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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2-12-22_도행반야경_001 본문

과거조각글/불기2562(2018)

불기2562-12-22_도행반야경_001

알 수 없는 사용자 2018. 12. 22. 13:08



®

● 오래된 글은 각 부분 링크 등이 깨져 있을 수 있습니다.
깨진 경전 링크, 사진, 음악, 동영상 등의 링크는 일일히 수정하기 어렵습니다.
이들은 페이지를 새로 편집해 다음 페이지로 옮깁니다.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18/12/k0006-t0224-001.html

● 기타 경전 관련 연구내용이나 조각글 단상 내용 등은 본 페이지와 분리합니다.
그리고 표현을 교정하고, 제목을 붙여, 다음 클라우드내 별도 텍스트파일로 따로 보전하기로 합니다.

경전관련 내용 구글드라이브 - 공개용 폴더 https://drive.google.com
개인 조각글 내용 - 구글드라이브 - 공개용 폴더 https://drive.google.com

현재 파일은 수정작업을 생략하고, 되도록 처음 작성한 상태 그대로 보전하기로 합니다.
● 재편집 기본 사항 안내 참조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6/01/past-posts-editng.html
수정일 불기2570-01-21


K0006

T0224

도행반야경 제1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도행반야경_K0006_T0224 핵심요약

더보기

♣0006-001♧
도행반야경 제1권_핵심


불기2562-12-22__001
Kerredine Soltani - Elle Ne Me Voit Pas
Le Forestier - Ballade Pour Un Traitre (Maxime Leforestier Live)
http://buddhism007.tistory.com/5300
● [pt op tr] fr sfed--도행반야경_K0006_T0224.txt ☞도행반야경 제1권

 

♣0006-001♧

♧도행반야경 제1권

지루가참(支婁迦讖) 한역 
1. 도행품(道行品)  
 




 


================
[아래 부분 불기2570-01-21-표현교정및 재수정]
================


😊♦질문하고 답하며 읽는 습관과 수행

경전에는 부처님과 제자의 질의와 답변이 이어진다.
또는 부처님과 하늘 사이에서도 질의와 답변이 이어진다.
그런데 이를 생각없이 그냥 읽는다고 하자.
그러면 초점을 잃기 쉽다.

그래서 경전에서 어떤 질문이 제기된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질문을 하는 입장과 일단 같은 입장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그런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대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다시 그에 답을 해보려 노력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홀로 대론 토론을 진행해 볼 수도 있다.

그래서 다음이 문제된다.

경전 각 부분에서 일정한 문제가 제기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자신이라면 그에 대해 답을 잘 할 수 있는가.
또 그 답이 부처님의 답과 일치하는가.

만일 다르다고 하자.
그런 가운데 자신의 답과 경전의 차이를 살펴본다.
그런 경우 어느 내용이 더 올바르고 옳은가.

그래서 무엇이 좀 더 올바르고 옳은가를 깊게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 결론적 내용을 또 스스로 간단히 정리한다.
그리고 키워드로 줄인다.

한편 해당 내용이 제시된 경전명과 품명 등이 따로 있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경전제목 등에 묶어 기억해도 된다.

그러면 경전에 일종의 도로명 주소가 확보된다.
도로명 주소의 장점은 다음이다.
어떤 곳을 찾아갈 때, 쉽게 장소를 찾아가게 한다.
그리고 길 안내도 쉽게 할 수 있다.

또 경전 게송도 그처럼 자신이 제시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전문수행가를 '지향'하는 입장은 이런 훈련이 필요하다.

다른 이에게 이런 내용을 소개해주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 출전 경전과 품명을 제시해준다고 하자.
그러면 상대에게도 훨씬 도움이 된다.

😊♦ 여러 판본으로 된 경전의 사정

반야경전에는 다양한 버전이 있다.
『대반야바라밀다경』
『마하반야바라밀경』
『소품반야바라밀경』
『광찬반야바라밀경』 등이다.

지금 살피는 도행 반야경도 마찬가지다.

이런 경전 가운데 어느 경전을 한번이라도 본 경우라고 하자.
그런 경우는 서로 비슷한 내용을 전에 본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경전 내용이 각 경전마다 중복된다.

그러면 이 가운데 어느 하나만 취하고 나머지는 모두 생략할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여러 판본이 지금 전해지고 있는가.

여기에는 사정이 있다.
만일 내용이 완전히 같다고 하자.
그래서 다른 판본이 필요없다고 하자.
그러면 오래 전에 그처럼 해놓았을 것이다.

물론 이들 여러 판본은 어느 정도 내용이 비슷하다.
하지만, 그 차이를 또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각기 다른 형태로 남아 있게 되었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언어와 불가득 공

경전에 다음 내용이 나온다.

...
어떤 보살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어떤 보살도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끝내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보살의 반야바라밀이라고 할 것이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보살은 결코 볼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있는 곳도 없습니다.
그리고 끝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대상을 향하여 반야바라밀을 설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까닭에 단지 글자만을 일컬어 보살이라고 말할 뿐입니다.

이와 같이 글자와 모양은 원래부터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글자의 모양 또한 원래부터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가리켜 본래의 의미라고 하겠습니까?
그리고 뉘라서 글자의 의미만을 가지고 근본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본래의 의미에서 생겨난 의미에도 원래부터 모양이 없습니다.
그런데 무슨 까닭에 인식함을 "붙잡을 수 있다"고 합니까?

** [- 참고로 이 부분은 번역본에 '붙잘을 수 없다'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원문은 生意是無形。何因是識? 이다.
이를 볼 때 붙잡을 수 있다고 '합니까?'라고 번역해야 할 듯 하다. ]

근본에 이르러도 역시 붙잡을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무슨 까닭에 인식함이 있다고 합니까?

이와 같이 모든 존재의 모양에는 원래부터 근본이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근본이 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존재도 이를 지어낸 이가 없습니다.
그리고 근본이 없습니다.
본래부터 근본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마땅히 무엇에 근거하여 반야바라밀을 설할 수 있겠습니까?
『도행반야경』 1. 도행품

보살은 반야바라밀에 어떻게 머물러야 합니까?"
『도행반야경』 2. 난문품


이런 질문을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조금 답하기 어렵다.


- 현실문제와 반야바라밀 수행의 관계

다음과 같은 현실 문제를 놓고 이 반야바라밀 문제를 살펴보기로 한다.

인터넷 뉴스란에서 몇 사건을 발췌해왔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원청 하청 구조로 죽음에 내몰린다.
비정규직은 생존과 경제 능력면에서 취약하다.
그래서 비정규직은 교섭능력이 약한 층이다.

그래서 기업은 이들에게 임금이나 신분보장은 적게 한다.
힌퍈 기업활동에서 위험성이 높은 분야가 있다.
그래서 정규직은 꺼리는 분야가 있다.
이런 부분을 떼어낸다.
그리고 이를 비정규직에게 넘긴다.
그런 사정으로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힌다.

그외 다음 기사도 있다.
인터넷에서마약을 판매한다.
이런 기사다.

요즘 아이나 어른이나 핸드폰에 중독되어 있다.
philo - phone 문화라고 할 수 있다.
핸드폰에서 각종 게임이나 동영상 등이 기승을 부린다.

이런 내용도 적절하면 좋다.
그런데 어느 것이나 심하다고 하자.
그러면 부작용이 문제된다.

밥도 죽을 때까지 먹는다고 하자.
그러면 죽게 된다.
그래서 사정은 마찬가지다.

반대로 마약도 적절하게 사용된다고 하자.
그러면 효용을 갖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심한 수술을 받는 경우다.
또는 불치병으로 극심한 통증을 겪는 경우다.
이런 경우는 마약이 오히려 필요한 약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경우라고 하자.
그러면 부작용이 문제된다.
마약은 부작용이 특히 더 심하다.
그런데 이를 인터넷으로 판매한다.

그런 경우 인터넷을 폐쇄시켜야 하지 않을까.
기사 제목만 보고 내용을 억측하면 곤란하다.
하지만, 대강 이런 문제가 있다.

또 중독 문제의 하나가 있다.
현실에 음주나 알콜중독 문제가 있다.
그리고 음주 운전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된 사건기사가 있다.

한편 미세 먼지기사도 있다.
과거 40 년전에도 공기도 좋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더 심하다.
이런 추세라고 하자.
그러면 흡연을 굳이 문제삼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
이런 취지의 기사가 있다.


참고로 이 페이지는 시사 논의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경전내용이 무슨 의미인가를 파악하려는 것이 목표다.
단지 이런 현실 내용을 배경으로 놓고 경전의 의미를 살피려는 것이다.



- 생사현실의 온갖 문제와 그 실재를 얻을 수 없음의 관계

수보리 존자는 이렇게 주장한다.

글자와 모양은 원래부터 있지 않다.
어떤 존재도 이를 지어낸 이가 없다.
그 근본이 없다.

본래부터 근본이 있지 않다.
그런데 마땅히 무엇에 근거하여 반야바라밀을 설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문제를 제기한다.

세상에 온갖 현실문제가 있다.
일반적으로 뉴스에 사건들이 보도된다.
그런 경우 이런 사건들을 심각하게 여긴다.
그래서 한없이 논의해야 할 상황이다.

그런 구체적 현실 문제의 당사자라고 하자.
그런 입장에서 이런 내용을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일반적으로 이런 내용에 공감하기 힘들다.
그런 경우 다음처럼 여기게 된다.

그런데 수보리존자는 다음처럼 전제한다.

그런 것이 원래 부터 없다
이렇게 전제한다.
일반적 입장에서 이런 주장은 대단히 이상한 주장이다.
그래서 이처럼 여겨진다.
수보리 존자는 현실의 구체적 문제들을 잘 파악하지 못한 듯 하다.

그런데 수보리존자는 여하튼 그런 입장에서 다시 다음 문제를 제시한다.

그런 바탕에서 어떻게 반야바라밀을 설할 수 있겠는가?



- 반야바라밀의 기본적 의미

도대체 반야바라밀이 무엇인가.
그리고 어떤 사정으로 수보리 존자는 이렇게 문제를 제기하는가.

우선 반야바라밀이란 쉽게 말한다고 하자.
그러면 지혜를 뜻한다.
그런데 대단히 넓고 대단히 깊은 지혜를 가리킨다.

그래서 단순히 지혜로만 표현한다고 하자.
그러면 일반적인 지혜로 오해한다.
그래서 세속에서 각 분야 최고 전문가가 망집을 기초로 갖는 지혜로 오해한다.
예를 들어 각종 백과사전에서 제시하는 내용과 같은 지혜로 오해한다.
그러므로 이처럼 다르게 표현한다.

또는 다음처럼 구분한다.
수행자가 생사현실에서 닦는 방편지혜는 분별지이다.
그리고 반야지혜는 그런 분별지혜를 초월한 무분별지다.
이렇게 구분한다.
그래서 반야는 생사를 벗어난 상태로 건널수 있게 하는 깊은 지혜다.
즉, 피안으로 건너게 하는 깊은 지혜다.

그리고 그런 깊은 지혜를 닦아 생사를 벗어나는 것을 반야바라밀이라고 표현한다.
또는 그렇게 되기 위해 그런 지혜를 닦는 수행을 반야바라밀이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이 반야바라밀이 중요하다.
그런데 반야바라밀로 현실을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다음과 같이 보게 된다.

언어표현, 글자나 모양, 성품을 얻을 수 없다.
그리고 수행자, 수행행위도 얻을 수 없다.
이처럼 보게 된다.



- 수보리 존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

수보리 존자는 다음처럼 전제한다.
언어표현, 글자나 모양, 성품을 얻을 수 없다.
그리고 수행자, 수행행위도 얻을 수 없다.
이처럼 보게 된다.

그러니 그런 바탕에서 다음과 같이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도대체 어떻게 반야바라밀을 설할 수 있는가?
이렇게 문제를 제기한다.

그래서 다음을 생각해봐야 한다.
그래서 과연 그런가?
또 그렇다면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
이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현실사건을 배경으로 놓고 살펴야 한다.

왜냐하면 다음 사정 때문이다.
이런 논의는 현실의 생사고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생사고통과 생사의 묶임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다.
이에 취지가 있기 때문이다.

즉, 이 논의는 다음을 취지로 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지적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즉, 단순히 형식적으로 문제를 논의하려는 것이 아니다.
전제가 이렇다고 하자.
그러면 어떤 결론이 참인가.
이런 형태로 관념상 추상적으로 내용을 살피려는 취지가 아니다.

이런 논의를 통해 생사현실에서 고통을 벗어나게 해야 한다.
이런 목표를 위한 것이다.

그래서 현실에서 수많은 고통을 호소하는 현실 사건들을 배경으로 놓는다.
그런 가운데 경전내용을 살핀다.
이런 경우 이 논의의 의미가 있다.



mus0fl--Etienne Daho - Week-End À Rome.lrc





현실 사건 사고를 대표적으로 다음처럼 제시해보자.

현실에서 종이를 불로 태우면 연기와 재가 나타난다.


그런데 이런 인과 관계에서 종이부분에 대단히 소중한 보물을 넣는다.
또는 연기와 재 부분에 치명적인 독을 넣어보자.
그래서 이렇게 가정해보자.
현실에서 귀중한 보물은 불타 없어진다.
그리고 이로 인해 치명적인 독이 생겨났다.
이렇게 가정해보자.
그런데 현실 사건 사고 대부분은 다음 내용으로 압축된다.


그런데 수보리 존자는 이런 이해를 망집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주장하는 입장이다.

즉, 그런 것을 일체 얻을 수 없다.
본 바탕에서는 이런 생사고통을 얻지 못한다.
그런데 망집에 빠져 그런 것이 현실에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업을 행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무량하게 생사고통을 받는다.

그런데 망집을 일으킨 경우라고 하자.
그런 경우 수보리존자가 제시한 위 내용을 이해를 못한다.

수보리 존자는 이렇게 제시한다.

망집을 일으킨 경우 다음과 같다.

본 바탕에서는 이런 생사고통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망집을 일으킨다고 하자.
그래서 무명 어리석음과 망상분별에 바탕한다.
그러면 그에 바탕해 다음처럼 잘못 여긴다.
그런 생사고통의 내용이 그처럼 있다.

자신이 대하는 것의 본 정체나 인과도 모른다.
또 그 가운데 무엇이 진정 좋은가도 잘 모른다.
그리고 그런 좋음을 얻는 방안도 잘 모른다.
그런 가운데 삶에 임한다.

그래서 집착을 일으킨다.
그런 가운데 업을 행한다.
즉, 그런 바탕에서 악업을 행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무량한 생사고통을 겪는다.
그리고 한 순간도 그런 망집을 벗어나오지 못한다.
그래서 무량겁에 걸쳐 그런 상태로 생사고통을 받아나간다.


본 바탕에서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상하게도 망집을 일으킨다.
그리고 대부분 다음처럼 여긴다.
현실에 그런 내용이 있다.
현실의 어느 한 단면에서나 사정이 그렇다.

그래서 다음부터 살펴야 한다.
이 두 입장 가운데 어떤 입장이 옳은가

그런데 이에 대해서는 중복 서술을 피하고 링크로 연결한다.

참조부분 ■■■
●연기와 재가 불로 인해 나타난다는 망집을 이해하는 5 가지 방안들의 기본골격
http://buddhism007.tistory.com/4629#034
http://buddhism007.tistory.com/4629#034

sfed--결정비니경_K0035_T0325.txt
sfd8--불교단상_2562_06.txt ☞ ☞●연기와 재가 불로 인해 나타난다는 망집을 이해하는 5 가지 방안들의 기본골격
----


링크부분을 살핀다.
그런데 설명이 불충분하다.
그리고 길다.

그러나 위 링크를 통해 다음을 살필 수 있다.

현실에서 판단하는 내용이 전도된 망상분별이다.
그런 사정을 대강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는 그런 내용을 바탕으로 다시 다음을 살핀다.
누군가가 경전에서 수보리처럼 질문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에 대해 어떤 답이 가능한가.
이런 문제를 살피기로 하다.

>>>

수보리 존자는 대략 다음처럼 제시한다.
...

어떤 보살도 찾을 수가 없다.
그리고 어떤 보살도 있지 않다.
따라서 끝내 볼 수가 없다.

글자와 모양은 원래부터 있지 않다.
글자의 모양 또한 원래부터 있지 않다.
...
근본에 이르러도 역시 붙잡을 것은 없다.

...
모든 존재의 모양에는 원래부터 근본이 있지 않다.
근본이 없이 펼쳐져 있다.
...
어떤 존재도 이를 지어낸 이가 없다.
근본이 없다.
본래부터 근본이 있지 않다.


이렇게 제시한다.

이런 경우 이 내용을 형식적으로 본다고 하자.
그러면 대략 4,5 가지 답이 가능하다.

[1] 가장 단순한 방식은 다음이다.

사정이 그와 같다.
사정이 그러니까 더 설할 수 없다.
그만 마치자.
일체 말하지 말자.
그리고 일체 말하지 않는다.

이런 입장을 우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수보리 존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사정이 그렇다고 제시한다.
그러면서도 언설로 일정 내용을 표현해 제시한다.
그래서 위 입장은 아니다.



이제 수보리 존자와는 극단적으로 반대되는 입장을 생각해보자.
이럴 때 다음처럼 생각하는 입장이 있을 수 있다.


현실에서 살피는 그 일체내용은 실답게 있다.
그리고 그 근본도 있다.
그리고 일정한 내용을 언어로 표현할 수도 있다.
이렇게 주장하는 입장이 있을 수 있다.


여기서 수보리 존자입장을 S 라고 표시한다.
그리고 반대 입장은 T 라고 표시하자.

그런 가운데 다시 각 입장을 좀 더 벌려 세울 수 있다.

우선 수보리 존자와 같은 입장을 생각해보자.
그래서 일체의 글자나 모양을 본래 얻을 수 없다.
이러한 입장에서는어떤 경우들이 가능한가.



[2] 일체 글자나 모양을 본래 얻을 수 없다.

그러한 입장에서 다음을 검토해보자.
수보리존자처럼 주장하는 입장이 우선 하나 있다.
그런데 이와 달리 엉뚱한 주장을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경우는 서로 어떤 차별이 있다고 볼 것인가.

이런 문제부터 검토해보자.

일체 글자나 모양을 얻을 수 없다고 하자.
그러면 이런 두 경우도 차별을 얻을 수 없다
그런 내용은 본래 다 차별없다.
그리고 또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S 주장이나 T 주장도 마찬가지로 차별을 얻을 수 없다.
그렇다면 S 주장처럼 말하거나, T주장처럼 말하거나, 아무 관계없다.
다 무방하다.
그리고 결국 어떤 주장도 별 차이가 없다.
따라서 무언가를 설하는 것도 가치나 의미가 없다.

이렇게 여기는 입장을 생각할 수 있다.



[3] 그런데 다시 다음 입장을 생각할 수 있다.

수보리 존자의 입장을 긍정한다.
그런 경우에도 다시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다.

S 주장이나 T 주장이나 본래 차별이 없다.
그런데 S 주장은 T 와 다른 측면이 있다,.
이렇게 내세우는 경우다.
그런 내용이 있다고 주장한다고 하자.
그러면 또 그런 부분때문에 S 주장은 T와 다르다.
그래서 그 의미와 가치가 있다.
또 그런 사정 때문에 반야바라밀다에 대해서 설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입장도 있을 수 있다.





한편 처음부터 S와는 반대되는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을 T라고 표시하기로 했다.
이런 경우는 다시 어떤 경우들이 가능한가.

[4] 우선 가장 간단하게 다음 입장이 있을 수 있다.

S 입장은 엉터리다.
그리고 T 자신 입장이 옳다.

이렇게 제시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도 다시 다음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5] 우선 다음처럼 생각할 수 있다.

S 는 얻을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렇게 주장하면서도 다시 그런 주장을 언어로 표현한다.
그래서 그런 언설 자체를 행한다.
그런데 이는 바로 그런 내용이 그렇게 '얻을 수 있기에' 본래 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잘못) 여길 수 있다.
그렇게 본다고 하자.
그러면 이는 처음 S 의 주장과 어긋난다.

즉, S 는 '그런 언어를 얻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 그런데 S 가 그런 내용을 언어로 표현했다.

그래서 앞 뒤가 서로 모순된다고 보게 된다.
그러면 S 는 자체적으로 잘못된 주장을 한 것이 된다.
그래서 T 가 옳다고 본다고 하자.
그러면 이 경우는 넓게 [4]의 입장에 포함된다.

그런데 사정이 그러함에도 다시 조금 다르게 입장을 취할 수 있다.

즉, 일체를 얻을 수 없다.
이 내용은 옳다.
그렇지만, 그런 내용을 제시하는 그 내용만은 그렇지 않다.
이렇게 조금 달리 입장을 취할 수도 있다.
즉 그런 내용을 제시한 그 부분만은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실답다.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다.

좀 더 자세히 살피면 더 복잡할 수 있다.
하지만, 일단 이와 같이만 경우를 나누어 보기로 하자.
그리고 어떤 결론이 적절한가를 생각해보자.









mus0fl--Guesch Patti - C'est !omme Ca.lrc





수보리 존자가 제시한 내용과 관련해 가능한 5 가지 입장을 앞에 제시했다.


