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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2-08-17_역장엄삼매경_001 본문

과거조각글/불기2562(2018)

불기2562-08-17_역장엄삼매경_001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18. 8. 17. 13:00



®

역장엄삼매경
K0399 
T0647

역장엄삼매경 상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역장엄삼매경_K0399_T0647 핵심요약



♣0399-001♧

♧역장엄삼매경 상권












◆vugu4929

◈Lab value 불기2562/08/17/금/16:11





○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Les Charlots - Je Chante En Attendant Que Ca Seche.lrc
♥ 잡담 ♥복잡한가치문제


경전을 읽다 보면 같은 형식의 구절이 반복되어서 
너무 질린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경전을 읽다 보니 
과거에 본 화성 탐험영화 마션이 떠오른다. 
불퇴전위에 오른 수행자들이 10 방 세계의 불국토를 방문한다. 
그런 내용이 첫부분에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 20 페이지 정도만 뽑아 살피게 되는데
그런데 그렇게 되면 이 내용만 제시되고 끝나기에 
조금 더 살폈는데 
다음 내용이 이어진다.


...

모든 중생은 

과거세에 공(空)했으며 

현세에도 공하고, 

미래세에도 공할 것이니, 

중생은 이와 같이 지을 것이 없기 때문이니라. 


일체법도 

또한 이와 같아서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도 

지을 것이 없으니, 

왜냐하면 짓는 이가 없기 때문이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지을 것이 있다고 말하면 

이 사람의 말은 

헛되게 속이는 망령된 말인 줄을 알아야 하느니라. 

...

결국 앞에 소개된 내용
즉 각 수행자가 10 방 세계의 불국토를 방문하고
부처님과 이런 저런 말씀을 나누었다는 등의 내용은 
헛되게 속이는 망령된 말이 되는 것이다. 


이상한 일 아닌가. 

그런데 더 이상한 내용은 
다음이다. 
...

이것을 여래자재지(如來自在智)라고 하니 

이 지(智)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모든 행업(行業)의 나아갈 바를 

여래께서 여실하게 다 아시느니라. 

...

짓는 이와 지을 것이 없는데 
그런데 사정이 그렇기 때문에 
모든 행업의 나아갈 바를 또 
부처님께서 여실하게 다 아신다는 내용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사실 경전 처음 부분보다
뒤에 이어지는 부분들이
좀 더 실질적으로 중요한 내용처럼 여겨지는데 

그렇다고 앞 부분에
수행자들이 항하의 모래만큼 많은 세계를 지나서 
우주 여행을 다니는 상황을 배경으로 소개하지 않고 
그냥 이들 내용만 제시하면 오히려 더 이상하게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 그런 배경만 살피고 
정작 그 이후 이어지는 실질 내용을
하나도 살피지 않으면 또 이상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인터넷 상이지만,
페이지마다 올려지는 분량이 너무 많으면 곤란하므로
일단 이 정도만 놓고 살피게 된다. 





그런 가운데 
오랜만에 구글 세계 여행을 떠나 보았다. 
칠레도 가보고 네덜란드도 가보고 아일랜드도 가보고 했는데 
그간 날씨가 더워서 잘 떠나지 않다보니 
구글 여행 떠나는 핫키마저도 잊어 버려서 
다시 알아내는데 힘들었다. 

그런데 세계 각곳마다 이상한 거리와 풍경이 펼쳐지고 
또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각기 다른 흔적을 본다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바로 이런 현실을 놓고 
그런 것을 지을 것이 없고 
짓는 이가 없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각 사진을 보면 거기에 
그런 것들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내용을 앞과 같은 바탕에서 
여실하게 다 아는 것이 여래자재지라고 한다는 이야기다. 


앞 조각글에서 가치 문제를 다뤘는데 
이 문제도 마찬가지다. 

현실에 무언가 좋은 것이 있고 
성취시키고자 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내용이 있다고 할 때 

경전에서는 기본적으로 
현실에 그런 좋음을 주는 것 자체도 얻을 수 없고 
그리고 그것이 주는 좋음이나 
그런 좋음을 얻는 이도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제 연구실 정리와 청소를 하면서 
온갖 쓰레기를 모아 버리기도 하고 
수리하는 부분을 일일이 수리도 하다가 
상당히 지쳤는데 
이것이 바로 현실의 가치문제이기도 하다. 

왜 못쓰는 종이나 비닐 이런 등등의 쓰레기를 모아서 버리는가.  
그것이 가치가 적은 쓰레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또 어떤 것이 고장나면 그것을 고치는가. 
그것을 고쳐 놓고 사용하는 것이 좋음을 주기 때문이다. 

간단하지 않은가. 

그래서 생사현실에서는 무엇은 좋고 
무엇은 나쁘다는 내용이 분명히 그렇게 있고 
또 그런 좋고 나쁨을 주는 물건이나 상태가 분명히 그렇게 있다고 
여기고 대하는데 
그런데 바로 그 현실에 그런 내용은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부처님이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다시 좋음을 무량하게 얻는 수행을 또 하는 것은 
중생의 상태에 눈높이를 맞추어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취지에서 
그 측면에서 그런 좋음을 성취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본 바탕은 그런 것을 얻을 수 없는데 
그러나 생사현실에서는 수행자가 복덕과 수명과 지혜자량을 구족하는 
무량한 수행을 해나간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본 바탕이라고 할 측면에서 본전이라고 할 청정한 니르바나를 확보하고 
다시 생사현실의 망집에서 대하는 측면에서 
복덕과 지혜로 대하게 되는 내용을 다시 겹쳐 놓은 
동가 홍상의 수행방식인 것이다. 

그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하나의 경전을 보더라도 
곳곳이 자체적으로 모순되는 내용을 제시하는 것처럼 
여기게 되기 쉽다. 


현재 니르바나행복론 편집을 기획 중인데 
이 내용이 상당히 방대한 부분을 살펴야 하기에 
조금 마음이 지치는 현상이 먼저 발생한다. 

수행자 수행공식의 첫부분 
참 예쁘지 이 부분이
주로 니르바나 행복론에 해당하는 내용인데

예쁘지는 f(x)g(y) 복합함수를 의미한다. 

각 중생이 놓여 있는 상태를 x 라고 표현하고 
그 상태에서 각 중생이 개별적으로 희망하는 좋은 상태를 
y 라고 표시하면 
x 의 상태에서 어떻게 해야 
그런 y 의 상태를 성취하는가가 
바로 현실에서 대단히 초점을 맞추고 
집중하게 되는 문제다. 

그 소원이 무량하기에 그 구체적 내용도 무량하다. 
현실에서 별 일이 없으면 이 사정을 잘 모르고 지나칠 수 있지만, 
현실에서 잘 사용하다가 
무언가가 하나씩 부서져 나가면 
그 때마다 앞의 문제를 놓고 풀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잘 되던 모니터가 부서졌다. 
어떻게 해야 이것을 고치는가. 
아니면 새로 사야하나. 
이런 문제가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대단히 광범위하기에 
돈이 많으면 이들 문제를 대부분 쉽게 해결할 것 같은데 
그런데 그 문제도 또 위 문제와 형식이 같다. 

어떻게 해야 돈을 많이 벌 수 있는가.? 
어떤 투자를 한다면 어느 종목에 어떤 때에 투자를 해야 
많은 수익을 얻는가. 
이런 것 하나하나가 결국 y=f(x) 함수에서 
그 함수내용 즉 그 구체적 방안을 묻는 것이다. 

그런데 가치문제를 넓고 길고 깊게 보면 
돈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가치가 또 대단히 무량하게 많다. 
그리고 하나하나 그 가치가 대단히 큰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두 눈이나 심장을 일단 놓고 
가치저울을 놓고 가치를 비교하면 
화폐금액으로는 도저히 나타내기 힘든데 
현실에서도 이런 형태로 가치가 높고
정작 돈으로 얻기 힘든 내용들이 또 대단히 많은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현실에서 얻는 것도 또 마찬가지로 
y=f(x) 함수의 문제가 된다. 

그런데 니르바나 행복론은 결국 
현실에서 이처럼 각 개인이 희망하는 상태를 성취할 수 있는 
방안도 살피는 한편 
다시 이를 계기로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하는 
수행에 진입하는 상태를 목표로 
g(y) 함수식까지 같이 살펴야 하니 
살펴야 할 부분이 대단히 넓어지는 것이다. 

본인이 어제 세면대 하수관에 물이 잘 안내려가서 
이것을 열어 청소해보려고 했는데 
아무리 도구를 가지고 열어보려고 해도 
잘 열어지지 않아 결국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방법을 배우고 분해해서 청소를 마쳤다. 

