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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세존[婆伽婆]께서는 가야성(伽耶城)의 산꼭대기에 있는 정사(精舍)에서 큰 비구 대중 천 사람과 함께 있었다. 그들은 과거에 모두 장발 범지(長髮梵志)였으나, 모두 아라한이 되어 온갖 번뇌[漏]가 이미 다하였고, 해야 할 일을 다했으며, 온갖 무거운 짐을 버리고 자신의 이익을 체득(逮得)하였으며, 모든 번뇌의 결박을 다하였고, 바른 지혜로 해탈하여 마음이 자재함을 얻어 피안에 이르렀다. 또한 한량없는 보살마하살 무리들과 함께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정각을 이루셨던 날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때였다. 고요히, 그리고 편안하게 자리에 앉아 삼매에 드시어 법계를 관찰하시고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셨다. ‘나는 이미 보리(菩提)를 증득하였고, 이미 성스러운 지혜를 얻었으며, 이미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다했고, 이미 모든 무거운 짐을 버렸으며, 이미 생사의 광야를 벗어났고, 이미 무명(無明)을 버리고 떠나 지혜의 밝음[智明]을 획득했으며, 이미 독화살을 뽑았고, 이미 갈애를 다했으며, 이미 법계를 증득하였고, 이미 법고(法鼓)를 쳐 울렸으며, 이미 법의 소라를 불었고, 이미 법의 당기[幢]를 세웠으며, 이미 생사의 눈[眼]을 버리고 떠나 법안(法眼)으로 설했으며, 이미 악도(惡道)를 닫아 버리고 갖가지 선도(善道)를 열었으며, 이미 밭[田]이 아닌 것을 버리고 온갖 복 밭[福田]을 나타내 보였느니라. 내가 지금 이와 같은 법을 세밀히 관찰하건대 누가 현재 증험할 수 있으며, 이미 증험했으며, 장래에 증험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것들은 몸으로 증험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마음으로 증험할 수 있는 것인가? 만일 몸으로 증험할 수 있는 것이라면, 몸은 우둔하고 헤아림[覺]도 없고 생각함[思]도 없으니, 마치 풀이나 나무, 담장이나 벽, 기와나 돌과 같으며, 4대(大)로부터 비롯되어 부모에 의해 생겨나는 것으로 무상(無常)하고 무너지고 흩어져 멸하는 법이니, 반드시 바르고[塗] 씻고 옷 입고 음식을 먹는 등의 조건[緣]을 가탁하여 존립할 수 있느니라. 만일 마음으로 증험할 수 있는 것이라면, 마음이란 마술사가 변화해 낸 것[幻化]과 같아 모습이나 형태가 없고, 의지할 처소도 없고, 수용해 받아들일 바도 없느니라. 또 보리란 세간에 수순(隨順)하여 명자(名字)를 세운 것이니, 음향(音響)도 없고 형색(形色)도 없으며, 실체를 이룸도 없고 모습도 없으며, 가거나 옴도 없으며, 나가거나 들어옴도 없어 삼계(三界)를 초월하여 처소가 없으며, 보거나 들을 수도 없고 기억하거나 생각할 수도 없으며, 반연한 처소를 떠나고 희론(戱論)의 경계가 아니며, 들어갈 바도 없고 문자도 없으며, 동요함도 없고 안립할 수도 없느니라.
일체의 언어의 길이 끊어지니 현재 증험한다든가 이미 증험했다든가 장래에 증험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오직 명자일 뿐이니 허망하게 분별한 것에 불과하며, 생겨나고 일어남도 없고 체성(體性)도 없어 취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으며 애착할 수도 없느니라. 이 가운데는 진실로 이미 정각을 이루었다거나 현재 정각을 이룬다거나 앞으로 장래에 이룰 것이라거나 하는 것은 없느니라. 만약 이와 같이 증득함도 없고 이루어짐도 없을 수 있다면 정각을 이룬다고 할 수 있느니라. 왜냐하면 보리라는 것은 일체의 변동하는 모습을 떠나기 때문이니라.’