그런데 수보리 존자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우선 다음 문제가 있다.
수보리 존자가 제시한 내용은 언어나 언설인가 아닌가?

이런 문제에 대해 수보리 존자는 다음처럼 답할 수 있다.

"그렇다.
이렇게 말로써 질문하거나 답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현실에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 내용을 자신이 제시한다.

따로 입을 다물고 침묵하는 상태를 놓고 말이 없다고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질문하고 답하는 현실 자체에 그런 말이 본래 없다
이와 같이 제시한 것이다.

그런 가운데 언어로 표현한다.
이는 그처럼 표현하는 부분만은 무언가 얻을 것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리고 어차피 일체가 다 얻을 것이 없다.
그래서 또 아무렇게나 언어로 표현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뜻이 아니다.
어차피 일체가 다 얻을 것이 없다.

그러한 가운데 무언가를 언어로 표현한다.
이는 다음 취지다.
그런 언어표현을 통해 그런 사정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그런 언어 방편[시설]의 의미다"

이처럼 제시할 수 있다.


위 입장을 먼저 잘 살펴보자.

언어를 본래 얻을 수 없다.
이는 수보리 존자의 말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이의 말도 그렇다.
그리고 더 나아가 만화와 같은 엉터리 대사도 마찬가지다.

어떤 것만 특별히 그런 것이 아니다.
일체가 그렇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바탕이라고 하자.
그러면 이렇게 제시하거나 저렇게 제시하거나
그런 측면에서는 모두 차이가 없다.

사정이 그렇다고 하자.
그러면 이것이나 저것이나 무방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위 상황에서
T 처럼 반대내용을 제시한다고 하자.
또는 만화처럼 엉뚱한 내용을 제시한다고 하자.
그래도 괜찮은가.
그렇지 않다고 해야 한다.

그렇다면 다시 다음처럼 생각할 수 있다.
비록 언설에 얻을 바는 없다.
그래도 각 언설은 그 내용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이렇게 보게 된다.

즉, 처음 수보리 존자가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 측면이 있다.
이런 측면에서는 차별이 없다.

그렇더라도 현실에서 망집을 일으켜 대하는 현실 측면이 다시 있다.
그리고 이런 측면에서는 다음 차이가 있다.
수보리존자가 제시한 내용은 그런 망집을 제거해준다.
그렇지 않은 다른 주장은 그런 망집을 증폭시킨다.
이러한 차이가 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본 바탕에서는 어느 경우나 차별을 얻을 수 없다.
하지만, 생사현실에서는 망집을 제거하거나 못하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방대한 경전내용은 그런 취지에서 제시되는 것이다.
그리고 수행도 그런 취지를 잘 이해한 가운데 실천해가야 한다.
이렇게 이해해야 한다.



mus0fl--Michel Berger - Ca La Fait Pleurer Pour Un Rien.lrc





수보리 존자가 제시한 내용과 관련한 5 가지 입장을 앞에서 대략 살폈다.

그런데 다시 다음을 살펴보자.
이들 각 입장은 수행에서 어떤 차이가 있게 되는가
이 문제를 다시 살펴보자.


[1] 설할 것이 본래 없다.
그러니까 그만 일체 언설을 행하지 말자
이런 입장이 있다.

그런데 이 입장은 어떻게 보면 아라한의 입장과 비슷하다.
즉 다음처럼 생각한다.

현실에는 생멸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본래 그런 것은 얻을 수 없다.
본 바탕 실재 진여는 본래 그런 것을 얻을 수 없다.
현실은 망집에 바탕해 일으켜 얻는다.
그리고 하나같이 실답지 않다.
그리고 생사고통을 가져다 준다.

따라서 현실에서 얻는 내용은 망집을 일으키는 재료가 된다.
그래서 감각현실이나 관념분별이 모두 망집을 일으키는 재료가 된다.
따라서 이들 내용 자체를 모두 제거해야 한다.
더 나아가 그런 내용을 일으키는 망식(마음)까지 모두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회신멸지의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
그래서 이런 상태를 수행의 목표상태로 내세울 수 있다.


이는 다음 입장이다.
현실에서 자신의 신체라고 여기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지식이나 지혜로 여기는 내용들이 있다.
이들을 모두 남김없이 재로 만들고 제거한다.
그래서 무여열반에 든다.
이런 상태를 목표로 한다.



[2]
일체는 차별없이 얻을 것이 없다.
따라서 S 의 입장이던 T 의 입장이던 그 모든 것이 무방하다
이런 입장을 또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입장은 다음이다.
실재의 측면에서 보면 현실 일체가 다 차별없이 공하다.
이런 입장이다.
이런 입장이 잘못은 아니다.

그런데 이를 현실 수행부분에 잘못 적용한다고 하자.
그러면 다음처럼 주장하기 쉽다.


즉, 현실 일체가 본 바탕에서 차별없이 그 내용을 얻을 수 없다.
사정이 그러하다.
그러므로 현실에서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또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무방하다.
그래서 이렇게 하거나 저렇게 하거나 다 무방하다.
또 선도 얻을 수 없고 악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원래 망집에서 행하던 행위를 계속 해도 무방하다.
또는 오히려 이전보다 더 심하게 악행을 해도 무방하다.

또 수행을 하더라도 다음과 같이 수행을 해도 무방하다.
즉 그런 수행으로 인해 무언가 얻을 바가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집착을 갖는다.
그런 가운데 수행을 한다.
그래도 관계없다.

이렇게 여기기 쉽다.
그리고 현실에 임하기 쉽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아무렇게 행한다.
그리고 이렇게 임하는 것을 수행으로 여기기 쉽다.

즉, 다음처럼 이해한다.
차별없이 공하다.
이런 내용이 현실에서 그런 수행 방향을 제시한다.
이처럼 이해한다.

그런 입장을 관철한다고 하자.
그러면 앞과 같은 문제가 제시될 때도 다음처럼 여기기 쉽다.
'물이 쇠보다 단단하다'고 제시한다고 하자.
이는 현실에서 전혀 엉뚱한 내용이다.

한편, '모든 것이 실답다'고 제시한다.
또는 실상이 공하지 않다.
그래서 실재 본 바탕에서는 현실과 같은 내용을 그대로 얻을 수 있다.
현실 내용은 따라서 실다운 것이다.
또 현실내용은 참된 실체를 갖는 참된 내용이다.
이렇게 주장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는 실재와 관련해 잘못된 판단이 된다.
그리고 이런 주장은 사실 T의 입장이다.
그래서 원래 수보리 존자의 입장 S와 일치되지 않는다.
그래서 수보리 존자 입장에서 이런 주장은 사실은 엉터리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다시 그렇게 주장해도 무방하다.
이처럼 여기기 쉽다.

이는 결국 다음 입장이 된다.
일체가 그 본바탕 실재진여는 차별없이 공하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여긴다.
그런 사정으로 현실에서 아무렇게 행해도 다 무방하다.
또 아무렇게 말해도 다 무방하다.
이렇게 여기는 입장이 된다.

그런데 이렇게 임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이는 생사현실에서는 더 심한 생사고통을 겪게 된다.
차별없이 공한 바탕에서 그런 생각과 업으로 생사고통을 더 심하게 겪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악취공견의 입장이라고 칭하게 된다.


[4] 다음 입장이 있다.
다음처럼 여긴다.
수보리존자가 제시한 내용은 자체적으로 엉터리다.
그리고 반대로 현실에서 일체는 실답게 있다.
이렇게 여긴다.

이런 입장은 결국 외도의 입장이다.
즉 불교 외 사상가들의 입장이다.

물론 여기에는 다양한 입장이 있다.
즉 각 주체의 망집의 내용에 따라 그 주장이 다양할 수 있다.

그런데 다음이 공통점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러한 점이 공통점이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결국 불교에서 제시하는 수행방안을 실천하지 않는다.
그래서 불교가 제시하는 수행목표도 성취하기 힘들다.
이렇게 간단히 제시할 수 있다.

[5] 한편 다음 입장도 있다.

T의 입장과 같지는 않다.
그래서 일체가 실답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즉 이렇게 여긴다.
일체는 실답지 않다.
그런데 다시 다음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부처님이 설한 내용만은 옳다.
그리고 부처님이 설한 내용은 실답다.
그래서 여기에는 실다운 내용이 있다.
이처럼 여기는 입장도 있다.

예를 들어 부처님이 다음 내용을 제시하였다.
일체는 무상하다.
일체는 고통으로 귀결된다. 따라서 일체는 결국 고통이다.
일체는 참된 실체가 없다. 그래서 무아 무자성이다.
열반은 적정하다.
일체가 공하다.

그리고 현실은 연기관계를 통해 나타난다.
그리고 수행을 위해서는 이러이러한 계 정 혜의 수행방안을 취해야 한다.
이렇게 제시한다.

그래서 부처님이 이런 내용을 제시했다고 하자.
그러면 이와 반대되는 주장은 옳지 않다.
그리고 실답지 않다.
그러나 이런 부처님의 주장은 이와 사정이 다르다.
그래서 이런 부차님의 주장은 옳다.
그리고 실답다.
즉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실답다.
이렇게 여기는 입장이 있을 수 있다.


불교내 각 학파별로 조금씩 입장이 다르다.
그런데 불교내 설일체유부나 경량부의 입장이 이에 준한다.

부처님이 일체가 무아 무자성 공하다라고 제시한다.
이러한 가르침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만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실답다.
이렇게 이해하는 입장이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른다.
그래서 세속에서 가진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한다.

하지만, 다만 부처님이 제시한 내용에 대해서만은 달리 대한다.
즉 사정이 그렇지 않다고 여긴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여전히 세속에서 갖던 망집과 집착을 일으켜 갖게 대한다.
이런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3] 또 다른 입장이 있다.


얻을 것이 본래 없다.
그것은 침묵이나 s 입장이나 T 입장이나 다 마찬가지다.
그리고 엉뚱한 만화 대사까지도 마찬가지다.
즉 일체가 그렇다.
현실에서 무언가 말한다고 하자.
그래도 그런 현실 자체가 사정이 그렇다.

- 이 부분은 처음 [2] 와 같다.

그런데 다음 부분이 다르다.
일체가 차별없이 공하다.
그리고 선도 악도 얻을 수도 없다.
이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것은 본 바탕인 실재 진여의 측면에서 그렇다.

그런데 그런 본 바탕 사정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각 내용을 얻는다.
그리고 현실에서 망집을 일으킨 상태라고 하자.
그런 경우에서는 그런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무언가가 있다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생사고통을 받아간다.
따라서 생사고통을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물론 본 바탕에서는 그런 생사고통 자체를 얻을 수 없다.
그래서 그런 바탕에서는 그런 생사고통을 벗어나라고 요구한 적도 없다.
그래서 수행을 요구한 적도 없다.

다만 생사현실 안에서는 다르다.
본 바탕에서는 얻을 수 없다.
그런데도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즉 감각현실을 얻는다.
그리고 느낌을 얻는다.
그리고 관념 분별을 일으켜 얻는다.
그리고 이들을 재료로 하여 망집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런 기초에서 생사고통을 겪어 나간다.

그리고 이 부분이 문제다.
따라서 생사현실 안에서 그런 생사고통을 제거하려 한다고 하자.
그리고 나아가 생사 윤회 묶임에서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에 대한 망집을 제거해야 한다.

또 그러려면 다음을 이해해야 한다.
즉 본 바탕에서 그 사정이 그렇지 않다.
이런 사정을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이런 사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관련된 내용을 방편상 언어로 제시한다.

이 상황은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침대에 눕는다.
그래서 침대에는 없는 바다나 황금꿈을 꾼다.
이러한 경우와 같다.

꿈속에서 황금을 얻었다.
그러다가 강도에게 뺏긴다.
그리고 꿈을 깼다고 하자.

그런데 침대가 놓여 있는 현실을 놓고 보자.
그런 현실에서는 본래부터 그런 내용 자체를 얻을 수 없다.

그래서 황금꿈을 꾸었다고 하자.
그래도 없던 황금이 새로 생겨난 일이 없다.
그리고 황금을 꿈속에서 뺏겼다고 하자.
그러다고 해도 다음과 같은 일이 본래 없다.
즉 없던 황금이 있게 되었다.
그러가 다시 새삼스럽게 없어졌다.
이러한 일이 현실에 없다.

이런 사정 때문에 다음처럼 제시한다.
꿈은 실답지 않다.
아무리 꿈이 생생해도 마찬가지다.

또 그런 사정을 이해시키고자 한다.

그래서 다음처럼 제시한다.
침대가 놓인 현실이 있다.
이러한 현실은 꿈을 꾸게 된 본 바탕에 해당한다.
그러한 현실에 그런 꿈내용은 본래 얻을 수 없다.

이런 사실을 제시한다.
꿈에서 바다나 황금을 생생하게 보았다.
그렇더더라도 침대가 놓인 현실 사정은 다르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처음부터 그런 것을 얻을 수 없다.
이런 사실을 강조한다.

그래서 꿈에 대한 집착을 제거하게 한다.
그러면 꿈에서의 문제는 좀 더 쉽게 해결한다.
꿈에서 황금을 잃었다.
그렇다고 그것을 심하게 문제삼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현실에서 걱정할 필요도 없다.
또 그로 인해 고통을 겪을 필요도 없다.


그런데 현실에서 겪는 생사고통도 마찬가지다.
그 성격이 꿈과 같다.
그래서 그런 사실을 강조한다.

이는 다음 사정 때문이다.
현실에서 망집에 바탕해 임한다.
그래셔 무언가가 실답게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생멸함이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생사현실에 임한다.
하지만, 본 바탕이 되는 실재를 살핀다고 하자.
그러면 본 바탕에서는 그런 것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이런 본 바탕과 현실을 대조한다고 하자
그러면 다음을 이해하게 된다.
현실이 마치 꿈과 성격이 같다.
즉 침대에서 꾼 바다꿈과 성격이 같다.
즉 현실은 실재 본 바탕(침대)에서는 얻을 수 없는 내용(바다꿈)이다.

이런 사정을 이해시키고자 한다.
그래서 실재의 공함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생사현실은 또 꿈과 사정이 조금 다르다.
현실은 꿈과 같은 성격을 갖는다.
그래서 실답지 않다.
하지만, 그러나 정작 꿈은 또 아니다.

'무엇과 같다'는 것은 다음을 의미한다.
비슷하다. 하지만 그것은 아니다.
이런 의미다.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겪는다.
그런데 이런 고통이 정말 꿈자체라고 하자.
그래서 꿈과 아무 차이가 없다고 하자.
그러면 정말 꿈처럼 그대로 방치해도 관계없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현실은 꿈처럼 실답지 않다.
그런데 또 현실은 꿈과는 다르다.
그래서 꿈과 같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현실은 꿈이다'라고는 표현하지는 않는다.

현실은 실답지 않다.
본 바탕이 되는 영역에서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꿈처럼 실답지 않다.
이런 측면은 꿈과 성격이 비슷하다.

그러나 다음 측면은 꿈과 다르다.

우선 현실 내용은 대단히 생생하고 명료하다.
즉 색성향미촉 법 이런 형태도 다양하게 얻는다.


또 현실 내용은 그 주체뿐 아니라 다수가 함께 얻는다.
그래서 그런 상태에 놓이는 주체가 대단히 많다.
그리고 일정 시간과 상황에서 반복해서 얻는다.

그리고 일정 조건에 놓인다고 하자.
그러면 일정한 내용을 대단히 비슷한 관계로 반복해 얻게 된다.
그래서 물리나 화학법칙과 같은 인과관계가 정연하게 적용된다.

또한 현실은 그 상태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다.

꿈의 경우는 다음과 같다.
꿈을 꾸면서 그것이 꿈임을 자각한다고 하자.
그래서 곧바로 깨어난다고 하자.
그러면 그 사정을 깨어난 후 곧바로 이해할 수 있다.
그 상태에서 곧바로 꿈과 다른 현실을 대하게 된다.
그래서 이를 대조한다.
그래서 꿈이 엉터리임을 곧바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생사과정을 겪는 가운데 실재 본바탕을 여전히 얻지 못한다.
그래서 생사현실이 실답지 않음도 곧바로 깨닫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상태는 무량겁전이나 무량겁후까지 반복된다.

또한 현실 안에서 현실이 실답지 않음을 자각한다고 하자.
즉 현실의 본 바탕이 공함을 뚜렷하게 이해한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서 곧바로 현실을 곧바로 벗어나지 못한다.
또 생사고통의 현실을 곧바로 제거해 없앨 수도 없다.
또 현실을 원하는 형태로 곧바로 변화시켜 낼 수도 없다.
그리고 이미 생래적인 감각이나 생리적 상황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숨을 쉬고 때가 되면 배고픔을 겪어야 한다.
그래서 의지적 정서적 번뇌는 이런 사실의 이해만으로 쉽게 바로 제거하지 못한다. [수혹, 구생기 번뇌]
그래서 현실에 구속되는 측면이 강하다.


이런 점이 꿈과 다른 측면이다.
또 이런 성격 때문에 차이가 있다.
비록 그 하나하나는 실답지 않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내용을 대단히 실답다고 여기고 대하게끔 된다.

그런 사정으로 다음처럼 된다.
즉, 현실 내용은 대단히 실답다고 여긴다.
그래서 그런 망집을 잔류시키게 된다.

물론 그것이 실답지 않다.
현실이 꿈과 다르다.
그래서 실답게 느껴진다.
그래서 현실에서 겪는 생사고통을 그대로 방치하고 외면하기 곤란하다.
이런 점이 꿈과 크게 다르다.
그리고 그 정도만큼 수행노력이 필요하게 된다.
그래서 또 이것이 바로 수행자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된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본 바탕에서의 문제가 아니다.
본바탕에서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또 현실에서 감각현실이나 관념분별을 얻는다.
그래서 이들은 그런 망집을 일으키는 재료가 된다
하지만 그런 재료 자체에는 그런 문제가 본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런 내용을 현실에 얻는다.
그리고 이들 내용을 재료로 망집을 일으킨다.

그렇게 된다고 하자.
그러면 이후 이런 망집을 바탕으로 현실에 임한다.
그리고 그런 기초에서 악업을 행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이후 매순간 생사고통을 무량하게 겪어 나가게 된다.
따라서 이런 기초에서 생사고통을 현실에서 실답게 여기며 겪어 나간다.

그래서 이를 해결해야 한다.
이것이 현실에서 수행이 요구되는 사정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고 하자.
그러면 다음을 이해하는 것이 요구된다.
즉 망집상태에서 얻을 수 있다고 잘못 여기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그 일체를 본 바탕에서는 얻을 수 없다.
그리고 본 바탕은 차별없이 공하다.
이런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사정 때문에 이를 살피는 것이다.
그래서 실재의 공함과 관련해 같은 내용을 취한다.
하지만, 앞과 입장이 달라진다.

즉, 본 바탕이 공하다.
그렇다고 다음처럼 여기지 않는다.
즉 현실을 그대로 방치해도 된다.
이런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생각한다.
사정이 그렇다.
때문에 생사고통은 굳이 겪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그런 생사고통을 그렇게 겪는다고 하자.
그러면 곤란하다.
그래서 본 사정을 잘 관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현실에서 수행을 잘 행한다.
그래서 현실에서 생사고통을 벗어나야 한다.
이렇게 입장을 취하게 된다.

여하튼 현실에서 각 입장이 다르다.
그리고 현실에서 각 입장마다 각기 완강하게 고집한다.





망집을 제거하는 방안이 있다.
그리고 이를 이미 링크로 제시했다.

그런데 사정이 이와 같다.
그래서 그런 방안을 이 상황에 바로 적용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다음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런 다양한 경우가 있다.
그런데 어떤 방안이 효과적이겠는가?
이런 내용을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여담]🎉♦
통상 불어노래만 듣는다.
그러다가 스웨덴 노래도 듣게 된다.

그런데 어차피 듣기 능력이 좋지 않다.
그래서 잘 알아듣지 못한다.
그래서 마찬가지다.
첫부분에 talking away 부분을 the king is away 라고도 듣게 된다.
여하튼 감상은 자유다.





😊♦자신의 분별체계로 부처님의 설법을 잘못 이해하는 과정

Faudel - Je Veux Vivre




앞에서 다음을 소개했다.

일반적으로 갖는 망집을 해소시키는 기본 5 방안이 있다.
이 골격을 소개했다.
즉 다음 부분이다.

●연기와 재가 불로 인해 나타난다는 망집을 이해하는 5 가지 방안들의 기본골격
http://buddhism007.tistory.com/4629#034
http://buddhism007.tistory.com/4629#034

sfed--결정비니경_K0035_T0325.txt
sfd8--불교단상_2562_06.txt ☞ ☞●연기와 재가 불로 인해 나타난다는 망집을 이해하는 5 가지 방안들의 기본골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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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다음을 제시했다.
수보리 존자가 제시하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 생멸을 얻을 수 없다.
있다고 할 것은 명자 뿐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수행을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고 이미 앞에서
이런 내용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5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한편 결정비니경에서 불가득을 이해하는 방식을 또 여럿 소개했다.
1 꿈의 비유
2 각 영역의 대조비교
3 언어시설 방편을 통한 가정적 논의 -
4 언어시설 방편을 통한 귀류 논의
5 실답다고 여기는 가운데 최선을 추구



- 자신의 기존체계에 기초한 이해- 격의 불교의 문제점

부처님이 제시하는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는 입장이 있다.
이를 불교에서는 외도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부처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수행을 하는 입장도 있다.
이런 경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수행한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 입장도 조금씩 차이가 있다.


