하고 추구했겠는가. 한마디로 고통을 일부로 찾아 나섰겠는가 그렇지 않다.
그런데 원효대사가 그 당시 신라관직에서 적당히 좋은 지위를 차지하고 만족하고 살았다면 사실 상당히 안타까웠으리라고 보게 된다. 적어도 한국에서 살아가는 이들 치고 원효대사를 모르는 이가 없는데 그러나 신라 최고 관직인 이벌찬이 당시 누구였는가. 이런 것을 현재 일반적으로 기억하거나 거론하는 일 자체가 드물다.
그런데 당시 일반인의 초점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이것이 거꾸로라는 것을 쉽게 본다.
이런 사정을 인식하게 하기 위해서 과거 쓸모없는 거대한 자락도구라는 신조어를 만들어서 사정을 설명한 일이 있다.
또 경전에서는 수행자가 모든 세속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원하는 복덕을 얻는 방안을 계라고 제시하고 계를 위반하는 경우를 타승이라고 표현한다. 이것도 비슷한 의미에서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알고보면 앞에서 제시한 낙타의 비유와 비슷하다.
구체적 상황에서 계를 위반하는 사정을 살피면 결국 그 주체가 그 상황에서 그것이 자신에게 좋음을 가져다 준다고 보고 그렇게 행하는 것이다.
즉, 망집을 일으킨 상태에서 탐욕이나 분노나 어리석음에 번뇌에 묶여 다른 생명을 살해하거나 다른 이의 재산을 훔치거나 등등의 일을 행하는 것은 그것이 자신에게 당장 좋음을 주기에 그렇게 하게 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알고보면 이것이 욕계안에서 자신에게 좋음을 주는 일이 아니고 자신을 묶고 있는 타를 성취시키고 다른 타 존재가 이기게 하는 결과가 된다는 의미다. 욕계에서 가장 최극단의 지위에 있고 욕계내 각 생명을 묶어 부리고 있는 것이 타화자재천의 파순이라고 한다면 앞과 같은 행위는 결국 그런 파순에게 모든 좋음을 가져다주고 파순이 이긴 결과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수행자가 계를 어겨 앞과 같은 행위를 하는 경우를 타승이라고 표현해 제시하는 것이다.
낙타의 비유도 사정이 같다.
낙타가 자신이 다른 낙타의 부러움을 받는다고 우쭐대면서 짐을 잔뜩지고 사우디에서 중국까지 짐을 날르고 중국에서 죽게 되면 그것이 바로 타승의 결과와 비슷하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알고보면 낙타주인이 좋아하는 일이고 낙타는 공연히 쓸데없이 번뇌에 묶여 사역을 당하고 그렇게 삶을 마친 것이 된다는 의미다. 욕계의 상황이 이렇다.
한마디로 곰이 재주 부리고 사육사는 돈을 벌고 이를 지켜보는 관중은 재미를 얻는데 이 상황에 묶인 곰이나 사육사나 관중이나 상태가 다 어차피 마찬가지고 총체적으로 타승의 결과가 된다. 이렇게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까운 이나 자신이 어떤 인연으로 아는 이가 이런 상황에 있으면 이를 그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주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우선 당사자가 지금 그 상태에서 도무지 벗어나려고 하지 않고 만에 하나 강권하면 화를 내게 마련이고 또 그를 묶고 부리고 있는 욕계내 주인도 마치 축사를 경영하는 목장 주인의 심정으로 이를 달가와하지 않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니 2중으로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쓸모없는 거대한 자락도구란 표현은 무엇을 나타내는가. 그런 상황인데도 낙타나 곰은 자신이 행하는 일이 자신에게 좋음을 준다고 여기고 열심히 번뇌에 묶여 스스로 사역을 청하고 사역을 당하는 상태에 있다는 의미다.
왜 그런가는 그 생을 출발할 시점부터 그렇게 묶여서 그렇게 삶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유가 따로 없다.
그가 태어나서 그 눈으로 보니 지렁이 입장에서는 자신이 대하는 진흙이 맛있어 보이고 좋아 보이는 것이고 벌은 벌대로 자신이 대하는 꽃가루가 대단히 좋아보이고 그런 상태인 것이다. 그러니 그 상황으로 죽을 때까지 나아갈 도리 밖에는 없다. 안타깝지만 상황이 그렇다. 그 상황에서 어떻게 자신이 거꾸로 뒤집혀 묶였는지는 그 이전 이후를 잘 살펴야 하는데 그 상황에서 그럴 도리가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사람도 비슷하다. 자신이 왜 그런지 모르지만, 남자는 여자를 보면 좋아 보인다. 그런데 파리는 싫어 보인다. 무슨 이유가 필요한가.
