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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62-07-20_불설묘색왕인연경_001 본문

과거조각글/불기2562(2018)

불기2562-07-20_불설묘색왕인연경_001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18. 7. 20. 13:37



®

불설묘색왕인연경
K0496
T0163

불설묘색왕인연경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불설묘색왕인연경_K0496_T0163 핵심요약





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원문번역문

불설묘색왕인연경


 

불설묘색왕인연경(佛說妙色王因緣經)

 

대장(大唐) 삼장법사(三藏法師) 의정(義淨) 한역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세존[薄伽梵]께서 실라벌성(室羅伐城: 사위성) 서다림급고독원(逝多林給孤獨園: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이 때 세존께서 선정[定]에서 일어나신 뒤에 여러 4부 대중을 위하여 위없는 감로묘법(甘露妙法)을 연설하시었다. 

그 때에 한량없는 백천(百千)의 대중이 앞뒤로 둘러싸고 모든 근(根)을 움직이지 아니한 채 법요(法要)를 들었다.

 

그 때 여러 필추(苾芻: 비구)들이 대중들의 몸과 마음이 적정하여 법을 은근히 듣고 있음을 이미 보고
모두 다 의심을 두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오직 자비로서 의심 그물을 끊어 주시옵기를 원하옵니다. 

여래ㆍ큰 스승[大師]ㆍ위없는 법왕[無上法王]이시여, 

이제 이 좌중에서 법을 듣는 모든 사람들이
무슨 까닭으로 은근히 몸과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묘법 듣기를 감로(甘露)를 마시듯 합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대 비구들이여, 

내가 지난 옛적에 법을 구하기 위하여 공경한 마음이 은근하고 중하였다. 

그대들은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여라. 

내가 마땅히 그대들을 위하여 저 인연을 말하겠느니라.

 

■ 지나간 옛적에 바라니사(婆羅痆斯: 바라나시) 큰 성 가운데 왕이 있었는데 이름이 묘색(妙色)이었다. 

법으로 세상을 교화하여 국토가 풍부하고

인민은 극히 성하였으며
모든 전투(戰鬪)·속임·거짓·원수와 도적이 없었으며, 

또한 병·괴로움·재횡(災橫) 같은 일이 없었으며, 

벼·사탕수수·소와 염소가 곳곳에 가득 찼었고, 

또한 기와 깨진 것과 거친 가시덤불도 없었으며, 

백성[兆人]을 은혜로 기르기를 외아들 보듯 하였다.


그 왕은 어질고 착한 이를 공경하고 믿고
뜻으로 즐기며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여, 

견고한 원을 발하였다. 

자비한 마음을 가지고 큰 법[大法]을 희망하였으며, 

중생을 어여삐 여기고 여러 관리들을 사랑하였으며 인색함과 탐욕을 여의어 항상 큰 희사를 하였다.

왕의 부인은 이름이 묘용(妙容)인데, 

얼굴이 단정하고 위의(威儀)가 점잖으며 여러 가지 덕이 원만하여 사람들이 사랑하고 즐겨하였다. 

그 왕에게 오직 아들 하나가 있었는데 이름이 단정(端定)이었다. 

아들은 나이가 비록 어렸지만 충성스럽고 효성스러우며 인자(仁慈)하므로
왕이 사랑하여 좌우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였다.

 


■ 그 뒤 다른 때에 묘색왕이 마음으로 수승한 법을 희망하여 모든 신하를 불러 말하였다.

‘내가 묘한 법을 몹시 바라노니 경등은 나를 위하여 찾아오는 것이 마땅하리라.’


그 때에 여러 대신들이 앞으로 나아가 왕께 말하였다.

‘대왕께서는 마땅히 아시옵소서. 

크게 깨달으신 세존[大覺世尊]께서 세상에 나오셔 세상을 흥하게 하여야 바야흐로 묘한 법이 있는 것이옵니다.’


왕이 신하에게 대답하였다.

‘지금 비록 부처님은 계시지 않지만 나를 위하여 시험 삼아 구해보시오.’

그 때에 왕은 곧 상자에다 묘한 금과 보배를 가득 채워서
기[幢] 위에 달고 북을 울리며 선전하여 널리 사방에 고하였다.

‘만일 나를 위하여 수승한 법을 베푸는 이가 있으면
내가 금상자로 그 은덕을 갚고 널리 음악을 베풀어 그를 드높여 찬탄[慶讚]하겠노라.’

이와 같이 조서하여 불렀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결국 한 사람도 법을 말할 수 있는 이가 없었다. 

그 때에 왕은 애타게 기다리다 근심을 품고 살아갔다.

 


■ 이 때 제석께서 하계(下界)에서
누가 착하고 누가 악하며 누가 수승한 인연으로 게으름이 없는지 두루 관찰하다가, 

드디어 이 왕이 법을 위하여 근심하고 고뇌함을 보고 곧바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묘색왕이 오랫동안 수승한 법을 구하였는데, 

내가 그 일이 헛된지 진실한지 시험해보는 것이 마땅하리라.’

드디어 곧 몸을 변화시켜 큰 야차[藥叉]가 되니
몸과 손·발이 이상(異常)하고 얼굴과 눈은 무서워할 만하였다. 


대중 가운데로 와서 왕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수승한 법을 구한다 하는데, 

내가 말할 수 있습니다.’


왕은 법이란 소리를 듣고 환희하고 용약하여 약차에게 말하였다.

‘밀적주(密跡主)는 묘한 법이 있는 것이니, 

설해 주시기를 원하옵니다. 