글로만 설명하면 무슨 사정인가 이해하지 못할 경우가 많으므로 
해당 부분을 붙이면 다음과 같다. 


문제는 3 과 5 과 결합되어진 상태에서는 
외관만 놓고 보면 하나의 몸체 부분인 것처럼도 보이고 
또 언뜻보면 금속 재질인 것처럼도 보이는데 
알고보면 플라스틱 제품이고 부품을 돌려 열어서 안을 청소하여
사용하게끔 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처음에는 그런 가능성을 념두에 두고
렌치를 가지고 아무리 윗 부분을 돌려보아도 
잘 안 열려져서 그냥 한 몸체인가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공연히 밑 부분을 잡아 뽑아 보려고 하다가 
아무리 해도 잘 안되어서 
설명서를 보고 해보자 이렇게 생각하고
검색을 해서 위 내용을 찾은 것이다. 

그리고 설명서부분을 보고 3 부분이 
반드시 열려야 하는 부분이다라고 그 사정을 알게 되니 
이후 확신을 갖고 임해서 열려고 해보니 또
바로 쉽게 열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안 부품들을 청소하니
문제가 간단히 해결되었다.  
구조를 보니 부품 4 와 5 가 안에서
그런 기능을 맡게끔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내용이 어떤 특수한 경우에서 
하수관 청소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이런 내용까지 일일히 어느 부분에 제시해야 할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와 비슷한 성격을 갖는 문제가
무량하게 나타나는 것이 현실이다. 

다음 주에 어떤 숫자를 적어야 로또 복권에 당첨이 될까요부터 시작해서 
이번 주에 주식 어느 종목을 사서 
언제 팔아야 가장 수익을  많이 얻을 수 있는가. 
그리고 부동산은 어느 곳에서 어떤 형태로 구해야 
수익을 많이 얻는가. 
이런 등등의 문제가 다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것이 해결 안되면 
아무리 현실에 그런 좋고 나쁨을 본래 얻을 수 있다 없다를 살펴도
당장 현실에서 불편과 고통을 각 부분마다 느끼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이런 과정에서 
그 문제를 다 살피고 
그리고 최종적으로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는 
g(y) 부분까지 접속을 시켜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는 수행으로 진입시킨다는 것이 
대단히 힘든 문제임을 보게 되는 것이다. 

하루 종일 이 문제를 놓고 생각해보는데
여하튼 핵심을 추려서 잘 살펴보아야 할 문제가 
너무 많다고 보게 된다. 
그러니 글을 쓰기도 전에 지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왜 이렇게 좋은 것이 많은가. 
TV 만 보아도 그렇고 
사진만 보아도 그렇고...

일단 쉬기로 한다. 





○ [pt op tr]  mus0fl--Féloche - Dr John Gris John Gris.lrc

경전에서 항하의 모래만큼 많은 세계를 지나 있는 불국토를 어떻게 오갈 수 있는가. 

이런 문제도 사정이 예쁘지 함수와 관련되는 사정은 마찬가지라고 본다. 
경전을 보다 보면 또 과거겁으로 들어가 미래 겁으로 나오고 
이런 시간 여행과 관련된 내용도 제시되는데 
이 역시 사정이 같다. 

이론을 안다고 해서 곧바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닌데 
그래도 이론을 알면 확신을 갖게 되고 
그런 수행에 임해서도 강한 추진력을 갖게 된다고 본다. 

어떤 나사를 돌려야 하거나 
관을 풀어야 할 때 
초보의 입장에서는 시계방향으로 돌려야 할까. 
역방향으로 돌려야 할까 이것부터가 어려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현실에서 만나는 거의 대부분은 시계방향으로 돌리면 잠궈지게 된다는 것을 
상식으로 알고 있으면 그래도 낫다. 
그러니까 자주 이런 분해나 결합작업을 할 경우는 외어야 할 내용이다. 
그리고 그렇게 잘 외우고 있는 경우에는 
자신이 힘을 가하는 방향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되고 
그래서 좀 힘이 들더라도 끝내 성취할 수 있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경우는 
조금 안 열리면 자신이 방향을 거꾸로 해서 돌려서 그런가 하고 
자꾸 멈추게 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렇게 해보고 저렇게 해보다 보면 
늘 제자리에 있게 되는 경우가 되는 것이다. 


전등 스위치가 누르는 스위치일 때 
오른 쪽이 안으로 들어가면 켜지는 것인가. 꺼지는 것인가. 
이런 문제도 성격이 비슷한데 몰라도 큰 지장은 없다. 

핸폰이나 컴퓨터 usb 단자가 언뜻보면 위 아래가 비슷해 보이는데 
매번 두서번 넣어보고 찾는 경우도 있지만, 
매번 한번에 바로 바로 넣도록 하려면 
외우거나 자신나름대로 표시를 해두거나 해야 할 필요도 있다. 

그런 것을 외우지 않아도 때가 되면 
다 잘 알아서 하는 내용도 있는데 
그것은 그만큼 강력하게 업을 쌓아 장착된 내용이라고 
이 사정을 보아야 한다. 
그럴 사유가 본래는 없기 때문이다. 

시간의 불가역성을 믿고 현실에 임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은데 
본 바탕에서는 그런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앞에서 제시한 각 내용의 기본 원칙이나 이론적 배경은 
금강경에서 제시하고 있는 
'무유정법'이라는 구절에 그 핵심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현실에서 대하는 한 단면을 놓고 
어느 부분이 영희다 
지금 영희가 저기에서 이리로 오고 있다. 
이런 식으로 판단한다고 할 때 
그 단면 하나하나에 그가 생각하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실재의 내용도 또 그러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현실을 놓고 
어떤 이가 한 부분을 영희라고 여기고 대하고 
또 그 상황을 영희가 저기에서 이리로 오고 있다고 여기면 
바로 그 전제에서는 그 바탕에서 
앞과 같은 내용을 죽 나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바탕에서는 
그러그러한 영희나 또 그런 영희가 이리저리 오고간다고 보는 
그 주체는 그 생사도 보게 되고 
그리고 무량겁에 걸쳐서 3 계 6 도 이곳저곳을 헤매 돌아다니다가, 
이전 조각글에서 살핀 것처럼 끝내는 성불하게 된다는 내용도 
또 제시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본 바탕을 놓고 살피면 그런 현실 어느 한 단면에도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 그렇기 때문에 현대과학으로 
빛보다 빠른 것은 없다고도 하는 한편
그런 가운데 1 불세계 즉 10 억 세계도 한평생을 다 걸려도 끝내 오갈 수 없다고 
이론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앞에서 제시한 내용을 바탕으로 할 때는 
강가의 모래알 수에 해당하는 세계를 넘어서도 
수행자가 바로 바로 오갈 수 있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정말 현실에서 오갈 수 있는 불퇴전위의 수행자가 되기 이전에 
이론으로라도 자신이 확신을 갖고 이런 내용을 대해야 
그런 수행에 진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처음부터 그런 문에 들어서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f(x)g(y) 복합함수식을 가지고 
니르바나 행복론을 서술할 때 

본 바탕에서 현실에서 문제삼는 내용을 얻을 수 없다는 측면만 
너무 강조하면 
수행의 입장에서는 적절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현실에서 각 내용에 초점을 맞추고 집착하는 입장에서는 
니르바나 행복론이 현실에서 각 주체가 의미를 두고 
추구하는 내용을 모두 지우기만 하고 
제거하는 허무적인 내용이라고 여기기 쉽다. 

그런데 사정은 그렇지 않다. 
물론 그런 상태에 있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취지이기는 하지만, 
또 사정이 그렇기에 
수행자가 닦아야 할 분야는
3계 6 도 각 중생이 갖는 무량한 뜻에 상응해서 무량한 것이다.

다만 그 내용이 방대하기도 하거니와 
반드시 수행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만 사용되는 성격을 
갖는 것도 아니어서 
이것은 모두 다라니와 삼매로 들어가서 
개별적으로 닦아 익히고 
그렇게 다 닦아 익혔다고 해도 
다라니와 삼매로 수행자가 묶어 놓고 나오게 되는 것 뿐이다. 


그래서 경전을 아무리 살펴도 
어떤 엔진으로 된 우주선을 타고 가서 
갠지스강 모래알수에 해당한 세계를 그렇게 오갈 수 있는가. 
이런 부분은 제시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정으로 이것이 구라다. 
이렇게 이해하면 안 되므로 
그 이론적 배경을 잘 이해하고 이 내용을 대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것이 무유정법과 관련이 된다는 내용이다. 

