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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1-11-03_불설장아함경_003 본문

과거조각글/불기2561(2017)

불기2561-11-03_불설장아함경_003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17. 11. 3. 01:35



®

『불설장아함경』
K0647
T0001

제3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해제[있는경우]
● TTS 음성듣기 안내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불설장아함경_K0647_T0001 핵심요약





『불설장아함경』 ♣0647-003♧




제3권





♥아래 부분은 현재 작성 및 정리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vejw3052

◈Lab value 불기2561/11/03/금/01:36


2015_0802_220435_nikon.jpg




○ [pt op tr]  mus0fl--Mireille Mathieu - Die WeiE Rose.lrc 

○ [pt op tr]Kossak_Orlę_lwowskie




♥ 잡담 ♥또다른 유행

오늘 불설장아함경이 뽑혀 살펴보니 
부처님께서 점차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상황으로 보인다. 

영화로 치면 주인공이 이제 영화에서 보이지 않는 상태로 
나아가는 분위기여서 
왠지 우울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고 본다. 


그런데 열반 즉 니르바나란 의미가 무엇인가. 
깨달음의 지혜가 충만하여 
생사를 떠나고 
생사고통을 벗어나서 
지극히 평안함에 머무는 상태가 아닌가. 

그런데 그 니르바나가 완전한 상태는 
결국 현실에서 일반인이 보는 내용으로는 
어떤 한 주체가 죽음을 맞이하고 
더 이상 그 주체의 모습을 보지 못하게 되는 상태를 
가리킨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그래서 남김이 없는 니르바나[무여열반]는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죽음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만일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열심히 수행하여 
성취할 목표상태를 
죽어서 없어지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면 
왜 죽어 없어지는 것을 굳이 
열심히 수행해서 도달해야 할 상태라고 할 것인가. 


그런 수행을 하지 않아도 
현실에서 여기서 태어나서 저기서 죽어가는 모습을 
장례식장이던 화장터던 쉼없이 보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왜 그런 죽음을 목표로 할 것인가. 

여기에 기본적으로 착시현상이 들어가 있다고 보게 된다. 

물론 수행자가 완전한 니르바나의 상태에 들어갔다고 할 때는 
그 현장은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그 수행자가 죽어버린 상태로 보게 되는 것도 사실인데 

그러나 일반인의 죽음과 수행자의 그런 죽음은 
어디에서 차이가 있어서 
한 쪽은 그냥 죽음이고 
한 쪽은 완전한 니르바나의 상태에 들어간 것이라고 
표현하게 되는가. 

이것은 사실은 수행자가 수행을 하는 목표점과 
관련해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된다고 본다. 


부처님이 
자살 클럽을 운영하며 
어떻게 각 수행자가 
죽음에 평안히 잘 이르는가를 가르치신 분이 아닌데 

현실에서는
마치 부처님은 
수행자가 죽어서 
완전히 자취도 없게 되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수행할 것을 가르친 분인 것처럼 
오해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니르바나의 의미에 대해서 
어떤 수행자가 죽게 되어 
그와 관련되어 아무 것도 없게 된 상태를 의미한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잡아함경이나 열반경에서도 제시되는 것처럼 
사정이 그렇지 않고 

니르바나란 
오히려 상-락-아-정의 상태로 표현할 수 있는 상태임을 
관련된 부분에서 제시한 바 있다. 

또 아랫부분에 
4 여의족을 갖춘 수행자는 
수행자가 원하기만 하면 
1 겁을 머물려면 머물 수 있다는 내용도 
단순히 경전에서 제시하는 구라성이야기가 아니고 
그것을 현실에서 시범을 보여서 입증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어떤 근거에서 그것이 가능하다고 제시하게 되는가에 대해서 
그 이론적인 내용을 이미 제시한 바가 있다. 

이론을 제시했다고 해서 
그 이론대로 정말 수행자가 행할 수 있는가 없는가는 
다른 문제이지만, 
일단 이론상 왜 그것이 가능한가를 이해해서 
공연히 부처님이 이치에 닿지 않는 내용을 
제시한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는 사정을 제시한 것이다. 


