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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4-09-26_불설초일명삼매경-K0386-002 본문

과거조각글/불기2564(2020)

불기2564-09-26_불설초일명삼매경-K0386-002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20. 9. 26. 09:44



®


『불설초일명삼매경』
K0386
T0638

하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안내

○ 해제[있는경우]
● TTS 음성듣기 안내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불설초일명삼매경』 ♣0386-002♧




하권




♥아래 부분은 현재 작성 및 정리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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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說超日明三昧經卷下

K0386


불설초일명삼매경(佛說超日明三昧經) 하권



섭승원(聶承遠) 한역

송성수 번역



이구목(離垢目)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초일명(超日明)삼매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의 광명은 한량없고 비유할 수 없고 햇빛보다 더 밝으니, 

해의 광명은 현재의 일을 비추어 

사람과 꿈틀거리는 것과 온갖 곡식과 약수(藥樹)며 

모든 하늘ㆍ용(龍)ㆍ신(神) 등 모두가 

해로 인하여 성장하고 무성해져 살아갈 수 있다.


해는 두 철위산(鐵圍山) 사이를 비추지 못하고 

또한 사람 마음속의 근본을 비추어 열어 통달하지 못하니, 

다만 형상 있는 것만을 비출 뿐이요 

형상 없는 것은 비추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ᖰ 초일명삼매가 뛰어나다 한 까닭은 

시방의 그지없고 가없는 삼계와 5도(道)를 크게 비추어서 

꿰뚫어 통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니라.ᖱ 


보살 대승(大乘)은 

성문과 연각의 승(乘)과 96경(經)과 62견(見)의 삿된 의심과 얽힌 번뇌를 비추어, 

마음들이 환히 빛나면서 

각기 모두 도의 뜻을 내게 하며 

3승(乘)의 업(業)을 닦는 이로 하여금 저마다 성취하게 하여, 

천상에 나게 하기도 하고 

사람 몸을 받게 하기도 하면서 

두루 은혜를 입지 않게 함이 없느니라.




마치 도리천(忉利天)은 수미산(須彌山) 꼭대기에 있는데, 

하늘 제석궁(帝釋宮)의 자줏빛을 띤 감색(紺色) 보전(寶殿)은 환히 빛나면서 위에 있고, 

중턱에는 사천왕(四天王)이 있으며, 

아래의 사방에는 모든 하늘과 백성과 아귀(餓鬼)와 염귀(厭鬼)와 

모든 신(神)과 야차[閱叉]가 있는 것과 같으니라.




초일명삼매도 역시 그와 같이 

마음이 견고하여 동요하지 않은 것이 

마치 수미산왕과 같아서 5도와 제석천왕을 교화하고, 

생(生)ㆍ노(老)ㆍ병(病)ㆍ사(死)와 더 나아가 사천왕을 교화한다.


모든 불효(不孝)와 음(婬)ㆍ노(怒)ㆍ치(癡)의 번뇌[垢]를 치료하여 

도의 뜻을 일으키게 하며, 

소승을 버리고 대승을 향하게 하며, 

뜻을 내는[發意] 기별을 주고[受決]1) 인을 얻는[得忍] 기별을 주고, 

아직 뜻을 내지 못한[未發意] 기별을 주며, 


여섯 가지 도무극(度無極)을 행하여 허망한 생각으로 인해 

수결(受決)을 깨닫지 못함이 일절 없게 하나니, 

초일명삼매는 매우 깊고 깊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끝도 밑도 없느니라.




비유하면 마치 허공과 같이 

만약 어떤 사람이 허공을 되[升]ㆍ홉[合]ㆍ말[斗]ㆍ휘[斛]로 그 대소(大小)를 헤아리고자 하면, 

그 허공은 오히려 헤아릴 수 있어 

그 휘의 수량을 모두 알 수 있으나, 

초일명정(初日明定)의 지혜는 헤아릴 수 없느니라.


비유하면 마치 사람이 허공을 재려하면 

십리ㆍ백리ㆍ 천리ㆍ만리ㆍ억리ㆍ 억만리, 

헤아릴 수 없는 억백 나술(那術) 리의 허공은 다 잴 수 있고 

그 맨 끝까지도 마칠 수 있으나, 


초일명정의 지혜는 그보다 뛰어나서 수없는 억억(億億) 배(倍)요, 

다시 그 곱절이기 때문에 그 크기를 한계 지을 수 없으니, 

비유를 드는 이가 비유한 도의 광명은 

본래 먼 것도 없고 가까운 것도 없으며 

넓은 것도 없고 좁은 것도 없느니라.”





이구목이 세존께 물었다.

“대성(大聖)께서는 감탄하시면서 당연히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길고 멀다’고 말씀하셔야 되시거늘 

어찌하여 ‘먼 것도 없고 가까운 것도 없으며 

넓은 것도 없고 좁은 것도 없다’고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좁은 것이 있기 때문에 그로 인하여 넓은 것이 있고, 

가까운 것이 있기 때문에 그로 인하여 먼 것이 있는 것이니, 

먼 것도 없고 가까운 것도 없고 넓은 것도 없고 좁은 것도 없는 것은 

그 비교하여 견줄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니라.



가령 비유를 들어 말해 본다면 

사람으로 하여금 끝이 없는 것이 마치 허공이 끝이 없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그 밖으로 벗어나 작은 티끌이나 빛깔이 없는[無色] 것을 그 속에다 열어서 넣어도 

다시 비교하여 서로 재어 볼 수도 없는 것과 같으니, 


비유를 인용하여 뜻을 환히 알거나 

대도(大道)의 지혜에 이르는 것을 비유할 수는 없느니라.




모든 성문ㆍ연각ㆍ보살과 나아가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보다 뛰어나서 

으뜸이 되고 높은 것이 되며, 

짝할 이 없고 같을 이 없으며, 

자연(自然) 그대로의 법은 짓는 이도 없고 또한 짓지 않은 것도 없으며,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으며, 

아무 것도 없고 텅 빈 것이 자연 그대로일 뿐이며, 


온갖 것도 본래부터 없음을 분명히 깨달아 알고 

온갖 근본과 본말(本末)을 환히 깨달아 알며, 

이미 이 모든 근본을 분명히 알면 또한 기댈 바도 없고 기대지 않을 바도 없느니라.


자연 그대로 지혜임을 모두 따로 분명히 알 것이니, 

삼계는 자연 그대로이며, 

삼계가 자연 그대로인지라 인물도 자연 그대로요, 

인물이 자연 그대로인지라 생사도 자연 그대로이며, 

생사가 자연 그대로인지라 본래 없다는 것도 자연 그대로요, 

본래 없다는 것이 자연 그대로인지라 불도(佛道)도 자연 그대로이니라. 


이 온갖 것이 자연 그대로임을 분별하여 알아야 

초일명정을 체득할 수 있어서 

널리 3세를 제도하고 끝없는 지혜[無極慧]에 이르니, 

이것이 바로 초일명삼매이니라.”




이에 장자(長者)의 딸 혜시(慧施)가 

5백 명의 여인들과 함께 부처님께 와서 발아래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있다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이 초일명정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함이 한량없어서 앞으로 나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지금 여인의 몸이오나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내어 

여인의 몸을 바꾸고 

속히 정각(正覺)을 이루어서 시방을 제도하고 해탈시키려 하나이다.”



상도(上度)라는 한 비구가 있다가 혜시에게 말하였다.

“여인의 몸은 불도를 이룰 수 없습니다. 

그 까닭은 여인에게는 세 가지 일의 장벽[三事隔]과 다섯 가지 일의 장애[五事礙]가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어릴 때는 부모가 주관하게 되고, 

출가(出嫁)하면 남편이 주관하게 되어 자유가 없고, 

늙으면 아들을 어렵게 여겨야 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세 가지입니다.



무엇이 다섯 가지 장애인가? 

첫 번째, 여인은 제석(帝釋)이 될 수 없습니다. 

그 까닭은 용맹스럽고 욕심이 적어야 남자가 될 수 있는데, 

여러 가지 악(惡)의 교태가 많기 때문에 여인이 된 것이니, 

하늘의 제석이 될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범천(梵天)이 될 수 없습니다. 

그 까닭은 청정한 행을 받들어 더러운 때가 없으며, 

4등심(等心)을 닦고 4선(禪)을 닦아야 범천에 오르게 되는데, 

음행을 멋대로 하면서 절제가 없었기 때문에 여인이 된 것이니, 

범천이 될 수 없습니다.


세 번째는 마천(魔天)이 될 수 없습니다. 

그 까닭은 10선(善)을 완전히 갖추고 삼보를 존경하며 양친을 효도로써 섬기고 어른과 노인에게 겸손하게 순종해야 마천이 될 수 있는데, 

경솔하고 교만하고 온순하지 못하며 바른 가르침을 헐뜯고 시샘했기 때문에 여인이 된 것이니, 

마천이 될 수 없습니다.


네 번째는 전륜성왕(轉輪成王)이 될 수 없습니다. 

그 까닭은 보살의 도를 행하고 중생을 자비로이 여기며 3존(尊)과 선성(先聖)과 사부(師父)를 받들어 공양해야 전륜성왕이 되어 4천하를 주관하고 백성들을 교화하며 널리 10선을 행하고 도덕을 존숭하며 법왕(法王)이 되어 가르치게 되는데, 

숨은 교태가 여든네 가지나 있고 청정한 행이 없었기 때문에 여인이 된 것이니, 

성제(聖諦)가 될 수 없습니다.


다섯 번째, 여인은 부처님이 될 수 없습니다. 

그 까닭은 보살의 마음을 행하여 모든 중생을 가엾이 여기고 

대자대비로써 대승의 갑옷을 입으며, 

5음을 녹이고 6쇠를 없앰이오,

6도를 넓히면서 깊은 지혜의 행과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을 환히 알고 3해탈문(解脫門)을 초월하며, 

아(我)ㆍ인(人)이 없고 수(壽)도 없고 명(命)도 없음을 알며, 

본래부터 없다는 것과 불기법인(不起法忍)을 분명히 알며, 

온갖 것은 마치 요술과 같고 허깨비와 같으며 꿈과 같고 그림자ㆍ파초ㆍ거품더미ㆍ아지랑이ㆍ번갯불 ㆍ 물속의 달과 같다고 분별하며, 

5처(處)는 본래 없고 3취(趣)라는 생각이 없어야 부처님이 될 수 있습니다.


색욕(色欲)과 더러운 생각[淖情]과 숨은 교태에 집착하여 

행동과 말과 뜻이 달랐기 때문에 여인이 된 것이니, 

부처님이 될 수 없습니다. 

이 다섯 가지 일에는 모두 근본과 본말이 있습니다.”





