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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4-07-11_출요경-K0982-028 본문

과거조각글/불기2564(2020)

불기2564-07-11_출요경-K0982-028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20. 7. 11. 19:33



®


『출요경』
K0982
T0212

제28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안내

○ 해제[있는경우]
● TTS 음성듣기 안내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출요경』 ♣0982-028♧





제28권





♥아래 부분은 현재 작성 및 정리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출요경 제28권

요진 양주 사문 축불념 한역

32.심의품(心意品)

1
마음은 경솔하여 수호하기 어렵고
마음이란 또 욕심이 사는 곳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항복받아야 하니
항복을 받음으로써 문득 편안해진다.

“마음은 경솔하여 수호하기 어렵고”란 무슨 뜻인가?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신 이유는 사람의 마음을 항복받아서 더럽고 나쁜 행을 버리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수행하는 사람은 항상 스스로 사유해서 마음을 일으키고 논의해야 한다.
이른바 마음이란 온갖 재앙을 불러 일으켜서 사람으로 하여금 지옥이나 아귀나 축생의 길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은 경솔하여 수호하기 어렵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마음이란 또 욕심이 사는 곳이다”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은 ‘병이 생기는 까닭은 욕심 때문이요,
그 욕심의 근본은 마음에 있다’고 관찰해야 하니,
마치 도둑이 험한 곳을 의지해야 사람을 겁탈해서 도둑질할 수 있지만 험한 곳이 아니면 도둑질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욕심도 그와 같아서 마음을 소굴로 삼아 이리저리 날뛰면서 온갖 재앙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마음이란 또 욕심이 사는 곳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항복받아야 하니,
항복을 받음으로써 문득 편안해진다”란 무슨 뜻인가?
누구나 그 마음을 항복받으면,
연령이 많건 적건 가는 곳마다 사람의 존경을 받으며,
아울러 번뇌가 없어지고 뜻이 풀려서 목숨을 마친 뒤에는 열반에 들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므로 마음을 항복받아야 하니,
항복을 받음으로써 문득 편안해진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2

마치 저 고기가 깊은 못에서 나와
마른 땅에 있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이 황황하고 급하면
온갖 악마가 날뛰게 된다.

“마치 저 고기가 깊은 못에서 나와,
마른 땅에 있는 것처럼”이란 무슨 뜻인가?
저 물고기가 못을 잃고 마른 땅에서 뒹구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이 번뇌로우면 자유를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마치 저 고기가 깊은 못에서 나와 마른 땅에 있는 것처럼”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황황하고 급하면,
온갖 악마가 날뛰게 된다”란 무슨 뜻인가?
저 언덕 위의 물고기가 이리저리 뛰면서 자유를 얻지 못하는 것처럼,
마음도 그와 같아서 온갖 번뇌로 날뛰면서 그치지 못하면 온갖 악마가 그 틈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이 황황하고 급하면,
온갖 악마가 날뛰게 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3

마음의 달림은 한 곳만이 아니니
마치 저 밝은 햇빛이 비추는 것과 같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제어하되
갈퀴로 미친 코끼리를 붙잡는 것과 같다.

“마음의 달림은 한 곳만이 아니니,
마치 저 밝은 햇빛이 비추는 것과 같다”란 무슨 뜻인가?
저 처음으로 뜨는 해가 사방을 두루 환히 비추는 것처럼,
마음도 그와 같아서 색(色)ㆍ소리[聲]ㆍ냄새[香]ㆍ맛[味]ㆍ닿임[觸]ㆍ법[法]으로 두루 돌아다니기 때문에,
스스로 다스려서 날뛰지 못하게 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저 날뛰는 코끼리가 너무 사나워 제어하기 어렵지만,
갈퀴를 가지면 제어할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마음의 달림은 한 곳만이 아니니
마치 저 밝은 햇빛이 비추는 것과 같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제어하되
갈퀴로 미친 코끼리를 붙잡는 것과 같다.

4

내 지금 이 마음을 논할진대
그것은 잡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다.
내 지금 너에게 훈계하노니
부디 그 흠이나 틈을 생기게 하지 말라.

“내 지금 이 마음을 논할진대,
그것은 잡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다”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은 그 뜻을 오로지 해서 마음을 한곳에 매어 두고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마음을 이렇게 훈계한다.
‘너,
마음 때문에 나는 무수한 겁 동안 생사를 겪으면서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이 몸을 버리고 몸을 받았다.
혹은 세 갈래의 나쁜 길과 여덟 가지 어려움이 있는 곳에 살기도 하였고,
혹은 천상과 인간으로 왕래하였다.
나는 지금 사람이 되어서 부처님의 거룩한 법을 만났으니,
근본적으로 물든 집착의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이렇게 무수한 방편으로 마음을 훈계한 뒤에 다시 ‘너는 지금 몹시 경솔하고 나약하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다’고 하라.
이렇게 마음과 몸을 관찰하면 모든 애착의 결박이 반드시 다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내 지금 이 마음을 논할진대
그것은 잡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다.
내 지금 너에게 훈계하노니
부디 그 흠이나 틈을 생기게 하지 말라.

5

그대의 마음이 함부로 떠돌면서
거리낌없이 방탕하게 놀게 하지 말라.
나는 지금 너를 걷어잡노니
마치 사나운 코끼리를 다스리듯 한다.

“그대의 마음이 함부로 떠돌면서,
거리낌없이 방탕하게 놀게 하지 말라”란 무슨 뜻인가?
마음이 사물이 되면 이리저리 진정하질 못하고서,
색ㆍ소리ㆍ냄새ㆍ맛ㆍ닿임ㆍ법에 집착하니,
마치 원숭이가 과실을 탐내다가 하나를 버리고는 또 하나를 취하면서 그 뜻이 안정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마음도 그와 같아서 제멋대로 갖가지 생각을 내고 온갖 근심을 만들면서도 그것을 버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대의 마음이 함부로 떠돌면서,
거리낌없이 방탕하게 놀게 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나는 지금 너를 걷어잡노니,
마치 사나운 코끼리를 다스리듯 한다”란 무슨 뜻인가?
나는 부정관(不淨觀)으로 마음을 거두어서 날뛰지 못하게 하니,
마치 저 사나운 코끼리를 다스려서 함부로 날뛰지 못하게 하듯이 한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너를 걷어잡노니,
마치 사나운 코끼리를 다스리듯 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6

나고 죽는 것이 한량이 없고
가고 오는 것도 실마리가 없다.
그러므로 집(몸)을 구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그 태를 받는다.

“나고 죽는 것이 한량이 없고,
가고 오는 것도 실마리가 없다”란 무슨 뜻인가?
사람은 생사에 처해서 헤아릴 수 없는 여러 겁을 거치는데,
지옥이나 아귀나 축생의 세계에 태어나서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받는다.
그러므로 “나고 죽는 것이 한량이 없고,
가고 오는 것도 실마리가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 집을 구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그 태를 받는다”란 무슨 뜻인가?
그 행의 자취를 없애지 않으면 가고 오기를 쉬지 못하고,
아름다운 몸뚱이에 사로잡히고 모양과 색에 탐착하여 계속해서 그 태를 받게 된다.
그러므로 “그 집을 구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그 태를 받는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7

이 집을 잘 관찰해서
다시는 그 집을 짓지 말지니
들보와 기둥도 다 부러지고
누각도 모두 헐리게 마련이다.