그때 문수사리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서 생각하신 바를 알고서 이렇게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만약 보리가 이와 같은 모습이라면 모든 선남자와 선여인은 보리심을 일으켜 마땅히 어떻게 머물러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답하셨다. “문수사리여, 보리의 모습[相]이라면 마땅히 이와 같이 머물러야 하느니라.” 문수사리보살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보리의 모습입니까?” 부처님께서 답하셨다. “문수사리여, 보리의 모습은 홀로 삼계를 초월하느니라. 비록 세속을 따라 명자(名字)가 존재하더라도 본래는 일체의 음성과 언설을 멀리 여의느니라. 모든 보살 무리가 보리를 향해 나아가더라도 초발심으로부터 나아갈 것이 따로 없느니라. 그러므로 문수사리여, 모든 선남자나 선여인은 마땅히 일으켜 나아간다[發趣]는 마음을 멀리 여의고 보리에 머물러야 하느니라. 문수사리여, 보살이 나갈 것이 없는 바에 일으켜 나아가는 것이 곧 보리의 도(道)를 향해 나아감이니라. 문수사리여, 자성이 없음[無自性]에 나아감이 바로 보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며, 처소가 없는 곳에 나아감이 바로 보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며, 법계의 성품[法界性]에 나아감이 바로 보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며, 일체의 법 가운데 집착함이 없는 것에 나아감이 바로 보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며, 실제(實際)의 차별 없음[無差別]에 나아감이 바로 보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며, 예컨대 거울에 비친 모습이나 빛 속의 그림자나 물속의 달이나 뜨겁게 타오를 때의 불꽃과 같은 것에 나아감이 바로 보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니라.” 그때 그 대중 가운데 정월위광(淨月威光)이라는 천자가 있었다. 그는 문수사리보살에게 물었다. “대사(大士)시여, 모든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은 어떤 행(行)을 닦고 어떤 곳을 의지하여 닦습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답하였다. “천자시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대비행(大悲行)을 닦고 일체 중생의 처소를 의지해 닦습니다.” 정월(淨月) 천자가 다시 물었다. “보살의 대비(大悲)는 어떤 마음을 의지하여 일어납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답하였다. “보살의 대비는 아첨하거나 속임이 없는 마음을 의지하여 일어납니다.” 또다시 물었다. “아첨하거나 속임이 없는 마음은 무엇을 의지하여 일어납니까?” 답하였다. “아첨하거나 속임이 없는 마음은 일체 중생의 평등한 마음을 의지해 일어납니다.” “일체 중생의 평등한 마음은 무엇을 의지하여 일어납니까?” “하나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닌[非一非異] 법성(法性)에 들어가는 마음을 의지하여 일어납니다.” “하나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닌 법성에 들어가는 마음은 무엇을 의지해 일어납니까?” “깊은 신심(信心)을 의지하여 일어납니다.” “깊은 신심은 무엇을 의지하여 일어납니까?” “보리심(菩提心)을 의지하여 일어납니다.” “보리심은 무엇을 의지하여 일어납니까?” “6바라밀(波羅蜜)을 의지하여 일어납니다.” “6바라밀은 무엇을 의지하여 일어납니까?” “방편의 지혜를 의지하여 일어납니다.” “방편의 지혜는 무엇을 의지하여 일어납니까?” “방일하지 않음[不放逸]을 의지하여 일어납니다.” “방일하지 않음은 무엇을 의지하여 일어납니까?” “세 가지 깨끗한 행[三淨行]을 의지하여 일어납니다.” “세 가지 깨끗한 행은 무엇을 의지하여 일어납니까?” “열 가지 선업도[十善業道]를 의지하여 일어납니다.” “열 가지 선업도는 무엇을 의지하여 일어납니까?” “깨끗한 계[淨戒]를 간직하는 것을 의지하여 일어납니다.” “깨끗한 계를 간직하는 것은 무엇을 의지하여 일어납니까?” “이치에 맞는 사유(思惟)를 의지하여 일어납니다.” “이치에 맞는 사유는 무엇을 의지하여 일어납니까?” “마음을 관찰함을 의지하여 일어납니다.” “마음을 관찰함은 무엇을 의지하여 일어납니까?” “기억해 간직하여 잊어버리지 않음을 의지하여 일어납니다.” 