제가 마땅히 정성껏 듣겠습니다.’


■ 약차가 말하였다.

‘왕이 이제 법을 가볍게 여기는 마음으로
쉽게 얻을 수 있다고 하며 곧 바로 말하라고 하지만, 

일이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굶주려서 속이 텅 비었는데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왕이 말을 듣고서 곧 음식 맡은 이에게 명하여 

갖고 있는 중에서 으뜸가는 음식을 속히 받들어 올리라고 하였다.


약차가 말하였다.

‘왕의 부엌에 있는 음식은 내가 먹는 것이 아니요. 

오직 사람의 뜨거운 피와 고기, 

나는 항상 이것을 먹지요.’


왕이 말하였다.

‘사람의 피와 고기를 어떻게 갑자기 구하겠습니까?’


■ 약차가 말하였다.

‘왕이 사랑하는 아들을 주시는 것이 마땅합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오랫동안 힘을 들여 수승한 법을 구하였지만, 

이제 법음을 들으니 곧 가치 없는 것이다.’


이 때 단정이 아버지 곁에서 있다가 이 말을 듣고서 꿇어 앉아 왕께 아뢰었다.

‘오직 원하옵건대, 

부왕께서는 근심하지 마시옵소서.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바를 마땅히 만족하게 하겠사오니, 

제 몸을 가져다 밀적주에게 바쳐서 먹게 하시면 됩니다..’


왕이 말하였다.

‘법을 구하는 것을 네가 보고 사랑하는 몸을 희사하는구나. 

착하구나, 

장부여! 네가 좋아하는 대로 따르리라.’

단정은 곧 몸을 야차에게 바쳐 올렸고, 

야차가 받고 나서 왕과 대중 앞에서 그 몸을 찢어 살을 먹고 피를 마셨다. 

왕이 비록 이를 보았으나 법을 사모하는 정이 깊어서 끝내 놀라고 두려워하는 일이 없었다.

 


■ 이 때 밀적주가 다시 왕에게 말하였다.

‘내가 아직 배가 부르지 않으니, 

그대의 아내를 주시오.’

그 때에 묘용 부인이 옆에 있다가 이 말을 듣고
또한 그 아들과 똑같이 몸을 야차에게 바쳤다. 


야차가 받고 나서 피와 고기를 먹고 다시 왕에게 말하였다.

‘그래도 내가 주리고 배가 텅 비어서 아직 충족치 못하오.’


왕이 곧 말하였다.

‘밀적주여, 

외아들을 이미 보시 하였고 또한 아내를 거듭 먹고도 오히려 주리고 비었다고 하니, 

뜻대로 취하는 것이 마땅하리다. 

원하옵건대 나를 바칠지라도 물러설 마음이 없소.’


■ 야차가 말하였다.

‘왕 자신을 내게 주어서 먹게 하는 것이 마땅하리다.’


왕이 말하였다.

‘좋소. 진실로 아끼지 않겠소. 

그러나 내 몸이 죽으면 어떻게 법을 듣겠소이까? 

이제 내가 먼저 그 묘한 법을 들어서 이미 받아 지니고서 곧바로 몸을 희사하겠소이다.’

 

■ 이 때 야차가 왕과 약속하고서
한량없는 백천만억(百千萬億) 대중 가운데서
수승하고 묘한 가타([伽他: 게송)를 말하였다.

 


■ 사랑으로 말미암아 근심이 생겨나고

사랑으로 말미암아 두려움이 생겨나나니

만일 사랑을 여의면

근심도 없고 두려움도 없다네.



 

왕이 이 수승하고 묘한 법을 이미 듣고 나자, 

마음으로 경사스럽고 다행하게 여기고 기쁨이 한량없어서 밀적주에게 말하였다.

‘제가 이미 법을 들어 말씀대로 받들어 갖겠사오니, 

이제 제 몸을 뜻대로 드시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 때에 천제석(天帝釋)은
왕이 법을 위하여 몸과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함이 묘고(妙高)산과 같음을 보고
그가 반드시 위없는 깨달음을 증득할 줄 알고 야차의 모양을 버리고
천제(天帝)의 모양으로 돌아갔다.


믿음과 기쁨이 안에 충만하여 기쁜 얼굴로 앞으로 나오며, 

한 손으로는 아들을 이끌고 한 손으로는 아내를 데리고 왕에게 말하였다.

‘착하고 착하도다. 

이 착한 장부는 견고한 갑옷을 입어 번뇌의 군대를 깨뜨리고
어리석고 흐림[愚迷]을 제도하여 생사의 바다를 벗어났도다. 


이 용맹을 보건대, 

오래지 않아 위없는 정등보리[無上正等菩提]를 이룰 수 있으리다. 

그대의 아내와 아들을 내가 이제 보내노라.’



그 때에 왕이 곧 천제께 아뢰었다.

‘착하고 착하십니다, 

하늘의 주인인 교시가(憍尸迦)1)시여!
큰 자비를 내리고 선지식이 되어
제가 법을 즐기는 마음을 이미 가득 차게 하실 수 있었나이다.’



이 때 천제가 대중 가운데서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 이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의 뜻이 어떠한가? 

다른 생각을 내지 말라. 


■ 저 때 묘색왕의 몸이 곧 내 몸이고
단정이라는 아들은 라훌라(羅怙羅)이며
아내 묘용은 곧 야소다라(耶輸陀羅)이니라. 

그대들은 알아야 마땅하느니라. 