“이 집을 잘 관찰해서”란 무슨 뜻인가?
이 몸은 위태롭고 나약해서 견고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다 허물어지는 것으로서 마멸법(磨滅法)이니,
설사 저 수미산이나 큰 바다라도 다 부서지고 마르는 것이다.
왜 다시는 집을 짓지 말라고 하는가?
그것이 근원이 되어서 모든 병이 생기는 줄을 알기 때문에 그 몸을 받음으로써 다섯 가지 요소의 집을 짓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집을 잘 관찰해서,
다시는 그 집을 짓지 말지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들보와 기둥도 다 부러지고,
누각도 모두 헐리게 마련이다”란 무슨 뜻인가?
이렇게 논하는 것은 번뇌의 근본을 논하는 것이니,
몸은 허물어지고 4대(大)는 흩어지는 것이므로 만물은 오래 모여 있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종합해서 도를 이룬 사람을 논한다면,
몸을 버리고 정신이 떠나서 말쑥히 허공과 같고,
온몸의 사지와 뼈는 모두 그 근본으로 돌아간다.
즉 땅의 요소는 땅으로 돌아가고 물의 요소는 물로 돌아가며,
불의 요소는 불로 돌아가고 바람의 요소는 바람으로 돌아가면,
또 그 정신은 열반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다시 세상에 와서 몸을 받을까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들보와 기둥도 부러지고,
누각도 모두 헐리게 마련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8

그 마음이 행을 여의면
그 중간도 없어지련만
그 마음이 경솔하기 때문에
단속하기도 수호하기도 어렵다.

“그 마음이 행을 여의면”이란 무슨 뜻인가?
이른바 행은 모든 번뇌의 우두머리이니,
중생들이 생사에 빠져 있는 것도 모두 행을 짓기 때문에 그런 재변을 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인은 이 세상에 내려와 스스로 부지런히 닦아서 모든 행의 근본을 끊어 다시 나지 못하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 마음이 행을 여의면”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 중간도 없어지련만”이란 무슨 뜻인가?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법이 남음 없이 아주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중간도 없어지련만”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 마음이 경솔하기 때문에”란 무슨 뜻인가?
경전에서 말한 것과 같으니,
내가 지금 마음의 근본을 말하리라.
즉 마음은 조급하고 신속해서 하루 낮 하룻 밤 동안에 9백99억의 생각이 있어서 찰나찰나 다른 것을 생각하기 때문에 그 짓는 행도 같지 않다.
그러므로 “그 마음이 경솔하기 때문에”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단속하기도 수호하기 어렵다”란 무슨 뜻인가?
생각을 내면 곧 선악의 행을 짓는데,
선을 생각하는 마음은 메아리처럼 이내 이르면서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악을 생각하는 마음도 소리를 응하는 메아리 같아서 아무도 그것을 붙들지 못한다.
마치 호랑이ㆍ이리ㆍ뱀ㆍ독사 따위의 나쁜 짐승들이 마음을 단속하게 함으로써,
나쁜 짓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단속하기도 수호하기도 어렵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9

지혜로운 사람은 스스로 바르게 할 수 있으니
마치 활장이가 화살을 바루듯 한다
성을 내고는 성냄을 알고
성이 나면 성난 줄 안다.

“지혜로운 사람은 스스로 바르게 할 수 있으니,
마치 활장이가 화살을 바루듯 한다”란 무슨 뜻인가?
누구나 공부할 때에는 먼저 그 몸을 바루어야 하니,
항상 모든 것이 괴롭고 공이라는 것을 알아서 내 몸이 아니라는 것과 내 몸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하루 여섯 번 그 행을 돌아보고 스스로 몸을 경계함으로써 삿되거나 비뚤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마치 익숙한 활장이가 화살을 잘 다루어 곧게 하고 마디를 없게 하면 아무 어려움 없이 도둑을 막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스스로 바르게 할 수 있으니,
마치 활장이가 화살을 바루듯 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성을 내고는 성냄을 알고,
성이 나면 성난 줄 안다”란 무슨 뜻인가?
원수를 미워하면 원수는 자꾸 생기는 것이니,
원한으로 원한을 쉬게 했다는 것은 옛날부터 없는 일이다.
반드시 원한을 쉬고 원한을 없애야 비로소 원한이 없어진 것을 안다.
그러므로 “성을 내고는 성냄을 알고,
성이 나면 성난 줄 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10

이 뜻이 스스로 만들었고
부모가 그렇게 시킨 것이 아니다.
삿됨을 버리고 선정으로 나아가
복을 닦되 돌아서지 말라.

내 뜻이 온갖 행을 지어서 몸의 재앙을 부르는 것이니,
그 악은 모두 마음으로 말미암아 지은 것이요,
부모나 형제ㆍ친척ㆍ종들이 한 일이 아니다.
이것을 분명히 아는 사람이라야 비로소 삿됨으로부터 번뇌가 생기는 줄을 알고 그 번뇌를 수호하지 않기 때문에 그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이 뜻이 스스로 만들었고
부모가 그렇게 시킨 것이 아니다
삿됨을 버리고 선정으로 나아가
복을 닦되 돌아서지 말라.

11
지붕을 촘촘히 덮지 않으면
비가 내리면 곧 비가 새고
사람이 그 행을 사유하지 않으면
음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샌다.

세상 사람들이 궁전이나 집을 지을 때 그 지붕을 촘촘히 덮지 않으면 비가 내리는 날에는 여기저기서 비가 샌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그 행을 바로 갖지 않으면 색ㆍ소리ㆍ냄새ㆍ맛ㆍ닿임ㆍ법에 대해서 생각이 새어 나오고,
또 부정관을 사유하지 않으면 세 가지 독의 물이 사납게 넘쳐 나온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지붕을 촘촘히 덮지 않으면
비가 내리면 곧 비가 새고
사람이 그 행을 사유하지 않으면
음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샌다.

모두 게송으로 말해야 하지만 그 주요한 것만 간략히 말하면,
어리석음도 그러하고,
분노도 그러하고,
간탐과 질투도 그러하고,
교만도 그러하고,
애욕이나 결박도 또한 그렇다.

12

지붕을 덮되 촘촘히 하면
비가 내려도 새지 않는다.
사람이 스스로 사유해서 행하면
음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없다.

마치 기술이 아주 치밀한 사람이 궁전이나 집을 치밀하게 지으면 비가 내려도 새지 않는 것처럼,
사람이 잘 수행하여 음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버리면 어떤 근심도 새어 나오지 않는다.
모두 게송으로 말해야 하지만 주요한 것만 간략히 말하면,
어리석음도 그렇고 분노도 그러하며,
간탐과 질투도 그렇고 교만도 그러하며,
애욕의 결박도 또한 그렇다.

13

마음은 모든 법의 근본이 되니
마음이 주인이 되고 마음이 시킨다.
마음속으로 악을 생각하고는
그대로 말하고 그대로 행하면
죄의 고통이 그를 따르기가
수레가 바퀴 자국 내듯 하리라.

그때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지금부터는 먼저 권식게(勸食偈)를 외운 뒤에 음식을 먹어야 한다.”
사위성 밖의 어떤 마을에 두 거지가 있었다.
그들은 여러 스님이 있는 곳에 걸식하러 갔는데,
마침 그 때는 스님들이 아직 권식게를 외우기 전이었다.
그 중의 한 거지가 질투심이 치성해서 이내 나쁜 마음을 일으켰다.
‘만일 내가 훗날 자유를 얻어서 국왕이 되면 수레바퀴로 저 도인들의 머리를 깔아 뭉개리라’
권식게를 외운 뒤에 그 거지는 밥을 얻어먹고 또 많은 재물을 얻고서는 길 가에 나와 배가 불러서 졸고 있었다.
마침 수백 대 수레가 그 길을 지나가다가 그 거지 머리를 깔아서 끊어버렸다.
거지는 죽은 뒤에 지옥에 들어가 한량없는 고통을 받았다.

14

마음은 모든 법의 근본이 되니
마음이 주인이 되고 마음이 시킨다.
마음속으로 선을 생각하고는
그대로 말하고 그대로 행하면
행복은 스스로 그를 따르기가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듯 하리라.

