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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3-02-18_잡아함경_001 본문
『잡아함경』
K0650
T0099
잡아함경 제1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잡아함경_K0650_T0099 핵심요약
♣0650-001♧
『잡아함경』
잡아함경 제1권
mus0fl--Benjamin Biolay - J'ai Ta Main.lrc
그간 몸이 많이 피로해서 며칠간 상당히 오래 쉬고 나서 연구를 시작하려고 의자에 앉으니
새삼 엉덩이가 상당히 아프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쉴 때는 의자에 앉아도 몰랐던 증상이다.
이런 현상은 연구 작업처럼 조금은 반복되면서
약간 마음에서 지루함이 느껴지는 분야를 대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보게 된다.
현재 계속 조각글이나 경전 분야 연구가 상당히 밀려 있다.
이미 반야경전과 함께 구사론 내용도 대강 살피고
그리고 최근 중아함경 등도 살피고 계속 넘어 오고 있는데
이것이 모두 서로 관련된 주제라고 보게 된다.
그래서 되도록 이것을 이번에 함께 다 관련시켜 살피고자 한다.
우선 14일자에 올려진 『방광반야경』에서
다음 구절을 살폈다.
출처: http://buddhism007.tistory.com/5383
참고로 위 구절에서 행상이 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수행상태를 나타낸다.
따라서 위와 같이 하면 안 된다는 내용을 나타내는 부분임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
그리고
15일자에 살핀 『구사론』 제30 권에서는
윤회의 주체와 관련해 보특가라에 대해 살핀다.
그러나 만약 오로지 5취온만을 보특가라라고 이름한다면, 어째서 세존께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계신 것인가?
“내 지금 그대들을 위하여 온갖 무거운 짐[重擔]과, 무거운 짐을 취하고 버리는 것과, 무거운 짐을 지는 자에 대해 설하리라.”1)(독자부)
어째서 부처는 이 같은 말을 응당 설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세친)
‘무거운 짐’이 바로 ‘능히 지는 자’라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2)(독자부)
그 까닭이 무엇인가?(세친)
그 같은 사실은 일찍이 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독자부)
...
『아비달마구사론』 제30권
sfd8--불교단상_2563_02.txt ☞◆vciv9482
출처 http://buddhism007.tistory.com/5387
그리고 요즘 경률논 코너에서 살펴 나가는
『대반야바라밀다경』과 『유가사지론』 에서 논의해가는 여타 부분도 마찬가지인데
앞의 주제는 모두 현실에서 평소 자신이라고 보는 내용의 정체를 놓고
살피는 문제와 깊게 관련된다.
>>>
또 그것은 자신에게만 관련되는 문제가 아니고
자신이 영희나 철수라고 평소 여기면서 대하는 철수나 영희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자신이 평소 영희나 철수라고 보는 부분을
그 영희나 철수도 역시 그런 내용을 자기 자신인 영희나 철수라고 여기고 대하고
또 반대로 영희나 철수가 자신이라고 여기며 대하는 그 부분을
평소 자신도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기면서 매 순간 임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살피려는 『잡아함경』에서 기본적으로
이렇게 대하는 그 각 내용이 무상하고, 고이고, 무아 무자성이고, 공하다.
이런 내용을 제시하고 그에 대해 집착을 갖지 않아야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 해탈하게 된다. [심해탈, 혜해탈 ]
이런 가장 기본적인 내용을 제시한다.
그래서 사실 지금 『잡아함경』 부분에서 살피는 내용이
불교 전체를 통해 가장 기본적인 핵심 내용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이 어떤 내용이 부처님의 가르침인가 아닌가를
획정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 법인설]
문제는 그런데 앞에 나열한 내용들이 다시 이와 관련되면서
약간은 혼동을 일으킬 여지가 있게 된다.
이미 이런 혼동을 일으키게 되는 그 사정을
『방광반야경』을 살피는 부분에서 일단 문제점만 간단히 제시했는데
시간은 시간대로 없고,
그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또 과거에 많이 했다는 사정으로 인해
그냥 건너 뛰어오게 되었다.
시간상 건너 뛰어오지만, 나중에 여유가 있으면 다시 그 부분들을 찾아가 보충해 넣고자 한다.
그런데 여하튼 앞에 소개한 『방광반야경』에서는
그렇게 여기고 수행에 임하면
그것이 곧 상을 행하고 상에 머물고 상을 취하는 수행이 된다.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구사론』에서는
여하튼 현실에서 자신이나 영희 철수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그렇고
더 나아가 태어나서 죽어 가는 생사과정 전반을 걸쳐서
도대체 이들 각 내용이 무엇을 중심으로 그렇게 이어져 간다고 할 것인가 하는
생사 윤회과정의 주체와 관련된 문제를 살피고 있다.
약간 생소한 용어이지만, 보특가라란 용어가 이와 관련된다.
