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Ver. 2501112501118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Tags
- 증일아함경
- 잡아함경
- 백유경
-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
- 대반야바라밀다경
- 반야심경
- 마하반야바라밀경
- 대승기신론
- 무량의경
- 아미타불
- 유마힐소설경
- 수능엄경
- 중아함경
- 마명
- Japan
- 대방광불화엄경
- 대지도론
- 금강삼매경론
- 장아함경
- 가섭결경
- 유마경
- 종경록
- 묘법연화경
- 원각경
- 정법화경
- 마하승기율
- 방광반야경
- 대반열반경
- 대방광불화엄경60권본
- 유가사지론
Archives
- Since
- 2551.04.04 00:39
- ™The Realization of The Good & The Right In Wisdom & Nirvāṇa Happiness, 善現智福
- ॐ मणि पद्मे हूँ
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3-07-28_마하반야바라밀대명주경-K0021-001 본문
『마하반야바라밀대명주경』
K0021
T0250
대명주경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안내
○ 해제[있는경우]
● TTS 음성듣기 안내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마하반야바라밀대명주경』 ♣0021-001♧
대명주경
♥아래 부분은 현재 작성 및 정리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마하반야바라밀대명주경(摩訶般若波羅蜜大明呪經)
요진(姚秦) 천축(天竺)삼장 구마라집(鳩摩羅什) 한역
최봉수 번역
관세음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大)를 행할 때에 5음(陰)이 공함을 비추어 보시고 모든 괴로움과 액난을 건너셨다.
사리불(舍利弗)아,
색(色)이 공성인 까닭에 색에는 번민하여 부서지는 모습이 없다.
수(受)가 공성인 까닭에 수에는 감수하는 모습이 없다.
상(想)이공성인 까닭이 상에는 아는 모습이 없다.
행(行)이 공성인 까닭에 행에는 일으키는 모습이 없다.
그리고 식(識)이 공성인 까닭에 식에는 깨달음의 모습이 없다.
왜냐하면 사리불아,
색은 공성(空性)과 다르지 않고,
공성은 색과 다르지 않으니,
색이 바로 공성이고,
공성이 바로 색이다.
수ㆍ상ㆍ행ㆍ식도 역시 그와 같다.
사리불아,
이 여러 법은 공성의 모습이나 생겨난 적도 없고,
멸한 적도 없고,
더러운 적도 없고,
깨끗한 적도 없고,
늘어난 적도 없고,
줄어든 적도 없다.
이 공성의 법은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현재도 아니다.
그런 까닭에 공성 가운데는 색이 없고,
수ㆍ상ㆍ행ㆍ식이 없다.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이 없다.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ㆍ법이 없다.
안계(眼界)가 없고,
나아가 의식계(意識界)까지도 없다.
무명(無明)도 없고,
또한 무명의 멸진도 없다.
나아가 늙고 죽음까지도 없고,
늙고 죽음의 멸진도 없다.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가 없고,
앎이 없고 또한 얻음도 없다.
따라서 얻음이 없는 까닭에 보살은 반야바라밀에 의지하나니,
마음에 걸림이 없다.
걸림이 없는 까닭에 두려움이 없으며,
일체의 뒤바뀐 꿈 같은 생각과 고뇌를 떠나 궁극적인 열반을 성취하였다.
3세(世)의 여러 부처님은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는 까닭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얻었다.
그러므로 알라.
반야바라밀다의 이 크게 밝은 주문,
위없이 밝은 주문,
동등함이 없이 밝은 주문은,
모든 괴로움을 능히 제거하며,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은 까닭에 반야바라밀의 주문을 설하리니,
곧 주문은 다음과 같다.