■ 내가 지난 옛적에 법을 구하기 위하여
사랑하는 아내·아들과 자기 몸을 희사하고서도 오히려 인색한 것이 없었는데, 

하물며 다른 물건이겠는가.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제 있는 바의 일체 대중이 나를 따라 법을 듣고, 

마음을 오로지 하여 듣고 받아도 피곤하고 싫어하는 일이 없는 것이니라. 


■ 또 내가 옛적에 법을 구하여 수고로움을 잊었으므로
이제 긴 밤을 대중을 위하여 법을 말하여도 또한 피곤하고 게으름이 없으니, 

그대 비구들은 나한테 배워서 공경하고 존중하며 부지런히 수승한 법을 구하며, 

이미 법을 들은 뒤에는 말과 같이 수행하여 방일(放逸)하지 않아야 마땅할 것이니라.”

 


이 때 여러 비구들 및 사람과 하늘의 무리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서 환희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
1 산스크리트 kausika의 음사(音寫). 

제석(帝釋)의 별명.





Lab value 불기2564/02/09/일/11:10


[오래된조각글재정리]

☎잡담☎ = 순전한 잡담부분

● = 논의부분

사이트가없어진개인촬영사진 = 사진파일명만 기재








◆vazn1866

◈Lab value 불기2562/07/20/금/20:43





mus0fl--Laurent Voulzy - Désir Désir.lrc


노래를 듣다보니 못보면 소돼지가 되고
민폐를 끼치게 된다는 메세지를 듣게 된다. 

부처님의 가르침의 소중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지나치면
3 악도의 생사고통을 받아 나가는 사정을 전하는 듯하다. 

그런데 불어 노래를 가지고 이렇게 엉뚱하게 듣는 과정이 
망상분별이기도 하다. 

경전에서 부처님이 가르치는 내용도 또한 사정이 같다. 

다만 망집에 잡힌 중생들을 망집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점에서
그 취지와 의미가 다른 것 뿐이다. 
마치 강을 건너는 데 이용하는 뗏목과 같다. 

그래서 불어 노래에 본래 없는 이상한 메세지도 
망집을 벗어나는 방향으로 들으면 마찬가지가 된다. 

현실에서 망집에 바탕해 상을 취하면 곤란한 사정을
현실에서 사과를 사과라고 여기는 내용을 놓고 살피기로 한다.



● 현실에서 상을 갖지 않아야 하는 사정의 비유



○ 상의 문제 

사과를 손에 쥐고 이것을 바라보고 
만져보고 맛을 본다고 해보자. 
그리고 사과를 손으로 뚝뚝 치면 소리도 들린다. 

현실에서 대부분 이 상황을 다음처럼 이해하게 된다. 

자신이 바라보는 그 사과 모습은 
손으로 사과를 만질 때 촉감을 느끼게 한 대상이라고 잘못 여긴다. 
또한 손으로 쳐 소리가 날 때 소리를 일으킨 대상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사과를 먹으며 맛을 볼 때 그런 맛을 얻게 한 대상이라고 잘못 여긴다. 
이처럼 잘못 여긴다. 

결국 촉감을 준 대상이나 
소리를 얻게 한 대상이나 
맛을 준 대상은 
자신이 바라본 그 사과라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이처럼 잘못 여길 때
자신이 사과라고 보고 대하는 그 부분이 바로 사과'상'이 된다. 

그런데 현실에서 대부분이 이렇게 생각하고 현실에 임한다. 
현실에서 거의 대부분 그렇게 현실을 대하고 임해 
바삐 정신없이 살아가고 삶을 마친다. 

그리고 경전에서는 현실에서 그렇게 보고 임하면 안 된다고 제시한다. 
그렇게 임하면 생사에 묶여서 무한한 생사고통을 겪어 나가게 된다. 

따라서 무상해탈문에 들어서서 
현실에서 그런 상을 갖지않아야  한다.
그리고 상을 취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상에 머물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상에 머물러 행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 생사를 벗어난다. 

물론 해탈문에는 이런 무상해탈문 외에도 공해탈문 무원무작해탈문도 있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대하는 현실 상황에서는 무상해탈문이 가장 문제된다. 
무상해탈문은 간단해 보이지만, 
위 내용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생사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사과를 놓고 바라 보고 만져보고 맛도 보는 상황에서 
왜 그 부분을 붙잡아 취해 사과라고 여기고 대하면 안 되는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사과가 잘 이해되면 
그 사과가 있던 그 부분에 평소 자신이라고 보는 내용을 놓고 
그 부분을 자신이라고 여기면 안 됨도 함께 잘 이해해야 한다. 

또한 평소 그렇게 관하고 임하지 못하기에 
생사에 묶여 지내게 된다는 사정을 이해해야 한다.  
조금 심하면 개나 닭처럼 3 악도의 생사에 묶여 지내게 된다. 
그래서 위 문제는 중요한 생사 현실문제다. 
단순히 지적 호기심으로 
무엇이 옳고 그르고를 이론상 따져보고 그치는 문제가 아니다.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겪어 나가야 할 생사고통은 훨씬 심하고 길다. 
지금까지 살면서 다른 생명이 겪었던 무수한 고통을 
자신이 한번씩 모두 거치고 겪어야 한다면 끔직한 일이다. 
그런데 자신이 행한 업은 무량겁에 걸쳐 소멸되지 않고 
다 돌려받게 된다. 
따라서 어떤 계기가 되었던 
생사고통을 근본적으로 벗어나야 한다.
따라서 무상해탈문의 내용을 잘 이해하고 
현실에서 실천해나가야 한다. 