유행경이란 표현에서 유행이란 
돌아다님을 의미한다고 보는데 

본인도 사정상 머지 않아 유행을 떠나야 한다고 보게 된다. 

오늘 서류에 사인만 한 1000 여번을 하게 되는데 
이렇게 서류에 사인을 하는 것이 힘든 일인줄 몰랐다. 

대단히 중요한 일이기에 사인을 하게 되는 것인데 
사인만 1000 여번 이상을 하다보니 
갑자기 진시황이란 인물이 생각이 난다. 

진시황은 중국을 통일한 다음 
아방궁을 짓고 만리장성을 쌓고 
학자들을 살해하고 
또 늙고 죽지 않기 위해 불로초를 구하는 일 등을 한 
인물로 유명한데 

그러나 정무를 보는데에도 
대단히 충실해서 
아방궁은 지었지만, 별로 이용을 많이 하지 않은 가운데 
중국 전체에서 올라오는 문서를 놓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살피면서 
도장을 찍는 일로 날을 보내고 
나중에는 궁을 떠나서 
자신이 정복한 중국천하를 살펴보러 나가서 
여행 중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고보면 유명한 황제들 가운데 
그렇게 궁에서 서류 살피고 
도장 찍는 일로 평생을 보낸 인물들이 
꽤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나라의 강희제도 그런 황제로 알려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알고보면 
중국의 황제란 
중국 땅을 전부 자신이 차지한 이라는 것은 
단순히 관념일 뿐이고 
궁궐을 감옥 삼아서 궁궐에 갇혀서 
평생 지내는 역할을 하는 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여하튼 일장일단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평생 궁궐에서 도장찍는 일로 
바쁘게 되는가 하면 
황제가 황제인 것은 
그 땅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일들을 놓고 
황제의 뜻에 의해서 처리하고 
그 방향이 달라지게 하는 힘을 갖기에 
황제인 것이다. 
그런데 차지한 땅이 넓고 넓다보니 
하루에 처리할 일도 그렇게 많은 것이다. 

이것을 들여다 보고 방향을 정하고 
결정하고 도장 찍는 일이 귀찮다고 게을리하면 
곧바로 황제 지위에서 내쫒기고 
이름만 황제인 상태로 곧바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름'만' 황제인 상태는 
이름이 황제가 아닌 상태보다 
실질적으로 더 고통을 받는 상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조조에 전권을 넘기고 
황제가 평안해 지게 되는 것이 아니고 
하루하루 전전긍긍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알고보면 
가진 것이 많고 넓으면 그 만큼 편하게 되는 것이 아니고 
그만큼 번뇌가 쉼없이 많아지게 되는 사정이 
있는 것이다. 

현실에서도 한달에 5000 만원 이상의 수익을 얻는 이들은 
대부분 한달에 한 시간도 여가를 얻기가 쉽지 않다고 
일반적으로 제시하는 것도 
사정이 그런 것이다. 
그렇게 한가롭게 임하면 
반대로 곧바로 파산의 위험에 직면하는 일이 
그 주변에 수없이 나타나는 상태에 처해 있어서 
도저히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자신이 회장이 되면 
힘든 일은 모두 사장이나 비서에게 넘기고 
자신은 그 막대한 재산을 갖고 그냥 놀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만일 그렇게 임하면 
그 사정을 누가 제일 잘 알게 되는가 하면 
그 회장을 찾아가 결제서류를 내미는 
사장이나 비서가 가장 먼저 파악하는 것이다. 

그런데 회장이 그런 상태임을 알게 되면 
그 회장의 재산은 그날부터 회장의 재산이 아닌 것이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모 재벌회장은 
평소 자신의 그룹에서 취급하는 제품 몇만개의 
단가를 다 외우고 있었다는 내용이 전하는데 
그것이 뭐 그렇게 중요해서 그것을 다 외워야 하는가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회장은 이름뿐인 회장이 되는 것이다. 