갈제갈제바라갈제바라싱갈제모디싱사하
竭帝竭帝波羅竭帝波羅僧竭帝菩提僧莎呵
◆viqm3176
◈Lab value 불기2563/07/28 |
♥단상♥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Jean-Louis Murat - Madrigal Triste.lrc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Ernst-Ludwig-Kirchner-pfortensteg-in-chemnitz.jpg!HD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Eisbegonienbluete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Summer_Palace_at_Beijing_21 ♡칠보사_함안 ○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Naver 지도 ○상세정보=> https://buddhism007.tistory.com/3983 Lab value 불기2563/07/28/ ●본래 생멸을 얻을 수 없음과 현실의 인과문제의 관계 매일 꽃이 지고 핌을 보기에 당연히 생멸이 있다고 잘못 여긴다. 그래서 그렇게 생멸하게 되는 원인과 결과도 살피게 된다. 그런데 처음부터 생멸을 얻을 수 없다고 경전에서 제시한다. 따라서 이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생사에 갇힌다. 이는 특히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는 수용소상황에서 효용이 크다. 정작 평상시 이를 잘 사용하지 못하면 수용소에 갇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수용소 상황에서는 이런 내용을 생각해낼 여유도 갖지 못한다. 그런 가운데 고통을 극심하게 받는다. 그래서 다시 인용자료를 붙여 살피기로 한다. 꽃을 놓고 연구하면 편하다. 따라서 꽃사진을 붙이기로 한다. [IMG6] [그림] 꽃 08pfl--image/꽃의핌과생멸.jpg - 참고 - 잡아함경해설 https://buddhism007.tistory.com/228 위 사진을 보면 꽃의 생멸로 일반적으로 여기는 장면을 함께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왼쪽처럼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 오른쪽처럼 되면 이를 놓고 '꽃이 생겨났다'고 여긴다. 그런데 『중론송』 등에서는 이런 입장이 엉터리임을 밝힌다. 즉 이는 망집분별을 바탕으로 엉터리 견해를 '우기는' 입장이다. 그러나 일반 입장에서는 이처럼 불생불멸을 제시하는 입장을 엉터리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따라서 이 두 입장을 놓고 그 사정을 살펴야 한다. 그래야 인과문제 이해가 빨리 된다. 사진을 두 면으로 나누어 살펴도 생멸이 있다고 여겨진다. 또 위 사진처럼 함께 살펴도 이 현실에 꽃의 피고짐과 생멸이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왜 없다고 하는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현실에서 문제삼는 생멸과 인과문제의 성격을 이해하게 된다. 문제삼는 그런 것은 일체 본래 얻을 수 없다. 그런데 현실에서 수많은 사람이 그런 것이 있다고 여기며 임하게 되는 사정을 이해하게 된다. 우선 저 사진이 곧 현실 내용이라고 하자. 저런 내용은 눈을 뜨면 생생하게 얻는다. 여기서 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고 현실에 생멸이 있다고 여긴다. 이런 경우 그런 생각 분별도 현실에서 일으켜 명료하게 얻는다. 그리고 여기서 이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 다음이 문제다. 1차적으로 그 상황에서 감각은 감각대로, 분별은 분별대로, 각 영역에서 생생하고 명료하게 얻는다. 그러나 정작 '생멸함' 이라고 생각한 그 내용은 정작 그 감각현실에서는 얻을 수 없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이를 서로 혼동한다. (=> 망집) 쉽게 이해하면 다음과 같다. 어떤 이가 라이터를 생각하여 이로 인해 담배를 떠올렸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 상황에 라이터란 생각과 담배란 생각도 있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다고 라이터란 생각내용에 담배란 생각내용이 있는 것은 아니다. 