보특가라란 생소한 단어를 조금 엉터리 시감상 방식으로 감상하면
보통 인간이거나 특별한 인간이거나, 다 엉터리고 실체가 아닌데.
여하튼 현실에서 여기서 태어나서 저기서 죽고
또 그것만으로 끝이 아니고 그런 과정을 무량겁에 걸쳐 이어나간다고 할 때
이렇게 매 순간 그 내용이나 모습이나 실질이 다른 각 내용을
하나의 주체와 관련된 일로 관하게 하는 그 요소가 과연 무언가.
이것을 살피는 주제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를 한자어로 인(人)이라고도 단순히 번역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단지 영희나 철수를 다 같은 '사람'이라고 추상적으로 이름붙여 표현하는 문제라기 보다는
도대체 영희나 철수의 일생 전반을 걸쳐 매순간 다른 내용을
어떻게 파악해서 그것을 모두 하나의 영희 철수라고 보는가. 이런 문제와 주로 관련된다.
보특가라에 대한 불교사전 풀이를 붙이면 다음과 같다.
보특가라[Chn]補特伽羅[San]pudgala[Tib]gang zag[Eng]the subject of an individual ; the personal entity
[mean]푸드갈라의 음역. 생사 윤회를 거듭하면서 여러 취(趣)를 거듭하여 왕래하는 것을 가리킴. 특히 인간의 정신적 주체.
그리고 이런 보특가라를
다시 낯선 한자어로 삭취취[數取趣, 수취취]라고 표현하는 내용이기도 한데,
이는 생사윤회과정에서 한 주체가
3 계 6 도 안의 지옥 아귀 축생 등등 각 세계를 자주 오가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생사과정을 논의 범위에서 제외시키고 일단 생사내 현실만 놓고 보면
이 문제는 다시 현실에서 갓난아이시절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무엇을 핵심으로 하여 자신이나 영희 철수를 자신이나 영희 철수로
계속 한 주체의 일로 파악하고 현실에 임하게 되는 문제와 관련된다.
그리고 이제 오늘 살피는 『잡아함경』을 다시 살피면
현실에서 자신이라고 보고 대하는 내용을
5 가지 범주로 묶어 나열해 놓고
이것이 나라거나,
'나'와 다르고 '<나>'가 아니라거나,
하는 주장이 모두 잘못된 망상분별이라는 사정을
가장 기초적으로 살피고 있다.
아래 부분이다.
일단 『잡아함경』에서 처음 제시되는 이들 각 표현이나 기본적 주장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아주 오래전에
첫 부분을 살피는 가운데 아주 상세하게
불교 경전 전반에 걸쳐 관련된 내용을 기본적으로 살핀 바 있다.
그래서 이 내용을 기본적으로 먼저 잘 살피고 이해하는 것이
중복 설명을 많이 피할 수 있다고 본다.
참고 http://buddhism007.tistory.com/228
그런데 일단 그 부분도 참조할 필요가 있지만,
여기서는 아래 라후라소문경 부분에 제시된 내용을
중심으로 왜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자신이라고 보고 대하는 각 부분을 놓고
이처럼 판단하게되는가.
그 사정을 살피면서
동시에 평소 일생동안 갓난아이때부터 노인이 될 때까지 수없이 변화해가는
매 순간의 내용을 한 주체와 관련시켜 이해하는 한편
더 나아가 생사 윤회의 주체로 파악하게 하는 요소는 또 무엇인가.
그리고 더 나아가 이런 내용을 놓고
왜 반야경전에서는 다시 그런 기본적인 판단을 놓고
대하는 것 역시 문제가 된다고 또 제시하는가.
이런 것을 잘 파악해야 한다고 본다.
일단 아래 경전 내용을 기본적으로 다시 참조하면서
쉬기로 한다.
아래 구절에서는 상재라고 한자로 표현한 부분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a 는 b 다--라고 할수 없다고 한번 했으면
일반적으로 사정이 그렇다면 a 는 b 와 다르다거나,
a 는 b 가 아니다 이런 형태로 제시해야 마땅할 것 같은데
왜 이 경전에서는 처음부터 이 둘다 다 곤란하다고 제시하는가.
그렇다면 이 내용은 a 와 b 의 관계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제시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하는가
이런 문제부터 기초적으로 잘 살펴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과거에 격자이론이라고 이름붙여
어떤 관계가 문제되는 a 와 b 를 놓고 살필 때
이들 관계를 어떻게 살피게 되는가부터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여하튼 이들 문제가 가강 기본적으로 살펴야 할 문제이면서
결코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다.
나중에 생사 윤회 주체의 논의와 관련해서는
위와 같은 구사론의 논의로 충분하지 않고
현재 경률논 코너에서 살피는 유가사지론의 내용까지 함께
다 참조해야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여하튼 그런 사정으로 이 부분이 상당히 복잡하고
복잡한 만큼 수행과정에서 갖는 의미도 대단히 중요하다.