그런데 파리도 비슷하다. 자신이 왜 그런지 모르지만, 암파리는 수파리가 좋아 보이고 수파리는 암파리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 보인다. 그런데 파리채 들고 휘두르는 사람은 그가 세상에서 인기있는 장**이건 고** 이던 다 보기 싫다. 무슨 이유가 필요한가.
이런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 상태에서 무언가 좋은것을 열심히 추구할 때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서 다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곳이 한국이므로 이렇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현재 노르웨이 국왕이 누구인지 아는가. 현재 스웨덴 국회의장이 누구인지 아는가. 현재 핀란드 대법원장이 누구인지 아는가.
지금 말하는 것은 어떤 사회에서 가장 지위가 높고 명예도 높고 또 소득수준도 높다고 여기고 다들 부러워하는 직위를 놓고 한번 질문을 던져 보는 것이다.
거리를 다니는 1000 명을 붙잡고 앙케이트 조사를 하면 1 명 정도 정답을 맞출 수 있을 지모른다. 그런데 그것은 한국내 상황이 그런 것이고 또 한국은 한국대로 앞의 나라는 앞의 나라대로 그런 것이 가장 좋다고 보고 현실에서 열심히 임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알고보면 그런 것이 별 의미가 없다고 제시하고자 이런 문제를 제시해보는 것이다.
사정이 그런데 현실에서 당사자는 죽을 때까지 마치 낙타가 임하는 상황처럼 그렇게 혼자 좋다고 여기면서 그것을 붙들고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주변에서는 또 대단히 그것을 인정하고 부러워하기도 하면서 그를 대하기에 그 낙타는 큰 문제가 없다고 여기면서 그렇게 현실에 임하는 것이다.
이것이 별 쓸모없는 거대한 자락도구의 문제다. 노르웨이 국왕 스웨덴 국회의장 핀란드의 대부호 이런 식으로 나열하면 그 나라가 만만해 보이는가. 대단히 큰 내용인 것으로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최종적으로 주는 효용이나 가치를 놓고 보면 그 자신에게도 그렇고 그 자신이 그럴 때 그 자신의 가족이나 또는 그 나라의 다른 이에게나 그 사정이 마찬가지인 것이다.
자신에게 그런 효용을 갖는 것은 그것을 다른 이에게 넘겨준다고 해도 마찬가지라는 의미다.
낙타가 자신에게 그런 효용을 갖는 짐을 다른 낙타에게 옮겨 주어도 그 낙타도 마찬가지고 또 다음 낙타도 마찬가지고 또 다음 다음 낙타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러니 이런 상태에서는 이 관계를 아무리 무량하게 나아가보아도 여기에는 답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다만 그 낙타가 그 짐을 지고 가는 동안 스스로 불만이 없기에 그나마 다행인 것이다. 그래서 타승이고 낙타이고 큰 쓸모없는 거대한 자락도구를 붙들고 거꾸로 전도망상분별에 바탕해 임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이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노력하는데 그런데 그것이 잘 되지 않으면 이런 노력 역시 어떻게 보면 부질없다고 보게 된다.
부처님은 그런 입장에서 두번 사정을 이야기해서 스스로 벗어나오게 하는데 그렇게 해도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인다고 제시한 것이다.
자비로운 부처님이 알고보면 그 상황에서 말을 안 듣는 상대를 칼을 들어 죽이는 것이 아닌데 말을 안 듣기에 그 상태로 그대로 방치하면 그 상대가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오지 못하기에 결국 죽는 것이라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수행자 입장에서는 또 그렇게 임하기 곤란한 사정이 있다. 그래서 또 자신도 수행하는 가운데 또 다른 방편도 연구해보면서 이 문제를 살피고 그리고 되도록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올 수 있도록 라인언 일병과 영희를 구출하는 노력을 다시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 [pt op tr]
▼mus0fl--Alain Bashung - Les Mots Bleus.lrc
나폴레옹이 최후를 보낸 섬이 나오는데
과거 mun 님이 황제로 지내다 요즘 운전에 전념하고 다니는 사정도 사정이 비슷하다고 본다. 당시 수많은 후궁을 거느리고 지내던 황제인 mun 님에게 후궁의 위안남으로 세월을 보내는 것이 그렇게 좋은가라고 누군가 물어 본 이후, 궁궐 생활을 접고 평소 답답하게 지내던 상황에서 벗어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앞에서 거대한 자락도구를 놓고 비유적으로 설명했는데 살아가면서 생계의 해결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즐거운 맛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수행자라고 해서 먹을 것 잠잘 것 입을 것 없이 생사현실에서 수행할 도리가 있는가.
