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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62-11-16_대반야바라밀다경_504 본문

과거조각글/불기2562(2018)

불기2562-11-16_대반야바라밀다경_504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18. 11. 16. 13:32



®

대반야바라밀다경
제 504 권 
제 3 분
8. 복취품 ② 

9 수희회향품 -1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이하 부분은 위 경전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경전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대반야바라밀다경 제 504 권 


○ [pt op tr] sfed--대반야바라밀다경_K0001_T0220 핵심요약




가치의 경중


○ [pt op tr]




Lab value 불기2562/11/16/금/20:26




○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Marie Myriam - Tout Est Pardonne.lrc 

대반야경 504 권 제 3 분 복취품 제8 품에서는 
먼저 각 내용의 가치의 경중을 문제삼는 것을 볼 수 있다. 

쉽게 생각해보자. 
현실에서 그냥 유리조각 하나와 금 가운데
어떤 것이 더 값이 비싸고 좋은가. 이런 문제가 있다고 하자. 
현실에서 이런 문제가 제기될 때
만일 어떤 이가 금은 버리고 대신 유리조각을 취하면 어리석다고 보게 될 것이다. 

또 생각해보자. 
금 1kg과 자신의 어머니 사이에 어떤 것이 더 좋다고 보는가. 
이런 문제에서도 어떤 이가 금을 취하는 대신 자신의 어머니를 버리면 
역시 어리석다고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수행과 관련해서도 
좋다고 보는 여러 내용 가운데에서도
다시 그 가치의 경중이 문제가 된다. 

이런 주제를 복의 쌓임, 내지 복의 모임이라는 의미를 갖는 복취품에서 다루고 있다. 


첫 부분에 보는 것은 10 선업이라는 내용이다. 
10 선업이란 불교에서 어떤 이가 이를 행하고 
하늘에 대한 믿음을 가지면 하늘에 올라가 지낼 수 있다는 덕목을 말한다. 

10 선업에 대한 사전적 풀이는  다음과 같다. 

1, 불살생(不殺生), 즉 살생하지 않음.
2, 불투도(不偸盜), 즉 도둑질하지 않음.
3, 불사음(不邪婬), 즉 간음하지 않음.
4, 불망어(不妄語), 즉 거짓말하지 않음.
5, 불양설(不兩舌), 즉 이간질하지 않음. 
6, 불악구(不惡口), 즉 욕하거나 멸시하는 말을 하지 않음.
7, 불기어(不綺語), 즉 실없고 잡된 말을 하지 않음. 
8, 불탐욕(不貪欲), 탐욕을 부리지 않음.
9, 불진에不瞋恚), 즉 노여워하지 않음.
10, 불사견(不邪見), 즉 그릇된 견해에 빠지지 않음

신체로 하는 행위[신업] 3
말로 하는 행위[구업] 4
마음으로 하는 행위[의업] 3
이렇게 구성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왜 선인가 하는 것도 앞과 같은 문제다. 

다른 생명을 해치고 생명을 빼앗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생명을 살리고 도와주는 것이 좋은가. 
이런 것이 문제될 때도 역시 앞과 같은 가치의 경중을 따지는 문제임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현실에서 악이나 선으로 보는 행위를 
구체적으로 나열하면 무수하다고 보게 되는데 
왜 이런 10 가지를 대표로 나열하는가도 
덧붙여 살필 필요도 있다. 

그것은 간단하게 살피면 다음과 같은 사정 때문이다. 
우선 한 주체가 생사현실에서 가장 집착하고 대하는 내용을 
나열하면 자신의 생명, 신체 재산 가족 명예 등을 우선적으로 
나열하게 된다. 
그리고 그외 집착하고 문제삼는 것은 
이와 관련되는 정도에 따라서 그것을 문제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그런 것을 그처럼 문제삼는 그 바탕은 
일정한 망집 어리석음을 바탕으로 갖게 된 사견과 
각 내용에 대해 좋고 나쁨의 판단을 통해 일으키게 된 
탐욕과 분노라는 독성인 부분이 바탕이 되어서 
그런 문제 상황에 들어가는 사정 때문이다. 

그것은 결국 일정한 상황에서 그런 내용을 빼고 넣고 하면 
그런 문제상황에 들어가지 않게 된다는 사정을 놓고 보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상태로 임하는 것이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의 중생들이 공통적으로 
갖게 되는 공통점이다. 
그리고 이런 상태의 중생들이 이와 같은 내용을
공통적으로 바탕으로 한 가운데 업을 행하면서 
서로 얽혀서 생사고통을 받는 것이 
생사현실의 문제다. 

또 그런 사정 때문에 그런 상태에서 그런 행위를 중지하고 
그와 반대되는 행위를 행하는 것이 선이 되는 것이다. 

이 문제가 잘 이해가 안 되면 
매 상황마다 입장을 뒤바꾸어서 위치해 놓고 
그 상황을 살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자신이 배가 고파서 닭을 잡아 먹는다. 
이런 경우를 하나 놓고 
자신의 입장에서도 한번 바라보는 한편, 
반대로 입장을 바꿔서 닭의 입장에 들어가 
그 상황을 또 바라보거나
그것도 잘 안되면 자신이 어떤 밀림에 들어가 
식인종에게 붙잡혀 식인종 추장의 잔칫날을 위해서  
솥에 들어가  끓여지는 상태를 놓고 생각도 해보고 
또 객관적으로 이 두 입장을 함께 대하는 
다른 제 3 자의 입장도 들어가 바라보고 
그리고 이와 전혀 무관한 입장에도 들어가 
바라보면서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이 사정을 쉽게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한 상황은 같지만, 
각 입장 따라 죽인다 죽임을 당한다라고 달리 평가하지만, 
그 상황은 결국 하나인데 
왜 각 입장따라 달리 평가하는가도 이해할 수 있고 
또 그런 상태에서 그 이후 이후는 어떤 결과가 이로 인해 나타나게되고 
그리고 그런 현실에서 종합적으로 어떤 행위를
선이라고 보게 되는가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무수한 선악을 벌려 세울 수 있지만, 
그것은 모두 이런 기본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하나같이 이와 관련되는 내용이어서 그것을 
문제삼게 된다는 사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여하튼 위에 나열한 10 선업에 관련된 사전 풀이를 보면 
위 내용들은 하나같이 나쁘다고 보는 행위 앞에 불(不) 자를 붙여서 표현하기에 
위 내용들은 단지 나쁜 행위를 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할 뿐이지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렇게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인도 산스크리트어의 특수성을 
조금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범어에서 '옴'이라는 표현을 어떻게 표현하는가하면 
'감'이라는 말이 있다고 하면 
옴은 '안'감이라는 형태로 표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런 경우도 '안'감이라는 형태의 표현은 
단지 가지 않는다는 것만을 의미해서 
그냥 제자리에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왜 온다라는 의미를 나타낼 때 '안'감이라고 표현하는가 하고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여하튼 범어에서는 
옴이라는 내용은 '안'감이라는 형태로 표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비록 표현상 '안'감이라고 표현되어 있지만 
이 표현은 우리가 이해하는 옴을 나타낸다는 것도 
함께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선악의 문제에서도 
살생이나 도둑질 ... 등등이 다른 생명을 해치고 괴롭히는 악행이라고 할 때 
물론 단순히 이것을 하지 않는 것만 해도 
그런 악행과 대비해서 충분히 선하다고 평가할 만하다. 

그런데 앞과 같이 범어가 갖는 표현의 특수성을 생각한다면 
이처럼 어떤 내용의 불(不)이라는 접두어를 붙이는 것은 
적극적으로 그 반대되는 내용을 하는 것까지 
그 안에 포함해 나타낸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10 선업은 다음과 같이 
불(不)이라는 표현이 붙어진 그 이하의 내용을
소극적으로 행하지 않는 상태만 단순히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그와 반대되는 내용을 적극적으로 행하는 것까지 포함하고 
또 주로 그런 의미를 나타낸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래서 10 선업을 다시 이런 형태로 살피면 다음과 같이 
다시 나열할 수 있다. 