그때 정월위광 천자가 다시 문수사리보살에게 물었다. “대사시여, 모든 보살이 보리심을 일으키는 데는 무릇 몇 가지가 있어서 인(因)이나 과(果)를 성취할 수 있습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답하였다. “천자시여, 모든 보살이 보리심을 일으키는 데는 무릇 네 가지가 있어 인이나 과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초발심(初發心)이고, 둘째는 해행주발심(解行住發心)이고, 셋째는 불퇴전발심(不退轉發心)이고, 넷째는 일생보처발심(一生補處發心)입니다.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은, 초발심이 해행주(解行住)의 인(因)이 되고, 해행주발심이 불퇴전의 인이 되며, 불퇴전발심이 일생보처의 인이 되고, 일생보처발심이 일체지(一切智)의 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천자시여,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은, 초발심은 밭에 씨를 뿌리는 것과 같고, 해행주발심은 싹이 점차 자라나는 것과 같으며, 불퇴전발심은 가지나 잎, 그리고 꽃과 과일이 점차 생겨나는 것과 같고, 일생보처발심은 열매가 성숙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천자시여, 첫 번째 발심(초발심)은 수레를 만드는 사람이 먼저 목재를 모으는 것과 같고, 두 번째 발심(해행주발심)은 목재를 얻은 다음에 각각 별도로 깨끗이 잘 다듬는 것과 같으며, 세 번째 발심(불퇴전발심)은 그 장인이 수레를 만드는 것과 같고, 네 번째 발심(일생보처발심)은 그 수레로 무거운 짐을 멀리 이끌고 가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천자시여, 첫 번째 발심은 초승달과 같고, 두 번째 발심은 닷새에서 이레 정도 된 달과 같으며, 세 번째 발심은 열흘 정도 된 달과 같고, 네 번째 발심은 열나흘 달과 같습니다. 여래께서 지니신 지혜는 비유하면 밝은 달이 열닷새에 이른 것과 같아 일체의 광색(光色)이 다 원만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천자시여, 첫 번째 발심은 성문지(聲聞地)를 넘어서고, 두 번째 발심은 벽지불지를 넘어서며, 세 번째 발심은 부정지(不定地)를 넘어서고, 네 번째 발심은 결정지(決定地)에 머뭅니다. 또한 천자시여, 첫 번째 발심은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처음으로 자음과 모음을 배우는 것과 같고, 두 번째 발심은 그 학인(學人)이 점차로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과 같으며, 세 번째 발심은 배움이 오래되어 잘 계산하는 것과 같고, 네 번째 발심은 학문이 성숙하여 온갖 논서를 깨달아 아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천자시여, 첫 번째 발심은 보살이 인(因)에 머무르는 것이고, 두 번째 발심은 보살이 지혜에 머무르는 것이며, 세 번째 발심은 보살이 번뇌나 장애를 끊음[斷]에 머무는 것이고, 네 번째 발심은 보살이 과(果)에 머무는 것입니다. 또한 천자시여, 첫 번째 발심은 인에 섭수되고, 두 번째 발심은 지혜에 섭수되며, 세 번째 발심은 끊음[斷]에 섭수되고, 네 번째 발심은 과에 섭수됩니다. 또한 천자시여, 첫 번째 발심은 인으로부터 일어나고, 두 번째 발심은 지혜로부터 일어나며, 세 번째 발심은 끊음[斷]으로부터 일어나고, 네 번째 발심은 과로부터 일어납니다. 또한 천자시여, 첫 번째 발심은 인차별분(因差別分)이고, 두 번째 발심은 지차별분(智差別分)이며, 세 번째 발심은 단차별분(斷差別分)이며, 네 번째 발심은 과차별분(果差別分)입니다. 또한 천자시여, 첫 번째 발심은 갖가지 약재를 채집하는 것과 같고, 두 번째 발심은 약재의 성품을 분별하는 것과 같으며, 세 번째 발심은 병에 따라 약을 맞추어 처방하는 것과 같고, 네 번째 발심은 약을 복용하여 병을 제거해 치유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천자시여, 첫 번째 발심은 법왕(法王)의 가문에 태어나는 것이고, 두 번째 발심은 법왕의 법을 배우는 것이며, 세 번째 발심은 배워서 잘 이해하는 것이고, 네 번째 발심은 배워서 자재함을 얻는 것입니다.” 그때 모임 가운데 결정광명(決定光明)이라는 천자가 있었는데, 그가 문수사리보살에게 물었다. “대사시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의 빠른 도(道)입니까?