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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2-11-06_대지도론_073 본문
대지도론
K0549
T1509
대지도론 제73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대지도론_K0549_T1509 핵심요약
대지도론 제73권
용수 지음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55. 아비발치품(阿毘跋致品)을 풀이함
[▼] mus0fl--Daniel Balavoine - Petite Angele.lrc
Lab value 불기2562/11/07/수/12:44
아비발치 보살은
발심을 해서 수행하는 수행자 가운데
더 이상 물러나지 않는 수준에 이른 중간단계의 수행자라고 할 수 있다.
사전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비발치 ◀阿鞞跋致▶
【범】avinivartanīya 아유월치(阿惟越致)ㆍ아비발치(阿鞞跋致)라 쓰며,
불퇴(不退)ㆍ무퇴(無退)ㆍ불퇴전(不退轉)ㆍ불퇴위(不退位)라 번역.
반드시 성불이 결정되었다는 동시에 보살위에서 타락하지 않을 위치.
소승 유부종에서는 예류과(豫流果)를,
대승에서는 초주(初住)ㆍ초지(初地)ㆍ8지(地)를 불퇴라 함.((운허_동국역경원사전))
수행의 단계를 크게 나누면 52 위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더 크게 묶으면 초발심(신발의) - 불퇴전위 - 1생보처 - 대력보살
이런 형태로 나열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불퇴전위 아비발치 또는 아유월치라는 것은
상당히 견고한 상태에 이른 수준높은 수행단계를 의미하는 것이고
따라서 수행을 시작한 수행자 입장에서는
이 단계에 오르는 것이 당면 목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망집에 묶여 있는 일반 상태에서
처음 발심하여 수행을 시작한 후,
어떤 상황에서 다시 원래의 상태로 물러나게 되는가 하면
결국 망집이 잔류된 상태에서
그 망집에 바탕하여 업을 행하게끔 하는 상황에 처해서
그처럼 물러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기본적 수행방안이
망집을 제거하고
좋음(+)을 베풀고 [보시]
나쁨(-)을 가하지 않고 [ 정계]
어떤 나쁨(-)을 받더라도 상을 일으키지 않고
평안히 받아들이고 참는 [안인] 수행을
정진해 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가운데 첫 부분도 어렵지만,
수행자가 끝내 넘기 힘들어서
원래의 상태로 물러나게 되는 고비점이 무언가 하면
바로 안인 수행의 부분과 관련된다.
그것은 예를 들어 자신이 억울한 사정으로
묶여서 손과 발이 부러지거나
꺽히거나 잘리거나 피를 흘리고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받는 상황에 처할 때를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금강경에서 제시하는
가리왕에 붙잡혀 사지를 잘리우는 고문을 당하는
인욕선인의 사례와 같다.
수행의 기초라고 할 보시 정계도 하나하나 성취하기가
쉽지 않은데
특히 안인 수행부분에서는
아무리 이론적으로 생사현실이 공하고
실답지 않음을 잘 이해한다해도
그 이론대로 현실에 임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수행자가 자신의 상태가 불퇴전위에 이르렀는가 아닌가를
스스로 확인해보려면
종이 자르는 칼을 들고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보면서
그런 상황에서
반야심경에 제시된 내용처럼 현실 일체가 공하여 실답지 않음을 관해서
그런 상황이 주는 고통에서 쉭 벗어나올 수 있는가.
즉,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의 상태가 되는가 아닌가를
놓고 스스로 점검해보면 쉽다.
이론적으로 생사현실에 생멸과 생사를 얻을 수 없어서
불생불멸 부증불감 이라고 제시하는 사정을 이해하는 것과
그 내용대로 현실에 임할 수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그런데 이런 내용은 그 사정이 그렇다고
수행자가 온갖 고통을 받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서
온갖 고행을 해야 한다고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형태로 행하는 고행은 무익한 것이다.