1, 불살생(不殺生), 즉 살생하지 않음. + 죽음의 고통에 처한 생명을 적극적으로 살려줌 [방생]
2, 불투도(不偸盜), 즉 도둑질하지 않음. + 어떤 좋음을 아끼지 않고 베풀어줌, 평안함, 지혜, 재물을 보시함 [무외보시,법보시,재보시] 

3, 불사음(不邪婬), 즉 간음하지 않음. + 바르고 깨끗한 행을  행함 [청정 범행梵行]
4, 불망어(不妄語), 즉 거짓말하지 않음. + 진실을 말함 [진실어]
5, 불양설(不兩舌), 즉 이간질하지 않음. + 다툼을 없애고 화해 화합시키는 말 [화합어]

6, 불악구(不惡口), 즉 욕하거나 멸시하는 말을 하지 않음. +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말 [유연어] 
7, 불기어(不綺語), 즉 실없고 잡된 말을 하지 않음. + 쓸모 있고 올바른 말 [질직어]
8, 불탐욕(不貪欲), 탐욕을 부리지 않음. + 탐욕을 더럽게 여기는 한편 생명을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서원을 일으켜 가짐 [부정관不淨觀, 서원] 
9, 불진에不瞋恚), 즉 노여워하지 않음. + 미움, 원망을 버리고 상대에 대한 자비를 일으키고 억울함이나 고통을 평안히 받아들임 [ 자비(慈悲), 안인(安忍) ]

10, 불사견(不邪見), 즉 그릇된 견해에 빠지지 않음+ 실상을 꿰뚤어 관하는 가운데 사물의 정체와 인과에 대해 올바로 관함  [인연관([因緣觀), 지혜,반야] 


이렇게 10 선업에 해당하는 덕목에서
불(不)자가 붙은 내용들은 그 이하의 내용을 단순히 소극적으로 하지 않는 상태뿐만 아니라
다시 이와 반대되는 내용을 적극적으로 행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나타낸다고
덧붙여 제시할 수 있다. 

무언가 선한 일을 행한다는 것은 
단순히 무언가 나쁜 내용을 행하지 않는 것만을 소극적으로 의미한다고만 이해하면
무언가 부족해 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평생 잠만 자고 지낸 경우가 있다고 할 때 
그가 위에 나열한 10 가지 내용을 그 중 어느 하나도 행한 것은 아니므로, 
10 악업을 행한 것은 물론 아니지만, 
10 가지 선한 업을 쌓았구나 이렇게 말하기는 곤란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물가의 모래를 놓고 평가해도 마찬가지다. 
그 모래가 위에 나열한 내용을 하나도 행하지 않았기에 
10 악업을 행한 것은 물론 아니라고 할 것이지만, 
그렇다고 모래가 10 선업을 행한 것이라고 보기는 곤란하다. 


그런데 여하튼 이처럼 현실에서 
선악이 문제되는 각 내용을 놓고 
기본적으로 10 선업과 함께 
그와 반대되는 10 악업을 놓고 
이 가운데 어떤 행위를 하면 좋고
어떤 행위를 하면 나쁘고
또 어떤 행위를 하면 즐거움을 장구하게 받는 하늘에 이르게 되고 
어떤 행위를 하면 고통을 극심하게 장구히 받는 상태에 처하는가. 
이런 문제를 살피는 것도 기본적으로 중요하다. 

이것이 현실에서 행하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의 판단 문제이기도 하다. 

무엇이 좋고 
또 무엇이 무엇보다 더 좋고 
그리고 무엇이 자신에게 나중에 복락을 가져다 주는 원인인가 조차 파악하지 못한다면 
결국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당장 자신에게 어떤 측면에서 좋다고 보이는 것이 있을 때
대단히 좁고 짧고 얕게 살피는 가운데
그런 내용만 매 순간 붙잡고 추구해나가면서 
결국 그로 인해 고통을 극심하게 받는 상태로 묶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전에서는 
이처럼 행하면 하늘에 오르게 되는 10 선업도 대단히 좋다고 보지만,
그러나 그보다 훨씬 좋다고 보는 내용을 하나하나 더 나열하면서
그 앞의 좋음과 비교하여 그 가치의 경중을 제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제시하면 혹시나 앞에 제시한 내용은 나쁘다고 제시한 것인가 하고 오해할 수 있지만, 
이는 어떤 내용이 대단히 좋고 그것이 좋음을 대부분 쉽게 잘 알지만, 
그런데 이것보다 이러이러한 내용은 훨씬 더 좋다고 제시하는 것임을 
주의해야 한다. 

자칫 이런 경전 내용을 대하면 
최종적으로 제시된 내용만 행하면 충분하고 
앞의 내용은 전혀 행하지 않아도 된다고 오해할 수도 있는데 
그런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시를 행하면 좋다는 것은 당연한 내용인데 
이것도 물론 좋지만, 
이러이러한 행위는 그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 
이렇게 경전에서 제시하는 것은 
앞의 내용을 통해서 이러이러한 행위가 갖는 가치가 더 많다는 사정을 
잘 이해하라는 의미인 것이지 

그 행위가 그렇게 좋기 때문에 
앞에 비교를 위해 제시한 내용들은 좋지 않다거나 
그런 행위를 행하면 안 된다는 이런 의미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자칫 어느 내용이 대단히 가치가 있고 좋음을 
이런 형태로 제시하는 경전 내용을 대하다보면 
그런 오해도 일으키기 쉽다. 
그래서 그런 오해를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가치의 경중을 따질 때는 
다음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10 조원과 자신의 심장 가운데 어느 하나만 가져야 한다면 
어떤 것을 갖겠는가. 
이런 문제가 제출된다면 
대부분 심장을 선택하게 된다.

그것은 자신의 심장은 최소한 10 조원보다는 훨씬 가치가 있다고 
그가 평가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런 판단을 한다고 해서 
그렇다면 정확히 심장은 화폐로 얼마인가를 물으면 
제시하기 곤란하다. 

10 조원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하니 11 조원인가. 아니면 100 조원인가. 
이렇게 물어도 앞과 같은 판단을 한 이는 
역시 그것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 다시 정확히 화폐로 얼마의 가치인가를 물으면 
또 그것을 정확히 제시하기 곤란하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사정이 그래서 
심장의 가격을 구체적으로 적어내지 못하고 
값을 헤아리기 힘들 만큼 귀중하다고만 표현한다고 해서 
그것이 전혀 화폐가치를 갖지 않는다고 볼 수는 없다. 

그래서 이는 다음을 의미한다. 
심장은 얼마인가 구체적으로 그 값을 적으시오라고 요구하면
그 값을 구체적으로 적지 못하게 되는데 
그렇다고 심장이 가치가 전혀 없다는 의미가 아니고 
다만 화폐로 아무리 높은 숫자를 적는다해도 
그것보다 훨씬 가치가 높다고 보기에 
그 가격을 구체적으로 적어내지 못하는 것 뿐이다. 
즉, 이는 도저히 값을 구체적으로 적을 수 없을 만큼 가치가 높다는 의미다. 



그런데 한편, 그런 사정을 갖는 것은 단지 심장만이 아니다.
예를 들어 손이나 발도 그렇다고 해야 하고
두 눈이나 간이나 콩팥이나 골수 뇌 심장을 나열할 때도 또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런 내용들도 역시 이들 사이에서 그 가치의 경중이 문제되어
이들의 가치의 우열을 살피려면 
또 앞과 같은 형식으로 각 내용을 나열해 놓고 가치의 경중을 살펴야 한다. 