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 도를 행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빨리 얻게 됩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답하였다. “천자시여, 보살마하살의 빠른 도에는 두 가지가 있으며,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 도를 행하면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됩니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방편도(方便道)이고, 둘째는 반야도(般若道)입니다. 방편도는 모든 선법(善法)을 섭수하는 것이고, 반야도는 제대로 헤아려 알아 간택하는 것입니다. 방편도는 중생을 버리지 않는 것이고, 반야도는 모든 법을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방편도는 법이 화합하는 것을 아는 것이고, 반야도는 화합하지 않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방편도는 인연(因緣)이 되는 것이고, 반야도는 적멸(寂滅)에 이르는 것입니다. 방편도는 온갖 법의 차별상(差別相)을 아는 것이고, 반야도는 법계에는 차별이 없다는 이치를 아는 것입니다. 방편도는 모든 불국토를 갖추어 장엄하는 것이고, 반야도는 모든 불국토가 평등하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방편도는 중생의 근행(根行)이 똑같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이고, 반야도는 근행(根行)이 공하여 존재하지 않는 것임을 아는 것입니다. 방편도는 모든 보살들로 하여금 도량에 가도록 하는 것이고, 반야도는 보살들로 하여금 깨달을 바가 없다는 것을 체득하게 합니다. 천자시여, 보살마하살에게는 다시 두 가지 빠른 도가 있습니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자량도(資糧道)이고, 둘째는 결택도(決擇道)입니다. 자량도란 보시를 비롯한 5바라밀을 말하고, 결택도란 반야바라밀을 말합니다. 유착도(有着道)와 무착도(無着道), 유루도(有漏道)와 무루도(無漏道)의 경우도 모두 이와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두 가지 빠른 도가 있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유량도(有量道)이고, 둘째는 무량도(無量道)입니다. 유량도란 유상위(有相位)를 말하고, 무량도란 무상위(無相位)를 말합니다. 다시 두 가지 빠른 도가 있으니, 이른바 지도(智道)와 단도(斷道)입니다. 지도란 초지(初地)로부터 제7지까지를 말하고, 단도란 8지로부터 제10지까지를 말합니다.” 그때 모임에는 용수지신(勇修智信)이라는 보살이 있었는데, 그가 문수사리보살에게 물었다. “대사시여, 보살마하살이 알고 있는 경계[義: 인식의 대상]는 무엇이며, 보살마하살이 닦는 지혜[智: 인식]는 무엇입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답하였다. “선남자여, 경계는 화합함이 아니고 지혜는 화합함입니다.” 용수지신보살이 물었다. “대사시여, 무엇 때문에 경계는 화합함이 아니고 지혜는 화합함입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답하였다. “선남자여, 경계[義]는 무위(無爲)이고 무위이면 곧 경계가 아닙니다. 경계가 아닌 것 가운데는 어떤 법도 없으며, 화합하는 것 같기도 하고 화합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경계는 변하여 달라짐도 없고 이루어져 실체화됨도 없으며, 취할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으니, 모두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선남자여, 지혜[智]는 도(道)라고 이름하며, 도와 마음[心]이 화합하니 화합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또한 선남자여, 지혜[智]는 오로지 화합하는 것이니 화합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용수지신보살이 물었다. “대사시여, 어떤 인연 때문에 지혜는 오직 화합하는 것이어서 화합하지 않음이 없습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답하였다. “선남자여, 지혜는 온(蘊)ㆍ처(處)ㆍ계(界)를 잘 관찰할 수 있으며, 연기법(緣起法)을 잘 관찰할 수 있으며, 처(處)와 비처(非處)를 잘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이러하기 때문에 오로지 화합하여 화합하지 않음이 없는 것입니다. 또한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지혜가 있으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인지(因智)이고, 둘째는 과지(果智)이며, 셋째는 의지(義智)이고, 넷째는 방편지(方便智)이며, 다섯째는 반야지(般若智)이고, 여섯째는 섭지(攝智)이며, 일곱째는 바라밀지(波羅蜜智)이고, 여덟째는 대비지(大悲智)이며, 아홉째는 교화중생지(敎化衆生智)이고, 열째는 일체 법에 대해 집착이 없는 지혜입니다. 