그 상태에서는 또 
해당 경영진이 비싼 물건을 싸게 팔아 회계장부에 올리고 
싼 물건은 비싸게 산 것으로 올려 놓고 해서 
회사내 재산을 모두 실질적으로 다른 곳으로 옮겨 놓고 
장부만 맞추어 놓아도 
회장이 파악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런 사태가 현실에 대단히 많다. 

그래서 알고보면 회장이나 사장들은 
운동을 하거나 유흥을 즐길 때도 
머리 속에는 회계장부나 사업 아이템을 부착해서 
다니는 상태인 것이다. 

그러니 알고보면 그런 감옥에 스스로 갇혀서 
살아가는 상태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수행자는 사실은 
그런 황제나 부자의 상태가 
번뇌에 묶여서 사역을 당하는 가운데 
어떤 무거운 짐을 
이 시점에서 저 시점으로 
그리고 이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야 하는 
입장으로 보고 
그런 번뇌에서 떠나는 것을 
무원무작삼매 해턀의 수행내용으로 삼는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80 년을 사셨는데 
현실적으로 보면 짧게 사신 것도 아니지만, 
아주 길게 사신 것도 아닌데 

문제는 부처님 전후로 
수많은 사람들이 살다가 죽어갔는데 

그러나 그 이후 현재까지 
몇천년을 이어가면서 
세계 전역에서 
부처님처럼 그 가르침을 
존중하고 기리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의 삶은 
그런 부분과 관련하여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는데 1 겁이 필요하다면 
1 겁을 머물수도 있는데 
필요가 없다면 공연히 머물 필요도 없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mus0fl--Louis Chedid - - Bouc Bel Air.lrc 

본인이 가끔 이어폰을 꼽고 노래를 들으며 
거리를 돌아다닐 때마다 
자주 듣게 되는 노래를 
오늘 옥상기지에서 쉬는 동안 듣게 된다. 
머지 않아 본인도 잠깐 여행을 다녀와야 해서 
오늘 살피는 유행경의 유행이란 단어에 초점을 맞추는데 
이 노래가 상당히 의미가 깊다고 본다. 

노래 가운데에서 
무릎이 성하기나 하면...하는 메세지가 들리는데 
계절은 벌써 겨울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어서 쌀쌀하고 
몸은 몸대로 묘지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어서 
시원치 않은 상태인데 
여하튼 이 노래를 들으면 그런 상황을 전하는 것으로 
보게 된다. 

올해 첫날에 소원성취의 방안을 놓고 
글을 열심히 쓰고 
지금은 한 두달 전부터 
한 주체가 왜 현재의 자신과는 판이하게 다른 
특정한 갓난아이와 소년과 청년 장년 이런 모습들을 놓고 
모두 자신이라고 여기고 살아가고 

또 한편으로는 그런 점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고 할 
수많은 다른 갓난아이와 소년 청년 장년은 
또 자신이 아니라고 여기면서 살아가는가. 

그래서 그 각 경우를 
그렇게 보게 만드는 요소가 무언가를 놓고 
일단 그것을 U 라는 알파벳으로 표시한다고 하고 
그 U 와 관련된 문제를 살펴나가는 중이다. 

그래서 그와 관련된 내용을 그림으로 표시하고 
그간 많이 살폈는데 

이 논의를 잘 해결하려면 
그 U 에 해당하는 내용이 무언가를 놓고 자세히 살피기 전에 
그런 내용이 U 로 주어졌다고 할 때 
다시 그 U 를 가지고 
무엇을 어떻게 하고자 하는가 이 문제를 놓고 
이 문제의 답을 먼저 잘 찾아내는 것이 
오히려 이 문제를 잘 살피는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그 U 도 바로 그런 부분과 관련해서 
그 의미를 갖게 됨을 제시하였다. 