즉 이것은 가격을 구제척으로 숫자로 표시하지는 못해도 
그러나 무엇이 다른 무엇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한가의
가치판단 문제는 계속 그처럼 행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것은 무슨 의미인가 하면 이런 판단을 통해서 
앞의 내용이 무가치하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고, 
여러 가치가 있는 내용들 가운데서도 
우선적으로 추구하고 행해야 할 내용은 
이러이러한 내용임을 제시하는 데 그 의미가 있다. 

그래서 어떤 좋음을 추구하더라도
그런 내용을 우선한 다음 
그 다음에 여유가 있으면 그 다음 가치가 있는 내용을 추구하고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미다. 

이를 자칫 오해하면 최종적으로 가장 가치 있는 내용만 행하고 
나머지는 전혀 할 필요가 없다거나 또는 전혀 무시해도 된다고 극단적으로 이해하기 쉬운데 
그런 의미는 아닌 것이다. 

그리고 더욱이 
무언가 좋고 그래서 그런 좋음을 추구하더라도 
그로 인해 그것보다 훨씬 좋고 좋은 것을 추구하지 못하고 성취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것은 결국 종합적으로 평가하면
그런 경우는 그런 사정으로 결국 안 좋은 선택이 된다는 것을 의미함도 함께 잘 이해해야 한다. 

현실 문제를 놓고 보자. 

단순한 구슬을 갖는 것과 금 1 kg 을 갖는 것 가운데 어떤 것이 좋은가 
이렇게 제시하면 금을 갖는 것이 훨씬 좋다고 대부분 볼 것이다. 
그래서 금을 갖는 것이 좋다고 보게 된다. 

그런데 금을 갖는 것이 좋기는 좋지만, 
금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그로 인해 경전에서 제시하고 있는 여러 가치 있는 내용 
예를 들어 10 선업을 행하지 못하게 되었다거나 
수행의 과위를 증득하지 못하게 되었다거나 이런 상태가 된다면 
분명 금이 가치가 있고 좋다는 것은 사실이더라도 
그로 인해 훨씬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은 것을 얻지 못하게 되었다는 측면에서 
그것은 결국 좋지 않은 상태라고 보게 된다는 의미다. 

이 문제를 쉽게 보면 결국 위 문제는 
다음 내용과 성격이 같다고 보아야 한다. 

세상이 좋다고 보는 금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는데 
그로 인해 자신의 심장과 콩팥과 간에 이상이 생겼다. 
이런 경우와 마찬가지다. 

이 경우 그로 인해 좋다고 보는 금을 얻었다는 측면은 분명 좋은데 
그런데 그로 인해 훨씬 가치있는 것이 희생되었기에 
그것은 결국 종합적으로 좋은 것이 아니라고 보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상당히 좋다고 보는 것을 우선적으로 추구해서 
그것을 얻어내는 것은 분명 좋은 것이라고 할 것인데 
그런데 그로 인해 훨씬 좋은 것을 얻지 못한다면 
그 사정으로 인해 그 역시 종합적으로 그다지 좋은 것이 아니라고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경우 상당히 좋다고 보는 것을 추구하더라도 
그것은 가치의 경중의 판단을 미리 잘 행하는 바탕에서 
가장 좋고 좋다고 보는 것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가운데 
그와 병행하거나, 그 후순위로 여유가 있을 때 
그 다음에 그런 것을 추구하는 것이 낫다고 
종합적으로 가치에 대해서 잘 판단해야 한다. 


일단 쉬고 살피기로 하자. 

이하 내용은 그런 입장에서 
문제되는 각 내용에 대해 가치를 비교 판단하는 내용인데 
왜 그렇게 가치를 판단하게 되는가에 대한 사정도 
경전 안에 쉽게 제시되고 있다. 

그래서 비교적 평이하다. 

그런데 이하에서 조금 
그 내용을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몇 몇 보이기에 이후에 살피기로 한다. 


한편 앞의 가치판단 문제에서는
무언가 좋다고 보는 내용을 나열해
이들 사이의 가치의 경중문제도 잘 살펴야 하지만, 
다음도 고려해야 한다. 

즉 무언가 대단히 나쁘다고 보는 내용과 
어떤 좋음을 얻지 못해서 나쁘다고 보는 상태 사이에서 
그래도 무엇이 더 나은가의 문제도 
앞과 같은 측면에서 잘 판단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런 문제를 놓고 살펴보자. 

거꾸로 매달린 상태에서 
1 시간 간격으로 쇠못이 달린 몽둥이로 5 분간 10 대씩 맞고 
10 년 계속 지내야 하는 상태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한편 10 년 동안 10 조원을 가지고 지낼 수 있는데
그것을 성취하지 못해서 좋지 않은 경우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두 경우 가운데 어떤 것이 더 나쁜 상태인가. 
또 반대로 말하면 둘 다 좋지는 않다고 보지만, 
그래도 어떤 쪽이 그나마 나은가. 
이런 문제도 가치 문제에서는 함께 잘 살펴야 한다. 

각자 판단이 다르지만, 
위 문제는 또 다음 형태로도 변형시킬 수 있다. 



1 시간 간격으로 쇠못이 달린 몽둥이로 5 분간 10 대씩 맞고 
10 년 계속 지내야 하는 상태를 '면하는 것'과 

10 년 동안 10 조원을 갖고 지내는 상태 사이에 
어떤 것이 더 낫다고 보는가. 

이런 문제도 위 문제에 준해서 같이 살펴야 한다. 

이 문제를 어느 하나만 놓고 판단하면 
대부분 쉽게 판단할 수 있는데 
이처럼 문제되는 내용들 가운데 어느 하나만 잘 선택하라고 
제시하면 두 내용을 놓고 판단을 잘 행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다음 문제다. 
A 를 취하면 대신 B 를 취하지 못한다. 
또 
B 를 취하면 대신 A 를 취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 A 와 B 가운데 어느 것은 선택해야 할 것인가. 
이런 문제다. 
그리고 가치의 우열을 판단하는 형식은 이런 문제를 놓고 
판단해야 우열을 평가할 수있다. 

물론 이런 문제가 제출되면 
형식적으로 좋다고 보는 내용을 모두 나열해서 
그것을 다 함께 얻는 것이 가장 좋다고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임하면 
사실 가치의 경중을 굳이 따질 필요도 없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좋다고 보는 것은 선후를 가리지 않고 
모두 취하면 좋은 것이고 
반대로 나쁘다고 보는 것은 선후를 가리지 않고 
모두 제거하면 좋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기에 
그렇게 단순하게 임할 도리가 업다. 

현실에서 어느 휴일날 어느 좋은 곳을 놀러가고 
좋음 음식을 먹고 좋은 영화를 보고 싶다고 할 때 
예를 들어 세상에서 좋다고 보는 곳은 다 방문하고 
좋다고 보는 음식은 다 함께 먹고 
좋다고 보는 영화는 다 동시에 보고 그럴 수 있는가. 
단순히 생각해도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현실에서 설악산에 간다면 대신 남산이나 내장산은 못 가는 것이고 
짜장면을 먹으면 대신 다른 튀김요리나 우동은
같은 시기에 이어서 함께 다 먹기는 힘들다고 보는 것과 사정이 같다.

그래서 이처럼 가치 판단이 문제되는 내용을 나열해서 
각각의 우열을 살피고 
좋음을 추구할 때도 가장 우선시해야 할 내용이 무언가도 살피고 
나쁨을 제거할 때도 가장 우선시 해야 할 내용이 무언가를 살피는 것은 
현실적으로 대단히 필요하다. 

특히 현실에서 가능한 수많은 나쁜 내용 가운데 
그래도 덜 나쁜 내용을 택하는 자세는 대단히 필요하다. 

