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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2-11-17_십주비바사론_290 본문

과거조각글/불기2562(2018)

불기2562-11-17_십주비바사론_290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18. 11. 17. 13:19



®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

K.584 (16-670), 

T.1521 (26-20) 





용수 지음

후진 구마라집 한역


제10권

21. 사십불공법품(四十不共法品) 

22. 사십불공법품 

1. 난일체지인품(難一切智人品) ①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이하 부분은 위 경전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경전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sfed--십주비바사론_K0584_T1521 핵심요약

 




십주비바사론 제10권
용수 지음
후진 구마라집 한역


◆vblw5620

◈Lab value 불기2562/11/17/토/13:20



○ [pt op tr]  mus0fl--Yves Simon - Irene, Irene.lrc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Ernst-Ludwig-Kirchner-trees.jpg!HD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Rose_with_departing_bee._(11383801436)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Salar_de_Atacama



♥Rhytmic Music Conservatory ,Denmark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 잡담 ♥뜻대로되지않는세상과뜻대로되는세상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기에 
고통스럽다고 여기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세상에서 자신의 뜻이 성취된 상태가 
반대로 있다고 여기는 증상과 관련된다. 

공을 하나 놓고 발로 차본다고 하자. 
이 때 공을 발로 차면 앞으로 굴러간다고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 공을 발로 차도 굴러가지 않으면 
자신의 뜻처럼 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잘 살피려면 
이처럼 가장 단순한 사례를 하나 놓고 
처음에 공을 차서 공이 굴러간다고 보게 되는 경우와 
공이 또 굴러가지 않는다고 보게 되는 두 경우를 놓고 
그 하나하나의 단면에 과연 그가 생각하는 그런 내용이 
있는가 없는가를 놓고 잘 생각해야 한다. 

이 첫 문제가 잘 해결되면 
그 다음 문제도 잘 해결된다고 할 수 있고
이 첫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으면
그 다음 문제도 역시 같은 사정으로
잘 해결되기 힘들다고 보게 된다.

십주비바사론을 살피다 보니, 
각기 종교나 사상이 다른 입장에서 
자신이 믿는 종교나 사상이 이런 점에서 더 좋다 
아니다 이런 식으로 시시비비를 따지는 내용을 볼 수 있다. 

이런 문제를 보통 믿거나 말거나의 문제로 돌리기 쉬운데 
비록 믿더라도 어떤 바탕에서 그런 내용이 
제시되는가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또 이와 관련되는 내용을 최근에 살피기도 했다. 
참고 .
 
sfed--역장엄삼매경_K0399_T0647.txt ☞역장엄삼매경 중권

http://buddhism007.tistory.com/5245


여하튼 불교를 믿거나 또는 믿지 않거나
이런 내용을 살펴볼 의미가 있다고 본다. 


오늘 모처럼 숙왕화님이 
다시 등산 훈련을 가자는 제의가 왔다. 

그간 오래 쉬었는데 
아무래도 다시 등산 훈련을 다녀와야 할 것 같다. 





mus0fl--Claude Francois - J'y Pense Et Puis J'oublie.lrc








































































































































































숙왕화님으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그간 연구실에 있던 찬대승이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본인은 옆에 음악기기를 통해 독경음악들을 그간 틀어주기는 했었지만, 
최근에는 찬대승이가 잘 보이지 않아서
그냥 한 구석에서 잠을 자는 것으로만 여기고 지내왔는데
해바라기씨가 하나 생겨 이것을 찬대승이를 주면 좋겠다고 말하니
이미 한 1 주일전 세상을 이미 떠났다고 한다. 
연구실에 지내면서 왜 몰랐는가 했는데 그냥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간 수명으로 치면 한 120 살 산 셈이라고 하는데 
그 소식을 들으니 약간 우울해지려고도 하는데 
그러나 좋은 곳으로 옮겨 갔으리라 생각하니 
또 위안도 된다. 

또 최근 인턴연구원 이야기도 했는데 
원래 희망했던 분야는 아니더라도 
여하튼 결과적으로는 잘 된 것으로 본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원래 희망한 분야와는 천양지차의 차이가 있다고 여길 수 있는데
본인은 그 만큼 훨씬 좋다고 보지만,
그런데 무엇이 좋고 나쁜가 하는 부분은 
각 개인마다 다 차이가 있어서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곤란하다. 

여행을 한 번 다닐 때라거나 음식을 먹을 때 
그런 개개인의 차이를 실감하게 된다. 

여하튼 연구실에서 나올 때도 인턴연구원을 보았는데 
표정도 밝고 명랑해서 좋다고 보지만,
그러나 알고 보면 불교공부가 오직 좋기만 하다고 보기도 힘들다. 

번뇌를 끊는 공부가 때로는 역설적으로 
없던 번뇌를 일으키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세상의 어떤 것이나 그것이 어떤 의미를 주는가 하는 것은 
그것을 대하는 주체와 상대적이라고 본다. 

그래서 어떤 이에게는 즐거움을 주는 내용인데
어떤 이에게는 없던 번뇌를 새로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본인이 그런 점에서 혹시라도 인턴연구원이
어떤 내용을 물어보면 알려주지만, 
그 이상 관여하지는 않기로 하나의 원칙을 정했다. 

본인은 그저 일반적인 경우를 놓고 연구하고 
관련 내용을 지금처럼 인터넷에 올리는 일을 하다가 
삶을 마치는 것을 이번 생 마지막 시점까지 할 일로 생각하는데 
그 외로 관여할 생각이 없다. 