일단 또 쉬기로 한다. 

올려진 노래에서
무량행문을 닦아 나가려면
세상의 이것 저것을 다 자세히 놓고 살펴보아야 한다는 
메세지가 전해지는데 
즐겁게 대하면 오락이 되지만, 
자신이 적절하게 대하지 않으면 
하나같이 고통스런 일이 되기 쉽다. 
그래서 수행자의 기본 자세가 중요한 것이다. 




mus0fl--Emmanuelle Seigner - Dingue.lrc

앞에서 소개한 기본 이론 무유정법이란 어떤 내용인가. 

이는 다음 내용과 관련된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과거에 아직 부처님이 아닌 상태에서 수행하던 당시 
당시 부처님을 만나서 장래 성불할 것이라는 수기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내용만 놓고 보면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되기 쉽다. 

그렇구나. 장래의 구체적인 내용을 자신이 모르는 것일뿐 

미래란 이미 과거 오래 전부터 각 순간 순간이
그렇게 그렇게 되도록 미리 다 결정되어 있는 것이구나. 
이렇게 여기기 쉽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미래 일에 대해 
이렇게 된다 저렇게 된다고 몇 겁전에 
그 내용을 미리 파악해 제시할 수 있겠는가. 

이런 입장은 오늘날 모든 현상을 인과관계로 이해하는 
기계적 인과론의 입장에서도 취하기 쉽다. 
그래서 각 현상이 그렇게 인과에 묶여서 나타난다고 이해하면 
현재의 상태와 그 관계를 잘 파악하면 
미래의 내용도 이에 따라 그렇게 나타나도록 
이미 결정된 것이라고 여기게 되기 쉬운 것이다. 

그러나 무유정법이나 실무가득
또는 무소유 불가득 공 이런 등의 내용은 
본 사정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제시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지 않다면 
그러면 위와 같은 내용은 또 어떻게 어떤 바탕에서 제시할 수 있는가
그리고 또 수행자가 수행을 하면
일정한 수행목표를 성취한다는 관계는 
또 어떻게 제시되는 것인가. 
그리고 원인과 결과에 대해 부처님이 제시한 내용은 
어떻게 숙명론이나 결정론에 빠지지 않는 내용이 되는가. 
이런 의문을 갖게 되기 쉽다. 

그것이 앞에 설명한 내용이다. 

현실의 어느 한 단면에도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는데 

무명 어리석음에 바탕해서 망집을 일으켜 
각 현실 단면에 그가 생각하는 그런 내용이 
그처럼 있다고 여기고 대하게 된 그 바탕에서는 
그러그러한 모습이나 그런 내용이 있다고 여기고 
그렇게 생사를 받아가면서 
결국은 그런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런 내용을 지금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 내용은 서로 모순되는 내용이 아니고 
서로가 서로를 지지하고 설명하게 되는 내용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인과관계 즉 연기를 설명하는 내용은 
곧 실상의 공함을 설명하는 내용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잘못 이해하면 
부처님이 연기를 제시했으므로 
그것이 실다운 것이라고 잘못 집착하게 되거나, 
또는 공함을 제시했으므로 
현실에서 이런 수행을 하면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 
경전에서 제시하는 이러이러한 상태에 이르게 되는 일은 없다거나, 
또는 그런 수행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로 인해 생사에 묶여 3 악도에 묶여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는 등의
일이 전혀 없다거나 하는 등등으로
혼동을 일으키기 쉽다. 

현실에서 조금만 더워도 견디기 힘든데 
현실에서 생생하게 이런 내용을 겪는다면 
이것을 놓고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은 그러나 실답지는 않지만, 
그런 내용을 생생하게 얻고 
그것을 가지고 그런 내용이라고 여기면서
망집을 일으켜 임하는 상태가 그렇게 나타난다고 제시한 것이다. 

그러니 한편으로는 한번 행한 업에 의해 
과보를 받는 관계는 무량한 겁에 걸쳐서 없어지지 않고 
이어지게 된다고 제시하는 한편 
그러나 그렇게 이어진다고 보는 매순간 순간의 한 단면에도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하는 내용인 것이다. 

이 관계를 함께 잘 이해하면 
결국 경전에서 앞에 제시한 것과 같이 
표면상 서로 모순되는 듯한 각 내용이 
모순되는 내용이 아님을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날씨가 많이 풀어졌다고 하는데 
그래도 조금 덥다. 
오랜만에 글을 쓰니 눈도 무겁다. 

올려진 노래에서 매맞고 불교믿는다는 이상한 메세지를 전하는데 
미리 사정을 잘 이해하고 
수행으로 전환해 임하지 않으면 
결국 노래 가사처럼 
직접 생생하게 3 악도의 사정을 겪고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장구한 세월을 보내다가
다시 포맷 처리된 상태로 
수행을 할만한 인간세계에 임한 뒤 
다시 어떤 계기를 만나서 수행에 진입해야 
그런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된다고 제시하게 된다. 

이것이 맹구 즉 눈먼 거북이가
바다에서 떠다니는 구멍난 나무를 만나는 맹귀부목이란 내용으로
비유되는 내용이고
노래에서 제시되듯 맞을 매를 다 맞고 나서
그 상태에서 부처님 가르침을 이해하고 따르게 된다는
메세지와 관련되는 내용이라고 본다. 

일단 또 쉬기로 한다. 





mus0fl--Gilbert Becaud - Rosy And John.lrc


니르바나 행복론이 f(x)g(y)의 수행공식에 
주로 해당한다고 앞에서 제시했는데 
f(x)를 살피는 주된 취지는 이를 계기로
g(y)의 상태로 진입시키는데 주된 취지가 있게 된다. 

그래서 살피자면 무량하고 방대한  f(x)분야는
이런 상태를 놓고 살펴나가야 할 문제가 된다. 

현실에서 어떤 구체적 개인이 놓여진 상태를 
x 라고 하고 
일반적으로 좋다고 보는 상태를 y 라고 표시할 때 
앞과 같은 입장에서 이 문제를 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경우는 그 이후 취하는 방향 자체가 
달라지게 된다. 

이를 자동차가 네거리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가의 문제로도 살폈는데 
이는 현실에서 하나의 수단이나 방편이 
각 경우마다 제각각 다른 평가를 받는 
물의 가치평가 문제로도 살핀 적이 있다. 

하나의 물은 다 같지만, 
사막에서 대하는 물과 
일반 현실에서 수도를 통해 대하는 물과 
물 고문을 당하는 상황에서 대하는 물이 
다 그 의미가 다른 것이다. 

어떻게 보면 물고문을 당하는 상황의 물을 놓고 
매 경우마다 마치 사막에서 갈증을 해소시키는 물처럼 
바꿔 그것을 취할 수 있다면 바람직하다고 보겠지만, 
이론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그래서 대강 현실에서 좋다고 보는 어떤 한 내용을 놓고 
이것이 모든 개인에게 다 좋으니 
그것을 다 이러이러한 방식으로 취하자 
이렇게 제시하는 것은 
일반 행복론에서도 제시할 수 없는 내용이다. 

하물며 현실에서 좋다고 보는 y 상태는
단지 g(y) 과정을 통해 수행으로 진입시켜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하는 방편으로서
그 가치를 갖는다고 보는 수행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사정이 그렇다. 

doctr 님의 행복론에서는 
그래서 일반적으로 행복을 얻는 수단이 된다고 보는 
각 항목을 나열해 놓은 가운데 
구체적 상황에서 

이것을 추구해 성취해야 하는가, 아닌가는 
그것이 각 개인의 선한 중심희망인가 아닌가의 
문제로 처리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니르바나 행복론에서는 
어떤 한 항목을 현실에서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경우란, 
생사에 묶이게 만드는 자신이 쌓아 놓은 업의 장애를 제거하는 수행내용이거나, 

또는 자신은 생사의 묶임에서 풀려나 벗어났다고 해도 
다시 다른 중생을 제도해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얻고
불국토를 장엄하고 성불하는 데 필요한 방편을 닦는 내용들인 경우에 
그렇게 행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것은 반대로 말하면 
그런 상황이 아니면 
대부분 그것은 네거리에서 그 방향으로 차를 몰고 
나아가면 안 되고 
그냥 주어진 x 상태에서 멈춰서서 그 상태에서 만족하는 한편 
다른 수행자들이 보리심을 일으킨 바탕에서 

중생제도를 위해 그런 y 를 택하고 잘 성취해가는 내용을 대하고 따라 만족하거나, [장점보기- 수희]

아니면 그 목표점 y 가 갖는 많은 단점을 관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끊고 제거해야 할 내용으로 대하거나 [단점을 보고 끊기- 무원무작삼매해탈]

아니면 그것이 비록 좋다고 해도 그보다 훨씬 좋고 좋은 것을 향해 
방향을 돌려 나갈 문제로 대하거나 하는 것이 된다. [ 무시, - 회향 ] 


따라서 이런 입장에서는 
일반적으로 현실에서 집착하고 추구하기 쉬운 
대부분의 내용을 놓고 
앞과 같은 측면에서 이것을 대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 되게 된다. 