이것은 생리적으로 대부분 나쁜 것을 꺼려하고 
오직 좋은 것만 추구하는 경향 때문에 
오로지 나쁜 것들만 나열하고 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상황이 되면 
단순히 이 모두를 거부하고 그냥 임하려는 경향이 많기에 
주의를 요하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어떤 투자를 한다면 늘 이익만 거두기는 힘든데 
투자를 잘 한다는 것은 오로지 매번 이익을 거두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투자를 행하면서 손해가 발생할 때 
그래도 가장 적은 손해를 얻는 것도 투자를 잘 하는 방안이 되기 때문이다. 
손해를 가장 적게 줄이고 손해를 적은 손해 단계에서 끊어내는 것도
투자를 잘 하는 중요한 방안의 하나다. 
그런데 일단 손해가 발생하면 이익을 얻기 위한 투자자의 마음에는 
어차피 손해니까 다 마찬가지라고 포기하는 형태로 임하기가 쉽다.
그래서 또 이런 부분도 함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투자을 잘 하려면 손해를 보는 상황에서
어차피 어느 경우나 손해는 손해지만 그래도 적은 손해를 택하는 자세가 요구되듯 
가장 좋음을 추구하는 수행에서도 이런 기본적인 가치판단 자세가 요구된다. 


그리고 또 가치 경중을 판단할 경우는 다음 산수문제를 하나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60 억년은 대단히 긴 기간이다. 
그런데 60 억년은 무한과 비교할 때 어느 것이 더 긴 기간인가 
이런 기본 문제를 잘 살펴야 한다. 

당연히 무한이 더 길다. 

그리고 다음 산수문제도 참고로 잘 이해해야 한다. 
60 억년이 상당히 긴 것은 사실인데 
60 억년을 놓고 
다음과 같이 문제를 제시하면 어떻게 답해야 하는가. 
60 억년은 1 초 쪽에 가까운가 
아니면 60 억년 곱하기 9 를 한 540 억년 쪽에 가까운가. 

이렇게 산수문제를 제출하면 
비교판단을 잘 행해서 
아무리 60 억년이 길다고 해도 
그래도 540 억년쪽보다는 
그 기간의 양은 1 초 쪽에 가깝다라는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문제가 이런 형식으로 제출될 때 
이런 판단을 바탕으로 잘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후 60억년은 좋은데  그 이후 540 억년은 또 지극히 고통스런 경우와 
지금 이후 60 억년은 나쁜데 그 이후 540 억년은 지극히 좋다는 경우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느 쪽이 나은가. 
이런 문제도 어려운 가치판단의 문제가 된다. 

누구나 지금 당장 무언가 얻는 좋음을 우선고려하기 쉽고 
50 억년 이렇게 제시하면 일단 그 뒤 문제는 
그 뒤에 가서 알아보자 이렇게 대충 임하기 쉽다. 
그런데 인과 문제의 성격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에 문제가 된다. 


그리고  가치의 경중을 판단할 때는 
그 가치와 관련된 주체의 수나 양이나 그 질, 그 기간을 놓고 평가함에 있어서 
이런 산수가 기본적으로 요구된다. 

예를 들어 1 생명과 10 억 세계의 생명[유정]이 누리는 좋음 가운데
어느 쪽의 좋음이 더 많은가. 
이런 문제도 위 내용과 기본적으로 관련된다. 

그리고 첫 내용에서 
수행과위의 하나로 제시되는 예류과와 
10 선업을 성취하는 것과의 비교문제는 
역시 위 문제를 놓고 살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살피려면 기본적으로
한 주체가 고려할 기간이 
도대체 시간적으로 얼마를 잡아야 하는가의 문제를 먼저 살펴야 한다. 

여기에는 일반적으로 단멸관을 취해서 
어떤 주체가 고려할 기간은 
자신이 태어나서 묘지에 들어가거나 화장을 하는 그 기간까지만 고려하면 되고
그 이후는 자신과 관련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이해하는 입장도 있다. 

사실 그런 입장은 
현실에서 자신의 정체를 무엇으로 보는가 그 부분에서부터
망집을 일으키는 상태다. 

그런 경우는 
예를 들어 자신이 초등시절때 자신이라고 본 내용은 
30 년이 지난 시점에서는 
이미 그 초등학생시절에 그렇게 자신이라고 본
육체나 정신적 구성요소는 하나도 찾을 도리가 없고 
그래서 사실상 그 초등학생은 이미 화장되어서 없어진 것과 같은데 
왜 지금 완전히 어른이 된 어떤 이가 
여전히 그 초등학생을 자신의 한 부분이라고 여기고 대하는가. 
그리고 초등학교 동창회도 가끔 나가고 그러는가. 
이런 문제를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왜 그런가. 

그리고 이에 준해서 지금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는 내용을 자신이라고 보는 한편 
앞과 같이 묘지에 들어가거나 화장을 하는 기간만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은
도대체 지금 자신이 무엇을 자신으로 여기고 있기에 
그렇게 임하는가 하는 문제를 함께 잘 살펴야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기본적으로 이처럼 단멸관을 취해서 
자신의 정체를 살피는 입장이 아니다.
사정이 그렇기에 한 주체가 고려해야 할 기간을 이처럼
단순히 살피는 입장도 물론 아니다. 

그렇기에 앞에서 산수문제로 제시한 문제가 
수행과정에서 가치경중을 따질 때
그대로 함께 고려해야 할 내용으로 들어오게 된다. 
이 사정은 따로 살펴야 하겠지만, 
여하튼 이런 전제를 미리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10 선업과 수행의 기초적인 과위의 하나인 예류과의 
가치비교 문제를 살펴야 한다. 

그 이전에 이렇게 보자. 

10 선업을 닦으면 하늘에 올라갈 수 있고 
그런 경우 장구하게 하늘의 복락을 누릴 수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것이 앞에 전제한 것처럼
자신이 하늘에 있지 않다가
어느 시점에 비로소 하늘에 올라가는 것을 의미하므로
하늘의 삶에는 그런 시작이 있으므로 
그것은 생멸하는 현상의 하나이고 
그래서 그 끝도 있음을 당연히 이해해야 한다. 
단지 그 기간이 상당히 장구한 것 뿐이다. 
그래서 경전에서 그 선업의 정도에 따라서 
각 하늘에서 누리는 복락의 기간이 제시된다. 

인간의 수명이 100 년이라고 하면 
이는 평균도 아니고 가장 기대할 만한 수명 정도로 이해하게 된다. 
아무리 인간이어도 구체적으로 보면 
어떠한 이는 10 년 살다가 삶을 마치기도 하고 
최장수인 경우는 120 년도 살다가 삶을 마치기도 하는 것이어서 
똑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상식적으로 
인간은 200 년 정도 살아가는 거북이보다는 짧게 사는 것이고 
또 닭이나 소 보다는 그래도 길게 살고 
더 나아가 몇달이나 1 년 정도만 살아가는 곤충보다는 훨씬 더 길게 살고 
또 미세한 바이러스나 세균을 놓고 비교하면 더 훨씬 길게 산다고 제시할 수 있다. 
그래서 생명의 범위를 넓게 보면 
각 생명이 누리는 평균적인 기간이 다 다르다고 보게 된다. 
그래서 어떤 한 사람이 인간으로 60 년 산다고 해서 
온 세상의 생명이 다 60 년 산다고 제시할 도리가 없다. 
그런데 10 선업을 닦아 누리는 복락의 기간도 사정이 같다. 

그래서 길게는 몇천년일 수도 있고 
또 아주 길게는 몇 십억년일 수도 있고 
더 길고 길면 몇 겁 이런 식으로 경전에서 
그 구체적 차이를 제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이다. 
아무리 그 가운데 가장 긴 복락의 기간을 잡는다고 해도 
여전히 끝은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경우 다시 다음 문제를 함께 살펴야 한다. 