여기에는 본인이 여러 경우의 경험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직접 원해서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 노력해 얻는 것이 아니면 
결국 쓸모없는 것이 된다는 사례를 여러 경우에서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숙왕화님이 등산로에 낙엽이 지니 등산로가 훨씬 넓게 보인다고 한다. 
본인은 과거의 등산로도 기억이 안 나지만, 
여하튼 쉼없이 틈만 나면 등산을 다니는 숙왕화님 입장에서는 
그런 차이가 보이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런 것이 경험의 차이라고 본다. 

한편으로는 과연 불교를 공부하고
수행을 하는 것을 정말 좋아하고 
중간에 하다가 물러나지 않고 
끝까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에서는 
우려도 많이 되는데 
그런 전반적인 것은 결국 자신이 알아서 할 일인 것이고 
물어보면 알려줄 수는 있지만, 
그렇지도 않은데 일일히 관여하면 
오히려 좋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오랜만에 둘레길을 다녀왔는데 

그간 등산훈련 조교역할을 해온 숙왕화님과
한 번 능선을 갔다오면서 본인이 상당히 힘들었었다.

이후 숙왕화님이 본인은 둘레길이 맞는 것 같다고 하면서
둘레길만 앞으로 다니라고 하고 

그간 등산훈련을 마치고
1 달여간 등산을 가지 않았는데 

오늘은 함께 갔다왔다. 

둘레길 주변이 거의 다 낙엽으로 덮여 있어서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 

그리고 과거에 훈련받을 때와 달리
등산속도도 오로지 본인 상태를 기준으로 해서 걷다보니 

피로도도 전보다 훨씬 덜하다. 


중간에 아주 조그만 귀여운 이름 모를 새가 있어서
사진을 찍어보려고 하였는데 

초점 맞출 여유를 주지 않고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 


상당히 수줍어 하는 듯 나무 가지 뒤에 숨고는 하는데
끈기있게 기다려서 담아보았다.

원래 혼자 다니면 이처럼 시간 관념없이
여기저기 사진도 찍고 하면서 천천히 걷는데
그간 등산훈련 받을 때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절대 고독을 느끼면서

등산 훈련 조교 노릇을 하는 숙왕화님이 앞서 가도 따라가지 않고 

그냥 혼자 사진 찍고 쉬고 음악듣고
그러다 조금 걷고 싶으면 걷고
그러다 중간에 못 만나게 되면 숙왕화님 혼자 알아서 잘 돌아 가리라
이렇게 편하게 마음을 먹고 걸으니 정말 편하다.


그리고 다 마치고 식사하면서 말을 들어보니

이번에는 정말 본인의 늦은 속도에 맞추어서 느리게 갔다 와서
산에 다녀온 느낌도 들지 않는데 

본인은 그래서 아주 편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말 편했다. 

생각해보면 무엇이 중요한가.
지금 이 나이에 내가 훈련 받으러 산에 갈 일이 있는가. 

그래도 오랜만에 산을 갔다 돌아오니 상당히 피곤하다. 
숙왕화님은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일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또 가평 어딘가로 등산을 다녀올 예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수행자가 번뇌를 끊고 중생제도를 위해 
수행을 한다고 할 때도 사정이 마찬가지인 것 같다. 

각 개개인의 사정이 다 다르다. 
그런데 자칫 잘못 임하면 
공연히 자신에 맞추어 상대를 억지로 이끌려고 하기도 쉽고 
또는 상대가 자신 뜻대로 응하지 않기에
그냥 포기하고
중간에 상대가 어떻게 되던지 일체 관여하지 않고 
방관하고 방치해버리기도 쉽다. 

그런데 길게 보면 이 두 내용이 모두 좋지 않다고 보게 된다. 
그래서 결국 수행도 기본적으로
자신이 중심이 되어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행하는 가운데  
어느 경우에 상대가 요청을 하면 약간 도움되는 팁 정도만 건넬 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은 오히려 길게 보아 부작용이 많다고 보게 된다. 

불교 관련 연구를 혼자 하다 보면 
어떻게 보면 일반적인 입장과 너무 차이가 극심해서 
다른 상대로부터 이해받기 힘들게 되기도 하고 
그런 가운데 서로 자신의 입장을 내세우다 보면 
서로가 어리둥절한 상태가 되기 쉽다. 

그런 가운데 한편으로는 상대로부터 이해받지도 못하고
공감을 받지도 못하는 가운데 외로운 느낌을 받게도 되고 
그래서 절대 고독이란 단어도 가끔 떠올리게 되기도 하는데 
그러나 어쩔 도리가 없다고 본다. 

그러나 그렇다고 어떤 문제가 뻔히 보이는 데도
모른 척 전혀 방관할 도리도 없기에 
어떤 도움을 주고 싶을 때도 
최대한 한 30 초 이내의 분량으로 줄여서 
간단히 힌트나 팁 정도만 제공하고 그치는 것이
그나마 길게 보아 낫다고 보게 된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사실 다른 이로부터
이해나 공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구체적인 경우마다 상당히 많고  
그래서 서로 답답함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많지만, 
별 도리가 없다고 본다. 

결국 삶이란 그렇게 한 공간과 시간대를 같이 공유해 
지내기는 하지만, 알고보면 
제각각 자신의 길을 외롭게 가면서 
삶을 살고 삶을 마치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리 가깝게 여긴다해도
그러나 한 사람이 어떻게 다른 이의 생노병사를
전적으로 대신해 줄 수 있겠는가. 
그래서 마음은 서로 모든 도움을 주고 싶다해도
결국 서로간에 일정한 한계가 있다고 보게 된다. 



문서정보 ori http://buddhism007.tistory.com/5249#5620
sfed--십주비바사론_K0584_T1521.txt ☞10주비바사론 제10권
sfd8--불교단상_2562_11.txt ☞◆vblw5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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θ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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