만일 사정이 그렇지 않으면 
부처님을 놓고 보더라도 
한 주체가 단지 오래 세상에 머무는 것만이 최고라고 
여기면서 
마치 각 주체가 누가 세상에 오래 그 형태로 
버티는가 이런 것을 놓고 
경기를 하는 것처럼 이 문제를 오해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알고보면
거북이가 200 년을 산다는 사실을 
다윈이 남긴 거북이를 통해서 최근 확인했다고 
보고를 받는데 
거북이가 200 년을 살아서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놓고 보면 
그 거북이 외에는 별 의미가 없었다고 보는 것도 사실이다. 

이미 앞에 부처님이 80 년 동안 설법을 하신 내용이 
몇천년을 이어서 현재까지 존중받고 기려지는 
사정을 제시했는데 
이것을 놓고 보면 그 의미차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단지 오래 사는 것이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기 힘들고 
한 주체가 짧게 살던 길게 살던 삶이 의미를 갖는 것은 
결국 그 다양한 모습을 한 주체로 보게 하는 U로 
그 주체가 어떤 문장을 제시하였기는가에 
핵심이 있다고 보게 된다. 




재산이나 황제의 지위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전 세계를 놓고 보면 
각 지역에서 왕이나 황제의 지위를 누리다 간 이들이 
수없이 많고 
또 각 지역에서 수만금의 재산을 가지고 
풍요롭게 평생을 살다가 간 이도 많다고 할 것인데 
오늘날 그런 이들이 주는 의미가 무언가를 놓고 보면 
별로 없다고 보는 측면이 많은 것이다. 

그런데 여하튼 그것이 모두 U 와 관련된 
문제임도 보게 되는 것이다. 

도대체 부처님은 
왜 현실에서 일반인이 잘 파악하지 못한다고 보는 
3계 6 도라는 세계를 제시하고 
수없이 다른 생명의 형태로 한 주체가 
생사고통을 받아나간다고 제시했는가. 

그래서 그런 생사고통을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수행방안을 제시한 것인가의 문제도 
기본적으로 무엇을 그렇게 다른 형태를 
하나의 주체로 이어서 보게 되는가 하는 문제가 
관련되는 것이다. 

그와 관련된 내용을 이전 페이지에서 
많이 살펴왔기에 
이후 부분을 살펴야 한다고 보는데 

일단 그림을 붙여 놓고 
이 문제를 이어 살펴나가기로 한다. 





[img2-9]
08pfl--image/8식-9.jpg


현실에서 눈을 뜨면 무언가를 보게 된다고 할 때 
그런 내용을 위 그림에서는 
a! 라는 기호와 ◇ 라는 기호로 표시해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그런 부분가운데 
현실에 자신의 몸이라고 보게 되는 부분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미 앞 페이지에서 
마하반야바라밀경 심오품의 내용을 살피면서 

예를 들어 
◇ 과 같은 부분을 놓고 
그것이 바위나 꽃이나 다른 사람 영희 등으로 보고 대할 때 
그런 ◇ 부분과 같은 감각현실은 
그런 내용을 얻는 본 바탕이 되는 실재의 지위에 있는 실상도 아니고 
또 그런 부분에 대해 생각하고 일으키는 관념분별의 내용도 아닌 사정을 
자세히 살폈다. 


그런데 이렇게 내용을 제시하면 
바로 이런 사정으로 
이런 주장을 제시하는 본인을 
인터넷상에서 소리없는 살인을 행하는 이라고 칭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본인이 앞과 같은 내용이나 격자이론 등을 통해서 
분명히 거리에 사람들이 오가고 저기에 영희나 철수가 앉아 있고 
그래서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고 보는데 
그런 상황에서 마치 그 상황에 
그런 수많은 사람들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제시하기에 
그것이 결국 멀쩡하게 있는 사람들을 
그런 내용으로 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입장에서 그렇게 가끔 칭하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그렇다고 
본인이 무엇을 파괴하거나 훼손하는 것인가 하면 
그런 것은 아니고 

본래 얻을 수 없는 것을 
망상에 바탕해서 그처럼 있다고 여기면서 살아가는 이들의 
망상과 생사고통을 제거하고 
그 대신 무량한 수명과 복덕을 대신 제공하려고 노력하는 것 뿐이다. 