앞에서 제시한 기본 문제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한 100 년 동안 
거꾸로 매달린 상태에서 못이 달린 몽둥이로 
10 분마다 10 대씩 기계적으로 구타를 당하고 
그리고 30 분 씩 쉬면서 100 년을 그렇게 계속 지내야 한다고 해보자. 
그런데 이런 비유는 가치비교를 위해 제시하는 약간 비현실적인 가정이지만,
그러나 현실적으로 살핀다해도 이와 유사한 상황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어느 가정의 화장실 정화조를 열어 본다해도 
그 안에 또 별개의 수많은 생명이 그 안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음을 
상식적으로 볼 수 있다. 
또 단순히 축사에서 도살될 때까지 좁은 축사에서 
갇혀 지내는 어떤 축생을 놓고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런 여러 구체적인 경우를
추상적으로 위와 같이 표현한 가운데 
100 년간 매달린 상태에서 몽둥이로 맞는 고통이라고 표현하는 가운데
이런 고통을 벗어나 '면하는' 상태와 

한편 위에 나열한 복락을 한 2000 년 누리는 좋음 가운데 
어느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고 하면 
이 가운데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이 더 나은가가 문제된다고 해보자.


우선 이 문제는 다음을 주의해야 한다. 
이 문제는 이 가운데 어느 하나를 택하면 그것을 취하는 대신 
다른 쪽의 좋음은 희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 반대의 상태를 그로 인해 받아들인다는 것을
함께 의미함을 잘 이해하고
살펴야 하는 문제임을 먼저 주의해야 한다. 

이를 좀더 쉽게 풀어 제시하면 
2000 년 복락을 누리는 것을 택하면 이 부분은 물론 좋은데 
그러나 이것을 취하면 대신 앞에 제시한 100 년간 몽둥이로 맞는 것을 면하지는 못하고
이로 인해 이 내용을 함께 받아들인다는 경우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또 반대로 100 년간 몽둥이로 맞는 것을 피한다면 
그 대신 2000 년간 복락을 누리는 것은 희생하고
이 내용은 함께 받지 못하는 경우를 또 의미하는 것이다. 

사정이 이럴때 
물론 가장 좋다고 보는 것은 
100 년간 그런 고통을 당하지도 않는 한편 
복락은 복락대로 2000 년간 누리는 것이 가장 좋음은 누구나 쉽게 안다. 
그런데 가치 경중 문제를 살피는 것이 
이런 형태가 되지 않는 사정은 이미 앞에서 대략적으로 살폈다. 

따라서 좀 문제가 복잡하지만 앞과 같은 형태를 놓고 
그 가운데 어떤 것을 우선적으로 선택할 것인가를 살피고 
이 각 내용사이의 가치경중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현실의 가치 선택문제는
대부분 이런 형태의 문제이므로 현실적으로도 이런 유형의 문제를 함께 잘 살펴야 한다. 




10 선업을 닦아 하늘에 올라가 복락을 길게 누리는 과보를 얻는 것은 
당연히 좋다. 

그런데 이것도 물론 좋지만, 
경전에서 처음에 예류과라는 수행과위를 놓고 
가치의 경중을 문제삼는 것은 다음 의미다. 

이것은 무한의 기간과 하늘에서 누리는 복락의 기간을 놓고 
어느 기간이 더 길다고 보는가의 산수문제도 문제되고 

또 한편, 하늘의 복락과 함께 
반대로 그로 인해 함께 받아야 할 
지옥이나 아귀 축생의 고통과 그 기간이 있다면 
이것을 놓고 어느 쪽을 선택하는가의 문제도 고려해야 하는 사정이 있는 한편 

수행을 통해 얻는 예류과란 
그로 인해 어떤 상태가 되기에 
이것을 또 문제삼는가를 함께 미리 잘 파악하고 
첫 부분을 살펴야 하는 성격의 가치판단 문제가 된다. 


일단 예류과는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는 수행을 하는 가운데 
생사에 묶이게 하는 업의 장애를 제거하는 한편, 
그런 업을 행하게끔 만드는 기본적인 원인이 되는 
각종 망집 번뇌를 제거하는 수행을 하게 되는데 

그런 수행을 시작하였지만, 
완전히 성취하는 상태에는 이르지 못해서 
비록 3 악도에 묶여끌려가는 업의 장애는 제거되었다고 보지만, 
그래도 여전히 생사의 묶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서 
하늘과 인간 세계를 대략 최대한 7 번 왕래하는 범위에서 
즉 편도로 계산하면 최대 14 번 생사를 반복해가는 가운데
그 생사 가운데에서 생사의 묶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상태에 이르는 
수행을 성취한 상태를 예류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수행과위를 놓고 
앞의 상태와 가치 비교를 처음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최대 14 번의 생사를 반복하는 가운데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난 상태가 될 수 있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은
다음을 의미한다. 

비록 당장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는 아라한의 상태는 아니라고 해도 
그래도 무한한 생사기간을 놓고 보면 
14번 정도의 생사만 받는 중에 
생사의 고통을 완전히 벗어나게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상태가 갖는 가치가 다른 내용과
어떤 정도의 가치가 있는가를 판단하는 것이 문제된다. 

그리고 한편 이것을 반대로 놓고 
무한한 기간에서 단지 14 번 생사를 받는 상당히 장구하다고 볼 기간만 좋음을 누리고
무한에서 나머지 기간은 그렇지 않다고 보는 상태와 
또 이 상태를 비교하면 또 다른 문제가 된다. 

그래서 수행을 통해 얻는 가장 첫단계인 예류과가 갖는 가치판단 문제는 
그런 전제를 바탕으로 처음에 잘 판단해야 한다. 

일단 또 쉬기로 한다. 





mus0fl--Claude François - La Solitude C'est Apres.lrc



앞에서 현실에서 문제되는 가치의 경중 판단문제에서
기본적으로 제기되는 내용을 살폈는데
이는 현실생활에서나 수행과정에서도
공통적으로 문제된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인삼 농사만 지으려고 해도
이 문제를 당연히 고려해야 한다.
인삼을 처음 씨를 뿌려 경작하게 되면
그 경작으로 인해 처음 수확을 얻는 것은
대략 6 년후 시점으로 보게 된다.

그런데 이 경우 1 년만 놓고 보면
최소한 그런 경작으로 인해 별 수익을 얻지 못한다는 것도 의미한다. 
그래서 이 경우 2 년 3 년 4 년 이런 중간 기간에서는 
이런 경작을 하는 입장을 놓고 
왜 수익을 거두지 못하는 그런 경작을 그렇게 하는가하고 
다른 오이나 배추를 경작하는 이가 의문을 제기하면 
조금 입장이 다르다고 이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 그런 경우에도 상식적으로 
어떤 문제를 대단히 좁고 짧고 얕게 관찰하는 입장과 
그래도 좀 넓고 길고 깊게 관찰하는 입장 사이에 
어떤 내용을 놓고 달리 판단하는 점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위에 제시한 사례가 그 하나다. 
딱 3 년만 놓고 판단하면 
배추를 경작하는 이가 훨씬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이라고 
당연히 보게 된다. 
그런데 장기적으로 한 12 년을 놓고 보면 
또 경우따라 다르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인삼농사를 놓고 살피면 
그렇게 매년 꾸준히 인삼씨를 뿌린 경우와 
한 해는 씨를 뿌려 경작하고 
그 다음해는 뿌리지 않고 
또 그 다음 해는 다시 씨를 뿌려 경작하는 경우를 놓고 
또 이들의 차이를 살펴야 한다. 