그런데 부처님은 숲 무덤가옆, 옷 세벌, 밥을 빌어서 먹을 그릇 이 정도만 있으면 충분하고 그것이 충족되면 그 이후로는 생사를 벗어나는 수행에 임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고 훨씬 좋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즐거운 맛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가 동네에서 100 원이면 구하는 모자를 어떤 다른 이가 백화점에 가서 수천만원을 주고 구해왔다고 해서 그가 현명하다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 만큼 어리석다고 보게 되듯
즐거운 맛을 얻는데 과도하게 불필요한 거대한 자락도구를 동원하면 그것을 동원한 정도에 비례해서 그가 어리석다고 보게 된다.
이런 경우 그 상대는 거대한 자락도구는 자신만 즐거운 맛을 얻는 것이 아니고 다른 이에게도 즐거운 맛을 주게 된다. 이렇게 변명하는 경우가 있다.
마치 자신이 사용하는 거대한 자락도구가 놀이 공원의 놀이시설과 같이 여러 사람에게 즐거운 맛을 주기에 가치가 있다고 변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그런 상태이면 그 다른 상대도 또 마찬가지다.
자신이 모자를 천만원에 구해 쓰는 것이 어리석으면 그 모자를 또 다른 이에게 그렇게 쓰게 하는 것도 또 어리석다는 의미다.
결국 이런 자락도구가 최종적으로 각 주체에게 생존이나 즐거운 맛에만 기여한다면 그 사정이 처음 한 개인을 놓고 살핀 경우와 여러 주체를 놓고 살피는 경우가 다 마찬가지라는 의미다.
이는 생존이나 즐거운 맛을 주는 그 부분만 놓고 보아도 어리석고 또 그것밖에 주지 못하고 그치기에 또 어리석다.
자신이 그런 어리석은 상태인데 그 어리석은 내용을 다시 옆에 복사해 나눠준다면 어리석음이 증폭될 뿐이다.
자신만 어리석은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대하는 이마다 다 자신처럼 어리석게 삶에 임하게 하니 그만큼 문제인 것이다.
생계해결과 즐거운 맛을 얻는 것은 수행자도 기본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기는 한데 이런 거대한 자락도구 없이도 쉽게 해결하고 나머지 노력은 이번 생의 기간동안 수행에 전념해 나머지 무량겁에 걸친 생사고통을 해결하는데 투여한다면 그것이 바로 가장 현명한 것이라는 의미다.
수행자가 어떤 자리던 앉아서 정려와 삼매 수행을 하는 가운데 정려를 통한 이생희락이나 정생희락 이희묘락 사념청정의 상태와 삼매를 통해 삼매락을 얻어내는 것은 생각해보면 어떤 티겟도 필요없고 시설도 필요없고 그냥 그렇게 옷 세벌만 갖추면 어느 상태에서든 할 수 있고 그렇게 하면 욕계를 곧바로 뛰어 넘어 색계천에 진입하고 무색계에 진입하고 그리고 무량겁에 걸쳐 생사를 초월해 벗어날 수 있게 되는
최상의 방안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그 실질 사정을 잘 모르고 내실이 없는데도 외관만 번쩍번쩍하고 화려하면 이에 대부분 초점을 맞추는 것이 현실이다.
비교하면 그런 거대한 자락도구로 통해 한 생 동안 일관되게 즐거운 맛을 얻는다고 설령 가정해도 그것은 무량겁에 걸쳐 모래 하나에 불과한 맛에 집착해서 나머지 갠지스강의 모래수에 해당하는 맛을 다 잃어 버리고 생사고통에 묶이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총합적으로 안타깝고 한심스런 상태다.