상을 갖지 않아야 함은 다음을 의미한다. 

현실에서 어떤 주체가 감각을 통해 감각현실을 대하면 

일정한 부분에 대해 무엇무엇이라고 관념분별을 일으킨다. 
그런 상태에서 그런 관념분별을 바탕으로 
그 감각현실 부분을 취하고 붙잡고 머물게 된다.

예를 들어 눈을 떠 어떤 부분이 영희라고 여긴다고 하자. 
이 때 영희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그는 손가락으로 일정부분을 가리킨다. 
즉 그처럼 일정부분을 취하여 영희라고 잘못 여기고 대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생활하고 행위를 해나간다. 
그리고 그로 인해 생사고통을 겪어나가게 된다. 
따라서 생사고통을 해결하려면 그 근본원인이 되는 첫부분의 잘못을 시정해야 한다. 

첫부분에서 일정부분을 가리키며 그 부분을 영희나 사과로 여기고 대하는 것을 '상을 취한다'고 한다. 
현실에서 이렇게 임하면 곤란하다. 

이처럼 상을 취하는 과정에서 
감각현실이 그런 망집을 일으키는 재료가 된다. 
그러나 그처럼 상을 취하고 머무는 작용자체는 관념분별 영역에서 일어난다.
즉 관념영역에서 그런 망집을 일으켜 그렇게 임하게 된다. 
따라서 관념영역에서 그런 망상분별을 제거해야 한다. 



○ 감각현실 사이의 관계를 통한 이해 

상을 갖지 않아야 하는 사정을 
하나의 감각현실과 다른 감각현실의 관계를 놓고 비유로 살펴보자. 

현실에서 사과를 손으로 붙잡고 
사과를 두드려 소리도 듣고
입으로 맛도 보고
손으로 사과 촉감도 느낀다. 

이 상황에서 
자신이 사과를 손으로 두드리며 소리를 듣는다면 
이 소리가 어떤 과정으로 듣게 된다고 여기는가를 살펴보자. 

현실에서 대부분 
그 소리는 자신이 바라보는 그 사과모습에서 얻는다고 잘못 이해한다. 
즉, 자신이 본 사과의 모습 => 소리를 얻게 한 그 대상이라고 잘못 이해한다. 

현실에서 이해하는 이런 내용이 엉터리임은 이미 살폈다. 
시각정보가 청각정보나 촉각정보 등을 일으키지는 않기 때문이다. 
설령 그 상황에서 눈을 감아 시각정보를 얻지 못해도 소리는 듣게 된다. 
따라서 이들은 하나의 상황에서 동시에 있는 부대상황의 관계일 뿐이다. 

한편 이 경우 자신이 눈으로 본 사과 모습은 정작 소리가 아니다. 
눈으로 본 사과모습을 손으로 두드릴 때 이로 인해 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정작 눈으로 보는 사과모습에서 소리를 찾을 수 없다 
따라서 처음부터 위와 같이 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런데 여하튼 현실에서 눈을 떠 사과 모습을 보는 가운데 
사과에 손을 대 두드리면 소리를 반복해 듣게 된다. 
따라서 사과 모습에 손을 대 소리를 얻는다고 관계를 잘못 이해한다. 
그런데 정작 그 소리는 눈으로 보는 사과 모습에서 찾아지지 않는다. 

그런데 감각현실과 관념분별의 관계도 이와 마찬가지다. 
현실에서 사과 모습을 감각현실로 얻고 어떤 한 부분이 사과라고 분별을 한다. 
그런데 정작 그 부분에서는 사과란 분별내용은 얻을 수 없다. 

자신이 얻은 감각현실 --> 그 일정 부분을 놓고 일으킨 관념분별 
자신이 눈으로 본 감각현실 ---> 자신이 귀로 얻은 감각현실 
이들은 서로  완전히 대등한 지위에 있는 관계는 아니다.
그러나 그 사정이 유사하다. 


한편 현실에서 공이 굴러서 이동하는 상황에서 
관찰자를 빼고 생각하면 

마치 공이 여기에서 저기로 이동했다고 여기기 쉽다. 
그런데 관찰자를 함께 놓고 생각하면 

이들 내용은 관찰자의 마음에서 그런 내용을 감각현실로 얻는다. 
이들은 어떤 이가 눈을 떠서 관찰하는 내용으로서 그의 마음에 맺히는 내용이다. 



○ 모니터 비유를 통한 이해 

모니터를 놓고 비유적으로 설명해보기로 한다. 

모니터에서 모니터 화소가 

좌측에 있는 화소에서 노란불이 켜졌다가 꺼지고 

계속 그렇게 오른쪽으로 옮겨간다고 하자. 

이때 노란불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한 것인가하면 그렇지 않다. 


이런 비유처럼
현실에서 운동이나 변화과정으로 이해하는 감각현실에서
관찰자를 함께 놓고 생각하면 그런 이동은 본래 얻을 수 없다. 

이 내용이 감각현실과 관련된다. 



감각현실과 관념분별의 관계를 이해하려면 
다시 또 하나의 모니터를 놓고 살펴보자. 

앞의 모니터 외에 또 하나의 모니터가 또 있다. 

이 모니터는 앞과 같이 자신이 눈으로 본 감각현실 내용을 가지고 

각 부분이 무엇이라고 분별하는 내용이 얻어지는 모니터다. 


처음에 노란 화소 하나를 공이라고 보았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제2 모니터이다. 