그래서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다시 생사현실에 임해서는
이제 자신이 자신의 본 정체를 도대체 어떻게 이해하고 임해야 하는가.
또 나아가 자신이 평소 영희나 철수로 여기고 대하는 각 내용은
또 그 정체가 무엇이라고 여기고 임해야 하고
그런 바탕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생사현실의 생사고통의 문제를 해결하고
생사를 벗어나 무량겁에 걸쳐
무량한 복덕과 지혜를 구족하여 임하는 상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가 하는 문제까지 함께 이를 살펴야 한다.
도대체 이 논의 과정에서 무엇이 있다고 하는 것이 잘못이고
그런 가운데 또 무엇은 있어서
한 생도 아니고 무량겁에 걸쳐서 이어서
그런 수행을 성취해간다고 하는가.
이 내용을 종합적으로 잘 이해하고
현실에서 수행에 정진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일단 쉬는 것이 좋다고 본다.
>>>
[ 잡아함경 제 1권 관련참조부분]
23. 라후라소문경(羅睺羅所問經) ①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迦蘭陀竹園)에 계셨다.
그때 존자 라후라는 부처님께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 숙여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서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저의 의식이 있는 이 몸과 바깥 경계의 모든 대상에서
나[我]와 내 것[我所]이란 소견, 잘난 체하는 거만[我慢]과 같은 번뇌의 얽맴을 없앨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라후라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네가 여래에게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저의 의식이 있는 이 몸과 바깥 경계의 모든 대상에서 나와 내 것이란 소견,
잘난 체하는 거만과 같은 번뇌의 얽맴을 없앨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구나,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 잘 사유하고 기억하라. 내 너를 위해 설명하리라.
라후라야, ‘존재하는 모든 색(色)은
과거에 속한 것이건 미래에 속한 것이건 현재에 속한 것이건,
안에 있는 것이건 밖에 있는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아름답건 추하건, 멀리 있는 것이건 가까이 있는 것이건,
그 일체는 모두 나[我]가 아니고, 나와 다르지도 않으며,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관찰해야 한다.
이와 같이 평등한 지혜로 바르게 관찰하라.
무상하다고 바르게 관찰하고 나면
색에 대한 애착이 곧 없어지고,
색에 대한 애착이 없어지고 나면 마음이 잘 해탈하느니라.
佛告羅睺羅:“善哉!諦聽!諦聽!善思念之,當爲汝說。羅睺羅,當觀若所有諸色,若過去、若未來、若現在,若內、若外,若麤、若細,若好、若醜,若遠、若近,彼一切悉皆非我、不異我、不相在,如是平等慧正觀。
수(受)ㆍ상(想)ㆍ행(行)도 마찬가지며,
‘식(識)도 과거에 속한 것이건 미래에 속한 것이건 현재에 속한 것이건,
안에 있는 것이건 밖에 있는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아름답건 추하건, 멀리 있는 것이건 가까이 있는 것이건,
그 일체는 모두 나가 아니고, 나와 다르지도 않으며,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이와 같이 평등한 지혜로 사실 그대로 관찰하라.
如是受、想、行、識,若過去、若未來、若現在,若內、若外,若麤、若細,若好、若醜,若遠、若近,彼一切非我、不異我、不相在。如是平等慧如實觀。
이와 같이 라후라야, 비구는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본다.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면 의식이 있는 이 몸과 바깥 경계의 모든 대상에서
나와 내 것이란 소견, 잘난 체하는 거만과 같은 번뇌의 얽맴이 없어지느니라.
라후라야, 이와 같이 비구가 만일 의식이 있는 이 몸과 바깥 경계의 모든 대상에서
나와 내 것이란 소견, 잘난 체하는 거만과 같은 번뇌의 얽맴이 없다면,
그 비구는 ‘애욕을 끊고, 모든 결박[結]을 제거하고, 바르게 빈틈없는 한결같음[無間等]14)으로
고통의 경계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할 수 있느니라.”
이때 라후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잡아함경』 1권(ABC, K0650 v18, p.712c01-p.713a09)
[img2-49] [그림] - 이하 아래 부분은 현재 글 작성 중입니다. -
◈Lab value 불기2563/02/20/수/09:39
●
우선 여기서는 『잡아함경』 라후라경에 나오는 다음 구절부터 잘 이해해보기로 한다.
‘존재하는 모든 색(色)은
과거에 속한 것이건 미래에 속한 것이건 현재에 속한 것이건,
안에 있는 것이건 밖에 있는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아름답건 추하건, 멀리 있는 것이건 가까이 있는 것이건,
그 일체는 모두 나[我]가 아니고, 나와 다르지도 않으며,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관찰해야 한다.
여기서는 간단하게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일반적으로 갖기 쉽다.