그 둘째 거지가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만일 내가 훗날 왕이 되어서 부귀하면,
저 스님들을 모두 공양하여 아무 것도 아쉬움이 없게 하리라.

그리하여 그 거지는 마음껏 음식을 얻어먹고는 이내 나와서 나무 밑에 누워 있었는데,
그 정신이 말쑥하여 어지러운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당시 그 나라의 왕이 죽자 그 뒤를 이을 만한 왕의 족성이 없어서 백성들과 모든 관리들이 모여서 의논하였다.
“지금 우리 나라에는 주인이 없고 또 그 뒤를 이을 사람이 없으니,
백성들이 모두 흩어져서 오래지 않아 국가가 망할까 두렵소.
이 때문에 지금 그대들과 의논하는 것이니,
어떤 방법을 써야 나라가 온전하고 백성들이 딴 마음을 먹지 않게 되겠소?”
그 중 제일 사리에 밝고 지혜로운 신하가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지금 나라의 주인을 잃고 그 뒤를 이을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을 보내어 국내를 돌아다니다가,
만일 위엄스런 상이 있고 복록이 풍족한 사람이 있으면 왕위를 이어받게 합시다.”
그래서 곧 사람을 보내어 국내를 돌아다니면서 살펴보게 하였다.
마침 어떤 나무 밑에 누워 잠자는 사람이 있는데,
해가 기울어도 그 나무 그림자가 옮겨지지 않고 일산처럼 그 사람 몸을 덮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사자는 즉시 다가가서 자세히 살펴보고는 ‘사람 중에서 이보다 더 특출한 사람 있겠는가?
이 사람은 바로 왕위를 이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사자는 그를 불러서 깨운 뒤에 수레에 싣고는 앞뒤로 에워싸서 왕궁으로 갔으니,
사람들은 만세를 부르고 나라는 태평하였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이 두 가지 이치를 관찰하시고,
곧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마음은 모든 법의 근본이 되니
마음이 주인이 되고 마음이 시킨다.
마음속으로 악을 생각하고는
그대로 말하고 그대로 행하면
죄의 고통이 그를 따르기가
수레가 바퀴 자국 내듯 하리라.

마음은 모든 법의 근본이 되니
마음이 주인이 되고 마음이 시킨다.
마음속으로 선을 생각하고는
그대로 말하고 그대로 행하면
행복이 스스로 그를 따르기가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듯 하리라.

15

생각이 고요해지지 않으면
치우친 소견을 끊지 못한다.
복의 힘은 악을 잘 막나니
그것을 깨달은 자를 현자라 한다.

“생각이 고요해지지 않으면,
치우친 소견을 끊지 못한다”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으로서 그 마음이 방탕하여 전일(專一)할 수 없다면,
비록 바른 법을 듣더라도 그 마음이 통하지 않는다.
이른바 ‘끊지 못한다’는 것은 계(戒)ㆍ도(盜)ㆍ신(身)ㆍ사(邪) 등의 네 가지 나쁜 소견을 끊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각이 고요해지지 않으면,
치우친 소견을 끊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복의 힘은 악을 잘 막나니,
그것을 깨달은 자를 현자라 한다”란 무슨 뜻인가?
대개 선을 쌓는 사람은 음욕ㆍ분노ㆍ우치와 교만한 마음을 버리니,
그런 사람은 도를 행하기 쉽고 거기서 생기는 행복이 차츰 도량에 모인다.
그러므로 “복의 힘은 악을 잘 막나니,
그것을 깨달은 자를 현자라 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16

깨끗하지 못한 마음 가지고
다른 사람을 성나게 하지 말라.
만일 법을 얻어서 알고 싶다면
그것은 바로 부처님 말씀이니

온갖 교만을 떨쳐 버리고
그 마음 지극히 깨끗해져서
남을 해칠 생각을 버린다면
비로소 바른 법을 얻게 되리라.

여러 부처님은 항상 하늘눈으로 3세(世)의 일을 관찰하시는데,
미래 세상의 무지한 중생들이 스스로 잘난 체하고 남을 업신여기면서 삼보를 섬기지 않을 줄 알고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족성자들이여,
내 몸은 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남긴 법은 존재할 것이니,
너희들은 내 교리와 계율을 전해 받아서 후세 사람들에게 퍼뜨려라.
어떤 중생이라도 그 법을 들으면 모두 구제를 받을 것이다.”
어느 비구는 바라리대국(波羅梨大國) 계두(鷄頭) 동산에서 수천만 명에게 앞뒤로 둘러싸인 채,
높은 법상에 올라앉아서 법을 연설하여 그 법을 듣는 이로 하여금 모두 구제받아 제각기 그 소원을 이루게 하였다.
외국의 옛날 법이나 우리 불법 안의 의식은 절에 들어가서 법을 듣거나 부처님께 예배하는 사람은 모두 모자를 벗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떤 국왕이 본래부터 머리털이 적고 부스럼이 있었는데,
또 신을 신은 채 스스로 부귀를 뽐내면서 고운 모직 천으로 머리를 싸고 절에 들어와 설법을 들으려 하였다.
왕은 그 비구에게 말하였다.
“비구여,
나를 위해 설법해 주시오.”
비구가 대답하였다.
“어떤 중생도 신을 신은 채로는 설법을 듣지 못한다고 하신 부처님의 분부가 계십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화를 내면서 신을 벗고는 다시 비구에게 말하였다.
“스님은 빨리 설법하여 내 마음을 즐겁게 하시오.
만일 내 뜻을 어기면 스님 목을 베겠소.”
비구가 말하였다.
“또 부처님 계율에는 ‘머리를 싸맨 사람에게는 설법하지 못한다’고 금하고 있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자 더욱 화를 내면서 왕의 위엄을 떨치며 비구에게 말하였다.
“스님은 지금 나를 욕보이려고 일부러 거절하는 것이오?
정 그렇다면 나는 지금 머리를 드러내고 스님 설법을 듣겠소.
만일 내 의심을 풀어 주지 못하면 스님 몸을 세 동강으로 내겠소.”
그러자 비구는 왕을 향해 다음 게송을 읊었다.

깨끗하지 못한 마음 가지고
다른 사람을 성나게 하지 말라.
만일 법을 얻어서 알고 싶다면
그것은 바로 부처님 말씀이니

온갖 교만을 떨쳐 버리고
그 마음 지극히 깨끗해져서
남을 해칠 생각을 버린다면
비로소 바른 법을 얻게 되리라.

왕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운 얼굴로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온몸을 땅에 던지면서 스스로 귀의하고 참회하였다.
그리고 몸과 입과 뜻의 허물을 소멸시켜 달라고 하고는 꿇어앉아 합장하고서 비구에게 아뢰었다.
“알 수 없습니다.
그 게송은 부처님의 신령스런 입으로 하신 말입니까,
아니면 존자님이 내 마음을 알고 하신 말입니까?”
비구가 말하였다.
“그 게송은 바로 부처님의 신령스런 입으로 하신 말씀이요.
오래 전에 하신 말씀이지 지금 하신 말씀이 아니오.”
왕은 가만히 생각하였다.
‘놀랍다.
큰 성인의 세 가지 밝은 지혜는 통달하지 못한 것이 없구나.
그래서 장래에 우리들이 성내면서 해칠 마음이 있다는 걸 아신 것이니,
이제 거듭거듭 참회하면서 다시는 새로 짓지 않으리라.

그러자 비구는 그를 위해 미묘한 법을 차례로 설명하였다.
왕은 그 자리에서 모든 번뇌가 없어지고 법눈이 청정해지면서 법을 보고 법을 얻는 데 두려워하거나 어려워하는 마음이 없어졌다.