여기에는 사정이 있다.
부처님이 제시하는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수행에 임한다.

그런데 그 이전에 그가 어떤 상태에 있었는가
이런 개별 사정이 우선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부처님이 여러 가르침을 제시한다.
그런데 그 가운데 일부 내용만 취해 듣는다.
그리고 자신의 개인 사정 때문에 이후 가르침을 듣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일을 했다.
이런 경우도 있다.

또는 이런 경우도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처음 대하기 전까지 자신이 일정한 내용을 익혔다.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대한다.
그런 가운데 자신이 이전헤 따로 익힌 내용을 여기에 덧붙인다.
그런 가운데 자신 나름대로 또 독특한 해석을 행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 외 부처님의 가르침을 대하기 전에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즉, 자신 나름으로 일정한 분별의 체계나 사고의 틀이 확고하게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러한 경우에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만난다고 하자.
그러면 무조건 자신이 기존에 갖고 있던 체계에 억지로 넣어 해석한다.
그리고 기존 사고 체계에 맞추어 이해한다.
그리고 부처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를 격의불교라고도 표현한다.

예를 들어 이런 경우다.
부처님이 일체가 공하다라고 제시한다.
이런 경우 처음에 다음이 문제된다.
여기서 공이란 무슨 의미인가?
이런 내용이 문제된다.

그런데 어떤 이가 다음과 같이 그전에 생활해 왔다.
즉 무언가가 있다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있지 않다면 없는 것이다
이처럼 2 분법상으로만 분별을 행해 왔다고 하자.
그런데 이제 공하다는 표현을 대한다.

그래서 우선 그 의미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
이런 경우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것이 무언가가 있지 않다는 내용이라고 하자.
그러면 곧 그것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공을 곧 무라고 여긴다.
즉 자신이 기존에 이해하던 '무'라는 관념이 있다.
이 내용에 억지로 끼어 넣는다.
그런 가운데 공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img2-49] [그림] - 이하 아래 부분은 현재 [작성, / 표현교정, 수정, 보완/ 문단 재배치 순서 정리 등 ] 작업중입니다. -
작업 시점 2563_1223_025705

😊♦- 방편적 설명으로 내용을 잘못 이해하는 사정

자신의 체계로 어떤 내용을 잘못 끼워 맞춰 이해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사례로 격의 불교가 있다.

그런데 이는 다음 현상과 관련된다.
헬리콥터를 한번도 보지 못한 아이가 있다.
이 아이에게 헬리콥터를 설명해주려고 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헬리콥터는 헬리콥터다라고 설명한다고 하자.
그러면 아이가 알아듣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경우 상대방 아이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살펴본다.
그래서 아이가 잠자리나 나비나 비행기는 알고 있다고 하자.
그러면 헬리콥터란 잠자리 비슷한 비행기다.
이렇게 방편을 사용해 제시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이다.
이 아이가 그렇게 제시된 내용을 그대로 집착한다.
그래서 헬리콥터란 잠자리 비행기라고 관념을 형성한다.

그러한 경우 나중에 진짜 헬리콥터를 대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도 이것이 헬리콥터라고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경우가 발생한다.

왜냐하면 그 아이 임장은 다음과 같다.
즉 아이가 볼 때 헬리콥터는 전혀 잠자리와 비슷하지 않다.
그래서 이것이 어떻게 잠자리 비행기일 수 있는가.
이렇게 이해하기 쉽다.
그리고 이것이 격의 불교가 갖는 현상이다.



2570-0115#

😊♦ 번역과정에서 발생하는 잘못된 끼어 맞추기식 이해

외국어 번역과정에서도 이런 현상이 쉽게 발생한다.

언어학상 다음 현상이 있다.
어떤 한 외국어 단어가 갖는 의미가 여러가지다.
한 단어가 갖는 의미를 함의라고 칭한다.

그런데 다른 외국어 단어에서 함의가 완전히 일치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런데 이것이 번역과정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한 외국어 단어가 갖는 의미와 그대로 일치하는 자국어 단어를 발견하기 곤란하다.

그런 경우 어떤 외국어의 의미가 과연 무언가가 문제될 수 있다.
이 경우 이미 자신이 갖고 있는 관념의 틀로 그것을 이해하기 쉽다.
그리고 그것을 고집한다고 하자.
그러면 위와 같은 현상이 쉽게 발생하게 된다.


예를 들어 상(相) 이란 표현을 Lakṣaṇa라고 표현한다.

존재가 문제되는 3 측면을 다음처럼 벌려 세운다.
실상(實相 dharmatā ; dharma-svabhāva) - 상(相 Lakṣaṇa ) - 상(想 Saṃjña)

이 경우에 Lakṣaṇa 란 단어가 사용된다.

그런데 만일 Lakṣaṇa가 처음에 무엇인가를 못 알아듣는다고 하자.
그런 이에게 Lakṣaṇa 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려고 한다고 해보자.

Lakṣaṇa 란 Lakṣaṇa 다.
그리고 Lakṣaṇa 에는 있다는 Lakṣaṇa 와 없다는 Lakṣaṇa 가 있다.
또 Lakṣaṇa 에는 좋은 Lakṣaṇa 와 나쁜 Lakṣaṇa가 있다.
그리고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Lakṣaṇa
그리고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Lakṣaṇa 가 있다.

한편 Lakṣaṇa 란 Saṃjña 와 비슷하다.
하지만 Saṃjña 아닌 것이다.

이렇게 설명하면 끝내 그 의미를 알기 힘들다.

그러면 Saṃjña 는 또 무엇인가 묻는다고 하자.
이 때 Saṃjña 는 Lakṣaṇa와 비슷하다.
하지만 Lakṣaṇa 아닌 것이다.
이렇게 제시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런 설명을 대한 이가 Lakṣaṇa 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
알기 힘들다.
또 Saṃjña 의 의미도 알기 힘들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결국 상대가 이미 이해하는 내용을 바탕으로
이 내용을 모두 설명해야 한다.

그래서 결국 하나의 표현에 가장 가까운 표현을 찾는다.
그래서 이것을 번역해서 설명해 주어야 한다.



😊♦실재의 공함의 언어표현을 통한 잘못된 이해


반야심경을 보면 조견오온개공..이런 표현이 나온다.
그 이후 이 공한 상태에 대해 설명한다.
그 과정에서 [무]라는 표현이 반복제시된다.

그래서 이 표현을 놓고 공을 이해한다고 하자.
그러면 공이란 무를 의미하는 것인가보다 이렇게 이해하기 쉽다.
그런데 사실 공이란 유무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다.
그래서 이렇게 이해하면 무에 치우친 잘못된 입장이 된다.

오히려 불가득이란 표현이 적절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가.
이 사정은 내용을 듣는 상대때문인 경우가 많다.

현실에서 어떤 주체가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런데 그 주체가 관계하지 않는 상태는 어떤 상태일까.
이 본 바탕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이 본바탕과 현실을 대조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현실의 정체를 파악하게 된다.

마치 다음과 같다.
꿈이 꿈의 정체를 파악하려 한다고 하자.
그러면 꿈 아닌 현실 내용을 대한다.
그리고 현실과 꿈내용을 대조한다.
그런 가운데 꿈의 정체를 이해하게 된다.
이와 같다.

그래서 본 바탕의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현실의 정체와 지위를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실재 진여는 자신과 관계하지 않고도 본래 그대로 있다고 할 본 바탕 상태다.
그런 본 바탕은 그런 각 주체와의 관계를 모두 떠난 상태다.

그런데 한 주체는 자신이 관계한 내용만 얻는다.
그래서 실재 진여는 한 주체가 끝내 얻을 수 없다.

한 주체는 그 자신이 관계한 내용만 마음에서 얻는다.
그래서 현실에서 한 주체가 얻는 현실 내용이다.
그 모든 내용은 그 주체의 마음안에 얻어진다.
그래서 마음을 경계로 해서 마음안에 얻어진 내용은 현실 내용이다.
그리고 마음과의 관계를 떠나 본래 그대로 있다고 할 내용이 본 바탕 실재 진여다.

사정이 이러하다.
그러므로 본 바탕 진여는 각 주체가 그 내용을 끝내 얻지 못한다.
그 실재 자체를 밝게 비추어 볼 도리도 본래 없다.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용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체 분별을 행할 수 없게 된다.
즉 있다 없다 등의 분별을 모두 떠난다.
또 같다 다르다 생겨난다 멸한다 깨끗하다 더럽다 등의 분별도 모두 같다.

그리고 언어표현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말을 떠난다.
그러나 또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현실 내용과 일치하는 내용이 있다고 할 것도 아니다.

자신은 분별이나 차별을 세울 수 없다.
그렇다고 하나의 동일한 내용이라고 할 것도 아니다.
서로 다른 내용이라고 할 것도 아니다.

같고 다름을 모두 떠난다.
하나다 여럿이다는 분별을 모두 떠난다.

그래서 분별을 하지 않는다.
또는 침묵한다.
그러나 이는 이를 대할 때 처하는 자신의 상태다.
그런데 자신의 그런 상태가 또 문제삼는 진여 실재 자체도 아니다.

예를 들어 귀머거리는 음악의 도레미파솔라시도 소리를 얻지 못한다.
이 경우 음악소리가 무엇인가가 문제된다고 하자.
그렇다고 자신이 듣지 못하는 상태가 문제삼는 음악소리 자체는 아니다.

정려나 삼매 수행을 하면 평상시와 다른 상태가 된다.
그렇다고 문제되는 실재 진여를 증득하는 것도 아니다.

실재는 본래 분별을 행할 수 없다.
또 그런 사정으로 언설로 표현할 수 없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다고 전혀 언어표현을 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상대가 그 상태를 더 이해하기 힘들게 된다.
그래서 방편상 평소 별 의미를 갖지 않는 공이라는 표현을 방편상 빌린다.
그래서 본바탕은 공하다라고 표현한다.
이는 방편상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이는 다음 의미가 아니다.
본 바탕에서 어떤 성품을 얻는다.
그 성품이 공이다.
이런 의미가 아니다.

이렇게 조금 내용이 복잡하다.

그런데 상대가 공이라는 표현에 담긴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처음 대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가 분별을 떠나는 상태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일단 방편상 무라고 표현하는 사정도 있다.
물론 이는 정확하게 표현하면 유무 양변을 모두 떠나는 것이다.

그런데 상대가 유무 이분법 체계로 임하는 상태라고 하자.
그런 가운데 각 주체는 현실에서는 있다는 분별 때문에 문제가 많이 발생한다.
있다고 여기는 내용에 대해 집착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에 기초해서 악업을 행한다.
그리고 그에 기초해서 생사고통을 겪어 나간다.

그래서 가장 먼저 있다라는 분별을 제거함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러면 집착과 업으로 인한 생사고통을 많이 예방하게 된다.

그리고 반대로 오히려 없다는 분별로는 문제가 덜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를 발생할 수 있다.
다만 그러한 경우는 이후 중생제도를 위한 수행을 할 경우다.
그 경우는 생사현실에서 중생제도를 위해 무량하게 착한 수행을 닦아 나가야 한다.

그런데 실상의 공함은 전혀 없음이라고 치우쳐 분별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런 수행을 외면하기 쉽다.

그러나 보살 수행의 기초단계라고 하자.
그런 경우 처음에는 일단 방편상 있음에 대한 분별과 집착을 제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후 점차 단계를 높여 나가는 방편을 사용하게 된다.


결국 공을 처음 무라고 표현해 설명한다고 하자.
그것은 앞과 같은 사정 때문이다.

이는 처음 공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에게 공을 이해시키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공을 공하다라고만 설명한다고 하자.
그러면 상대가 못 알아듣는다.

물론 공함은 무언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또 그렇다고 a 란 것이 있다고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무언가가 있다고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그리고 집착을 갖는다.
그래서 생사고통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일단은 다음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즉, 실상의 상태가 현실 내용과 같은 것이 아니다.
이런 측면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를 제시하고자 무라는 표현을 방편상 사용한다.
그래서 처음에 그 내용을 이해시키는 방편이다.





그런데 처음에 그렇게 공에 대해 이해를 시작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 측면은 좋다.
하지만, 이 언어표현을 다시 고집한다고 하자.
그러면 또 이후 그 부작용이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 기초 이해가 충분히 된다고 하자.
그러면 이후에는 다시 이 부작용을 제거하는 추가노력이 또 필요하게 된다.
그래서 오히려 진여 실상 등은 상락아정의 상태라고도 다시 표현하게 된다.
이는 상대 때문이다.
상대는 여전히 이분법체계에 머무르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유에 대한 집착을 갖는 경우는 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반대로 무에 집착을 다시 갖는다고 하자.
그러면 다시 유라고 표현해 이를 시정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상대가 완고하게 유무 이분법상에서만 오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배경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 취하는 방편 시설의 사정을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대하는 각 입장따라 하나의 내용을 달리 이해해 받아들인다.
이런 현상을 앞에서 제시했다.

그런데 위와 같은 현상은 세간의 일반적 환경에서 어느 정도 공통된다.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대부분 망집에 기초해 생활한다.
그래서 처음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일정한 상태에 상대가 도달하게 하고자 한다고 하자
그러면 단계를 하나하나 밟아서 점차 이해하는 방안을 취하게 된다.
곧바로 해당 내용을 제시한다고 하자.
그러면 상대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양한 방편을 사용하게 되는 사정이 있다.

마치 수학교육과 사정이 같다.
처음 초등학생에게 고등학교 수학을 곧바로 이해시키기 힘들다.
그러나 처음에는 수와 사칙연산부터 하나씩 제시한다.
그런 가운데 점차 단계를 높여 나간다.
그러면 나중에는 미분 적분 삼각함수 등등도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사정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처음에 일정한 방편 시설을 사용한다.
그래서 기초적인 명제를 제시하게 된다.

문제는 다음이다.
그 명제를 대하는 상태에 따라서 그 명제가 갖는 의미를 적절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이 나타나기 쉽다.

그래서 처음에는 가장 기초적인 인천승 수행방안부터 제시한다.
우선 망집을 그대로 둔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보시를 행하게 한다.
그리고 사회규범과 계를 지킨다.
그리고 십선법을 닦게 한다.
그래서 하늘과 인간을 오가는 상태에 이르게 한다.

그 이후에는 다시 기존에 세속에서 가졌던 망집을 제거함에 목표를 둔다.
그래서 이를 위한 방편을 사용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 부처님이 제시한 가르침들을 다시 그런 망집을 기초로 이해하는 경우가 있게 된다.

예를 들어 부처님이 다음을 제시한다.
일체는 무상하다.
이렇게 제시한다.

때문에 상대는 이렇게 이해한다
이 내용은 절대적이다.
이런 내용은 실답게 있다.
부처님이나 수행방안이나 수행목표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이해하고 임하게 된다.


그러면 그런 분별도 사실은 잘못이다.
이는 다음 입장이다.
그런 입장을 편벽되게 집착한다.
그래서 이런 내용만은 절대적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결국 약간 편집증적으로 임한다.
또는 편향되게 임한다.
그런 가운데 자신의 입장을 다른 입장과 구분한다.
그리고 그 내용만은 절대적이고 실재한다고 여긴다.

그런데 이런 기초적 과정을 넘어서 조금 높은 수준이 된다고 하자.
그러면 이런 문제점을 다시 수정해야 한다.


부처님은 이런 설법을 뗏목과 같은 방편으로 삼는다.
그래서 일정한 상태에 도달하게 하고자 한다.

결국 그런 것이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결국 부처님이 제시한 가르침들은 모두 다 다음 취지다.
부처님의 깨달음을 연다. [개]
그래서 중생에게 보인다. [시]
이를 통해서 중생들이 망집을 제거하고 깨닫게 한다. [오]
그래서 부처님의 깨달음에 들어오게 한다. [입]
이른바 개시오입이라는 표현이 이를 가리킨다.

결국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은 이런 취지에서 제시된 것이다.
그래서 끝내 이런 사정을 종합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각 내용을 대해야 한다.


2570-01-17#


결국 이런 사정을 종합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대하지 못한다.
그리고 엉뚱한 망집에 바탕해서 사견을 갖고 임한다.
또한 외도의 잘못된 가르침에 붙잡혀 지내는 경우가 있다.
기타 세속 생활에 집착하며 지낸다.

이러한 일반적인 상태에 놓여 있을 수 있다.
이런 이들을 대상으로 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에 생각할 수 있는 공통방안이 있다.

그 가운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수행에 임한다.
이는 같다.
하지만, 조금씩 입장이 다르다.
그런 가운데 조금씩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는 결국 위 5 가지 방안에 준해 그 부분을 잘 이해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결국 망집을 해소시키는 5 가지 방안이 필요하다.





mus0fl--Marie Laforet - Noe.lrc






뉴스 사이트에서 보고되는 수많은 사건 사고의 내용이 있다.
현실에서 이런 사건 사고 내용을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다음처럼 이해한다.

이 현실에 이와 같은 주체들이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이 행하는 행위와 결과가 그렇게 있다.
이렇게 이해한다고 하자.

이것이 기본적인 각 주체의 망집 증상이다.
그리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방안들이 있다.
그래서 5 가지 방안을 살폈다.

부처님이 제시하는 기본적인 명제가 있다.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한 입장을 상대에 맞추어 사용할 수 있는 방안들이다.


그런데 그 가운데 가장 망집의 정도가 심한 경우라고 하자.
그런 경우는 5 번째 방안이 실효적이다.

그것은 다음이다.
상대가 이해하는 내용이 모두 실답게 현실에 있다고 하자.
그런 바탕에서 수행을 해야 한다.
즉, 상대가 집착하고 추구하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그런 좋음을 가장 많이 오래 얻어내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부처님을 믿는다.
그리고 3 보에 귀의한다.
이는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수행방안을 취한다.
그리고 현실에 임한다.

이는 다음과 같다.
상대가 실답다고 보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좋다고 보는 내용이 있다.
이들을 나열해 놓는다.
그리고 이들에서 가치를 비교한다.
이 가운데에서 무엇이 다른 것보다 더 좋은가.
그리고 우선순위를 판단한다.

좋음을 얻기 위한다고 하자.
이 경우 좁고 짧고 얕은 관찰에 의해 방안을 찾는다.

한편, 부처님이 제시하는 방안이 있다.
이를 놓고 어떤 것이 과연 더 나은 방안인가를 헤아려야 한다.

그래서 어떤 방안이 좋음을 많이 빨리 쉽게 성취하게 하는가.
또 그 상태를 오래 유지하게 하는가.
그런 입장에서 헤아려야 한다.

이는 결국 다음이 결론이다.
일반 중생이 갈구하는 소원을 성취하고자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도 수행방안을 실천해야 한다.

그래서 적어도 3 악도의 생사고통을 예방한다.
그 다음에 점차 천천히 수행에 진입시킨다.

상대의 망집 정도가 대단히 극심한 경우라고 하자.
이 경우 우선 인천승의 가르침을 제시한다.
그래서 즉 현실에서 일단 보시를 행하게 한다.
그리고 계를 지키게 한다.
그리고 10선을 닦게 한다.
그래서 3 악도의 생사고통을 면하게 한다.
그리고 인간과 하늘을 오가는 상태에 이르게 한다.


이를 위해 현실에서 좋다고 보는 각 항목을 나열한다.
그리고 어떤 항목이 다른 항목에 비해 어느 정도 나은가를 헤아리게 한다.

예를 들어 다음의 여러 항목이 있다.
예를 들어 현금과 보석 부동산 동산 이런 여러 항목이 있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두 눈, 심장, 간, 그리고 손과 발과 같은 신체, 생명이 있다.

이런 것을 나열한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 무엇이 무엇보다 나은가.
그리고 그 비율은 어느 정도인가를 헤이린다.

여기서 두 눈과 심장은 수많은 항목의 가치를 비교할 때 사용할 기준이 된다.

그래서 각 가치를 비교한다고 하자.
이 경우 한 쪽 저울에 무량하게 어떤 좋은 것을 올려 놓는다.
그래도 두 눈과 심장이 갖는 가치를 넘어서지 못한다고 판단된다.
이런 항목은 돈 이하의 가치라고 표현한다.

그와 달리 이와 대등하거나 이를 넘어서는 가치가 있다.
이를 돈을 초과하는 가치라고 표현한다.

우주에 가득 보석이나 현금을 쌓아 놓는다.
그리고 한쪽에 자신의 두눈이나 심장 생명을 올려 놓는다.
그런 가운데 이 가운데 하나만을 취해야 한다고 가정한다.
그런 경우 어떤 것을 선택하게 되는가.
그래서 이를 살핀다.

그래서 자신의 생명이나 신체가 갖는 가치를 평가한다.


자신은 평소 생명과 신체를 가지고 어떤 활동을 한다.
이런 경우 이를 통해 어떤 가치를 얻어야 이익을 얻는 것인가.
그래서 이번 생 안서도 수행과 일반적인 활동 사이에서 가치를 헤아려야 한다.


회계기본 식으로 이익 = 수익 - 비용의 식이 있다.

여기에서 생명이나 신체가 갖는다고 보는 가치가 있다.
이는 자신의 죽음으로 언젠가는 0 이 된다.