그런데 처음의 모니터 화소에는 

제 2 모니터에서 생각한 내용은 얻을 수 없다. 


제 2 모니터에서 생각해 내는 내용은 

제 1 모니터의 화소 변화 때문에 일으킨 내용이기는 하다.
그런데 정작 제 1 모니터에는 없는 내용이다. 


주의할 점은 이 경우에 

제 1 모니터 상황(감각현실)과
제 2 모니터 내용(분별내용)이 서로 관계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제 1 모니터에 내용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제 2 모니터에서의 내용은 정작 제 1 모니터 안에서는 얻을 수 없다. 


한 주체가 현실에서 얻는 그 일체는 마음안에 맺히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 다음과 같이 주장을 하기 쉽다. 

즉, 제 1 모니터에서 어떤 내용(감각현실)을 보았다면
모니터 밖에서도 그와 같은 내용이 그대로 있다고 여기기 쉽다. 

그런데 그런 주장을 하려면 그런 증거를 얻어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지만, 모니터로만 내용을 얻는 각 주체는 끝내 그 내용을 직접 얻지 못한다. 


그리고 얻어진 내용들 사이의 관계는 

제 1 모니터와 제 2 모니터의 관계와 마찬가지다. 
사과의 비유를 놓고 생각하면 이 경우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 관념의 연상을 통한 이해 

또 다른 비유를 들어보자. 

바나나는 길다. 긴 것은 기차다.
이렇게 어떤 생각으로부터 다른 생각을 연상해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이 경우 기차란 생각은 바나나란 생각이 불러 일으켰다. 
그렇다고 바나나에 기차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바나나가 기차도 아니다. 





○ 현실에서 상을 취하지 않아야 함의 의미

이런 여러 비유를 통해 확인할 내용은 다음이다. 


한 주체가 감각현실을 얻는다.
그런 상태에서 그 주체는 관념분별 영역에서 각 부분을 묶고 나누어
어떤 부분이 사과라는 식으로 분별을 행하게 된다. 
현실에서 이런 감각현실도 얻고 
그런 분별 내용을 일으켜 얻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분별한 내용이 
그런 감각현실 부분에 '있는 것'은 아니다. 
또 그런 감각현실 부분은 그런 관념분별 내용도 아니다. 

a 를 바탕으로 b 를 일으켰지만, 
a 가 b 는 아니다. 
따라서 a 란 부분을 b 라고 여기고 그 부분을 취하면 곤란하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행하면 곤란하다. 
생사현실에서 겪는 생사고통은 바로 이런 바탕에서 겪게 되는 현상이다. [ 혹- 업 - 고 ] 

따라서 이 근본 부분을 잘 해결해야 한다. 

현실에서 어떤 부분을 사과라고 여기고 그 부분을 대하게 된다. 

그런데 정작 그 부분에서 그런 사과를 얻지 못함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것이 현실에서 상을 갖거나 취하거나 머물러 행하지 말라는 경전 내용과 관련된다. 




○ 실재에 대한 잘못된 이해 

한편 어떤 내용을 마음에서 얻을 때 마음 밖에 그와 일치한 내용이 있다거나  

또는 적어도 그에 비례하거나 유사한 것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모니터에서 어떤 내용을 얻으면 

모니터 밖에도 그 내용이 그대로 있어서 그렇다고 이해하는 식이다.
이처럼 하나의 내용을 마음에서 얻을 때 그 내용을 마음 밖 영역에 그대로  밀어 놓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사과를 손에 쥐고 만지면 

눈으로는 그런 사과모습을 본다. 

손은 촉감을 느끼게 된다. 

먹으면 맛을 느끼게 된다. 

이런 경우에  앞의 주장을 적용하면 

사과모습과 같은 시각내용과 청각, 미각, 촉각 내용 사이에서 비례나 유사성이 찾아져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따라서 우선 감각현실들 상호간의 관계도 이런 주장을 지지해주지 않는다. 




한편 사과를 보면서 자신의 누나의 모습을 떠올릴 수도 있다. 
이런 경우 관념내용을 또 다른 감각현실 영역으로 밀어 넣어 버리고 싶어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얻는 감각내용이나 관념내용을
본 바탕의 실재영역으로 밀어 놓고 싶어한다. 


그런데 그것이 곤란하다. 
한 주체는 마음에 화합된 내용만 얻기에 문제되는 본 바탕의 내용을 끝내 얻을 수 없다. 
따라서 위와 같은 주장의 근거를 확보할 도리가 없다. 


그런데 이는 
그런 감각현실을 얻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또 그런 감각현실을 바탕으로 그러한 관념분별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감각현실 영역에 그런 내용이 있다고 여기는 것은 잘못이다. 
그리고 그런 분별을 바탕으로  그 감각현실 부분을 취하고 그에 접착되어 머물면 곤란하다. 

여기에서 그 감각현실이 이런 망집을 일으키는 재료가 된다.
그러나 정작 그런 감각현실을 재료로 
그런 망집을 일으키고 그에 바탕해 행해 나가는 것은 관념분별 영역에서의 일이다. 
즉 감각현실은 망집을 일으키는 재료이지만, 
감각현실 영역에서는 그런 망집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즉, 관념영역에서 일으키는 망집이 문제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러그러한 감각현실을 전혀 얻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또 그런 감각현실을 얻으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또 그에 바탕해 그런 관념분별을 전혀 일으키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또 일으키면 안 되는것도 아니다. 