17

마음이 고요히 쉬지 못하고
그리고 법을 알지 못하면
그는 세상 일에 미혹되어서
바른 지혜가 있을 수 없다.

“마음이 고요히 쉬지 못하고,
그리고 법을 알지 못하면”이란 무슨 뜻인가?
마음은 빨리 흐르는 물과 같아서 막거나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물이 그 샘물의 근원에서 솟아나와 밤낮 아래로 흘러갈 때,
그것을 샘물의 근원으로 돌이키려 하여도 그것은 불가능한 어려운 일이다.
그런 사람은 바른 법을 모를 뿐 아니라,
나아가야 할 곳에 나아갈 줄을 알고 버려야 할 것을 버릴 줄 안다고 할 수 없으니,
마치 귀머거리가 다섯 가지 소리를 듣고 장님이 촛불을 든 것과 같다.
그러므로 “마음이 고요히 쉬지 못하고,
그리고 법을 알지 못하면”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는 세상 일에 미혹되어서,
바른 지혜가 있을 수 없다”란 무슨 뜻인가?
저 수행하는 사람이 세상의 즐거움에 집착해서 삿되고 뒤바뀐 소견을 믿고,
물과 불과 해와 달과 또 모든 신을 섬기거나 혹은 선조와 부모ㆍ형제에 제사하면서 마음속으로 바른 법의 공덕을 얻으려 한다면,
그것은 어떤 사람이 허공에 집을 지으려는 것과 같아서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이다.
경전에서도 ‘생물을 죽이거나 생물로 제사하는 것은 번갈아 해를 받는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세상 일에 미혹되어서,
바른 지혜가 있을 수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18

서른 여섯 가지 빠른 흐름은
모두 다 마음에서 새어 나나니
삿된 소견이 계속해 생기는 것은
탐욕 따위의 번뇌에 의한 것이다.

“서른 여섯 가지 빠른 흐름은”이란 서른여섯 가지 그릇된 생각을 말한 것이다.
즉 몸의 사견에 셋이 있으니 삼계에 각각 하나씩이요,
변견(邊見)에도 셋이 있으니 욕계에 하나,
색계에 하나,
무색계에 하나요,
사견에는 열둘이 있으니 욕계에 넷,
색계에 넷,
무색계에 넷이며,
견도(見盜)에 열둘이 있으니,
욕계에 넷,
색계에 넷,
무색계에 넷이며,
계도(戒盜)에는 여섯이 있으니 욕계에 둘,
색계에 둘,
무색계에 둘이다.
이것을 합하면 모두 서른여섯으로서 세상 사람들을 미혹시켜 바른 소견을 보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미연에 방지한다.
그러므로 “서른여섯 가지 빠른 흐름은,
모두 다 마음에서 새어 나나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 서른여섯 가지 그릇된 생각은 모두 마음에서 생겨서 갖가지로 흘러 넘치다가 드디어 삿된 소견을 이룬다.
그러므로 “모두 다 마음에서 새어 나나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삿된 소견이 계속해 생기는 것은,
탐욕 따위의 번뇌에 의한 것이다”란 무슨 뜻인가?
삿된 소견이란 계상견(計常見)과 단멸견(斷滅見)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 두 소견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계상견은 단멸견과 어울리지 않고 단멸견은 계상견과 어울리지 않으므로 두 사람의 소견은 각기 다른데,
이 사견 때문에 지옥ㆍ아귀ㆍ축생의 세계를 끌어오고,
탐욕과 분노와 무명의 세 가지 생각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삿된 소견이 계속해 생기는 것은,
탐욕 따위의 번뇌에 의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19

뜻을 버리려거든 뿌리째로 버릴지니
사람은 뜻을 따라 윤회한다.
조금이라도 좋던 이름 없어지면
마치 새들이 빈 숲을 버리듯 한다.

“뜻을 버리려거든 뿌리째로 버릴지니,
사람은 뜻을 따라 윤회한다”란 무슨 뜻인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다섯 가지 소리를 좋아한다.
눈으로 색을 보면 눈의 인식작용을 일으켜 드디어 눈의 감관이 되고,
귀로 소리를 들으면 귀의 인식작용을 일으켜 드디어 귀의 감관이 되며,
코로 냄새를 맡으면 코의 인식작용을 일으켜 드디어 코의 감관이 되고,
혀로 맛을 알면 혀의 인식작용을 일으켜 드디어 혀의 감관이 되며,
몸으로 촉감을 알면 몸의 인식작용을 일으켜 몸의 감관이 되고,
뜻으로 법을 분별하면 뜻의 인식작용을 일으켜 드디어 뜻의 감관이 된다.
그러므로 “뜻을 버리려거든 뿌리째로 버릴지니,
사람은 뜻을 따라 윤회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조금이라도 좋던 이름 없어지면,
새들이 빈 숲을 버리듯 한다”란 무슨 뜻인가?
사람들이 허물을 지을 때는 뒷일을 걱정하지 않으니,
날마다 선을 쌓았다가도 잠깐 동안에 잃어버리기 때문에 시주들의 비방을 받는다.
즉 ‘우리는 본래부터 청정한 계율을 갖춘 사람이라고 불렀는데,
어찌 오늘 그럼 흠을 발견할 줄을 알았겠는가’ 하고,
모두 박대하면서 다시는 그를 존경하지 않는다.
마치 새들이 무성한 숲 속에서 다섯 가지 과실과 향기로운 꽃을 탐하여 즐기다가 꽃과 과실이 다 없어지면 모두 그 숲을 버리고 떠나는 것처럼,
허물을 범한 사람도 그 비유가 마찬가지라서 복이 다하고 죄가 닥치면 모든 것이 흩어지고 만다.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좋던 이름 없어지면,
새들이 빈 숲을 떠나듯 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20

고요한 곳에서 조용히 공부하고
탐욕의 자취를 쫓아다니지 말라
그 뜨거운 철환(鐵丸)을 삼키지 말 것이니
울부짖으며 그 과보를 받기 때문이다.

“고요한 곳에서 공부하고,
탐욕의 자취를 쫓아다니지 말라”란 무슨 뜻인가?
항상 마음의 행을 잘 붙잡아서 탐욕에 끄달리지 말라는 것이니,
탐욕은 사람을 미혹시켜 높고 낮은 것을 분별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요한 곳에서 조용히 공부하고,
탐욕의 자취를 쫓아다니지 말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 뜨거운 철환을 삼키지 말 것이니,
울부짖으며 그 과보를 받기 때문이다”란 무슨 뜻인가?
불에 태워지면 그 고통이 골수에 사무치는 것 같고 죽어서도 지옥에 들어가 갖가지 고통을 받으니,
뜨거운 기둥을 안고 뜨거운 철환을 삼키면서 아무리 울부짖으며 과보를 받아도 호소할 곳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리하여 뜨거운 철환을 삼키지 말 것이니,
울부짖으며 과보를 받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21
일어나야 할 때 일어나지 않고
젊은 힘 믿고 정진하지 않으면
비천한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고
게을러서 지혜를 얻지 못한다.