그때에 혜시 여인이 상도에게 대답하였다.

“저마다 모든 뿌리를 심어서 거기서 열매를 얻게 되는데, 

본래부터 남녀와 보응(報應)이라는 것이 있습니까? 

본래부터 이 제석ㆍ범왕ㆍ마왕ㆍ전륜성왕ㆍ대도(大道)ㆍ소도(小道)인 5처(處)가 있습니까?”


상도가 대답하였다.

“없습니다.”


혜시가 물었다.

“만일 본래 없다면 무엇으로 인하여 있게 됩니까?”


대답하였다.

“행(行)으로 인하여 이루어집니다.”



혜시가 말하였다.

“비유하면 그림을 그리는 이가 벽화를 그릴 적에 

아무 것도 없는 그림판[板素]을 준비하고 

그림 그리는 도구로 본을 떠서 형상을 만들고 

나누어 채색을 하면서 

그의 뜻에 따라 완성하는 것과 같이, 

5도(道)도 그와 같아서 본래 처소가 없었는데, 

행을 따라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또한 비유하면 마치 요술쟁이가 

해ㆍ달ㆍ제석ㆍ범천ㆍ전륜성왕ㆍ하늘ㆍ용ㆍ귀신ㆍ백성과 날짐승ㆍ길짐승을 

마음먹은 대로 나타냈다가도 일순간에 홀연히 아무도 모르게 없애는 것처럼, 

생사도 그와 같이 본래는 아무 것도 없었으나 마음으로 행한 바에 따라 저마다 스스로 얻은 것이다.★★


본래부터 없는 데에 이르러서 

요술도 없고 허깨비도 없으며 

합한 것도 없고 흩어진 것도 없으며 

또한 처소도 없어야 

비로소 부처님이 될 수 있을 따름입니다.


그 까닭은 5계(戒)로는 사람이 되고 

10선(善)으로는 하늘에 태어나며, 

간탐을 부리면 아귀에 떨어지고 

마구 달려들면 축생이 되며, 

악행을 하면 지옥에 떨어진다.★★


4등심(等心)을 행하면서 공(空)을 알지 못하고 행하면 범천에 가나고, 

공에 의지하여 제도되기를 구하면서 산란한 마음으로 공에 집착하면 무상천에 나아간다.★★


6도무극의 생각으로 삼계를 여의지 않고 괴롭고 싫은 몸을 두려워하며

 나고 죽는 재난을 싫어하여 뜻을 열반에 두기 때문에 아라한에 떨어집니다.


보살의 뜻을 일으켜 모든 중생을 제도하려 하면서 본래 없음을 알지 못하고, 

부처님 몸의 형상에 집착하여 빠르게 부처님이 되고자 하지만 착한 스승[善師]을 만나지 못하고, 

선권방편을 알지 못하고 곧 중간에서 그치면 연각의 도를 얻습니다.


이러한 행은 합한 것이 있고 흩어짐이 있으므로 곧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얻지 못합니다. 

이렇듯 온갖 것에는 모양이 없거늘 어찌 남자와 여인이 있겠습니까?”




상도가 또 물었다.

“어떠한 행으로써 정각(正覺)을 이루게 됩니까?”

혜시가 대답하였다.

“색의 행[色行]을 내지 않고 공하지 않은 행을 관하지 않으면서 색의 행을 없애지도 않으며, 

집착하는 행[執行]을 버리지 않고 또한 짓는 행[造行]도 없으며,

식의 행[識行]을 내지 않고 공하지 않은 행을 관하지도 않으면서 식의 행을 없애지도 않으며, 

색이 생기는 행[色生行]을 하지 않고 식이 생기는 행[識生行]도 하지 않으며, 

또한 행에 돌아감도 없으면서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으며, 

영원히 처소가 없으면서 머무를 바의 행이 없습니다.

삼계에 의지하지 않으며, 

5음을 버리지 않으면서 5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세속의 행을 버리지도 않으면서 도의 행을 생각지도 않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도의 행이어서 정각에 이르게 됩니다.

4등(等)에 기대지 않고 6도무극의 행을 생각지도 않으며, 

세 가지의 해탈에 대하여 의지하는 행이 있지도 않고, 

공ㆍ무상ㆍ무원의 법을 통달하여야 비로소 보살이 되어 법에 수순하는 행에 상응하고 정각과 평등한 행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상도여, 

이런 법을 행하는 이에게 어찌 방면(方面)과 처소와 삼계와 남녀의 분별이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오히려 짓는 것도 없거늘 어찌 이루어지겠습니까? 

그러므로 내가 부처님이 되는 것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취하면서도 취하는 바가 없고, 

이루면서도 이루는 바가 없고, 

깨달으면서도 깨달은 바가 없으며, 

취하는 것도 없고 버리는 것도 없어야 비로소 부처님이라 이름하는 것이니, 

이것도 또한 명호(名號)도 없고 임시로 붙인 이름일 뿐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도다. 

혜시야, 

진실로 말한 바와 같으니라. 

온갖 것은 정해진 것이 없고 행(行)에 따라서 이루어지니, 

본래 합하지 않고 흩어지지 않으며, 

일어나지 않고 쇠하지도 않으며, 

보는 것도 없고 듣는 것도 없으며, 

생각하는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으며, 

언어도 없고 설명도 없어야 비로소 정각을 이루느니라.”




이때 혜시는 곧 여인의 몸이 바뀌어 남자가 되어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가 내려와 

부처님 발에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는 불기법인(不起法忍)을 얻었다.






이때에 5백 여인들은 뛸 듯이 기뻐하면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본래부터 늘 스스로 관찰하되

남자란 정해져 있는 종성이고

강하고 약한 것도 각각 품류가 있어서

여인은 본디 바뀔 수 없다고 여겼으나


오늘에야 부처님의 은혜를 받아

비로소 견고하게 고정된 것 없어

5도(道)는 마치 허깨비[幻化]와 같아서

행(行)을 따라 이루어짐을 알았나이다.


삼계에 마음이 미혹되어서

본래 없는 진리 환히 알지 못하고

스스로 내가 있다 헤아리면서

속박과 집착으로 진창에 떨어지나니


비유하면 마치 고기잡이가

낚시로 고기를 낚아 잡으면서

그것은 자기의 소유가 아닌데도

스스로 내가 잡았다고 여기는 것과 같나이다.

삼계는 마치 더부살이와 같고

4대는 나의 소유가 아니며

모든 법이 마치 꿈과 같은 줄 알면

취하거나 버릴 것이 없나이다.


부디 부처님께서 더욱 가엾이 여기시어

은혜와 자비 드리워 주시어

여인의 몸을 바꾸게 하고

초일명정(超日明定)을 증득하게 하며


부처님 되어 국토를 이루어서

모든 하늘과 사람들을 교화하며

중생을 모두 제도 해탈시키면서

빨리 위없는 참된 도(道) 얻게 하소서.


부처님께서 5백의 여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의 소원대로 빨리 얻게 될 것이니라.”

이 말을 듣고 모든 여인들이 기뻐하였고, 

그 순간 일시에 모두 남자가 되었다.




이때에 부처님은 혜시와 5백 여인들에게 수기(授記)를 주셨다.

“이로부터 10겁 후에 모두가 부처님이 될 것이니, 

명호는 혜견(慧見) 여래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ㆍ명행성위(明行成爲)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도법어(道法御)ㆍ천인사(天人師)ㆍ불세존이라 하리라. 

그 세계의 이름은 제명(除冥)이라 하고, 

겁(劫)의 이름은 광명(光明)이라 할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백억만 년 동안 머무르면서 설법하여 항하(恒河)의 모래만큼 많은 보살이 불기법인을 얻으며, 

일생보처도 역시 그와 같고 모든 아라한도 헤아릴 수조차 없을 것이며, 

그때의 사람들이 입는 옷과 음식은 마치 제2의 도리천과 같을 것이니라.”




이때 모여 있던 대중들은 부처님의 수결(授決)을 듣고, 

백천 사람이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내었고, 

수없는 보살들이 불기법인을 얻었으며, 

8만 비구가 번뇌가 다하면서 뜻이 풀렸고, 

10만 하늘과 사람들은 번뇌[塵垢]를 멀리 여의어 모든 법에 대해 법안(法眼)이 생겼다.

땅은 곧 크게 진동하고 공중에서는 비 내리듯 꽃이 뿌려졌으며, 

공후(箜篌)와 악기는 연주하지 않아도 저절로 울렸다. 





그리고 억백의 여러 하늘들은 공중에서 모두 찬탄하면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너무나 깊은 법이라

만나기 어렵고 듣기도 어렵거늘

다행히 저희들은

전생에 남은 복이 있어서

이제 비로소 듣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부처님께서 다시 혜시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세간의 생사에 얽매여 있으면서 깊은 법을 이해하지 못하여 나와 다른 사람을 분별하여 헤아리는 것은, 

마치 성성이[猩猩]가 술에 유혹되어 풀려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사람에게 붙잡히게 되는 것과 같으니라.

세상 사람도 이와 같이 5음과 6쇠의 우환이 서로 얽혀서 항시 나라고 헤아리며, 

고(苦)ㆍ공(空)ㆍ무아(無我)ㆍ비신(非身)을 모르는지라, 

이를 범하여 곧 재앙이 있고 스스로 억제하지 못하면서 3독(毒)과 5개(蓋)에 속박당하며, 

해탈을 얻지 못하고 도리어 진실한 도에 반(反)하는 것이, 

마치 나무가 불을 내면서 제가 타는 줄을 모르는 것 같으니라.

공의 행[空行]을 분명히 알지 못하고 나와 다른 사람이라 헤아리는 것도 역시 그와 같이 스스로 어두운 데로 잘못 떨어져서 3악도(惡道)에 들어가는 것이, 

마치 큰 도둑ㆍ강도ㆍ원수가 스스로 씩씩하고 유쾌한 일이라고 여기는 것 같으니라.

세속 사람은 색(色)ㆍ통(痛:

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에 집착하여 더러운 때[垢]에 빠지고 그 죄는 음개(陰蓋)를 가리며, 

큰 법의 뛰어나고 묘한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석음이 있는 은애(恩愛)로 인해 사람이 되어 태어나며, 

열두 가지 결박(結縛)과 62견(見)과 의심의 그물과 진로(塵勞)로 모든 사도인 96경(經)에 미혹되느니라.

모든 법을 정밀하게 연구하고 공(空)하여 없다는 것을 분별하여야 하니, 

마치 요술과 같고 허깨비와 같으며, 

마치 꿈ㆍ파초ㆍ아지랑이ㆍ물속의 달과 부르는 소리의 메아리와 같다고 분별하면 나라고 헤아리지 않느니라.