어떤 문제삼는 x 가 a 가 아니라면 그렇다면 적어도 'a 와는 다르다' 이런 의미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다시 이어서 'a 와는 다르다'도 아니라고 하니,
그러면 위 내용은 x 는 과연 a와 관련해 무엇이라고 제시한 내용인가.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
그런데 이 구절이 의미하는 바를 살피기 전에
이 내용과 관련해 제기될 수 있는 내용들을 먼저 기본적으로 간단히 압축해 제시한 다음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살펴나가는 방식으로 살피기로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X 는 a 이다. 아니다. 같다. 다르다. 이런 기본적인 표현이 갖는 의미나
이와 같은 판단 구조가 갖는 의미부터 살필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가장 기본적으로 'X 는 a 이다'라는 기본적인 언어표현에서
'X 는 a 이다' 라는 문장에서 각 부분은 하나같이 언어표현인 점은 마찬가지만,
그러나 그 X 나 a 가 각기 존재가 문제되는 각 영역 가운데 어떤 내용을 가리키는 표현인가부터
기본적으로 잘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예를 들어 X 는 감각현실에 있는 어떤 내용을 가리키는 것인가.
아니면 관념분별영역안의 관념을 가리키는가.
아니면 단순히 사전에 있는 언어표현 자체를 가리키는가.
또는 이를 넘어 이들의 본 바탕이라고 할 본 바탕으로서의 실재를 가리키는가.
등을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
또 마찬가지로 'X 는 a 이다' 라는 문장에서 각 부분은 하나같이 언어표현인 점은 마찬가지만,
a 는 앞 부분의 X 와 같은 영역 안의 내용을 가리키는가. 아니면 이와 다른 영역의 내용을 가리키는가를
전후 맥락을 통해 먼저 잘 파악해야 한다.
더 나아가 이런 'X 와 a 를 놓고 이들 간의 관계를 파악할 때
~은 - 이다' 이런 문장형태로 제시하는 것 자체가
'X 는 a 와의 관계에서 어떤 상태임을 나타내는가를 파악해야 한다.
이는 언어표현 규정상 그런 언어 표현은 일반적으로 어떤 의미를 나타내는가를 파악하는 문제가 된다.
또 이와 관련해서는 '~은 ~ 이다'라는 형태로 어떤 이가 표현할 때
현실적으로 위처럼 표현하는 것은
X 란 개념을 파악할 때 외연[집합]적인 측면에서 접근해 그런 내용을 파악해 제시하는 것인가.
아니면 내포[속성,성품]적인 측면에서 접근해 그런 내용을 파악해 제시하는 것인가도 함께 기본적으로 살펴야 한다.
즉 일반적으로 '영희는 상냥하다'거나 '학생은 공부한다'
이런 형태로 일정한 언어표현의 기본규정을 준수하면서 진술을 한다면,
이런 언어표현은
예를 들어 영희에 해당하는 모든 내용을 다 일일히 검토한 후 그것이 서술어 부분에 해당하는 집합에 포함되거나 포함되지 않음을
판단하여 진술하는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그런 일정 부분이 그런 속성을 갖는다는 사실만을 파악하고 진술하는 것인가.
이런 내용도 먼저 살필 필요가 있다.
물론 결과적으로 한 표현은 결과적으로 이 두 내용을 다 함께 의미한다고 볼 수는 있다.
즉 'X 는 a 이다' 라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x 라는 그 대상은 a 라는 속성을 갖는다
x 에 해당하는 것들[외연-집합]은 a 에 해당하는 것들[외연-집합]에 포함된다.
이 두 내용과 결과적으로 관련된다.
그런데 이와는 별도로 일단 'X 는 a 이다' 라는 문장은
그런 언어 표현 방식을 통해 나타내는 의미가
가장 직접적으로 무엇인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어떤 이가 위와 같은 판단을 제시한다면
그런 판단을 도대체 어떤 과정을 통해 얻게 되었는가를 놓고
검토하여 그 언어표현이 나타내는 일반적인 의미를 이해하는 문제가 된다.
이런 입장에서 살피면 어떤 표현을 하는 이는
사실은 각 집합의 포함 관계를 매번 판단해서 이런 진술을 하는 예는 오히려 드물다고 이해하게 된다.
다만 논리적으로 이 진술을 음미하면 이를 통해 각 개념의 외연들 사이에
포함관계가 파악된다고 사후적으로 판단하게 된다.
이 때 하나의 언어표현이 1 차적으로 나타내는 의미 파악과는 이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경전에서 예를 들어 처음 색이라고 표현한다면 이런 색이란 표현이 가리키는 내용이
존재를 문제삼는 각 내용 가운데 어떤 내용을 어떤 측면에서
가리키는 것인가를 한편으로 잘 이해하고
나머지 표현들도 이와 사정이 같다.
나타내고자 한 것인가를 이후 살펴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어떤 X 를
어떤 a 와 관련시켜 a 를 기준으로 판단할 때
그 판단형식에 기본적으로 2 구(가) 분별방식과 4 구 분별방식이 있음을 먼저 주의할 필요가 있다.