“일어나야 할 때 일어나지 않고”란 무슨 뜻인가?
몸이 소위 일어난다는 것은 부처와 좋은 벗을 만나더라도 좋은 공덕을 짓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때를 만나더라도 사람의 행에 아무 이익도 없는 것이니,
하늘에서 일곱 가지 보물을 비처럼 내려서 이 세계에 두루 차더라도 어리석은 사람은 미욱하여 그 보물을 챙기지 못하고,
항상 사람의 몸을 받아도 깊은 사려가 없기 때문에 사람이라고는 칭해도 아무 이익이 없다.
이것도 마찬가지라서 부처님 세상을 만나서 깊은 법을 펼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미혹에 사로잡혀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일어나야 할 때 일어나지 않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젊은 힘 믿고 정진하지 않으면”이란 무슨 뜻인가?
어떤 수행하는 사람은 기력이 강장하여 교화를 받을 수 있는데도 게을러서 그다지 정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젊은 힘 믿고 정진하지 않으면”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비천한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고,
게을러서 지혜를 얻지 못한다”란 무슨 뜻인가?
그는 스스로 생사에 빠져서 후생의 재앙을 생각하지 않으니,
부처님 세상을 만나 좋은 벗과 현성을 만나더라도 지혜를 받아들이고 이치를 분별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비천한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고.,
게을러서 지혜를 얻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22

어지러운 관(觀)이든 바른 관이든
모두가 뜻을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다.
능히 깨달아서 마음을 관찰할 줄 알아야 하니
어리석은 마음은 자주자주 난동을 부리기 때문이다.

“어지러운 관이든 바른 관이든,
모두가 뜻을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다”란 무슨 뜻인가?
이른바 어지러운 관이란 탐욕의 관ㆍ분노의 관ㆍ무명의 관이니,
수행하는 사람은 그런 관을 떠나 바른 관을 익혀야 한다.
바른 관의 선정은 초월적이고 뛰어났기 때문에 모든 선정 중에서 제일이니,
비록 성인은 아니더라도 번뇌가 다하고 집착이 없으면 이 관정(觀定)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어려운 관이든 바른 관이든,
모두가 뜻을 말미암아 뜻에서 생기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능히 깨달아서 마음을 관찰할 줄 알아야 하니,
어리석은 마음은 자주자주 난동을 부리기 때문이다”란 무슨 뜻인가?
공부하는 사람은 생사를 벗어나는 관,
즉 공ㆍ무상ㆍ무원을 익혀야 한다.
그리하여 마음의 때를 씻고,
세상의 여덟 가지 일을 버리며 청정한 마음을 닦고 온갖 상호(相好)를 잘 알아서 그 하나하나가 적멸하면,
그의 가르침은 아주 뛰어나서 아무도 따르지 못할 것이다.
네 가진 진리는 진리 그대로이니 밤낮으로 닦아 익혀야 한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미혹에 사로잡혀서 그 뜻이 자주 어지러워지는 것이 마치 달고 맛난 음료수를 시고 쓰다고 하는 것과 같나니,
아무리 성인인들 어찌 그 입을 찢고 먹일 수 있겠는가?
뜻을 집착해서 미혹되면 이처럼 고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능히 깨달아서 마음을 관찰할 줄 알아야 하니,
어리석은 마음은 자주자주 난동을 부리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23

지혜로운 사람은 이렇게 관찰하고
염(念)하는 사람은 오로지 행하지만
잠깐이라도 그 뜻에 집착이 없는 것은
오직 부처님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렇게 관찰하고,
염(念)하는 사람은 오로지 행하지만”이란 무슨 뜻인가?
이른바 지혜로운 사람은 세밀한 것까지 연설하고 의심이나 어려움을 풀어 주면서 인정(人情)을 미리 밝히니,
대중 속에 있어도 홀로 뛰어나 짝할 이가 없다.
그래서 자주 그 무리들에게 묻기를,
“누가 의혹이 있는가?
나는 큰 지혜의 불로 너희들의 의심덩이를 태워 주리라”고 한다.
그리고 수시로 관찰해서 그 뜻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니,
공부하는 사람의 닦는 바는 이것을 업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이렇게 관찰하고,
염(念)하는 사람은 오로지 행하지만”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잠깐이라도 그 뜻에 집착이 없는 것은,
오직 부처님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은 선정의 삼매를 얻어서 이 세상의 유루행(有漏行)을 모두 버리고,
또 세속의 선(善)의 근본이나 해탈 선정의 뜻까지도 버려야 하지만,
누가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오직 부처님만이 버릴 수 있다.
그러므로 “잠깐이라도 그 뜻에 집착이 없는 것은,
오직 부처님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24

이 몸 보기를 빈 병처럼 보고
마음을 안정시키기를 성 쌓듯 하여
지혜로 악마와 싸울 때에는
언제나 이기고 패하지 말라.

“이 몸 보기를 빈 병처럼 보고”란 무슨 뜻인가?
저 낡은 병은 안팎이 견고하지 못하기 때문에 비록 물건을 담더라도 오래가지 못하듯이,
네 가지 요소로 된 이 몸도 마찬가지라서 항상 괴롭고 허물어져가므로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
또 저 낡은 병은 좋은 것도 담을 수 있고 나쁜 것도 담을 수 있지만 마침내는 깨어져 잿더미로 돌아가는 것처럼,
이 위태롭고 가냘픈 몸도 마찬가지라서 좋은 것도 받고 추한 것도 받지만 선을 받으면 갖가지 선의 공덕으로 그 몸을 장식하고,
악을 받으면 선행을 버리고 그 마음을 더럽히기 때문에 목숨을 마친 뒤에는 헛되이 무덤으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이 몸 보기를 빈 병처럼 보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마음을 안정시키기를 성 쌓듯 하여”란 무슨 뜻인가?
성을 튼튼히 쌓고 성 둘레 못을 깊이 파는 까닭은 오직 도적들이 와서 백성들의 물건을 훔쳐 갈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마음도 마찬가지라서 갖가지 번뇌에 얽매일까 걱정하는 것이니,
성이 튼튼하면 도적들이 그 틈을 타지 못하듯이,
마음이 바르고 삿되지 않으면 번뇌가 그 틈을 타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마음을 안정시키기를 성 쌓듯 하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지혜로 악마와 싸울 때에는”이란 무슨 뜻인가?
기량을 갖추되 여섯 가지 기예를 완전히 갖추면 저 자재천자와 싸울 수도 있다.
그러므로 “지혜로 악마와 싸울 때에는”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언제나 이기고 패하지 말라”란 무슨 뜻인가?
음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이기고 딴생각이 없으며,
항상 뜻을 잡아 현전함으로써 다른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이기고 패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요약해서 말하면 이 세상을 보는 것도 그와 같다.

25

이 몸 보기를 물거품처럼 보고
또 불꽃이나 아지랑이인 줄 알아서
지혜로 악마와 싸울 때에는
언제나 이기고 패하지 말라.

마치 물거품이 생기자마자 곧 없어져서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것처럼,
네 가지 요소로 된 이 몸도 마찬가지라서 모이면 사람이 되고 흩어지면 기운이 된다.
본래 부모로 말미암아 이 네 가지 요소의 몸이 있게 되었지만 그 본말을 미루어 보면 모두 적멸한 것이라 추궁해 보아도 그 앞을 볼 수 없고 찾아보아도 그 뒤를 볼 수 없다.
생기고 생겼다가 사라지고,
생기고 생기면서 생기며,
사라지고 사라지면서 사라지고,
사라지고 사라졌다 생기지마는,
생겨도 그 생기는 것을 볼 수 없고 사라져도 그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없다.
하지만 범부들은 생각이 뒤바뀌어서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이 몸 보기를 물거품처럼 보고
또 불꽃이나 아지랑이인 줄을 알아서
지혜로 악마와 싸울 때에는
언제나 이기고 패하지 말라.

요약해서 말하면 세상을 보는 것도 그와 같다.

26

마음은 일곱 가지 깨달음의 갈래[七覺意]를 생각하고
뜻을 평등하게 가져서 어긋남이 없게 하며
어리석고 미혹한 생각을 버리고
생멸이 없는 진리를 항상 즐겨라.
번뇌가 다해 더러움이 없으면
이 세상에서 열반에 들 것이다.