즉 현실에서 감각현실을 얻는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일정한 생각을 일으킨다. 그래서 눈을 뜨고 보면서 저부분이 영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감각 현실이 그런 분별을 일으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그 감각 현실에 그런 내용은 얻을 수 없다 따 따라서 '그런 감각현실부분이 영희다' 라고 판단함도 잘못이다. 즉, 그런 감각 현실은 그런 감각 현실이다. 그리고 그 분별 내용은 그 분별내용이다. 이런 감각현실과 관념사이의 1 차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이와 관련된 다른 2,3 차 관계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 내용을 얻게 하는 본 바탕이 무엇인가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희망은 어떻게 성취하는가 문제를 살펴야 한다. 좋고 나쁨도 사정이 같다. 배고플 때 밥을 먹으면 좋음을 느낀다. 그렇다고 밥에 좋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5 그릇을 계속 먹으면 그 사정을 알게 된다. 그런데 밥에 좋음이 들어 있다는 식으로 관계를 잘못 혼동하기 쉽다. 그렇게 되면 문제를 해결한다고 그 내용이 없는 다른 영역을 자꾸 휘젓게 된다. 그리고 그 상태로 접착되어 갇히고 고통을 받게된다.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이해하면 본래 아무 지장이 없다. 그런데 자꾸 접착된 상태로 스스로 장애 상황에 들어간다. 이것이 현실에서 겪는 생사고통이 갖는 성격이다. 그리고 그런 생사고통을 만들어내는 근본원인이다. 본 바탕과 감각현실의 관계도 앞과 같다. 즉, 현실에서 눈을 통해 모습을 보고 꽃의 생멸이나 피고짐이 있다고 잘못 여긴다. 그러나 그런 감각현실이나 생각 내용은 모두 본 바탕에서 얻을 수 없다. 이것이 모두 잘 이해된다고 하자. 알고보면 이 부분이 시공간 이동의 출입문이다. 즉 생멸문과 해탈문이 이들에 놓이게 된다. 그러면 이제 생사현실에서 3 계와 해탈 상태를 출입할 수 있다. 이것이 시공간 여행의 원리다. 이를 이해하면 드디어 무량한 시공간을 무상 출입할 수 있다. 그리고 또 쉽게 원래 출발지로 자유롭게 되돌아올 수 있다 그래서 공간 여행 무상 자유이용권도 얻게 된다. 그리고 생사시 환자가 중환자실과 화장터로 옮겨가는 상황에 이들 내용이 적용된다. 그리고 이후 자신이 어떤 무대에 어떤 배역으로 출연해 나타날 것인가도 이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그런데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런 사정으로 시공간 출입문을 이용하지 못하고 갇히게 된다. 그런데 시공간 여행에 두 장애가 있다. 우선 당사자가 이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거부하기 쉽다. 한편 그가 그렇게 벗어나는 것을 싫어하는 주체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이를 방해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낙타가 고통받는다고 하자. 이런 경우 누군가가 낙타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려 한다고 하자. 그러면 우선 낙타부터 거부하기 쉽다. 즉, 지금까지 물과 음식을 잘 공급받아 편하게 지냈다. 그런데 왜 알지도 못하는 이가 알지도 못하는 낯선 곳으로 끌고가려는가 하고 거부한다. 그런데 이제 낙타가 그 사정을 이해한다고 하자. 그래서 벗어나려고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도 낙타를 부리던 주인은 이를 대단히 싫어한다. 그래서 이를 방해하게끔 된다. 이것이 욕계 현실 상황이다. 그래서 그 장애부터 먼저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 시공간 여행이 원만하게 해결된다. 그리고 이 노력이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하다. 도박장 이론과 사정이 같다. 자신은 도박장 사정을 알고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할 수 있다. 그래도 도박장의 빚이 많이 쌓여 있으면 나갈 수 없다. 