선남자여, 이와 같은 것을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지혜라고 합니다. 또한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발기(發起)가 있습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신발기(身發起)이니 일체 중생을 위하여 신업(身業)을 깨끗이 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구발기(口發起)이니 일체 중생을 위하여 구업(口業)을 깨끗이 하기 때문이며, 셋째는 심발기(心發起)이니 일체 중생을 위해 의업(意業)을 깨끗이 하기 때문이고, 넷째는 내발기(內發起)이니 일체 중생에 대해 취착(取着)하지 않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외발기(外發起)이니 일체 중생에 대해 평등한 행(行)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여섯째는 지발기(智發起)이니 일체의 불지(佛智)를 닦아 익히기 때문이고, 일곱째는 국토발기(國土發起)이니 일체 불국찰토(佛國刹土)를 공덕으로 장엄하기 때문이고, 여덟째는 교화중생발기(敎化衆生發起)이니 모든 번뇌 병에 대한 약을 잘 알기 때문이며, 아홉째는 진실발기(眞實發起)이니 결정적인 취(聚)를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고, 열째는 무위지만족발기(無爲智滿足發起)이니 일체 삼계에 대해 마음이 집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남자여, 이와 같은 것을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발기라고 합니다. 또한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행이 있으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바라밀행이고, 둘째는 사물을 섭수(攝受)하는 행이며, 셋째는 반야행이고, 넷째는 방편행이며, 다섯째는 대비행이고, 여섯째는 혜(慧)를 구하는 자량행(資糧行)이며, 일곱째는 지(智)를 구하는 자량행이고, 여덟째는 청정한 신심행(信心行)이며, 아홉째는 온갖 진리[諦]에 들어가는 행이고, 열째는 분별이나 애증의 경계가 없는 행입니다. 선남자여, 이와 같은 것을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행이라고 합니다. 또한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무진관(無盡觀)이 있으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신무진관(身無盡觀)이고, 둘째는 사무진관(事無盡觀)이며, 셋째는 법무진관(法無盡觀)이고, 넷째는 애무진관(愛無盡觀)이며, 다섯째는 견무진관(見無盡觀)이고, 여섯째는 자량무진관(資糧無盡觀)이며, 일곱째는 취무진관(取無盡觀)이고, 여덟째는 무소집착무진관(無所執着無盡觀)이며, 아홉째는 상응무진관(相應無盡觀)이고, 열째는 도량식자성무진관(道場識自性無盡觀)입니다. 선남자여, 이와 같은 것을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무진관이라고 합니다. 또한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조복행(調伏行)이 있습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간탐(慳貪)과 질투를 조복하는 행이니 베풀어 나누어 줌이 마치 비가 내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고, 둘째는 파계(破戒)를 조복하는 행이니 세 가지 업이 청정하기 때문이며, 셋째는 진에(瞋恚)를 조복하는 행이니 자애로운 마음을 닦아 익히기 때문이고, 넷째는 해태(懈怠)를 조복하는 행이니 법을 구하는 일에 권태로워하지 않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선하지 않음[不善]을 조복하는 행이니 선해탈(禪解脫)의 신통(神通)을 얻기 때문입니다. 여섯째는 무명을 조복하는 행이니 결정적인 선교혜(善巧慧)의 자량을 낳기 때문이며, 일곱째는 모든 번뇌를 조복하는 행이니 일체지(一切智)를 두루 가득하게 하는 자량이기 때문이고, 여덟째는 전도됨을 조복하는 행이니 진실하여 전도되지 않는 자량의 도를 낳기 때문이며, 아홉째는 자재하지 못함[不自在]을 조복하는 행이니 때나 때가 아닌 때에 자재하기 때문이고, 열째는 나[我]에 대한 집착을 조복하는 행이니 모든 법이 무아임을 관찰하기 때문입니다.