“마음은 일곱 가지 깨달음의 갈래를 생각하고,
뜻을 평등하게 가져서 어긋남이 없게 하며”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은 일곱 가지 깨달음의 갈래의 법을 닦아 익힐 때,
밤낮으로 생각하여 마음에서 놓아 버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마음은 일곱 가지 깨달음의 갈래를 생각하고,
뜻을 평등하게 가져서 어긋남이 없게 하며”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어리석고 미혹한 생각을 버리고,
생멸이 없는 진리를 항상 즐겨라”란 무슨 뜻인가?
가령 어떤 중생이든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체 중생을 대하지 않으면 그는 도에 이르지 못하고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할 것이니,
반드시 어리석고 미혹한 생각을 버리고 색이라는 생각에 집착하지 않아야 비로소 진실한 도에 합할 것이요,
생멸이 없는 평등한 법을 즐기면서 생멸이라는 생각이 없어야 비로소 도의 방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므로 “어리석고 미혹한 생각을 버리고,
생멸이 없는 진리를 항상 즐겨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번뇌가 다해 더러움이 없으면,
이 세상에서 열반에 들 것이다”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은 유루를 없애고 무루를 이룰 때 마음이 해탈하고 지혜가 해탈하여 현재에서 자재를 얻는다.
그런 사람은 무위(無爲)의 경계에 들어가 열반을 얻어서 번뇌가 영원히 사라지고 다시는 몸을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번뇌가 다해 더러움이 없으면,
이 세상에서 열반에 들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27

스스로 그 뜻을 단속하기를
이우(氂牛)가 그 꼬리 보호하듯이 하고
항상 일체에 보시 행하면
끝내 그 즐거움을 여의지 않으리라.

“스스로 그 뜻을 단속하기를,
이우가 그 꼬리 보호하듯이 하고”란 무슨 뜻인가?
마음이 도를 행하면 그 지음[造作]에 단서가 없어야 하니,
항상 그 뜻을 거두어 잡아서 실수가 없도록 하여야 한다.
마치 이우가 밤낮 그 꼬리를 보호하면서 끊길까 두려워하는 것과 같다.
차라리 그 목숨을 잃고 그 배우자를 잃을지언정 그 꼬리의 털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려는 것처럼,
공부하는 비구도 그와 같아서 차라리 신명을 잃을지언정 계율은 범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스스로 그 뜻을 보호하기를,
이우가 그 꼬리 보호하듯이 하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항상 일체에 보시 행하면,
끝내 그 즐거움을 여의지 않으리라”란 무슨 뜻인가?
반드시 일체 중생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되 원수까지도 갓난애처럼 보면,
저 아수륜ㆍ가류라ㆍ전다라ㆍ마휴륵ㆍ인비인(人非人)들도 그 틈을 타지 못하기 때문에 그는 스스로 복을 받아서 그 쾌락이 끝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일체에 보시 행하면,
끝내 그 즐거움을 여의지 않으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28

하나의 용이 무리 중에서도 뛰어났으니
용 중에서도 여섯 개 어금니를 가졌다.
그 마음마음마다 스스로 평등하여
혼자서 넓은 들판을 즐기는구나.

옛날 구심(拘深)이라는 비구는 늘 다투기를 좋아하여 기뻐하는 일이 없었고,
또 산이나 들의 한적한 곳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자주 가서 꾸짖고 타일렀는데도 말씀을 듣지 않았고,
부처님께서 그를 위해 설법하였는데도 즐겁게 받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부처님께서는 그를 버려 두고 떠나셨는데,
한참 가시다가 어떤 코끼리 한 마리가 혼자 빈 산에 있으면서 시름없이 한가한 것을 보셨다.
그때 코끼리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여러 코끼리 속에 있을 때에는 그들의 시달림을 받을 뿐 아니라,
풀을 먹을 때에도 나쁜 풀만 얻어먹었고 물을 마실 때도 탁한 물만 마셨다.
그런데 지금 여기에서는 그들의 시달림을 받지 않으니 얼마나 유쾌한가?’
그러자 부처님께서 곧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하나의 용이 무리 중에서도 뛰어났으니
용 중에서도 여섯 개 어금니를 가졌다.
그 마음마음마다 스스로 평등하여
혼자서 넓은 들판을 즐기는구나.

부처님께서는 이 게송을 마치시고 거기서 떠나셨다.

29

다만 해칠 마음 없을 뿐 아니라
전심전력으로 모든 사람 위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중생을 위하는 이
그에게는 아무런 원한이 없다.

“다만 해칠 마음 없을 뿐 아니라,
전심전력으로 모든 사람 위하고”란 무슨 뜻인가?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을 모두 버리고 일체 중생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야 한다.
그러므로 “다만 해칠 마음 없을 뿐 아니라,
전심전력으로 모든 사람 위하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중생들 위하는 이,
그에게는 아무런 원한이 없다”란 무슨 뜻인가?
남을 보되 자기 몸과 다르지 않게 보아서,
좋은 말이나 나쁜 말을 듣더라도 그 마음에 간직하지 않으므로 어떤 원한도 해칠 마음도 없다.
그리하여 일체 중생에 대하여 전전긍긍하는 마음을 끝내 버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중생을 위하는 이,
그에게는 아무런 원한이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30

자비의 마음으로 한 사람을 가엾이 여겨도
온갖 선의 근본을 얻을 수 있거늘
전심전력으로 일체 중생을 위한다면
최상의 복이라고 현성은 일컫는다.

“자비의 마음으로 한 사람을 가엾이 여겨도”란 무슨 뜻인가?
부처님께서 경전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이 일체 중생에게 보시하고,
또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사람에게 보시하면 그 복이 얼마나 많겠는가?’라고 물으니,
비구들은 ‘자비를 수행하는 사람이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면 그 복은 매우 많겠나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므로 “자비의 마음으로 한 사람을 가엾이 여겨도,
온갖 선의 근본을 얻을 수 있거늘”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전심전력으로 일체 중생을 위한다면,
최상의 복이라고 현성은 일컫는다”란 무슨 뜻인가?
한 사람에게 보시하여도 그 복은 헤아리기 어렵거늘 하물며 일체 중생들에 보시함이겠는가?
그 복이 한량없어서 이루 다 헤아릴 수 없고 여러 억만 배나 되어서 비유로도 견줄 수 없다.
그러므로 “전심전력으로 일체 중생을 위한다면,
최상의 복이라고 현성은 일컫는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31

일체를 두루 사랑하고
중생들을 가엾이 생각하라.
인자한 마음을 닦아 행하면
훗날 지극한 즐거움을 받으리라.

“일체를 두루 사랑하고,
중생들을 가엾이 생각하라”란 무슨 뜻인가?
사람이 자비를 행할 때 그 마음이 평등하라는 것이다.
중생들 무리는 땅의 종자보다 많지만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 일체 중생을 두루 가엾이 여기면,
후생에 사람의 몸을 받을 때 염증이 나지 않는 즐거움을 받을 것이요,
만일 천상에 나면 자연의 복을 받아서 동쪽을 바라보나 서쪽을 바라보나 시중 드는 미녀들이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또 만일 인간에 나면 부귀로운 호족과 네 가지 족성의 집에 태어나서 일곱 가지 보배를 모자람 없이 완전히 갖추고,
부모는 바르고 참되어서 비천하게 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일체를 두루 사랑하고
중생들을 가엾이 생각하라.
인자한 마음을 닦아 행하면
훗날 지극한 즐거움을 받으리라.

32

만일 발랄한 마음으로
기뻐하면서 게으르지 않고
온갖 선법을 잘 닦으면
안온한 곳을 얻어 가리라.