결국 그것이 먼저 정리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도박장 밖으로 자유로운 출입이 허용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지금까지 많은 것을 얻고 쌓아두었어도 생사여행과정에서 대부분 다 포맷 처리된다. 그 상태로 그냥 이어지면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행한 업에 따라 새로운 세계에서 강제로 새로 시작하게끔 묶이게 된다. 그래서 이를 '분단생사'과정이라고 표현한다. 따라서 업의 장애가 먼저 해소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론적으로 이 사정을 알아도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기 곤란하다. 결국 매번 수용소에 갇히게 된다. 그를 수용소에 묶어 빚을 받아야 한다고 여기는 주체들이 그처럼 계속 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3 악도에 묶이게 된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이론을 적용해야 된다. 이것이 '업의 장애' 현상이다. 그래서 업장이 쌓인 상태에서 시공간 출입을 자유롭게하려면 먼저 업장을 해소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수행을 통해 전방위로 좋음을 베풀어야 한다. 단순히 이론적으로 내용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들 각 내용을 본래 얻을 수 없다. 그런데도 생사현실에서 그런 형태로 무량겁에 걸쳐 그런 관계가 반복해 나타나는가가 다시 의문이 될 수 있다. 이는 쉽게 아이들 게임과 사정이 같다. 전자게임을 보면 그 화면 하나하나가 그 화면 밖 현실에 있는 내용이 아니다. 그런데도 일정부분에 커서를 대면 그런 내용이 전혀 밖에 없다. 그러나 그에 따라 어김없이 다른 화면이 나타난다. 또 아이템을 잃거나 얻거나 한다. 그런 결과가게임하는 다수에게 무량하게 그런 관계로 반복해 나타난다. 본래 '업=> 과' 관계는 그것이 하나하나 실답지 않다. 그러나 그 관계 형태로 무량겁에 걸쳐 사라지지 않고 나타난다. 현실사정이 이와 같다. 그래서 이를 반대로 살피면, 이들 내용이 실답지 않음도 파악할 수 있다. ○ 연기 즉 공 현실에서 각 내용이 인과관계로 파악된다고 하자. 그러면 그 사실 자체가곧 이들 현실이 본래 공함을 파악하는 근거가 된다. 이를 '연기즉 공'이라고 표현한다. 현실에서 각 내용을 얻는 인과 관계를 A + B => c 이런 식으로 표시한다고 하자. 그러면 바로 이 식이 그 C 가 실답지 않고 공함을 의미한다. 그 내용이 위 식에 그대로 써 있다. 즉 위 식은 그렇게 얻는 그 c 는 그런 관계에서만 얻어지고 사라짐을 의미한다.=> 영원하지 않다. 또 그 c 는 앞 부분에서 얻을 수 없는데 나타난다.그래서 진짜가 아니다. => 무아 무자성. 현실 일체는 진짜가 아님을 나타낸다. 또 그 c 는 앞 부분에서 얻을 수 없음을 위식이 보여준다. 현실의 생사고통도 마찬가지다. => 그래서 본 상태는 현실에서 문제삼는 온갖 생사고통을 얻을 수 없는 청정한 니르바나(열반) 상태다. 또 그런 c 는 앞 부분에서 얻을 수 없다. 그리고 위와 같은 관계를 통해 얻는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한 사람이 얻는 내용 90%는 눈을 통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자신과 관계없이 본래 있다고 할 본 바탕이 무언가를 문제삼는다고 하자. 여기서 이를 실재라고 표현하자. 그런데 각 주체는 앞과 같은 상호 관계에서만 마음으로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그런 주체입장에서는 마음을 떠나서 본래 있다고 할 내용을 직접 얻지 못한다. 그래서 실재는 한 주체가 현실에서 행하는 2 분법상의 분별을 모두 떠난다. 따라서 있고 없음 같고 다름 등의 모든 분별을 떠난다. 그리고 일체 언어표현을 모두 떠난다. 따라서 이런 실재를 아무 의미를 갖지 않는 <공>이라는 표현을 빌려 나타내게 된다. 이 공하다는 표현은 전혀 아무것도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서 A 란 내용을 얻는다. 그러나 그 본 바탕은 그렇지 않고 <공>하다. 따라서 본 바탕에서 얻을 수 없는 내용을 현실에서 얻는다. 이런 사정으로 현실은 꿈과 같고 환영과 같다고 한다. 