따라서 어떤 활동을 할 때 이 소모분을 비용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감가 상각 비용을 계산해 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사업활동에 필요해서
자동차를 1 억원을 주고 구한다.
그래서 사업을 했다.
그리고 5 년이 지나 폐차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5 년 동안 5000 만원의 수익을 거두었다.

그렇다면 과연 이익을 얻는 활동을 한 것인가.

이런 문제다.

이 경우 그런 사업을 아예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냥 1 억원을 그대로 보관한다.
그리고 사업활동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경우는 그대로 1 억원이 그대로 있다.

이런 경우를 놓고 함께 비교해야 한다.


그런데 자동차는 1 억원에 구입했다.
그래서 5 년후에 0 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5 천만원을 수익을 얻었다.

그래서 자동차처럼 언젠가는 0 이 되는 자산이 있다.
이것을 가지고 무언가 활동을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는 다음을 주의해야 한다.

그 자산이 있을 때는 그것을 잘 의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자산이 언젠가는 0 이 된다.
이런 사실을 념두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미리 그 가치를 예상기간으로 나눈다.
그리고 이를 비용으로 게산해야 한다.
그래서 감가상각비용을 미리 계산한다.

그런 가운데 수익 - 비용을 평소 의식하며 임해야 한다.
그래야 착오가 발생하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다.

자신의 신체와 생명이 아직 건강하게 유지된다고 하자.
평소 신체나 생명의 가치를 잘 평가하지 못할 수 있다.
주관적으로 우주보다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이를 화폐로 환산해보자.
1년 국가 예산액 정도를 사용해서 부등호로 나타내보자.
그래서 자신이 갖는 가치를 대략 469 조원은 초과한다고 가정하자.
이 금액은 단지 이 가치를 화폐숫자로 표시하기 위한 방편이다.

하지만, 이런 생명이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그래서 자신이 주관적으로 0이 된다
그래서 이런 사정을 미리 감안해야 한다.

한 사람이 대략 100 년 동안 생존한다고 하자.
그리고 죽음을 맞이한다고 하자.
위에서 대략 다음과 같이 표시했다.
생명 신체의 가치 > 469 조원
그런데 이 금액을 100 으로 나눈다.
그래서 1 년당 소멸되는 감가 상각 비용액을 대략 부등호로 표시해 보아야 한다.

그런 경우 하루당 100 억원 초과하는 가치가 감가 상각 비용으로 없어지는 상태다.
그런데 어떤 활동을 하던 이런 비용을 들인다.
그러니 어떤 활동을 해야 그런 비용을 넘는 수익을 거두게 되는가.
그리고 이익을 얻을 수 있겠는가
이 문제부터 살펴야 한다.

이 문제를 의식하지 않고 임한다고 하자.
그러면 결국 다음처럼 된다.
자신이 어떤 활동으로 무언가 소득을 얻었다고 하자.
그렇더라도 하루의 감가 상각 비용도 제대로 충당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그래서 산수 계산을 잘 해야 한다.

결국 자신은 자신의 생명이나 신체가 대단히 소중하다고 여긴다.
그런데 죽음을 맞이한다.
그래서 현생에서 집착하던 그 모든 것이 0 이 된다.

이 경우 돈 이하의 가치를 갖는 것이 있다.
이를 가지고 매순간 돈 초과의 가치를 갖는 것을 얻어내야만 한다.
그래야 겨우 이익이 발생하게 된다.


하루당 최소 100 억원 이상의 감가상각 비용이 없어져 간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현금으로 하루에 아무리 많이 번다고 하자.
그래도 이 비용을 넘어선 수익을 얻어내기 힘들다.

또한 위 금액 자체는 단지 숫자로 환산해서 표시하기 위한 방편이다.
그래서 최소한 그 금액 이상의 가치가 없어져 간다고 제시한 것이다.
그래서 사정이 더 어렵다.

그러나 만일 다음과 같다고 하자.
매 순간, 생명이나 생명의 가치를 초과하는 어떤 가치를 얻어내는 활동을 한다.
한편 자신이 돈 이하의 가치를 갖는 품목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자.
이것을 가지고 매번 돈을 초과하는 가치를 갖는 품목으로 바꾸어 낸다.
그런 활동을 열심히 한다고 하자.
그러면 또 사정은 달라진다.

그것은 현생 안의 가치 회계 계산을 할 때도 수익이 있다.
하지만, 다음의 내용을 받아들인다고 하자.
즉, 무량겁에 걸쳐 생사윤회를 한다.
이런 내용을 받아들인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는 이번 생을 마치고 다음 생을 맞이할 때와 관련된다.

그래서 이는 다음 문제와 관련된다.
차로 비유한다고 하자.
이번 생에 타고 다닌 인간형 자동차가 폐차 처분된다.
그리고 다음 생에서는 바퀴벌레형 자동차를 간신히 구해 타게 되는가.
아니면 닭 형태 자동차를 구해 탈 수 있는가 .
아니면 하늘 형태 자동차를 구해 탈 수 있게 되는가.

이런 차이를 발생시킨다.

그래서 이런 측면에서 많은 이익을 얻어내려 한다고 하자.
그러면 들어가는 비용보다 많은 수익을 거두어야 한다.
결국 가장 가치가 있는 품목이 무언가부터 잘 판단해야한다.
그래서 이를 잘 얻어낼 수행방안을 취해 임해야 한다.

현실에서 자신이 집착하는 좋음이 있다.
이를 가장 많이 오래 얻어내려 한다고 하자.

그러면 일반적으로 좋음을 놓고 취하는 자세를 제거해야 한다.
즉 자신이 얻은 좋음을 대단히 집착한다.
그래서 이를 아낀다.
그리고 다른 이에게 결코 베풀지 않으려 한다.
이러한 탐욕의 자세를 제거해야 한다.

또 자신이 집착하는 좋음을 얻고자 한다.
이를 위해 다른 생명을 침해한다.
즉 다른 생명이 대단히 집착하는 것이 있다.
즉 생명이나 신체 재산 가족 등이다.
이를 함부로 침해한다.
그러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소원을 추구한다.
이런 자세를 제거해야 한다.

또 반대로 자신이 집착하는 좋음이 있다.
이를 어떤 다른 생명이 침해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에는 이와 반대로 임해야 한다.
그래서 이에 대해 상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래서 상을 취하지 않는다.
그리고 분노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래서 분노에 기초해 반응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을 평안히 참고 받아들인다.
이러한 안인의 자세가 기본적으로 요구된다.
그리고 이를 한 생을 통해 꾸준히 정진해 가야 한다.
이런 노력이 요구된다.

수행방안으로 계- 정 - 혜 3 학의 항목이 제시된다.
이 가운데 계가 가장 기본적으로 요구된다.
그런데 위 내용은 특히 계에 해당하는 기본 수행덕목이다.
즉, 보시- 정계 - 안인 - 정진 항목이다.

이것이 구족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결국 다음처럼 된다.
외관상으로는 어떤 현금 수입을 많이 얻는다.
그리고 풍요로운 상태를 얻은 듯 하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익을 얻어내지 못한다.
그리고 막대한 손해를 받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그것이 부채를 증가시킨다.
그래서 자신의 자본을 갉아 먹는다.

그것이 곧 다음 생에 맞이하는 3 악도의 생사고통 문제가 된다.

망집에 바탕한다.
그래서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을 기초로 임한다.
그래서 쓸모 없고 가치 없는 것을 붙잡는다.
그리고 감가상각 비용 하나 제대로 계산하지 못한다.
그리고 업을 행한다.
그러한 가운데 맞이하는 고통이 된다.


■■■

● 현실에서 생명에 대한 감가상각비용 계산과 수행으로의 진입
http://buddhism007.tistory.com/5275#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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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ed--중아함경_K0648_T0026.txt ☞중아함경 제 16 권
sfd8--불교단상_2562_12.txt ☞ ☞● 현실에서 생명에 대한 감가상각비용 계산과 수행으로의 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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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수준이 높다고 하자.

그러면 단멸관을 제거하게 된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눈을 뜬다.
그러면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 가운데 일부를 취해 자신의 손발로 여긴다.
그렇게 일반적으로 망집을 일으킨다.

그런데 그런 손발과 몸이 소멸된다고 하자.
그러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이라고 이해한다.
그리고 죽음 이후는 자신과 관련된 것이 업다고 여긴다.
이것을 단멸관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단멸관을 제거한다.
그래서 다음 사실을 올바로 관한다.
한 주체는 망집에 바탕해 생사에 임한다.
그래서 무량겁에 걸쳐 생사윤회를 반복한다.
그러한 생사현실을 올바로 관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망집에 기초한 악업을 중단한다.
그래서 3악도의 생사고통을 예방한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망집을 제거한다.
그래서 생사윤회의 묶임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난다.
그리고 다시 다른 중생을 제도하는 서원을 일으킨다.
그래서 생사현실에 들어가 임한다.
그래서 생사현실 안에서 중생을 제도할 방편을 구족한다.
즉, 무량한 복덕과 수명과 지혜를 구족한다.
그래서 다른 중생을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한다.
그리고 불국토를 장엄한다.
그리고 성불하는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


또 이를 위해서는 다음을 잘 살펴야 한다.

평소 현실 내용을 다양하게 대한다.
예를 들어 뉴스 내용을 대한다고 하자.
이 경우 이 현실에서 그런 각 주체에 대해 올바로 관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에 대해서도 올바로 그 정체를 관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이 평소 갖는 견해가 망집인 사정을 잘 이해한다.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익힌다.

그리고 앞에서 제시한 5 가지 방안을 잘 살핀다.

그런데 여기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조금 불충분하게 이해하는 입장이 있다.
그래서 이런 입장들도 또 추가적으로 검토해 보아야 한다.











mus0fl--Marie Laforet - Si (Viens).lrc




[여담]🎉♦

이 페이지를 일단 마쳐야 한다.
앞에서 다음을 살폈다.



- 망집이 가장 심한 경우의 해결

일반적 입장에서 가장 망집 증상이 심한 상태가 있다.
이 경우 어떻게 그 망집을 해결할 것인가.

중생제도에 임하는 수행자라고 하자.
그런 경우 대부분 이 부분을 문제로 보게 된다.

그래서 일단 상대를 유치원 생으로 간주한다.
이는 막무가내로 떼를 쓴다.
그리고 억지를 피운다.
그런데 이런 상대가 정상적인 수행부분으로 진입하도록 이끈다.
이를 위해 다양한 방편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그 수행자의 역량이 된다.

이론상 무상해탈 공해탈삼매를 익힌다고 하자.
그러면 사실 상대가 호랑이라고 하자.
그런 경우 상대를 수행에 진입시키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는 자신의 신체를 먹이로 제공하기 까지 한다.
이런 경우 자신의 신체나 생명을 희생한다.
그런 내용까지 경전에서 제시된다.

이런 경우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다음처럼 여기게 된다.
이는 모두 상상으로 지어낸 허구적 이야기다.
그리고 현실에서 도저히 실천하기 힘들다.
이렇게 보게 된다.

그런데 그런 내용 일체가 망집에 바탕한 판단이다.
수행자는 다음을 이해해야 한다.
망집상태에서 있다고 보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이들은 사실은 환과 같다.
그리고 꿈과 같다.
그 리고 마치 최면사의 최면과 같다.

그래서 혁대를 뱀이라고 보이게 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이런 사정을 잘 이해한다.
현실에서 상대가 집착하는 그런 내용이 있다.
그런데 본래 거기에서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그런 내용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사현실에서 자신의 신체나 생명을 희생한다고 하자.
그래서 그렇게 생명을 보시하면서 수행한다고 하자.
이는 대단히 힘들다.

그래서 그런 방식을 실천하는 수행자는 현실에서 대단히 희박하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서 생명을 희생한다.
이런 경우에서나 희박하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자신과 현실적으로 그런 관계도 아니다.
그런데 무량한 중생을 위해 그렇게 임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대단히 희박하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임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 수행자는 대단히 수행수준이 높다.
그리고 성불하는데 필요한 수행기간도 대단히 짧아진다
이처럼 경전에서 제시한다.

그런데 여하튼 그런 상태까지는 아니다.
그리고 현실의 정체나 자신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그리고 막무가내로 억지를 피우고 임한다.
그런 유치원생이라고 하자.

그러한 경우 유치원 보모나 선생님은 이런 유치원생을 잘 다룬다.

그러나 어떤 이는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한 시간만 유치원에 있다고 하자.
그러면 골치가 아프다.
없던 병이 다 생긴다.
이렇다고 하자.
그러면 무언가 부족한 상태다.

수행자가 중생제도에 임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런 상태의 중생을 제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무량한 방편지혜를 얻어내야 한다.

말 그대로 중생의 상태가 무량하다.
그리고 중생이 고집하고 집착하는 내용이 무량하다.
그래서 무량겁에 걸쳐서 노력해도 잘 성취되지 않는다.
그래서 일반 수행자는 잘 안 된다.

그러나 어떤 수행자는 된다.
그런 분들이 결국 부처님과 대력보살마하살이다.
예를 들어 문수보살님 보현보살님 지장보살님 등이다.

그런데 이 분들의 경우는 다음과 같다.

일반 수행자 입장에서는 도저히 해결하기 힘들다.

중생들은 소원에 집착한다.
중생의 소원이 무량하다.
그래서 안락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질병이 없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이제 수명이 연장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재물이 구족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교도소나 지옥에 들어간다고 하자.
그러면 다시 그런 지옥의 고통을 면하기 바란다.
이런 식으로 무량하게 소원을 나열한다.
그런데 사실은 현실에서 이 가운데 어느 하나도 쉽게 성취하기 힘들다.

그런데 이를 일단 잘 해결해준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수행에 잘 진입시킨다.

그런데 이는 사실 다음과 같다.
유치원생들이 엉뚱한 것을 거기에 있다고 여긴다.
그러면서 장난감을 내놓으라고 떼를 쓴다.
이런 상황과 같다.

현실은 하나같이 실답지 않다
하지만, 그런 장난감을 요청받는대로 척척 제공해주기는 힘들다.

그래서 그런 방편지혜를 구족해야 한다.
그래서 그 문제를 해결한다.
동시에 이를 통해서 깨달음을 얻는 수행에 진입시킨다.
그래서 생사고통을 벗어나게 한다.
그런 능력이 필요하다.

때로는 수행자 자신도 같은 문제를 잘 해결하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부터 생사고통에 묶여 지낸다.
그래서 이런 부분에서 수행자의 수준과 단계가 차별이 나타난다.

결국 수행자는 이런 문제를 잘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일단 그런 상태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일단 수행에 진입한다.
그리고 부처님이 제시한 기본 명제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수행을 실천한다.
그러한 입장 안에서도 여러 문제가 있다.

유치원 생 상태에서 수행에 진입한다.
이것도 쉽지 않다.
그런데 다시 수준높은 수행 상태까지 도달하려 한다고 하자.
그러면 다시 넘어야 할 부분이 많다.
그리고 이론상으로 이해해야 할 내용들이 많다.

그래서 이 부분을 또 잘 살펴야 한다.

기본적으로 이 경우 망집을 제거하는 1,2,3,4,5, 의 방안이 다 적용된다.
그런데 각 경우를 조금 더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



mus0fl--Edith Piaf - Exodus.lrc






앞에서 유치원생의 비유를 들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이런 경우도 잘 상대해서 이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이를 상대하다가 자신부터 병에 걸린다.

그러나 그런 경우도 또 다른 상대를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또 경우가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대학원생은 자신이 잘 알아서 연구한다.
어떤 대학교수가 이런 대학원생을 지도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와 같다.

유치원생을 잘 교육하는 이가 있다.
그러나 그가 대학원생을 잘 지도하는 것은 반드시 아니다.

그런데 대학원생을 잘 지도한다고 하자.
그래도 유치원생을 지도하는데는 마찬가지로 여려움을 느끼게 된다.

이처럼 각 경우가 어느 정도 상대적이다.


그런 가운데 가장 모범적인 부처님의 경우를 살펴보자.
우선 일자 무식인 수드라 출신의 수행자도 있다.
그리고 이미 대단히 박식한 상태인 제자도 있다.
그래서 이미 수많은 제자를 거느리고 있던 이들도 있다.
그런데 이들을 다 망라한다.
그래서 모두 일정한 수행상태에 도달하도록 이끈다.

그래도 자신의 가족이나 친족은 이끌기 힘들다
그래서 대부분 어려움을 호소한다.

그런데 또 이 경우도 다 수행에 진입할 수 있게 이끈다.

한편 실력이 좋아도 충실한 제자를 1명 얻는 것도 힘들다.
그런데 당시 1250 여명에 달하는 제자를 지도한다.
그래서 이들을 한 곳에 수용해서 수행을 하게 했다.

이런 사실은 수행자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그래서 수행자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준다.


유능한 선생님도 가족이나 친족을 상대로 교육하기는 힘들다
가족은 늘 가까이 보아왔다.
이런 점이 영향을 미친다.
내가 저 아이를 젖을 먹어셔 키웠다.
그리고 어릴 때 다 돌보아 주었다.
또는 어릴 때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옆에서 다 보았다.
이런 사실이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사실은 힘들다.

여하튼 부처님 당시 부처님이 제자들이 수행한 장소가 있다.
기원정사나 죽림정사다.
이런 유적은 지금도 살펴볼 수 있다.

참조
기원정사 http://buddhism007.tistory.com/4652
http://buddhism007.tistory.com/4652


기원 정사 터는 처음 수달타 장자가 구한다.
그런데 그 땅은 본래 기타태자의 소유였다.
그런데 땅 면적만큼 금을 깔아서 그 땅을 산다.
이것을 기타 태자가 지켜보고 그 사유를 묻는다.
그리고 기타태자가 그 사정을 이해한다.
그리고 나머지를 기증한다.
그래서 건립한다.

오늘날 문명이 발달하였다.
그래서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그 모습을 살필 수 있다.
이러한 일도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여하튼 대략 2562 여년 이전에 여기에서 많은 수행자가 수행을 했다.
그 인원이 1250 여명에 달한다.

이런 사실을 살필 수 있다.

요즘은 상당히 풍요롭다.
그리고 문명이 발달했다.
이런 현대 상황에서도 그런 일이 쉽지 않다.

그런 점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당시 수달타 장자는 그런 기원정사를 설립해 기증한 인물이다.
그런데 그 수달타 장자가 살았다는 저택도 지금 남아 있다.
지금 보아도 왠만한 규모가 아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이 전한다.

수달타 장자는 큰 부자 상인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입고 먹는 옷과 음식과 거처하는 장소가 있다고 하자.
그러면 그 집에서 일하는 하인까지도 모두 같은 형태로 입고 먹고 자게 했다.

그리고 그 많은 부를 고아나 어려운 이를 돕는데 사용했다.
그래서 세상에서 그를 급고독장자라고 불렀다.

오늘날도 돈이 좀 많다고 하자.
그러면 상대적으로 가난한 이를 멸시하기도 한다.
그래서 문제가 된다.
그런데 기원전 계급차별이 심한 상황이다.
그런 상태에서도 급고독 장자는 달랐다.

그가 그런 부를 가졌다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런 부자이면서 자신이 거느리는 이들을 모두 차별없이 평등하게 대한다.
또 어려운 이를 돕는데 막대한 부를 사용한다.

더 나아가 부처님의 설법을 한번 듣고 크게 깨닫는다.
그래서 부처님과 제자들이 머물 시설을 만들고자 한다.
그래서 땅을 구입한다.

그 과정에서도 자신의 황금창고를 다 헌다.
그래서 땅을 구한다.
그래서 기원정사를 세운다.
이런 내용이 모두 잘 믿기지 않는 내용이다.

그런데 여하튼 그 유적을 오늘날도 찾아 볼 수 있다.

그외에도 왕이 기증한 죽림정사도 있다.
역시 사정이 비슷하다.

각 불교 유적지에 그런 사연들이 담겨 있다.
그래서 그런 불교 유적지를 살필 수 있다.

한편 처음 뉴스 사이트에서는 다양한 사건 사고의 내용을 전한다.

그런 가운데 각 주체가 매 순간 집착하고 추구하는 것을 살핀다.
그리고 다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 정체가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그 가치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이런 문제를 함께 살펴야 한다.

불교유적지 http://buddhism007.tistory.com/3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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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일반적인 수행자 입장이라고 하자.
이 경우 이 문제가 어느 정도 상대적이다.

예를 들어 대학원생은 잘 지도한다.
하지만, 정작 유치원생은 힘들어 한다.

이것이 사실은 일반적인 수행자의 상황이다.

수행자 수준이 조금 부족하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도 상대의 수준이 어느 정도 높다고 하자.
그러면 또 상대의 망집을 잘 제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서로 적절하지 않다고 하자.
그러면 대단히 곤란하다.
그리고 그 노력이나 시간도 상당히 많이 걸린다.

그런데 반대로 수행자 수준이 상당히 높은 상태라고 하자.
그러면 또 앞과는 반대다.
그래서 상대가 축생처럼 수준이 낮더라도 망집을 제거할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 사례도 전한다.

예를 들어 마명보살이 설법을 한다.
그러니 며칠 굶은 말들이 앞에 놓여 있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그리고 계속 설법을 듣는다.
그러다가 끝내 말들이 다 함께 소리내어 울었다.
이런 내용이 전한다.
그래서 마명보살의 명호가 마명이 되었다고 한다.



