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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4-10-23_방광반야경-K0002-008 본문

과거조각글/불기2564(2020)

불기2564-10-23_방광반야경-K0002-008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20. 10. 23. 13:52



®


『방광반야경』
K0002
T0221

제8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안내

○ 해제[있는경우]
● TTS 음성듣기 안내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방광반야경』 ♣0002-008♧




제8권




♥아래 부분은 현재 작성 및 정리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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放光般若經卷第八

K0002

방광반야경 제8권



서진 우전국 무라차 한역

소진홍 번역



39. 공덕품(功德品)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선남자ㆍ선여인이 한 염부제를 가르쳐서 

그 가운데 중생들로 하여금 10선(善)을 세우게 한다면 

구익아,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복이 참으로 많겠느냐?”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매우 많고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구익아, 

이 선남자ㆍ선여인이 반야바라밀 경권을 가져서 

타인에게 가르쳐 주고 

서사하여 받아 지니고 염송하고 

그 안에 있는 내용을 해석하는 것만 같지 못하니, 

그 공덕을 얻는 것으로 말한다면 배나 더 많은 것이다. 

왜냐하면 이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널리 무루(無漏)의 법을 설하기 때문이다.



모든 선남자ㆍ선여인으로 하여금 모두 얻게 하고 배우게 하며, 

미래에도 또한 배워서 도에 이를 것이며, 

나한ㆍ벽지불도를 구하는 자도 모두 얻게 하며, 

미래에도 또한 그것을 얻을 것이며, 

보살도를 구하는 것도 모두 이 가운데서 얻게 하며, 

미래에도 이르면 모두 빠짐없이 마땅히 그 가운데서 얻을 것이다. 

이미 아유삼불(阿惟三佛)을 이루었으면 모두 이 가운데서 얻었으며, 

미래에 아유삼불을 구하는 사람도 또한 마땅히 이 가운데서 얻을 것이다.


구익아, 

어떤 것을 무루의 법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37품이 공한 것에서 3해탈문ㆍ4제(諦)에 이르기까지 

내외공에서 유무공(有無空)ㆍ부처님의 10종력(種力)ㆍ무량한 불법(佛法)을 말한다. 


선남자ㆍ선여인으로 하여금 아유삼불을 얻어 이루게 하니, 

미래에 구하려고 하는 자도 또한 마땅히 아유삼불을 이루게 될 것이다.


구익아, 

한 염부제의 중생들을 가르쳐서 

모두 10선을 세우게 해도 한 사람으로 하여금 수다원도를 얻게 한 것만 같지 못하다. 


왜냐하면 비록 한 염부제의 중생들을 가르쳐서 10선을 행하게 해도 3악취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한 사람을 가르쳐서 수다원을 얻게 하면 이미 3악취를 여의었기 때문이다. 


구익아, 

만약 한 염부제 가운데 있는 중생들로 하여금 10선을 행하게 하여 수다원을 얻게 해도, 

한 사람을 가르쳐서 벽지불을 얻게 하여 얻는 복이 매우 많음에는 미치지 못한다.

구익아, 

한 염부제의 사람들을 가르쳐서 10선을 세우게 하고 모두에게 수다원ㆍ사다함ㆍ아라한ㆍ벽지불을 얻게 해도, 

한 사람을 가르쳐서 아뇩다라삼야삼보의 뜻을 일으키게 한 공덕이 많은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왜냐하면 한 사람으로 하여금 아뇩다라삼야삼보의 뜻을 일으키게 하여 부처님의 종자를 잇게 하고, 

부처님의 종자를 끊어지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구익아, 

수다원에서 벽지불 및 부처님에 이르기까지 모두 보살에서 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니, 

선남자ㆍ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의 경권을 가져서 타인에게 가르쳐 주면 얻는 바가 매우 많다. 

왜냐하면 모든 광대한 법은 모두 반야바라밀 가운데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인해서 곧 찰리(刹利)ㆍ범지(梵志)ㆍ장자대성이 있음을 알며, 

이것으로 인해서 사천왕에서 위로 무사상무사상혜천(無思想無思想慧天)에 이르기까지 있음을 알며, 

이것으로 인해서 37품과 살운야에 이르기까지가 있음을 알며, 

수다원에서 위로 삼야삼불을 이르기까지가 있음을 아는 것이다.

구익아, 

한 염부제의 중생들은 그만두고라도 사천하에서 소천(小千)천하ㆍ중천(中千)천하ㆍ삼천대천국토에 이르기까지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국토에 가득한 중생들을 모두 가르쳐서 10선을 세우게 해도, 

선남자ㆍ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서사하여 받아 지니고 타인을 가르쳐서 경권을 서사하여 지니게 하고 염송하고 그 뜻을 해설하여 얻는 공덕이 매우 많음에는 미치지 못한다.

또한 구익아, 

선남자ㆍ선여인이 한 염부제에 가득한 중생들을 가르쳐서 4선(禪)ㆍ4등(等)ㆍ4공정(空定)을 세우게 하고, 

5신통(神通)을 얻게 하면 그 사람이 얻은 복은 참으로 많겠느냐?”

석제환인의 부처님께 아뢰었다.

“매우 많고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 선남자ㆍ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써서 지니고 타인을 가르쳐서 경권을 써서 지니고 염송하게 하고 그 뜻을 해설해서 얻는 복이 많은 것만 같지 못하다. 

왜냐하면 구익아, 

반야바라밀은 지극히 광대하고 영원한 것을 설하기 때문이다.”

구익아, 

한 염부제는 그만두고라도 사천하에서 소천국토ㆍ중천국토ㆍ삼천대천국토에 이르기까지 시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국토에 가득한 중생들을 빠짐없이 가르쳐서 4선ㆍ4등ㆍ4공정을 얻게 하고 5신통을 얻게 하면 그 공덕이 참으로 많겠느냐?”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매우 많고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 선남자ㆍ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써서 지니고 타인에게 가르쳐주고 그들로 하여금 써서 지니고 외우고 그 안의 내용을 해설하게 하여 얻는 공덕이 매우 많고 많은 것만 못하다.

또한 구익아,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니는 것은 두 가지 일에 의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두 가지가 아닌 것도 아니다. 

다섯 가지 바라밀을 수행하는 것은 또한 두 가지 방법에 의하는 것도 아니고, 

또한 두 가지가 아닌 것도 아니다. 

또한 두 가지 일에 의하여 내외공과 유무공에 이르기까지를 생각하지 않으며, 

또한 두 가지 일과 방법에 의해서 37품을 행하지 않으며, 

또한 두 가지 일과 방법에 의해서 살운야를 행하지 않는다.

또한 구익아, 

만약 선남자ㆍ선여인이 무량한 방편을 써서 반야바라밀을 지니고 중생을 교화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배우고 받아 지니고 염송하게 하고 그 뜻을 널리 연설하고 해설에 준다면 두 가지 일에 의하여 반야바라밀을 관하지 않는다. 

또한 모양[相]에 의하지도 않고 또한 모양이 없는 것에 의하지도 않으며, 

또한 합하지도 않고 또한 흩어지지도 않으며, 

또한 상응하지도 않고 상응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또한 들어올리는 것도 아니고 또한 내려놓는 것도 아니며, 

또한 집착하지도 않고 또한 끊어지지도 않으며, 

또한 생하지도 않고 또한 멸하지도 않는다. 

또한 지니지도 않고 지니지 않는 것도 아니며, 

또한 처하지도 않고 처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또한 진실도 아니고 또한 거짓도 아니다. 

또한 더러운 것도 아니고 또한 청정한 것도 아니며, 

또한 믿는 것도 아니고, 

믿지 않는 것도 아니며, 

또한 법이 아니고 법이 아닌 것도 아니며, 

또한 여여한 것도 아니고 또한 여여함이 아닌 것도 아니며, 

또한 진제(眞際)도 아니고 진제가 아닌 것도 아니다.