즉, 마치 꿈에서 침대에는 없는 바다나 황금꿈을 꾸는 것과 사정이 같다. 본 사정이 이렇다. 그런데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반대로 실답지 않은 현실이 무량하게 나타나게 된다. 만일 그렇지 않고 진짜인 고정불변된 것이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반대로 현실에서 A 가 B 로 변화하는 현상 자체가 얻어질 수 없다.[무아, 무자성 공] 따라서 이 두 측면을 잘 파악해야 한다. 현실에서는 공한 실재측면보다는 현실이 더 중하다고 여기며 대한다. 현실은 당장 생생하고 명료하게 분별해 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생사현실은 이런 바탕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다음 생의 모습도 이런 바탕에서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이 관계를 잘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자신에게 엄청 피해를 준 이가 있다고 하자. 그리고 그를 수용소에 붙잡아 두고 있다고하자. 그런데 상대가 어떻게 해야 자신의 마음이 바뀌어 그를 풀어주게 되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를 역지사지하면 그 내용이 곧 자신의 업의 장애를 해소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 된다. 알고보면 이것이각 종교마다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각 종교의 배경은 다 다르다. 그러나 각 종교에서 당장 해야 할일로 제시하는 내용은 공통한다. 그러나 이를 자세히 알아도 실천 하지 않으면 효용이 없다. 그러나 이를 몰라도 그 내용을 실천하면 벗어난다. 해탈문은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한다. 이는 마치 키를 꼽고 엑셀을 밟으면 원하는 대로 가는 자동차와 성격이 같다. 누구나 업의 장애를 제거하고 시공간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면 생사의 묶임에서 해탈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전에 좋은 시공간 여행을 위해 필요한 내용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실에서 뜻처럼 되지 않고 심각한 생사고통을 받아나간다. 그것은 다음 사정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어떤 범인이 과거에 다른 이에게 고통을 주는 업을 행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로 인해 체포되고 구금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감옥에 수용된다. 그런 경우 그가 소지한 핸폰이나 노트북을 일체 소지하지 못하게 묶인다. 그 경우 수사관이나 왕이나 죄수나 다 같은 사람이다. 그렇다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 사정을 잘 알아도 그 상태로 계속 감옥상황을 대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한 번 갇히면 이후 매번 바쁘고 힘든 상태로 지내게 된다. 그래서 앞 내용이 별 효용이 없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가면 정신없이 고통속에 지내게 된다. 그러면 자신이 왜 갇히게 되었는지도 모르고 지내게 된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자극 반응관계로 계속 행해 가면 악순환이 증폭된다. 그래서 이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평소 업의 장애를 제거할 내용을 잘 실천해 그런 상태를 예방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지금 그렇게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매순간 그렇게 임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그 상태로 무량겁을 나아가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생사현실 문제다. 따라서 좋던 싫던 일단 생사고통을 벗어나는 방안을 잘 성취해야 한다. 