선남자여, 이와 같은 것을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조복행이라 합니다. 또한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적정지(寂靜地)가 있습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신적정지(身寂靜地)이니 세 가지 몸의 불선업(不善業)을 멀리 여의기 때문이고, 둘째는 구적정지(口寂靜地)이니 네 가지 구업(口業)을 깨끗이 다스리기 때문이며, 셋째는 심적정지(心寂靜地)이니 세 가지 마음[意]의 악행을 영원히 버리기 때문이고, 넷째는 내적정지(內寂靜地)이니 자신의 몸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외적정지(外寂靜地)이니 일체의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섯째는 지자량(智資糧)적정지이니 집착함이 없이 도를 행하기 때문이며, 일곱째는 부자고(不自高)적정지이니 성스러운 지혜의 자성을 관찰하기 때문이고, 여덟째는 구경변제신통(究竟邊際神通)적정지이니 반야바라밀을 낳기 때문이며, 아홉째는 멸희론(滅戱論)적정지이니 일체의 중생을 속이지 않기 때문이고, 열째는 불고변신심(不顧變身心)적정지이니 대자비로 중생을 교화하기 때문입니다.
선남자여, 이와 같은 것을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적정지라고 합니다. 또한 선남자여, 모든 보살마하살들이 여실하게 행하면 보리를 얻을 수 있으나 여실하게 행하지 못하면 얻을 수 없습니다. 여실한 행이란 그 말한 바대로 그렇게 행하는 것이고, 여실하지 못한 행이란 단지 언설만 존재할 뿐 믿음으로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닦아 익히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또한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에게는 두 가지 여실한 행이 있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도의 여실행[道如實行]이고, 둘째는 단(斷)의 여실행[斷如實行]입니다.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에게는 다시 두 가지 여실한 행이 있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스스로 자신을 조복하는 여실행이고, 둘째는 중생을 교화하는 여실행입니다.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에게는 다시 두 가지 여실한 행이 있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공덕의 효용이 있는 지혜의 여실행이고, 둘째는 공덕의 효용이 없는 지혜의 여실행입니다.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에게는 다시 두 가지 여실한 행이 있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모든 지위[地]를 잘 건립하는 여실행이고, 둘째는 모든 지위를 차별 없이 잘 관찰하는 여실행입니다.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에게는 다시 두 가지 여실한 행이 있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모든 지위[地]의 과실(過失)을 멀리 여의는 여실행이고, 둘째는 모든 지위의 공덕을 잘 원만하게 하는 여실행입니다.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에게는 다시 두 가지 여실한 행이 있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성문(聲聞)과 벽지불지(辟支佛地)를 잘 설하는 여실행이고, 둘째는 모든 부처님의 보리(菩提)와 불퇴전법(不退轉法)을 잘 설하는 여실행입니다.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이와 같은 한량없고 가없는 여실한 행법이 있습니다. 만약 이와 같이 여실하게 행한다면 이 사람은 오래지 않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되리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보살마하살들은 마땅히 부지런히 닦고 배워야 합니다.” 그때 세존께서는 문수사리보살을 칭찬하시어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문수사리여. 시원스럽게 말을 잘 했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다 설하시자 문수사리 보살마하살과 용수지신 보살마하살ㆍ정월위광 천자ㆍ결정광명 천자 및 그 모임에 참석했던 나머지 일체 세간의 하늘ㆍ사람ㆍ아수라(阿修羅) 등이 모두 매우 기뻐하며 믿음으로 받아 받들어 행하였다.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Renoir portrait-of-mademoiselle-francois
Artist: Pierre-Auguste Renoir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2.25 – 1919.12.3) https://en.wikipedia.org/wiki/Pierre-Auguste_Renoir Title : portrait-of-mademoiselle-francois Info Permission & Licensing : Wikiart ● [pt op tr] fr
○ 2020_0525_171025_can.jpg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John_H._Twachtman_001
[show]John Henry Twachtman (1853–1902) Blue pencil.svg wikidata:Q1342683 Title Deutsch: Die weiße Brücke Permission & Licensing : Wikipedia ● [pt op tr] fr
♡보림사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오늘 프라즈나니르바나 불교자료 종합연구소가 출범했다. DOCTR 님이 출연한 자산이 대부분이다.