이와 같이 구익아, 

선남자ㆍ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니고 타인에게 가르쳐주고 그들로 하여금 염송하게 하고 배우게 하고 일마다 분별하고 그 뜻을 해설해 주어서 문장과 구절을 분명하게 해주면, 

가르쳐 준 사람이 얻는 공덕은 자기가 염송하고 수행하고 그 일을 행한 것보다 훨씬 수승하다. 

만약 선남자ㆍ선여인이 스스로 반야바라밀을 배워 독송하고 해설하고 몸소 스스로 공양하며 또 타인을 가르쳐서 외우게 하고 배우게 하고 그 안의 뜻을 분별하여 해설하여 주고 그 지혜를 명료하고 구족하게 하면, 

이 선남자ㆍ선여인이 얻는 공덕은 가장 크며 이익이 배나 많다.”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선남자ㆍ선여인은 반야바라밀을 수학하고 마땅히 그 구절의 뜻을 해설하여 수용하는 것을 구족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고 이와 같도다. 

구익아, 

선남자ㆍ선여인은 반야바라밀을 수학하고 마땅히 그 구절의 뜻을 해설하여 수용함을 구족해야 한다. 

이와 같이 배운 선남자ㆍ선여인은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선의 근본[善本]의 덕을 얻을 것이다. 

만약 선남자ㆍ선여인이 그 형상의 수명이 다하도록 시방의 모든 부처님 여래를 공양하는데 그 즐거워하는 바에 따른다면, 

그 사람이 심은 복은 참으로 많겠느냐?”

석제환인이 아뢰었다.

“매우 많고 많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 선남자ㆍ선여인이 무량한 수의 방편으로써 반야바라밀을 수지하고, 

타인에게 가르쳐 주고 배우게 하고 지키고 행하게 하고 그 구절의 뜻을 해설하고 분명하게 알게 해주어서 얻은 공덕과 복이 가장 많은 것에 미치지 못한다. 

왜냐하면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께서는 본래 보살도를 행할 때 모두 다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배워 아유삼불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배우는 자가 있다면, 

또한 마땅히 다시 아유삼불을 이룰 것이다.

또한 구익아, 

선남자ㆍ선여인이 아승기겁 동안 단(檀)바라밀을 행했다고 해도 이 선남자ㆍ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니고 널리 중생을 가르쳐 주는 것만 같지 못하니, 

의지할 바가 없기 때문이다. 

구익아, 

보살이 단바라밀을 행하되, 

만약 의지함이 있어 ‘나는 그들에게 베풀어 주었다’고 생각한다면 이와 같이 하는 보시에 머물게 되니 단바라밀을 이루지 못한다. 

‘나는 계를 지키니 이것이 나의 계이다’라고 말하면 곧 계에 머물게 되니, 

시(尸)바라밀을 이루지 못한다.

‘나는 인욕을 했으므로 이것이 인욕이다’라고 말한다면 곧 인욕에 머물게 되니, 

찬(羼)바라밀을 이루지 못한다. 

‘나는 정진을 하였으니 나아감이 있다’고 말한다면 곧 정진에 머물게 되니, 

유체(惟逮)바라밀을 이루지 못한다. 

‘나는 선을 행하니 선을 했다’고 말하면 곧 선에 머물게 되니, 

선(禪)바라밀을 이루지 못한다. 

‘나는 지혜를 행한다’고 말하면 곧 이 지혜에 대하여 생각하고 이 지혜에 머물게 되니, 

반야바라밀을 이루지 못한다. 

구익아, 

선남자ㆍ선여인이 이와 같이 행하면 6바라밀을 이루지 못한다.”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마하살이 어떻게 행해야 마땅히 6바라밀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이 보시를 할 때 또한 자신도 있지 않으며, 

또한 베풀어 줌도 있지 않으며 또한 받는 자도 있지 않으니, 

이것이 단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반야바라밀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얻는 것도 아니다. 

이것이 보살이 6바라밀을 구족하여 행하는 것이다.

구익아, 

선남자ㆍ선여인은 6바라밀을 행하고 그 뜻을 이해해서 마땅히 이와 같이 지을 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후 미래세에 마땅히 선남자ㆍ선여인이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으려는 뜻을 일으키고 반야바라밀에 머물러도 반야바라밀을 듣고 그 뜻을 깨닫는 것을 구족하지 못한다면 혹은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지 못한다. 

그러므로 마땅히 그 무리의 사람들을 위해서 반야바라밀 가운데 지혜를 구족하게 해설해 주어야 한다.”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사람을 위해서 반야바라밀을 설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ㆍ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설하며, 

설한 후에도 마땅히 다시 설하는 것이다.”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선남자ㆍ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설하는 것이며, 

설한 후에 마땅히 다시 설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선남자ㆍ선여인이 새로이 반야바라밀에 들어가고자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설해야 하며, 

설한 후에도 마땅히 다시 설해야 한다. 

새로 들어가고자 하는 자를 위해서 색(色)이 무상(無常)함을 설하며, 

마땅히 이와 같이 설해야 한다. 

이와 같이 행하는 것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며, 

이와 같이 설하는 것이 5음이 무상함을 생각하는 것이다.

선남자ㆍ선여인은 이와 같이 5음이 무상함을 설하는 것이 처음부터 반야바라밀을 행함으로 향해 가는 것이다. 

12쇠(衰)가 무상하고 고(苦)이고 공함을 설하는 것이 6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18성(性)이 무상하고 고이고 공함을 설하는 것이 6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5음(陰)이 고이고 공함을 설하는 것이 6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4선ㆍ4등ㆍ4공정이 무상하고 고이고 공함을 설하는 것이 6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37품과 18법 나아가 살운야에 이르기까지를 설하며, 

무상하고 가르침이 항상하지 않으며 고이고 공함을 설한다.

이와 같이 설해야 하며, 

이와 같이 해석해야 한다. 

이것이 새로 뜻을 일으킨 자를 가르쳐서 6바라밀을 행하게 하는 것이다. 

구익아, 

새롭게 처음 뜻을 발하여 배우려고 하는 자는 마땅히 이와 같이 행해야 한다.

또한 구익아, 

만약 선남자ㆍ선여인으로서 깊이 들어가 배운 사람은 반야바라밀을 설할 때 마땅히 새롭게 처음 뜻을 발하여 배우려고 하는 자에게 ‘그대는 마땅히 6바라밀을 받아들여 생각해야 한다. 

받아들인 후에는 마땅히 제1 보살지(菩薩地)에 머물 것이고, 

제1에서 제2에 이르고 10주(住)에 이를 것이다’ 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생각을 지으면 집착하는 생각이 있고 의지하는 생각이 있게 된다. 

이렇게 반야바라밀을 생각하는 것이 구익아, 

새롭게 뜻을 발하여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또한 구익아, 

이 선남자ㆍ선여인이 다시 이와 같은 가르침을 지어 ‘그대는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생각해야 한다. 

생각한 후에는 나한ㆍ벽지불에서 벗어날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새롭게 뜻을 발한 자가 행하는 것이다.

또한 구익아, 

보살도를 행하는 자는 마땅히 새로 배우는 자에게 ‘그대는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받아들여야 하니, 

그러면 무소종생법인(無所從生法忍)을 얻고 법인[忍]을 얻은 후에는 곧 신통에 머물러 한 불국토에서 다른 한 불국토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처님 세존을 예로 받들어 섬기며 공경하게 된다’고 말한다.

또한 구익아, 

깊이 들어가 배운 사람은 마땅히 새로 배워 처음 뜻을 발하려고 하는 자에게 ‘선남자ㆍ선여인아, 

그대들은 마땅히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수학해야 한다. 