또 이와 관련해서는 문제삼는 a 의 모순 개념 ~a 가 기본적으로 갖는 의미를 주의해야 하고,
더 나아가 a 가 (E*F) 형태로 복합적인 형태인 경우 ~ a 가 가질 수 있는 형태로서 4 분 되는 문제와도 혼동을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
이는 이런 의미다.
하얗다를 a 라고 할 때 모순개념으로 하얗지 않다를 세운다거나. '비하양'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하얗지 않은 색으로 검은 색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노랑색 파랑색 등도 모두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같은 유개념 범위라는 제한이 있는 것이 원칙이다.
모순 개념이란 이런 의미다.
그래서 아름다운 노래소리는 색이 하얗다고 할 것인가가 문제될 때
소리는 하얗다고 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하양' 에 넣지도 못하게 된다.
한편 하얀옷을 입은 학생을 a 라고 표현하면
이제 a 아닌 유형에는
하얗지 않고 노란 색 등을 입은 학생,
햐얀 옷을 입었지만 학생이 아닌 사람
하얗지 않고 노란 색의 옷 등을 입고, 학생도 아닌 사람
이런 형태가 나타나지만,
이런 경우는 모두 비a 에 넣어서 이해하는 것이고
이것을 4 구 분별이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4 구 분별은
a
비a 이외로,
a 이기도 하고 '비a' 이기도 한 경우
a 도 아니고, 비a 도 아닌 경우
이렇게 나누어 나열하는 것을 의미한다.
앞의 경우는 a 의 내용이 복합적이기에 비a 부분이 여러 형태로 나누어진 것일 뿐
4 구 분별 유형으로 경우를 나눈 것이 아니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그 정체파악을 문제삼는 어떤 X를 놓고
자신이 이미 파악하는 a 를 기준으로 판단하고자 할 때 위와 같은 2 구분별
즉 단순히 a 이다 a 아니다 이런 두 종류만의 판단을 넘어
4 구 분별이 문제되는 사정을 또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논의할 어떤 대상이나 물건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a 인가를 문제삼을 때
그것이 a 가 아니면 'a 가 아니다'나 '비a' 형태로 단순하게 경우수를 두 유형으로 나누어
묶어도 될 것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놓고 판단을 해보려면
우선 당장 그렇게 하기 곤란한 경우를 만나게 된다.
어떤 지우개가 하나 있다고 하자.
그리고 이것이 하얀가. 이렇게 문제삼고 살핀다고 하자.
그런데 만일 그 지우개가 반절은 하얗고 반절은 검다면 어떻게 답해야 하는가.
또는 각 부분이 점점으로 하얀 부분도 있고 노란 부분도 있어서 섞여 있다면 또 어떤가.
만일 이 경우 그런 각 부분을 나누어서 하나하나 따로 떼어 문제삼는다면
여전히 앞의 방식으로만 판단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위와 같은 상태에서 이 지우개를 전체로 묶어 판단하고자 하면
애매한 상태가 된다.
그 지우개를 하얗다라고만 하기는 곤란하다.
그렇다고 하얀 부분이 또 일부 있는데 하얗지 않다라고만 묶기도 곤란하다.
이런 경우는 일부는 하얗고 또 다른 일부는 하얗지 않기도 하기에
a 이기도 하고 a 아니기도 하다고 표현해야 할 것같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반드시 문제삼는 것이 반드시 이런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지우개를 문제삼았지만,
문제삼는 것이 앞에 든 것처럼 책상을 두드릴 때 나는 소리라고 한다면
하얗다- 하얗지 않다. - 하얗기도 하고 하얗지 않기도 하다.
이런 형태에 넣기도 곤란하다.
처음 '하얗지 않다'란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관련해서
이 표현이 여하튼 '그 전체가 다 하얗다'라고 단정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런 경우에 해당하는 모든 경우는 다 '하얗지 않다'라는 표현에
모두 담아 의미한다고 규정하면 대단히 넓다.
그런데 앞처럼 모순개념에 해당하는 경우로 범위를 좁히면
그렇게 되지 않게 된다.
그런데 이 가운데 'a가 아니다'란 표현을 어떻게 규정해서
어떤 범위로 사용하는가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그래서 예를 들어 책상두드리는 소리가 하얀색인가라고 문제가 제기될 때
하얀색인 것은 아닌 경우는 모두 '하얀색이 아니다'라는 표현에 넣어 이해한다면,
그렇게 표현해도 된다.
그런데 소리는 비하얀색이다라는 표현을 앞처럼 모순개념의 형태로만 제한해
사용한다면, 이 표현은 소리가 하얗지는 않지만, 어떤 색에 해당한다고
적극적으로 판단한 상태임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 아니다라는 표현이나 비a 라는 표현을 그렇게 규정해 사용할 때는
소리가 하얀색인가가 문제될 때는
소리는 하얀색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하얀색이 아니다라는 표현에 넣어 표현하기도 곤란하다.