유치원생 교육도 문제다
하지만,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개나 곰도 있다.
일반적으로는 짐승은 말을 못 알아듣는다.
그래서 심하게 채찍을 사용할 듯 하다.
또는 당근의 방법으로 지도할 듯 하다.
물론 그렇게 축생을 함부로 대해서 뉴스에 보도되기도 한다.

그런데 또 대단히 유능한 사육사가 있다.
그래서 이런 짐승을 잘 교육한다.
그래서 짐승을 방송에 출연시킨다.
그래서 TV에 출연하게 한다.
이 정도로 축생을 잘 훈련시킨다.

그래서 이 경우를 놓고 살펴본다.
그런데 이 분의 교육과정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수준이 높은 사육사는 또 다름을 보게 된다.


그런데 이런 내용들이 다음 주제와 대단히 밀접하다.
어떤 주체가 현실에서 망집을 일으킨다.
그리고 정신없이 업을 행한다.
그런데 이런 이에 대해 어떻게 방편을 취해야 하는가
그래서 그 망집상태에서 벗어나게 하는가.
그래서 생사고통을 벗어나게 하는가.
이런 주제와 관련된다.

결국 수행자는 이런 일을 잘 하게 되어야 한다.
그래서 수행을 잘 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고자 한다고 하자.
그러면 일단 자신부터 생사고통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신부터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고 있다고 하자.
또는 온갖 전염병과 질병에 걸려 있다고 하자.
그런 경우 다른 이들이 대면하기를 꺼려하게 된다.

또는 자신부터 감옥에 갇혀 지내는 상태라고 하자.
그러면 다른 중생을 생사고통에서 벗어나도록 이끌기 곤란하다.

중생을 잘 제도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먼저 기본적으로 중생을 제도할 방편을 갖춰야 한다.
그래서 고통을 받는 중생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무량한 복덕을 먼저 갖춰야 한다.

그래서 수행자 자신부터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잘 벗어나야 한다.
또 그 상태에서 복덕 자량을 기본적으로 구족해야 한다.

그래서 수행자는 기본적으로 기본 수행덕목부터 잘 성취해야 한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계의 항목을 잘 성취해야 한다.
그래서 보시, 정계, 안인, 정진의 덕목을 잘 성취해야 한다.
그래야 그 자신부터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이후 수행을 할 수 있는 상태로 진입할 수 있다.

다른 중생을 제도하고자 할 경우 이런 기본이 필요하다.
생사현실에서 복덕자량을 구족해야 중생을 제도할 수 있다.
그러려면 이런 내용이 요구된다.

그래서 좋음(+)을 중생에게 아낌없이 베푼다. - 보시
반대로 다른 생명이 집착하는 좋음을 침해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쁨(-)을 가하지 않는다. - 정계
반대로 자신이 어떤 (-)을 받을 때는 이를 평안히 참는다. - 안인
이런 기본적인 수행을 정진해야한다 - 정진
그래야 비로소 높은 수행단계가 된다.





망집을 벗어날 수 있는 방안으로 앞에 5 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그래서 원칙적으로 현실에 쉽게 적용할 수 있을 듯 하다.

하지만, 기본 수행덕목 자체가 성취되지 않았다고 하자.
그러면 아무리 그런 내용을 제시해도 상대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계속 망집에 바탕해 임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좋다고 보는 내용을 징검다리 삼는다.
또는 대단히 고통스럽다고 보는 것을 징검다리 삼는다.
그래서 이 고통에서 저 고통으로 쉼없이 분주하게 나아간다.
그리고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또 그렇게 자신을 묶고 있는 망상분별과 집착도 제거하지 못한다.

그래서 어떻하던지 수행에 진입시키는 방편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망집을 제거하는 기본 전제가 된다다.

또 그런 기본 상태가 충분히 성취되지 않은 상태라고 하자.
그런 경우는 이런 이론적인 내용이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예를 들어 다음 내용을 제시한다고 하자.
- 일체가 다 차별없이 공하다.

그런데 이를 잘못 취한다고 하자.
그래서 악업을 아무렇게 해도 무방하다고 잘못 이해한다.
그래서 이를 기초로 오히려 더 심한 생사고통을 받아 나가게 된다.


원래는 다음 주제를 살피려고 했다.
즉 불교 내의 여러 입장 가운데 미세한 차이를 살피려고 했다.
그런데 이는 현실적으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수행자 가운데 아라한의 상태가 있다.
이는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난 수행자다.

그런데 이를 보살 수행자로 이끌어야 한다.
그래서 중생제도를 위해 일단 생사현실에 들어가게 해야 한다.
그래서 무량겁에 걸쳐 생사현실에 임해 수행해가도록 이끌어야 한다.
이러한 것도 중요한 주제다.

다만 이는 일단 현실 상황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왜냐하면 기본 수행 덕목 자체가 안 되어 있다고 하자.
그래서 업의 장애 자체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하자.
그러면 이는 너무 무리한 내용이다.

이론적으로는 원칙적내용만 제시한다고 하자.
그러면 다 망집을 제거할 듯 하다.
그리괴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날 듯 하다.
하지만, 현실과 이론에는 거리가 있다.
예를 들어 계속 칼로 자신을 해치려는 상대가 있다고 하자.
그래서 수행장소에 빈번하게 나타난다고 하자.
그러면 도저히 수행을 성취하기 힘들다.
이런 사정과 같다.












mus0fl--Edith Piaf - La Julie Jolie.lrc





쉬면서, 25 일자 조각글도 살핀다.

그런 가운데 『불설광박엄정불퇴전륜경』을 보게 된다.

이는 지금 살피고자 하는 주제와 관련된다.
결국 지금 살피는 주제가 쉽지 않다.


자세하게 살피려 한다고 하자.
그러면 페이지를 옮겨서 함께 살펴야 할 듯 하다.

일단 여기서는 아주 간단하게만 살피고자 한다.
그리고 해당 페이지는 좀 자세하게 살피고자 한다.

그렇게 시간대를 오가면서 조각글을 살핀다.
그리고 쉬면서 노래를 듣는다.

그러다가 노래에서 약간 놀라운 메세지를 듣게 된다.
믿지 않고 업을 행하는 가운데 축생이 된다.
이런 메세지가 듣게 된다.

그런데 본인이 여러 버전을 듣는다.
그러다보면 다음 메세지도 많이 접한다.
즉 연구원들이 아귀나 지옥 축생계에 들어간다

그러나 또 장차 성불한다는 메세지도 듣는다.

이것은 왜 그런가.
결국 그런 여러 과정을 거쳐서 그렇다.
이렇게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본질적인 사정은 다음처럼 이해할 수 있다
본래 무유정법이다.
그래서 또 그렇다.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예를 들어 사바세계에서는 다음 부처님이 성불하여 출현하시는 시점이
56 억년 후라고 제시한다.
그 정도기간만 놓고 보아도 대단히 길다.
그 시간 동안 사바세계에서는 성불하는 분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수많은 중생이 3 계 6 도 안을 이런 형태 저런 형태로 윤회한다.


가까이 지내는 연구원들이 그런 가운데 아귀나 지옥 축생계에 들어간다
이런 메세지를 전한다.

하는 노래는
예를 들어 연구원이 갑자기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다
또는 갑자기 사고를 당했다.
그래서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되었다
또는 갑자기 파산했다
또는 어떤 입학시험에서 낙방했다.
이런 소식을 듣는다고 하자.
그러면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생사현실 안에서 기본적인 10 선업 10신의 수행덕목부터 시작해서
보시 - 정계- 안인 - 정진 - 정려 - 반야 등의 계 정 혜 3 학을 성취한 바가 없다고 하자.
그런데 생사과정에서 생사를 벗어나는 시험이 있다.
또는 3 계 6 도에서 3 악도에서 벗어나는 시험이 있다.
그런데 그런 시험에 낙방하게 된다.
이는 불을 보는 것처럼 뻔한 일이다.


학생이 수능시험공부를 전혀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학생이 명문 사관학교에 시험을 본다.
그래서 합격할 것을 기대하기 힘들다.
이와 사정이 마찬가지다.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3 악도를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 붓다 사관학교라고 할 수 있는 극락세계가 있다
여기에 입소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한 번 인간은 영원히 인간이 아니다.
또 한 번 축생은 영원한 축생이 아니다.
이런 경우라고 하자.
그러면 무유정법이라고 할 수 없다.
또 그러면 어떤 서원을 갖는 것도 의미가 없다.
그래서 무언가를 변화시키는 일도 본래 없다고 해야 한다.

연기나 인과의 내용을 기계적 결정적 인과율로 잘못 이해한다고 하자.
그러면 다음처럼 잘못 이해한다.

업을 행하면 어떤 과보를 받는다
이런 내용을 숙명론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이렇게 이해한다.
- 현실내용은 결국 그런 과정으로 운명적으로 나타나게 된다.[X]

또 자신이 어떤 인과를 이용해서 어떤 목표를 성취한다고 하자.
그 경우도 이렇게 이해한다.
이런 과정도 인과율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
따라서 모든 것은 업에 의한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바꿀 도리는 없다. [X]
이러한 운명론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가 문제다.

어떤 기사를 보았다.
과거 조선시대에는 우물을 마당에 두었다.
집안에 우물을 두면 기가 사라진다고 여겨서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아닌가가 문제다.
그러나 이를 떠나서 어떤 견해를 갖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는 그에 따라 이러이러하게 행하게 된다.

현실에서 각 현상이 나타나는 관계가 있다.
그런데 이것이 기계적 인과율에 의해 나타나는가 아닌가는 관계없다.
그런데 그렇게 이해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 주체는 이런 경향을 갖는다
즉, 이제 매 순간 자신이 마음대로 뜻을 일으킨다.
그리고 행위를 한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이해한다.
즉, 이는 인과율 때문에 그렇다
이렇게 스스로 최면을 건다.
물론 그 인과율의 구체적 내용도 자신이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매 순간 임하게 된다.
자신은 매 순간 충동적인 반응에 따라 행한다.
그러면서도 이를 이렇게 이해한다.
그것이 모두 운명적이다.
그래서 어쩔 도리가 없다.
이런 형태로 여긴다.
그러면서 3 악도에 처하는 상태가 되기 쉽다.



그런데 사실은 인과관계는 그렇지 않다.
무유정법이라는 『금강경』 구절이 있다.
이는 바로 이런 사정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는 다음 내용을 제시한다.
반대로 무유정법이 아니라고 하자.
그래서 현실에 어떤 결정된 진짜의 내용이 있다고 하자.
그러면 현실에서 보는 그런 내용은 일체 나타나지 않는다.
이런 관계를 제시한다.

그래서 경전에서 다음처럼 제시하게 된다.
지금은 인간이다.
하지만, 나중에는 축생이나 아귀 지옥중생이 되기도 한다.
또 그런 과정을 거쳐서 나중에는 성불하게도 된다

참고로 『묘법연화경』 상불경보살품에 다음 내용이 나온다.
상불경보살은 다음을 제시한다.
일체 중생이 모두 다 성불한다.
그런데 현재 보살 수행자로 활동하는 분들이 있다.
그런데 과거에 지옥에 들어가 한참 지냈다.

결국 이는 이 두 측면을 함께 제시한다.



이것은 또 다음을 나타낸다.
부처님이 과거생에 장차 부처님이 되리라고 수기를 받았다
그 때 부처님이 이로 인해 어떤 결정된 내용을 얻은 것은 하나도 없다.


결국 본 바탕에서는 결정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생사현실에서는 매 생마다 어떤 선택을 한다.
그리고 어떤 업을 행한다.
그리고 이에 따라 그 과보를 그렇게 무량하게 받아나간다.
그래서 이 두 측면을 놓고 서로 혼동하면 안 된다.

그리고 이 부분이 불교 안에서의 미세한 해석 차이 문제와 관련된다.


결국 노래에서 다음처럼 제시한다.
모든 중생이 다 여러 과정을 거쳐서 성불하는 상태에 이른다.


그러나 되도록 3 악도에 머무는 과정은 간접경험으로 생략하는 것이 낫다.
한편 성불하고 불국토를 장엄한다.
그리고 중생을 잘 제도한다.
그런 상태는 좀 더 일찍 떠나고 빨리 도달해야 한다.


여하튼 시간대를 오가면서 작업을 한다.
그러면 복잡하다.

하지만, 일단 여기서는 불교 내 조금씩 다른 입장을 간단하게 살핀다.
그리고 자세한 부분은 미루기로 한다.




우선 경전에서 이런 표현을 만날 수 있다.

색은 항상한가. 아니면 무상한가?


여기서 색은 좁게는 눈으로 보는 빛깔도 의미한다.
하지만, 넓게는 모든 감각현실을 모두 함께 가리키는 표현이기도 하다.

즉 그런 빛깔과 귀로 듣는 소리, 코로 맡는 냄새, 입으로 느끼는 맛, 몸으로 느끼는 촉감
이런 것을 모두 함께 가리키기도 한다.

그래서 현실에서 한 주체가 감각기관을 통해 얻는 감각현실 일체을 가리킨다.
이는 한 주체가 평소 외부 세계, 외부대상, 외부물질로 여기고 대하는 그 일체를 의미한다.
또 여기에는 평소 자신의 몸이라고 보고 대하는 내용도 포함된다.

그렇게 어떤 주체가 감각기관을 통해 어떤 내용을 얻는다.
그리고 이것이 현실의 한 단면이다.

이제 이 내용을 놓는다.
그리고 처음 다음을 살핀다.

이런 내용이 어떠한가.
이런 감각현실은 항상한가
아니면 무상한가.



이것은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 눈을 뜨면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이런 시각정보만 놓고 먼저 살펴보자.

그런 경우 이들 일체는 자신이 눈을 한번 뜨고 감음에 따라 나타나고 사라진다.
그래서 이 한 순간만 확인한다고 하자.
그러면 설령 나머지 기간이 모두 그대로 유지된다고 해도
적어도 항상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무상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처음 제시하는 명제는 다음이다.
색은 무상하다.

그래서 현실에서 문제되는 것을 하나하나 주어부분에 넣는다고 하자.
그래서 다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이다.
부처님이 다음을 제시한다.
- '제행은 무상하다'

그런데 이 명제가 갖는 의미가 무언가.
이를 잘 음미해야 한다.





mus0fl--Edith Piaf - Traque.lrc





[여담]🎉♦
쉴 때마다 비슷한 주제를 전하는 노래를 듣게 된다.
그래서 마음이 약간 우울하다.

그리고 최근 인터연구원이 불교학과로 진학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인턴연구원이 또 마음이 바뀐 듯 하다.
그래서 원래 원한 학과도 한번 지망해보겠다고 한다.
그래서 또 우울하다.

어떻게 보면 축구 경기 관전과 비슷하다.
열심히 응원한다.
그러면서 좋은 결과를 얻어내기를 바란다.
그런데 늘 결과가 응원하는 이 뜻대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관람하는 이가 직접 경기에 뛰어 들어간다고 하자.
그렇다고 관중이 선수보다 반드시 잘 하는 것도 아니다.

특히 생사문제는 대신 대행해 줄 도리가 없다.
아무리 가까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경향성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한번 어떤 경향을 갖고 임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대부분 삶을 마칠 때까지 그런 경향을 갖고 임하게 된다.

이는 유치원 상황과도 마찬가지다.
앞에서 이를 비유로 들었다.

예를 들어 어떤 학생이 선천적으로 장애를 갖고 있다.
그런 학생이 장애를 극복할 수 있게끔 옆에서 노력한다.
그 가운데 헬렌켈러처럼 그 장애를 극복하고 벗어나오는 사례도 있다.
그러나 이는 대단히 희박하다.
대부분은 평생 그런 상태로 삶을 살다가 마친다.

한번 소나 돼지로 태어났다고 하자.
그런 경우 소나 돼지가 덧셈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보자
그렇게 임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가 결국 제 풀에 지치게 된다.
또는 화병에 걸리게 되기 쉽다.

대학지망을 앞둔 인턴연구원도 마찬가지다.
또 스스로 자신을 놓고 보아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자신을 놓고 생각해보자.
그래서 앞으로 파리처럼 되어 한번 공중을 날아보자.
이렇게 생각한다고 하자.
그렇다고 그것이 쉽게 되지 않는다.
결국 이런 문제가 해결이 쉽지 않다.

그러나 이번 노래는 다음 메세지를 전하는 듯하다.
즉 바라밀의 수행에 탈출구가 있다.
이런 메세지를 전하는 듯 하다.
그래서 약간은 긍정적이다.

바라밀을 왜 닦는가.
이 부분에 대해 자세하게 내용을 제시하는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을 살핀다고 하자.
그러면 그 사정을 알 수 있다.

현실에서 안 된다고 보는 내용이 많다.
그런데 이를 다 성취할 수 있게 된다.
그 수행방안이 사실은 반야바라밀 수행이다.


이것은 게임과 사정이 같다.
아무리 해도 돌파하기 힘들다고 보는 게임이 있다. .
그런데 이 경우 그 게임화면만 놓고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 방안을 알아낼 도리가 없다.

그런데 그 게임화면이 나타나는 본 바탕이 있다.
그래서 게임 파일을 열어 살핀다.
그래서 수많은 IF 구문을 놓고 계속 살핀다.
그런 가운데 어느 부분을 만진다.
그러면 원하는 내용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이와 사정이 같다.

여기에도 같은 내용이 적용된다.
게임파일의 글자 안에서 게임 화면이 보이지 않는다.

처음 경전에서 제시하는 내용은 이런 내용이다.


게임 화면을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것이 대단히 실다운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그 본 바탕이 되는 파일이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그런 내용을 일체 얻을 수 없다.

그런데 반야바라밀을 수행한다고 하자.
그래서 그런 본 바탕 사정을 꿰뚫어 현실을 관한다.
그러면 이를 바탕으로 현실 게임 화면도 원하는 서원대로 성취할 수 있다.

생사현실안에서 반야바라밀 수행이 갖는 의미는 사실은 이것이다.
그 게임안에서 겪는 고통을 일체 제거한다.
그리고 중생제도를 위한 온갖 내용을 다 무량하게 성취해낼 수 있다.


지금은 경전 첫 부분을 살핀다.
그런데 이후 부분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이런 것이 필요한 사정도 함께 이해해야 한다.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망집에 바탕한다.
그래서 완강하게 집착한다.
그리고 고집하고 임한다.


그런데 그 상태에 맞춘다.
그래서 상대를 수행으로 진입하려 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차력사나 마술사가 선보이는 깜작 쇼가 있다.
그리고 이런 방안이 더 효과가 있다.

경전에서도 이런 내용이 많이 제시된다.
일반적으로 말로 이치를 이해시키기 힘든 상대가 있다.
그렇더라도 일단 부처님의 구족한 신상을 대한다.
그리고 부처님이 보이는 신통력을 대한다.
그러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인다.
이런 사례가 많다.

현재 예약글로 올려진 글도 함께 살핀다.

중국이나 한국 등에 처음 불교가 들어간다.
또 인도 안에서도 스리랑카를 비롯해 다른 지역에 불교가 들어간다.
이 경우 불교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 경우 이들을 상대로 불교를 처음 받아들이게 한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을 살핀다고 하자.
그러면 대부분 그 상황이 비슷하다.

부처님의 경우도 같다.
부처님의 부왕은 부처님의 출가 취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나중에 성불한 이후에도 입장을 바꾸지 않는다.
그러한 부왕을 부처님이 만난다.
그 이후 부왕이 불교를 받아들이게 한다.

이러한 과정을 살펴보면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후 왕명에 의해 석가족의 왕족이나 귀족 들이 출가 수행한다.
이런 계기가 마련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결국 말로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자신이 직접 믿기 힘든 신통을 대한다.
그러면 그 내용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망집에 바탕해 임하는 각 주체가 많다.
그리고 이들의 상태가 대부분 이와 같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다음이다.

수행자가 수행을 통해서 자신부터 생사고통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뿐 아니라, 중생을 잘 제도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이론적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한다.
그리고 실천한다.

그러나 여기에 그친다고 하자.
그러면 곤란하다.

결국 수행을 통해서 상호나 신통력 등을 다 잘 구족한다.
그래서 때로는 말이 필요없이 상대를 수행으로 진입시킬 수 있어야 한다.


경전에서는 32 상 80 종호를 제시한다.
그리고 상호 하나하나를 성취하는데는 무량겁의 긴 수행이 필요하다.
그래서 수행자는 이런 위의도 구족해야 한다.
또 중생제도를 위해서 다라니 삼매 그리고 신통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런 내용을 수행을 통해 구족해 나가야 한다.


현실에서도 그런 하나만 잘 갖춘다고 하자.
그러면 모든 이들이 다 부러워하는 상태를 곧바로 성취한다.
그래서 한 생을 아주 평안하게 보낸다.

현실에서 아이돌 스타의 모습이 그와 같다.
그런데 그것이 그저 아무렇게 얻어지는 것은 또 아니다.

아름다운 용모 하나로 삶을 잘 산다.
목소리 하나로 삶을 잘 산다.
이런 사례도 마찬가지다.

그 전후배경을 본다고 하자.
그러면 최소한 7 생 이상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한 순간만 놓고 본다고 하자.
그러면 모든 것을 우연의 조합이라고 이해하기 쉽다.