다만 그 모래 하나가 눈에 당장 보이는 상황에서는 옆에서 아무리 말해도 못 알아듣는 것이 이 망상분별 편집증상 환자의 공통증상이다.
그래서 이를 해결하려면 어떤 계기가 되었던
현실에서 자신과 세계의 본 정체가 무엇인가. 그리고 평소 자신이 좋다고 보는 것의 본 정체가 무언가. 그리고 그런 좋음을 최종적으로 가장 많이 그리고 그 노력은 가장 적게 해서 넓고 길고 깊게 좋고 좋음을 얻으려면 어떤 방안을 취해야 하는가 이런 내용을 잘 살피고 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매 순간 좋다고 보는 것을 추구하고 돌진할 때마다 심판이 '타승'을 선언하게 되는 것이다.
무엇이 거꾸로 뒤집혔기에 자꾸 거꾸로 뒤집혔다고 제시하는가는 다른 조각글에서 수없이 반복했는데 핫키로 묶어두었지만, 또 이 지면에 붙이자니 이제 염체가 없다.
같은 말을 너무 반복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을 링크로 이제 처리해보는 방안도 연구를 해보야할 때가 되었다. 말이 나왔으니 한번 해봐야겠다. 다음이다.
그런데 앞처럼 거대한 자락도구의 문제를 제시할 때 현실일반에서 대부분 앞에 제시한 것과 같은 문제를 갖지만, 그러나 이런 거대한 자락도구가 오로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일반 중생이 바로 이런 부분에 대단히 접착되어 있기에 수행자가 중생을 제도하는 과정에서는 바로 이 부분에 중생을 제도할 방편을 시설하게 된다는 사정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수행자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고 집착도 하지 않고 그래서 있거나 말거나 한 어떤 강가의 돌을 가지고 이를 통해서 중생을 제도하려고 하면 제도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대력보살이 생사현실에 임해 활동하는 내용을 보면 대부분 생사현실에서 망집을 일으킨 중생들이 대단히 집착하고 소원하는 그런 부분과 모두 연결이 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아무리 평소 희희낙락하고 수행을 무시하면서 지내던 이들도 자신이나 가족이 당장 불치의 질병에 걸리고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데 그러나 온갖 병원을 다 돌아다녀도 마땅히 치료할 방안이 없다고 하면 이제 약사여래님의 문을 두드리게끔 되는 것이다.
또 마찬가지다. 갑자기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이 감옥에 갇히고 형벌을 받고 이런 상태라거나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결국 문수보살님이나 보현보살님 지장보살님 관세음보살님과 같은 대력보살님들이 활동하는 내용을 보면 결국 일반 중생이 대단히 집착하고 접착되어 있는 그런 부분에 사업처를 개설해서 중생제도사업을 행하는 사정을 볼 수 있다. 그 사정이 그렇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보살님들이 정말 질병치유나 중생이 집착하는 소원성취를 중요하다고 보기에 그런 것이 전혀 아닌 것이다.
다만 그렇게 해야만 그 중생을 이를 계기로 깨달음도 얻게 하고 수행에 임하게 해서 생사고통에서 벗어나오게 할 수 있기에 그렇게 임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경우는 그런 기능을 갖기에 그 측면과 관련해서 그것들이 다 의미를 갖게 된다.
수행자가 생사현실의 안타까운 사정을 한편으로 문제점으로 보지만, 또 그 자신이 그 생사현실에 들어가 임해 수행을 통해 복덕과 지혜자량을 구족하여 무량방편을 닦는 수행을 해나가는 것은 또 그런 의미다. 그래서 외관만 가지고 일률적으로 무엇이라고 할 일은 아닌데 외관도 그렇고 그 실질도 그런 경우는 문제인 것이다.
○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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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살핀 금강삼매경론에서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1미관행(一味觀行)이 요점이 된다라고 제시하는 한편
9 가지 문이 모두 한 가지 문에 포섭되며
한 가지 문에 9 가지가 있으니,
하나의 관(觀)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렇게 제시한다.
결국 삼매에 들어 망집상태를 벗어나는 것이 모든 수행의 핵심임을 제시하고 있다.