이런 사례로 삼국유사에 나오는 조신 스님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이는 조신스님이 절에 찾아온 어떤 여인을 보고 
겪게 된 내용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만나는 문제가 대부분 
이런 성격을 갖는 것이다. 

본래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는데 
근본적으로 그것이 무엇때문에 좋은가. 
좋음이란 무엇인가. 
이런 문제를 떠나서 

이상하게 그런 상황에서 
현실의 어떤 한 주체는 어떤 내용을 꼭 성취하고 싶다고 여기면서 
간절히 그것을 희구하는 상태가 된다는 점이다. 

이것이 x 에서 구하는 y 의 문제다. 

그 상태에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것을 잘 성취하는 것만을 바라고 집착하게 되지만, 

f(x)g(y) 의 관계를 놓고 이를 대하는 입장에서는 
이 x 의 상태에서 어떻하던지 
불필요한 f(x)를 단축시켜서 빨리 g(y)로 진입시키는 것이 
주된 목표가 된다는 점이다. 

나중에 수행자가 자신이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고 
중생제도를 위한 방편으로 이런 무량방편문을 닦아나갈 때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한편 수행자가 그런 방편을 무량하게 닦는 것이 요구되는 것도  
그 자체에 의미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중생을 제도하는데 이런 방편이 필요해서 그런 것이다. 
그러니 방편에 매달려서 시간과 노력을 소모하는 것은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닌 것이므로 
그것을 되도록 단축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따라서 수행자는 선배 수행자의 도움을 받아서 
그 과정을 단축하고 중생제도에 더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예를 들어 중생제도를 위해 불을 켜는 것이 필요하면 
곧바로 라이터를 가게에서 구해가지고 와 
불을 켜는 것이 필요한 것이지, 

수행자가 직접 라이터 재료를 구하고 조립해서 
불을 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자칫 수행을 잘못 이해하면 
온갖 내용을 자신이 하나하나 시행착오를 겪어가면서 
무량겁에 걸쳐 이것을 닦아야 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쉽지만, 
그럴 필요는 또 없는 것이다. 

방편은 방편인 것이고 방편 자체가 목적은 아니기 때문이다. 


조신의 사례를 놓고 보면 
본래는 원칙적으로 
수행자인 조신이 직접 그런 내용이 갖는 
단점을 잘 관하고 그런 번뇌를 끊어버리는 것이 요구된다고 보지만, 

그러나 구체적으로 잘 안 되는 것이 현실이므로 
관세음보살님이 종이 한번 울리는 사이에 
조신이 처음 가졌던 희망이 성취되고 나서 
그 이후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는가를 죽 경험하게 한 다음 
그런 상태를 벗어나게 했다는 내용이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현실에서도 어떤 소원을 갖고 갈구하면서 
좀처럼 그것을 포기하지 않으려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나 그것을 한번 또 성취한 이들은 
또 그렇게 임하지 않고 쉽게 그런 집착에서 벗어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다고 정말 그것을 하나하나 
그렇게 다 현실에서 실현하고 나서 
그리고 나서 그것을 벗어난다고 하면 
대단히 시간이 많이 걸리고
그로 인한 부작용도 많이 겪어 나가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것을 빨리 단축하면 할수록 
그것이 좋다고 보는 것이다. 
그 내용이 삼국유사에 나오는 조신의 내용이기도 하다. 

결국 f(x)g(y) 수행공식에서 
f(x)란 사실 법화경 화성유품에서 제시되는 것처럼 
일단 생사를 벗어나고 성불하여 중생을 제도하는 상태에 이르게 하기 위한
임시적인 목표점들로서 
일단 그것을 목표로 하여 그 성에 도착해 이르게 하지만,
끝내는 그것을 모두 허물고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고 성불하는 수행에
진입해 들어가는 과정의 하나인 것이다.

결국 니르바나 행복론에서 다루게 되는 내용도 
이런 취지에서 이를 다루게 된다는 사정을 
먼저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원래 무원무작삼매를 통해서 
현실에서 집착하고 추구하는 일체의 희망이 
다 망집에 바탕해서 일으킨 쓸데없는 것임을
이해하고 벗어나는 것이 가장 빠른 방안이지만,
그러나 일반적으로 그렇게 잘 안 되므로 

그 극한의 성취를 신속하게 이루고
그리고 곧바로 그에 대한 환멸과 염증을 일으켜서 
바로 벗어나는 것이 두번째의 차선책이 된다는 의미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중생제도와 성불을 위해서 
한 수행자가 현실에서 그런 방편을 택해
극단적으로 잘 성취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보리심을 일으키고
그런 방편을 닦아 나가는 다른 수행자 상태를 따라 기뻐하고 
자신은 일단 자신이 행하는 원칙적인 수행에 전념하는 것이 
더 요구되는 것이다. 

그래서 니르바나 행복론은 주로 
이런 입장에서 현실에서 문제되는
각 항목을 대하게 되는 것이다. 




S.E.S-Dreams Come Ture
https://www.youtube.com/watch?v=r7Tx0VDF0H4


TV에서  S.E.S 의 가수 바다가 

자신의 노래 모창대회에서 탈락한 것을 보았다. 
본인은 S.E.S 의 세대는 아닌데 S.E.S 의 노래는 감미롭고 좋다고 여긴다. 
유감은 듣기는 대단히 좋은데 같이 따라부르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그래서 앞으로 아이돌 가수들에게 다음을 하나 요청하고 싶다. 
노래 대부분은 당연히 듣기에 좋아야 하는데 
그래도 최소한 일정 구간부분은
일반인들이 따라부르기 쉬운 부분을 넣어주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수행의 입장에서 좀 더 요구를 한다면, 
그 부분 가사 의미도 좀 더 좋고 좋은 내용으로 다듬어 주면 더 좋다고 보게 된다. 

그리고 끝내 이를 계기로
무량겁에 걸친 생사의 묶임과 번뇌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면
즉 해탈과 니르바나까지 주게 되면 더더욱 좋다고 본다. 

여하튼 음악전문가나 청중 대부분이 S.E.S의 가수 바다라고 판정한 이는
이런 가수 모창대회가 처음 시작되었던 3 년전부터
언젠가는 바다 모창대회도 있으리라 미리 예상하고
홀로 준비를 꾸준히 해온 다른 이였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분이 상금 2000 만원을 수령하는 것을 보았는데 
수행에 임하는 이도 바로 이런 자세로 수행을 해야 한다고 본다. 

누구나 생사과정을 겪고 이번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여
장례식을 치루고 화장터나 매장지에 들어가게 되고 
그래서 생사의 강을 건너게 되고 그래서
자신이 이후 처할 세계를 또 바꾸어 가게 되는데

지금 당장 또는 내일 그런 일을 겪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이런 사정을 지금 미리 자신이 예견을 충분히 한다면, 
이것을 놓고 자신이 수행을
무량겁에 걸쳐 계속 이어갈 시나리오와
그 시나리오를 펼쳐갈 각 세계의 내용도 미리 잘 작성해서
이것을 놓고 평소 꾸준히 수행에 정진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런 내용이 잘 성취되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으로 
자신의 희망과 뜻과 관계없이 
3 악도에 강제로 묶여 생사를 받게 되는 상태에서
기본적으로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수행의 가장 기본적인 1차 목표점은
자신을 생사에 묶이는 업의 장애를 제거할
수행부터 잘 성취하는 것이다. 

그것이 결국 계의 항목에 해당하는 
보시, 정계, 안인, 정진의 항목이다. 
좋고 나쁨의 문제를 놓고 살피면 

좋음은 아낌없이 베풀고 
자신의 좋음을 얻고자 다른 생명이 집착하는 좋음을 함부로 침해하거나 고통을 가하지 않고 
반대로 자신이 나쁨을 받을 때는 이에 상을 취하지 말고 평안히 참고 받아들이고
이를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바로 자신의 업의 장애를 해소하는 방안이 된다는 의미다.