상식적으로 한 1 년만 놓고 보면 
이 경우나 저 경우나 별 차이가 없는데 
구체적으로 좋음과 나쁨이 계속 엇갈려서 나타난다고 보는 
현상을 이해하려면 먼저 기본적으로 인과와 관련해서 
어떤 원인의 과보는 어떤 형태로 받게 되는가를 또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씨를 뿌리면
중간에 보는 어떤 꽃은
씨와의 관계에서는 그 하나의 결과이면서도 
또 그 이후 열매에 대해서는 원인도 되고 
한편 열매는 열매대로
그 씨로 인해 나타난 결과이기도 하면서 
마찬가지로 또 다른 내용과는 또 하나의 원인도 된다는 사정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과보가 나타나는 기간도 
각 경우마다 차이가 난다. 

그래서 이것을 단순히 살피면 
기껏 어제 열심히 어떤 일을 잘 했는데 
오히려 그 다음날 보니 그가 큰 사고를 당한다고 해도 
이것을 이상하게 여길 일은 아니다. 
단순하게 보면 이해가 잘 안된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게 각 내용이 나타나는 관계가 
단순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행에서도 이런 문제가 당연히 제기된다. 
그래서 아무리 수행해도 현실에서 죽을 때까지 
그렇게 별다른 차이를 볼 수 없는 것 같고
아라한이나 예류과나 또는 일반인이나
지금 당장만 놓고 보면 큰 차이도 안 보이는데 
왜 그런 어려운 수행을 해야 한다고 하는가. 

그리고 수행덕목 가운데 
왜 이 덕목과 저 덕목은 또 가치에 경중의 차이가 있다고 하는가도 
이와 마찬가지 성격의 문제다. 

위에 제시한 문제는 
기본 경전에서는 
아난이 처음 수행을 포기하려고 할 때 
부처님이 제시한 내용과도 관련된다. 

당시 부처님이 아난이 이후 받을 과보를 
직접 보여주면서 현장지도를 했던 것이다. 
그 내용이 기본 경전에 제시된다. 

아난은 일단 그 상태로 수행을 중지해도 
지금까지 행한 수행 때문에 
이후 500 년간 하늘에서 복락을 누린다 
이렇게 제시하면서 그 상태를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서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그 이후 아난이 그렇게 인간세상과 하늘에서 행한 일 때문에 
이후 다시 아난이 지옥에 처해서 받을 고통의 내용도 
또 함께 이어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나서 앞의 여러 내용 가운데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은가 하는 문제를 
제시한 것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수행을 중지하더라도
이번 생 이후 당장 
500 년 정도 하늘에서 천녀들과 맘껏 욕락을 누리고 
향락을 즐기는게 좋다고 보기 쉽다. 

그런데 왜 수행을 중지하지 않고 계속 행하는가. 
그것은 결국 이 문제를 단순하게 
좁고 짧고 얕게 관하지 않고 
종합적으로 넓고 길고 깊게 관해서 
가치를 종합적으로 판단하기에 
그렇다고 그 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앞에 제시한 가치의 경중을 살피는 문제는 
간단하게 접근하지 않고 
잘 살펴야 할 문제의 하나다. 
현실에서 매 순간 무엇인가를 택하고 
대신 무언가를 희생시키는 선택을 수없이 이어가는데 
그 문제가 결국 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다음 문제를 살피자. 

이 부분은 앞의 가치 경중 판단 방식만 이해하고대하면
다른 부분과 달리 
크게 어려운 부분은 없다고 보는데 
그래도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고 보는 부분이
다음과 같다고 본다.

다음 부분이다. 

...

이와 같이 온갖 반야 내지 보시바라밀다가 있지 않고 

더 나아가서 내지 일체상지도 있지 않음을 알면, 

이 보살마하살은 

온갖 법이 모두 있지 않음을 알면서 

다시 따라 기뻐하면서 

함께 행하는 복된 일로써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회향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따리 기뻐하면서 회향하는 마음은 

뒤바뀜에 속하지 않나니, 

얻을 바 없음으로 방편을 삼기 때문에 

진정으로 따라 기뻐하면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회향한다 합니다."

...

우선 보시 정계 안인 정진 정려 반야 바라밀다의 의미가 무엇이고 
왜 이 가치를 그렇게 높이 평가하는가 하는 점이다. 

또 단순히 무엇을 베푸는 보시나 
계를 지키는 정계... 등의 수행과 
그 각 내용에 바라밀다라는 표현을 붙이는 것은 
어떤 의미 차이가 있어서 그런 것인가. 


그리고 그런 내용이 실제로는 있지 않음을 잘 관하는 가운데 
생사현실에서는 또 왜 그런 수행을 해야 한다고 제시하는가. 

그리고 그렇게 그런 수행을 하면서도 
왜 그 수행자는 정작 
그런 내용을 본래 얻을 수 없음을 잘 이해하면서, 
그에 대한 모양[상]을 현실에서 취하지 않고 
행해야 한다고 하는가. 
그리고 그렇게 임해야만 
뒤바뀜[전도망상]의 상태에 빠져서 생사고통을 받지 않게 된다고 하는가. 

그리고 왜 그런 수행으로 복덕을 무량하게 얻는데 
그것을 최종 목표점으로 하지 않고 
이것을 단순히 더 높은 상태를 성취하기 위한 수단적 목표로 관하면서 
그런 상태를 따라 기뻐하면서 [수희]
다시 무상정등정각 즉 위없이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얻는 
상태를 향해 방향을 전환해 다시 나아가야 한다고 하는가. 

그런데 본래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면 
현실에서 어떤 수행을 하거나 말거나 
또 어떤 수행을 하더라도 
그로 인해 무언가 얻을 것이 있음[유소득]을 방편으로 그런 수행을 하거나 
그로 인해 무언가 얻을 것이 없음[무소득]을 방편으로 그런 수행을 하거나 
본 바탕은 아무 차이가 없다고 할 것인데 

왜 굳이 생사현실에서는 
하필이면 그런 수행을 해야하고 
그것도 하필이면 무소득을 방편으로 그렇게 
자세를 취해서 수행해야만 
한다고 하는가 

이런 부분이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 

경전에서는 일반적으로 이런 사정을 이해하기 어려운 사정과 함께 
처음 발심해서 수행에 임하는 상대에 대해서는 
본 바탕이 공하다는 내용을 제시하면 
곤란하다고 하는데 
그것은 또 왜 그런가. 
이런 내용도 이와 관련해 잘 살펴야 한다. 

그것은 사실은 일체가 차별없이 공하다고 
내용을 제시하면 
앞과 같은 악취공견을 일으켜서 
아예 수행을 하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잘못 임하거나 
또 수행을 하면서도 잘못된 방편으로 임하기 쉬운 
문제가 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단 수행에 처음 임하는 경우는 
부처님을 믿는 가운데 
제시된 내용을 잘 실천해서 
일단은 어느 정도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난 상태에 
이르는 것이 기본적으로 더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보는 사정이 또 있어서 그렇다고 보게 된다. 

그래서 사실 반야부 경전은 
기본 경전의 가르침을 통해서 
일단 상당히 수행을 잘 성취한 
제자들을 상대로 가르침이 베풀어진다는 사정을 
반야부 경전에 나타나는 분들을 통해서 
먼저 기본적으로 살필 수 있다. 

예를 들어 기본 경전에서는 
부처님 또는 부처님의 상수제자인 사리자 존자가
처음 수행을 시작하거나 
일반인을 상대로 행하는 가르침도 많이 보게 되고
경전에 나타나는 분들도 일반인이나 왕을 포함해서
다양한 분들이 나타나지만, 

반야부경전은 조금 사정이 다른 것을 
살필 수 있다. 

그것은 또 반야부경전이 
일단 기본적인 수행을 잘 이수한 상태를 
전제로 추가로 좀 더 깊게 
관련 내용을 제시하는 가르침이라는 점을 
살필 수 있다. 

그것이 결국 위에 제시한 문제들의 이해와 
관련이 되는 것이다. 

이미 글이 상당히 길어졌는데 
위 내용들은 대단히 중요하다고는 보지만, 
이미 과거 조각글에서 대단히 많이 반복해 살폈다. 