색이 자연 그대로인 줄 알면 통과 상도 자연 그대로요, 

통과 상이 자연 그대로인 줄 알면 행과 식도 자연 그대로이며, 

행과 식이 자연 그대로인 줄 알면 4대도 자연 그대로요, 

4대가 자연 그대로인 줄 알면 삼계도 자연 그대로이며, 

삼계가 자연 그대로인 줄 알면 열반도 자연 그대로요, 

열반이 자연 그대로인 줄 알아야 그제야 무소종생법인(無所從生法忍)을 체득하게 되어 생사에 있지 않고 멸도(滅度)에도 처하지 않으면서 대승의 깊고 묘한 지혜에 상응하느니라.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몸에 중한 병이 들어서 스스로 치료하고자 하려면 그에 따른 약을 먹어야 하는데도, 

도리어 독약을 먹고는 몸의 병을 다스린다고 여겨 오장육부(五臟六腑)를 상하게 하면서도 이내 다시 독을 제거하는 약을 먹지 않으면, 

곧 그 사람은 죽게 되어 아무리 후회해도 어찌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도를 배우는 선비 역시 그와 같이 본래 도의 뜻을 내어 보살의 행을 하고 네 가지 평등심인 자(慈)ㆍ비(悲)ㆍ희(喜)ㆍ호(護)를 받들며 6바라밀[度]을 따라 수행하면서도, 

모두 생각이 있고 희망하는 바가 있으면 곧 성문이나 연각의 승(乘)에 떨어지게 되느니라.

설령 적합하게 이루었다 하여도 그곳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게 된다. 

그는 대승에 이를 수 있는데도 망설이면서 분명히 알지 못하면, 

곧 중간에 머무르는 이가 되어 이내 소승에 떨어지고 마니, 

비유하면 마치 일반 백성들이 먹는 음식을 전륜성왕이 먹으면 독약이 되는 것과 같으니라.

비유하면 마치 감로(甘露)의 으뜸가는 맛이 갖추어진 약은 여러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는 바가 많은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이 대승의 법으로써는 온갖 사람들의 생ㆍ노ㆍ병ㆍ사와 음(婬)ㆍ노(怒)ㆍ치(癡)의 재난과 뭇 생각의 우환을 치료하는 바가 많으니라.”








부처님께서 이 법을 말씀하실 때에 천(千) 하늘과 사람이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내었으며, 

5백의 천자(天子)가 불기법인을 얻었다.

이에 혜영(慧英)이라는 보살이 문수사리(文殊師利)에게 물었다.

“무엇을 보살이 견문이 넓고 앎이 많다고 하나이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헤아릴 수 없는 항하 모래 수같이 많은 겁 동안 공덕을 쌓으면서 만족하지 않고, 

4등심(等心)을 들으면서도 만족하지 않으며, 

4은(恩)의 법을 닦으면서 또한 만족하지 않고, 

6도무극을 행하면서 또한 만족하지 않습니다.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을 닦으면서 또한 만족하지 않고, 

크게 인자하고 크게 가엾이 여기면도 만족하지 않으며, 

5신통에 나아가면서도 만족하지 않고, 

중생을 교화하면서도 또한 만족하지 않으며, 

또한 대승의 가르침을 행하면서도 만족하지 않습니다.

성문이나 연각을 나타내어 널리 온갖 중생을 교화하면서 또한 만족하지 않으며, 

열반을 나타내어 보이고 열반에 머무르다가 다시 생사의 세계로 돌아가면서도 만족하지 않고,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으면서도 이르지 않는 바가 없습니다.

마치 허공이 이르지 않는 바가 없으면서 나오지도 않고 들지도 않으며 통달하지 않은 바가 없고 두루 하지 않은 바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을 바로 견문이 넓고 앎이 많다고 합니다.

과거를 헤아리지 않고 미래로써 한계와 장애를 두지 않으며 현재에도 처소(處所)를 두지 않아서 과거ㆍ미래ㆍ현재인 3세(世)의 한정이 없으며, 

3도(塗:

惡道) 등에서 삼계라는 생각도 없고 열반이라는 기억도 없으며, 

도(道)라는 분별도 없고 세속(世俗)이라는 분별도 없으며 좇아 따르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 이것이라야 비로소 견문이 넓고 앎이 많다고 합니다.

듣는 바에도 또한 듣는다는 분별이 없고, 

보는 바에서도 또한 본다는 분별이 없으며, 

말하는 바에서도 또한 말한다는 분별이 없고, 

제도하는 바에서도 또한 제도한다는 분별이 없는 이것이라야 비로소 견문이 넓고 앎이 많다고 합니다.”

혜영이 또 물었다.

“무엇을 행하는 것이라 하고 무엇을 성취한다 합니까?”

“보살의 뜻을 일으켜 4등심과 대자대비와 무극(無極) 지혜를 행하며, 

보시로써 사람을 섭수하고, 

계율 인욕ㆍ정진ㆍ일심ㆍ지혜로써 중생을 구제하는 행이 차츰차츰 점차로 나아가는 이것을 바로 행하는 것이라 하며, 

그 행이 공ㆍ무상ㆍ무원(無願)의 법을 초월하면서 나를 분별하여 보지도 않고 3세를 헤아려 보지도 않으며 열반과 생사를 보지 않는 이것을 바로 성취라 합니다.”

대영(大英)보살이 또 부처님께 물었다.

“사람이 태어날 때는 어디에서 오고 갈 때는 어디로 가며, 

늙고 병들고 죽을 때는 어디에서 와서 갈 때는 어디로 가며, 

색(色)ㆍ통(痛)ㆍ상(想)ㆍ행 (行)ㆍ식(識)은 어디에서 오고 갈 때는 어디로 가며,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ㆍ공(空)과 눈ㆍ귀ㆍ코ㆍ입ㆍ몸ㆍ마음은 어디에서 오며 갈 때는 어디로 갑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두 어디에서 오는 것도 없고 또한 가는 데도 없느니라. 

연(緣)이 합하면 있다가 연이 흩어지면 소멸하는 것이니, 

마치 요술과 같고 변화와 같으며 그림과 같고 북과 같으며 비와 같고 번갯불과 같이 모두가 인과 연을 따르며, 

연이 있으면 생기는 것이 있다가 연이 없으면 대상이 없으니, 

나고 죽고 하는 것도 그와 똑같아서 다름이 없느니라.”





대영이 또 물었다.

“무엇을 어디에서 오는 것도 없고 어디로 가는 것도 없으며 인과 연이 합하여 성립된다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의 행을 지으면 사람이 되고, 

하늘의 행을 지으면 하늘이 되며, 

지옥의 행을 지으면 지옥이 되고, 

축생의 행을 지으면 축생이 되며, 

아귀의 행을 지으면 아귀가 되고, 

다섯 가지 행이 없으면 5도가 없으며, 

5도가 없으면 출입하는 것이 없으니 이것을 사람의 근본이라 하느니라.

욕계(欲界)ㆍ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인 삼계가 없고, 

마음[心]ㆍ뜻(意)ㆍ의식[識]이 없기 때문에 삼계가 없으니, 

이것을 사람의 근본이라 하느니라.



아직 사람이나 만물이 있지 않으면 색(色)이 있되 보는[見] 것이 없으니, 

무엇을 색이 있되 보는 것이 없다고 하는가? 

땅의 색[地色]과 물의 색[水色]과 불의 색[火色]과 바람의 색[風色]이니라. 

고정된 것을 땅이라 하고, 

맑은 것을 물이라 하며, 

밝은 것을 불이라 하고, 

움직이는 것을 바람이라 하느니라.

하늘과 땅이 아직 그렇게 되지 않았을 때는 아직 삼계도 있지 않은 것이니, 

이 네 가지의 색이란 언제나 자연 그대로일 뿐이요, 

짓는 이[作者]가 없어도 자연히 움직여 일어나며, 

오직 도(道)만이 능히 이름하고[能名] 나아가 보처(補處)만이 능히 이름할 수 있으므로, 

이것은 바로 형상이 없는[無像] 색이요, 

또한 마음의 색[心色]이라고 하느니라.

아유월치(阿惟越致:不退轉)는 마음의 색을 보고, 

아유안(阿惟顔:一生補處)은 네 가지 색의 마음을 보며, 

여래는 아직 있기 전의 네 가지 색의 마음의 근본을 보느니라. 

삼계안에서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바로 마음의 색이고, 

마음의 근본[心本]이라 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것도 아니며, 

보살에 대한 법이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 말하고, 

마음의 색이 없는 뜻이면 삼계는 자연 그대로이며, 

허공과 같아야 비로소 도(道)라고 하느니라.

이 모든 법에는 합쳐짐도 없고 흩어짐도 없으니, 

그 까닭은 가령 합쳐진다 하면 곧 사람의 근본일 것이요, 

흩어진다 하면 곧 생사(生死)이기 때문이니라. 

생사의 고통과 열반의 쾌락을 보는 이를 성문(聲聞)이라 하고, 

중간에 처해 있으면서 온갖 것에 이익이 없는 이를 연각(緣覺)이라 하느니라.





합쳐짐도 없고 흩어짐도 없으면서 열반에 처하지도 않고 생사를 미워하지도 않는 이를 비로소 법신(法身)이라 하는 것이니, 

법신은 형상이 없되 두루 온갖 것에 들어가며 또한 들어가는 바도 없고 들어가지 않는 바도 없느니라.”

이 경을 말씀하실 때에 5천의 하늘과 사람이 어디로부터 생겨난 바가 없는 법인[無所從生法忍]을 얻었고, 

헤아릴 수도 없는 사람들이 모두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냈다.





이때 아난이 세존께 물었다.

“도의 뜻[道意]을 일으켜 보살이 되고자 하면 마땅히 무엇을 근본[本]으로 삼아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정진하면서 게으르지 않고 공의 지혜를 분별하며 온갖 중생을 제도하려 하면서 나와 수명을 보지 않는 것을 근본이라 하느니라.”

또 물었다.

“어찌하여 더디거나 빠른 것이 있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기 때문이니라.”

또 물었다.

“무엇을 있다고 하고, 

무엇을 없다고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있다고 함은, 

정진을 따르면서 게으르지 않고 공덕을 쌓고 심으면서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일심ㆍ지혜ㆍ선권방편과 자ㆍ비ㆍ희ㆍ호와 4은(恩)과 공한 행으로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얻는 것이니, 

게으르지 않음으로부터 얻는 것이므로 이것을 바로 있다고 하느니라.

없다고 함은, 

도(道)에는 처소가 없고 형상도 없고 이름도 없는 것이 비유하면 마치 허공과 같이 지음[造作]에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짓는 바도 없고 마음ㆍ뜻ㆍ의식도 없으며, 

안도 없고 바깥도 없고 또한 중간도 없으며 취하는 것도 없고 버리는 것도 없어야 비로소 도에 들어가는 것이므로 이것을 바로 없다고 하느니라.