그리고 위 내용은 나중에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난 다음 
중생제도를 위해 수행에 임할 때도 똑같이 요구된다. 
다만 이 경우는 업의 장애 해소가 목표가 아니고 
중생제도에 필요한 복덕자량을 확보해 구족하는 것이 목표가 된다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S.E.S 의 멤버 가운데 한 분은 소송에 휘말려있다는 소식을 
또 안타깝게 듣게 된다. 
타이틀명이 영어로 소송을 의미하는 단어와 발음이 비슷한데 
그런데 이 분쟁 내용이 딜레마 논법과 비슷하다고 해서 일단 관심을 끌게 된다. 

한쪽은 이런 논리를 제시한다. 

가수 자신은 자신이 일본 영주권이 있기에 자신이 도박하는 것은 범죄가 아니지만, 
그러나 다른 이에게 도박을 하라고 자금을 빌려준 것은 
사회적으로 선량한 풍속을 해치는 행위로서 그 자금은 갚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도박자금에 대단히 높은 이자율을 부과해 받아간 부분 역시 불법이므로 반환해야 한다. 

한쪽에서 이런 논리를 펴는데 반해 
다른 한쪽은 이와 반대로 
일본영주권자인 그 가수가 카지노에서 도박을 한 행위는 범죄가 아니다. 
그래서 범죄가 아닌 행위를 하는데 돈을 빌려준 행위 역시 불법이 아니다. 
그래서 대금과 그에 대한 이자를 갚아야 한다. 
이렇게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그것이 불법이라면 또 각 입장에서는
어떤 주장을 이어갈 것인가.

아마 이럴지 모른다.

한쪽은 
그런 일이 불법이라면 같은 바탕에서 그 대금도 갚지 않겠다.
이렇게 임할 수도 있고 

또 한쪽은 
아니다 그것이 불법이라면
오히려 앞으로 그런 바탕에서 계속 이어질 불법적인 위해나 침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대금은 갚아야 한다.
이렇게 임할 지도 모른다. 


어떤 주장이 맞을까. 

이런 문제는 어떤 상황에 
자신이 문제삼는 그런 어떤 내용과 
그런 억울함이 들어 있다고 여기는 입장에서만 시시비비를 삼고 
법정에 가서 따져볼 사항이다. 

그런데 법정에 가서 시시비비를 따져보고
판결이 나면 그로 인해 당사자가 모두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그 이후 상황에 임한다면 참 좋은 일이라고 할만한데 
그런데 대부분 그처럼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따지고 판결이 나와도 
그 판결 결과와 관계없이 그 이후로도
그런 시시비비를 다투는 증상이  해결이 안 되고
거의 대부분 오히려 계속 확대되고 이어져 가는 것이 문제다. 


그러니 이에 의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겠는가. 

이것이 그런 내용을 본래 얻을 수 없는 현실에서 
그런 내용이 있다고 망집을 일으키고 현실에 임하는 상태의 
공통적인 문제점이다. 
그리고 무한히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법정에 임하려면 그나마 소송의 꽃이라고 할 화해에 
쌍방이 잘 이르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보게 되는데 
돈 빌려준 이가 새로 가수에 대한 연예 기획자나 후원인이 되고 
가수가 다시 또 여러 노래를 힛트시켜 수익을 얻고
그것으로 청산이 된다면 금상첨화라고 할 만하지만,
일단 현실에서 이들은 말처럼 쉽게 이루기는 힘든 일이다. 

여하튼 타이틀 유진양을 이 문제에 넣어서 시감상을 해보면 
모창대회에서 탈락한 바다처럼 망집이 펼쳐지는 생사의 바다 안에서 
소송하고 다투고 그러면 당신은 진 사람[유진] 이야. 
이런 엉뚱한 시감상을 하는데 

수행자의 입장에서 일단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입장에서는
S.E.S 의 Dreams come true 노래와 같은 노래를 통해 
현실에 임하는 이들이 모두 
삼국유사에 나오는 조신 스님의 상태에 빨리 도달해야 한다고 본다. 

일단 S.E.S 는 대단한 아이돌 스타다. 

한마디로 자신이 어느 분야에 관심이 있는데 
그 분야에서 최고 상태라는 의미다. 
세대가 다르면 물론 각 분야마다 최고라고 보는 인물이 다 제각각 다를 수 있는데 
바둑이라면 알파고나 알파고와 맞두고 간신히 지고 이기는
이세돌이나 이창호 이런 상태라는 의미다. 

그런데 세상에서 일단 SE.S 처럼 되서 
자신의 꿈이 실현된 다음 
그 이후 상태에서 생사의 고통과 번뇌에서 모두 벗어나 
니르바나의 상태에 들어가려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Dreams come true 라는 제목이 의미하듯 
자신이 갖는 꿈이 이미 성취된 상태에 빨리 도달해서 
그에 집착하고 묶이는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조신의 방법을 자신이 혼자 사용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본다. 

왜 해탈문과 니르바나의 문을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잘 열지 않고 사용하지 않는가. 

일반적으로 해탈문을 잘 안 여는 것은
문 위치 자체를 모르거나 
또는 열려고 해도 문에 빗장이 걸려 있거나 
문을 열 열쇠가 없거나 
무엇인가가 문에 걸려 있거나
누군가 문을 열지 못하도록 상대를 묶고 방해하는 경우 
등등의 사유를 생각할 수 있는데 

현실에서 
해탈문을 열어 들어가지 못하는 사정도 이와 비슷하다. 

그리고 별 장애가 없어도  
자신이 현실에서 평생 노력해도 성취하기 힘든 상태
예를 들어 S.E.S 와 같은 아이도 스타가 되어 인기를 최고로 많이 얻고
돈도 많이 벌고 그런 온갖 것들을 다 잘 성취된 다음에
나중에 시간이 남으면 그런 문을 열어보겠다는 형태로 일반적으로 임하니 
그것이 눈을 가려서 평소
해탈문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래서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는 일이 잘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부분을 빨리 단축해야 한다. 

그런 경우는 위 노래처럼 자신이 간절히 바라는 꿈들이
하나같이 다 뜻처럼 성취되었다고 일단 여기고 
빨리 그 상태에 들어가서 임하는 것이 지름길인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갖는 꿈이 무엇이던 
제한없이 그것이 다 뜻처럼 성취된 상태를 마음에 일단 그려 놓고 
도대체 그런 뜻을 왜 자신이 원한 것인가.
즉 그런 뜻이 성취되면 그 상태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나가려고 한 것인가. 
이런 것을 잘 살피고 
계속 그 이후 이후 부분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조신 스님도 처음 자신의 뜻이 성취된 상태만 놓고 보면 
큰 불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상태 그 이후 이후의 내용들이 문제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 상태로 계속 나아가서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해탈문을 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빗장도 풀리고 그 문을 열 열쇠도 보이기 시작하게 된다는 의미다. 

그리고 노래에서 가수가 그 노래를 어떻게 부르던 
자신이 따라할 적당할 부분을 찾고 
그 부분이 갖는 의미도
직접 좋은 의미로 새겨 잘 따라 부르고 평소 연습을 해야 한다고 본다.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갖는 꿈 내용은
대부분 그 내용이 망집에 바탕한 내용이고 
자신 입장에서 그것도 지금 자신이 당장 초점을 맞추는 부분만 고려한 내용으로서 
넓고 길고 깊게 두루두루 좋고 좋은 내용이 아닌 경우가 많기에 
그런 사정으로 그 사정을 잘 관하고 
무원무작 삼매해탈 수행을 통해 대부분 제거하고 버려야 할 내용이다. 


그런데 그렇게해서 해탈문에 들어서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났다면 
이후 그 수행자가 다시 중생제도를 위해
생사현실에 다시 돌아와 수행에 임할 때는 
처음에 가진 희망을 조금 변형시켜
넓고 길고 깊게 두루두루 각 측면이 좋고 좋은 내용이 되도록 
그 성격을 조금 변형해서 다시 임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 부분은 또 앞과는 달리
수행자가 무량방편수행을 닦는 입장으로서 
마치 아이돌 스타가 되기 위해 
연습실에서 연습하던 S.E.S 처럼 열심히 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노래가사도 잘 음미해서 
수행의 측면에서 조금 변형해서 새겨 
다시 현실에 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껴왔던 작은 사랑 => 아끼지 않는 광대무변한 사랑 
슬픈 노래 듣지 않는다. => 슬픈 노래도 듣고 자비 연민의 마음을 일으킨다. 
나를 지켜 줄거야 =>  반대로 자신의 힘으로 상대와 다른 생명을 지켜주려고 노력한다. 
너 만을 사랑할 거야 => 차별이나 제한을 두지 않고 온 생명을 너를 사랑하듯 다 사랑하여 최상으로 만든다. 