그런데 그런 방안에 대해 
왜 현실에서 각 주체가 자신이라고 보는 것이 
그런 자신이 아니고 
망상에 바탕한 내용인가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그런 오해를 하게 되는 것 뿐이다. 


앞의 그림에서 눈으로 
◇ 과 같은 부분을 보고 
그것을 바위라고 생각했다고 하자. 

앞 페이지 마하반야바라밀경에서 살핀 내용을 여기에 적용하면 
그렇게 보는 부분은 
그 부분은 비록 생생하게 내용을 얻은 것이지만,
실재의 지위에 있는 실상도 아니고 

또 그처럼 감각한 부분을 대해서 
자신이 바위라고 생각을 일으킨 것이지만, 
그것은 명칭 뿐인 것이고 
그 관념에는 그런 감각현실에 해당한 내용이 들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그 감각현실에도 그런 분별내용은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러면 그 바위는 어떻게 된 것인가?
이런 의문을 갖는 것이다. 


처음부터 이 문제를 살피는 가운데 
일반적으로 그런 ◇ 부분을 바위라고 보고 
그런 내용이 자신의 외부에 있는 세계의 한 부분이고 
또 자신의 눈이 대한 대상이고 
그 부분에 손을 대어 촉감을 얻을 때는 촉감을 얻는 대상이라고 여기면서 
또 그것은 자신의 마음과는 다른 물질이라고 여기고 대하는데 
이 각 내용이 모두 총체적인 전도망상이라고 
제시한 것이다. 

그래서 가장 먼저 확인할 내용은 
이런 내용이 자신의 마음에 맺혀 들어와 있는 
손님이나 티끌[객진]과 같은 내용이라는 것 부터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그 사실을 간단히 확인할 수 있는 실험방법도 
대단히 많이 반복해 소개했는데 
과거의 글을 살피기로 하고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하자. 

그러나 또 쉭  그렇게 넘어가면 아쉬우므로 
1-  눈을 감고 뜨고 하는 활동을 하면서 왜 자신이 자신의 눈이나 이마는 보지 못하는가 헤아려 보고, 
1 - 돗수가 다른 색안경을 구해 눈을 뜬 상태에서 썻다 벗었다를 하면서 왜 자신의 외부라고 보는 세계가 
그때마다 전체적으로 다 변하는가를 헤아려 보고  
1 - 자신의 눈을 손으로 눌러서 물체가 두개로 보인다고 할 때 외부 세계의 내용도 그렇게 2 개가 된 것인지 확인해보기 
1- 자신과 동류인 다른 사람을 옆에 놓고 앞과 같은 실험을 하게 하는 가운데 무슨 변화가 있는지 보고하게 하고 
왜 자신의 입장에서는 그대로인데 그 상대는 무엇이 보인다 안 보인다고 보고하는 지를 헤아려 보고  
그리고 그 상대가 눈을 감고 뜨고 할 때마다 경험한다는 그 변화는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있는 내용인지 헤아려 보는 
등의 실험을 제시할 수 있다. 


그래서 그렇게 자신이 눈을 떠서 보는 내용은 
자신의 마음 안에 맺힌 내용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일단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 거울을 놓고 
이 상황을 음미하는 것이다. 

거울에 어떤 모습이 비추이고 있는데 
그 모습이 거울 그 자체인가. 
반대로 거울 자체가 그런 모습이라고 할 것인가 
이런 것을 먼저 검토하는 것이다. 


일단 거울에 비추인 그 모습들이 
곧 거울과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어서 
거울 자체는 아니라고 본다면 

다시 그 모습을 거울을 떠나 그렇게 있는 것인가를 
또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미 이런 구조로 어떤 내용의 정체와 
상호 관계를 살피는 것을 
많이 제시했다. 