각 종교에서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내용도 이와 같다. 그리고 그렇게 생사 묶임에서 벗어나야 그 뒤부터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서원을 성취할 수 있게 된다. 일반적으로 업을 행하면 그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피해보는 입장이 있다. 그러면 방해하고 장애하는 에너지를 만들게 된다. 그런데 자신의 희망내용이 달라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처럼 장애하고 방해하던 에너지가 그 반대방향으로 전환된다. 그래서 자신의 희망의 성취를 도와 주는 형태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희망이 바로 쉽게 성취되게끔 된다. 그런데 그 반대는 그와 사정이 반대다. 나무를 심고 열심히 기른다고 하자. 그런데 그 희망이 성취되면 대단히 고통받게 되는 상대가 있다고 하자. 그런 경우는 그 상대가 온갖 힘을 다해 방해하게 된다. 그리고 나무가 열매 맺을 때쯤 그 나무를 자르고 뽑아 버리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희망성취와 관련된 인과문제 핵심이다. 색계 무색계는 하늘로만 구성된다. 예를 들어 소설만 자유롭게 쓰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욕계는 다르다. 소설도 내용이 나쁘면 소설가가 체포된다. 혼자 구상만 해도 마찬가지다. 알고보면 현실에서 하는 말, 행동, 자세 [업]이 다 여기서 출발하기에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혼자 아무렇게 생각하고 임하면 누가 반드시 찾아오게 된다. 그리고 이 내용이 시공간 여행과정시 보관되고 심사도 되고 문제되어 포맷 처리되는 주요 사정이다. 욕계 사정이 그렇기 때문이다. 욕계는 위 1 차 2 차 3 차 원리를 적용하지 않고 이를 접착시킨 상태로 임하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시간이 오래되어 그런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도 이 증상은 소멸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범인이 치매상태가 된다고 하자. 그래서 그 사정을 자신은 전혀 알지 못하게 된다고 하자. 그래도 현실에서 다른 이들이 그렇게 대하지 않는다. 욕계 현실도 그와 같다. ◧◧◧ para-end-return ◧◧◧ ○ 인과문제에서 부대상황의 문제 인과문제를 부대 상황 관계에 있는 내용과 인과문제를 혼동하면 안 된다. 여기서 부대 상황이란 동시에 발생하는 내용을 뜻한다. 이를 군대의 각 부대 상황을 놓고 비유로 이해해보자. 본부에서 각 부대에 출동을 명령한다고 하자. 이 경우 각 부대에서 출동을 위해 준비한다. 이 때 각 부대의 내용은 동시에 나타난다. 그래서 전혀 관계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의 부대의 일이 옆 부대의 일과 직접 관련성은 없다. 이 내용의 이해가 필요햐다. 그래야 본대 문제를 해결하려고 엉뚱한 옆 부대의 물건을 휘젖지 않게 된다. 그런데 이것이 부대상황문제다. 사실은 천둥소리 내는 데 번개가 역할한 것이 아니다. 귀로 듣는 소리는 눈으로 보는 빛과는 서로 옆 부대 상황이다. 그런데 매번 이를 같이 얻기에 서로 직접 관련된다고 착각하는 현상이다. 천둥칠 때 눈을 감고 번개빛을 보지 않는다고 하자. 그래도 소리는 들린다. 이런 사실로 이들이 인과관계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직접 원인이라고 하자. 그러면 이를 빼고 넣음에 따라 결과를 얻거나 얻지 못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그렇지만, 눈 뜨면 번개를 볼 때 천둥소리도 듣는다. 그래서 이들이 전혀 관계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는 옆 부대 상황 관계로 표현한다. 눈으로 보는 번개빛과 귀로 듣는 천둥소리는 관계가 밀접하다. 그러나 그런 관계다. 천둥 소리 듣기 싫다고 눈을 감아 번개를 보지 않는다고 하자. 그렇지만, 소리를 듣게 된다. 따라서 이는 소리를 듣게 한 원인은 아니다. ● 청정한 무한 에너지 수소의 저렴한 취득방안과 부대상황 인과 관계 이론을 바탕으로 청정한 무한 에너지 수소 획득 방안을 살펴기로 한다. 그런데 요즘 sns 상에 올라오는 글을 보다가 생각하게 되었다. 