올려진 사진을 보거나 거리에 서서 오가는 자동차나 사람이나 건물을 보면 하나같이 실답게 여겨지고 지금이라도 다시 그 장소에 가면 또 이전과 같은 모습을 볼 수 있고 또 그 모습은 다른 이들도 그와 같이 경험하고 그 장소에 가서 대하면 눈으로도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맡고 혀로 맛보고 손으로도 만질 수 있고 자신이 명료하게 이를 모두 분별하는데 왜 이것이 망집이라고 하는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이 내용은 이미 과거 조각글에서 많이 반복해 살폈기에 또 이곳에서 살피는 것은 생략하고자 한다.
다만 그 내용을 이해한 상태에서 생사현실에서 어떻게 임하는 것이 수행자에게 요구되는가가 다시 문제된다고 본다.
현재 몸 상태가 무척 안 좋은데 과거와 달리 몸 상태가 곧바로 회복되지 않는다. 몸이 아프니 운동을 하기 힘들고 상태가 안 좋으니 울적한 마음에 담배만 찾게 되는데 이것이 악순환이다.
자신이 운동도 안하고 담배도 못 끊고 그러는 가운데 다른 이에게 운동도 하고 담배도 끊으라고 하면 이치에 맞는가.
그런데 남에게 말로 제시하기는 대단히 쉽고 자신이 그 내용을 실천하기는 대단히 힘들다.
망집현상도 마찬가지다. 이론으로 왜 위와 같은 내용이 망집인가를 설명하기는 쉽지만, 그러나 그 이론대로 현실에 임하기는 쉽지 않다.
망집을 제거하면 앞과 같이 거리에 서서 사람들이 오가고 자동차가 오가는 그 상황에서도 거기에 그런 오고감이나 그렇게 오고가는 사람이나 자동차가 없다는 내용이 무슨 의미인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은 현실에서 자신이 장례를 치루고 무덤에 시신이 들어가거나 화장터에서 자신의 몸이 화장되어 가루가 되는 상황에서도 그런 생사를 얻을 수 없다는 내용임도 함께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런 가운데 현실에서 망집현상을 이해하고 그 바탕에서 현실에서 어떻게 임하고 수행해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데 결국 보시 정계 안인 정진 정려 반야의 기본적 수행방안을 충실히 행하는 것이 그 방안이라고 본다.
이것이 이해가 안 되므로 결국 망집에 바탕에 자극받는대로 생사고통을 묶여 받는 상태로 끌려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다만, 몸에서 통증이 극심하게 느껴지는 매 순간마다 그 이론이 통증을 없애주는 것도 아니고 또 평소 자신이 좋다고 보는 것을 척척 자신에게 가져다 주고 온갖 세상의 문제를 뜻대로 해결해는 내용도 아닌 가운데 이 이론이 도대체 어디에 쓸모가 있는 이론인가.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어제 잠에 들 때도 통증이 심했는데 그런 가운데 오늘 아침에 일어나면서 무슨 숫자를 들었다. 그런데 느낌상 아무래도 이대로 오래 살기 힘들 것 같다는 암시를 받았다. 그러면서 쉬는 가운데 글은 그만 쓰고 내년에 귀환을 하는 것이 좋겠다라는 메세지를 들었다.
사실 읽고 살피고 싶은 경전이 수없이 많지만, 이것을 다 한번씩 읽고 살피려면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리고 힘들다고 보게 된다.
특히 요즘은 분량이 많으면 읽는 입장이나 살피는 입장이나 부담이 많다고 보고 간단하게 몇 페이지 분량만 올려 놓고 살피는데 이런 상태로는 다 읽는 것을 기대하기 힘들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내내 같은 이야기를 다른 형태로 여러번 반복할 뿐 별 효과는 없다고 본다.
그런데 올해가 아니면 내년 또 내년이 아니면 다음해 여하튼 언젠가는 본인도 화장터로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것이 생사를 떠나 수행에 임하는 수행자가 맞이하는 현실인 것이다.
이것을 이상하게 여길 일이 아니다.
그간 연구원들이 하나 둘 그처럼 사라지고 연락이 되지 않는데 다음 곡에서는 연구원들을 많이 나열하며 그만 정리하고 귀환 준비를 하라고 메세지를 전하는 듯 하다.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At_fountain_of_Morocco_Royal_rose_garden_in_Flower_festival_commemorative_park._(8131033157)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Lotto_Belisol-TdSL2014.jpg Español: El Lotto Belisol en la Presentación del Tour de San Luis 2014. Author nuestrociclismo ● [pt op tr] fr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A_view_of_the_temple_of_the_Emerald_Budd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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