이미 살핀 마하반야바라밀경에서도 
색과 진여의 관계 
마음과 진여의 관계를 놓고 
그런 형식으로 이 관계를 살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그런가 하면 
문제삼는 것들이 대부분 이런 관계에 있기에 
그 내용과 그 관계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려면 
이런 검토가 필요한 것이다. 

a 는 b 자체가 아닌데 
그 a 는 알고보면 b 를 떠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그 a 를 b 와 관련해 무엇이라고 해야 하는가 .
언어 표현으로는 애매한 관계인 것인데 
그런데 그 두 내용의 정체와 그 상호관계가 
그렇다는 것을 잘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다. 

어떤 내용을 눈을 떠서 보았는데 
그 내용이 마음 자체는 아니지만, 
그러나 마음을 떠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사정을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보는 어떤 내용이 
자신의 외부에 있는 것이고 
그런 내용을 얻게 한 대상이고 
마음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물질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곤란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바위나 꽃을 놓고 
문제를 살필 때는 
이 문제를 잘 헤아린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이 일단 다른 사람인 영희나 철수가 되면 
조금 문제가 복잡해지면서 

다시 자신의 몸이라고 보는 부분을 놓고 문제를 삼거나 
자신을 놓고 이 문제를 적용하게 되면 
상당히 복잡한 문제가 제기된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삶에서 모든 집착의 가장 근본은 
현실에서 자신이 자신이나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는 것을 
놓고 발생되는 것이이므로 
이 부분이 사실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기도 한 것이다. 


결국 자신을 앞의 바위와 동일한 지위에 놓고 
이 문제를 살피면 

현실에서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는 것은 
실재의 지위에 있는 실상도 아니고 
또 자신이 그런 부분을 놓고 생각하게 되는 그런 내용도 아니고 
더욱이 
본 바탕이라고 할 실재에서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는 것으로서 
단지 그런 명칭일 뿐이라고 제시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이런 내용을 관찰하고 보면서 생각하고 살아가는 
주체는 무엇이고 

더 나아가 경전에 의하면 
무량한 기간 동안 각 3 계 6 도를 헤매 다니며 
생사고통을 받는다는 주체는 무엇이고 

또 반대로 그런 사정을 잘 관해서 
앞과 같은 상태와는 달리 
또 무한한 기간 생사를 받아가면서 
수행을 하고 이를 성취해서 
성불한다는 주체는 과연 무엇인가. 

또 그러다가 무여 열반에 들어간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 주체가 어떻게 되는 것이기에 
그렇다고 하는 것인가 
이런 다양한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문제는 
처음에 ◇ 과 같은 부분을 망상에 바탕해 
자신이라고 보던 상태도 문제지만, 

위 그림에서 앞과 같은 뒤집힌 망상적 판단을 
수정해서 
갑 A@와 같은 새로운 관념을 통해서 
각 부분의 정신과 
그 가장 근본되는 정신으로 8 과 같은 근본정신을 
자신의 본질이라고 이해할 때도 
마찬가지로 같은 형태로 문제되는 것이다. 


 

그래서 앞의 논의를 전제로 하면 
결국 이런 주체는 공허하거나 
실답지 않은 것이라고 보아야 하는데 
그러면 이런 것을 검토하고 
수행에 임한다는 주체는 
과연 어떻게 된 것인가 
하는 부분에서 상당히 혼동을 일으킬 여지가 많다고 보는 것이다. 


글을 쓰는 중에 숙왕화님이 갑자기 빵을 
들고 나타나서 일단 빵을 치워 사라지게 하는 작업에 임한 다음 
쉬고 이어 쓰기로 한다. 









참고 - 제 2 권 http://buddhism007.tistory.com/3694

문서정보 ori http://buddhism007.tistory.com/3724#3052
sfed--불설장아함경_K0647_T0001.txt ☞제3권 
sfd8--불교단상_2561_11.txt ☞◆vejw3052
불기2561-11-03 
θθ

 




■ 퀴즈

다음에 해당하는 단어?

 일천제의 준 말. ⇒<유사어>일천제<참조어>일천제(一闡提)

답 후보
● 천제(闡提)
청신녀(淸信女)

체성(體性)
촉(觸)
총상(總相)
축생도(畜生道)
출세(出世)


ॐ मणि पद्मे 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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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장아함경

≪K0647≫ 
≪T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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