그래서 그런 의문을 가질만 하지만, 
그러나 경전에서 그런 잘못된 자세를 취하지 않아야 한다고 
제시하게 되는 그 사정도 
또 많이 반복해 살핀 상태이기에 
여기서 몇몇 부분만 반복해 살피고 생략하기로 한다. 



mus0fl--Maxime Le Forestier - Comme Un Arbre.lrc


앞에 제시한 문제들은 
기존에 많이 반복한 문제이고 
이미 글도 상당히 길기에 
간단히 핵심만 살피고 마치기로 한다. 

우선 왜 현실에서 대하는 내용을 
무아 무자성 공하다고 제시하는가 하는 사정과 

또 예를 들어 현실에서 거리에서 눈을 뜨고 대하는 현실 내용에서 
각 부분을 놓고 
이 부분은 자신이고 저 부분은 영희나 철수이고 
저것은 자동차고 저것은 집이고 거리라는 등등으로 
분별하고 각 부분을 대하는데 
그렇게 각 부분에 대해 그런 분별을 가지고 
대하는 것이 망상분별인가 하는 사정도 
과거에 대단히 많이 반복해 제시하는 한편 
또 뒷 부분은 이전 조각글에서도 또 자세히 살폈다. 

그래서 현실의 본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잘 이해하는 한편 
그런 망집을 완전히 제거하려면 
본 사정이 그런데도 
왜 현실에서는 그런 망집을 자꾸 일으키고 
그렇게 망집에 바탕해서 임해야만 현실에서 
오히려 잘 생활할 수 있다고 여기게끔 되는가. 
그리고 그런 망집을 잔류시키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보게 되는가 하는 
사정까지 잘 이해해서 
이런 망집을 잘 제거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원칙적인 내용을 제시하면서도 
수행자가 그런 망집을 바탕으로 임하는 생사현실에 들어가서 
경전에서 제시되는 내용대로 잘 수행에 임해야 한다고 하는 사정은 
수행자가 생사고통을 벗어나게끔 해야 하는 중생이
역설적으로 바로 그런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이 사정을 조금 쉽게 이해하려면 
유치원생을 일정한 상태로 이끄려는 선생님을 놓고 
그 사정을 이해하면 쉽다. 

선생님은 유치원교실에서 유치원생들이 
집착하는 그런 것들이 하나도 실답지 않고 
엉터리임을 잘 이해하지만, 
그러나 그런 유치원생이 스스로 그 사정을
잘 파악해서 올바로 임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그저 그런 상태로 방관 방치해서도 곤란하지만,
또 그렇다고 억지로 강제할 수도 없기에

오히려 그런 유치원생의 상태를 기준으로 놓고 
그 상태에 눈높이를 맞추는 한편 
또 한편으로 그런 유치원생이 끝내 도달해야 하는 
목표 상태로 그 유치원생을 이끌려는 취지로 
유치원교실에 들어가 임하는 것이다. 

사정이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 보시, 정계, 안인...등등의 행위를 하더라도 
그 수행자 자체가 그런 행위를 통해 
무엇이 끝내 얻을 것이 있다고 여기면서 
그런 행위를 유소득을 방편으로 행한다거나, 

또는 반대방향으로 극단적으로 임해서 
그런 것이 실답지 않기에 
아예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이 필요가 없다고 임하면 
곤란하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그런 바탕에서 그런 보시나 정계 안인...등을 
행한다고 한다면 
또 그런 사정으로 그것은 그런 보시 정계 안인...'바라밀다'를 
행하는 것도 되지 못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이것을 유치원 교실 상황을 놓고 생각하면 
또 마찬가지로 쉽다. 

유치원생을 일정한 상태로 이끌기 위해서 
유치원 선생님이 유치원생들이 집착하는 
구슬이나 딱지나 오락도구를 제공하고 
또 유치원생을 보호하고 
유치원생들이 함부로 선생님을 대해도 
그저 평안히 받아들이고 임하는 것이지만, 

문제는 유치원선생님 자신부터 
그런 내용들이 하나같이 실답다고 여기면서 
그 상황에 그렇게 임하고 있다거나
그런 것을 통해 무언가 실다운 것을 얻을 것이 있다고 여기면서
그렇게 임한다면 그것은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이런 비유와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망집에 바탕해서 
현실에서 각 내용에 대해 상을 일으키고 
또 그것이 실답고 진짜라고 할 자성이 있고 
또 그 실재에도 현실내용과 같은 것이 실제 있어서 
그런 것이 실답다고 여기면서 대하는 것이지만, 

적어도 이런 망집을 바탕으로 생사고통을 무한히 
겪어 나가는 중생을 제도하고자 
생사현실에 임하는 수행자는 
본 사정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한편으로 잘 관하는 한편 

또 그런 중생을 그런 생사현실에 임해 제도하기 위해서는 
그런 제도에 필요한 각 수행행위를 
그 본 사정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잘 관하여 
그에 집착을 갖지 않고 
그에 대해 상을 취하지 않는 한편 
또 그런 중생을 제도하는데 필요한 
복덕과 수명과 지혜를 잘 구족하고 
불국토를 장엄하고 성불하기 위한 수행은 수행대로 
잘 성취해야 한다고 제시하는 부분이다. 

그 사정을 그렇게 이해하지 못하면 
왜 본 바탕에서 그런 내용을 하나같이 얻을 수 없는데도  
그러나 생사현실에서 수행자가 하필이면 
그렇게 임해야 한다고 하는가 하는 사정과 
그런 내용을 제시하는 기본 취지 자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형식적으로 무아 무자성 공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앞과 같은 입장을 취해서 
스스로도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편 
망집에 바탕해서 생사고통을 받는 다른 중생도
제도해내기 힘들게 되는 것이다. 

그런 사정은 대반야바라밀다경전에서도 
또 제시되지만, 여하튼 그런 사정과 그 취지를 잘 이해해서 
부처님이 본래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지만, 
무량겁에 걸쳐 수행자가 중생과 같이 생사현실에 들어가 
임하여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무량한 방편을 닦는 것은 
결국 자비심을 바탕으로 그런 상태에서 생사고통을 겪는 중생을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것임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와 관련한 다른 내용은 
여기서는 생략하고 이만 마치기로 한다. 











■■


◆vzow1276

◈Lab value 불기2562/11/16/금/13:21





mus0fl--Keen'v - Petite Emilie.lrc 



♥ 잡담 ♥인턴연구원 불교학과 진학결정

오늘 수능 시험을 마친 인턴연구원을 만나 
한 20 분 정도 이야기하였다. 
그래서 취지를 잘 설명했더니 
흔쾌하게 공감하고 불교학과로 진학한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단순히 질병치료만 목표로 공부를 하려고 했는데
이제 조금 더 뜻을 키워서
온 생명을 생사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하는 뜻으로
불교학과에 가고 불교 공부를 하고 
질병 치료 문제는 그런 중생제도의 방편상 
필요하면 그 때 또 방편을 찾아보는 방안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상황때문에 마지못해 그런가하고 생각할 여지도 있는데 
그러나 아주 흔쾌하고 밝게 받아들여서 
내심 불교학과 진학을 그간 권유해온 본인 입장에서는 마음이 좋다. 

이해를 잘 하지 못하면 
낙타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무엇이 더 좋고 큰 것인가 하는 가치저울 이야기와 함께 
ESC 분야가 갖는 특장점 이런 등등으로 
이야기가 길어질 수도 있었는데 
핵심만 간단히 제시한 상태에서 흔쾌히 받아들이니 
다행이라고 본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처음 인턴연구원이 생각한 것처럼
일반적으로 그렇게 현실에서 눈을 가리고 임하기가 쉽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그런 사정으로 속앓이를 하고 평생을 
살아가는 경우도 대단히 많다. 
어떤 시인이 썼다는 가지 못한 길 이런 시도 떠오르는데 
자신이 망집 상태에서 한 쪽을 환상적으로 그려가면서 
그렇게 현실에 임하기에 발생하는 문제다. 
그런데 막상 그 길에는 온갖 생사번뇌와 고통을 
속으로 껴안고 또 신음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 사정을 삼국유사에 조신의 예에서도 볼 수 있는데 
알고보면 현실이 이렇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이 욕계의 두통거리다. 