그래서 그런 경우는 a 도 아니고 a 아님도 아니다. 이런 형태가 또 다시
필요하다고 보게 된다.
그런데 여하튼 이 경우는 문제삼는 소리에 대해서도 판단하고
그리고 a 나 비a 의 내용도 함께 검토를 마친 가운데
이런 판단을 한다.
그런데 만일 어떤 것이 문제는 되는데
그러나 판단을 해야 할 어떤 주체가 그에 대해 일체 판단을 하지 않았다거나,
판단을 하고자 해도 할 수 없다거나,
판단을 하기는 했는데 무엇인지 알기 힘들어서 모른다거나.
이런 여러 유형은 또 위 경우와 다르다.
이 경우를 놓고 'a 도 아니고 a 아님도 아니다' 이런 식으로 표현하기는 다시 곤란하다.
즉 4구 분별에서 'a 도 아니고 a 아님도 아니다'라는 판단은 여하튼 그런 내용으로 판단을 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앞과 같은 바탕에서는
그런 경우 그 정체를 문제삼는 X 가 있을 때
그 X 자체에 대해 전혀 파악하지 못하거나 알 수 없는 경우
또는 문제삼는 X 를 본래 한 주체가 끝내 얻을 수 없고,
따라서 언설과 분별을 떠나는 경우는
앞의 4 구 분별 안에도 넣지 못하게 되는 상태가 있음을 다시 주의해야 한다.
그런데 여하튼 이런 각 경우의 표현을 논의 중에
어떤 의미를 담아서 사용할 것인가는 미리 잘 규정해 놓고
사용할 필요가 있다.
일상적으로 이다 아니다의 표현은
일의적으로 명료하게 위에 제시한 어느 형태로 정확히 구분되어
사용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니다[불不, 또는 비非]'란 표현이 경전이나 논서 등에서 사용될 때
이것이 어느 의미를 담고 사용되었는가는
그 표현이 사용된 전후 맥락을 잘 살펴야 한다.
본래 실재의 공함은 얻을 수 없고,
언설과 분별을 떠나고 그래서 앞과 같은 4 구 분별도 역시 떠난다.
그런데 이런 상태를 나타낼 때에도
예를 들어 불생불멸 불구부정...이런 식으로 표현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이들 표현이 결국 실재의 공함을
언설로서 가깝게 나타내고자 그런 방편을 사용한다는 취지를 함께 잘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또 한편
4 구 분별이란 형식으로 논의할 때나.
아니면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형태로 무엇인가가
a 이면 a 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모두 a 아니다 이런 형태로도 사용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각 경우 가운데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에 속하는가는
앞 뒤 부분과 잘 관련시켜서 이해해야 한다.
현재 살피는 『잡아함경』 부분도 마찬가지다.
이들 표현은 한편으로는
일반적으로 행하는 이다 아니다 같다 다르다 등의 분별이나 4 구 분별 형태를 전제로 하는 가운데
그런 모든 것을 '떠난다'는 상태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맥락에서 각 부분에서 사용된
아님이나 [불不, 또는 비非]' 비, 이런 표현이 갖는 의미를 잘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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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편,
'X(S) 는 P 이다' 라는 일반적인 판단문(명제)와 달리,
'X 는 P 에 '있다'
또는 'X 에 P 가 '있다' 라는 형태의 있다라는 표현형태로 표현하는 경우를 또 잘 구분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다시 'X 는 P 이다' 라는 표현과 'X 는 P 에 '있다' 라는 표현의 상호관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특히 문제삼는 X 가 감각현실에 있는 어떤 내용이고 P 에 해당하는 내용은 관념분별에 해당하는 내용일 때
관념영역에서 각 개념의 내포 또는 외연의 포함 관계를 문제삼는 측면이 있고
감각현실 영역이나 관념영역에서
어떤 내용이 다른 내용과 전체와 부분의 관계인가를 기준으로 를 문제삼는 측면이 있다.
따라서 이들을 서로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이는 곧 집에 창문이 달려 있는 문제와,
'선생님'이란 개념은 '사람'이란 유개념에 포함되는 종개념이라는 관계문제를
서로 혼동하지 않아야 하는 문제와 관련된다.
창문은 집에 있다. 또는 내 지갑은 집에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창문은 곧 집이다'라거나 '내 지갑은 곧 집이다'라고 하기는 곤란하다.
그런데 '선생님'이란 개념이 '사람'이란 개념의 집합[외연]안에 들어 있어 포함된다면,
이런 경우는 '선생님은 사람이다'고 할 수 있다.
종전에 예를 들어 '집과 기둥, 창문' 등의 상호관계를 살필 때 이를 주로 격자이론이란 표현으로 살폈다.