다만 이 둘을 접착시켜 잘못 관계를 이해하고 대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런 잘못된 망상분별과 집착에 바탕에서 이후 업을 행하고
그로 인해 생사고통을 겪어 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반인이나 과학자가 이와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 

그리고 감각으로 감각현실을 얻고 그에 바탕해 일으킨 분별내용을 현실에서 보고를 한다. 

그리고 모든 과학이론이나 일반적 보고가 모두 이와 같은 바탕에 있다. 


한편, 사과의 예에서 사과에 대한 잘못된 자세가 이해가 된 경우 

사과 부분에 자신을 놓고 또 자신도 사정이 그러함을 다시 살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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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mus0fl--Carla Bruni - Chez Keith Et Anita.lrc



● 감각현실의 상과 옳음의 판단문제



거리에 서서 멀리 100M 쯤 떨어져 있는 영희를 본다고 할 때 

영희의 모습이나 크기는 자신의 손가락보다도 작고

작은 콩알보다도 작게 보인다.  


그리고 그 영희가 자신을 멀리서 보고

좋아서거나 또는 빚을 받아내려고 달려온다고 하자. 

그러면 달려오는 과정에서 매순간 그 크기나 형태가 달라진다. 

멀리서 떨어져 볼 때는 상대가 콩알만하게 보인다. 

그런데 상대가 막상 자신 앞에 서게 되면 킹콩보다 더 크게 보일 수도 있다. 


현실에서 이런 현상은 

일반적으로 원근법 문제로 이해하게 된다. 

여하튼 100m 멀리 떨어진 곳에서 

영희가 다가오는 순간마다

그 크기나 모습 형태가 달라진다. 

그런 사정을  α,β,γ,δ,ε,ζ,η,θ,ι,κ,λ,μ,ν,ξ  라는 글자 형태로 표현해보기로 하자. 

그러면 매 순간 그 크기나 형태가 다른 여러 모습들 가운데 

과연 어떤 것이 진짜 영희의 모습인가를 생각해보자. 

또는 진짜는 아니더라도 어떤 것이 영희의 대표적이고 표준적인 모습인가를 판단해보자. 

 

참 거짓을 엄격하게 문제삼는 논리학에서 이것이 문제된다. 

그리고 한 주체의 인식과정을 논의하는 인식론 분야에서도 문제된다. 



어떤 이가 자동차처럼 빨리 움직이는 상태에서 

물체가 흘러가는 듯처럼 보게 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또는 날씨가 어둡거나 자신의 시력이 안 좋거나 눈에 병이 생겨

무언가를 대하며 사람이라고 생각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경우 정작 가까이 다가가서 보고 만져보니 

그것은 착각이었고 알고보니 나무였음을 알게 될 수 있다. 


현실에서 이런 상태 저런 상태에서 눈으로 다양하게 모습을 볼 수 있다. 

또는 이런 안경 저런 안경을 바꿔 써가며 어려 내용을 볼 수 있다. 

또는 이런 사진기 저런 사진기가 찍어낸 다양한 화상을 보게 될 수 있다. 


이런 각 내용의 진짜 정체나 모습은 무엇인가가 문제된다. 

그리고 이 가운데 과연 무엇이 옳은 내용인가 

또는 여러 모습 가운데 어떤 모습이 가장 표준적이고 대표적인 모습인가가 문제된다. 


참과 거짓을 엄격하게 문제삼는 논리학이나 인식론에서 

참 거짓 판단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로 제시된다. 

그리고 온갖 학문적 내용도 이런 바탕에서 확립된다. 

따라서 이는 가장 중요한 기초문제가 된다. 


입장에 따라서는 

눈으로 직접 보고 얻는 것은 

어떤 판단을 거치지 않고 그 자체로 즉자적으로 옳다고 주장하는 입장도 있다. 


그래서 처음 한 정지 단면에서 얻는 하나의 모습을 놓고 잘 살펴야 한다. 
우선 그 내용이 어떤 기기나 어떤 감각기관을 의존해 어떻게 얻은 내용인가를 헤아려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과연 무엇을 대상으로 얻은 것인가를 헤아려야 한다. 
그래서 어떤 내용이 그 대상과 어떤 사정으로 옳다고 할 것인가를 잘 살펴야 한다. 

현실에서 각 주체는 어떤 과정으로던 그런 과정을 거친 결과물로서 감각현실을 마음에 얻게 된다. 

따라서 그런 내용을 마음에 얻었다는 사실만은 확인할 수 있다. 


이 상황에서 정작 그 주체가 무엇을 대상으로 그런 내용을 얻었는가는 확인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대상 자체를 직접 얻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 대상과 관련해 그 내용이 옳은가 그른가는 끝내 확정할 수 없게 된다. 


결국 단지 그런 내용을 얻었다는 사실 외에 

무엇을 근거로 그런 내용을 얻게 되었는가를 판단할 근거를 얻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위 문제는 미궁으로 빠지게 된다. 


그리고 이후 논의들은 그렇게 얻어진 감각현실과 관념분별을 단순히 토대로 하여 쌓여진다. 



그런데 이들 내용은 그 과정이 어떠하던 

하나같이 마음에서 얻어내게 된 마음안 내용이다. 


따라서 이들은 실재의 지위에 있는 내용들이 아니다. 

즉, 이들 내용은 자신이나 관찰자와 전혀 관계없이 

외부에 객관적으로 독립해 실재하는 내용이 아니다. 



다만 현실의 실용적인 차원에서는 

위와 같은 엄격한 참거짓을 문제삼는 경우와 달리 판단한다. 