네가 있는 나 행복할 거예요
=> 네가 있거나 없거나, 어떤 경우나 그리고 삶의 최악의 경우에도 안인을 성취해서 늘 평안하고 행복한 상태가 된다. 

이런 식으로 수행에 맞게 자신이 잘 알아서 
새겨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몇몇 노래의 가사들이 자신의 마음에 맞지 않다고 해서
이미 노래 부른 가수에게 찾아가 일일히 시시비비를 따지면서 
가사를 자신의 마음에 맞게 바꿔달라고 할 일은 아닌 것이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자신이 가진 뜻을 가장 잘 가장 즐겁게 
잘 성취해나가기 시작하면 
그것이 무량방편문의 진입인 것이다. 





mus0fl--Jean-Jacques Goldman - Au Bout De Mes Rêves.lrc


니르바나행복론의 편집을 시작하면서 
간단히 f(x)g(y)의 사정을 살폈는데 
원래 이 경로를 하나하나 따라서 가다보면 
정작 수행을 통해서 생사의 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는 것은 
그 자세한 설명이 모두 끝나는 부분쯤 도달해서야 
이제 그 내용을 만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러면 서술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고 본다. 
그래서 되도록 짧게 짧게 살피는 가운데 
최종적인 내용을 바로 파악하고 
그 가운데 일정부분은 이 내용을 대하는 이가 
바로 현실에서 실현가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앞에서 가수가 잘 부르는 노래를 놓고 

이를 자신이 단순히 수천번 반복해 듣는다고 해서 
어떤 이가 어떤 자리에서 그 노래를 잘 부르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럴려면 노래가 따라 부르기 좋은 형태가 되어야 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 노래를 듣는 이가 
매번 그러한 노력을 꾸준히 기울여야 그것이 가능하다고 보게 된다. 

모창대회에서 가수 바다보다 더 바다처럼 노래를 잘 불러 
상금을 차지한 이는 

처음 어릴 때 바다노래를 들을 때 
매번 그 노래 CD 를 구하기 위해 발매가 되는 그날 
새벽에 매장에 가서 매번 선착순 1위로 CD 를 구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모창 프로그램이 시작되고는 

그 때부터 언젠가는 바다 모창대회도 있게 되리라 예견하고 
3 년간 계속 준비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음악 전문가들도 각기 방에서 부르는 노래소리만 들을 때는 

대부분 그 사람이 바로 그 노래를 직접 부른 가수 바다라고
여기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수행도 그런 자세로 임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매일 경전을 대할 때도 그런 마음으로 대하는 한편, 
언젠가는 경전에 소개된 좋은 내용들을 

자신이 그렇게 다 직접 잘 행할 수 있으리라 보고 
꾸준히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니르바나 행복론을 편집하는 입장에서는 

각 내용을 그냥 살펴보기 좋게만 편집하려고 하기 보다는 

그 내용을 각 개인이 바로바로 잘 실천할 수 있도록 

편집할 필요도 있다고 보게 된다. 


무량한 뜻을 놓고 현실에서 행복도 얻고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할 때 

어떻게 무량한 뜻을 다 일일히 나열해서 이것을 편집할 것인가. 


결국 어떤 한 사례가 되는 내용을 통해서 

각 개인이 자신이 구체적으로 대하는 상황에서 

그런 내용을 바로 바로 실천해갈 수 있도록 

내용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생사현실에서 f(x) 부분에 집착해 붙잡히고 

정작 그 뜻은 뜻대로 잘 성취하지 못하고 

생사에 묶이고 3 악도에서 극심한 생사고통을 겪는 사정은 

처음 거리나 방에 있을 때 

평소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는 내용을 놓고 

자신이라고 여기고 그 부분을 취하여 그 부분을 붙잡고 머물고 행하거나 

거리에서 영희나 철수로 보게 되는 내용을 놓고 

또 그 부분을 영희나 철수로 여기고 그렇게 그 부분을 취하고 

그 부분을 붙잡고 머물고 행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이후 한 주체가 삶에서 일으키는 온갖 집착은 

바로 이 부분에 그 바탕을 두고 일으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을 잘 정리해야 한다. 



현실에서 거리에 어떤 자동차가 달려간다고 할 때 

그 자동차를 비록 영희나 철수가 그렇게 몰고 간다고 하더라도 

그 자동차를 놓고 영희나 철수라고 보지는 않는다. 

나중에 그 자동차가 길에서 불이 나면 

그 자동차를 운전하던 영희나 철수나 자신이 

그 자동차를 집착해서 그 자동차와 함께 불타려고 하지 않고 

바로 내려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 사정을 먼저 잘 관해야 한다. 


우선 자동차가 달려갈 때 

밖에서 그 차를 모는 이가 잘 보이지 않더라도 

그 자동차를 영희나 철수로 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자신이 영희나 철수라고 보는 부분이 

자신이 생각하는 영희나 철수라고 여기고 대하기 쉽지만, 

사정이 그렇지 않고 

그런 부분을 붙잡고 올라타서 그 부분을 

그렇게 매순간 움직여가는 그런 보이지 않는 내용이 

사실은 영희나 철수의 정체라고 보아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본 정체인 그런 영희나 철수는 

현실의 각 단면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없지만, 

그런 형태로 매 순간 임하는 것이어서 


시간을 놓고 보면 

태어날 때는 갓난아이 

초등학교 때는 초등학생 모습 

이런 형태로 매순간 신체를 구성하는 레고블럭 부품을 바꿔가며 

매 순간의 형태를 그렇게 조립해가면서 그렇게 그 부분을 움직여 가는 

그런 부분이라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영희나 철수가 그렇듯 

자신이 평소 자신이라고 보고 대하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평소 자신이 거울을 놓고 

자신이라고 보는 부분을 대할 때도 

자신의 본 정체는 지금 그렇게 보는 부분이라고 여기면서 

그 부분을 놓고 상[아상]을 취하지 않고 

정작 매순간 그렇게 현실내용을 받아들이고 그렇게 임하게 만드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으로 만져지지도 않는 그런 부분이라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특히 자신이 눈을 감으면 그런 모습을 보지 못하다가 

눈을 뜰 때 그런 세상과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므로 

그 상황에서 그런 세상 모습 전체를 담고 있는 그런 그릇과 같은 어떤 것으로서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으로 만져지지도 않는 그런 것을 

자신의 본 정체라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놓고 보면 산에서 보게 되는 도시나 산 전체를 

그 안에 담고 있는 대단히 큰 그릇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알고보면 그것은 그런 형체나 크기를 갖는 것도 아닌 것이다. 


또 다른 이가 자신을 그렇게 보게 된다고 해서 

자신이 다른 이가 보는 그런 마음 내용에 담기는 것이 아니듯 


마찬가지로 자신이 영희나 철수 모습을 본다고 할 때도 

영희나 철수의 본 정체가 자신이 보는 그런 부분에 

담기게 된다고 이해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물론 이들 내용이 자신과 영희나 철수의 본 정체와 

관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고 

대단히 관계가 깊다고 보지만, 

그것은 매 순간 영희나 철수나 자신이 

올라타 몰고 다니는 자동차와 그 관계가 같은 것이다. 


그 자동차가 다른 자동차와 부딪히거나 

또는 어떤 사고로 불타거나 하면 

그 안에 탄 영희나 철수 자신도 부상을 입을 수 있다. 


그래서 그런 자동차가 중요한 것은 사실인데 

그렇다고 자동차가 물에 빠지거나 불타거나 

어딘가 낭떠러지를 향해 가고 굴러 떨어질 그런 상황에 있을 때 

그 자동차에 집착해 그 자동차와 함께 

물에 빠지거나 불타거나 떨어지거나 하면 대단히 곤란한 것이다. 


그래서 평소 일상생활을 할 때나 수행자가 수행을 할 때 

그렇게 평소 자신이나 영희 철수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을 놓고 

이를 바탕으로 생활하고 수행하거나 활동하는 것이지만, 

한편으로 그것이 자신이나 영희나 철수의 본 정체는 아니라는 것도 

함께 잘 이해하고 

그에 대해 과도하게 집착하고 임하면 곤란한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잘못 이해하고 상을 취하고 집착하며 삶에 임하는 것과 

그 사정을 올바로 잘 관하고 상을 취하지 않고 집착을 떠나 임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차이를 낳게 된다. 