그 까닭은 여러 겁을 지나서 그 수조차 헤아려 알기 어려운 옛적에 자재 (自在)라는 전륜왕이 있었는데, 

그 왕에게는 천(千)의 아들이 있어서 용맹스럽고 걸출하였으며 국토가 7보로 되어 있는 4천하를 주관하였으며, 

바른 법으로써 다스리고 형벌도 가하지 않았었느니라.

그때 부처님께서 계셨으니 명호는 보묘(寶妙) 여래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ㆍ명행족(明足行)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도법어(道法御)ㆍ천인사(天人師)ㆍ불세존이라 하였느니라.

그때에 부처님께서 설법하셨으니, 

처음 말씀도 좋았고 중간 말씀도 좋았고 마지막 말씀도 좋았으며, 

그 뜻을 분별하되 미묘하게 구족하였으며, 

범행(梵行)을 청정하게 닦으면서 법을 연설하여 넓히셨으므로, 

그때 모인 보살은 무수억(無數億)의 대중이었고, 

성문과 연각도 한없이 많았느니라.





그때 전륜왕은 부처님을 여러 해 동안 공양하고 모셨었는데, 

천의 아들과 보배스런 신하[寶臣]와 대중과 그들을 따르는 권속들이 다 함께 부처님께로 와서 머리 숙여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느니라.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보살의 행을 널리 말씀하시어 안온(安穩)한 바가 많았고 구호된 바가 많았으며, 

온갖 사람들에 있어서 제일 높은 이었느니라.

왕과 모든 아들과 보배 신하와 수종한 이들은 모두가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일으켜 밤이나 낮이나 정진하면서 감히 게으르거나 쉬지 않았으며, 

여래께 온갖 편안한 바를 공양하였느니라.

이때 천 명의 아들 모두는 부처님 앞에서 스스로 공덕을 시험하려 하였는데, 

‘저마다 누가 먼저 부처님이 되는가를 산가지를 뽑아 제일 좋은 산가지를 뽑은 이는 그 밖의 나머지 사람을 항복시켜 그 차례대로 부처님이 되게 하며 게으르고 박덕(薄德)한 이가 최후에 뽑힌 것으로 하자’ 하고, 

곧 말한 대로 저마다 산가지를 뽑았느니라.

그 가운데 한 태자가 최후에 산가지를 뽑았는데 맨 끝에서야 비로소 부처님이 되게 되었으므로, 

그는 그때에 근심ㆍ걱정하면서 스스로 어찌할 줄 모르다가 곧 큰 산이 무너지듯 자기 몸을 땅에 던지면서 ‘내가 어찌하여 맨 나중에 부처님이 된단 말이냐?’라고 하였느니라.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느니라.

‘근심ㆍ걱정하지 말라. 

도(道)에는 기한이 있는 것도 없고 또한 멀고 가까운 것이 없느니라. 

공(空)하여 없다는 지혜를 능히 분별하여 알면 곧 먼저 부처가 되느니라.’

이때 그 태자는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하면서 곧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도의 뜻을 일으켜 불기법인을 얻었으며, 

큰 자비를 행하면서 온갖 법은 마치 요술ㆍ그림자ㆍ메아리와 같고 아지랑이와 같으며 꿈ㆍ파초ㆍ물속의 달과 같은 줄 알았으므로 천 명 가운데 네 번째로 부처님이 되었으니, 

명호는 석가문(釋迦文)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었느니라.

그 나머지의 모든 아들들은 차례대로 부처님이 될 것이며, 

최후에 부처님이 될 이는 명호가 누유(樓由)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알고자 하느냐? 

그때의 전륜성왕은 바로 정광(錠光)여래이시며, 

제비를 잘못 뽑은 태자는 곧 공하여 없음을 이해하고는 게으르지 않고 정진하여 먼저 부처님이 되었으니, 

바로 지금의 나이니라.

그 나머지의 여러 아들들은 현겁(賢劫) 동안 천 부처님이 되실 분들이니라. 

그러므로 이런 이치를 알아야 하느니라. 

도는 멀거나 가까운 것이 없고 공을 알아 미묘함을 분별하면서 자연 그대로 법인 줄 알아야 비로소 빨리 부처님이 되느니라.”

그때 모여 있는 이들 모두가 기뻐하지 않음이 없으면서 널리 도의 뜻을 일으켜 보살행을 닦았으므로 5천의 보살은 법인(法忍)을 체득하였고 만인(萬人)은 유순법인(柔順法忍)을 얻었다.

이때 일천왕(日天王)이 헤아릴 수 없는 수백천의 천인(天人)들과 함께 부처님께로 와서 발아래 머리 숙여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서 있다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떠한 행(行)으로써 일천왕이 되어 다니면서 4천하를 비추며, 

어떠한 인연으로 달이 되어서 밤을 비추며 어둠을 없애나이까?”

부처님께서 일왕(日王)에게 말씀하셨다.

“일왕이 될 수 있는 데는 네 가지 일의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언제나 보시하는 것을 기뻐하고, 

몸을 닦으면서 행을 삼가며 계(戒)를 받들어 범하지 않고, 

부처님ㆍ절ㆍ탑묘에 등불을 켜고, 

또는 부모ㆍ사문ㆍ도인(道人)에게 광명의 덕(德)을 심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네 가지이니라.”

이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언제나 보시를 일으키기 좋아하고

계를 받들어 범하지 않으며

부처님과 절과 부모님 앞에

등불을 켜 밝히며,


부처님의 정전(正典)을 기뻐하고

경법(經法)을 헐뜯어 말하지 않으며

사문과 도사(道士)를 공경하나니

이로 인하여 일왕이 되나니,


몸에서는 천(千) 광명을 놓아

널리 4천하를 비추어

모든 깊고 어두운 곳까지

환한 빛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부처님께서 일왕에게 말씀하셨다.

“일천왕이 되는 데에 열 가지 일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몸으로는 살생(殺生)ㆍ투도(偸盜)ㆍ음행(婬行)을 하지 않고, 

입으로는 양설(兩舌)ㆍ악구(惡口)ㆍ망언(妄言)ㆍ기어(綺語)를 하지 않으며, 

뜻으로는 진에[恚]ㆍ질투[嫉]ㆍ우치[癡]를 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열 가지이니라.”

이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자신을 공경하고 스스로 단속하여 보호하며

그러면서 살생과 도둑질과 음행을 하지 않으며

지조 없는 말과 험담과

망언과 꾸미는 말을 하지 않느니라.


마음에 질투를 품지 않고

성을 내는 모든 독기가 없으며

62개의 어리석은 견해를 여의면

해의 광명으로 사방을 비추느니라.


부처님께서 일왕에게 말씀하셨다.

“또 월왕(月王)이 되는 데에 네 가지 일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가난하여 없는 이에게 보시하고, 

언제나 5계를 받들어 지니며, 

삼보(三寶)를 좇아 공경하고 어두운 데와 군(君)ㆍ부(父)ㆍ사(師)ㆍ사(寺)에 촛불을 밝히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네 가지이니라.”

이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모든 가난하여 없는 이에게 보시하고

언제나 5계를 받들어 지니며

부처님과 절에 등불을 밝히고

삼보를 공경하며 모시느니라.


마음은 모든 선(善)을 생각하는 데에 두고

세간의 뭇 악[衆惡]을 물리쳐 버리며

스스로 몸과 입과 뜻을 보호하면

달빛으로 어두운 데를 비출 수 있느니라.


이때 일왕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대성(大聖)이시여, 

높으신 뜻으로 굽어 살피시어 궁중으로 오셔서 하찮은 음식이라도 드시어, 

제가 거느리고 있는 허공의 신(神)과 하늘[天]들로 하여금 모두가 큰 은혜를 입고 깊고 묘한 법을 들어서 모두 다 도의 뜻을 내어 제도되길 한량없게 하소서.”

그때 부처님께서 잠자코 계시면서 그의 청을 받아들이시자, 

일왕은 부처님께서 이미 허락하시어 청을 받아들이신 것으로 알고, 

부처님을 세 바퀴 돌고 홀연히 궁중으로 돌아와서 온갖 음식과 여러 가지 맛있는 것을 장만하고 평상ㆍ걸상ㆍ방석 등을 아름답게 꾸미고 깨끗이 하며 부처님을 위해서 4천 리(里) 높이의 자리를 펴 놓았다.

이에 일왕은 궁전에 서서 멀리서 거듭 부처님께 간청하고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모든 중생에게 보시 하시되

있는 것을 아끼지 않으시고

또한 보답을 바라지도 않으셨기에

부처님 되시어 시방을 제도하시나이다.


지혜는 마치 허공과 같고

교화하심에 걸림이 없으시며

모든 중생 은혜 입었사오니

때가 되었나이다. 

굽어 살피옵소서.


인자하신 마음을 중생에게 펴시어

일찍이 위해(危害)함이 없게 하시며

제도되지 못한 이를 가엾이 여기시어

법보(法寶)로써 베풀며 가르치옵니다.


위신력(威神力)으로 중생을 비추시고

가난하여 없는 이를 구제 해탈시키시며

7보(寶)를 베푸시니

때가 되었나이다. 

굽어 살피옵소서.


중생들의 마음이 미혹하여

5도에서 애쓰면서 고통스러워함을 보고

언제나 큰 은혜 베푸시면서

두려움들 달래주고 면하게 하시나이다.


법의 가르침으로써 깨우쳐 교화하고

미치지 못한 이들에게 보이고 인도하며

공하여 없는 지혜 심어 주시나니

때가 되었나이다. 

굽어 살피옵소서.


그 광명은 해와 달 뛰어넘고

위엄과 덕망은 수미산보다 뛰어나며

지혜는 허공보다 훨씬 더 뛰어나니

짝할 이나 견줄 이를 비유할 수 없나이다.


해나 달은 뭇 어둠을 비추면서

다만 만물(萬物)만을 성숙시키지만

부처님께서는 5도의 사람을 비추어서

모두로 하여금 5안(眼)을 얻게 하시나니,


허공은 오히려 자로 잴 수 있고

바닷물은 방울 수를 알 수 있으며

수미산과 시방의 온갖 땅도

또한 근(斤)과 양(兩)으로 알 수 있으나,


여래의 지혜는 성스럽고

공조(功祚)는 넓으면서도 높디높아

한(限)이 없고 그보다 두루 뛰어나시니

때가 되었나이다. 

굽어 살피옵소서.


그때 세존께서는 모인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때가 되었으니 모두 갈 준비를 갖추고 일왕이 청(請)한 곳으로 나아가자.”