그렇다고 이전 조각글처럼 욕계나 색계 무색계 
이런 내용을 처방으로 제시하면 
그런 내용 자체를 골치아프게 또 여기는 한편
그 처방전을 받아들이지 않게 되는 것이 또 어려움이다. 


생각해보면 본인이 불교 공부하던 때와 
지금 인턴연구원이 불교 공부를 시작하는 상황은 
또 차원이 다르다. 

과거에는 경전 자체를 번역해서 읽는 것 자체가 
연구의 부담이었는데 
지금은 위에 링크를 건 사이트를 보아도 쉽게 그 사정을 알지만, 
거의 대부분의 경전이 번역되어 제공되고 있는 상태다. 
그 동안 번역을 맡아 올려준 사이트에 감사할 일이다. 

번역이 되어서 원문과 함께 제공이 되어서 그렇지 
사정이 그렇지 않으면 
경전이나 논서 하나 붙잡고 연구하려면 보통 일이 아니다. 
원본을 구해 보기도 쉽지도 않고 
또 그 의미를 이해하기도 쉽지 않고 
그런 상태면 연구도 함께 장애를 겪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제 그냥 연구하면 되는 상태가 된 것이다. 
그런 상황이 주어지니까 별것이 아닌 것처럼 여길 수도 있지만, 
알고보면 값을 헤아리기 힘든 보물이다. 
그런데 그 보물을 정말 보물로서 사용하는 것도 또 쉽지 않다. 

그것을 잘 파악하지 못하기에 
결국 그런 경우는 낙타 이론부터 해서 
가치저울 이론을 하나하나 제시해서 
이해시켜야 하는 어려움이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것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망집을 일으켜 무엇엔가 초점을 맞추고 묶인 입장에서는 
그 망집을 풀어주려는 노력 자체를 
대단히 싫어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수행자의 무량행문에서의 핵심 과제는
사실 이 부분에 있는 문제를 해결해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이 발심을 일으킨 후 수행자가 
무량겁에 걸쳐 행해야 하는 핵심 수행목표이기도 한 것이다. 

망집에 묶인 상태는 거꾸로 이 모든 것을 
대하기에 서로가 힘들게 되기 쉽다. 



mus0fl--Da Silva - Un Endroit.lrc


이번 조각글에서 인턴연구원 문제도 살피는 한편 
뽑혀진 경전 내용도 살피는데 
공교롭게 경전 내용이 가치의 경중을 살피는 내용이어서 
이들 내용이 무언가 관련이 된다고도 보게 된다. 

그런데 알고보면 현실 매순간의 내용의 사정이 
다 마찬가지다. 

한 주체의 마음에는 우주부터 신발에 붙은 껌까지 
다 초점을 맞추면서 
그 내용을 마음에 넣을 수 있는데 
문제는 신발에 붙은 껌이 신경이 쓰여서 
그에 초점을 맞추고 임하면 
바로 그런 선택으로 인해 
적어도 그 순간은 그 마음에 들어올 수 있는 
우주의 가치가 다 사라져 버리는 한편, 
또 그로 인해 그 이후의 내용도 마찬가지 형태가 되기 쉽다. 

어떻게 보면 경전에서 제시하는 내용이 
일반 현실과는 대단히 동떨어지는 광대무변한 내용들이기에 
비현실적인 내용을 놓고 공상적인 바탕에서 
임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기도 쉬운데 
그것은 적어도 수행자의 입장에서는 
매 순간 맞이하는 현실 문제이기도 하다. 

이전 조각글에서는 
삼계를 자유자재하게 들고 나면서 살피는 
3 계대자재라는 삼매도 살폈는데 
3 계라는 내용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정작 이런 수행에 들어 3 계를 들고 나는 수행자도 
일반 현실에서 보면 그저 
일반적인 경우와 별 차이가 없다. 

그것은 3 계라고 하는 그 내용이 
결국 한 주체의 마음안에서 펼쳐지는 내용인 점에서는 
차이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적어도 3 계에서 색계 무색계는 
3 악도가 펼쳐지는 욕계의 상황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수행자는 기본적으로 
이 색계 무색계로의 출입을 하는 상태가 되어야 하고 
또 그 가운데 정려 수행으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서 
대자 대비 대희 대사라는 4 무량심정을 또 
빼놓아서는 곤란하다. 

그것은 수행자가 이런 색계 무색계의 하늘에 드는 것은 
단순히 욕계내 생사고통을 피하려는 취지가 아니고 
이들 3 계에서 생사를 반복하면서 
생사고통을 받는 중생을 제도해내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런데 자칫 잘못 임하면 
당장 자신의 생사고통만 면하면 그 뿐이라고 보면서 
그 이후나 다른 중생의 생사고통은 생각하지 않고 
임하기 쉽다. 

그래서 수행방안으로 제시되는 정려 수행은 
색계 4 선 4 무량심 무색계 4 선 이런 형태로 
원칙적으로 제시된다는 사정도 기본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또 기본적으로 욕계에서 자칫 초점을 잘 맞추지 못하고 
별로 쓸모없는 것에 현미경처럼 초점을 맞추면서 
그것이 마치 우주의 절대적이고 실다운 가치를 갖는 것처럼 
여기면서 접착되어 임해서 
결국 톱니바퀴에 붙은 껌처럼 무한히 생사고통을 
반복해 나갈 수 있기에 문제되는 것이다. 

그리고 당장 희희낙락한 상태에서는 
그것이 자신과는 전혀 무관한 내용인 것으로 
이를 무시하고 방관하기 쉽다. 

그러나 생사현실의 사정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부터 
잘 자각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같이 실답지 않지만, 
그러나 망집을 일으킨 상황을 전제로 하면 
한 순간 한 순간의 내용이 
대단히 생생하고 실다운 내용으로 
도저히 접착해서 그것을 대하지 않을 수 없게끔 
여겨지는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번 망집에 바탕해 임하면 
그 상태로 무량한 기간 생사현실에 묶여서 
생사고통을 반복해 받아나가게 되는 것이다. 

이 사정을 잘 살피고 헤아리기 위해서도 
하루를 보내는 가운데 
기회가 될 때마다 정려 수행에 들어가고 
삼매를 닦는 수행이 요구되는 것이기도 하다. 

원래 경전을 20 페이지씩 끊어 살펴나가다가 
요즘은 체계를 바꾸면서 
경전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형태대로 
1 권 분량씩 묶어 살피는데 
그러다 보니, 어떤 경우는 조금 분량이 많다고 느끼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마음 같아서는 문제되는 내용을 
다 살피고도 싶은데 
시간도 늦고 했으니 
일단 이것으로 마치기로 한다. 




문서정보 ori http://buddhism007.tistory.com/5248#1276
sfed--대반야바라밀다경_K0001_T0220.txt ☞대반야바라밀다경 제 504 권 
sfd8--불교단상_2562_11.txt ☞◆vzow1276 

불기2562-11-16

θθ

 




-- 아래에 조각글 작성시 휴식시점에 붙인 노래가사,사진,풍광,예술작품 자료를 편집상 옮겨 붙입니다.--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Icones_plantarum_medico-oeconomico-technologicarum_cum_earum_fructus_ususque_descriptione_=_(Tab._221)_(8097020353)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Ningbo_Ayuwang_Si_2013.07.28_14-49-07



♥Université de Lille, Campus Pont de Bo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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