이 같은 생각을 가져야 하고, 

이렇게 생각한 후에 그대는 곧 마땅히 헤아릴 수 없는 무량한 공덕과 선한 복을 얻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새로 뜻을 발한 자가 행해야 할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또한 구익아, 

깊이 들어가 배운 사람은 마땅히 새로 배우는 자를 가르치며 ‘선남자야, 

그대는 마땅히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께서 행하신 선의 근본과 지으신 공덕을 배워야 하며, 

마땅히 일심(一心)으로 아뇩다라삼야삼불을 얻을 때까지 염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새로 배우는 자가 행해야 할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같은 생각을 하고, 

설한 후에는 마땅히 다시 어떻게 새로 배우는 자를 가르쳐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깊이 들어가 배운 사람은 마땅히 다시 새로 배우는 자를 가르치며 ‘선남자야,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생각해야 한다. 

반야바라밀을 생각하면서 5음이 무상하다고 관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5음의 소유는 스스로 공하며, 

5음의 소유는 소유가 없기 때문이다. 

소유가 없는 것은 5음이 아니다. 

반야바라밀 가운데 5음에는 유상(有常)과 무상(無常)이 없다.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오히려 5음을 보지 못하는데 하물며 어떻게 유상과 무상이 있겠느냐’라고 말한다.

구익아, 

선남자ㆍ선여인이 이와 같이 설하는 것은 새로 배우는 자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마땅히 다시 새로 배우는 자를 가르치며 ‘그대는 마땅히 반야바라밀만을 생각해야 한다. 

모든 법에서 반야바라밀을 생각하는 것을 벗어날 수 없으며, 

머물 수도 없다. 

왜냐하면 반야바라밀에는 또한 법이 가히 벗어남도 없으며, 

머무름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법은 스스로 공하기 때문이다.

공하다는 것은 소유가 없는 것이다. 

소유가 없는 것이 반야바라밀이다. 

반야바라밀 가운데는 법이 가히 상응함도 상응하지 않음도 없다. 

또 생하고 생하지 않는 법도 없다’고 말한다. 

선남자ㆍ선여인이 이와 같이 설하는 것이 새로 배우는 자를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구익아, 

선남자ㆍ선여인은 반야바라밀 가운데 뜻이 마땅히 이와 같음을 설해야 한다. 

선남자ㆍ선여인아, 

이와 같이 가르쳐서 얻는 공덕은 전보다 많은 것이다.

또한 구익아, 

선남자ㆍ선여인이 한 염부제의 중생들을 가르쳐서 수다원도를 얻게 하면 그 복이 많겠느냐?”

석제환인이 아뢰었다.

“매우 많고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선남자ㆍ선여인이 반야바라밀로써 타인에게 주어서 배우게 하고 서사하여 지니게 하고 그 뜻을 해설하여 주어 얻는 공덕이 매우 많고 많은 것에 미치지 못한다. 

이 선남자ㆍ선여인은 반야바라밀을 가르쳐서 그 위에 배워 익히고 지키고 행하는 것을 따르게 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모든 수다원도 모두 반야바라밀에서 출생하기 때문이다.

또한 구익아, 

염부제는 그만두고라도 모든 사천하와 나아가 삼천대천국토와 동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국토에 가득 찬 중생들로 하여금 모두 수다원도를 얻게 한다면 그 복이 참으로 많겠느냐?”

석제환인이 아뢰었다.

“매우 많고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선남자ㆍ선여인이 반야바라밀로써 타인에게 가르쳐 주고 배우게 하고 서사하여 지니고 외우고 익히고 수행하게 하고 그 뜻을 해설해 주어서 얻는 공덕이 매우 많고 많은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왜냐하면 수다원도 모두 반야바라밀에서 출생하기 때문이다.

또한 구익아, 

만약 염부제에 가득 찬 중생들을 모두 가르쳐서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을 얻게 하면 그 복이 참으로 많겠느냐?”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매우 많고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는 선남자ㆍ선여인이 반야바라밀로써 타인에게 가르쳐 주고 배우게 하고 서사하여 수지하게 하고 외우고 받들어 수행하게 하고, 

그 가운데 지혜의 뜻을 해설하여 주어서 얻는 공덕이 매우 많고 많은 것에 미치지 못한다. 

왜냐하면 수다원도에서 아라한에 이르기까지가 모두 다 반야바라밀에서 출생하기 때문이다.

또한 구익아, 

한 염부제는 그만두고라도 삼천대천국토와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국토에 이르기까지 그 가운데 가득 찬 중생들로 하여금 모두 수다원도에서 아라한도에 이르게 한다면, 

그 복이 많겠느냐?”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매우 많고 많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는 선남자ㆍ선여인이 반야바라밀로써 타인에게 가르쳐 주고 배우게 하고 서사하고 외우고 받들어 행하게 하고 그 안의 가르침을 따라 지혜의 뜻을 해설해 주어서 얻는 공덕이 매우 많고 많은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또한 구익아, 

한 염부제에 가득 찬 중생들로 하여금 벽지불도를 얻게 한다면 그 복이 많겠느냐?”

석제환인이 아뢰었다.

“매우 많고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는 선남자ㆍ선여인이 반야바라밀로써 타인에게 가르쳐 주고 배우게 하고 서사하여 수지하고 외우고 받들어 섬기게 하며 그 안의 가르침을 따라서 지혜의 뜻을 해설해 주어서 얻는 공덕이 매우 많고 많은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왜냐하면 모든 벽지불은 모두 반야바라밀에서 출생하기 때문이다.

또한 구익아, 

이 염부제는 그만두고라도 삼천대천국토와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국토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중생들을 가르쳐서 벽지불도를 얻게 한다면 복이 많겠느냐?”

석제환인이 아뢰었다.

“매우 많고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는 선남자ㆍ선여인이 반야바라밀로써 타인에게 가르쳐 주고 배우게 하고 서사하고 외우고 받들어 섬기게 하고 그 안의 가르침을 따라서 지혜의 뜻을 해설해 주어서 얻는 공덕이 매우 많고 많은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왜냐하면 모든 벽지불은 다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출생하기 때문이다.

또한 구익아, 

만약 선남자ㆍ선여인이 한 염부제와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가득 찬 중생들이 아뇩다라삼야삼보의 뜻을 발하도록 권하여 도와주어도 선남자ㆍ선여인이 반야바라밀로써 타인에게 가르쳐 주고 배우게 하고 서사하고 외우고 받들어 섬기게 하며, 

지혜의 뜻을 해설해 주어서 얻는 덕이 매우 많은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 사람은 ‘반야바라밀을 받아서 마땅히 그 안의 가르침을 따르며 이 가르침을 따른 후에는 마땅히 살운야의 이익을 얻게 된다. 

이 이익을 얻은 후에는 곧 반야바라밀을 구족하게 된다. 

그대는 곧 마땅히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룰 것이다’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처음 뜻을 발한 보살은 모두 반야바라밀에서 출생하기 때문이다.

또한 구익아, 

만약 선남자ㆍ선여인이 한 염부제와 나아가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가득 찬 그 안의 중생들을 가르쳐서 아유월치에 서게 한다면 그 복이 참으로 많겠느냐?”

석제환인이 아뢰었다.

“매우 많고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구익아, 

선남자ㆍ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의 경권을 가지고 타인에게 가르쳐주고, 

그 안의 내용을 해석하고 그 지혜의 뜻을 알게 하여 그것을 행하게 한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 사람은 ‘반야바라밀의 경권을 수지하고 위에서 가르친 대로 모두 익히고 봉행한다면 그대는 곧 마땅히 모든 법의 이익을 얻게 될 것이며,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는 데 이를 것이다’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보살마하살과 아유월치지는 모두 다 반야바라밀에서 출생하기 때문이다.

또한 구익아, 

한 염부제가 다하도록 그 안의 중생들이 다 아뇩다라삼야삼보로 마음을 전환하지 못하는데 만약 선남자ㆍ선여인이 이 무리를 위하여 반야바라밀과 나아가 그 뜻을 모든 이에게 설해 준다고 하자. 

그러면 어떤 한 사람이 ‘나는 속히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고 싶다’고 말한다. 