이에 즉시 모두가 분부를 받아 부처님과 대중은 허공으로 솟아올라 일왕의 궁전으로 나아가 사자좌(獅子座)에 앉았으며, 

집회에 모인 대중이 다 앉자 왕후와 태자와 모든 하늘의 권속들은 땅에 머리를 숙여 예배하고, 

곧 지극한 마음으로 세존께 공양하되 손수 온갖 공양을 가져다 날랐다.

진지를 다 드시고 씻고 나시자, 

다시 낮은 상을 가져다 스스로 부처님 앞에 놓고 앉아서 공손하고 엄숙하게 법을 들으려 하므로 부처님께서 일왕에게 말씀하셨다.

“온갖 삼계에서 받는 형상 모두가 마음과 뜻을 좇으며, 

마음과 뜻은 형상은 없지마는 짓는 바의 행에 따라 몸이 성립되니, 

호귀(豪貴)와 빈천(貧賤)은 모두 무상(無常)으로 돌아가느니라. 

마치 물거품이 일어났다가 순간 다시 무너져 없어지는 것과 같이 온갖 세간에 있는 바도 그와 같으니라.

그러니 마땅히 도덕(道德)을 믿되 바르고 참된 것만 믿어야 하고 그 밖의 것은 믿지 말아야 하니, 

뭇 행을 버리고 법의 행을 받들어 행하라.

어떤 것을 법의 행이라 하는가? 

무생(無生)의 행(行)은 모든 생기는 바를 없애고, 

진제(眞諦)의 행은 존재하는 바가 뛰어나며, 

입도(入道)의 행은 망실(忘失)하는 바가 없고, 

보시(布施)의 행은 아끼거나 바라는 바가 없으며, 

지계(持戒)의 행은 모든 원(願)을 두루 얻느니라.

인욕(忍辱)의 행은 뭇 사람을 어지럽히지 않으며, 

정진(精進)의 행은 동요하거나 옮아가는 일이 없고, 

일심(一心)의 행은 뜻의 행[意行]으로 언제나 통달하며, 

지혜(智慧)의 행은 거룩한 눈[聖眼]으로써 보느니라.

인자한 마음의 행은 온갖 괴로움을 참아내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의 행은 중생에게 뜻을 평등하게 지니며, 

기쁘게 하는 마음의 행은 법으로써 깨우쳐 교화하고, 

보호하는 마음의 행은 온갖 것을 편안하게 위로하느니라.

신통의 행은 여섯 가지 신통으로 통달하고, 

공(空)을 사유하는 행은 성내거나 해치려는 마음이 없으며, 

녹여 없애는 행은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고, 

네 가지 은혜의 행은 합쳐 모여서 사람을 구제하느니라.

견문이 넓은 행은 따라 받아들여 도(道)를 이루고, 

일어나지 않는 행은 자연그대로라고 보며, 

도품(道品)의 행은 유위(有爲)를 얻게 하지 않고, 

본래 없음의 행은 죄와 복의 과보가 없으며, 

인연으로 생기는 행은 무명(無明)과 명(明)의 다함이 없음을 분명히 알고, 

뭇 수고로운 행은 사람과 만물은 자연 그대로인 줄 알고, 

모든 법의 행은 공의 지혜를 분명히 알아 평등각(平等覺)을 얻느니라.

악마를 항복받는 행은 흔들리거나 움직일 수 없고, 

삼계의 행은 비록 처하여 있으나 떨어지지 않으며, 

사자(師子)의 행은 잘 이기면서 두려워함이 없고, 

힘써 두려워함이 없는 행은 향하는 바에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3달(達)의 행은 걸림이 없고, 

일심으로 깨닫는 행은 큰 지혜가 널리 갖추어지며, 

온갖 것을 가르치는 행은 두루 하지 않음이 없고, 

62견을 교화하는 행은 중생의 의심 그물과 96경을 제도하고 가르치면서 하나의 도에 들어가느니라.

그러하느니라. 

일왕아, 

보살이 이런 행에 순응하면 곧 도의 행에 순응하고, 

이미 도의 행에 순응하면 곧 대자(大慈)에 순응하며, 

이미 대자에 순응하면 곧 대비(大悲)에 순응하고, 

이미 대비에 순응하면 큰 갑옷에 순응하며, 

이미 큰 갑옷에 순응하면 곧 사자처럼 외치고, 

이미 사자처럼 외치면 곧 허깨비에 순응하느니라.

이미 허깨비에 순응하면 곧 5도(道)에 들어가고, 

이미 5도에 순응하면 곧 인연을 따라 들어가며, 

이미 인연을 따라 들어가면 변하지 않는 바가 없으니, 

이미 변한 데에 있으면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으며, 

제도하되 제도하는 바가 없고 청정하되 청정한 바가 없으며, 

밝되 밝히는 바가 없고, 

깨닫되 깨닫는 바가 없어야 비로소 바르게 깨닫게[正覺]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일왕에게 말씀하셨다.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일과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법신(法身)이 평등함을 통달하려 하면 언제나 마땅히 이런 뜻을 믿고 분별하고자 해야 하며, 

생사와 12인연을 좇아 일어나는 바와 3취의 우환과 5개(蓋)의 가림을 알고자 하면 마땅히 이런 뜻을 이해하면서 믿고 받들어 행할지니라.

12부 경전의 요지를 알아서 3달(達)의 가르침을 열고 3탈(脫)에서 초월하여 3달지에 이르고자 하면 마땅히 이런 뜻을 알아야 하느니라. 

마치 군(郡)ㆍ국(國)ㆍ현(縣)ㆍ읍(邑)과 언덕과 촌락과 온갖 곡식이며 풀ㆍ나무ㆍ약ㆍ과실수가 모두 땅으로 인하여 생기듯이, 

보살이 이 지혜에 들면 교화하지 않는 바가 없으면서도 모두 그것을 성립시켜,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와 성문ㆍ연각에 이르게 하는 것도 모두 그것에 의지하고 기인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법을 말씀하실 때에 일천왕과 왕후와 태자와 그 권속인 모든 하늘들은 모두 마음에 저절로 불기법인을 얻었으며, 

10억의 하늘과 사람들이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일으켰다.

그때에 세존께서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공중에 서서 헤아릴 수 없는 백천의 권속에게 에워싸인 채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하늘과 사람들은 환히 알지 못하고

아직까지 크기를 재기 어려워

5취(趣)에 헤매고 헷갈리는 것은

마치 고기가 낚시의 미끼를 문 것과 같으니라.


삼계는 마치 요술과 같아

황홀하여 처소를 보지 못하며

태어난 것 스스로 깨닫지 못함은

의식(意識)에 부림[使]을 받아서이니라.


네 가지의 뒤바뀜에 떨어져

너무 불쌍하고 가여워할 만하니

스스로 몸이 항상 있다고 헤아리고

도(道)의 진리를 믿지 않느니라.


온갖 것은 공(空)으로부터 나는 것인데

도리어 공의 지혜를 듣기 싫어하니

마치 사람이 어버이로부터 태어나나

오히려 부모에게 불효(不孝)하는 것과 같으며,


개가 변화하여 호랑이가 되어

사람을 위할 때를 깨닫지 못하고

곧 다시 집안사람을 해치며

친소(親疎)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라.


사람은 본래 공(空)으로부터 난 것이라

미울 것이 없는 것도 역시 그와 같거늘

음(陰)과 입(入)에 흐려서 어지러워지면

마치 취한 이가 나체(裸體)로 달리는 것과 같으니,


개가 다시 변하여 사람을 위하여야

비로소 집안의 친속을 알듯이

본래부터 없음을 분별하여야

비로소 온갖 것이 공임을 깨닫느니라.


공한 것은 공을 생각하지 않고

공도 또한 공을 보지 않나니

이미 나는 바가 없음 통달하여야

마침내 자연 그대로인 줄 알게 되느니라.

보살의 행을 구하면서

중생들을 제도 해탈하려 하면

온갖 법은 스스로 그러하여

마치 허깨비와 같은 줄 알아야 하나니,


이런 지혜로 분별한 뒤에

그것을 따르면서 여의지 않으면

곧 깊고 미묘한 데에 들어가

방편과 지혜로 사람을 제도하리라.


부처님께서 이 법을 말씀하실 때에 수없는 억(億)의 하늘들과 허공의 모든 신(神)은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일으켰으며, 

헤아릴 수 없는 보살은 불기법인을 얻었다.

부처님은 다시 유야리(維耶離)의 내씨수원(㮈氏樹園)으로 되돌아가셨다.

그때 성(城) 안에 해법도(解法度)라고 하는 큰 장자가 있었는데, 

그는 전세(前世)에 수없는 백천의 부처님께 공양하여 일궈놓은 덕의 근본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으며, 

모든 부처님께 머리 조아려 예배한 것도 한량없었다. 

법담(法談)을 나누어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에서 조금도 물러나지 않았다.

불기법인으로 지혜를 내면서 도무극과 방편으로 제도한 바는 헤아리거나 말할 수도 없이 많았다. 

그가 권속들과 함께 부처님께 와서 머리 숙여 예배한 뒤에 한쪽에 앉아서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 공양하면 어떠한 공덕을 얻나이까?”

부처님께서 장자에게 말씀하셨다.

“꽃을 받들어 부처님께 뿌리면 태어날 적마다 단정하게 생기고 의복과 음식이 저절로 있으며, 

향을 사르러 향기를 풍기면 몸이 향기로우면서 깨끗하고 이름과 덕이 멀리까지 퍼지며, 

등불을 켠 이는 천안(天眼)이 밝고 슬기로워 어두운 데에 처하지 않고, 

당기나 번기를 보시하면 있는 곳마다 풍요롭고 즐거우며 재보(財寶)가 한이 없으며, 

비단 일산을 받쳐 드리는 이는 집을 얻게 되어 보호를 받아 드러나지 않는다.

음악과 창기(倡伎)로 부처님과 탑사(塔寺)를 즐겁게 하고 나아가 온갖 것을 즐겁게 하면 천이(天耳)를 얻어서 두루 꿰뚫어 들으며, 

신발이나 탈것을 보시하면 가벼이 뛰어오르며 날 수 있고, 

일심으로 부처님을 향하면 전생의 일을 알게 되며, 

중생을 인자하게 살펴보면 온갖 마음을 알고, 

법으로써 베풀어 주면 모든 번뇌가 다하게 되느니라. 

음식으로 베풀어 주면 언제나 법회를 만난다.

의복으로써 베풀어 주면 32상과 80종호를 얻게 되니, 

내가 멸도한 뒤에 그 어떤 이가 형상과 사리에 공양하면 공덕도 역시 이와 같아서 점차 법에 수순하게 되고, 

이로 인하여 무위의 도를 건너게 되느니라.”