“만일 발랄한 마음으로,
기뻐하면서 게으르지 않고”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이 음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쉬고 뜻을 굳건히 잡아서 근본 서원을 버리지 않으면 그로써 얻는 공덕은 모두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깨달은 등정각(等正覺)에게 보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공덕으로써 전륜성왕이나 속산왕(粟散王)을 구하지 말 것이요,
또 제석천이나 범천도 구하지 말 것이며,
또는 악마나 악마의 왕이 되길 구하지 말라.
그리하여 그것으로 번뇌가 아주 사라진 열반,
즉 함이 없고 지음이 없으며 생멸이 없는 법을 구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만일 발랄한 마음으로
기뻐하면서 게으르지 않고
온갖 선법을 잘 닦으면
안온한 곳을 얻어 가리라.

33

마음을 쉬면 기쁨이 생기고
몸과 입과 뜻이 서로 응하여
평등한 해탈을 얻을 것이다.
비구가 마음을 쉬면 그 뜻이 시원하여
일체의 모든 결박이 없어지고
다시는 번뇌가 없게 되리라.

“마음을 쉬면 기쁨이 생기고,
몸과 입과 뜻이 서로 응하여”란 무슨 뜻인가?
사람의 뜻이 쉬면 온갖 병이 모두 없어지고 다시는 몸과 입과 뜻의 행을 짓지 않으니,
보시를 행하거나 계율을 가지거나 선정을 닦거나 재(齋)를 행하거나 모두 함이 없는[無爲] 도를 구하는 것이 된다.
만일 출가해서 복업을 닦아 익히려거든 세속의 변재와 총명을 버리고 네 가지 변재를 익혀서 여덟 가지 해탈을 얻을 것이니,
비구의 익히는 법은 언제나 현성을 떠나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마음을 쉬면 기쁨이 생기고,
몸과 입과 뜻이 서로 응하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른바 결박이란 사람의 마음을 결박하는 것이니,
맺히고 맺혀서 서로 얽히는 것이다.
마치 나비의 유충이 스스로를 얽어매는 것처럼,
그 번뇌가 사람의 마음을 얽어매서 큰 광명을 보지 못하게 하니,
저 번뇌를 떨어 버려야 스스로 비추어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일체의 모든 결박이 없어지고,
다시는 번뇌가 없게 되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34

아름다운 다섯 가지 음악 소리도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못하나니
한결같은 바른 마음으로
평등한 법을 향함만 못하여라.

“아름다운 다섯 가지 음악 소리도,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못하나니”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은 선정에 뜻을 두고서 5음(陰)의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것과 그 취향하는 바를 분별하기 때문에 비록 여러 하늘들이 음악을 울리면서 그의 마음을 흔들려 해도 그렇게 할 수 없다.
왜냐 하면 그의 마음의 정견(正見)을 말미암아서 뒤바뀜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아름다운 다섯 가지 음악 소리도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못하나니
한결같은 바른 마음으로
평등한 법을 향함만 못하여라.

35

가장 훌륭한 이는 잠을 잘 자고
나가 있다고 헤아리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은 마음으로 선정을 즐겨야지
부디 욕심은 즐기지 말라.

“가장 훌륭한 이는 잠을 잘 자고,
나[我]가 있다고 헤아리지 말라”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은 나가 있다고 생각하거나 영화에 집착하지 않으니,
차라리 찬 돌 위에 눕거나 흙 속에 뒹굴지언정 집착하는 마음으로 높은 평상이나 좋은 휘장 안에서 자지 않는다.
그러므로 “훌륭한 이는 잠을 잘 자고,
나가 있다고 헤아리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마음으로 선정을 즐겨야지,
부디 욕심은 즐기지 말라”란 무슨 뜻인가?
선정에 든 사람은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선정에 들어 있을 때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기 때문에 많은 우레가 한꺼번에 소리를 내고 큰 뇌성이 한꺼번에 울리더라도 선정에 든 사람을 깨우지 못하니,
왜냐 하면 그 마음이 큰 자비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마음으로 선정을 즐겨야지,
부디 욕심은 즐기지 말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36

가장 훌륭한 이는 그 뜻이 발랄하고
또한 나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은 마음으로 선정을 즐겨야지
부디 욕심은 즐기지 말라.

“가장 훌륭한 이는 그 뜻이 발랄하고”란 무슨 뜻인가?
나가 없다고 보는 사람은 안팎에서 나오는 네 가지 요소가 모두 허망하고 진실하지 않다는 것을 낱낱이 잘 안다.
그러므로 “가장 훌륭한 이는 그 뜻이 발랄하고,
또한 나가 없다고 보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은 마음으로 선정을 즐겨야지,
부디 욕심은 즐기지 말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37

모든 번뇌가 아주 다하면
저 산처럼 흔들리지 않아서
어느 것에도 물들지 않고
누구에게도 성내지 않는다.

“모든 번뇌가 아주 다하면,
저 산처럼 흔들리지 않아서”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은 모든 번뇌가 아주 다하고 안팎이 청정해서 아무 티가 없다.
그래서 그 뜻이 마치 금강과 같아서 부술 수가 없고 태산과 같아서 흔들 수 없으니,
그 이유는 마음을 굳건히 잡아서 탐욕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화를 당하여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몸과 정신이 모두 텅 비어서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모든 번뇌가 아주 다하면
저 산처럼 흔들리지 않아서
어느 것에도 물들지 않고
누구에게도 성내지 않는다.

38

모든 사람들이 이 같은 마음이라면
어찌 괴로움의 자취를 알겠는가.
해침이나 물드는 것도 없어서
계율을 두루 완전히 갖추어야 하며

음식이나 평상과 침구에
스스로 만족할 줄을 알고
마음을 닦고 방편을 구할지니
그것이 곧 부처님 교훈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 같은 마음이라면,
어찌 괴로움의 자취를 알겠는가”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이 그 마음을 잘 단련시켜서 온갖 더러운 집착을 버리고,
번뇌를 끊는 데 마음을 두어서 날로 정진하여 게으르지 않으면,
어찌 괴로움의 자취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이 이 같은 마음이라면,
어찌 괴로움의 자취를 알겠는가”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해침이나 물드는 것도 없어서,
계율을 두루 완전히 갖추어야 하며”란 무슨 뜻인가?
스스로도 해치지 않고 남도 해치지 않음으로써 계율에서 말한 것은 하나도 그 차례를 잃지 않는 것이니,
그 결과 스스로 덕을 닦고는 그 덕으로 다른 사람을 가르친다.
그러므로 “해침이나 물드는 것도 없어서,
계율을 두루 완전히 갖추어야 하며”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음식이나 평상과 침구에,
스스로 만족할 줄을 알고”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은 자신의 양을 알아서 음식을 탐하지 않으니 음식을 먹는 것은 다만 그 목숨을 유지해서 도를 행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수레에 기름을 바르는 것은 무거운 짐을 싣고 가려는 데 있고,
사람이 부스럼에 고약을 붙이는 까닭은 병이 덧나지 않고 있던 병을 고치려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음식이나 평상과 침구에,
스스로 만족할 줄을 알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마음을 닦고 방편을 구할지니,
그것이 곧 부처님 교훈이다”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은 요긴한 뜻[要義]을 취해야 하고,
수행 중에서 가장 급한 것은 증상(增上)의 마음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닦고 방편을 구할지니,
그것이 바로 부처님 교훈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39

수행하는 사람이 마음의 모습을 관찰해서
생각이 대대(對待)하는 뜻을 낱낱이 분별하여
고요히 선정에 들 수 있으면
기쁨과 안락을 얻을 것이다.