소가 수레를 끄는 사진을 하나 보고 영감을 얻게 된다. 일단 수소인지 암소인지 모르지만 소 사진을 보게 된다. 그런 가운데 여기에 청정 에너지 수소를 무량하게 얻는 방안이 있다고 여기게 된다. 사람이 소일거리가 전혀 없으면 다니는 곳마다 지옥이 된다. 그러나 소일거리가 있게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그래서 연구를 시작하게 된다. 다만 경전공부하는 본인에게 수소에너지 획득방안과 관련해 큰 기대를 가지면 곤란하다. 쉽게 수소 에너지를 취득하려다 자신이 소가 되어 열심히 이리 저리 뛰어 다니는 상태가 되기 쉽다. 그런데 이런 결과를 얻으려 연구를 시작한 것이 아니다. 다만 기본적으로 이런 사정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처음 목표를 쉽게 성취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이 연구를 엉터리라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본인 소일거리이기에 신경쓰면 곤란하다. 처음에는 힘들다 여겼다. 그런데 연구를 계속하니까 일단 성과가 생긴다. 사람들이 원하는 이를 잘 성취하려면 식량과 에너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를 자체 해결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독자적으로 무언가를 성취하기 힘들다. 그래서 어렵지만, 수소에서 청정무한 에너지를 얻는 방안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식량문제도 이를 통해 해결하는 방안을 생각해보기로 한다. 수소에너지를 바탕으로 현재 좁은 농토에 10 층 빌딩을 지을 수도 있다. 그리고 led로 빛으로 식량을 생산할 수도 있다. 원래 다른 이가 개발하면 나중에 사용하는 것이 편하다. 그런데 직접 먼저 개발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그런데 이를 연구하려면 인과 문제를 살펴야 한다. 인과문제는 좀 골치 아프다. 그래서 기본 문제부터 살핀다. 보통 다 타버린 석탄의 재로 다시 석탄을 만들려 하지 않는다. 바닷물은 수소가 다 타버린 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바닷물로 수소를 만드려면 조금 엉터리 연구가 된다. 그렇게 잘 안 되기 때문이다. 과학시간에 물에 수소가 있음을 알려준다. 그러나 이는 수소가 이미 타버린 재의 형태와 같다. 그래서 곤란하다. 그래서 수소 채굴 방안을 달리 접근할 필요가 있다. 우선 사람마다 다 소일거리를 갖는다. 여기에서 쉽게 방안을 찾을 수 있다. 소일거리나 일거리 자체가 없으면 어느 상황이나 지옥이 된다. 그래서 의미있고 바람직한 일을 찾아 행해야 한다. 그렇다고 자신이 매번 수소처럼 일거리만 맡아 일만 하게 되면 곤란하다. 그래서 조금 더 연구해 상황을 바꿔야 한다. 남자는 암수 구별을 한다면, '수'에 해당한다. 그래서 남자가 하는 소일거리를 분해한다. 그래서 소를 일단 떼내다. 그리고 소를 웃음의 소로 바꾼다. 그리고 남은 일거리는 일걸이로 바꿔본다. 여기서 '일걸이'는 책걸이와 비슷하다. 책을 다 보면 책걸이를 한다. 일도 다 마치면 일걸이를 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남자가 그렇게 계속 임하면 이것이 결국 청정 에너지가 된다. 이런 연구결과를 얻는다. . 엉터리 연구인 듯 여겨질 수 있다. 특히 청정 무한 에너지 부분을 엉터리로 여기기 쉽다. 소설 속에 다음 이야기가 나온다. 톰소여가 장난을 치다가 벌로 벽에 페인트를 바르는 일을 하게 되었다. ★★ 그런데 이를 아주 즐겁게 노래 부르면서 행하는 척 한다. 그러자 친구들이 자신도 페인트를 칠하게 해달라고 한다. 그래서 돈을 받고 페인트를 칠해보게끔 했다. 이런 이야기가 소설에 나온다. 활동은 실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막노동 현장과 헬스장의 상황이 성격이 다르다. 그래서 일은 같아도 '소일거리(소 일걸이)'와 '소 일거리'가 달라진다. 이렇게 청정한 무한 에너지 수소 연구를 하게 된다. 조금 엉터리라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런데 연구에서 인용 주석이 힘들다. 이를 잘못하면 현실에서 법적문제에 휩싸이게 된다. 그리고 연구결과를 일반적으로 잘 안 믿게 된다. 말소리에 여러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각 소리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나> => 이름 망상분별, 언어. 