본래 본 정체는 그런 일과 관계없이 

생멸을 떠나 무한하게 이어지고 

본래 문제가 없다고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앞과 같은 자세로 집착을 갖고 임하면 

그런 사정으로 

자신의 본 정체는 

매번 그런 바탕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위해나는 자동차에 올려져서 

함께 접착되어 임하게 됨으로써 

그 본 정체 역시 

그가 올라타고 있는 자동차가 그런 자세로 인해 이후 처하게 되는 내용처럼 

그 자동차와 함께 물에 빠지거나 불에 타거나 굴러 떨어지거나 하는 등등의 

문제를 겪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누적되어 쌓이게 되면 

다음에 타고 다니는 자동차 형태 자체가 완전히 다른 자동차 형태로 바뀌고 

심지어 자신이 그 자동차를 타고 다니기를 원하거나 원하지 않거나 

축생이나 아귀 지옥 중생 형태의 자동차에 강제로 그렇게 묶여 

태워지게 된다는 것이 문제점이다. 


즉, 앞과 같은 사정 때문에 

본 정체는 그 자동차 자체가 아니고 그런 문제를 떠나 있다고 할 것인데도 

그가 그렇게 관하지 않고 그 자동차를 매번 자신이라고 여기면서 

현실에서 그 자동차를 바탕으로 매순간 행위해 나간다는 사정 때문에 

결국 무한한 기간에 걸쳐 매 순간 그 자동차와 함께 그 

자동차가 겪는 문제를 겪어 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비록 일정한 사정 때문에 

그런 자동차에 올라타 여기저기 다니는 것은 같지만, 

처음부터 이런 사정을 잘 관하고 

그런 자동차가 자신의 본 정체와 대단히 관련은 깊더라도 

그에 대해 과도하게 집착을 갖지 않고 

평소 수행도 잘 행하여 

강제로 자신이 원하지 않는 

축생이나 아귀 지옥 중생 형태의 자동차에 묶여 태워지지 않도록 해야 하고, 


그리고 이후에도 그런 수행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자동차를 자신의 서원에 맞게 골라 타면서 

앞과 같은 형태로 생사고통에 묶여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다른 중생을 

잘 제도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것이 결국 수행에서 

변역생사과정을 통해 생사현실에 임하고 

무량한 기간 복덕과 수명과 지혜 자량을 구족하여 

중생제도와 불국토 장엄과 성불을 하는 

수행을 하는 입장인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 현실단면에서 

자신이 자신으로 보는 내용을 놓고 

한편으로 10 년전 30 년전 과거 그 당시 

자신이 자신으로 본 내용과 

지금 순간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내용은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잘 관하고 


이 내용들에서 정말 자신의 본 정체로 볼 내용은 

지금 자신이 자신이라고 여기는 그런 내용이 아님을 

먼저 잘 이해하고 

그런 부분을 놓고 아상을 취하거나 그에 머물러 행하는 자세를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자신이 평소 자신이나 또는 영희나 철수라고 여기고 대하는 그 부분은 

그런 사정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내용이 아니라는 사정을 잘 관하고 

그런 부분을 취하고 그 부분을 붙잡고 그에 머물러 

그런 망집에 바탕해서 일으키고 행하던 온갖 소원과 행위 일체를 

중단하는 수행을 먼저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무상 무뭔무작 해탈문의 내용이다. 



하나 더 추가하면 이런 각 내용의 본 바탕이 되는 실상은 

그런 내용이 아니고 공하다는 내용까지 잘 관해서 

현실에서 그런 내용을 대하고 가졌던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하는 수행까지 잘 행하면 

공해탈문까지 잘 닦는 것이 된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는 해탈문에 

진입하게 된 것이다. 




세계의 구조와 공해탈문의 사정을 잘 이해하려면,   

그릇 하나를 놓고 두드리면서 

자신이 보는 모습과 소리의 관계를 잘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먼저 이렇게 생각해보는 것이다. 

모습은 보이는데 소리는 나지 않는 것은 

소리의 영역에서는 무엇인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를 생각해보기로 하자. 


또 반대로 어떤 소리는 들리는데 

그 모습은 보이지 않는 것을 놓고 

그것은 눈으로 보는 색의 영역에서는 무엇인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이런 문제를 먼저 생각해보는 것이다. 


물론 이 질문에 각기 답하기 곤란한데 

각기 문제삼는 영역에서 

그에 해당한 내용이 얻어지지 않기에 '있다'고 할 수는 없는데 

그렇다고 '없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소리만 별도로 들리는 것은 

소리는 그런 형태로 있다고 해야 하고 

그것은 소리 세계의 내용이라고 일단 표현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이 대하는 세계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을 먼저 잘 관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다시 

그릇의 모습도 보고 그리고 그 그릇을 두드려서 소리도 함께 듣는 경우는 

그 모습도 보고 그에 상응한 소리도 듣기에 

이 두 내용이 있고 없음을 같이 한다고 여기기 쉽지만, 

앞 내용을 통해 사정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관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것이 욕계, 색계, 무색계라는 세계의 이해의 첫 출발점인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평소 대하는 세계가 

본래 그렇게 그런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는 사정부터 

명확히 잘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를 들어 소리로만 구성된 어떤 내용이 있다고 할 때 

그 내용을 자신의 눈을 통해 아무리 찾으려 노력해도 

그런 내용은 끝내 찾아보지 못한다고 해서 

그런 내용은 있을 리 없다고 오해하면 곤란한 것이다. 


요즘은 스피커만을 통해 노래를 듣기도 하는데 

그런 상황을 놓고 이런 비유를 잘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여러 노래 소리를 들을 때 그 소리가 눈에 보이는가. 

그렇지 않은데 그래도 그런 소리는 생생하게 들리고 

그래서 그런 내용이 있다고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눈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고 

소리 형태로만 나타났다 머물고 사라지는 어떤 내용이 있다고 하여 

이것을 이상하다고 여기면 곤란한 것이다. 


현실에서 그 내용을 얻고 그 존재를 문제삼게 되는 내용들 가운데 

색, 성(소리), 향(냄새), 미(맛), 촉(촉감)처럼 감각해 얻는 내용은 

넓은 의미로 색이라고 표현하고 


그렇지 않고 수, 상, 행, 식과 같이, 

눈으로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내용들은 

무색 또는 명이라고 구분해 표현하게 되는데 


나중에 어떻게 색계나 무색계나 그 세계의 중생

또는 욕계에서 자신과 같은 인간이나 자신이 평소 보는 축생형태가 아닌 다른 중생세계 

예를 들어 하늘과 아수라, 아귀나 지옥 세계와 그 세계의 각 생명들이 

어떻게 그런 형태로 존재하고 

거기에서 각 생명이 또 그런 형태로 그 세계에 태어나 살다가 죽어가는가 이런 것을 놓고 

처음에 비유로 제시한 내용처럼 임하면서 

이를 이상하게 여기면 곤란하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제 그릇을 두드리면서 소리를 듣게 되는 상황을 놓고는 

다시 다음을 이해해야 한다. 


자신이 그릇을 두드리면서 소리를 들을 때 

그 소리는 그 그릇을 두드려서 듣게 되는 소리라고 대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듣는 그 소리를 놓고 

그 소리를 듣는 영역 밖에서 그 소리의 정체는 무언가하고 찾다보면 

결국 자신이 두드린 그 그릇을 떡 붙잡고 

그것이 바로 자신이 들은 그 소리의 본 정체라고 이해하기 쉽다는 의미다. 


그런데 그렇다고 하고 

이제 그 그릇에서 소리의 내용을 찾아볼 수 있는가를 살피는 한편 

자신이 귀로 듣는 소리와 

자신이 눈으로 보는 그 그릇모습 사이에서  

서로 일치하고 공통된 어떤 내용이 하나라도 찾아지는가 

또는 그렇지는 않더라도 이들 사이에 어떤 유사하거나 비례하는 내용을 

찾을 수 있는가를 검토해보아야 한다. 


그러나 그런 것을 찾을 수는 없다. 

그러니 이 두 내용의 관계가 얼마나 엉뚱한가. 

이것을 먼저 잘 관해야 한다. 