다만 어떤 지극히 억울하고 고통을 받게 되는 상태에 처할 때
그 수행자가 그런 상황에 그런 억울함이나 고통을 느낄만한
어떤 내용이 있다고 여기면서
상을 취하고 임하는가 아닌가가 그 핵심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금강경에서 제시하는 것처럼
현실에서 어떤 내용을 대하면서
일정 부분이 자신이나 자신의 것 등등이라고
분별을 일으키고
그런 분별에 바탕해서
그런 일정부분을 붙잡고 취하고 늘어지고
그런 분별에 바탕해서 업을 행하는 상태에 놓여 있으면
안인을 성취하는 것이 곤란하고
결국 그런 상태를 벗어나야 비로소 가능하다.
즉 현실에서 상을 일으키고 상을 취하고
상을 행하는 상태에서 벗어나야
그런 안인 수행이 가능하고
또 그런 안인 수행이 원만히 성취되어야
비로소 어떤 상황에서도 물러나지 않는
수준높은 수행자가 되는 것이다.
또 이런 수준에 이르러야
그 수행자는
부처님이나 대력보살님으로부터
무량한 방편을 무량하게 제공받을 수도 있고
또 스스로도 무량한 방편을 닦아 나갈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그런 수행자가 취득한 온갖 방편은
결국 위와 같이 안인으로 임하지 못하고
물러나게 되는 상황에 그 수행자가 처하게 되면
곧바로 그 자신과 다른 중생을 해치고
이로 인해 오히려 더 심하게 생사에 묶이게 만드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또 사정이 그렇기에
수행자가 이런 상태에 있으면
부처님이나 대력보살도
그 수행자에게
단지 다라니를 통해 방편을 제공해줄 수 있을 뿐
무량한 방편력과 지혜를 직접 제공해줄 도리는 없다.
비유하면
유치원생이 불이 필요하다고 해서
어른이 유치원생에게 라이터를 직접 주지 못하고
일일히 유치원생이 불을 요구하는 취지나 그 사정을 보아서
어른이 라이터를 켜주거나 끄게 하거나 하는 상태와
비슷한 것이다.
사정이 그런 경우 라이터를 직접 제공하면
그 부분만 놓고 보면 유치원생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지만,
이로 인해 유치원생이 오히려 이후 더
문제상황에 처하게 되는 사정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어떤 수행자가
어떤 어려움을 만나면
결국 원래의 상태로 물러나게 되는가
아닌가의 문제와 관련된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더 이상 물러나지 않은
불퇴전위에 이르지 못하면
그 수행자에게는 무량한 방편을 갖는 것 자체가
그 수행자에게 독이 된다고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수행자에게 고통을 가할 때
수행자가 그것을 평안히 참고 받아들이지 못하여
원래의 상태로 물러나면 어떻게 되는가.
일반적인 망집 상태에서 행하는
행위 반응 방식
즉 중생제도를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당장의 자신의 좋음을 위해서 그 방편을 마구 사용한다거나,
또는 자신에게 고통을 가한 상대를 보복하고 해치기 위하여
자신이 취득한 방편을 마구 사용하는 상태로 나아가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로 인해 중생도 해를 받게 될 뿐 아니라,
그 수행자도 이로 인해 다시 생사에 묶이고
또 그 생사고통을 돌려 받게 되기에
불퇴전위에 수행자가 이르렀는가 아닌가는
이 부분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된다.
더 나아가
수행자가 다른 불국토를 방문하거나
불국토를 장엄하는 데에 있어서도
그 수행자가 불퇴전위에 이르렀는가 아닌가는
대단히 중요하다.
쉽게 예를 들어
어떤 이가 바닷속만 들어가서
자신과 다른 이상한 형태의 생명체
예를 들어 문어 상어 해파리
이런 등등의 생명체만 보아도
놀래고 또 그런 생명으로부터 위협을 받으면
곧바로 그 생명을 해치려고 하는 상태에 있다면
그런 이는 일단 바닷속자체도 들어가면
곤란하다고 보아야 한다.