해법(解法) 장자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정녕 공양에는 이 꽃ㆍ향ㆍ번기ㆍ일산ㆍ기악(伎樂)ㆍ신ㆍ탈것ㆍ음식과 의복보다 뛰어난 것이 있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있느니라.”

또 물었다.

“어떤 것이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의 뜻을 일으켜 온갖 중생의 처음으로부터 마지막까지의 우환(憂患)을 가엾이 여겨 제도하려 하며, 

대자대비로 생사(生死)의 세계를 싫어하지 않고, 

모든 총지(總持)와 3장(藏)의 상자[篋]와 아주 오묘하여 헤아리기 어려운 끝없는 지혜를 구하여 평등하게 3도(塗)를 없애고 삼보로써 인도하느니라.

공ㆍ무상ㆍ무원을 분별하면서 3탈문을 초월하고 세 가지 통달한 지혜[三達智]를 얻으며, 

사람의 근본은 본래 처소가 없고 인연으로써 생긴다고 보며, 

온갖 법도 또한 가고 오는 것이 없고 6정(情)도 자연 그대로여서 마치 물 위의 거품과 같다고 관하며, 

4제(諦)에 진리가 없는 것은 마치 아지랑이와 같고 본래부터 없는 것이 곧 진리라는 것을 분명히 아느니라.

자(慈)ㆍ비(悲)ㆍ희(喜)ㆍ호(護)와 보시를 법으로 여겨 중생을 사랑하고 많은 이들에게 권하고 이롭게 하면서 평등하게 온갖 중생을 이롭게 하며, 

여섯 가지의 도무극과 선권방편으로 수순하면서 교화하되 생사를 미워하지 않느니라.

또 마치 나는 새가 공중을 날아다니는 것과 같이 처음부터 끝까지 즐거워하는 것이 꽃과 열매와 동산과 흐르는 샘과 암자와 같이 하면서 큰 성인의 진실하고 묘한 바다를 어기지 않느니라.

네 악마를 두려워하지 않고 뭇 삿된 62견을 항복시키며, 

96경의 미혹을 교화하고 성문이나 연각의 행을 버리며, 

무아(無我)ㆍ무인(無人)ㆍ무수(無壽)ㆍ무명(無明)을 알아 바르고 참되며 위없는 대도(大道)를 좇아 수행하는 것이니, 

이 공양이야말로 가장 뛰어나느니라.

스스로 자기의 몸은 마치 허깨비와 같을 뿐이라고 관하고 12인연은 실마리가 없는 줄 분명히 아느니라. 

그 까닭은 본래는 어리석음[癡]이 없었으나 연이 응하여 일어났기 때문이니라.

어리석음으로부터 행(行)에 이르고, 

행으로부터 식(識)에 이르며, 

식으로부터 명색(名色)에 이르고, 

명색으로부터 6입(入)에 이르며, 

6입으로부터 습(習)에 이르고, 

습으로부터 통(痛)에 이르며, 

통으로부터 애(愛)에 이르고, 

애로부터 취(取)에 이르며, 

취로부터 유(有)에 이르고, 

유로부터 생(生)에 이르며, 

생으로부터 사(死)에 이르고, 

사로부터 우(憂)ㆍ척(戚)ㆍ비(悲)ㆍ감(感)에 이르되 뜻[意]이 번거롭게 할 수는 없느니라.

본래부터 없음을 분명히 알면 오히려 치(癡)조차 없거늘 어찌 행ㆍ식ㆍ명색ㆍ육입ㆍ습ㆍ통ㆍ애ㆍ취ㆍ유ㆍ생ㆍ노사(老死)ㆍ우비(憂悲)의 괴로움이 있겠느냐? 

영원히 없는 것이니라.

모든 연(緣)이 모두 제거되면 삼계에 머무르지 않고 열반도 좋아하지 않으며, 

대도(大道)라는 생각[念]도 없고 작은 도라는 생각[小道想]도 없으며, 

나고 늙고 죽는 데에 노니는 것이 마치 해와 달이 나오지도 않고 들어가지 않는데도 세간 사람에게는 나오는 것이 있고 들어가는 것이 있는 것과 같으니라.

보살도 그와 같이 온갖 중생을 교화하면서 삼계에 나타내 보이되 3승의 가르침을 나타내어 곧 멸도(滅度)를 나타내면서 온갖 사람에게 모든 생멸을 보이지만, 

보살의 법에서는 생멸이 없는 것이니, 

이 공양이야말로 가장 뛰어나고 가장 존귀하고 으뜸이요 끝도 없고 밑도 없는 공양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법을 말씀하실 때에 10만의 하늘과 사람들이 모두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냈으며, 

해법 장자와 그 권속들은 모두 불퇴전과 불기법인을 이루었다.

이때 조의(調意)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고르다[調]고 하고 무엇을 보배[寶]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설령 어떤 이가 욕설을 퍼붓고 회초리로 때리며 저주를 퍼붓는다 하여도 마음에 달라짐이 없고, 

헐뜯고 욕되게 하고 오만하고 업신여기고 천히 여긴다 하여도 마음에 달라짐이 없으며, 

또는 칭찬하고 공경하고 공덕을 널리 드날린다하여도 마음에 달라짐이 없느니라.

설령 하늘의 복이나 전륜왕의 뛰어난 성왕의 지위나 애욕의 즐거움으로써 그에게 권하고 보인다 하여도 마음에 달라짐이 없으며, 

가령 지옥ㆍ아귀ㆍ축생의 재앙과 괴이함으로써 두렵게 하고 핍박한다 하여도 마음에 달라짐이 없느니라.

목숨이 비상(非常)ㆍ고(苦)ㆍ공(空)ㆍ비신(非身)인 줄 알면서 그것으로써 보이고 위로한다 하여도 마음에 달라짐이 없으며, 

또는 성문이나 연각의 법으로써 권유하고 나아가게 한다 하여도 마음에 달라짐이 없고, 

보살의 공하여 없는 지혜와 대승으로 그를 교화한다 하여도 마음에 달라짐이 없으면, 

이것을 바로 고르다[調]고 하느니라.”

“어떤 것을 보배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의 마음을 내어 온갖 중생을 제도하려 하면 이것이 바로 보배요, 

부처님을 존경하면서 외도(外道)를 따르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이며, 

경 (經)을 이해하고 가르침을 따르면서 큰 교화에 거스르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요, 

뭇 스님과 성인 대중에게 겸손하면서 공경하면 이것이 바로 보배이니라.

온갖 것을 보시하되 아끼거나 바라는 바가 없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요, 

계율을 받들고 금제(禁制)를 따르면서 보살의 서원을 세우면 이것이 바로 보배이며, 

인욕(忍辱)의 힘으로 뜻을 조복하여 산란하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요,

정진으로 힘쓰면서 도를 닦고 근본에 힘쓰면 이것이 바로 보배이며, 

한마음으로 선정을 행하고 바르면서 삿되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요, 

지혜가 깊고 미묘하면서 6쇠에 떨어지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이며, 

선권방편으로 각각 그 처소를 얻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이니라.

인자한 마음이 넓으면서 뜻함이 넓어 좁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요, 

언제나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품고서 위액(危厄)을 불쌍히 여기면 이것이 바로 보배이며, 

편안하고 온화하면서 기뻐하게 하되 기뻐하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요, 

온갖 것을 옹호하면서 구제해 주지 않음이 없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이니라.

법으로써 베풀어 주되 도(道)로써 하지도 않고 속(俗)으로 하지도 않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요, 

중생을 어루만져 기르면서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바가 없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이니라.

힘써 보존하고 길이 이롭게 하면서 손실되게 하는 바가 없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요, 

온갖 것에 대해 평등하게 이롭게 하여 치우치거나 사악한 뜻이 없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이며, 

언제나 겸허하면서 마음을 비워 일찍이 오만하거나 방자한 일이 없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이니라.

설령 어떤 이가 욕설을 한다 해도 한(恨)을 맺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요, 

혹 매로 때린다 해도 본래 몸은 없는 것이라고 헤아리면 이것이 바로 보배이며, 

설사 화를 내며 해친다 해도 어질고 측은히 여겨 보답하면 이것이 바로 보배요,

업신여긴다 해도 그의 악(惡)을 기억하지 않게 되면 이것이 바로 보배이며, 

본래 몸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 나를 헤아리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요, 

온갖 괴로움을 알면서 방일함을 좋아하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이니라.

물건은 나의 소유가 아니므로 물질에 현혹됨이 없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요, 

성문의 행을 버리면서 연각이 되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이며, 

신통 변화를 숭상하여 닦아 다섯 가지로부터 여섯 가지에 이르면 이것이 바로 보배요, 

예순두 가지를 버리고 삿된 견해에 떨어지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이니라.

열반에 안주하지 않고 생사에도 위태하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보배요, 

언제나 큰 법으로써 아직 듣지 못한 이를 깨우쳐 교화하면 이것이 바로 보배이며,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법의 다리[法橋]를 나타내어 보이면서 모든 재액으로부터 구제하여 주면 이것이 바로 보배요, 

삼계가 공이요 온갖 것이 본래 그대로인 줄 이해하면 이것이 바로 보배이니라.”

연화정(蓮華淨)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보살이 청정한 행에 이르게 된다 하나이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애욕에 더러워지지 않으면 이것을 곧 청정이라 하고, 

마음이 언제나 깨끗하면서 성내는 독[恚毒]을 따르지 않으면 이것이 곧 청정이며, 

삼계의 티끌에 물들거나 막히지 않으면 이것이 곧 청정이요, 

멸도(滅度)를 요행으로 여기지 않고 생사를 무시하지 않으면 이것이 곧 청정이요,

처음과 마지막을 헤아리지 않으면서 무위(無爲)에 나고 들고 하면 이것이 곧 청정이요, 

언제나 대자(大慈)를 행하면서 대애(大哀)를 버리지 않으면 이것이 곧 청정이요, 

대도(大道)라는 생각이 없고 소도(小道)를 구함도 없으면 이것이 곧 청정한 것이니라.”

광영(光英)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떠한 인연으로 보살은 광명이 널리 비춘다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탑과 절에 등불을 켜고 학문(學問)과 지혜를 널리 모으되 만족함이 없으며, 

도의 밝음[道明]을 드러내 주면서 참과 거짓을 통달하게 하고 성전(聖典)의 12부경(部經)을 좇아 익히게 하며, 

모든 유의 바다[有海]인 12인연을 제도하고 언제나 대승에 뜻을 두면서 뭇 사람들의 우환을 없애고 미묘한 지혜에 이르면, 

이것을 바로 보살이 광명을 널리 비춘다 하느니라.”