만약 선남자ㆍ선여인이 이 한 사람을 위해서 반야바라밀을 설해 주고 구족하게 그 뜻을 분별하여 해설해 주면 복이 가장 많다.”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힘써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려고 하면 힘써 마땅히 이 보살을 가르쳐서 6바라밀을 행하게 하며, 

마땅히 내외공과 유무공에 이르기까지 37품ㆍ부처님의 10종력ㆍ4무소외ㆍ4무애혜ㆍ부처님의 18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마땅히 이 법으로써 이 무리의 사람들을 가르치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바에 따라 의복ㆍ진월(眞越:

臥具)을 공양합니다. 

이 두 가지 법으로써 이 무리의 보살들에게 함께 공양한다면 세존이시여, 

이 선남자ㆍ선여인이 얻는 복은 가장 존귀하며 전에 지은 것보다 뛰어납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사람을 가르쳐서 6바라밀을 행하게 하고 마땅히 이와 같이 사람을 가르쳐서 내외공과 유무공ㆍ37품, 

나아가 부처님의 18법에 이르기까지를 행하게 하고, 

또한 마땅히 이와 같기 때문입니다.”

수보리가 석제환인에게 말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구익아, 

이것이 선남자ㆍ선여인에게 보살도를 구하도록 권하고 도와주는 것이며, 

이에 그들은 부처를 위하여 현인 제자의 법을 지어서 마땅히 보살마하살에게 이익되게 할 것이며, 

법시(法施)와 공양으로써 보살을 보호하고 봉양하며,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도록 권하고 도와준다.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과 제자들은 다 이 두 가지의 보시 가운데서 나오기 때문이다.

만약 보살이 아뇩다라삼야삼보의 뜻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이 보살은 끝내 6바라밀과 부처님의 18법을 베풀 수 없다. 

만약 보살이 6바라밀과 부처님의 18법을 배우지 못했다면 끝내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지 못할 것이며, 

또한 나한ㆍ벽지불이 있는 것도 알지 못할 것이다.

보살이 6바라밀과 부처님의 18법을 배우기 때문에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며, 

3악취가 곧 끊어지고, 

세간에는 찰리ㆍ범지ㆍ장자대성종이 있음을 알며, 

곧 사천왕과 나아가 무사상무사상혜천(無思想無思想慧天)이 있음을 알며, 

곧 6바라밀과 내외공에서 유무공ㆍ37품ㆍ부처님의 18법에 이르기까지가 있음을 알며, 

세간에 성문ㆍ벽지불승이 있음을 안다.”


40. 권조품(勸助品)


이때 미륵보살마하살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보살마하살이 권조(勸助)한 복우(福祐)의 상(像)을 중생들과 함께 하여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니, 

희망하는 바가 없어서 중생들보다 낫습니다.

모든 성문ㆍ벽지불이 권조한 복우는 일체 중생보다 뛰어납니다. 

성문ㆍ벽지불승을 일으킨 사람이 보시한 복우의 상과 계를 지켜 스스로를 지키고 일심(一心)으로 지은 복상(福像)은, 

이 보살마하살이 권조의 복을 중생과 함께 하여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게 하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그 복은 가장 높고 가장 제일이어서 모두 구족하여 이보다 뛰어난 것이 없습니다. 

권조하여 모두 중생을 위해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게 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나한ㆍ벽지불이 지은 보시의 복은 계를 지키되 스스로만 지키고 다만 자기만을 조어하려고 하며, 

다만 자기만 청정하려고 하며, 

다만 스스로만 제도하려고 합니다. 

37품을 염하며 3해탈문을 염하는데, 

다만 자기만을 조복하려 하고 자신만을 제도하려고 합니다. 

보살은 다만 중생을 조어하려고 하며, 

중생을 청정하게 하려고 하며, 

중생을 제도하려고 하며, 

중생을 권조하여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게 합니다.”

수보리가 미륵보살마하살에게 아뢰었다.

“이 보살마하살은 동방의 무량한 모든 불국토에 계시는 무량한 반니원불이 뜻을 일으킬 때부터 아뇩다라삼야삼보에 이를 때까지, 

반니원에서 나아가 법이 멸하여 다할 때까지 그 가운데 지은 선의 근본으로 6바라밀에 상응하고, 


모든 성문ㆍ연각이 지은 보시 공덕ㆍ지계ㆍ자수(自守)에 이르기까지, 

모든 무루(無漏)의 계에 이르기까지, 

계를 행하는 것에서부터 계가 없는 선본(無戒善本)에 이르기까지, 

나아가 모든 불정계(佛淨戒)의 복ㆍ삼매의 복ㆍ지혜의 복ㆍ해탈의 복ㆍ견해탈혜(見解脫慧)의 복과 대자대비ㆍ무량한 아승기의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에 이르기까지, 


그 법 가운데서 듣고 받아서 수다원을 얻고 나아가 아라한ㆍ벽지불을 얻고 위로 보살과 모든 반니원하신 부처님께서 지은 공덕에 이르기까지를 모두 헤아리고 합해도, 

권조하는 것이 가장 존귀하며 위업이 존귀하며 구족한 것이 됩니다. 

나도 또한 이 공덕을 가지고 이와 같이 권조한 공덕과 복을 아뇩다라삼야삼보 가운데서 지니는 데 권조합니다. 

이것이 곧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는 것입니다.

선남자ㆍ선여인이 보살도를 행하면서 혹은 마땅히 생각하기를 ‘과거의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지으신 공덕이 나로 하여금 이 뜻을 얻게 한 것이며, 

나로 하여금 일으킨 뜻을 행하게 하며, 

나로 하여금 이 상념을 얻게 하였다’고 합니다.”

미륵보살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선남자ㆍ선여인이 보살의 뜻을 일으키는 것은 아뇩다라삼야삼보에 대하여 이러한 인연으로써 하지 않으며, 

이러한 상(像)으로써 하지 않으며, 

이러한 생각을 짓지 않는 것입니다.”

수보리가 미륵보살에게 아뢰었다.

“만약 이것으로써 얻지 않고 이것에 인연하지 않는다면 모든 부처님 세존은 무슨 까닭으로 시방세계에서 시방 부처님께서 처음 뜻을 일으킬 때부터 법이 다할 때까지 모든 선의 근본과 성문승을 발함을 생각하는 것입니까? 

내가 계를 지킬 때부터 계가 없을 때까지의 공덕을 모두 다 헤아리고 합해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하되 응당 생각이 없어야 하고 장차 전도된 생각(顚倒想)을 짓지 않아야 합니다.

무상(無常)을 유상(有常)이라고 하는 것은 생각이 전도된 것이며, 

뜻이 전도된 것이며, 

견해가 전도된 것입니다. 

부정한 것을 청정하다고 말하며, 

고(苦)를 즐거움이라고 말하며, 

아(我)가 없는 것을 아(我)라고 말하는 것은 생각이 전도된 것이며, 

뜻이 전도된 것이며, 

견해가 전도된 것입니다.

그 일은 허공과 같으며, 

또한 인연도 그러합니다. 

도의 뜻은 그러한 것이며, 

6바라밀도 또한 그러합니다. 

나아가 18법도 또한 그러합니다. 

만약 일이 있다면 또한 이와 같습니다. 

도의(道意)ㆍ6바라밀도 또한 이와 같으며, 

5음(陰)ㆍ6정(情)도 또한 이와 같으며, 

내외공과 유무공ㆍ37품ㆍ10종력ㆍ부처님의 18법도 이와 같습니다. 

무엇이 일이 되며, 

무엇이 인연이 되며, 

무엇이 도(道)가 되며, 

무엇이 모든 선의 근본이 되며, 

무엇이 권조의 뜻이 되며, 

무엇이 권조에 대하는 뜻이 되는 것입니까? 

어떻게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할 수 있는 것입니까?”



미륵보살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만약 보살이 6바라밀을 행하고 과거의 부처님을 뵙고 모든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며 공양하고 선지식과 함께 하고 이미 스스로 몸[身]이 공함을 배우면, 

이 무리의 사람들은 사상(事像)을 취하지 않고 인연도 취하지 않고 부처님의 선본(善本)의 상(相)도 취하지 않고 권조의 공덕도 취하지 않고 모든 복을 짓는 생각도 취하지 않고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하는 것입니다.