여기서 격자이론이란,
문제삼는 주로 감각현실 영역안의 어떤 내용을 놓고
이를 ▦ 이런 격자 형태 내지 모눈지 형태로 각 부분을 나누어 구획해 놓고
각 부분을 다른 부분이나 전체와의 관계를 놓고 살피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이와 유사한 형태로 수학에서 사용하는 밴다이어그램이란 형태로
예를 들어 (○, ○) 이런 형태로 표시하여
상호간의 포함관계를 살피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 ○
또는 ◎ ⊙ ◐ ◑ 이런 형태 등으로 각 집합의 상호 포함관계를 살피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서로 비슷한 형태지만,
여기서는 앞처럼 전체와 부분, 구성부분 등의 관계를 살피는 경우와
유개념과 종개념의 관계를 살피는 경우를 서로 혼동하기 쉬우므로
이를 서로 구분하기로 한다.
즉 주로 감각현실을 놓고 각 부분이 다른 부분과 갖는 관게를 놓고 살필 때는 격자이론(▦) 형태로 이를 살피고
각 개념간의 유개념 종개념으로서 포함관계를 문제삼을 대는 밴다이어그램(◎ ⊙ ◐) 형태로 살펴서
이를 서로 구분하고자 한다.
격자이론이 문제삼는 부분은 다음 내용과 주로 관련된다.
자동차 엔진은 자동차안에 있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다고 '자동차 엔진은 곧 자동차'라고 할 것인가.
이런 주제가 이와 관련된다.
그런데 이는 이미 앞에 들었던 비슷한 사례,
'집과 창문', '집과 지갑'등의 경우와 관련해 다음처럼 살필 필요도 있다.
즉, 그런 상황에서 엔진을 제거하거나, 창문을 제거하거나, 지갑을 제거하면
이제 그것을 자동차나, 집이라고 할수 있는가를 놓고 또 살필 필요가 있다.
이런 경우 그것이 없으면 뒤의 판단도 할 수 없다고 할 경우가 있는 한편,
그렇다해도 관계없다고 보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또 애매한 경우도 또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에서 엔진이 없다면 이를 자동차라고 보기 힘들다고 할 수 있다해도,
그러나 창문이나 트렁크는 또 그렇다고 보기 힘들 수 있다.
그런데 바퀴 하나가 없으면 또 어떤가 하면 어중간하다.
그런 경우 자동차의 핵심적 특징으로 달릴 수 없기에 자동차라고 할 수 없다고 할 수도 있고
그렇다해도 자동차의 외관도 있고 사람이 안에 타는 것은 가능하기에 별 관계없다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입장에서 각 부분을 놓고 살필 경우
어떤 부분이 중요한 구성부분인가 아닌가하는 문제도 제기된다.
그런데 아무리 자동차에 있어서
엔진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필수적인 중요한 핵심 부분이라고 해도,
그런 사정만으로 '엔진' 그것을 곧 '자동차'라고 할 수 있는가는 또 별개문제다.
여하튼 이런 형태로 각 부분의 관계를 살피는 문제는
개념 사이의 포함관계를 살피는 문제와는 성격 자체가 다르다.
영희는 선생님이다.
영희는 선생님이란 집합에 포함된다.
이런 경우와 위 문제를 혼동하면 안 된다.
그런데 이를 혼동하기 쉽다.
그리고 이는 어떤 하나의 개념이 있을 때
이 개념의 외연과
그 개념이 가리키는 일정부분을 서로 혼동하는 문제와 관련된다.
즉, 현실에서 영희라는 말로 일정부분을 가리킬 때
그 부분이 영희라는 말이 가리킬 수 있는 여러 대상들(외연)과 관련된다고 이해할 때
이런 혼동을 먼저 주의해야 한다.
그래서 이처럼 기본적으로 논리적 판단이나 언어로 표현된 진술 명제를 살필 때
혼동을 일으키기 쉬운 이 부분들을 먼저 잘 정리해야 한다.
특히 여기서 상재相在라는 한자어 표현은 기본적으로 일반적으로 낯선 표현이다.
그런데 단순히 한자어만 놓고 파악하면 '서로 ~에 있다(존재한다)' 이런 의미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렇게 접근하면 이는 결국 '-이다' 라는 표현과 '- 있다'라는 표현이 서로 갖는 앞의 관계를 놓고
이 가운데 어떤 내용과 관련된 표현인가를 주의 깊게 검토해야 하는 문제가 된다.
그리고 이와 함께 그 앞부분에 제시된 다른 표현들 즉,
P 이다. 또는 아니다. P와 같다. P와 다르다. 이런 표현들과 관련하여
이는 도대체 어떤 상태를 나타내는 것인가를 또 기본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예를 들어
이 표현은
4 구분별의 4 구 가운데 일정한 경우들을 나타내는 것인가.
아니면 이와는 다른 내용인가를 먼저 살펴야 한다.
즉 통상 문제되는 X 를 놓고 이를 a와 관련해 살필 경우,
이에 대한 4 구 분별 형태는 다음과 같은 형태로 4 구를 나열할 수 있다.