하물며 다른 불국토를 방문해서
수행을 하는 것은 더더욱 곤란한 일이다.
그것은 그 수행자의 수준이나 상태가
그런 상태에 있기에
그런 상태에서 다른 불국토를 방문하면
그런 각 상황에 처할 때마다
그 자신도 해치고
다른 중생도 해치면서
생사에 묶이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퇴전위 즉 아비발치의 상태에 이르른 수행자인가
아닌가는 수행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그것은 결국 극히 억울하고 고통을 느끼는
상황에 어떤 수행자가 처하게 될 때
그것을 평안히 받아들일 수 있는가 없는가에 달려 있다.
또 이것은
그런 상황에서
일반적으로 그런 고통을 주고
심지어 이로 인해 그 수행자가 신체가 훼손되고
죽음에 이르게 된다고 공포를 느끼게 되는 그런 상황에서
그런 것이 있고
그런 것의 생멸이나 생사가 있다고 망집을 일으키는 상태인가.
그래서 그로 인해 수행자 자신이
죽어서 없어지고 훼손되는 어떤 것이라도 있다고 보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그 핵심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야 비로소 불퇴전위에 이르러
무량한 겁에 걸쳐 중생제도와 불국토장엄과
성불을 위한 무량한 방편 행을 닦아 나갈 수 있기에
이 부분이 수행자에게서는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고
수준높은 수행자의 상태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하나의 고비점이라고 할 수 있다.
>>>
일단 이번 페이지부터
경전 열람은 경전 열람사이트에 의존하고
경전을 뽑아 올려 놓는 부분은
일반적인 입장에서
낯선 용어라고 보게 되는 부분이나
잘 이해하기 어렵다고 보게 되는 부분
또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보는 부분에
직접 자유롭게 내용을 적는 공간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과거 페이지와는 성격이 달라진 것이다.
그리고 과거 페이지를 다시 방문할 기회가 있으면
현재의 형태대로 활용하고자 한다.
일단 이 부분을 대강 이렇게 마치고
조금 쉬기로 한다.
쉬는 공간에는 종전처럼
음악이나 사진 등의 자료도
앞으로는 붙이게 될 것이다.
다만 이런 내용들이
너무 많으면 피곤함을 느낄 수도 있으므로
적절하게 분량을 조절하기로 한다.
○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Michel Sardou - T'es Mon Amie, T'es Pas Ma Femme.lrc
Lab value 불기2562/11/07/수/13:35
♥ 잡담 ♥경전정리문제
과거와 달리 오탈자가 약간 보이고
줄도 조금 이상하게 구분이 된 판본 내용을 놓고
이것을 일일히 수정하는 작업을 하지 않고
연구작업을 곧바로 하게 되어서 상당히 도움이 많이 된다.
과거에는 본 페이지에 올려진 경전내용이
경전을 열람하는 기능도 함께 갖는다고 보고
일일히 수정하는 작업을 하느라
시간을 많이 소진했다.
그리고 이 작업이 마쳐지면
하루가 지나가고는 해서
더 이상 연구는 못하고 뒤로 미루는 일이 반복되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조금 엉성한 경전 판본에 의존해서
작업해서 그런 상태에 놓였다고도 보는데
이제는 경전 열람은 경전 사이트에 의존하고
여기서는 조금 엉성한 판본 상태 그대로 놓고
해당 내용을 곧바로 살펴나가기로 하였다.
● 왜 불퇴전위 수행자는 생사현실에 임해 구르는가.
여기서는 다음 문제를 살피기로 한다.
아비발치 즉 불퇴전 보살은
그 명칭만 놓고 보면 퇴전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부처님은 수보리 존자의 질문에 대해서
-- 에서
퇴전해 구른다[전]고 제시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불퇴전위라고 해놓고
어떤 부분에서 퇴전해 물러나 구르면
불퇴전위라고 한다고 제시하니
표현 자체로 모순이 아닌가
이렇게 오해하기 쉽다.