마땅히 다시 이 뜻을 지어 구해야 합니다. 

두 가지 법에 떨어져서도 안 되며, 

또한 둘이 아닌 것도 아니며, 

또한 생각을 취하는 것도 아니며, 

무상(無想)을 취하는 것도 아니니, 

또한 의지할 것도 없으며 또한 의지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집착을 취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단절을 취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생함을 취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멸함을 취하는 것도 아닙니다. 

만약 보살이 6바라밀을 배우지 않고 모든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지 않고 모든 선의 근본이 없고 선지식을 얻지 못하고 스스로 공함을 배우지 않는다면, 

곧 이 일을 취하며 이 인연을 취하며 이 권조의 공덕을 취하며 모든 일이 일어나게 된 생각을 취해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합니다.

그러므로 수보리여, 

처음 뜻을 발한 보살에게 앞에서 설한 6바라밀을 설해서는 안 됩니다. 

나아가 내외공ㆍ유무공에 이르기까지, 

제법공에 이르기까지를 새로 배우는 보살에게 설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만약 새로 배우는 사람이 혹은 믿음을 잃고 혹은 즐거워할 것을 잃고 공경하고 있는 것을 모두 다 잃고, 

곧 모든 선의 근본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아유월치지의 보살마하살에게 설해 주어야 합니다. 

만약 오래도록 선지식과 함께하고 따르던 사람에게도 또한 설해 줄 수 있습니다. 

예전에 과거의 모든 부처님께 공덕을 지은 자라면 마땅히 이 무리의 사람들에게 공상(空相)의 법을 설해 주어야 합니다. 

이 사람은 이 법문을 듣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또한 무서워하지도 않습니다.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권조해야 하나 권조의 뜻이 있어야 하며,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뜻은 이미 멸진(滅盡)했습니다.



다시 소유할 것이 없으며, 

지을 수 있는 것과 모든 인연으로 지은 공덕도 또한 다시 멸진한다면 무엇이 권조의 뜻이며, 

무엇이 온갖 일이며, 

무엇이 인연이며, 

무엇이 선한 근본의 공덕입니까?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하려는 사람은 구하려는 뜻을 지닐 수 있습니까? 

뜻에는 두 가지로 대립된 것이 없으며, 

여여한 뜻의 성품으로 구하는 바가 없는 것입니다. 

만약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는 6바라밀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무소유이며, 

5음에 이르기까지도 무소유이며, 

도(道)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무소유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만약 보살이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하려고 한다면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며, 

마땅히 이와 같이 구해야 하며, 

마땅히 이렇게 권조해야 하며, 

마땅히 선의 근본을 지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구하는 것이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하는 것입니다.”

미륵보살이 장로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새로 배우는 보살이 이를 듣고서 장차 공포가 없겠습니까? 

마땅히 어떻게 모든 선의 근본[善本]의 공덕을 지어서 구하는 것이며, 

어떻게 권조하고 나아가 모든 공덕을 지녀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짓는 것입니까?”

수보리가 미륵보살에게 말하였다.

“새로 배우는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려면 6바라밀을 받아 지니되 의지할 바가 없어야 하며, 

생각하는 바가 없어야 합니다. 

마땅히 내외공과 유무공을 알아야 하며,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을 알아야 합니다. 

항상 선지식과 함께하고 따라야 하며, 

6바라밀과 그 뜻을 가르쳐서 6바라밀을 여의지 않게 하며, 

보살도를 얻을 때까지 불법을 여의지 않아야 하며, 

마군의 일을 말하고 마군의 일을 듣고서도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보살도를 얻을 때까지 항상 모든 법을 생각하고 모든 부처님을 여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가운데서 공덕을 지어서 모든 보살종(菩薩宗)을 수지하고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을 때까지 이 공덕을 여의지 않습니다.

새로 배우는 보살은 모든 시방의 무앙수의 부처님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과 모든 제자들이 지은 공덕에 이르기까지, 

모든 찰리ㆍ범지대성과 사천왕과 수타회의 모든 천(天)이 지은 공덕에 이르기까지 모두 권조해야 하며, 

이 권조한 공덕을 가지고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하면, 

그 공덕은 최상이어서 이를 능가할 것이 없습니다.”



이때 미륵보살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만약 새로 배우는 보살이 모든 부처님과 제자들이 소유하고 있는 권조의 공덕을 생각한다면 위없고 비교할 데 없는 권조이며 무량한 권조의 공덕으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하니, 

상(想)ㆍ염(念)ㆍ견(見)이 전도되지 않아야 합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비록 모든 부처님과 제자들을 생각한다고 하나, 

이 가운데서 부처라는 상(想)이 없어야 하며, 

또한 제자들이라는 상도 없어야 하며, 

또한 모든 선의 근본이라는 상도 없어야 하며, 

구할 바가 있어도 생각이라는 상[意想]이 없어야 합니다. 

보살이 이와 같이 지어서 구하면 상이 전도된 것이 아니며, 

염(念)이 전도된 것이 아니며, 

견해가 전도된 것이 아닙니다. 

만약 보살이 모든 부처님과 여러 스님의 공덕을 생각하고, 

지은 선의 근본을 생각하고, 

이 생각을 가지고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한다면, 

이것은 보살의 상(想)이 전도된 것이며, 

염(念)이 전도된 것이며, 

견해가 전도된 것입니다.




만약 보살이 비록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부처님과 대중을 생각하며 모든 선의 근본을 생각한다면 비록 이러한 생각이 있지만, 

이 생각은 다 멸하여 소유가 없으며 모든 멸하는 것은 구할 바가 없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뜻[意]에 구함이 있다면 뜻의 법이며, 

구할 수 있는 법은 또한 그 법입니다. 

비록 이와 같이 구하더라도 이것은 바르게 구하는 것이며, 

그릇되게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구해야 합니다.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과 모든 제자들이 지은 공덕에 이르기까지, 

아래로 범부가 지은 공덕에 이르기까지, 

듣고 받아 지닌 법으로 모든 천ㆍ아수륜ㆍ진타라(眞陀羅)ㆍ마후륵(摩睺勒)이 지은 공덕에 이르기까지, 

모든 찰리ㆍ범지대성ㆍ장자가 지은 공덕에 이르기까지, 

사천왕에서 위로 수타회천이 지은 공덕에 이르기까지, 

법을 듣고서 뜻을 발하여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하는 것을 모두 합하고 모으고 헤아리고 재서 지은 공덕으로 모두 권조하며 권조의 공덕을 가지고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합니다.

이 법은 이미 다했고 이미 멸했음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다시 소유하고 구할 수 있는 법은 없으며 또한 다 공한 것입니다. 

만약 이와 같이 구하여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한다면 마땅히 법을 아는 것이며 법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모든 법은 다 스스로 공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구하는 것이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하는 것입니다. 

보살이 이와 같이 6바라밀을 행한다면 상(想)이 전도된 것이 아니며, 

염과 견해 또한 전도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구할 바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며, 

모든 선의 근본과 그 도의 뜻이 마땅히 들어가는 처소를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보살의 위없는 구함인 것입니다.

보살마하살은 모든 공덕에 대해서 적정하니 생함이 없습니다. 

5음ㆍ18성 나아가 6쇠(衰)에서 6바라밀에 이르기까지도 적정하니 생함이 없습니다. 

내외공과 유무공ㆍ부처님의 18법도 적정하니 아는 바가 없습니다. 

보살은 이와 같이 적정해서 얻을 것이 없음을 알아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해야 합니다.



만약 보살마하살이 권조의 공덕을 안다면, 

권조의 공덕은 적정해서 생한 바가 없어야 합니다. 