1- a다.
2 -a 아니다.
3- a 이기도 하고 a아니기도 하다. [구]
4 -a 인것도 아니고 a 아닌것도 아니다. [비]
그런데 상재라는 표현은 이 가운데
예를 들어 3 의 형태를 가리키는가.
참고로 기본 4 구분별로 나열되는 형태를 나열하고 위 각 경우를 부정하게 되면
비교적 경전의 앞 두 부분은 처음의 1 과 2 의 경우를 부정한 형태와 가깝다.
이 때 상재는 3 의 경우를 의미한다고 보고
다시 이를 부정한 것이 不相在 라는 표현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4 구 분별가운데
엄밀히 보면 다시 4 번째 경우를 남겨 놓은 것이 된다.
한편 단순히 4 구분별 가운데 3의 [구]의 경우만을 놓고 이를 부정한 것을 불상재不相在의 표현이라고 이해하면
이 표현이 곧 4 구분별 가운데 4 의 형태가 되는 것은 아님도 주의해야 한다.
즉 3 을 부정하는 것이 곧 4 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혼동하면 안 된다.
여하튼 상재를 4 구 분별과 관련시켜 이해한다면,
4 구 분별형태 가운데 나열되지 않는 형태를 모두 고려 범위에 놓고 살펴야 한다.
그래서 불상재不相在란 경전 표현을 이와 관련시켜 이해하려면
이런 4 구 분별 가운데 각 경우수를 모두 포함해 부정하는 것을 고려에 놓고
이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
한편 상재라는 표현을 놓고 '서로 상'이라는 한자어에 의미를 부여하면
다음과 같은 경우도 또 별도로 검토할 수 있다.
즉, S 는 P 이다란 표현이 통상 S (의 외연)는 P (의 외연)에 포함되어 있다란 의미를 나타낼 때
S (의 외연)는 P (의 외연)에 포함되어 있는 한편,
P (의 외연)는 S(의 외연) 에 포함된다. 라는 표현과의 관련성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뒷 문장은 결국 S와 P는 완전히 동일하다는 의미를 나타내는데
이는 영희는 선생님이다라는 표현이
반대로 선생님은 모두 영희다 이런 관계를 성립시키지는 않는 것과는 달리
영희는 철수의 유일한 누나다. 이런 표현은
영희는 철수의 유일한 누나인 한편
철수의 유일한 누나는 영희다. 이런 관계가 성립한다.
그런데 과연 이런 관계를 상재라는 표현이 나타내는 것은 혹시 아닌가.
이런 내용도 관련해 함께 살필 필요가 있다.
이 때는 다시 추상적으로 문제될 수 있는
s 란 개념의 외연과 p 란 개념의 외연이
서로 관련될 수 있는 관계를 좀 더 다양하게 분류한 가운데 살펴야 한다.
여기에도 격자이론 내지 밴다이어그램 이라고 이전에 표현한 내용을 놓고
상호 관계를 주의깊게 먼저 검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S 는 P 이다' 또는 '-에 있다'란 표현을 할 때
이런 표현을 통해 살피고자 하는 문제 성격이
과연 감각현실 영역에서 각 부분의 상호 관계를 살피는 문제인가.
아니면 관념 영역에서 각 개념 상호간의 유개념 종개념 관계 등을 살피는 문제인가.
아니면 이것어 서로 뒤섞인 형태인가부터 잘 파악하고 살펴나갈 필요가 있다.
각 경우마다 문제성격이 대단히 차이가 난다는 것을 미리 파악하지 않으면
논의를 살피는 가운데 혼동을 일으키기가 대단히 쉽다.
한편, 모든 논의과정에서 언어표현이 갖는 의미를
그 언어표현만으로 명확히 파악할 수 있으면 좋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단히 많다.
이런 경우는 위처럼 관련되어 논의될 가능성이 있는 내용들을
일일히 풀어 함께 살피는 것도 좋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고 혼동이 발생할 때 이런 문제는
언어가 본래 갖는 문제점이지만,
언어 표현을 놓고 탓을 하면 안된다.
이런 현상은 처음 색이라는 표현 하나만 놓고 살펴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런 경우는 언어 표현 자체를 붙들고 문제삼기 보다는
문제가 제기되는 전후 사정과 맥락을 놓고
관련된 주제를 찾아 함께 검토하는 것이 낫다고 보게 된다.
그리고 경전에서
처음 색이라고 표현해 가리키는 내용이
존재를 문제삼는 각 내용 가운데 어떤 내용을 어떤 측면에서
가리키는 것인가를 한편으로 잘 이해하고
그런 색을 X 라고 할 때
그에 대해 왜 경전에서
一切悉皆非我、不異我、不相在
이런 형태로 제시하게 되는가를 다시 잘 이해해야 한다.
◈Lab value 불기2563/0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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