그래서 여기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오해하기 쉬우므로
또 살펴보아야 한다고 본다.
이 사정을 가장 쉽게 이해하려면
유치원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놓고
사정을 이해하면 쉽다.
유치원생은
유치원생들끼리 갖고 노는
딱지나 구슬 그리고 만화
게임기 이런 것에
어떤 실질적인 가치가 있고
또 그것을 많이 얻으면 무언가 좋음이 늘어나고
그것을 잃으면 큰 손해가 있고 불쾌와 고통이 있게 되고
그러다가 어떤 사고를 당하면
그 자신이 그로 인해 죽어서 없어지고
그래서 큰 일이다
이런 형태로 생각하고
임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문제이므로
이런 유치원생을 상대로
선생님이 임하는 경우를 놓고 생각해보자.
그런데 유치원생이 앞과 같은
엉터리 생각을 곧바로 다 제거하고
곧바로 어른이나 선생님과 같은 상태로 될 수 있다면
대단히 바람직하다고는 보지만,
현실적으로는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생사현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어떤 중생이 망집에 바탕해서
생을 출발하고
그렇게 해서 그 망집에 바탕해
분별하고 온갖 업을 행해 나가는 상황에서
그 현실에 그런 것이 실답게 있지 않고
자신이 무엇이라고 여기면서 대하는 그 부분에는
그런 상이 없고
또 그에 바탕해 일으키는 온갖 희망이나 소원이
하나같이 쓸모없는 것들로서
오히려 그 주체의 생사고통을
무한히 장구하게 받아나가게 만드는 근본원인이 되는 사정을
곧바로 이해하고 깨달아서
공해탈문 무상해탈문 무원무작 해탈문에 들어서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고
다시 이후 그런 생사고통을 받는 중생을 제도해내기 위해서
공해탈문을 다시 나와 생사현실에 들어가
공한 법의 자리에 처해서,
무상해탈문을 통해 안인을 성취해
안인을 갑옷으로 걸쳐 입고
무원무작 해탈문을 통해
온갖 망집에 바탕한 쓸데없는 소원과 집착을 제거하고
그 대신 중생제도와 불국토장엄과 성불을 위한 무량한 서원을 채우고
이에 바탕해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자비의 마음으로
생사현실에 임하게 된다면
대단히 바람직하지만,
그것이 망집에 바탕해 있는 입장에서는
하나같이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결국 유치원생을 가르치는 선생님 입장에서는
유치원생이 그 사정을 그렇게 잘 관하고
곧바로 그런 유치원생 상태에서 벗어나오기를
기대하면서
방관하거나 또는 억지로 강제하지 않고
선교방편을 취해서
다시 유치원생들이 모여 있는 곳에 들어가서
유치원생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유치원생과 함께
구슬이나 딱지도 갖고 놀고
온갖 놀이시설도 함께 마련해서 놀게하고
그러면서 이를 통해
점차 유치원생에게
다양한 내용을 체득해나가게 이끌려고 하는 입장에
있게 되는 것이다.