부처도 적정하고, 

불사(佛事)도 적정하며, 

모든 선한 근본의 일은 선한 근본이 일이 적정하며, 

모든 도의(道意)의 일은 도의의 일이 적정하며, 

모든 구하는 일은 구하는 일이 적정하며, 

모든 보살의 일은 보살의 일이 적정하며, 

6바라밀의 일은 6바라밀의 일이 적정하며, 

나아가 부처님의 18법은 부처님의 18법이 적정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보살은 마땅히 적정하고 청정하게 반야바라밀을 행해야 합니다. 

이것이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입니다.

모든 과거의 부처님께서 지으신 선의 근본을 찾고 구해서 반니원하신 이후에도 보살마하살은 또한 마땅히 이것을 구해야 합니다. 

지은 선한 근본과 구하는 것은 마땅히 열반과 같아야 합니다. 

뜻에 찾을 것이 있는 것과 뜻에 구하는 바는 동등하여 다름이 없으므로 이와 같이 지어서 구해야 하며, 

이와 같이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구하는 것은 상이 전도된 것이 아니며, 

염이 전도된 것이 아니며, 

견해가 전도된 것이 아닙니다.



만약 보살이 이 상으로써 반야바라밀을 행하고 상으로써 모든 부처님의 공덕을 생각한다면, 

이것은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모든 부처님께는 또한 상이 있지 않았으며, 

또한 상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또 생각하거나 상을 지으면 이것은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상이 전도된 것이며, 

염이 전도된 것이며, 

견해가 전도된 것입니다. 

만약 다시 모든 부처님의 선한 근본과 모두 소유한 뜻을 발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또한 지을 줄도 알지 못하고, 

또한 상도 짓지 않는다면 이것이 곧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보살의 상(想)이 전도된 것이 아니며, 

염견(念見)이 전도된 것이 아닙니다.”

미륵보살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어떻게 해야 보살이 구함이 있되 상이 없는 것입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보살이 구화구사라를 얻으려고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반야바라밀을 구하지 못하며, 

끝내 모든 선의 근본의 공덕을 얻지 못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도 또한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며, 

모든 선의 근본에서 또한 온갖 일을 보지 못하며, 

또한 뜻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지었다고 하면, 

지은 바는 이미 멸하고 많은 일도 또한 멸합니다. 

나는 다만 스스로 모든 상(想)과 모든 선의 공덕과 모든 발한 뜻을 일으킵니다.

모든 부처님 세존도 또한 구하는 생각이 없으며, 

또한 권조함도 없으며, 

또한 아는 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생각을 구해도 얻을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생각에 얻을 것이 있다고 하면, 

나와 모든 부처님께서 지으신 분별상은 마땅히 얻을 바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살의 공덕은 보살이 구하는 바가 있어도 또한 마땅히 상을 짓지 않으며, 

또한 마땅히 의지함이 없는 것입니다.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칭찬하고 기리고 의지하는 상을 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상을 구하는 것은 잡독(雜毒)이 되기 때문입니다.

비유하면 정결한 미식(美食)이 독을 갖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색이 비록 향기롭고 아름답지만 잡독이 있습니다. 

만약 어리석은 사람이 이것을 먹으려고 하면 비록 당시에는 색이 좋고 향기롭지만 입에 넣어 오래되면 그 몸이 불편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받아들이는 것은 자세히 관하지 못한 것이며, 

자세히 알지 못한 것이며, 

염송함을 알지 못한 것으로 그 안의 뜻을 전도되게 알아서 스스로 능히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타인을 위해서 말하기를 ‘선남자여,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부처님께서 뜻을 일으킨 이래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을 때까지, 

유여니원에서 무여니원에 이르기까지, 

나아가 법이 멸하기까지의 그 중간에서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지은 공덕이 있다. 

6바라밀을 행할 때 37품ㆍ4선ㆍ4등ㆍ4공정ㆍ10종력ㆍ18법을 행하여 지은 선의 근본이 있고, 

불국을 청정하게 하고 중생을 가르친다.

모든 부처님의 계품ㆍ삼매품ㆍ지혜품ㆍ해탈품ㆍ견해탈혜품ㆍ살운야혜로써 법을 잊지 않고 항상 성문 가운데서 행하여 지은 공덕이 있다.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벽지불이 되리라고 수기를 한 자들인 모든 천의 존귀한 신ㆍ아수륜ㆍ가루라ㆍ진타라ㆍ마후륵이 지은 공덕이 있다. 

이러한 모든 공덕을 합하고 모으고 취해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한다’고 합니다.

상(想)에 의지하여 삼야삼불을 구하는 것을 비유하면 잡독의 음식과 같습니다. 

의지하는 상이 있으면 끝내 이룰 바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의지함이 있고 상이 있고, 

형모(形貌)가 있으면 잡독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구하는 것은 여래를 비방하는 것이고, 

또한 여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고, 

법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선남자ㆍ선여인이 보살도를 행하려면 마땅히 이 생각을 지어야 합니다.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뜻을 발한 이후로 부처를 얻을 때까지 어떻게 지어서 구해야 하는 것입니까? 

모든 제자에서 살운야에 이르기까지 그 안에서 지은 일은 위와 같고 또한 이와 같다면 마땅히 어떻게 지어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하는 것입니까?’

선남자ㆍ선여인이 보살도를 구하려면 여래를 높이거나 내리면 안 되며, 

마땅히 이와 같이 구해야 합니다. 

모든 부처님 세존이 아는 것과 같아야 하며 변재혜와 모든 선의 근본의 상(想)과 법의 상(相)이 상응해야 합니다. 

내가 이 권조의 뜻을 지니는 것과 내가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하는 것은 모두 모든 부처님께서 아는 것입니다.

모든 선남자ㆍ선여인이 보살도를 구하려면 모든 선의 근본의 공덕에 의지하지 않고,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구하는 것은 여래를 높이거나 내리는 것이 아니며, 

이것이 부처님을 믿고 법과 보살을 믿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행하는 것은 잡독이 되지 않으며, 

구하는 것에는 독이 없습니다.

만약 선남자ㆍ선여인이 보살도를 구하려고 하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의 공덕을 마땅히 이와 같이 지어서 구해야 합니다. 

5음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욕계ㆍ색계ㆍ무색계에도 또한 집착하지 않으며, 

과거ㆍ미래ㆍ현재의 6바라밀에도 또한 집착하지 않으며, 

삼계에도 집착하지 않습니다.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내외공에서 유무공에 이르기까지와 37품ㆍ부처님의 10종력ㆍ18법에도 또한 집착하지 않으며 삼계에도 또한 집착하지 않습니다. 

과거ㆍ미래ㆍ지금의 여여함과 나아가 법이 생함ㆍ법이 멸함ㆍ진제ㆍ부사의성(不思議性)ㆍ계(戒)ㆍ인(忍)ㆍ지(智)ㆍ해탈ㆍ해탈견ㆍ살운야ㆍ없어지지 않는 법[無所亡法]ㆍ항상 평등하게 행함에도 또한 집착하지 않으며, 

삼계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삼계에는 또한 과거ㆍ미래ㆍ현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들어갈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구할 바가 있다는 것은 또한 들어갈 바가 없는 것입니다. 

법을 구하되 또한 집착함이 없어야 하며, 

이 사람에게도 또한 다시 집착함이 없어야 하며, 

모두 부처님 세존께도 다시 집착함이 없어야 하며, 

모든 그 밖의 다른 선의 근본에도 또한 집착함이 없어야 하며, 

성문ㆍ벽지불의 선의 근본에도 또한 집착함이 없어야 합니다. 

모든 집착함이 없다는 것에도 또한 과거ㆍ미래ㆍ현재가 없습니다.

만약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려면 5음에 집착할 것이 없음을 알아야 하며, 

삼계는 또한 과거ㆍ미래ㆍ현재가 아니며, 

또한 의지하는 상(想)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생할 바가 있음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생하는 바가 없음은 또한 소유할 것이 없는 것이며, 

소유가 없음도 능히 하는 바가 없는 것입니다. 

6바라밀 나아가 없어짐이 없는 법과 항상 평등하게 행함에도 또한 집착하지 않으며, 

삼계는 또한 과거ㆍ미래ㆍ현재가 아닙니다. 