그래서 다음처럼 여기기 쉽다.
이런 차별은 일들은 하나같이 이치에 맞지 않다.
그리고 불합리한 일이다.
이처럼 여기기 쉽다.

그런데 현실에서 자신이 자동차를 몬다고 하자.
그러면 차를 나아가게 하기 위해 엑셀을 밟는다.
그리고 차를 세우기 위해서는 브레이크를 밟는다.
그렇게 열심히 인과를 존중하며 현실에 임한다.

그래서 현실의 삶도 마찬가지다.
인삼을 경작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단지 하루 전후만 놓고 관계를 살핀다고 하자.
그러면 곤란하다.
적어도 6 년 이상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
그래야 겨우 인삼을 수확하게 된다.
나머지 경우도 마찬가지다.

반야바라밀경에서 반야바라밀다의 수행을 제시한다.

이는 다음 사정 때문이다.
수행자가 생사현실에서 중생을 생사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려 한다고 하자.
이를 위해 중생을 바로 바로 수행에 진입시키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수행자는 기본적으로 반야바라밀다를 잘 닦아 성취해야 한다.
그런 사정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고 하자.
게임을 행하는 입장이라고 하자.
그런 경우 게임 내용은 수많은 이들에게 일정한 형태대로 반복해 나타난다.
그래서 각 주체는 그러한 상황을 결정적 인과율의 내용처럼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상황을 도무지 벗어나기 힘들게 된다.

게임 화면이나 내용은 실답지 않다.
그러나 그 내용이 무량하게 그렇게 반복해 나타난다.
이 두 사정을 잘 살핀다.

그래서 다음을 이해해야 한다.
현실과 본 바탕의 관계도 이와 마찬가지다.

본 바탕 진여 실재는 공하다.
그래서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생사현실에서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 업이 무량겁에 걸쳐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생사고통을 받는 3 악도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상태가 그런 관계로 무량하게 반복해 나타난다.

그래서 생사현실과 관련된 이러한 내용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그 사정을 꿰뚫어 관해야 한다.
그래서 넓고 길고 깊게 이 현실 사정을 관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깊은 지혜인 반야바라밀다를 닦아야 한다.
그래서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생사현실에서는 생사현실대로 무량한 복덕과 수명과 지혜를 구족한다.
그래서 중생을 제도해 나간다.
이러한 수행이 대단히 중요하다.


반야바라밀다 경전의 내용은
실상이 공함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단순히 이 내용의 이해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다시 이에 바탕해서 중생을 제도하는 사업을 잘 해야 한다.
지옥부터 하늘까지 갖추어진 것을 하나의 세계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세계가 10 억개가 모인 것이 3 천 대천세계다.

그런데 이런 광대무변한 세계를 자신의 불국토로 삼는다.
그래서 중생을 제도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이런 반야바라밀다 수행이 필요하다.





한편 제행이 무상하다라고 경전에서 제시한다.
이 경우 이 내용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살펴야 한다.

여기서는 간단히 키워드만 제시하기로 한다.

다음처럼 경전에서 제시한다.
'색이 무상하다'
또는 '제행이 무상하다'


현실에서 대부분 눈을 뜨거나 해서 얻는 감각현실이 있다.
이를 '색'이라고 일반적으로 표현한다.
또 '무상하다'거나 '항상하다'는 표현도 사정이 같다.
일반적으로 망집을 일으킨 입장이라고 하자.
그런 경우 '항상하다' 또는 '무상하다'라는 표현을 통해 분별하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부처님의 본 입장은 어떤가.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런데 그 사정을 이해시키려 한다고 하자.
그러면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내용을 일단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처럼 일정한 내용을 언설의 형태로 가리킨다.
이처럼 가리키는 방편을 시설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내용을 제시해야 한다.


처음에 그렇게 내용을 제시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것이 문제다.
눈을 뜬다고 하자.
그러면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이를 가리키고자 일정한 글자로 이를 표현해 나타낸다.
즉 그런 내용을 '감각현실로서 시각정보'라고 표현한다.
또는 '현실 내용' '생사현실' 이런 식으로도 표현해 제시하게 된다.

그런데 다음을 제시하려 한다고 하자.
즉, 이런 내용의 본 정체는 언설을 떠난 내용이다.
또 거기에서는 언설로 표현하는 내용을 얻을 수 없다.
이런 내용을 제시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사정이 그와 같다.
그래서 언설을 떠난다.
그렇다고 이에 대해 아무 언설 표현도 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래서 빈칸으로 비워 놓는다고 하자.
또는 침묵한다고 하자.
그러면 일반인 입장에서는 도무지 알도리가 없다.
즉, 무슨 내용을 제시하고자 하는지 알 수 없다.

부처님 본래 입장은 다음과 같다.
각 주체가 눈을 뜨면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또 귀로 듣는 내용이 있다.
그런 감각현실이 있다.
그런데 그 안에 그런 내용을 얻을 도리가 없다.


그런데 그런 사정을 이해시키려 한다고 하자.
그러면 일단은 상대가 이해하는 내용을 방편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각 부분을 가리키는 데 사용한 언어표현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상대 입장에서 옳다고 보는 내용을 먼저 확립해 제시한다.

그것이 결국 다음과 같은 표현들이다.
- ' 제행은 무상하다'
- '일체는 고다'
이런 내용들이다.



mus0fl--Mireille Mathieu - Akropolis Adieu.lrc





[여담]🎉♦
내용이 상당히 길어진다.
현재 26 일이다.
그런데 아직 마치지 못하고 있다.

쉬는 동안 남미 칠레의 빙하가 녹아 흐르는 강을 보았다.
그리고 파타고니아를 보고 왔다.
상당히 아름답다.

그런데 한 번 가보고도 싶다
하지만, 스페인판 경전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그런 상태에서 경비를 들여서 공연히 오간다고 하자.
그러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요즘은 구글 풍광여행도 자주 못다닌다.
형편이 그렇다.
연구하고 조각글 정리하는데도 시간이 부족하다.

요즘은 쉴 때마다 계단오르내리기를 65 회씩 한다.
그래서 조금은 낫다
그런데 또 어떤 때는 지나치게 많이 한다.
그래서 상당히 피곤함도 느낀다.

여하튼 조금씩 습관을 바꾸어야 한다.
조금 안 좋다는 부분은 줄여야 한다.
그리고 좋다고 보는 내용을 접목시켜간다.
그러면서 점차 선후를 바꾸어 가야 한다.

최근에는 먼저 계단오르내리기를 해본다.
계단오르내기를 할 때 65 회를 행한다.
이는 다음 사정이다.

다라니를 외운다.
그런데 이왕이면 다라니를 외우면서 계단오르내리기를 한다.
이런 방안을 취한 것이다.
그런데 다라니 구절이 65 구절이다.


여하튼 추운 상태에서 계단오르내리기가 힘들다.

소신공양은 향공양이다.
그런 가운데 몸이 노화된다.
그리고 기능이 안 좋아진다.
되도록 횟수를 줄여야 한다.

이것과 결부시키면 소신공양도 조금 자제하게 될 것이다.

평생 식사 때마다 다른 생명이 죽은 사체를 먹는다.
그리고 매 순간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에 바탕해서 업을 행한다.
그러다가 가끔 한 번 다라니 외운다.
가끔 한 번 불우이웃돕기 성금 낸다.
그렇다고 크게 방향이 달라진다고 보기는 힘들다.
물론 전혀 하지 않은 것보다는 분명 낫다.
그러나 저울에 올려 놓고 비교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상당히 부족하다.

그런데 자신의 의식상에는 자신이 성금을 낸 금액
또는 몇 번 외운 다라니 횟수 이런 것만 의식에 남는다.
그리고 자신이 생활하면서 다른 생명을 해친 일은 의식에 없다.
업을 꾸준히 반복해 행한다.
그런 내용도 의식에 전혀 들어 있지 않다.

어떤 잔치로 인해 그 때까지 잘 살던 돼지 가족이 모두 몰살한다.
생선도 갑자기 삶을 마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일어날 만한 일들이 수없이 이면에 발생한다.
그런데 당사자는 전혀 의식이 없다.
그리고 자신들 즐거운 일만 이야기한다.
그리고 정신없이 임한다.
이런 상황과 비슷하다.

그리고 나서 3 악도에 들어가게 된다.
이 경우 자신이 그 사정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당황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가족들은 그 사정을 모른다.
그리고 무조건 고인이 모두 하늘이나 극락에 잘 가셨다고 여긴다.
그리고 또 삶을 이어간다.

이 상황을 부처님이 일찍이 다음처럼 제시한다.
도축장 옆에서 정신없이 목동에 이끌려 소떼가 오간다.
이 상황과 같다.
1 년간 지켜볼 때 소 떼에서 반절이 도축이 된다.
그리고 새로 태어난 소도 있다.
그런데 이 소들이 자신의 상황을 도무지 파악하지 못한다.
그리고 오가고 있다.

그런데 인간들도 그 사정이 마찬가지다.
이렇게 제시한다.
이 내용은 『출요경』에 나오는 내용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사정이 이와 같다.
이와 같이 중생들이 망집에 바탕해서 정신없이 임한다.
그러한 중생을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한다.
그래서 부처님이 방편으로 3 승을 시설했다.


예를 들어 부처님이 다양한 가르침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색은 무상하다는 내용을 제시한다.
이런 가르침을 듣는다.
그리고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 나간다.
그래서 수행에 진입한다.
이러한 수행을 성문승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홀로 현상이 나타나는 연기의 관계를 잘 관찰한다.
그래서 이를 통해 깨달음에 이른다
이러한 수행을 연각승이라고 표현한다.

이 두 방안은 특징이 있다.
우선 당장 자신이 생사고통을 벗어나는데 수행목표가 있다.

그래서 자신이 생사고통을 벗어난다고 하자.
그러면 다른 중생의 제도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일정한 사정이 있다.
중생을 제도하려 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를 위해 생사현실에 들어가 임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 수행자는 생사현실을 벗어나고자 수행을 한 것이다.
그래서 생사현실을 싫어하는 것이다.

한편 현실 일체가 무상하다
이러한 내용에 대해 해석에서 조금 차이가 있다.



그리고 연각승의 입장까지 함께 헤아려 보자.

이해하기 쉽도록 게임기 상황을 놓고 살펴보자.

게임기에서 어떤 화면에 작은 풍선이 나타난다.
이에 커서를 그 위치로 놓는다고 하자.
그러면 거기에서 보물상자라는 아이템이 나타난다.
이렇다고 가정해보자.

대단히 이상하다.
그런데 이 게임기를 대하는 무수한 이들이 있다.
그리고 이들이 다 그런 내용을 그 상황에서 그런 관계로 얻게 된다.

그것은 지금만 그런 것이 아니다.
게임을 할 때마다 그런 내용을 반복해 대하게 된다.
또 게임화면도 그처럼 생생하다.
그리고 배경음악도 그렇다.

이 상황을 잘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 게임의 특정화면의 풍선과 같은 특정부분을 a 라고 표시한다.
그리고 커서를 놓는 것을 b 라고 표시한다.
그리고 그 때 나타나는 보물상자아이템을 C 라고 표시해보자.



글을 입력하다가 영문 표기 한번 하려 한다고 하자.
그러면 대단히 많은 오타를 경험한다.
그러면 입력 편의상 핫키를 이용하게 된다.

그런데 이 상황도 게임과 마찬가지다.

어떤 키를 누르고 shift 키를 누른다고 하자.
그러면 대문자가 나타난다.

현실 사정도 이와 다 마찬가지다.
종이에 불을 붙이면 종이에서 보이지 않던 연기와 재가 나타난다.
손을 마주치면 손에는 보이지 않던 손뼉소리가 난다.
봄에 땅에 씨를 뿌린다.
그러면 싹이 봄에 보인다.
그리고 여름에는 꽃이 보인다.
그리고 가을에는 열매가 나타난다.
이들은 모두 씨에서 볼 수 없던 내용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한다.
그러면 이로 인해 무량겁에 걸쳐 3 악도에 묶인다.
그리고 생사고통을 받는다.

이 사정이 다 마찬가지다.

여하튼 게임을 할 때 위와 같은 관계를 반복한다고 하자.
그래서 보물상자 아이템을 얻는 경험을 반복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를 다음과 같은 관계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a + b → C


이것이 간단한 연기관계의 표현이다.

그리고 이는 다음을 의미한다.

이상하기는 하다.
그리고 각 내용은 서로 엉뚱하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a 가 있는 그 상황에서 b를 누른다고 하자.
그러면 C 가 나타난다.

그런데 a 가 있는 그 상황에서 b 를 누르지 않는다고 하자.
그리고 다른 d 나 e 부분을 누른다고 하자.
그러면 C 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것을 반복해 경험한다.
이 내용을 위 식이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이 관계를 위와 같이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관계를 아주 넓고 길고 깊게 관찰한다고 하자.
그러한 끝에 다음 결론을 얻게 된다. .
그리고 그것이 바로 부처님이 제시하는 명제들이다.
즉 다음이다.

제행은 무상하다.
일체는 고다.
제법은 무아, 무자성이다.
열반은 적정하다.
일체는 공하다.

이 내용이다.


그런데 이 비유에는 다음 문제가 있다.
게임기는 오늘날 그렇게 만들어 낸다.
그래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게임기가 없는 상태라고 하자.
그런 경우는 무엇을 가지고 설명할 것인가.

이런 경우는 다시 다음과 같은 내용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즉, 꿈의 비유, 환사의 환술, 즉 최면술사가 행하는 최면
이런 내용으로 설명할 수 있다.

또 게임기에서 그렇다고 하자.
그런데 그깃이 현실과 무슨 관계인가.


그래서 비유는 어디까지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방편이다.
본 현실의 정체를 파악할 때는 이에 준해서 이해해야 한다.
비유는 논증 근거는 아니다.

그런데 이 비유를 통해 다음을 이해하게 된다.
즉 게임기에 갇힌 상황이라고 하자.
그 상황에서 게임기 안의 이런 관계와 상황을 본다.
그리고 이를 통해 게임기 밖의 사정을 이해한다.
그리고 다음을 이해하게 된다.
즉, 게임기 안 밖에서 그런 내용을 본래 얻을 수 없다.
이런 내용까지 이해하게 된다.

생사현실에서 연각승이나 성문승도 마찬가지다.
현실에서 살필 수 있는 연기관계가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현실의 사정을 파악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생사의 묶임에서 풀려나 벗어난다.
그래서 해탈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성문승과 연각승은 해탈신을 이룬다.
그러한 성인의 상태가 된다.


이를 게임으로 비유해 말한다고 하자.
그러면 게임 상황들로 인해 고통을 받는 상태가 있다.
그런데 그런 상태에서 벗어난다.


그런데 부처님이 다시 보살승을 제시한다.
이는 다음 내용이다.
그런 깨달음을 얻는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그 게임안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그 게임상태에서 그 상황에 묶여 고통받는 다른 중생이 있다.
그래서 이들을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한다.
이런 내용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서는 다음을 추가로 제시한다.
즉 본래 생멸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생사 즉 열반이다.
이런 내용을 추가로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이 차이를 이해하려 한다고 하자.
그러면 먼저 게임기 안에서 무수하게 반복해 대하는 관계가 있다.
그래서 이를 a + b → C 의 관계로 놓는다.
그리고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를 헤아려야 한다.

부처님이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이 게임기 상황 자체도 얻을 수 없다.
그리고 게임을 행하는 이들은 생멸이 있다고 여긴다.
또 어떤 아이템이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이들을 모두 본래 얻을 수 없다.
이렇게 제시한다.


그 사정은 다음이다.


일반적으로 게임기 화면의 한 부분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일정 부분을 묶고 나눈다.
그래서 일정 부분이 예를 들어 풍선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이런 분열 자체가 문제가 있다.

본래 거기에는 [그가 생각하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물론 다음은 사실이다.

그가 눈을 뜬다
그러면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이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가 다시 그런 내용을 대한다.
그리고 나서 일정 부분을 대하고 풍선이란 생각을 일으킨다.

→ 그런 가운데 이렇게 생각한다.
그런 부분이 곧 풍선이다. [X]

그러나 정작 거기에는 그가 생각하는 풍선이란 얻을 수 없다.

이는 예를 들어 다음과 같다.
라이터를 어떤 이가 생각한다고 하자.
그러면 매번 이어 담배라는 생각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사정 때문에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없다.
라이터라는 생각 속에 담배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X]
또 라이터는 담배다.[x]
이렇게 말할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다.

또 자세히 살핀다고 하자,

그가 풍선이라고 보는 부분이 있다.
이는 각 부분마다 각기 다른 색이 있는 점(화소)다.

더 나아가 그 화면 밖에서도 그런 풍선을 얻을 수 없다.
화면 밖에서는 그런 화면내용도 얻을 수 없다.
현실적으로 살펴보면 파일에 적힌 글자뿐이다.

어떤 풍선이던 보석상자던 마찬가지다.
무엇이 나타나고 없어진다고 말할 것 자체가
그 화면에는 본래 얻어지지 않는다,

다만 그러한 화면이 그렇게 나타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그런 분별을 행하는 것 뿐이다.
이 상황에서 망집을 일으키는 입장이라고 하자.
그러면 다음과 같이 여긴다.

자신이 풍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가운데 그런 생각 내용이 그 화면 부분에 있다.[X]
이렇게 여긴다.
그러면서 그 화면을 대한다.

이것이 문제다.



그리고 다시 다음처럼 여긴다.
그 화면의 본 바탕에서도 그 사정이 마찬가지다.[X]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다음처럼 말한다
무엇이 무엇때문에 생겨나고 멸한다.

그러나 [그렇게 말할 수 있는] a라는 내용 자체를 얻을 수 없다.

그래서 그 상황에 a 나 b 나 C 가 있다고 할 수 없다.
사정이 이렇다.
그래서 이시 대해 무엇을 제시할 도리는 없다.


그렇지만 사정이 그렇다고 아무런 내용도 제시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대로 방치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 사정을 스스로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서 일단 상대 입장을 받아들인다.
상대는 그런 a 나 b 나 C 가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이런 상대 입장을 일단 받아들인다.

그리고 상대가 사용하는 언어 표현이 있다.
그래서 방편 상 이들 표현으로 일정한 내용을 가리킨다.
그러면서 그에 대해 일정한 내용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점차 부처님의 깨달음으로 이끈다.

이런 취지다.




그리고 1 차적으로 다음을 제시한다
그런 내용에 대해 망상분별을 일으킨다고 하자.
그리고 집착을 갖는다.
그리고 열심히 커서를 누른다.
즉 업을 행한다.

그러면 그로 인해 대단히 심각한 고통을 받는 상태가 된다.
그래서 이런 점을 경고한다.

그래서 이 상황에서 벗어나오게 한다.

비유에서는 단순히 게임에서 파산하는 정도다.
하지만, 생사현실은 단순히 그렇지 않다.


생사현실에서 망집을 일으킨다.
그리고 업을 행한다.

그런 경우 처하게 되는 고통은 심하다.

현실에서 자신이 볼 때 대단히 끔직하게 고통스럽다고 보는 내용들이 있다.
예를 들어 축사에서 축생이 고통받는 상황과 같다.
그리고 그런 상태가 자신의 미래의 모습이기도 하다.

여기서 게임으로 비유하는 화면 상황은
생사현실과 같다.

예를들어 어떤 이가 눈을 떠 세계 각곳을 대한다.
그 경우 그 곳에서 겪는 수많은 비극과 고통의 내용에 해당한다. .

물론 그 자신은 이렇게 여긴다.
자신은 이런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래서 예외라고 여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리고 그것이 앞에서 말한 소떼에 대한 비유다.
지금도 그렇다.
그리고 과거도 그렇다.
수없이 그런 비극과 고통을 당한다.

그런데 소떼 무리는 다음 처럼 여긴다.
그것이 자신과 관련이 없다.
그리고 태연하게 풀을 뜯고 임한다.
이런 비유다.


2570-0121#

그래서 이 부분을 잘 음미해야 한다.
지금 자신은 그런 상태가 아니다.
그런 사정으로 이런 문제를 외면한다.
그리고 마냥 희희낙락하고 임한다.
그러면 대단히 문제가 많다.


여하튼 앞의 게임기 상황으로 다시 가보자.

눈을 뜬다.
그러면 일정한 화면을 보게 된다.
그리고 커서를 누른다.
그러면 또 일정한 다른 화면을 보게 된다.
각 주체가 그런 내용을 대한다.
그리고 풍선 부분에 커서를 갖다 댄다.
그러니 화면에서 보석상자가 나타난다.
한번도 아니고 매번 그런다.
이런 내용을 파악한다.
그리고 이를 다음처럼 기호로 표시한다.
a + b → C


그런데 그 상황은 마찬가지다.
부처님은 이를 다음처럼 제시한다.

그런 화면 내용을 보게 된다.
이러한 것도 사실이다.
그에 대해 각 부분이 풍선이라고 생각을 일으킨다.
또는 보석상자라고 생각을 일으킨다.
이러한 것도 사실이다.

- 그런데 정작 그 화면에 그처럼 생각하는 내용은 얻을 수 없다.
또 그 화면을 나타나게 한 본 바탕(디스크파일)에서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이처럼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리고 다음처럼 여긴다.