수행자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본래 생멸이나 생사를 얻을 수 없지만,
본 사정이 그렇다고
망집을 일으킨 중생들이
그런 상태에서
그 상태에 그런 생멸이나 생사를 얻을 수 없고
생사현실이 실답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런 바탕에서 생사현실을 대하면서
생사고통을 받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본래 그런 생멸이나 생사를 얻을 수 없다고 하여서
그대로 방치하면
중생은 망집상태에서 본래 얻지도 못하는
그런 생사고통을 장구하게 무한히 받으면서
벗어나오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또 사정이 그렇다고 중생을 강제로
벗어나오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선생님이 있으면 조용하고
선생님만 잠깐 나가면 엉망이 되는
유치원 교실의 상황처럼 되는 것이어서
일일히 모든 것을 강제로 억지로 행하게 하는 것은
결국 무량겁에 걸쳐서 의미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이 두 극단적인 방안이 효과가 없기에
결국 수행자는 생사 즉 열반을 관하는 바탕에서
생사현실에 들어가
결국 망집에 바탕해 온갖 쓸데없는 업을 행하면서
생사고통을 받는 중생과 눈높이를 맞추어서
일단 함께 임하는 것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망집을 일으켜 업을 행하고
생사고통을 받는 중생의 상태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고
일단 중생들이 극심하게 억울하고 고통을 받는 상황이라고 여기는
각 상황마다
본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한편으로 잘 관하지만,
그러나 그런 상황에 들어가서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올 수 있도록 일단
그런 중생과 눈높이를 맞추어서
같이 임하면서 다양한 선교방편을 통해서
점차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오게끔 이끄는
수행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사정이 이렇기에
본래 그런 중생과 같이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하는 상태로 물러나지 않는
불퇴전위라고 제시하면서도
그 불퇴전위의 수행자는
바로 그런 상태를 기본으로 한 가운데
그러나 일반 중생과 같이 생사현실에 임해
온갖 것을 행하는 외관을 갖추면서
중생제도에 임한다는 사정이 있는 것이다.
이는 비유하면
현실에서 거리에 온갖 사람이나 차가 오가는 상황을 놓고
수행자가 그런 상황에 그런 사람이나 차나
오고감을 얻을 수없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관하면서도
그러나 또 그런 생사현실에 같이 들어가서
그처럼 오고가면서
그런 사정을 깨닫고 이해시켜서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오게끔 하기 위해서
그런 생사현실에 들어가
온갖 수행과 함께
온갖 선교방편의 노력을 기울인다는 의미다.
본래 생사현실에 오고감이 없지만
그러나 또 망집에 바탕한 중생의 입장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이리저리 바삐 오고가는 형태로 임하면서
그렇게 수행을 행해 나간다는 의미다.
즉, 본래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는데
앞과 같은 그런 중생제도의 취지와 그런 사정 때문에
수행자는 생사현실에 임해서
온갖 무량한 복덕과 수명과 지혜를 구족해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수행을
또 생사현실에서 정진해가는 사정이 있다.
그것은 불퇴전위라고 다르지 않고
오히려 불퇴전위부터
그런 광대무변한 무량한 수행이
더 절실히 요구되는 사정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오해해서
의문을 가지면 곤란하다.
유치원 선생님이
유치원생들이 집착하는 온갖 딱지나 구슬이나
게임기 만화 등등이 하나같이 쓸모없고
실답지 않다고 하면서
왜 정작 그 선생님이
유치원생들과 같이 딱지나 구슬을 갖고 놀면서
또 그 딱지나 구슬을 그렇게 많이 갖고
그리고 유치원생이 그것을 달라고 하면
하나도 주지 않고 애를 먹이는가.
왜 유치원 선생님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유치원생하고 똑같은 형태로 행하는가.
이런 의문을 가지면 곤란한 것이다.
유치원 선생님 가운데
정말 유치원생과 똑같은 심정으로
구슬이나 딱지를 집착해서
그렇게 임하는 경우도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유치원 선생님이 그렇게 임하는 것은
나름 유치원생을 그런 방편으로
이끌고자 하는 어떤 방향이 있기 때문인 것이 현실이듯
불퇴전위에 이른 수행자가 생사현실에서
일정한 방편을 취해 임하는 현실 사정도
마찬가지라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왜 보시할 주체나 상대나 대상 물건 그리고
보시하는 행위도 얻을 수 없다면서
무량하게 보시를 행하고
또 그로 인해 무량한 복덕을 쌓아가는가.
왜 그런가.