이런 것과 이런것에 집착하는 증상 <아> => 본래 생멸을 얻을 수 없음 =>본불생 <라> => 무구청정함 위와 같은 내용은 불교 경전에 제시된 내용이다. 당시 기원전 600 년 훨씬 전부터 문자를 사용했었다. 그런 배경에서 제시한 내용이다. 그리고 기원 후 600 년대무렵 원효대사님도 이를 연구했다. 그리고 한글 만들 때도 이들 내용을 참고했다. 다만 범어는 소리 글자다. 그래서 이를 한문으로 음역해 표기해도 뜻이 아닌 소리와 관계가 된다. 이 경우 표기된 한자는 발음기호역할만 한다. 따라서 그 의미를 통해 번역하면 안 된다. 한글 의미를 여기에 다시 덧붙인다고 하자. <나>는 보통 망집에 바탕해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기는 내용을 의미한다. 평소 이런 <나>를 고집하고 임하면 <나> 망상병에 걸린 상태로 임하게 된다. 이는 경전에서 극히 경계하게 되는 상태다. 그래서 경전에서 이 <나>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고 강조한다. 한편 <아>는 본 불생... 본래 생멸함을 얻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망집을 일으키면 그런 상태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생멸함이 있다고 잘못 여기게 된다. 그런 가운데 다 함께 계속 생사를 겪어 나가기 쉽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깨닫고 청정하고 아름다운 상태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상태를 <라>가 나타낸다고 이해해보자. 물론 이를 견강부회, 지록위마식 해석으로 여길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각 말을 해석해보는 것도 소일거리 삼아 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청정한 에너지가 얻어질 수도 있다. >>> [글 쓰던 중간에 장례식장을 바삐 다녀왔다]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이는 눈을 뜨고 볼 때 자신으로 파악한 내용을 기준으로 할 때다. 그런데 눈을 뜨고 감는 두 순간에 계속 이어지고 유지되는 자신도 있다. 매 주체는 마치 공항처럼 화장터를 거쳐가며 생사를 겪는다. 그리고 이런 성격의 활동이 무량겁에 걸쳐 유지된다. 그래서 무한 이론이 맞다. 글 정리하면서 노래를 들었다. 노래에서 왜 이런 내용을 적냐고 하는 듯하다. 이 노래를 함께 올리기로 한다.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Frank Michael (Collector Edition) - Elle Fait Chanter Les Cigales.lrc |
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10/2563-07-28-k0021-001.html#3176 sfed--마하반야바라밀대명주경_K0021_T0250.txt ☞대명주경 sfd8--불교단상_2563_07.txt ☞◆viqm3176 불기2563-07-28 θθ |
■ 선물 퀴즈
방문자선물 안내페이지
다음에 해당하는 단어를 본 페이지 에 댓글로 적어주시면 됩니다.
이 내용의 이해가 필요햐다.
그래야 본대 문제를 해결하려고 엉뚱한 옆 부대의 물건을 휘젖지 않게 된다.
아촉불(阿閦佛)을 번역한 이름. ⇒<유사어>아촉<참조어>아촉(阿閦)
답 후보
● 부동여래(不動如來)
부정취(不定聚)
분(忿)
분별기(分別起)
분소의(糞掃衣)
불가견유대색(不可見有對色)
불가칭지(不可稱智)
ॐ मणि पद्मे हूँ
○ [pt op tr]
○ [pt op tr]
● 마하반야바라밀대명주경_K0021_T0250 [문서정보]- 일일단상키워드
'조각글백업이전대상-2564'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기2563-08-07_대방광불화엄경수현분제통지방궤_005 (0) | 2019.08.07 |
---|---|
불기2563-07-30_잡아함경_017 (0) | 2019.07.30 |
불기2563-07-24_금강반야론_001 (0) | 2019.07.24 |
불기2563-07-23_살담분타리경_001 (0) | 2019.07.23 |
불기2563-07-22_분별공덕론_004 (0) | 2019.07.22 |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