과거ㆍ미래ㆍ현재가 아니라는 것은 또한 의지하는 상(想)을 쓰거나, 

하는 바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생하는 것은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생한다고 하는 것은 소유가 없는 것이고, 

소유가 없다는 것은 또한 능히 하는 바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살이 잡독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선남자ㆍ선여인이 보살도를 구하는데 의지하는 상(想)이 있다면, 

곧 그릇되게 구하는 것입니다. 

지은 선의 근본을 의지하는 상으로 구한다면 이것은 그릇되게 구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에 그릇되게 구함이 있다는 것은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기리고 칭찬할 바가 되지 못합니다. 

부처님께서 기리고 칭찬할 바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6바라밀을 구족하지 못한 것입니다.

6바라밀을 구족하지 못하면 곧 37품을 구족하지 못하고, 

곧 내외공ㆍ유무공ㆍ부처님의 10종력도 구족하지 못하며, 

부처님의 18법도 구족하지 못합니다. 

18법을 구족하지 못하면 곧 불국토를 청정하게 할 수 없으며, 

곧 능히 중생을 가르칠 수 없으며, 

끝내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잡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려면 마땅히 이러한 생각을 지어야 합니다.

‘모든 부처님께서 아시는 선의 근본과 공덕법을 구해야 하며, 

이와 같이 구하는 것이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하는 것이다. 

나는 또한 마땅히 이 법으로써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할 것이다.’”

이때 부처님께서 수보리를 찬탄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수보리여, 

이는 세존의 행을 짓는 것이며, 

능히 모든 보살들을 위해서 할 바와 구할 바의 법을 설하는 것이다. 

생각도 없고 의지할 바도 없고 나옴도 없고 또한 단절되지도 않고, 

또한 집착하지도 않고, 

또한 유(有)도 아니며, 

또한 무(無)도 아니다. 

공상(空相)에 상응해야 하며 법성(法性)에 상응해야 하며 여여한 행에 상응해야 한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가령 삼천대천찰토 가운데 있는 중생들이 모두 다 10선의 이익을 얻고 빠짐없이 4선ㆍ4등ㆍ4공정을 얻고 나아가 다섯 가지 신통을 다 얻는다면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중생이 얻는 복이 참으로 많겠느냐?”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매우 많고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ㆍ선여인이 모든 선의 근본에 대하여 생할 바가 없고, 

집착할 바가 없음으로써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위하는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 공덕은 최상이며 존화(尊化)이며 위없는 정진(正眞)의 교화이며 구족한 교화인 것이다.

또한 수보리여, 

만약 삼천대천찰토 가운데 있는 중생들이 모두 수다원을 얻고 위로 나한ㆍ벽지불을 얻고, 

만약 어떤 선남자ㆍ선여인이 그 수명이 다하도록 이 무리의 나한ㆍ벽지불에게 그 편안한 바에 따라서 음식ㆍ의복ㆍ침구ㆍ병을 낫게 하는 의약품과 소유한 것을 다 공양하고 공경하고 살핀다면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복이 참으로 많겠느냐?”

수보리가 아뢰었다.

“매우 많고 많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선남자ㆍ선여인이 생할 바가 없고 집착할 바가 없음에 머무는 것만 같지 못하다. 

선의 근본의 덕을 구할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 복은 가장 존귀하고 최상이다.

또한 수보리여, 

가령 삼천대천찰토에 있는 중생들이 모두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일으키고, 

시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찰토 가운데 있는 중생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보살에게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겁이 다하도록 공양하고, 

그 편안한 바에 따라서 음식ㆍ의복ㆍ침구ㆍ의약품을 드리고 우러러보고 공경하여 받들어 섬긴다면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복이 참으로 많겠느냐?”

수보리가 아뢰었다.

“매우 많고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복은 많아서 헤아릴 수 없으며, 

셀 수 없으며, 

비유로써 비교할 바가 없습니다. 

만약 복덕에 형상이 있다면 시방의 허공도 능히 수용하지 못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비록 지은 복덕이 그렇게 많더라도 이 선남자ㆍ선여인이 지은 선의 근본에 생한 바가 없고 집착할 바가 없는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선의 근본의 덕에 구함이 없기 때문이다. 

이 선남자ㆍ선여인의 공덕은 가장 존귀하고 가장 높으며, 

비교할 수 없으며, 

위없는 교화가 되는 것이다. 

생할 바가 없고 집착할 바가 없는 공덕에 앞의 공덕은 백ㆍ천ㆍ억ㆍ만 배로도 비교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선남자ㆍ선여인은 의지함이 있고 상(想)이 있으면서 10선의 일과 4선ㆍ4등ㆍ4공정ㆍ5통을 모두 구족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선남자ㆍ선여인은 상(想)에 의지해서 모든 성문ㆍ벽지불과 위로 보살에 이르기까지를 공양했기 때문이다.”

이때 사왕천상의 2만 명의 천자들이 모두 합장하고 부처님 발에 예배드리면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베푸는 구화구사라는 매우 훌륭하고 쾌락합니다. 

지은 후에는 의지할 바 없고 집착할 바가 없는 데 상응하며, 

공(空)ㆍ무상(無相)에 상응해야만 합니다. 

베푼 선의 근본이 아뇩다라삼야삼보가 되는 것입니다. 

베푼 것은 두 가지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이때 석제환인과 무앙수 도리천의 모든 천과 모든 천자들이 하늘의 여러 가지 꽃ㆍ향ㆍ도향ㆍ택향ㆍ비단 화개ㆍ하늘 옷ㆍ하늘의 장막ㆍ여러 색의 당번(幢幡)ㆍ하늘의 음악을 가지고 부처님의 처소에 이르러 부처님께 공양드리고 뿌리면서 모두 찬탄하여 말하였다.

“보살이 베푼 구화구사라는 매우 훌륭하며 쾌락한 것입니다. 

지은 후에는 의지함이 없고 집착함이 없는 데 상응하며, 

공하여 생각이 없는 데 상응하므로 베푼 선의 근본이 아뇩다라삼야삼보가 되는 것입니다. 

베푼 것은 두 가지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위로 범가이천(梵迦夷天)에 이르는 무앙수 백천이 또한 다시 보살의 구화구사라를 찬탄했다. 

모두 다시 이와 같이 아가니타천의 무앙수 억 백천의 모든 천이 부처님의 처소에 이르러서 부처님께 예를 올리며, 

함께 큰 음성으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매우 기이하고 큽니다. 

반야바라밀에서 구화구사라를 행하면, 

지은 바 선의 근본과 그 공덕은 예전에 과거의 선남자ㆍ선여인이 지은 행위보다 뛰어납니다.”

이에 부처님께서 사천왕과 아가니타천에 이르기까지 모든 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가령 삼천대천찰토에 있는 중생들이 모두 다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짓고, 

다시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을 대신하여 그 환희를 대신한다. 

많은 제자들이 처음 뜻을 발할 때부터 반니원에 이르기까지, 

나아가 법이 다하도록 그 중간에서 지은 모든 선의 근본으로 그 환희를 대신하며, 

성문ㆍ벽지불이 지은 모든 선의 근본으로 그 환희를 대신하며, 


나아가 중생이 지은 모든 선의 근본으로 단바라밀을 행하여 반야바라밀에 이르도록 그 환희를 대신한다. 

모든 현성(賢聖)이 소유한 계품ㆍ삼매품ㆍ지혜품ㆍ해탈품ㆍ해탈견혜품으로 그 환희를 대신한다. 

그 밖의 다른 무량한 불법을 모두 모으고 합하여 이상의 모든 공덕으로 모두 그 환희를 대신한다. 

이 환희를 대신하는 공덕에 의지하여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위한다.

만약 다시 선남자ㆍ선여인이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일으키려고 하면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과 나한ㆍ벽지불을 대신하여 뜻을 일으킬 때부터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룰 때까지 그 중간에 6바라밀을 행하며, 

다른 무량수 불법의 공덕을 행하므로 그 환희를 대신한다. 