위 유치원 상황을 놓고
잘 음미해 보아야 한다.
>>>
○ 생사를 얻을 수 없는 생사현실에 처한 수행자의 입장
앞에서 아비발치 불퇴전위와
그런 불퇴전위에 이른 수행자가
생사현실에서 임하게 되는 그 자세와 그 취지를 살폈다.
앞에서는 결국 그에 대한 구체적 내용이
곧 부처님이 수행자에게 생사현실에서 임해야 한다고
제시하는 수행방안들임을 살필 수 있다.
이것을 유치원생들을 상대로 하는 유치원교사의 상황을
놓고 생각하면 또 이해가 쉽다.
유치원교사가 유치원생들이 집착하는
딱지나 구슬 만화 게임기 각종 오락도구 놀이시설 등이
하나도 실답지 않음을 잘 이해하지만,
그러나 또 유치원생들을 위해서
그런 시설을 마련하고
유치원생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교육에 임하는 현실사정처럼
본래 생사나 생멸을 얻을 수 없음을 관하고
불퇴전위에 오른 수행자도
그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래서 다시 중생이 생사고통을 받는 생사현실에 들어가
다양한 수행을 행하는 사정이 있다.
위 경전에서 단바라밀다라고 하는 것은
중생이 집착하고 희구하는 좋음을 베푸는
보시 바라밀다를 의미하는데
본래 수행자는 그런 현실 상황에
보시하는 이나 그 상대나 그 대상 물건
보시하는 행위 자체를 얻을 수 없음을 잘 관하고 이해하는데도
그러나 생사현실에서 그런 수행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취지와 그 사정이 바로 유치원상황과 사정이 같은 것이다.
유치원교사가 유치원생을 이끌기 위해
유치원생의 눈높이에 맞추어
다양한 방편을 마련해 유치원 교실에 임하는데
그렇다고 유치원생과 아주 똑같은 형태로
커다란 어른 유치원생 형태로 임하고자
그렇게 임하는 것은 또 아닌 것이다.
유치원교사가 딱지나 구슬 오락도구를 가지고
유치원생과 어울려 놀다가
유치원교사부터 딱지나 오락도구에 집착해서
그것을 아끼고 전혀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또 딱지나 구슬을 얻기 위해서
유치원생을 협박하고 때리고 해치기도 하고
또 갑자기 억지를 부리는 유치원생이
자신의 딱지를 가져가고
자신을 괴롭힌다고
이에 대해 유치원생과 똑같은 상태로
상대에 대해 분노를 일으키고 기물을 파괴하면서
상대 어린 유치원생을 마구 때리면서
무조건 딱지와 구슬을 다 빼앗고 보복하는
이런 형태로 교사가 임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비록 유치원생과 같이 어울려
딱지나 구슬 오락도구를 가지고 놀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를 통해 유치원생을 교육하기 위해서
방편으로 그런 것 뿐인데
거기에도 일정한 교육방법이 요구되는 것처럼
수행자가 비록 중생들이 망집에 바탕해
생멸이나 생사가 있다고 여기면서 생사고통을 받는
생사현실에 임해 수행을 할 때도
그런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하는 상태로
임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알고보면 그 수행방안이란
본래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지만,
또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하는 입장을 기준으로 하면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고
무량한 복덕과 수명과 지혜를 구족하는 방안인 한편
또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는
방안들인 것이다.
그것이 곧 부처님이
생사현실에 임하는 중생과 수행자에게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수행방안인 것이다.
그리고 특히 불퇴전위에 이른 수행자는
그런 사정을 잘 관하는 가운데
중생제도를 위해서
그처럼 수행을 원만히 성취해야 함을 제시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진흙연못에 몸을 담그고
연꽃을 피우는 상황이 이런 상태에 비유되는 사정도
이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 입장에서는
왜 그런 것을 얻을 수 없고
또 그 생멸이나 생사를 얻을 수 없는데
그렇게 임하는가.