즉, 현실에서 한 주체가 매 상황마다어떤 형태의 모습을 얻어야

생활과정에서 덜 불편하고 편하게 되는가하는 측면에서 접근한다. 

예를 들어 눈에 병이 생겨 모습을 잘 보지 못하면 치료도 하는 한편

평소 시력이 나쁘면 어떤 안경을 착용해 생활하는 것이 나은가라는 측면에서 주로 논의하게 된다. 


또 시와 예술 감상의 차원에서는  

사진을 찍고 이렇게 저렇게 달리 처리도 해보게 된다. 

이렇게 해도 별 문제없이 편하고 좋다.

그러나 이 가운데 과연 어떤 것이 진짜이고어떤 내용이 옳은가. 

또 그 근거는 무엇인가.

이런 형태로 이들 내용을 놓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경우에는
앞과 같이 판단이 곤란하게 된다. 



상과 관련된 내용은 한 일주일전부터 살피는 

『금강삼매경론』이나 그 이후 살폈던 경전과 논서마다 다 언급이 되고 관련된다. 

현실에서 이 내용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또 이해하더라도 그런 바탕에서 수행을 해나가는 것 역시 쉽지 않다. 

그러나 이 무상해탈문을 잘 이해하고 그에 바탕해 수행을 원만히 성취하여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 멀고 가까움에 따라 그 크기나 형태가 달라지는 화상 -


- 움직이는 상태에서 보는 화상 -



- 기기에 따라 달리 처리되는 화상 - 


- 기기에 따라 달리 처리되는 화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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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Daniel Lavoie - Je Pensais Pas.lrc 


☎잡담☎
♥ 잡담 ♥ 사진찰영

어떤 SNS 사이트에서 
핸폰으로 목성 위성을 찍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어제 카메라를 들고 화성인지 목성인지 
여하튼 노란 빛이 나는 별이 보여 대강 찍어 보았다. 

날씨가 더워 옥상에 올라가 보니 남동쪽 하늘에 노란 전구가 하나 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안 움직인다. 우주선일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하늘에 떠있는 기구로 생각하다가 너무 안 움직여 한번 찍어 보았다. 
찍어 놓은 화상에서는 이리저리 움직인것처럼도 찍히고 합쳐지거나 하트 모양처럼 찍힌다. 
sns 에서는 노란 빛이 나면 화성일 수도 있다고 했다. 












다음은 달을 찍은 것 




다음은 화성으로 의심되는 별 사진 가운데 비교적 잘 나온 사진이다. 




일단 잘 찍어보기 위해 삼각대를 준비하고 
30분 정도 지나 다시 올라가 찍어 보았는데 위와 별로 다르지 않다. 
다음이다. 



삼각대가 무거워 평소 잘 사용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들고가 다시 찍어보았다. 별 차이는 없다. 



조금 더 크게 찍어보았다. 
여러장 찍어보았지만 더 좋은 화질은 없다. 
달은 약 30 분 사이에 시야에서 사라져버려 찍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화성과 같은 곳에 우주선을 보내는 나사(못?) 기지를 연상해 떠올려 본다.
그러다가 책상위에 부러진 나사가 있어 찍어 보았다.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 미니 마이크로 사진을 찍는 기기를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 

  


막상 사용해보면 초점 맞추어 찍기가 상당히 힘들다. 
조금만 흔들려도 초점이 엉망이 된다. 



움직이지 않는 물체만 놓고 카메라를 고정시켜 간신히 찍을 수 있다. 
그래서 마이크로 기기를 사용할 기회가 별로 없게 된다. 
그러다가 '나사'를 찍어 본다. 

조금 배율을 높이면 앞 사진보다 조금 더 확대해 찍을 수 있다. 
그런데 최고배율로 찍고 나면 
정작 무엇을 찍었는지 잘 모르게 된다.
그래서 위 사진 정도가 그나마 낫다. 





위 사진은 중간배율로 촬영한 나사다. 

 

처음에 사진기로 찍기 힘든 세밀한 매크로 사진을 찍어보려고

마이크로 기기를 구했었다. 
그런데 초점을 맞추기가 힘들어 사용하기 힘들다. 
야외에서 움직이는 곤충 등을 찍는데는 일반 카메라가 낫다. 
















요즘 기술이 좋아져서 
망원렌즈를 부착하지 않아도 
줌만 확대해 달도 찍을 수 있다. 


  화성도 찍을 수 있어 정말 좋아졌다. 

  그런 가운데 초점이 엉망인 사진도 찍어 보고 

  이리저리 흔들린 사진도 찍어 보고 




 

셧터를 누르다 흔들려 별이 두개인 영상도 찍힌다.
그래서 무엇이 이것들의 진짜 모습인가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별을 볼 때 처음에 안경을 쓰고 볼 때는 그나마 또렷하다.
그러나 안경을 벗고 보면 
별빛이나 거리 불빛이 모두 다 함께 부옇게 보인다. 
그래서 오히려 더 환상적으로 몽환적으로 보인다.
어떤 경우는 별 빛도 주변으로 날카롭게 퍼지는 -☆- 형태로도 보인다. 
그러나 막상 카메라로 초점을 맞춰 찍어보면 그냥 동그란 모습으로 찍혀 보인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알고보면 일반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쓰다보니 글이 길어졌다. 
여하튼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서 
버턴만 누르면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든 영상들을 
바로 바로 얻어낼 수 있다. 
이는 참 다행이다. 
나중에는 핸드폰으로 
현미경 촬영도 하고 
때로는 천체 망원경 촬영도 하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 참고로 다시 알아보니 
핸드폰으로 목성의 위성이나 토성을 촬영하는 것은 
다음 상태에서 촬영하는 것이라고 한다. 
참고사진 - 아래는 설명과 인용목적으로 해당 SNS 에서 공유기능을 통해 퍼온 것임. `





- 핸폰으로 촬영한 달 사진 - 





- 핸폰으로 촬영한 토성 등의 사진 - 





- 자작한 반사망원경에 핸드폰을 부착해 촬영한다고 함  - ( 초상권과 관련해 임의로 일부 자름 )  

여하튼 작거나 크거나, 정지했거나, 이동중이거나, 

이 모든 것이 지금 다루는 상과 관련된다. 