그리고 바로 이런 사정이 

침대에서 누어 꾸는 바다나 황금 꿈의 관계와 마찬가지이고 


또 이런 관계가 

본 바탕이 되는 실재의 내용과 

그런 본 바탕에서 각 감관을 통해 얻는 감각현실의 관계이기도 하고 


또 그런 감각현실이나 그런 본 바탕과 

그에 대해 일으키는 관념분별 사이의 관계이기도 한 것이다. 


이들 각 내용이 서로 완전히 무관한 것은 아닌데 

그러나 꿈에서 꾼 바다나 황금은 

그 꿈을 꾼 침대에서는 찾거나 얻을 수 없듯 


본 바탕이 되는 실재도 전혀 아무 것도 없다고 할 것은 아닌데 

현실에서 얻는 그런 내용을 본 바탕에서는 얻을 수 없고 

본 바탕은 그런 내용을 떠나 공하다는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또 사정이 그러므로 현실 내용은 

비록 그런 현실 조건에서 매 순간 생생하게 얻고 

또 같은 조건의 다른 이들도 그처럼 같이 얻고 

그런 조건이 주어지는 한 무량한 기간 동안 반복해 얻게 되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 하나하나 내용이 

마치 침대에서 꾸는 꿈과 같이 

본 바탕과 관련해 실답지 않다는 사정을 잘 이해하고 

이에 대해 평소 집착을 갖지 않고 임하는 것이 

바로 공해탈삼매문의 내용이다. 


처음 소리를 듣고 이 소리는 

다른 영역에서 무엇인가라고 찾으면 

그에 상응하는 내용을 전혀 찾지 못하거나 

또는 찾더라도 눈으로 보는 그릇이라고 여기게 된다고 할 때 

그 그릇과 소리의 관계는 

마치 침대와 침대에서 누어 꾼 바다나 황금의 관계처럼 

서로 엉뚱한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어떤 소리를 듣게 될 때 

다른 영역에도 무언가 그와 내용이 일치하거나 

그렇지는 않더라도 그와 비례하거나 엇비슷한 내용이 다른 영역에 있고 

그래서 그 내용이 실다운 내용이라고 여기는 것은 잘못인 것이다. 


사정이 그렇지 않고 그것은 꿈과 같이 실답지 않다고 제시하는 것은 

현실에서 그런 그릇 모습이나 

그런 소리를 얻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고 

그런 상황에서 듣는 소리는 

그런 조건에서만 얻게 되는 내용으로서 

다른 영역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것으로서 

그런 사정으로 그런 내용을 실다운 내용이라고 여기고 

그런 바탕에서 집착을 갖고 임하면 대단히 곤란하다는 의미다. 




그리고 

침대와 꿈의 관계나 

각 감각현실과 그에 대해 일으키는 관념분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꿈이 실답지 않다는 의미는 

현실 내용이 없다거나, 그런 현실에서 침대에 누어 그런 꿈을 꾸지 못한다거나 

꾸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니고 

그런 꿈이 현실에도 있는 실다운 내용이라고 여기고 

집착을 갖고 임하면 안 된다는 의미다. 



마찬가지로 

현실 내용이 실답지 않다는 내용은 

현실에서 그러그러한 감각현실을 얻지 못한다거나 

그러그러한  관념분별을 일으키지 못한다거나 

그래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니고 


그런 내용들이 그 영역에서는 

비록 그런 조건과  그런 상황에서 그런 내용을 반복해 얻게 되는 것이지만, 

그러나 이를 떠나 

본 바탕이 되는 실재나 각기 다른 감각현실 영역, 그리고 관념분별 영역 등에서는 

그 내용이 얻어지지 않는 것이고 

따라서 침대에서 누어 꾼 바다나 황금꿈처럼 이는 실답지 않은 것이고 

따라서 이에 과도하게 집착해 잘못 임하면 

그런 망집과 그에 바탕한 행위[업]으로 인해 

장구하게 생사고통을 받고 묶이게 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위 내용을 놓고 잘 살핀 다음 

매 순간 현실에서 대하는 내용과 

그로부터 일으키는 관념분별 내용을 놓고 

집착을 제거한 바탕에서 

자신이 문제삼는 생사나 온갖 문제가 

오직 그런 조건에서만 임시적으로 생생하게 얻는 내용일 뿐 

다른 영역에서는 얻어지지 않는 것임을 잘 관하고 


또 이를 문제삼을 자신의 본 정체는 

이와 관계없이 생멸을 떠나 무한히 이어진다는 사정도 함께 잘 관하여 

그에 대해 집착을 제거하여 

기본적으로 청정한 니르바나에 상응하게 여여하게 임해야 한다. 



이는 본 바탕이나 다른 영역에서는  

어떤 내용도 전혀 없다는 의미가 아니고 

다만 현실에서 문제삼는 그런 내용은 

오직 그런 조건에서 그런 측면에서만 얻는 내용이어서 

다른 영역에서는 얻을 수 없는 실답지 않는 내용인 한편 


또 본 바탕이 되는 실재나 그외 다른 영역들은 

일단 그런 내용은 아니고 

그것을 떠나 있는 상태라는 의미다. 



그리고 이런 본 바탕이나 다른 영역들은 

현실에서 문제삼는 그런 생사고통을 얻을 수 없고 

적어도 그런 것은 아닌 그 무엇이라는 측면에서 

생사고통을 떠난 청정한 니르바나를 본전으로 먼저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그런 바탕에서 

현실에서 주로 문제삼는 그런 측면 내용들까지도 

다시 좋고 좋은 내용으로 하기 위해서는 
아무렇게 행하거나, 아무것도 행하지 않고 임해서는 곤란하고 
오히려 그런 영역에서 생사고통을 받게 하는 업의 장애를 제거할 수 있는 

수행방안으로 임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런 수행방안을 평소 어렵고 힘들다고 여기는 그 자세도 

그런 상황에서 그런 내용을 본래 얻을 수 없다는 사정을 잘 관하고 행해야 

오히려 그 수행을 원만하게 잘 성취해 갈 수 있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무언가를 베풀면 

자신이 당장 아끼는 것이 없어지고 

그래서 붙편해지고 손해본다고 여기면서 

가장 기본되는 수행덕목을 잘 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상황을 올바로 관하면 

본래 그 상황에 

그런 것을 베푸는 자신이나 받는 상대나 베푸는 물건 등도 얻을 수 없고 

베푸는 행위도 얻을 수 없다. 

이것이 본 바탕의 측면인 것이다. 


그런데 이 본 바탕을 놓고 보면 
본래 실상에서는 늘거나 줆도 없고 생멸 자체를 얻을 수 없는 것이고 


다시 생사현실에서도 

그런 수행을 통해서 베풀게 되면 

자신의 것이 없어지거나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 결코 아니고 

오히려 현실에서 복덕이라고 보는 내용들을 

자신의 창고에 쌓아 두는 원인이 되는 내용이어서 


그로 인해 오히려 사랑방에 있어 불편과 부담만 주던 물건을  

자신의 안방에 옮겨놓는 것처럼 

오히려 그로 인해 갖게되는 온갖 번뇌는 제거되고 

또 그로 인해 얻는 효용과 편리함은 

언제든지 얻고 사용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사정을 잘 관할 수 있게 되면 

그런 기본 수행도 아주 원만하게 잘 행해나갈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보시란 버리는 것이 없음을 방편으로 해서 

원만하게 성취한다는 내용을 

대반야바라밀다경전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도 다 마찬가지다. 


무언가 억울하고 고통을 겪는 상황에서도 

그 상황에 그런 내용 자체를 얻을 수 없다. 

그래서 그런 사정을 먼저 잘 관하고 

그런 내용을 방편으로 하여 임할 때 

그런 수행을 원만하게 잘 성취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f(x)g(y)로 제시되는 내용 가운데 

나중에 g(y)의 부분에서 제시되게 되는 

수행방안을 어렵게 여기지 말고 

오늘 현실 당장에서부터 

그 내용을 잘 적용해 

즐겁게 잘 해나가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핵심만 정리한다고 한 것이 

내용이 길어졌는데 

여하튼 니르바나 행복론에서 제시하고자 하는 

본 취지가 

이와 같은 사정을 이해하여 

무량겁에 걸친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는 수행에 진입하는 부분에 

그 취지가 있는 것이다. 




문서정보 ori http://buddhism007.tistory.com/5097#4929
sfed--역장엄삼매경_K0399_T0647.txt
sfd8--불교단상_2562_08.txt ☞◆vugu4929  

♣0399-001♧ 
θθ



-- 아래에 조각글 작성시 휴식시점에 붙인 노래가사,사진,풍광,예술작품 자료를 편집상 옮겨 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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