그 가운데는 전자코인도 있다. 기금 관리를 위해서 전자토큰은 현재 형태로 영구 고정시키기로 했다. 그리고 이 토큰 평가액을 기준으로 해서 매달 지출액을 정하기로 했다.
코인은 매 순간 가격이 변동한다. 그런데 토큰은 실제로 매매하지 않고 현재 보유형태로 영구 고정시킨다. 그리고 단지 매달 지출액을 산정하는 기준으로만 활용한다. 코인 평가액이 상승하거나 하락하면 그에 따라 실제 현금지출액이 달라지게 된다. 평가액산정은 매달중 실제 현금 지출을 결정한 시점에서의 평가액으로 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계산된 토큰 평가액의 1/1000 에 해당한 금액을 '현금자산에서' 지출하는 형태다. 계산상 83 년이 경과하면 토큰 평가액 전체가 현금형태로 지출되는 형태다. 그러나 토큰은 현재 보유형태 그대로 잔존하게 된다.
여기에는 사정이 있다. 주식을 기준으로 하면 개별 회사의 경영상태와 자산이 연동된다. 그렇다고 부동산을 기준으로 하면 평가가 곤란하다. 현금을 기준으로 하면 장기적으로 현실에 적절하게 산정하기가 곤란하다. 한편 가격이 매번 심하게 변동되는 자산은 관리하기가 대단히 힘들다. 그런데 어차피 장래 가격을 잘 모른다. 그런 가운데 기금 관리자가 관리를 잘 하지 못하면 곤란하다. 예를 들어 토큰 자산 경우는 어느날 갑자기 파산상태에 몰릴 우려도 있다. 그래서 현재 보유상태를 영구 고정시키고 이후 관리 부담을 제거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이 변동가를 기초로 매달 지출액을 산정하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매달 지출액은 토큰 가격변동에 따라 들쭉날쭉할 수 있다. 그래도 여기에 연동시키는 것이 낫다. 연구소 매달 지출비는, 매달 현금으로 고정시키기 보다는 그런 형태가 더 적절해 보인다. 정식으로 재단법인 등록절차를 밟으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정식 등록일까지 기다리려면 또 복잡하다. 그래서 그것과 관계없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지금부터 바로 시작하기로 한것이다.
그런데 본인이 할 일이란 특별한 것이 따로 없다. 불교 자료를 연구하고, 웹상에 연구결과를 올리는 것 그것 뿐이다. 그렇게 막대한 기금까지 필요한 일이 결코 아니다.
24 이 때에 관세음보살께서 이 주문을 설하시고 나니 대지(大地)는 여섯가지로 진동하고 하늘에서 보배의 꽃이 흩뿌려져 내려, 10방(十方)의 모든 부처님께서는 다 환희하시고 하늘의 마군이와 외도들은 놀라고 두려워 하여 털이 곤두섰으며 이 법회에 모인 일체 대중은 도과(道果)를 각기 증득하였으니 혹 수다원과(湏陁洹果)를 얻었으며, 혹 사다함과(斯陁含果)를 얻었으며, 혹 아나함과(阿那含果)를 얻었으며, 혹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었으며, 혹은 환희지(歡喜地)를 얻었으며, 혹은 이지(二地)· 삼지(三地) 내지 제 십지(第十地)인 법운지(法雲地)를 얻었으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귀신과 여러 종류 중생이 다 보리심을 일으켰다. ● 살바살바 薩婆薩婆<二十四> sar va sar va
『불설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
♣0294-001♧
102 달- 마 난 바라 바가다 라 達哩麽<二合><引>鉢囉<二合>嚩訖哆<二合引>囉<一百二>
『성관자재보살일백팔명경』
♣112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