이후에는 현실에서 스스로 자신이라고 보는 

부분에 대해 일으키는 아상의 문제를 

좀 더 살펴나가기로 한다. 







☎잡담☎

♥ 잡담 ♥등수리

 
약사여래님 기지에 있는 등시설이 불이 안켜진다. 
그래서 가지고 내려와 열어보니 또 잘 된다. 

가끔 이런 일을 겪는다. 
고장난 것으로 알고 뜯어 보면 
또 잘 되는 경우다. 

어떻게 부서졌는지 알지 못하고 
고쳐져도 어떻게 고쳐졌는지 모른 채 
몇 부분 만지다 작동이 되면 
또 조립해서 올려 놓게 된다.   






☎잡담☎
♥ 잡담 ♥반복되는 부분의 정리 


조각글에서 반복되는 부분을 
앞으로 소논문 형태처럼 잘 작성해보고자 한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니 부담이 되어서 오히려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요즘은 사실 예약글 기능으로 경전을 미리 뽑아 놓고 있다. 
그런데 벌써 8 월 14 일 분까지 올려져 있다. 
그런 상태에서 매일매일 예약되어 올려지게 되는 경전 부분을 읽고 
문단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그러나 이런 분량만 읽고 만족하다 보면 
남은 평생 동안 대장경 전체를 읽기는 힘들다. 

경전공부나 수행은 무엇때문에 하는가. 
그것을 해서 어떤 큰 좋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면 
그렇게 많은 경전을 읽어야 할 필요는 없다. 
또 수행방안으로 제시된 내용을 행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알고보면 수행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좋음이 무량하다. 
현실에서 얻는 최고를 통해 얻는 좋음을 모래 한 알이라면 우주 전체의 모래와 같다. 

오늘 뽑힌 경전은 분량도 적고 내용도  어렵지 않다. 
다만 현실에서 도저히 없을 듯한 내용으로 여기기 쉽다. 

핵심은 부처님이 제시하는 가르침을 얻기 힘들고 
그 내용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이다. 

현실에서 쉽고 편하게 사용하는 것도 사정이 비슷하다. 
라이터나 핸드폰만 놓고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매장에서 파니까 쉽게 얻지만, 
자신의 힘으로 처음부터 그것을 만들어야 한다면, 
몇 백만년이 걸려도 만들기 힘들다. 

부처님의 가르침도 사정이 같다. 
알고보면 이것이 더 얻기가 힘들고 더 중요하다. 

읽어야 할 분량이 매일 읽어도 남을 정도로 많다. 
그래서 싫증이 난다. 
또 읽으면 도대체 무슨 효용을 얻을 수 있는가를 잘 파악하지 못한다. 
내용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무엇때문에 읽고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가 하고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것은 있고 없음을 놓고 
그 상황을 현실에서 지켜보면 쉽다. 
거꾸로 매달려 고문을 당하거나 
축사에 갇혀서 한평생을 보내거나 하면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 

경전이 많고 수행방안도 대단히 많다. 
따라서 어떤 경전부터 읽고 
어떤 수행부터 해나갈까를 의문시할 수 있다. 

일단 첫 문장을 쓰고 나니 
상당히 많이 나아갔다. 
날씨가 상당히 무덥기에 
조금만 작업해도 지친다. 
따라서 조금씩 쉬면서 이어나가기로 한다. 

많이 쉬면서 글을 적는데 
마치 1000 M 정도 달리고 나서 
글을 적는 것처럼 많이 지친다. 

요즘은 예약기능을 사용한다. 
그런데 중간에 쉬면서 
노래를 하나 뽑아 올리는 과정에서 
함께 경전이 뽑히게 된다. 
이를 예약일자에 올려 놓기 때문에 상당히 시간이 걸린다. 



큰 의미는 없지만, 
같은 내용만 반복하면 
글 쓰는 본인부터 지치게 되므로 조금 바꿔 보려고 한다. 

최근 몸이 아파 잘 움직이지 못할 때 
인터넷에서 다양한  SNS 에 가입해서 
이곳 저곳 돌아다니면서 쓸데없는 잡담을 도배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위와 관련된 내용도 상당히 길게 적었었다. 
그 부분을 붙이는 것이 편할 것 같다. 





문서정보 ori http://buddhism007.tistory.com/5040#1866
sfed--불설묘색왕인연경_K0496_T0163.txt
sfd8--불교단상_2562_07.txt ☞◆vazn1866 
♣0496-001♧
θ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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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Salvador-Dali-the-garden-of-hours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Clematis_'Dr._Ruppel'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Perito_Moreno_Glacier_Patagonia_Argentina_Luca_Galuzzi_2005



♥Dawson Creek ,British Columbia Canada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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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Colin_Campbell_Cooper_-_Columbus_Cir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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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o Abiseo National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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