에 대해 자꾸 의문을 갖게 마련이다.
그 사정은 위와 같은 것이다.
또 일반적 망집을 기준으로 하면
분명 생사현실에 자신이나 자신의 것이
그렇게 실답게 있고
그 생멸이나 생사도 있어서
어떤 좋은 것이 사라지고
또 자신도 그러다가 병들고 죽어 사라지면
대단히 큰 일이라고 보는 한편,
좋은 것은 많이 생겨나고
나쁜 것은 사라져야 좋은 것이라고 보는데
왜 이 현실에 그런 것도 얻을 수 없고
그 생멸이나 생사도 얻을 수 없다고 하는가부터가
처음부터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또 사정이 그렇기에
수행자가 일단 그런 사정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상태로
진입시키고 수행에 임하게 하기 위해서
위와 같은 온갖 방편을 사용하는 것이기도 한데
여하튼 수행자는
불퇴전위에 이르기 위해
이 부분을 잘 이해하고
일반적으로 생사현실 안에서 지극히 억울하고 고통스럽다고 여길만한
상황에서도 그런 망집을 일으켜서 업을 행하는 상태로
물러나면 안 되는 한편
그런 바탕에서 수행방안을 모두 잘 성취해야
중생을 제도할 수 있다고 제시하는 부분이다.
이는 아무 내용도 모르고
제멋대로 함부로 행하려는 유치원생을 수없이 모아 놓고
그 안에서 유치원생들을 일정 상태로 이끄려는
유치원교사에게 요구하는 항목과도
사정이 비슷하다.
예를 들어 유치원생이 막무가내로
다른 유치원생을 때리고 딱지나 구슬을 뺏고
기물을 부수고
또 유치원교사에게 침을 뱉고 발로 차고
교사의 핸드폰을 내던지고
이런 자세로 임한다고 해도
어린 유치원생을 상대로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해서 제압하려고 하면
안 된다고 제시하는 것과 사정이 유사하다.
유치원교실에 교사가 임해
유치원생과 같이 임한다고 해서
유치원생과 똑같은 형태로 임하면 당연히 곤란한 것이다.
불퇴전위를 향해 수행하는 수행자와
생사현실에 임해 고통받는 중생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이 경계점에
바로 망집을 일으켜 생사고통을 받는 입장에서
무언가가 있고
그 무언가가 그렇게 생멸하고
그래서 좋고 나쁨이 엇갈린다고 여기는
그 상황을 놓고
그런 내용 일체가
다 망집에 바탕해서 일으킨 망상분별이라는 사정을
잘 이해하고
그런 중생과 같은 형태로 같이 반응하고 임하면서
원래의 망집상태로 물러나면 안 되는 한편,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고
중생제도를 위해 필요한 복덕과 지혜를 구족하는 수행방안을
모두 다 원만히 잘 성취해야 한다고 제시하는 내용들이다.
길거리에 서서
저기 오고가는 영희나 철수도 있고
저기에 영희가 아이를 낳고
또 철수는 사고를 당해 죽고 매장하고
또 사람들이 오고가고
그리고 여기저기 집도 있고 차도 있다고 보는데
그러나 그 상황을 놓고
왜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고 경전에서 제시하는가는
이미 과거 조각글에서 많이 반복했다.
그런데 그 생사현실에는
그런 망집을 일으킬만한 사정과
그런 망집을 일으키게 하는 일정한 재료가
또 그렇게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중생이 그런 생사현실에 임해
그런 망집을 일으키고
그에 바탕해 그처럼 업을 행하고
또 그에 바탕해 그런 생사고통을 받아나가는 것이다.
이 역시 꿈처럼 실답지 않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꿈 자체는 아니어서
그것이 실답지 않다고 해서
이를 전혀 방관하고 방치할 수 있는 것은 또 아니다.