“수행하는 사람이 마음의 모습을 관찰해서”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이 마음의 근원을 알아서 마음이 생기는 즉시 없애서 더 자라나지 않게 하고,
생각의 나아가고 물러남을 알아서 그 선과 악을 분별하는 것은 먼 과거부터 수행하는 법이다.
그러므로 “수행하는 사람이 마음의 모습을 관찰해서,
생각이 대대(對待)하는 뜻을 낱낱이 분별하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고요히 선정에 들 수 있으면,
기쁨과 안락을 얻을 것이다”란 무슨 뜻인가?
정(定)에 든 사람을 왜 정에 들었다고 하는가?
정(定)에는 세 가지 뜻이 있는데.
그 중에서 선(禪)이 제일 우두머리가 된다.
마치 국왕이 사방을 통솔할 때 세상 재물은 많아도 도의 재물은 없는 것처럼,
정을 닦는 사람은 도의 재물은 많지마는 세상 재물은 없다.
이른바 도의 재물이란 서른일곱 가지 도로써 선정과 모든 선의 근본이다.
즐거움에는 두 가지 뜻이 있으니,
깨끗한 즐거움과 깨끗하지 못한 즐거움이다.
깨끗하지 못한 즐거움이란 음식과 의복과 장식품으로서,
향ㆍ꽃ㆍ연지ㆍ분ㆍ비단ㆍ당기ㆍ일산 따위요,
깨끗한 즐거움이란 선정에 바로 들어서 고요한 무위로서 다른 생각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요히 선정에 들 수 있으면,
기쁨과 안락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40

그 뜻을 단속하여 스스로 장엄하고
번뇌를 미워하고 자신을 돌보라.
걱정스런 일 당해도 괴로워하지 않으니
지혜로운 사람은 진리의 바탕을 살핀다.

“그 뜻을 단속하여 스스로 장엄하고,
번뇌를 미워하고 자신을 돌보라”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은 항상 번뇌를 단속하여 색ㆍ소리ㆍ냄새ㆍ맛ㆍ닿임ㆍ법에 묶이지 않고,
온갖 생각을 그 사이에 섞이지 않게 할 뿐만 아니라 다시 서른일곱 가지 도의 꽃으로 스스로 장엄한다.
그러므로 “그 뜻을 단속하여 스스로 장엄하고,
번뇌를 미워하고 자신을 돌보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걱정스런 일 당해도 괴로워하지 않으니,
지혜로운 사람은 진리의 바탕을 살핀다”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은 두려움이 없는 곳에 들어가고 지혜로운 사람은 진리에 살기 때문에 아무데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걱정스런 일 당해도 괴로워하지 않으니,
지혜로운 사람은 진리의 바탕을 살핀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41

누구나 그 마음을 단속하지 않으면
삿된 소견의 해침을 받고
또 남을 희롱하는 마음을 가지면
그런 사람은 죽음 길로 나아간다.
“누구나 그 마음을 단속하지 않으면,
삿된 소견의 해침을 받고”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은 색ㆍ소리ㆍ냄새ㆍ맛ㆍ닿임ㆍ법을 단속한다.
어떤 중생이 삿된 도를 닦아 익히면 지옥이나 아귀ㆍ축생의 길로 나아가고.
삿된 소견을 가지지 않으면 천상이나 인간에 나는 동시에 여덟 가지 어려움의 변방에 나지 않고 나라의 중앙에 난다.
그러므로 “누구나 그 마음을 단속하지 않으면,
삿된 소견의 해침을 받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또 남을 희롱하는 마음을 가지면,
그런 사람은 죽음의 길로 나아간다”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이 도에 어두운 것은 모두 번뇌에 덮이기 때문이요,
또 지혜의 광명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섯 가지 덮개에 덮이고 두터운 구름에 가리면,
지혜의 광명을 보려 하여도 그렇게 될 수 없으며 목숨을 마친 뒤에는 반드시 죽음의 길로 나아간다.
그러므로 “또 남을 희롱하는 마음을 가지면,
그런 사람은 죽음의 길로 나아간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42

그러므로 부디 마음을 단속하여
평등하게 청정한 행을 닦으라.
바른 소견이 항상 현전하면
일어나고 사라지는 법을 분별하리라.

“그러므로 부디 마음을 단속하여,
평등하게 청정한 행을 닦으라”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은 항상 마음을 단속하고 위의가 있는 법을 행함으로써 법이 아닌 것을 버려야 하며,
다녀야 할 때 다닐 줄 알고 앉아야 할 때 앉을 줄 알아서 나아가고 머물고 가고 오는 데 그 위의를 잃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러므로 부디 마음을 단속하여,
평등하게 청정한 행을 닦으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바른 소견이 항상 현전하면,
일어나고 사라지는 법을 분별하리라”란 무슨 뜻인가?
사람이 덕을 닦을 때에는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마치 집에 있는 재산을 그 주인이 잘 아는 것처럼,
도를 행하는 사람도 그와 같아서 여덟 가지 곧은 길을 따라 네 가지 흐름[流]을 억제하고,
지혜의 등불을 잡아 3독의 어두운 방을 비춤으로써 일어나고 사라지는 이유를 분별하고 한결같은 선정으로 돌아가면,
거기서 도를 얻기가 무엇이 어렵겠는가.
그러므로 “바른 소견이 항상 현전하면,
일어나고 사라지는 법을 분별하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43

비구여,
부디 잠을 없애고
괴로움을 다해서 다시 짓지 말라.
마음을 항복받아 약(藥)을 복용하고
마음을 단속하여 다시 다스리지 말라.

“비구여,
부디 잠을 없애고,
괴로움을 다해서 다시 짓지 말라”란 무슨 뜻인가?
행을 관찰하는 비구는 수면과 5음(陰)의 병을 없앰으로써 온갖 괴로움을 다하여 다시는 새로 짓지 않는다.
그러므로 “비구여,
부디 잠을 없애고,
괴로움을 다해서 다시 짓지 말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마음을 항복받아 약을 복용하고,
마음을 단속하여 다시 다스리지 말라”란 무슨 뜻인가?
항상 마음을 단속하여 원하는 바를 반드시 초극하면,
능히 성스러운 무루행을 닦을 수 있으니,
이는 마음을 항복받고 더러움을 버리는 데서 온다.
행이 방일하지 않고 남을 괴롭히지 않아야 하니,
행이란 깊고 요긴한 업(業)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항복받아 약을 복용하고,
마음을 단속하여 다시 다스리지 말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44

중생들의 마음이 잘못을 범하면
그들은 다 지옥의 고통을 받지만
마음을 항복시키면 약을 복용하니
마음을 단속하여 다시 다스리지 말라.

“중생들의 마음이 잘못을 범하면,
그들은 다 지옥의 고통을 받지만”이란 무슨 뜻인가?
잘못은 그 마음이 만든 것으로서 지옥의 뿌리를 심어 무수한 억천만겁 동안 치고 베고 쪼개고 찢고 하는 고통을 한량없이 받는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중생들의 마음이 잘못을 범하면
그들은 다 지옥의 고통을 받지만
마음을 항복시키면 약을 복용하니
마음을 단속하여 다시 다스리지 말라.

45

마음을 단속하여 다시 다스리지 말라.
마음은 모든 묘(妙)의 문이 되나니
그것을 단속해 잃지 않으면
그는 곧 열반의 문에 들리라.

마음이 바르면 도가 존재하고 마음이 삿되면 높고 낮음이 있으니,
중생들은 미련하여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만 타락하여 도에 이르지 못한다.
미혹한 사람은 마음이 어두워서 도는 공(空)에 있다고 생각하여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다.
마음은 도의 근본으로서 허무하고 적막하여 법의 극존(極尊)이요,
온갖 행의 궁극이다.
그리하여 3유(有)를 영원히 여의어서 삼계에 있지 않고,
모든 고뇌를 떠났기 때문에 목숨을 마치고는 다시 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마음을 단속하여 다시 다스리지 말라.
마음은 온갖 묘의 문이 되나니
그것을 단속해 잃지 않으면
그는 곧 열반의 문에 들리라.


○ [pt op tr]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Helena Noguerra - Tout,Tout (Readtmade Mix).l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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