그리고 희망하는 바가 없어 또한 둘이 아닌 데 들어간다. 

이미 상(相)이 없는 데 상응하였고, 

집착할 바가 없는 데 상응하였고, 

공에 상응하였다. 

이것은 가장 제일대(第一代)의 환희가 되는 것이며, 

무상대(無上代)의 환희가 되는 것이다.

이 대환희공덕(大歡喜功德)을 가지는 것이 아뇩다라삼야삼보가 되는 것이니, 

의지할 바가 없어야 한다. 

그 공덕의 복우는 앞의 선남자ㆍ선여인의 대환희보다 뛰어난 것이다. 

그 공덕에 비하면 백 배ㆍ천 배ㆍ거억만 배나 된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최상대(最上代) 환희가 되는 것이다.”

이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 설하신 것처럼 선남자ㆍ선여인의 공덕을 합집한 것은 모두 공덕 가운데 초과할 수 없는 대환희(代歡喜)이며, 

대환희의 덕은 이 덕을 지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수보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최상이 되는 것이며, 

무엇이 최존(最尊)이 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선남자ㆍ선여인이 미래ㆍ과거ㆍ현재의 법에서 취할 바가 없으며, 

또한 버릴 바도 없으며, 

또한 스스로 높이지 않아야 하며, 

또한 스스로 높이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또한 의지할 바도 없어야 하며, 

의지할 바가 없어야 한다는 것도 없어야 한다.

그러므로 법에는 또한 생하는 것도 없으며 멸하는 것도 없으며 집착도 없으며 끊음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 가운데서 또한 늘어남을 볼 수도 없으며, 

또한 줄어듦을 볼 수도 없는 것이다. 

또한 가는 것도 없으며 또한 돌이킬 것도 없으며, 

또한 도(道)도 아니며, 

또한 속(俗)도 아니다.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법과 같으며, 

반이법(反爾法)ㆍ머무는 바의 법ㆍ멸하는 바의 법과 같다. 

나는 또한 이 환희를 대신하여 환희 공덕을 가진 것이며, 

아뇩다라삼야삼보가 되는 것이다. 

보살마하살의 보시는 이와 같은 보시이며 그 환희를 대신하는 것이며 가장 제일이 되는 것이다. 

이 환희를 대신하는 것보다 뛰어난 것은 없다.

수보리여, 

이와 같이 대환희를 짓는 것은 그 밖의 다른 대환희의 덕에 비하면 백 배ㆍ천 배ㆍ거억만 배나 되며, 

이 대환희에 미치지 못한다.

또한 수보리여, 

선남자ㆍ선여인이 보살도를 행하면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과 성문ㆍ벽지불을 대신하여 처음 뜻을 일으킬 때부터 성불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에서 모든 선의 근본을 지어야 하며, 

6바라밀을 행하고 나머지 무수한 불법에서 선의 근본을 지어야 한다. 

만약 대환희를 짓고자 하면, 

다시 일체 중생들을 대신해서 선의 근본을 지어야 한다. 

마땅히 대환희를 지었다면, 

이것이 대환희이며 최등(最等)이 되는 것이다.

6바라밀과 해탈은 동등하며, 

해탈과 5음은 동등하며, 

그 해탈의 일[事]과 내외공은 동등하며, 

해탈의 일과 유무공은 동등하며, 

37품과 해탈은 동등하며, 

10력과 해탈은 동등하며, 

해탈과 해탈 견해는 동등하며,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법과 해탈은 동등하다.

해탈은 곧 과거ㆍ미래ㆍ현재이며, 

해탈은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베풀어서 하는 일과 같은 것이다. 

해탈은 모든 불제자와 같으며, 

모든 불제자는 또한 해탈과 같은 것이다. 

해탈은 성문ㆍ벽지불ㆍ니원과 동등한 것이며, 

해탈의 일과 모든 부처님 세존의 법은 동등한 것이다. 

해탈은 또한 나한ㆍ벽지불과 같은 것이며, 

해탈은 또한 모든 법의 법과 같은 것이다.

나는 이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는 법에서 집착도 없으며, 

더러움과 청정의 법도 없는 것과 같다. 

생하는 것도 아니며 생할 바도 없으며, 

멸하는 것도 아니며 멸할 바의 법도 없다. 

내가 베푼 것이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위한다는 것 또한 위의 모든 법은 속박할 법도 없으며, 

패할 법도 없으며, 

무너질 법도 없다고 한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위없는 대환희이며, 

가장 제일이 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환희를 대신하여 짓는 것은 속히 아뇩다라삼야삼보와 아유삼불을 얻기 위해서이다.

또한 수보리여, 

만약 선남자ㆍ선여인이 보살도를 행하려고 한다면 그 형상의 수명이 다하도록 시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부처님과 수많은 제자들에게 공양을 하되, 

그 편안한 바에 따라서 음식ㆍ의복ㆍ침구ㆍ의약을 드린다. 

모든 부처님의 수명이 다하여 반니원하신 이후에는 밤낮으로 사리를 섬기며, 

당번ㆍ화개ㆍ음악으로 공양을 드리며, 

항상 6바라밀 행할 것을 생각하고 의지한다.

또 선남자ㆍ선여인이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려고 하면 6바라밀과 구화구사라를 행하되, 

의지할 바가 없어야 한다. 

이 공덕을 가지되 아뇩다라삼야삼보에서는 희망하는 바가 없어야 한다. 

그 선의 근본과 공덕에 비하면 백 배ㆍ천 배ㆍ거억만 배나 되며, 

대환희복덕이 가장 존귀하며 가장 제일인 것에 미치지 못한다.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이 6바라밀을 행하되 구화구사라로써 하면 의지할 바가 공덕이 없으며,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위하되 의지할 바가 없는 것이다.”


○ [pt op tr]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Jean-Louis Murat - Amour Zero.lrc


● 무루와 유루의 상대성과 반야 

이미 『구사론』을 살피면서 무루와 유루가 각 주체에 따라 
상대적인 사정을 살폈다. 

간단히 그 사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어떤 좋은 음식이나 집이 있다고 하자. 
이를 수행자가 고제와 집제의 관계로 대하면 이는 유루법이 된다. 
그런데 이를 멸제와 도제의 관계로 대하면 이는 무루법이 된다. 

즉, 어떤 내용을 대하면서 
그에 대한 번뇌를 제거하고 수행방안으로 대하는가 아닌가에 따라 
차이가 발생한다. 

반야 수행은 궁극적으로 현실 일체를 무루법으로 대하는 상태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내용을 제시한다. 

욕계의 현실에서 어떤 주체가 무엇이 있다고 여기고 현실에 임한다. 
그런데 반야지혜를 통해 대하면 현실에서 그런 상을 취해 대할 수 없다. 
그런 것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본바탕 실재에서도 사정이 그렇다. 
그리고 감각현실에서도 그 사정이 그렇다. 

그래서 오직 현실에서 있다고 할 바는 이름 뿐이다. 
그래서 반야경에서 보살은 명자뿐이라고 제시한다. 
즉 있고 없음의 문제를 따질 수 있는 내용은 오직 관념영역안의 내용에 한정된다. 
그리고 이들 내용은 다른 영역에서는 본래 얻을 수 없다. 
그렇지만 욕계 현실에서는 기본적으로 망집을 바탕으로 임한다. 
그래서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겪게 된다. 

이는 망집을 바탕으로 할 때는 
생사현실의 거의 대부분[유위법]을 대해 망집 번뇌를 일으킴을 의미한다. 
이것이 문제의 근본이다. 

그런데 반야지혜를 닦아서 이 상태에서 벗어나와야 한다. 
그리고 수행이 원만하게 성취되면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러면 생사현실 일체를 대해서 번뇌를 일으키지 않게 된다. 
이런 경우는 생사현실 [유위법] 일체를 무루법으로 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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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Louis Murat - Amour Zero




♥단상♥방관과 강제와 선교방편과 처비처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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