그리고 이것이 곧 중생이 실답지 않은 바탕에서
실답지 않은 생사고통을
그러나 매순간 대단히 실답고 생생하게
무한히 장구하게 받아나가는
생사현실의 문제인 것이다.
이것을 해결하고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결국 수행자부터 불퇴전위에 오르는
수행을 잘 성취해야 한다고 제시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아래는 다시 이런 마하반야바라밀 경전 내용에 대해
용수보살님이 해설을 붙인 내용이다.
원래 마하뱐야바라밀경이나
대반야바라밀다경이나
기타 다른 판본의 반야바라밀경에
이런 내용이 제시되는데
용수보살님이 이 가운데 비교적
분량이 작게 축약된 마하반야바라밀경을 놓고
각 부분에 대해 해설을 붙인 것이
대지도론인데
목차에서 보듯 서품 부분에 대해
대단히 방대하게 자세히 설명을 붙이는 한편,
나머지 품들은 비교적 간략하게 설명을 붙이고 있는데
그것은 서품에서 필요한 기본 설명을 충분히 하였다는 사정도 작용하지만,
설명을 하나하나 자세하게 붙이다 보면
너무 분량이 방대하게 되기에
핵심부분만 뽑아 설명을 붙이는 사정도 있다고 본다.
여하튼 조금 더 쉬고 이하 부분을
또 살피기로 한다.
사실 위 설명으로 충분하다고 보지만,
그러나 핵심은
일반적으로 생사현실에서 일정 부분이 자신이고
또 이 현실에 어떤 a가 있고
그 생멸이나 생사가 모두 그처럼 있다고 여기는데
같은 현실을 놓고
왜 경전에서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하는가.
그리고 또 그렇다면서
생사현실에서 하필이면
왜 이러이러한 수행을 이러이러한 방식으로 해야만 한다고 제시하는가.
이런 사정을 경전과 논서를 통해서
기본적으로 잘 이해하는 것이
기초적으로 요구된다고 본다.
그리고 그 바탕에서
그 내용대로
수행자가 정말 그 내용대로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그에 바탕해서 여여하게 현실에서 잘 임하고
이를 통해 불퇴전위에 오르고
수행을 해나갈 수 있는가가 문제된다.
앞에서도 이론으로는 일체개공 이런 내용을
잘 이해해도
손 하나만 부러지고 피가 흐르고 하면
얼굴색이 노랗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현실이므로
이 부분을 잘 성취해서
내용대로 무생법인을 잘 증득하고
불퇴전위에 이르는 수준높은 수행자의 단계에
일단 오르는 것이 수행자에게 요구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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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 value 불기2562/11/06/화/13:31 |
♥ 잡담 ♥망집의잔류현상-자신이사라짐에대한두려움
글을 한참 많이 적었는데 다 날라갔다.
라 => 본래 무구청정하다. 바 => 본래 승의제를 얻을 수 없다. 자 => 본래 제행은 무상하고 얻을 수 없다. 나 => 일체의 모습과 성품을 얻을 수 없고 언설명자도 그러하다.
♥ 잡담 ♥경전 공부방안의 혁신 |
sfd8--불교단상_2562_11.txt ☞◆visw4745 sfed--대지도론(01-80)_K0549_T1509.txt ☞대지도론 제73권 http://buddhism007.tistory.com/5233 θ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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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0fl--Michel Sardou - God Save The King.lrc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Da_Vinci_Vitruve_Luc_Viatour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Ssangbongsa_11-05209
♡Temple Rajathiwas Cathedral
○ [▼]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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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Salvador-Dali-summer-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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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Piles_of_Salt_Salar_de_Uyuni_Bolivia_Luca_Galuzzi_2006_a
♥♀Kobe Kaisei Joshi Gakuin College ,Japan
○ [▼]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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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Salvador-Dali-canita-tuba-in-sion-joel-2-1-1967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Rose,_Kotone_-_Flickr_-_nekono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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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재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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