자신이 일정한 생각을 한다.
그래서 그 생각 내용이 화면 그 부분들에 각기 '들어 있다' [X]
그리고 그런 각 부분은 그런 내용'이다'[X]
그렇게 망집을 일으킨다.
그리고 계속 업을 행한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오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로 인해 3 악도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 상태로 무량겁에 걸쳐 생사고통을 받아나가게 된다.


그런데 그 게임기 상황에서 이 사정을 이해시키려 한다고 하자.
그 상황에 그 내용을 본래 얻을 수 없다.
그런데 각 주체가 이를 있다고 여긴다.
그런데 그 사정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라도 그 상대의 입장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상대가 그 상황에서 옳다고 보는 내용[법]이 있다.
이러한 내용을 일단 확립시킨다. [세제=세속제=세속 차원에서의 진리]
그리고 반대로 그 상황에서도 엉터리라고 할 내용[비법]이 있다.
이는 제거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다음을 이해시켜 나간다.
즉, 그 상황에 그런 것을 본래 얻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생멸이나 생사를 얻을 수 없다.
이런 내용을 이해시켜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정이 복잡하다.

게임기 화면에서 처음 다음 관계를 확립한다.
a + b → C 의 관계

게임기 화면의 각 부분이 있다.
이런 부분이 그가 이해하는 대로 풍선이라고 하자.
그리고 커서라고 하자.
그리고 보석상자라고 하자.

그리고 이를 a b C 로 각기 바꿔 표현한다.
그러면 a + b → C 의 관계가 그처럼 파악된다.

이 관계는 적어도 게임기 안에서는 무수히 반복된다.
게임기 안에서 이 관계를 확립한다.


그리고 이를 기초로 다시 다음 내용을 얻어낸다.

바로 그런 사정이 다음을 나타낸다.
-> 그런 a, b, C 를 본래 얻어낼 수 없다.
-> 그리고 그런 a + b → C 의 관계를 얻어낼 수 없다.


부처님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현실 상황에 각 주체가 있다고 여기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그런 내용을 본래 얻을 수 없다.
이러한 사정을 이해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현실에서 다음 관계가 있다고 여긴다.
a + b → C 의 관계

그래서 이런 입장을 일단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러한 내용을 일단 확립해 제시한다. ( 세속제 )


그리고 이제 이를 바탕으로 다음 내용을 제시하는 것이다.
바로 이 관게를 통해서 무상, 고, 무아, 무자성, 공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그 내용들이 실답지 않다.
그 내용들은 하나같이 집착을 갖고 대할 실다운 내용이 아니다.
또 그래서 그것을 붙잡고 임한다고 하자.
그러면 끝내 고통을 겪을 도리 밖에는 없다.
그래서 이런 관계를 통해서 이 사정을 잘 파악한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런 내용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관계를 다시 깊게 관한다고 하자.
그러면 해탈 열반의 상태도 이해하고 이를 수 있다.
이는 부처님이 이런 방편을 통해서 끝내 도달시키고 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그런 내용이 위 관계식에 그 내용이 다 담겨 있다.




mus0fl--Jean-Louis Murat - Le Temps Qu'il Ferait.lrc





[여담]🎉♦친구의 죽음
쉬는 동안, 다음 소식을 갑자기 듣게 되었다.
친한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직업이 의사다.
그런데 의사가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생각해보면 의사도 병에 걸리고 죽는다.
그래서 이상한 소식은 아니다.

지금 나이를 놓고 보면 조금 일찍 떠났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나이가 나이다.
그래서 또 그렇게 이상한 소식도 아니다.

청량리에서 갈아타나 종로에서 갈아타나 매 마찬가지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이 친구가 과거 오래전에 불교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그래서 본인이 갖고 있는 불교 기본 자료를 요청했다.
그래서 건네준 적도 있다.
그래서 그런 점에서 조금은 마음이 가볍기도 하다.

여하튼 이 글을 마쳐야 한다.
그런데 자꾸 길어지고 있다.
a + b → C 와 관련된 내용은 과거에 적은 적이 있다.
그래서 그 부분을 찾으면 링크를 걸고 싶다.
그래서 생략하고 넘어가고 싶다.
그런데 해당 부분을 지금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그냥 이 부분에 간단히 이어 살피려고 한다.

>>>



현실에서 매번 반복되는 관계가 있다.
이를 a + b → C 의 형태로 나타낸다.
그래서 현실에서 이런 관계를 확립했다고 하자. [세속의 진리=세속제]

일반적으로 망집에 바탕해서 이 내용을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렇게 이해하기 쉽다.
a + b → C 의 내용이 그런 형태로 대단히 많이 반복한다.
그래서 C 는 그렇게 매번 얻는다.
또 a + b → C 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들은 그런 사정으로 실다운 것이다. [X]
이렇게 이해하기 쉽다.

a + b → C 라는 연기(인과) 관계가 있다.
이들 내용은 그렇게 대단히 많이 반복한다.

그런데 바로 이 내용은 다음을 함께 제시한다.

그렇게 얻게 되는 C 가 있다.
이 C 는 바로 그런 사정으로 무상하다.
그리고 또 고이다.
그리고 또 무아 무자성이다.
또 그 관계를 떠난 본 바탕이 문제된다.
그런데 본 바탕에서는 그런C는 얻을 수 없다.
그리고 그 본 바탕은 얻을 수 없고 공하다.
이런 내용을 함께 제시하는 것이다.


물론 사실은 다음과 같다.
처음부터 그 각 부분에서 그런 a 나 b 그리고 C 자체를 얻을 수 없다.
그래서 그 각각의 생멸도 그렇게 파악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을 그처럼 있다고 가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내용을 받아들인다.
즉, 그 화면에 그런 a, b, C 내용이 있다.
그리고 이런 a, b, C 사이에 그런 관계가 있다.
이런 입장을 '가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면 그 바탕에서는 그런 식이 곧 다음을 나타낸다.
즉, 그 각 내용이 그런 사정으로 실답지 않다.
그리고 공하다.
등의 내용을 제시해준다.

이런 취지다.

그리고 불교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연기 즉 공
이런 내용이 바로 위와 관련된다.

먼저, 그 사정을 다음처럼 살펴보자.


- 무상 (영원하지 않음)

a + b → C 라는 식이 확립되었다고 하자.
그런데 이는 다음을 나타낸다.
그 C 는 a +b 라는 조건이 충족된 상황에서 나타난다.
즉, '없다'가 그렇게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무상한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바로 이 관계는 다음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 C 는 영원하지 않은 것이다



- 고

그리고 C가 좋은 내용이라고 하자.
이 경우 a + b → C 라는 식은 다음을 나타낸다.
현실에 a 만 있는 상태가 있다.
또는 b 만 있는 상태가 있다.
또는 d 나 e 등이 있는 상태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그것을 원한다고 하자.
그래도 그 C 를 얻을 수 없다.
때문에 이 상태에서 그런 C 를 집착하고 임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에 대한 갈증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C 를 얻을 수 없다.
그래서 그 상태로 고통을 겪게 된다.

한편 그 C가 이 관계에서 얻어진다고 하자.
그래도 그 C는 영원하지도 않다.
이미 이 내용을 앞에서 보았다.
그래서 그 조건이 해소된다고 하자.
그러면 결국 사라지게 된다.
이런 사정을 위 식이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이런 경우 그가 이에 집착하는 만큼 고통을 되돌려 받게 된다.
이런 사정을 나타낸다.

한편, 그 C 가 그 반대로 대단히 고통을 주는 것이라고 하자.
그러면 또 앞과 반대가 된다.
그런 관계에서는 그 C가 나타난다.
이로 인해 고통을 받게 된다.
또 그런 사정을 이해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로 인해 장래 발생한 고통에 대한 두려움 공포 불안을 겪게 된다.
이런 사정을 위 식이 나타낸다.



앞에서 다음을 제시했다.
C 가 무상하다.
그런데 결국 이는 곧 다음을 함께 나타낸다.
즉 이런 C 는 고통을 주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함께 나타낸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이 관계를 다음처럼 제시한다.
C 가 무상하다. -> 그래서 C 는 고통이다
이런 형태로 반복제시한다.

이것을 고고, 괴고, 행고라고 제시한다.
그 C 자체가 고통스런 것이라고 하자. 그러면 고고다.
그 C 자체가 좋다고 보는 것이라고 하자.
그러면 그것이 무상하다.
그래서 언젠가 사라지게 된다.
그러므로 고통을 주게 된다.

또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다고 하자.
그래도 역시 그 관계가 무상하다.
그래서 결국 다른 나쁜 상태가 나타나게 된다.
이런 사정을 의미한다.


물론 엄밀히 보면 다음과 같이 볼 수도 있다.
중간에 일부 좋은 측면이 있다.
좋은 내용도 그런 관계로 얻어진다.
이렇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생사현실에서 얻는 고통을 문제삼는다.
그리고 그 생사고통을 제거하고자 하는 입장이다.
그래서 그 생사고통이 어떤 과정으로 나타나는가에 초점을 둔다.

그런데 고통이 나타나는 사정이 위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내용을 징검다리 삼는다.
그래서 위 관계로 결국 고통을 얻게 된다.
이 측면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삶에서 이런 부분이 문제다.
그래서 이런 생사고통을 제거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기본 사정을 살피는 것이다.


그리고 1차적으로 다음을 제시한다.
대부분 현실에서 있다고 보고 집착하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이들 내용이 이처럼 무상하다.
그래서 끝내 고통을 주게 되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이에 대해 집착을 갖고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런 내용을 제시하는 것이다.


반대로 다음 내용도 제시한다.
현실에서 위와 같은 사정을 잘 파악한다고 하자
그리고 그런 내용에 대해 갖는 집착을 제거한다.
그러면 그 집착으로 인해 겪는 고통을 제거하게 된다.
또 한편 그런 집착에 바탕해 임하지 않는다.
그래서 악업을 행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그로 인해 받는 고통도 미리 예방할 수 있다.


- 무아 무자성 참된 실체없음

한편 a + b → C 식 자체는 다음을 나타낸다.
이 식 자체가 그런 관계에서 그런 C 를 반복해 얻게 된다.

그런데 이런 내용이 다음을 나타낸다.
그 C 는 실답지 않다.
그래서 꿈과 마찬가지의 성격을 갖는 것이다.
그래서 영원불변한 내용이 아니다.
그리고 고정된 참된 진짜의 내용이 '아니다.'
이런 내용을 나타낸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다음을 제시한다.
이런 한 부분이 이와 같음을 파악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로써 다음도 파악하게 된다.
현실 일체가 모두 무아 무자성이다.

물론 이 부분은 좀 더 자세한 추가 설명이 필요하다.
하지만, 위와 같은 내용에 기초해 다음을 제시하게 된다.
-> 제법무아


- 열반적정

한편, a + b → C 식 자체는 다음을 나타낸다.
이 C 는 좋은 내용일 수 있다.
또는 고통스런 나쁜 내용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하튼 그런 관계에서 얻어지는 내용이다.

한편, 위와 같은 관계를 떠난 본 바탕의 영역을 생각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 식은 다음을 나타낸다.
이들 내용은 그런 상태에서는 얻어지지 않는다.
이런 내용도 나타낸다.

따라서 이런 사정으로 다음을 제시하게 된다.
그런 관계를 떠난 '본 바탕의 영역'을 생각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내용 일체를 얻을 수 없다.
그래서 본 바탕은 생사고통을 벗어난 청정한 니르바나다.
이렇게 제시하게 된다.



- 공

한편 a + b → C 식 자체는 다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C 는 그런 관계로 그런 조건에서 얻는 임시적 내용이다.
그런데 본 바탕은 그런 관계를 모두 떠나서 그대로 있는 내용이다.
그래서 이들 내용은 본 바탕의 지위에 있는 내용이 '아니다.'

한편, 이런 관계를 떠난 본 바탕을 생각한다고 하자.
이 경우 각 주체는 이런 형태로 내용을 얻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 각 주체의 입장에서는 끝내 그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그런 본 바탕이 되는 실재는 언설 분별을 떠난다.
다만 언어표현을 전혀 하지 않으면 이 사정을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서 방편상 의미를 평소 갖지 않는 공이라는 표현을 빌린다.
그래서 본 바탕은 공하다고 방편상 표현하게 된다.

그래서 이 관계식은 결국 본 바탕이 공함을 나타낸다.




😊♦현실의 인과관계가 나타내는 서로 다른 측면들


a + b → C 라는 관계가 현실에서 반복한다.

그런데 이런 내용은 결국 위와 같은 내용을 함께 나타낸다.
위와 같은 C 나 위 관계 자체가 실답지 않다.



그래서 여기서 기본적으로 두 측면을 이해해야 한다.

게임기 비유를 놓고 보자.

1 게임 안에서는 어떤 내용이 어떤 관계를 통해 무수하게 반복한다.
이런 측면이 있다.

2 반면 그 내용은 동시에 다음 내용을 함께 나타낸다.
- 즉 게임기 밖의 영역 등에서는 그런 내용을 본래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게임기안의 내용은 실답지 않다.
그리고 또 무상한 내용이다.

3 그래서 그에 집착을 갖고 대할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


1,3 은 같은 측면에서 행하는 서로 다른 방향의 내용이다.
그래서 크게 [1,3]과 2 의 두 측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게임기의 비유를 현실에 적용해 보자.

게임기 비유에서는 다음을 일반적으로 잘 이해한다.
- 게임 내용은 실다운 것이 아니다.
마치 꿈과 같다.
환영과 같다.
최면술사의 최면과 같다.


다만 현실은 이와 조금 다르다.
성격은 마찬가지다.
그래도 현실에서 각 주체는 다음처럼 여긴다.

현실이 일정한 형태로 반복한다.
그런 사정으로 이들 내용이 대단히 실답다.
그래서 집착을 갖고 대한다.
또 그에 바탕해서 업을 행한다.
때문에 이로 인해 생사고통을 반복해 받아나가게 된다.
이런 차이가 있다.


그래서 위 비유를 현실에 잘 적용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결국 다음 내용을 이해해야 한다.

- 현실 내용은 실답지 않다.
그리고 이런 이해를 통해 생사고통에서 벗어나야 한다.

따라서 현실의 인과를 통해 다음 두 측면을 함께 이해해야 한다.

1 본 바탕에서 그런 현실내용을 얻을 수 없다.

2 그런데 그 바탕에서 망집을 일으킨다고 하자.
그리고 악업을 행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로 인해 생사고통을 과보로 받게 된다.
[혹 - 업 - 고의 관계]

이런 두 측면의 내용을 함께 제시하는 것이다.


3 그리고 또 이는 다음 사정을 제시한다.
생사현실에서 그런 상태를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그런데 업의 장애가 그를 생사현실에 묶이게 한다.
그래서 이를 위해 업의 장애를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그 근본원인이 망집이다.
그래서 망집을 제거해야 한다.
그러면 그런 수행을 닦아야 한다.
그러면 이로 인해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런 관계를 다시 제시해준다.




즉 생사현실에는 다음 관계가 있다.

1 본 바탕에서는 그 하나하나 모두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런 상태에서 다시 다음 관계가 나타나는 것이다.

2 망집번뇌 - 업과 - 그로 인해 받게 되는 3 악도에서의 생사고통
3 수행 -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남 - 무량한 복덕 지혜의 구족

그래서 인과식은 이런 측면을 함께 제시한다.

그래서 수행자는 이들 측면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잘 관해야 한다.

1 우선 본래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2 그런데도 현실에서 망집을 일으키고 생사고통을 받아나간다.
그래서 이들 측면을 이해해서 다시 다음을 성취해야 한다.
3 생사고통을 받게 하는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한다.
또 다른 한편 각 주체가 그런 상태에서 생사고통을 받는다.
그것은 다른 중생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먼저 수행자 자신부터 그런 생사고통을 잘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 망집을 잘 제거한다.
그리고 그런 기초에서 다른 중생을 고통에서 또 벗어나게 해야 한다.
그래서 중생을 잘 제도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구족해야 한다.
그래서 이를 위해 수행을 닦아야 한다.
그리고 이를 무소득(얻을 바 없음)을 방편으로 정진해야 한다.




mus0fl--Emmanuelle Seigner - Dingue.lrc





[여담]🎉♦내용이 길어져 부담된다.





😊♦ 불교의 기본 명제와 인과의 관계와 수행

불교 내에서 제시되는 기본 명제가 있다.
무상, 고, 무아, 무자성, 열반적정, 공
이런 내용들이다.

그런데 그런 내용이 제시되는 사정이 있다.

이를 인과[연기]관계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명제를 바탕으로 수행에 임한다.

그러한 불교 입장으로 [1] [2] [3] [5] 의 형태가 있게 된다.
그런데 이런 차별은 중생의 상태 때문이다.


현실에서 그 내용을 본래 얻지 못한다.
그런데 중생은 이러한 내용을 다음처럼 여긴다.
그러한 내용이 현실에 있다. [X]
그리고 그 생멸과 생사가 있다. [X]

이처럼 잘못 여긴다.

그러므로 본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이해시켜야 한다.
그래서 일단 중생과 눈높이를 맞춘다.
그래서 상대가 이해하는 내용을 제시한다.
그런 가운데 이를 통해 다음을 먼저 이해시킨다.

그 일체는 무상하다.
그리고 고통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무아 무자성이다.
그리고 그 일체가 본래 열반 적정의 상태다.
그리고 본 바탕의 상태는 공하다.

이와 같이 제시한다.

그래서 이런 내용을 잘 이해하도록 한다
그래서 현실에서 망집을 제거하게 한다.
그리고 그에 바탕해 행하던 악업도 중단시킨다.
그리고 수행을 통해 쌓아놓은 업의 장애를 제거한다.
그래서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한다.
그래서 해탈과 니르바나의 상태에 이르게 한다.



😊♦성문승 수행

처음 기본 수행을 시작한 상태라고 하자.
그런 바탕에서는 앞의 [1]의 경우와 같은 방식을 취한다.

우선 다음을 먼저 구분한다.
현실의 본 바탕이 되는 진여 실재가 있다.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에서는 감각현실과 관념분별을 얻는다.
그래서 이들을 구분한다.

그리고 다음처럼 이해한다.
진여 실재는 그런 생사를 얻을 수 없다.
그래서 본래 청정한 니르바나다.
그리고 생사현실에서 감각현실과 관념분별은 얻는다.
이는 본래 실답지 않다.
그런데 망집을 일으킨다.
그리고 업을 행한다.
그리고 생사고통을 받아나간다.
그래서 이 부분을 문제로 본다.

그래서 다시 다음을 수행목표로 하게 된다.
현실에서 일으키는 내용 일체를 모두 제거한다.
그래서 회신멸지의 상태에 든다.
그래서 이들 현실내용을 전혀 얻지 않는 상태가 된다.
이를 목표로 한다.



😊♦ 성문승 수행이 갖는 문제점


그런데 이처럼 생사현실을 모두 제거한다.
그리고 3계 밖으로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하자.

물론 성문승의 회신멸지의 상태도 무방하다.
그래서 생사현실 내용 자체를 얻지 않는다.
그런 상태가 되어도 무방하다.


이런 경우 원칙적으로 다음내용들이 문제가 된다.


1 - 고통받는 중생을 외면함

우선 그렇게 임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 자신은 생사고통을 벗어난다.
그러나 그 상황의 생사현실에 다른 중생이 남아 있다.
이들은 여전히 망집에 기초해 생사고통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들 중생은 방치하게 된다.

그런 상태에서 자신 혼자만 니르바나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이를 소승이라고 표현하게 된다.
즉 자신 혼자만 타고 벗어난다.
그런 작은 수레라는 뜻이다.



2- 생사현실도 본래 니르바나임 -따라서 피할 필요가 없음

또 하나 다음이 문제된다.

현실에서 감각현실과 관념분별을 얻는다.
이들은 망집을 일으키는 기본 재료가 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재료가 아니다.
다음이 문제다.
이를 재료로 관념영역에서 망집을 일으킨다.
그리고 또 그에 바탕해 업을 행한다.
그리고 생사고통을 받아나간다.
이런 부분이 문제다.

감각현실과 관념분별은 본래 실재와 함께 무아 무자성이다.
즉 참된 실체가 그 안에 없다.
그래서 실답지 않다.

그리고 그 재료 자체만 살핀다고 하자.
그러면 이들도 역시 진여 실재 본 바탕을 떠나 얻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이 재료 자체만 놓고 본다고 하자.
그 경우에는 역시 여기에서 실다운 생사고통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좀 더 깊게 생사현실을 관한다고 하자.
그러면 생사현실 내용 자체는 본래 니르바나다.
즉 생사고통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본래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난 상태다.
그래서 곧 청정한 니르바나다.



또 한편 생사현실에서 다른 중생을 제도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적극적으로 생사현실에 들어가 임해야 한다.

그 경우 먼저 다음을 잘 이해해야 한다.
즉 생사현실 일체가 모두 청정한 니르바나다.
이런 사정을 잘 관해야 한다.
그리고 여여하게 생사현실에 임해야 한다.
이런 자세가 요구된다.

다음 사실을 이해한다고 하자.
생사 현실이 본래 니르바나 상태다.

즉 그런 상태에서는 다음을 깨닫게 된다.
이들 현실 내용 재료 자체는 이런 사정으로 본래 니르바나다.
즉 그런 생사고통을 본래 얻을 수 없다.
그래서 본래 청정한 니르바나의 상태다.
이런 사정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런 상태에서 다른 중생을 제도하고자 한다.