해박(解縛)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떠한 연유로 보살은 온갖 속박을 해탈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세 가지 처소가 공한 줄 분명히 알아 과거ㆍ미래ㆍ현재에 대하여 생각이나 집착하는 바가 없으면 3구(垢)가 곧 제거되고, 

색이 공한 줄 분별하면서 통(痛)ㆍ상(想)ㆍ행(行)ㆍ식(識)도 역시 그와 같아 온갖 것은 본래 없는 것이라 집착하지도 않고 끊지도 않으며, 

하나도 구할 바가 없는지라 역시 버리는 바도 없으니, 

이것이 바로 보살이 온갖 속박을 해탈하는 것이니라.”

보사(寶事)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으로써 보배를 삼으며 무엇으로써 돌[石]을 삼나이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불(佛)ㆍ법(法)ㆍ중(衆)에 귀의하고 그릇된 법에는 귀의하지 않으며, 

모든 96경(經)을 버리고 성문이나 연각을 원하지 않으면서 언제나 대도(大道)에 뜻을 두며, 

대자대비로 중생의 5도의 미혹을 구제하는 이것이 바로 보배가 되는 것이며, 

12인연에 잘못 헷갈리고 큰 법의 공하여 없는 지혜를 알지 못하면 이것은 바로 돌이 되는 것이니라.”

은시(恩施)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보살이 중생에게 은혜를 베푼다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직 뜻을 내지 못한 이로 하여금 모두 발심하게 하고, 

물러나는 이로 하여금 물러나지 않게 하며, 

모든 생기는 것에서는 생기는 바가 없게 하고, 

아직 완전히 갖추지 못한 이로 하여금 일생보처에 이르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보살이 온갖 중생에게 은혜를 베푼다는 것이니라.”

제천(帝天)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보살이 모든 하늘을 능히 교화한다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욕계(欲界)에 있으면서 욕심의 덧없음을 나타내는 것은 마치 사람이 꿈에 청정한 행을 보이는 것과 같고, 

색계(色界)에 있을 때는 그들을 위하여 크게 인자한 보살의 행을 나타내며, 

무색계(無色界)에 있을 때는 그들을 위하여 깊고 묘한 법을 나타내되 의지하거나 기대는 바가 없으니, 

욕계에 의뢰하지도 않고 색계에 의뢰하지도 않고 무색계에 의뢰하지도 않으며, 

소승에 의지하지도 않고 대승에도 의지하지도 않느니라. 

이것이 바로 보살이 모든 하늘들을 능히 교화한다 하느니라.”

수천(水天)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보살이 본래 청정함을 안다 하나이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온갖 법은 요술과 같고 변화와 같아서 일체 법은 본래부터 없다고 분명히 아는 것은, 

마치 물의 근원은 본래 처음에 청정하여 더럽거나 흐림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그 까닭은 물이 마침 일정하게 머물러 있으면 청정하여 그대로이기 때문이니, 

본래부터 없음을 알면 곧 법신(法身)을 체득하느니라.”

대도사(大導師)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보살이 모든 중생을 위하여 인도한다 하나이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간탐(慳貪)한 이를 보면 인도하여 보시하게 하고, 

방일(放逸)한 이면 인도하여 계율을 지키게 하며, 

성을 내는 이면 인도하여 인욕하게 하고, 

게으른 이면 인도하여 정진하게 하며, 

뜻이 산란한 이면 인도하여 한마음이 되게 하고, 

어리석고 어두운 이면 인도하여 지혜롭게 하며, 

그에게 도의 마음이 없으면 그를 대승으로 인도하는 것이니, 

이것을 바로 보살이 온갖 중생을 위하여 인도한다 하느니라.”

용시(龍施)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보살이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 하나이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세간에 있는 바는 무상ㆍ고ㆍ공ㆍ비신이요, 

나에게는 본래 몸이 있지 않고 몸은 나의 소유가 아니며, 

온갖 것은 그림자가 형상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것과 같다고 관하는 것이니, 

생사도 그와 같이 마음으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니라.

온갖 것이 공인 줄 알면 모두가 할 바도 없고, 

나는 자연이며 내가 자연이므로 생사도 자연이요, 

생사가 자연이므로 열반도 자연이며, 

열반이 자연이므로 대도(大道)도 자연인 것이니라. 

이것을 바로 보살이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 하느니라.”

그때 범천(梵天)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법의 크기가 너무도 커 제대로 만나기 어렵사옵니다. 

수없는 겁 동안 행을 쌓고 덕을 쌓아야 비로소 비슷하게나마 소리를 듣게 되는데, 

다행히 큰 성인을 만나 이 법을 듣게 되었으니, 

보살의 정전(正典)과 요긴하고 미묘한 교화와 깊디깊은 뜻에 공양하나이다.

이미 받들면서 여러 번 듣고 이 법을 통달한 까닭에 그 사람으로 하여금 행(行)에 의거하여 이름을 붙이게 하며, 

그가 이 경을 들으면 벌써 부처님을 뵌 것이 되고 귀로 미묘한 지혜를 들은 것이며 성인 대중을 공양하고 받든 것이오니, 

하늘 길[天路]을 건너고 3취에서 벗어나 위없이 바르고 평등한 도의 뜻을 내게 하나이다.

몸소 3탈(脫)을 이해하고 3달(達)을 폐하지 않으며, 

비록 아직 도(道)에 이르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덕(德)은 점차로 커지므로 초승달과 같고, 

사자새끼가 두려워하거나 어려움 없이 자유로이 제 마음대로 하는 것과 같으며, 

모든 하늘ㆍ용ㆍ신이 모두 그를 호위하고 뭇 악마와 삿된 악이 저절로 조복되며, 

있게 되는 곳의 주(洲)ㆍ성(城)ㆍ군(郡)ㆍ국(國)ㆍ현(縣)ㆍ읍(邑)에서 모두 공경하지 않음이 없고, 

출입(出入)에는 법도[節]에 상응하며,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위신(威神)으로 교화하고 도우시리이다.”

이때에 사천왕(四天王)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즐겁고도 즐겁습니다. 

큰 성인께서 넓으신 은혜로 정신이 흐린 세상에 출현하시어 저희들로 하여금 가까이서 편히 머무르면서 이런 미묘한 교화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보살의 순수한 지혜는 마치 하늘 가운데 하늘과 같으니 어떤 여의주(如意珠)를 얻어서 모든 원대로 하게 된다면 그 사람의 기쁨이 어찌 조그만 양이라 하겠나이까?

저희들도 그와 같이 이 큰 모임에 나와 상호(相好)를 뵙고서 은택을 얻고 불법을 듣고서 감로를 받았으니, 

보살을 따라 모범으로 여기는 것은 마치 큰 바다에 들어가 이런 보주(寶珠)를 얻은 것과 같습니다. 

마땅히 널리 유포하여 동지(同志)에게 드러내 보여 보살행을 하게 해야 하며, 

아직 믿고 좋아하지 못하는 모든 하늘들은 복된 무리에 의지하여 널리 뻗치면서 마음이 열리어 받아 배우게 해야 하리니, 

그들이 믿고 좋아하면 배(倍)로 견고하게 나아가 물러나지 않게 되리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장하구나. 

사천왕아, 

진실로 말한 바와 같으니라. 

이 큰 법이야말로 보기도 듣기도 어려우며, 

만일 한 번 발을 헛디뎌 넘어지면 법과는 영원히 어긋나게 되어서 억천 겁에서도 만날 수 없는 것이 마치 한 개의 바늘이 깊은 바다에 떨어진 것과 같으니, 

반복하여 찾고 구한들 어찌 쉽게 찾을 수 있겠느냐?”

사천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매우 어렵고 매우 어렵습니다. 

천중천(天中天)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요전(要典)의 보살의 깊은 법을 듣고서도 믿고 좋아하지 않고 상실하여 읊고 외우지 않으면 오랜 겁 동안 샛길로 잘못 들어 다시는 만날 수 없느니라.

이 때문에 모든 어진 이들이 스스로 최선을 다하여 있는 곳마다 부처님을 뵙고 깊고 묘한 법을 들어 빨리 위없는 빠르고 참된 도에 이르고자 하면 반드시 부지런히 읽고 외우고 받들어 지녀야 하며, 

아직 듣지 못한 이로 하여금 여기저기 보이면서 그 뜻을 알기 쉽게 풀어주어 이 큰 법전의 은혜를 입게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날마다 닦으면서 차츰차츰 교화하면 그 복이야말로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가령 삼천대천세계에 여래께서 가득 차 계실 적에 어떤 족성자(族姓子)나 족성녀(族姓女)가 백천 겁 동안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면서 온갖 편안한 것을 베풀거나 또는 부처님께서 멸도(滅度)하신 뒤에 저마다 7보로 탑을 우뚝 세우되 위로 24천까지 닿게 하고는 번기ㆍ일산ㆍ풍악ㆍ노래ㆍ게송으로써 역시 백천 겁 동안 공양한다 하면 그 복이 많겠느냐?”

사천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매우 많아서 끝이 없습니다. 

천중천이시여, 

비유할 수조차도 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어떤 이가 이 삼매(三昧)의 열 가지 법과 초일명정과 여섯 가지 도무극과 선권방편을 받으면 이 복이 그것보다 뛰어나니, 

그 까닭은 비록 부처님을 모시고 공양한다 하더라도 이 부처님께서 전해 주신 법전을 받아 큰 성인의 명(命)을 쫓는 것보다는 못하기 때문이니, 

온갖 보살행을 하는 모든 배우는 이들은 이 깊은 경전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부처님이 되기 때문이니라.”

이때 혜시(慧施)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법은 매우 깊고 깊은지라 만일 어떤 이가 믿고 좋아하면서 비방하지 않으면 그는 부처님의 보호를 받고 있는 줄 알아야 하겠지만, 

듣고서도 기뻐하지 않고 의심하면서 비방하며 베껴 쓰거나 읊거나 외우지도 않으며, 

이미 스스로가 외우지도 않으면서 아울러 다른 사람까지 하지 못하게 하여 따라 배우지 못하게 하거나 하면, 

그 죄는 헤아리기도 어려워서 세상에서마다 스스로 잘못된 3취에 떨어지고 스스로 독약을 먹고 다시 다른 사람에게도 마시게 하며, 

제 몸과 목숨을 위태롭게 하여 함정이나 어두운 데에 몸을 던지면서 또 여러 사람까지도 위태롭게 하는 것이옵니다.

이 큰 법이야말로 뭇 광명의 근원이로되 그 큰 것을 헐어버리고 미세한 번뇌로 나아간다면 재앙과 허물은 한이 없어서 태어날 때마다 삼보를 멀리하여 여덟 가지에 처하게 됩니다. 

어떤 것을 여덟 가지의 처함이라 하는가? 

첫째는 변두리 땅이요, 

둘째는 외도(外道)이며, 

셋째는 가난하여 없는 이요, 

넷째는 비천한 이이며, 

다섯째는 수명이 짧고, 

여섯째는 못생기고 남루하며, 

일곱째는 사람들이 미워하고 싫어하게 되며, 

여덟째는 오랑캐가 되는 것이옵니다.

법을 알지 못한 어떤 이가 비방하면서 믿지 않고 대승(大乘)의 업(業)을 좋아하지 않으면, 

이 여덟 가지의 악에 돌아갈 것이니, 

후회하게 된들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장하도다. 

진실로 너의 말과 같으니, 

그 말한 바와 조금도 다름이 없도다. 

기억해 보면, 

옛날 무수겁(無數劫) 때에 보살의 뜻을 일으켜 처음 배우기 시작하면서 출가하여 욕심을 여의고 비구가 된 이가 있었으니, 

이름은 법락(法樂)이었느니라. 

그는 여러 가지 잡된 글귀와 겉모양을 화려하게 꾸민 글들을 좋아하고 숭상하여, 

대승의 길고 묘한 교화에는 뜻을 두지 않고, 

오히려 부처님의 정전(正典)은 거짓이라 비난하며, 

이에 4아함인 소승으로써 과를 증득[果證]하기를 구하면서 이것을 바른 가르침이라 여기느니라.

이때 크게 배우면서 대승을 믿는 지도무극(智度無極)이라는 이가 있었는데, 

공하여 없는 지혜를 강설하였으니, 

그 내용은 깊고 오묘하며 끝이 없었다. 

이에 오랫동안 범행(梵行)을 닦으면서 모두가 다 함께 읊고 외웠다. 

뜻을 알기 쉽게 말하여 널리 유포시켜서 4배(輩)들은 이를 흡족히 들었다.

이때 법락 비구가 그 위에 앉아 있다가 혜품(慧品)을 외우는 것을 듣고, 

문득 그것을 비방하기를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다’라고 하고 스스로 함께 지어 보태면서 부디 수행하지 말라고 하였으므로, 

그는 이 죄로 인하여 큰 지옥에 떨어져 열여덟 종류의 감옥에서 갖은 혹독한 고통을 받으며 여러 겁을 지냈었느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의 국토가 겁이 다할 적에 불에 타 없어지고 수재(水災)로 쓸어 없어지게 될 터인데 그 고통이 어찌 멈추지 않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잠시라도 멈추거나 그만두게 되지 않느니라. 

그 까닭은 만일 그 나라가 파괴되어 다하면 다른 지방의 부처님 세계의 감옥으로 옮겨가기 때문이니라. 

왜냐하면 이 크고 높은 법은 3도(塗)가 말미암은 바요,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부처님의 부모이기 때문이니, 

만일 비방하게 되면 그 재앙은 썩어 없어지지 않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때의 법락 비구를 알고자 하느냐?”

대답하였다.

“저로서는 미치지 못하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로 지금의 나이니라. 

그러므로 몸과 입과 뜻을 수호하면서 망령되이 비방하지 말라. 

이미 악도에 떨어지고 나면 극심한 고문을 후회한다 하여도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후 말세(末世) 사람은 유학(有學)의 법을 보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밝게 통달하여 지혜로우면서도, 

대승을 연설하며 펼 적에는 여기저기서 의심을 하고 공양하는 이를 질투하며 비방하면서 지혜가 없다고 여기며 사람을 미워했기 때문에, 

함께 깊은 경전을 헐뜯은 것이니 만족스럽게 밝힌 것이라고 하지 못한다. 

가령 비유를 들면 한 부모에 십여 명의 아들이 있을 적에 형제끼리 서로 미워하면 아울러 그 두 어버이를 비방하게 되는 것과 같으니라.

그러하느니라. 

아난아, 

장차 오는 세상의 사람들이 동학(同學)을 미워하고 정법(正法)을 비방하면 그 사람이 받을 죄는 헤아릴 수도 없고 비유로도 다할 수 없느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가령 스스로 깨쳐서 허물을 뉘우치게 된다면 어떻게 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사람의 재앙과 허물이 점차 경미해지리니 비록 뒤에 허물을 얻게 된다 하더라도 속히 해탈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반성하여 마음과 입을 단속하여 경망하게 말하는 일이 없어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전을 받아 지니어 읊고 외우고 읽으면서 널리 다른 사람을 위하여 연설하며 두루 펴서 퍼뜨리면 복조(福祚)가 한량없고, 

모든 하늘ㆍ용ㆍ신(神)ㆍ건답화(揵沓惒)ㆍ아수륜(阿修倫)ㆍ가류라(迦留羅)ㆍ진타라(眞陀羅)ㆍ마휴륵(摩休勒)이 모두 함께 옹호하며, 

이 경을 배우는 이는 모든 불세존께서 옹호하시느니라.

또 사나운 사자ㆍ범ㆍ이리ㆍ곰 따위도 감히 번거롭게 하는 것이 없으며, 

걸어 다니거나 들고 나는 데에도 언제나 자유롭고, 

일찍이 나쁜 꿈을 꾸는 일도 없으며, 

꿈속에서는 다만 부처님과 탑만을 볼 뿐이니라.

뜻이 고요한 4배(輩)의 도사(道士)가 경을 해설하게 되면 하늘ㆍ용ㆍ귀신 모두가 그를 보고 싶어하며, 

모든 불세존께서도 역시 그와 같이 하시며, 

4대천왕과 제석ㆍ범왕도 모두 그를 보고 싶어하면서 다 함께 옹호하리니, 

깊은 법인 보살의 협장(篋藏)의 초일명정(超日明定)의 높은 정을 좋아하기 때문이니라.”

이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이 경전을 배우는 이는

모든 하늘이 다 옹호하게 되며

용과 신과 아수륜과

진타라와 마휴륵과


가류라 등 온갖 것들이

감히 범하거나 번거롭게 함이 없네.

시방의 부처님은 위신(威神)으로써

모두 함께 그를 가르치고 인도하네.


하늘의 제석천과 범천왕과

크게 신령하고 묘한 모든 하늘들과

허공에서 세간 다스리는 이[持世者]들은

흠앙(欽仰)하며 모두가 보고 싶어하느니라.

눕고 일어나는 데 언제나 편안하고

일찍이 갑작스러운 일이 없으며

꿈속에선 탑과 절을 보게 되고

나쁜 인연들은 보지 않느니라.


깊은 경전을 체득하여 알아

언제나 힘쓰면서 분별하여 연설하면

듣는 이는 거침없이 통달하여

대승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으리라.


지견(知見)이 없고 복이 적은 이는

믿지 않으면서 바른 경전을 헐뜯고

거짓이라 하여 스스로 지으면서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하느니라.


그러면서 배우는 이들을 질투하고

아울러 넓고 바른 가르침을 비방하니,

마치 형제끼리 서로 미워하고 비방하면

그것이 두 어버이에게 미치는 것 같으니라.





그때 대광(大光)이라는 보살이 있다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빛이라 하고 무엇을 밝음이라 하나이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분명히 알고 지혜가 밝아 마음이 마치 허공과 같이 시방의 과거ㆍ현재ㆍ미래인 3세의 일을 보면서 막히는 바가 없으면, 

방편으로 중생을 제도하는 지혜[權智]를 체득하고 신통을 완전히 통달하며, 

앉아서 모든 중생의 근원을 보고 과거와 미래의 인연이라는 생각이 없으며, 

4대가 장애되지 않고 철위산(鐵圍山)과 대철위산의 보배산들도 장애되지 않으며, 

땅ㆍ물ㆍ불ㆍ바람에 들고 나는 것에도 장애가 없느니라.

왜냐하면 땅은 모두 공(空)하기 때문이니, 

들어가되 땅을 해체하지 않는다. 

만약 땅이 공(空)하지 않다면 물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서 물이 들어가지도 못하거니와2), 

공하기 때문에 차츰 서로 열리고 통하는 것이니, 

마치 사람 몸에는 털구멍이 99만 개 있는 것과 같으니라. 


이미 신통을 얻은 이는 몸이 있다고 보지 않는지라 텅 비고 공하다고 살펴 알아서 걸림이 없는 것과 같으니, 

이것을 바로 빛이라 하느니라.



온갖 마음이 이미 생긴 것과 아직 생기지 않은 것과 

뜻이 있는 것과 뜻이 없는 것과 

도의 마음과 세속의 마음과 번뇌의 마음과 다한 마음과 번뇌 없는 마음을 보고 모조리 다 환히 깨달아 알아서, 

그들을 위하여 뜻을 강설하며 저마다 처소를 얻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밝음이니라.”




이 말씀을 하실 때에 수없는 보살 모두가 신통을 얻었고, 

한량없는 광명이 널리 시방을 비추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전을 받아서 아직 듣지 못한 이들에게 널리 펴 보여 유포하면, 

이에 중생들이 제도되어 바르고 참된 데에 이르게 될 것이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오직 법요만을 받아 지녀야 할 것이니, 

이 경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오리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경 이름은 ‘초일명삼매경(超日明三昧經)’이며, 

또 이름하여 ‘십정경(十定經)’이라고 하라. 

부처님의 결정된 가르침이라 성취하는 바가 많으리니, 

비유하면 해와 달이 사방을 두루 비출 적에 온갖 곡식과 초목과 만물이 변화하여 

모두가 그로 인하여 성숙하게 되는 것과 같으니라.


이 정(定)도 그와 같이 온갖 시방의 5도 생사에서 스스로 구제하지 못한 이를 비롯해 

성문ㆍ연각 그리고 보살 대도(大道)도 모두가 이 정(定)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고 제도되느니라.


설령 천만 겁 동안 6도(度)를 받들어 행하더라도 

바라는 생각이 있다면 

이 초일명정을 통달하는 것보다는 못하며, 

큰 지혜의 광명으로써 시방을 비추는 덕(德)은 그것보다 훨씬 뛰어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어 마치시자, 

현자 아난과 큰 보살 대중과 모든 하늘ㆍ용ㆍ신ㆍ아수륜 등이 기뻐하며 예배하고 떠나갔다.


---------------------


1)

1) 수기(受記)와 같은 말로서 결정한 기별(記別)을 받는 것을 말한다.

2)

2) 고려대장경 원문에는 “지불공자 아부득전 수부득입 이공지고(地不空者 我不得前 水不得入 以空之故)”라고 되어 있으나, 

송(宋)ㆍ원(元)ㆍ명(明) 본에는 “아부득전(我不得前)”이 “수부득전(水不得前)”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는 후자를 따라서 번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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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四有)
사인(四忍)
사정근(四正勤)
사종만다라(四種曼茶羅)
사종성문(四種聲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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