이들 중생은 망집을 일으켜 임한다.
그래서 생사고통을 받아 나간다.

그런데 이런 중생을 제도하려 한다고 하자.
그러면 일단 눈높이를 그런 중생에 맞춘다.
그래서 중생이 있는 생사현실에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 생사현실 안에서 그런 중생을 제도할 방편을 갖춰야 한다.
그래서 먼저 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구족해야 한다.

사정이 이와 같다.
따라서 진여 실재만 니르바라라고 고집한다고 하자.
그러면 곤란하다.
그러면 생사현실에 남아 있는 중생을 외면하게 된다.




3- 수행목표나 방안에 대한 가르침에 대한 집착을 가짐

처음 이런 기본 가르침에 바탕해 수행한다고 하자.
그러면 세속에서 일으킨 망집과 업을 제거한다.

그러나 기존의 망집을 다른 부분으로 옮겨 오는 경향이 있다.
즉, 이들은 수행을 통해 부처님이 제시한 가르침에 다시 집착한다.
즉 부처님이 수행목표와 수행방안을 제시한다.
그런데 이들에 다시 집착한다.
그래서 기존의 망집을 이 부분에 옮겨 오게 된다.
그래서 다시 이 부분이 문제된다.

그것이 앞에서 [1]이나 [5] 의 유형으로 제시한 각 입장들이다.


예를 들어 [5]의 경우를 살펴보자.
수보리 존자가 그런 내용을 본래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그러면 다음처럼 여긴다.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런데 이 경우에 다시 다음과 같이 오해한다.
즉 '수보리 존자가 제시한 그 명제'가 있다.
이 명제만은 실답게 존재한다.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다.







😊♦ 보살승 수행의 근거 - 생사 즉 열반

원칙적으로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꿈이 실답지 않다고 하자.

그러면 꿈 자체를 아예 문제삼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꿈 자체를 꾸지 않아도 무방하다.
예를 들어 꿈 속에서 황금을 얻는다
또는 꿈 속에서 황금을 잃는다.
그런데 이들 어느 경우나 다 의미 없는 것이다.
이렇게 여길 수 있다.

그래서 꿈과 같은 생사현실에 들어가 임한다고 하자.
그래도 이 내용을 이해한다고 하자.
그러면 현실도 무방하다.
그래서 굳이 성문 연각승처럼 생사현실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
이렇게 이해하게 된다.



생사현실이 꿈과 같음을 이해한다.
그래서 중생제도를 위해 생사현실에 들어가 임한다고 하자.
그러면 현실도 무방하다.


그래서 그런 측면에서는 다음과 같이 제시하게 된다.
이들 재료 자체 역시 본래 생사고통을 벗어난 것이다.
즉 현실 내용도 그 자체는 본래 생사고통을 벗어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또 다음처럼 제시한다.
생사현실 즉 열반


수보리 존자는 다음처럼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본 바탕에서만 사정이 그렇다. [X]
이렇게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수보리 존자가 행한 언설이 있다.
이런 언설 자체도 그렇다.
이렇게 제시하는 것이다.

이렇게 경전에서 제시한다.
현실에서 오고감이나 생멸을 얻을 수 없다.

그런데 이 말은 다음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본 바탕인 진여의 영역에서만 그렇다. [X]
이렇게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다음을 제시하는 것이다.
현실에서 눈을 뜬다.
그래서 거리에서 영희가 오고 가는 모습을 본다.
그러한 상황 그 자체에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이런 측면에서 다음과 같이 제시할 수 있다.
이들 재료 자체는 모두 청정한 니르바나다.
즉 현실 내용은 그 자체 그대로 니르바다.

이렇게 제시할 수 있다.


여기서 망상분별 부분은 다음이다.

일정한 감각현실을 얻는다.
그리고 관념분별을 일으킨다.
이 때 관념영역에서 다시 다음처럼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즉, 그런 사정 때문에 다음처럼 생각하게 된다.

- 감각현실 영역에 그런 관념분별에 해당한 내용이 그런 형태로 '있다'. [X]
- 더 나아가 실재 영역에도 그런 내용이 그렇게 '있다'.[X]
- 그래서 실답다. [X]

이렇게 잘못 여긴다.
그리고 현실을 대한다.
이 부분이 문제다.




- 관념분별 역시 니르바나임


이 때 한 주체가 얻은 감각현실과 관념분별이 있다.
이들은 이런 망집을 일으키는 재료다.
그러나 그 자체에는 그런 문제는 본래 없다.

즉 관념분별로 망집을 일으킨 상태라고 하자.
이 경우 자신이 생각하는 영희가 있다.
이 경우 이런 관념을 다음처럼 생각한다.
즉 이런 관념은 현실에서 눈을 떠 얻는 그런 감각현실 내용을 구체적 구성부분으로 갖춘다. [X]
이렇게 잘못 여긴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지 않다.
그런 관념분별 자체에는 그런 감각현실이 없다.
즉 구체적 자상에 해당하는 그런 감각현실은 들어 있지 않다.

예를 들어 영희가 100M 앞에서 달려온다
그러면 매 순간 그 크기나 모습 형테가 다 다르다
그런데 이것을 모두 영희라고 여긴다고 하자.
이 경우 매순간 보게 되는 영희의 각기 다른 모습이 있다.
이는 영희의 구체적 자상에 해당한다.
즉 매순간 얻는 감각현실이 그 관념과 관련한 구체적 자상이다.

그런데 그 관념분별 자체만 놓고 본다고 하자.
그러면 그 관념분별 안에는 그런 구체적 자상은 없다.
그래서 공허한 내용이다.
그래서 관념내용 그 자체는 본래 즉 실답지 않는 내용이다.


그래서 관념 안에서는 본래 실다운 생사고통도 함께 얻을 수 없다.
관념내용은 본래 그 구체적 자상이 없다.
그래서 본래 실다운 생사고통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의미에서 이들 관념 영역은 본래 니르바나다.
다만 망집을 일으킨다.
그러면 그런 상태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 본래 니르바나인 분별과 망상분별의 관계


그래서 망집을 일으킨 상황이라고 하자.
그러면 그렇지 않다고 여긴다.
그런 가운데 망집에 바탕해 감각현실 부분을 취한다.
그리고 이를 붙잡고 접착한다.
그리고 그런 기초에서 업을 행한다.
그로 인해 감각현실 영역이 엉망으로 된다.

이 경우 이 관계를 다음처럼 추리할 수 있다.
이렇게 업을 행한다고 하자.
그러면 본 바탕의 h 가 영향을 받는다
또 이로 인해 다시 그 결과를 감각현실로 얻게 된다.

여하튼 그 업으로 인해 감각현실 영역이 엉망으로 된다.
그리고 그로 인해 극심한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에 처한다.
그리고 이 부분이 문제다.

그래서 이 망집이 문제된다.
이 부분이 근본 원인이다.

이 상태에서 이 관게를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그래서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그러면 반대로 실상을 잘 꿰뚫어 이해한다.
그런 가운데 현실을 넓고 길고 깊고 관한다.
그래서 망집을 제거한다.




😊♦ 생사 즉 열반관을 기초로 한 중생제도


수행자가 중생을 제도하려 한다고 하자.
그래서 생사현실에 임한다.

이 경우 수행자가 다음 사정을 먼저 잘 이해한다.
생사현실이 본래 니르바나다.



그런 가운데 다시 중생에 눈높이를 맞추어야 한다.
그래서 중생을 제도할 방편을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필요한 방편을 갖추어야 한다.

따라서 생사현실에서 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구족해야 한다.

또 이를 위해서는 수행자 스스로 자신의 업의 장애부터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기본 수행덕목부터 잘 성취해야 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계의 항목을 잘 성취해야 한다.
즉 보시- 정계 - 안인 - 정진과 같은 항목이다.


이는 다음이다.
좋음(+)을 아낌없이 베푼다. [보시]
그리고 각 중생이 집착하는 좋음이 있다.
이를 침해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쁨(-)은 가하지 않는다. [정계]
그리고 자신이 반대로 나쁨(-)을 받는다고 하자.
이런 경우는 상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리고 평안히 참는다. [안인]
그리고 이런 자세로 꾸준히 수행해 나간다. [정진]


그런데 이는 다음 입장은 아니다.
본래 그런 것이 거기에 실답게 있다. [X]
그래서 그런 수행이 필요하다. [X]
또 그런 수행을 통해 실제로 얻는 복덕 자량이 실답게 있다. [X]

이런 의미가 아니다.
다만 중생을 제도하려면 이런 내용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수행하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고 하자.
그러면 처음 상태에서 혼자 머물게 된다.
그래서 이는 마치 다음 상태와 같다.
병원에 수많은 환자가 있다.
그런데 혼자 건강하고 병이 없다.
그리고 그런 상태로 마냥 머문다.
그리고 다른 환자는 치료하지 못한다.
그래서 병원에 있는 나홀로 의사처럼 된다.

그런데 이런 상태에서 환자를 치료하려고 한다고 하자.
그러면 위와 같은 노력이 필요한 것 뿐이다.



반야바라밀다로 관한다고 하자.
그러면 다음처럼 제시하게 된다.
그런 것을 일체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중생을 제도하려 한다고 하자.
이들 중생은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받고 있다.
그래서 이를 제도하려면 수행자가 생사현실에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이들 중생에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그래야 치료가 시작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생사현실에서 수행자부터 수행을 해야 한다.
그래서 수행자 자신부터 업의 장애를 제거해야 한다.
업의 장애가 있으면 자신부터 생사현실에 묶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사현실에서 중생을 잘 제도하기 위한 방편 수단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서 복덕자량을 구족해야 한다.
또 이를 위해서는 스스로 보시를 행하고 계를 지켜야 한다.
그래야 생사현실에서 스스로 복덕을 구족할 수 있다.

또 그런 바탕이 되어야 다시 지혜 자량을 원만히 구족할 수가 있다.
그래야 생사현실에서 비로소 중생을 제도해 나갈 수 있게 된다.
그런 사정 때문에 수행을 행하는 것이다.

본래 이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래도 생사현실에서 이런 수행을 행한다.
그 사정은 위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처음 [1]의 입장과는 차이가 있다.


그런 사정으로 다음은 바람직하지 않다.
수행자가 회신멸지의 상태에 들어간다.
또는 생사현실에 들어온다
그래도 자신 혼자만 니르바나 상태로 머문다.
그리고 중생을 위한 수행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중생을 방임한다.
그리고 중생을 망집에서 벗어나게 하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에 대해 일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런 것은 모두 중생제도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수행자가 중생제도를 위해 수행한다고 하자.
그래서 수행자가 수없이 생사를 받는다.
그리고 수없이 중생들에게 설한다고 하자.

그렇지만, 다음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 상황에서도 본래 이런 현실 내용 자체에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런 가운데 그에 대해 상을 취하지 않는다.
그리고 집착을 갖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취지로 이와 같은 수행을 해 나가야 한다.




불기2570-0121#



끝으로 [2]의 유형으로 제시한 입장
즉, 악취공견의 입장과의 차이를 또 살펴야 한다.

이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는 경우다.

일체가 공하다.
그러므로 선도 얻을 수 없다.
그리고 악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아무 것도 행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이렇게 하거나 저렇게 해도 무방하다.
망집상태에서 행하던 방식대로 계속 임해도 된다.
더 나아가 오히려 더 극심하게 악을 행해도 된다.
수행을 해도 무언가 얻을 것이 있다[유소득]고 집착한다.
그런 가운데 수행을 한다.
그래도 무방하다.

이렇게 입장을 취하는 형태다.

일체가 차별없이 그 본 바탕이 공하다.
또 현실도 본래 그런 내용을 거기에서 얻을 수 없다

이 측면은 옳다.

그리고 그 측면을 취한다고 하자.
그러면 다음 입장을 취하기 쉽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사정이 그러하다.
그런데 수행자 자신 뿐만 아니라
일반 중생은 그런 재료를 바탕으로 망집을 일으킨다.
그리고 업을 행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생사고통을 받아나간다.

이 부분이 문제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사정으로 다음이 필요했던 것이다.
즉, 위와 같은 내용을 기본적으로 관한다.
그리고 현실 일체에 대해서 집착을 제거한다.
그리고 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위와 같은 입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반문하게 된다.
사정이 그러하다.
그런런데 왜 하필이면 행하기 힘든 수행을 그렇게 행하는가.
이처럼 반문하게 된다.

그러나 [3] 의 입장에서는 이를 반대로 반문하게 된다.








[img2-49] [그림] - 이하 아래 부분은 현재 [작성, / 표현교정, 수정, 보완/ 문단 재배치 순서 정리 등 ] 작업중입니다. -
작업 시점 2563_1223_010821



그 입장이 기본적으로 옳다
그래서 현실 일체가 다 차별이 없이 공하다.
그래서 어차피 차별을 얻을 수 없다.
그러한 상태에서 왜 하필이면 악행을 행하는가.
그리고 수행을 행하지 않는가.

중생이 생사현실에서 고통을 받게 된다.
그 자신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중생을 제도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차별이 없이 공하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굳이 지옥과 같은 상태에 들어가는가.
그리고 그 상태에서 다음처럼 고집하는가.
즉, 그것이 차별없이 공하다 그래서 무방하다.
이렇게 고집하는가.

그리고 어차피 차별을 얻을 수 없다.
그런데 왜 생사현실에서 무량한 복덕과 지혜자량을 구족하지 않는가
그리고 불국토를 장엄하지 않는가.
그리고 중생을 제도하지 않는가
그리고 성불하지 않는가.
왜 그러한 방안을 취하지 않으려 하는가.

이왕이면 그런 방향이 낫지 않은가.
이렇게 반문하게 된다.


그래서 다음 내용을 대한다고 하자.
일체가 공하다.
이런 경우 위와 같은 입장을 주의해야 한다.

수행자는 본 사정이 그렇다는 것을 자신은 이해한다.
그래도 생사현실에서 고통받는 중생의 입장이라고 하자.
그런 경우 그렇게 그 상황을 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부분을 문제로 보아야 한다.
그런 가운데 중생제도를 위해 생사현실에 임한다.
그리고 생사현실에서 중생의 눈 높이에 맞춰야 한다.
그리고 그에 바탕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수행을 행하여야 한다.
이런 수행은 중생의 입장에서는 행하기 힘들다고 여긴다.
그러나 수행자는 이런 수행을 잘 성취해야 한다.
그래서 복덕 자량과 지혜자량을 얻는다.
그리고 불국토를 장엄한다.
그래서 중생을 제도해 간다.



즉, 생사현실에서 감각현실과 관념분별을 마찬가지로 얻는다.
그러나 또 한편 위와 같은 사정을 잘 관한다.
그래서 다음을 이해해야 한다.
이들은 본래 얻을 바도 없다.
그런 것이 실답지 않다.
그래서 집착할 바가 없다
이런 사정을 잘 이해한다.
그래서 현실에 임해야 한다.

생사현실에 들어간다고 하자.
그러면 망집에 바탕한 중생의 상태와 같아진다.
그래서 그 수행자도 여전히 실답지 않은 허공의 꽃을 보게 된다.

그러나 앞과 같은 바탕에서 다음을 이해한다.
즉, 그것이 실답지 않은 허공의 꽃임을 이해한다.
그러한 가운데 그것을 대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바탕에서 다시 수행에 임해야 한다.
그래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방편을 구족해야 한다.


그런데 일체가 공하다고 이해한다.
그런 가운데 위와 같이 임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곤란하다.

원칙적으로 그 내용이 잘못은 아니다.
그래서 본래 지옥과 극락이 둘이 아니다.
그래서 이에 차별을 얻을 수 없다.
그런데 하필 매번 지옥과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 사정은 다음이다.
이것이나 저것이나 어차피 차별이 없다고 여긴다.
그런데 한편 그가 기존에 갖던 망집을 바탕으로 행하던 내용이 있다.
그런 가운데 이들 내용은 쉽게 행한다.
그리고 수행방안으로 제시하는 내용이 있다.
이들은 또 도무지 행하기 어렵다고 여긴다.
그리고 행하려 하지 않는다.

그 주장대로 이것이나 저것이나 차별을 얻을 수 없다.
그런데 바로 이런 사정으로 매번 지옥에 처하게 된다.

그것이 중생제도를 위해 부득이하다고 하자.
그러면 그 취지가 인정이 된다.
또 불퇴전위에 이른 수행자라고 하자.
그러면 이런 방편을 통해서도 중생을 제도하려고 임하게 된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다.
그런 가운데 잘못된 이해를 한다.
그리고 위와 같이 임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것은 곤란하다.


그리고 그런 경우는

이론적으로 다음과 같이 제시할 수 있다.
지옥도 차별없이 공하다.

그래서 무방하다고 여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어떠한가.
자신의 손 하나만 톱으로 잘려진다고 하자.
그래도 평안히 임하지 못하게 된다.
공함을 자세히 이해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현실적으로 당장 실험을 해본다고 하자.
그런 경우 어느 수행자라도 그것이 쉽게 잘 안 된다.
이러한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사실 다음과 같다.
어차피 차별없이 공하다는 입장을 취한다.
그러면서도 수행을 외면한다.
생사현실에서 이는 힘들다고 여긴다.
그리고 자신이 평소 망집에 바탕해서 임하던 형태대로 임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 상태에서 악업을 행한다.
그래서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에 처한다.
그러면 그 이론처럼 임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원칙상으로는 생사 즉 열반이라고 제시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경우는 생사즉 열반의 상태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열반 즉 생사]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즉 본 바탕은 원칙적으로 그런 생사고통을 얻을 수 없는 니르바나다.
그러나 그렇게 잘못 이해한다.
그리고 함부로 업을 행한다.
또는 무언가 얻을 것이 있다고 집착한다.
그러한 가운데 수행을 행한다.

그러면 다음과 같이 된다.
현실은 모두 원칙적으로 니르바나와 차별없는 상태다.
그런데 그 현실에서 생사고통을 받는 상황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여기고 대하게 된다.

또 일반 중생도 이로 인해 생사고통이 더욱 증폭된다.
그런 상태에 처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입장은 주의해야 한다.






위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의 입장에 대해서는 다음을 제시하게 된다.
- 생사현실도 곧 청정한 니르바나다.
이런 내용을 제시하게 된다.

[2] 의 입장에 대해서는 이렇게 제시하게 된다.

어차피 차별없이 공하다.
그런데 왜 그러한 바탕에서 하필이면 수행하지 않는가.
즉, 무량한 복덕과 지혜를 구족하지 않는가.
그래서 중생을 제도하지 않는가.

이렇게 제시할 수 있다.

[4]의 입장에 대해서는 다음처럼 반문할 수 있다.
망집을 없애기 위해 제시한 시설 방편이다.
그런데 왜 다시 이에 망집을 일으키는가?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5]의 입장에 대해서는 이렇게 할 수 있다.
처음부터 부처님이 제시한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한다.
또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한 외도의 입장이라고 하자.

그 경우 망집을 제거하는 방편이 있다.
이를 상대의 상태에 맞춘다.
그래서 골고루 잘 적용해야 한다.












>>>



[여담]🎉♦부족하지만, 이렇게 마치기로 한다.

올려진 노래에서 다음 이야기가 연상이 된다.
강도가 들어와 맞고 줄 것인가
아니면 그냥 줄 것인가.


어차피 차별없이 공한 바탕이다.
그런 바탕에서 끔직한 생사고통을 겪는다.
그리고 난 후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는다.
그리고 수행해 나간다.

또는 생사고통을 겪는 일을 생략한다.
그리고 일찍 신속하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수행해간다.

이런 메세지를 전한다.
그처럼 시감상하게 된다.
물론 이런 내용은 본래 그런 노래에서 본래 얻을 수 없다
그러나 그런 내용을 전한다고 시감상하게 된다.
그것이 수행에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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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부분 불기2570-01-21-표현교정및 재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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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hvj4558

◈Lab value 불기2562/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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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담 ♥겨울등산훈련
















































하루에 과거에 올린 20 개 페이지를 살펴보기로 계획을 했는데 현실적으로 대단히 어렵다. 
특히 요즘 식사를 하고 나면 식곤증이 몰려와서 더 힘들다. 


일단 시간대를 오가면서 조각글을 작성하기에 
조금 쉬었다가 이어나가기로 한다. 
오늘은 24 일인데 여하튼 글을 마쳐야 하기 때문에 
다시 한번 방문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에 체계가 바뀌었다. 
소제목을 달지 않으면 현재 편집중에서 일단 마쳐도 
다시 old 보관창고로 옮겨가게 될 뿐이다. 
나중에 소제목을 붙여서 정리가 되기까지는 별 차이가 없다. 
나중에 소제목을 붙여 정리할 때는 지금 이 부분과 같은 부분은 
따로 삭제되거나, 적당한 곳으로 재배치되고 
소제목을 붙일 내용에 맞게 정리하게 된다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일단 내용은 마쳐야 한다고 보고 조금 더 쉬었다가 
다시 돌아오기로 한다. 










문서정보 ori http://buddhism007.tistory.com/5300#4558 
sfed--도행반야경_K0006_T0224.txt ☞도행반야경 제1권
sfd8--불교단상_2562_12.txt ☞◆vhvj4558
불기2562-12-22
θ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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